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실, 안방
욕실, 부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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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면도_리사.PDF
  "소녀와 거미"   네?   2층으로 와요   서랍장 옮기는 거
도와줄래?   곧 나갈게   - 안녕
- 왜 이제 와요?   주차하느라고
겨우 한 자리 찾았어   알았어요   - 아빠는 잘 있어요?
- 그럼   올 수도 있다니까
기다려봐   - 안녕하세요
- 안녕하세요   이거 접이문이구나   조용!   조용!   개가 자꾸 문을 긁어요   - 커튼 가져왔어요?
- 응   "마라"는?   욕실에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빵은요?   가져왔어   욕실에 곰팡이 있어   - 곰팡이에 우는 아기까지...
- 안녕하세요   - 너 헤르페스 걸렸니?
- 네   여기, 선물이야   "평면도"   고마워   헤르페스 옮겠다   아직도 아파?   아니   어쩜 좋니   조용!   조용!   - 작년에 우리 자전거 여행 갔었잖아
- 그랬었지   그때 어떤 작은 동네에서
서로를 잃어버렸었어   널 찾으려고 골목과 카페를
다 돌아다녔는데   그러다 분수를 발견했어   그 분수 옆에 앉아
눈을 감으니까   물소리가
잔잔히 들려와서   거의 잠들 뻔했어   어느새 난 웃고 뛰노는
아이들 틈에 있었어   자연스레 내 옆에 앉는
아이도 있었지   기분 좋았어   가만히 앉아
귀기울이며 생각했어   "넌 지금 어디에 있을까"   "뭘 하고 있을까"   그러다 정적이 찾아왔어   주위를 둘러보니
아이들이 사라졌더라   마치 분수에
삼켜진 것처럼   순식간에 말이야   잔잔한 물소리가
다시 들려왔고   물방울들이 바람에
흩날렸어   처음부터 이곳에
단 한 사람도   없었단 듯이   결국 날 다시 만났잖아   맞아, 널 만났지   카페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어   그런 널 멀리서 지켜봤어   아름답더라   자유로워 보였어   집에 헝겊 있니?   잡지 마   욕실 좀 닦아줄래?   알았어요   - "마르쿠스"는 안 온대?
- 소파 갖고 오는 중이래요   손 좀 씻어도 될까요?   고마워요   - 저도 하나 줄래요?
- "얀", 안 올 거야?   뭐 하고 있어요?   넌 누구야?   "엘레니"요   - 여기 살아?
- 네   - 그림 그리는 거 좋아해?
- 네   - 우리랑 청소 같이 할까?
- 아뇨   - 빵 하나 먹을래?
- 네   위층 살아, 아래층 살아?   아래층요   - 커튼 다는 거 도와줄래?
- 네   여기 산 지 얼마나 됐어?   망치 좀 집어주실래요?   - 여기요
- 고마워요   이름이 뭐죠?   곰팡이가 진짜 있네요   - 타일 틈새에요?
- 네   "아스트리드"예요   이거 어떻게 없애죠?   커터 칼로요   커터 칼 갖고 계세요?   아뇨   멍청하긴   - 얜 누구니?
- "키라"예요   키라도 돕고 있구나   - 여기 숨어 있었네
- 안녕하세요   - "카렌"이에요, 아래층 살아요
- 집에 아기 있죠?   개도 있고요   - 고양이도 있어요
- 맞아요, 고양이도 있죠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이전 세입자가 얘네들을
다 돌봤었어요   그렇군요   - 안녕하세요
- 안녕하세요   - 이름이 뭐예요?
- "리자"요   만나서 반가워요, 리자   안녕하세요   고양이가 아기랑
놀아주나 봐요   당신은 누구죠?   제 룸메이트예요   - 같이 이사 온 거예요?
- 아뇨, 저만요   옷장 설치 끝났어   - 흔들리네요
- 네, 바닥이 기울어서요   창고에 이전 세입자
옷장도 있어요   정말요?
