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Only.the.End.of.the.World.2016.1080p.BluRay.x264-RedBlade

2016년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수상

 

수입/배급 ㈜엣나인필름

 

얼마 전, 어딘가

 

승객님?

 

벨트 착용
부탁드립니다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10년인가?
정확히 12년 됐군

 

못 본 지
10여 년이나 됐지만

 

두려움을 삭이고
그들을 만나러 간다

 

인생엔 누가 뭐라건
뒤를 돌아보지 않고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들이

 

수없이 존재하고

 

돌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들 또한

 

수없이 존재한다

 

그래서 그 오랜
시간 끝에

 

내 발자취를
되짚어 가기로 했다

 

나의 죽음을...

 

알리기 위한 여정을

 

내가 직접

 

그들과 스스로에게
보여주고자 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내 인생의 주인은

 

나라는 환상을

 

어떻게 되는지 보자

 

내 집은 문이 없어

 

내 집은 지붕이 없어

 

내 집은 창문이 없어

 

비도 새는 집이지

 

내 집은 손잡이가 없어

 

내 집은 열쇠가 없어

 

감독 자비에 돌란

 

도둑이 들어와도

 

훔칠 것 없지

 

원작 장 뤽 라가르스

 

단지 세상의 끝

 

집은 항구가 아니야

 

마음을 다치는 곳

 

내 집은 심장이 없어

 

내 집은 혈관이 없어

 

몰래 들어오려 하면

 

자국도 없이 피 흘리지

 

내 머리는 복도가 없어

 

내 벽은 피부가 없어

 

여기선 삶을 잃기도 해

 

들어오는 사람 없으니

 

집은 항구가 아니야

 

집은 장의차가 아니야

 

집은 항구가 아니야

 

집은 장의차가 아니야

 

집은 항구가 아니야

 

마음을 다치는 곳

 

엄마! 오빠!
작은오빠 왔어

 

- 저 바보, 택시 탔네
- 아직 덜 말랐어

 

진작 말릴 것이지

 

진작 같은 소리 하네

 

너 화장하고 난리 칠 때
난 병아리콩 으깼어

 

엄마도 몇 시간씩
치장했잖아

 

그럼 아들 온다는데
후줄근하게 있어?

 

루이는 패션에 민감해
게이들 성격 몰라?

 

- 그래서 여장남자 룩이야?
- 말이면 단 줄 아나

 

싸우기 싫어
금방 들어올 거야

 

한마디도 안 지지
끝까지 이겨먹어야겠어?

 

그럼 맘대로 해

 

단골 멘트 나왔네
“그럼 맘대로 해”

 

그게 삶의 모토지

 

택시비 엄청 나왔겠다

 

데리러 간다니까

 

루이, 머리 예쁘구나
여기서 봐도 예뻐

 

택시비 엄청 나왔겠다

 

방금 말했거든?

 

루이,
새언니 모르지?

 

 

루이 오빠예요,
이쪽은 카트린

 

- 안녕하세요
- 안녕하세요

 

많이 덥지?
코트 줘

 

이제 들여보내

 

어머님 다 되셨어?

 

- 안절부절 난리 나셨어
- 앙투안, 제발...

 

나 간다, 루이
이놈의 매니큐어

 

하루종일 마르네

 

만나서 기뻐요

 

물론이죠
아니, 저도요

 

저도 기뻐요
내 정신 좀 봐

 

악수하는 거야?
무슨 대통령들이야?

 

- 생판 남처럼
- 생판 남이지

 

- 다 됐다
- 악수는 무슨

 

키스 인사 해야지

 

쉬잔 말이 맞아요

 

반가워요

 

반가워?
갑자기 뭐가 반가워?

 

처음 만났으니까요

 

처음 만난 거야

 

소리 지르지 마

 

정말?

 

왜 아직...
맞다, 쟤 안 왔지

 

노이로제 걸리겠네

 

깜빡했지 뭐니
생각도 못 했어

 

어쩜 세상에,
내가 요즘 이래

 

우리 아가

 

아니!

 

루이

 

아가란 말 싫어하지?

 

처음 보는 거야

 

결혼식 안 오셨잖아요

 

기억 안 나세요?

 

나도 아는데
잠깐 깜빡했어

 

그 후로 기회가...

 

관심받고 싶어서
저러시는 거야

 

그만 못 하니!

 

택시비 많이 나왔겠다

 

데리러 가도 됐는데
나 차 있거든

 

택시 탈 거랬지?

 

- 여행길은 편했니?
- 어젯밤에 말했잖아

 

기억 안 나

 

- 기억이 왜...
- 그게 뭐가 중요해!

 

앙투안!

 

여행길은 편했어?

 

네, 근데 여행이라고
할 것까진...

 

그럼...

 

우리도...

 

내가 그랬죠?

 

엄마 빼곤
키스 안 해요

 

- 자기 형이랑도...
- 그만 못 해?

 

내가 오빠한테
말했어?

 

앙투안!

 

애들은 할머니랑 있어요
우리 어머니요

 

당연한 말을...

 

데려올까 했는데

 

엄마가 고집을 피워서
못 데리고 왔어요

 

애들도 삼촌 봤으면
좋아했을 거예요

 

저도 그렇고...

 

앙투안도 조카를
보여주고 싶었을 거예요

 

우리 첫째인데
8살이에요

 

사람들이 앙투안을
쏙 빼닮았대요

 

판박이 같다고

 

근데 아이들 보면
예의상 그러잖아요

 

- 안 그래요?
- 그렇죠

 

에피타이저는
거실에서 먹을까?

 

셀레스틴에서 온 냉육,
루이가 좋아하는 초리조

 

- 아직 좋아하지?
- 네

 

쟤는 지 아빠랑
성미까지 똑같아

 

아주 고집불통이지
미래의 앙투안이야

 

부럽네

 

루이, 예전에
보내주신 카트랑

 

아니 카드요
그리고 꽃도...

 

정말 예뻤어요

 

정말 기분 좋았어요
꽃도 너무 예뻤고

 

그리고...

 

앙투안이랑 아이 사진
보내드렸었잖아요

 

그땐 앙투안의
손바닥 만했어요

 

어찌나 작은지
정말 귀여웠는데

 

기억나지, 앙투안?

