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하나미 : '벚꽃 구경'이라는 뜻의 일본어)

 

난 항상 그이와
일본에 가 보고 싶었다

 

그냥 한 번 후지산에
벚꽃을 보러, 그이와 함께

 

남편 없이 하는 구경은
난 상상도 할 수 없으니까

 

그건 구경도 아닐 테니까

 

그이 없이 내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부인께 우선
상의드리고 싶었습니다

 

남편께서 이런 상태를
받아들이실 수 있을지

 

다들 반응이 달라서요

 

병이 어떻게 진행될지
말씀드리긴 힘듭니다

 

한동안 남편께 아무런
증상이 없을 수도 있고요

 

뭔가 함께 하는 걸
생각해 보시는 게

 

여행이나

 

작은 모험 같은

 

그 양반은 모험을 싫어해요

 

그인 오히려 변하지
않는 걸 좋아한다

 

아무것도, 전혀

 

그인 매일 아침 7시 28분
바일하임행 기차를 탄다

 

그인 전엔 우체국에서 일했었고

 

지금은 폐기물 관리국장이다

 

"재활용은 좋은 것이고
재사용은 더욱 좋다"

 

20년간 아팠던 건
딱 한 주, 1991년

 

독감과 중이염에

 

그인 매일 오후 1시에 내가 싸 준
샌드위치와 사과를 먹는다

 

"사과 하나면 의사는 필요 없어"
매일 아침 그인 말한다

 

사과 하나면 의사는 필요 없어

 

어서 와요, 여보

 

오늘은 어땠어요?

 

뭐 그냥...

 

당신은?

 

좋았어요

 

- 당신 배 안 고파?
- 네

 

더 낮게요, 엘케!

 

미소 지으면서, 제발!

 

미소 지으면
모든 게 더 쉬워져요

 

발랄하게! 낮게!

 

벌써 온 거야?

 

칼 앙게마이어 입니다
삐 소리 후 말씀을 남기세요

 

어, 칼. 엄마다

 

난.. 난 그냥.. 그게

 

여긴 별 일 없다
또 연락하마

 

애들 보러 베를린에 안 갈래요?

 

베를린? 글쎄

 

마침내 우리 일본에 가는 건요?

 

후지는 그냥 산일 뿐이야

 

그래도 칼을 볼 수 있잖아요

 

녀석이 오는 게 더 쌀걸?

 

당신도, 참!

 

계속 갈까요?

 

난 배고파

 

뭐 먹을 거 없어?

 

출발한 지 5분도 안 지났어요

 

사과 하나면 의사가 필요 없어

 

당신도 먹어?

 

난 됐어요

 

나중에 먹을게

 

생각해 봐, 기차가
하나우에 2분 서는데

 

당신이 빨리 내리지 못하면...

 

- 플랫폼에서 만나쟀다고!
- 네

 

몇 시예요? 시계 좀 봐요

 

5분만 더 기다려 보고

 

택시든 뭐든 잡아야겠어

 

저기요!

 

그래...

 

- 어디 계셨어요?
- 어디 있었냐, 클라우스?

 

11번 홈...

 

- 기차가 도착한 곳에
- 11번 홈, 우린 거기 있었어

 

- 클라우스, 잘 있었니
- 어서 오세요, 엄마

 

우리 20분 기다렸다

 

저도 20분 기다렸어요!

 

- 네?
- 괜찮다

 

- 제가 들게요
- 아니야

 

곧장 가세요

 

엄마, 그 꽃 침대!

 

엄마, 조심 좀 해!

 

안녕, 여기 오셨어!

 

안녕

 

잘 있었니, 얘야

 

어서 오세요

 

로베르트, 셀린!

 

뽀뽀하자

 

로베르트!

 

앉으셔요
빵 좀 구웠어요

 

가져와

 

- 아!
- 하게 둬라

 

고맙다

 

- 게임기야, 빵이야?
- 애들은 놀게 둬라

 

- 커피 드실 분?
- 난 커피말고 맥주

 

어...

 

그럼 됐다

 

 

불쑥 온 걸 용서해라. 네 엄마가
갑자기 다들 한번 찾아 보자 해서

 

한 명, 한 명씩

 

도련님도요?
그거 잘됐네요

 

아쉽지만 칼은 아니다

 

왜요?
그럼 참 좋을 텐데

 

내년에 하든지
내가 퇴임하면...

 

시간이 많아지시겠죠

 

괜찮으세요?

