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kira.Kurosawas.Dreams.1990.1080p.BluRay.x264-DEPTH *CRITERION*

구로사와 아키라의 꿈

 

이런 꿈을 꾸었다

 

밖에 나가지 마라

 

해가 나면서
비가 내리는 날은

 

여우가 시집 가는
날이란다

 

남이 보는 걸
아주 싫어해서

 

보면 큰일 난대

 

너 봤구나?

 

넌 봐서는
안 될 걸 봤어

 

집에 못 들어간다

 

여우가 크게 노했어

 

널 찾아올 거다

 

용서를 빌어라

 

여우에게 가서
사죄하고 와

 

어서

 

두 손 모아
간절히 빌어야 돼

 

쉽게 용서해주지
않을 거다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야 한다

 

어서 다녀와!

 

여우에게
용서받지 않는 한

 

이 집에 절대
들어올 수 없다

 

하지만 여우가
어디 사는지 몰라요

 

네 스스로 찾거라

 

이런 날엔 항상
무지개가 뜬다

 

여우는 그 무지개
밑에 살고 있어

 

이런 꿈을 꾸었다

 

누나, 이거

 

고마워

 

먹자

 

- 여섯 명 아니었어?
- 뭐?

 

여섯 명이었어

 

그래서 경단을
6인분 가져왔어

 

잘못 봤겠지

 

됐으니까
이거 너 먹어

 

난 벌써 먹었어

 

이상하네

 

- 누나
- 왜?

 

분명 여섯이었어

 

- 누가 갔어?
- 간 사람 없어

 

누나, 분명히
한 명 더 있었어

 

멍청한 소리 그만해!

 

알았어?
그만 가봐

 

- 봐, 있잖아
- 누가?

 

- 못 보던 애야
- 아무도 없잖아

 

분명 저기
서 있었어

 

아직 열이
안 내렸나 보다

 

열 안 나
대체 쟨 누구야?

 

너 괜찮니?

 

기다려!

 

어디 가는 거야?
나가면 안 돼!

 

거기, 꼬마!

 

네게 할 말이 있다

 

잘 들어라

 

넌 이제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

 

왜요?

 

너희 식구들이

 

이 과수원의 복숭아나무를
전부 베어버렸다

 

인형축제는
복숭아 축제다

 

인형축제는 복숭아나무를
기념하는 축제야

 

우리 인형들은
복숭아나무의 현신이다

 

복숭아나무는
복숭아꽃의 생명이야

 

그런 나무를 다 베어버리면
축제를 어떻게 치르겠느냐?

 

베어져 나간
복숭아나무들이

 

모두 울고 있다

 

이제 와서 울어봐야
아무 소용없다

 

이제 그만 혼내요

 

저 아인 우리들을
위해 울었어요

 

베어내지 말라고
울었다고요

 

복숭아를
못 먹을까 봐겠지

 

아니야!

 

복숭아는 가게에
가도 살 수 있어

 

난 복숭아꽃 만발한
과수원이 좋은데

 

나무가 잘리면

 

다신 못 보게 될까 봐
운 거란 말이야

 

그래, 알았다

 

착한 아이로다

 

복숭아꽃 만발한
과수원을 보여주마

 

이런 꿈을 꾸었다

 

날이 저물고 있어
또 밤이 오는군

 

멍청한 소리 집어치워!

 

출발한 지
얼마나 됐다고

 

출발이 늦었어
너무 오래 잤다고

 

그렇지 않아

 

아직 11시야

 

네 시계가
고장 난 거야

 

아냐, 바늘이
돌아가고 있어

 

눈 때문에
어두운 거야

 

또 눈보라가 칠 거야

 

어서 서둘러

 

방향은 제대로
가고 있는 거야?

 

여기 맞아

 

조금만 더 가면

 

이 계곡을
빠져나갈 수 있어

 

공격캠프까지
얼마 안 남았다

 

또 그 소리야!

 

이제 신물이 나!

