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과 성이 뭐죠?

 

제 이름은..

자리 유리.. 입니다

 

여길 봐요, 유리

 

고향이 어디죠?

 

카르코프입니다

 

어느 학교 다니죠?

 

기술고등학교에 다닙니다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날 봐요

 

나만 봐요

 

내 눈을 들여다봐요

 

똑바로

 

돌아서요

 

내 손에 주의를 집중해요

 

내 손이 뒤로 당깁니다

 

손을 펴요

 

정신을 집중해요

 

모든 힘을 손으로 모읍니다

 

점점 손에 힘이 들어갑니다

 

모든 의지, 이기려는 욕망을
손에 집중해요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갑니다

 

손이 매우 뻣뻣합니다
손에 아직도 힘이 들어가고 있어요

 

손가락을 봐요
손가락이 점점 뻣뻣해집니다

 

모든 힘이 손가락에 들어갑니다

 

좋아요 손을 봐요
손가락이 뻣뻣해요

 

이제 내가 셋을 세면 당신은
손을 움직일 수 없게 됩니다

 

하나, 둘, 셋!

 

손이 뻣뻣해요

 

손을 움직일 수 없어요

 

손을 움직이려 해도 뻣뻣해요

 

손을 움직이기 어려워요
손이 뻣뻣합니다

 

이제 이 상태를 제거하겠어요

 

그럼 똑똑하게 자유롭게
편안히 말할 수 있어요

 

지금 그렇게 말하면 평생
크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어요

 

날 봐요

 

셋 하면서 손과 말투에
들어간 힘을 빼주겠어요

 

하나, 둘, 셋!

 

큰 소리로 똑똑히 말해봐요
난 말할 수 있다!

 

거울

 

마가리타 테레코바 (1인2역)
: 마루샤 (젊은 어머니) & 나탈리아

 

각본
알렉산드르 미샤린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촬영
게오르기 레르베르크

 

미술
니콜라이 드비거스키

 

음악
에두아르트 아르테미예프

 

음향
세묜 리트비노프

 

기타 배역

 

이그나트 다닐체프 (1인2역)
: 이그나트 & 알료사 (12살)

 

마리아 비시냐코바
(타르코프스키의 어머니)
: 늙은 어머니

 

필립 얀코프스키 : 알료사 (5살)
올렉 얀코프스키 : 아버지

 

아나톨리 솔로니친 : 의사
니콜라이 그린코 : 인쇄소장

 

알랴 데미도바 : 리쟈
타마라 오고로드니코바 : 낯선 여자
라리샤 타르코프스카야 : 나데즈다

 

올가 키칠로바 : 빨강머리
유리 나자로프 : 훈련교관

 

아르세니 (타르코프스키의 아버지)의
시들은 작가 본인이 직접 낭독함

 

바하, 페르코레시, 프르셀의 음악 사용

 

거울

 

정거장에서 오는 길은
이그나테보를 지나

 

전쟁 전 여름이면 지내던
우리 농장 근처에서 꺽여

 

울창한 오크 숲을 통과해
톰시노까지 이어졌다

 

들판 잡목을 지날 때야
사람들은 눈에 띄었고

 

거기서 우리집 쪽으로 향하면
그 사람은 아버지이고

 

아니면, 아버지가 아니고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게 톰시노로 가는 길인가요?

 

잡목에서 꺾지 말고
곧장 가셨어야죠

 

- 그런데 왜?
- 네?

 

왜 여기 앉아 계시죠?

 

- 전 여기 살아요
- 어디? 울타리 위요?

 

알고 싶은 게 길인가요?
제가 사는 곳인가요?

 

아, 집이 있군요

 

다른 건 다 챙겼는데
열쇠를 까먹었어요

 

못이나 드라이버
혹시 없을까요?

 

아뇨, 없어요

 

왜 그렇게 성가셔 하죠?

 

손 좀 봐요
전 의사예요

 

정신없게 하시네요
맥박을 못 재잖아요

 

남편을 부르길 원하세요?

 

남편은 없을 걸요

 

반지가 없으니

 

하긴 요즘에는 잘 안 끼지
노인들이면 몰라도

 

담배 한 대 주시겠어요?

 

왜 그렇게 슬퍼 보이죠?

 

뭐가 그렇게 재밌어요?

 

매력적인 여자와 넘어지다니
영광이군요

 

넘어지니 다른것들도
보이네요. 뿌리, 잡목..

 

이런 생각 해본 적 있어요?