 

그냥 사레들린 거야

 

- 물 좀 드려요?
- 아니야, 괜찮아

 

- 고모, 어디 있었어요?
- 미안해요!

 

무슨 바람들이시래?
이렇게 불쑥

 

내가 알아요?

 

- 얼마나 계실 거래요?
- 말씀 없었어요

 

난 시간 없어

 

우린 있는 줄 알아요?

 

오셨어요!

 

여보, 나중에

 

냉장고에 넣어야 해

 

고맙지만 아빠, 난
6년 전부터 채식주의자야

 

저희 다 주세요
좋아하니까

 

근데, 이건 점심 전에
먹는 거 아닌가요?

 

아니야, 오늘 저녁에 먹어야지

 

네, 그럼 오늘 저녁에 먹죠

 

불쌍한 것, 우리가
네 방을 뺏는구나

 

괜찮아요

 

넌 안 좋아하는구나?

 

네, 정말

 

죄송해요

 

- 그래, 소시지 더
- 고맙습니다

 

내일 구경 가실래요?

 

제가 드라이브 좀
시켜 드릴게요

 

시내 구경이요

 

어, 그래

 

- 그리곤 너한테 들러 커피 마시고
- 응, 좋아

 

네 엄만 뭔 춤 공연을
보고 싶어했는데

 

맙소사, 우리 다 가야 해요?

 

유명한 부토 무용수가
일본에서 왔대

 

- 부토, 그게 뭐죠?
- 현대 일본 무용의 일종

 

맥주 더 할까?

 

저도 하나요?

 

- 나 그거 안 봐도 돼
- 보러 가세요

 

뭐 다들 좋아하는 걸 하자

 

저희도 같이 가고 싶어요

 

응, 엄마! 해 봐

 

응. "하루살이"

 

어서요, 엄마

 

엄마, 한 번 해 줘

 

응, 엄마, 제발!

 

"멈춰! 그건 살생이야"

 

"그런 잔혹한 짓은 안 돼"

 

"그 하루살이에겐
짧은 하루밖에 없어"

 

"고통의 단 하루"

 

- "욕망의 단 하루"
- "욕망의 단 하루"

 

"오, 거기 떠돌게 놔두렴
죽음을 맞을 때까지"

 

"그의 천국은 영원하고
그 보상인 그 생은 단 하루"

 

맞아, 엄마?

 

그만 해요!

 

- 자, 준비됐어요!
- 저기 새 같은 걸 봐라

 

- 어서
- 깜박인다

 

빨리!

 

다들 웃어요

 

'김치'!

 

- 아빠도 웃어요!
- 웃고 있잖아

 

상관없어

 

- 셀린, 너 그거 좀
- 얜 우리 가족 아닌가 보지

 

- 그렇지
- 선글라스 좀 벗어!

 

자! 좋아, 모두

 

모두 카메라 보고

 

자, 지금!

 

예~!

 

잘하는구나

 

좀 더 해 드려

 

아이구 좋다

 

어디서 배웠니?

 

몰라요, 저한테서

 

너한테서!

 

더는 못 하겠어요

 

고맙다

 

잘했어요

 

아, 시원하다

 

정말 좋아하시는구나

 

아버님, 어머님한테 보낼 걸
깜빡했지만

 

도련님이 항상 보내 드리니까 뭐

 

내 건 놔두고

 

- 오빠네 걸 먹고 싶네
- 그게 맛있지!

 

아, 맛있다!

 

아, 맞다

 

나 내일 종일 회의야

 

- 정말 지겨워!
- 그럴 수가

 

저 양반들 어쩌지?

 

당신 같은 양반이
하는 짓이 그렇지!

 

당신이 구경시켜 드린댔어!

 

미안해, 그게 깜빡했어!

 

난 시간 없어

 

난 커피와 케익까지야
그것도 버거워

 

우리가 모시고 있어요

 

벌써 미치게 만드시는군

 

고모, 오늘 막 오셨어요

 

이런 내가 싫지만
나 정말 미치겠어

 

좀 있음 나 돌 거야

 

맙소사
난 파리를 잡았고

 

그러게, 왜 그랬어?

 

알아. 아무튼 고마워, 여보
그래, 그러는 게 아닌데

 

그래, "하루살이"

 

맞아, 그리고 저 양반들이
신경쓰는 건 칼뿐이고

 

응?