좋은 분이셨어요?   네, 스튜어디스였어요   그럼 날아서 떠났어요?   - 맞아요, 당신이 날아 들어왔고요
- 네, 그렇네요   살던 집에서 파티할 건데
놀러와요   - 애들 때문에 안 돼요
- 그럼 어쩔 수 없죠   - 곰팡이도 있어요?
- 네, 욕실에요   혹시 커터 칼 없을까요?   있죠, 갖다 드릴게요   고마워요   고양이가 아기를
할퀸 거예요   이제 아기 죽었나 보다   계단에 올려놓을까요?   네, 그러세요   네가 만든 거니?     컴퓨터로?   네, 컴퓨터로요   인쇄하려 할 때
PDF가 뒤죽박죽됐었어요   뒤죽박죽?     글자와 선들이
다 뒤섞였었는데   예뻤어요   기호들이 무질서하게
배열되고   글자에서 의미가
사라져 있었죠   창을 닫았다 여니
원상태로 돌아왔어요   글자는 의미를 되찾고
선들은 형태를 갖췄어요   그 일이 다시 일어날까 싶어서
계속 창을 닫고 열었는데   아무 변화도 없더라고요   한 번으로 끝이었어요   PDF 문서는 그런 일
안 생길 텐데   오류였을 거야   얀?   안 올 거야?   너 입술에 피 나   좀 흔들려   리자가 어릴 때 결막염에
걸린 적이 있었어   내가 걔 눈 위에
티백을 올려줬었지   그 상태로 누워서
꼼짝을 않더라고   눈 위에 티백을
얹은 채로 말이야   난 옆에 앉아
리자가 잠들길 기다렸어   얼마 지나니
조용해지더라   꼭 애가 숨을 멎은 것처럼   난 그대로 일어나
방을 나왔어   거실로 가져갈까요?     - 짐 같이 옮겨주실래요?
- 저요?   오래 안 걸려요   수고하셨어요, 잘 가요   안녕히 가세요   저기요?   저기요?   커터 칼 가져왔어요   당신 집 말이에요   딴 사람 이사 와요?   아기가 우네요   조용한데요   정말이에요, 울어요   - 거실에 놓을까요?
- 네   - 안녕
- 안녕하세요   노란색?   - 질투의 색이죠
- 광기의 색이기도 하고요   카렌이에요
여기 이웃에 살아요   마르쿠스예요
리자 룸메이트 겸 노예죠   나도 그런 사람 필요한데   - 여기요
- 고마워요, 이걸로 곰팡이 잡아야겠네요   노예 죽여도 되고요   "이리나"는 일요일에
이사 온대   우리더러 도와달라더라   - 탁자 같이 옮길까요?
- 네   청소기로
먼지 청소해줄래, 노예야?   해드려야죠, 주인님   엄마!   그만해요!   이제 우리 가야 해요   조용!   조용!   아무것도 손대지 마요   - 두꺼비집 어딨죠?
- 부엌에요   제가 스위치 켤게요   개가 전선을
물어뜯었나 봐   나 소변 볼 건데   조용!   조용!   - 두꺼비집엔 문제 없어요
- 의외네요   아기가 울어요   그렇네요   이제 우네요   당신이 이사를 왔다면
좋았을 텐데   같이 즐겁게 지낼 수
있었을 거예요   갈게요   - 이사 잘 해요
- 고마워요   왜 키라한테
커피 부었어요?   개들도 목마르잖아   조리대에 긁힌 자국
생겼어   그렇네   필요할 때
언제든지 연락해요   "예르치 코발스키"   "유렉"이라고 불러요   유렉, 고마워요   그럼 이만   - 또 봅시다, 아스트리드
- 잘 가요, 유렉   잘 있어요   잘 가요   내일은 좀 늦게
와주실래요?   - 네, 그렇게 하죠
- 좋아요, 문자 드릴게요   - 당신은? 내일 와요?
- 아뇨, 안 와요   시간 되면 이따 와요   - 상황 봐서요
- 재밌을 거예요   - 상자 다 치울까?
