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00:00:24,666 --> 00:00:29,583 독 2 00:00:37,458 --> 00:00:39,166 자정쯤 집에 도착했다 3 00:00:40,125 --> 00:00:42,983 방갈로로 향하면서 헤드라이트를 껐다 4 00:00:43,083 --> 00:00:46,108 불빛이 창문으로 새어 들어가 해리 포프를 깨울까 봐 그랬는데 5 00:00:46,208 --> 00:00:48,000 괜한 짓이었다 방에 불이 켜져 있었다 6 00:00:48,666 --> 00:00:50,691 주차하고 현관으로 향했는데 7 00:00:50,791 --> 00:00:54,191 계단이 남은 줄 알고 헛디딜까 봐 세어 가며 올라갔다 8 00:00:54,291 --> 00:00:55,916 하나, 둘, 셋, 넷 9 00:01:00,833 --> 00:01:03,691 해리의 방으로 가 조용히 문을 열고 들여다봤다 10 00:01:03,791 --> 00:01:06,958 눈을 뜬 채 침대에 누워 미동도 없이 고개도 안 돌렸지만 11 00:01:07,083 --> 00:01:09,275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고 알아듣기 힘들었다 12 00:01:09,375 --> 00:01:10,233 도와줘 13 00:01:10,333 --> 00:01:11,233 '도와줘'? 14 00:01:14,125 --> 00:01:16,358 문을 열고 안으로 발을 들였다 15 00:01:16,458 --> 00:01:17,275 멈춰 16 00:01:17,375 --> 00:01:18,233 '멈춰'? 17 00:01:18,333 --> 00:01:21,625 쥐어짜는 듯한 소리라 뭐라는지 잘 안 들렸다 18 00:01:22,088 --> 00:01:23,625 - 도와줘 - '도와줘'? 19 00:01:24,041 --> 00:01:25,441 왜 그래, 해리? 20 00:01:25,541 --> 00:01:27,541 신발 벗어 21 00:01:28,416 --> 00:01:30,000 '신발 벗어'? 22 00:01:30,541 --> 00:01:33,316 배에 총 맞은 후의 조지 발링 목소리 같았다 23 00:01:33,416 --> 00:01:35,066 당시 그는 상자에 기대서서 24 00:01:35,166 --> 00:01:37,858 배를 부여잡고 일본군 조종사를 욕했는데 25 00:01:37,958 --> 00:01:40,941 지금의 해리처럼 쥐어짜며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였다 26 00:01:41,041 --> 00:01:43,275 물론 조지 발링은 그 후에 고꾸라져서 27 00:01:43,375 --> 00:01:44,275 죽었다 28 00:01:45,000 --> 00:01:46,000 신발 벗어 29 00:01:46,708 --> 00:01:47,791 '신발 벗어' 30 00:01:49,875 --> 00:01:52,458 영문은 모르겠지만 들어주기로 했다 31 00:01:59,375 --> 00:02:01,000 - 왜 그래, 해리? - 건드리지 마 32 00:02:03,416 --> 00:02:06,775 해리는 몸의 3/4쯤을 홑이불로 덮고 반듯이 누워서 33 00:02:06,875 --> 00:02:09,150 줄무늬 잠옷 차림에 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34 00:02:09,250 --> 00:02:11,400 더워서 나도 땀이 났지만 해리는 너무 심했다 35 00:02:11,500 --> 00:02:13,416 얼굴이 번들거리고 베개는 푹 젖어 있었다 36 00:02:14,000 --> 00:02:15,169 말라리아인 듯싶었다 37 00:02:15,309 --> 00:02:15,979 왜 그래, 해리? 38 00:02:16,079 --> 00:02:16,733 우산뱀 39 00:02:16,833 --> 00:02:17,624 - 뭐? - 우산뱀 40 00:02:17,724 --> 00:02:18,221 '우산'? 