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 쉘 낫 그로우 올드(THEY SHALL NOT GROW OLD, 2018)

난 내 젊은 시절을
몽땅 다 바쳐

 

이 잔혹한 전쟁을
치렀어요

 

전쟁의 모습은
해마다 바뀌었고

 

그 여파도
완전히 달라졌죠

 

얼마나 격렬해졌는지
1914년의 전장을 본 사람이

 

1917년의 전장을 본다면
같은 전쟁이란 걸 못 믿을 거예요

 

이것만 말할게요
난 또 참전할 거예요

 

끔찍한 시절이었지만
놓칠 순 없어요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다시 입대할래요
난 군생활이 즐거웠거든요

 

내 생애 가장
흥미진진했던 때였어요

 

처음 놀이터를 발견한
아이 같았죠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지 않았어요

 

임무가 주어지면
해낼 뿐이었죠

 

다들 똑같은 생각을
했었어요

 

“이건 전쟁이니
독일인들을 죽이자”

 

참 단순하게 생각했죠

 

입대했던 걸
후회하지 않아요

 

지난 일인데 후회할 것 없죠
살아 돌아왔으니까

 

좋은 일, 나쁜 일
다 겪었어요

 

좋은 일만
바랄 순 없잖아요

 

두 번 다치고 가스도 마셨지만
걱정 없었어요

 

난 이겨낼 테니까요

 

누구나 그랬듯
담담히 견뎌냈어요

 

원해서 온 길이고
힘들 것도 알았죠

 

정말 그랬지만
불평하지 않았어요

 

전쟁을 좋아서 한
사람은 없어요

 

죽거나 다친 사람을
수없이 보는데

 

그게 좋을 리가 없죠

 

군인이니까 맡은 일을
했을 뿐예요

 

그때가 즐거웠다면
거짓말이겠죠

 

근데 시간이 지나서
느껴지는 건

 

한몫했단 감동예요

 

난 달라진 게 없었어요

 

갓 세상을 알아가던
때였거든요

 

그땐 어린애였어요
모두가 그랬죠

 

전쟁도 흥미진진한
놀이 같았어요

 

실제 포탄 같은 것만
빼면 말예요

 

사내다워졌냐고요?
맞아요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던 건

 

군대에서의 경험
덕분예요

 

제 앞가림을 하게 돼요

 

집에 있을 땐 어머니께서
다 해주셨지만

 

이제 스스로 밥 짓고
양말 깁고

 

단추 다는 법도
배워야 하죠

 

우리에겐 일상이었어요

 

나만의 일이 아닌 걸
알았죠

 

전쟁은 혼자 하는 게
아니고

 

전우에게 닥친 일이
내게도 닥칠 수 있단 걸요

 

후회는 전혀 없었어요
난 아내도 애인도 없었으니까

 

후회도 두려움도 없었죠

 

전장에서 살아남으면
겁낼 게 없잖아요

 

“데이 쉘 낫 그로우 올드”

 

영국과 독일 사이가
껄끄럽단 건 알았어요

 

영토를 넓히려는
독일 황제의 야망...

 

그런 것들 때문에요

 

그해 여름에

 

발칸 지역의 갈등에 대해
말이 많았어요

 

멀리 떨어진 곳이라
걱정 안 했지만요

 

세르비아와 관련된 일이죠?
총격 사건 말예요

 

정치 소식을 듣는데

 

영국과 독일 간에
큰일이 나겠다 싶더군요

 

화창한 8월 4일
아침이었어요

 

우린 식탁에 둘러 앉아

 

독일 럭비 팀과의
만찬을 즐기려던 참이었죠

 

독일 선수 옆엔
영국 선수가 앉고

 

옆엔 또 독일...
그랬는데

 

식사 도중에
한 명이 달려 들어와서

 

전쟁이 발발했단
소식을 전했죠

 

큰 현수막이 붙었더군요
“독일과의 전쟁 선포”

 

그럼 우린 어째야 하죠?

 

당장 나이프를 집어 들고

 

옆의 독일 놈을 찔러요?
물론 대화를 해보고

 

우리가 내린 결론은

 

전쟁은 내일 하고
식사를 계속하자는 거였어요

 

난 영국인으로서
자긍심이 있어요

 

어딜 내놔도
부족함 없는 나라니

 

싸워서라도 지켜내야죠

 

생각할 것도 없었어요
1차대전 때

 

우린 싸울 준비를 했죠

 

제국은 강대했고
겁낼 것이 없었어요

 

전국민이 단추를 사고
깃발을 흔들며 노래했는데

 

절망감은 전혀 없었어요

 

영국이 진단 건
말이 안 됐어요

 

독일인들이 아무리 떼로 몰려와
우릴 밀어내도

 

거기서 끝이겠죠

 

우리가 질 리 없었어요

 

영국인 하나가 독일인 열과
맞먹는다 믿었어요

 

영국의 적이라면

 

곧 내 적인 셈이니
맞서 싸워야죠

 

6~12개월이면
다 끝날 거라 생각했어요

 

친구와 “셰퍼즈 부시 엠파이어”
극장에 갔는데

 

영화 속에 파도를 가르는
함대가 나오고

 

“영국민은 노예가 되지 않으리”가
연주됐죠

 

등줄기에
전율이 흘렀어요

 

뭘 해야 할지 알겠더군요

 

친구가 말했죠
“우리도 입대하자”

 

애국심에서 한
말이었지만

 

그 상황에 들뜬 맘도
있었을 거예요

 

그렇게 큰 전쟁이 될 줄은
몰랐지만

 

한몫 거들 준비는
돼 있었죠

 

그 당시 남자들은
제 몸만 생각하면 안 됐어요

 

국가와 사회의 목소리에
따라야만 했죠

 

어머니께서 엄청
성을 내셨어요

 

근데 내 앞길은
내가 정하는 거잖아요

 

점심 때 사무실을 나와
훈련소로 갔는데

 

입대하려고 1,000명이
줄을 서 있더군요

 

품위 있는 전쟁이
될 거라 생각했고

 

다들 가고 싶어했어요

 

동료와 입대를 결정하고
사장님께 말씀드렸어요

 

월요일부터 훈련이라 하니
성을 내시면서

 

제대 후에도 일할 수 있을 거라
생각 말라셨죠

 

어머니께서 19살까지
기다리라셨어요

 

입대 연령이 19~35세였거든요
법적으론 그랬죠

 

다들 어린 나이였어요

 

이 상황이 즐겁기만 했죠

 

당장 독일과
싸워보고 싶었어요

 

국가를 위해
한몸 바치겠다 생각했어요

 

국가를 사랑한다면
그래야 한다고요

 

그 당시 청년들은
다 그렇게 생각했죠

 

어머니께서 내게

 

“널 못 가게 할 수도 있어
아직 어리니까”

 

“알아요, 어머니
근데 안 그러시겠죠”

 

내 생각이 맞더군요

 

그 나이대 청년들은
다 입대하는 것 같았고

 

나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난 정말 간절했어요

 

친구들을 다 데리고
“바로 입대할게요” 했죠

 

아주 기뻐하며
순식간에 처리해주더군요

 

많은 청년들이
지역 연대로 입대했어요

 

벅스나 미들섹스
같은 곳요

 

한 동네에서
학교를 다니고

 

공을 차던 친구들이
응원을 나누며 입대한 거죠

 

친구들이 곧 전우였는데

 

집안일만 하는 것보단
낫다 싶더군요

 

캠던타운에서
길을 걷고 있는데

 

젊은 아가씨 둘이
다가왔어요

 

“넌 왜 군대 안 가니?”
“17살인걸요”

 

“다들 그렇게 말하더라”

 

그러더니 가방을
뒤적거리는 거예요

 

뭘 하려나 싶어
긴장하고 있는데

 

이 하얀 깃털(겁쟁이란 뜻)을
들이밀더군요

 

역(驛)으로 줄지어 갈 때
누군 중산모를 썼고

 

누군 밀짚모자,
누군 군모를 썼더라고요

 

군복 재킷을 입기도 했고
일반 재킷에

 

군복 바지만
받쳐 입기도 했어요

 

군화도 신거나 안 신었죠
참 각양각색이었어요

 

어떤 녀석은 여행이라도
갈 줄 알았는지

 

옷가방을 챙겨 왔던데
당연히 뺏겼겠죠

 

이발도 해야 했는데
“어떻게 잘라드릴까요?”

 

“옆, 뒷머리를 짧게요”

 

그럼 바로 정수리부터
밀어버렸어요

 

군인이 아니라
죄수 같더군요

 

전쟁이 터지자마자
제대 군인들을 소집해서

 

바로 중사 계급을
달아줬어요

 

그들이 신병 훈련을
맡았죠

 

실제로 우릴
이끌어줬던 사람은

 

전쟁 경험이 있는
선배들이었어요

 

전투에서 뭘 해야 할지
많은 걸 알려줬죠

 

우린 연병장에
줄 맞춰 서 있다가

 

각기 다른 소대로
배정됐어요

 

갓 들어온 신병들은 마르고 병약한데다
겁에 질려 있었어요

 

공장에서도
안 받아줬겠죠

 

이런 애들을 데려다
군인으로 만들어야 했어요

 

많은 이들이 입대하려고
나이를 속였어요

 

부관이 내려와 우리에게

 

“여기서 19세 미만인 자는
2보 앞으로”

 

다들 꼼짝 안 했어요

 

난 17살이었는데
19살론 안 보였어요

 

연령 미달이었죠

 

근데 바로 얼마나
복무할 건지 묻더군요

 

다들 입대하길래
나도 모병소로 갔는데

 

담당관이, “몇 살이지?”
“17살입니다”

 

“나갔다 다시 들어와
18살이라 하게”

 

다시 들어와
18살이라 했고

 

곧장 플랑드르로
보내졌어요

 

“몇 살인가?”
“18살 1개월입니다”

 

“방금 19살이라고 한 거지?”
잠깐 생각하다...

 

“맞습니다”
“좋아, 여기 서명하게”

 

내 나이를 묻길래
3월에 16살이 됐다 했어요

 

“너무 어려
어서 나가 생일 지내고 오게”

 

1917년에 난 16살이었는데
키가 꽤 컸어요

 

아버지께 입대 허락도
받았었죠

 

그래서 19살이라 썼어요

 

실제 나이보다
3살 많게요

 

난 15살이었고
18살엔 한참 못 미쳤는데

 

군의관은 날 보더니
그냥 통과시키더군요

 

난 갓 17살이 됐을 때

 

화이트홀로 가서
제16창기병대에 입대했어요

 

내가 15살일 때
잘하면 받아주겠다 싶더군요

 

그래서 군부대를 찾아
“18살요” 하고 입대했죠

 

부모님 편지가
부대로 왔는데

 

난 어리니 보내달란
내용이었어요

 

부대장이, “부모님께서 돌아오라신다
갈 텐가?”

 

안 가겠다 했어요

 

군목(軍牧)이 내 나이를 묻길래
16살이라 했더니

 

“정말 어리군”

 

“자넬 위해 기도해줄까?”