- 응   손님?   이거 통기성 밴드예요   - 더 필요하신 건요?
- 없어요   3.90프랑이에요   - 여기요
- 고마워요   - 안녕히 가세요
- 안녕히 계세요   안 도와줘요?   이거 내 거니?   아직 갖고 있었는지
몰랐어요   - 염색했네
- 맞아요   - 이 옷 이제 안 입어?
- 다 해어져서요   너 어릴 때
다운 재킷도 있었는데   그래요?   옷 안에 작은 새가 산다고
말해줬었어   잘 들어보면 소리가
들릴 거라고   깃털을 뽑으면
새가 죽을 거랬지   그래서 깃털 안 뽑았어?   - 안 뽑았겠지
- 아니   뽑았었어   그 후로 넌 재킷을
무서워했지   옷 안의 죽은 새가
자꾸 떠올랐던 거야   이것 좀 도와줄래?   문짝부터 떼어 낼 거야   늘 저렇게 선반을
채우고 있어   로봇처럼 말이야   그렇네   저 애를 카페에서 본 적이 있어
친구랑 같이 있던데   얼마나 생기 넘치던지   전혀 딴사람 같더라   일 안 도와줘?   곧 사람들 올 거야   이제 저 애 볼 때마다
그 모습이 떠올라   그날의 웃음과...   고양이 밥 주러 갈래?   반짝이는 눈빛이 말이야   목소리는 어떨지
궁금해졌어   꾀꼬리세요?   밤꾀꼬리지   난 밤에 노래해   내 아름다움을
혼자 만끽하려고   아름다움은 아끼는 게
아니에요   밤꾀꼬리라도 안 돼요   보아라, 여왕께서
왕좌에서 내려오셨구나   제 왕족의 푸른 피가
머리로 쏠렸어요   그래 보이네   잠깐 내려와서
담배 피울래?   여왕은 담배 안 피워요   딱 한 번만 피우자
셋이서 같이   손님들 오기 전에
정리 끝내야 해요   저 내려가요   옷장 정리는 나 없이도
할 수 있잖아   하미드!
그만해, 재미없어!   그만!   조용히 좀 해!   - 나가요!
- 나 자고 있잖아!   난 안 자니까   차 마실래?   고양이 못 봤어?   - 아니, 집 안에 없어?
- 찾아도 안 보여   안녕, 케르스틴   안녕, 마르쿠스   이웃집 고양이
밥 주려는 중이야   안경은 어쩌고?   부러졌어   여기 뭐 붙었다   케르스틴 언니가
닭이 되려나 봐   형은 눈사람이고요   맞아, 난 눈사람이야   둘이 합치면 눈닭이네   이제 인디언이에요   나 옛날부터
닭을 갖고 싶었어   아침으로 먹을
달걀 좀 낳아줄래?   그래   네가 원하는 만큼
쥐어짜내줄게   따뜻하고 동그란 걸로   따뜻하고   동그란 거   낳아줄게   젠장!   - 언제 돌아온댔지?
- 다음 주요   - 빨리 보고 싶니?
- 네   - 무슨 일 있어?
- 문이 세게 닫혔어   그래서 유리가 깨졌고   "노라"도 깨웠지   여긴 누구 집이니?   "크라머스"네 가족인데
휴가 갔어요   마르쿠스 오빠가
고양이 밥 챙겨주고 있고요   맞다, 고양이!   위층에 있을 거야
"아르놀트" 할머니네   맞아   거긴 왜?   전에도 며칠 사라진 적
있었거든요   - 그때 결국 찾았었잖아
- 맞아요, 아르놀트 할머니네서요   - 아르놀트 할머니네서?
