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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의 시대

 

뉴욕, 1870년대

 

저런!

 

밍고트 집안 사람들이
저럴 줄은 몰랐는데

 

이런 오페라에도
데려오고

 

더군다나 메이 웰랜드 양 옆에
앉히다니 이상하군요

 

저 여자 인생 자체가
이상하지

 

보포트 씨 연회에도
데려올까요?

 

데려온다면
얘깃거리가 될 테지

 

안녕하세요, 웰랜드 부인?
안녕, 메이

 

뉴랜드

 

내 조카 올렌스카
백작 부인 알죠?

 

백작 부인

 

올렌스카 부인께
말씀드렸겠지?

 

뭘요?

 

우리가 약혼한 것 말이야

 

모두에게 알리고 싶어

 

연회 때 정식으로
알릴 거야

 

엄마를 설득시킬 수
있다면요

 

왜 다 결정된 걸
바꾸려고 해요?

 

사촌 언니에겐 직접 얘기해요
당신을 기억하니깐

 

모두 함께 놀았었죠

 

옛날 생각이 많이 나요

 

반바지에 속바지 차림으로
뛰놀았잖아요

 

당신은 짓궂었죠

 

문 뒤에서 내게
뽀뽀한 거 기억나요?

 

하지만 난 밴디를
짝사랑했었죠

 

- 너무 오래 떠나 계셨어요
- 몇백 년은 된 것 같아요

 

마치 죽어서 천국에 온 듯한
기분이에요

 

모든 것이 여느 때와
다를 것 없이

 

똑같이 진행됐다

 

늘 그랬듯이

 

보포트 부인은
'보석의 노래'가 시작될 때쯤

 

남편 없이
혼자 들어왔다가

 

또 변함없이
3막이 끝날 때 즈음에

 

나가버렸다

 

뉴욕의 상류층들은
반 시간 후 열릴

 

보포트의 연회에 대해
알고 있었다

 

공연이 끝날 때까지
마차들은 대기했고

 

미국인들이 예술을 즐길 줄
모른다는 것은

 

이미 뉴욕에
널리 알려졌지만

 

그들은 인정하지
않았다

 

보포트 가는 뉴욕에선 드물게
연회장을 갖춘 집이다

 

1년 중 364일은
어둠에 갇혀있는 이 연회장은

 

보포트 가의 불명예스런 과거를
씻으려고 만들어졌다

 

보포트 부인은 캐롤라이나의
전통 있는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남편 줄리우스는
영국인 행세를 했고

 

심한 사치와
천박한 말투로 유명했으며

 

출신도 의심스러웠다

 

그는 결혼을 통해
사회적 지위는 얻었지만

 

결코 존경받진 못했다

 

뉴랜드 아처는 다른 젊은이처럼
클럽에 가지 않고

 

연회장으로 곧바로 왔다

 

그는 약혼발표를 통해서

 

백작 부인을 둘러싼
소문을 막고

 

메이와 그녀의 가족에게
든든한 뒷받침이 돼주려고 했다

 

보포트 가는
독특하게 설계됐는데

 

연회장으로 향하는 길을
좁은 복도가 아니라

 

그림이 걸려 있는 접대실을 통해
지나가게끔 만들었다

 

그림이 걸려 있는
접대실을 지나다 보면

 

많은 화제를 뿌렸던

 

부가로의 누드화를
보게 되는데

 

보포트는 대담하게도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걸어놓았다

 

아처 역시
관습에의 도전을 즐겼다

 

그는 속으로는
그렇지 않으면서

 

겉으로는 가족과 관습을
매우 중요시했다

 

이곳의 불안정한 평온은

 

조그마한 속삭임에도
산산 조각나기 쉬웠다

 

아처는 위선을 매끄럽게
치장한 사람들을 보면서

 

오히려 부러워할 정도였다

 

로렌스 레퍼트를
예로 들자면

 

뉴욕 사회의 유명인사로

 

구두와 옥스퍼드 가죽 신발에 대한
그의 견해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고

 

그의 타고난 바람기는

 

정말 교묘하기까지 했다

 

실러튼 잭슨 역시
레퍼트만큼이나

 

이름난 명사 중 하나로

 

올렌스카 백작 부인의
유럽에서의 우울했던 결혼생활을

 

무척이나 궁금해하며

 

캐내고 싶어했고

 

지난 50년간 일어났던

 

상류사회의 스캔들을
일일이 적어서

 

늘 지니고 다녔다

 

줄리우스 보포트는
일을 대담하게 해치우는 사람이라

 

자신의 파티에 마치
손님처럼 나타났다가는

 

잠시 동안 있다가

 

곧 자기가 원하는 곳으로
떠나곤 했다

 

그는
사업에는 성공했지만

 

사생활은 말할 수 없이
난잡했다

 

아처의 약혼녀는 이들 틈에서
보기 드물게 순수했다

 

메이 웰랜드는 아처에게 있어
그가 추구하는

 

모든 아름다운 것들과
그를 이어주는 존재였다

 

당신이 바란 대로
친구들에게 말했어요

 

빨리 발표하고 싶었어

 

- 연회장이 아니었다면 좋았을 텐데
- 여긴 우리 둘뿐이에요

 

당신에게 키스해주고 싶은데
할 수 없는 게 안타까워

 

사촌 언니한테 얘기했어요?

 

말할 기회가 없었어

 

사촌인데, 딴 사람이
먼저 알면 섭섭할 거예요

 

오래 떨어져 있어선지
조금 예민해요

 

이따가 보면 얘기할게

 

- 마음이 변해서 안 오겠대요
- 마음이 변해?

 

드레스가 마음에
안 든대요

 

우리가 예쁘다고 해도
그냥 집에 가겠다고 하잖아요

 

할 수 없지

 

아주 예쁘구나

 

디자인도 좋고

 

우리 땐 진주 까메오면
족했는데

 

그래도 반지를 돋보이게
하는 건 손이지

 

새로운 세팅이
좋기는 한데

 

우리같이 나이 든 사람 눈엔
밍밍해 보이네요

 

내 얘기는 아닐 테지
난 신종은 다 좋아한다네

 

파리에서 로셰가 내 손을 모델로
조각했지, 메이도 하면 좋겠구나

 

어디 좀 보자

 

손이 왜 이리 거칠어

 

요즘 스포츠는
손마디를 굵게 만들지

 

그래도 피부는 하얗구나

 

결혼식은 언제 해?

 

되도록 빨리요,
할머님이 도와주신다면요

 

서로를 좀 더 알려면
시간이 필요해요

 

서로 좀 더 알아?

 

뉴욕 안에서
서로 모르는 사람도 있나?

 

서로 좋을 때 해야지
기다릴 거 뭐 있어

 

내 건강이 나빠질지 모르고
결혼 피로연도 해주고 싶으니까

 

감사해요

 

밍고트 부인은
메이의 친할머니는 아니지만

 

약혼 후 제일 먼저
인사를 올릴 만한

 

분임에 틀림없었다

 

그녀는 이 사회에서
여장부로 통했고

 

거의 여왕에 가까운
존재였으며

 

대부분의 뉴욕
상류사회 사람들이

 

그녀와 친인척 관계이거나
명성으로 맺어져 있었다

 

그녀의 저택은
겉은 평범했지만

 

크림색 기둥으로 장식된
큰 저택 안에서

 

그녀는 위엄 있는
생활을 누렸고

 

센트럴 파크 근처에 있어서
자연히 초목이 우거졌다

 

그녀는 늘어난 몸무게를
지탱 못 해서

 

계단 오르내리기가
힘들어지자

 

1층을 개조하여

 

생활공간으로 삼았는데,
응접실에서도

 

그녀의 웅장한 침실을
볼 수 있는 구조였다

 

방문객들은 이 특이한 광경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마치 프랑스 소설에 나오는

 

정부를 둔 여자의 저택같이
꾸며져 있기 때문이다

 

사실 정부를 원했다면야

 

여장부인 그녀가
못 둘 것도 없었지만

 

그녀는 지금 생활에
만족해하며

 

여유로운 생활을
즐기면서

 

아처와, 손녀 메이의
결합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둘의 결혼은
뉴욕 두 명문가의

 

결합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안녕히 계세요, 어머니
- 잘 가거라

 

엘렌!

 

보포트 씨,
정말 오랜만이군

 

정말 그렇네요

 

백작 부인을 우연히 만나서
모시고 왔어요

 

엘렌이 오니
집에 생기가 넘치는구나

 

- 고마워요
- 의자를 이리 당기게

 

얘깃거리 없나?

 

메이와 제 얘기
들으셨죠?

 

얘기 안 했다고
메이가 야단이에요

 

물론 알고 있죠,
정말 기뻐요

 

전 이렇게 듣는 게
훨씬 좋아요

 

조심해야지

 

반지가 소매에
걸리겠다

 

안녕, 언니

 

잘 가요

 

언제 한번 찾아오세요

 

엘렌이 보포트와 길거리를
활보한 건 큰 실수야

 

혼잡한 시간인데다

 

도착 바로 다음 날이잖나?

 

저 남자가 바람피우는 걸
부인도 알고 있을걸?

 

실러튼 잭슨은 식사보다,
아처 가에

 

방문했다는 자체를
즐겼다

 

아처의 어머니와

 

여동생 제이니는 둘 다
사교적이진 못했지만

 

스캔들 따위에 관심이 많았고
그래서 잭슨을 반겼다

 

보포트에겐 좀
미묘한 구석이 있어

 

맞아요
그는 품위가 없어요

 

사업할 땐 안 그렇죠
대부분이 그를 믿고 있어요

 

할아버지는
항상 어머니께

 

손녀들을 보포트 녀석에게
소개시키지 말라고 하셨죠

 

그래도 꽤 괜찮은
친구들이...

