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bange 3.0 - (C) Breadu Soft 2008

제작: 니치헤이 신사

 

여보세요
아까자 에미꼬 상입니까?

 

일전에 편지 드린
이마무라인데요

 

다음 작품을
같이 해보려고요

 

네?
언제 돌아옵니까?

 

그래요?

 

출연료 문제는
편지로...

 

그래요?
어머니가 여기 사세요?

 

출연 계약

 

애가 하나도 아니고

셋에다가
미국에 있어요

 

딸애는 생계를
꾸려야해요

 

나더러 알아서 하라는데
그렇게 되나요

 

그래서 만나러
왔어요

 

딸애는 시간이
별로 없어요

 

시간이 많이
필요한데요

 

뭐 못 마치면
출연료는 없겠죠

 

선금 받고
내빼진 않아요

 

이렇게 입었어도
돈이 궁하진 않아요

 

아들이 사업하고
부자에요

 

확실히 해두고 싶어서요

 

우리도 그렇습니다

 

돈 문제를 말하려니
좀 당황스럽네요

 

이왕이면
서면 계약이 낫잖아요

 

그렇게 생각해요

 

뭐 얼마
안 되겠지만

 

요시꾸라 도축장

 

일본전후사
온보로 마담의 인생

 

온보로(누더기) 바

 

1958년 2월에

요꼬스까의
이곳을 샀어요

 

온보로 주점

 

원래 요꼬하마의
야쿠자가 하던 곳인데

 

군인을 다치게 해서
손님들이 끊겼어요

 

골목 끝이라
잘 될지 몰랐어요

 

그땐 미혼이라
쉬지 않고 일해

 

돈 좀 벌었어요

 

'온보로'란 이름을
그냥 썼어요

 

돈이 없을 때라

 

상호 바꾸는데
돈이 듭니까?

들고 말고요

 

새로 서류 하는데
비용이 들어요

 

2년 동안
닫혀있던 곳이라

 

내 게 될까
싶었어요

 

...히로시마에는
돌무더기 뿐입니다

 

원자탄으로
황폐해졌습니다

 

엄청난 열기로

 

수많은 사상자가
났고

 

생존자들도 백혈병으로

 

죽어갔습니다

 

1945년 8월 14일

 

종전 때는
어디 있었어요?

 

여름 방학이라
집에 있었어요

 

천황 연설 때
집에 있었어요?

 

이웃집에 있었어요

 

구두방을 했는데
아들이 은행 중역이었고

 

다 그 집에 가
연설을 들었어요

 

뭐가 기억나요?

 

그땐 라디오가
발달하지 못 해서

 

아주 직직거렸어요

 

그래도 전쟁이 끝난 건
알아들었어요

 

다 차려 자세로
천황 연설을 듣네요

 

우리도 처음엔
기미가요가 나와

 

엄숙한 자세로
들었어요

 

그러다 종전 소식을
듣고 안도했어요

 

경찰이 보고 있어
기뻐할 순 없었어요

 

그래도 얼굴에
다 나타났어요

 

정말 후련했어요

 

울기도 했나요?

울긴요
아주 기분 좋았는데

 

겉으로 못 나타내도
속으론 좋아했어요

 

요시꾸라에선 저렇게

비통해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아무도 안 울었어요
바보 소리나 듣게

 

미군이 요시꾸라에도
왔어요?

 

네, 천황의
연설을 듣고

 

전쟁이 끝났다고
안도했지만

 

앞날을 걱정했어요

 

미군이 오끼나와에 온
소식을 들었고

 

천천히 본토 쪽으로
북진한다고 했어요

 

딸 있는 집
부모들이 걱정하고

 

모두 아주
불안했어요

 

마침내 초가을에

 

많은 미군
지프차들이 보였어요

 

석 달쯤 있었는데

 

별 문제 없었어요

 

미군은 신사답게
굴었어요

 

집에서
정육점을 했는데

 

큰 마당이 있었어요

 

미군은 술집인 줄 알고
와서 술을 달라고 했어요

 

겁이 나서

 

미닫이 문
뒤에 숨어서

 

아주 살짝만
문을 열고

 

미군이 지나는 걸
훔쳐봤는데

 

나쁜 사람들
안 같고

 

초컬릿과 비누같은 걸
들고 왔어요

 

호감이 가게
행동했고

 

걱정을 덜하게
됐어요

 

축제 때가 왔을 땐
걱정이 다 사라졌어요

 

그땐 고따니에서
축제를 했어요

 

축제를 하는 동안

 

점봐주는 곳이
있었어요

 

그런 걸 좋아했어요

 

이름을 묻고
이것저것 따져보더니

 

장사할 운세라고
했어요

 

유곽을 차리라고 했어요
어린 나인데

 

- 15살이었는데?
- 네, 그 장사를 하라고

 

그리고 나선
손금을 보더니

 

외국에 나갈거랬어요

 

여름방학이 끝나고
학교로 돌아갔을텐데요

 

아니, 안 갔어요
안 가고...

 

- 학교를 관뒀어요?
- 관뒀어요

왜?

 

언짢은 일이
있었어요

 

언짢은 일?
뭔데요?

 

학교로 갔는데

 

새 학생이
전학 왔어요

 

- 요시꾸라에서?
- 네, 네

 

급우들한테 우리 집이
정육점을 하고

 

소를 잡는다고
했어요

 

친한 친구가
정말이냐고 했어요

 

저는 영문을 몰라

 

집에 와 엄마한테
물어봤어요

 

남자는 부모의 동의로
윗 신분의 여자와

 

결혼할 수 있어요

 

근데 여자는 윗 신분의
남자와 안 됐어요

 

타고난 신분을
바꿀 수 없었어요

 

인정 받으려고
뼈빠지게 일했어요

 

어엿한 집 남자와
결혼 못 하는 걸 알고

 

공부하기가
싫어졌어요

 

공부 때려치고

일이나 하자
마음 먹었어요

 

여름방학이 끝나고
역에 데려다줬어요

 

아침에 보니까
댓돌에 신발이 있잖아요

 

웬일인가 싶어

 

방에 가봤더니
자고 있잖아요

 

정말 화가 났어요

 

집에 있는 야구
방망이로 때렸어요

 

일을 시작했어요?

 

네, 요시꾸라
농협에서요

 

여섯 달 있었어요

 

좋아하는
동료가 있었어요

 

잘해주고 해서
무척 좋아했어요

 

하지만 서로 잘 몰랐고
크게 믿진 않았어요

 

출신을 알았나요?

 

요시꾸라 출신이라
알았을 거에요

 

결혼도 않을테고

 

이용해 먹는다고
생각했어요

 

그때가 구엔에서
신엔으로 바뀔 때고

 

지폐 뭉치에
도장 찍던 생각이 나요

 

...6월 27일, 오전 9시
다까사고 호가

 

2천명의 귀환 병사들을
태우고

소련에서 돌아왔습니다

 

함교에 늘어선
귀환 병사들은

 

열렬한 환영에
화답했습니다

 

...도시의 곳곳에서

 

노숙자들이 굶주림과
추위로 죽어갑니다

 

어디서나 가난과
기아와 싸웁니다

 

도시들은
파괴되었고

 

기차를 타고 재난 지역을
빠져나갑니다

 

학생들은
학비를 벌기 위해

자전거 택시를
고안했습니다

 

학교에서는 중고 서적을
교환합니다

 

암시장이
곳곳에 섰습니다

 

도꾜의 행상들은
바가지를 씌우지만

 

신주꾸에서는
시장 가격입니다

 

도소매로 단가를
표시합니다

 

정육으로 돈 좀
벌었겠네요?

 

벌기야 벌었죠

 

돈 버는 법은
따로 있었어요

 

- 암시장 말인가요?
- 네, 암시장이요

 

신고 않고 도축해
고기를 팔았어요

 

큰 이익이 남았어요

 

- 관에서 낙인을 찍잖아요?
- 그렇죠

 

도축업자들이 위조
낙인을 만들었어요

 

밀도살하고 그걸로
낙인을 찍었죠

 

그랬어요

 

아버지는
도축 일을 했고

할아버지도
도축 일을 했어요

 

- 그럼 외할아버지는?
- 글쎄요, 외할아버지도...