 

군복류는 제대로 받는 것도
힘들었어요

 

한 녀석이,
“군화가 안 맞습니다”

 

그럼 보급관이,
“안 맞는 군화는 없다”

 

“발이 문제야
어떻게든 맞춰봐”

 

몸에 맞는 군복 재킷이나
바지를 찾으면

 

거의 2주 동안 입었어요
한 벌을 말예요

 

난 군대에 4년 있었지만
군복은 한 벌뿐이었죠

 

다리에 감는 각반도
지급받았는데

 

아주 생소하더라고요

 

난 제대로 감았던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각반을 감는 건 행군할 때
다리가 편하기 때문예요

 

난 킬트를 입어야 했는데
속옷을 안 주더군요

 

대신 종이에
이렇게 써줬어요

 

“이 병사는 속옷이 없음”

 

전차의 윗자리엔
절대 태우지 말란 뜻이었죠

 

아래에 앉아야 했어요

 

이제 꾸러미 하나가
내가 가진 전부였어요

 

외투는 아주 칼 같이
개어 놔야 했고

 

실과 바늘, 여분 단추,
나이프, 포크, 스푼

 

면도날, 면도솔, 칫솔,
그리고 반 파인트 머그잔

 

여분 셔츠 한 벌과
양말 한 켤레가 들어 있었어요

 

보급받은 면도날은
굉장히 무뎠는데

 

고기 썰 땐 꽤 유용했어요

 

칫솔은 단추 닦기에
좋았고요

 

군대의 이상한 점 하나는

 

단추 더러운 걸
용납 못하면서도

 

단추 닦을 도구는
주지 않는단 거예요

 

내 돈으로 사야 했죠

 

기상나팔이 울리면
일어나서

 

세수, 면도, 침구 정리를
6시 반까지 끝내고

 

식사 전에
체력 단련을 1시간 해요

 

팔굽혀펴기, 체조,
양팔 뻗어 올리기...

 

낮은 단계부터
강도를 높여 갔어요

 

우릴 괴롭히려고
한 게 아녔죠

 

아침 식사는 빵과 버터

 

그리고 “일병 베이컨”
한 줄이었는데

 

줄무늬 하나가 있어
그렇게 불렀어요

 

잼도 있었는데
자두와 사과로만 만들었어요

 

다른 잼이 나오면
축제날이었죠

 

“브루스 베언스파더”의
만화에도 나와요

 

자두사과 잼을 받으면서

 

“딸기는 대체 언제 나와?”

 

그 친구 참 재밌었어요

 

잼 제조사 “티클러스”에선

 

자두사과 잼을 수백만 개
만들었을 거예요

 

오, 오, 오, 즐거운 전쟁

 

어디에다 발라 먹나
산더미 같은 티클러스 잼

 

제식 훈련은
담당 교관이 맡는데

 

아침 내내 우릴 걷게 해요

 

각종 구령도 가르치죠

 

“뒤로 돌아” 같은 걸 말예요

 

보이 스카우트 출신에겐
별것 아녔어요

 

“우로 봐” 구령엔
고개만 오른쪽으로 돌려야 해요

 

왼쪽으로 돌렸다간
교관 심기가 불편해졌죠

 

우린 다 어려서
따뜻한 보살핌에만 익숙했는데

 

담당 교관은
소릴 왁왁 질러댔어요

 

군대 규율이란 걸 접했을 땐
충격이 컸어요

 

기상부터 취침까지
군기담당관이 쫓아다녔죠

 

몇몇 교관은
무척 사나웠는데

 

누군가 대열에서 벗어나면
분위기가 험해졌어요

 

시간 준수를 못 했거나
소총을 잘못 잡았을 때도요

 

단박에 덤벼들었죠

 

대다수는 괜찮았어요
고함쯤은 참을 만했는데

 

몇몇은 이해가
안 되더군요

 

한번은 취침 시간에
동료가 양동이를 건네면서

 

“너도 오줌 한번 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안에 일을 봤는데

 

소변이 찬 양동이를
문 위에 올려놓는 거예요

 

우리가 잠자리에 든 걸
확인하러 온 교관이

 

양동이를 엎어
액체를 온몸에 뒤집어썼죠

 

첫날엔 열정이 넘쳤어요

 

근데 1주쯤 지나니
괜히 왔다 싶더군요

 

규율이 엄격해서
신경질이 났어요

 

직장에서처럼요

 

우린 춤추러 온 게
아니잖아요

 

이건 전쟁 준비였어요

 

군대에선 뭐든
하란 대로 해야 해요

 

상관이 하나든 여럿이든

 

지시가 떨어지면
해내야 하죠

 

내가 군대에서 알게 된 건

 

행동만 옳게 해도
겁낼 게 없단 거예요

 

전혀 다른 세상이었어요
생각해봐요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 오다가

 

이제 뭔갈 따질 수
없게 된 거예요

 

무조건 하라면 해야 했죠

 

난 좋았어요
할일을 정해준단 게요

 

행동에 이유가
생기잖아요

 

그게 최고의 훈련이었단 걸
나중에 깨달았죠

 

첫째 주엔
행군 거리가 10마일

 

둘째 주엔 12마일...
점점 늘어났어요

 

보병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능력이

 

완전 군장을 메고
행군하는 거였거든요

 

109파운드를
짊어져야 했어요

 

난 행군이 쉬웠어요

 

책상에서 일하던 친구들은
무척 힘들어했지만요

 

다리 감각이 둔해지고
경련이 일어나다가

 

곧 통증이 찾아와요

 

그놈의 군화!
눈물이 날 정도였어요

 

갑자기 묵직한 군화를 신으니
발과 발목이...

 

군화를 유연하게
만들려고

 

안에 소변을 채워
밤새 놔 뒀어요

 

많은 청년들이
점원으로 일했었는데

 

몸 쓰는 일엔
적응하지 못했어요

 

몸이 아파 병원에 가니
구충약을 주더군요

 

그걸 먹고 나선
훈련이 견딜 만해졌죠

 

웨스트엔드 전역이
행군로였는데

 

구경꾼들이 모이면

 

그중 덜떨어진 놈들
몇을 꼬드겨서

 

행군 대열 뒤에
붙여 놨다가

 

막사에 오면
입대시켰어요

 

점심엔 꼭 스튜가
나오는데

 

여기서 알아 둬야 할 건

 

취사병들도 요리 경험이
별로 없었단 거예요

 

그래서 누구나 할 수 있는
스튜를 했던 거죠

 

가끔 자두나 우유, 타피오카로 만든
푸딩이 나왔어요

 

어릴 때 종종 먹었던
옛날식이었는데

 

난 불만 없었어요

 

오후엔 비커스 기관총
교육을 받았어요

 

기관총을 분해해서
다시 조립해야 했는데

 

난 다행히
빨리 감을 잡았어요

 

총이 최고의 전우란 말을
항상 들었는데

 

맞는 말이었어요

 

우리가 쓴 건
“단(短)탄창 리엔필드”였어요

 

좋은 총이었죠
아주 튼튼했어요

 

탄창 주머니는
양쪽 가슴에 있었어요

 

무게 균형을
맞추려고 말예요

 

여기에 .303 탄환
150발이 들어갔어요

 

소총은 한 손으로
들어야 했는데

 

난 쉽지 않더라고요
손목이 못 버텼죠

 

난 총을 만져본 적도 없었어요
근데 첫날에

 

사격장에 올라가서
쏘는 족족 명중시킨 거예요

 

그날부터 바로
일등사수가 됐죠

 

특히 중요했던 건
속사였는데

 

10발예요
1분간 10발을 표적에 쐈어요

 

“광란의 1분”이라고도
불렀죠

 

난 사람이 죽는 걸
본 적이 없어서

 

내가 총을 쏴야 할
순간이 왔을 때

 

정말 쏠 수 있을까
싶더라고요

 

총검술 훈련 땐
소릴 질러요

 

어딜 찌르라고도
말해주죠

 

왼쪽 어깨나 오른쪽 어깨

 

가슴, 아님 몸통예요

 

최대한 크게
소릴 지르랬는데

 

적을 겁주려는
의도 같았어요

 

썩 내키진 않았지만
할 수밖에요

 

사단 규모 훈련엔
12개 대대가 참여했어요

 

약 1만 2,000명이
함께 움직였죠

 

거대한 바퀴의
톱니 하나가 된 거예요

 

토요일 아침부턴
훈련이 없었지만

 

가끔 병영 업무를
봐야 했어요

 

일요일엔 다 모여
교회에 갔는데

 

어떤 종교를 믿든
꼭 참석해야 했죠

 

막사에선 매일
이런 외침이 들려왔어요

 

“여기 말 타본 사람 있나?”

 

“악기 다룰 줄 아는 사람?”

 

“이러저러한 거
해본 사람?”

 

이렇게 해서 보잘것없던
1,000명의 훈련병들이

 

이제 수송병, 군악병,
통신병 등등이 된 거죠

 

연병장에선 장난칠
기분이 아녔어요

 

군장 메고 걸을 때요

 

당장 뛰쳐나가
다 집어던지고 싶었죠

 

좋은 음식, 좋은 공기에
꾸준한 운동까지...

 

다들 외모가 달라져
어머니들도 몰라볼 정도였어요

 

평균 체중도 늘고
키도 자랐죠

 

교관들 하는 일이라면
뭐든 몸서릴 쳤지만

 

그게 효과가 좋았던 거예요
훈련을 받고 나니

 

군인이 됐잖아요

 

첫날과 달리

 

잘생기고 늠름하고
어깨가 떡 벌어진 청년들이 돼서

 

선임 교관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았어요

 

6주가 지났을 때
우릴 해외로 보낸단 얘길 들었어요

 

“내일 아침 미상의 장소로
출발할 것이다”

 

행선지는 절대
알려주지 않았죠

 

난 독일 놈들과
싸울 수만 있다면

 

그게 어디가 됐든
상관없었어요

 

입대한 청년들은

 

단기 속성으로
군사 훈련을 마치고

 

속속 프랑스로
실려 갔어요

 

떠나기 전에 부대 장교가

 

“중사가 되기엔
훈련이 짧았으니”

 

“줄 2개만 달아주마”

 

우린 병장 계급을 달고
숨 돌릴 틈도 없이

 

역으로 이동했어요

 

그때 생각한 게,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그러지 못할 것 같았어요

 

상관없었지만요

 

다들 한껏 들떠 있었어요

 

출발할 수 있어 기뻤죠
울 일이 아녔어요

 

기차에서 엽서를 써
창밖으로 던지며

 

가족에게 전해지길
바랐죠

 

저녁에 포크스턴에
도착해서

 

템스 강변에서
낡은 유람선을 탔어요

 

북적북적했어요

 

도버에서 칼레까지
뱃길론 금방이었거든요

 

장교들이 우리에게

 

외국에서의 처신법을
알려줬어요

 

그들의 생활 양식을
존중해야 한댔죠

 

사상자 비율을 보면
부사관(병장 포함)이 많았는데

 

그렇게 되긴
정말 싫더군요

 

그래서 화장실로 들어가
줄 하나를 떼서

 

창밖으로 날려버렸어요

 

갑판에 다시 나왔을 땐
일병이 돼 있었죠

 

싣고 온 군마(軍馬)들을
내릴 때

 

사람들 얼굴을
살펴봤는데

 

웃음기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더군요

 

날씨가 참 좋았어요
따뜻했죠

 

우리가 지나는 마을마다
사람들이 달려나와

 

와인이며 프랑스빵,
꽃다발을...

 

사방에 꽃과 나무가
가득하고

 

농부들이 밭일을 하는데
정말 아름답더군요

 

밭이 있으면
당근 따윌 뽑아 와서

 

아작아작 씹으며
걷곤 했어요

 

전쟁이 끝났으면 어쩌나
노심초사했어요

 

프랑스 땅을 밟았을 땐
무척 기뻤죠

 

날아갈 듯했어요

 

참호까지 걸어가는 데
한참이 걸렸어요

 

전선에 가까워지고
있단 걸

 

커져 가는 대포 소리로
알겠더군요

 

첫 포격 땐
정말 기분 좋았어요

 

지나는 마을들이
전부 폐허가 돼 있어서

 

정확한 위치도 알 수 없었어요
벨기에란 것밖에요

 

상상조차 못 해본
광경이었어요

 

보고만 있어도
오싹할 정도였죠

 

나무들은 포탄에
찢겨 있었고

 

곳곳에 탄흔이
남아 있었어요

 

우린 28사단과
맞교대하게 됐는데

 

그들과 마주치면 물었어요
“저 앞은 어때?”

