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bange 3.0 - (C) Breadu Soft 2008

잊혀진 황군
감독: 오시마 나기사

 

논픽션 극장

 

승객 여러분

 

이렇게 추한 모습으로

 

나타나 죄송합니다

 

저는 두 눈과
한 팔을 잃었습니다

 

일을 하고 싶어도
못 합니다

 

어쩔 수가 없어서
이렇게 도움을 청합니다

 

아무쪼록 이해하고
도와주십시오

 

전쟁이 끝난 지
18년

 

이런 모습을 한
사람을 보는 건

 

별로 유쾌하지 않다

 

우리와는 무관하다고
할지 모른다

 

우리는 이 사람들에 대해
아는 게 없다

 

한국인이란 사실도
모른다

 

아무쪼록 이해하고
도와주십시오

 

그렇다

 

일본인들의 전쟁에서

 

일본인으로
싸운 사람들이고

 

전쟁이 끝난 뒤에는

 

한국으로
국적이 바뀌었다

 

18년이 지난 지금
종전기념일에

 

사람들은 별 감흥이 없고
더운 여름날의 하루일 뿐이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전 일본군 재일한국인
상이군인회" 회원들이다

 

12명이 왔다

 

아프거나 연락이 끊긴
5명은 못 왔다

 

회원은 17명이다

 

그 중 하나가

 

서갑원이다

 

이들은 불구의 몸으로

 

전후 18년을 살아온

 

구 일본군 출신의
한국인들이다

 

이 잊혀진 황군들이
행진한다

 

이기고 오겠노라
맹세하고

 

용감하게
고향을 떠난 이상

 

전공을 못 세우고
죽을 수 있나

 

진군 나팔 울릴 때마다

 

눈 앞에 떠오르는
깃발의 물결

 

흙도 초목도
불타오르는

 

끝없는 광야를
밟고 가르며...

 

종전 18년 뒤

 

이들은 직업이 없고
외국인 신분이라

 

일본인으로서의 복지 혜택을
전혀 누리지 못 한다

 

거리에서의 모금이
수입의 거의 전부며

 

일본의 한 구석에서
생존을 위해 투쟁한다

 

한국인이라고
군인 연금을 거부당했으며

 

자신들의 처량한 신세에
격분을 금치 못 한다

 

읽어버린 팔 다리를
보상해달라고

 

일본 정부에
여러 번 요청했다

 

작년 6월에

 

내각에 진정서를 냈다

 

금년 5월 31일에는

 

총리에게 정식 청원서를
문서로 제출했다

 

그러나
아무 응답이 없었다

 

오늘 이들은
총리 관저로 갔다

 

전우는 웃으며
죽어갔다

 

'천황 폐하 만세'를
외치던

 

그 목소리를
어찌 잊으랴

 

자신을 버리려고
나선 전쟁

 

죽을 각오가 되어 있다

 

울지 마라, 풀벌레들아

 

동양 평화를 위해서라면

 

이 한 목숨 아까울소냐

 

2달이 됐는데

 

아무 응답이 없어요

 

이건 인도주의의 문제에요

 

상이군인과 가족들에게
복지 혜택을 줘야 합니다

 

똑같은 조건 속에서
부상을 입었습니다

 

동등하게 보상해줘야 하고

 

그게 정당한 일입니다

 

총리 각하와는
못 만납니다

 

우리 사정을 이해할텐데

 

왜 못 만난다는 거요?

 

일본군으로 근무했어요

 

천황 폐하를 위하다가
부상당했어요

 

아무 대답이 없어서
이렇게 왔습니다

 

이들의 외무성 출입은
허가되지 않았다

 

서갑원은 1945년 6월

 

추크 제도에서
군속으로 일하던 중

 

미군의 함포사격으로

 

오른팔과 두 눈을
잃었다

 

...조선인들도 이제는
일본군에 복무하게 됐습니다

 

내년부터 조선 반도의
2천4백만 조선인들에게

 

징병법이 적용됩니다

 

폐하의 하해같은 은혜로

 

조선 청년들이
충성을 다하게 됐습니다"

 

서갑원은 1921년
함경남도에서 태어났고

 

1943년 해군 군속으로
징집되어

일본에 왔다가

 

추크 제도에 배치됐다

 

장관님은 외출하십니다

 

여기서 이야기합시다

 

일한 관계가
외교 관계가 정상화 되야

 

양국 정부가 이 문제를
협의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 정책은

 

관계 정상화 때까지
기다리자는 겁니다

 

그때 가서 한국 정부가

 

이 문제를 제기하면

 

협의할 겁니다

 

일본 정부는

"한국인이니 한국정부에
요청해라" 했다

 

한국 대표부도
이들을 기다리게 했다

 

조국이 이들의 호소에
귀기울일까?

