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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나마 파나마시티
‎1989년 12월 20일"

 

‎대통령께서는 오늘 아침
‎미군에게 파나마에서

 

‎미국인의 생명을 보호하고
‎민주적 절차를 회복하며

 

‎파나마 운하 조약의
‎무결성을 보존하기 위해

 

‎마누엘 노리에가 체포 작전의

 

‎실행을 명령하셨습니다

 

‎미국이 파나마 운하를 짓고
‎수년 동안 운영했습니다

 

‎카터 행정부가 파나마와
‎인도 조약을 맺기 전까지 말이죠

 

‎그러고 마누엘 노리에가가
‎권력을 잡았습니다

 

‎실제로 그는 미국 정부를 위해

 

‎마약의 사용, 유통을
‎단속하는 동시에

 

‎마약 밀매자들을 돕고 있었습니다

 

‎파나마에 운하를 넘겨서

 

‎우리는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노리에가 같은 독재자가

 

‎권력을 틀어쥐고
‎마약을 밀매해도 말이죠

 

‎정당한 이유 작전이 실행되기 전

 

‎노리에가의 행적이
‎모두 파악됐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도착하고 보니
‎그의 위치를 아무도 몰랐습니다

 

‎파나마에서
‎최우선 목표였던 노리에가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냥이 시작됐죠

 

‎"중앙 정보국"

 

‎"기밀"

 

‎"스파이 옵스: 첩보 공작의 세계"
시즌1-2화

 

‎"파나마 파나마 운하"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파나마 운하는

 

‎1914년에 개통됐습니다

 

‎미국은 수 마일의 정글을 뚫으며
‎중국, 이탈리아에서

 

‎수천 명의 노동자를 데려와서
‎운하를 건설했습니다

 

‎파나마 운하는
‎1914년에 완공됐습니다

 

‎그해 초에

 

‎"마크 시스네로스 장군"

 

‎미국은 파나마를 설득해서
‎콜롬비아에서 독립하게 만들었는데

 

‎운하가 건설된 지점이
‎두 대양 사이에서

 

‎가장 얇은 곳이었습니다

 

‎"파나마 운하"

 

‎해수면의 높이는 달랐지만
‎가장 얇은 곳이었죠

 

‎프랑스가 운하를 건설하려 했지만

 

‎말라리아 같은 질병 때문에
‎완공할 수 없었는데

 

‎우리, 미국이 넘겨받아서
‎완공했던 겁니다

 

‎그리고 미국 정부는
‎'운하 구역'을 만들었습니다

 

‎너비 30km 정도에
‎길이는 65km 정도였죠

 

‎파나마와의 운하 조약에
‎논란이 발생한 이유는

 

‎미국이 운하를 거의 소유하게
‎될 것이라는 거였습니다

 

‎운하 구역에는
‎자체 정부, 법, 교도소가 있었어요

 

‎그러니까 파나마인이
‎고속도로로 운하 구역을 통과하면

 

‎미국의 관할권 아래에
‎놓이게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갈등이 심한 곳이 되었습니다

 

‎카터가 운하 구역을 폐지하고

 

‎파나마에 운하를
‎넘기기로 했을 때 말이죠

 

‎"팬 아메리칸 유니언 빌딩
‎미국 워싱턴 DC"

 

‎"1977년 9월 7일"

 

‎파나마는 이 조약에 따라
‎향후 23년 동안

 

‎운하의 운영과 수호에
‎더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될 겁니다

 

‎그리고 미국은 그 이후에도
‎운하의 중립성과 개방성을

 

‎위협하는 것들에
‎대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카터와의 조약이 맺어졌을 때

 

‎우린 '공동 조약'이라는
‎작전 부서를 설립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지휘관이었습니다

 

‎저는 남부 사령부의
‎사령관이었습니다

 

‎"마크 C. 시스네로스 준장"

 

‎파나마는 그곳에
‎미군이 주둔해 있고

 

‎2000년도까지 우리가 운하를
‎운영한다는 걸 인정해야 했습니다

 

‎제 밑으로 12,000명의
‎병력이 있었고

 

‎12,000의 민간인 부양가족과

 

‎2만 명의 미국 시민이
‎운하 구역에 살고 있었습니다

 

‎CIA와 미군은

 

‎"호세 로드리게스
‎전 CIA 파나마 지부장"

 

‎파나마의
‎주요 이해 당사자들이었습니다

 

‎파나마는 파나마 운하와
‎운하를 통과하는 상선들 때문에

 

‎미국에게 아주 중요한 곳입니다

 

‎요충지인 셈이죠

 

‎파나마 운하 조약은
‎토리호스와 맺었습니다

 

‎토리호스는 독재자였습니다

 

‎카리스마가 넘치고
‎애국심이 강하고 인기가 높았는데

 

‎우리는 그를
‎효과적으로 상대했습니다

 

‎노리에가는
‎토리호스의 정보부장이었어요

 

‎그는 프로파간다와 기만

 

‎정보원과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인지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에 생긴
‎얽은 자국이 많아서

 

‎'파인애플 얼굴'이라 불렸는데

 

‎그를 비하하는 멸칭이었죠

 

‎그의 마음에 안 들었겠지만
‎그렇게 불렸습니다

 

‎마누엘 노리에가는 아주 흥미로운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습니다

 

‎"마사 덩컨
‎전 미 국방부 정보기관 분석가"

 

‎그는 가정부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그의 어머니는 노리에가를 위해

 

‎헌신했습니다

 

‎그는 고등학생 때
‎페루의 군사 아카데미로 보내졌고

 

‎거기서 좋은 성적을 거뒀습니다

 

‎소위로 임관하고
‎파나마로 돌아왔을 때

 