 

아니, 중요한 일
깜빡하는 게 취미거든

 

그렇구나

 

사실 사진만 보면

 

앙투안이랑
닮은 구석이

 

없어요

 

눈을 크게 뜨고
뒤져봐도 없어요

 

근데 원래 아기들은
비슷하게 생겼잖아요

 

크면 좀 다르겠죠

 

듣는 사람 지루하게
언제까지 애 얘기야?

 

그런가?

 

전혀요

 

왜 그래?

 

- 카트린, 아니에요
- 아뇨

 

맨날 애들 얘기예요
사람들 지루하게

 

정작 사람들은 애들한테
관심도 없는데

 

아니에요

 

왜 저러나 모르겠네요,
왜 그런 소릴 해?

 

사람 기분 나쁘게

 

그러지 마
진짜 재수 없어

 

네가 입은 옷만큼?
일본 귀신 차림인데

 

노인네 재킷 입고
지적질 하시기는

 

얼굴에 덕지덕지
그만 좀 처바르지?

 

- 내 맘이야
- 그만들 해

 

오빠가 시작했어

 

루이?

 

따분하지 않았어요

 

조카들 얘기
듣고 싶어요

 

- 다행이네요
- 그리고...

 

아들도 있지 않아요?
이름이 뭐였죠?

 

루이였나요?

 

 

네, 맞아요

 

정말 감동했어요

 

내 이름을 따다니

 

이제 6살이에요
두 살 터울이죠

 

모르겠네요

 

말해도 될지...

 

잠깐, 잠깐
내 탓 하지 마

 

말하고 싶으면 해

 

아내 휘어잡는 놈처럼
몰아세우지 말고

 

적당히 좀 해,
속은 좁아서

 

말하라니까?
듣고 싶다잖아

 

얼른 말해

 

온 세상 애기들 얘기
다 끄집어내서 해줘

 

루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얘기야

 

빨리 해주라니까?

 

작작 좀 해줄래?

 

그래, 미안해
죽을죄를 지었네

 

미안해, 여보
계속해

 

제가 다 부끄럽네요
미안해요

 

형, 미안한데
내가 좀 불편해

 

송구스러워서 어쩌나

 

이 좋은 날을
앙투안 놈이 망쳤네

 

말 좀 하게 둬

 

무시하고
하던 얘기 하렴

 

그래, 무시해

 

할라피뇨도 가져왔다,
피노였나?

 

피뇨요

 

아무튼 매콤해
프라이 소스도 있어

 

카트린, 말하렴

 

그리고...

 

우리 아들은...

 

말씀하신 것처럼
이름을 따라 지었고

 

또...

 

제가 생각하기에
제일 재밌는 건

 

거슬러 올라가면

 

아버님의 성함도
결국에는...

 

역대 왕 이름까지
나오게 생겼네

 

그럼 입 다물게,
그러면 되겠어?

 

당신이 말하든가,
다들 가만히 앉아서

 

죽을 때까지
매운 소스나 먹든지

 

내 소스가
그렇게 엉망이니?

 

- 그게 아니라...
- 편하게 말하렴

 

농담이었어

 

하던 얘기 계속해

 

아무튼 아버님과
이름이 같은 거죠

 

참 멋진 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 저희 집에서는...
- 이게 얼마 만이야!

 

그런 전통이 있어요

 

부모님의 이름이나

 

아이 할아버지의
이름을...

 

쉽게 말해서
장남의 이름과

 

할아버지의 이름을...

 

똑같이 짓는

 

루이 왔다고 하니까
해가 서쪽에서 떴댄다

 

그 아줌마는
갈수록 이상해져

 

앙투안이
장남이긴 하지만

 

전 앙투안은
별로였거든요

 

루이가 좋았고

 

앙투안도 별로랬어요
자기 이름은 싫다고

 

아이 가지실 일은
없을 거잖아요

 

아니...

 

뭐, 가지실 수야
있긴 있죠

 

요즘은 안 되는 게
없는 세상이고

 

가지실 수 있어요
아직 젊으시고

 

루이 이름 쓰실 거예요?
아직 쓰실 수 있어요

 

- 그렇지?
- 응

 

카트린, 도와주렴

 

- 배고프니?
- 슬슬 배고파요

 

오빠는 그동안
내 방 구경할래?

 

그래

 

- 그럼 난 뭐 해?
- 너도 와서 거들어

 

앙투안

 

- 엄마 말 들었니?
- 네!

 

가면 되잖아요!

 

오빠 기억이
많지는 않아

 

그땐 어려서

 

기억이 별로 없어

 

다 들은 얘기지

 

아무튼...

 

횡설수설하네

 

오빠가 떠났던 건

 

실수 같아

 

나한테도 엄마한테도

 

큰오빠한테도

 

오빠 자신한테도

 

대답 안 해도 돼

 

오빠도 후회하지?

 

우리 보고 싶었지?

 

미안해

 

그래서 온 거야

 

다른 이유도 있고

 

좀 재밌는 게
오빠 편지 받기 전에

 

올 때가 됐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이제 올 거라고

 

- 그래
- 그리고...

 

매번...

 

내가 우편물을
가지고 오는데

 

우편물 더미에서
엽서를 보면

 

보자마자
그림 면으로 뒤집어

 

그래야 맞히는
재미가 있잖아

 

기다리던
사람일까 하고

 

다들 오빠 소식을
찾아서 보고 있어

 

오빠 기사나
인터뷰 같은 것들

 

오빠는 몰랐겠지만

 

우린 다들...

 

그런 게 있어

 

오빠에 대한
동경심이랄까

 

바보같이 들리지만
이건 재능이잖아

 

오빤 재능이 있어

 

웃겨?

 

- 아니...
- 왜? 재능이 맞아

 

농담 아니야

 

칭찬하는 거지

 

오빤 재능이 있어

 

행운아지

 

근데 우릴 위해
재능을 쓰진 않아

 

남들을 위해 쓰지

 

누구를 위해서가
아닐 수도 있고

 

난 오빠를 모르잖아

 

아무튼 난 오빠를
멋대로 판단하지 않아

 

그렇다는 걸
말해주고 싶었어

 

따가워 죽겠네
짜증 나

 

- 왜?
- 화장 때문인가 봐

 

원래 화장은
안 하거든

 

오늘은 그냥...
잠깐 해봤어

 

엄마 화장품은
너무 후졌어

 

뻘겋고 번쩍여서
따로 샀어

 

서 있을 거야?