 

저분들 관심은 칼뿐이라고

 

- 뭐 항상 그랬잖아
- 내가 뭘 하든 관심도 없어

 

내 일엔 뭐 신경쓰시는 것 같니?

 

"칼을 보렴! 귀엽지 않니!"

 

"쟤가 만든 걸 봐
쟤 정말 잘 놀지 않니"

 

"클라우스, 칼 좀 가만 둬!
저리 가"

 

아니, 기억나?
"카로! 클라우스! 칼이 놀게 둬..."

 

- 응, 이쁜이!
- 얘야

 

- 왜 그러니?
- 잠이 안 와!

 

내 방에 가고 싶어

 

그래, 아가, 알아
오래 안 계실 거야

 

언제까지?

 

영원히!

 

피곤해요?

 

- 아니, 괜찮아
- 나도요

 

어...

 

- 다들 잘 있어서 다행이에요
- 그래

 

참 웃기죠

 

쟤들 어릴 때 기억은 생생한데

 

지금 저렇게 나이든 모습은
정말 낯서네요

 

뭐 실망한 거라도 있어?

 

이젠 남인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뭐, 다들 건강하잖아

 

그럼 됐지, 뭘 바라

 

 

- 얼마 동안 계신대?
- 몰라

 

네가 챙겨 드려야지!

 

어떻게? 나 시간 없어

 

난 그분들이 좋은데
우리 부모님도 그랬음 좋겠다

 

그래, 넌 잘 모르니까

 

뮤지컬 공연 티켓이라도 끊을까?

 

엄만 그거 싫어하셔

 

정말 늙어 버리셨어

 

세상에

 

그래, 사람들 변해가는 게, 참

 

우린 어떤 모습이 될까?

 

몰라

 

그냥 늙지 않을 거야

 

오늘 뭘 하신대?

 

난 못 해

 

우리가 그분들과
뭘 할 수 있겠어?

 

안 돼, 안 돼, 안 돼

 

제발

 

너 지금 꼬시는 거야, 뭐야?

 

제발...

 

안 돼, 가구점 때문에
나 시간 없잖아

 

나도 없어

 

안 돼, 정말
할 일이 너무 많아

 

- 안 돼! 안 돼
- 제발, 제발

 

- 안 돼. 안 돼
- 제발

 

제발

 

그럼...

 

밖에 왔네요

 

자, 그럼 낡은 아파트를 보시죠
카로와 전 저기에 살아요

 

바로 저 창살 너머요
아주 쓸모 있고 엉망이죠

 

근데, 개조가 안 돼서
석탄 때기가 짜증이에요

 

아, 정말! 알았어!
지금 갈게!

 

그래, 미안!
엿이나 먹어, 등신아!

 

왼쪽은 유대교회의
황금 돔이고요

 

정면에는 아름다운
TV 타워군요, 보세요!

 

우와, 돈 좀 썼는데?
이 케이크 좀 봐

 

집에선 케이크 사 온 적 없었잖아
안 그래, 엄마?

 

오늘 고마웠다, 프란치

 

오늘 구경 잘했어, 고마워

 

고마워!

 

- 재미있으셨어요?
- 그래, 좋았어

 

이 맥주 맛있네
이젠 맥주를 거의 못 마셔

 

그거 잘됐군요

 

칼은? 걔도 여전히 술 마시니?

 

내가 어떻게 알겠어?

 

칼은 절대 많이 안 마셔

 

아니, 많이 마셨어
한동안 술고래처럼

 

- 그건 정말 아니다
- 말도 안 돼!

 

칼은 도쿄에 사귀는 여자 있니?

 

엄마, 항상 전화하잖아
걔한테 물어봐

 

"칼, 어떻게 지내니?
여전히 술 마시니? 여자는?"

 

그럼, 이제 우리 뭐 하죠?

 

뭐 하고 싶으세요?

 

피곤해서 바로 눕고 싶으실걸?

 

6시도 안 됐나?

 

요리라도 해요?

 

아니다, 프란치
그만, 됐다

 

가요, 여보

 

태워 드려요?

 

아니

 

프란치!

 

전철이나 타요

 

우리 촌사람들한텐
그것도 과분해

 

살펴가세요

 

이리 오렴

 

내일 봬요

 

내일?

 

- 데이트가 있단다
- 아

 

아빠!

 

- 잘 있거라!
- 안녕히 가세요!

 

잘 가, 엄마

 

가서

 

와인이나 좀 마시자

 

뭘 좀 마셔, 응

 

- 나 엉망이야
- 아니야!