‎그는 오마 토리호스의
‎밑으로 들어갔는데

 

‎그를 거둬들인 토리호스는
‎그의 멘토가 되었습니다

 

‎그 관계는 상당히 발전했어요

 

‎1971년에 그는
‎비밀 경호국의 수장이 됐습니다

 

‎그는 중미 전쟁 때
‎미국에 매우 협조적이었습니다

 

‎우리의 지역 정책을 지지하고

 

‎중요 목표에 접근할 수 있게
‎도와줬는데

 

‎우리는 매우 고마워했어요

 

‎니카라과의 독립투사들은

 

‎중미의 민주주의를
‎쟁취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지원이 필요한데
‎내일은 늦을 겁니다

 

‎당시 중미 지역에서
‎큰 규모의 사건이 있었는데

 

‎우리는 산디니스타와
‎싸우던 중이었습니다

 

‎그들은 쿠바의 지원을
‎받고 있었는데

 

‎쿠바는 소련의 위성국이었죠

 

‎그래서 우린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노리에가는 쿠바와 사이가 좋아서

 

‎우리에게 내부 정보와
‎연락책을 알려 줄 수 있었어요

 

‎그는 그러면서 동시에 줄을 타면서

 

‎우리의 계획과 행적을
‎그들에게 팔았을 겁니다

 

‎그에 대한 신뢰도에
‎의문을 품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CIA가 노리에가에게 정보료로

 

‎매년 20만 달러를
‎지급한 거로 알고 있습니다

 

‎노리에가는 대가를 받았는데
‎무엇에 대한 대가였냐면

 

‎우리를 위해 수집한 정보와

 

‎중요 목표에 대한
‎정보의 수집을 위해

 

‎장비를 세팅한 것의 대가였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노리에가에겐
‎부패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는 파나마라는 나라와
‎그곳의 권력자들을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파나마 정부에서
‎중요한 인물이었습니다

 

‎특히 토리호스 정부에서요

 

‎"1981년 7월 31일"

 

‎오마 토리호스는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습니다

 

‎"토리호스
‎파나마 비행기 사고로 사망"

 

‎사건 경위는 불분명합니다

 

‎당국에 따르면
‎비행기는 산 옆에 추락했습니다

 

‎하지만 목격자들은

 

‎비행기가
‎비행 중 폭발했다고 합니다

 

‎비록 그의 사망은
‎사고였다는 발표가 있었지만

 

‎많은 이들은
‎그가 암살됐을 거로 추정합니다

 

‎"벵하민 콜라마르코"

 

‎"전 위엄 대대장
‎전 파나마 공공 사업부 장관"

 

‎1981년 7월 31일에 세로마르타에서
‎토리호스 장군이 사망했을 때

 

‎국가적 불안이 발생했습니다

 

‎토리호스는
‎공화국의 대통령이 아니라

 

‎정부의 수장이었습니다

 

‎권력이 이동할 때 노리에가 장군은
‎훗날 '국방군'이라 불리게 되는

 

‎방위군을 장악했습니다

 

‎그것을 지시한 것도 바로 그였죠

 

‎그는 파나마 국방군의
‎수장이 되었고

 

‎권력을 통합해서
‎결국에는 독재자가 되었습니다

 

‎대통령은 아니었지만
‎그는 주요 인물이자

 

‎파나마의 독재자였습니다

 

‎그는 돈의 흐름과
‎부자들에 대해 잘 알았고

 

‎온갖 종류의 부패에
‎연루되었습니다

 

‎그중 최악은 마약 밀매였을 겁니다

 

‎노리에가는 파나마를
‎마약 경유지로 이용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수로를 통제했죠

 

‎콜롬비아에서 마이애미는 물론
‎유럽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는 여러 카르텔의 사람들이 얽힌

 

‎네트워크를 구축했고

 

‎그 대가로 많은 돈을 받았습니다

 

‎카르텔이 무사히 통과하거나
‎도움을 받는 건

 

‎그에게 달려 있었습니다

 

‎카르텔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관계였죠

 

‎그러니까 마약 밀매와
‎온갖 종류의 부패의

 

‎완벽한 피난처였던 겁니다

 

‎미국은 마약 거래에 대해
‎많은 염려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1986년 레이건 대통령은
‎CIA에 마약 밀매 조직을

 

‎무너뜨릴 방법에 대한
‎정보 조사를 명령했습니다

 

‎우린 정보를 더 잘 수집하기 위해
‎파나마 전담반을 꾸렸습니다

 

‎제가 1986년에

 

‎거기 두 번째로 파견되었을 때
‎상황이 그랬습니다

 

‎대사관에 거래처 목록을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중 노리에가와 관련된 곳이
‎몇 군데인지 보고하기 위해서요

 

‎모두 노리에가와
‎관련이 있었습니다

 

‎모두 노리에가의 손아귀에 있어서

 

‎저는 그 회사들과의 거래를
‎전부 다 끊고

 

‎미국에서
‎물자를 들여오고 싶었습니다

 

‎저는 노리에가를 없애는 게
‎제 임무의 본질이라 여겼고

 

‎노리에가와 저는
‎숙적이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국가는
‎외국 군대의 주둔을 싫어하고

 

‎언젠가는 진저리를 칩니다

 

‎곧 노리에가는
‎의문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이 최고의 파트너이며

 

‎가장 친한 친구인지 말이죠

 

‎그리고 여러 방식으로
‎우리와 맞서기 시작했습니다

 

‎"존 포인덱스터
‎레이건의 국가 안보 고문"

 

‎포인덱스터는 노리에가에게
‎니카라과의 콘트라 세력을 대신해

 

‎개입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심지어 노리에가에게
‎니카라과와 싸울 수 있는

 