 

아처 가와 밍고트 가는
뉴욕의 얽히고설킨 가문들 중

 

가장 전통 있는
가문이었고

 

밍고트 가는
메이의 전통주의와

 

엘렌의 자유로움을
모두 수용했다

 

하지만 아처 가는
전통에 얽매어 있었으며

 

아처는 어머니와
여동생에게 있어

 

오른팔과 같이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존재였다

 

새로 온 사촌도
연회에 왔나요?

 

밍고트 가에서 그녀를
오페라에까지 데려가는 건

 

높이 살 만한 일이지만

 

왜 하필 내 아들
약혼식 때

 

돌아와 가지고
남의 입에 오르내리는지 모르겠다

 

어찌 됐든
연회엔 안 왔어요

 

그 정도 예의는
있나 보군요

 

오후엔 어떤 모자를 쓸지
궁금하네요

 

오페라에 입고 온 드레스는
형편없던데

 

- 불참한 게 더 품위 있구나
- 품위 때문이 아녜요

 

옷이 마음에 안 들어서
안 온 거예요

 

불쌍한 엘렌

 

그 애의 성장과정을 알면
이해가 돼

 

첫 연회에 검정 드레스를
입고 온 여자에게 뭘 바래?

 

백작 부인이면서 왜 엘렌 같은
이름을 고수할까요?

 

나라면 일레인으로
바꿨을 텐데

 

왜지?

 

글쎄요

 

그 이름이 더...

 

품위 있잖아요

 

돋보이는 이름이지만
그 애하곤 안 어울려

 

왜 그녀는
돋보이면 안 되죠?

 

결혼 생활이 불행했다고
얼굴도 못 들고 다니나요?

 

수치심에 숨어 지내기라도
해야 돼요?

 

불행한 삶을 산 건 맞지만
그녀 잘못은 아녜요

 

밍고트 쪽도
그렇게 생각할 거야

 

그것과 내 의견은
상관없어요

 

집을 구한다고 들었는데
여기서 살 생각인가 봐

 

이혼한다는 말이
있던데요

 

그러길 바래

 

결혼생활이 아주
안 좋았나 보더군

 

- 소문이 무성해
- 저도 들었어요

 

비서 얘기 말이죠?

 

그가 도망치는 걸
도와줬대

 

백작이 그녀를 죄수같이
가둬뒀었다더군

 

백작의 사는 방식이
꽤 특이하지

 

- 백작을 아세요?
- 그에 대해선 니스에서 들었어

 

잘생기긴 했는데...

 

사내답지는 못하다더군

 

여자와 어울리지 않을 땐

 

도자기를
수집한다고 들었네

 

둘 다에다 돈을
쏟아붓는다더군

 

그럼 탓할 이유가
없잖아요?

 

누구든 비서가 그랬듯
백작 부인을 도와줬을 거예요

 

1년씩이나 도울 필요는
없잖은가?

 

로센에서 동거하는 걸
본 사람이 있네

 

동거요?

 

그게 어때서요?
그녀도 새 삶을 살 권리가 있어요

 

왜 여자만 매장당하죠?
창녀와 재미 보는 남편은요?

 

매장당한 건 아니지

 

백작 부인은 어쨌든
이곳에 왔잖아

 

남자가 누리는 자유를
여자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나?

 

예, 그래요
물론이죠

 

올렌스키 백작도
같은 생각인가 보네

 

부인을 전혀
안 찾으니 말일세

 

3일 후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밍고트 부인이
저녁식사에

 

모두를 정식초대한 것이다

 

이 행사는 각별히
신경 쓸 것이 많았다

 

접시도 알맞은 것으로
선택하고

 

하인이 셋 더
필요했으며

 

코스마다 2가지 음식을 내고
로만 펀치를 가운데 놔야 했다

 

초청장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백작 부인 환영 만찬"

 

하지만 뉴욕은 거부했다

 

"유감이지만 참석 못 함"

 

어떻게 가족끼리
이럴 수 있지?

 

어떻게 이렇게 대놓고

 

엘렌을 적대시할 수가 있는 거야?
정말 망신이야

 

그들은 진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위선적인 세계에
살고 있었으며

 

사람들은 독단적인 글로
진심을 표현했다

 

아처는 이러한 글들이
단순히 무시의 차원을 넘어

 

소거를 뜻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이 사건을
해결해줄 곳은

 

오직 밴더라이든 가
밖에는 없었다

 

이 일을 누군가가 일부러
방해했다는 건가?

 

래리 레퍼트가
확실합니다

 

밴더라이든은
뉴욕의 가문 중에서

 

빛과 같은 존재였다

 

아처는 그가 지닌
훌륭한 분별력을 믿고

 

솔직하게 얘기했다

 

래리는 자신이 바람피우는 걸
부인이 눈치채면

 

주위를 이런 식으로 딴 데로 돌려
교묘히 빠져나가죠

 

나도 그 점이
마음에 안 드네

 

가족의 일원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면

 

모두들 따라야지

 

이번 일은 꼭 상의드려야
할 것 같아서 왔어요

 

다음 주에 내 사촌인
성 오스트리 공작이 오면

 

만찬회를 열 예정인데

 

그때 올렌스카 백작 부인이

 

참석한다면
아내도 좋아할 걸세

 

아주 격식 있는
행사였지만

 

백작 부인은
늦게서야 도착했고

 

그녀는 자신의 경솔함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

 

주저하거나 부끄럼 없이
그녀는

 

최고의 명사들이 모인
접대실에

 

당당히 들어섰다

 

올렌스카 백작 부인

 

안녕하세요

 

오셔서 기뻐요

 

오스트리 공작,
올렌스카 백작 부인이십니다

 

조지 2세의
트레베나 접시와

 

동인도회사에서 가져온
그릇이 나오고

 

다고넷 더비산 자기도
있었다

 

밴더라이든 가의 만찬은
아주 중요한 행사로

 

공작 사촌과 함께 한
식사는

 

장엄하기까지 했다

 

밴더라이든은 항상 본보기를
보이는 사람이었다

 

실례하겠습니다

 

뉴욕의 관습상

 

여성이 다른 남자에게
가기 위해

 

자리를 옮기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지만

 

백작 부인은
이 관습을 무시했다

 

메이에 대해
얘기해봐요

 

공작을 아세요?

 

니스에서 알았어요

 

매해 겨울마다 도박을 즐기러
우리 집에 자주 왔었죠

 

매번 같은 옷을 입는데
행운을 가져다준다나요

 

내가 본 사람 중에
제일 매력 없죠

 

그런데 여기선
인기가 많네요

 

뉴욕에서 가장 흥미로운 게
뭔지 얘기해줄까요?

 

무조건 관습 따위를
따라하는 것 말고요

 

다른 나라를 모방하는 건
아주 바보 같은 짓이죠

 

콜럼버스가 레퍼트 씨와
오페라나 가려고 그 고생 했겠어요?

 

레퍼트가 여기 있는 걸 알았으면
이곳을 발견하지도 않았겠죠

 

메이도 당신과
생각이 같나요?

 

그렇더라도
절대 표현 안 하죠

 

많이 사랑하나요?

 

더없이 사랑하죠

 

사랑에 한계가 있다고
보세요?

 

있다 해도
아직은 못 찾았어요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군요

 

강요는 없었고요?

 

미국에선 결혼할 때
강요 같은 건 안 해요

 

미안해요,
잊고 있었어요

 

가끔 이런 실수를 해요

 

내가 있던 곳의
나쁜 점 때문에

 

이곳의 좋은 점을
가끔 잊어요

 

그런 뜻이 아니었어요

 

그래도 여긴
친구들이 있잖아요?

 

알아요,
그래서 돌아온 거예요

 

메이한테
가고 싶겠군요?

 

벌써 라이벌들에
둘러싸여 있는걸요

 

그럼 나와
좀 더 있어줘요

 

그러죠

 

다고넷 씨,
올렌스카 백작 부인이십니다

 

- 안녕하십니까, 부인?
- 안녕하세요?

 

내일 5시에
기다리고 있겠어요

 

내일 뵙죠

 

실례하겠습니다

 

백작 부인과
함께 있어주다니

 

정말 고마워요, 뉴랜드

 

남편에게 당신을
구해줘야 한다고 했죠

 

메이가 오늘 더욱
돋보이는군요

 

공작도 메이가
제일 예쁘대요

 

아처 씨

 

누추한 집이
마음에 드세요?

 

나한테는 천국이죠

 

멋지게 꾸며놓으셨는데요

 

제가 어렵게 가져온
물건들이죠

 

파멸의 흔적들이긴
하지만요

 

그래도 밴더라이든 가보다는
갑갑하지도 않고

 

혼자 있기에도 좋죠

 

저도 밴더라이든 씨 집이
갑갑하다고는 생각했지만

 

그런 말을 한 건
부인이 처음이에요

 

혼자 있는 게
좋으신가요?

 

친구들이 외롭게 놔두지만
않는다면요

 

그렇게 계속
서 계시게요?

 

- 앉으세요
- 예

 

전 이 시간이
제일 좋아요

 

안 그래요?

 

약속시간을 잊으신
줄 알았어요

 

보포트 씨는
흥미로운 분이죠

 

집을 보러 다녔어요

 

이 거리가 적합치 않다고
이사하라는데 이해가 안 돼요

 

- 상류층식 거리는 아니죠
- 상류층식이라고요?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요?

 

그것 말고는 신경 쓸 게 없는
사람들에게는요

 

난 너무 독립심이
강했나 봐요

 

이젠 따뜻한 관심과
보호만 있으면 돼요

 

밴더라이든 씨는
완벽하세요

 

어제는 뉴욕의 유명인사들이
다 모였었죠

 

고마운 일이죠
정말 멋진 파티였어요

 

크림 아니면 레몬?