 

정육점을
했을 거에요

 

- 외할머니 집안도?
- 그럴 거에요

 

아버지가
물려 받았군요

 

처음에 아버지는
도축 일을 안 했어요

 

아버지의 누이가
엄마의 오빠와 결혼했는데

 

그쪽 가게에서
일했어요

 

그때 엄마는
14살의 여고생이었는데

 

아버지가 좋아했어요

 

근데 배우지를
못 해

 

말을 못 꺼내고

집에 돌아와
딴 여자와 결혼했어요

 

엄마는 간호사가
되려 했어요

 

간호학교에 들어갔는데

 

어떤 약사와 사귀어
임신했어요

 

엄마는 출산하러
집에 왔다가

아버지와
다시 만났어요

 

둘 다 자기
자식들을 버리고

요시꾸라로 달아났어요

 

- 생리는 언제부터?
- 15살이요

 

- 종전하던 해에?
- 그렇죠

 

요시꾸라에선 첫 생리를
축하해주나요?

 

하는 집도 있는데
우리 집은 안 그랬어요

 

- 그때 가게 일을 도왔어요?
- 네

 

요시꾸라의 가이잔 로에
가게를 세냈어요

 

다음에 두번째 가게
분점 같은 걸 열었어요

 

거기서 가게를 보며
하루 종일 일했어요

 

그래서 시무라라는
경관을 알게 된 거에요

 

- 경찰서 근처였어요?
- 그렇진 않았어요

 

그쪽을 순찰하면서
돌아다녔어요

 

가게에 자주 들렀고

 

자주 만나다보니
친해졌어요

 

그러다 무작정
결혼도 않고

동거에 들어갔어요

 

경찰이 밀도살을
단속했을텐데

 

 

가게에
문제가 있었어요?

네, 그래서
동거한 거에요

 

정말 그랬어요?

 

어느 정도
계산은 했어요

 

그렇다고 뭐...

 

꼭 그런 관계를
전제로 하진 않았지만

 

착실한 경찰이었고
우린 약자였어요

 

같이 살면
경찰 동향을 알테고

 

이왕이면 이 사람한테
처녀성을 준다고 한거죠

 

같이 사는 게
집안에 도움이 됐어요?

 

네, 그래요

 

아버지가 밀도살로
잡혀간 적이 있었어요

 

많은 소가죽이
단속에 걸렸거든요

 

경찰서로 끌려가
한참 고생했어요

 

보기 안타까웠고

 

아는 경찰이 있으면
도움이 될 거라 여겼죠

 

그래서
단속이 있으면...

미리 알고

 

여분의 가죽을
지방에 빼돌려요

 

정육은 숨기기
힘들지만

 

가죽은 아니거든요

 

그 덕에 더는
문제가 없었어요

 

이득을 봤죠

 

- 정보를 잘 제공했군요
- 네, 그래요

 

"정치범 석방"

 

당시 공산당이
기세를 올리고

 

정치범들이 풀려났어요

 

요시꾸라에서도
공산당이 활발했어요?

 

그랬겠지만

 

집안에서 활동한
사람은 없어요

 

다만 아버지의 매부가
시위에 참가했고

 

도꾸다 슈이찌와
노사까 산조 이야기를

 

자주 했어요

 

뭐 요시꾸라에선
별 호응이 없었어요

 

일본 공산당

 

여성 완전해방

 

...일본도 세계의
조류에 맞춰

 

빨리 변하고 있습니다

 

쌀을 달라

 

반동 시데하라 내각
타도

 

...성난 시위대가
총리 관저로 돌진했습니다

 

경찰이 공포탄을 쐈지만
관저에 난입했습니다

 

전국에
내각 퇴진 소요

 

오카야마에서는
미쓰이 조선소의

3천 노조원들이
운집했습니다

 

센다이에선
600명의 노동자들이

요시다 내각의
해산을 요구했습니다

 

오사까에서는
대학생과 노동자

2만명이
시위를 벌였습니다

 

도꾜의 황궁 앞에서는

 

50만명의 시민이
모여

 

항의 시위를
벌였습니다

 

요시다 내각을
타도하자!

 

...맥아더 사령부가
관공청노조에

1월 31일
파업금지령을 내리자

 

하세 총서기는
노동자 위원회를 소집하고

 

긴 토론 끝에
2월 1일로 예정된

 

총파업을
취소하기로 했습니다

 

...제국은행 시이나마찌 지점
독극물 사건으로

 

12명이 피살됐습니다

 

시오야마 국철 총재
행방불명

 

...7월 6일 아야세역 근처
국철 철로 위에서

 

시오야마 총재의
시체가 발견됐습니다

 

화물열차가 타고 넘어가
처참하게 찢긴 상태였습니다

 

미따까 역 사건

 

...소름끼치는 대량학살
모의극입니다

 

세상을 경악시킨
미따까 사건에 이어

 

8월 17일 누군가
마츠가와와 가나가와 역

사이의 레일을 제거해

 

아오모리 발 열차가
탈선 전복됐고

 

경찰이 수사에
들어갔습니다

 

시무라상과의
생활은 어땠어요?

 

경찰을 관두고
같이 장사를 했어요

 

유능한 경찰이었지만

 

장사에는 안 맞았고
그런 일을 싫어했어요

 

일은 않고
밖으로 나돌았어요

 

성질을 부리면서

남들 앞에서
저를 때렸고

 

믿을 수가
없게 됐죠

 

왜 그랬어요?

 

괜히 트집을 잡아
서로 다퉜어요

 

내가 이거라 하면
저는 저거라 하고

 

- 성질이 포악했어요?
- 원래는 안 그랬어요

 

아무튼 믿을 수가
없었죠

 

임신했는데
낙태시켰어요

 

다시 임신했는데
또 낙태시키고

 

하도 성질을 부려

 

헤어지려고 했어요

 

부모님과 친척들은
아기가 생기면

 

남편이 진정할거라
했어요

 

아께미 짱을 낳았는데
변함 없었어요

 

시무라
...학교 졸업한 뒤에

 

바로 경찰에
뛰어들었어요

 

장사는 통 몰랐고

 

떠밀려서 푸줏간
일을 했어요

 

보통 사람 같으면
못 배겨내요

 

해보기로 했고
돈도 안 받고 일했어요

 

돈주머니는
아내가 움켜쥐고

 

돈 받아 쓰며
마지못해 살았어요

 

나름대로
열심히 일했고

할만큼 했어요

 

사위는 거의
일 안 했어요

 

토요일과 일요일은
쉰다고 했고

 

소에는
손도 안 댔어요

 

같이 일한 지
여섯 달만에

 

결핵을 앓아
1년 동안 요양했어요

 

별로 해준 게
없어요

 

어떻게 치료했어요?

 

군수품인 페니실린을

 

8,500엔씩 주고
100알을 샀어요

 

장사는 잘 됐어요?

 

부모님이 요령을
잘 아셨어요

 

소를 도매로 사서
되팔았죠

 

돈 많이 버셨어요

 

공산당 간부
공직 추방령

 

...6월 6일 정부는
맥아더 사령부의 요청으로

 

도꾸다, 노사까
히가시를 포함한

 

24명의 공산당 간부를
공직에서 추방했습니다

 

6월 7일엔 17명의
언론인도 해고됐습니다

 

도꾜와 오사까에서
1만명 추방 철회

 

...10월 13일 정부는
공산당원의

 

공직 추방을
철회했습니다

 

...정부는
공직 추방령을

 

철회하기로 결정했고

 

해당 인원은
1만9십명입니다

 

조선동란

 

...6월 29일부터
연합군은

군수공장과
교통로를 포함한

 

북조선의 전략 거점을
폭격했습니다

 

그때 조선동란이
일어났어요

 

아께미 짱이 태어난
여름이었고

 

사람들이 말하던게
기억나요

 

전쟁 때문에
나라를 떠야 한다고

 

조선과 중국이
본토에 상륙한다고요

 

그렇게 수근댔어요

 

전후에 암시장으로
돈을 벌고 했잖아요

 

조선동란 덕에
훨씬 더 벌었지

 

우리한테는 기회였고

 

아께미 짱은
언제 태어났어요?