‎콘트라를 양성할 수 있도록
‎파나마 땅을 빌려달라고도 했죠

 

‎노리에가 장군은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고

 

‎미국은 노리에가 장군을
‎그들의 지정학적,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는 것에 대한
‎장애물로 보았습니다

 

‎그는 미국을 적대하면서
‎대립을 일삼고

 

‎거의 적국처럼 대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의 중미 정책도
‎훼손하기 시작했고요

 

‎파나마인의 존엄성과
‎용기를 뜻하는 이 마체테가

 

‎한 발짝도 물러서지 말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파나마의
‎정치 기구를

 

‎탄압하고 억압하기 시작했는데

 

‎정적들을 고문하거나
‎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더는 눈감아 줄 수 없다는 걸
‎어느 순간 깨달았습니다

 

‎어떻게든 손을 써야 했죠

 

‎그래서 그때 그와의
‎관계를 끊었던 겁니다

 

‎"워싱턴 DC, 1988년"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이

 

‎파나마에 대한
‎경제적, 군사적 지원을 끊어서

 

‎파나마는 엉망이 됐습니다

 

‎1988년, 노리에가는

 

‎미국에 마약을 밀매한 혐의로
‎연방 기소되었습니다

 

‎"제1 타깃 노리에가"

 

‎"타락한 깡패의 소굴"

 

‎마약 밀매 혐의로 기소된 통치자는

 

‎지금도 미국이
‎제공해 준 헬리콥터를 타고

 

‎파나마를 날아다닙니다

 

‎마누엘 노리에가 장군은
‎군대의 총사령관이며

 

‎파나마 최고의 권력자입니다

 

‎저는 전담반의 반장으로서

 

‎백악관에서 열리는 보좌관 회의인

 

‎국가 안전 보장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회의 목표는 노리에가를
‎권좌에서 평화롭게 끌어내리고

 

‎언젠가는 민주 정부에
‎권력을 이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를 제거하고 싶나요?

 

‎노리에가가 권좌에서 내려오는 걸
‎꼭 보고 싶습니다

 

‎"파나마 파나마시티
‎1989년 3월"

 

‎노리에가의 부하 장교들에 의한

 

‎쿠데타 시도가
‎1989년 3월에 있었는데

 

‎그들은 제압되고 처형되었습니다

 

‎CIA의 돈을 오랫동안 받았던
‎노리에가 장군은

 

‎프로파간다에 대해 꽤 해박합니다

 

‎그는 자신을 축출하려는 시도를
‎또다시 막아냈는데

 

‎미국은 그가 떠나기를
‎간절히 원하지만

 

‎그의 권력 장악력은
‎여전히 막강해 보입니다

 

‎우린 쿠데타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는 무기도 안 줬고
‎그 어떤 훈련도 안 했습니다

 

‎노리에가가 물러나도록
‎군이 압박을 가하게 설득했던 거죠

 

‎커트 뮤즈는 가족과
‎파나마로 간 미국 시민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그래픽 사업을 했고
‎커트는 아버지 밑에서 일했죠

 

‎그의 아이들은
‎파나마 학교에 다녔습니다

 

‎그는 파나마 사회에 적응한
‎커뮤니티의 일원이었죠

 

‎하지만 그는
‎다른 파나마인 친구들처럼

 

‎노리에가의 독재를
‎염려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들을 '라디오 보스
‎데 라 리베르타드'라 칭했죠

 

‎"출처: 보스 데 라 리베르타드"

 

‎그들은 파나마시티 도심의
‎상업용 라디오 방송국 주파수를

 

‎가로챌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니까 주파수를 장악해서

 

‎자신들의 프로그램을 방송한 거죠

 

‎당시 그들은
‎반노리에가와 친민주주의에 대한

 

‎짧은 메시지들을
‎산발적으로 방송했습니다

 

‎자유의 목소리

 

‎우린 그들에게 돈을 줘서
‎파나마시티 도심의

 

‎여러 장소에 안가를 마련하고

 

‎최신 장비를 제공하여

 

‎특정 시간에
‎주파수를 뺏을 수 있게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노리에가가
‎속임수를 쓸 것을 알았기에

 

‎이걸 이용해서
‎그에게 반격하기로 했습니다

 

‎노리에가가 선거 과정을
‎조작하려고 했거든요

 

‎우린 장비를 설치하고
‎선거일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선거일에
‎우린 출구 조사 결과를 받았고

 

‎우리가 작성한 대본을 읽었습니다

 

‎'주목, 긴급 상황입니다'

 

‎'출구 조사에 기반을 둔
‎선거의 진짜 결과를'

 

‎'여러분께 알려 드리기 위해
‎이 방송을 잠시 중단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출구 조사 정보를
‎빠르게 검토하고

 

‎파나마군의 통신을
‎차단하고 감시했습니다

 

‎그들이 우리를
‎찾고 있었을 수도 있었으니까요

 

‎아주 효과적이었죠

 

‎우리는 오후에서 저녁까지
‎라디오 방송을 가로채면서

 

‎메시지를 송출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노리에가가
‎개표를 중단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에
‎그는 선거를 무효로 했습니다

 

‎외국의 간섭이 있었다면서
‎선거를 무효로 한 것이었죠

 

‎위엄 대대는

 

‎애국적인 파나마 시민들이

 

‎국방군의 후방을 지원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조직한 민병대였습니다

 

‎우리가 원했던 건

 

‎외국의 군사 개입을
‎막는 것이었습니다

 

‎제 이름은 아마디스
‎히메네스 데 산도발입니다

 

‎저는 침공 당시
‎국방군의 대위였습니다

 

‎"아마디스 히메네스
‎전 파나마 국방군 대령"

 