 

어서 일어나
일어나 걸으라고

 

그러고도
산사람이야?

 

이 정도 눈보라에
두 손 들다니

 

부끄럽지도 않나?

 

이 정도 눈보라?
벌써 사흘째야

 

전혀 그칠
기세가 아냐

 

한심한 소리 마!

 

안 그친다고

 

우리가 죽기만
기다리고 있어!

 

좋아!

 

잠깐 쉬자

 

저기 누가 와

 

정말이군
누가 오고 있어

 

오긴 누가 와
헛걸 본 거야

 

이봐, 잠들지 마
잠들면 죽어

 

일어나!
눈뜨라고

 

어서 일어나
잠들면 죽어

 

일어나

 

일어나...

 

눈은 따뜻해

 

얼음은 뜨거워

 

일어나!
괜찮나?

 

이봐, 일어나
정신 차려! 이봐!

 

일어나!
일어나라니까

 

일어나
이봐!

 

정신 차려
일어나!

 

저기 봐
캠프야!

 

캠프다, 캠프!

 

- 캠프다!
- 캠프다!

 

이런 꿈을 꾸었다

 

노구치 일병!

 

네, 중대장님!

 

- 너는...
- 중대장님

 

제가 진짜로
전사했습니까?

 

전... 제 전사 사실을
믿을 수 없습니다

 

제대하고
집에 돌아가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떡도 먹었는걸요

 

그 일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얘기... 들었다

 

넌 총에 맞아
기절했었고

 

한참 뒤
정신을 차린 네가

 

상처를 돌보던
내게 했던 얘기다

 

그건 네가 무의식중에
꾼 꿈이야

 

꿈 얘기가
하도 생생해서

 

지금도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5분 뒤,
넌 죽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저희 부모님은

 

제가 아직 살아있다고
믿고 계십니다

 

저기가 제 집입니다

 

제 부모님은
저 집에서

 

제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계시죠

 

하지만 너는
정말로 전사했다

 

유감이지만
분명한 사실이야

 

내 품 안에서
죽어갔단 말이다

 

노구치!

 

중대
제자리에 서!

 

중대장님께 대하여,
경례!

 

받들어 총!

 

세워 총!

 

제3중대 임무를 마치고
귀대하였기에, 신고합니다!

 

잘 들어라

 

제군들 마음은...
잘 안다

 

제3중대는
전멸했다

 

그리고 제군들은
전원 전사했다

 

미안하다

 

혼자 살아남은
내가 어떻게

 

제군들을 대할
면목이 있겠는가

 

제군들의 죽음은
바로 내 책임이다

 

난 모든 책임을...

 

전쟁의 부조리와

 

비인간적인 규율에 돌리고

 

자신의 무능과
잘못을 부정할 만큼

 

비겁하진 않다

 

하지만, 살아남아
적의 포로가 되었고

 

그 포로수용소에서

 

죽음과 같은
고통을 맛보았다

 

그리고, 지금...

 

제군들을
대하고 보니

 

고통스럽기 짝이 없다

 

제군들이 겪은
고통에 비하면

 

고통 축에도
못 들겠지

 

솔직히 말하지만...

 

난 제군들과 함께
죽고 싶었다

 

내 진심을
알아주기 바란다

 

제군들의 원통함은
이해하고도 남는다

 

말이 전사지
개죽음이나 다름없다

 

그렇다고
이렇게 돌아와서

 

뭘 어쩌겠다는 건가?

 

부탁이다

 

돌아들 가라

 

돌아가
편히 잠들어라

 

제3중대
차렷!

 

뒤로 돌아!

 

차렷!
앞으로 가!

 

이런 꿈을 꾸었다

 

실례지만...
반 고흐 씨 댁이 어디죠?

 

이 다리를 건너서
조금만 가면 있어요

 

감사합니다

 

조심해요
그 사람 미치광이니까

 

빈센트 반 고흐 씨인가요?

 

왜 안 그리시오?

 

풍경이 환상적이지 않소?