 

1950년 2월 2일에요

 

- 병원에서 낳았어요
- 요시꾸라에서?

 

네, 제왕절개로

 

그 무렵 남편이
바람이 났어요

 

시나가끼 온천
같은 데 가서

 

게이샤들과 놀아나고

 

가끔 집에 와선
돈 달라고 하고

 

안 주면 때렸어요

 

뭘 잘못했냐고 해도
대답도 않고

 

그러면서 하는 말이

 

출신을 알았으면
결혼 안 했을거라고

 

모욕을 주고
지긋지긋하게 굴었어요

 

갈라서고 싶었는데
소문을 겁냈어요

 

애가 생겼으니
마음을 잡는다고 했어요

 

그러면서 계속
바람을 피웠어요

 

경찰일 때는
돈의 가치를 몰랐어요

 

돈 맛을 알고는
주체를 못 했어요

 

결국엔
부모님과 상의해

 

딴 가게를
내기로 했어요

 

세를 내서
빠찡꼬점을 열었어요

 

그때 한참
유행이었어요

 

1951년이었을 거에요
아께미가 1살 때니

 

시무라 상이
빠찡꼬 주인이 됐군요

 

네, 그래요

 

목이 좋은 장소였고

 

남편에겐 지분만큼
돈이 나왔어요

 

빠찡꼬에 사람이 몰려
돈 잘 벌었어요

 

근데 번 돈으로
딴 여자들과 놀아났어요

 

부아가 나서
나도 딴 남자와

사귀어봐야겠다
생각했어요

 

나도 바람 피운다고
했더니

 

"못 생긴 주제에
누굴 사귀어!" 하대요

 

"못 할까봐"
했죠

 

딴 빠찡꼬점에
아르바이트생이 있었어요

 

이름이 후지다였어요

 

"후지다와 사귄다"
했더니

 

"잘도 되겠다"
하더군요

 

"왜 안 돼
돈으로 구슬리지"했죠

 

일본 독립국가로

 

...요시다 총리와
6명의 일본 대표단이

단상에 올랐습니다

 

1951년 9월 8일
종전 6년만에

 

독립 일본의
기반이 마련됐습니다

 

소문이
겁나지 않았어요?

 

너무나 속상했어요

 

남편이 여자를
집에 데려와

 

옆 방에서 잤어요

 

소문이고 뭐고
상관없었어요

 

한번 재미 붙이니
멈출 수도 없었고

 

- 어떻게 꾀었어요?
- 내가 매력 있잖아요!

 

- 먼저 손을 내밀었죠
- 만나자고 했어요?

 

편지를 썼어요
이름은 안 쓰고

 

내 친구가
쓴 것처럼 했어요

 

쯔까사 거리에
오꼬노미야끼

잘 하는 집이
있었어요

 

그거 먹으러
가자고 했죠

 

그렇게 시작됐어요

 

그쪽에선 여전히
내 친구인 줄 알았고

 

끝이 좋았으니
잘 된 거죠

 

속마음을 말했더니
고개도 못 들었어요

 

- 처음에 어딜 갔어요?
- 쓰무라 온천 여관에요

 

호텔이 둘 뿐이었어요

 

맛있는 걸
먹고 싶은데

 

어딘지를
알아야 말이죠

 

뭐 진짜 목적이야
같이 있는 거였죠

 

- 호텔에 있자고 했어요?
- 네, 기다리기 지겨워서!

 

(후지다)남편한테
가책은 없었어요

 

남편은 어땠어요?

 

좋은 사람이었어요

 

예의바르고
말쑥한 미남에

 

도꾜에도 갔어요?

후지다 상이
와세다대 하숙생이었어요?

 

아니, 어머니가
하숙집을 했어요

 

신주꾸 극장에 가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도
봤어요

 

극장에 잘 갔어요

 

와세다생들이
데모하는 건

옆에서
구경이나 하고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해...

 

피의 메이데이

 

1952년이었군요

 

후지다 상을
사랑했어요?

 

네, 같이 있는 게
좋았어요

 

뭐랄까...

 

몰래 만나고 하니
흥분됐어요

 

남편한테는 도꾜에
간다고 안 했어요

 

- 고속철도 없을 땐데!
- 네, 하루 걸렸죠

 

- 요시꾸라에서 멀지
- 기차를 갈아탔어요

 

도꾜 행을 거꾸로 타서
오까야마로 가고

 

방향 감각이 없어요

 

- 후지다 상이 반기던가요?
- 그럼요

 

와세다대 사건

 

불편하진 않았어요?

몇 시에 닿는냐에
달렸어요

 

아침엔 후지다 상
어머니와 부딪히고

 

뭐라고 할 말이
있어야죠

 

- 저녁까지 기다렸군요
- 네

 

호텔로 가지
그랬어요

 

호텔은 가기가
꺼림직했어요

 

그렇고 그런 여자들이

드나드는 걸로
생각했어요

 

나는 다르다고
여겼죠

 

도꾜, 오사까
1차 경찰예비대

 

...8월 23일 선발 인원들이
복무에 들어갔습니다

 

제복 차림으로
훈련을 시작했습니다

 

예비대 전력화?

 

도꾜
보안대 발족

 

...8월 15일
보안대 병력이

 

진구 경기장에서
사열식을 하며...

 

우리 보안대 병력은

 

국토를 안전하게
방위한다

 

그럼 시무라 상과는
나중에 화해했어요?

 

한참 뒤에야
화해했죠

 

여자들도
안 만나고 해서...

 

근데 이번엔 부모님의
사이가 틀어졌어요

 

남녀관계는
눈이 맞아야 하잖아요

 

남편과 엄마가
그런 관계가 된거에요

 

내 잘못이죠

 

종종 집으로
오라고 했어요

 

술에 취했고
늘 그런 식이었어요

 

처음부터 엄마는 나처럼
남편을 이용했어요

 

내가 모르는 줄
알았겠죠

 

결국엔 술 먹고
엄마한테 따졌어요

 

사람은 실수를
한다더군요

 

어떻게 같은 실수를
몇 년씩 하느냐 했죠

 

한두 번도 아니고

 

계속 되풀이 됐어요

 

관계를 목격했어요?

 

그럼요, 욕조에
같이 있었어요

 

진짜에요!

 

내 눈으로
똑똑히 봤어요

 

그래서 시무라 상과
헤어지려 했어요?

 

정나미가 떨어졌어요

 

주위에서 뭐라 건
상관없이

 

헤어지려
마음 먹었어요

 

마사꼬 상이 1955년 생이면
시무라 상의...

 

네, 그래요

 

그럼 정이
다시 생겼어요?

 

빠찡꼬 일은
어땠어요?