 

레몬요

 

밴더라이든 가는 뉴욕 사회에서
영향력이 가장 크죠

 

부인이 몸이 아파서
자주는 못 나오지만요

 

- 그게 이유인 것 같군요
- 이유요?

 

영향력이 있는 이유 말예요
보기가 아주 힘드니까요

 

그래도 덕분에
많은 걸 배우네요

 

당신한테 배우는걸요

 

그럼 서로 돕도록 하죠

 

도움은 내가 더
필요하겠지만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당신에게 조언을
해주잖아요?

 

내가 남편을 떠나 여기 온 게
모두 못마땅한가 봐요

 

그래도 가족들이
좋은 충고를 해줄 거예요

 

뉴욕은 왜 이리 복잡하죠?

 

난 뉴욕이 이곳 거리처럼
위아래로 쭉쭉 뻗고

 

'솔직'이란 꼬리표가

 

붙어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모든 것에
꼬리표가 붙지만

 

사람한텐 안 붙죠

 

충고도 부탁드려야겠군요

 

노부인들은 당신을 좋아하고
돕고 싶어 해요

 

알아요, 내가 듣기 싫은 소릴
하기 전까진 그렇죠

 

여기엔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나요?

 

위선을 강요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건

 

너무 외롭고 힘들어요

 

진정하세요

 

올렌스카 부인

 

엘렌...

 

여긴 우는 사람도 없나요?

 

그럴 이유가 없겠죠

 

어서 오세요, 아처 씨

 

안 오시길래 웰랜드 양께
꽃을 보내야 할지 말지...

 

백합 다발로 해주세요
정기 주문을 하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그리고 저 노란 장미들은
다른 주소로 보내주세요

 

그러죠

 

'올렌스카 백작 부인'

 

아처 씨의 배달이
두 개 있다

 

- 지금 보낼 수 있죠?
- 물론이죠

 

백합 속에 싸여
잠이 깨면

 

당신과 같이 있는 것
같아요

 

어제는 좀 늦었지,
시간을 깜빡했어

 

그래도 항상
기억하잖아요

 

엘렌에게도 장미를 보냈어
잘한 걸까?

 

아주 잘했어요

 

그런데 점심때
얘기를 안 하던데요

 

보포트 씨가
난초를 보내왔고

 

밴더라이든 씨가 카네이션을
보내왔다고만 했죠

 

정말 기분 좋아 보였어요
유럽에선 꽃을 안 보내나요?

 

- 너무 길게 끈다고 생각하죠?
- 너무 길어

 

치버스도 약혼기간이 1년이 넘었고
레퍼트도 2년이었죠

 

엄마는 통례적인 걸
원해요

 

당신도 이제 어엿한
성인이야

 

원하는 걸
말씀드릴 수 있잖아?

 

엄마의 마지막 소원을
저버릴 수 없어요

 

우리가 결정하면 안 돼?

 

도망갈까요?

 

원한다면 못할 것 없지

 

날 정말 사랑하는군요
너무 행복해요

 

더 행복할 수도 있어

 

더 이상 어떻게 행복해요?

 

엘렌 언니에게 반지를 보여줬는데
정말 아름답다고 했어요

 

파리에서도 이런 반지는
못 봤대요

 

정말 사랑해요

 

당신이 하는 건
모두 소중해요

 

다소 난처한 얘기지만
자네의 의견을 듣고 싶네

 

올렌스카 부인이
이혼을 원한다네

 

재혼을 할 거라는
얘기가 있는데

 

본인은 부인하고 있어

 

제 약혼 때문에
입장이 좀 난처하니까

 

다른 사람이 맡으면
안 될까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가족들이 자네의 의견을
듣길 원한 거니

 

맡아주길 바라네

 

집안 일이니까 가족들끼리
해결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그들은 확고하게

 

이혼을 반대하고 있어

 

올렌스카 부인은 여전히
법적 자문을 원하네

 

이혼을 굳이 고집하는
이유를 알 수 없네

 

그녀는 여기 있고

 

남편은 유럽에 있지

 

서로 바다 건너편에
있는데 말일세

 

게다가 올렌스키 씨는
관대하게도

 

요구하지도 않은
돈까지 보내왔어

 

더 이상은 받기
힘들겠지만

 

그녀에게 돈은
문제가 안 되니 다행이지

 

모든 걸 고려해볼 때
가족 말을 듣는 게 현명해

 

문제를 만들지 말게

 

그건 부인이 결정할
일이에요

 

이혼을 하면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할지 생각해봤나?

 

- 부인이 치를 대가요?
- 모두 말일세

 

백작이 하는 말은
근거 없는 얘기 같아요

 

그래도 얘깃거리가
될 걸세

 

서류를 읽기 전에 이미

 

비서 얘기는 들었어요

 

불쾌한 일인 것은
확실하지

 

불쾌한 일이라고요?

 

이혼은 불쾌한 일이지,
안 그런가?

 

물론이죠

 

그럼 자네에게
맡기겠네

 

이혼을 안 하게
힘 좀 써주게

 

부인과 직접 얘기해보기 전엔
장담할 수 없어요

 

자네를 이해 못 하겠군

 

스캔들이 있는 집안과
결혼하고 싶나?

 

제 약혼과는
상관없는 일이에요

 

백작 부인께
전해달라고 해주세요

 

'중요한 일로
뵙고자 합니다'

 

그런 초청은
거절하셔야 합니다

 

그렇게 나쁜가요?

 

고통을 즐기신다면
나쁠 건 없죠

 

- 그것까진 모르겠는데요
- 밴더라이든 가에서 3일이라니!

 

- 털옷과 뜨거운 물을 가져가요
- 그 집이 그렇게 춥나요?

 

- 루이자 부인이 차갑죠
- 아처 씨

 

허락하신다면 일요일
저녁식사에 초대하겠습니다

 

조용한 곳에서 예술가들과
대화도 나누고요

 

가고 싶군요, 여기 온 뒤로
예술인들을 못 만났죠

 

화가를 몇 분 아는데
원하시면 모시고 오죠

 

화가라고?
뉴욕에도 화가가 있나?

 

고맙지만 전 가수나
연기자들, 음악가 같은

 

예술인을 얘기한 거예요

 

남편 집엔 늘
예술인들이 많았죠

 

내일 말씀드리면 안 될까요?
오늘 결정하긴 너무 늦었어요

 

지금이 늦은 건가요?

 

아처 씨와 할 얘기가
있거든요

 

저기 말일세...

 

부인을 설득할 수
있다면

 

자네도 같이 오게

 

화가들을 안다고요?
주위에 사나요?

 

- 그렇진 않아요
- 그럼 관심이 많은가 보죠?

 

그럼요, 파리나 런던에 가면
전시회란 전시회는

 

놓치지 않고 봐요

 

저도 한때는
그랬어요

 

그런 것들에
파묻혀 살았었죠

 

이젠 모두 털어버리고
완전한 미국인이 되고 싶어요

 

다른 사람들처럼요

 

다른 사람들처럼 되기는
어려울 거예요

 

그런 말씀 마세요
과거는 다 잊고 싶어요

 

알아요

 

레터블레어 씨한테
들었어요

 

레터블레어 씨요?

 

전 그분 회사 소속이고,
제가 소송을 맡았죠

 

당신이 모든 걸
맡아주신다고요?

 

- 정말 잘됐네요
- 그래서 상의하러 온 거예요

 

법적 서류도
모두 읽어봤고

 

백작이 보낸
편지도 읽었죠

 

비열한 짓이었죠

 

만약 그가 소송을
제기하는 걸 택한다면

 

부인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불리한 말을 할 겁니다
설사 그것이...

 

뭐죠?

 

근거 없는 얘기라
할지라도요

 

난 여기 있는데
무슨 피해가 있겠어요?

 

다른 곳보다 오히려
더 심할 거예요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아직 사회는 이혼을 꺼려요

 

심각한가요?

 

만약 여성이

 

남들의 눈에

 

올바르지 못한 행실을 한 게
눈에 띄면

 

조금이라도 타인의

 

마음에 의심을
심어주게 했다면...

 

가족들과 똑같은 말을
하는군요

 

곧 우리 가족이 될 분이라
그런가 보죠

 

그들 생각에 동의하세요?

 

굳이 이혼하려는
이유가 뭐죠?

 

자유를 얻잖아요

 

이미 자유로운 몸
아닌가요?

 

사람들이 이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당신한테 알려주려고
온 거예요

 

적어도 그들의 생각을
당신이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요

 

맞는 말이에요

 

좋아요

 

당신 뜻대로 하죠

 

당신을 돕고 싶어요

 

벌써 돕고 있잖아요

 

잘 가요, 사촌

 

제발 이제 그만 울어요

 

- 내가 한 일은 잊어요!
- 조건이 있어요

 

뭐든지 받아들이겠소

 

다신 사랑을
말하지 말아요

 

다시는!

 

내 명예를 걸겠소

 

신의 은총이 있기를

 

안녕히

 

정말 감동적이야

 

똑같은 장면인데도
볼 때마다 감동을 받지

 

대단하지 않아?

 

런던에서 본 것보다
더 멋졌어

 

여행가서도 연극을 보나?
난 안 보려고 여행을 하네

 

- 저녁식사 때요?
- 스트러더 가의 피로연에서

 

그것도 주일날에
술에 취해

 

식탁 위에까지 올라가
노래를 불렀다는군요

 

춤까지 췄다는
얘기도 있고

 

프랑스 일요일이었나 보죠?

 

방탕의 시작은
그런 식으로...

 

그녀의 연인이 내일 아침에
노란 장미를 보낼까요?

