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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에 근거함'
1941년
미군 함대에
그리고 10시간 후
일본군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일본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만 명의 미국인과
6만 명의 필리핀인들을 포함한
미국 군대는
더 이상 후퇴할 곳도
그 곳에 고립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루즈벨트 대통령과
유럽에서 행해지는
먼저 진압하기로
바탄에 남겨진
혹독한 운명 속에 던져졌다
맥아더 장군은
명령에 따라 호주로 떠나면서
돌아올 것을 약속했다
아무 지원 없이
굶주린 필리핀과 미국 병사들은
일본군에게 항복하고 말았다
이것은 미군 역사상
가장 큰 패배로 기록됐다
7만 명의 전쟁 포로들은
일본군에게 끌려
쓰러지는 이들은
이 죽음의 행군에서
살아남은 포로들은
팔라완 등지의 수용소로 끌려갔다
항복을 치욕으로 여기는
포로들을 더욱
수천 명이 질병과
굶주림과 학대로 죽어 갔다
그러나 1944년
전세가 역전되기 시작
미군은 일본과의 전투에서
하지만 일본군은 패배를
일본 정부는 계속되는
일본 국민들을
일본인들에게 필사적으로
1944년 8월 1일
도쿄 전쟁성에서는
전쟁 포로에 관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단 한 명도
'아무 흔적도 없이
'팔라완 포로수용소'
- 왜 우릴 방공호에 넣지
"그레이트 레이드"
'다음은 1945년 1월
'제 6군단 사령부, 필리핀, 루손, 칼라시오'
'첫째 날, 1월 27일'
링가옌 만 상륙은
태평양에서 펼쳐진
25만 병력이 상륙해
필리핀에서의
난 스탠포드를 졸업하고
직업 군인엔 관심이 없었다
임무를 마치고 아내에게
난 제 6레인저 대대의 대위였고
일본의 진주만 폭격은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다
태평양 건너 필리핀마저
바탄 반도까지 후퇴했지만
구조 병력도 없이
군 최고 사령부가
히틀러의 만행을
결정함에 따라
병사들과 필리핀인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4개월 간 싸웠지만
쉬지도 먹지도 못한 채
거의 100km를 행군했으며
가차 없이 죽임을 당했다
만 5천 명이 목숨을 잃었고
오도넬, 카바나투안...
일본군들은
무자비하게 다뤘으며
연일 승리를 거두었다
거듭할수록 더 필사적이었다
미국의 위협적인 공격을
단결시키는데 이용했으며
본토를 지킬 것을 강조했다
정책을 발표했는데
탈출시켜선 안 된다'
전원 몰살시켜라'
- 글쎄
(2005년)
5일간 벌어졌던 사건이다'
최대의 해군 작전이었다
마지막 공격을 준비했다
ROTC에 입대했지만
돌아가고 싶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