 

대답은 한결같았죠
“정말 끔찍해, 친구”

 

전쟁을 해본 선배들은
생기가 돌았지만

 

난 뭘 보게 될지
짐작도 안 되더군요

 

목숨이 걸린
전쟁이었어요

 

독일군을 마주한 거죠

 

이쪽으로!

 

장전 명령이 떨어지면

 

탄창에 9발,
약실에 1발을 넣고

 

안전장치를 걸어요

 

언제든 바로 총을 쏠 준비를
해 놓는 거죠

 

여기선 규칙이
엄격해져요

 

“잡담하지 말고!
고개 숙여!”

 

“일렬종대!
흡연도 안 돼!”

 

그러고선 바로 참호 안으로
들여보내요

 

참호에 투입될 땐

 

대개 철조망이나
수류탄 가방을 들고 갔어요

 

개인 장비와 함께요

 

그렇게 물자 보급을
했던 거죠

 

항상 안내병이
앞장섰어요

 

참호를 저쪽까지 더 파게

 

- 저쪽 말입니까?
- 그래

 

프랑스 참호는
미로 같아서

 

안내병 없인
금세 길을 잃어요

 

웃어야 어머니께서
걱정 안 하신다

 

이제 올라가, 뛰어! 뛰어!

 

참호는 일직선이
아녔어요

 

일명 “트래버스 체계”로
구축됐는데

 

참호 안에서
포탄이 터지더라도

 

주변까지 휩쓸리는 걸
막아주죠

 

앞에 참호가 하나 있으면

 

그 뒤에 제2의 참호가
있었어요

 

두 참호의 간격은
50야드 이상 됐는데

 

그 사이를 잇는
교통호가 있어서

 

전방이 위험할 때
빠져나올 수 있었죠

 

참호를 봤을 때의
첫인상은

 

꼭 집 같았어요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말뚝엔 외투가
걸려 있었고

 

차(茶)가 담긴
반합도 보였어요

 

대피호 안엔 담요 한 장과

 

모래 포대로 만든
침대가 있었죠

 

양군 진영 사이의 무인지대엔
절대 나가선 안 됐어요

 

그 너머에 살인마들이
득시글대잖아요

 

쌍안경을 들여다봐도

 

볼 수 있는 건
수백 개의 탄흔과

 

아군 철조망,
독일군 철조망...

 

철조망 위엔 시체들이
걸려 있었는데

 

언제부터 있었는진
알 수 없었어요

 

그렇게 적막한 곳은
또 없을 거예요

 

생명의 흔적조차 없었죠

 

그래도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수백 명의 병사들이
숨어 있었어요

 

50명쯤 되는 소대가
전선 100야드를 맡아서

 

그곳을 책임졌어요

 

참호 곳곳엔 “피커딜리 서커스”나
“리전트 스트리트” 같은 표지가 있어서

 

물이 새어 나오는 곳이나

 

적에게 노려지기 쉬운
지점을 알려줬어요

 

방심은 금물이었어요

 

총알이 모래 포대 한 겹쯤은
쉽게 뚫거든요

 

한번은 동료와 대화 중에
“퍽!” 하더니

 

걔 머리가 달걀처럼
으깨졌죠

 

우연히 저격수 눈에
띄었던 거예요

 

전선에선 나흘씩
근무했어요

 

나흘간 먹을 식량을
갖고 들어갔죠

 

- 술 챙겼냐?
- 다음에 봐

 

안부 전해줘라

 

동트기 전에
일과가 시작됐는데

 

부대 부사관이 한 바퀴 돌며
우리 생사를 확인했어요

 

참호에선 2시간 경계 서고
4시간 쉬었어요

 

3개조로 나뉘어 경계 근무,
작업, 취침을 했죠

 

- 일어나!
- 아무 데서나 잤어요

 

침대도 없이
바닥에 누워서요

 

사진 찍힌다고!

 

참호는 굉장히 축축해서
가능하면

 

젖지 않은 곳을
찾으려고 했어요

 

참호 벽면을
파내기도 했는데

 

그러려면 잠잘 시간을
쪼개서 일해야 했죠

 

그러다 2시간 경계 서고
또 쉬는 거예요

 

전선에 별다른 일이
없을 땐

 

중대 전체에 경계조가
2~3개 배치됐어요

 

경계 근무는 졸음과의
싸움이었어요

 

정말 피곤할 땐
서서도 잘 수 있는데

 

내가 많이 그래봤죠

 

전선에 투입되면
가장 먼저 차를 끓였어요

 

비커스 총의
특징 한 가지는

 

수랭식 무기란 건데

 

연사를 하다 보면
물이 끓는 게 보여요

 

튜브를 빼면
차 한 잔이 나오죠

 

식수는 석유통에
담겨 왔어요

 

물에서 석유 맛이 났는데

 

아무리 씻어도
사라지질 않더군요

 

진지마다 아궁이가
있어서

 

잔가지로 불을 땠어요
연기가 많이 나면

 

포탄이 날아들 테니까요

 

찻물을 약간 남겨
면도도 했어요

 

전쟁 중에도 면도는
해야 했죠

 

비가 오면 반합을 꺼내
빗물을 받았는데

 

그 외엔 마실 게 못 됐어요

 

포탄 구덩이에서도
물을 떴어요

 

물속에 시체가 있을지도
몰랐지만요

 

물을 오래 끓이면
녹색 찌꺼기가 떠올랐어요

 

- 서두르지 말고
- 어쨌든 차를 끓였죠

 

그것 때문에 이질에
걸렸나 봐요

 

당연히 위생 시설도
없었어요

 

땅을 파서
목봉을 걸쳐 놓으면

 

그 위에 7~8명이 앉았죠

 

일보기가
큰 고역이었어요

 

프라이버시라곤
전혀 없었거든요

 

난 부끄럼이 많아서
공중화장실도 불편해하는데

 

군대에 있을 땐
익숙해지더라고요

 

상관없잖아요
죄다 남자들뿐인데

 

파리들이 엉덩이에 달라붙어
아주 불쾌했어요

 

휴지 같은 것도 없었어요

 

손으로 뒤처리를
해야 했죠

 

손에 온갖 게 다 묻지만
씻는 법이 없었어요

 

웬 비명이 들리더니...

 

- 악!
- 목봉이 부러져서

 

앉아 있던 넷이
똥탕에 빠진 거예요

 

전쟁 땐 웃긴 일도
많다니까요

 

밧줄 대신 소총을 붙잡고

 

똥 범벅이 돼 나왔는데
다들 질색을 했죠

 

갈아 입을 옷도 없었고

 

몇 주 동안 씻지도 못했어요

 

날 무척 고생시켰던 건

 

바로 득시글대는
이(蝨)였어요

 

이가 아주 골치였어요

 

생긴 것도 별나서
꼭 가재를 닮았는데

 

다리는 6개에
종일 피를 빨았죠

 

이놈들을 죽이려면
불태우는 게 가장 좋아요

 

옷 솔기를 촛불 위에
갖다 대면

 

알이 탁탁 터지는
소리가 나요

 

그 옷을 다시 입는 순간

 

남은 알들이
체열에 부화했죠

 

다음 날이면
원상 복귀됐어요

 

- 아침 식사는 각자 준비했어요
- 안녕

 

빵과 잼요
빵 한 덩이를 16명이 먹었죠

 

6명이 먹을 양의
베이컨도 있었어요

 

베이컨 한 줄을
반합 뚜껑에 올리고

 

불에 장작을 좀 보태
굽는 거예요

 

배어난 기름은
비스킷으로 닦아 내죠

 

그럼 아침 식사가
된 거예요

 

저녁엔 주로
통조림 쇠고기 스튜에

 

각종 채소들을 넣고
끓여 먹었어요

 

“매고너기스” 스튜엔
쇠고기가 섞여 있었죠

 

프랑스 대피호에
있었을 때

 

2년 전 부대가 남기고 간
비스킷을 먹었는데

 

곰팡이 맛은 좀 났지만
탈은 안 났어요

 

뭐든 가리지 않았어요
배고플 땐요

 

우린 항상 배고팠죠

 

언제라도 포탄이
날아들 수 있었지만

 

손쓸 방법은
전혀 없었어요

 

5마일 밖에서 쏜 대포 소리가
언뜻 들렸다면...

 

- 이쪽입니다
- 좋아

 

포탄이 날아오기까지
5~6초가 걸리는데

 

그동안 온갖 감정들이
교차해요

 

침착해!

 

날 가장 불안에 떨게
만들었던 건

 

온종일 쉴 새 없이 쏟아지는
포탄 세례였어요

 

포탄에 맞을 땐 소리도
못 듣는단 말이 있었죠

 

포탄이 음속보다
빠르기 때문이래요

 

엎드려 있으면 심장이
땅을 쿵쿵 쳐대는데

 

그 공포감은
상상을 초월해요

 

50야드 밖에서
포탄이 터져도

 

벌겋게 달아올라 있는
묵직한 쇳조각이

 

내 주변까지 날아왔어요

 

사람이 산산조각난 것도
봤는데

 

살점들을 내가 주워
담아야 했어요

 

가끔 무시무시한
굉음이 들려요

 

꼭 비행기 소리 같았죠

 

그 소릴 듣자마자
혼비백산해선

 

맨땅에 납죽 엎드렸는데
다들 깔깔 웃더군요

 

유산탄은
공중에서 터져서

 

지면으로
탄알을 뿌리는데

 

산탄총과 비슷했어요

 

탄알이 뿌려질 땐
날카로운 소리가 났죠

 

한 가지 골칫거리가
또 있다면

 

독일군이 지뢰를
많이 쓴단 거였어요

 

쏟아지는 잔해를 피해
흉벽 아래로 기어가서

 

부대원들과 함께
총알을 퍼부어

 

독일군이 탄흔 자리를
선점 못하게 막아야 했죠

 

참호가 파손되면
복구해야 했는데

 

그곳 병사들이
할 일이었어요

 

항상 걱정됐던 건
우리 부대에 포탄이 떨어져

 

한순간에 전멸할 수도
있단 거였어요

 

“달려!” 하고 외쳤어요!

 

말들 사이로
포탄이 떨어졌는데

 

아비규환이었죠

 

말들은 내장을 드러낸 채
쓰러져 있었고

 

병사들은 머리가
잘리기도 했어요

 

- 대열 정비!
- “망할 독일놈들!” 하고 욕했어요

 

친구 같던 말을
잃었거든요

 

- 제자리!
- 여단장이 중대장에게

 

“저 병사에게
2~3일 휴가를 주게”

 

“동물을 저렇게 아끼는데
상심을 달래줘야지”

 

전선엔 특유의
냄새가 있었는데

 

맡아 보면 딱 알아요

 

시체 썩는 냄새죠

 

그 역겨운 냄새는
잊을 수가 없어요

 

죽음의 냄새였어요
쥐 시체 냄샐 맡아봤다면

 

그 냄새의 수백 배라고
생각하면 돼요

 

어디서나 그 냄새가 났고

 

음식을 먹을 때도
그 맛이 났죠

 

고약한 악취와
널린 시체 조각들...

 

그런 게 일상이었어요

 

“나도 저렇게 될 텐데
별 대수야?” 싶더군요

 

무덤이나 시체 주변엔
쥐들이 살았어요

 

하나같이
크고 살졌었는데

 

뭘 먹고 그리 됐을진
뻔하잖아요

 

불쾌한 놈들예요
무덤을 파고 들잖아요

 

시체를 파먹다
대피호로 들어와서

 

부스러기를 주워 갔죠

 

참호에서 자다 깼는데
얼굴 위에 뭔가 있다 싶더니

 

쥐 심장이 콩닥콩닥...