- 네   어느 날 할머니가 고양이 밥을 산 걸
크라머스 부인이 본 거예요   고양이도 없는 분이
말이에요   세탁기가 말을 안 들어!   충격 받아 고장났나 봐
네 팬티 때문에   아님 너무 흥분했거나요   쟤가 노라예요
제 룸메이트   밤의 여왕이죠   낮 동안엔 잠만 자요   밤엔 아파트 안을
조용히 배회하고요   이틀에 한 번은
해질녘에 헬스장에 가요   노라에겐 어둠이 피부고   밤은 둘도 없는 친구예요   그리고 햇빛은 죽음이죠   그건 다 뭐야?   엄마가 옷장 뜯었어요   안녕   안녕하세요   얘가 문 앞에 있더구나   여기 있었네   고마워요   그럼   - 안녕히 가세요
- 이제 얘도 닭이에요   그렇네   닭이 됐어   할머니가 고양이 사료를
샀었다고?     그걸 본 후로 부인은 고양이가 할머니와
함께 있는 상상을 했어요   하루 종일 말이에요   특히 밤만 되면   천장 위에서 야옹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죠   그래서 아파트 수위를
찾아가 말했어요   수위는 망상이라며
웃어넘겼고요   그런데 얼마 후 할머니 집에서
고양이가 발견된 거예요   그랬겠지   수위가 발견해서
크라머스 부인에게 돌려줬죠   다음 날 부인은 계단에서
할머니를 만났어요   할머니는 애써
웃음 지으려 했지만   두 눈엔 눈물이
고여 있었죠   그렇게 말없이 있다
집 안으로 사라졌어요   내 빨래 끝나면
꺼내줄래?   그래   전 밤이면 가끔
할머니를 상상해요   넓은 방에 혼자 앉아
고양이를 생각하는 할머니를요   할머니의 큰 침대도
상상하죠   텅 빈 방 안의
깔끔히 정리된 침대요   안 올 거야?   안녕하세요   안녕, "에마"   잘 있으렴, 마라   안녕히 가세요   내일 봐요   내일 봐   그럼   예르치 코발스키   피어싱 안 했네요   응, 빼 놨어   그럼 입술 밑에
구멍 나 있겠네요   구멍으로 와인
뿜을 수 있어요?   물론이지   그만해요!   물집 터지겠다   일꾼이 왔네!   못 올 줄 알았어요   누구야?   리자네 이사
거들러 왔던 사람요   어제 재밌는 일이
있었어요   리자가 화장실에
갔을 때였어요   여기 휴지 다 떨어졌어!   잠깐만   리자가 휴지를
갖다 달랬는데   휴지는 안 주고
문 앞을 걸어 지나갔죠   왼쪽에서 오른쪽...
리자 쪽에서 봤을 때요   그런 다음 또 한 번
지나갔어요   이번엔 반대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요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그때 리자가
웃음이 터졌죠   제가 두 번째 지나가는 걸
리자는 못 보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두 번 지나간 줄 알았던 거예요   한 방향으로만 두 번   유령처럼 말이죠   상상이 돼요?   그것 때문에 걔가
웃었던 거예요   마르쿠스 오빠도
곧 이사 갈 거래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맥주 한 잔 더 할래요?     당신은요?   됐어요   잠깐 다녀올게요   저도 하나
피워도 될까요?   그래요   고마워요   - 좋은 아침
- 안녕   좋은 아침   - 안녕하세요
- 안녕   아빠는요?   같이 못 왔어   - 엄마가 오지 말랬어요?
- 그럴 리 있니?   이따 올지 모르니까
기다려봐   - 커피 드려요?
- 고마워   안녕하세요   안녕   창문에 머릴 찧었어요   - 좋은 아침
- 좋은 아침   너도 헤르페스
물집 생겼네   - 그래, 덕분에
- 그거 볼 때마다 날 기억해   여기, 내가 직접 기른 거야   고마워요   예쁘네   - 밴 도착했어?
- 아뇨, 유렉 아저씨 안 왔어요   내 옷...   옷이 술 마시고 싶었나 봐   - 전등 가져갈 거야?
- 응   올 때
사다리 가져와줄래?   - 그 코트 걸이도 가져갈게
- 알아   - 사다리 옮기는 거 돕지?
