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으로의 긴 여로 (1962)   안개가 가셔서 다행이에요. 정말.. 오늘 아침은 영 피곤해서.. 잠을 잘 못 자서 말이죠. 밤새 뱃고동 소리가 울려대니. 그래, 꼭 뒷마당에서
고래가 앓는 줄 알았어. 잠을 잘 수가 있어야지. 얼씨구? 당신은 피곤하면
이상한 버릇이 있어. 어찌나 그리 코를 골던지.
뭐가 뱃고동 소리인지 모르겠던 걸. 고동 10개가 불어대도 모르실 거야. 당신은 신경이란 게 없으니까.
전에도 없었지만. 무슨 소리. 내가 코를
무슨 그리 곤다 그래. 과장은 무슨. 당신도
언제 한번 들어봐야 해요.   무슨 얘길 하기에 저리 웃는지. 필시 내 얘기겠지.
이 늙은이를 괴롭혀대니 그래요. 식구들이 당신을 괴롭히니.
괴롭기도 하겠어.   신경쓰지 마요.   농담이 뭐건 상관없잖아요?
에드먼드가 웃는 게 안심인걸. 요새 입이 삐쭉
나와있었는데.   분명히 제이미가 웃고 있는거지. 그 놈은 누구든 비웃지 못해서
안달이란 말야. 제이미를 너무 나무라지 마요. 결국 잘 될거예요.
두고보라지. 시작이 반이라고,
이제 곧 34살인걸.   정말! 하루종일 있을 셈인가.
제이미! 에드먼드! 이리로 나와라! 캐슬린도 탁자를 치워야 할거 아니냐. 당신은 걔가 뭐라건
감싸주기만 하는구려.   네 아버지 코고는 걸로
놀리고 있었단다. 나머진 애들에게 맡겨야지.
얘들도 들었을테니. 제이미는 아니겠지만,
네 코고는 소리도 네 아버지만큼이나
어지간하더구나. 베게에 머리만 갖다 대면
바로 잠에 빠져버리니. 10개의 고동이 울려도
잠이 안깰꺼야.   뭘 그리 쳐다보니, 제이미?
머리가 내려왔어? 아니면..   요즘은 머리 손질도 힘들어. 눈도 침침해지고,
안경은 어딨는지도 모르겠구. 아뇨, 머리 괜찮으신데요. 뭘. 요즘 어머니 안색이 괜찮아 보여서. 너 말 잘했다.
요새 뚱뚱해지고, 활기차게 변해서,
어디로 튈지 모르겠다니까. 정말 그래요. 어머니. 아버지 코고는 건
정말이예요. 집이 떠나가는줄 알았네. (셰익스피어 '오델로' 2막 1장 中)
나도 들었다. 무어 장군이다.
나팔소리만 들어도 알지.
내 코고는 소릴 듣고,
경마장 배당표 대신에 셰익스피어가 생각난다면,
앞으로도 코를 골아주지. 여보, 뭘 그리 성을 내셔. 그래요! 아버지. 아침 잘 드시고 왜 그러세요. 아버지께서 네 흠 가지고
뭐라 하시던? 언제나 형 편만 드는구나. 그만들 둬요. 네가 10살은 더 먹은것 같아. 그래, 뭐든 잊어버리고,
부딪힐 생각은 하지도 않는구나. 아무 야망도 없이 살아가는
인생에는 참 편리한 철학이지. 여보! 조용히 해요. 무엇때문에 그리들 킥킥댔는지, 우리에게도 한번 들려주렴. 그래, 한번 얘기해봐라. 아버지도 기억하시죠? 하커 씨 땅에 얼음 연못이 있고,
바로 옆에 쇼네시 씨가 돼지를
키우는 농장이 있다는거. 그런데 울타리가 부서진 모양인데, 돼지들이 거기서
연못에서 목욕을 했나봐요. 아이구, 저런! 불쌍한 돼지들이 감기에 걸렸다, 폐렴에 걸려 죽어간다,
돼지들 중에 독극물을 마셔서 콜레라로 죽어간다 해서
쇼네시 씨가 고래고래 소리를 치면서 하커 씨에게 변호사를 선임해서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고 했대요. 그리고 이렇게 얘기했다네요.
나는 우리 농장에 감자벌레, 진드기, 옻나무, 뱀, 스컹크가
있는건 참을수 있지만 나도 참는데도 한계가
있는 사람인지라 스탠다드 오일 회사의
무단침입은 도저히 참을수 없다. 그러니까 하커 씨가 여기서
조용히 꺼져주지 않으면 개를 풀어버리겠다고 했더니,
하커 씨가 도망갔다네요. 어휴, 입이 걸기도 하지. 그 악당 녀석!
당해낼 재간이 없어. 이런 못되먹은 놈!
그럼 거기서 내가 뭐가 되냐? 내가 불같이 화를
낼거라고 그랬겠지? 아일랜드의 위대한 승리라고
자평하실거라 했죠. 좋아하시면서 왜그러세요?
- 내가 언제 그러더냐? 좋아하는구만, 뭘.
자기 기만은 하지 마요. 뭐가 웃기다는거야?
하나도 재미없어. 아들이란게 아비를 재판에
끌어넣으려는 나쁜 놈 편이나 들고. 여보, 성질 좀 그만 부려요. 그래, 넌 쇼네시를 부추기지 못해서 속으로 아쉽다 생각하겠지. 너야 쥐뿔도 없어도,
그런데 재능은 대단하니까. 제이미를 왜 나무라고 그래요. 아버지, 정말..
그런 소리 하시려면 저는 빠지렵니다.   아버지는 그런 생각 하시면서
기분도 안나쁘세요?   에드먼드에게 너무 마음쓰지 마요.   몸이 안 좋잖아요.
여름 감기 걸리면 다 짜증나지. 그냥 감기가 아닐걸요.   저 애는 심하죠.   무슨 소릴 하는거니?
그냥 감기일 뿐야. 넌 상상력이 너무 지나쳐. 제이미 얘기는 다른게 겹쳐서 감기가 더 악화됐다는거요. 그래요. 제말이 그말입니다. 하디 선생도 제이미가
열대지방에 있을때 얻은 열병인 것 같다고
하지 않았소? 하디요? 난 그자가 성경을 궤짝째 쌓아놓고
맹세를 해도 안 믿어요. 난 의사가 하는 짓을 다 알죠.
다들 똑같아서 그저 환자만 부를 수 있으면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아.   왜 그래요? 뭘 그리 쳐다보지? 머리가 내려왔어요?
아니면.. 머리는 괜찮소. 뚱뚱해지고, 건강해지니
점점 허영만 느는구료. 거울 앞에서 치장한다고
반나절은 앉아있겠네. 눈이 침침해져서요.
안경을 새로 맞춰야지 싶어요. 당신 눈이야 아름다운걸. - 당신도 알면서.
- 여보, 주책 떨지 말아요. - 제이미 앞에서..
- 얘도 다 알아. 당신 눈이며 머리가 어떠니 하는거 다 칭찬하고 싶어 그러는거야.
안 그러냐? - 그래요, 너무 그러지 마세요.
- 한편이 되서 왜들 이래.   그래도.. 정말이지.. 내 머리가 이쁘긴 했어요. 그렇죠? 세계제일이였소. 아주 보기 드물 정도로
불그스레한 밤색이였어. 길어서
무릎 아래까지 내려왔으니까.   너도 기억할거다. 제이미. 에드먼드를 낳고 나서는
머리가 희끗희끗해지는구나. 그게 더 이뻐보여.   아버지 말씀 좀 들어봐라. 제이미.
결혼한지 35년이나 됐는데 썩 훌륭한 배우셔. 그치? 여보, 왜 그러는거죠?
코 곤다고 놀렸더니, 그 원수를 은혜로
갚는 건가요? 그럼, 아까 한 말은 취소하죠. 내가 들은건 '고동'소리인가봐.   그럼..   칭찬 듣고 있을 시간이 없네. 저녁은 뭘 할지,
장은 뭐 볼지 고믽 좀 해봐야겠어. 브리짓은 게으르고,
음흉해서 자기 친척 얘기만 시작하면,
정말 혼낼수도 없고. 꾹 참고 듣는 수 밖에요.   에드먼드 데리고 일 시키지 말아요. 걔가 몸이 허약해서 그런게 아니라, 땀 흘리면 감기에 더 안 좋을테니까.   이 멍청한 자식아.
그렇게 생각이 없냐? 네 어머니 앞에서 에드먼드 얘기는
피하는게 좋다는거 몰라? 그래요, 말씀이 맞아요.
하지만 어머니가, 자기 기만하게 두는 것도 잘못이죠. 사실과 마주하면,
충격만 더 심해지실걸. 여하튼, 어머니가
은근슬쩍 여름감기로 퉁치는건
아버지도 아시잖아요? 어머니가 더 잘 아실걸요. - 알아? 아무도 모른다.
- 전 알죠.   에드먼드가 하디 선생 보러갈때
저도 같이 따라갔죠. 말라리아 얘기를 또 하던데,
제가 볼땐 다 핑계예요.   의사가 모를리가 있나요.   아버지도 잘 아실텐데요. 어제 시내에 나갔을때
그 양반 만나셨죠? 확실한 얘기는 아직 없더라.   에드먼드가 가기전에
내게 전화해줄게야.   폐결핵이라고 안해요?   그럴지도 모른다더라.   불쌍한 녀석. 젠장.   처음 아프다고 했을 때 좋은 의사에게 보냈으면
이런 일이 없잖습니까. 하디가 뭐 어때서?
여기 사람들은 다 단골인걸. 1달러밖에 안받으니까요. 그러니까 좋은 의사라고 생각하시지! 부유한 사람들 등쳐먹는 의사에게
돈 줄 여유도 없다는거면.. 여유가 없다니요? 여기서
아버지만큼 부유한 지주가 어딨다고? 그게 부자라는 소리는 아니지. 에드먼드가 하찮은 땅이였다면 돈을 무진장 쓰셨을걸.
- 헛소리 마. 그리고 하디 선생을
비웃는 것도 헛소리야. 따지려는 나만 멍청하죠.
아버지 천성이 변할리가 있겠어. 넌 안돼겠지. 네 교훈은
이미 질리게 들었다. 네가 바뀔줄 알았는데
다 부질없는 짓이구나. 감히 애비에게 여유 운운해?
네가 돈의 가치에 대해 뭘 안다고 그딴 소릴 하냐?
넌 앞으로도 모를거야. 연극 시즌만 끝나면
개털인 자식이. 그저 매주 받는 봉급을
주색잡기에 퍼부으면서. 제 봉급이요? 하! 분에 넘치게 받으면서.
나 아니였음 어림도 없는 돈이다. 내 아들이 아니었음,
누가 네게 역을 맡기겠냐? 네 평판때매 나도 망신만 당하니.
내가 너 때문에 자존심도 굽히고 굽신대잖아. 개과천선했다고.
거짓인거 뻔히 알면서. 내가 언제 배우가 되겠대요? - 억지로 시키셔놓고는..
- 거짓말 하지 마라! 내게 일자리를 얻어달라고 시켰잖아.
난 연극판 아니면 쓸모도 없어. 억지로 시켜? 바에서 한량짓하면서
놀고 먹기 바쁜 주제에. 그렇게 돈을 들여
공부시켜놨더니 학교 옮기는 족족 개망신
당하면서 짤리기나 하고. 어휴, 옛 이야기 좀 하지 마세요. 매일 여름만 되면 집에 와 살면서
뭐가 옛 이야기냐? 제가 일하면서 그만큼
챙겨가는데 뭘 그러세요?   일꾼 하나 둔 셈 쳐요. 가치가 아주 똥값이구나. 네가 조금이나마 감사의 마음만 있다면, 이 아비가 네게 뭐라 하겠냐. 네가 하는 감사라곤,
이 애비를 지독한 노랭이라 비웃고, 애비 직업을 비웃고,
너 이외의 모든걸 경멸하는거지.   그렇지 않아요. 속으로 자신을 얼마나 다그치는데요. (셰익스피어 '리어 왕' 中)
배은망덕한 이여,
그대는 악독한 잡초이리니.
  그러실줄 알았습니다.   몇 천번은 들었지.   그래요, 아버지.
제가 놈팽이죠.   넌 아직 젊어. 좋은 배우가 될 수있는 자질도 있다.
기회가 있어. 내 아들이니까. 그만 하세요. 그 얘긴 관심없으니.
아버지도 그러시면서.   어쩌다 이런 얘길 했지.
아, 하디 선생.   에드먼드 건으로
언제 전화한답니까? 점심쯤 한댔어.   에드먼드 얘기를 안하는게, 네 양심의 가책을 덜 받을거다.
네 책임이 크니까. 무슨 소리예요.
말도 안되는 소리를.. 사실 아니냐!   그 애는 그동안 널 영웅으로 삼아왔다.   네가 언제 못된 말 아니면 언제 충고나 제대로 해줬냐?
언제 들어본 일이 있어야지. 네가 속세의 진리랍시고 그애에게
쑤셔넣으니 조숙해지기나 하고. 그 애 나이로는 네 인생의 실패가
네 마음을 타락시킨 걸 이해하기 어려웠지. 넌 그저 남자란 악당이라 영혼을 팔고, 창녀가 아닌 여자는 그저
멍청하다고 믿고 싶었을테니까. 좋아요, 좋아. 제가
여러 진리를 알려주곤 했죠. 하지만 그것도
그 녀석이 먼저 시작한거고, 제가 형이라고 충고해줘도
웃고 넘기기가 일쑤였어요. 그냥 걔와 친구가 되서
서로에게 솔직해지면 그 아이도 제가 한 실수들을 보면서
뭔가 배우지 않을까 싶었는데.   아버지도 선한 사람은 못돼도,
선한 척은 하실수 있잖아요?   너무 모함하지 마세요.   제게 저 아이가 어떤 의미인지
아시면서 그러세요. 우리 사이가 다른 형제들보다
친한것도 아시면서.   다 잘되라고 그랬다는거 안다. 내가 언제 그애를
망쳤다고 그랬더냐. 그리고 말도 안돼죠. 에드먼드에게 나쁜 영향을 줄 사람이 있겠습니까? 제가 헛짓거리했다고 해서, 그 애가 선원이 돼서 싸돌아다닌게
정당화되진 않아요. 됐고요. 저는 브로드웨이에
욕실이 딸린 방 하나 잡고, 바에 가서
버번이나 먹으며 놀랍니다. 그 놈의 브로드웨이!
그래서 네가 그 모양이지. 에드먼드는 거지꼴이 되어도
내게 징징대지 않고, 그 놈은 자기 힘으로
해낼 배짱이라도 있다. 매사 거지꼴이 되서 돌아왔죠. 집을 나가서 한게 뭔가요?
그 애 꼬라지를 보세요.   어휴. 쓸데없는 소릴 했네요.
본의가 아닙니다. 신문사에서 일만 잘 하고 있다.
너도 신문일 하고 싶다고 매사 노랠 불러놓고,
어째 시작하려고 하는 꼴을 못봤어. 정말 아버지.
제 얘기는 또 왜 해요? 운도 없지. 에드먼드가 이럴때 아프다니. 설상가상이란 말이 딱이야. 네 어머니도 그렇구. 근심없이 마음편히 해야할 사람인데, 이런 일로 마음이
뒤숭숭해지면 어쩌냐. 네 어머니가 집에 오고
2달간은 얼마나 건강했냐?   내게도 천국이였다. 집이 진짜 집다웠다 할까.   - 네가 모를리 없겠다만.
- 그럼요. 잘 알고 있죠. 그래, 네 어머니도
그 전과 판이하게 달랐어. 신경질도 잘 다스리고 말야.
에드먼드 아프기 전까진 그랬지. 요즘은 긴장도 어지간히 하고,
겁도 많이 집어먹은 것 같다. 네 어머니에게 진실을
이야기하고 싶진 않다만 에드먼드가 요양원에 가게 되면
말하지 않을수도 없지. 네 외조부가 폐결핵으로
돌아가셔서 더 좋지 않을텐데. 어머니가 외조부를 좀 좋아했냐.
절대 잊어버리지 않았을거다. 네 어머니도 힘들게다. 하지만 네 어머니도 할 수 있어.
의지력이 있으니까 말이다.   우리가 돕자꾸나.
최선을 다해서 말야. 물론이죠. 아버지.   신경질적인거 빼면
오늘은 꽤 괜찮아 보이시던데. 그래, 농담도 하고
장난도 곧잘 쳤으니.   '보인다'는게 무슨 말이냐?   이상이 없는게 나쁘다는거냐?
무슨 말이 그래? 괜히 성내지 마세요.   아버지.   말씀드릴게 있어요. 솔직하게 말할테니,
우리끼리 싸우지 말죠. 그래, 얘기해봐라. 얘기할게 있나요.
제 잘못인걸.   그냥.. 지난 밤 일인데.   아버지도 잘 아시겠지만 제가 과거를 못 잊죠.   의심을 떨쳐버릴수가 없어요. 괴로운 일이죠.