41 00:02:18,321 --> 00:02:19,221 뱀 말이야 42 00:02:20,333 --> 00:02:22,066 우산뱀한테 물렸어? 어디를? 언제? 43 00:02:22,166 --> 00:02:22,983 아니야 44 00:02:23,083 --> 00:02:23,983 뭐? 45 00:02:27,541 --> 00:02:28,750 아직 안 물렸어 46 00:02:30,791 --> 00:02:33,041 이해가 안 돼서 맹한 표정으로 해리를 보았다 47 00:02:34,916 --> 00:02:37,750 우산뱀이 내 배에서 자고 있어 48 00:02:40,333 --> 00:02:42,316 뒤로 펄쩍 물러났다 어쩔 수가 없었다 49 00:02:42,416 --> 00:02:45,066 이불이 덮인 배 부분을 뚫어져라 봤지만 50 00:02:45,166 --> 00:02:47,375 안에 뭐가 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51 00:02:48,416 --> 00:02:51,316 설마 지금 우산뱀이 자네 배 위에서 자고 있다고? 52 00:02:51,416 --> 00:02:52,316 그래 53 00:02:59,791 --> 00:03:00,833 어떻게 들어갔지? 54 00:03:01,416 --> 00:03:04,708 괜한 질문이었다 그냥 조용히 있으라고 할걸 55 00:03:06,125 --> 00:03:12,441 누워서 책을 읽는데 책 뒤쪽 가슴에 뭔가 느껴졌어 56 00:03:12,541 --> 00:03:13,458 간지러웠지 57 00:03:15,791 --> 00:03:21,250 그리고 작은 우산뱀이 잠옷 위로 올라오는 게 보였어 58 00:03:22,083 --> 00:03:24,458 작아 25cm쯤 되려나 59 00:03:25,750 --> 00:03:30,025 움직이면 안 되니 그대로 얼어붙어 지켜봤지 60 00:03:30,125 --> 00:03:33,650 이불 위로 움직일 줄 알았는데 61 00:03:33,750 --> 00:03:35,233 해리는 잠시 말을 멈추고 62 00:03:35,333 --> 00:03:39,041 속닥대는 소리에 자고 있는 놈이 깨진 않을까, 관찰했다 63 00:03:40,458 --> 00:03:41,958 속으로 들어가더라 64 00:03:43,458 --> 00:03:47,500 배 부분에서 움직이는 게 잠옷 위로 느껴졌어 65 00:03:48,625 --> 00:03:52,833 그러다 멈추더니 자는 거야 66 00:03:56,708 --> 00:03:57,875 그래서 기다렸어 67 00:03:58,744 --> 00:03:59,401 얼마나? 68 00:03:59,501 --> 00:04:00,401 몇 시간쯤 69 00:04:01,250 --> 00:04:04,066 몇 시간이고 몇 시간이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어 70 00:04:04,166 --> 00:04:06,958 더는 못 버티겠어 기침 나올 것 같아 71 00:04:10,375 --> 00:04:13,858 사실 우산뱀이라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72 00:04:13,958 --> 00:04:17,525 우산뱀은 민가 근처에서 따뜻한 곳을 찾곤 하니까 73 00:04:17,625 --> 00:04:20,691 진짜 놀라운 건 아직 안 물렸다는 사실이었다 74 00:04:20,791 --> 00:04:23,733 물릴 경우 당장 뱀을 잡고 해독제를 먹지 않으면 75 00:04:23,833 --> 00:04:26,125 죽을 수 있을 만큼 치명적인 녀석이었다 76 00:04:26,958 --> 00:04:29,041 작고 가는 우산뱀은 바로 이렇게 생겼다 77 00:04:31,333 --> 