 

식물도 어쩌면 느끼고, 알고

이해까지 한다는 생각요?

 

저기 개암나무 같은 게

 

- 그건 오리나무예요
- 어쨌든요

 

나무들은 바삐
돌아다니지 않죠

 

우린 서두르고, 안달하며
시시한 말이나 해대고요

 

우리 내면의 본성을
못 믿기 때문이죠

 

항상 이런 불신, 서두름에

 

멈춰 생각할 시간이 없어요

 

이봐요 저기 뭔가가

 

전 괜찮아요. 의사니까

 

*'제 6 병동'은요?
(안톤 체홉의 단편 소설)

 

체홉이 다 꾸며낸 거죠

 

톰시노에 한번 들르세요

 

이봐요

 

- 거긴 즐기기도 하니까
- 피가 나요!

 

- 어디요?
- 귀 뒤요, 반대쪽이요

 

우리 만남의 순간 순간이

 

축일로 기념되었다

 

온 세상에 홀로

 

새보다 더 대담하고 가볍게

 

계단 아래로 어질한 환영처럼

 

당신은 나를 데리러 왔다
비젖은 라일락을 지나

 

당신의 왕국으로
거울의 세계로

 

밤이 깊어가며
나는 은총을 받았다

 

제단의 문이 열리고
어둠 속에 빛나며

 

천천히 내려오는
벌거벗은 너의 몸

 

깨어나며 나 말한다
'축복이 있기를'

 

주제넘고 가당찮게도

 

나는 축복한다
당신의 빠른 잠듦을

 

푸름 속에 닫힌
당신의 눈꺼풀을

 

식탁 위 라일락
쓸기엔 너무 뻣뻣했다

 

푸름이 스친 당신의 눈꺼풀은
고요했고 당신의 손은 따뜻했다

 

강물은 수정빛으로 굽이치고

 

산들은 피어올랐고
바다는 몰려왔다

 

당신은 수정 구를 손에 쥐고

 

당신의 왕좌에서
곤히 잠들어 있었다

 

그리고, 맙소사!
오직 나의 것인

 

당신은 깨어났고 즉시 인간의
말과 생각의 언어가 변했다

 

낭랑하게 몰려오는 말

 

'당신'에 대한 말은
너무나 달라져

 

왕이란 뜻에서 새로운
느낌이 들게 했다

 

갑자기 모든 게 바뀌어
넋나간 것처럼

 

사소한 것조차 너무 흔히
쓰이며 시도됐고

 

우리 사이에 서서
우리를 안내했던

 

단단한, 층층의 물

 

그것은 모르는 곳으로
우리를 데려갔다

 

신기루처럼 멀어져 갔던

 

기적처럼 공정한 도시들

 

발밑엔 박하풀이 펼쳐졌고

 

새들이 우리를 따랐고

 

물고기들이 물굽이로 왔고

 

눈앞엔 하늘이 열렸다

 

뒤에선 우리의 운명이
더듬거리고 있었다

 

면도칼을 든 미치광이처럼

 

두냐! 이런 세상에 두냐!

 

파샤! 왜 그래요 파샤!

 

불났다, 조용히 해!

 

그가 올 거야

 

비치야가 안에 있으면요?
타 죽었으면요?

 

클란카는 어딨어? 클란카

 

왜요?

 

아빠

 

- 여보세요
- 알렉세이?

 

- 예, 엄마
- 목소리가 왜 그러니?

 

별거 아니에요
목이 좀 아파서요

 

3일 동안 누구와도
말 안했어요

 

한동안 말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사람이 느끼는 모든 걸
표현하기엔

 

말은 물러빠졌죠

 

꿈에 엄마가 나왔어요
전 여전히 애였고

 

그런데 몇 년에 아빠가
우릴 버리고 떠났죠?

36년? 37년?

 

1935년, 근데 왜 묻니?

 

그, 불..농장 헛간이
불탄 거 기억하세요?

 

그것도 35년이다

 

그래, 엉뚱한 얘긴 그만하고

 

있잖냐, 리쟈가 죽었다

 

리쟈라뇨?

 

인쇄소에서 나하고 일했던

 

- 세르프호프카야에서
- 아, 세상에

 

- 언제요?
- 오늘 아침 7시에

 

지금 몇 시죠?

 

- 6시 쯤이야
- 아침이요?

 

무슨 소리냐?
저녁이잖니

 

엄마, 우린 왜 늘
말다툼이죠?