‎벵하민 콜라마르코와
‎오랫동안 알고 지냈죠

 

‎당시의 많은 젊은이들처럼
‎그는 이상주의자였는데

 

‎아마도 그는 민족주의와
‎파나마의 주권 문제를

 

‎많이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위엄 대대의
‎지휘관이었습니다

 

‎선거 무효화가 선언되자

 

‎"에릭 헤이니
‎전 델타 포스 원사"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는데

 

‎노리에가는 파나마 국방군과

 

‎위엄 대대에 명령해

 

‎합법적으로 선출된 사람들을
‎공격했습니다

 

‎그중 하나가 빌리 포드였습니다

 

‎그는 거리에서 공격당했는데
‎경호원이자 운전사가 살해됐고

 

‎포드는 심한 구타를 당했습니다

 

‎오늘 파나마시티에서
‎친노리에가 세력들이

 

‎야당 지도자들과
‎지지자들을 공격했습니다

 

‎야당의 대통령 후보인

 

‎기예르모 엔다라는
‎구타로 의식을 잃었습니다

 

‎그의 부통령 후보들도
‎크게 다쳤습니다

 

‎하지만 그는 본색을 드러냈습니다
‎자신이 독재자라는 것 말이죠

 

‎그게 그의 종말의 시작이었습니다

 

‎"폭력배 정부
‎미국이 개입할 것인가?"

 

‎저는 특수 부대에 배치되었는데

 

‎'공동 정보 융합 조직'이라
‎불리는 곳이었죠

 

‎우리의 목표는 노리에가를 찾고
‎그의 행적을 예측하는 거였어요

 

‎그래서 우리는 11월에
‎파나마로 내려갔습니다

 

‎저는 아마도르 둑길에서
‎조깅을 했습니다

 

‎그 지역에 노리에가의
‎사령부가 있었는데

 

‎그곳 경비랑 대화해서
‎정보를 얻은 다음에

 

‎제가 얻은 정보를
‎상부에 보고했습니다

 

‎제가 도착하고 했던 일 중 하나는
‎노리에가의 행방을 알 수 있는

 

‎정보원의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었습니다

 

‎노리에가의 일거수일투족을
‎예측할 수 있게 말이죠

 

‎노리에가에겐
‎비키 아마도라는 정부가 있었는데

 

‎그녀가 자주 갔던 네일 샵에 가서

 

‎소문을 들으려고도 했습니다

 

‎그리고 노리에가가 자주 찾았던

 

‎'마녀의 집'이라는 곳이 있었어요

 

‎그는 스페인어로 '산테리아'라는
‎부두교에 심취해 있었습니다

 

‎그는 부두교 의식을 통해
‎자신이 더 큰 권력을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파나마 포트 클레이턴
‎1989년 12월 16일"

 

‎크리스마스 무도회 중이었는데

 

‎우리 사령관인 시스네로스 장군이
‎무도회를 중단시켰습니다

 

‎마이크를 잡고 말했습니다
‎'무도회를 중단해서 미안하지만'

 

‎'방금 어떤 사건이 터졌는데
‎모든 장교는'

 

‎'가족을 집에 데려다주고
‎기지로 복귀하기 바란다'

 

‎저는 해병대 중위가 살해되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파나마에서 살해된 해병은
‎콜롬비아인"

 

‎친구 두 명과 외출한 그는

 

‎파나마 사령부를 지나갔는데
‎거기 검문소가 있었습니다

 

‎검문소에서는
‎차량을 세우라고 명령했죠

 

‎그는 차단기로 달려갔고
‎그들이 그를 사살했습니다

 

‎매우 믿을 만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부시 대통령에게 보고할 때

 

‎그 해병이 살해된 직후에

 

‎그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되는

 

‎해군 중위가 아내와 있었다는
‎보고도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 해군은 같은 장소를 지나다가
‎검문소에서 차를 세웠는데

 

‎해군을 내리게 한 다음
‎거칠게 대하고 아내를 희롱해서

 

‎부시가 작전의 실행을
‎명령했다고 들었습니다

 

‎'정당한 이유'라는 작전 말이죠

 

‎파나마인들은
‎'미국의 침공'이라 불렀지만요

 

‎저도 '미국의 파나마 침공'이라
‎부를 겁니다

 

‎실제로 그랬으니까요

 

‎"1989년 12월 19일
‎오후 10시"

 

‎오후 10시쯤에 귀가했는데
‎전화를 받았습니다

 

‎포트 아마도르의

 

‎모이세스 코르티소
‎대위에게서 말입니다

 

‎코르티소 대위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벵하민,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파나마 주둔 미 육군의
‎연락 담당관과'

 

‎'통신이 끊겼습니다'

 

‎그날 밤에 검문소를 지나가는데

 

‎검문소 조명이 깨져 있었고
‎군인도 없었습니다

 

‎파나마군, 미군 전부 말입니다

 

‎미 해군 사령부가 있었던
‎기지 왼쪽 전체가

 

‎완전히 캄캄했습니다

 

‎빛 한 점 없었죠

 

‎저는 그곳에 주둔해 있던

 

‎미 87보병 연대 5대대의

 

‎원사였습니다

 

‎델타 포스는 몇 가지 이유 때문에
‎파나마 침공 작전인

 

‎정당한 이유 작전에 동참했습니다

 

‎첫째, 그들의 팀이
‎몇 달 동안 노리에가를 추적했고

 

‎두 번째 이유는 커트 뮤즈였습니다

 

‎커트는 파나마인들의 모임인
‎'보스 데 라 리베르타드'의

 

‎일원이었습니다

 

‎그는 미국에 갔다가
‎파나마로 돌아온 상태였죠

 

‎라디오 그룹은
‎지인에게 배신당했습니다

 