 

어디로 가야 하지?
헤르만스도르프?

 

네?

 

베를린 센터. 그게 어디야?
중앙 어디에 있는 거 아니야?

 

잔돈 좀 줘 봐

 

얼마요?

 

차 떠난다!
알아챘어야지!

 

- 이건 안 들어가
- 다시 해 봐요

 

돈도 안 먹고
표를 어떻게 사라고?

 

이걸로 해 봐요

 

안 들어가
안 들어가

 

- 우리 베를린이 이 꼴이라니까
- 여보, 지폐가 필요한가 봐요

 

다들 정신 나갔어
기계, 안 나오는 표

 

어디 보자...
베를린 AB, 내 말대로야

 

이젠 뭐예요?

 

한 장 더 있어야지

 

아무튼 이젠 누구든
탈 표가 하나 있잖아요?

 

읽어 봐 "두 사람이
같이 쓸 수 없다"라잖아

 

이건 돈도 안 먹고

 

난 걸어갈까? 당신이?
아님 한 명은 그냥 타? 어떻게 해?

 

여보, 흥분하지 말아요

 

난 흥분한 게 아니라
화가 난 거야

 

나 집에 가고 싶어졌어

 

아, 여보

 

한 놈도 시간
있는 놈 없다잖아

 

- 발틱이 멀진 않죠
- 어?

 

마지막으로 그 해변에
간 게 언제였죠?

 

해변에?

 

기억이 잘 안 나네

 

1987년? 애들이랑?

 

그건 가르다 호수였나?

 

해변에 가고 싶어?

 

네, 갈래요?

 

- 당신이 원한다면
- 뭘 하고 싶어요?

 

난 항상 당신
시키는 대로 하잖아

 

해변도 예전
그 해변이 아니야

 

으이그 늙은 투덜이
안 추워요?

 

왜 그래?

 

이리 들어와요

 

- 뭐?
- 따뜻해요. 어서

 

내일은 일찍 일어나서
해변을 좀 거닐자고

 

응? 해변 산책이요?

 

멋지네요!

 

내 뼛가루는
바다에 뿌렸으면 해

 

왜 그런 말을 해요?

 

그냥, 당신은
그런 생각 안 해 봤어?

 

정말? 난 항상 생각해
우리 살 날이 얼마나 남았는지

 

여보...

 

그래, 맞아
괜히 그럴 필요 없지

 

여태까지 우린 행복했고

 

앞으로 얼마 못 산다면
당신은 뭘 하고 싶어요?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을 살라지만, 뭘 해?

 

난 아무것도 다른 건
안 해, 아무것도

 

아침에 출근했다 저녁에
당신 있는 집에 와야지

 

난 그럴 거야

 

그래요

 

잠 안 와요?

 

파도 소리가 너무 커

 

- 이젠 저것까지
- 당신도, 참!

 

좋잖아요

 

당신은 정말 못 말려

 

응, 어서!

 

지금 뭘 하자고?

 

어차피 잠도 안 오잖아요

 

그만 해!

 

한밤중에 춤을?
딴 사람들 자는데

 

- 당신 왜 그래?
- 아무것도 아니에요

 

왜요? 잘 못 쉬었어요?

 

잘 못 잔 거예요?

 

- 당신은 잘 잤지
- 나요? 한숨도 못 잤어요

 

당신 푹 잤잖아

 

집에 가자

 

베를린도 봤고
발틱도 봤고

 

애들도 봤으니
집에 가야지

 

당신, 애들 보면
기뻐할 줄 알았는데

 

난 걔들을 모르고
걔들도 날 모르잖아

 

그만한 애들 없어요

 

그래, 우린 행운아야

 

둘이 함께 있으니
정말 행복한 거지

 

왜, 또?

 

아니에요

 

그냥 잘 못 자서 그래요

 

내가 깰 때마다 보니
잘만 자더만

 

바다 정말 고요하군

 

항상 이렇게 늦잠이구만

 

해가 중천이야!
일어나, 게으름뱅이!