어머니에게도 힘든 일일테고. 우리가 어머니 감시하는거
어머니도 아시잖아요.   나도 안다, 근데 그게 뭐?   얘기해 보라니까?   새벽 3시쯤인가요.
잠이 깼는데, 어머니가 빈 방에서
배회하고 있더라구요.   그러더니 욕실로 가시는데,
그때 전 자는 척을 했죠. 어머니가 제 방 밖에 서서
제가 자는가를 보려고 계시더군요. 그게 뭐? 고동소리 때문에 잠을 설쳤다더라.
그리고 에드먼드가 병이 난 이후로는 매일 밤마다
그 애 방에 왔다갔다 하잖느냐. 맞아요. 그 애 방밖에서
귀를 기울이고 계셨죠.   하지만 제가 무서웠던건
혼자 빈방에 계셨던것 때문에요.   아버지. 생각을 안할래야
안할수가 있겠습니까? 어머니가 혼자 주무신다면,
그건 일종의 징조가.. 이번엔 아냐. 정말이다. 내 코고는 소리를
피하려면 어디로 가야겠냐? 너는 어쩌면 매사 모든 것에 대해 가장 최악의 이유만 찾아대는거냐? 말씀이 심하시네요.
제가 잘못했다 하잖아요. 저도 아버지만큼이나
기쁘다고 안해요? 그래, 물론 그렇겠지.   네 어머니가 에드먼드를 걱정하는건
피할수 없는 저주일지도 모르겠다.   그 애를 낳고 나서
오래 아프더니만 처음으로.. 그것과는 아무 관계도 없어요. 네 어미를 나무라는게 아니야. 그럼, 누굴 나무라는겁니까?
에드먼드요? - 말도 안되는. 누굴 나무라다니?
- 당연히 그 돌팔이 의사놈이죠. 어머니 하시는 말이 그 인간도
하디만큼이나 돌팔이라더군요. 왜 일류 의사를 부르지 않으시고는? 헛소리!   그럼 내 책임이냐?
그렇게 몰고 가려는구나. 아주 못돼 쳐먹었어.   - 뭘로 그렇게 입씨름들을 해요.
- 매일 하던 얘기죠. 의사가 어떻고 하는 말을 들었는데. 네 아버지가 널 못됐다고 하시고. 그거요? 그거는 하디 선생이 일류는 못된다고 한거죠.   그래, 그래.
내 생각도 그래.   브리짓도 참!
세인트루이스 경찰에 있는 자기 사촌 얘기를 시작만 하면
그 애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어. 아, 울타리 다듬으러 간다면서
안 나가고 뭐해요? 내 말은.. 안개가 끼기전에 해 있을때 하란 말이예요.   안개가 또 낄거야.   손에 있는 류머티즘이
기가 막히게 맞추거든요. 당신보다 훨씬 잘맞추죠.   어휴, 흉측해라. 누가 이 손이
이쁠때도 있었냐고 생각하겠어. 여보, 바보같은 생각은 하지 말아. 세상에서 가장 예쁜 손이야.   가자. 제이미. 일을 시작하는 길은
시작하는데 있다. 뜨거운 볕을 받고, 땀을 내면
네 술배도 쭉 빠질게다. 우린 어머니가 자랑스러워요.
정말로요. 하지만 더 조심하세요. 제 말은 에드먼드 걱정은
너무 하시지 말란거죠. 괜찮아질텐데요.   당연하지, 괜찮아질게야.   근데 조심하라는 말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구나.   됐어요, 어머니.
제 실수입니다.   여기 있니?
막 2층에 올라가려 했는데.   말싸움에 끼고 싶지 않았어요.
기분이 좋질 않네요.   네 말만큼 그렇게 심하지도 않을텐데. 넌 여전히 어린 아기구나. 식구들을 걱정시켜서,
우릴 떠들썩하게 만들 생각이지? 널 놀리려 그러는거야.
네가 얼마나 불편할지 안다. 하지만 오늘은 좀 괜찮지? 갈수록 몸이 말라가는구나.
이리 와서 앉으렴. 네가 필요한건 엄마의 간호야. 이리 컸어도, 엄마한테는
여전히 애기니까. 걱정마세요.
어머니 몸부터 돌보셔야죠. 그게 우선예요.
- 그러고 있잖니.   이런! 요즘 살찐것 좀 봐라. 옷을 전부 고쳐야 할까봐.   울타리를 자르기 시작했구나. 네 형도 불쌍하지.
사람들 앞에서 일하는거 끔찍하게 싫어하는데.   그렇다고 내가 저 사람들과
뭘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난 여기도 싫고,
여기 사람들도 싫어. 하지만 아버지가 좋다하셔서 여기 집을 짓자고 떼를 쓰셨잖니. 여름만 되면
여기로 올 수밖에. 시작부터 글러먹었어. 그저 싸게싸게 하려고 하셨으니까. 아버지께서도 집 수리에
돈을 안쓰시려고 하잖아. 차라리 친구가 없는게 나아. 집에 데려오면
창피해서 어떻게 할까.   아버지도 사람 사귀는걸 싫어하시니까 그저 클럽이나 바에서
술 홀짝대는 게 일이지.   너나 네 형도 똑같아.
하지만 나무라는게 아냐.   얘기해봐야 뭐하겠어.   가끔은 쓸쓸해지는구나.   공평하게 생각하세요.   처음부터 아버지가
잘못했을 수도 있지만 나중에는 초대하고 싶어도
못한 것일수도 있으니까요. 지난 일을 떠올리지 말아다오. 그런게 아니라,
그저 돕고 싶을 뿐예요. 잊어버리는게 좋지 않아요. 그래야 마음을 다 잡을수가 있는거니까. 갑자기 왜 이러는지
이해가 안되는구나. 아침부터 무슨 바람이 들어서? 아무것도 아니라니까요. 그냥 기분이 울적하고 답답해서.
- 제대로 말해. 왜 갑자기 의심을 하는거지? 아녜요. 아니긴 뭐가 아냐.   특히나 아버지나 네 형이 그렇지. 괜한 상상하지 마세요. 이렇게 의심이 많은 집안에서
대체 어떻게 살란 말이야? 날 그저 감시하려만 하고,
믿거나 신용하려 하지도 않고. - 무슨 소리예요. 우린 어머니를 믿는데.
- 어디라도 좋으니 내가 하루나 반나절이라도
갈 수 있는 곳이 있으면 좋겠다. 시덥잖은 얘기나 하면서
시시덕대고 웃으면서 다 잊었으면 좋겠어.
미련한 캐슬린만 아니면 돼. 그만 해요, 어머니.
아무 것도 아닌 걸 가지고 자꾸. 아버지도 바나 클럽에서
친구들 만나고, 너나 네 형도 나가서 사람들 만나지.
하지만 난 아냐. 언제나 혼자라구. 거짓말 마세요. 누군가는 남아서
어머니 말동무 해드리고 있잖아요? 날 혼자 두는게
걱정되서 그러는거겠지!   한번 말해봐라. 아침부터
왜 그리 유난들을 떠는지 무슨 의도로
옛일을 떠올리게 하는거야?   쓸모없는 일이잖아요.
그저.. 어머니가 지난 밤에 제방에
오셨을때, 전 깨어있었으니까. 아버지 방으로 안가시고 빈 방에서 밤을 지새우셨으니. 그거야 네 아버지가 코를 골아대니
잠을 못자서 그런것 아니겠니! 내가 그 방에서 잔게
어디 한 두번이야?   그래..   네가 뭔 생각을 했는지 알겠다.
- 뭘요?   분명히.. 넌.. 자는 척 한거야. 내가 뭘 하나 보려고 말이야. 아녜요, 그냥 제가 열이 있어서 잠 못자는 줄 아시면
걱정하실까 그랬어요. 네 형도 자는 척했을걸. 네 아버지도 그랬을게야.
- 그만해요. 에드먼드, 난 정말 참을수가 없다! 그게 사실이라면
화를 내도 마땅해. 어머니, 그만 하시라니까요.
그런 말씀하시면.. 의심은 그만두거라!   부탁이다. 가슴이 아파. 네 생각하느라
잠을 못 자는거야.   그게 이유다. 네가 병이 나고
얼마나 걱정하는데. 감기 좀 심한거 가지고
뭘 그러세요. 그래.. 알지. 하지만 어머니, 약속하세요. 제가 병이 악화되더라도 곧 나을수 있으니까요. 그만! 괜히 걱정해서 병 더 키우지 마시고,
몸 잘 돌보시겠다구요. 그런 소리 듣고 싶지 않아! 무서운 일이 일어나는 마냥 말하지만,
근거따윈 하나 없는 소리야. 물론 네게 약속하마.
주님의 이름을 걸고 말야.   하지만 너도 기억하겠지. 내가 전에도 이랬다는걸.
어찌 그분을 입에 올리겠어.   - 아뇨.   널 나무라는게 아냐.   너라고 별 수가 있겠니.   우리가 그걸 어찌 잊겠어.   그래서 더 힘든거지.   우리한테는 말야.
잊을수가 없지.   그만 하세요!   그래. 우울하게 하려던 건 아닌데.
신경쓰지 말거라. 어디 머리 좀 볼까.   세상에, 열이 없다니.
확실히 열이 없구나. 됐고요, 어머니부터..   난 괜찮아. 그냥 잠을 좀 못자서 피곤하고, 신경이 날카롭긴 하지.   2층에 올라가서   점심때까지 잠을 좀
청해야 겠구나.   넌 뭘 할거니? 독서?   볕이 좋으니 나가서 맑은 공기를
쐬는게 나지 않겠니. 너무 볕을 오래 쐬지 말고.
모자 챙기는거 잊지 마라.   아니면 이 어미를
홀로 두는게 두려운거냐?   그런 말씀은 하지 마시구요.
한숨 주무시는게 낫겠어요.   전 나가서 형을 거들게요. 그늘 밑에 누워서,
형 일하는거나 구경하죠.   곧 점심시간이 될텐데,
제가 나리를 부를까요? 아니면 직접 하실래요?
- 직접 말씀드려. 어머니도 오시라고 말씀드려. 왜요? 마님이야 안 부르셔도
때맞춰 오시는걸요. 늘 도와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낮잠 주무실텐데. 제가 2층에서 일보고 내려올때
안 주무시고 계시던데.. 빈방에 눈을 크게 뜨고
누워계시던걸요. 머리가 매우 아프시다나.   그럼.. 아버지만 오시라고 해. 밤마다 다리가
왜 이리 말썽인지.. 나리! 도련님!
점심시간예요!   한잔 했냐?
누굴 속이려 들어. 나보다 훨씬
형편없는 배우로구만.   기회가 와서 한잔헀지. 형도 마침 한잔 하는건 어때? 그래, 나도 그 생각하던 참이다. 아버진 터너 선장이랑
이야기하고 계실걸.   그래, 아직 계시는군.   아버지가 속을 것 같아? 글쎄다. 하지만 어떻게 알겠어?   아버지가 이야기 한다고 점심 먹는거 안까먹었으면
좋겠는데. 배 고프다.   집 앞에서 일하는건 질색이야. 그저 지나가는 사람마다
연기 보인다고 바쁘니. 형은 배고프니 다행이네. 난 뭐 먹고 싶은 생각도 없어. 야. 내가 언제 네게
잔소리 한적이 있냐만 하디가 위스키는
마시지 말라는 말은 맞다니까. 오후에 하디 선생에게
얘기를 듣고 나선 그만 두지. 그 전에야 무슨 차이가 있으려고. 형은 어떻게 생각해?   내가 의사도 아니고,
어떻게 알겠어?   어머니는 어디 계시냐.   2층에 계셔.   언제 가셨냐?   형이 울타리에서 일할 즈음에. 한 숨 주무시러 가신대.   - 왜 나한테 얘기 안했냐?
- 내가 왜? 말할게 뭐있어. 피곤하시다잖아.
지난 밤에 잠을 설치셔서 나도 그건 알지.   고동소리 때매 나도
잠을 못잤어.   아침부터 죽 2층에 계시더냐? 그 뒤론 못 봤어?   어. 책 읽고 있었거든.
주무시게 해드리고 싶었으니까.   점심 잡수러 오시겠지?
- 당연하지. 당연하다니 무슨! 안 드실지도 모르고, 혼자 2층에서 드시게 될수도 있어. - 그만 두지..
- 전에도 그랬었잖아! 매사 의심하는거 잘못이야.   캐슬린이 아까 봤대. 어머니가 점심 안먹는다고는
안하셨다고. 그럼 지금 깨어있으시겠군. 그땐 그랬겠지. 여튼
캐슬린이 누워계시다니까. - 빈 방에서?
- 그래, 그게 뭐 어때서? 멍청아. 어머니를 혼자 두면 어떻게 해?
왜 옆에 있지 않고 말야! 우리 가족이 어머니를 매시간마다
감시한다고 뭐라 하시잖아요. 아까는 부끄러워서 혼났어요.
어머니도 기분나쁘실테지.   그리고 주님의 이름을 걸고
약속하셨으니까. 넌 그게 아무 의미도 없단걸.. 이번엔 아냐. 언제는 안 그러셨겠냐.   네가 날 시니컬한 한량으로
보는거 다 안다만, 너보다는 내가 이 일을
잘 안다는걸 명심해둬. 넌 예비 고등학교때까지 제대로 알지도 못했잖아.
아버지와 내가 감춰왔으니. 난 네게 얘기하기 10년,
그 이상부터 알고 있었다. 그전 일을 다 알고 있기때문에
우리가 자고 있던 지난 밤에 어머니가 대체 뭘 하셨나 하고,
아침 내내 생각했었다. 다른건 생각할 겨를도 없었어.
그런데 넌 어머니를 아침 내내 2층에 혼자 두었단 말이냐?   됐다. 싸우지 말자. 네가 미쳤다고 생각해 둬.   이번만은 진짜겠지 하고 믿어왔기 때문에 행복했단걸 알거야.   어머니가 내려오시는군,
네가 이겼다. 나도 어지간히
의심병이 도졌군. 한 잔 더하고 싶은걸.   그렇게 기침을 하면
목에 안 좋을텐데 말야. 감기에다가 목까지 상하면
어쩌려고 그러니.   내가 항상 '이거 하지마라', '저거 하지마라' 하는 것 같지?
다 널 위해서 그러는거야. 당연히 알죠.
좀 쉬셨어요? 아주 좋아졌다.
네가 나간 이후로 누워있었어. 잠을 설쳤으니 그렇게라도 했어야지.
이젠 신경질도 안나고. - 다행이네요.
- 아이구. 입이 삐쭉나와서는.. 제이미, 무슨 일 있니?   아뇨.   앞에 울타리에서
일한걸 깜빡했네. 그래서 네가 그렇게 울상이구나.그렇지?   마음대로 생각하세요.   쟤는 일만 하면 저런더니까.   덩치만 큰 애기같아.
그렇지, 에드먼드?   남 생각을 일일이 신경쓰니까요.   너무 마음쓰지 않는게 좋을거야. 아버지는 어디 계시냐?   캐슬린이 부르는 걸 들었다만. 저기 멀리 가 있을테니,
그 낭랑한 소리도 그쳤겠네요. 존경심을 가졌으면 좋으련만.   존경심을 가져야 할 건 너야. 아버지 덕분에 편하게 컸으면서.   아버지도 늙으셨다.   전보다 더 잘 보살펴 드리렴.   배고프네요. 노인 양반 좀
빨리 왔으면 좋으련만. 매번 식사때마다
기다리시게 해놓고는 음식 맛이 없네 마네
하시니 정말 뭐하자는건지. 내가 얼마나 신경쓰는지
너희가 알기나 하니. 너희야 여름마다 하인만
부리면 되니 상관없다지만. 하인들도 자기가 임시직인걸 아니
늑장부리기 일쑤지. 네 아버지도 여름에 비싼 삯을
치루려 하시지도 않으니까. 그래서 매 여름마다
게을러터진 하인들만 쓸밖에. 내가 몇 번을 얘기했는지 모르겠다. 뭘 그리 횡설수설하시고 그러세요.   그러게 말야.
별것도 아닌걸 갖구. 바보같이.   점심 다 준비됐어요, 마님.
아까 나리께 갔었는데 곧 오신다고 하시네요. 알았어, 브리짓에겐
나리께서 들어올때까진 기다려 두라고 전해줘. 예, 마님. 우리끼리 먼저 먹으면 되잖아요?
그러라 하시는구만. 그런 뜻으로 하셨겠니?   아버지를 아직도 몰라?
또 삐치실걸. 빨리 오시라 해야겠네요.   뭘 그렇게 쳐다보냐?   - 아시면서.
- 모르겠는걸. 어머니, 절 속일 요량입니까?
전 장님이 아닙니다.   무슨 소릴 하는지 모르겠구나. 몰라요?   어머니 눈이 어떤가 좀 보세요.   겨우 모셔왔네.