 

몇몇 빠찡꼬기는
금지 당했어요

 

손님도 많이
줄었어요

 

여러 군데가
문 닫고

 

다른 장사를
해보려 생각했어요

 

그땐 바나 다방
맥주집도 없었어요

 

장소가 꽤 넓어서

 

바로 바꿔보기로
했어요

 

그런 장사는
처음이었어요

 

남편한테는 오사까에
일 배우러 간다 하고

 

도꾜로 후지다 상을
만나러 갔어요

 

마미 짱은
엄마한테 맡기고

 

한번은
후지다상의 어머니가

 

나들이를
가자고 했어요

 

그래서 이노가시라
공원에 갔는데

 

다리 놓인
작은 연못이 있었어요

 

양산 쓰고 다리를
건너는데 이랬어요

 

"에미꼬 상
같이 노래하자"

 

무슨 소린가 했는데
단가를 흥얼대잖아요

 

- "인생은 짧다"?
- 네

 

"내가 먼저 하면
따라 해라" 했어요

 

하는 게
좀 별났어요

 

웃겼어요
틀니를 딱딱대면서

 

- 하기는 잘 했어요
- 그랬군요

 

재미있으셨어요

 

에미꼬한테 결혼할
사람이 생겼다고 했어요

 

한동안
말이 없었어요

 

그러다 나가더니
3시간 동안 안 왔어요

 

찾으러 나가려는데
돌아왔어요

 

머리를 붉게
물들이고

 

매니큐어를 칠하고

 

그때 하마무라 미찌꼬라는
인기 가수가 있었는데

 

붉게 염색한 걸
여동생 미짱이 따라했어요

 

오빠가 흉하다고
하지 말랬는데

말을 안 들으니까
때렸어요

 

동생은
날 찾아 왔어요

 

그때 다방에서
일하던 땐데

 

미짱은 오빠 때문에
못 살겠다면서

집을 나가겠다고
했어요

 

어린데 좀
참으라고 했더니

 

혼자서라도
나간다는 거에요

 

그래서 같이
가기로 했어요

 

8월에
요꼬하마로 갔어요

 

도꾜로 가려다가
요꼬하마로 정했어요

 

왜요?

 

요꼬하마에 있는 외국인들
이야기를 자주 들었어요

 

여동생이 외국인을 좋아해
요꼬하마로 가자고 했어요

 

일본 남자들보다
잘해준다고 했어요

 

내가 맞고
사는 것도 알았고

 

관광호텔에
1주일 묵었어요

 

그러다 택시 기사한테
좋은 데로 가자고 했어요

 

'블루 문'이라는
병사(EM)클럽에 댔어요

 

주인이 옛 전우라
거기 데려갔어요

 

요꼬스까

 

사병 클럽 전 직원
...보통 일본 여자들은

 

EM 클럽에
안 오려고 했어요

 

미군 상대로 윤락행위
하는 곳이었어요

 

일종의 방파제였어요

 

30~50명의 여급이 일했고
규모가 컸어요

 

스나가와의 미군기지

 

...다찌가와 미군 기지가

스나가와 마을까지
확장됐습니다

 

나흘에 걸쳐

 

측량부대원들이

 

마을로 진입을
시도했고

 

여러 차례의 몸싸움 끝에
부대는 물러났습니다

 

주민들은
불을 피우고

 

논에 거름을 뿌리며
진입을 막았습니다

 

곳곳에서
난투극이 벌어졌습니다

 

경찰이 비상선을 치고
다시 측량을 시도했습니다

 

주민과 시민활동가들의
저항이 계속됐고

 

여섯 달이 지난 지금도
상황은 여전히 팽팽합니다

 

그 뒤엔
뭘 했어요?

 

블루 문에서
두 달 일하면서

 

가게 터를
알아봤는데

 

사람들 말이
조선동란도 끝나고

 

요꼬스까에 군인들이
많이 줄어

 

가게를 여느 건
정신나간 짓이라 했어요

 

그래도 집에
돌아가긴 싫었고

 

사람을 통해
'온보로'를 소개 받았어요

 

가보니
아주 외진 곳이라

 

첫 인상이
별로였어요

 

그래도 남 밑에서
일하느니 사버렸어요

 

얼마 들었어요?

 

- 세무조사 하시려고!
- 잘 봐줄테니

 

정 그렇다면!

 

별로 안 들었어요

 

그땐 영어
한마디 못 했고

 

일하는 아가씨들한테
배웠어요

 

아께미 짱과
마미 짱은 어딨고?

 

영업이 끝나면
아가씨들과 어울려

 

근처의 다른 바에
가곤 했어요

 

이웃 바에서
한 바텐더를 알게됐어요

 

일하던 곳엔
함께 잘 곳이 없어

 

떨어진 여관에서
만났어요

 

집에선 이걸 알고
애들을 보냈어요

 

- 그 일 때문에?
- 네, 그 일로

 

왜요?

 

장사를 한다니까
애들을 봐줬는데

 

남자가 생긴 걸 알곤
마음이 바뀐 거죠

 

꼭 그런 건만은
아니에요

 

아께미는 말썽장이라
키우기가 힘들었어요

 

애들은 엄마 곁에
있으려 해요

 

애들은
몇 살이었어요?

 

아께미가 9살
마미가 4살이었어요

 

아가씨들과 히노데 마을에
방을 얻어

 

함께 살았어요

 

아께미와 마미도
거기 와

 

다 같이 살게됐죠

 

그때 엄마가 왔어요

 

오빠던가 올케와

 

사이가 안 좋아졌어요

 

엄마가 장사 수완이 좋아
여동생과 이야기해

 

요꼬스까로 오라 했더니
좋다고 했어요

 

엄마는 여관을
차리기로 하고

 

중개인한테
알아봐달라 했어요

 

소개한 곳을
보러 갔는데

 

튼튼하게 지어졌고
엄마 마음에 꼭 들었어요

 

사고 나서 알고보니
전에 유곽이었어요

 

아무래도 여관은
안 될 것 같아

 

아가씨들을 들이고
영업하게 됐어요

 

- 상호가 뭐였어요?
- 미스즈

 

매춘방지법 통과

 

...많은 거리의 여성들이

 

비참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미스즈의 단골 하나는
빚에 몰려 자살했대

 

너와 동생 잘못이야
그런 덴줄 몰랐어

 

모르고 샀어

 

엄마는 잘못되면
남 탓 하더라!

 

엄마가
보러 갔잖아

 

마음에 든다고
했잖아

 

건물이 좋아
샀어

 

요꼬스까에 살면서

야쓰라가 홍등가인 줄
몰랐어?

 

미즈따니 상 모자
...요꼬스까에 살면서

 

모를 리가 있나요!

 

처음부터 그 장사
하려 했어요

 

- 야단났었지, 엄마
- 뭐가 야단나

 

불법인 줄
알고 했잖아

 

걸리면
어찌 될지 알고

 

죄 지었으면
벌 받아야지

 

이 장사가 오래
못 갈줄 알았어

 

큰돈 들였는데

 

얼른 돈을
회수하려 했어

 

언제든 잡혀갈텐데
숨길 것도 없었어

 

관에선 눈 감고
장사만 한 거야

 

여관하는 동안
이웃에서 욕했어

 

욕하는 소리 듣고
빨리 돈 벌자 했어

 

얼마를 벌든
관이 신경썼나

 

우린 더 복잡했어
미군 손님도 있고

 

일본 손님만 받는
딴 데와는 달랐어

 

미군에 일본인에
쫌팽이며 유지며

 

억울하다고 우는
사람도 있었어!

 

여기 토박이들이
경찰은 걱정 말랬어

 

나 혼자 하는
장사라고 했지

 

시의원한테 가서
항의도 했어

 

엄마는
하여간!

 

깨끗한 장사는
아니더라도

 

장소만
빌려준 거였어

 

창가학회

 

...군가와 같은
열렬한 찬가와

 

남묘호렌게꾜 경문으로

많은 신도를
끌어들였습니다

 

그때 창가학회가
유행이었어요

 

누가 자꾸
와보라고 하잖아요

 

정말 고통 없는
세상이 있을까 궁금했죠

 

그 무렵
애인을 만나

 

셋집을 얻어
같이 살았는데

 

남편이 찾아올까
겁이 났어요

 

여자 데리고
곧잘 왔어요

 

아직 법적으론
부부였고

 

사진에 쓴다고
돈을 달랬어요

 

필름과 인화에
15만엔 든다고

 

얼마나 겁을
냈는지 몰라요

 

미군들과 병사클럽에서
파티를 했어요

 

미군과 춤추는데

 

성난 남편을 보고
혼비백산했어요!