 

앉아

 

여기가 편해

 

오빠가 나한테 쓴
엽서들이야

 

우린 오빠 엽서를
‘생략 글’이라고 불러

 

생략 정도가 아니지

 

그래?

 

하긴 그렇긴 하지

 

각자 모아놨어

 

앙투안

 

엄마

 

역시 엄마 말대로
오빤 우리 생일을

 

잊은 적이 없었어

 

우리 삶에
가장 중요한 날

 

늘 엽서가 오든
뭔가가 왔지

 

아무튼 그래서

 

불평을 그만뒀어

 

엄마가 오빠 본받으라며
지겹게 설교했거든

 

“해야 할 일은
반드시 하는 애다”

 

- 그러셨어?
- 지어낸 거 아니야

 

그래도 걱정 마
나도 어른이니까

 

괜찮아
완전 괜찮아

 

아니!

 

“완전 괜찮아”?

 

애들같이

 

싫어하는 말인데

 

나답지 않아

 

바보 같아서
싫어하는 말이야

 

너다운 건 뭔데?

 

오빠는 엽서도
희한하게 보내

 

휴양 중인 것처럼

 

우체부가
읽을 것처럼

 

모르겠어

 

그 대단한 글
모두에게 읽히고 싶어?

 

그런 글도 아니면서

 

그렇잖아

 

나만 등신 같지

 

다들 나한테 그래

 

미안

 

어쩌다 말이...

 

미안해, 쉬잔

 

아니야

 

내가 미안해

 

여긴 더워서
미치겠어

 

최악이야

 

모든 게 최악이야

 

나도 떠나고 싶지만

 

여기가 좋아

 

지하실도 있고

 

내 방도 있고
창고도 있고

 

오빠 뒤에 있는
방이 창고야

 

잡동사니 모아둔 덴데
대부분 오빠 거야

 

필요한 거 있냐고
엄마가 물어볼 거야

 

당연히 없겠지만

 

평생 한 곳에서
사는 사람들도 있대

 

루이?

 

듣고 있어?

 

응, 네 돈으로
이것저것 샀다고

 

그럼 차는?

 

큰오빠가 타던 차야

 

엄마가 샀어

 

운전 안 하시잖아

 

그럼 누가
운전기사겠어?

 

친구들 보러 갈 때
가끔 몰긴 해

 

엄마 일 볼 때
태워주기도 하고

 

우린 남들에게
의지하지 않아

 

누굴 귀찮게
하지도 않고

 

그리고 엄마랑 보내는
시간들이 좋거든

 

엄마 재밌잖아

 

좀 희한해서 그렇지

 

아무튼...

 

됐어

 

그럴 줄 알았어
오빠랑은 안 어울리지

 

마리화나에 취한 거야?

 

아니

 

다 깼어

 

나도 한번 해볼까?

 

- 평소엔 안 하지만
- 그런데...

 

왜 왔어?

 

소개할 사람 있어?

 

아님 임신했어?

 

가족들...

 

모르겠어

 

예전에 살던 집을
보고 싶었어

 

그 거지 같은 집에
왜 가고 싶은데?

 

모르겠어
향수 같은 거겠지

 

대본 집필 때문에?

 

아니

 

아니야

 

쉬잔, 루이
안 내려온니?

 

- 소리 지르지 마!
- 좀 내려와

 

창고 한번 둘러봐

 

오빠 물건도 보고

 

향수도 느낄 겸

 

너희들 어릴 때
일요일 생각나네

 

- 제발 좀...
- 뭐?

 

지겹게 한 얘기잖아요
카트린도 다 외워요

 

말씀하시게 둬

 

대서사시라도
원하시는 모양이다

 

그러니 고등학교 졸업하고
중국으로 내뺐지

 

- 중국 갔었어?
- 응

 

나도 일하고
남편도 일하고

 

다 일하는데...

 

내려왔구나

 

이야기 시간인데
잘 맞춰왔네

 

- 일요일 얘기?
- 봤죠?

 

루이도 아네

 

얘기 좀 하자!

 

루이
레드 와인 드려요?

 

쟤는 화이트야

 

- 화이트로 주세요
- 어느 집이 그러니?

 

그래서 일요일엔
꼭 같이 쉬었어

 

전통이 있었지

 

도와드려요?

 

됐다니까,
나 말 좀 하자

 

일요일 얘기 좀
하자니까!

 

빨리 하세요
빨리 듣고 끝내게

 

일요일은
무조건 쉬었어

 

늘 교외로 나갔지
매주 기계적으로

 

기계적으로!
무슨 의식같이

 

뭐 하려고?

 

아무것도 안 해
듣고 있어

 

그냥 여기 있어

 

그냥 가라고 해,
성질 못돼먹은 놈

 

그래서 나갔는데
늘 차로 나갔어

 

차 없이는
안 나가는 양반이라

 

그땐 차가 있으면
대단한 거였어

 

자기가 일해서
산 차였지

 

낡고 못생겼고
시끄러웠지만

 

그 사람 차였어

 

일요일 아침이면
늘 세차를 했지

 

꼼꼼하게도 닦았어

 

그리고 점심 먹고
타고 나가는 거야

 

매주 일요일에
전통처럼!

 

여행은 아니었지만
매주 일요일에

 

비가 오나 맑으나

 

‘맑으나’가 아니라
‘눈이 오나’죠

 

그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쟤가 어려서부터
말장난을 좋아했어

 

- 저이가요?
- 그래

 

“저이가요?”

 

다 아는 얘기면서
지금 나 놀려?

 

다 아는 얘기를
왜 하는 건데요?

 

사는 게 그런 거지
뭐 그리 빡빡해?

 

좋은 기억들 떠올리면서
그렇게 사는 거지

 

아는 거 알면서도
좋아서 하는 거야

 

나 좋으려고
하는 얘기다, 왜?

 

됐니?

 

그렇게 죽겠으면
귀를 막든가

 

나가든가 해
성질 긁지 말고

 

성질 긁어?

 

그래, 네 오빠
특기가 그거잖니

 

5월 첫 주 일요일이나,
3월 8일이면...

 

그때 내 생일이잖니

 

8일이 일요일이면
더없이 좋은 거야

 

기가 막힌 거지
그럼 멀리 나가서

 

숲이며 성이며
포도원이며 구경하고

 

풀밭 위에서 식사하고
담요 깔아놓고

 

낮잠도 자고

 

참치 샐러드, 밥
마요네즈, 데빌드에그

 

너 그 샐러드
아직도 좋아하지?

