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fe.of.a.Spy.2020.JAPANESE.1080p.WEBRip.x264-VXT

1940년 고베 명주실 검사소

 

스파이의 아내
(スパイの妻, Wife of a Spy, 2020)

 

- 이리와
- 저항하지 마

 

죄목이 뭐죠? 이분은
명주실 매입차 온 겁니다

 

변명은 가서 하시오

 

그는 영국 상인일 뿐
정치와 상관없습니다

 

- 타이지 군?
- 오랜만입니다

 

이거 놀라운걸
군복이 정말 잘 어울려

 

처음 보셨나요?

 

응, 하지만 역시 자네다워
출장 온 거야?

 

아뇨, 한 달 전에
고베로 배속됐어요

 

차림새를 보아하니
헌병 분대장?

 

- 예
- 그거 대단한걸

 

경황이 없다 보니
이제야 찾아뵙습니다

 

편하게 입고
집으로 오면 좋았을걸

 

조만간 꼭

 

롯코산 근처라
전망 좋아

 

- 원래 산을 좋아합니다
- 그랬었지

 

아내도 기뻐할 거야

 

- 사토코 씨 잘 계시죠?
- 아주 잘 있어

 

다행이네요

 

그럼 어디...

 

존 피츠제럴드 드러먼드
아시죠?

 

고객이자 친구야

 

조금 전에 체포됐습니다

 

알아, 후미오한테 들었어

 

- 안 놀라시네요
- 아까 전화 받곤 놀랐어

 

그가 영국 첩자라면요?

 

- 말도 안 돼
- 뭐가요?

 

그런 뚱보가
스파이라고?

 

그를 믿습니까?

 

내 친구야
스파이일 리 없어

 

- 유사쿠 씨, 너무 순진하세요
- 그래? 실례했네

 

시대가 변했습니다
사람들이 보고 있어요

 

아무나 만나시면 안 돼요

 

사토코 씨를 위해서라도
생각 잘하세요

 

좋아, 하지만 내 사업은
외국인과 만나는 일이야

 

그러니까 더욱이죠

 

내가 폐업하면
아내도 깡통 찰 텐데

 

이런 복장을 하고 있지만
체포는 취향이 아니에요

 

하지만 그게
자네 일이잖나?

 

 

그렇다면 개의치 말게

 

무례를 범해 죄송합니다
그럼 이만

 

또 보세

 

유리코 씨?
어째서?

 

컷!

 

- 사토코, 한 번 더 가자
- 이젠 못 하겠어요

 

후미오 씨가
너무 아프게 잡아요

 

죄송해요, 외숙모가
너무 거세게 저항해서...

 

내 탓이란 말씀?

 

이런 게 실감 나는 연기야
약간 힘든 건 감수하자고

 

- 안 아프게 할게요
- 후미오를 믿어보자

 

한 번 더 부탁할게

 

둘이 또
한통속이 됐네

 

이번이 마지막이에요

 

- 금고 번호는?
- 벌써 외웠어요

 

그럼 시작할게요

 

고마워요

 

덕분입니다
정말 고마워요

 

당신이 압류당하면
우리도 곤란하거든요

 

유사쿠 씨가
벌금 2백 엔을 내줬어요

 

- 그랬나요?
- 사업을 위한 투자야

 

- 차 드세요
- 고마워, 앉으시죠

 

그쪽에서
폭력은 없었나요?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괜찮아요
별일 아닙니다

 

영국인이라고
너무하는군

 

이탈리아와 독일에
아양을 떨면서

 

이젠 저도 일본에 머물기
어렵게 됐습니다

 

- 귀국하십니까?
- 아니, 상해로 갑니다

 

상해 국제 조계지요?
멋지네요

 

- 놀러 가시는 게 아냐
- 미안해요

 

상해에는 아직 그나마
자유가 남아 있다더군요

 

이거 받으세요

 

두 분께 신세를
많이 졌습니다

 

이렇게 굉장한 물건을

 

이젠 팔 수도 없어요

 

- 건강하세요
- 당신도요

 

여행 잘하세요

 

당신을 매정하다고
오해했어요

 

왜?

 

친구가 잡혔는데
영화 놀이나 했잖아요

 

당신은 항상
저보다 멀리 바라보니

 

제가 바보 같아서 싫네요

 

당신은 절대 바보가 아냐

 

- 최상급 비단이야
- 기모노를 지을까요?

 

아니, 이 무늬는
양복을 지어야지

 

하지만 국민복 착용령이
내렸잖아요

 

그런 명령을
따를 것 같아?

 

다음 달에 1개월 정도
만주에 다녀올게

 

- 만주요?
- 거긴 뭐든지 저렴해

 

철광석, 곡물
그리고 의약품

 

노자키 교수도
연구용 약품을 당부했어

 

만주는 상해보다
훨씬 위험하잖아요

 

노몬한 사건 말이야?

 

더 위험해지기 전에
대륙을 직접 보고 싶어

 

제자리 걸어 가!

 

제자리에 서!

 

좌향좌!

 

우로 나란히!

 

바로!

 

소대장님께 경례!

 

바로!

 

- 쉬어
- 쉬어!

 

오늘은 불심검문과
수하물 검사를 실시한다

 

- 책무에 만전을 기하라
- 예!