 

사람이 가든 찬
너른 병사클럽이었는데

 

머리채를 잡고
끌고가잖아요

 

창피하고 분하고
서럽고

 

택시를 집어탔어요
죽일 거 같아서

 

하라 산 꼭대기까지

 

그냥 내달리게 했어요

 

- 달아났군요
- 뭐, 그 수 밖엔요

 

거기다 바텐더와
사는 걸 알게되면

 

어떻게 나오겠어요

 

그래서 창가학회에
귀가 솔깃했어요

 

신자가 되면
소원이 이뤄지고

 

고통과 슬픔이
사라진댔어요

 

남편과 헤어지고
싶었고

 

창가학회에
들기로 했어요

 

덕을 보긴 했어요

 

이상하게
소원이 이뤄졌어요

 

시무라가
이혼장을 들고와

 

서명하라고 했어요

 

창가학회에
들고나서

 

모임에서
여성부 책임자가

 

열심히 기도하면
이혼을 성취하겠지만

 

시무라같은 남자를
또 만날 거랬어요

 

그래도 남편의 폭행에
못 견딜 지경이었고

 

이혼하니
속시원했어요

 

바텐더와
놀러 다녔어요

 

도꾜에 가서
그 하꼬네에도 들르고

 

잘 놀았죠

 

근데 결국
전 남편처럼 굴었어요

 

바텐더가?

네, 돈 요구하고
때리고

 

친구들이
신세 폈다고 했어요

 

과연 그런 건지

 

돈을 자주 주진
않았어요

 

용돈 정도였고
불평하지 않았어요

 

일 않고 편안히
먹고 살았으니까

 

영어를 잘 해
칸막이 뒤에서

 

손님들과 이야기하는 걸
엿들었어요

 

노이로제에 걸릴
정도였어요

 

손님들과 말을
할 수 있어야 말이지

 

그랬다간
끌어내 때리고

 

그때부터 창가학회를

 

더 열심히
믿게 됐어요

 

외부 사람들은
사정을 잘 몰라요

 

황실 결혼

 

...1959년 4월 10일
청명한 날에

 

황태자비를 맞는
결혼식이...

 

여동생도 이름이
미찌꼬였고

 

철자가 같았어요

 

두 미찌꼬가
운명이 너무 달랐죠

 

내 여동생은
술집에서 일했고

 

또 하나는
황족이 됐고

 

동생과 그 차이를
이야기했어요

 

평민이 결혼으로

 

황가에 들어가는
거잖아요

 

집에 있는 우리는

 

보통 사람과
평범한 결혼식을 하는데

 

저렇게 돈을
펑펑 쓰는 건

 

낭비라고 했어요

 

- 돌을 던졌잖아요
- 네

 

대학 입시에서
떨어진 소년이었대요

 

호화 결혼식에
나처럼 화가 났겠죠

 

대학에도 못 가는데

 

아무리 결혼식이라도

 

저렇게 호화판이니
화날 법도 하죠

 

지금 봐도
화가 나네요

 

구경꾼 중에
미국인도 보이는데

 

자기네한테는
없는 일이었겠지

 

물어보길래
장식품 같은 거라 했어요

 

- 물어보던가요?
- 네

 

신들이냐고 해서
같은 인간이라고 했어요

 

왜 저렇게
화려하냐고 묻길래

 

일본의 장식품이라
잘 간수한다 그랬더니

 

뭐가 그러냐고
했어요

 

어떻게 생활하느냐고
해서

 

국민이 낸 세금으로
산다고 했죠

 

왜 돈을 내느냐더군요

 

저렇게 호화 의식을 벌이며
돈을 탕진하는데

 

나도 모른다고
했어요

 

궁금했어요

 

새 궁전

 

135억엔 들었대요

 

엄청나네!
집 있는데 뭘 또 지어

 

그럴 돈 있으면
고아원에나 기부하지

 

화가 나 사람들이
들고 일어났죠

 

항의 시위를 벌이고

 

135억엔짜리
집이나 짓는데

 

다들 좋다고
가만있게 생겼나요

 

피로 물든
안보신조약

 

...반 안보 시위대와
경찰이

진흙탕에서
유혈 충돌했습니다

 

양쪽에서 400명
이상이 부상당했습니다

 

시위대 중에 도꾜대생
간다 미찌꼬 상이

 

병원에서 사망했습니다

 

분노가 극에 달한
시위대는

 

경찰 트럭과 차량을
불태웠습니다

 

태워라!

 

경찰 살인자들아!

 

이런 이야기들을
하곤 했어요

 

그런 식으로
죽을 수는 없다

 

값어치 있는
죽음이 아니라고

 

그 죽음에 대해
그렇게 생각했어요?

 

아니 뭐
대학생이었잖아요

 

젊고 미숙하다고
생각했죠

 

요꼬스까의 시위는
좀 달랐어요

 

여기서도
"양키, 물러가라"했죠

 

뉴스를 보면
도꾜에서는

 

주로
'양키, 물러가라'보다

안보조약 반대가
많았죠

 

요꼬스까에서는 주로
'양키, 물러가라'였고

 

미군 기지를
없애라고 했어요

 

안보 반대보다는
'양키, 물러가라'고 했어요

 

- 나가라!
- 일본에서 나가라!

 

...해거티 특사에게는
곤혹스런 환영식입니다

 

미군 헬리콥터까지
동원됐습니다

 

해거티 특사와
맥아더 장군은

 

헬기를 타고 가까스로
군중을 벗어났습니다

 

전국에서 출발한
30만의 시위대가

 

국회의사당 앞에
도착했습니다

 

국회 해산하라!

 

시위대가 국회 앞을
행진합니다

 

자민당 의원들이
기요세 의장을 호위합니다

 

아직 정국이
안정되기엔...

 

그때 아께미 짱은
아직 어렸을테고

 

10살이었을 거에요

 

고향에서 데려왔는데
학교에 잘 안 갔어요

 

- 학교를 안 갔어요?
- 네

 

바텐더와
같이 사는 걸

 

달가워하지 않았어요

 

그 남자가 싫었어요

 

- 어째서?
- 거슬렸어요

 

괜히 간섭하고

 

엄마 아버지가
이혼한 뒤에

 

엄마와 살려고
왔어요

 

아버지를 안 보게 돼
아주 좋아했는데

 

- 그 남자가 끼어들었어요
- 무슨 뜻이지?

 

이래라 저래라 하고
자기 딸도 아닌데

 

남 앞에서
아버지 행세를 했어요

 

그게 싫었어요

 

딸애들이 와서
함께 살면서

 

바텐더와 사이가
안 좋아졌어요

 

10살짜리 아께미가
학교를 빼먹고

 

재미를 못 붙였어요
친구도 없고

 

매일 빠지는데도
몰랐어요

 

아침에 학교에
간다고 나갔으니까

 

학교에 안 갔어요

 

학교에 안 가고
뭐 했어요?

 

집이나 동네
근처에서 놀았어요

 

엄마가 맞을까봐
걱정이 됐어요

 

어째서?

 

아버지가 요꼬스까에
자주 와서

 

엄마한테
돈 달라고 했어요

 

그게 보기
싫었어요

 

학교에 안 가면
엄마를 지켜볼 수 있고

 

부엌에 숨어서
봤어요

 

돈이 없다고 하면
아버지가 때렸고

 

엄마는 돈을 줬어요

 

나중엔 바텐더도

아버지가 하듯
엄마한테 그랬어요

 

엄마는 날 별로
안 좋아했어요

 

아버지 닮았다고
내 잘못인가

 

학교에 안 간다고
엄마가 그랬어요

 

"지 애비랑 똑같다"

 

별로 기분이
안 좋았겠네

 

네, 속상했어요

 

아버지 닮은 게
뭐가 어떠냐니까

 

빈둥비둥대는 게
피는 못 속인댔어요

 

아버지를 칼로
죽일 생각도 했어요

 

- 칼로?
- 네

 

어떻게 해서?