 

그거 해달라고
그렇게 졸랐잖아

 

삐쳤나 보다

 

그리고...

 

밤이 되면
운전에 지쳐서

 

집에 들어오면서 그랬지
“역시 집이 최고야”

 

그럼 같은 해변에
놀러 갔다 와도

 

공항, 비행기, 승무원이
어쨌네 하면서 투덜대잖니

 

아무튼...

 

그러다 애들이 크고

 

쉬잔이 태어났지

 

애들은 자전거가 생겨서
각자 놀기 바빴고

 

일요일 전통은
없어졌단다

 

쉬잔만 데려갈 거면
안 가니만 못하지

 

또 우리 잘못이네

 

내 잘못이라잖아

 

어머나!

 

쉬잔, 들어봐

 

- 쉬잔!
- 그냥 놔둬!

 

그래도...

 

진짜 죽겠네!

 

옛날 얘기도 미치겠는데
이딴 것까지 들어야겠어요?

 

- 적당히 해야지!
- 우리 노래야, 쉬잔

 

- 됐다니까 왜 그래?
- 우리 에어로빅 노래야

 

- 집에 가든가 해야지
- 쉬잔, 빨리!

 

정신 나갔어?

 

에어로빅 하세요?

 

엄마 혼자 해!

 

좋아하는 노래야
쉬잔, 어서!

 

숨어있는 명곡인데
내가 찾아냈어

 

남들 다 아는 노래야

 

- 혼자 딴 세상 살아?
- 난 해석도 해봤어

 

사랑에 빠진
피카소 얘기라더라

 

확실하진 않다만
아무튼 피카소 얘기야

 

빨리 나오라니까!

 

싫어!

 

오빠도 오셨는데
보여드려 봐

 

불편하게 왜 그래

 

쉬잔, 빨리 와봐

 

쉬잔, 어서!
와서 보여줘

 

엄마 다 틀렸어
그게 뭐야?

 

그럼 해봐

 

엄마는 못하니까
네가 보여줘

 

좋아, 하나, 둘

 

엄마, 그게 뭐야?

 

중풍 환자 같네

 

강사만 보지 말고
잘 좀 배워와

 

내가 뭘 어쨌다고!

 

네?

 

왜 발신자
불명으로 나와?

 

 

아니, 아직

 

온 지 몇 시간
안 됐는데

 

말하기 그래서

 

여동생 때문에
좀 힘들었어

 

동생을 잘 모르거든

 

정말 예뻐

 

여동생도 나이를
많이 먹었더라

 

물론 나도
많이 변했겠지

 

잘 모르겠어,
점심 먹고?

 

커피 마시면서
얘기하든지

 

분위기 봐서

 

말하고 나면
자고 가긴 그렇지

 

반응이 어떨지
모르겠어

 

눈물 한 방울
안 흘리지도

 

지금 통화하기가
좀 그래

 

나중에 전화할게

 

그래

 

무서워

 

가족들이 무서워

 

그래, 알았어

 

나도, 안녕

 

미안해요

 

미안해요

 

아뇨
내가 미안하죠

 

괜찮아요?

 

- 저요?
- 네

 

네, 왜요?

 

그냥...

 

전엔 소식을
거의 못 들어서요

 

별일은...

 

저는...

 

잘 지내요

 

무슨 말을 할지...

 

아니에요

 

아까 거실에서
좀 미안했어요

 

형이 내가 애들 얘기
관심 없다고 해서

 

왜 그랬나 모르겠어요

 

내가 관심 없다고
생각하고 싶었는지

 

아마도...

 

날 나쁜 놈으로
못 박고 싶나 봐요

 

아무튼 미안해요

 

벌써 잊었는걸요

 

전...

 

익숙해서요

 

그런데 왜...

 

나쁜 놈으로
못 박는다고 하세요?

 

말이 그런 거죠

 

난 형을 알아요

 

그래요?

 

미안해요

 

내가 듣기에는
조금 이상해서

 

그이는...

 

동생 얘기를
잘 안 하거든요

 

거의 안 해요

 

말하는 적이...

 

없어서요

 

내가 넘겨짚어
생각한 걸지도 모르죠

 

그이는...

 

동생이 자기 인생에
관심이 없다고 생각해요

 

우리나 애들이나
직업 같은...

 

형의 직업이
뭔지 아세요?

 

모르실 거예요

 

뭐라 하는 건
아니에요

 

그렇게 생각하진 마세요

 

- 그럴 수도 있죠
- 네

 

그래도...

 

직업은 아세요?

 

공구를 만들어요

 

작은 공장이 있는데
여기서 안 멀어요

 

사실, 나도...

 

정확히는 몰라요

 

어쨌든 그이는

 

동생이 자기 인생에
관심이 없다 생각해요

 

그리고, 사실...

 

그 사람이나 나나

 

남편 직업이...

 

딱히 관심 끌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남편이 아예 틀린 건
아닌 것 같거든요

 

물론 내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고요

 

그럴 수도 있죠

 

- 그런데 오늘은...
- 아뇨

 

잠깐만요

 

말하지 마세요

 

아셨죠?

 

- 남편에게 직접 말하세요
- 그러죠

 

제게 말하셔도

 

달라지는 게 없잖아요
남편 얘기인데

 

특별한 얘기를
하려던 게 아니에요

 

- 그냥 얘기하는 거지
- 하긴요

 

말재주가 없어서요
그리고...

 

얼른 가져가야 해서

 

- 조금 있다 볼까요?
- 그래요

 

- 오실 거죠?
- 네

 

루이, 얼른 오렴

 

문 닫아!
앙투안이 볼라

 

또 성질 긁을 거야,
어지간해야 참지

 

무시하려고 해도
쉽지가 않네

 

지낼 만해?

 

네, 잘 지내요

 

딱 세 단어네
한결같아

 

늘 대답이
두세 단어지

 

네 엽서처럼

 

그 웃음도 그렇고

 

그만하세요

 

걔들이 얘기하던?

 

쉬잔이 말했어?

 

둘 다 할 말이
있을 거야

 

어떻게든
말하고 싶을걸

 

또 언제 볼지
모르니까

 

쉬잔은...