 

차렷!

 

좌향좌!

 

- 앞으로 가!
- 외숙모, 여기예요

 

- 늦어서 미안해요
- 괜찮아요, 안 늦었어요

 

- 따뜻한 물이에요
- 고마워요

 

무거운 짐을 들어야 하니
힘들겠어요

 

제가 자원했으니
당연한 일입니다

 

야, 집어치워

 

죄송해요

 

사토코, 걱정 마

 

부산에 가면
열차가 만주까지 연결돼

 

제가 소련 첩자라는
장면을 찍나 봐요

 

촬영 장비예요

 

정말?
대작 영화가 되겠네요

 

 

승선하시오

 

외삼촌, 이제 가죠

 

왕도낙토 만주국으로

 

제2 고베항

 

- 여보
- 여기까지면 됐어

 

- 몸조심해요
- 다녀올게

 

고노에 수상의 말대로
일본, 독일, 이탈리아는

 

9월 27일 베를린에서
삼국 조약을 체결하고

 

세계 신질서의 깃발 아래
단단히 팔짱을 꼈습니다

 

주인 나리께 쓰세요?

 

만주?
아니, 요코하마야

 

아, 시댁 어르신들께요?

 

응, 귀하게 키운 아들과
손주를 외국에 보내고

 

걱정이 많으시길래
달래드리려는 거야

 

사모님도 일주일만
참으시면 됩니다

 

맞아, 고마워

 

- 사모님
- 네?

 

- 전보가 왔습니다
- 누구한테요?

 

그게, 그러니까...

 

후쿠하라 사토코에게

 

귀국을 2주 미루니
걱정하지 마시오

 

- 이게 참마인가요?
- 응, 갈아 먹으면 맛있어

 

- 잘 찾으시네요
- 산골 출신이거든

 

아... 안녕하세요,

 

- 안녕
- 거기 계신 줄 몰랐어요

 

- 타이지 씨도 등산?
- 예, 얼음 따러요

 

- 얼음?
- 저 위에 얼음이 맺혀요

 

그건 몰랐네요

 

- 그건 참마인가요?
- 네

 

- 하나 드릴게요
- 총각이라 요리 못해요

 

그래요?

 

어쩔 수 없죠

 

남편한테
얘기 들었어요

 

- 분대장님 축하드려요
- 그러지 마세요

 

- 아주 바빠 보이던데
- 아녜요

 

총각이 얼음은 따서
뭐 하게요?

 

- 위스키에 넣어요
- 타이지 씨가 위스키를?

 

웃지 마세요
이젠 저도 애가 아녜요

 

맞아요, 피차일반이죠

 

있잖아요

 

좋은 위스키가 있는데
우리 집에서 마실래요?

 

알겠어요, 얼음 갖고
나중에 찾아뵐게요

 

- 기대할게요
- 이따 봬요

 

마셔요

 

정말 부드럽다

 

일반 얼음과 전혀 달라요

 

유사쿠 씨가 안 계신 걸
알았다면 안 왔을 겁니다

 

그럴 것 같아서
말 안 했어요

 

위스키 안 드세요?

 

사토코 씨는
행복하십니까?

 

남편이 없을 땐 외롭죠

 

- 그게 무슨 의미죠?
- 의미?

 

별다른 의미 없어요

 

그래요
당신은 그런 분이죠

 

맞아요

 

행복해 보여 기쁩니다

 

다만 옛 친구로서
충고 한마디 하죠

 

뭔데요?

 

이 집 분들은
모두 서구 복장이네요

 

마음에 안 들어요?

 

위스키도 외제 말고
국산은 안 됩니까?

 

난 괜찮은데
남편 취향이 확고해서

 

타이지 씨도 마셔봐요
소감을 듣고 싶어요

 

앞으로 비난의 화살이
쏟아질 겁니다

 

당신들에게 당연한 일상이
체제 비판으로 보이죠

 

- 지금은 그런 시대예요
- 걱정 고마워요

 

죄송해요

 

제겐 아직도 당신이
열네 살 소녀 같네요

 

부디 그 마음
변하지 말아요

 

어서 마셔봐요

 

- 충분히 알았으니 놔줘
- 싫어요

 

속절없는 사랑이래도
기쁘기 짝이 없구나

 

암울한 속세에 띄운
꿈의 나룻배

 

덧없는 꿈은
공허하게 부서지나니

 

하염없는 눈물이
멎지를 않누나

 

덧없는 사랑이여

 

찰나의 연분이여

 

애써 차분한 척 해봐도

 

타오르는 가슴 속 불길

 

현세에서 나누는
환상의 입맞춤

 

밀려오는 슬픔에
휩싸이는 이 내 몸

 

사랑에 고통받는 여로는
오직 외길뿐이네

 

 

1940년
후쿠하라 물산 망년회

 

조잡한 작품이지만
함께해줘서 고맙네

 

올해도

 

창업 이후 벌써 몇 번째
위기에 봉착했지만

 

여러분 덕분에
극복할 수 있었어

 

그 보답으로 약소하지만
떡과 설탕을 준비했네

 

배급에 더해
새해맞이 잘하길

 

열심히 일해줘서
정말 고맙네

 

- 그럼 건배!
- 건배!