 

제 잘못이라면 용서하세요

 

인쇄소입니다
다음 정거장은 세르프호프카야

 

왜 이리 서둘러요?

 

안녕하세요 마리아

 

내가 교정 보던 거 어딨지?

 

몰라요, 잠시만요

 

엘리자베타가 와 있어요

 

마루샤, 뭐야?

 

어제 교정본에 뭔가가?

 

- 국립출판사 교정본에?
- 너무 불안해 하지마

 

- 식자함을 봐야겠어
- 물론 거기 갖다 두셨겠죠

 

큰 일은 없을 거야, 마루샤

 

그런 중요한 판본인데!
그 중요한 판본에!

 

다 괜찮을거야, 마루샤

 

물론 어떤 판본에도
실수는 없어야 겠지만

 

조용해 바보야

 

- 무슨 일이죠?
- 별일 아니에요

 

그냥 확인해 보려고요
착각일지 몰라도

 

- 처음부터 살펴봐야겠어요
- 별 문제 없을 거예요

 

내가 직접 하고 싶어요

 

다들 서두르고
아무도 시간이 없대!

 

마루샤

 

내가 겁 먹은 것 같나요?

 

아니, 딴 사람들을
겁 먹게 하지

 

누구는 일 해야 하고
딴 사람들은 겁 먹고

 

심각한 건 없어요

 

있어도 어쩔 수 없어요
밤새 인쇄를 했으니

 

어제 아침부터 당신을 기다렸다

 

다들 안 올 거라 봤겠지

 

얼마나 좋은 날씨였는지 기억해?

 

어느 휴일의 날씨
나는 코트 없이 걸었다

 

오늘 당신은 여기 왔고
거기에 마련된

 

몹시도 음울하고 흐린 날

 

비가 내리고
시간은 유난히 늦어진다

 

빗방울 흘러내리는
차가운 지형

 

말로 위로되지 않고
손으로 닦이지 않는

 

봐, 별 일 없었지
아무 이상 없잖아

 

아니, 끔직한 실수가
될 뻔했어

 

근데 왜 울어?

 

식자의 그 단어까지
보였다니까

 

무슨 단어?

 

대단해

 

순수 알콜, 많진 않지만
도움될 거야

 

완전이 젖었군
꼭 허수아비 꼴이야

 

정말 다 젖었네

 

가서 샤워해야겠어
내 빗 어디 있지?

 

너 지금 꼭 누구 같은지 알아?

 

- 누구?
- 마리아 티모페예브나

 

마리아 티모페예브나라니?

 

여기, 빗 찾았지?

 

마리아 티모페예브나가 누군데?

 

그런 여자가 있었어
레뱌트킨 대위의 여동생

 

그래서 어쨌다는 거야?

 

넌 그 여자 빼다박았어

 

어떻게 닮았는데?

 

표도르 미하일로비치는
뭐라든 간에..

 

뭐라든 간에..

 

'레뱌트킨, 물 좀 가져다 줘!'
'레뱌트킨, 신발 가져다 줘!'

 

차이는 가져다 주는 대신에
오빠가 그녀를 때리지

 

그래도 그 여자는 누구든
부려먹을 수 있다 생각해

 

딴 사람 얘긴 그만 해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

 

넌 모든 게 '물 가져다 줘
신발 가져다 줘'야

 

겉으론 독립적이지만

 

근데 혼자선
손가락 하나 못 움직여

 

싫은 게 있으면 못본 척
하거나 찡그리고 말지

 

누가 날 마구 때리는데?

 

네 전남편 인내심이 놀라워

 

진작에 도망 갔었어야지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네 잘못을 인정한 적 있어?
절대 없지!

 

넌 이 모든 상황을
꾸며낸 거야

 

그 터무니없는 분방함도
네 남편은 못 끌어올렸으니

 

그 사람 제때 구원됐다 봐야지

 

넌 애들도 비참하게
만들고 말 걸

 

헛소리 그만해!

 

문 열어봐

 

마루샤, 문 좀 열어봐

 

날 내버려 둬

 

내 세속의 삶이
반을 지났을 때

 

난 황혼의 숲에서
길을 잃고 있었네

 

세상에

 

잊어버렸어?

 

당신이 우리 어머니를
닮았다고 그랬잖아

 

우리가 이혼한
이유기도 하지

 

이그나트가 점점 당신을
닮아가는 걸 보면 무서워

 

무섭다니?