 

그놈이 달아날 때
얼굴도 할퀴고 갔어요

 

총으로 쏘고, 때리고, 쫓고
별짓 다 했어요

 

독가스도 있었어요

 

녹색 구름이
멀리서부터 다가와

 

- 시야를 서서히 뒤덮어요
- “가스!” 하고 외치면

 

방독면을 꺼내
2~3초 내로 써야 해요

 

포스겐 가스 맞아요
나중엔 겨자 가스도 썼는데

 

효과가 아주 좋았어요

 

그걸 마시면
멀쩡할 수가 없었죠

 

방독면이 없을 땐
손수건에 소변을 묻혀

 

코와 입 주변을
감싸야 해요

 

난 내 손수건에 소변을
묻히기 싫었어요

 

그래서 변소에 들어가

 

양동이에 머릴 처박았죠

 

더는 못 참겠다 싶으면
고갤 빼서

 

숨을 들이마신 뒤
다시 넣었어요

 

이 짙고 탁한 구름은
순식간에 우릴 덮쳤어요

 

눈이 따가워 비비면
역효과만 나요

 

장님이 되면 어쩌나
엄청 걱정했어요

 

근데 굳은 피를 뽑고
식염수를 주사하면

 

증상은 거의 회복됐죠

 

나도 가스를 마셔봐서
아는 거예요

 

겨울이 오고
날씨가 추워지면

 

참호에 점점
물이 차오르다가

 

도랑처럼 변해 버려요

 

발목 높이쯤 되던 수위가
점점 높아져서

 

가슴까지 물에 잠기는데

 

동상(凍傷)도
많이 걸렸어요

 

군화에 물이 차면

 

다음 날 아침에
벗을 수가 없었죠

 

발까지 얼어붙어서요

 

“참호족”이란 건
발이 썩는 건데

 

바로 이송해서
다릴 잘랐어요

 

여기 좀 도와줘

 

땅이 물을 빨아들이면

 

참호 바닥이
진창으로 변했는데

 

꼭 접착제 같았어요

 

땅이 곤죽처럼 진 데다

 

아주 끈적끈적했죠

 

뭐든 붙잡곤
놓질 않았어요

 

식량을 타러
후방에 가야 할 땐

 

그 길이 악몽처럼 느껴져요
굉장히 미끄럽죠

 

폭우가 쏟아지고
발판이 미끌미끌하면

 

입이 아주 험악해져서

 

생전 못 들어본 욕을
다 듣게 돼요

 

자칫 발을 헛디뎠다간

 

온갖 시체가 섞인 진창에 빠져
죽음을 맞는 거예요

 

한 녀석이 진창 한가운데서
허우적대고 있었는데

 

할 수 있는 일이
없더라고요

 

꺼내줄 방법이 없었어요

 

그 어린 녀석 표정이
얼마나 불쌍했는지 몰라요

 

수렁에 빠져 죽는 이들을
여럿 봤는데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죠

 

전선이 잠잠할 땐
가끔 술 취한 독일군이

 

“본때를 보여주마” 하며
대포를 쏴서

 

철조망에다 수백 발을
내리꽂았어요

 

일명 “전선 지키기”였죠

 

우린 사회와 완전히
분리돼 있었어요

 

진흙투성이가 돼
짐승처럼 살았죠

 

산토끼들의 심정을
알겠더라고요

 

우리도 인간에게
사냥 당하고 있었잖아요

 

전우의 목숨이
내게 달려 있었는데

 

그렇게 다져진 전우애는
쉽게 깰 수 없어요

 

눈앞의 상황은
알 수 있어도

 

그 너머의 일엔 깜깜했죠

 

현재 전황이 어떻든,
누가 이기고 있든

 

전혀 관심 없었어요

 

부랑자처럼 살면서
단추 하나 안 닦았어요

 

군복도 집히는 대로
입었는데

 

싸울 수 있다면
문제삼지 않았죠

 

한가할 땐 얘길 나누며

 

어디서 왔는지 묻고...

 

다들 친구 같았어요

 

서로에게 친절을
듬뿍 베풀었죠

 

전쟁이 소강 상태일 땐

 

전방에 있는 편이
더 즐거웠어요

 

별로 위험하지도 않았죠

 

친구들과 함께하는
캠핑 같았는데

 

약간의 스릴은
덤이었어요

 

종종 적 참호를 급습해
포로를 잡아 왔어요

 

급습 작전엔
대개 8명을 투입하죠

 

작전 돌입에 앞서

 

밤에 철조망을 잘라
길을 내 둬요

 

적진에 들어갈 땐
살며시...

 

냅다 뛰죠
우린 그렇게 했어요

 

대피호에서 적들이 나오면
총검으로 찌르고

 

머리를 후려친 뒤
수류탄을 던져 넣었어요

 

상대를 죽이는 방법은
3가지인데

 

손칼 쓰기, 목 조르기,
총검 찌르기였죠

 

가장 조용한 건 목을 감싸고
등을 찌르는 거예요

 

적병에게 권총을
던진 적이 있었어요

 

18살쯤 돼 보였는데
얼굴을 세게 맞곤

 

소릴 지르며 다가오는 걸
뭍잡아 왔었죠

 

어쨌든 총으로
맞힌 셈예요

 

- 잘했다! 아주 잘했어!
- 갖고 다니던 술을

 

마시라고 줬어요
미안한 맘에 말예요

 

그 병사가,
“고맙다, 맛이 좋다”

 

결국엔 죽었죠

 

포로 데려와!

 

급습은 성공적이었어요

 

포로 둘을 잡았으니
만족할 만했죠

 

그나저나 그때 잡힌
포로들이

 

서부 전선에서 만난
첫 독일인들이었어요

 

그래, 또 뭐가 있나?

 

독일군 상당수는
상냥하고 친절했어요

 

사실 바이에른 출신들은
참 인품이 좋았죠

 

저격수가 총을 쏜다고
항상 맞히진 않잖아요, 그렇죠?

 

독일군이 건 표지에
“신은 우리 편이다(Gott mit uns)”라고 썼길래

 

하나 써서 걸었죠
“우리도 벙어리장갑 있다(Got mittens)”

 

그 농담을 좋아했을진
모르겠어요

 

바르텐베르크 출신의
한 독일군 부상병은

 

우리가 먹을 것도
주고 그랬는데

 

프로이센인들 욕을
엄청 하더라고요

 

전선에서 대치 중이던
색슨인들이 우리에게

 

곧 프로이센인 부대가
올 거라면서

 

한단 말이,
“그놈들 혼쭐내줘!”

 

프로이센인들을
싫어했어요

 

잔혹한 놈들이랬죠

 

- 이쪽이야
- 슈넬! 슈넬!(빨리! 빨리!)

 

- 똑바로 보고 다녀!
- 어서 움직여!

 

바이에른인과 색슨인들은
꽤 교양 있는 편이어서

 

영국인과 더 가까웠어요

 

전선에서의 나흘이 지나면
타 부대와 교대하고

 

몇 마일 뒤에 있는
숙소로 이동했어요

 

한 주의 휴식이
우릴 기다렸어요

 

다들 지쳐 있었어요

 

녹초가 돼 있었죠

 

진흙만 털어냈을 뿐인데

 

그걸 “휴식”이라고
부르더군요

 

전방에 있을 땐

 

사람을 차별하지
않았어요

 

덜떨어진 친구가 있어도
눈길을 줬다고요

 

꼭 가족 같았지만
후방으로 나오면

 

그런 애들과는
상종하기 싫었어요

 

“전우애”는 어쨌냐 하겠지만
실제로 그랬는걸요

 

- 편지 받아 가!
- 잘 왔어

 

항상 웃기는 짓을 벌인다고
생각했던 건

 

다음 날 아침에

 

전 병력이 몸에 묻은 흙을
싹 털어 내야 했단 거예요

 

군복도 공들여서
솔질해 말렸고

 

군화도 닦았어요

 

말하자면 새단장한 거죠

 

우린 늘 똑같았어요
힘들 때도 기죽지 않고

 

사소한 일에 웃으며
항상 최선을 다했죠

 

참 영국인다웠어요

 

- 왜?
- 부대엔 웃음이 넘쳤어요

 

다 또래 청년들이라
눈치볼 게 없었거든요

 

괜한 일로 법석 떨지 않고

 

사소한 일거리들은
시간 때우는 셈 쳤어요

 

놀잇거리도 직접
만들었죠

 

망할 놈

 

별것 아닌 일로도
웃었어요

 

아마 전쟁 중이란
불안감 때문에

 

그러지 않았나 싶어요

 

어머니께서 소포로
플럼푸딩을 보내셨는데

 

조리할 방법이 없어서
럭비공으로 썼어요

 

연대에서 운동회를
열었을 때

 

나만 제정신이었던 건
아녔겠지만

 

대부분이 좀...
취해 있었죠

 

- 때려!
- 한 방 먹여!

 

- 옳지
- 어디든 다 참여했어요

 

그래야 시간이 빨리 갔거든요
그렇지 않으면 앉아서

 

담배나 필 수 밖에요

 

- 힘내!
- 떨어져!

 

우리가 포병을
볼 수 있는 건

 

- 후방에 있을 때 뿐이었어요
- 발사!

 

전선 2마일 뒤에 있었죠

 

- 8, 2...
- 발사!

 

적 포대를
무력화하기 위해

 

아군 포대를 배치해
사격했어요

 

- 발사!
- 이동!

 

방향과 고도는
항공기로 알아냈죠

 

- 다 지나면 시작하자!
- 섬뜩하게 들리겠지만

 

독일 포병을 최대한 많이

 

- 죽이려 했어요
- 준비!

 

발사!

 

그땐 대포를 옮길 만한
차량이 없을 때라

 

말들이 그걸
끌고 다녔어요

 

대포 한 정에 8마리,
짐마차 한 대에 4마리...

 

60마리쯤 됐어요

 

포병대는 소리도
요란해서

 

덜컹덜컹 소리에
말들도 울어 댔는데

 

전투를 앞둔 병사들
속을 박박 긁었죠

 

밀어!

 

- 옳지! 한 번 더!
- 밀어!

 

급료는 각 중대장에게
받았어요

 

대개 전선에서 철수한
다음 날 아침에

 

5프랑을 받았는데

 

1프랑이 10펜스니까
2주 동안 50펜스를 번 셈예요

 

이제 흥청망청 써야죠

 

마을마다 하나씩
매춘업소가 있어서

 

젊은이들에게 인생을
좀 더 알려줬어요

 

집이나 학교에선
못 배웠던 걸요

 

얼마 전까진
애 같던 녀석들이

 

금세 어엿한
남자가 됐죠

 

한 친구가,
“‘화이트 스타’란 곳에 가보자!”

 

“술집인 것 같아”

 

난 아주 순진했었는데

 

거기서 반쯤 벗은
아가씨들을 보니

 

오, 세상에!
눈이 번쩍 뜨이더군요

 

난 어려서
경험이 전혀 없었는데

 

그곳엘 자주 가던
친구들을 따라가게 됐어요

 

맘이 조급해서 한 친구에게,
“6펜스로 될까?”

 

“그걸론 안 돼
1실링(12펜스)이야”

 

첫 방문은
그렇게 끝났어요

 

그나저나 안을 잠깐
둘러보는데

 

아가씨들 4~5명이
알몸으로 내려오는 거예요

 

후다닥 달아났죠!

 

놀랄 만한 경험이었어요

 

덩치 큰 여자가
손에 회초리를 쥐고

 

어린애 혼내듯
엉덩일 때려 댔죠

 

“이렇게 해야지!
저렇게 하라니까!”

 

쿵쿵쿵쿵!