00:04:33,275 아주 작은 틈이라도 있으면 78 00:04:33,375 --> 00:04:37,083 어린아이의 침실 문 틈으로 아무도 모르게 들어갈 수 있다 79 00:04:38,666 --> 00:04:42,858 어떤 차 농장 관리인이 뒷다리 물린 양 얘기를 해줬었는데 80 00:04:42,958 --> 00:04:47,250 사체의 몸을 갈라보니 피가 새까만 타르 같았단다 81 00:04:51,416 --> 00:04:54,691 '그래, 해리' 내가 말했다 나도 속삭였다 82 00:04:54,791 --> 00:04:57,108 '움직이지 말고 필요 없는 말도 하지 마' 83 00:04:57,208 --> 00:04:59,833 '놀라게만 안 하면 안 물 거야 해결해 볼게' 84 00:05:02,500 --> 00:05:06,250 나는 양말 바람으로 주방에 가서 작고 잘 드는 칼을 꺼냈다 85 00:05:06,791 --> 00:05:10,983 혹시 우산뱀이 놀라 해리를 물면 곧장 쓸 수 있게 주머니에 넣었다 86 00:05:11,083 --> 00:05:13,083 물린 곳을 째고 독을 빨아낼 작정이었다 87 00:05:14,458 --> 00:05:16,233 '해리' 내가 말했다 88 00:05:16,333 --> 00:05:20,250 '우선은 내가 이불을 살짝 걷고 안을 보는 게 최선일 것 같아' 89 00:05:20,875 --> 00:05:22,875 멍청한 놈 90 00:05:24,333 --> 00:05:28,191 목소리에는 감정이 없었다 너무 느리고 조용했으니까 91 00:05:28,291 --> 00:05:31,625 대신 눈동자와 입꼬리에서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92 00:05:32,250 --> 00:05:36,083 빛 때문에 놀라서 날 죽일 거라고 93 00:05:38,083 --> 00:05:38,983 좋은 지적이네 94 00:05:39,708 --> 00:05:41,941 이불을 확 들추고 휙 치워버릴까? 95 00:05:42,041 --> 00:05:44,083 의사 불러 96 00:05:45,875 --> 00:05:48,816 왜 너는 그런 생각을 못 하냐는 표정이었다 97 00:05:48,916 --> 00:05:51,608 의사, 맞네, 그거야 간더바이 선생을 부를게 98 00:05:51,708 --> 00:05:54,150 까치발을 들고 나가 간더바이의 번호를 찾은 다음 99 00:05:54,250 --> 00:05:56,208 수화기를 들고 교환원을 재촉했다 100 00:06:01,583 --> 00:06:03,025 선생님 우즈 감독관입니다 101 00:06:03,125 --> 00:06:04,941 안녕하십니까 아직 안 주무셨네요 102 00:06:05,041 --> 00:06:07,150 지금 당장 우산뱀 해독제 갖고 와주세요 103 00:06:07,250 --> 00:06:08,858 우산뱀 해독제를? 누가 물린 겁니까? 104 00:06:08,958 --> 00:06:11,483 날카로운 외침에 귓속에서 폭탄이 터진 듯했다 105 00:06:11,583 --> 00:06:12,691 아직 안 물렸고 106 00:06:12,791 --> 00:06:15,650 지금 해리 이불 속 배 위에 한 마리가 자고 있어요 107 00:06:15,750 --> 00:06:17,791 3초 정도 침묵이 흘렀다 108 00:06:19,791 --> 00:06:23,483 이번에는 천천히 부드럽게 정확하게 간더바이가 말했다 109 00:06:23,583 --> 00:06:26,441 움직이거나 말하면 안 돼요 알겠습니까? 