 

우린 한번도 정상적인
대화를 할 수 없었어

 

어린시절과 어머니를
떠올릴 때면

 

어머닌 늘 당신 얼굴이야

 

이유는 알아

 

난 두 사람을 동정해
당신과 어머니를

 

왜?

 

이그나트
유리잔 제자리에 둬

 

당신은 누구와도 평범하게
살긴 어려울 거야

 

어쩌면

 

기분 나빠하지 마

 

당신은 자신의 존재가
주위 사람들을

 

행복하게 한다고
믿는 것 같은데

 

당신은 요구밖에
할 줄 몰라

 

그건 내가 여자들에게
길러졌기 때문이지

 

이그나트가
그렇게 되는 게 싫으면

 

어서 결혼해

 

- 누구하고?
- 그거야 모르지

 

이그나트를 내게 주던가

 

왜 어머니와 화해 안했어?
그건 당신 잘못이야

 

무슨 잘못?

 

어머닌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나보다 더 잘 안다 생각하시지

 

그게 날 행복하게 한다고

 

어머니에 관한한
내가 당신보다 더 잘 알아

 

뭘 잘 아는데?

 

사이는 점점 더 멀어지고

 

나도 어쩔 수 없다는 거

 

나탈리아, 어떻게 좀 해봐
저 사람 또 스페인 얘기야

 

결국 싸움이 벌어질 걸

 

부탁할 게 있어
집수리 중이라 그러는데

 

이그나트가 일주일만
당신하고 지냈으면 해

 

나야 좋지

 

뭐라는 거예요?

 

위대한 투우사
'팔로모 리나레스' 흉내야

 

헛소리

 

무엇보다 그의 환송회가
정말 대단했었대

 

마을 전체가 배웅하러 나와
노래하고 춤추고

 

그의 어머니는 아파서
못 나오셨고

 

아버진 슬픔에 말없이
한쪽에 서 계셨는데

 

그는 서로 같은
생각이라는 걸 알았대

 

어쩌면 다신 만나지
못할 거라는 걸

 

우릴 놀린 거야? 뭐야?

 

그렇게 가르치고 가르쳐도
아무 소용없더니

 

이제 보니 할 수 있잖아!

 

수다장이, 스페인에
갔었는데 아무것도 몰라

 

루이사, 스페인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어?

 

난 못 가
남편이 러시아인이고

 

애들도 러시아인이야

 

왜 가는 거야? 루이사

 

괜찮아요, 내가 말해 볼게요

 

방으로 들어가요

 

(세계 최초로 성층권에
진입한 소련의 기구)

 

이그나트

 

이리 와, 엄마 간다

 

항상 서두르다...

 

같이 놓지말고
그냥 그대로 줘

 

- 깜짝이야
- 왜 그래?

 

- 전기가 왔어요
- 무슨 전기?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던 것처럼요

 

근데 여긴 처음인데

 

어서 돈 줘
공상 그만하고

 

치우고 정리 좀 해

 

아무것도 만지지 말고

 

마리아 아줌마 오면
기다리라고 하고

 

들어 와라

 

이 젊은이에게도
차 한잔 주겠어?

 

책장 세 번째 칸 끝에서
공책을 꺼내 보겠니?

 

그래, 맞다

 

리본으로 표시해 놓은
페이지를 읽어 주렴

 

'과학과 예술이 인간의
도덕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루소의 답은 '부정적으로'였다

 

빨간색으로 밑줄 친
부분만 읽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다시

 

교회의 분열로
유럽에서 분리된 우리는

유럽을 뒤흔든
모든 사건에서 배제됐소

 

하지만 우리에겐 우리만의
특별한 운명이 있었소

 

러시아는 광활한 영토로
몽골의 침략을 집어삼켰고

 

타타르는 감히 우리의
서쪽 국경을 넘지 못했소

 

그들은 황야로 퇴각했고
기독교 문명은 구원되었소

 

이를 위해 우리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야 했고

 

그래서 기독교인이면서도
기독교 세계의 이방인이었소

 

우리가 역사적으로
보잘것 없다는

당신의 견해에
나는 동의할 수 없소

 

당신은 러시아의 현재에서
중요한 것이 보이지 않소?

미래의 역사가를
놀라게 할 것이?

 

내 비록 군주께 성심으로
헌신하고는 있지만

 

주변에 보이는 모든 게
하나도 기쁘지가 않소

 

문학가로서 나는
절망과 모욕을 느끼오

 

하지만 맹세컨데
세상 그 무엇도 내게

 

조국을 바꾸거나 다른 역사를
갖게 할 수는 없을 것이오

 

신이 주신 우리 선조의
역사 이외에는

 

(1836년 10월19일 푸시킨이
차다예프에게 쓴 편지에서)

 

가서 문 열어봐

 

집을 잘못 찾았나 보다

 

이그나트, 어때?
다 괜찮아?