 

가만히 보면
모든 자연은 아름답죠

 

그 아름다움에, 나도 모르게
빨려들게 된다오

 

그러면 마치 꿈결처럼
그림이 저절로 완성되지

 

난 대자연을 흡수해요
완벽한 자연을 갈구하죠

 

어느 순간 보면

 

완벽한 그림이 나타나지만

 

다 담을 수는 없지

 

당신은 뭘 하죠?

 

노동을 해요
기관차처럼 열심히

 

서둘러야겠소
시간이 없어

 

그릴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소

 

괜찮으세요?
다치신 것 같은데

 

- 이거요?
- 네

 

어제 자화상을 그리는데

 

귀가 잘 안 돼서
잘라버렸지

 

태양이...
원동력을 줘요

 

여기서 노닥거릴
시간이 없소

 

이런 꿈을 꾸었다

 

무슨 일입니까?
어떻게 된 거죠?

 

후지산이
폭발하다니...

 

이런 세상에!

 

그보다 더 심각해요

 

왜 그런지 몰라요?

 

핵발전소가
폭발했어요

 

여섯 개의 원자로가

 

차례로
폭발하고 있어

 

일본은 작은 나라야
달아날 덴 없어

 

그건 알지만 어떡해요?

 

도망가는 거 말곤
다른 수도 없잖아요

 

여기가 끝이에요

 

하지만...
어떻게 된 거죠?

 

그 많던 사람들이
다 어디로 갔죠?

 

어디로 달아났냐고

 

바로 이 바다 밑이지

 

저건 돌고래야
녀석들도 달아나는군

 

돌고래는 좋겠네요
헤엄칠 수 있으니까

 

오십보백보지

 

방사능 오염은
시간문제야

 

왔어

 

저기 붉은 게
플루토늄 239

 

들이마시게 되면

 

천만 분의 1그램으로도
암에 걸리지

 

저기 노란 건
스트론튬 90

 

몸 속에 들어가면

 

뼛속에 쌓였다가
백혈병을 일으키지

 

보라색 물질은
세슘 137

 

생식선에 들어가
유전자 변이를 일으켜

 

어떤 괴물이
태어날지 몰라

 

어리석은 인간들

 

무색의 방사능이
위험하다고

 

착색기술 따위나
개발하다니 말이야

 

보고 죽느냐
못 보고 죽느냐 차이지

 

죽는 마당에 저승사자 명함
있으나 없으나 뭐가 달라

 

나 먼저 가네

 

이봐요, 잠깐만

 

안 죽을 수도 있잖소
그러니...

 

그건 불가능해

 

고통스럽게 죽느니
단숨에 죽는 게 나아

 

우리야 살만큼 살았으니
죽어도 상관없어요

 

하지만, 이 아이들은
얼마 살지도 못했잖아요

 

닥칠 때까지 기다린다고
살 수 있을 줄 아쇼?

 

핵발전소는 안전하다!

 

위험한 건 오작동이지
발전소가 아니다

 

절대 잘못될 일 없으니
아무 문제 없다고

 

떠들어대던 그들을
절대 용서 못 해요

 

다 죽여버리겠어!

 

그전엔 못 죽어요!

 

염려 말아요

 

그 일은 방사능이
대신해줄 테니

 

죄송합니다

 

저도 그 죽일 놈 중
한 사람입니다

 

이런 꿈을 꾸었다

 

인간이군

 

왜 그러시오?

 

당신은... 도깨비?

 

흥, 그럴지도 모르지

 

이래 봬도
왕년엔 인간이었어

 

제길...
한심한 얘기야

 

예전엔 이곳에도
꽃이 만발했지

 

하지만 수소폭탄과
미사일 때문에

 

이렇게 사막으로
변해버렸어

 

그런데 최근에...

 

방사능으로
폐허가 된 땅에서

 

이상한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했어

 

온통 민들레야

 

민들레요?