110 00:06:26,541 --> 00:06:27,178 그럼요 111 00:06:27,278 --> 00:06:28,441 지금 가지요 112 00:06:28,541 --> 00:06:30,083 전화를 끊고 다시 침실로 갔다 113 00:06:33,000 --> 00:06:34,691 당장 옆으로 오라는 눈빛이었다 114 00:06:34,791 --> 00:06:36,666 간더바이 선생이 온대 가만히 있으래 115 00:06:37,250 --> 00:06:39,025 지금까진 뭘 했을 것 같대? 116 00:06:39,125 --> 00:06:40,608 말도 하지 말래 우리 둘 다 117 00:06:40,708 --> 00:06:41,833 그럼 닥쳐 118 00:06:42,833 --> 00:06:46,066 그 말을 하는데 입 한쪽 옆의 웃을 때 쓰는 근육이 119 00:06:46,166 --> 00:06:50,250 바르르 떨리며 아래로 내려갔고 말을 끝낸 후에도 꽤 지속됐다 120 00:06:50,833 --> 00:06:53,041 마음에 안 들었다 말투도 마음에 안 들었고 121 00:06:54,583 --> 00:06:56,666 의사의 차가 급히 들어왔다 122 00:06:58,666 --> 00:06:59,833 마중 나갔다 123 00:07:03,083 --> 00:07:04,108 어디 있습니까? 124 00:07:04,208 --> 00:07:07,608 의사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날 지나 복도로 들어가 125 00:07:07,708 --> 00:07:09,191 의자에 가방을 놓았다 126 00:07:09,291 --> 00:07:11,275 바닥이 푹신한 침실용 슬리퍼를 신은 채 127 00:07:11,375 --> 00:07:14,275 고양이처럼 부드럽게 조용히 방을 가로질렀다 128 00:07:14,375 --> 00:07:16,358 해리는 곁눈으로 선생을 보았고 129 00:07:16,458 --> 00:07:19,108 선생은 침대 옆으로 가 미소 지으며 해리를 내려다봤다 130 00:07:19,208 --> 00:07:21,316 안심시키는 얼굴로 끄덕이는데 이런 말을 하는 듯했다 131 00:07:21,416 --> 00:07:24,566 간단한 일이니 걱정 마시고 이 간더바이한테 맡기세요 132 00:07:24,666 --> 00:07:26,875 그러곤 주방으로 갔고 나도 따라갔다 133 00:07:28,625 --> 00:07:29,608 가방을 열었다 134 00:07:29,708 --> 00:07:33,650 일단 해독제를 주사해야 하는데 움직이지 않게 조심해야 해요 135 00:07:33,750 --> 00:07:35,983 한 손엔 주사기를 한 손엔 작은 병을 들고는 136 00:07:36,083 --> 00:07:38,816 병에 바늘을 꽂고 연노란색 액체를 뽑아서 137 00:07:38,916 --> 00:07:39,773 내게 건넸다 138 00:07:39,873 --> 00:07:41,358 갖고 있다가 말하면 주세요 139 00:07:41,458 --> 00:07:42,666 선생은 방으로 돌아갔다 140 00:07:47,791 --> 00:07:49,900 크게 뜬 해리의 눈동자가 빛났다 141 00:07:50,000 --> 00:07:52,400 선생은 조심스럽게 해리의 잠옷 소매를 걷어 142 00:07:52,500 --> 00:07:54,316 팔을 움직이지 않고 팔꿈치까지 올렸다 143 00:07:54,416 --> 00:07:56,691 침대에서 살짝 떨어진 채 속삭이기를... 144 00:07:56,791 --> 00:07:59,900 주사를 놓을 겁니다 좀 따끔하겠지만 움직이지 말고 145 00:08:00,000 --> 00:08:02,650 배에 힘도 주지 마시고 몸에 힘 빼고 계세요 146 00:08:02,750 --> 00:08:05,625 주사기를 본 해리의 웃음 근육이 또 씰룩거렸다 147 00:08:07,208 --> 00:08:10,775 선생은 고무관으로 해리의 위쪽 팔뚝을 묶고 148 00:08:10,875 --> 00:08:13,441 아래쪽 팔뚝의 한 부분을 알코올 솜으로 닦았다 149 00:08:13,541 --> 00:08:15,066 그리고 주사기를 들어 150 00:08:15,166 --> 00:08:17,775 실눈으로 눈금을 보면서 노란 액체를 조금 뿜어냈다 