 

서갑원은
북조선 출신이었으나

 

1962년 일한 교섭이
시작되자

 

보상을 기대하고

 

한국으로 국적을
바꾸었다

 

동란의 조국

 

수많은 참전 군인과

 

피난민들의 행렬

 

혁명의 조국

 

잇따른 혁명으로
한없이 불안정한 나라

 

조국은 이렇게 말했다

 

"너희는 일본을 위해
부상당했으니

 

한국에는 책임이 없다

 

일본 정부에 요청해라"

 

지금 남북으로
갈려있는 한국은

 

동란을 거치며
상이군인의 사정을 알텐데

 

왜 불행한 희생자로
생각하지 않을까?

 

이들은 계속 일본에서
살아가야 한다

 

정부 대신에

 

직접 일본인들에게
호소하기로 결정했다

 

바다에 가

 

빠져 죽으리

 

산에 가

 

풀에 묻히리

 

주군을 위해
죽는다면

 

여한이 없어라

 

회장 석세기

 

우리는 전쟁에 나가
싸웠습니다

 

일본을 위해 희생했습니다

 

일본 정부는
보상을 안 해줍니다

 

왜 같은 국민인데
보상을 안 해줍니까?

 

우리는 18년 동안...

 

부회장 문제수

 

하찌조지와 신주꾸
히라스까

 

후지사와와 요꼬하마의
직업소개소를 전전했습니다

 

우리에겐 월급 만엔의
일자리 밖에 없습니다

 

저는 가족을
부양해야 합니다

 

그 걸로는 부족합니다

 

우리가 영리하진 못 해도
생각은 있습니다

 

여론에 힘을 입어

 

이 문제에
정치적으로 법적으로

 

대처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부디 우리를 좀
도와주십시오

 

정부 부처와 언론에

 

엽서와 편지를
보내주십시오

 

김재소

 

제 모습을
좀 보십시오

 

멀쩡해 보입니까?

 

이제 일본은
평화 국가입니다

 

문명 국가로 간주받습니다

 

문명국인 일본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저희의 어려운 사정을
이해하고 지원해주십시오

 

이들의 호소가
통했을까?

 

통하지 않았을까?

 

대답할 것도 없이

 

이들은 철수했다

 

아아
그 얼굴, 그 목소리...

 

지친 전우들은
빈약한 주머니를 털어

 

술자리를 마련했다

 

공훈을 부탁하던
처자식들

 

찢어질만큼
흔들어대던 깃발들이

 

저 멀리 구름 사이로
다시 떠오른다

 

아아
당당하던 수송선이여

 

조국이여 안녕...

 

다투기 시작한다

 

우려하던 일이다

 

늘 이렇다

 

아주 서글픈 싸움이다

 

서로끼리만 다툰다

 

불평할 대상이 없다

 

추한 건가?
우스운 건가?

 

서갑원

 

눈이 있었던 곳에서
눈물이 흐른다

 

원래 19명이었다
"조선인 유골 안치당"

 

하나가 사고로 죽고
하나는 자살했다

 

서갑원에게는

 

산 사람들보다는

 

죽은 사람들이
더 친근한 느낌이다

 

그러나 삶은 계속된다

 

살아간다

 

아내인 한다 미쯔요

 

처제인 요시에가

 

청춘을 허비하며
두 맹인을 돌본다

 

이들에게
무슨 낙이 있는가?

 

무슨 희망이 있는가?

 

언젠가는 군인 연금이

 

나오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나 신체를
보상받더라도

 

18년 동안의
온갖 마음의 상처는

 

어디서 보상받는가?

 

서갑원은 1946년 2월
일본으로 돌아와

 

1949년에 메구로의
전 해군 병원에서

 

한다 미쯔요를 만나
결혼했다

 

한다 미쯔요는
1945년 5월

 

도꾜 대공습 때
시력을 잃었다

 

1952년 두 사람의
장녀가 태어났다

 

1954년에는
장남이 태어났다

 

...3루 측 땅볼

 

야수선택입니다

 

유일한 즐거움은
야구 중계방송이다

 

국철 팀의 팬이고

 

가네다의 승리에
기뻐한다

 

...전진해서 잡았습니다

 

가네다의 빈틈없는
수비입니다

 

서갑원은 더 큰 즐거움을
누릴 수 없을까?

 

...좋아요, 좋아요
타히티 댄스, 좋아요

 

그러나 이들은
아무 것도 받지 못 했다

 

우리는 아무 것도
주지 않았다

 

일본인들
당신과 나

 

이게 옳은 일인가?

 

이게 옳은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