 

부대에선 온종일
도박판이 벌어졌어요

 

캐나다와 호주 군인들은
돈을 쏟아붓는데

 

그렇게 큰 돈은
처음 봤어요

 

맥주 왔다!

 

맥주가 굉장히 묽었어요

 

“1:9”라고 했죠
한 잔 마시면 9번 소변 봐요

 

담배는 금요일마다
배급됐어요

 

상표는 “세 마녀”였는데

 

“세 창녀”로도 불렀어요
“붉은 경기병”도 있었죠

 

군인 부조 기금으로
만든 걸 거예요

 

근데 웬만한 마을에선 “우드바인”이나
“플레이어스”를 구할 수 있었는데

 

보급 담배들보다
훨씬 좋았어요

 

물론 프랑스인들과
물물교환도 잦았는데

 

속옷을 주면
빵 한 덩이를 받곤 했어요

 

영국 담배와 프랑스 와인을
맞바꾸기도 했죠

 

전방에 있을 때도
힘들지만

 

때론 후방이 더 힘들어요

 

일손으로 불려 가면
작업반에서 일해야 해요

 

쓰레기 더미 속에서
물자를 찾아 옮겼어요

 

어마어마한 양의
모래 포대와 발판...

 

가장 끔찍한 건
철조망예요

 

- 됐어
- 쉬운 일이 없었어요

 

우린 군인보다
막노동꾼에 가까웠죠

 

다들 기진맥진했지만
쉬지 못했어요

 

정신적으로도
힘들었어요

 

참호에서 고생하다
막 나왔는데

 

다시 고생길이잖아요

 

저기 내려놔

 

화물 수송을 위한
경량 철도가 있었어요

 

간이 선로를
깔아 놨더라고요

 

간단한 장치였어요
바퀴 달린 차량을

 

엔진으로 굴리는 거죠

 

경량 철도란 게
참 골칫덩이였는데

 

걸핏하면 탈선하기
일쑤였어요

 

완만한 비탈에서도
제어가 안 돼서

 

덜커덩거리더니

 

싣고 가던 걸
죄다 쏟더라고요

 

기관사에게 반합을
가져다주면

 

차 우릴 물을
담아 주기도 했었어요

 

- 요령 피우지 말고
- 한 바구니 더

 

저쪽이잖아

 

우리 부대의 연기가
독일 진영에서 보였다면

 

그건 대개 참호로 가는
가솔린 열차였어요

 

경량 철도는
교통호까지만 이어져서

 

그 뒤론 화물을
손으로 옮겼어요

 

그럼 이만...

 

누군가 우리에게, “됐어!”

 

“성탄절 전엔
집에 갈 수 있겠어”

 

“길 따라 쭉 내려가서
한번 봐봐”

 

뭔지 궁금해서
길을 따라 가봤죠

 

길가에 뭔가가
방수천에 덮여 있었는데

 

각진 형태란 것밖엔
알 수 없었어요

 

부대 장교가
입단속을 당부하더군요

 

뭐냐고 물으니
“탱크”라고만 말해줬어요

 

식수가 부족할 때라
당연히 물탱크일 줄 알고

 

추가 보급이
온 거라 생각했죠

 

그만큼
극비 사항이었어요

 

전쟁을 끝내줄 기계가 왔다고
다들 좋아했어요

 

곧 집에 갈 수 있겠다고요

 

물론 헛된 기대였죠

 

후방에 있을 땐
집중 훈련을 받았어요

 

모래 포대 찌르며
소리도 지르고...

 

적을 죽일 때를 위한
연습이었죠

 

사격장에서 총도 쐈어요

 

총유탄을 쏘는
특기병도 있었어요

 

실력은 엉망이었죠

 

맘에 안 들었어요

 

쉼 없는
강행군 연습도 했고

 

전방 공격, 우측방 공격,
좌측방 공격

 

양측방 공격, 야간 공격...

 

대체 뭘 위한
훈련인가 싶더군요

 

군단장에게 지시가
내려왔댔어요

 

작전 수행을 맡아

 

- 적 방어선을 부수라고요
- 서두르게, 웰링턴!

 

전방 지원을 위해
다시 전선에 가야 했어요

 

철수한 지
이틀째에 말예요

 

물자 수송 행렬이
이어졌는데

 

대부분 전선에 보낼
탄약이었어요

 

정확한 건 몰랐지만

 

뭔가 큰 작전을
벌이는구나 싶더라고요

 

포대도 이동했어요

 

포탄을 챙겨
전방에 집결했죠

 

- 사다리 올려 보내자!
- 알았어

 

지원이 속속 도착하자
전선도 바빠졌는데

 

상황이 급박하단 뜻이니
썩 좋진 않았어요

 

총검 돌격 땐 기관총병을
노리란 얘길 들었어요

 

전 계급의 장병들에게

 

곧 펼쳐질 작전의 중요성을
알리고자 한다

 

독일의 병력과 화력은
우리보다 열세다

 

우리가 총공격에 나서면
금세 무너질 것이니

 

타지에서 싸우는 것을
두려워 말라

 

자랑스럽게도 우리 여단이
활약할 곳이

 

이 첫 전투가 됐다

 

전 영국이 지켜보고
있음을 명심하라

 

밤새 행군을 했는데
워낙 힘들어서

 

장교들이 우릴
떠밀다시피 했어요

 

다리가 저절로 움직여

 

꿈속에서
걷고 있는 듯했죠

 

전선에 병력이 몰려들어
연대가 북적였어요

 

참호 안이 병사들로
빽빽이 들어찼죠

 

우리 중대장이 참 멋졌어요
절대 윽박지르지 않고

 

차분히 명령을
내렸거든요

 

“적 참호까지의 거리는
2~300야드쯤 된다”

 

“내가 전위조를,
자네가 후위조를 맡아서”

 

“포격 개시와 함께
전진한다”

 

“가서 병사들을
준비시켜라”

 

이렇게 지시를 받았죠

 

공격을 맡은 2개 중대는

 

작전 중 명령을 전할
방법을 몰랐는데

 

네빌 중위의 생각은
소대마다 공을 줘

 

그걸 차며
쫓게 하는 거였어요

 

그랬다면 도움이 됐을 거예요
잡념을 없애줬겠죠

 

탄환이 든 띠를
목에 하나 더 두르고

 

삽이나 곡괭이도
챙겼어요

 

참호 안에서
“제로 아워”를 기다렸어요

 

시계는 미리 맞춰 놨었죠

 

난 “선두 총검병”이란
역할을 맡았는데

 

착검된 소총을 들고
내가 앞장서면

 

나머지는 수류탄
가방을 옮겼어요

 

언제든 공격할
준비를 갖추랬지만

 

그 “언제”는
도통 오질 않더군요

 

긴장감만 더해질
뿐이었어요

 

전선 조심해!

 

우리 소대가
첨병 역할을 맡았어요

 

참호를 나가
적진 방향으로

 

200야드쯤 전진한 뒤
되돌아왔죠

 

작전일까지 예비 포격을
중단했다가

 

전투 직전에 단 한 번
집중 포격을 했어요

 

발사!

 

적 철조망을 끊어 놓기
위해서였죠

 

발사!

 

적의 예상 집결지에
포격을 명령했어요

 

- 포격이 시작됐고...
- 준비! 발사!

 

- 땅이 흔들렸어요
- 발사!

 

수백 정의 대포들이
불을 뿜는 게 보였어요

 

준비! 발사!

 

1발!

 

2발! 3발!

 

4발!

 

우리가 대포를 쏘자
독일도 즉시 반격했어요

 

우린 4시간을
그 속에서 버텨야 했죠

 

수백 대의 탱크들이
먼저 투입됐고

 

묵직한 쇳소리가
울려 퍼졌어요

 

탱크 320대가
진격했어요

 

우린 출동 신호를
기다렸어요

 

이미 몸이 근질거렸지만
참고 기다렸죠

 

전날 밤엔 포격 때문에
한숨도 못 잤었어요

 

잠시도 멎질 않았거든요

 

중대 장교에게 소지품을
내라고 했어요

 

아끼는 사진이나
편지 같은 걸요

 

부대원들의 대화 소릴
듣고 있으면

 

몇이나 살아남아
일출을 볼까 싶더라고요

 

군인 급료 장부엔
유언 작성에 관한 항목이 있어요

 

첫 전투 때 써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죠

 

남길 게 없었거든요

 

옆의 전우에게
깊은 우정을 느꼈어요

 

전날까진
남남이었어도요

 

작전까지 1시간...

 

생애 가장 길고도
짧은 시간이었어요

 

생각할 시간이
차고 넘쳤어요

 

그때만큼 생각에
깊게 잠겼던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생각을 그친
사람도 있었는데

 

이런 상황에 놓이면
머릿속이

 

- 텅 비어요
- 두려움은 없었어요

 

내게 주어진 일이잖아요
죽어도 별수 없죠

 

이르든 늦든
다 죽을 걸 알았어요

 

죽거나 크게 다치겠죠

 

죽는 건 무섭지 않았어요

 

근데 팔다릴 잃는 건
겁나더군요

 

한 시간을 앉아 기다리는데
정말 힘들었어요

 

잡담을 하며
정신을 뭍잡으려 했죠

 

음담패설과 막말을
늘어 놨어요

 

우린 1,000대의 대포를
등지고 있었는데

 

그게 다 한꺼번에
발사된다 생각해봐요

 

반대편에 있는
독일 대포도요

 

포성이 점점 커져
귀가 멀 듯했어요

 

대화도 물가능했어요

 

3~4피트 거리에서
포탄이 스쳐지나가고

 

공기가 부글부글 끓는데
정신을 못 차렸어요

 

완전히 이성을 잃었죠

 

그럴 땐 돌발 행동도
튀어나와요

 

갑자기 한 친구가
울면서 소릴 지르는데

 

부대 지휘관이
부사관에게

 

“누군지 찾아내서 쏴 버려!
당장!”

 

쏟아지는 포탄 속에선
이해 못할 행동들을 했어요

 

그 병사의
울음소리 때문에

 

부대가 위험해질 거라
생각한 거예요

 

공격 전에 럼주를
넉넉히 마시게 해줬어요

 

그러다 착검 명령이
떨어졌죠

 

- 착검!
- 착검!

 

밤새 비가 내리다
새벽에 개어서

 

날씨가 참 맑았어요

 

출동 5분 전에
부대원들을 봤는데

 

다들 얼어붙어 있더군요

 

앉아서 기다릴 때가
더 무서웠어요

 

엄청 겁에 질렸었죠
정말예요

 

한 장교가 전선을 돌며,
“준비 다 됐나?”

 

내가 외쳤죠
“착검이 잘 안 됩니다!”

 

“저 답답한 놈! 빨리 해!”

 

여단 본부에 모든 준비가
끝났음을 알렸어요

 

근데 불행히도
약간의 실수가 있었죠

 

우릴 맞이한 건
거대한 땅울림이었어요

 

적 지뢰를 제거했다고
믿었지만 아녔어요

 

지뢰는 무인지대에서 터졌고
그 뒤에 바로

 

적들이 탄흔을
점령해 버렸죠

 

무어 중사가
참호 뒤에 서서

 

권총을 손에 쥐고
외치길

 

“누구든 물러서면 쏠 테다!”

 

그러니 전진할 수밖에
없잖아요

 

참호를 나설 땐
망설임이 없었어요

 

적어도 우리 부대는
말예요

 

발사!

 

- 발사!
- 전방에 포탄막이 쳐지면

 

우리가 전진해요

 

- 그게 계획이었어요
- 발사!

 

- 발사!
- 그때 알았죠

 

공격할 때란 걸요

 

- “제로 아워”였어요
- 누군가 외치길, “저기 간다!”

 

왼편을 보니 “런던 스코티시” 부대가
달려나가고 있더군요

 

이렇게 명령했어요
“사다리 위로! 올라가!”

