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워싱턴 DC
먼 나라를 지키다가 죽어 간
세계사에서 과연 한국전쟁은 무엇일까?
전 세계를 긴장 시켰던
베트남 전쟁 사이에 일어난
그러나 사실은 전혀 다르다
아시아의 패권을 놓고 벌어진
혹독한 추위와
지칠 줄 모르는 공산군에
이 프로그램에서는 당시 참전 군인들의
여러분은 공포와 혼란, 피가 뒤범벅된
참고로 이 프로그램의 많은 화면들이
'컬러로 보는 한국전쟁'
'제1막 전쟁의 먹구름'
1950년 봄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두달 전인 이때
한국의 한 사진촬영 기사가
전쟁으로 치닫고 있던 남한과
처형당하는 사람들은
불과 몇년 전까지 남한과 북한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싹트기
당시 거의 폭발 직전이었다
한국은 오래 전 부터
실제 자연환경은 험하고
한국이 위치한 한반도는
미국에서 일만여Km 떨어져 있는 나라다
특이한 점은 주변에 러시아, 중국, 일본
그 결과 한반도는 주변 강국들의
힘겨루기 장소가 되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한반도는 일본의 식민지
1945년7월
포츠담 회담에서, 미국과 소련은
남쪽과 북쪽에서 각각
'여기는 북위 38선'
'여기는 북위 38선'
그리고 이 38선을 경계로
소련은 38선의 위쪽인 북쪽을
그리고 자신들을 모델로 한
1947년 미군과 소련군이 철수할때
북한에는 "조선인민공화국"
남한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남한과 북한은 서로
대립은 격화되었고
38선 부근에서는 이미
이 작은 반도는 두 개의
이제 누가 전쟁을 먼저
'제2막 전쟁의 발발'
'북한, 남한을 침략하다'
1950년 6월25일 새벽 4시
북한군은 38선을 넘어 남한을 침략한다
이전의 소규모 교전과는
13,5000 여명의 북한 인민군은
거침없이 남쪽으로
수적으로나 장비면에서 열세였던
남한의 군대는 저항다운
속수무책으로 패퇴했다
당시 남한이 보유한 무기의 열세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한국 전쟁전에 이승만 대통령은
공공연하게 북침을 하겠다고 주장했다
이에 미국은 아예 남한
그런데 미국의 이런 전략이
남한은 보잘것 없는 무기로
북한의 탱크와 엄청난
결국 전쟁발발 이틀만에 38선에서
북한에게 넘어가고 만다
겁에 질린 서울 사람들은
한강을 건너 남쪽으로 갈 수 있는 길은
이들 피난민으로 북새통을 이뤘다
그러나 북한 인민군의 남하를 두려워한
한강다리가 폭파되는
수 백 명의 피난민은
수천 명은 피난길이
서울이 함락 됐다는
남한은 공포 분위기에 휩싸였다
북한은 자신들이 남침할 경우 미국이
그런데 막상 전쟁이 벌어지자
미국은 예민하게 반응했다
남한이 공산정권에 넘어가면
여론이 들끓자 미국 대통령 트루먼은
우선 해, 공군력을 이용해
'트루먼 대통령의 연설'
'트루먼 대통령의 연설'
이와 같은 침략 행위는
모든 자유우방의 안전에
이것은 자유 국가 건설에
한국전쟁 기념탑'
이 땅의 아들 딸들을 기리며
제2차 세계대전과
소규모 전쟁에 불과 했을까?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었으며
맞서야 했던 처절한 전쟁이었다
눈으로 한국전쟁을 바라보려고 한다
진짜 전쟁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일반에게 공개되기는 처음이다
그럼 냉전의 첫 번째
화약고 한반도로 가 보자
이미 전쟁의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촬영한 이 처형 장면은
북한의 대치상황을 잘 보여준다
북한에서 남파된 간첩들이다
한 나라였지만 이제는 적이다
시작한 남북간의 긴장관계는
"고요한 아침의 나라"로 알려졌지만
과거역사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북태평양쪽의 조그만 반도로
세 강대국이 버티고 있다는 것이다
잠시도 편할 틈이 없었다
통치에서 막 벗어난 상태였다
한반도의 일본군을 공략하기 위해
진격해 들어 가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미군과 소련군은
한반도 중간인 38선에서 만나게 되었다
한반도를 분할 점령하기로 한다
미국은 남쪽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새 정부를 각각 세웠다
남한과 북한에는 다른 정부가 들어섰다
이라는 공산 정권이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되었다
상대를 없애려고 했다
수차례 교전이 벌어졌다
정부가 양립 하기에는 비좁았다
시작 하느냐가 문제였다
차원이 다른 전면전이었다
별 다른 저항을 받지않고
38선을 넘어 쳐들어 왔다
저항 한번 못 한채
군대의 전력 증강을 막았다
남한을 위험에 빠트린 꼴이 되었다
화력에 맞서야 했다
50여 킬로미터 떨어진 서울이
피난을 떠나기 시작했다
국군이 한강다리를 폭파 시킨다
순간 다리를 건너고 있던
거의 대부분 목숨을 잃었고
막히는 신세가 되었다
소식은 순식간에 퍼졌고
간섭하지 않을것 이라고 판단했다
다음은 일본 차례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북한군을 격퇴하라고 명령한다
1950년 7월 19일'
'한국은 천마일넘는
거리의 작은 나라이다'
1950년 7월 19일'
그러나 그곳에 일어난 사건은
미국의 어느곳보다 중요하다
실질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