‎그리고 커트는
‎교도소에 갇히게 되었죠

 

‎커트는 초리요 도심의
‎모델로 교도소에 수감되었습니다

 

‎파나마 국방군 사령부인
‎코만단시아 맞은편에 말이죠

 

‎미국 정부는 침공의 첫 단계로

 

‎커트를 구출할 것임이
‎명확했습니다

 

‎그 임무는
‎'애시드 갬빗'이었습니다

 

‎정당한 이유 작전 때

 

‎저는 육군 특수 임무 부대에
‎배속되어 있었습니다

 

‎육군은 기밀로 분류된
‎다양한 부대를

 

‎"리 밴 아스데일
‎전 델타 포스"

 

‎특수 임무 부대라고 칭합니다

 

‎델타 포스는 우리 군의 정예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일을 처리하고 나올 수 있죠

 

‎우린 커트 뮤즈를 교도소에서
‎안전하게 구출하고 싶었습니다

 

‎거기 더 오래 있을수록
‎더 위험하다는 걸 알았으니까요

 

‎"오후 11시 35분"

 

‎델타 쪽에서

 

‎꽤 오랫동안 이걸 준비했단
‎얘기가 들리더군요

 

‎저는 리가 델타의
‎심사를 통과하고

 

‎오퍼레이터 훈련을 받을 때부터
‎그를 알았습니다

 

‎그들은 모델로 교도소 옥상에
‎착륙했고

 

‎내부로 침투했습니다

 

‎문을 억지로 열고 감방을 여는데

 

‎폭발물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커트를 끌고
‎헬리콥터에 태웠습니다

 

‎하지만 헬리콥터가 뜨자마자
‎총격을 받았고

 

‎기체가 손상되어
‎도로로 추락했습니다

 

‎미군이 지원군을 보냈어요

 

‎총알이 빗발치는 와중에
‎우리 쪽 병력 수송 장갑차가

 

‎커트를 구출해서
‎육군 기지로 돌아왔습니다

 

‎정말 드라마틱한 탈옥이었습니다

 

‎델타 부대원 몇 명이
‎총상을 입었지만

 

‎전부 살아남았으니
‎해피 엔딩이었습니다

 

‎10점 만점에 10점이었습니다

 

‎"자정"

 

‎그러는 와중에

 

‎나머지 대대는
‎헬기를 타고 포트 아마도르에 가서

 

‎그곳을 확보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러고 작전을 실행하고요

 

‎운하 구역과 포트 아마도르

 

‎파나마 공항, 토리호스
‎포트 시마론과

 

‎저 북쪽에 있는 리오 하토까지

 

‎동시에 공격할 계획이었습니다

 

‎82공수 사단이 내려왔어요

 

‎네이비실이
‎파나마 비에호에 강하했는데

 

‎불행하게도 썰물 때였습니다

 

‎그렇게 되면 바닷물이
‎육지로부터 매우 멀어지는데

 

‎불행하게도 거기서
‎4명의 네이비실 대원을 잃었습니다

 

‎굉장히 혼란스러웠죠

 

‎우리에겐 침공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뒷문으로 나가는 거였죠

 

‎사실 파나마 기지와
‎미 육군 기지 사이에는

 

‎도로만 하나 있었습니다

 

‎길 하나만 건너면 침공하는 거였죠

 

‎가장 중요한 것은 도시 안의

 

‎파나마 국방군을
‎재빨리 고립시키고

 

‎제거하는 것이었습니다

 

‎코만단시아는
‎북처럼 두들겨 맞았습니다

 

‎AC130 공격기들이
‎그곳을 사정없이 폭격했고

 

‎그 후에는 레인저 부대가
‎잔당을 제거했습니다

 

‎우린 노리에가가
‎거기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거기 있었다면 폭격을 하지 않고
‎지상군만 투입했겠죠

 

‎아무튼 작전이 시작되자마자
‎그곳은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망자가
‎거기서 나왔습니다

 

‎코만단시아 전투에서 말이죠

 

‎그곳에 있던
‎빈민촌에도 불이 났어요

 

‎엘 초리요가 불에 타는 걸
‎볼 수 있었습니다

 

‎"빅토르 코토
‎목격자"

 

‎우리 집이 무사할지
‎확신할 수가 없었죠

 

‎굉장히 무서웠습니다

 

‎우린 초리요를
‎완전히 불태웠습니다

 

‎12블록보다 조금 더 많이요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왔습니다

 

‎그 건물들은
‎프랑스가 운하를 뚫으려 할 때

 

‎프랑스인들이 지은 건물이었습니다

 

‎조지아의 사바나에서 온
‎소나무 심재로 지어졌는데

 

‎소나무 심재는
‎불에 정말 활활 탑니다

 

‎느리거나 늙거나
‎장애가 있거나 어리다면

 

‎거기서 빠져나올 수 없었죠

 

‎12월 19일 밤

 

‎저는 코코 솔로 해병대
‎보병 중대의 지휘관이었습니다

 

‎대위로 막 진급한 참이었고

 

‎그날 중대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저는 부대의
‎전화번호도 몰랐습니다

 

‎병사들의 이름조차 몰랐고요

 

‎그 부대의 병사들은
‎아주 어렸습니다

 

‎18, 19, 20살짜리 애들이었는데
‎폭격이 시작되자

 

‎그들은 겁에 질려서
‎우리를 둘러쌌습니다

 

‎옆에 있던 병사가 이러더군요
‎'중대장님, 밖에 나가지 마세요'

 

‎'나가면 돌아가실 겁니다'

 

‎저는 답했습니다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적이 우리보다
‎너무도 막강하기 때문에'

 

‎'항복하는 수밖에 없다'
‎이렇게 말이죠

 