 

마리아 아주머니는 왔어?

 

아니요, 누가 왔지만
집을 잘못 찾았데요, 아빠

 

할 걸 찾아봐
누굴 초대하던가

 

아는 여자애 없어?

 

우리 반에서요?
그 애들은..

 

네 나이 때 난 이미
사랑에 빠졌지, 전쟁중에

 

빨강머리에 그 애 입술은
늘 갈라져 있었어

 

훈련교관도 쫓아다니며
어쩔줄 몰라 했지

 

듣고 있니?

 

어딜 쐈어?
내가 안 본 줄 알아?

 

위쪽을 쐈지?

 

- 어떤 벌을 받을지 알아?
- 내가 어쨌는데요?

 

- 무슨 소리야?
- 저 위엔 아무도 없어요

 

있었으면 어쩌려고

 

어디요?
나무밖에 없는데요

 

나무에 오르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뒤로 돌아!

 

뒤로 돌라고 했다

 

왜 장난하는 거야?
총을 향해

 

뒤로 돈 건데요

 

훈련교본 안 배웠어?

 

러시아말로 '뒤로돌아'는
제가 한 대로예요

 

'돌아'는 360도로
돌라는 거잖아요

 

몇 도? 아사프예브

 

뒤로 돌아!

 

사격 자세, 위치로!

 

넌 부모님께
돌려 보내야겠다

 

어떤 부모님이요?

 

곧 알게 될 거다

 

사격 자세라니요?
이해 못하겠어요

 

매트에 엎드려!

 

아사프예브 부모님은
공습 때 돌아가셨어요

 

사격 자세는 사격 자세야
알겠어?

 

- 마르코프
- 네

 

소총 각 부분의 이름을 대봐

 

마르크 8소총

 

개머리판

 

- 총구
- 네가 누군가의 총구다

 

그럼 그 총구는 뭐죠?

 

제군들
수류탄 준비!

 

수류탄이다!

 

그러면 안 돼!

 

바닥에 엎드려!
너 가만두지 않겠어!

 

연습용 수류탄이에요

 

레닌그라드 폭격에서
살아남은 아이라니..

 

(1944년 소련 군대가 크리미아의
시바쉬 갯벌을 건너고 있다)

 

난 예감을 믿지 않는다
난 미신도 신뢰하지 않는다

 

비방이나 원한도 겁내지 않는다

 

세상에 죽음은 없다

 

모두가 불멸이고
모든 것이 불멸이다

 

죽음을 두려워 마라
17살이든 70살이든

 

현실과 빛만 있을 뿐

 

이 세상엔 죽음도 어둠도 없다

 

결국 우리 모두 해변에 닿아
나는 낚싯대를 던질 것이다

 

불멸이 몰려오면 한 집에 살라
그것은 결코 무너지지 않을지니

 

어느 세기라도 내가 끄덕이면
거기 들라, 내가 세울 집에

 

그 때문에 너희 아이들이
나와 함께 먹고

 

아내들이 내 식탁에 함께 한다

 

할아비와 손자 모두가
한 식탁에서 할 것이다

 

미래는 지금 만들어지고 있다

 

내가 물결에 손 들 때면
오색 빛이 네게 깃들지니

 

나는 어깨로 버팀목처럼
지난 나날을 떠받쳤고

 

세상폭 걸음으로 시간을 쟀고
우랄 산맥 넘듯 그것을 지나왔고

 

내 자신의 때까지
나는 시대를 골랐다

 

우리는 남쪽을 향했다
먼지 휘날리며

 

잡초 연기 속에 한가하게

 

더듬이 편자에 대고
메뚜기는 예측했다

 

내게 죽음을 예언했다
수도승처럼

 

하지만 내 운명은
내 안장에 묶고

 

나는 지금 달린다
다가오는 시간 속을

 

등자를 몰아댄다
나의 길을 향해

 

나의 불멸은 더없이 충분하다
시대를 흐를 내 피를 위해

 

한결같은 온기와 천국의
안전과 진실을 위해

 

내 생명 자진하여
기꺼이 바치리

 

그 덧없는 바늘 같은 칼이

 

실처럼 나를
온 세상에 이끌지 않았다면

 

(1945년 소련군이 프라하를 해방시키다)

 

(1945년 모스크바의 승리 행렬)

 

(1945년 히로시마의 최초의 원자탄)

 

(1965년 중국)

 

(1965년 다만스키 섬에서 소련의
국경방위군이 중국 데모대를 만나다)

 

마루샤, 애들은?