 

동네 여자애들이
놀리곤 했어요

 

칼을 들이대니까
다 달아났어요

 

아께미가
전 남편을 닮아

 

마미나 지에꼬만큼
좋아하지 않았어요

 

전 남편이 생각나
화가 났어요

말을 해도
잘 안 듣고

 

엄마는 아직도
이래요

 

넌 골치거리야

 

엄마는 아무
생각도 없이

 

아버지를 닮아
일을 저지른대요

 

부녀가 꼭 닮았어요

 

그래서 에미꼬가
손녀를 안 좋아했고

 

잘 안아주지도
않았어요

 

마미 짱은
자기 닮았다고

 

그렇게 귀여워하면서

 

어떨 땐
속이 편치 않아요

 

아버지한테서 떼놓은 게
잘한 일인지

 

괜히 나 때문에
허전하고

버림받은
기분은 아닌지

 

...습격의 순간입니다

 

범인은 이께다 수상
앞에서 붙잡혔고

 

합동연설회는
중단됐습니다

 

아사누마 사회당
위원장의 시신은

30년 동안 살던
집으로 옮겨졌고

 

암살을 목격한
이께다 수상이 문상객으로

 

영정에 묵념했습니다

 

일본 노래 중에
"오쇼"를 좋아해요

 

듣고 있노라면

 

슬퍼져서
눈물을 쏟아요

 

혼자 술 마시면
그 곡만 들어요

 

주인공이 나같은
시골 출신이고

 

도와주는 사람 없이
혼자 열심히 일하는

 

가사가 마음에 들어요
정말 그래요

 

♪ 나 홀로
도꾜에 왔네

 

♪ 무슨 일이 있어도
이겨내리라

 

♪ 쓰뗀까꾸 탑의
빛나는 불빛처럼

 

♪ 내 마음의 불빛도...

 

여동생한테, "일본 남자를
잘 몰라서 그렇지

 

한 번 사귀어봐라"
했더니

 

"언니는 그렇게
당하고도

 

여전히 일본 남자
타령이야" 하더군요

 

시간이 지나
바텐더는 일을 관두고

 

돈 달라고
손을 벌렸죠

 

시도 때도 없이
얼쩡댔어요

 

전 남편 시무라처럼
돼버렸죠

 

이렇게 되니
일본 남자한테 질렸어요

 

일본 남자들이
싫어졌고

 

더는 안 만나기로
했어요

 

막내 여동생이

 

교또 남자와
전통 혼례를 올렸죠

 

성대했어요

 

걔는 일도 않는데
좋은 남편을 만났고

 

나는 죽어라 일했는데
그 모양 그 꼴이었어요

 

샘이 났어요

 

일본 남자와는
되는 게 없었어요

 

이렇게 된 거
장사나 잘 해서

 

돈이나 모으자
생각했어요

 

그때 손님 중에
켄이라고 있었어요

 

7달째 바에 왔어요

 

언뜻 보기에

 

괜찮은 남자 같았어요

 

장교처럼 보였고

 

아주 품위 있었어요

 

어떨 땐
춤도 같이 추고

 

일반 병사
같진 않았어요

 

한번 테스트해볼까
생각했어요

 

- 어떻든가요?
- 그냥 그랬어요

 

좀 허전하고
별 거 없었어요

 

내가 전문가는
아니지만!

 

몇 번 하더니
금방 끝났어요

 

미국인들이
힘 좋다고 들었는데

 

별 탈 없는 걸
알고는

 

다시 하게 됐죠

 

케네디 대통령 암살

 

...1963년 11월 22일...

 

그날 어디 있었어요?

 

켄과 같이 있었어요

 

켄은 어떻게 나왔어요?

 

미군들한테 인기 좋은
대통령이었어요

 

그렇게 소중한
사람이 죽었으니

 

앞날을 걱정했고
충격을 받았어요

 

켄은 실감이 안 난다고
몇 마디 했어요

 

- 켄 뒤엔?
- 켄 뒤엔 장이었어요

 

수병이었는데

 

나갔다 오면
결혼하자고 했어요

 

배가 두달 반
나가 있었어요

 

승선수당이
있다고 해서

 

돌아오면 큰돈이
되겠다 싶었죠

 

근데 생각보다
적었고

 

화가 나서
헤어졌어요

 

- 장 뒤엔?
- 장 뒤엔 로버트였어요

 

KDU 중 하나로

 

열댓명이
한 조였고

 

미사일함에서
폭탄을 쏴서

 

비행기를 쫓는
임무였어요

 

로버트와 같이 한 게
1964년 경인가요?

 

네, 1964년이요

 

로버트는 어땠어요?

 

마르고 작았는데

 

지적으로 생겼고
똑똑했어요

 

늘 책을 봤고

 

그땐 영업이 잘 돼

 

자주 안 들르고

 

볼링하러 다녔어요

 

그때 임신했어요

 

지에꼬가
로버트의 딸인가요?

 

지에꼬가 태어나고
미국으로 돌아갔어요?

 

1월에 태어났고
6월에 돌아갔어요

 

딸과 다섯 달
있었죠

 

로버트가 가는 걸
알았어요?

네, 이야기했어요

 

- 아버지 없이 키울텐데
- 그랬죠

 

핵항공모함
사세보 입항

 

...1월 19일 오전

 

엔터프라이즈호는
작은 산 같습니다

 

341미터 길이에

 

8기의
원자로가 있는

세계 최대의
핵항공모함입니다

 

- 로버트 뒤에는?
- 죠요

 

- 죠와는 얼마나?
- 죠와 3년 살았어요

 

딴 사람들보다
길었군요

 

네, 지에꼬가
아주 잘 따랐어요

 

죠는 이혼했고
딸이 있었어요

 

결혼했었죠

 

- 일본인과?
- 아니요, 외국인과

 

딸이 지에꼬 나이라
귀여워했어요

 

나 일 나가면 봐주고
차에 태워 다녔어요

 

지에꼬는 아직도
죠를 아빠로 생각해요

 

- 죠 다음엔?
- 죠 다음엔 모조요

 

이름이 모조에요?

 

모조의 어머니가
인디언이랬어요

 

모조는 잠수함을 탔고
1년에 2번 왔어요

 

좀 이상한
남자였어요

 

품위가 없고
술꾼이었어요

 

- 내가 박대를 했어요
- 어떻게?

 

술만 퍼마시길래
딴 남자들과 나다녔죠

 

- 남자들끼리 안 싸워요?
- 치사하게 안 그래요

 

- 딴 남자들과도 잤어요?
- 네, 일로

 

돈 안 받고도
그랬어요?

 

친한 사이면
안 받았어요

 

모조가 귀국한게
1967년 11월 17일?

 

그 뒤엔 어땠어요?

 

푸에블로호라는
배가 들어왔어요

 

척이 자주 들렀어요

 

척과 친해지고
난 뒤에

 

무슨 배냐 물었더니
대답을 안 했어요

 

자기 배 사람들을
80명 데려왔는데

 

장교들이 많았어요

 

척한테
"장교가 많은 걸 보니

스파이 배냐"
물었는데

 

대답 않고
말을 돌렸어요

 

1월 5일엔가
배가 떠났어요

 

- 1968년이었죠?
- 네, 뉴스가 나왔죠

 

일본해에서
미국 배를 잡아갔다고

 

라디오와 TV에서
크게 떠들었어요

 

금세 척의 배란 걸
알아봤어요

 

- 척도 붙잡혔죠?
- 네

 

저 사람이에요!

 

- 오른쪽에서 첫 번째?
- 네, 뚱뚱한 사람

 

저깄어요!
세 번째 줄에 있어요

 

눈 돌리는 사람

 

정말 있었네

 

- 통통하네요
- 네, 진짜!

 

베트남전 격화

 

...베트남 정부군과
미군이

 

베트콩을 공격했습니다

 

전투가 대통령궁까지
이르렀습니다

 

지원나온 해병이
집중 사격을 합니다

 

미군 병원이
여기 있죠?