151 00:08:17,875 --> 00:08:19,733 땀 범벅인 해리의 얼굴은 152 00:08:19,833 --> 00:08:23,316 크림을 듬뿍 바른 듯 번들거렸고 땀이 베개로 흘러내렸다 153 00:08:23,416 --> 00:08:26,941 지혈대 아래쪽 팔뚝에 부풀어 오른 파란 정맥이 보였다 154 00:08:27,041 --> 00:08:30,316 간더바이는 주삿바늘을 팔뚝에 납작하게 대더니 155 00:08:30,416 --> 00:08:32,733 피부를 포 뜨듯 찔러 정맥에 집어넣었다 156 00:08:32,833 --> 00:08:35,650 흔들림 없이 천천히 치즈에 찌르듯 부드럽게 157 00:08:35,750 --> 00:08:38,691 해리는 천장을 보며 눈을 깜빡일 뿐 움직이진 않았다 158 00:08:38,791 --> 00:08:41,066 간더바이는 몸을 숙여 해리의 귀에 입을 갖다 댔다 159 00:08:41,166 --> 00:08:45,291 이젠 혹시 물려도 괜찮겠지만 움직이지 마세요, 곧 오죠 160 00:08:46,000 --> 00:08:47,237 '이제 안전한가요?' 내가 물었다 161 00:08:47,337 --> 00:08:49,025 아뇨 반반입니다 162 00:08:49,125 --> 00:08:51,900 선생은 이마를 닦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163 00:08:52,000 --> 00:08:54,941 방도가 있을 거다 164 00:08:55,041 --> 00:08:57,625 조용히 되뇌며 머리를 짜냈다 165 00:08:59,708 --> 00:09:03,166 마취제를 사용하는 게 좋겠습니다 166 00:09:03,875 --> 00:09:06,500 그 짐승이 있는 곳에요 167 00:09:08,375 --> 00:09:09,816 훌륭한 제안이었다 168 00:09:09,916 --> 00:09:10,858 좀 위험할 겁니다 169 00:09:10,958 --> 00:09:14,608 뱀 같은 냉혈 동물은 마취 속도가 느리거든요 170 00:09:14,708 --> 00:09:16,566 근데 다른 방법이 없어요 171 00:09:16,666 --> 00:09:17,749 에테르, 클로로폼? 172 00:09:17,849 --> 00:09:18,608 난 끄덕였다 173 00:09:18,708 --> 00:09:19,998 어떤 걸로 하지? 174 00:09:20,098 --> 00:09:21,214 내게 묻는 건가? 모르겠다 175 00:09:21,315 --> 00:09:22,215 클로로폼! 176 00:09:22,583 --> 00:09:24,375 선생은 내 팔을 잡아끌고 현관으로 갔다 177 00:09:25,958 --> 00:09:28,775 내 집으로 가세요 아이가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178 00:09:28,875 --> 00:09:30,775 이건 독성 약품 선반 열쇠예요 179 00:09:30,875 --> 00:09:34,233 클로로폼 병엔 오렌지색 라벨에 이름이 적혀 있을 겁니다 180 00:09:34,333 --> 00:09:36,791 난 혹시 모르니 여기 있죠 빨리 가요! 181 00:09:37,263 --> 00:09:37,966 신발을... 182 00:09:38,066 --> 00:09:39,041 안 신어도 돼요 183 00:09:41,750 --> 00:09:44,666 나는 빠르게 차를 몰아 15분 만에 약을 가져왔다 184 00:09:47,750 --> 00:09:51,400 계획을 말해주긴 했는데 당연한 일이지만 잔뜩 겁먹어서 185 00:09:51,500 --> 00:09:53,583 언제까지 버틸지 모르겠습니다 186 00:09:57,291 --> 00:10:00,150 해리는 아까 그 자세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187 00:10:00,250 --> 00:10:03,525 땀 범벅이 된 새하얀 얼굴로 눈을 굴려 날 보았다 188 00:10:03,625 --> 00:10:05,316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189 00:10:05,416 --> 00:10:08,150 선생은 지혈대로 썼던 고무관을 집어 들고 190 00:10:08,250 --> 00:10:10,441 한쪽 끝에 종이 깔때기를 끼웠다 191 00:10:10,541 --> 00:10:14,150 그리고 이불 한쪽을 살짝 들어 고무관을 넣고는 192 00:10:14,250 --> 00:10:16,833 해리의 몸쪽으로 밀어 넣었다 193 00:10:17,625 --> 00:10:20,025 몇 cm 집어넣는 데에 얼마나 걸렸는지 모르겠다 194 00:10:20,125 --> 00:10:21,858 20분 혹은 40분 195 00:10:21,958 --> 00:10:25,375 고무관은 안 움직이는 듯했지만 보이는 부분이 점점 줄긴 했다 196 00:10:25,875 --> 00:10:27,816 선생도 땀을 흘리기 시작했고 197 00:10:27,916 --> 00:10:30,358 이마와 인중에 땀방울이 맺혔지만 198 00:10:30,458 --> 00:10:31,775 손은 전혀 떨림이 없었고 199 00:10:31,875 --> 00:10:34,775 눈은 해리의 배를 덮은 이불에 고정돼 있었다 200 00:10:34,875 --> 00:10:36,858 그대로 클로로폼을 달라고 내게 손을 내밀었다 201 00:10:36,958 --> 00:10:38,608 나는 뚜껑을 비틀어 연 다음 202 00:10:38,708 --> 00:10:42,000 선생이 병을 제대로 쥐는 걸 확인한 후에야 병을 놓았다 203 00:10:43,166 --> 00:10:47,441 포프 씨, 매트리스가 젖으면 몸이 차가워질 겁니다 204 00:10:47,541 --> 00:10:48,858 마음 단단히 먹고 가만히... 205 00:10:48,958 --> 00:10:50,166 빨리해요! 206 00:10:50,791 --> 00:10:52,483 해리가 처음으로 언성을 높였다 207 00:10:52,583 --> 00:10:55,691 선생은 해리를 잠시 노려보고 하던 일을 계속했다 208 00:10:55,791 --> 00:10:59,025 깔때기에 액체를 조금 붓고 관을 따라 내려가길 기다렸다 209 00:10:59,125 --> 00:11:00,416 좀 더 붓고 또 기다렸다 210 00:11:09,041 --> 00:11:12,150 역겹고 강렬한 클로로폼 냄새가 온 방에 퍼지면서 211 00:11:12,250 --> 00:11:13,983 희미하고 불쾌한 기억이 떠올랐다 212 00:11:14,083 --> 00:11:17,191 하얀 수술대가 있는 하얀 방 간호사들과 의사들 213 00:11:17,291 --> 00:11:18,858 선생은 계속 액체를 따랐고 214 00:11:18,958 --> 00:11:22,541 그 끔찍한 액체의 짙은 증기가 종이 깔때기에서 피어올랐다 215 00:11:23,583 --> 00:11:26,650 선생은 잠시 멈췄다 더 따르더니 내게 병을 건네고는 216 00:11:26,750 --> 00:11:29,066 고무관을 천천히 빼내고 일어났다 217 00:11:29,166 --> 00:11:31,733 작업의 긴장도가 얼마나 대단했던지 218 00:11:31,833 --> 00:11:34,066 날 돌아보며 말하는데 목소리가 이러했다 219 00:11:34,166 --> 00:11:36,275 혹시 모르니 15분 기다립시다 220 00:11:36,375 --> 00:11:37,775 난 해리에게 전달하려 했다 221 00:11:37,875 --> 00:11:38,775 혹시 모르니 15분... 222 00:11:38,875 --> 00:11:39,775 들었어! 223 00:11:39,875 --> 00:11:43,150 이번에는 선생도 깜짝 놀랐고 작은 얼굴에 분노가 