 

애들은 어딨어?

 

알료슈카, 책 훔쳤다고
다 이를 거야

 

뭘 어떻게 한다고?

 

- 이러지 마!
- 어디 한번 가서 말해봐!

 

말할 거야, 두고 봐

 

마리나!

 

자 보라, 성전의 베일이
두 동강으로 찢어졌다

 

위에서 아래로

 

땅이 흔들리고
바위가 갈라지고

 

무덤이 열렸고

 

잠자던 많은 성인들의
시체가 일어났다

 

더 자주 좀 보러 와
애가 얼마나 그리워 하는데

 

이러면 어때, 나탈리아
이그나트를 내가 데리고 살면

 

진심이야?

 

당신이 그랬잖아
애도 그러고 싶어한다고

 

당신한텐 무슨 말을 못해

 

내가 재미로 이러는 줄 알아?

 

애한테 물어보자고
본인이 어떻게 결정하든

 

그럼 당신 인생도
훨씬 더 편해질 거야

 

왜 내가 더 편해져?

 

이그나트

 

교과서는 챙겼니?

 

아버지께 작별 인사 해라

 

엄마하고 나하고
너한테 물어 볼게 있는데

 

뭔데요?

 

나랑 사는 게 낫지 않겠니?

 

어떻게요?

 

아빠랑 같이 사는 거야
넌 다른 학교에 다니고

 

엄마한테 그런 말 안했어?

 

무슨 말을? 언제요?
아니요, 그럴 필요없어요

 

정말 닮았어, 안 그래?

 

전혀

 

당신 어머니께 뭘 원해?
어떤 관계를 원해?

 

당신 어릴 때 가졌던
그런 관계는 불가능해

 

당신은 죄책감을 말하는데

 

당신 때문에 어머니
인생이 희생됐다고

 

당신은 그걸 못 벗어나

 

그 분께 필요한 건 당신이
다시 아기가 되는 거야

 

그래서 품에 안고
지킬 수 있게

 

내가 왜 참견하지?

 

항상 이래

 

왜 울어? 이유가 뭐야?

 

그 사람과 결혼해? 말어?

 

- 내가 아는 사람이야?
- 아니

 

우크라이나 사람이야?

 

무슨 상관이야?

 

- 뭐 하는 사람인데?
- 작가

 

이름이 혹시
도스토예프스키 아냐?

 

도스토예프스키

 

제대로 된 작품도 없고
아무도 모르잖아

 

마흔 쯤일 걸
보아하니 재능이 없어

 

당신 너무 변했어

 

재능도 없고
쓰는 것도 없고

 

쓰는데 출판을
안 해주는 거야

 

봐, 우리 귀한 얼치기가
불을 질렀어

 

나한테 벌금이 떨어질 걸

 

낙제했다고 그렇게
비꼴 필요는 없잖아

 

학교를 못 마치면
군대에 끌려 갈 걸

 

당신은 면제시키려고
애걸하러 다닐 테고

 

당신이 그렇게 키웠어

 

근데 군대는 애한테
도움이 될 거야

 

왜 어머니께 전화 안해?

 

리쟈 아주머니 돌아가시고
사흘을 누워계셨어

 

- 몰랐었어
- 절대 전화 안하지

 

5시에 여기
오시기로 하셨는데

 

먼저 전화하기가
그렇게 힘들어?

 

이그나트 얘기 중 아녔어?

 

내 탓도 있겠지

 

아니면 우리가 그만큼
부르주아가 된 건가?

 

우리의 부르주아화는
그렇게 난해하고 아시아적이지

 

사유 재산의 부재 속에
복지는 향상 중이고

 

아무것도 더는 말이 안 돼

 

왜 그렇게 짜증 내?