 

- 수고하셨어요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받으세요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갑작스럽지만

 

저는 회사를 떠납니다

 

대신 소설을 쓸 겁니다

 

대륙에서 실제 전쟁을
목격한 후

 

언제 징집될지 모르니

 

후세에 남길만한 작품을
쓰자고 결심했습니다

 

당분간 아리마의 여관
"타치바나"에 틀어박혀

 

첫 장편을 쓸 겁니다

 

아리마에 오시게 되면
꼭 들러주세요

 

차라도 함께 나눕시다

 

후미오 씨에 대해

 

미리 말해주지 그랬어요

 

당신이 말릴 것 같다며
비밀로 해달랬어

 

그나저나 후미오 씨는
예전과 달라졌어요

 

모험심에 불이 붙은 거지
만주에서 말이야

 

모험?

 

무슨 모험인데요?

 

난 미국에 갈 것 같아

 

예?

 

미국이 대일 수출 제한을
시작한 건 알지?

 

- 아니요
- 그렇군

 

미국과 일본이
적이 되나요?

 

머지않아 그래
그러니 지금 가야 해

 

미국엔 왜요?

 

다시 한번 가보고 싶어

 

스무 살 때 선원으로
서해안을 가봤어

 

샌프란시스코, LA

 

아주 넓어
보고 싶지 않아?

 

- 저도 보고 싶어요
- 다음 목표는

 

뉴욕이야,
마천루!

 

죽기 전에
꼭 가서 볼 거야

 

여보, 조심해요

 

회사에 사람 없는 건
처음이네요

 

우리가 뭘 해도
볼 사람 없어

 

- 어머, 취하셨죠
- 응, 문제 있어?

 

그럼

 

- 이런 데서요?
- 둘만의 비밀이야

 

안 되겠어

 

- 드러먼드 씨 편지죠?
- 거기 있었어? 맞아

 

- 중요한 소식인가요?
- 하찮은 내용이야

 

저는 살짝 걱정이 돼요

 

뭐가?

 

드러먼드 씨는
적대국 사람이잖아요

 

그는 사업가일 뿐
적도 아군도 아냐

 

고베 헌병분대

 

미인이네요

 

갑자기 불러 죄송합니다
이 여자를 아십니까?

 

- 아니요
- 타치바나 여관은?

 

아리마에 있는?

 

여름마다 가요
지금은 남편의 조카가...

 

후미오 씨가
투숙 중이죠?

 

 

거기서 일하던 히로코가
며칠 전 살해됐어요

 

사진 속 여자예요

 

홋카이도 출신인데
만주로 건너가

 

사진 속 군의관과
깊은 관계였대요

 

그런데 지난달
갑자기 귀국했어요

 

- 아시는 거 없나요?
- 아니요, 아무것도

 

- 날 의심하는 거예요?
- 아니, 실례했습니다

 

제 업무라서요

 

그런 옷차림
호감이 안 가네요

 

유감이군요

 

그런데 히로코를 데려온 건
유사쿠 씨였습니다

 

네?

 

여관에 히로코를 써달라
알선까지 하셨죠

 

걱정 마십시오

 

유사쿠 씨의 결백은
이미 조사로 밝혀졌어요

 

하지만 타케시타 후미오
그는 어떨까요?

 

한 지붕 아래
살고 있었잖아요

 

후미오 씨가
범인이란 거예요?

 

치정 관계일 수도 있지요

 

사건이 어떻게 전개될지
아직 알 수 없지만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시라고 부른 겁니다

 

마음의 준비라니요?

 

당신과 남편이 앞으로
어떻게 처신하는지

 

예의 주시하고 있습니다

 

어땠어?

 

극장에서 본 영화는?

 

미조구치 신작답게
역시 걸작이야?

 

아까부터
대체 왜 그래?

 

묻고 싶은 게 있어요

 

최근에 타치바나
여관에 갔나요?

 

갑자기 왜그래?

 

오늘 타이지 씨가
불렀어요

 

극장은 거짓말이에요

 

타이지 군이?

 

- 내게 비밀로?
- 대답해주세요

 

타치바나에 안 갔어
이제 됐어?

 

그럼

 

히로코란 여자는요?

 

그녀가 죽었어요

 

알고 있어

 

- 당신이 신경 쓸 일 아냐
- 왜요?

 

당신 심려 안 끼치는 게
내 신조니까

 

그렇다면
그건 실패네요

 

역시 히로코란 여자와
알던 사이군요

 

만주에서 알게 됐을 뿐
아무 관계 아냐

 

당신과 후미오 씨가
데려왔다고 들었어요

 

부탁이에요

 

사실을 말해주세요

 

이런 기분은
결혼 후 처음이에요

 

이젠 당신에 대해
잘 모르겠어요

 

묻지 말아줘

 

- 부탁이야
- 역시나

 

부끄러운 일은
결코 하지 않았어

 

당신한텐 거짓말 못 하니
침묵하는 거야

 

뭐가 달라요?

 

계속 물으면 답해야 하니
묻지 말아 줘

 

나란 사람 알잖아
믿어, 못 믿어?

 

그런 말은 비겁해요

 

믿어요

 

고마워

 

믿고 있어요

 

이 얘기는
이걸로 끝내

 

알겠지?

 

이 얼음은
어디서 났지?