‎항복하려고 나가는 순간
‎수류탄이 터졌고

 

‎병사와 저는 쓰러졌는데
‎그는 제대로 피하지 못하고

 

‎수류탄에 맞았습니다

 

‎제 품에서 숨을 거뒀죠

 

‎처음 몇 시간 동안에만 해도

 

‎480개가 넘는 폭탄이
‎수도권에서 터졌다고 합니다

 

‎특히 엘 초리요 지역에 말이죠

 

‎제가 봤을 때
‎전투는 1시간 만에 끝났습니다

 

‎저는 데이비스 수용소에
‎있었습니다

 

‎파나마의 새 대통령이
‎엔다라 대통령인 줄 몰랐죠

 

‎무효가 된 선거에서
‎미국의 지지를 받았던 후보들이

 

‎침공에 의해 세워진
‎새 정부를 이끌게 되었습니다

 

‎엔다라는 이렇게 말했…

 

‎그런데 엔다라 대통령이
‎시스네로스 장군과 대화하면서

 

‎그에게 저에 대해 물었더군요

 

‎그래서 포트 데이비스의 안가에서
‎시스네로스 장군과 만났습니다

 

‎그가 들어올 때
‎눈빛에 증오가 가득했습니다

 

‎침공당하거나 격추되는 걸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그때는 화가 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수용소로 돌아가고 싶다고
‎그에게 말했습니다

 

‎그 어떤 것에도
‎동참하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전 그에게 다 끝났다고 말했습니다

 

‎'노리에가는 도주 중이고'

 

‎'자네들 모두를 배신했어'

 

‎'더는 누가 죽거나
‎뭘 부술 필요가 없어'

 

‎'자네가 날 도와주게'

 

‎시스네로스 장군은
‎엘 초리요에 화재가 나서

 

‎많은 사람들이 집을 잃었는데

 

‎다른 미국 장성이
‎콜론을 폭격하고 싶어 하고

 

‎그날 밤에 폭격이
‎예정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콜론의 병력이

 

‎항복할 수 있게
‎제게 도와달라고 했어요

 

‎저도 불필요한 유혈 사태는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고 같이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들은 저와
‎시스네로스와 통화를 했고

 

‎그는 매우 정중하게
‎항복을 권유했습니다

 

‎콜론이 폭격당하는 걸
‎원치 않았으니까요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장을 해제하면'

 

‎'폭격은 없을 것이며'

 

‎'백기를 내걸면 무사할 겁니다'

 

‎몇 시간이 지나고

 

‎장교들은 미군 검문소로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콜론이 폭격 되는 건
‎피할 수 있었습니다

 

‎대략 75% 정도의 파나마군이

 

‎사흘 만에 항복했습니다

 

‎정당한 이유 작전이 실행되기 전

 

‎노리에가의 행적이
‎모두 파악됐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시간만 말해 주면
‎어디 있는지 알려 드리죠'

 

‎그런데 도착하고 보니
‎그의 위치를 아무도 몰랐습니다

 

‎노리에가를 추적하던 정보원들은
‎그가 콜론의 대서양 쪽에서

 

‎회의를 했다고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태평양 쪽으로 이동했고

 

‎공항 근처의 호텔에 갔는데

 

‎거기서 흔적을 놓쳤습니다

 

‎왜 아무도 그의 위치를
‎몰랐는지 알게 됐는데

 

‎정당한 이유 작전이 실행될 때
‎그는 매음굴에 있었습니다

 

‎비행기를 보고 폭발음을 듣고 나서

 

‎숨었던 거죠

 

‎노리에가는 영리했어요

 

‎우리가 자신을
‎죽일 줄 알았던 거죠

 

‎우린 실제로 그럴 거였고
‎전투 도중에 그를 사로잡았더라면

 

‎분명히 죽였을 겁니다

 

‎노리에가는 장소를 옮겨가며
‎은신했습니다

 

‎사복을 입고
‎운전사 등 옆에 사람을 두고서요

 

‎또 어디든 오래 있지 않았습니다
‎델타가 쫓고 있었으니까요

 

‎우리는 엿새 동안
‎그가 있을 법한 곳이나

 

‎그가 있다고 보고된 곳에
‎20번이나 넘게 출동했습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노리에가는 없었습니다

 

‎"파나마 쿼리 하이츠
‎1989년 12월 21일"

 

‎제 생각에 노리에가는
‎정글에 숨기에는

 

‎너무 겁이 많은 자 같았습니다

 

‎그는 안락한 것을 굉장히 좋아했고

 

‎그는 정부인 비키 아마도를
‎너무 사랑했어요

 

‎그러다가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이 혼란 속에도
‎비키 아마도는 노리에가의 위치를

 

‎알지도 모른다는 생각 말이죠

 

‎저는 전화번호부를 구했어요
‎그때는 전화번호부를 썼거든요

 

‎아마도의 집 전화번호를 찾아서
‎거기 전화를 걸었습니다

 

‎12월 21일 늦은 시각이었어요

 

‎그녀의 어머니인 노르마가
‎전화를 받았는데

 

‎저는 제 이름이 마리아라고 하면서

 

‎노리에가의 메시지를
‎비키에게 전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비키가 전화를 받고는

 

‎숨을 헐떡이며 묻더군요

 

‎'그는 무사해요? 어디 있어요?'