- 싫어   옷이 보풀투성이다   세탁기에 휴지가
들어 있었거든   바보   커피 마실래?     - 여기
- 고마워요   - 파티는 재밌었니?
- 네   - 식기세척기 가져가려고?
- 네, 제 거니까요   - 내가 도와줘?
- 아뇨   "럭키" 네 방에 넣어도 될까?
차에 다녀오려고     이리나는 너처럼
안 덜렁댔으면 좋겠다   이리나는 너랑 사는 거
못 견딜걸   넌 평생 여길
못 벗어날 테고   엿 먹어   나중에, 이사부터 끝내고   뭐 해요?   이마에 묻은 거
먼지예요?   뭐 그려요?   - 리자네 새 집 꾸미는 거야
- 누나 건축가예요?   그래   아냐   사실 건축가 아냐   그럼 뭐예요?   거짓말쟁이   그림 그리는 사람이야   이것도 누나가
그렸어요?   아니, 리자네 이웃집
여자애가 그렸어   리자 누나
가끔 놀러올까요?   그럼   어젯밤에 꿈을 꿨어   널 시내에서
만나는 꿈이었지   넌 잘 어울리는
옷을 입었어   나이는 살짝
들어 보였지만   우린 얘기도 나누고   즐겁게 웃었어   넌 몸이 뻐근하다며   입고 있던
스웨터를 올렸고   내가 마사지를 해줬지   네 어깨와   등...   그러다 냄새를 맡았어   네 냄새였지   네 옷과 몸에서
더러운 냄새가 났어   손을 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어서   그냥 모른 체하고
마사지를 계속했어   하지만 넌 알아챘어   뭔가 달라졌단 걸   넌 날 바라보며   애써 웃음 지으려 했지만   두 눈엔 눈물이
고여 있었지   그렇게 너와 헤어졌어   담요 몇 장 가져왔어   가구 옮길 때 쓰려고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 머리 부딪혔어요
- 창문에요   맞아요   강풍 불면
제멋대로 열리거든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가발은 왜 썼어요?   - 푸른 여왕이시거든
- 미쳐서 그래   안녕하세요   조심해요!   - 안녕하세요
- 별일 없죠?   그럼요   신발은 왜 그래요?   삑삑대네   신발이 노래를 하네요   에어쿠션이 떨어져서
그럴 거예요   그래요?   안 오세요?   제가 창문 한번 봐줄게요   리자를 임신 중일 때, 머리 벗겨지는
꿈을 종종 꿨었어   그래서 머리카락을 잘라
이 가발을 만들었지   언젠가 정말 머리가 벗겨질 때를
대비해서 말이야   그 꿈을 꿀 때마다
일어나서 가발을 봤어   늘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지   마치   자그마한   동물 같았어   이제 그런 꿈
안 꾸시잖아요?     이제 그런 꿈 안 꿔   이 매트리스도
옮길까요?   아뇨, 두고 갈 거예요
탁자도요   - 탁자 분해해요?
- 아뇨, 놔둬요   안녕하세요   안녕   밤꾀꼬리가
일찍 일어났네요?   둥지를 뺏겼거든   이제 다시
날아갈 준비하니?   부딪혀 떨어질 준비요   - 마르쿠스는?
- 창고에 내려갔어요   저것 좀 담아줄래?   안 도와줘요?   엄마!   - 피아노도 가져가요?
- 아뇨   객실 청소부 거예요   - 객실 청소부라뇨?