 

타이지 군은
당신에게 반했어

 

고베로 온 이유도
당신 때문이겠지

 

당신은 정말
시치미를 잘 떼는군

 

난 당신한테 거짓말을
못 하는데 말이지

 

유사쿠 씨는 정말이지

 

거짓말하는 게
능숙하다니까

 

그래?

 

실례합니다

 

사모님 오셨습니까?

 

- 어서 오세요
- 안녕하세요

 

오늘은 어쩐 일로?

 

남편이 후미오 씨에게
전갈을...

 

그렇군요

 

후미오 씨가
몰라보게 변했더군요

 

예전과 크게 달라져서
놀랐습니다

 

- 지난 두 달 동안...
- 예?

 

남편도 신세를
많이 졌네요

 

천만에요

 

어서 오세요

 

편한 데 앉으세요

 

진실을 말해주세요

 

진실이란 게 뭐죠?

 

히로코를 죽였어요?

 

말도 안 됩니다

 

왜 만주에서 데려왔어요?

 

처지가 불쌍해서요

 

- 내버려 둘 수 없었죠
- 누가?

 

내버려 둘 수 없던 건 당신?
아니면 남편이에요?

 

이런 이런

 

- 남편을 의심하시다니
- 유사쿠 씨 의심 안 해요

 

나는 사실을
알고 싶어요

 

사실이라...

 

헌병의 꾀에 넘어갔어요?

 

- 어리석군요
- 뭐라고요?

 

어리석다고요

 

아무래도 좋아
하지만

 

당신이 하는 일로
남편이 위험해진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만두게 할 겁니다

 

그만두게 한다고?

 

어떻게요?

 

역시나

 

두 사람은 뭔가
위험한 일에 연루돼 있군

 

외숙모

 

외삼촌을 이해하려
해본 적 있습니까?

 

왜 남편의
진심을 몰라주죠?

 

무슨 소리야?

 

외숙모는
아무것도 몰라요

 

당신의 편한 삶을 위한
외삼촌의 수고를 말예요

 

- 대체 무슨 말인지...
- 모른다니까!

 

당신은
아무것도 못 봤어

 

당신은
절대 이해 못 해!

 

내가 못 본 게 뭐죠?

 

무례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자에게

 

일말의 희망이
있을지도 모르죠

 

- 이걸 맡길게요
- 뭐?

 

절대 열어보지 말고
외삼촌에게 직접 주세요

 

뭔데요?

 

헌병이 계속 저를
감시해요

 

여길 한 발짝도
못 나가죠

 

영어로
번역을 마쳤다고

 

외삼촌께
전해주세요

 

그렇게만 전하면 되나요?

 

 

이제 그만 가세요

 

몸 건강하세요

 

타치바나 여관

 

비단 물량을
작년 두 배로 살게요

 

그러니까
구매 가격을 깎아주세요

 

좋아요
그럼 25%는 어때요?

 

25%요?
계산해 봐도 될까요?

 

좋아요, 그러시죠

 

퇴근하겠습니다

 

- 먼저 들어갑니다
- 수고했어

 

무슨 일이야?

 

후미오 씨가 건네줬어요
번역을 마쳤대요

 

역시 모르는 이상
아무것도 믿을 수 없어요

 

말해줘요

 

- 대체 어디서부터
- 처음부터요

 

나와 후미오는 부산에서
열차로 만주국에 갔어

 

수도 신경은
무척 번성했더군

 

이미 일본에선
사라진 희망이

 

아직 그곳에
있는 것 같았어

 

그 후에 특별 허가를 받아
관동군 연구소를 향했어

 

의약품 조달 목적이었지

 

가는 길에 창밖으로
작은 산들이 보였어

 

처음엔 그게 폐기된
농작물 더미인 줄 알았어

 

가까이 가보니 산에서
많은 손발이 보였어

 

산은 연기를 내뿜었지

 

인간 시체가
소각되고 있었어

 

흑사병에 걸려 죽은
시체의 산이었지

 

그리고 어쩌다 우리는
한 여자의 목숨을 구했어

 

그게 바로 히로코야

 

그녀는 간호사이자
군의관의 내연녀였지

 

그녀는 우리에게
흑사병의 원인이

 

관동군 세균 무기라고
말했어

 

세균을
일부러 퍼뜨려

 

생체 실험을
비밀리에 실시한댔지

 

그걸 폭로하려던
군의관은 처형됐고

 

히로코도 위험했지

 

그녀에겐 군의관이 맡긴
명백한 증거가 있었거든

 

그게 그 실험 노트야

 

당신이 받아온 건
그 노트와 영역본이야

 

세균 살포뿐 아니라

 

포로 대상 생체 실험까지
극명하게 기록돼 있어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야

 

그래서

 

그 번역본으로
어쩔 셈이죠?

 

국제 정치의 현장에서
발표할 거야

 

전쟁에 소극적인 미국이
일본을 치게끔 만들겠지

 

그렇게 되면요?

 

- 일본이 져
- 예?

 

- 언젠가 반드시 패망해
- 그러면

 

당신은 매국노잖아요

 

난 코스모폴리탄이야

 

예?

 

내가 충성을 서약한 건
국가가 아니야

 

만국 공통의 정의야

 

불의를 묵과할 수 없어

 

동포 수만 명이 죽어도
그게 정의인가요?