 

한 친구는
15살 아들이 그랬대

 

"저 떠나요, 보기 싫어서요

 

"두 분이 사람들 눈치 보며
애둘러 대는 게요"

 

똑똑한 녀석
우리 얼치기 같지 않아

 

우리 애는
절대 그런 말 못 할 걸

 

그 집 상상이 가네

 

우리 보다 나쁘진 않아

 

친구는 신문사에서 일하고
자칭 작가이기도 해

 

뭐 그 친구는 이해 못하지만

 

책은 돈벌이가 아니라
표현의 수단이라는 걸

 

시인의 소명은
영적 울림을 일으키는 거지

 

우상숭배자
양성이 아니라는 걸

 

어쩌지? 정말 모르겠어

 

어쩌다니? 결혼해

 

누구였는지 기억나?
불 타는 나무를 본 게

 

나무 모습의 천사였던가?

 

기억 안 나
어쨋든 이그나트는 아녔어

 

저 녀석 사관학교에
보내야 할까봐

 

그래, 모세에게야

 

나무에서 불꽃 형상의 천사가
모세에게 나타났고

 

그는 자기 민족을 이끌고
바다를 건넜지

 

왜 나한테는
그런 게 안 나타날까?

 

나 정말 규칙적으로
계속 같은 꿈을 꿔

 

내게 사무치도록 소중한
한 장소로 돌아가게 돼

 

옛날 할아버지 집으로

 

40년 전 내가 태어난
바로 그곳 저녁 식탁으로

 

들어가려 할 때마다
뭔가가 방해를 해

 

이런 꿈을 꾸고 또 꿔

 

통나무벽과
어두운 현관이 보이면

 

꿈속에서도
꿈이라는 걸 알게 되고

 

그럼 벅찬 기쁨도 사그라져
깰 걸 아니까

 

어떤 땐 웬일인지
그 꿈을 안 꿔

 

내 어린시절
그 집과 소나무들을

 

그럼 난 우울해져서
꿈꾸고 싶어 안달하게 돼

 

내가 다시 애가 되고
다시 행복을 느끼는 그 꿈을

 

모든 게 아직 남아있고
모든 게 가능하니까

 

엄마

 

- 엄마, 문 열려있어요
- 너 왜 그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 '나데즈다 페트로브나'죠?
- 제가 아는 분인가요?

 

'마트베이 이바노비치'가
제 계부세요

 

부인 남편 친구셨죠

 

'마트베이 이바노비치'라면?

 

마트베이 이바노비치, 의사요
전에 여기 사셨는데

후에 '유레베츠'에 가서
법의학자가 되셨죠

 

거기 출신이세요?

 

모스크바 출신이지만
유레베츠에 방을 얻었어요

 

지난 가을에 왔죠

 

모스크바에 폭격이 시작돼서
전 아이가 둘이고

 

어머니 아시는 분들이
여기 있어서요

 

남편 드미트리는 여기 없어요
시내에 나갔어요

 

긁지마, 천 번은 말했다

 

실은 아주머니 뵈러 왔어요
여자끼리 긴히 할 말이라

 

좋아요, 들어와요
거기 서 있지 말고

 

발 잘 닦아요
마샤가 막 청소했으니

 

잠깐 여기 앉아 있어
오래 안 걸릴 거야

 

왜 어두운 데 앉아 있니?
불이 꺼졌어?

 

우릴 부르지 않고

 

- 이름이 뭐니?
- 알료샤예요

 

저도 아들이 있어요
물론 얘처럼 크진 않지만

 

요즘은 애 갖기 힘들죠
전쟁중이니

 

저도 딸이 있었으면 해요

 

- 보실래요? 자고 있어요
- 깨우면 어떡해요?

 

조용히 하면 되죠
정말 귀여워요

 

얼마전엔 아빠에게 묻더군요

 

왜 5코펙 동전이
10코펙짜리 보다 더 크냐고요

 

전 어이가 없었어요
남편은 말문이 막혔고요

 

남편은 딸을 원했어요
'로라'라고 이름까지 골랐죠

 

전 아기용품을
다 분홍으로 준비했는데

 

모두 새로 장만해야 했어요

 

고생했죠, 저 악동 때문에

 

우리가 깨웠지?

 

엄마라는 사람이
떠들어 대기나 하고

 

누가 찾아왔게?

 

낯선 사람들?
왜? 일어나기 싫어?

 

그래 그럼 자야지
귀여운 것, 자라

 

나한테 어울리나요?
그리고 반지는...

 

- 왜 그래요?
- 좀 메스꺼워서요

 

먼 거리를 오셨죠
그 생각을 못했네요

 

마셔요, 따뜻해질 거예요

 

떠들기만 하고
식사 준비할 땐데

 

언제 나왔어요?