 

저도 그 생각을 했었죠

 

이별 장면이죠

 

그래요

 

아주 감동적이에요

 

장면을 기억하려고
그 장면 끝나고 떠나곤 했죠

 

플로리다에서 메이가
편지를 보냈어요

 

장모님의 기관지염 때문에
겨울은 그곳에서 보내죠

 

메이가 없을 때
당신은 뭘 하죠?

 

일을 해요

 

당신 충고가 옳았어요

 

너무 힘들 때가 많았는데

 

정말 감사하게 생각해요

 

다음날 아처는 뉴욕에서
노란 장미를 찾는 데 실패했다

 

그는 올렌스카 부인에게

 

전화를 해달라고
서신을 보냈지만

 

이틀이 지나도록
연락이 없었다

 

노란 장미가
다시 나왔지만

 

아처는 그냥 지나쳤다

 

3일 후에야 밴더라이든의
별장에서 날아온

 

엽서를 받아보았다

 

"극장에서 당신을 본 후
여기로 도망쳐 왔어요"

 

"모두들 반갑게 맞아줬고"

 

"조용히 생각을
정리할까 해요"

 

"이곳은 정말 평온해요,
당신도 왔으면 좋았을 거예요"

 

"안녕히 계세요"

 

마침 레퍼트 가의 별장에
초대받은 그는

 

가겠다고 답장을 보냈다

 

밴더라이든의 별장이
그곳과 가깝기 때문이었다

 

도망친 이유를
알려고 왔어요

 

- 오실 줄 알았어요
- 오길 바라셨군요?

 

메이가 날 돌보라고 당신한테
부탁했다던데요?

 

- 부탁 안 해도 와요
- 어째서요?

 

내가 너무 불쌍해
보였나요?

 

아님 이곳 여자들은 행복에 겨워
필요성을 못 느끼나요?

 

어떤 필요성 말인가요?

 

묻지 말아요
말해도 모를 거예요

 

저기가 제가 있는 곳인데
보여주고 싶었어요

 

편지 쓸 때
기분이 안 좋았었죠?

 

하지만 이젠 당신이 있으니
안 좋을 수가 없죠

 

오래는 못 있어요

 

알아요

 

만약 당신이
내가 오길 바랐고

 

진정 내 도움을
원한다면

 

무엇으로부터 도망치는 건지
얘기해줘요

 

저 사람에게서
도망친 건가요?

 

아니면 기다리고
있었나요?

 

여기 올 줄 몰랐어요

 

안녕하세요,
보포트 씨?

 

올렌스카 부인께서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찾아다니느라 힘들었어요

 

당신이 좋아할 만한 집을 찾아서
알려주려고 여기까지 온 거요

 

아직 내놓지 않은 집이라
당장 계약하셔야 합니다

 

자네는 시골살이 중인가?

 

그날 밤 아처는
런던에서 온

 

책들이 반갑지 않았다

 

평상시의 일들이
싫증이 났고

 

마치 그는
자신의 미래 안에서

 

생매장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내일 저녁에 와줘요
해명할 기회를 주세요, 엘렌

 

- 무슨 일이 있나요?
- 그래

 

당신을 꼭 봐야 했거든

 

왜 그래?

 

아무것도 아녜요

 

온종일 뭐 하는지
얘기해봐

 

필라델피아와
볼티모어에서

 

휴가 온 사람들과
피크닉 갔었고요

 

메리가 테니스장을
만들었죠

 

아직 사용하는 걸
한 번도 본 적 없지만요

 

모두 라켓을
사긴 했는데...

 

그런 일들로부터 당신을
벗어나게 해주려고 왔어

 

결혼을 앞당기려고 해

 

얼마나 결혼하고
싶은 줄 알아?

 

왜 1년을 더
낭비해야 하지?

 

잘 이해가 안 돼요

 

나에 대한 감정이
변하기라도 했나요?

 

그게 무슨 소리야?

 

다른 사람이 생겼나요?

 

다른 사람이라니?

 

우리 사이에?

 

솔직히 얘기해봐요

 

약혼 후에 당신이 달라진 걸
느끼기는 했지만...

 

- 달라졌다고?
- 아니면 상관없지만

 

사실이라면 지금 얘기해요
실수였을 수도 있으니까요

 

실수였다면 우리 결혼을
앞당기자고 하겠어?

 

그럴 수도 있죠

 

관계를 정리하는
방법일 수도 있으니까

 

우리가 약혼하기 전에

 

2년 전 뉴포트에서

 

다들 당신에게
여자가 있다고 했죠

 

무도회 때 같이 앉아있는 걸
저도 직접 봤어요

 

집에 들어온 그녀 얼굴이
너무 슬퍼 보였죠

 

안됐다고 생각했는데
약혼 후에도 그녀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어요

 

당신이 걱정한 게
그거야?

 

오래전 일이야

 

그럼 다른 이유가
있나요?

 

아냐

 

절대 아니야

 

이유야 어쨌든

 

다른 사람이 누려야 할 행복을
내가 대신 누릴 순 없어요

 

약속을 했거나 그녀에 대해
책임감을 느낀다면

 

혹은 그녀의 이혼 때문이라도
저 때문에 포기하진 마세요

 

책임질 일은 없어

 

약속한 적도 없고

 

우리 사이엔 아무도 없다는 것밖엔
할 말이 없어

 

그게 우리가 결혼해야 하는
확실한 이유고

 

최대한 빨리 말이야

 

아처는 그녀가 수줍은 소녀로
되돌아간 것을 느낄 수 있었고

 

그녀의 양심은
무거운 짐을 벗은 듯했다

 

아처는 깊이 빠져드는

 

사랑과 현실의 공존이

 

가능하단 걸 알았다

 

- 그래서 성공했나?
- 아뇨

 

4월에 결혼하고 싶은데
도와주세요

 

- 밍고트 가를 이제 좀 알겠나?
- 정말 왜 이렇게 힘든 거죠?

 

집안 자체가 힘들지
달라지는 걸 원치 않거든

 

달라졌다가는 엘렌의
부모처럼 돼버릴 거야

 

세계를 떠돌아다니는
부랑자지

 

엘렌을 끌고 다녔지

 

앞뒤 맞지도 않는 교육에
돈만 쓰고

 

그래도 엘렌이 날
가장 많이 닮았어

 

자넨 보는 눈이 있잖나,
왜 엘렌과 결혼 안 했지?

 

옆에 없었으니 못 했죠

 

그랬군

 

지금도 마찬가지지

 

백작이 레터블레어 씨에게

 

편지를 보내왔다네

 

다시 합치고 싶다더군

 

엘렌이 원하는 대로
해주겠대

 

그로선 많이 양보한 거지
게다가

 

엘렌이 이곳에 머물면
많은 걸 잃을 거야

 

니스의 정원과 보석은
물론이고

 

음악과 멋진 대화들을
저버릴 수 있겠어?

 

유럽에선 그 앤
별 볼일 없었다지만

 

그 애 초상화가 자그마치
아홉 개나 된다네

 

이 모든 것들과 용서를 비는
남편에게 돌아가야지

 

죽는 걸 보는 게
낫겠어요

 

정말 그런가?

 

엘렌은 아직 한 남자의
아내란 것을 잊어선 안 돼

 

엘렌!
누가 왔는지 봐라!

 

알아요, 당신 어머니께
어딨는지 여쭤봤죠

 

편지에 답장이 없길래
아픈 줄 알았어요

 

빨리 결혼하고 싶어서
정신이 없어

 

도착해서 곧바로 여길 왔지
나더러 결혼을 빨리 하게끔

 

설득시켜 달라는구나

 

그래요

 

할머님과 제가 웰랜드 가를
설득시킬 수 있을 거예요

 

그것 보게, 아처 군
일 해결하는 것도 나와 똑같지

 

너랑 결혼했어야
했다고 했어

 

그랬더니 뭐라던가요?

 

그건 직접 알아내거라

 

그만 가봐야겠어요
빠른 시일 내에 다시 뵙죠

 

그래

 

배웅해 줄게요

 

언제 만날 수 있죠?

 

7시에 스트로더에서
마차가 올 거야

 

오셨군요

 

연회나 약혼식도 아닌데

 

누가 이런 꽃다발을
보냈지?

 

나스타샤!
정말 웃긴 사람들이군

 

옆집에 갖다 주고 와

 

글쎄요

 

할머니 말씀에는
언제나 진실과

 

거짓이 함께 있죠

 

왜요?

 

할머니가 뭐라셨는데요?

 

당신이 남편에게
돌아갈 거라 생각하세요

 

적어도 생각은
해볼 거라고 믿고 계시죠

 

나에 대해
믿고 계신 게 많아요

 

내가 생각해보길 바란다는 건
할머니가 결정하신다는 뜻이죠

 

당신 결혼을 앞당기는 문제도
마찬가지고요

 

플로리다에서 메이와
솔직한 대화를 나눴어요

 

우리에겐 처음 있는
일이었죠

 

내게 시간을 주려고
약혼기간을 오래 두는 거래요

 

무슨 시간요?

 

내가 결혼을
서두르는 이유가

 

아무래도
사랑하는 사람을

 

잊기 위한 거라고

 

여기나 봐요

 

다른 여자가 있으면
자신이 포기한대요?

 

내가 원한다면요

 

고귀한 마음씨군요

 

그래요

 

정말 우스운 일이죠

 

왜요?

 

다른 여자가 없어서요?

 

그게 아니라

 

다른 여자와
결혼할 생각이 없어서죠

 

그 다른 여자도
당신을 사랑하나요?

 

다른 여자는 없어요
메이가 생각했던 여자는 결코...

 

마차가 도착했나 보군요

 

 

곧 나가야 되겠군요

 

스트러더 부인 댁에요?