 

‎그러니까 두 사람 모두
‎노리에가의 행방을 몰랐던 거죠

 

‎그래서 저는 비키에게
‎마누엘이 남긴 메시지라며

 

‎만약 위험한 것 같으면

 

‎저, 마리아에게 연락하면
‎도와주러 가겠다고 말했습니다

 

‎12월 21일의 통화는
‎그렇게 끝났습니다

 

‎12월 22일 오후에 전화가 왔는데

 

‎비키는 자기 목숨이
‎위험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운송 수단을
‎마련하겠다고 했습니다

 

‎12월 23일에
‎약속한 곳에서 그녀를 만났습니다

 

‎하지만 차량이
‎옛 운하 구역으로 진입하고

 

‎부대 정문으로 접근하니까

 

‎저를 보면서 이러더군요
‎'어디로 가는 거죠?'

 

‎전 안전한 곳으로 가는 거라고
‎말했습니다

 

‎그녀에게 제가
‎노리에가의 편이 아니고

 

‎미군 편이라는 것을 밝히면서

 

‎이제 노리에가가
‎정의의 심판을 받을 때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비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어요

 

‎아마도 그러고 며칠 동안

 

‎비키는 자신의 역할이
‎중요함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자녀들의 삶도
‎생각해야 했는데

 

‎그 생각이
‎제일 앞섰던 것 같습니다

 

‎비키 아마도가 몰락한 이유는

 

‎상류층의 일원이 되는 걸
‎좋아해서였습니다

 

‎그녀의 어머니인 노르마는
‎술집을 경영했는데

 

‎노리에가의 식사를 담당했습니다

 

‎그는 독살되는 것을
‎두려워했거든요

 

‎그래서 비키의 어머니가
‎식사를 준비했죠

 

‎반면에 비키는
‎마누엘 노리에가를

 

‎만나기 전까지는
‎결코 가능하지 않았던

 

‎스타일의 삶을 즐겼습니다

 

‎흥미롭게도 12월 23일에

 

‎제가 비키를 안가로 데려왔을 때는

 

‎노리에가의 행방을 몰랐습니다

 

‎"파나마 바티칸 대사관
‎1989년 크리스마스이브"

 

‎12월 24일 저녁

 

‎노리에가는 교황 대사에게
‎전화로 보호를 요청했습니다

 

‎노리에가가 그랬던 까닭은

 

‎그곳이 가톨릭교회의
‎성소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교황 대사와 있는 사람은
‎못 건드린다고 교황이 말했거든요

 

‎노리에가는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그 전화를 걸었습니다

 

‎저기가 주차장인데

 

‎바로 맞은편이
‎바티칸 대사관입니다

 

‎저기 뚫린 곳으로
‎두 사람이 서 있는 게 보이시죠?

 

‎노리에가 방의
‎바로 맞은편이 저기입니다

 

‎노리에가가 저기서 머무는 거죠

 

‎그리고 사방을 전부…

 

‎그가 바티칸 대사관에 들어갈 때
‎수녀 차림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여장을 했다는 이야기도 들었고요

 

‎그리고 비야누에바 신부님께서

 

‎그를 교황청 대사관으로
‎들였다는 얘기도 있었는데

 

‎저는 모르겠습니다

 

‎우린 잽싸게 달려갔습니다
‎우리가 제일 먼저 도착해서

 

‎대사관을 확보했습니다
‎그의 탈출을 막기 위해서요

 

‎그리고 많은 병력으로
‎겹겹이 에워쌌습니다

 

‎그를 완전히 가둔 거죠

 

‎그리고 12월 26, 27일에
‎안가와 교황청 대사관 사이에

 

‎직통 전화를 설치해서
‎비키와 노리에가가

 

‎직접 통화를 할 수 있게 했습니다

 

‎우리는 노리에가와
‎비키의 통화를 엿들었습니다

 

‎비키와 노리에가의 통화는
‎주로 이런 내용이었어요

 

‎'거기 영원히 있을 순 없어'

 

‎그가 전화기를 붙잡고 있을 동안

 

‎우리는 압박을 가했습니다

 

‎큰 군용 확성기에서
‎록 음악을 크게 틀었죠

 

‎제일 마음에 들었던 건
‎'I Fought the Law'였는데

 

‎아주 요란하게 틀었죠

 

‎그가 머무는 방이
‎어딘지 알고 있어서

 

‎벽에 아주 가깝게
‎스피커를 설치하곤

 

‎밤낮을 가리지 않고
‎크게 음악을 틀었습니다

 

‎유엔 총회는 미국의 파나마 침공을
‎명백한 국제법 위반으로

 

‎규탄하는 결의안을 채택했습니다

 

‎투표 결과는 75대 20입니다

 

‎유엔 총회는

 

‎결의안 44/240을 승인했습니다

 

‎즉, 당시 미국의 행정부였던

 

‎부시 정부가 국제법을 위반하고

 

‎파나마의 주권을
‎침해했다는 것이죠

 

‎그날 아침 사령부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보니
‎파나마 군중들이

 

‎교황청 대사관 근처에서
‎시위를 하고 있었습니다

 

‎제 차를 보자마자 환호하더군요

 

‎그땐 제가 인기가 많았어요

 

‎자기들이 들어가서 노리에가를
‎끌고 나오겠다고도 했어요

 

‎사령부로 돌아가서
‎교황 대사에게 전화로 말했습니다

 

‎'수많은 파나마인이
‎대사관에 들어가서'

 

‎'노리에가를
‎처리하고 싶다고 합니다'

 

‎뜻을 파악한 그는 위층에서
‎노리에가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이렇게 말했다고 얘기해 주더군요

 

‎'노리에가한테 이랬습니다
‎계속 버티고 있으면'

 

‎'저 군중이 무솔리니처럼
‎당신의 목을 매달 겁니다'

 

‎'시스네로스에게
‎자수 안 하면 그렇게 될 겁니다'

 

‎'시스네로스에게 구금되면
‎그의 보호를 받을 테지만요'

 

‎사실이었습니다

 

‎그 일이 있기 전
‎저는 비키와 대화를 하면서

 