 

네, 있어요

 

- 가봤어요?
- 네, 친구 병문안 하러

 

베트남에서 병사들을
이리 보내요

 

환자들을 보면

 

부상병들은 없고
정신병원이에요

 

한 병사가 서랍을 열고
매트리스를 들었어요

 

내 친구가
왜 그러냐 물었더니

 

자기 귀를
찾고 있댔어요

 

온 데 찾았어요
책을 뒤지고

 

침대보를 벗기고
담요를 털고

 

친구가 관두라고 해도
듣지 않았어요

 

- 병원이 어디에요?
- 바로 저 위요

 

근래 손미촌에서
학살 사건이 있었어요

 

- 들어봤어요?
- 아니, 못 들었어요

 

'아사히 화보'에
학살 사진이 실렸어요

 

믿을 수가 없네요

 

사진이 있잖아요

 

내 눈으로
본 게 아니면

 

믿지를 않아요

 

요행을 안 믿고

 

내기 같은 것도
안 해요

 

눈으로 본 것만
믿어요

 

사진인데
못 믿어요?

 

잡지에 나오는
사진이나 기사는

 

좀 과장된 게
있잖아요

 

못 믿겠어요

 

신사적인 미국인이
이런 잔인한 짓을 하다니

 

일본 손님도
받는데

 

미국인들이
훨씬 신사적이에요

 

학살 행위를 했다니
못 믿겠어요

 

전쟁은 사람을
미치게 해요

 

이기려고
싸우다 보면

 

전쟁에선 안 죽으려면
남을 죽여야 하죠

 

전쟁을 하는 게
잘못이죠

 

민간인 희생자 중에
아이들도 있어요

 

아이들이 죽은 걸
찍은 거잖아요

 

그 시체를 찍었다니
도저히 못 믿겠어요

 

지에꼬는
여기서 낳았어요?

 

저 병원에서요

 

지에꼬가 로버트의
딸이랬잖아요

 

혼혈아를 낳으려면
큰 결심을 했을텐데

 

큰 결심은 뭐
결심할 것도 없었어요

 

지에꼬를 임신한 지
3,4개월 됐을 때

 

부모님이
찾아오셨어요

 

엄마는 금세 눈치챘는데
아버지는 몰랐어요

 

한 달 뒤엔
아버지도 알고

 

애를 지워야한다고
했어요

 

엄마가 와서
아버지가 화났다며

애를 지우라고
했어요

 

엄마를 더 믿었고

 

말하기도 쉬워서
싫다고 했어요

 

엄마는 아버지의
말을 전했어요

 

푸른 눈의 애를 낳으면
유산도 없고

 

아버지가 아프거나
돌아가셔도

집에 오지 말라고

 

아버지한테는 솔직히
말 못하고

엄마한테 그랬어요

 

"크게 한 건
없지만

 

집안 일도 도왔고
늘 아버지 말에 순종했다

 

이번엔 내 뜻대로 할테니
말리지 마라"

 

아주 난처했어요
모두 반대하는데

 

완고한 게 아니라
안 될 일이었어요

 

어느 부모라도

 

혼혈아를 낳는다는데
반대하죠

 

여동생처럼
만인의 축복 속에

 

결혼이라도
한 거라면

 

혼혈아를 낳아도
축하하겠지만

 

이런 사정에선
부모가 못 받아들이죠

 

장의 아이는
아니었어요?

 

그렇지 않았어요

 

장 다음의
일이었고

 

로버트와 같이
지내면서 임신했어요

 

그때 36살이었어요

 

더 젊지도 않고
마지막 기회로 봤어요

 

그때까지
희생만 치뤘는데

 

낳기로 결심했어요

 

미국인의 아기라
낳고 싶었어요?

 

그거랑 관계 없어요

 

일본인이든 미국인이든
상관 없었어요

 

임신이 안 될 줄
알았어요

바텐더의 애를
지운 뒤론

 

더는 애를 못 갖겠구나
생각했는데

 

배가 불러와
아주 기뻤어요

 

다시 임신한 거죠

 

- 애들을 좋아해요?
- 좋아하고 말고요

 

애들 보며 살죠

 

딸이 흑인 앤데
자랑은 아니지만

 

알리샤는 영리하고
일본말도 잘 해

 

알리샤는 똑똑해
교육 잘 시켜야지

 

좀 있음
소학교 가

 

같은 소학교라도

 

미국 학교가
나은데

 

이왕이면
대학까지 보내야지

 

대학에 보내
성공 시켜야지

 

공부 잘 시키면

 

혼혈아라도
남들이 알아줘

 

너무 간섭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부모들이
간섭이 심하잖아

 

나는 꼭 붙어 있어

 

일본 엄마들은
너무 극성이야

교육 교육 하면서

 

뭐라고 해도
부모가 할 일이야

 

애들은 놔두면
공부 안 해

 

부모가 힘써야해

 

황폐해진 도꾜대의
상아탑

 

그냥 부모들의

 

허영심 같은 거야

 

그래도 마담은 다행이야
좋은 친척 있으니

 

교육시키면 뭐해

 

바보 짓들 하는데

 

난데없이
무슨 소리야

 

일본인이든
외국인이든

 

교육은 지식을
쌓으려고 받는 거지

 

교육은 부모의
책임이고

 

1967년 2월에
동생 미찌꼬가

 

미군인 프랭키와
결혼했어요

 

병사가 아니라
장교였죠

 

나와 달리

 

동생은 창가학회에
열심이었고

 

열심히 기도했어요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해달라고 빌었죠

 

변호사나 파일럿
의사같은 배필을

 

정말 정성을 다해
기도했어요

 

남들은 몸을 판다고
수근댔지만

 

열심히 일해
집도 사고

 

가게도 하다가

결국 좋은 신랑과
결혼했어요

 

부럽기도 하고
샘도 났어요

 

동생이 하는 말이

 

수병들 말고
나이 들었어도

 

장교와 사귀랬어요

 

장교와 사귀어보려
했는데

 

그런 고역이 없었어요!

 

웃지도 못 하게
조용히 하라 하고

 

얌전히 걸으라 하고
정말 지겨웠어요

 

다신 꼴도 안 본다
생각했어요

 

동생은
미국으로 간 뒤에도

 

편지로 딸애들한테
장교를 골라라

 

미군 병사들과
결혼하면

 

일본 건축인부들보다도
못 번다 써보냈어요

 

동생의 의견을
어떻게 생각해요?

 

나는 그러고
못 살아요

 

부부가 똑같아요

 

우린 친구들끼리
야한 이야기도 하고

 

웃고 떠들며
남의 눈치 안 봐요

 

근데 제부인
프랭키는

 

야한 이야기
하지 마라

 

엉덩이 흔들며
걷지 마라

 

뚱뚱해지니
많이 먹지 마라

 

동생한테 매일 1시간
자전거 타게 하고

 

동생은 또
그대로 따라해요

 

프랭키가 독일계고

미찌꼬는 동양계인
일본인이잖아요

 

프랭키가 딴 미국인들한테
열등감을 느끼나봐요

 

남들한테
튀어 보이지 않고

 

조용히 살려고 해요

 

딸애들한테
장교와 사귀라고 하면

 

"됐어, 알아서 해!"
해요

 

아께미는 변변치
않은 일을 하는

 

하급 수병과
사귀어요

 

직책 보고 남자를
고르진 않아요

 

중한 일을 하든
험한 일을 하든

상관없어요

 

사람 보고
고른 거죠

 

엄마는 그걸 몰라주고
비교해요

 

- 그 일이 괜찮다는 거군
- 네, 괜찮아요

 

일 잘 하고
월급 다 집에 가져와요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면 되요

 

엄마는
그렇지 않대요

 

그런 사람은
안 된대요

 

이모도 그렇게
생각하겠지?

 

그렇죠 뭐
다 똑같지

 

- 그래도 좋아해요?
- 네, 힘들긴 해도...

 

- 잘 달래줘요?
- 네, 그래서 좋아요

 

원자력 잠수함
스넉호 요꼬스까 기항

 

...미국 원자력 잠수함
스넉호가

요꼬스까에 입항했습니다

 

도시에는
긴장감이 감돌고...