 

악마의 민들레지

 

이건 장미야

 

꽃 중심에서
줄기가 나오고

 

그 줄기 끝에
또 봉오리가 있지

 

주위에 퍼진 방사능이

 

이곳의 꽃들을
바꾸어 놓았어

 

꽃뿐만이 아냐

 

인간도 이 꼴이지

 

한심한 인간들

 

지구를 유해물질
처리장으로 만들었어

 

이제 이 지구상에
정상인 건 하나도 없어

 

새도, 동물도
물고기 한 마리도

 

그게 언제였더라

 

얼굴이 둘 달린 토끼와
눈이 하나뿐인 새,

 

털이 난 물고기를
본 적도 있어

 

건물은 어떻게 됐죠?

 

건물이 남아날 리 있어?

 

서로 잡아먹으며
살아가는 판국에

 

약한 순서대로
잡아먹히지

 

내 차례도
얼마 안 남았어

 

도깨비 간에도
계급이 존재해서

 

나처럼 뿔이
하나뿐인 도깨비는

 

세 개, 네 개 달린
놈들의 먹잇감이지

 

인간일 적엔
권력을 휘두르며

 

위세를 떨치던 자들이

 

도깨비가 돼서도
활개 치고 산다고!

 

맘껏 설치라고 그래

 

뿔을 두 개,
세 개씩 단

 

끔찍한 꼴로 살아가는 건
지옥과 같은 고통이다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럽지

 

죽을 수도 없어

 

그게 바로
도깨비들의 운명이야

 

자신이 저지른
죗값을 치르며

 

영원히 살아가야만 하지

 

나야 곧 잡아먹힐 테니
상관없지만

 

죽고 싶지 않아
그래서 도망 다니는 거야

 

하지만... 굶주림에
지친 내 자신이

 

점점 싫어져

 

예전엔
평범한 농부였어

 

제값을 못 받는다며

 

우유를 몇 탱크씩
강에 쏟아버리고

 

양파, 감자, 양배추를
불도저로 밀어버렸지

 

그런 짓을 하다니...

 

들리나?

 

밤만 되면 들리는
도깨비들 울음소리지

 

머리에 난 뿔이
종양처럼 고통스러워서야

 

차라리 죽고 싶을 정도지

 

하지만,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으니

 

울부짖을 수밖에

 

보여주지
도깨비들이 어떻게 우는지

 

내 뿔도 통증이
시작됐어

 

어서 돌아가!

 

돌아가라니
어디로 말이오?

 

도깨비가 되고 싶은가?

 

이런 꿈을 꾸었다

 

- 안녕하세요?
- 안녕, 얘들아

 

안녕하세요, 어르신

 

안녕하시오

 

이 마을 이름이 뭐죠?

 

이름 같은 건 없어

 

그냥 마을이라고
부른다네

 

이웃 마을에서는
'물레방아 골'이라고 하지

 

마을 사람들
모두 여기 사나요?

 

아니
각자 집이 있지

 

전기는
안 들어오나요?

 

그런 건 필요 없어

 

인간은
편리함에 약하지

 

편리한 걸
좋아하다 보면

 

진짜 좋은 걸 잃게 돼

 

불은 무엇으로 밝히죠?

 

양초나 기름을
사용하지

 

어둡지 않나요?

 

밤은 어둡게 마련이야

 

낮처럼 환하면 곤란하지

 

별이 안 보일 만큼
밝은 건 원치 않아

 

논은 있는데

 

경운기나 트랙터는
안 보이네요

 

그런 거 필요 없어

 

소도 있고
말도 있으니까

 

연료는 무엇을 사용하죠?