 

그때부터 우린 완전한
소음에 휩싸였어요

 

참호를 나서는 순간
두려움은 사라져요

 

우린 뛰지도,
소릴 내지도 않았어요

 

침묵만을 지켰죠

 

무인지대에
발을 딛자마자

 

한 병사가 총에 맞아
머리가 으깨지는데

 

썩 좋은 작별은 아녔어요

 

포탄막은 적 방향으로

 

- 한 번에 100야드씩 움직였어요
- 발사!

 

총검을 든 영국 군대가
당당히 걸으며

 

포연 뒤를 따랐어요

 

잊을 수 없는 광경이었죠

 

전투 전에 적 기관총탄이
날아왔는데

 

그 수가 너무 적어
수상쩍다 싶더라고요

 

뒤늦게 알았지만
독일군이 총을 몇 발씩 쏘면서

 

우리 위치를
가늠해본 거였어요

 

이미 10~20대의 기관총이
배치돼 있었죠

 

아수라장이 됐어요

 

세상에, 정말 우리에게
총을 갈기더군요

 

속수무책이었죠

 

흩어져! 흩어지라고!

 

멈춰 서지 마!

 

기관총탄이 우박처럼
쏟아졌어요

 

그 쉭쉭대는 게
총알인 것도 몰랐었어요

 

주위를 돌아보니
전부 쓰러지는 거예요

 

그냥 다 사라졌어요
내 주변에서요

 

그때 든 생각이,
“왜 난 안 쏘는 거야?”

 

난 얼마 못 가서
허벅지에 총을 맞았어요

 

권총을 든 대위 한 명이
옆에 있었는데

 

갑자기 쓰러지더라고요

 

어떤 녀석은
다리를 다치고도

 

포기하지 않고
한 발로 뛰면서 갔죠

 

총알이 탱크를 때리면

 

날카로운 쇳조각이
내부를 휘젓고 다녔어요

 

부대원들이 쓰러져도
멈추지 않았어요

 

걸을 수 있는 한
계속 전진했죠

 

왼손에 심한 통증이
느껴져서 보니

 

큰 구멍이 뚫려 있더군요

 

한 병사는 내 앞을 지나가다
총에 맞았어요

 

날아간 지갑 내용물을
주우려 했었죠

 

오른팔에 통증이
밀려오고

 

피가 손끝까지
흘러내렸어요

 

그 기관총병이 날 쏠 거라곤
생각 못 했는데

 

다음 순간
무수한 총알들이 날아와

 

몸 오른편에 박혔죠

 

토끼 한 마리가
눈이 벌게진 채 달려가는데

 

난 그 갑절이나
겁에 질렸었다니까요

 

주위에서 동료들이
쓰러져 가면

 

이제 다 끝났구나 하는
절망감이 찾아와요

 

내 앞에 있던 둘도
머리, 가슴에 총을 맞았어요

 

망할 총알이 내 다릴 관통하며
큰 구멍을 냈는데

 

통증이 없었어요

 

생사를 수시로 오갔지만

 

우린 계속 전진했어요
총에 맞을 때까지요

 

뭔갈 깊이 생각할
여유도 없어요

 

기관총탄이 쏟아져도
안 맞으면 쭉 가는 거예요

 

인생을 돌아본다잖아요

 

죽기 직전에요
근데 19살 인생 별거 없거든요

 

총알이 빗발칠 때 든 생각은
오직 “살 수 있을까?”였어요

 

제대로 맞는다면
당연히 즉사예요

 

고통도 없이 끝나게 돼요

 

전위조는 완전히
전멸했어요

 

전부 죽거나 다쳤죠

 

시체가 너무 많아
발로 밟고 가야 했어요

 

피해 가려 하니
뒤에서 외치더라고요

 

“발밑에 정신 팔리지 마!
그냥 가!”

 

말 그대로 전우의 시체를
넘어 간 건데

 

말도 못 할 참극이었어요

 

내 앞에 적과 아군 시체
2,000구가 있었는데

 

시체를 치울
엄두조차 못 냈어요

 

포격 때문에
그냥 뭉개고 지나갔죠

 

탱크 가까이에서
포탄이 터지면

 

공중에 붕 뜬 것 같다가

 

허릴 짓눌리는
고통을 느껴요

 

전투의 소음을
밖에서 들으면

 

총성조차 분간하지
못할 정도예요

 

우린 철조망 앞에서
멈췄어요

 

더이상 전진할 수가
없었어요

 

철조망과
기관총 기지들이

 

50야드 앞에 깔려 있었죠

 

철조망엔 상처 하나
없었어요

 

그렇게 포격을
맞고도 말예요

 

철조망이 땅을 덮어

 

끝이 보이질 않더군요

 

아주 새까맸어요

 

거긴 토끼들도
못 넘어갈 거예요

 

그때쯤 아군 포대가
우릴 포격하기 시작했어요

 

사거리 한계였거나
우리 위치를 몰랐던 거죠

 

유산탄 소릴
바로 아래서 듣는데

 

아주 섬뜩하더군요

 

그때 잃어버린 철모를
다신 못 찾았어요

 

탄알이 내 뺨과
엉덩이에 하나씩...

 

다리에도 한 발 박히고
한 발은 관통했죠

 

옆에 있던 친구는
폭발에 휩쓸려

 

머리 절반이 날아갔어요

 

총알이 빗발치고
유산탄이 쏟아졌어요

 

적군이 포탄을
퍼부어 대는 와중에

 

아군 포탄까지 날아왔죠

 

사방에서 포탄이
터졌어요

 

정말 치열한 전투의
현장이었어요

 

정신을 못 차렸어요

 

그런 불난리 속에선
생각할 겨를조차 없죠

 

온몸을 짓누르는
굉음 속에선

 

평소처럼 행동하는 게
불가능해요

 

맘처럼 되질 않아요

 

시선이 허공을 맴돌고
귀가 먹먹해지며

 

입 안이 바싹 마르고
콧속엔 연기가 차요

 

체면 차릴 여유 따윈 없죠

 

난 12~14야드쯤
내던져졌어요

 

생존자들의 울음과
비명이 들리는데

 

다들 몸이
온전치 않더군요

 

팔다리가 사방에 흩어져 있고
탄내가 진동했어요

 

전쟁에 대한 환상이
완전히 깨졌어요

 

이 친구는 포탄에 맞아
왼팔을 잃고

 

왼다리도 잃고
왼눈이 뽑혀 나왔어요

 

“내니”란 이름을
애타게 부르는데

 

뽑혀 나온 눈이
꿈틀거렸죠

 

그래서 쐈어요

 

쏠 수밖에 없었어요

 

결국엔 죽을 테니
고통을 덜어줘야 했죠

 

정말 괴로웠어요

 

우린 어떤 명령도
못 받았어요

 

상관이 죽고 없었거든요

 

장교 전원, 부사관 대부분이
죽거나 다쳤어요

 

난 구덩이로
몸을 던졌어요

 

포탄 구덩이든 어디든
일단 들어가서

 

포격이 멎길
기다려야 했어요

 

혼자 적군과 맞설
용기는 없어서

 

구덩이 바닥에 엎드려
숨어 있었어요

 

구덩이에 들어갈 수 있어
운이 좋았죠

 

일명 “구덩이 생존자”라고
불렀는데

 

살아남기 위해
일찍 몸을 숨긴 이들예요

 

안타깝게도
제때 숨지 못하면

 

포격이 멎기 전에
목숨을 잃었죠

 

총알이 구덩이 속으로
날아드는데

 

꼭 빗줄기 같았죠
어떻게 살았나 모르겠어요

 

구덩이 아래 숨어 있는데

 

목 뒤로 모래가
계속 쏟아지더군요

 

구덩이에 함께 있던
셋 중 한 명이

 

“네 삽에다 쏘고 있잖아!”

 

돌아본 순간
총알이 걔 머릴 뚫었고

 

- 그게 끝이었어요
- 중사 한 명이

 

우리 구덩이로 떨어졌는데
이미 죽었더라고요

 

근데 멋진 쌍안경을
갖고 있길래

 

내가 챙겼어요
그런 건 구하기 힘들어서

 

눈에 보이면 가져왔죠

 

독일군이 포탄을
퍼부어 대다

 

한 발이 탱크를
뚫고 들어갔는데

 

어떻게 됐나 모르겠어요

 

분명 폭발이 있었겠죠

 

우린 언제든 장전할 수 있게
훈련받았어요

 

근데 속사를 위해
탄환을 채울 때 막히더군요

 

독일 병사들이 참호를 나와
우릴 쐈는데

 

내가 봐도
참 용감하다 싶었어요

 

흉벽 위에서 수류탄을 던지는
적병이 있길래

 

총으로 쐈어요

 

즉시 속사를 개시하란
명령을 듣곤

 

우린 재빠르게
속사를 하기 시작했어요

 

정말 “광란의 1분”이었죠

 

독일군이 일어나면
저격수인 내가 쏴 맞혔어요

 

적을 쏘려 하던 중에
뭔가 번쩍하고

 

두 눈 사이를
세게 때리더니

 

그대로 정신을 잃었어요

 

별 수백만 개가 눈앞에서
빙빙 돌더라고요

 

탄환을 전부 쓰고 나서

 

엎드려 말했어요
“자네도 쏴, 빌”

 

걘 한 발도 못 쐈죠
일찌감치 죽었거든요

 

사실 이런 거예요

 

맘이 아프죠
친구가 죽었잖아요

 

근데 털어 내야 했어요
전투 중엔 말예요

 

우린 총이 못 견딜 때까지
계속 쐈어요

 

- 과열돼서 못 쏠 때까지요
- 기름이 새어 나와

 

목조부로 흘러내리고

 

총열이 늘어나기
시작했어요

 

중대장이 명령을 내리길

 

주변 시체를 쌓아
방어벽을 만들랬죠

 

우리 중대장이 작전에 대한
열의가 넘쳤는데

 

불행히도 전사했어요

 

총유탄병 셋을 데려가
적진에 난사했는데

 

비명을 들어보니
많이 죽었겠더라고요

 

기관총병 하나가
우릴 향해 쏘고 있어서

 

탄환이 떨어지길
기다렸다가

 

즉시 달려나갔어요

 

부대 중사가
우릴 이끌었죠

 

철조망 아래를 기어서
간신히 통과한 뒤에

 

반대편에서 다시
집결했어요

 

적진에 쏟아지던 포격이
멎는 걸 보고

 

“가자, 본때를 보여줘!” 하며
일어나 돌격했어요

 

총검 돌격 때도
우리들 대부분은

 

탄환 한 발을
장전하고 있었어요

 

우리에게 총과 총검,
밀스 수류탄만 있으면

 

당당히 놈들 사이로
달려 들어가

 

- 복수해줄 수 있었죠
- 맹렬한 기세로

 

적들에게 덤벼들었어요

 

움직이는 건 뭐든 쐈어요

 

내가 넘어졌을 때

 

중사 한 명이 내 어깨 너머로
적을 쏴 맞혔어요

 

쓰러져서도 총을 쏘길래
확인 사살도 했죠

 

백병전 땐 이것만
기억하면 돼요

 

총검을 있는 힘껏
찔러 넣을 것

 

적병 하나가
참호 안에 엎드려

 

떨고 있는 걸 보고

 

어떻게 죽일까
망설이는데

 

적병 둘이 양쪽에서
튀어나왔죠

 

엎드린 놈을 밟고
왼쪽 적을 쏜 다음

 

다시 한 발 장전해
오른쪽 적도 쐈어요

 

독일군이 떼로 몰려오는 걸
차례차례 쏴 죽였는데

 

그 수가 꽤 될 거예요

 

누군가 내게,
“물쌍한 딕이 당했어”

 

그 친구 머리가 깨진 채
쓰러져 있었어요

 

적병 하나가 철제 용기를
메고 나타나

 

호스로 불을 뿜어 댔어요

 

참호 건너편에서
불길이 솟구치는데

 

듣도 보도 못한 무기였죠

 

아군 23명이 불타 죽었어요
그놈 가슴에 총을 쐈는데

 

죽질 않더군요
옷 속에 철판을 댔었겠죠

 

난 팔에 총상을 입어
쓸 수 없었는데

 

왼팔로도 수류탄을
꽤 잘 던졌어요

 

누군가 던진 수류탄이
그놈 뒤에서 터졌고

 

등엔 철판이 없었는지
죽더라고요

 

적병 하나가
참호에서 달려나와

 

막 소릴 지르는데
아주 식겁했어요

 

독일군 셋이 양손을 들고
걸어 나오는데

 

우리 또래 같더라고요
19~20살쯤 말예요

 

독일군이 항복해 오면
다 받아줬어요

 

절대 쏘는 일은 없었죠

 

항복해도 골치예요!