곧 오실거예요.   왜 그래요?   - 네 형이..
- 뭐예요, 어머니. 네 형은 정말 못됐다. 내가 뭘 속인다고
자꾸 그러는구나. - 빌어먹을!
- 그만두렴! 형은 거짓말을 하고 있어요.   - 거짓말이죠, 그렇죠?
- 뭐가 거짓이란 말이냐?   에드먼드, 그러지 마라.   아버지가 오신다니,
브리짓에게 말해둬야겠어.   그래서..   그래서, 뭐?   형은 거짓말쟁이야.   늦어서 미안하다, 터너 선장이
얘기를 멈출 기색이 없더구나. 떼놓느라 혼났다.
- 아버지 말 상대일때 말이죠? 걱정마세요.
하나도 안 마셨으니. 그걸 본게 아냐.   마치 마신 것마냥 이야기하는구나? 날 속이려 들다니. 한 잔 하시라는 말이잖아요. 제이미야 일 했으니
마셔도 좋지만, 넌 아냐.
하디 선생이 그러는데.. 한 잔 먹는다고 뭐 죽나요.   피곤해서 말예요. 그럼 식전이니까
한잔 하거라. 좋은 위스키는 식욕도 돋구고 식전에도 좋지.
적당히 먹으라 했다. 너야 말해도
안들어 먹을테니.   그럼, 건강과 행복을 위하여!   농담하시긴.   뭐?   됐어요, 들죠. 무슨 일 있냐? 다들 표정들이 왜 그래? 이렇게 술도 마시게 됐는데 왜 다들 죽을상이야? 아버지나 적당히 하세요. 그만 해, 형.   점심 준비가 끝났을텐데,
배고파서 못 참겠구나. 어머니는 어디 계시냐? 여기요. 브리짓 좀 달래느라.   또 늦는다고 짜증을 부리는데,
어떻게 나무라겠어요. 기다리다가 점심이 식어도
자기는 책임 없다는거예요. 먹든 말든 맘대로 하라나. 정말 이 놈의 집구석 지긋지긋해.
당신은 도울 생각도 안하고. 당신은 이러는게
걱정도 안돼? 가장 역할을 할 줄도 모르고,
하기사 원하지도 않았겠지만. 결혼한 이후에도 가정이란걸
생각도 안했잖아요. 그냥 총각으로 남아서
2등급 호텔에 살면서 바에서 친구들이랑
노닥거리는게 좋았을걸. 그러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났을 것을.
- 어머니.   그만하세요.   점심이나 먹으러 가죠.   그러게, 지난 얘기를
왜 꺼내니 내가 주책이야. 네 아버지나 형이
참 배고플텐데 말이지. 너도 식욕이 났으면 좋겠는데. 많이 먹어둬야..   저 술잔 뭐니?
너도 마신게냐? 이런 멍청한 짓을 하다니. 당신이 마시게 한거지? 애를 죽이고 싶어요? 친정 아버지 기억도 안나요? 병치레 하시면서도
술을 못 끊으셨잖아. 의사가 바보라 했지. 어쩜
당신이나 아버지나 그리 똑같아?   물론, 비교하려는게 아니였어요. 괜한 짓을 했네. 내가 왜 그랬을까. 너무 나무라서 미안해요.   한 잔쯤이야 괜찮겠지. 식욕 돋구는데 좋겠지요. 밥이나 먹지요. - 가자. 에드먼드.
- 그래요. 어머니 모시고 들어가라.
난 이따가 들어가마.   왜 그렇게 쳐다봐요?   그만 노려보세요.
날 무슨 죄진사람처럼 쳐다보네.   여보.   당신은 날 이해못해. 당신을 믿은 내가 바보지. 날 믿는다는게 무슨 말이죠? 밤낮으로 날 의심하고
감시하면서 말야. 왜 또 마셔요? 식전에 이렇게 마신적이 없잖아. 당신 오늘 밤에 취할 생각인거지? 한 두번도 아니고 말야. 천 번은 됐을걸.   여보, 제발..   당신은 몰라요.
내가 에드먼드를 얼마나 걱정하는지.
무서워 죽겠어요. 당신 변명 듣기 싫소. 변명이라니? 당신, 날 못 믿는군요. 내가 그랬을거라 생각은 마요.   점심이나 먹으러 가요. 난 생각없다지만,
당신은 배고플텐데.   여보.   내가 얼마나 노력하는데.   애쓰고 있어요!   - 제발 믿어줘요.
- 알겠소. 제발 힘내서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해주시오.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걸. 무슨 힘을 내라는건지..   관둡시다.   다 부질없구려.   브리짓이나 캐슬린에게
여기를 집인 것처럼 잘하라는게 미련한 짓이지.
쟤들이 그걸 모르겠어. 지금껏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거야. 그래, 다 소용없게 됐지.
한때는 가정이란게 있기도 했건만. 전에 뭐요?   당신이 뭐라하든
다 사실이 아냐.   한번도 가정이런게 없었죠.
당신은 클럽이나 바를 좋아했지.   더러운 호텔방에서
하룻밤을 보내는건 그래서 언제나 쓸쓸한 일이였죠.   네가 걱정이 된다. 에드먼드. 음식에 손을 대질 않으니.   나야 식욕이 없어도 상관없어. 살이 너무 쪘으니까 말야.   넌 먹어야 해.   날 위해서라도 먹겠다고 약속해다오. - 예, 어머니.
- 착하기도 하지.   내가 받지.
맥과이어가 전화한댔소.   여보세요.   의사 선생, 안녕하시오.   오후에 만나게 되면 본인에게 설명 좀 잘해주시지요.   4시 전까지는 보내겠습니다.   그래요.   예.   수고하시오.   좋은 소식 같지는 않네요. 하디 선생이야. 4시에 꼭 보고싶다 하더라. 뭐라 해요? 별로 걱정 안되요. 난 그자가 성경을 궤짝째
쌓아놓고 맹세를 해도 안믿어요. 그 사람 말 귀담아 듣지 말거라. 여보! 당신은 값이 싸서
그 의사를 좋아하는거잖아요. 변명하려 들지마요. 나도
하디라면 잘 아니까. 몇해를 겪었는데 잘 알지. 그 자는 머저리야.
법이라도 만들어서 그런 자는 의사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해야해. 아는 것도 없고,
고통때문에 반 미쳐도 그저 손이나 잡으면서,
의지력으로 이겨내라는 둥 일부러 당신을 욕보이는거예요.
당신이 일부러 굽신대고 애원하도록. 마치 죄수 취급을 한다니까요. 그 자는 아무것도 몰라. 돌팔이 의사들이 하는 것마냥
우선 약을 주면서 그 약이 뭔지 알았을땐
이미 늦어버린거죠. 난 의사가 싫어! 어머니, 제발 좀!
그만 해둬요. 그래, 여보. 지금 그 얘기를.. 당신 말이.. 맞아요.   화를 내봐야 뭣하겠어.   2층에 잠시만 올라갔다 올게요. 실례해요.   머리 좀 다듬어야겠어.   안경도 찾고. - 금방 내려올게요.
- 여보!   왜 그러죠?   - 됐소.
- 정 그러면 따라 올라오든지. 무슨 짓을 하는지
감시하면 되잖아요.   그게 무슨 소용이요.
당신이 미뤄버리면 되는걸. 난 간수도 아니고,
여긴 감옥도 아냐. 그래요. 당신은 여길
가정이라 생각할테니까.   미안해요.   상처 줄 생각은 없었어.   당신 잘못이 아냐.   - 또 팔에 주사라니.
- 그 따위 말 좀 하지마! 그래, 브로드웨이 건달들이나
쓰는 그딴 말은 하지도 말거라! 너는 동정심도 품위도 없냐?
문 밖으로 걷어차도 시원찮을 새끼. 그렇게 되봐야, 너때문에 울고
빌게 될 사람이 누군지 알겠지. 널 위해 애원하고,
변명을 해줄 사람 말이다. 제가 왜 그걸 모르겠어요? 동정심이 없다니요? 나만큼 어머니를 동정하는
사람이 어디있다고. 어머니가 고통과 싸우고 있단걸 알죠.
그건 제가 아버지보다 잘 압니다. 치료약이란건 잠깐 빼면
효과도 없죠. 진실은 치료법따위는 없어요.
희망을 걸어봐야 소용없는걸. - 예전처럼 돌아오지 못할거야.
- '예전처럼 돌아오지 못한다!'   매사 모든걸 그딴식으로 바라보니 우리가 지기만 하는거야. - 난 형같은 생각은 해본적도..
- 네가 안그랬다고? 네가 쓴 시는 유쾌하지도 않고,
네가 읽는 것들은 칭송할 깜도 안되지. 둘 다 닥쳐! 네가 브로드웨이
건달들에게 배운 철학이나 에드먼드가 책에서 배운
철학이나 별 차이도 없어. 둘다 속까지 썩었다. 너희는
너희가 태어났을때부터 있어온 카톨릭의
유일한 신앙을 모욕하고 있다. 그리고 너희 부정이 가져온건
자기 파괴에 지나지 않아. 참 엉터리네요. 아버지. 저희가 아는척이나 한답니까.
아버지가 언제 교회에 가서 무릎을 꿇고 경건히
기도한단 소리는 못들어봤는데. 물론 규율면에서
난 나쁜 신도다. 주여, 용서하소서.
하지만 신앙은 있어!   그리고 네 말은 틀렸다.
교회에는 안나갈진 몰라도 매일 밤낮으로 무릎꿇고
기도하고 있어. 어머니를 위해서요?   그래. 요 몇 년간 말이다.   그러나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느냐.   이번에도 네 어미가 희망을
짓누르지 않았으면 한다만 다시는 희망을 걸지 않으련다.   그건 말도 안되는 소리예요.   어머니는 지금
막 시작하신거니까. 당장이라도 멈출 수 있어요. 지금 말해봐야 소용없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실걸. 그래, 매일 우리와
멀어지게 될게다. 그리고 매일 밤이 되면.. 그만해요. 아버지.   옷이나 갈아입어야지.   큰 소리를 내면,
어머니도 날 의심하진 않을겁니다.   하디 선생이 뭐래요? 네 생각이 맞았어.
폐결핵이야.   젠장.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군. 그럼 요양원으로 보내야겠네요. 빠를수록 좋다는구나.
본인이나 주변에게도 말야. 그 양반 하는 말이
자기 말만 잘 지키면 6개월이나 1년이면
나을수 있을거래.   내 자식이 그럴 줄
누가 생각이나 했겠느냐. 우리 집안에서
내려온게 아냐. 우리 집안은 대대로
폐 하나는 억세고 튼튼했어. 그 얘기를 지금 해서 뭐해요?   의사는 어디로 보낸다고 해요? 그 일로 한번 보려고 한다. 이번에는 싸구려 시설말고
좋은 시설로 고르세요. 하디 선생이 좋다는
곳으로 보낼거다. 또 하디 선생에게 구빈원 운운하면서, 부동산이며 세금 따위는
얘기하지 마세요. 내가 백만장자도 아니고,
그런 얘길 못할게 무에 있어? 값싼 데를 골라달라고
생각할거 아닙니까. 그리고 의사도 그게 거짓이란걸 알죠. 아첨꾼들에게서 싸구려 땅이나
사들인걸 알면 말이죠. 이 애비 일에 신경 꺼라! 이건 에드먼드 일이니까요! 제가 걱정하는건,
폐병은 치명적이며, 죽을병이라는 아버지의 그 아일랜드식 생각때문에
돈 쓰는게 무의미하다고 여길까봐죠. - 말도 안되는 소리!
- 그럼 한번 증명해보시죠. 그래서 이 말을 하는 겁니다. 네 동생은 나을수 있어.
그리고 아일랜드 욕은 집어치워라. 얼굴에 아일랜드 인 표시를
해놓고도 그리 비꼬다니. 지우면 그만이죠.   제 얘기는 다했으니,
아버지께 달렸어요.   오후에 뭘 할까요. 아버지도 시내에 나가실텐데. 제가 할 일은 다 했고,
아버지 일은 조금 남았는데 제가 그걸 하길 바라시진 않을테고. 그래, 네가 망쳐놓을테니.
너 하는일이 다 그렇지.   저도 그럼 에드먼드랑
시내에 나가야겠네요. 어머니 일에다가 이것까지 겹치면,
충격이 꽤 클테니. 그래, 같이 가주렴.
용기를 북돋으란 말이다. 그렇다고 술이나 진창
퍼마시라는건 아냐. 돈을 둬서 뭐해요?
술은 파는거지 어디 나눠주는 거랍디까? 갈아입고 올게요.   내 안경 어디서 못봤니? 제이미?   당신은 못 봤어요? 모르겠소.   쟤는 또 왜 저래요?
붙잡고 한 소리 하신 모양이네.   저 애를 너무 경멸하지 말아요. 쟤가 무슨 책임이 있어.
좋은 가정에서 자랐으면 저렇게 될일도 없었을텐데..   당신 일기예보도 시원찮아. 자꾸 안개가 끼잖아. 해안가도 안보이네. 그래, 내가 지레짐작했네.
오늘 밤에도 안개가 짙겠어. 오늘 저녁엔
괜찮을것 같아요. 나도 그럴거라 생각하오.   제이미가 안 보이네. 울타리로 간것도 아니고,
어딜 갔어요? 에드먼드랑 의사를 만나러 간대.
2층으로 옷 갈아입으러 갔어. 나도 준비해야지.
안 그러면 늦겠어. 잠시만 있어줘요. 누가 내려올때까지만. 모두들 날 피하려고만 한다니까. 당신이 우릴 피하려 하는거요.   실없는 말씀을 다 하시네.   내가 어떻게 가요? 내가 갈데가 어디있다고.
누굴 만나러 가나요? - 친구도 없는데.
- 당신이 잘못해서 그래. 당신 오후에 할 일이 하나 있소. 당신에게도 좋은 일이야. 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해봐. 집 밖에서 볕도 쐬고,
신선한 공기도 마시고. 그러라고 사준거 아니야.
알다시피 난 저런거 관심없어. 나야 매일 걷거나,
전차를 타면 그만인걸. 당신이 요양원에서 돌아왔을때
쓰려고 준비해놓은거야. 당신이 기뻐하고,
마음도 풀릴 줄 알았지. 전에만 해도 매일 탔잖아?
요새는 타는 꼴을 못 봤어. 나한테도 꽤 벅찬돈이오. 운전사도 당신이 쓰건 말건 매일 먹여야되고,
거기에 비싼 삯도 지불해야지. 낭비야. 이렇게 낭비하면 다 늙어서
구빈원에 가야 할걸. 이게 다 무슨 소용이오? 차라리 창 밖으로 돈을
뿌리는게 나을게요.   그래요, 돈 낭비예요.   그 중고차를 사는게 아니었는데.   당신 또 속았잖아요.
당신이야 뭐든 간에 중고를 사야한다고
고집을 피우시니. 그 차는 명품이야.
당신도 제이미처럼 뭐든 의심만 하는구려. 화내실거 없어요. 여보. 당신이 차를 사줬을때
언제 내가 화를 냈었나. 그게 당신이 매사 하는 방식이니까. 당신이 자동차 사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죠. 당신 나름대로 나를 사랑한다는 걸 증명하는 셈이니.   특히나,
그런 일을 해도 내게 도움이 안된단걸 알면서 말이죠.
- 여보, 제발! 사랑하는 아이들과 나를 봐서, 그리고 당신을 봐서라도
그만 둘수 없겠소?   그만두다뇨. 무슨 소릴 하는건지.   여보. 우린 서로 사랑했고, 앞으로도 그럴거야.
그것만은 잊지 말아줘요. 그러니 이해할수 없는걸 이해하려고,
도울 수 없는걸 도우려 애쓰지 말아요. 운명이 우리에게 시킨 일들은
우린 변명도, 설명할수도 없어요. 어째 노력도 하질 않는거요?   노력이라.. 드라이브하려는거요?
오후라.. 그래요. 소원이라면 하죠. 물론 집에 있는 것이
그보다는 덜 쓸쓸하지만.   같이 가줄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운전수에게 어디 가자 할 곳도 없고.   어디 친구 집이라도 들러서 즐겁게 수다라도 떨면 좋겠지만,
그런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지금껏 없었으니까요.   수녀원에 있을땐
친구들도 많았는데.   배우와 결혼하고 나니
자연스럽게..   당신도 그때 배우들이
어떤 취급을 받았나 알잖아요. 결혼 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당신 정부라던 사람이 당신을 고소한다는 스캔들도 있었구요. 그때 친구들은 날 동정하거나,
매몰차게 날 외면했는데.   동정보다는 차라리
외면해주는 편이 더 낫더군요. 여보, 지난 이야기는 꺼내서 무얼 하오. 대낮부터 이런 케묵은
이야기를 꺼내려 하니 어두워지면 어떨지
상상도 안되는구려.   생각났다. 시내에
나가봐야 겠어요.   약국에서 살게 있어서. 그래, 또 당신이 약국에서 그 약들을 사도록
내버려둬야겠어.   아예 여유있게 많이 좀 사두지 그래.