 

보통 장작을
사용하지

 

살아있는 나무는
꺾기 딱하지만

 

다행이 마른 가지들이
충분히 있어서

 

그걸 주워다
땔감으로 쓴다네

 

숯으로 만들어
사용하면

 

적은 양으로도
한참 쓸 수 있어

 

그래
소똥도 좋은 연료지

 

우리는 가능한
예전 방식대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려고 노력한다네

 

요즘 사람들은

 

자신도 자연의
일부임을 잊고 있어

 

자연 덕분에
사는 줄 모르고

 

그 자연을
함부로 다루고 있어

 

더 좋은 것만
만들어낼 줄 알지

 

학자들은
머리야 좋겠지만

 

자연을 이해하지 못하면
곤란해

 

그들은 인간을
불행하게 할 것들만

 

열심히 발명해내며
자랑으로 여긴다네

 

더 딱한 일은

 

그 한심한 발명품들을

 

기적으로 여긴다는 거지

 

그 때문에
자연을 파괴하고

 

스스로를
파멸시키고 있어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건

 

깨끗한 공기와
맑은 물이야

 

그 원천인
나무와 풀을

 

끊임없이 훼손하며
잃어가고 있어

 

오염된 공기는
인간의 마음까지 더럽히지

 

저... 조금 전
마을로 들어서다 보니

 

아이들이 다리
옆에 있는 돌 위에

 

꽃을 갖다놓던데
무슨 이유라도...

 

아, 그거 말이오?

 

선친으로부터
들은 얘기로는

 

오래전 그곳에서
한 나그네가 급사했는데

 

이를 딱하게 여긴
마을 사람들이

 

그곳에 묻어주고

 

무덤 대신 세운 돌 위에
꽃을 가져다 놓았는데

 

그 풍습이 아직까지
남아있는 거라네

 

아이들뿐 아니라
마을 어른들도

 

그 돌 옆을
지날 때마다

 

사연도 모르고
꽃을 놓고 간다네

 

무슨 축제가 있나요?

 

축제?
아냐, 장례식 소리야

 

표정이 왜 그런가?

 

장례식은 본래
경사스러운 일이야

 

잘살고
일 잘하고

 

맘 편히 죽는 건
분명 경사지

 

이 마을엔 스님도
목사님도 없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직접

 

장례를 치른다네

 

젊은이나 아이가
죽는 건 달라

 

그건 경사라
할 수 없지

 

우리 마을 사람들은
자연 그대로 살아서인지

 

다행히도 대부분
천수를 다하고 간다네

 

지금 저 할멈도
99세까지 살았지

 

나도 가봐야 하니
이만 실례하겠네

 

실은 죽은 할멈이
내 첫사랑인데

 

날 차버리고
다른 사내에게 시집갔지

 

그런데, 영감님은
연세가 어떻게 되시죠?

 

나?

 

백하고도
세 살 더 먹었지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는 나이야

 

산다는 건
고통이라고들 하지만

 

그건 허영이지

 

솔직히 산다는 건
좋은 거야

 

즐거운 일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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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다리
옆에 있는 돌 위에

 

꽃을 갖다놓던데
무슨 이유라도...

 

아, 그거 말이오?

 

선친으로부터
들은 얘기로는

 

오래전 그곳에서
한 나그네가 급사했는데

 

이를 딱하게 여긴
마을 사람들이

 

그곳에 묻어주고

 

무덤 대신 세운 돌 위에
꽃을 가져다 놓았는데

 

그 풍습이 아직까지
남아있는 거라네

 

아이들뿐 아니라
마을 어른들도

 

그 돌 옆을
지날 때마다

 

사연도 모르고
꽃을 놓고 간다네

 

무슨 축제가 있나요?

 

축제?
아냐, 장례식 소리야

 

표정이 왜 그런가?

 

장례식은 본래
경사스러운 일이야

 

잘살고
일 잘하고

 

맘 편히 죽는 건
분명 경사지

 

이 마을엔 스님도
목사님도 없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직접

 

장례를 치른다네

 

젊은이나 아이가
죽는 건 달라

 

그건 경사라
할 수 없지

 

우리 마을 사람들은
자연 그대로 살아서인지

 

다행히도 대부분
천수를 다하고 간다네

 

지금 저 할멈도
99세까지 살았지

 

나도 가봐야 하니
이만 실례하겠네

 

실은 죽은 할멈이
내 첫사랑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