 

우린 그냥 총으로
쏴 죽였어요

 

우릴 참 애먹였던 건
독일 기관총병들이었어요

 

탄창을 갈아 끼우며
쉼 없이 쏴 댔죠

 

탄통을 무더기로
쌓아 놨었어요

 

가장 유능한 병사들이
기관총에 배치돼

 

죽을 각오로 싸웠어요

 

독일군 셋과
눈이 마주쳤는데

 

날 향해서 기관총을
들이대는 거예요

 

바로 루이스 건을 돌려
먼저 쐈죠

 

간발의 차이였는데

 

내가 더 빨랐어요

 

전쟁이 치열해지면
불가피하게

 

우리의 야만적인
본성이 드러났어요

 

부대원들 중 링컨셔 출신
청년들이 많았는데

 

적 기관총병들이
항복해 와도

 

예외는 없었어요
죽여 버렸죠

 

불필요한 학살이
벌어지기도 했어요

 

혼란스런 상황에서
말예요

 

사방에 비명과 신음이
울려 퍼지다가도

 

끝엔 침묵만 남아요

 

한 독일군 장교는
폐가 드러나 있었는데

 

숨은 붙어 있었지만
의식이 없었어요

 

폐에 공기가 드나드는 게
눈으로 보였죠

 

그렇게 가까이선
누굴 쏴본 적 없었어요

 

결국 못 쐈지만요

 

독일군 시체 하나가
벽에 기대어 있었는데

 

꽤 잘생겼더군요
내 아버지를 닮았었죠

 

포탄 파편에 몸이 베여

 

가슴과 배의 전면이
잘려 나가 있는 게

 

칼로 벤 듯했어요

 

몸안이 훤히 다 보였죠

 

실제 총격전이 벌어진 건
10분 내외였어요

 

아군 600명 중
약 100명이 살아 나와서

 

군악대가 우릴
맞이했는데

 

아주 감격스럽더군요

 

전투에 나갔었다니!
그게 참 자랑스러웠죠

 

잠깐만!

 

- 됐어?
- 응

 

누군가 부상을 입거나
죽었을 때

 

그 사람을 바로
데려오지 않으면

 

땅속에 묻혀 못 찾게 돼요
참 안타깝죠

 

그렇지

 

먼저 생사 여부를
확인해야 했어요

 

죽었다면 문제될 것 없죠
의학적으론요

 

그거야 뻔한 얘기잖아요

 

수평 유지해!

 

길 좀 비켜!

 

통증을 느낀 건
한 시간쯤 뒤였어요

 

군화를 살펴보니
총알이 옆을 뚫고 들어가서

 

온 다릴 들이쑤시고
다니다가

 

복사뼈에 박혀
아주 엉망이 됐더군요

 

- 괜찮으십니까?
- 오, 이런!

 

맙소사!

 

부대 선임원사가
따뜻한 차 한 잔을 주는데

 

아주 반갑더군요
맛이 참 좋았어요

 

부상병들이 돌아오기
시작했어요

 

팔이나 다리가
부러진 병사들이

 

붕대를 각양각색으로
감고 오더라고요

 

부상병들 여럿이
무리를 지어서

 

서로 부축해주거나
혼자 걸어 왔는데

 

팔을 못 쓰거나
다릴 절기도 했고

 

별 부상 없이
쾌활안 녀석들도 있었죠

 

안녕, 엄마!

 

상관이 내게,
“몸은 괜찮나, 케인?”

 

그래서 내가,
“예, 걸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뒤통수에
총을 맞았잖나”

 

그러면서 럼주 한 병을
건네줬어요

 

양동이에 토를 하는데...

 

흉부 총상 환자들이
가장 문제였어요

 

숨 쉬기조차 괴로운데

 

가진 건 개인용
보급 붕대뿐이었죠

 

- 금방 나을 거야
- 진료 못 받은 사람?

 

아이오딘 한 병을 가져와
상처에 발랐는데

 

엄청 쓰라렸어요

 

됐어

 

넌 어떻게 된 거야?

 

총알이 관통했어

 

몸 상태가
좋지 않았던데다

 

인내심도 한계에
다다른 것 같았어요

 

이제 못 버티겠다 싶었죠

 

군인이라면 이런 근육통을
다 겪었을 거예요

 

어서 가서 치료 받게

 

다들 수고 많았어

 

다 왔어

 

여러 유능한 의사들이
밤낮으로 일하며

 

각지의 영국 부대에서
환자들을 돌봤어요

 

- 홍차 한 잔 마셔
- 괜찮나, 잭?

 

잠을 안 자나 싶을
정도였죠

 

인력이 부족한 만큼
더 많이 일한 거예요

 

붕대 더 가져오게

 

우리 부대
장교, 부사관 전원과

 

부대원들 3/4이
죽거나 다쳤어요

 

- 꼴이 엉망이야
- 우리 부대엔

 

실직했던 잉글랜드 청년
18명이 있었죠

 

천천히, 됐습니다

 

망할 새들! 저리 꺼져!

 

저리 가

 

전사자들 매장을
우리가 도왔는데

 

다 어린애들이었어요
17~18살이었죠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시는
영원한 생명과

 

부활의 소망을 믿고...

 

그 어린 친구들에겐
첫 전투였는데

 

- 결과도 모르게 됐어요
- 이쪽으로 와!

 

담요로 시신을 감싸고

 

임시로 무덤을 파
가매장했어요

 

독일 포로에게 붕대를 감아주는데
무척 떨더라고요

 

우리가 해코지할까 봐
겁났을 거예요

 

그 친구들에 비할 건
아녔겠지만

 

우리도 무서웠어요
정말예요

 

우리처럼 그들도
다 어렸어요

 

포로가 된 걸 좋아했었죠
안 싸워도 되니까요

 

- 자네 건가?
- 제 거요

 

- 이 친구 거요
- 그렇군

 

주머니에 넣게

 

어린 독일 친구에게

 

담배를 건네줬는데
아주 질겁하더군요

 

얼마나 미안했는지
몰라요

 

16살밖에 안 된 애였죠

 

그래서 얘기도 나누고
시계도 뺏었어요

 

그땐 다 그랬었어요
물건 뺏는 거요

 

좋아, 출발하자
들어!

 

많이 먹질 못해서
몸이 부실했어요

 

어서 들라니까, 어서!

 

참 웃겼던 게
포로 5~6명이 함께 와서

 

날 옮기더라고요
그때 시계 6개를 얻었죠

 

그 녀석들 걸 뺏었거든요

 

포로들을 잡아 오면

 

바로 환자 옮기는 일을
시킬 때가 많았어요

 

지금은 제네바 협약 때문에
그럴 수 없지만요

 

- 이제 내려와
- 내가 잡을게, 천천히

 

- 발 들어
- 잘하고 있어, 옳지

 

- 됐어
- 쭉 내려와

 

포로 12명을
데리고 가는데

 

내겐 낡은 소총
한 정뿐이었어요

 

때론 한 무리의 포로들을

 

감시병도 없이
방치해 뒀죠

 

겁을 엄청 먹어서
기가 죽어 있었어요

 

어서 따라와!

 

팔을 다친 독일 병사 옆에서
잠을 청하려는데

 

놀랍게도 영어로
말을 걸더군요

 

사부아에서 웨이터로
일했었댔죠

 

내 생각에
영국 군인들 대다수는

 

독일인들에게 적대심을
품지 않았어요

 

오히려 그들을
존중했어요

 

저쪽에 보여줘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에 대한
동정심이 생겼어요

 

항상 생각하지만
독일인들이 참 잘 싸워요

 

같은 편이라면
더 좋았을 거예요

 

몇몇 독일인들은
우리가 힘을 합쳐

 

프랑스, 러시아와
싸워야 한댔죠

 

우리끼리 적대하는 건
전부 반대했어요

 

- 쭉 앞으로 가!
- 우린 독일인들을

 

전혀 몰랐잖아요

 

철모가 까맣단 것만 알다가
직접 만난 거예요

 

그 독일 병사는
친절이 몸에 뱄었어요

 

아마 이발사나
가게 주인이었다가

 

우리처럼 군복을
입게 됐겠죠

 

키가 크네
금방 따라잡을 거야!

 

사실 우린 꽤 잘 지냈어요

 

한 편인 듯이 어울렸죠

 

- 네 모자 줄까?
- 돌려줘!

 

가족 생각을
많이 하더군요

 

자녀들을 무척
보고 싶어 했어요

 

네 거 써보자

 

우릴 적대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어요

 

그저 명령에 따라
싸웠던 거예요

 

옳지, 쭉 따라와

 

우리 중 몇몇이
독일어를 했고

 

그들 중에도 몇몇이
영어를 했어요

 

어떻게든
의사소통이 됐죠

 

국적 불문하고
누구나 공감했던 건

 

이 무의미한 전쟁을 해선
안 됐단 거였어요

 

- 우리 사진 찍는대
- 이쪽이야!

 

온종일 시체들을 보고도

 

정신 멀쩡할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몸이 퉁퉁한 독일군 시체가
길에 누워 있었어요

 

배에 가스가 차고

 

내장이 튀어나와 있는데

 

입엔 담뱃대가
물려 있더군요!

 

일어나라고
한 마디씩 했죠

 

독일군이 이리로 온대

 

독일군들은 아주
용맹하고 끈질겼어요

 

라인 강까지 밀려나서도
끝까지 싸웠지만

 

결국 우리 공격에
차례차례 격파됐죠

 

그들이 무너지기
시작한 거예요

 

그들 얼굴에서 느껴진 건

 

실의였어요

 

패배할 걸 알았던 거죠

 

전방에선 곧 적이
항복할 걸 알았어요

 

솔직히 독일군은
질릴 대로 질려 있었어요

 

서서히 전쟁의 끝이
다가왔어요

 

독일 병사들은 승패엔
전혀 무관심한 채

 

전쟁이 끝나기만
바랐어요

 

물론 우리도 똑같았죠
할 만큼 했잖아요

 

결과는 상관없었어요

 

좋아, 다들 준비해

 

- 사진 찍는 거야!
- 쉿

 

전장엔 “루머(소문)”란
친구가 있는데

 

척척박사 루머 씨가
말하길

 

독일이 휴전 협상에
응했댔어요

 

벽보가 붙었었어요

 

“서부 전선에서의
일체 적대행위를”

 

“1918년 11월 11일 11시부로
중단한다”

 

그걸 보고 다들,
“오늘이 며칠이지?”

 

그러다 오늘이
11일인 걸 안 거죠!

 

카메라 보고 웃어!