 

 

초대받은 곳에 가지 않으면
너무 외로울 거예요

 

같이 가실래요?

 

메이의 직감이 맞았어요

 

다른 여자가 있어요

 

메이가 생각한
여자는 아니죠

 

이러지 말아요
많이 당한 일이에요

 

그게 아녜요, 가능했다면
당신과 결혼했을 거예요

 

- 불가능하게 한 건 당신이에요
- 나요?

 

이혼을 포기하라고
했잖아요

 

바로 여기서,
나더러 희생하고

 

스캔들을 막으라고
했잖아요!

 

당신과 메이를 위해서
시킨 대로 했다고요!

 

- 남편의 편지에 쓰여진...
- 그따윈 전혀 두렵지 않아요

 

당신과 메이, 그리고 가족들에게
치욕을 안겨주기 싫었어요

 

아직...

 

아직 돌이킬 수 없는 일은
안 했잖아요

 

난 여전히 자유의 몸이고

 

당신도 가능해요

 

제발...

 

내가 메이와 결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메이에게는 그 질문을
할 수 없겠죠?

 

해야 해요
이젠 돌이킬 수 없어요

 

진심이라서가 아니라 이 순간을
모면하려고 그렇게 말하는 거죠

 

당신을 이해 못 하겠어요

 

당신이 날 얼마나 바꿔놨는지
몰라서 그래요

 

- 몰라서 그러는 거라고요
- 내가요?

 

나 모르게 당신이 날 위해 해준
모든 일들 말예요

 

사람들이 날 거부하자
밴더라이든 씨께 부탁한 일

 

연회에서 약혼을 발표해서

 

하나가 아닌 두 가족이
날 뒷받침하게 해준 일

 

난 나에 대한 소문을
전혀 알지 못했죠

 

할머니도 무심코 말했었죠
난 바보같이

 

뉴욕에서 자유를 누리고,
모두가 날

 

반겨줄 줄 알았어요

 

그들은 자유 따위엔 관심 없었지만
당신만은 이해해줬죠

 

나도 자유를 몰랐지만

 

알고 나니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잔인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우리가 이대로 더 나아가면
당신을 사랑할 수 없게 돼요

 

사랑하기 힘들어져요

 

당신을 포기하지 않으면
당신을 사랑할 수 없어요

 

"할머님이 엄마를 설득시켜서
부활절 후에 결혼을 승낙받았어"

 

"꼭 한달 후야
아처에게도 전보 칠 거야"

 

"말할 수 없이 행복해,
사촌 메이 보냄"

 

밍고트 부인의

 

결혼식 참석 여부에 대한
소문이 무성했다

 

그녀는 목수를 보내
앞좌석을

 

고칠 수 있나
알아보았지만

 

그건 너무
큰 일이기 때문에

 

피로연을 베푸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올렌스카 부인은 여행 중으로
참석을 못 한다고 전했고

 

결혼선물로 아름다운
레이스를 선물했다

 

고모 두 분은 별장을 그들의
신혼집으로 주겠다고 했다

 

정원이 딸린 저택을 갖는 것도
괜찮을 듯싶어서

 

고모들의 제안을
받아들였지만

 

그 집이 살기에는
적합치 않자

 

밴더라이든 씨가 나서서

 

그의 옛날 저택을
제공해 주겠다고 했다

 

메이는 남편을 놀래주기 위해
집을 보지도 않고

 

제안을 받아들였는데
그건 엘렌의 말 때문이었다

 

엘렌이 미국에서 유일하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집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메이가 가보지 못한
곳들을 여행했다

 

런던에서 아처는 옷을 맞췄고
그들은 화랑에 가고

 

극장에도 갔다

 

런던에서 식사는 처음인데
이상해 보이진 않나요?

 

영국 여자들도 식사 때는
이렇게 입는다고

 

극장 갈 때도 연회복을 입는데
그런 말을 해요?

 

새 드레스는
집에서 입나 보지

 

- 이걸 입지 말걸 그랬어요
- 아주 멋져

 

정말 아름다워

 

그녀는 파리에서
옷을 맞췄고

 

드레스도 잔뜩 샀으며

 

튈레리 궁전도 구경했다

 

메이는 로셰의
손 모델을 했고

 

파티에도 자주 초청됐다

 

모파상의 조언을
직접 들었단 말입니까?

 

불행히도 저더러
글을 쓰지 말라더군요

 

결혼에 대한 생각은
달랐지만

 

아처는 전통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이 결혼을 받아들였다

 

자기가 구속되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아내를
애써 해방시킬 필요가 없었다

 

런던 국립 미술관은
하루밖에 관람 못 했죠

 

카프리 부인과 할
부인이...

 

좋은 대화를 나눴어

 

흥미 있는 친구더군
책을 비롯해 많은 얘기를 했지

 

저녁 식사에 초대할까 해

 

- 그 프랑스인을요?
- 그래

 

얘기할 기회는 별로 없었지만
좀 평범하지 않던가요?

 

평범?

 

난 비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비상한 건
잘 모르겠던데요

 

그럼 초대 안 할게

 

앞으로도 여러 가지
문제들이

 

이런 식으로 해결될 거라 생각하자
그는 섬뜩했다

 

결혼 후 6개월이
가장 힘들다고들 한다

 

그 시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 서로에게
적응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메이는
아처가 가장 간직하고자

 

원했던 것들을
사라지게 했다

 

아처는 올렌스카 부인에
대한 열정을

 

지나간 추억으로
접어두자고 다짐했다

 

그녀는 그의 기억 속에
가슴에 사무치도록

 

슬픈 존재로

 

자리잡고 있었다

 

'뉴포트 양궁 클럽
8월'

 

정말 솜씨가 좋은데요

 

그녀가 맞출 수 있는 건
저런 과녁뿐일걸?

 

메이의 승리를
아무도 질투하지 않았고

 

그녀는 언제나
평온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만약 그녀의 잔잔함과
따뜻함이

 

가식일 뿐이었다면

 

진정 그녀의 모습은
무엇일까?

 

아처는 메이를
알 수가 없었다

 

정말 멋지구나

 

보포트 씨가 상품으로
기증한 거지?

 

그 사람 취향이군
좋은 가보가 될 거야

 

큰딸에게 물려주려무나

 

왜?
딸은 안 낳을 거니?

 

아들만 낳아? 둘 다 안 낳아?
얼굴 빨개지네

 

엘렌! 위에 있니?

 

오늘 하루만 있다
간다는구나

 

왜 여기 안 있는지
모르겠다

 

블랜커가 사람들과
지낸단다

 

젊은이들과 실랑이하는 건
오래전에 포기했지

 

마님, 엘렌 양은
집에 안 계세요

 

- 벌써 떠났나?
- 바닷가 쪽으로 가시던데요

 

자네가 가서 데려오게나

 

우린 보포트 씨 험담이나
하고 있을 테니

 

어서 다녀와,
두 사람을 보고 싶어 할 게야

 

정말 보포트가 여자에게
다이아몬드 팔찌를 줬다니?

 

여기로 데려올 거라는
소문도 있던데

 

1년 반이 흐른 지금까지
그녀의 소식을 자주 접했다

 

그녀의 크고 작은 소식까지
잘 알고 있었지만

 

그런 소식들을
그저 죽은 사람에 대한

 

얘기를 듣듯이
초연하게 들어왔다

 

하지만 과거는 다시
현재로 돌아왔고

 

그건 마치 새로 발견한
동굴 안에서

 

불을 지펴
그 불빛에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내는
벽화 같았다

 

그는 자신에게 한 번의
기회를 주기로 했다

 

배가 등대를 지나기 전에
뒤돌아보면

 

그녀에게
가겠다고 말이다

 

못 보고 가서 안타깝군요
많이 변했다던데

 

변했다고?

 

친한 친구들도 안 만나고
여름도 혼자 보내고요

 

워싱턴으로 이사도 갔잖아요
우리가 너무 소홀했었나 봐요

 

차라리 남편과 지낸다면
더 행복할 텐데

 

- 당신이 잔인한 줄은 몰랐어
- 잔인하다고요?

 

악마라도 지옥에 있는 사람이
행복할 거라곤 안 해

 

그럼 외국으로
시집가지 말았어야죠

 

내가 할게

 

가자

 

블렌커 사람들?

 

블렌커를 위한
파티라고?

 

그들이 누군데요?

 

엘렌 언니와 같이 있는
사람들이죠

 

"실러튼 부부가
수요일 오후 3시에"

 

"블렌커가 분들을
소개할 예정입니다"

 

"장소는 캐서린 가의
레드 게이블"

 

거절할 수 없을 것
같구나

 

왜 안 되죠?
고고학자라면서요

 

실러튼 씨의 사촌이니까

 

- 그럼 가야죠
- 우리 중 몇은 가야 돼

 

제가 가죠
아가씨도 같이 가요

 

엘렌 언니도 올 테니까
소개시켜 줄게요

 

당신은 혼자 보낼 수 있죠?

 

그럼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할 수 있겠군

 

농장에 가서 마차에 쓸 말이나
보고 와야겠어

 

경기 날짜와 겹치지 않아
천만다행이구나

 

누구세요?

 

죄송해요, 벨을 누르셨나요?
낮잠을 자고 있었어요

 

방해가 됐군요

 

블렌커 양인가요?
뉴랜드 아처라고 합니다

 

말씀 많이 들었어요

 

말을 좀 보러 왔어요,
아무도 안 계신 것 같군요

 

모두 파티에 가셨어요

 

저는 아파서 못 갔고, 올렌스카
백작 부인은 안 계세요

 

제 양산을 찾으셨군요!

 

제일 아끼는 건데
카메룬에서 만든 거죠

 

아주 예쁘군요

 

백작 부인은 어디 가셨죠?