당신 그 때 밤에 있던 일 생각나? 약 달라고 고래고래 소릴 지르며,
잠옷 차림으로 집 밖을 뛰쳐나갔지. 반 미쳐서, 항구에서
뛰어내리겠다고 난리였지.   가서 살 게..   치약이랑..   비누랑.   수분크림..   지난 일을 꺼내지 말아요.
날 창피하게 만들지 말아요. 미안하오. 용서해줘.   상관없어요.
그런 일은 없었으니까. 당신 꿈을 꾼거야.   나도 퍽 건강했어요. 에드먼드를 낳기 전에는.   기억나요, 여보?   내가 어디 신경질을 내던가요. 매 시즌마다
애를 가진채로 당신과 호텔 방 이곳저곳을
돌아다녀도 건강했죠.   하지만 에드먼드를
갖게 된 후로 나빠졌어요. 그 후론 아주 골골댔으니.   그 싸구려 호텔의
돌팔이 의사놈은 내가 괴로워한단 것 밖엔 몰랐고,
그 고통을 멎게 해주는건 일도 아니었죠. 여보, 지난 일은
제발 잊어버리시오.   어떻게요?
과거는 곧 현재인것을. 미래이기도 하죠.   다 내 책임이걸요.
유진이 죽고 나서는 다시는 아이를
갖지 않으리라 맹세했는데.   그 애 죽은건
다 내 책임이예요.   순회공연중인 당신이
외롭다고 하도 보챘을때, 유진을 어머니께 맡겨두고,
당신에게 가지 않았더라면.. 제이미는 홍역을 앓고 있었기 때문에 애기 방에 들어가지 못하게 했었죠. 난 제이미가 일부러 했다고 생각해요. 어린 동생을 시기한거지.
그러니까 싫어한거야.   제이미는 그때 7살이었지만,
바보는 아니었잖아요. 아기 방에 들어가면
위험하다고 경고도 했는데.   걔는 알고 있었죠. 그래서
더욱 용서할수가 없어. 이번엔 유진 이야기를 꺼낼 요량이군.
그 아이는 편히 쉬게 두시오. 유진을 대신할 다른 아이를 갖자는 당신 이야기를 듣지 말았어야 했어. 에드먼드를 가졌을땐 조마조마했죠.
혹여나 무슨 끔찍한 일이 벌어질까. 유진을 그렇게 내버려둔 내가
무슨 낯으로 아이를 낳겠어요? 내가 천벌을 받을 거란걸 알았죠. 에드먼드를 낳는게 아니었어. 여보, 말조심 하구려. 에드먼드가
그 얘길 들으면 어쩌려고? 그 아이를 위해서라도
조금만 더 노력해봐.   왔냐? 제법 생긴 티가 나는구나. 나도 갈아입으러 가야겠다. 잠시만요, 아버지.
듣기 싫으시겠지만, 전차 요금이 한푼도 없어서요. 빈털털이라서. 돈의 가치를 모르면,
언제나 빈털털이가 될 수밖에.. 뭐, 배우고 있으니까 말이지. 아프기 전에는
너도 열심히 일했으니까.   잘하고 있다.
네가 자랑스러워.   '고맙다.'   (셰익스피어 '리어 왕' 1막 4장 中)
은혜를 모르는 자식을 두는 것은 독사에게 물리는 것보다 더 하다. 저도 알죠.
무슨 말을 못하겠네.   1달러가 아니라 10달러잖아요.   갑자기 왜 그러세요?
하디가 제가 죽는다고 하던가요?   실언했네요.
그냥 농담이었어요. - 정말 감사합니다.
- 그래. 난 용서못해.
무슨 말을 그리 하느냐?   금방 죽을거라니.
너는 살고싶지 않은 모양이구나? 한창 젊은 아이면서
무슨 말이 그래. 그놈의 책이 문제야.
넌 정말 아픈게 아니란다. - 여보, 입조심하시오.
- 하지만 공연히 아무것도 아닌걸로
떠들어대니 우습잖아요? 걱정 말거라, 난 네편이야. 넌 그저 사람들이 너만
위해줬으면 싶은거지? 아직 애기라니까. 그래도 너무 나가진 마라.   그런 말은 하는게 아냐. 매사 진지하게 받아들이는게
어리석은 일인건 알지만 어디 안 그럴수가 있니.
넌 사람을 너무 놀래켜.   지금 어머니께 말씀드려봐라. 네가 아까 말하겠단거 말이야.   어이쿠, 시간 좀 보게.
서둘러야겠는걸.   좀 괜찮니?   열이 조금밖에 없지만.. 밖에선 볕을 피해다녀야해. 아침보다는 훨씬
상태가 좋아보인다. 이리로 와서 앉으렴. - 잠깐요, 어머니..
- 알았어. 알았으니까 일단 앉아. 편히 쉬렴.   이렇게 더운 날에 지저분한 전차타고 시내에 들어가는데 얼마나 피곤하겠어. 그냥 어미와 같이 있자꾸나. 어머니, 잠시만.. 하디에겐 전화하면 되잖아.
몸이 불편하다고 말해. 그 늙어빠진 머저리..
약에 대해 아는 거라곤 그저 의지 운운하는
설교 하나뿐이지. 어머니 부탁 하나 해도 되죠.   이제 끊으실수 있어요. 이제 막 시작하신거니까,
의지력도 있으시구요. 우리가 도와드릴게요.
저도 뭐든 할거구요. 할수 있죠, 어머니?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하지 마라. 예, 그럼 됐어요.
소용없다는건 알았지. 무슨 소릴 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알고 있는건 내가 요양원에서 돌아오자마자
네가 병이 났다는 사실이야. 그 사람들이 집에 가면
마음 편히 지내야 된다고 하는데 너 때문에 하루하루
걱정속에 지내고 있지 않니.   그래도.. 그게 변명은 못되지. 그냥 설명하려 한거다.
변명은 아냐.   내가 네 병을 핑계로
삼은게 아니야. 믿어다오.   그럼 전들 어쩌라는거예요.   글쎄.. 의심받아도 할수 없지.   나도 나 자신을 못 믿는데,
너라고 어떻게 납득하겠니.   요즘 거짓말만 자꾸 늘어.   거짓말 같은건 한번도
했던 적이 없는데. 요새는 내 자신에게
거짓을 말해야해.   하지만 나도 이해 못하는걸
너인들 어떻게 이해하겠니?   난 아무것도 모르겠어.
오래 전에 내 자아를 완전히 잃어버렸다는거
하나만 빼면 말야.   하지만 언젠가는
다시 찾을수 있겠지.   네 병도 낫게 될거구.   그리고 네가 건강해져서
행복을 되찾고, 성공하면 더이상 죄책감도
느끼지 않게 될거야.   언젠간 복되신 마리아께서도
날 용서하실게야.   그리고 수녀원 시절에 가졌던
그분에 대한 사랑과 신실함을 돌려주신다면..   다시 그분께 기도드릴수 있어.   이 세상 누구라도
날 믿지 않는다고 인정하시는 그때야말로   마리아께선 날 믿어주실거야.
그리고 그분의 축복 아래 평화를 찾겠지.   고통속에서 소리지르게 되더라도 내 자신을 되찾게 되니
도리어 웃음짓게 될거야.   물론 네가 그런걸
믿지 않으리란 건 안다.   지금 막 생각이 났네.   나도 시내에 가봐야겠어.   깜빡 했다. 나도 드라이브해야지. 약국에 가야해.   나와 같이 가고 싶진 않겠지?
부끄러울테니까 말야.   어머니.. 그건.. 네 아버지가 준 10달러를
형이랑 나누겠지. 너흰 언제나 서로 나눠갖잖아. 당당하게들 말야. 뭐.. 네 형이 그걸로 뭘 할지는 뻔하지.
어디서 술이나 진탕 취할테니까. 잘 어울리는 여자들 있잖아.
자길 잘 이해하고, 좋아한다나.   에드먼드, 약속해다오.
술 마시지 않겠다고.   위험하잖아.
의사도 안 그러든? 그 늙어빠진 머저리말이죠?   에드먼드..   야, 가자!   가거라. 형이 부른다.   아버지도 내려오시는구나. 가자! 에드먼드. - 여보, 다녀오리다.
- 다녀오렴. 집에서 저녁먹겠거든,
늦지 말고 오너라. 아버지께도 말해.
브리짓 성격 알지?   - 다녀올게요.
- 다녀오겠습니다.   여긴 참 쓸쓸해.   또 네게 거짓말을 하는구나.   사실은 혼자 있고 싶었으면서.   저들의 경멸과 혐오감 때문에
같이 있기 싫었으면서. 저들이 없어서 기쁘면서.   하지만 성모님.   왜 전 이토록 쓸쓸할까요.   저 고동소리   지긋지긋하지 않아?   정말예요, 마님.   안개는 상관없어.
난 안개를 사랑하니까.   피부에 그렇게 좋다면서요? 안개는 우리를 세상에서 감추고,
세상을 우리에게서 감추게 하지. 안개가 끼면 모든게 변한 것 같고,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잖아. 아무도 우릴 찾거나 손대지 못해.   아까 시내에서 돌아올땐
무서워서 혼났어요. 마님도 한치 앞에 손도
안보이셨을걸요. 고동소리는 싫어.   혼자 있게 해주질 않으니.   저건 자꾸 옛일을 상기시키게 해.   하지만 오늘 밤은 아냐.
저건 그저 불쾌한 소리일뿐.   저건..   저건 들어도 옛일이 생각나진 않아.
바깥양반의 코고는 소리는 몰라도.   아까 실컷 골려줬으니 말야. 그 양반은 언제나 코를 골지.
특히나 술에 취하면 더 그래. 그리고 꼭 애같이 구는거야.
자기는 안그랬다 그거지. 그런데 나도 코를 꽤 고나봐?
안 그런것 같은데. 그럼 나도 바깥양반을 놀릴수야 없지. 건강한 사람은 다 그런데요.
제 정신이라는 증거라나. 마님, 몇 시죠?
부엌으로 가봐야겠어요. 아냐, 가지마. 캐슬린.
혼자 있고 싶지 않구나. - 아직은 말야.
- 조금만 참으세요. 곧 주인님과 도련님께서
오실거니까요.   저녁 먹으러 오실지.. 바에 좋다고 눌러앉아있겠지. 핑계로도 좋겠다.
거기가 집처럼 마음이 편할테니.   한잔 하렴. 캐슬린. 정말 괜찮을까요, 마님? 뭐, 한잔쯤은 괜찮겠죠. 항상 건강하세요. 마님.   나도 한때는 건강했었단다.
다 지난 얘기지만.   어휴, 마님.
물이 반이잖아요. 마시면 금방 아실텐데.   취해서 집에 오실텐데
맛을 어떻게 느끼겠어. 핑계도 좋아. 자기는
슬픔을 잊기 위해 마신다는군. 사람이 장점만 있을수 있나요.
너무 신경쓰지 마세요. 그럼. 36년이나 사랑했는데. 그럼요. 마님. 나리께 잘해주세요. 바보천치라도 나리께서 마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다 알걸요.   근데 마님, 왜 연극무대엔
서지 않으셨나요?   뭐? 내가?   무슨 그런 생각을 다 하니.   바깥양반 만나기 전에는 나도 존경받는 집안에 태어나서 중서부 최고의 수녀원에서 교육받았단다. 극장이란게 뭔지도 몰랐던 시절이였지. 난 신앙이 돈독했어. 수녀가 되려고 했었거든. 여배우가 되려는 꿈은
생각도 못했지. 마님께서 수녀님이라니
상상이 안가네요. 한번도 교회 근처엔
가신적도 없으시잖아요? 극장에선 집처럼
마음이 편했던 적이 없어. 바깥양반 따라 매번
순회공연을 다니긴 했지만. 그쪽 사람들과는 좀처럼
친해질수가 없었단다. 그렇다고 사이가 나빴던건 아냐. 다들 친절했지. 나도 그랬고.
하지만 서로 생활이 다르니까.   마치 나와 그들 사이에 뭔가가   있어서..   어떻게 할수도 없는 옛일을
꺼내서 무얼하겠니.   안개가 자욱하구나.   길도 보이질 않아.   세상 사람들이 다 지나가도..   보이지 않을거야.   차라리 그편이 나을지도.   점점 어두워지는구나.
곧 밤이 될거야.   고맙기도 하지.
아까는 드라이브 할때는 같이 있어서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혼자 드라이브를 했다면 얼마나 쓸쓸했을까.   저도 집에 있는것보단 근사한
차를 타고 드라이브하는게 좋아요. 마치 휴가가는 기분이랄까.   하나 마음에 안드는게 있긴 했지만요. 그게 뭐였니? 약국에서 약을 받을때 주인 태도가 영 이상했어요. 얼굴값을 하더라니.   글쎄다.. 무슨 말인지.. 왠 약국? 약?   아아..   그래, 깜빡 했다.   손에 있는 류마티즘 약   말이구나.   그 남자가 뭐라든?   처방대로 약만 줬다면
아무 상관없어. 전 상관 있어요.
평생 도둑 취급은 받은 적도 없는데 절 뚫어지게 보더니만 '이걸 어디서 구했소?' 그러기에   '알거 없잖아요. 그래도 궁금하다면 이 약은 저기 차 안에 계신 티론 댁
안주인께서 받으실 약이예요.' 그러니까 조용해지더니
밖을 오래 쳐다보더니만, '아. 알겠다.'하더니
약을 가지러 가대요.   그래, 그 사람은 날 알아.   그 약을 써야해.   안 그러면 고통이 가시질 않거든. 내말은, 손 아픈거 말야.   가엾기도 하지.   넌 잘 모르겠지만, 이 손이 한때는 내 머리나 눈만큼 얼마나 아름다웠는데.   몸매도 썩 좋았고.   이건 음악인의 손이야. 피아노 치는 것도 좋아했어.   수녀원에서 참 열심히 했었는데. 앨리자베스 수녀님과
음악선생님 두 분다 내가 누구보다도
재주가 뛰어나다고 하셨었지. 아버지께서 특강료도 내주셨어. 참 응석도 잘 받아주셨지. 졸업했다면
아마 유럽으로 보내주셨을걸. 안주인과 사랑에 빠지지 않았다면
갔을수도 있어. 아니면 수녀가 됐겠지.   내게 두가지 꿈이 있었거든. 수녀가 되거나.   그게 더 고결한 목표였고.   피아니스트가 되는것. 그게 다음 목표였어.   피아노 안친지도 오래됐다.
손가락이 이 모양으로 구부러진 꼴이니
어디 칠수가 있나. 결혼하고도 피아노를
치려고 하긴 했는데 소용없더라. 1박 생활에, 싸구려 호텔에, 더러운 기차.
집은 없지. 애들은 맡겨놨지. 보이니, 캐슬린?   손이 이렇게 흉하고
병신이 됐는데 누가 보면 큰 사고라도 난줄 알거야. 필시 그리 생각할거야.
보지 말아야지. 지나간 일을 떠올리는
고동 소리보다도 좋지 않아. 하지만 날 괴롭힐 순 없지..   멀리 가버렸어.   눈에 보이지만.. 고통은 가버렸다구. 약은 드셨어요?   많이 취하신것 같아요.   고통을 멎게 하네.   너도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과거를 생각해봐.   행복했던 과거만이 진짜지.
넌 바깥양반이 지금도 잘생겼다지만 내가 처음 봤을때는
어땠는지 넌 모를거야. 이 나라에서 최고의 미남이라고
칭찬이 자자했어. 수녀원에 있던 사람들이
그이가 하는 연극이며 사진을 보면서 정신을
못차리더라니까. 기도를 하거나
완전 우상이었어. 모두들 무대 입구에서
그가 나오길 기다렸지.   아버지께서 내게 편지를 보내셨는데
제임스 티론을 알게 됐으니 부활절 휴가때 집에 오면   직접 만나게 해주겠다 하시더라.   애들에게 자랑도 했어. 얼마나 시샘을 하던지.   처음으로 아버지 따라
그이가 하는 연극을 봤는데 프랑스 혁명 이야기더구나. 그리고 주인공은 귀족인데.   그이에게 눈을 못떼겠더라고. 그이가 감옥에 들어가는 장면에선
눈물을 흘렸단다. 혹여나 눈이 빨개지진
않을까 부끄러웠어. 아버지께선 연극이 끝나면
백스테이지에 가기로 약속을 해놓으셔서
끝나자마자 분장실로 갔어.   내 눈이며 코며
결국엔 빨개졌지 뭐야.   그때만 해도
난 썩 이쁜 외모였는데, 그 이는 꿈에 그리던 것보다
훨씬 미남이었지. 보통 사람과는 다른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같았어.   난 한 눈에 반해버렸지.   그이도 그랬대.   나중에 그러더라.   난 수녀며 피아니스트가 된다는 꿈은   진작에 잊어버리고 말았지.   그이의 아내로 살고 싶단 생각만 했어.   36년 전에..   하지만 마치 오늘 밤 일같이
한 눈에 선하구나.   그리고.. 우린 서로 사랑했고,
36년 동안 여자와의 추문은 없었지. 다른 여자와의 추문 말야. 그래서 참 행복했단다.   나리를 훌륭한 신사세요.   마님은 참 운도 좋으셔.   바보같이 감성적이기는.   시시한 로맨스에
빠진 여학생과 배우가 만나는게 뭐가 그리 근사하단 말야?   그 이가 있다는걸 알기전이
훨씬 행복했었어.   수녀원에서..