 

여보

 

여보

 

아빠, 칼이 왔어요

 

바다가 너무 조용해

 

자요

 

저렇게 관 속에
누워 계시다니

 

난 한동안 뵙지도 못하다
이제 다신 못 뵌다니

 

찾아뵙지 못하면, 도쿄에
모시기라도 했어야 했는데

 

난 아무것도 안 했어

 

이젠 할 수도 없고

 

이제 우린 아빠를 모셔야 해

 

- 내가 뭘 어떻게?
- 나도 알아

 

우리 어릴 땐 바닷가에
한 번도 안 왔지

 

항상 산에만 갔지

 

이태리에서 갔었어

 

- 거긴 바다가 아니었어
- 가르다 호수

 

알프스 넘어서
그로스로크너에 갔을 때

 

그래, 우린 다 멀미하고

 

그래도 엄마가
비닐봉지를 다 챙겼지

 

그땐 정말 쌩쌩하셨는데

 

그때 몇 살이셨지?

 

지금 우리보다 좀 더 됐나?

 

엄마는 거의 모든 생을
너희들과 내게 바쳤어

 

그렇게 보내시는 게 아닌데

 

같이 가 드려요?

 

이건 아니야, 저렇게 혼자
남겨두고 가시다니

 

- 일부러 그러신 게 아니잖아
- 그래, 알아

 

엄마였다면 견디셨을 거야
별 문제 없이

 

하지만 아빠는?
우리가 뭘 어떻게?

 

넌 언제 돌아가?

 

오래 못 있어
베를린에서 내일 오후 비행기야

 

우리도 가야 해

 

우리도요
애들이 이웃에 있어요

 

가방 누가 챙겼어?

 

무슨 가방?

 

엄마 가방, 괜찮으면
기모노는 내가 가질게

 

부엌에서 입으시던 거

 

그래

 

이젠 다 끝났어
상상도 못 했는데

 

이렇게 갑자기 갈 줄 알았으면

 

좀 더 잘해 주는 건데

 

아빠, 그건 아무도 몰라요

 

여기 다 모여서 다행이야

 

칼, 엄마가 널 봤다면
정말 기뻐했을 거야

 

이제 어쩌실 거죠?

 

익숙해져야겠지

 

내 걱정은 마라

 

고마워요

 

언니, 나 와인 좀 더

 

미안하다

 

- 얼마나 상심이 크십니까?
- 고맙습니다

 

이쪽은 카롤린이겠죠

 

아니요, 카롤린은 베를린에,
막내는 일본에 있습니다

 

그럼 클라우스는 어디 있죠?

 

- 중요한 회의가 있어서
- 그렇군요

 

애도를 표합니다

 

애도를 표합니다
애도를 표합니다

 

그 사람 베를린에선
그 춤 공연이 제일 좋았댔어

 

너만큼 좋은 앤 못 봤대

 

그렇지도 않아요
왜 그렇게 생각하셨지?

 

제게 말씀하셨어요
얼마나 춤을 추고 싶었는지

 

당신이 다른 무엇보다 얼마나
부토 무용수가 되고 싶어했는지

 

그걸 배우러 얼마나
일본에 가고 싶어했는지

 

그리고 모든 게 어떻게
틀어져 버렸는지요

 

잘 살아왔지만...
행복하지 않았단 게 아니라

 

제 생각에, 어머님 안에

 

아무도 보지 못했던
또 다른 어머님이랄까

 

그걸 제가 본 것 같은
그런 거요

 

어머님이세요?

 

난 싫어했어
너무 과격해서

 

당황스러워서
난 그만뒀으면 했지

 

우린 그 사람을
여기 가뒀던 거야

 

그래도 여기서 행복하셨어요

 

분명히

 

모르겠어

 

잘 가거라

 

- 안녕히 계세요
- 그래

 

- 조심해서 가거라!
- 네!

 

후지산의 백 가지 풍경

 

여보, 어디 있는 거야?

 

어디?

 

- 아빠
- 아!

 

난 네가 잊은 줄만 알았다

 

일찍 나올 수가 없었어요

 

- 어떻게 비행은 괜찮았어요?
- 그래

 

아빠, 어서요

 

신발 벗으세요

 

어, 그래

 

어디...

 

 

- 내 걸 가져왔다
- 네

 

그리 크진 않구나

 

 

뭐 좀 마시실래요?

 

엄마가 항상 네게 보내던 거

 

일본에 이런 빵은 없지
소시지도

 

그리고 이거, 두 가지 맛

 

아빠, 저 사무실에 가야 해요

 

너 하는 일이 정확히 뭐니?