 

저까지 스파이의 아내라
매도당해도

 

그게 당신의
정의인가요?

 

우리의 행복은요?

 

불의에 기반한 행복에
만족해?

 

저는 정의보다
행복을 원해요

 

뭘 안다는 듯이 떠드는군
당신은 아무것도 못 봤어

 

보이고 싶지도 않지만
실제로 벌어지고 있어

 

우리의 동포가

 

그 악마 같은 소행을
지금도 반복하고 있어

 

난 봤어
운명이 날 선택한 거야

 

그렇기에
잠자코 있을 수 없어

 

당신도
완전히 변했군요

 

- 이게 내 본모습이야
- 아니요, 저는 알아요

 

당신을 바꾼 건
그 여자예요

 

그 여자가 당신 마음에
자리 잡은 거예요

 

그래요

 

난 아무것도 못 봤어요
그게 뭐가 나빠요?

 

국제 정치가 어쩌고
운명이 어쩌고

 

내가 알 바 아녜요

 

그것만은...

 

틀림없어요

 

노자키 교수를
뵙기로 했어

 

 

외박할 수도 있다고
사토코에게 전해줘

 

알겠습니다

 

다녀오세요

 

남편은?

 

나가셨어요
외박하실지도 모른대요

 

그렇구나

 

오셨어요?
사장님은 안 계신데요

 

남편이 물건을
갖다달랬어요

 

- 그렇군요
- 전 신경 안 쓰셔도 돼요

 

 

- 찾아온 이유는...
- 그 전에 드릴 말씀이

 

히로코 살인범을
체포했습니다

 

- 네?
- 여관 주인입니다

 

어머나

 

직원으로 들인 히로코를
연모하여 강간했는데

 

거칠게 저항하니
죽여서 바다에 버렸어요

 

불쌍하게도

 

쓸데없는 심려를 끼쳐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그리고 또 하나
꼭 아셔야 할 게 있어요

 

남편께선 히로코의
간호학 유학을 위해

 

미국행 여권을
신청했습니다

 

본인의 여권도 함께요

 

알고 계셨나요?

 

몰랐어요

 

무역 목적으로
미국에 가는 건 자유지만

 

왜 하필 이런 시기에

 

게다가
히로코를 데리고

 

저는 다만 당신이
걱정될 뿐입니다

 

할 얘기 다 했어요?

 

 

그럼

 

제 용건을 말씀드릴게요

 

집안 망신 같아서
여태 말 못 했는데

 

그게 뭡니까?

 

보시면 알 거예요

 

실험 해부 결과

 

실험 재료 171번
페스트균 0.1mg 주입

 

흑사병 감염
전신 증상 관찰

 

이게 다 뭐야

 

만주에서
반입된 거예요

 

대체 누가?

 

야마우치 군

 

유럽 무역 결산서
거기 있어?

 

여긴 없습니다

 

창고에 가서
찾아볼게요

 

됐어, 내가 갈게

 

- 감사합니다
- 아니야

 

후쿠하라 유사쿠 님
함께 가시죠

 

이유는?

 

타케시타 후미오를
체포했습니다

 

참고인으로
귀하께 여쭐 게 있습니다

 

알겠네

 

후쿠하라 유사쿠
당신은 연합국 스파이입니까?

 

- 아니
- 그럼 다케시타 후미오는?

 

- 아니야
- 왜 아니라는 거죠?

 

아닌 건 아니니까

 

난 후미오란 사람을 믿어
이유는 그것뿐이야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스파이라고 인정했어요

 

그래?

 

그리고 그가 만주에서
반입한 물건 중에

 

중요 국가 기밀과 관련된
물건이 있었죠

 

그게 뭔지 아십니까?

 

글쎄

 

심문에 시간은 걸렸지만
마침내 자백을 받았죠

 

만주에서 히로코와 함께
다닐 때 그 기밀을

 

손에 넣었다더군요

 

전부 자기 혼자 했을 뿐
당신과 상관없댔어요

 

의심쩍지만
믿을 수밖에 없었죠

 

달리 증거가 없으니까요

 

고문에 의한
자백을 믿는가?

 

- 아니요
- 그럼 어째서?

 

신고가 있었습니다

 

신고?
누구한테서?

 

선량한 시민 덕분에
국가 기밀을 지켰습니다

 

손을 내미세요

 

누가 신고했어?

 

당신이
잘 아는 분이죠

 

저는 그분을
불행하게 만들기 싫어요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마음 고쳐먹고
나라를 위해 헌신하세요

 

그럼 사건은
종결입니다

 

밀고자

 

게다가
도둑질까지

 

소꿉친구의 입발림에 넘어가
우리 둘을 팔았어

 

그런데도 표정이
참 태연하군

 

후미오 씨가 반드시 당신을
지킬 거라 도박을 걸었죠

 

이게 뭔지 알아?
후미오의 양 손톱이야

 

큰 꿈을 달성하려면
가족도 버릴 수 있어야죠

 

당신이 후미오를
지옥으로 보냈어

 

대망을 위한
희생이에요

 

후미오 씨도
이해했을 거예요

 

그러니
당신이 무사했죠

 

꿈을 이루려 해도
이젠 그 노트가 없어

 

노트는 원래 두 권

 

필요한 건
이것일 테죠

 

증인인 히로코가 죽어서
원본이 있어야 해

 

저를 책망하는 건
이해해요

 

그래도 당신은
절 믿어야만 해요

 

이제 당신에겐
저뿐이에요

 

- 이걸 봤어?
- 네, 봤어요

 

문 닫으세요

 

당신은 필름에
노트를 담았죠

 

만주에서 본 게
이거죠?