차올랐다 224 00:11:43,250 --> 00:11:46,608 그가 매섭게 노려보자 해리의 웃음 근육이 또 씰룩댔다 225 00:11:46,708 --> 00:11:48,441 침대 옆에서 기다리는 15분 내내 226 00:11:48,541 --> 00:11:51,400 선생은 호기심 가득하고 사람을 휘어잡는 강렬한 눈빛으로 227 00:11:51,500 --> 00:11:53,025 해리를 응시했으며 228 00:11:53,125 --> 00:11:54,733 해리를 꼼짝 못 하게 하고 229 00:11:54,833 --> 00:11:57,358 조용히 있게 하는 데에 온 힘을 집중했다 230 00:11:57,458 --> 00:12:00,066 눈을 절대 떼지 않았으며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지만 231 00:12:00,166 --> 00:12:02,608 이렇게 외치는 듯 보였다 232 00:12:02,708 --> 00:12:04,483 움직이지도 말하지도 마 233 00:12:04,583 --> 00:12:06,875 일을 그르치면 절대 안 돼 알아들었나? 234 00:12:07,916 --> 00:12:10,066 침묵 속에 입술을 씰룩이는 해리 235 00:12:10,166 --> 00:12:12,233 땀을 흘리며 눈을 감았다가, 떴다가 236 00:12:12,333 --> 00:12:14,358 날 봤다가, 이불을 봤다가 천장을 봤지만 237 00:12:14,458 --> 00:12:16,025 선생 쪽은 보지 않았다 238 00:12:16,125 --> 00:12:18,250 그래도 간더바이 선생은 일에 집중했다 239 00:12:19,875 --> 00:12:21,900 옆에서 누가 거대한 풍선을 부는데 240 00:12:22,000 --> 00:12:24,608 곧 터질 것 같지만 외면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 241 00:12:24,708 --> 00:12:27,666 마침내 선생이 끄덕였다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였다 242 00:12:28,333 --> 00:12:29,525 침대 반대쪽으로 가세요 243 00:12:29,625 --> 00:12:32,275 시트 양쪽을 잡고 함께 벗겨낼 겁니다 244 00:12:32,375 --> 00:12:34,500 아주 천천히 하세요 포프 씨는 가만히 계시고요 245 00:12:45,750 --> 00:12:48,025 해리의 가슴 부분이 완전히 드러났다 246 00:12:48,125 --> 00:12:51,566 잠옷 바지 끈이 나비 모양으로 얌전히 묶여 있는 게 보였다 247 00:12:51,666 --> 00:12:54,358 조금 더 아래쪽에는 자개단추가 달려 있었는데 248 00:12:54,458 --> 00:12:56,275 잠옷 바지 앞섶에 단추라니 249 00:12:56,375 --> 00:12:58,500 난 자개는커녕 단추 달린 건 입어본 적도 없다 250 00:12:59,083 --> 00:13:01,458 이런 순간에 그런 시답잖은 생각이라니 251 00:13:02,000 --> 00:13:03,625 배 위엔 아무것도 없었다 252 00:13:06,541 --> 00:13:07,691 가만히 계세요 포프 씨 253 00:13:07,791 --> 00:13:10,733 선생은 해리의 몸통과 다리 아래를 유심히 살폈다 254 00:13:10,833 --> 00:13:13,608 조심하세요 바지 속으로 들어갔을지 몰라요 255 00:13:13,708 --> 00:13:14,608 해리가 일어났다 256 00:13:16,750 --> 00:13:18,125 처음으로 움직였다 257 00:13:19,583 --> 00:13:22,400 벌떡 일어나 서더니 양쪽 다리를 격하게 흔들었다 258 00:13:22,500 --> 00:13:25,733 우린 물린 줄 알았고 선생은 메스와 지혈대를 찾았다 259 