 

난 통 모르겠더라

 

5년이 지나 물어보시다니
전 숫자와 씨름해요

 

아빠가 쓰레기 요금
부과하는 것과 거의 같아요

 

보세요, 라디오, 에어컨
위성수신기, TV

 

저녁 때 봬요

 

6시쯤에 올게요

 

사랑하는 칼,
이건 두 번째 절이란다

 

오, 거기 떠돌게 놔두렴
죽음을 맞을 때까지

 

그의 천국은 영원하고
그 보상인 그 생은 단 하루

 

- 뭐 딴 거 드실래요?
- 아니, 됐다

 

구경은 내일 생각해요
전 오늘밤 늦으니까요

 

알았다

 

죄송해요. 제가 바쁜 걸
미리 말씀 못 드렸어요

 

- 너무 신경쓸 거 없다
- 그런 말씀 마세요

 

왜 두 분이서 한 번도
안 와 보셨어요?

 

시간이 더 있을 줄 알았지

 

네 엄마에게 가장
소중한 걸 내가 빼앗았어

 

죽은 자에겐 해 줄 수
있는 게 없으니

 

아빠

 

여기, 엔화예요
나중에 태우러 올게요

 

여기서 떠나지 마세요
길 잃으시면 안 되니까

 

- 전 저기서 일해요
- 어느 빌딩?

 

저기 검은 거 옆이요
그럼 나중에 봬요

 

어...맥주

 

고마워요

 

난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아빠! 어디 있었어요? 미쳤어요?

 

얼마나 걱정했는데
영원히 못 찾는 줄 알았어요

 

이럴 수가!

 

그 초인종, 당췌
읽을 수가 있어야지

 

누가 어디 가시랬어요?

 

여기 아무것도 모르겠어

 

- 가만 계시랬잖아요
- 난 이해 못 했어

 

전 거기 계시랬어요

 

여기가 얼마나
큰 도시인지 아세요?

 

깜빡하다간 길 잃어요

 

루디 앙게마이어
080 547 6587

 

- 안녕, 아빠
- 안녕

 

- 오늘 어떠셨어요?
- 그저 그랬어

 

- 밖에 안 나가셨어요?
- 어

 

핸드폰은 쓸 줄 아세요?

 

보세요

 

이걸 한 번 누르세요

 

- 봤다. 네 사진이 있더구나
- 맞아요

 

보세요, 제 번호예요

 

- 뭐 좀 드셨어요?
- 어

 

안 드셨죠?

 

그 사람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어

 

그 몸이 어디 있는지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이
내 몸 안에 있어

 

근데 내 몸이 없어지면
그 사람은 어디 있게 되지?

 

아빠, 아빠
엄마 일은 나도 슬퍼요

 

하지만, 정말

 

삶은 계속된다는 말은 말거라
제발

 

이게 바이에른 스타일이야

 

바이에른 스타일

 

벚꽃, 덧없음의
가장 아름다운 상징

 

단 며칠 이렇게 피었다가

 

곧 사라지는

 

그런 거죠

 

아빠, 우리 아빠예요!

 

좋죠, 어, 아빠!

 

건배, 건배, 건배!

 

절 애 취급 마세요!

 

잘 시간이다

 

이렇게 재워 주시는 건
처음일걸요?

 

다들! 즐겨요!

 

어째 이렇게까지 마셨니?

 

- 다들 항상 아빠를 챙겨야 하고
- 자, 어서

 

아빠는 항상 주인공이셔야 하죠

 

팔 이리 내 봐!

 

네 아빠를 생각해!
불쌍한 네 아빠!

 

아빠 좀 가만두렴!
피곤하셔!

 

너무 열심히 일해서
사무실 뜨기도 힘드셔!

 

됐다, 그만 해라

 

그렇게 평생
일에 숨어 지내셨죠!

 

진짜 엄마를 알지도 못하고!

 

아빤 엄마를 몰랐어요!

 

몰랐어요
바보 같은 아빠

 

나가요!

 

쓰레기차에나 가요
거기 소속이잖아요

 

재활용도 잊지 말고요!

 

"사과 하나면 의사는 필요 없어"

 

그럼

 

전 가야겠어요

 

기다려 봐, 이거

 

네, 아빠

 

잠깐. 네 사과

 

- "사과 하나면 의사는 필요 없어"
- 의사는 필요 없죠

 

갈게요

 

갔다 와라

 

이게 뭐야?

 

금속

 

플라스틱, 플라스틱
금속, 금속

 

종이, 종이

 

자, 여보
당신을 위한 거야

 

어두운 데서 뭐하세요?

 

아무것도

 

그럼, 오늘 뭐 하셨어요?