 

보스턴에서 전보가 왔어요
이틀 정도 가 계신댔어요

 

그분 머리 모양이
너무 예뻐요, 그렇죠?

 

월터 스캇 부인 같은
머리죠

 

저도 내일 보스턴에
가야 하는데

 

부인 계신 곳을
알 수 있을까요?

 

출장 온 거예요
지금 막 도착했죠

 

- 머리 모양이 바뀌었군요
- 하녀가 안 왔거든요

 

겨우 이틀 있을 건데
너무 번거로울 것 같아서요

 

혼자 여행 중이란
말이에요?

 

예, 왜요?
너무 위험한가요?

 

- 관습에 어긋나는 일이죠
- 그렇겠죠

 

관습에 어긋난 일을
또 했어요

 

주겠다는 돈을
거절했죠

 

누가 제의했나요?

 

어떤 조건으로?

 

- 거절했다니까요
- 조건을 얘기해봐요

 

힘든 건 아녜요
가끔 같이 식사하는 정도죠

 

얼마든 주겠대요?

 

꽤 괜찮은 액수였죠

 

적어도 나한테는 말이죠

 

그를 만나러 온 건가요?

 

남편요?
물론 아니죠

 

사람을 보냈어요

 

비서요?

 

 

아직 여기 있는데

 

마음이 바뀔 때까지
기다린대요

 

당신은 그대로군요

 

당신을 본 순간
변했어요

 

이러지 말아요

 

하루만 시간을 내줘요
우리 얘긴 안 꺼낼게요

 

그냥 같이 있고 싶어요

 

그가 호텔로 온다고
했나요?

 

- 11시에 오기로...
- 어서 가죠

 

- 호텔에 메모는 남겨야죠
- 여기에 써요

 

종이까지 있잖아요
이건 운명이라니까요

 

그리고 이런 만년필
봤어요?

 

이렇게 흔들어야만
나오죠

 

써봐요

 

안 나오는데요

 

이제 될 거예요

 

- 제가 갖다 드릴까요?
- 금방 올게요

 

전에 바닷가에서
날 왜 안 불렀죠?

 

당신이 돌아보지
않아서요

 

돌아보지 않으면
안 부르기로 결심했었거든요

 

일부러 안 돌아봤어요

 

알고 있었어요?

 

마차가 들어설 때
알아봤죠

 

그래서 바닷가로
간 거예요

 

나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지려고 말이죠

 

- 예, 멀리요
- 피해서 될 일이 아녜요

 

- 난 솔직하길 원해요
- 그래서 보포트 씨를 좋아해요?

 

그는 누구보다 솔직하지만,
우리는 개성도 없고

 

특징도 없고 다 똑같죠

 

유럽으로 왜 안 돌아가요?

 

- 당신 때문에 안 가는 거예요
- 나 때문에요?

 

난 어떤 여자가
결혼하라고 해서 결혼했어요

 

이런 얘긴
안 하기로 했잖아요

 

그 약속은 지킬 수가
없어요

 

그럼 메이는요?
메이의 감정은 상관없나요?

 

내가 결혼한 게
잘한 거라면

 

당신이 안 돌아갈 이유가
없잖아요

 

내게 삶의 의미를 준
당신이

 

다시 거짓 삶을 살라고
강요했어요

 

누구라도 참지
못할 거예요

 

난 참고 있어요

 

- 당신은 돌아갈 거예요
- 안 가요

 

아직은요, 우리가 견딜 수
있을 때까진요

 

- 당신에겐 맞지 않아요
- 아뇨

 

당신과 함께라면 돼요

 

돌아가지 않을 거죠?

 

안 돌아가요

 

그는 극장이나
피로연에서

 

그녀와 다시
마주치게 될 것이다

 

서로 옆자리에
앉게 될 수도 있고

 

둘만의 시간을 다시 갖게 될
기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를 안 보고는
더 이상 살 수가 없었다

 

아처 씨죠?

 

 

리비에르라고 합니다

 

파리에서 같이
식사를 했었죠

 

그렇군요
몰라 봬서 죄송합니다

 

사실 어제 보스턴에서
아처 씨를 봤죠

 

백작을 대신해서
온 이유는

 

부인께서 돌아오시길
간절히 바래서입니다

 

죄송합니다만...

 

저를 왜 찾아오셨는지
이해를 못 하겠군요

 

부인은 변했어요

 

전에도 알고 지냈소?

 

백작 댁에서 뵙곤 했죠

 

전 백작의 일을
도맡아 왔거든요

 

부인이 변했다는
말씀이...

 

미국인으로 변한 후
처음 봬서

 

그런 건지도 모르죠

 

부인은 결혼생활을
성실히 하셨어요

 

백작은 그러지 못했어요

 

그러려고도 안 했죠

 

말하자면
부인의 믿음이

 

깨지고

 

파괴된 거죠

 

유럽으로 돌아가면
삶은 여유로워지겠지만

 

많은 희생이
뒤따를 겁니다

 

희망도 없고요

 

전 제가 맡은 바대로
부인의 가족들을 만나야 합니다

 

백작이 원하는 것을
전해야 해요

 

하지만 당신이
그들을 설득시켜

 

제발 부인이 돌아가지
않게 해주세요

 

백스터 부인이 돌아가셨을 때
48벌이나 되는 드레스가

 

포장도 안 뜯은 채로
있었다고 한다

 

상이 끝나자
딸들은 그 옷들을

 

패션에 맞지도 않게
연주회에

 

입고 갔다는구나

 

언제쯤 다시 만날 수
있냐고

 

워싱턴으로
짧은 편지를 보냈지만

 

아직은 안 된다는
답장만 왔다

 

제 생각에는
보포트 씨가 부인에게

 

새로운 옷을 입게 해서
유행이 된 것 같아요

 

레지나 부인은 어떻게든지
다르게 보이고 싶어 했죠

 

- 자기 라이벌들과?
- 애니 링 말예요

 

- 말조심해라
- 모두 다 아는걸요

 

그래요,
항상 떠벌리고 다녔지만

 

이젠 사업이 망했으니
그것도 끝난 얘기죠

 

- 망해요? 그렇게 심각해요?
- 심각한 정도가 아니지

 

우리가 아는 사람은
어떻게든 타격을 받을 거야

 

레지나가 안됐지

 

올렌스카 부인이 남편 제의를
거절한 것도 안됐고 말이야

 

어째서죠?

 

솔직히 말해서, 이제 뭘로
생활을 해나가겠어?

 

보포트도 그렇게 되고...

 

그게 대체 무슨 뜻이죠?

 

그녀가 가진 돈 대부분을
보포트에게 투자했잖아

 

그리고 가족들이 대주던
용돈도 삭감됐고

 

- 다른 돈이 있겠죠
- 아주 조금이지

 

빚은 계속 쌓일 걸세

 

가족들이
리비에르 씨의 제안을

 

신중하게
생각한다는 걸 아네

 

그녀를 보포트의 정부로
만들려고 안달이더니

 

아주 성공하셨군요

 

그녀는 돌아가지 않아요

 

그건 자네 생각이지

 

자네가 더
잘 알 테지만

 

밍고트 부인이야 용돈 정도
줄 수도 있겠지만

 

나머지 가족들은
돌아가기를 바래

 

그녀가 자신에게 걸맞는

 

수준을 찾아가길 원하지

 

고마워요

 

램프에서 또 연기가 나는군,
고치라고 해야겠어

 

그럴게요

 

며칠간 워싱턴에
갔다 와야 할 것 같아

 

언제요?

 

내일, 미리 말했어야
했는데, 미안해

 

일 때문인가요?

 

물론이지, 대법원에서 저작권
소송이 있을 예정이거든

 

나도 레터블레어 씨한테서
편지를 받고 알았어

 

알았어요, 너무 복잡해요
램프 고치는 것도 머리 아파요

 

내가 해볼게

 

변화를 갖는 것도
좋을 거예요

 

가면 엘렌 언니도
꼭 만나보시고요

 

외출하신 동안
전보가 왔어요

 

- 이것 좀 고치게
- 알겠습니다

 

할머니가 쓰러지셨대요

 

쓰러지다니?

 

말도 안 되지

 

추수감사절 때
좀 무리했을 뿐이라고

 

주치의가 괜히 동네방네
모두에게 알려야 한다고

 

법석을 떨었단다
그래도 와줘서 고맙다

 

혹시 유산이 궁금해서
온 건 아니겠지?

 

말도 안 돼요, 할머니!

 

나도 말도 안 되는 것 때문에
이렇게 됐어, 가져가

 

레지나 보포트 때문이지

 

어젯밤 여기 와서

 

부탁을 하더라고

 

근데 뻔뻔스럽게도
나한테

 

보포트를 도와달랬어

 

그를 외면하지
말아 달라더군

 

타운젠드가와 같은 혈통이니
도와달라는 거야

 

보포트를 도와주시면
가족 모두가 살 수 있지만

 

안 그러시면

 

우리 가족 모두가

 

불명예를 안고
살아야 해요

 

그래서 말했어
명예는 그냥 생기는 게 아니야

 

그리고 내가 죽기 전까진
이 밍고트 집안에선

 

특별히 봐주거나
하는 일은 없을 걸세

 

못 믿겠지만, 그녀가 이러더군
"제 이름은요, 고모님..."

 

제 이름은요, 고모님!

 

- 레지나 타운젠드예요
- 내가 말했지

 

네 이름은 보포트고,
그 이름 때문에

 

부귀영화를 누리든 치욕을 당하든
넌 항상 보포트라고

 

그리곤 얼마 쥐여줬어

 

그냥 줘버렸지

 

모든 가족들이
장례식을 치르려고

 

여기저기서 몰려들 텐데

 

주치의가 도대체 전보를
얼마나 쳤는지 알아야지

 

- 저희가 도울 일은 없을까요?
- 엘렌이 오기로 했어

 

그 앤 내가 불렀지

 

기차로 오늘 도착할 거야
마중 좀 나가주겠나?