‎노리에가의 성향을 파악했는데

 

‎비키는 그의 자존감이
‎아주 높다고 했어요

 

‎자신의 군사적 업적에
‎아주 만족하고

 

‎망신당하는 걸
‎싫어한다고 했습니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죠
‎그에게 군복을 제공하고

 

‎입고 나오게 하면
‎망신이란 생각을 덜 할 거라고요

 

‎그리고 노리에가와
‎대화를 했습니다

 

‎'군복을 입어요'

 

‎'대사관에서 나왔으니
‎자존감이 회복된 겁니다'

 

‎'이대로 영영 버틸 수는
‎없으니까요'

 

‎우리 쪽 병력이
‎노리에가의 거처 중 한 곳에 가서

 

‎그를 위해 군복을 세탁하고 다려서

 

‎배달해 줬습니다

 

‎커튼이 올라가는 게
‎그가 나온다는 신호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시스네로스 장군에게 항복하겠소'

 

‎저는 그걸
‎서먼 장군에게 전달했는데

 

‎제가 가면 안 된다고 해서
‎저는 거기 없었습니다

 

‎특수 부대원들이 가서
‎그의 몸을 수색했는데

 

‎저는 뒤에 있었어요

 

‎"정당한 이유 작전 10일 후
‎1월 3일 오후 8시 50분"

 

‎그날 저녁 8시 50분에

 

‎노리에가는 자신의 군복을 입고
‎교황청 대사관에서 나왔습니다

 

‎그가 나올 때 겁먹지 않게
‎우리는 침착하게 있었습니다

 

‎나왔다가 겁을 먹고
‎다시 돌아가면 안 되니까요

 

‎그럼 모든 게 원점이 됐겠죠

 

‎그가 나오고
‎저는 그의 상완을 잡았습니다

 

‎돌려세워서
‎몸수색을 할 수 있게 말이죠

 

‎그가 시스네로스 장군을 찾아서

 

‎길 건너편에 있다고
‎대답해 줬습니다

 

‎우린 그에게 수갑을 채우고
‎블랙 호크 헬기로 데려갔습니다

 

‎수갑을 찬 그가 헬기에 탔을 때
‎저도 거기 있었습니다

 

‎헬기에서 그를 던질 줄 알고
‎반항을 하더군요

 

‎그래서 수갑을 채운 겁니다
‎그래서였어요

 

‎괴성도 내더군요

 

‎두려워서 말입니다
‎그는 겁쟁이에 지나지 않아요

 

‎교황청 대사관에서 나온
‎노리에가가

 

‎마약 단속국 요원들에게
‎넘겨지는 것을 보고

 

‎"마약 단속국"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어요

 

‎정당한 이유 작전에는
‎감동적인 부분이 꽤 있었습니다

 

‎완벽하진 않았어요
‎사람은 실수를 하니 말입니다

 

‎적이 방해할 때도 있고
‎날씨가 방해할 때도 있고

 

‎망가진 차량이 방해할 때도 있고
‎완벽한 건 없으니까요

 

‎하지만 이 작전의 규모와
‎범위를 따져 보면

 

‎꽤 놀라울 정도로 잘 풀렸습니다

 

‎파나마 침공과 군사 작전에 대해서

 

‎제가 참여한 것을
‎전혀 후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뿌듯합니다
‎많은 사람을 살렸으니까요

 

‎우리, 적어도 저에게
‎정말 놀라웠던 점은

 

‎마지막 순간까지 노리에가가
‎CIA와 협력했다는 겁니다

 

‎저와 제 부대원들은
‎거의 죽을 뻔했는데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를 공격한 적과

 

‎협력했다는 걸 알게 되니
‎입맛이 쓰더군요

 

‎곁의 사람들이 죽는 걸 보는 건
‎매우 힘든 일입니다

 

‎제게 이런 감상을 남겼습니다

 

‎나쁜 평화가 없는 것처럼
‎좋은 전쟁은 없다는 것 말이죠

 

‎그게 가장 깊이 남았습니다

 

‎침공 당시의 사망자 수를
‎우리는 아직도 모릅니다

 

‎2천에서 3천 명 정도로 추산했는데

 

‎남은 기록이 없습니다

 

‎노리에가는 미국에서
‎40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리고 프랑스 법도 어겨서
‎프랑스 교도소에도 갔다가

 

‎파나마로 풀려났습니다

 

‎그리고 전 운하 구역의
‎교도소에 갇혔는데

 

‎거기서 암에 걸렸다는 걸
‎알게 됐고 사망했습니다

 

‎"성 토마스 병원
‎성인 응급 의료"

 

‎하지만 전반적으로 그는
‎과분한 대우를 받았습니다

 

‎노리에가는 매우 잔인한 자였어요

 

‎파나마는 성공 사례 중 하나입니다

 

‎민주화를 이룩했고

 

‎운하를 인도받고

 

‎잘 운영하면서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하지만 조심해야 합니다

 

‎또 이런 군사 점령을
‎하지 않기 위해서 말이죠

 

‎많은 젊은 병사들이
‎목숨을 잃을 뿐만 아니라

 

‎귀중한 보물들과
‎세계적인 지위도 잃게 돼요

 

‎다른 나라를 침공하는 시대가
‎끝났다면 좋겠습니다

 

‎"정당한 이유 작전으로 인해"

 

‎"공식적으로 514명의
‎파나마인이 목숨을 잃었다"

 

‎"23명의 미군 병사와
‎3명의 미국인도 사망했다"

 

‎"마누엘 노리에가 장군은
‎17년을 교도소에서 복역했다"

 

‎"스파이 옵스: 첩보 공작의 세계"

 

자 막 : 박 해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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