 

별 거 없어

 

종일 아무 것도
안 하셨다고요?

 

한 거야 많지

 

네 엄마 생각하며
그 사람한테 도쿄도 보여 주고

 

 

관광 여행 어떠세요?

 

여기서 후지산은 머니?

 

한 2시간이요

 

아, 그래?

 

시간 나면 모셔 드릴게요

 

근데, 여긴 주말에도 일하거든요

 

아, 그래?

 

그 말, 일본 말로도
"아, 소~"인 거 아세요?

 

아, 그래?

 

공짜로 안아 드립니다

 

- 공짜?
- 네

 

돈?

 

아니요
공짜예요

 

이게 뭐죠?

 

- 고맙습니다
- 고마워요

 

- 즐거운 하루 되세요
- 고마워요

 

- 잘 있어요
- 네

 

...내 말 들어 봐...

 

아니. 그래

 

여기서도 다른 게 없으셔

 

날 미치게 하셔

 

종일 주변에 앉아만 계시고

 

나도 어쩔 줄 모르겠어

 

시내에 볼 만한 건
벌써 다 보셨어

 

매일 어떻게 이벤트를
생각해내? 시간도 없는데

 

할 말은 아니지만
정말 걸리적거리셔

 

이상하시고

 

아빠가 현금을 몽땅
다 가져오신 거 알아?

 

엄마 옷도 가져오셨어
그래, 진짜

 

치료가 필요하신 것 같아
못 견디시겠나 봐

 

나도 못 견디겠어

 

누나가 좀 맡아 줘

 

아니면 형이

 

아니, 이젠 그쪽 차례야

 

언제부터 거기 계셨어요?

 

조금만 더 여기 있게 해 주렴
부탁이다

 

물론이죠

 

죄송해요

 

저기...

 

무용수예요?

 

부토 무용수?

 

 

물어볼 게 있는데

 

물어보세요

 

부토는 그림자의 춤이에요

 

내가 아니라
그림자가 추는 거예요

 

보세요
할아버지 그림자가 춤춰요

 

난 그림자가 누군지 몰라요

 

여보세요! 누구세요?

 

대답이 없네요

 

- 누구든 부토를 출 수 있어요
- 안 돼

 

아니요, 돼요

 

누구든 돼요

 

다들 그림자가 있잖아요

 

젊은이와 늙은이

 

여자와 남자

 

다들 살아 있으면서
다들 죽어 있어요

 

동시에요

 

난 죽은 사람과 춤춰요

 

그게 누군데?

 

우리 엄마요

 

언제?

 

일 년 전 어제요

 

엄마는 전화를 좋아했어요
분홍 전화기요

 

항상 통화 중, 가족들과요

 

집사람도 엄청 전화했었지

 

애들 셋, 항상 통화 중

 

이제 전 엄마와 통화 중이에요

 

언제나요

 

엄마는 제 속에 있어요

 

할머니는 어디 계세요?

 

난 몰라

 

그 사람이 어디 있는지

 

느껴 보세요, 기억이요
예전 추억이요

 

그리고 바람을 느껴요

 

그리고 꽃을 봐요
만발한 꽃들

 

그 꽃들을 품안에

 

안고, 안고, 안아요
네, 안아요!

 

그럼, 많은 그림자가 보이죠

 

할아버지 안에요

 

그림자가 사라져요

 

거기서, 기다려
기다려

 

네, 잡아요, 잡아요, 잡았다!

 

그림자를 붙잡고
그림자를 느껴요

 

춤출 때 코트는
벗는 게 나아요

 

안 돼, 안 돼

 

이건 내가 아니라

 

내 아내야

 

이름이 뭐니?

 

 

나 말고 너!

 

전 '유'예요

 

네가 나라고?

 

- 아니요, 제 이름이 '유'예요!
- 어

 

할아버지는요?

 

루디

 

루디? 루디... 루디!

 

그래, 루디

 

루디!

 

됐어요

 

여기에다...

 

그리고...

 

아, 기차 온다!

 

이걸 타세요

 

네, 잘 가세요!
다음에 봬요!

 

양배추?

 

흰 양배추

 

양배추, 양배추

 

네, 고마워요

 

그리고...

 

많이 파세요!

 

됐어

 

됐어!

 

그 사람이 어떻게 했더라?