- 여기 살았었어요   난 본 적은 없는데
피아노 소리만 들었었어   유령 같았지   저한텐 친구였어요   그 애 호텔에서
일했댔나?   맞아   호텔 레스토랑에서   그런데 그 앤 사람과
말 섞는 걸 불편해했어   매번 주문을 받을 때마다   긴장을 너무 해서
머릿속이 새하얘졌지   그래서 청소부로
배정된 거야   객실 청소 상태를
점검하는 일을 했는데   처음엔 사람과 말할 필요가
없어서 좋았지만   얼마 지나니
따분해지기 시작했어   그 앤 방을 직접
청소하고 싶어 했어   청소하는 걸
가장 좋아했거든   그 애가 객실에 들어갈 때마다
늘 뭔가 달라져 있었어   가구가 옮겨져 있거나   냄새가 변해 있었는데   거기서 일의 재미를
찾았지   어느 날 그 애가
해고됐을 때   정말 슬퍼했었어   방 안에 틀어박혀
피아노 연주도 잊을 정도였지   그러다 이 집을 떠났어   어디로?   유람선을 탔어요   맘 편히 청소를
할 수 있는 곳이죠   그 후 피아노만 여기
남아 있게 됐고   걔 물건들은 상자에 담겨
창고로 들어갔죠   아직 배 위에
있을 수도 있어   밤이면 선실에서
두고 온 피아노를 상상하겠지   이 방에 놓여 있는
피아노를   누군가가
연주하고 있는 상상   언젠가 돌아올지도 몰라   그럴지도 모르지   - 안녕하세요
- 여긴 웬일이야?   - 문이 열려 있어서...
- 일 도와주려고요?   그럴게요   실례할게요   잘 잤어요?   누구세요?   얀이야   룸메이트분한테 물어서
찾아왔어요   걔 일어났어?   옷 갈아입고 있어요   걔랑 너 잘 맞을 것 같아   저 둘이 같이 잔 거야?     오빠한테서 냄새 난다   꽃엔 향기가 있는
법이잖아   이제 냄새 안 나   네가 내 탈취제네   오빠는 내 장미꽃이고   안녕   안녕   청소기에
무슨 문제 있어?   - 전선을 씹었어요
- 키라 짓이야   맞아요   - 안녕하세요
- 안녕하세요   - 저 하나 피워도 될까요?
- 네   받아   여기 올라오면
세상이 달라 보여   윙윙 파리도
날아 들어오고...   신나게 콧노래 부르네   피어싱 왜 안 했어?   네가 안경 안 쓴 것처럼   나도 피어싱 안 한 거야   덜수록 큰 의미라잖아   우리 과잉 해석 하지 않게
조심하자   그 반대도 조심해야지   섭섭하다   뭐가?   너 이사 간다며   이사 안 가   거짓말이었네   전 눈 깜짝 않고도
거짓말을 하죠   난 입을 안 열고도
와인을 뱉어   대단하네요   한 번 더 보여줘요   - 싫어
- 한 번만요   싫다니까   전 남친이 날 찼었어   내가 자꾸 와인 뿜는 게
싫다고   알겠어요   당신은 언니의
어떤 면에 싫증날까요?   가만있지 못하는 성격요   끊임없이 딴 남자들과
날 비교할 거예요   그렇게 내 가치를
저울질하죠   난 버림받을까 봐
속썩일 테고요   나중엔 당신도 언니와
딴 여자들을 비교할 거예요   언니가 미우니까요   그 정도로는
성이 안 차겠죠   딴 여자를 사랑하기 위해
케르스틴을 죽여야 할 거예요   하지만 난 죽이지 않아요   둘이 함께 미치는 편을
택할래요   영원히요   그런 서로에게
차츰 익숙해지겠죠   언니는 가끔 입술 아래로
와인을 뿜을 거예요   그럼 당신의 아름다운
가슴 위로 떨어지겠죠   그 가슴에 담뱃불도
비벼 끌 거예요   전 못 느낄 거예요   아무 고통도요   그 손길이 너무
다정해서요   제가 어제 왜
파티에 갔었는지 알아요?   날 만나려고요   - 전 당신이 절...
- 좋아한다고요?   파리가 있네요   난 당신 안 좋아해요   어쩌면 저 파리는
당신을 좋아할지 모르죠   내가 죽일 거예요   이제 아무도
당신 안 좋아해요   잠깐 거들어줄래요?