 

물론이죠
제가 마중 나가겠습니다

 

좋아

 

고맙네

 

할머니,
이제 걱정 마세요

 

그래, 고맙구나

 

할머니가 걱정하실까 봐
얘기 안 했는데

 

워싱턴에 가야 한다면서
어떻게 언니를 마중 나가죠?

 

안 가도 돼, 레터블레어 씨한테서
일이 연기됐다고 연락 왔었어

 

연기됐다고요?
이상하군요

 

엄마에게도 아침에
연락 왔었는데

 

그분은
저작권 소송이 있어서

 

할머니를 못 뵈러
온댔거든요

 

당신이 말한 그 일
아닌가요?

 

모두 갈 필요는 없으니까
혼자 가신다고 하셨어

 

그럼 연기된 게
아니네요?

 

내가 가는 게
연기된 거지

 

그는 터미널에서 밍고트 가까지
배와 마차로

 

2시간 정도 걸린다는 걸
알고 있었다

 

2시간이 조금 넘게
걸릴 수도 있다

 

- 제가 나올 줄 몰랐죠?
- 그래요

 

워싱턴에 가려고 했는데
길이 어긋날 뻔했네요

 

할머님이 절 보내셨죠
훨씬 나아지셨고요

 

- 당신을 못 알아볼 뻔했어요
- 못 알아본다고요?

 

매번 그래요

 

당신을 볼 때마다
새롭거든요

 

알아요

 

나도 그러니까요

 

계속 이렇게 지낼 순
없어요

 

- 우린 현실에 충실해야 해요
- 당신과 같이 있고 싶어요

 

당신 아내가 될 순 없잖아요
정부라도 되라는 건가요?

 

그런 단어가 없는 곳으로
도망가서 살고 싶어요

 

제발...

 

그런 나라가 어딨죠?
가본 적 있으세요?

 

우릴 믿는 사람들한테
상처를 주면서 행복할 수 있을까요?

 

- 그런 건 초월했어요
- 아뇨

 

당신은 한 번도
초월하지 못했어요

 

난 초월했죠

 

어떤 건지도 알아요
우린 견뎌낼 수 없어요

 

왜 멈추죠?
할머니 댁이 아니잖아요?

 

저는 여기서 내리겠어요

 

당신이 옳았어요
오늘 나오지 말걸 그랬어요

 

뭘 읽고 계세요?

 

일본에 관한 책이야

 

왜 읽으세요?

 

모르겠어

 

그냥 다른 나라니까

 

전엔 시를
읽어주곤 했죠

 

정말 좋았었는데

 

감기 걸려 죽겠어요

 

그래

 

그는 자신이 이미
죽은 거라고 생각했다

 

아주 오래전부터 말이다

 

갑자기 아내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젊고 건강한 사람도
죽기 때문이다

 

아내가 죽으면
그는 자유를 얻을 것이다

 

엘렌, 할 말이 있어요

 

- 언제 떠날지 몰라서요
- 전 안 떠나요

 

할머니가 돌봐달라셨어요

 

- 그럼 지금 얘기 좀 해요
- 레지나 부인한테 가야 해요

 

할머니가 마차도
빌려주셨어요

 

할머니는 보포트 씨가 악하다고
하시지만 내 남편도 마찬가진데

 

가족들은 남편에게
돌아가라고 하죠

 

할머니만 이해해 주시죠
용돈도 주시고요

 

-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요
- 뉴욕에서요?

 

둘이 있을 만한 데요

 

내일 2시 반,
공원의 미술관 문앞에서

 

기다릴게요

 

'용도 불명'

 

당신은 두려워서
뉴욕에 온 거죠

 

- 뭐가 두렵죠?
- 내가 워싱턴으로 올까 봐서요

 

그게 더 안전할 것
같았죠

 

나로부터요?

 

엘렌?

 

날 사랑할까 봐
피하는 거요?

 

당신과 하루 지내고
돌아갈까요?

 

하루만 나와 지내줘요

 

언제요?

 

내일

 

모레 갈게요

 

'올렌스카 백작 부인
809 5번가'

 

늦어서 미안해요
걱정한 건 아니죠?

 

- 늦은 시각인가?
- 7시가 넘었어요

 

할머니 댁에서
엘렌 언니를 만났어요

 

좋은 얘길 많이 나눴죠
너무 다정했어요

 

옛날로 돌아간 것 같이요
할머니도 기뻐하셨죠

 

하지만 할머니 마차를 타고
레지나 부인 집에 간 건

 

아무래도
이해가 안 돼요

 

오늘 외식할 건가?

 

오늘 제게
키스도 안 했어요

 

뉴욕의 오랜 관습으로
결혼 후 1년간

 

신부는 외출할 때
웨딩드레스를 입었다

 

하지만 메이는
유럽에서 돌아온 뒤

 

오늘에서야 처음
그 드레스를 입었다

 

메이, 잠깐만

 

두통이 너무 심해
우리끼리 돌아가지

 

안 쉬어도 돼요?

 

그렇게 심하진 않아

 

당신에게 긴히
할 말이 있어

 

할 얘기란 건
다른 게 아니라

 

나에 대한 거야

 

올렌스카 부인은...

 

왜 지금 엘렌 언니
얘길 하죠?

 

진작 얘기하려고 했는데...

 

얘기할 가치가 있나요?

 

제가 나쁘게 군 건 알아요
우리 모두가 그랬죠

 

당신이 그녈 이해해준 건 알지만
이젠 다 끝난 얘기잖아요?

 

끝났다니
무슨 뜻이지?

 

곧 유럽으로
돌아갈 거랬어요

 

할머니는 한편으론
섭섭해하시면서도

 

백작으로부터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게 해주신댔죠

 

사무실에서 이미
들으신 줄 알았는데요

 

- 말도 안 돼
- 뭐가요?

 

여기서도 할머니 도움으로
살 수 있었는데 포기했나 봐요

 

당신이 어떻게 알지?

 

어제 엘렌 언니를 만났다고
이미 얘기했잖아요

 

그럼 어제 얘기한 건가?

 

아뇨

 

오늘 오후에
편지를 보내왔어요

 

보여드릴까요?

 

알고 계신 줄 알았어요

 

드디어 할머니께서
내가 온 것이

 

단순한 방문이 아니란 걸
아셨단다

 

할머니는 정말 따뜻하고
너그럽게 대해주셨어

 

내가 유럽에 가면 자립하도록
도와주시기로 했지

 

짐 꾸리러 워싱턴으로 떠난단다
다음 주에 유럽으로 가

 

나한테 잘해준 것처럼

 

할머니께도 잘해 드려라

 

날 붙들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쓸모없는 일이라고 전해줘

 

"쓸모없는 일이라고 전해줘"

 

이걸 왜 썼지?

 

어제 나눈 얘기
때문인가 봐요

 

무슨 얘기?

 

여기 있는 동안 언니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헤아리지 못했던 거
미안하게 생각하고

 

언니가 당신에게
의지하는 것을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해줬어요

 

내가 그런 얘기 꺼낸 이유를
언닌 이해했죠

 

모든 걸 이해하는 것
같았어요

 

저도 머리가 아파요

 

- 잘 자요, 여보
- 잘 자

 

젊은 신혼부부가
저녁 식사를 베푸는 건

 

가볍게 지나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요리사와 하인들을 더 고용했고
장미와 로만 펀치에

 

메뉴는 금테를 두른
카드에 적었다

 

메이의 특별요청에 따라

 

밴더라이든 가 사람들도

 

백작 부인의 환송식사에

 

참석하기로 했다

 

아처는 평온을 가장한
사람들의 음모 속에

 

자신과 엘렌이

 

둘러싸여 있는 것만
같았다

 

사람들이 오랫동안
두 사람을 주시하고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는 점차 자신이

 

죄의식을 느끼고 있다는 걸
실감하게 됐고

 

아내를 비롯한 모든 이들이
감시하는 진영 속에서

 

자신은 포로가
돼버렸음을 깨달았다

 

레지나 부인이 아픈데도

 

보포트 씨는 애인하고만
지낸다는군요

 

지금 보포트로서는

 

레지나의 친정 집에서
말이나 키우는 게

 

최선일 거야

 

그를 해방시켜 줄 열쇠는,
그 전날

 

뜯지 않은 채로
되돌아왔다

 

계속 여기서 그런 생활을
해나갈지도 모르죠

 

정치에 뛰어들지도 몰라

 

그러면 그의 애인이
영부인이 되나요?

 

워싱턴에서 오실 때
힘들지 않았나요?

 

기차 안이 무지 더웠죠

 

여행은 힘들기
마련이잖아요

 

그래도 떠날 만한
가치가 있죠

 

저도 곧 여행을
많이 하게 될 거거든요

 

필립 씨도 아테네나
이스탄불 같은 곳으로

 

- 여행을 해보시죠
- 못할 건 없지

 

- 없고말고
- 나폴리는 안 돼요

 

거긴 열병이 유행이래요

 

그래요?
나폴리에 열병이라니

 

- 그럼 인도는 어떨까요?
- 다 돌려면 3주는 걸릴걸

 

정말 그렇죠

 

보포트는 초대는 못 받지만
수준은 계속 유지하고 있나 봐요

 

그 짓 말인가?

 

이렇게 가다간
우리 애들이

 

사기꾼 자식들과 결혼하게
되는 거 아닌지 몰라요

 

자식이나 있고?