 

자, 엄마의 요리다

 

저 나가야 해요

 

하나만

 

고마워요

 

- 두 개네요
- 그래

 

고마워요

 

- 먹자!
- 잘 먹겠습니다

 

엄마가 무척 보고 싶어요

 

이렇게 멀리 떠나왔지만

 

엄마 없이는 안 되나 봐요

 

그리고 제가 온 곳이

 

그렇게 엄마가
오고 싶어하던 곳인데

 

엄마는 보지도 못했어요

 

여기엔 파리가 없구나

 

네?

 

파리

 

여기선 한 마리도 못 봤어

 

맞아요

 

이젠 행복해요
이별 없이

 

맛있어요, 만드셨어요?

 

응, 집사람한테서

 

어, 양배추를 가지고
어, 그러니까

 

영어로 뭐라 하지? 그게...

 

양배추, 그리고, 어, 굴려

 

말아, 양배추를 말아

 

자, 두 개의 양배추말이

 

어디 사니?

 

- 사는 집이요?
- 그래

 

다른 쪽이에요

 

다른? 어디?

 

- 여기 아니에요
- 어딘데?

 

모르실 거예요

 

- 전 괜찮아요
- 그래, 알았다

 

- 괜찮으세요?
- 그래

 

- 네, 다음에 봬요
- 그래

 

그럼, 조심해서 가세요

 

안녕하세요
많이 늦으셨어요

 

왜죠? 기다렸잖아요

 

미안, 나...

 

정말 많이 기다렸어요

 

내 고향, 겨울엔 눈이 많아

 

눈, 눈, 눈

 

넌 어디 사니?

 

천막에서? 정말?

 

캠핑, 나와 아내는 여름엔
내내 고속도로에서

 

아내는 별로 안 좋아했어

 

내 아내는 이걸 좋아했어

 

살쾡이요?

 

살쾡이, 우리 속의

 

엄마는 이걸 좋아했어요

 

오리?

 

오르락 내리락, 오르락 내리락

 

기쁘다 슬프고, 기쁘다 슬프고

 

안녕, 엄마

 

아빠, 아빠는 이해 못 하세요

 

종일 전 좁은 사무실에
딴 사람들과 있어요

 

집에선 저만의
공간이 필요해요

 

아직 어린애야

 

저 나이에 거리에 나오게
될 일은 일본엔 없어요

 

- 자기가 선택한 거예요
- 누가 저렇게 살려고 해?

 

아빠, 그냥 절 믿으세요

 

자기가 원한 거라고요

 

너 사람 변했구나

 

언제 그렇게 냉정해졌어?
어떻게 된 거냐?

 

- 안녕
- 안녕

 

내 아내가 여행하고 싶어해

 

너 같이 갈래?

 

고마워요

 

- 드실래요?
- 아니, 됐다

 

이건 딸기 아이스 같아
어, 아이스

 

- 아이스크림?
- 아이스, 아이스, 어 딸기

 

달아

 

그를 못 보면 어쩌죠?

 

그? 후지산이 남자?

 

네, 부끄럼이 정말 많은

 

구름 속에서

 

잘 나오지도 않아요

 

부끄러, 너무 부끄러

 

후지산 씨는 어디 있어?

 

제가 물어볼게요

 

아하

 

산이 없어

 

부끄럼이 많다고 했죠

 

밖에?

 

카페트도 침대도 없어

 

 

훌륭한 침대

 

- 너무 꽉 조여요?
- 아니야, 아니야

 

좋아

 

됐어요

 

그리고 이거

 

멋져요

 

아, 맥주!

 

뭐 보여?

 

- 이게 뭐지?
- 닭이요

 

- 어?
- 닭

 

 

- 독일어로는 "헨들"
- "헨들"

 

아! 후지!

 

안 돼요

 

안 돼요

 

가만히

 

루디? 루디?

 

루디!

 

루디!

 

루디!

 

루디!

 

널 위해, 유
루디가

 

아버지를 위해 해 준
모든 것에 감사해요

 

전 한 게 없어요

 

할아버진 이제 행복해요

 

그렇게 생각해요?

 

할아버지, 할머니

 

애도를 표합니다

 

반 년도 안 돼
우린 고아가 됐네

 

다 꿈만 같아

 

내가 지금 여기 있다는
것도 안 믿어져

 

네가 말한 내용들이
너무 희한해서

 

아빠 이야기 하는 것 같지가 않아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드셨던 거야

 

여관에서

 

열 여덟 살 여자애와 함께라니

 

여자옷을 입고

 

엄마 옷이야

 

그래도, 결국 행복하다고
생각하셨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