 

전혀 몰라

 

네가 어떤 사람인지
거의 모르지

 

기억에 기대어
생각할 뿐

 

앙투안은...

 

네 형 알잖니
“무조건 내가 옳아”

 

문제는...

 

글쎄다

 

다들 네가 언제 갈까
걱정하는 거야

 

그리고 나도...

 

네가 오래 있을 거라
생각하진 않아

 

엄마는 괜찮아

 

그래도...

 

네가...

 

이해해줘

 

걔들 말하는 게

 

뭐랄까...

 

퉁명스러워도?

 

좀 삐딱해도

 

괜찮아요

 

눈에 훤하네

 

또 세 단어 말하고
슬쩍 웃기나 하겠지

 

평소처럼

 

딱한 것들

 

대답할 말이
없으면 어떡해요?

 

제가 할 말이
있는 거라면?

 

우리 계 탔구나!

 

농담이야

 

그걸론 부족해

 

쉬잔에겐
부족할 거야

 

또 언제 올지
모르는데

 

그리고 앙투안은...

 

더 모질게 굴 거야

 

더 거칠게 굴겠지

 

쉬잔이 떠나고 싶다고
얘기했을 거야

 

어딘가 다른 곳에서
자기 삶을 살고 싶다고

 

앙투안이 원하는 건
자유고

 

그게 느껴져

 

빚지는 걸
질색하는 성격이지

 

세상 누구한테라도

 

특히 나와 쉬잔한테

 

이런 것들을 네게
털어놓고 싶은 거야

 

네게 인정을
받고 싶은 거지

 

넌 책임감 없이 살았지만
네게 뭘 바란 적이 없어

 

전 장남이 아니에요

 

- 아버지도 아니고...
- 핑계는 집어치워

 

바보같이 굴지 마,
똑똑한 녀석이

 

나이는 상관없어

 

나이순으로
가장이 되는 게 아니야

 

난 어릴 때도
가장이었어!

 

지위, 월급, 운

 

미모, 재능, 용기

 

타고났든 아니든
네 자질이 중요한 거지

 

계속 말해볼까?

 

나도 작가 뺨치지?

 

안 돌아올 건
나도 알아

 

걔들에게 용기를 줘

 

그래 준 사람이 없어

 

내가 해봤다만
내 말이 먹히겠니?

 

용기를 줘

 

이래도 된다, 저래도 된다
허락을 해주란 말이야

 

쉬잔에게 헛된 약속이라도
해주란 얘기야

 

“쉬잔, 언제 한번
놀러 올래?”

 

그래도 된다고 해줘

 

그럴 권리가 있다고

 

아직도
그 게이 동네 사니?

 

맞아? 아니야?

 

이사했어요

 

뭐?

 

지금도 거기로
편지 보내는데

 

우편물은
누가 챙겨다 줘요

 

걱정 마세요
전 그게 좋아요

 

엄마한테 사는 곳도
감추고 싶은 거니?

 

세상에

 

웃기는구나

 

내 말은...

 

네가 웃긴다고

 

아직 모르는구나?

 

우리가 널 사랑하지
않는 것 같지?

 

이해도
못 하는 것 같고

 

맞아

 

난 널
이해 못 하겠어

 

하지만 사랑해

 

널 사랑해

 

그 마음만은
누구도 못 뺏어가

 

네 연극 대사로
한번 써주렴

 

왜 온 거니?

 

엄마한테는
말해도 돼

 

뭐, 이런 거니?
“12년이나 됐네!”

 

“집에 바비큐나
먹으러 갈까?”

 

그래도 좋아 보여서
기쁘구나

 

젠장할!

 

어디 뒀더라...

 

지금 몇 살이니?

 

- 저요?
- 아니, 물뿌리개

 

여기 있었네

 

키스와 앙투안과
음식을 위해

 

그리고 날 위해

 

자...

 

어디 말해보렴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내가 내게 주는 선물

 

서른넷이에요

 

세상에

 

그럼 내게도
34년이었네

 

그렇게 오래됐니?

 

말문이 막히는구나

 

네가 할 일을
하려무나

 

세상에...

 

지금...

 

사진이라도
찍어놓고 싶네

 

네 아빠 눈빛과
아주 똑같아

 

아무튼...

 

대단한 선언이나
눈물을 바라진 않아

 

내가 하던 말은...

 

앞으로를 위한 거니까

 

생각해보란 얘기지

 

오늘은 시작과 같이
끝나면 되는 거야

 

의무감도 없고
중대한 얘기도 없이

 

그저 좋게
지내면 되는 거야

 

 

자기네 닭들은
드니즈라고 부른다니까

 

좀 모자란 여자잖아

 

내가 닭장으로
들어가니까

 

닭들이 사방으로
뛰어다니더라고

 

닭들이 귀여워서
물어봤지

 

“얘들 이름이 뭐예요?”

 

“드니즈예요”

 

그래서 어떤 녀석이
드니즈냐고 물었더니

 

그러는 거야
“전부 드니즈예요!”

 

전부 드니즈래

 

이 이야기 웃기면
나 지옥 갈까?

 

웬 지옥?

 

그 여자
다운증후군이잖아

 

무슨 증후군인지 몰라도
엄청나게 중증이야

 

어떻게 봐도
사람이 모자라잖아

 

전부 드니즈면 안 된다고
누가 얘기 좀 할 것이지

 

난 그 얘기 별로야

 

못된 얘기 같아서
듣기가 그래

 

그래도 재밌잖니

 

성 카트린 나셨네

 

- 괜찮아?
- 응

 

- 왜?
- 따분하면

 

다른 거 할래?
산책을 가든지

 

- 게임을 하든지
- 그 거지 같은 게임

 

말 끊지 마

 

무슨 게임인지 몰라도

 

재밌을 것 같아

 

- 근데...
- 뭐? 옛날 집?

 

- 응
- 뭔데?

 

옛날 집 보고 싶대

 

가보고 싶으면
내가 태워줄게

 

거긴 왜 가려고?
너 미쳤어?

 

가면 어때서?
그냥 좀 놔둬

 

- 오빠가 미쳤지
- 멍청한 놈

 

근데 진짜 거기엔
왜 가려는 거니?

 

네 방에
뭐 두고 왔니?

 

아뇨

 

그냥 가고 싶어서요

 

좀 궁금해요

 

그쪽 주변이

 

얼마나 좋아졌는지

 

얼마나 변했는지
아니면...