커튼 내릴 건데   전부 다 부서지네   저 이제 유령이에요   그래   유령이 됐구나   어때요?   경첩이 어긋났네요   닫히는 걸 싫어하는
창문도 있어요   그냥 강제로
닫으면 되잖아요   그럼 비명을 질러 대요   아주 날카롭게요   결국 당신은 참다 못해   주먹으로 유리를
깨부수겠죠   그럼 다시 조용해지고   창문은 열려요   수리공이 오면
닫힐 거예요   그럼 손 하나가 나와서   수리공의 팔과   어깨   목을 쓰다듬죠   그가 돌로 변해서   창문을 가만히
내버려둘 때까지요   그럼 창문은
행복해지겠네요   수리공도요   바닥에 떨어졌어요   일전에 엄마한테 이메일 쓸 때
이상한 일이 있었어요   그래?   갑자기 메일에
십자가 기호가 생겼었죠   - 십자가?
- 네   우연히 키보드 단축키를
눌렀던 거예요   "T"와 "알트 키"를요   물론 십자가가 생겼을 때
바로 지웠죠   그런 다음 단축키를
다시 눌러봤는데   이번에도 십자가가
생기더라고요   이번엔 의도한 거지만요   다시 지웠겠네     그것도 지웠어요   안 그랬으면 메일에
십자가 하나가 있었겠지   두 개였을 수도 있죠   이상해요   난 엄마를 엄마로
느껴본 적이 없어요   음향 기기가 고장났어   청소부가 피아노
되찾고 싶어 할까요?   아니, 여기에
묻어 두고 간 거야   이 방이 피아노의
무덤인 거지   담요 못 봤어요?   - 여기 있어!
- 아래로 가져와줄래요?   - 잠깐만
- 호스 풀게요   세탁기 봐주시겠대   제 돈 내고
부른 사람이라고요   - 왜 물건들 아래층으로 내려요?
- 이사 갈 거니까   - 왜요?
- 왜긴   젠장!   왜 이사 가요?   - 네가 귀찮게 구니까
- 돌려줘요!   - 줘요!
- 싫어   줘요!   이런 거 먹으면 암 생겨   - 에마!
- 조용히 해!   놔줘!   조용!   왜 저 누나는
침실에만 있어요?   피부가 없어서
몸을 보호할 수 없거든   혼자 있으면
슬프지 않아요?   맞아, 슬퍼해   사람을 애타게
그리워하지   하지만 사람을 만나면
용암처럼 녹아 들어가는데   다시 떨어질 때 너무 아파서
만신창이가 돼 버려   그래서 어두운 방에서
영원히 잠들 날만 기다리는 거야   그때까진 오로지 고독과   욕망, 고통뿐   다른 건 못 느껴   열쇠 너한테 있어?   맞다, 고양이!   여기   마르쿠스 형이
이웃집 문 부쉈어요   맞아요   어제 환기 시키려다가요   알았어요, 한번 보죠   스크루드라이버
좀 줄래요?   고마워요   천만에요   담요 이리 줘요   이제 작동해요   네, 작동하네요   당신이 좋아요   노라 언니 깨우려나 봐요   안녕   안녕하세요   저기 있는 물병 좀
갖다 줄래?   물병 달래요   고마워, 이름이 뭐야?   전 가봐야...   이름 물었잖아   얀이에요   - 갈게요
- 여기 있어   안 돼요   기다려!   저 셔츠 좀 갖다 줄래?   직접 가져가요   케르스틴이 널 왜
여기 들여보냈는지 알아?   아뇨   내가 어제
헬스장에 갔었어   기구에 앉아서 그...   이런 운동을 하고 있었지   횟수를 채우는 동안
앞만 봐야 했는데   내 앞에 한 남자가 있었어   그 남자를 계속 봐야 했지   싫어도 어쩔 수 없었어   그 남자 잘생겼더라   그의 살결과   몸짓   머릿결...   집에 가서도
생각나겠구나 싶었어   그런 거 정말
싫은데 말이야   고개를 돌리고 싶었지만
방법이 없었지   운동을 계속해야
했으니까   케르스틴은 날 괴롭히려고
널 데려온 거야   쟨 알고 있거든   내가 계속해서 널   생각하게 될 거란 걸   네 살결과   이마의 머리 선   그리고 네 냄새...   케르스틴이 날 다시 깨울 때까지
널 생각하며 잠들겠지   놀라운 건 일어날 때마다
다른 남자가 있어   너 같은 남자 말이야   케르스틴이 다 찾아 내   전부 찾아 내서
내 방으로 데리고 오지   그만해!   에마!   이제 그만하라니까!   그만하라고!   그만해!   에마!   당장 멈춰!   - 가자
- 제정신이야?   안녕   안녕하세요   가지 마요   안 올 거야?   - 너희들 미쳤어?