 

그래, 결정적인 증거야

 

정말 잔혹하네요

 

관동군의 기록 필름을
재촬영한 거야

 

귀국시켜주는 조건으로
히로코에게 받았지

 

이 필름과 번역 노트로
뜻을 이룰 수 있어요

 

우리 둘이서
미국으로 건너가요

 

만일을 위해
준비한 곳이었어

 

유사쿠 씨

 

이거 말고
필름이 또 있죠?

 

뭐?

 

짧은 영상만으로 위험을
감수하진 않을 것 같아요

 

당신이란 여자는...

 

국제 여론을 움직일만한
결정적 증거가 있겠죠?

 

당신 말이 맞아

 

원본은 더 상세하고
선명한 수십 분 분량이야

 

그건 상해의
드러먼드에게 맡겼어

 

드러먼드 씨한테요?

 

그게 더 안전해 보였거든

 

근데 착각이었어

 

그는 얼마 전 편지로
거액의 돈을 요구했어

 

가난이 졸장부 만든다더니

 

아니, 설마

 

그가 진짜 스파이였나?

 

스파이라면
같은 편 아녜요?

 

난 스파이가 아냐

 

내 의지로 움직이니
스파이와 전혀 달라

 

뭐든 상관없어요

 

저한테 당신은
당신일 뿐이에요

 

당신이 스파이라면
스파이의 아내가 될게요

 

그걸로 족해요

 

만주에서 운명이
당신을 선택했다면

 

그건 저까지
선택한 거예요

 

일본 뉴스

 

사이공

 

1941년 7월 26일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공동 방위 결정에 이어

 

7월 27일, 일본 정예군을
월남 남부에 증파한다고

 

마부치 대령이 발표했다

 

당일 남지나해의
잔잔한 물결 위로

 

방위의 중요 임무를 안고

 

오로지 전진한
평화의 대수송선단은

 

오전 9시에 그 위용을
캡 생자크항에 드러냈다

 

구미 세력의 압박에 맞서

 

인도차이나를 의연히
지켜온 제국 신민의

 

감격적 해후는
얼마나 기쁘리오

 

니카츠 우즈마사
유성 영화

 

고우치야마 소슌

 

각본 - 미무라 신타로

 

감독 - 야마나카 사다오

 

미국이 드디어 석유의
일본 수출을 금지했나 봐

 

"ABCD 포위망"
완성이야

 

합법적으로 미국에 가는 건
어렵게 됐어

 

그 여자와 함께
미국에 갈 생각이었나요?

 

말도 안 돼

 

의심을 피해 보호자인 척
도항 신청을 함께했을 뿐

 

가는 건
그녀 혼자였어

 

하지만

 

후미오가 함께 간댔다면
보내주려고 했지

 

- 정말이죠?
- 물론이야

 

그럼 당신과 미국에 갈
사람은 저밖에 없네요

 

응, 하지만 어떻게?

 

방법은 하나뿐이야

 

망명이야

 

드러먼드에게 줄 돈과
2명의 위조 여권 비용

 

이런저런 경비를
계산해보면

 

- 1만 엔은 필요하겠어
- 1만 엔?

 

- 어떻게요?
- 일본 엔은 쓸모없으니

 

회사의 현금을
귀금속으로 바꾸자

 

- 예
- 그리고 도항 루트인데

 

화물 상자에 숨어

 

샌프란시스코까지
2주는 걸릴 거야

 

2주씩이나?

 

걱정 마
도울 사람을 구할 거야

 

식사와 물, 용변까지
어떤 불편도 없을 거야

 

알겠어요

 

그럼 드러먼드 씨에게
필름은 어떻게 받아요?

 

그래서 말인데
제안할 게 있어

 

둘이 따로 갈 거야

 

- 저와 당신이?
- 응

 

당신은 필름을 갖고
화물선에 타

 

난 상해로 건너가

 

필름을 되찾은 후에
미국으로 갈 거야

 

샌프란시스코에서
다시 만나

 

통역을 구해
워싱턴으로 가자

 

- 싫어요
- 여보

 

당신과 함께 갈래요

 

둘로 나뉘어
위험을 분산하고 싶어

 

저 혼자선 무리예요

 

화물 상자 안에서
누가 날 지켜주나요?

 

적임자를 찾을 거야
선장과 잘 알아

 

그걸 어떻게 믿어요

 

단둘이 큰일을 이루려면
그 누군가를 믿어야만 해

 

무서워요

 

강해져야 해

 

잠시 떨어질 뿐이야

 

대망을 위한 희생도 아닌
그저 인내야

 

체포와 죽음은
두렵지 않아요

 

제가 두려운 건
당신과 떨어지는 거예요

 

제 바람은 그저 당신과
함께 있는 거예요

 

몸이 멀어진다고
마음마저 멀어지겠어?