 

얼마나 망가졌는지

 

파는 집도 아니라서
구경하긴 힘들걸

 

지난주에
지나가다 봤는데

 

아예 버려진 집이야

 

그 판잣집에
가고 싶은 이유가

 

어떻게 망가졌고 변했는지
보고 싶어서라고?

 

기껏 그딴 이유로
가고 싶다고?

 

앙투안

 

아니, 뭐라고
하는 건 아니고

 

나도 알아

 

거기서 나오는 데
20년 걸렸는데

 

굳이 거길 찾아가서
녹슨 지붕에 앉은

 

낙엽 따위를
봐야겠다는 거야?

 

뭐하러?
그게 뭐라고?

 

시비 걸지 마
그냥 가고 싶다잖아

 

내 말은...

 

가고 싶다면
같이 가줄게

 

괜찮아

 

- 괜한 소릴 했네
- 그걸 말이라고!

 

차라리 아우슈비츠 가서
시를 써재끼고 말지

 

앙투안
추잡한 소리 그만해

 

괜찮아, 루이

 

재밌는 얘기나
하나 해보렴

 

아는 게 없어요

 

하나 지어내 봐

 

연예계 뒷얘기라거나

 

누가 누구랑
잤다느니 하는

 

손에서 냄새나는데
담배 피웠어요?

 

루이, 와인?

 

- 괜찮아요
- 피우셨네

 

잘 어울리질 않아서
가십거리를 몰라요

 

커피 드릴까요, 루이 씨?
지금 끓일 생각인데

 

어느 시대에 사시는데
아직도 존칭이에요?

 

무슨 상관이야?
이 멍청아

 

진짜 짜증 나네,
오빠한테 말했어?

 

내가 뭐라든
무슨 상관이야?

 

걸핏하면 멍청하대고

 

오빠는 빠져 있어

 

그만들 해

 

방금 들었죠?
저 말버릇 보세요

 

당신이 시작했잖아

 

- 전에는 안 그러더니
- 이제부턴 그럴 거야

 

짜증 나게 굴면
계속 이럴 거야

 

이제 알겠다

 

귀여워 죽겠네
아주 깜찍해

 

작은오빠 앞이라고
멋져 보이고 싶어?

 

너 때문에 그런 거야

 

효과 좀 있어?
멋져 보여?

 

룰루쿠루루!

 

룰루!

 

진짜 못 참겠어
못 참겠다고

 

- 엄마!
- 옆집에서 듣겠다

 

헛소리만 하잖아!

 

루이 오빠랑 상관없어

 

왜 우리만 만나면
깔아뭉개려고 그래!

 

짜증 나서 미치겠네!

 

쉬잔, 잠깐만

 

잡아야지,
저대로 보내?

 

금방 올 거예요

 

세상 창피해서

 

카트린
커피 좀 부탁할게요

 

“카트린
커피 좀 부탁할게요”

 

앙투안

 

앙투안 뭐?
앙투안, 앙투안

 

뭐? 이름은
왜 부르는데?

 

사람 짜증 나게
하루종일 불러대!

 

참...

 

타이밍이 안 좋네

 

모여서 기쁘다고
말할 참이었는데

 

나중에 해야지

 

실례할게요

 

 

왜 그렇게 무례해?
뭐가 불만인데?

 

왜 그렇게
적대적으로 굴어?

 

루이?

 

- 미안해요
- 미안해요

 

어머님이 찾으셔서요

 

30분쯤 후에
디저트 준비된다고

 

금방 갈게요

 

 

미안해요

 

시간이
얼마나 있으세요?

 

무슨 시간요?

 

저기...

 

그...

 

앙투안이 위층에
혼자 있어서...

 

말 상대라도
해주시겠어요?

 

갈게요

 

그...

 

담배 피우고 싶네

 

담배 사러 가야겠다

 

그럼... 아니야

 

나도 알아

 

엄마가 피우는
담배는 싫어

 

원래 안 피우지만
피우고 싶을 땐

 

나도 피워

 

근데 지금 당장
피워야겠어?

 

갈래? 차로 갈 건데
같이 가면서...

 

뭐?

 

- 얘기하자고?
- 아니, 그것도 좋고

 

그래

 

- 바람 좀 쐐야겠어
- 그래

 

가자

 

어젯밤에 출발해서
일찍 도착했어

 

그래서 공항에서
일출을 봤어

 

작은 카페에서
아침 먹고

 

아침을 집에서
먹을까 하다가

 

여유롭게 오려고

 

그 얘길 나한테
왜 하는 건데?

 

나한테 무슨 대답을
기대하고?

 

모르겠어
그냥 한 말이야

 

중요한 것도 아니야

 

말하고 싶으니까
그냥 말한 거지

 

야...

 

시작하지 말자

 

뭘 시작해?

 

이런 거 하지 말라고

 

공항이 어쩌네
뷔페가 어쩌네

 

일찍 오려고 했네
구구절절 늘어놓지 말라고

 

들어줄 기분 아니야

 

밤 비행기로 왔다고?
어땠어?

 

말해봐

 

별거 없었어
거리가 짧잖아

 

다른 행성에라도
사는 줄 아나 본데

 

여기가 세상의
끝도 아니고

 

얘기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왜 또 그래?

 

다 듣고 있잖아

 

어서 말해봐

 

말해보라니까

 

나도 궁금해
공항이며 뷔페며

 

날이 더워서
잠깐 짜증 난 거야

 

형 말이 맞아
상관없는 얘기야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어

 

형이 좋아할까?
오늘 아침에...

 

내가 공항 카페에서
아침 먹으면서

 

기다린 걸 알면

 

새벽에 올 순 없잖아
가족들 놀랄 텐데

 

엽총 들고 현관 앞에
서 있는 쉬잔이 떠올랐어

 

바보 같지

 

총을 거꾸로 들고
자기 머릴 쏠 것 같은

 

얘기 끝났어?

 

그렇게 기다렸는데
당시로선...

 

당시로선?
당시로선?