- 아주 집 떠나가겠다!   시끄러워요   - 재미없으니까 그만해
- 야!   수면제나 왕창 먹든지!
짜증나게...   이런 짓 다신 하지 마   - 문 닫아!
- 무슨 짓이야, 에마   이리 나와   그만해   - 이거 놔요!
- 이리 나오라니까   조용!   조용!   조용!   뭐 하는 거야?   어릴 때 내 방 침대 위에
거미 한 마리가 있었어   엄마가 거미를 내보내려 하자
난 비명을 질렀지   엄마가
왜 그러냐고 묻길래   매일 밤 그 거미가
함께 있어야   잠을 잘 수 있다고 말했어   그래서 어머니가
가만두셨어?   응, 가만두셨지   거미는 얼마 후 사라졌어   거미줄만 남겨놓고
말이야   나중엔 그것마저
없어졌지만   안 가?   갈 시간 됐어   이 배를 타고 있으니
머리가 어지럽다   배는 언제나
흔들리고 있다   어째서 난 휘청일 뿐
넘어지지 않는지   왜 넘어지는 사람이
없는지 신기하다   이런 의문도 생긴다   어떻게 라운지 바의 양초가
쓰러지지 않는 걸까?   어떻게 식탁 가장자리의 꽃병이
미끄러지지 않고   전등이 벽에 부딪혀
깨지지 않는 걸까?   모든 것들이 제자리에
고정되어 있다   마치 그것들을 붙잡고 있는
알 수 없는 힘이   이 배에 있는 것 같다   배는 장엄한 성채처럼
파도를 넘으며   꿈속을 평화로이 떠간다   내 꿈속을 말이다   난 계속해서
그 꿈에서 깬다   내 눈을 찌르는
환한 햇빛이   바다를 가득 메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기 서 있다   꼼짝 않고   반짝이는 수면 위를
떠가는 배처럼   이 배는 오직 밤에만
눈 감는 것을 허락하고   잠에 들도록
날 흔들어준다   그럼 난 고래들을
상상한다   불가사리와 말미잘들   내 발 아래에 있을 온갖 경이로운
생명체들을 상상한다   언젠간 나도
그 물속으로 가라앉으리라   어둠 속 침묵의 왕국   날 부르는
그곳으로 가리라   하지만 지금은
휘청휘청 복도를 지나고   라운지 바와
선실을 드나들며   세상이 흔들린다는 사실을
누가 또 알까 궁금해한다   이곳을 오가며
잔상만을 남기는   희미한 기억 속 승객들 중
누군가는 알 테지   갈매기들만이
늘 같은 자리에   변함없이 있다   배 밖의 내 친구들   울음소리가 끔찍하다   난 내 피아노를 떠올린다   누군가 내 피아노를
연주하는 소리가   갈매기들의 노래에
곁들여지는 상상을 한다   그러다 바다를 내다본다   미소를 지으며   내 옆에 선 누군가와   달빛 속에 함께 있는
상상을 한다   우린 그렇게 서서   갈매기들의
울음소리를 듣는다   마치 노랫소릴
듣는 것처럼   이것은 흔치 않은 노래   우리만을 위한 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