 

여러분,
심한 말은 삼갑시다

 

사회는 천한 여자에게도
관용을 베풀지

 

어느 정도까진요

 

집에 형편없는 요리사를
둔 사람일수록

 

식당에 가면 불평이
더 심한 법이지

 

꼭 품위가 있을
필요는 없지만

 

레퍼트도 예전엔
안 저랬다네

 

점점 나빠지는 것 같네

 

레퍼트가 저렇게까지
심하게

 

적대시하는 건
처음 봐요

 

분노는 두려움만큼이나
신랄한 말로 표현되죠

 

집에서 가하는 압력이
대단한가 보죠

 

자기 집안이 대단하다고
떠벌릴 것까진 없잖소?

 

상류 사회를 쥐고 있는

 

이 은밀한 그들의 조직은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고 싶어 했다

 

올렌스카 부인이 한 행동의

 

정당성에는 관심도 없었고

 

아처의 정절에 대해서도
문제 삼지 않았다

 

관습에 벗어나는
행동에 대해서는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자리를 통해
아처는

 

뉴욕이 자신을 엘렌의 애인으로
본다는 걸 알았다

 

워싱턴 연회 얘길 했지

 

맹인을 위한
자선 모임이었죠

 

그리고 처음으로
자신의 아내도

 

그렇게 믿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오게 되면
꼭 만나러 와요

 

그곳에서 자리 잡는 대로
주소를 보낼게요

 

그렇게 해주세요

 

마차까지 바래다 드리죠

 

우리가 엘렌을
데려다 줄 거예요

 

잘 있어요

 

잘 가요

 

파리에서 조만간 뵙죠

 

메이와 꼭 같이 오세요

 

그만 마차로 갈까요?

 

- 오늘 즐거웠네
- 잘 있게

 

안녕히들 가세요

 

- 잘 치른 것 같죠?
- 그래

 

- 들어가서 얘기 좀 해도 돼요?
- 물론이야

 

- 당신 피곤하지 않아?
- 당신과 같이 있고 싶어서요

 

좋아

 

기분이 괜찮다면,
여보...

 

당신한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지난번에 하려던 얘기야

 

- 당신에 관한 얘기 말이군요
- 그래, 내 얘기 말이야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난 지금 너무나
지쳐 있어

 

그리고 내 생각에...

 

점점 더 지쳐가고 있고

 

그래서 휴식을 취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변호사 일을
그만두시게요?

 

그것도 그렇지만
지금은 단지

 

잠시 떠나있고 싶어

 

여행을 좀 할까 해

 

유럽으로요?

 

좀 더 먼 곳으로

 

얼마나 멀리요?

 

잘 모르겠어

 

인도나 일본 정도...

 

그렇게 멀리요?

 

글쎄요

 

그렇게는 안될 것
같아요

 

날 데려간다면
몰라도요

 

하지만 의사들이
못 가게 할 거예요

 

오늘 아침에 확인했는데
알려드리고 싶었어요

 

여보...

 

생각지도 않았나요?

 

물론 원하고는 있었지만...

 

다른 사람한테도 알렸어?

 

엄마와 시어머님

 

엘렌 언니에게요

 

전에 언니와 얘길
많이 나눴다고 했었죠?

 

얘기했다니
기분 나쁘세요?

 

왜 기분이 나빠?

 

하지만 그건
2주 전이었잖아

 

오늘 아침에야
알았다면서?

 

그땐 확실하지 않았지만
그냥 얘기했어요

 

어쨌든...

 

맞았잖아요

 

그의 인생의 현실적인 일들은
대부분

 

이 방에서 이뤄졌다

 

한겨울에 태어난

 

장남 테드가
이 방에서

 

세례를 받았고

 

네게 세례를 주노라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테드는 여기서
첫걸음마를 했다

 

아처 부부는 이 방에서

 

자녀들의 미래에 대해
상의했다

 

둘째 빌은
고고학에 관심을 보였고

 

딸 메리는 운동과 자선에
관심이 많았으며

 

예술 감각이 뛰어난 테드는
건축가가 되어 이 방에서

 

집 개조를 논의했다

 

메리도 이 방에서
약혼을 발표했고

 

정말 기쁘구나

 

상대는 래리 레퍼트의
아들 중 하나였다

 

또한 아처가
딸의 결혼식 날

 

딸에게 마지막 키스를 한
곳이기도 하다

 

그는 성실한 아버지였고
믿음직한 남편이었다

 

메이가 빌을 간호하곤
폐렴으로 사망했을 때

 

그는 진정으로 슬퍼했다

 

그녀는 젊었을 때의
세상을

 

고스란히
간직하려고만 했고

 

현실의 변화를
수긍 않는

 

그녀에게 자녀들은
아처처럼

 

자기들이 갖고 있는
진실한 견해를 말하지 못했다

 

그녀는 세상이
자신의 집과 같이

 

사랑과 평화가 가득한 줄만
알고 떠났다

 

57살이 된 아처는
과거를 돌아보며

 

그것을 소중하게
생각했다

 

여보세요?

 

시카고에서 온
전화입니다

 

- 아버지?
- 테드냐?

 

고객이 설계를 시작하기 전에
정원을 먼저 둘러보래요

 

좋구나, 어딘데?

 

- 유럽요
- 저런!

 

다음 주 수요일에 가요

 

그럼 결혼식은 어쩌고?

 

결혼식은 5일이잖아요
1일에 돌아갈 거예요

 

결혼 날짜는
기억하고 있구나

 

- 같이 가지 않으실래요?
- 뭐라고?

 

아버지의 조언이
필요하다고요

 

- 부자간의 마지막 여행이에요
- 말은 고맙지만...

 

좋아요,
내일 배를 예약하세요

 

내 스케줄을 취소하려면...

 

아무 말씀 마세요
바다가 우릴 부르고 있어요

 

월요일에 뉴욕에 도착해요

 

- 언제라고?
- 월요일요

 

생각해 봐야겠다

 

장담은 못 하겠지만
노력은 해보마, 알았지?

 

베르사유 궁전에 갈 건데
같이 가시겠어요?

 

루브르 박물관에 갈 거다

 

거기서 나중에 뵐게요, 5시 반에
올렌스카 부인을 만나야 하니까요

 

- 뭐?
- 말씀 안 드렸었나요?

 

애니가 파리에 가면 세 가지는
꼭 해야 한다고 했죠

 

드뷔시의 악보를 사고

 

기뇰 극장에 가고
올렌스카 부인을 만나는 거죠

 

보포트 씨가 애니를 파리에
보냈을 때 무척 잘해주셨대요

 

부인이 보포트 씨
첫 부인과 친했다면서요?

 

보포트 씨가 그러셨어요

 

오늘 아침에
부인께 전화해서

 

- 친척이라고 소개했죠
- 내가 왔다는 얘기도 했니?

 

그럼요, 당연하죠

 

멋진 분 같았어요
예전에도 그랬나요?

 

멋졌냐고?

 

모르겠다

 

특별한 사람이었지

 

아처는 엘렌을
떠올릴 때마다

 

마치 그녀가
그림 속에 있는

 

상상의 연인처럼
느껴졌고

 

그가 놓쳐버린
환영으로 기억됐다

 

난 겨우 57살이야

 

보포트 씨가 재혼하려고 할 때
그렇게 반대가 심했나요?

 

아무도 그를 인정하지
않잖아요

 

하도 많이 실망을 줘서
그럴 거야

 

이젠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죠

 

그래도 재혼해서 낳은
애니는 잘 키웠지
그래도 재혼해서 낳은
애니는 잘 키웠지

 

네겐 잘된 일이야
네겐 잘된 일이야

 

우리한테 잘된 일이죠
우리한테 잘된 일이죠

 

내 말이 그 말이지
내 말이 그 말이지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왜 반대하신 건지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왜 반대하신 건지

 

이유를 모르겠어요
이유를 모르겠어요

 

네 결혼을 반대했던 건
보포트 가 사람이라...
네 결혼을 반대했던 건
보포트 가 사람이라...

 

아뇨, 모든 걸 버릴 만큼
사랑한 여자를 만나는 것 말예요
아뇨, 모든 걸 버릴 만큼
사랑한 여자를 만나는 것 말예요

 

버리진 않으셨지만요
버리진 않으셨지만요

 

버리지 않았다고?
버리지 않았다고?

 


 

어머니가 그러셨는데
우리가...
어머니가 그러셨는데
우리가...

 

돌아가시기 전날 절 불러
얘기셨는데, 기억나세요?
돌아가시기 전날 절 불러
얘기셨는데, 기억나세요?

 

어머니는 걱정할 게
없다고 하셨어요
어머니는 걱정할 게
없다고 하셨어요

 

왜냐면
어머니의 부탁으로
왜냐면
어머니의 부탁으로

 

아버진 원하는 걸
포기했다고 하셨거든요
아버진 원하는 걸
포기했다고 하셨거든요

 

엄마는 부탁한 적 없다
엄마는 부탁한 적 없다

 

부탁하지 않았어

 

조금 후에 그는 아들의
무분별함에 넘어가고 말았다

 

누군가가 자신을
이해해 준다는 게

 

매우 큰 안도감을
가져다 주었고

 

그의 희생을 아내가
이해했다는 데 크게 감동했다

 

3층에 계신다는데요

 

차일이 쳐진
방일 거예요

 

6시가 다 돼가요

 

잠깐 앉아야겠다

 

같이 안 가실 거예요?

 

- 정말 안 가세요?
- 모르겠다

 

부인이 이해 못 하실걸요

 

먼저 가거라
금방 따라갈게

 

뭐라고 말씀드려요?

 

변명이야 많지 않니?

 

너무 옛날 분이라서
승강기를 안 타고

 

걸어오신다고 할게요

 

옛날 사람이라고만
하거라

 

그걸로 충분할 거다

 

어서 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