 

- 유식한 척은
- 기다리면서

 

형한테 이 얘기를
해야겠다 생각했어

 

거기서 아무것도
안 한 얘기

 

형은 이해할 것 같아서

 

그래서 형한테만
말하는 거야

 

왜 일찍 안 왔냐고
섭섭해할까 봐

 

빈둥대는 것도
기분 좋잖아

 

- 무슨 뜻인지 알지?
- 또 시작이네

 

내가 싫다는 게
바로 이거야

 

무식쟁이 가르치듯
조근조근 설명해대고

 

나도 알아
누굴 바보로 아나

 

넌 원래 그랬어

 

끝도 없이 주절주절
떠들어대면서

 

헷갈리게 만들고
사람 엿 먹이면서

 

자기만 쏙 빠지고

 

- 형이 미친 거야
- 내가 미쳐?

 

네가 미친 거지

 

뻔한 얘기잖아
공항이며 뷔페며

 

또 뭐 있어?
주절주절 있잖아

 

튀김 만드는 사람,
네 옷에 밴 기름 냄새

 

그리고 공항에는
혼자 계셨겠지?

 

쥐 죽은 듯 조용했고

 

그래, 거기에서
신문도 읽었나?

 

그러셨겠지

 

경제지를 봤든가

 

번쩍이는 종이에
빨간 글자가 박힌

 

네가 왜 왔는지
나도 몰라

 

아무도 몰라
아무도 이해를 못 해

 

근데 넌 그걸 실어해,
우리가 알았다면

 

훨씬 편했겠지

 

이미 돌아갔거나
오지도 않았을 거야

 

그게 중요해?

 

공항, 뷔페, 신문이
나한테 중요할 거 같아?

 

단단히 오해하셨어
아예 관심도 없어!

 

개뿔도 없다고!

 

공항에서 되뇌이던 말은
이런 게 아니잖아

 

내게 하려던 말도
그게 아니고

 

지금이 어색하니까
지껄이는 말이지

 

내가 있으니까
대충 지어내서

 

나한테 말하려고
지어낸 거잖아

 

내가,
나는 특별하다고 느끼게

 

특별해?

 

삐대다 왔다는 걸
안다고 특별해져?

 

그런 생각 안 했겠지
우린 남남이니까

 

전혀 상관없는 남남

 

우린 남남이야,
언젠 아니었어?

 

그렇게 생각했겠지
“치켜세워주면”

 

“내가 가지고
놀 수 있겠지”

 

그거잖아

 

“난 배웠고 글도 써
내가 휘어잡을 수 있어”

 

가끔 그런 얘길 듣지

 

‘휘어잡기 힘든 놈’

 

“앙투안을 건드릴 땐
조심해야 돼”

 

철창 속 짐승
건드릴 때처럼

 

조심스럽게 만지다
죽여버리는 짐승

 

그게 공항에서
네가 한 짓이야

 

날 휘어잡을 기술이
있다고 생각한 거지

 

근데 받아줄
기분이 아니야

 

그러고 싶지가 않아

 

여기서 뭘 하는 건데?
알고 싶지도 않아

 

관심도 없어

 

네가 오든 말든
그건 네 문제지

 

집에 오든 가든
자고 가든 말든

 

네 인생이
뭐 그리 대단해?

 

- 알 거 없잖아
- 속도 줄여

 

공항에서 처먹으면서
멍하니 있었고

 

주문한 커피 마시면서

 

그 어떤 사람도
생각 안 했고

 

네 잘난 인생을
살고 있던 거야

 

그러니까 개소리는
혼자 하란 말이야!

 

- 앙투안
- 됐어

 

여기서 네 얘기나
듣고 있긴 싫어

 

질려버렸으니까

 

다들 뭐가 그렇게
할 말이 많아?

 

난 듣는 것도,
말하는 것도 싫어

 

말 없는 사람들이
잘 들어주는 줄 아는데

 

난 건드리지 말라고
입 다무는 거야

 

알았어?

 

알았어?

 

알았어

 

놀랍네

 

그건 그렇고

 

피에르가 지난주에
암으로 죽었어

 

피에르

 

졸리쾨르

 

피에르 졸리쾨르

 

디저트 만드는 거
도와주러 가야겠다

 

앙투안, 당신이야?

 

어디 간 걸까요?

 

- 뭐?
- 다들 어디 갔을까요?

 

글쎄

 

잠깐만 잡아주렴

 

누가 들어오는
소리가 나서요

 

제가 데려올까요?
앙투안 같은데

 

올 때 되면 오겠지

 

이거나 도와줘

 

이해가 안 돼

 

뭐가?

 

너만 그럴 거 같아?

 

오빤 웃을 때
잘생겨 보여

 

우리만 모르고
엄마는 뭘 알 거 같아?

 

예전이나 지금이나
아무도 이해 못 해

 

그게 묘미 아니야?

 

앙투안과 루이가
싸운 것 같아요

 

같아?

 

앙투안!

 

갈게요

 

극적인 사건은 없었어

 

어려서 기억 안 나지만
그런 건 없었어

 

비극적인 사건도,
배신도 없었고

 

살인도 없었고

 

그런 것도 아닌데
우릴 피하는 거야?

 

그건 루이한테
상관이 없어

 

우리의 필요성을
못 느끼는 거야

 

멀리 있고 싶은 거지

 

소파에서 가장 먼 자리에
앉고 싶은 거야

 

딱한 녀석이지

 

네가 크는 것도
제대로 못 보고

 

그렇게 삶은 계속됐지

 

오늘도 변함없이
그런 것처럼

 

책과 똑같지

 

네가 불행해하는 건
그게 편하기 때문이야

 

- 그러니까 행복해져
- 말이 쉽지

 

어쨌든 간에
이제 거의 끝났어

 

응? 왜?

 

- 저기...
- 그래

 

애피타이저, 앙트레
핑거푸드 다 참아도

 

디저트는 못 참지

 

저...

 

말할 게 있어요

 

할 말이...

 

또 올게요

 

더 자주

 

그리고 편지 할게요

 

더 자주

 

두세 단어 이상으로

 

왜냐면...

 

후회가 돼서요

 

우리가 낭비한 시간도,
내가 낭비한 시간도

 

쉬잔, 시간 나면
한번 들러

 

주말이든 주중이든
편하게 있다 가

 

그리고 형...

 

저녁까지 먹었으면

 

못다 한 얘기
계속했을 거야

 

차분하게...

 

내가 다시 오거나
형이 놀러 오면...

 

바빠서 못 가

 

주말엔?

 

주말만

 

주말도...