 

난 감옥 속의 후미오와
더 강한 유대감을 느껴

 

후미오의 뜻이
날 움직이는 거야

 

떨어져 있으면 더 강한
유대감이 생기게 돼

 

우리도 분명 그럴 거야

 

걱정하지 마

 

잠시 떨어진다 해도
반드시 만날 수 있어

 

우리가 미국에서 만나야
모든 증거를 갖추게 돼

 

우리의 재회는 곧
우리가 뜻을 이뤘다는 거이

 

모두 다 이뤄내자

 

 

좋아, 당장 내일부터
움직여야 해

 

우선 귀금속 구매부터야

 

뭐가 좋겠어?

 

무엇이 좋으냐 한들...

 

크게 선물하는 척
위장하기 위해

 

기념일이라고 할까?

 

노자키 교수께 빌렸어
아주 근사하지?

 

왠지 꿈만 같아요

 

기분 좋다

 

조심해

 

- 이건 어때요?
- 잘 어울려

 

- 그걸로 해
- 얼마지?

 

2백 엔에 드릴게요

 

좋은 남편이시네요

 

최근엔 결혼기념일
거의 안 챙겨요

 

- 그건 뭐예요?
- 이건 천연 진주입니다

 

- 아주 잘 어울릴 겁니다
- 어떤 걸로 하지?

 

다 사줄게

 

손목에 감아
염주로 쓸 수 있어

 

- 4백 엔 받게
- 감사합니다

 

미제인데 어떻습니까?

 

해군 요청으로
방수가 됩니다

 

수영할 일은 없지만
나쁘지 않군

 

- 이것도 차봐도 돼?
- 물론이죠

 

스위스 제품이군
아주 좋아

 

당신도 골라
여성용 있지?

 

그럼요

 

손목시계를 차다니
전문직 여성 같네요

 

좋았어
그럼 전부 주게

 

전부요?

 

이거 감사합니다

 

이것도 있어요

 

- 그건 못 가져가
- 전당포에 팔아요

 

필름 찾는 데 보태면
살짝 통쾌하잖아요

 

그거 좋은걸

 

- 왜 그러세요?
- 아까 본 남자가 있어

 

쳐다보지 마

 

- 미행이 붙었나 봐요?
- 모르겠어

 

둘로 나뉘어요

 

당신이 전당포로 가면
제가 여기서 지켜볼게요

 

그래, 수상한 자가 없으면
당신은 택시로 돌아가

 

 

만세!

 

만세!
만세!

 

만세!
만세!

 

- 유사쿠 씨
- 무슨 일이야

 

- 만나서 다행이에요
- 먼저 안 갔어?

 

계속 지켜봤는데
수상한 사람은 없었어요

 

그런데 잠깐
한눈을 판 사이에

 

당신이 재빨리
가버렸어요

 

정말이지...

 

그렇게도 웃겨?
어이가 없는 거야?

 

하지만 아무리 조심해도
지나치지 않아

 

여기 있어

 

왜 그래?
어디 아파?

 

아니요

 

기뻐요

 

비로소 함께 살아있단 걸
느껴요

 

전당포 밖에서 제가
당신 눈이 되었단 생각에

 

너무 기뻐서
주체할 수 없었어요

 

사토코

 

당신은
스파이의 아내가 아니야

 

그러니 숨어서 살 필요도
없어

 

같은 신념을 가진 사람은
어디에나 있어

 

동지를 꼭 찾을 거야

 

사모님

 

왜 그래?

 

어디 멀리 가세요?

 

아니, 2주 정도의
짧은 여행이야

 

언제든 돌아오시게끔
준비하고 있을 테니

 

걱정 말고
다녀오세요

 

2주라도 3주라도

 

이 전쟁이
끝날 때까지라도

 

고마워

 

다 됐어

 

역까지 함께 갈게요

 

안 돼, 당신은 항구로
난 역으로 가야 해

 

계획대로 해야 해

 

 

잘 들어

 

선장에게도 부탁했지만
밥이란 선원이 도울 거야

 

덩치가 큰 남자를
배 근처에서 찾으면 돼

 

언제 다시 만나죠?

 

- 곧 만날 테니 걱정 마
- 2주 후엔 꼭?

 

그럼, 물론이지

 

빈집을 잘 부탁하네

 

걱정 말고
여행 잘 다녀오세요

 

고맙네, 카네무라

 

부디 몸조심하세요

 

고마워, 코마코

 

잘 다녀오십시오

 

제2 고베항

 

난 여기서 내릴게

 

- 제3 부두로 가줘
- 예

 

사토코?

 

밥?

 

들어가

 

하루에 두 끼를 줄 거야

 

두 끼

 

이 양동이를 변기로 써

 

선실과 화물 상자의
적재물도 수색해

 

분명 배 안에 있으니
샅샅이 뒤져라

 

 

밀항자는 어디 있어?

 

뭐?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밥, 말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선장님, 그럴 순 없어요
약속과 다르잖아요

 

어서 말해
안 그러면 우린 체포돼

 

후쿠하라 사토코

 

기밀누설, 국가반역
외환음모

 

이 중에 어떤 혐의든
입증되면 사형입니다

 

다만 당신 혼자서 벌인
일이라 생각 안 합니다

 

후쿠하라 유사쿠는
어딨습니까?