00:13:25,833 --> 00:13:29,441 그런데 해리가 멈춰 서더니 침대를 내려다보며 소리쳤다 260 00:13:29,541 --> 00:13:30,400 없어! 261 00:13:30,500 --> 00:13:32,458 선생이 고개를 들고 해리를 쳐다봤다 262 00:13:33,166 --> 00:13:34,275 해리는 무사했다 263 00:13:34,375 --> 00:13:37,400 물리지도 않았고 물려 죽을 일도 없었다 264 00:13:37,500 --> 00:13:38,625 이제 모두 해결됐다 265 00:13:39,208 --> 00:13:40,108 그런 듯했다 266 00:13:41,125 --> 00:13:42,833 꿈을 꾸셨나 봅니다 포프 씨 267 00:13:51,916 --> 00:13:55,608 비아냥거릴 의도가 없었다는 걸 난 알고 있었다 268 00:13:55,708 --> 00:13:57,775 극도의 긴장감이 풀려 헛웃음이 나온 것이다 269 00:13:57,875 --> 00:14:00,566 해리 생각은 달랐다 줄무늬 잠옷 바람으로 서서 270 00:14:00,666 --> 00:14:03,441 선생을 노려보는 그의 뺨이 점점 시뻘게졌다 271 00:14:03,541 --> 00:14:05,791 내가 거짓말쟁이라는 건가? 272 00:14:08,583 --> 00:14:10,983 선생은 꼼짝 않고 해리를 바라보았다 273 00:14:11,083 --> 00:14:14,291 해리가 눈을 번뜩이며 침대 위에서 한 발 다가섰다 274 00:14:15,458 --> 00:14:17,816 더러운 벵골 시궁쥐 같은 게 275 00:14:17,916 --> 00:14:18,941 '닥쳐, 해리' 내가 말했다 276 00:14:19,041 --> 00:14:20,464 이 더럽고 시커멓고 하찮은... 277 00:14:20,564 --> 00:14:21,275 닥치라니까! 278 00:14:21,375 --> 00:14:22,816 - 천민 주제에 - 닥쳐! 279 00:14:22,916 --> 00:14:23,816 그만! 280 00:14:27,208 --> 00:14:29,941 선생은 방에서 나갔고 나도 따라나섰다 281 00:14:30,041 --> 00:14:32,150 내가 말했다, '정신이 나가서 아무 말이나 한 거예요' 282 00:14:32,250 --> 00:14:35,525 우린 암흑 속에 진입로를 지나 선생의 낡은 모리스 자동차로 갔다 283 00:14:35,625 --> 00:14:36,441 {\an8}대영제국 황마 농장 284 00:14:36,541 --> 00:14:37,358 선생이 차에 탔다 285 00:14:37,458 --> 00:14:40,150 '정말 훌륭하셨어요' 내가 말했다 '그 친구를 살리셨습니다' 286 00:14:40,250 --> 00:14:41,173 그건 아니죠 287 00:14:41,273 --> 00:14:42,316 그래도 어쩌면... 288 00:14:42,416 --> 00:14:45,733 어쨌든 은인이세요 해리 생명의 은인이라고요 289 00:14:45,833 --> 00:14:47,125 아닙니다 290 00:14:49,708 --> 00:14:50,625 미안합니다 291 00:14:52,083 --> 00:14:52,983 그럴 리가요 292 00:15:00,416 --> 00:15:02,916 간더바이 선생은 시동을 걸고 가버렸다 293 00:15:16,000 --> 00:15:19,275 달은 1950년 1월에 '독'을 쓰기 시작했다 294 00:15:19,375 --> 00:15:21,066 '우즈'라는 이름은 295 00:15:21,166 --> 00:15:22,983 애선스 전투에서 전사한 296 00:15:23,083 --> 00:15:26,583 제80 비행대대 동료 파일럿의 이름에서 따왔다 297 00:16:28,625 --> 00:16:33,625 자막: 여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