넌 항상 그분께 기도했잖아. 복되신 마리아..   신앙만 다시 되찾을 수 있다면   그분께 다시 기도드리겠어.   은총이 가득한 마리아를 찬미하나니..   은총이 가득한..   마리아를 찬미하나니..   마리아님이 바보도 아니고 거짓말하는 약쟁이가
하는 말을 들으시겠어.   그분을 기만할 수는 없어.   부족해.. 이층에 가야겠어.   일단 시작하면, 넌..   얼마나 필요한지 몰라.   왜 돌아오는거지?   왜 돌아오는거야?   여보, 거기 있소?   그래요. 여기 있어요. 거실이요.   내가.. 얼마나 기다렸다고요. 당신이 와서 기뻐요. 안 올줄 알았는데..
오지 않을까 걱정했다고요. 안개도 끼고 무시무시한 밤이네요.
분명 바에서 노는게 더 재미있을텐데. 같이 웃고 즐길 사람이 있으니..
분명 그럴걸요. 당신 기분은 잘 알지.
당신을 나무라는게 아녜요. 난 와준것만 해도 기뻐요. 여기서 참 외롭기도 하고,
쓸쓸하게 앉아있었으니까. 앉아요.   저녁은 조금만
기다리면 다 될거예요. 생각보다 빨리 오셨네. 신기하기도 하지. 위스키 있는데 따라줄까요?
에드먼드, 너도 먹을래?   에드먼드에겐 주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식전에 한 잔쯤 먹는다고.. 저녁 먹는데 해가 되진 않을테니.   제이미는요?   물론 술값이 남아 있는 한 집에 오지는 않을 건 알지만..   제이미는 우리와 동떨어진지
참 오래된 것 같아. 어휴.. 집에 오는게 아니었는데. 아버지, 그만해요. 제이미가 커서
가문의 위상에 먹칠할 줄 누가 생각이나 했겠어요? 모두들 그 애를 좋아했죠.
선생들도 아주 머리가 좋다고
칭찬이 자자했는데. 조금만 인생에 진지해진다면 제이미가 큰 사람이 될거라고
다들 생각했었는데   가엾은 것. 정말 안타까워요. 이해할 수가 없어.   정말로.   당신이 그 녀석을
술꾼으로 만들었죠.   그 녀석이 눈뜨자마자 본건
당신이 술먹는 모습이었으니. 삼류 호텔방 책상 위엔
언제나 술병이 있었으니까. 그애가 배가 아프던가,
악몽이라도 꾸면 치료법이랍시고 위스키 한 수저씩
먹이는게 당신 하는 짓이였죠. - 조용히 시키려고.
- 그래서 그 자식이 주정부리면서 건달짓하는게 다 내 잘못이란 말야?   이딴 소릴 듣자고 집에 온줄 알아?
이럴 줄 알았지. 당신 몸에 독이 들어있을땐
자기를 뺀 모두에게 쏘아붙이는군! 아버지!   아버지, 이거 드셔요,
안드셔요? 네말이 맞아.
신경쓰는 내가 바보지.   마셔버려라.   내가 심했다면 미안해요.   다 지난 이야기인것을.
그래도 괜히 왔다고 하셨을 땐 얼마나 가슴이 아팠다구..
당신이 와서 얼마나 기뻤는데요. 고맙다구요.   안개 속에 혼자 있는건
무섭고 외로운 것이예요.   밤도 적적해지는데.   당신이 신실한 모습만 보여준다면
나도 집에 기분좋게 올수있소. 아까는 외로워서요.
캐슬린을 옆에 두었죠. 대화할 사람이 필요해서 말이예요. 무슨 얘기를 했는지 알아요? 아버지와 함께 분장실에 있는
당신을 찾아갔던 얘기요. 당신에게 그때 홀딱 빠졌죠.
기억나요? 그걸 어떻게 잊겠소.   그래.. 당신이 여전히 날 사랑하는걸 알아.   무슨 일이 있더라도 말야. 그래, 주님께서 보고 계셔.
언제까지나 사랑할거야.   나도 당신을 사랑해요.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하지만..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수는 없었지만 술을 그리 마시는걸 알았으면
결혼을 안했을지도 모를걸. 바에 있던 친구들이 진탕 취한
당신을 호텔문까지 부축해 온 것을 기억해요.
문을 두들기기에 나가보니 다들 도망가고 없더군요. 그때 우린 신혼여행중이었는데.. 기억 안나오.
신혼여행 때가 아니었어. 살면서 남이 도와서
잠을 이룬 적도 없고 공연에 지각한 적도 없소.   몇 시간이나 그 더러운
호텔방에서 기다렸죠.   두려웠죠. 무슨 사고라도
난게 아닐까 하고. 무릎 꿇고 기도했죠.
제발 아무 일이 없기를 하면서..   그러자 그 사람들이 당신을
문 밖에 두고 가버렸지요.   그럴수가. 예전 이야기를 꺼내서
미안해요. 나도 쓸쓸해지고 싶지 않고   당신을 쓸쓸하게
하고 싶지도 않아요.   그냥 지난날의 행복한 때를
기억하고 싶었으니까. 우리 결혼식 기억나요?   그 결혼식..   내가 그렇게 못된 아내였어요?   불만이 있을리가 있소.   여하튼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했어요. 최선을 다해서 말야.   그 결혼식 의상. 그것때매 애를 태웠죠.
의상집 여자도 그랬고. 난 여간 까탈스러워서,
만족이란 걸 몰랐거든요.   그 여자도 결국 포기했죠.
내가 손을 대면 망한다고 그래서 그 여자를 제껴두고,
혼자서 거울에 비추며 고쳤지요. 그땐 참 자신만만헀는데.   '넌 내가 봤던 배우들만큼이나
아름다우니까 화장은 하지 않아도 상관없어.'
이렇게 혼자 말했죠.   결혼식 의상이 어디있더라.   분명히 포장지에 싸서
트렁크 속에 넣어놨을텐데.   언젠가 딸이 있어서
그 애가 시집을 갈때가 와도 이런 옷은 어디서도 못구할 거라 생각했죠. 난 당신이 값비싼 거에
초탈하실 분이 아닌걸 알죠. 아마 싼 걸 찾으라고 할테니까.   그건 부드럽고
반짝반짝 빛나는 새틴으로 목과 소매에 우아하고
빳빳하게 펴진 레이스가 있고 잔주름이 팽팽하게 잡혔었죠. 뒤에는 틀이 들어있어 빳빳했고요. 허리에 제대로 맞추려고
얼마나 조였는지 숨쉬기가 힘들지 뭐예요. 아버지께선.. 아버지는..   하얀 새틴 슬리퍼에
비단 레이스를 달아주셨죠. 면사포엔 오랜지꽃으로
된 레이스를 달아주셨죠.   얼마나 좋아했던지..   그건..   아름다웠어요.   어디있더라. 그걸 그게.. 외로움을 탈때면 꺼내봤는데   그때마다 눈물짓곤 했죠.   그래서 오래전에 어디다 뒀을텐데..   아마 지붕 밑에 오래된 트렁크에 있겠지.
꼭 찾아봐야지.   저녁 먹을 때 안됐소?   매일 늦는다고 뭐라 하더니만 제때 오니, 저녁이 늦는구려. 밥을 못 먹을거면
술이라도 마셔야지. 이걸 잊고 있었군.   누가 위스키에 장난질을 했냐? 물이 반이잖아? 이걸 누가 모른다고!   여보, 말 좀 해봐! 당신 술까지 손을 댔소? 그만 하세요! 아버지!   캐슬린하고 브리짓에게
주셨군요? 그래, 캐슬린에게 한잔
주고 싶었다. 나와 같이 드라이브도 했고
그 아이를 시켜 약도 가져왔지. 정말. 어머니! 저 애를 어떻게 믿어요? 동네방네 소문 내고 싶으세요? 뭘 알려? 손에 류마티즘 있는거 말이냐? 그래서 고통을 없애려고
약을 쓴다는것 말이냐? 그게 뭐가 부끄러운 일이냐? 널 낳기 전에는
류마티즘이란게 뭔지도 몰랐어.   아버지께 여쭤봐라. 신경쓰지 마라. 아무 의미도 없어.
그저 손 얘기만 나오면 아주 미쳐버려서 우리에게
멀어지게 되버리지. 그걸 이제 깨달으셨어?   이제 옛 일을 떠올리게
하는건 포기하셨겠죠?   당신과   에드먼드 말야.   불 좀 켜는게 어때요?   이제 어두워지는걸.   당신이 싫어하는걸 알지만 에드먼드가 하나 켠다고
큰 돈드는거 아니라고 보여줬잖아요?   구빈원에 갈까 두려워 그리
인색하시니 딱하기도 하지. 언제 전등 하나
가지고 돈 타령을 했소.   여기 켜고, 저기 켜놓고 하면 전기 회사가 노나니 그렇지.   당신에게 옳은 소리를 해봐야
나만 멍청해지지.   다른 위스키를 가져오마. 제대로 된 걸 마시자.   네 아버지는 지하실로 숨으려 드시는거야. 하인들이 볼까봐.   위스키를 넣고 잠가둔게
민망하기도 할테니까.   네 아버지는 참 이상하시지.   나도 이해한다고 오래 걸렸다.
네 조부께서는 집안이 미국으로 온지 일 년후에
집을 나가버리셨단다. 식구들에게는 곧 죽을것 같다,
고향이 그립다는 둥 죽을거면 거기서 죽겠다는 둥
이런 소리를 하시더래.   그분도 어지간히
이상한 양반이던 모양이다.   그래서 네 아버지도
채 10살밖에 안됐을때 기계 공장에 가야만 했어.
- 제발요, 어머니! 아버지께 골백번은
더 들은 이야기예요. 아냐, 그래도 들어야 해.
넌 아버지를 이해하려 하지 않아.   어머니.   뭐든 잊어버릴만큼
멀리 가시진 않으신거죠?   제가 오후에 뭘 알았는지
묻지도 않으시네요. 걱정이 안되십니까?   - 그리 말하지 마라. 가슴아프게.
- 중요한 일입니다. 어머니. 하디 선생도 확실하답니다. 그 돌팔이 자식!
내가 경고했잖니. 괜히.. 그래서 전문의를 불러서
조사했죠. 그 양반 이야기는 그만 해라. 확실하다니까요. 요양원 선생님이 실력이 좋은데
그 사람이 그러더라. 그 사람이 날 어떻게 대했는지 말야. 내가 미치지 않은게 기적이라더라! 그래서 내가 그랬지. 언젠가
잠옷바람으로 뛰쳐나가서 항구에서 몸을 던졌다고
너도 기억할거다. 그런데도 하디 선생 이야기를
들으라는거냐? 말도 안돼. 잘 들으세요!
듣기 좋건 싫건 말씀드릴테니까. 저 요양원에 가야 해요.   안돼!   아버지가 그리 놔둔다더냐?   넌 이 엄마 아들이다.   네 아버지가 왜 널 보내려는지 알아.
내게서 떼놓으려 그러는거지. 엄마 아들이라고 질투해서 내가 너희들을 사랑하는걸 아니까
아버지가 나와 너희들을.. 쓸데없는 소리 마세요.   아버지 욕도 그만하시고요.   제가 가는걸 왜 반대하시는거죠? 한 두번도 아니고, 제가 나간다고
어머니를 슬프게 한적도 없는데.   참 몰인정한 아이로구나.   그렇게 모르니? 이심전심으로 통하면   네가 어딜간다 해도 난 기뻐.   그만하세요. 어머니.   제 몸이 어떤지   말하려고만 하면
날 사랑한다 말하시는군요. 넌 꼭 아버지같구나.
아무것도 아닌 것을 그렇게 극적으로 과장하니. 이렇게 네 응석 다 받아주면 앞으로 죽는다는 소릴 또 하겠지?   그걸로 죽는 사람이 있어요.
외할아버지께서도. 할아버지 이야기는 왜 하니. 비교할수도 없지.
그분은 폐결핵이고.. 네가 침울해지고 병적인건 싫다. 할아버지 돌아가신 이야기는
하지 말거라. 알겠어? 네. 차라리 안들었으면 좋았을걸.   어머니가 마약 중독자로 사신다는게 제겐 견디기 힘들어요.   용서하세요. 어머니.   너무 화가 나서..
절 너무 화나게 하시니까.   저 고동소리 들리냐?   종소리도 들리네.   왜 안개가 끼면
모든게 슬퍼지고 허무해질까.   궁금하구나.   모르겠네요.   저녁은 됐습니다.   모자라.. 이층에 가야겠어.   때때로는   어떻게 되는지   많이 투여해보고 싶은데   일부러 그럴수도 없고..   마리아께서 용서하지 않을테야.   자물쇠에 상처가 이만저만이 아냐.
그 주정뱅이 놈이 철사로 열려고
오만 짓을 다했구만. 그 자식이 그러기전에
다 손을 써놨지. 어지간한 강도도 못 열
특수한 자물쇠니까. 에드먼드는 어딨소?   나갔어요.   시내에 있는 제 형이나 찾을테죠.   돈도 남았을테니.   남은 걸 안쓰고 배기겠어요.   저녁은 됐다더군요.   요새 식욕이 없는 모양이야.   그래도 그냥 여름감기니까.. 여보!   너무 무서워요. 에드먼드는 죽을거야. 그런 소리 하지 마오. 6달이면 다 낫는다고 했소. 난 안 믿어요. 괜히 연기하지 마세요.
다 내 잘못이야. 그 애를 낳지 말걸. 그 편이 좋았을텐데.
그 애가 아프지도 않았을거고. 제 어미가 약물 중독자라는 것도
몰랐을테니까 말예요.   진정하오. 내 사랑.
에드먼드가 얼마나 사랑한다고. 당신이 알지도, 바라지도 않던
저주라는 것도 다 알아. 당신이 어머니라는걸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캐슬린이 와.
우는 걸 보여주려 그래? 저녁 다됐습니다. 나리
저녁 다됐습니다. 마님.   갑시다. 저녁 먹으러 가자고.   배고파서 혼났소.   영.. 식욕이 당기질 않아요. 이해해 주어요.   손이 끔찍하게 아파오는군.   침대에 누워 자야 겠어요.   들어갈게요.   그 놈의 약을 또 하겠다는 속셈이지?   밤이 지나기전에 퀭한 유령이 될거요. 무슨 소릴 하시는 건지.. 당신은 취하면
그런 잔인한 말씀을 다 하셔. 세 부자가 어찌 다 못 됐는지..   누구야?   - 에드먼드냐?
- 예.   불 끄고 들어와라. 마침 잘 왔다. 혼자 있으니 적적해서, 원.. 너도 이 밤중에 이 아비를 두고 혼자 나가버리는게 말이 되냐? 불 끄고 들어오라 그랬지. 댄스 파티 하는 줄 아느냐? 이 밤중에 집안을 환히 밝혀놔서 전기회사들 노나게 해줄 일 있어? 환하게 밝혀놓다니..
겨우 전구 하나인걸요! 자기 전까지 현관 앞에
불을 켜놓는 법이라고요. 모자걸이에 무릎을
찧었잖습니까. 이 방 불이면 됐지. 정신만 멀쩡하면
충분히 보이겠구만. 멀쩡하다니, 그거 괜찮네요. 다른 사람들은 신경꺼라.
돈쓰기 환장하는 놈들이라야 마음대로 하라지. 전구 하나가지고!
좀스럽게 굴지 마세요. 제가 보여드렸잖습니까. 하룻밤 내내 전구 하나 켜놔도
술 한잔값도 안된다는걸. 그깟 숫자!
증거는 내가 내는 명세서에 다 나와있어. 증거 운운해봐야 소용없어요. 아버지가 믿고 싶어하는 것이 비로소 진실이죠.   셰익스피어는 아일랜드의 카톨릭신자였죠. 그래. 그 연극에 증거가 있지. 아닐걸요. 그 사람 연극에는 증거가 없죠.