 

군화와 단추를
광나게 닦았어요

 

전쟁이 끝났단 걸
알았거든요

 

내 눈으로 끝을 봤단 게
참 뿌듯했어요

 

11시에 교전을 중단한단
성명문을 읽어줬지만

 

소리쳐 기뻐하는 이는
없었어요

 

그걸 듣고도 말예요

 

11시 정각에
포성이 들려왔는데

 

멀리서 치는 천둥 같았죠

 

한시도 잠잠한 적 없더니
이제 고요했어요

 

꼿꼿이 허릴 펴도
총알이 안 날아왔어요

 

기분이 묘했죠

 

기다리던 순간이
찾아왔지만

 

축하연은 없었어요

 

참모 장교가 시곌 닫으며
그러더군요

 

“이제 뭘 하게 될지
모르겠군”

 

요란스레
뭘 하려 하긴커녕

 

말 한 마디 안 했어요
그냥 풀썩 주저앉았죠

 

우리가 자축하며
마실 수 있었던 건

 

차 한 잔뿐이었어요

 

그렇게 허탈했던 순간이
또 없었는데

 

이해가 안 되더군요

 

직장에서 쫓겨난 듯한
기분이었어요

 

전쟁만 알고 자란
청년들도 많았는데

 

이제 뭘 해야 하죠?

 

정리 해고나
다를 바 없었어요

 

모두가 그렇게 느꼈어요

 

무척 속상했어요
돌아가도 할일이 없었죠

 

돌아가고 싶지 않았어요

 

완호성도 노랫소리도 없었어요
감정이 마른 듯했죠

 

너무 지쳐서
기뻐할 힘도 없더군요

 

모든 일엔 끝이 있고
드라마도 결말이 나요

 

처참한 패배는 아녔지만
그보다 낫지도 않았죠

 

약 100만 명의
영국 및 연방 국가 군인들이
1914~1918년에 목숨을 잃었다

 

돌아가게 돼 기뻤어요

 

할 만큼 했잖아요

 

시간이 지나니
차차 잊혀지더군요

 

“이제야 다 끝났네”
그랬어요

 

걱정됐던 건 제대 후에
뭘 할지였어요

 

집에 편지부터 썼어요
무사하다고요

 

봉투의 날짜를
몇 번이나 확인했죠

 

난 자연에 관심이 많은데

 

인간이 벌인
전쟁의 참극이 끝난 뒤

 

탄흔에서 핀 꽃을 보곤
무척 기뻤어요

 

은방울꽃과
미나리아재비였죠

 

신부나비와
호랑나비들도

 

엔 강변을 날아다녔어요

 

우린 불로뉴로 갔는데

 

군장에 짐이
한가득이었어요

 

남겨 둔 건 총알뿐이었어요
그건 버려야 했죠

 

소총은 챙겼어요

 

포크스턴에 도착하니

 

긴 가대(架臺)식 탁자 옆에서
친절한 아가씨들이

 

소시지 롤이나 빵, 차 한 잔을 건네며
우릴 반겼어요

 

우린 빅토리아 역에서
해산했어요

 

군부대를 찾아가서
소총이나

 

총검 따윌 반납하는데
각종 정장들이 전시돼 있더군요

 

원하는 모양과 색상을 말하면
몸에 맞춰줬죠

 

여기 돌아왔을 때
큰 충격을 받았었어요

 

일자릴 구하려
했을 때도요

 

실업난이 심해서
이렇게 살 순 없다 싶더군요

 

내가 쓸모없어졌단 걸
절감해야 했어요

 

우리에게 이럼 안 됐어요
짐짝 취급했죠

 

어떤 곳 문 앞엔,
“제대 군인 구직 사절”

 

우리가 그런 대접을
받았어요

 

전사한 친구가 있어서
돌아왔을 때

 

그의 모친을
먼저 방문했어요

 

날 한 대 때리고
싶으셨을 거예요

 

아들은 죽고
나만 돌아왔잖아요

 

무척 억울해하셨죠

 

집에 돌아온 첫날 밤

 

입대 후 처음
침대에 눕게 됐어요

 

다음 날 어머니께서
차를 끓여 오셨을 때

 

바닥에서 잠든
날 발견하셨죠

 

누구도 전쟁 얘길
안 했어요

 

화젯거리로 삼을 가치가
없었던 거죠

 

대부분이
전혀 무관심했어요

 

집에 돌아왔을 때
아버지, 어머니께서도 마찬가지셨어요

 

내가 뭘 겪었는지
감도 못 잡으시더군요

 

참전 군인들이
왜 감사 인사를 받아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됐어요
몸에 진흙 좀 묻히고

 

멀리 떨어져
살았을 뿐이잖아요

 

어쩌다 전쟁 얘길 해드리면
아버진 사실 관계를 따지고 드셨어요

 

알지도 못하시는 걸 말예요
거기 안 계셨잖아요

 

내가 만났던 군인들은
다 공감하더군요

 

우린 사는 세상이
달랐어요

 

전우들에게 말을 하면
알아들었지만

 

일반 시민들에겐
헛짓이었죠

 

상냥한 맘을 지닌
사람들이

 

내 얘길
들어줄 때도 있지만

 

결국 이해 못한 채
돌아갈 뿐이었어요

 

그들에겐 상상하기 힘든
충격이었겠죠

 

함께 동고동락하던
전우들이

 

바로 옆에서 죽임을
당한단 게 말예요

 

내 입대 동기는 넝마처럼 쓰러진 채
죽음을 맞았는데

 

제때 묻어주지도
못했어요

 

우리가 진흙과 이로 덮여
돌아온 건 봤어도

 

참호에 웅크리고 앉아

 

두려움에 떠는 고통은
알 수 없었어요

 

그 끔찍함은
말로 설명이 안 돼요

 

우린 짐승이나
다를 바 없었어요

 

전쟁이 얼마나 참혹한 건지
누구도 몰랐죠

 

말 타고 달리던 때의 전쟁만
생각한 것 같아요

 

어떻게 그렇게까지
감을 못 잡죠?

 

처음엔 뭔가 이유가
있었을 거예요

 

말에 올라
칼싸움을 했을 땐요

 

근데 이제 무시무시하게
변해 버렸어요

 

전쟁 무기의 잠재력을
몰랐던 거예요

 

인간의 목숨은
결국 하찮은 게 돼 버려요

 

우린 영웅 같은 게
아녔어요

 

목숨이 걸린 일을
원하지 않았죠

 

우리끼리 얘길 하면
이런 말이 나왔어요

 

“이런 전쟁을
또 벌일 리가 없지!”

 

어떻게 견뎠냐고요?
답은 두려움에 대한 공포예요

 

두려움을 보이기 싫었죠

 

동료들과의
신뢰도 있었어요

 

그걸 저버릴 순
없잖아요

 

어떻게 해석하든
전쟁이 끔찍한 건 사실예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전쟁만은 막아야 해요

 

난 아직도
의미를 모르겠어요

 

끔찍하기만 했잖아요

 

결국 역사가 말해주겠죠
있어선 안 될 일이었다고요

 

날 무척 열받게 만든 일이
일터에서 있었어요

 

제대하고 나서
가게에 나가보니

 

낯익은 녀석이
계산대에 있었는데

 

날 보더니, “어딜 갔다 오는 거야,
한밤중에?”

 

1910~1919년
영국 육군에 복무하신
내 할아버지께 바칩니다

 

윌리엄 잭슨 중사
남웨일스 국경경비대 2대대
(1890-1940)

 

이들을 추모하며

 

시드니 럭 중사(左)
몬머스셔 연대 2대대
1915년 5월 8일 전사

 

토머스 월시 소위(右)
뉴질랜드 착굴 중대 & 뉴질랜드 소총 여단
1918년 5월 4일 전사

 

아르망티에르의 아가씨

 

팔레부

 

아르망티에르의 아가씨

 

팔레부

 

아르망티에르의 아가씬

 

40년을 키스도 못 했네

 

힝키 딩키, 팔레부

 

아르망티에르의 아가씨

 

팔레부

 

아르망티에르의 아가씨

 

팔레부

 

아르망티에르의
상사님은

 

40년을 철자도 몰랐네

 

힝키 딩키, 팔레부

 

아르망티에르의 아가씨

 

팔레부

 

아르망티에르의 아가씨

 

팔레부

 

한 번만 봐도 알겠네

 

사내들이 속앓는 이유를

 

힝키 딩키, 팔레부

 

아르망티에르의 아가씨

 

팔레부

 

아르망티에르의 아가씨

 

팔레부

 

마을에서 가장 일 많아

 

신세도 싹 고쳤지

 

힝키 딩키, 팔레부

 

아르망티에르의 아가씨

 

팔레부

 

아르망티에르의 아가씨

 

팔레부

 

키스 한 번에 10프랑

 

복숭아처럼 달콤해

 

힝키 딩키, 팔레부

 

아르망티에르의 아가씨

 

팔레부

 

아르망티에르의 아가씨

 

팔레부

 

부인의 어여쁜 따님이

 

군인 속옷을 빤다죠

 

힝키 딩키, 팔레부

 

앞일 걱정 않는다네

 

팔레부

 

앞일 걱정 않는다네

 

팔레부

 

앞일 걱정 않더니

 

보병 부대로 왔다네

 

힝키 딩키, 팔레부

 

아르망티에르의 아가씨

 

팔레부

 

아르망티에르의 아가씨

 

팔레부

 

잠자리에서 즐겁게 해줬지

 

맥심 건처럼 쐈다네

 

힝키 딩키, 팔레부

 

아르망티에르의 아가씨

 

팔레부

 

아르망티에르의 아가씨

 

팔레부

 

정말 즐거웠다네

 

아가씨와 함께 뒹굴었지

 

힝키 딩키, 팔레부

 

아르망티에르의 아가씨

 

팔레부

 

아르망티에르의 아가씨

 

팔레부

 

내게 윙크하며, “위! 위!(Oui! Oui!)”

 

“얼마나 잘하나 볼까요!”

 

힝키 딩키, 팔레부

 

기계가 전쟁을 한다네

 

팔레부

 

기계가 전쟁을 한다네

 

팔레부

 

기계가 전쟁을 한다는데

 

우린 행군을 왜 할까?

 

힝키 딩키, 팔레부

 

아르망티에르의 아가씨

 

팔레부

 

아르망티에르의 아가씨

 

팔레부

 

아르망티에르의 아가씬

 

40년을 키스도 못 했네

 

힝키 딩키, 팔레부

 

장교들이 고길 다 먹네

 

팔레부

 

장교들이 고길 다 먹네

 

팔레부

 

장교들이 고길 다 먹고

 

우린 배만 아프지

 

힝키 딩키, 팔레부

 

가스와 포탄은 잊겠지

 

팔레부

 

가스와 포탄은 잊겠지

 

팔레부

 

신음과 비명은 잊어도

 

아가씨들은 절대 못 잊네

 

힝키 딩키, 팔레부

 

아르망티에르의 아가씨

 

팔레부

 

아르망티에르의 아가씨

 

팔레부

 

수많은 유부남들이

 

프랑스를 그리워한다네

 

힝키 딩키, 팔레부

 

아르망티에르의 아가씨

 

팔레부

 

아르망티에르의 아가씨

 

팔레부

 

코 풀고 눈물 닦아요

 

금방 다시 돌아올게요

 

힝키 딩키, 팔레부

 

아르망티에르의 아가씨

 

팔레부

 

아르망티에르의 아가씨

 

팔레부

 

첫눈에 흠뻑 빠지고

 

밤새 이부자릴 적시네

 

힝키 딩키, 팔레부

 

아르망티에르의 아가씨

 

팔레부

 

아르망티에르의 아가씨

 

팔레부

 

가스와 포탄은 잊어도

 

그 아가씬 절대 못 잊네

 

힝키 딩키, 팔레부

 

가스와 포탄은 잊어도

 

그 아가씬 절대 못 잊네

 

힝키 딩키, 팔레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