 

그가 진정한
매국노입니다

 

지금 자백하면
형량이 가벼워질 겁니다

 

몰라요

 

하나 물어봐도 돼요?

 

화물선에 숨은 걸
어떻게 알았죠?

 

신고가 있었어요

 

신고?

 

익명의 편지를 받았어요

 

샌프란시스코행 선박에
밀항자가 탔다고요

 

후쿠하라 유사쿠라고
우리는 예상했는데

 

설마 당신일 줄이야

 

내게도 큰 꿈이 있어요

 

이젠 애가 아니에요

 

관동군을
고발하는 겁니까?

 

 

반역자의 날조 문서를
어째서 믿는 겁니까?

 

필름을 보면 알아요

 

예, 당신의 큰 꿈이 뭔지
직접 보고 판단하죠

 

타이지 씨

 

당신은 원래 마음씨가
고운 사람이에요

 

함께 등산도 하고
위스키도 함께 마셨죠

 

당신 본성은
자상함이에요

 

난 그걸 알아요

 

그런 당신에게
대단한 권력이 주어졌죠

 

시대가
당신을 바꾼 거라면

 

당신이 그 시대를
바꿀 수도 있었잖아요

 

네년도 매국노야
백번 죽어 마땅해

 

곧 시작하겠습니다

 

- 준비됐습니다
- 좋아, 보자

 

똑똑히 보세요

 

그곳에서 어떤 만행을
저질렀는지

 

속절없는 사랑이래도
기쁘기 짝이 없구나

 

암울한 속세에 띄운
꿈의 나룻배

 

덧없는 꿈은
공허하게 부서지나니

 

하염없는 눈물이
멎지를 않누나

 

덧없는 사랑이여

 

찰나의 연분이여

 

애써 차분한 척 해봐도

 

타오르는 가슴 속 불길

 

이게 뭐야?

 

어째서 이딴 걸
해외에 반출하려 했죠?

 

현세에서 나누는
환상의 입맞춤

 

밀려오는 슬픔에
휩싸이는 이 내 몸

 

아주 훌륭해!

 

사랑에 고통받는 여로는
오직 외길뿐이네

 

1945년 3월

 

도쿄가 불바다야

 

도쿄뿐만이 아니야

 

나고야, 오사카...
곧 고베도 당할 거야

 

남자는 모두 죽었어

 

여자만으로
뭘 어쩌겠어

 

이제 일본도 끝났어

 

넌 뭔데 그리 태연해?

 

- 뭐라고 말해봐
- 그만둬

 

이년은 완전히 맛이 갔어
여기가

 

284번

 

- 예
- 면회야

 

어머

 

오랜만입니다

 

노자키 교수님
여긴 어떻게?

 

그게 말이죠

 

- 잠깐 나가줄래?
- 예

 

앉으세요

 

그게 말이죠

 

사토코 씨 담당이
의대 동기인데

 

얼마 전에 얘기하다
입원한 걸 알았습니다

 

겨우 부탁해
면회가 됐어요

 

설마 다시 뵐 줄이야

 

그러게요
여러 가지로

 

우여곡절이 많았네요

 

잘 지내시죠?

 

- 이런 질문 실례인가?
- 아니, 괜찮아요

 

잘 지내요

 

하긴, 건강해 보이에요

 

약만 먹이지 않으면
정신이 멀쩡해요

 

그렇군요

 

바깥세상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여긴 검열된 신문만
읽을 수 있어요

 

바깥도 똑같아요
별반 다를 게 없죠

 

남편에 대해

 

아시는 게 있나요?

 

인도 봄베이에서 봤다는
지인이 있어요

 

- 봄베이?
- 예

 

그 후에 봄베이를 떠나

 

로스앤젤레스로 향한
여객선이

 

일본 잠수함에 의해
격침됐단 정보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요즘은 어떤 정보도
믿을 수가 없어요

 

- 괜찮으세요?
- 예

 

그것뿐인가요?

 

그것뿐입니다

 

알겠어요

 

오랜 세월
고생 많으셨습니다

 

여기서 나오실 수 있도록
방법을 찾아봅시다

 

어머, 어째서요?

 

당신이 이런 데 있는 걸
차마 두고 볼 수 없어요

 

저희 집도 괜찮다면
당분간 모실게요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럴 필요 없어요

 

괜찮아요

 

뭐랄까...
몹시 수긍이 가더라고요

 

수긍이라 함은?

 

교수님께만
말씀드리는데

 

저는 전혀
미치지 않았어요

 

그럼요

 

다만...

 

그 말은 곧...

 

제가 미쳤다는 것입니다

 

필시 이 나라에서는요

 

문 열어!
어서 열어!

 

문 열어!

 

공습이야
어서 피해!

 

어서!
공습이야

 

빨리, 서둘러

 

공습이야
어서 피해

 

빨리 피해

 

어서 피해

 

빨리

 

이쪽이야

 

이로써
일본은 패망하고

 

전쟁도 끝날 테지

 

아주 훌륭합니다

 

1945년 8월
일본 패전

 

이듬해, 유사쿠의
사망이 확인됐다

 

그 사망 보고서에는
위조된 흔적이 있었다

 

몇 년 후, 사토코는
미국으로 여행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