아버지한테나 그렇지.   웰링턴 공작도 선량한
아일랜드의 카톨릭 신자라면서요. 선량할 뿐더러, 배교자이긴 하나
카톨릭신자나 다름없어. 아뇨. 아버지는 그저
아일랜드의 카톨릭 신자가 아니면 나폴레옹을 이기지 못했을거라 믿고 싶던 거겠죠. 그래, 너랑 입씨름하고 싶지 않다. 가서 현관 불이나 끄고 와라. 알겠는데요.
그냥 켜두도록 놔두죠. 이런 싸가지없는 자식.
아비 말을 안듣겠다는 거냐? 안 들어요.   그리 괴팍한 노랭이가
되고 싶으면 직접 가서 끄시죠. 잘들어, 내가 그동안 많이
참아왔다는 것만 알아둬라. 네가 아직 미성숙해서 그러리라 생각했지. 계속 용서해주고,
어디 네게 손을 대길 했냐. 하지만 넌 지금
내 한계를 시험하고 있어. 아비저 말 듣고, 가서 불끄고 와라. 아니면 네게
뜨거운 맛을 보여줄테니까.   미안하다.
내가 깜빡했다.   네가 내 성질만
건드리지만 않았어도. 됐어요. 제가 죄송하죠. 별것도 아닌 일에 이럴 이유 없죠. 취했었나 봅니다.   불 끄고 오죠. 됐다. 그냥 켜두자. 다 켜도 좋지. 다 켜놓아라. 이 망할 것들.
가봐야 구빈원밖에 더 가겠냐. 어차피 언젠가는 오게 될 일이거늘.. 제법 웅장한 엔딩이였어요. 멋있으셔. 그래, 이 늙어빠진 3류 배우를 비웃거라. 어쨌든 마지막은
구빈원인 것이며 그건 희극이 아냐.   입씨름은 그만 두자.
너도 돈의 가치란걸 알게 될게다. 네 한량짓하는 형이랑은 다르지.   난 네 형은 진작에 포기했다. 그나저나, 형은 어딨냐? 저라고 알겠나요. 시내 가면서 형 안봤냐? 아뇨. 해변에 갔다왔는데요.
오후부터 못봤는걸요. 내가 준 돈을 나눠줬더냐.
멍청하긴.. 그래요. 형은 돈 있으면
언제나 제게 떼어주는데요. 점쟁이도 필요없겠어.
필시 사창가에 있을테니. 정말. 아버지! 그 얘기 또 하실거면
저 올라갈랍니다. 알겠다. 알겠어. 그만두자.
나라고 이런 얘기 좋아하는 줄 아냐. - 한잔 할테냐?
- 좋죠. 네게 술 주는게 안된다는거 알지만 해변에 내내 있었으니 몸이 춥고, 축축할테니까. 오다가 여관에 들렀는걸요. 이런 밤에 무슨 산보를 하냐. 안개가 좋잖아요.   필요했던 것이라. 사리분별 좀 하거라. 그게 뭐냐. 안개 속에 있고 싶었어요.   길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이 집은 보이지 않죠.   여기에 집이 있었나 싶을겁니다. 모든게 비현실적으로 보이죠. 바다 밑을 걷고 있는 기분이랄까.   마치 예전에 빠져죽은 것처럼.   유령이 되어,
안개에 동화된 줄 알았죠.   그리고 안개는 바다의 유령이니.   내가 유령 속의 유령임을
알고 나니 마음이 편해지더군요.   미친 놈처럼 보지 마세요. 인생을 있는 그대로
보고 싶은 이가 누가 있나요?   제법 시인 티는 난다만
너무 병적이야.   악마가 네 염세주의를 가져갔으면.   안 그래도 기분이 우울한걸 말야.   셰익스피어는 어떠냐? 네가 하고 싶은 말은
다 그 속에 있어. (셰익스피어 '템페스트' 4막 1장 中)
우리는 꿈같은 존재. 우리의 보잘 것없는 삶은
잠으로 완성되다니.
  그래요.   아름답긴 해도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아니네요. 우리는 거름같은 존재. 실컷 마시고 잊어버리자.
그게 제 생각입니다.   감상주의는 집어치워라. 네게 술을 괜히 줬다. 썩 좋지 않았나요?   아버지도요. 공연에 늦어본적이 없다니.   술 취하는게 어때서요?
그것 자체가 목적인것을.   (보들레르의 시 'Enivrez-Vous' 中)
취하라, 다른 건 알 바 아니니.
그것이 유일한 문제로다.
  그대 어깨 위를
짓누르는 시간의 무게와
대지가 그대를 때려눕히는 걸
느끼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취하라. 무엇으로 취할 것인가?
와인, 시, 미덕 그 어느 것이라도 좋다.
궁전의 계단 위이건 푸른 도랑이든 그대 방의 황량한 고독에서든 그대가 완전히 깨게 되거나 취기가 반쯤 가시거든 바람에게, 파도에게,
별에게, 새에게, 시계에게
날아가는 것, 탄식 하는 것. 흔들리는 것.
노래하는 것. 말하는 것, 모든 것에 물어보라.
지금이 무슨 시간인지를. 그럼 바람과 파도와
별과 새와 시계가 대답해주리라.
  취할 시간이다. 끊임없이 취하라. 와인, 시, 미덕
그 어느 것이라도 좋다.
  나라면 덕같은 건 신경쓰지 않으련다. 그래도 썩 잘 외우는구나.   - 누가 쓴거냐?
- 보들레르요.   못 들어봤는데?   어디서 그런 취향을 찾은거냐? 저 빌어먹을 네 책장이로구나. 볼테르, 루소, 쇼펜하우어, 입센이라니! 무신론자고, 온통 머저리들이지.   보들레르, 스윈번, 오스카 와일드
휘트먼, 포우 오입질이나 하는 쓰레기들이야. 셰익스피어 전집 세권이 있으니
저걸 읽거라. 그 양반도 주정 깨나 부렸다던데. 다 거짓말이야. 술은 좋아했겠지만,
선한 이도 결점은 있는거지. 적당히 마실줄 아니까 병적인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았을거다. 네가 알고 있는 것들이랑 비교하지마. 네 그 추저분한 졸라,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 그 약쟁이들.   화제를 바꾸는게 좋겠지 싶어요.   제가 셰익스피어를 모른다고
하진 못하실텐데요.   아버지가 제가 아버지 대사를
일주일 안에 못외울 것같다기에 제가 외운다고 해서
5달러 내기 이겼잖아요? 맥베스를 공부한 후에
아버지께서 신호를 주시면, 제가 완벽하게 다 암송했었죠. 그건 그랬지만. 얼마나 끔찍하던지 네가 대사의 맛을
다 죽이던 건 기억난다.   굳이 안따지고 눈감아준게다. 들리냐?   네 어머니가 왔다갔다 하나보다.   내려오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어머니는 유령이 되셔서 과거 속에 살고 계신거예요. 제가 태어나기 전에 있는거죠.   나한테도 마찬가지다.   네 어머니 얘기도 적당히 들어야 해. 사실 엄청난 집안인 것 같아도 평범했어.   네 외할아버지는 아주 고결하신
아일랜드 사람은 아니었다. 괜찮은 사람이시긴 했지.
사교성 있고, 말솜씨 좋고. 둘다 좋아했어.
퍽 능력도 있어서 식료품 도매상도 잘 됐지.
능력은 있었어. 하지만 결점이 하나 있는데   네 어미가 내 술 마시는걸 경멸한다만
잊고 있는게 있어.   마흔 까지 한잔도 안하신건 맞지만 그 이후에는 그 동안
못 마신걸 한을 푸시더구나. 내내 샴페인만 찾으셨지. 최악이였지. 자기는 샴페인만 마신다고 그리 뽐내셨지.   그래서 일찍 돌아가셨지.
그거하고 폐병때문에.   이런 화제는 좀 피하는게
좋지 않겠어요? 그래.   카드 한 두 게임 하는게 어떠냐? 네 형이 올때까지 문을 잠글수는 없잖냐.   안 돌아왔으면 싶다만   어머니 잠들기 전까지는 - 이층에 안 올라가련다.
- 저도요.   아까도 말했다만 어머니 얘기는 적당히 가려들어라.   피아노를 치느니,
피아니스트가 된다느니.   수녀들이 괜히 하는 소리인거야.
다들 귀여워서 그랬던거지. 신앙심이 깊다고 다들 좋아했어.   그리고 수녀가 된다니,
말도 안되는 소리다.   네 어머니는 정말 절세미인이였다.   본인도 알거야.   수줍고 부끄러운 모습이였지만 조금은 요부에 못된 구석도 있었어. 속세를 떠날 사람이 못되지. 참 건강했었는데. 고결한 영혼이며,
사랑하는 감정이며. 아버지 차례예요.   그래.   한번 보자.   들어봐라.   내려오고 계세요.   게임이나 하자. 모른척 해라. 그럼 다시 올라갈게야.   안보이네요. 내려오다가 다시 올라가셨나봐요.
- 다행이다.   그래요.   이럴때 어머니 얼굴을
보는건 겁나네요. 어머니는 아닌 척 하면서도
네 병때문에 굉장히 무서워한다. 너무 몰아부치지 마라.
어머니 탓이 아니잖니. 어머니 책임 아닌거 알죠. 누구 때문인지 알죠.
아버지의 그 노랭이짓때문에. 저를 낳고 어머니에게
산후통증이 왔을때 돈 좀 써서 좋은 의사만 구했어도
모르핀이란 걸 알지도 못했겠죠. 내 입장도 생각해봐라. 그런 의사인지 내가 어떻게 알았겠어? 평판도 좋았단 말이다. 호텔 바에 있는
주정뱅이들한테나 그렇죠. 거짓말이야! 호텔 주인에게
좋은 의사 소개해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구빈원 운운하면서
징징대시는게 사실은 싸구려 의사를
바랬다는 걸 알려주죠. 아버지 하는거 다 알죠. 오후 쯤에 알았어야 했는데. 오후라니? 됐고요. 아까 어머니에 대해서 얘기할때   제가 아버지께서 핑계대는거
상관없다고 말할때도 아버지께선 당신의 구두쇠 기질이
비난받아야 함을 알았죠. 또 거짓말을 하는구나!
그 입 다물지 못할.. 모르핀에 중독된거 알고 나서는
왜 치료를 생각하지 않았죠? 처음엔 기회가 있었을거 아녜요. 모르핀이 뭔지 몰랐다.   그게 잘못된 거란걸
안게 몇년 되지 않아. 내가 왜 치료를 생각하지 않았냐고? 그것때문에 엄청난 돈을 썼다.
다 소용없었어. 얼마나 노력한지 아냐?
어머니는 늘 다시 되돌아가더라. 그건 아버지가 어머니께서 약을 끊도록 도와준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죠. 이따위 쓰러져가는 여름 별장밖에 더있어요? 외관을 수리할 생각도 안하잖아요. 땅은 죽어라 사시고,
금광이니 은광이니 하는 사기꾼들에게 사기나 당하시죠. 시즌때마다 어머니를 공연에 끌고 가면서 어머니는 얘기할 사람도 없이
호텔에 쳐박시는데 그 더러운 호텔방에서 아버지를 기다려도 아버지는 바가 문을 닫아야
술에 쩔어서 돌아오셔놓고. 그러니 병을 고칠 구석이 나오길 하나. 망할! 아버지 하는 짓은 진짜 질색이야. 에드먼드! 감히 애비에게
그따위 말이 뭐냐! 이 싸가지 없는 자식. 자식 새끼 낳아봐야.. 말 잘하셨네요. 아버지는
제게 뭘 해주셨습니까? 그따위 협잡은 다 그만둬라. 내가 언제 네 어머니를
억지로 끌고갔더냐? 같이 있고 싶은건
당연한거야. 사랑했으니까. 어머니도 그랬어.
사랑하니까 나와 같이 있고 싶었던거지.
그게 진실이다. 쓸쓸할게 뭐가 있어. 애도 있고 돈 걱정 말고 돌봐줄 사람
데리고 다니라고 한것도 나야. 그래요. 그거 하나죠.   어머니가 우리에게 정성을 쏟으니 아버지께서 우릴 질투하신거죠. 그래서 우릴 떼어놓으려 한거고요.
아주 큰 실수 한겁니다. 어머니가 절 혼자 돌보셨으면
무슨 다른 생각할 겨를이 있었겠어요? 아마도 그만 둘수 있었을걸. 제 정신이 아닐때 네 어머니가 얘기한 걸로 네가 그렇게 판단을 하겠다면 네가 없었으면, 네 어미도..   그래요.   어머니 생각도 그렇죠.   아니야.   네 어미만큼 널 사랑하는 사람도 없다.   난 그냥 네가 과거 얘기를 하면서
아버지가 미우니 어쩌니 하며 이 애비 성질을 건드리니까
그런 것 뿐이다.   저도 본의는 아니었어요.   저도 어머니랑 똑같네요.
무슨 일이 있건 아버지가 좋으니. 나도 그렇단다.   넌 자식으로서 대단치는 않아.   (셰익스피어 '당신 좋을대로' 中)
못났어도 내 자식이다 쯤 될까.   - 게임이나 하자. 누구 차례냐?
- 아버지요.   안좋은 소식을 들었다고 너무 낙담할 필요는 없다. 두 의사가 그러는데, 말만 잘들으면 여섯 달이나 일 년 쯤이면
치료된다더라. 웃기지 마세요.
제가 죽을거라 생각하죠?   그게 무슨 소리냐?
무슨 그딴 말을! 그럼 왜 돈 낭비를 하세요?
그래서 절 주립 요양원으로 보내잖아요. 무슨 주립 요양원?
내가 알기론 힐타운 요양원이야. 두 사람이 거기가 너에게
제일 좋다 하더라. 돈 때문이죠. 무료거나
아니면 사실상 무료거나. 거짓말 말아요.
힐타운 요양원이 주립 시설인걸 모른다고요?   형이 하디에게서 아버지가
싸구려를 요구했다는 걸 캐냈어요. 이 주정뱅이 새끼!
시궁창에 쳐박아버릴 새끼! 네가 사리분별할줄 알게 된 뒤로
그 자식이 네 맘을 흐려놓았구나. 굳이 주립 요양원인건
부인하지 않으시네요? 네 생각은 틀렸어. 주에서 운영하는게 어때서?
그게 뭐가 문제야? 주에는 돈이 있어서
사립 요양원보다 훨씬 좋아. 그런 이점을 잘 이용해야지. 너나 내가 향유하는 권리다.
우리는 거주자고, 난 지주야. 충분히 운영에 일조한다.
그 망할놈의 세금들.. 그럼요. 부동산이
한 25만 달러쯤 되나. 거짓말. 다 담보잡혔다! 하디나 그 전문의나
아버지 사정은 다 알죠. 그저 백만장자나 갈만한
요양원은 안된다고 얘기했을 뿐야. 땅만 많다고 말이다. 그게 진실이야. 그리고 클럽에 가서는 맥과이어를 만나 저질 땅이나 맡게 되고. - 사실이 아냐.
- 거짓말하시네. 호텔 바에서 그 사람을 만났죠. 아버지 낚았냐고 형이 떠보니
그 놈이 눈을 찡긋하고 웃더군요. - 거짓말.
- 뭐가 거짓입니까!   정말, 아버지!   저 혼자 자립하려 하다가 굶주리고 파산했다고 느껴도 아버지가 타당하다 생각했죠. 아버지도 어렸을때 그랬을테니까.   그냥 넘어가려 했죠.   아버지도 이런 집안에서
참지 않으면 미쳐버릴테니.   하지만 아들이 폐결핵이 걸렸는데 아버지는 동네방네에 지독한 노랭이로 보이고 싶어요?   하디가 소문 낼거란 것도
생각 안해봤어요?   정말 자존심이며 부끄러움도 없습니까?   제가 곱게 갈거라 생각하지 마세요.   쓸모없는 땅이나 더 사려고
그 몇푼 아끼려 하시는데 저 절대로 안갑니다!   이 지독한 노랭이같으니! 조용히 해라.   그만 말하라고.   넌 취했어.   무슨 소릴 하든 상관없다.   기침을 그만둬.   아무것도 아닌걸로 흥분하는구나.   누가 너더러 꼭 거기에만
가야한다고 그러더냐. 가고 싶은 데로 가거라.
돈이 얼마나 들든 상관없어. 네가 낫기만 하면 그걸로 됐다.   내가..   지독한 노랭이야?   난 그저 의사들이 날 등쳐도 좋을 백만장자로 보지 않길 바랄뿐야.   기운이 없어보인다.   한잔 하거라.   고마워요.   그래..   누구 차례냐.   지독한 노랭이라..   그럴지도 모른다.   어쩔수 없는 것이야.   살면서 돈 좀 생기면 바에 있는 사람들에게
한턱 쏘기도 했고 가망없는 자들에게
돈도 빌려주곤 했어. 물론 바에서 위스키에
한껏 취했을때 일이다.   집에서 멀쩡할땐
그런 생각따윈 한적도 없어.   처음 돈의 가치를 알고 구빈원에 갈까
걱정했던게 집에서야.   그 이후로 난 운같은건 믿지 않았다.   넌 내가 어렸을적 했던걸
알고 있다 그러는데 헛소리. 네가 뭘 아냐?   네가 못한게 뭐냐. 보모며, 학교며
다 해줬는데. 그렇다고 고생을 해보기나 했어? 물론 낯선 곳에서
집없이 고생하긴 했었지. 그런건 나도 존중한다. 하지만
그건 로맨스나 모험따위에 불과해. - 놀이일뿐야.