 

미군 기지 주변의
공기가 심상찮았어요

 

시내에 요셉 병원이라고
있었는데

 

부상자로 꽉 찼어요!

 

시위대 말고
구경나왔던 사람들도

 

함께 다치고
큰 시위였어요

 

겁이 나
밖에 못 나갔는데

 

부상자를 실은
구급차가 지나가고

 

가게도 닫고

 

이젠 요꼬스까에서
못 살겠다 싶었어요

 

시위대가 엄청났어요

 

아께미는
할머니한테 잘 갔어요

바 일 하는 동안

 

가끔 엄마한테
전화해서

 

아께미가 잘 있나
물어봤어요

 

곁에 없다고 하면
마음이 불안했어요

 

한번은 애가
안 돌아온다는 거에요

 

엄마 집에 갔더니
어떤 병사와 함께

 

뭘 산다면서
기지에 갔대요

 

이튿날 바바라 상이
집에 딸을 데려왔어요

 

아께미가 자기
집에 찾아와서는

 

성병에 걸렸을까봐
걱정하더래요

 

얼마나 놀랐던지!

 

남편이 딴 여자를
집에 데려와 잘 때도

 

이렇게 놀라진
않았어요!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었어요

 

믿기지가 않았어요

 

아께미의 방에
갔더니

고개를 푹 숙이고

 

잔뜩 풀이
죽어 있었어요

 

성관계 없이는
그런 병에 안 걸린다

 

어떻게 된 거냐
물었는데

대답이 없어요

 

남자와 잤냐고 물어도
대답이 없고

 

아니라고도 안 해서

일 저지른 줄
알았어요

 

계속 대답을 안 해

어찌나 화가 나던지
막 때렸어요

 

언제냐고 물으니
어제였대요

 

전날 잘못해서
정조를 잃고는

 

몸이 안 좋으니

성병에 걸린 걸로
생각한 거에요

 

펑펑 울었어요

 

지 아버지와
결혼식도 안 올리고

 

동거 중에
낳은 딸이라

 

얘만은 어떻해서든

 

좋은 집안의
신랑과

 

예식을 올려주고
싶었는데

 

끊임없이
눈물이 쏟아졌어요

 

그때 임신 중이라
신경도 날카로웠고

 

아께미한테 앞으로
어쩔 거냐 물었더니

 

바에 나와
일하면서

 

돈을 벌고 싶댔어요

 

어디 가서 일을 해요
그렇게 어린 나이에

 

내가 데리고 있는 게
낫겠다 싶었는데

 

그때 15살인가
14살이었을 거에요

 

10월의 일이었고

 

내 옆에서 그랬으니
누구 탓도 못 하고

 

엄마 집에 보냈어요

할머니와 있는 걸
좋아했어요

 

부모가 아무리 조심해도
그런 일이 생겨요

 

생기고 말고

 

14살이었는데요

 

학교도 안 다니고
어른처럼 생각했겠죠

 

외로워서
그랬을 거에요

 

남자가 아주
멋져 보였고

 

안 지 1년 됐고
영화 보러 다녔어요

 

캔디 클럽에도
가고

 

그러면서
점점 친해졌죠

 

미찌꼬 이모 약혼자의
부대원이었어요

 

그날도 만나
그렇게 된 거죠

 

엄마는 좋은
집안의 남자와

 

결혼했으면 하는데
그게 마음대로 되겠어요

 

내 조건으론
어렵죠

 

지금 남편인
해리 쿠만 이야긴데

 

- 언제 만났어요?
- 1962년이요

 

'온보로'에 자주 오는
단골이었어요

 

두세 번
같이 잤지만

 

별 관계는
아니었어요

 

매달리지도 않았고

 

좀 달리 봤죠

 

1964년 4월부터
관계가 시작됐어요

 

처음엔 큰 애정
같은 건 없었어요

 

근데 갑자기
베트남으로 가게 돼

상륙함을 탔어요

 

귀국할 때
미국으로 안 가고

 

요꼬스까로
돌아온댔어요

 

편지로 저금을
하고 있다면서

 

여권을 마련해
데려간댔어요

 

군인들이 흔히 하는
말이라 안 믿었어요

 

해리는 11월 말에
일본으로 돌아왔어요

 

천오백달러 저금해서

 

- 어디서 결혼했어요?
- 미국 라스베가스요

 

해리는 내가 서른
대여섯인 줄 알았어요

 

나이가 걱정돼
괜찮냐 물었더니

 

나이는 상관없댔어요
지금도 걱정말라고 하고

 

매력둥이에요!

 

저번엔 큰 애
같아고 했어요

 

가족들은
다 반대했어요

남자가 눈이 멀었지

 

딸이 쉰일 때
남자는 서른인데

 

나이 든
외국인 여자와

 

살려하겠어요

 

- 따님이 돌아올까요?
- 돌아올거라 생각해요

 

미국에 가려는
딴 이유는 없어요?

 

이러쿵저러쿵 하는
친척들도 지겹고

 

하고 싶어도

 

단칼에 잘라낼 순
없잖아요

 

멀리 가버리면
그런 일은 없겠죠

 

그래서 떠나기로
결심했어요

 

일본민항기 납치 사건

 

솔직히 결혼에
목맨 건 아니었어요

 

하다보니
그렇게 됐지

 

아는 남자 중에
죠라고 있었는데

 

죠도 결혼하자 했지만
설득력이 없었어요

 

- 그게 그거에요
- 미국에만 간다면요?

 

네, 미국이 좋고
시민권을 따고 싶어요

 

시민권이
도움이 되는데...

 

꼭 해리가
아니라도 되죠

 

어제 다찌가와에
갔었는데

 

예전 같지 않고

요꼬스까도 앞으로
그럴 거에요

 

돈 좀 있겠다

 

한번 국제적으로
놀아보려구요

 

미국은 커요

 

작은 자본으로도
크게 성공할 수 있어요

 

사람이라
실수도 하겠지만

 

빈털털이로 일본에
돌아오고 싶지 않아요

 

요꼬스까보다 미국이
바 하기가 쉽대요

 

여자도 많이
필요없고

 

바텐더 두서넛에
여자들은 알아서 오고

 

위스키 판매 면허가
아주 비싸대요

 

면허를 신청해서
되팔 수도 있고

 

미국에서 할 일을
생각해봤어요

 

샌디에고가 요꼬스까처럼
항구고

 

임대 아파트를
많이 찾을 거에요

 

30개쯤 있으면
월세 150달러씩 받고

 

한달에 4천5백달러는
너끈하죠

 

미국에서 딴 남자를
찾을 건가요?

 

저요?

 

남편은 젊어요

 

언젠가 떠날 지도
모르죠

 

그런 일이 생기면...

 

글쎄, 기회가 오면
찾아볼 거에요

 

해리는 젊고

 

딴 여자를
찾으려 하겠죠

 

그럼 어쩔 거에요?

 

그럼 갈라서야죠

 

싫어도 이혼해야지

 

챙길 건 챙기고

 

시민권이
나올 때까진

 

어떻게든 버텨야죠

 

다 잘 되고 나면
선수를 치던지

 

- 일본에 돌아올 거에요?
- 아닐 거에요

 

미국인 상대로
장사하고

 

성공 못 하면
안 돌아와요

 

남자 찾기가
물리지 않아요?

 

아니요
누구한테나 말해요

 

죽을 때까지
남자와 사귀고

 

돈 있으면 젊은
남자라도 사겠다고

 

죽을 때까지 사랑을
멈추지 않을 거에요

 

엄마보다
성공하고 싶어요

 

바가 내게 돼
좋지만

내 단골을
만들어야죠

 

혼자서 잘 할지
두고 봐야죠

 

엄마를
앞지르고 싶어요

 

엄마가
경쟁 상대 같고

 

이기고 싶어요

 

솔직히 나 자신을
돌아보고

 

혼자 힘으로
살아가고 싶어요

 

일본전후사

 

감독
이마무라 쇼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