 

신경 쓰지 마세요

 

- 어떻게 그냥 보내요?
- 오기 전에 먹었어요

 

애 기침소리가 좋지 않네요

 

아무데나 설치고 나다녀서요

 

남편 보고 진찰해 달래야겠어요

 

아뇨, 못 기다려요
두 시간을 가야 해요

 

귀걸이는 어쩌고요?
남편한테 돈이 있어요

 

닭을 잡아야 하는데
부탁 좀 드릴게요

 

전 임신 3개월 째로
입덧을 해서요

 

소 젖만 짜도 울렁거리는데
닭 잡는 건...이해하시죠?

 

해주실 수 있겠어요?

 

저도 좀...

 

댁도 임신중이세요?

 

아니요, 그게
해 본 적이 없어서요

 

별거 아니에요

 

물론 모스크바에서는
죽은 닭을 사먹었겠죠

 

여기서는 제가 다 해요
이 나무통에서요

 

여기 도끼요
남편이 아침에 갈았어요

 

- 여기 이 방에서요?
- 밑에 대야를 놓고요

 

내일 한 마리 가져가시고요

 

그럴 순 없어요

 

알료샤한테 부탁할까봐요
그래도 남자니까

 

왜 알료샤를?

 

그럼 꽉 잡아요, 꽉!
달아나면 그릇 다 깨요

 

아...속이 안 좋네

 

괜찮아, 진정해

 

다 잘 될 거야

 

몹시 아플 때만
당신을 보다니 슬퍼요

 

- 내 말 들려요?
- 응

 

공중을 떠다니는 기분이에요

 

왜 그래, 마루샤
속이 안 좋아?

 

놀라지 말아요
쉽게 이해할 수 있어요

 

사랑해요

 

벌써 가시게요?
귀걸이 값은 어쩌고요?

 

- 드미트리가 곧 올 텐데
- 생각을 바꿨어요

 

시내까지 15리나 되고
곧 어두워질 거예요

 

괜찮아요, 걱정마세요

 

사람이 가진 건 하나
몸둥이 뿐 단세포처럼

 

영혼은 지겹다
너무 단단한 그 껍질이

 

가진 귀, 입, 눈
동전 크기에

 

살갗 온통 흉지고 갈라져
해골을 덮고 있다

 

각막을 통과해 날아간다
천상의 봄을 향해

 

얼음 가득한 투석기를 향해
새들이 가져온 전차를 향해

 

살아있는 감옥의
쇠창살 사이로 듣는다

 

들판과 숲의 버석거림을
일곱 바다의 후렴을

 

몸 없이 영혼은 벌거숭이
옷 없는 몸 벌거숭이처럼

 

마련된 생각 없어 소용없고
떠오른 발상 없어 말없다

 

답 없는 질문 하나:
춤꾼 없는 무도회에서

 

돌아올 수 있는 사람은
발자국을 남긴 적 있을까?

 

난 또 하나의 영혼을 꿈꾼다
완전히 다른 차림에

 

실직과 희망을 오가며
다 타버린다

 

알콜처럼, 그리고 떠난다
그림자도 드리우지 않고

 

라일락 향기 초원만
기념품처럼 남기고서

 

계속 가, 아이야, 가여운
에우리디케의 운명 한탄 말고

 

세상 끝까지 계속 굴려라
네 구리 굴렁쇠 모두가 보게

 

네 발걸음에 답하는 한
미미할지라도 어조가 되고

 

땅은 모든 약동하는 뼈에게
밝고 활기찬 신호를 보낸다

 

엄마, 석유등에서 연기나요

 

뭐?

 

모든 게 그에게 달렸어요

 

목 아픈 게 그런
여파가 있을 수 있나요?

 

목 아픈 건 상관 없어요

 

- 흔히 있는 일이죠
- 흔해요?

 

아시다시피..

 

어머니가 갑자기 죽고
그리고는 아내와 아이가..

 

꽤 건강했었더라도
며칠이면 더는 아니죠

 

그 사람 가족은
아무도 안 죽었어요

 

그런 게 있죠
양심, 기억 같은 거

 

기억이 무슨 상관이죠?

 

- 무슨 죄를 졌나요?
- 자기가 그렇게 생각해요

 

날 좀 내버려둬요

 

- 뭐라고 했나요?
- 날 좀 내버려둬요

 

난 행복해지고
싶었을 뿐이에요

 

그래요?

하지만 당신이 이러면
어머님은 어떻게 되시겠어요?

 

별거 아니에요
다 잘 될 거예요

 

다 잘 될 거예요

 

아들이 좋겠어?
딸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