- 그래요, 특히나 술집에서 자살하려다가 실패했을때가 그랬죠. 넌 제정신이 아니었다.
아들이라는게 어찌.. - 넌 취했었어.
- 아주 멀쩡했어요. 그게 탈이였죠.
사색하는건 그만뒀지요. 또 무신론자의 잡소리냐? 난 안 듣겠다.   아까부터 그렇게 설명을 하는구만. 진짜 돈의 가치를 모르는거냐?   조부께선 내가 10살때
어머니를 버려두고 아일랜드에서 죽겠다고
그곳으로 가셨다.   그리곤 정말 돌아가셨다.
그래도 마땅해. 지옥불에서 고통받고 계실게다. 쥐약을 밀가루인가 설탕인가
여하간 잘못 알고 먹었거든.   잘못 알고 먹은게 거짓이라는
소문이 돌기는 했다만 우리 집안에서 그런 일은.. 잘못 알고 먹은게 아닐걸요. 또 헛소리를 하는구나!
네 형때문에 너도 버렸다. 그 자식에게는
최악인 것이 진리라니까. 하지만 아무래도 좋다.   네 조모께선 이국에서
자식 넷과 홀로 남겨지셨다. 가난한데
꿈같은게 어디있겠어.   집으로 삼았던 끔찍한
그 호텔에서 두번이나 내쫓겼다. 몇개 되지도 않는 가구도
그 놈들이 다 땅에 내팽게쳤지. 어머니와 여동생들은 울고 불고,   나도 울었지.
물론 안 울려고 했어. 내가 가족의 가장이었으니. 그게 10살 때다.   학교도 그만 두게 됐고   기계 공장에서
12시간을 일했다. 쇠줄 만드는 법을 배웠지.   지붕에서 비가 새는
더러운 헛간 같은 곳이였다.   여름엔 쪄죽을 정도로 덥고,
겨울엔 난로가 없어. 추워서 손이 말을 안듣더구나.
빛이라곤 작은 창문 2개이 다였지. 날이 흐리면 가까이 수그려서 줄 앞에까지 얼굴을
가져다 대야했다.   네가 일했다 얘기한다만
내가 일하고 얼마 받은지 아냐?   주급 50센트다. 정말이야.
일주일에 50센트.   네 할머니께선 미국인 집에서
바느질이며 빨래를 하셨지. 추수감사절이였나.. 아니면 크리스마스였나. 할머니가 일하던 집에서
주인이 1달러를 선물로 주셨다더라. 그걸로 우리 먹을 걸 전부 사셨다.   그 노곤한 얼굴에 눈물을 흘리시면서   우릴 껴안고, 키스를 하시면서는 '고마운 일이야, 우리도 이렇게 배부르게 먹을 날이 있구나.'   용감하고 훌륭하신 분이지.   그런 사람도 없을거다.   그러셨을 거예요. 내가 인색해진 건 그때부터였어. 1달러도 내겐 어마어마했다.   너도 머리 속에 한번만 새겨놓으면
다시는 까먹지 않을게야. 너도 싼 걸 찾게 될게다.   내가 주립 요양원을 싸구려로
생각했다면 부디 용서하거라. 의사도 좋은 곳이라 했어.
그건 제발 믿어다오. 하지만 네가 원하지 않는다면
가지 않아도 좋다. 네가 고르는 어디라도 보내주겠다.
돈은 신경쓰지 마라. 어디든 좋다.
내가 보내줄 수 있는 곳이면..   카드나 치죠.
누구 차례죠?   내 차례 같은데.   아냐, 너다.   그래. 아마 그 교훈이라는게 지나쳤을수도   돈의 가치도 과장되었을지도 몰라. 그리고 그 오판이 배우로서의
내 경력을 망쳤는지도 모르지.   이런 얘기는 아무에게도
한적이 없어.   하지만 오늘은 적적하구나.
모든 것이 끝나버린 느낌이야. 그리고 허세며 젠체하는게
다 무슨 소용이냐?   내가 산 그 폐급 각본이
아주 큰 성공을 거뒀다. 수입이 두둑했지. 값싼 행운에
대한 기대가 내 삶을 망쳤어. 다른 연극은 생각치도 않았지.   그리고 내가 그 연극의
노예란걸 알게되고 나서 다른 걸 해보려했을땐
이미 늦어버렸지. 사람들은 다 날 그 역할로
생각하는거야. 다른 역할은 원치 않았어.
틀린 말도 아니지. 쉬운 역할만 계속 반복하고,
새 역할은 열심히 하지도 않으니
재능을 잃어버렸다.   시즌마다 순이익이
3만 5천에서 4만 달러나 됐으니 아주 간단한 일이였지.   근데 그 망할 각본을 사기 전엔
나도 우리나라 예술계를 빛낼 앞날이 창창한
젊은 배우 서너명 중 한명이었다. 난 정말 열심히 했어.   기계공장의 좋은 자리도
다 마다하고 떠났어. 순수히 연극이 좋아서 말이다.
큰 야망을 가지고 있었지. 희곡이라고 있는건 다 봤다. 너희가 성경 공부하는 것처럼
나도 셰익스피어를 공부했다. 아일랜드 사투리도
무 자르듯 금방 없애버렸지. 난 셰익스피어를 사랑했다.
그의 위대한 시 속에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기 위해 무슨 역이든 하고 싶었다.   잘만 했다면 난 훌륭한
셰익스피어 전문 배우가 됐을거다.   (19세기 미국 연극계의 유명한 비극배우)
1874년, 에드윈 부스가 시카고에 있는 내가 주연으로 있던 극장에 왔었다. 내가 카시우스일땐, 그가 부르투스였고 내가 부르투스일땐, 그가 카시우스였어.   언젠가 내가 오델로를 했을때인데
그 양반이 매니저한테 '저 젊은 친구, 나보다 훨씬 낫구만.'   부스가 그랬다니!   당대의 대배우이던 그분이 말야.   지금 생각하면 그때가 내 인생의 정점이었다. 내가 바라던 삶을 얻었으니까. 더 큰 야망을 가지고 나아갔지. 결혼도 했고. 어머니에게
그때 내가 어땠나 물어봐라. 어머니의 사랑은
내 열정에 자극제가 되었다.   그러다가 몇 년후에
좋은 일인지, 나쁜일인지.. 엄청난 노다지를 발견하게 됐다.   그토록 원하던 삶을 살게 된거다.   한 시즌에 3만 5천에서
4만 달러의 순이익이라니. 지금도 엄청난 돈이다.   지금도 말야.   그 돈으로 대체 뭘 사려고 했던걸까.   이런.. 후회하기엔
이미 늦어버렸구나.   내 차례냐?   말씀 잘하셨어요. 아버지.
아버지를 훨씬 더 이해할수 있어서. 괜히 얘기했나 싶다. 날 더 경멸하게 될지도 모르거늘. 돈의 소중함을 얘기하는거면
방법이 글러먹었어.   안켜도 좋은걸 켜두니
눈이 아프구나   꺼도 되겠지?
당장 필요없지 않니. 전기회사를 노나게 할 이유는
없잖느냐. 그래요, 그러세요.   대체 뭘 사려고 했던 건지 모르겠어. 정말 맹세컨대, 에드먼드   내 땅이랄게 하나도 없어도 은행에 돈이 없어도 아무 상관없다.   다 늙어서 살데가 구빈원밖에 없어도 생각대로 명배우가 됐더라면 상관없었을걸.   뭘 그리 웃냐?   아버지때문이 아니라요. 인생이요.. 참 우습군요.   또 시작이군.
인생이 뭐가 어때서? 그건..   (셰익스피어 '줄리우스 시저' 1막 2장 中)
부르투스여, 죄는   우리의 운명에 있는 것이 아닌
우리 자신에게 있는 것이오.
  에드윈 부스가 내 오델로를
보며 칭찬한 말이다.   매니저한테 써 놓으라 그랬는데.. 지갑속에 넣어두고 틈날때마다 읽었다. 근데 더는 볼 용기가 나질 않더구나.   지금은 어딨으려나.
집안 어딘가에 있을건데. 잘 넣어뒀는데   지붕 밑 낡은 트렁크에 있겠죠. 어머니 웨딩드레스와 같이.   됐으니까, 아버지
카드나 쳐요.   또 왔다갔다 하는구나.   - 도대체 언제나 잠을 자련지.
- 그만 좀 신경쓰시죠!   아버지께서 가장 화려한 시절을
말씀하시는데 저도 해볼까요. 모두 바다와 연결되어 있죠.   한번은, 제가
스칸디나비아 범선을 타고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가고 있었죠. 만월에 무역풍이 불고,
그 고물 배는 14노트로 달렸죠. 배 선수에 누워
배꼬리를 봤죠. 아래에는 물살이
거품을 일고   제 머리 위에 우뚝 솟은 돛대는 달빛을 흠뻑 머금고 있었죠. 전 그 아름다움에 취해서,
그 리듬을 노래했죠. 그 순간 무아의 경지에 빠져서 인생이란걸 잃어버렸어요.
자유가 된거죠. 바다에 녹아들어 흰 돛이 되고,
높은 물보라가 되고, 아름다움과, 리듬이 되고, 배와, 달빛과,
별빛이 빛나는 하늘이 되었죠.   과거도 미래도 없는 평화와 조화속에서
제 삶, 인류의 삶보다 훨씬 위대하다는
환희를 누리게 된거죠.   생명 그 자체요!   마치 신이라도 된 것 같달까.   바다 멀리 헤엄을 치거나 해변에 홀로 누워있을때도
똑같은 체험을 했죠.   태양이, 뜨거운 모래가,
암석에 붙어 파도에 일렁이는
초록빛 해초가 되는거죠.   아름다움을 보는 성자의 눈처럼 아니면, 보이지 않는 손에
들어올려진 베일처럼요.   그 신비를 보게 되면
그것 자체도 신비가 되지요. 그 순간 자체가 의미있는 겁니다.   나중에 그 손이 베일을 내리게 되면 남는 건 고독뿐,
안개속을 정처없이 걷죠. 사람으로 태어난건
제겐 불운이예요. 갈매기나 물고기였으면
훨씬 좋았을텐데. 누구를 원하지도
누군가 원하는 인간도 못되고, 무언가 되고 싶은 것도 없으며 어딘가에 소속되기도 싫고, 쓸데없는 죽음이나
찬미하게 된 이방인일 뿐.   제법 시인의 소질은 있구나.   시인의 소질이요?   아뇨. 전 담배나 구걸하는 인간이나 마찬가지예요.   소질 따위는 없어요.
몸에 밴 습관일뿐.   제가 하고 싶은 말은 하나도 표현못했어요.
서투르니까.   아마 평생 살아도
이게 최선일걸요.   적어도 신실한 진실이죠. 서투르다는건 우리처럼
안개속에 사는 이에겐 웅변일테니.   없어졌던 형이 온 것 같네요.   진탕 마신 모양이네. 망나니 자식. 막차를 탔군.
운도 좋지. 가서 잠이나 자라 해라.
난 베란다로 나가겠다. 그 자식은 취하면 말을 막하니까
내 성질만 돋구겠지.   야호!   큰 소리 내지마.   하, 너냐?   난 고주망태가 되서 말이다.   굉장한 비밀을
알려줘서 고맙네. 그래, 쓸모없는
정보 첫 번째지.   대형사고였다. 현관계단이
날 짓밟으려 하더구나. 자긴 안개 속에 있단 말이지.   저기 등대라도 있어야겠어.   여기도 어둡네.   여긴 시체 안치소냐?   (루디야드 키플링 Ford o' Kabul River 中)
여울, 여울, 밤의 카불 강의 여울이여!   말뚝을 동무 삼아 그들과 밤 중 카불 강의 여울을 건너게 되리.   그래, 훨씬 낫군.   늙어빠진 가스파르같으니! 노랭이 아버지는
어디 가셨냐? 베란다로 나가셨어요.   우리보고 캘커타의
지하감옥에서 살라는거냐?   아니..   술때문에 섬망증이 왔나?   어라? 진짜잖아?   그 노인네가 왠일이냐? 이걸 이리 내버려두다니.
아버지도 어지간히 취했군. 이렇게 좋은 기회가 오다니! 내 성공을 위한 열쇠로다. 형, 그러다간 진짜 뻗어버린다. 애송이 주제에 훈계냐? 제법이구나.
머리에 피도 안마른게. 그래요. 맘대로 하셔. 안돼.. 그게 문제야. 가라앉을 정도로 마셨는데
가라앉질 않는단 말야.   - 이제, 간다.
- 나도 한잔 하겠어.   넌 안돼. 내가
옆에 있는한 어림없어. 의사가 말한 걸 기억해라. 네가 죽어야 걱정할
사람은 나밖에 없다.   이놈아.
난 네 배짱이 마음에 든다. 다 사라지고,
내게 남은건 너밖에 없어. 그래서 넌 취하면 안되는거야. 됐네요.   걱정을 해도 안 믿는거냐.
주정하는 건줄 알겠지. 마시고 죽어버리던지 말던지.   형이 걱정하는거 알아.   앞으로 마시지 않겠지만,
오늘은 좀 봐줘. 오늘은 짜증나는 일만
한 가득이었으니. 자. 나도 알아.
짜증나는 날이었겠지.   그 늙어빠진 쥐가 아직도
네게 금주령을 안내렸구나. 네게 술을 궤짝째 줄걸.
가서 같이 마시라고. 네가 빨리 죽어야, 돈이 덜 들지.   아버지랍시고 하는 짓이란! 네가 아버지를 찬양해도
믿을 사람 하나 없을게다. 형이 이해하기 나름인걸.
아버지도 좋은 분이야. 아버지 유머를
이해만 해준다면야. 또 네게 그 질질짜는
연극을 하셨더냐? 너야 항상 속지만 난 아냐. 다신 안 속는다.   물론 한 가지 점에서
아버지께 미안한건 있어.   하지만 그건 마땅한 일이야.
아버지가 나쁜거다.   알게 뭐냐.   여태 마셔서 영 거북한데 이것만 마시면
난 그만 뻗을것 같다.   그 영감에게 내가
하디에게서 그 요양원이 폐급 단체란걸
들었다고 얘기했냐? 그래, 거긴 안간다 했어. 이미 다 끝난 얘기야.
나더러 가고 싶은데고 가래. 물론 분수에 맞추라지만.   '물론이지, 뭐든 분수에 맞게 하거라.' 그건 다른
싸구려 시설을 찾으라는거다.   "종소리" 에 나오는 그 노랭이 가스파르. 분장이 없어도
능히 할수있는 역이지. 가스파르 얘기라면
신물나게 들었어. 네가 괜찮으면
마음대로 하시게 둬. 하지만 네가 죽게 될경우..   물론 나야 바라는 건 아니지만..   시내에서 뭐 했어?
메이미 번즈에게 간거야? 당연하지. 어딜가서
그런 여자를 찾겠냐. 그리고 사랑이랄까?
그걸 잊지 마라. 사랑하는 여자 하나 없는
남자가 무슨 소용이 있어.   - 속빈 강정이지.
- 헛소리야.   메이미네 집에서 내가 누굴 간택한 줄 아냐? 웃지 마라.   그 뚱뚱한 바이올렛이야.   - 진짜야?
- 그래.   재밌네. 체중이 1톤은 될텐데. - 장난하는거 아냐?
- 장난 아냐. 진짜다. 메이미네 사창가에 갔을때 나 자신과 다른 주정뱅이들이
너무 불쌍해지는거야. 그냥 아무 계집이나 붙잡고
울고 싶었다니까.   내가 술이 한순 돌면 그게 내게 어떤 의미가 되는지 알잖니. 그리고 문앞에 도착하자마자,
메이미가 한탄하기 시작하는거야. 장사가 안된다네,
당최 손님이 바이올렛에겐 안 꼬이니 내쫓아야겠네, 피아노 때문에 놔둔다네, 그리고는 바이올렛이
술에 한껏 취해서 피아노를 못 쳤다나.
나가서 먹고 살긴 하겠냔 거야. 근데 얼띠긴 해도, 사람은 참 좋다나.