 

주말엔 시간
낼 수 있잖아

 

와도 돼
그럴 권리가 있어

 

- 파리 좋아하잖아
- 내가 파리를 좋아해?

 

어려서부터 그랬잖아

 

사실 나 가야 돼

 

- 뭐 하는 거니?
- 왜 그래?

 

좋은 얘기 오가는데
또 망치는구나

 

혹시 설거지하게?

 

기대도 하지 마

 

근데 둘이 왜 그래?

 

술이라도 마셨니?
마리화나 했어?

 

큰오빠는 가끔 했었어

 

택시 지겨울 텐데
내가 태워다줄게

 

- 뭐?
- 가자

 

지금?

 

간다고 안 했어?

 

안 했어

 

자고 갈 거지?

 

아까 차에서 그랬지?
저녁에 미팅 있다며

 

오늘이었지?

 

오빠 미쳤어?

 

나 안 미쳤어

 

가야 한다니까
도와주려는 거지

 

처가에서 공항까지
40분 거리지?

 

맞아

 

오는 길에
애들 데려올게

 

공항까지 40분?

 

- 언제 가봤어?
- 너도 안 가봤잖아!

 

난 맨날 가!
거기 친구 살아서

 

그게 무슨 상관이야?

 

또 택시 타면
피곤할까 봐 그러지

 

그 얘기가 아니잖아!

 

그 얘기가 아니야!

 

오빠, 갈 거야?

 

오늘 저녁이든 내일이든
내가 태워다줄게

 

오늘은 자고
아침 먹고 가자

 

무슨 미팅인데?

 

그래, 무슨 미팅인데?

 

그렇게 중요한 거니?

 

미룰 순 없고?

 

일요일에 하든가

 

아까는 중요하다고...

 

입 다물어!

 

문제가 뭐야?

 

얘기 잘하다가

 

갑자기 이러니

 

왜 그래?

 

왜?

 

왜냐면...

 

미팅이 있으니까요

 

됐어, 가자

 

왜 난리야!
오빠 건드리지 마!

 

루이, 왜 그래?

 

- 형, 내가 할게
- 도와주는 거야

 

대체 이게 뭐야?
이게 무슨 난리야?

 

비행기 놓칠까 봐
이러는 거잖아요

 

그래도 작별 키스는
할 수 있잖니

 

그럼 빨리 해요

 

2초 전까지만 해도
즐겁게들 먹고

 

좋은 얘기 하면서
재밌었는데

 

네가 무례하게 굴면서

 

전부 망쳐버렸어

 

내 경고하는데

 

이건 용서 못 해

 

네 동생이
저렇게 노력하는데

 

- 괜찮아요, 엄마
- 빨리 키스해요

 

- 앙투안
- 닥쳐!

 

내가 데려갈게
오빠, 내 차로 가

 

쉬잔, 그만해!
내가 간다니까!

 

- 네가 몰고 가면...
- 가면 뭐?

 

내가 태워다주고
금방 돌아올 거야

 

- 오빠는 비열한 인간이야
- 내가?

 

자기가 하면서도
그렇게 몰라?

 

오빠를 잡아당기고
말도 막 하고

 

언니한테도 그러고!

 

저 조그만 게
입만 살아서

 

- 내 편 안 들어?
- 퍽이나 들겠다!

 

쉬잔?

 

이해가 안 돼

 

보러 가도 되지?

 

가자, 루이

 

루이!

 

또 봐요

 

그 손 놔!
이 미친놈아!

 

내가 뭘 했다고!

 

오빠가 한 거라곤

 

루이 오빠와의 하루를
망쳐버린 것뿐이야

 

그것도 잔인하게!

 

잔인하게? 내가?

 

그래!

 

- 앙투안
- 그만해! 괜찮으니까

 

진정해
괜찮으니까

 

제발 진정해

 

잔인하게 굴지 말고

 

누가 잔인해?
난 도와주려는 거야

 

그런 거 아니야
그냥 형이 오해...

 

- 아주 잘나셔서...
- 잔인하고 멍청해!

 

너 잘났고
아주 똑똑해

 

그러니까
닥쳐, 이년아!

 

어디 동생한테
말을 그따위로 해!

 

좋아, 알았어
그럼 맘대로 해

 

또 내가 잘못했지

 

쉬잔한테 가
가라니까?

 

가!

 

- 됐어
- 됐어?

 

저 자식이 간댔잖아요
분명히 말했어요

 

그런데 또
내 잘못이에요?

 

네?

 

다들 날 무시하는데
이제 진저리가 나

 

난 잘못 없어
잘못한 거 없어

 

가자

 

지나가는 개 보듯이
보지 말란 말이야

 

불공평하잖아!

 

늘 자기들만 옳고
난 무조건 잘못했고!

 

울지 마, 형

 

- 죽여버릴 거야!
- 앙투안, 안 돼!

 

싸우지 마, 루이
앙투안...

 

그만해
이제 그 손 놔

 

앙투안, 그만해

 

끝났어

 

다음엔 더 준비하고
맞아줄게

 

오, 주여
너무 힘이 듭니다

 

오, 주여
너무 힘이 듭니다

 

내 고난은
신밖에 모르시니

 

내 고난은
신밖에 모르시니

 

오, 주여
너무 힘이 듭니다

 

오, 주여
너무 힘이 듭니다

 

내 고난은
신밖에 모르시니

 

내 고난은
신밖에 모르시니

 

프란시스 바르보를 추모하며

 

오, 주여
너무 힘이 듭니다

 

내 고난은
신밖에 모르시니

 

내 고난은
신밖에 모르시니

 

언덕을 넘었던
그 어느 날

 

내 영혼은 평온해져
온종일 머물렀네

 

언덕을 넘었던
그 어느 날

 

내 영혼은 평온해져
온종일 머물렀네

 

오, 주여
너무 힘이 듭니다

 

오, 주여
너무 힘이 듭니다

 

내 고난은
신밖에 모르시니

 

내 고난은
신밖에 모르시니

 

오, 주여
너무 힘이 듭니다

 

오, 주여
너무 힘이 듭니다

 

내 고난은
신밖에 모르시니

 

내 고난은
신밖에 모르시니

 

방에 들어가
잠시 있었지

 

침대를 바라보니
형제가 죽어 있네

 

방에 들어가
잠시 있었지

 

침대를 바라보니
형제가 죽어 있네

 

번역 황석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