불쌍하긴 한데, 그렇다고 그 여자가
어떻게 살든 말든 관심없단거야. 장사는 장사니까. 그리고 너무 뚱뚱해서
밥을 너무 축낸다는거야.   그게.. 불쌍하더구만.   네가 준 2달러를   몽땅 털어넣고 그 여자랑 2층에 갔지. 물론 이상한 의도는 없었다.   뚱뚱한 걸 좋아하지만
그건 좀 너무했으니까.   난 그저 가슴 터놓고 끝없는 인생의 슬픔에
대해 말하고 싶었을 뿐. 불쌍한지고!   한동안 듣고 있다가
내게 불같이 화를 내더라. 지딴에는 내가 장난삼아
데리고 간줄 알았겠지.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더라.   그리고 울기 시작하더라고.   그래서 난 네가 뚱뚱해서 좋다.   그랬더니
믿고 싶어하는 눈치였어.   그래서 같이 있으면서 증거를 보여줬지.   기분이 좋아졌는지   내가 갈때 키스를 하는거야.
내게 푹 빠졌다나.   둘이 현관으로 나오면서
또 질질 짰지.   그리고 모든 것은 평안하더라.   다만 메이미는 내가
미친 줄 알았겠지만   (보들레르의 시 中)
창부와 쫓기는 기분을 나누나니 속된 무리는 이해하지 못할지어다. 그래! 여하튼 꽤 재미있었다.   오늘 밤을 통해 내가 꽤 유망한 놈이란걸 알았어.   앞으로 연기 따위는
서커스단 물개들에게 맡겨야겠다. 그것들은 아주 표현력이 좋으니까 말야. 내 천부적인 재능을 올바른 곳에 써야지. 분명 난 성공의 정점에 도달하게 될게야.   바넘과 베일리 서커스단의
뚱뚱한 여자의 연인이 될거다.   창녀집 뚱뚱이 따위를 사랑하게 되다니. 한때는 브로드웨이에서 나도 잘 나갔는데. (키플링의 시 中)
모든 것을 시험해봤노라. 모두가 건너는 행복한 길을.   잘못 골랐군.   행복한 길은 무슨.
피곤한 길이 맞지.   목적지도 없이 가는 꼴이라   결국 도착하는 곳이란   아무데도 없어. 인간이 종국에
도달할수 있는 곳은 없다. 병신들이야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그럴까, 곧 눈물이라도 흘리시겠네.   야.   건방진 소리 하지마.   아냐, 네가 맞다. 불평해야 뭐래.
뚱뚱한 바이올렛은 좋은 여자야. 같이 있어서 괜찮았다.
인정이 있는 행동이랄까. 그 여자 우울증을 고쳐줬으니.
재미있었다니까.   너도 같이 있었으면 좋았을걸. 네 걱정거린 다 날아갈게다.
집에 와봐야 네 걱정거리에
무슨 도움이 되겠냐.   다 끝났다.   희망도 없고.   (키플링의 시 中)
내가 높은 산위에 목을 매달려도
어머니, 내 어머니!
누구의 사랑이 날 뒤따를지 압니다. 닥쳐!   약쟁이는 어디 계시냐.
주무시냐?   이런 개자식이..   고맙다.   이래도 난 마땅해 싸지.   네가 왜 이러는지..   - 주정부리는거 이해해라.
- 형, 정말..   아무리 취했다 쳐도,
그건 변명이 안돼.   미안해.   우리가 언제
싸운적이나 있어. 미안하다. 맞아서 기쁘다.   이놈의 혀를 잘라버리고 싶다.   기분이 아주 좋지 않았거든.   이번엔 어머니가
내게 한방 먹이신거지.   난 아직도 어머니를
용서 못할것 같다.   내겐 중요한 일이야.   이번엔 어머니가 이겨내시면
나도 할수 있다고   희망을 가졌었어.   나라고 형 기분을 모르겠어.   망할.   너보단 내가
어머니를 훨씬 잘 안다.   처음 눈치챘을때의
기분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어머니가 주사 놓는걸
봤단 말이다. 젠장!   창녀가 아닌 여자가
약을 한다는건 상상도 못했어.   그만 해둬, 형.   그리고 이번엔
네 폐결핵이란 말야.   나도 힘들다.   우린 형제 이상으로 친해왔잖냐. 내 상대라곤 너밖에 없어. 네 배짱을 좋아한다.
널 위해라면 뭐든 할거야.   알아.   그래.   너도 어머니와
그 노랭이가 하는 말 들었지 않냐. 내가 최악의 경우를 바라고 있다고.
내가 볼땐 아버지는 연로하시고, 오래 못 사실테니   네가 죽으면 어머니와
내가 재산을 전부 가지게 되고 - 만약 그렇게 되면..
- 멍청한 소리는 그만 하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거야?   진짜 알고 싶네.
대체 뭣 때문에 그러는거야? 이런 멍청한 자식. 말했잖냐. 난 항상 최악의
경우를 바란다고 의심받지. 널 도와줄 수가 없으니.   야.   그래서 어쩌자는거야.
내게 책임을 돌리는거냐? 내 앞에서
다아는 것 마냥 하지 마라. 내가 너보다는
아는게 훨씬 많아. 유식한 책 몇권 읽었다고
날 깔보지 마. 넌 겉늙었을 뿐야. 아직도
어머니의 아기에 아버지의 귀염둥이이며,
가족의 희망이다. 요즘에 별것도 아닌걸로
제법 젠체하는구나! 지방신문에 시 몇개나 끼적인다고, 나도 대학에 있을땐
너보다 훨씬 멋있는걸 썼다. 정신차려!
그 정도로는 아무 소용도 없어.   시골 멍청이들이나 네가
미래에 유망하다고 좋은 소리하지.   망할.. 잊어버려라.   바보들에게나 할 말이지.
내 본심 아닌거 알거다.   네 출발이 성공적인거
난 정말 자랑스럽다.   내가 자랑스럽지
않을 이유 있어?   네 덕에 나까지 신용이 쌓이니까.   네가 이렇게 된것도
다 내가 힘쓴 덕이야. 여자에 대한 것도
내가 알려준 덕에 너도 여자에게 걸려드는
실수를 하지 않는거지. 시 읽는 법을 알려준 것도 나 아니냐? 스윈번 시같은거 말야. 나라고!   나도 시를 쓰고 싶었기에, 네가 시를 쓸수 있도록 가르친거다. 넌 내 동생 이상이야. 넌 내 프랑켄슈타인이라고!   알겠어. 난 형의 프랑켄슈타인이야.   그러니까..   술이나 더 합시다.   단단히 돌았군.   그래   마시지. 넌 안돼.   몸 조심해야지.   잘들어라.   넌 이제 가버리니까 얘기할 기회도 없을지도 모르고, 사실을 말하기 위해
취할 일도 없을거야.   그래서 지금이라도 얘기해야겠다. 진작에 말했어야 싶긴 하지만. 주정부리는게 아냐. 취중진담이랄까.   진지하게 듣거라.   네게 충고 하나 하겠다.   내가 네게 나쁜 영향을
줬다는 부모님 말씀이 맞다. 하지만 개 중에 최악인건..   내가 일부러 그랬다는 사실이야.   됐어, 듣기 싫어.   잘 들어. 널 놈팽이로 만들려고
일부러 그런거란 말이다. 내 마음속의
큰 부분일거야. 그 부분은 진작에 죽어버렸고,
그게 내 인생을 증오하게 하지. 내 실패를 통해서
네가 뭔가를 배웠으면 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
하지만 그건 기만이였어. 내 실패를 잘보이려 했지.
취했다는걸 낭만처럼 보이려고. 병들고, 멍청하며, 불쌍한 창녀를 요망한 흡혈귀로 둔갑시켰다. 노동은 멍청이나
하는 거라고 믿게 했어. 난 네가 성공해서 내 꼴이
초라하게 비교되는게 싫었다. 네가 실패하길 바랬다.
언제나 널 질투했으니 어머니의 아기,
아버지의 귀염둥이였으니!   그리고 네가 태어나고 나서
어머니가 약을 시작하시더구나. 물론 네 잘못이 아냐,
하지만 난 네가 못마땅해. 네 그 배짱이
싫어졌단 말이다.   - 그만 둬, 형.
- 하지만 날 오해는 말거라. 널 싫어하기보단 사랑하니까. 그래서 네게 이렇게 말하지 않냐. 네가 날 싫어할게 뻔한데도 말야.
그리고 내게 남은건 너뿐이야.   내가 지금 한말은 본심이 아니다.   왜 이런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   내가 하고픈 말은 네가 대성공을 했으면 하는거야. 하지만 조심하는게 좋아. 네가 실패하도록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나도 어쩔수 없어.   이러는 나도 싫다.
누구에게라도 복수하고 싶어.
특히 너한테 말야.   내 속의 죽은 부분이
네가 낫지 않길 바라고 있어.   아마 이번에도 어머니가
지게 된걸 기뻐할걸.   그 놈은 동료가 필요해!
그 놈은 이 집안에 유일한 송장이
아니길 바라니까.   형, 정말.. 미쳤어. 잘 생각해봐라. 내말이 맞을테니. 요양원에 들어가게 되면
한번 잘 생각해봐. 들어가면 나란건 잊어버려라.
네 삶에서 없애버리란 말이다. 내가 죽었다고 생각해둬. 그리고 사람들에겐
'형이 있었지만 죽었다'고 말해. 그리고 집에 오게되거든
날 찾아라. 네가 오면 널 기꺼이 환영한 후에 너를 맞아들이고
기회만 생기면 네 등에 칼을 꽂을테니까! 닥쳐! 누가 그따위
소릴 들을 줄 알아? 잊지 마라. 널 생각해서
충고하는거니까. 어서! 내 말 명심해라! (요한복음 15장 13절)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끝났다. 할말 다했다.
고해를 마쳤으니.   날 용서해주겠지?   너도 알게다.   넌 썩 괜찮은 놈이니까.   그래야지,
내가 만들었으니.   가서 잘 낫고 오거라.   죽지마라.
내게 남은건 너뿐이야.   신의 은총을..   아까 먹은게   마지막인가보다.   잘됐다. 자는구나.   무슨 말이 그리도 많은지.   술이 깨려면
그냥 자도록 두는게 낫겠다. 마지막에 몇마디 하는거 들었다만
내가 하는 말과 똑같아. 네 형이 직접 말했으니
잘 들어두는게 좋을거야. 하지만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일거 없어. 술만 마시면 자신의 결점을
과장하는 꼴이란.. 네게 참 헌신적이구나.   그게 저놈에게 남은
유일한 미덕이지.   참으로 가관이로구나.
명예롭고 위엄있는   이름을 빛내줄 장남이란 놈이 말이다. 그리 전도가 유망했건만. - 거, 조용히 좀 하시죠. 아버지.
- 쓸모없는 주정뱅이같으니! 다 끝났구나.   (셰익스피어 '리처드 3세' 1막 4장 中)
클라렌스다.   배신하고, 기만하며,
거짓을 말하는 녀석!
  저 자가 튝스버리 벌판에서
나를 배신한 놈이다.
  저 자를 잡아 고문하고 괴롭히소서!   뭘 그렇게 쳐다봅니까?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 '생명의 집' 中)
내 얼굴을 보아라,
내 이름은 '더 훌륭했을지도 모를'
또는 '더는 아닌',
'너무 늦은' '작별'이라 불리우네.
나도 그 시는 잘 안다.
그딴거 듣고 싶지 않아. 그만하세요. 좋은 생각이 났어요. 그 '종소리'를
재상연하는게 어때요? 분장없이도
연기 할수 있는 역이 있으니. - 늙어빠진 수전노 가스파르!
- 형, 닥쳐! 장담컨대 에드윈 부스도 훈련받은 물개만큼은 못할걸요. 물개야 말로 똑똑하고 정직한 배우죠.
걔들은 '연기기술'에 대해 허세는 부리지 않으니까.
그저 하루하루 먹이만 먹으면 그만이지. 이런 건달 자식! 아버지, 어머니 내려오시는걸
보고 싶어 그래요? 형은 가서 자. 이미 충분히 입 놀렸으니까.   알았다.   나도 말싸움하기 싫으니까. 피곤하군. 왜 네 어미는 잠을 자질 않냐.
피곤해 죽겠는데, 아주 지쳐버렸어.   전처럼 밤 새우기도 힘들다. 나도 늙었다. 이젠 글렀어.   눈을 뜰수가 없군.   잠을 좀 자야겠다. 너도 눈 좀 붙이려무나. 네 어머니도 잠이..   '광란의 장면' '오필리어 들어오다.'   잘 했다! 에드먼드!
싸가지없는 자식. 감히 제 어머니에게!   그래.. 난 맞아도 싸다.   말했잖냐. 아직 희망이.. 내일이라도 당장 내쫓아버릴게다! 아버지. 제이미.   아들아, 울지 마라.   연주실력이 바래버렸어.
연습을 안하다 보니.. 테레사 수녀가
얼마나 야단을 치실지. 아버지에게 죄송하지도
않냐고 하실거야. 특별과외에 그렇게
돈을 쓰는데 말야. 정말이야.
그렇게 자상하시고 너그럽고 날 자랑스레
여기는 아버지가 어딨다고. 오늘부터 연습을 해야지.   근데.. 이 손에 무서운 일이 일어났어.   손가락이 이렇게 뻣뻣해지니.. 관절이 다 부어서
이렇게 추하잖아. 양호실에가서 마사 수녀께
봐달라 해야지. 나이가 들어 괴팍하긴 하셔도
난 그분이 좋아. 약상자에 뭐든 낫게 할
약을 넣고 계시거든. 뭔가를 손에 문지르시고,
마리아께 기도하라 하시겠지. 그럼 금방 좋아질거야.   가만 보자..   내가.. 뭘 찾으러 왔는데?   참 큰일이야, 어디에다
정신머리를 놔두는건지.. 매사 꿈만 꾸다가 까먹거든. 이리 주시오.
옷을 이리 밟아대니 나중에 얼마나 안타까워하겠어. 고마워요. 참 친절하시네. 웨딩드레스예요. 이쁘죠?   생각났다.   지붕 밑의 트렁크에 있더라고요.   하지만 무엇 때매
이걸 찾았는지.. 전 수녀가 될거예요.   그건..   내가 찾기만 하면..   근데 뭘 찾고 있었더라?   - 뭔가 잊어버린게 있었는데..
- 여보. 소용없어요, 아버지. 큰일이야.. 잊어버려서..   잊어버리면 안되는 건데.. 어머니.   - 무슨 소용이 있어..
- 꼭 있어야 되는데.   그것만 있으면,
외롭지도 않고, 두렵지도 않았어.   영원히 못찾을리가 없어.   그렇다면 차라리 죽어버릴테야. 더 이상 희망이 없어질테니.   어머니.   여름 감기가 아녜요.   폐결핵이예요. 안돼, 안돼!   날 잡지도 말고,
손도 대지 마.   이 멍청아, 소용없다니까. 난 수녀가 되야 해.
이러면 안된다구. 다 부질없는 짓이다.   망할놈의 마약.. 그래도 이렇게
깊게 취한건 처음보는구나.   병을 이리 다오.   앨리자베스 수녀님과 상의했어.   참 자상하고 좋은 분이셨지.   지상에 강림하신 성자였지.
난 정말 그분을 좋아했거든. 죄가 될지도 모르지만,
어머니보다 더 좋아했어.   그분께선 말도 하기전에
날 이해해주셨으니까. 그분의 푸른 눈이
내 마음까지 보고 계셨으니. 그분 앞에선
비밀도 감출수 없었지. 아마 속이려고 노력해도
속일 수 없을거야.   그런데..   그분께서 이번에는
알아주시지 않더라. 난 수녀가 되고 싶다 했지. 그분의 말씀을 믿고,
자신에게 자신있고 가치있는 사람이 되도록
마리아께 기도했다고 말씀드렸지.   호수에 떠있는 조그만 섬에 있는 루르드 성모상에서 기도드릴 때 환영을 보았다고 말이야. 내가 무릎꿇고 있던 걸
확실히 기억하는 것처럼 마리아께서 미소를 지으시며
허락하심을 확신한다고.   하지만 수녀님은
단순한 상상은 안되며, 입증할수 있어야 한다고 했어. 그리고 그분께선
네가 자신이 있거든 졸업 후에 다른 애들이 하는 것처럼 파티에 가거나 무도회에도 가면서 네 자신을 시험에 들게 해보라 하셨지. 그리고 1, 2년이 지나고도
네게 자신이 있거든 그때 다시 돌아와서
상의를 하자고 말씀하셨어.   수녀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정말 놀랐지.   깜짝 놀랐다구. 그래서 난 그분이 시킨건 뭐든 하겠다 했지.
하지만 시간낭비란걸 알았어.   수녀님과 작별하고,
난 혼란스러워서 예배당에 가서
마리아께 기도드렸고   다시 평온을 되찾았어.   마리아님께 대한
믿음이 사라지지 않는 한.. 그분께선 내 기도를 들어주시며
나를 사랑하심을 알고 있었으니까.   내게 재앙이 닥치지
않도록 말이야.   졸업하는 해 겨울이었어.   봄이 오자 내게 사건이 일어났지.   그래, 기억나. 제임스 티론과 사랑에 빠졌고   꿈같이 행복했었지. 얼마동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