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ilet.2010.DVDRip.x264.AC3-BAUM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 없으리로다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의로운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오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마지막 소원을
여쭤봤더니

 

'센세이' 냄새를 맡고
싶다고 하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레이...

 

난 너만 믿는다

 

어머니가
내게 남긴 건

 

공황장애로 4년째
집에만 틀어박힌 형

 

자기밖에 모르는 콧대 높은 여동생

 

그리 크지 않은 집

 

'센세이'라는 고양이

 

그리고...

 

그리고...

 

토일렛

 

인생은 지루한 일상을
견디는 것의 연속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아무 기대도 하지 않는다

 

누굴 괴롭히지도

 

누가 날 괴롭히지도 않는다

 

내일은 오늘과 같을 거고

 

오늘도 어제와
별 다를 바가 없다

 

레이

 

어머니 소식 들었어

 

그래

 

레이

 

레이

 

전화 왔어

 

여보세요?

오빠, 나야
지금 집에 올 수 있어?

 

지금 당장?

큰오빠가 또 난리야
당장 좀 와줘

 

어쩌라고?

나도 몰라
알아서 해

나 좀 내버려둬!

나도 간섭 안 할 테니까

 

됐어, 그만!
거기 가만있어

 

-안녕
-당장 병원에 입원시켜

안 그럼 내가
미쳐버릴 거야

 

모리

 

왜 그러는데?

 

리사가 센세이를
기숙사로 데려간대

 

-그래서?
-그래서라니?

어떻게 그렇게 말해?
넌 상관없다는 거지

 

아냐
그런 거 아니야

리사가 데리고 가서
돌본다는데 어때서?

 

내 말이 그 말인데
당최 못 알아듣잖아!

그럼 이집은?
엄마가 남긴 거잖아

 

팔아야지
안 그럼 어쩔 거야?

엄마의 추억이 서린 곳인데

나도 마음 아파

하지만 누군가는
정신차려야지

 

안 그래?

 

우린 모두 마음속에
엄마를 간직할 거야

 

일주일도 안 지났어

 

어떻게...?

어쨌든 이 집은 팔 거야

-오빤 병원에 들어가고
-싫어

고양이는 내가 키울게

할머니는 여기 계시고
알겠지?

 

이건 아니야
이건 아니라고

그래, 엄마가 남긴 게
하나 더 있다

 

돌아가시기 전 일본에서
온 엄마의 엄마

 

-난 혼자 못 해
-이제 해야 해

그러니까 우리한테는 뭐

 

할머니쯤 되는 거겠지

나 혼자서 오빠랑 할머니 감당 못 해

 

누가 너더러
나 돌봐 달래?

할머니는 뭐래?

어떻게 알아?
영어도 못 하는데

 

-그러네
-엄마하고만 얘기했어

 

지금도 엄마 방에만
틀어박혀 계셔

 

먹지도 않고 대꾸도 없고
나오지도 않아

-너 때문이야
-뭐?

모리

어쩌라고 도대체

 

오빠가 당분간
같이 살면 어때?

-뭐?
-그러면 되겠다

우리랑 같이 지내

 

싫어?

 

엄마가 말씀하셨어

 

안 그래 보여도
레이는 참 따뜻한 아이라고

 

부탁할게

 

'당분간' 이라면...

 

며칠 정도를
말하는 거야?

 

됐어
잊어버려

부탁한 내가 바보지

 

냉정한 인간 같으니

 

늘 그랬지

 

어쨌거나

 

속으론 나도
죽었으면 좋겠지?

 

대원들!

전원 출동!

 

어서 나가!
불 났어!

 

할머니?

 

전 레이예요

전에 보신 적 있을 텐데

 

한 며칠 지낼까 했는데
지금 가려고요

 

할머니야?

 

아침마다 있는 행사야
좀 오래 걸릴 거야

 

레이

 

너 지낼 방 정리해둘게

 

네 아파트 계약은
바로 해지할 수 있어?

 

왜 저래?

 

뭐가?

 

한숨을 땅이 꺼져라
내쉬잖아

 

나도 궁금해

 

항상 저러셔?

 

뭐가 말이야?

 

아냐

 

레이

 

이따 저녁에
스시 파티 할까?

 

집에 들어온 기념으로

 

너무 앞서가는 거 아냐?
들어온단 말 안했는데

 

그냥 스시 한번 먹자고
할머니도 드실지 몰라

 

그래 그럼

좋아 그럼 집에 올 때
4인분 사와

 

난 연어알이 좋아

 

알았어

 

사랑을 속삭였어요
마치 나비처럼

 

우린 날 수 있거든요

 

함께하면 우리는
별이 되지요

 

너무나 밝아요

 

인상적이었어
캐서린

여성 고유의
아름다움이 살아 있군

듣고 있으니 뭔가
심오한 욕구가 느껴져

수고했다
좋은 작품이었어

감사합니다

 

-역겨워
-왜 안 죽지?

좋아, 다음은 제인

 

네 차례야

 

시뻘겋게 구린 날개
나는 한 마리 나비

 

가슴에선 욕망이 쿵쾅대고

 

쓰디쓴 꿀 한잔을
들이켜지

내 주둥이는
키스 받아본 적 없네

 

레이

 

레이!

 

-레이!
-뭐?

 

전화 오잖아

 

-여보세요?
-레이

방 청소하다가
뭘 찾았게?

 

엄마가 쓰던
재봉틀 기었나?

 

내가 가져도 될까?
기념으로 말이야

 

너도 원하는 게 있겠지만
이건 내가 갖고 싶어서

 

괜찮을까?

 

절대로, 확실히
전혀 상관 안 해

 

고마워

 

-무슨 일 있어?
-없어

 

또 뭐?

왜 화난 목소리야?

 

너였구나
그래, 왜?

 

-스시 잊지 말라고
-걱정 마

 

도니 스시는 별로니까
스시 이찌방에서 사와

 

-알겠지?
-알았어

 

연어알도 잊지 마

 

요즘 인기 많은가 봐

 

새 친구라도 생겼나봐

 

찾는 전화가 많은걸 보니

 

-친구 아냐, 애그니
-그래?

 

그럼 뭘까?

 

여친?

 

아니라니까

 

다정하게 통화하던데

 

-여동생이야
-거짓말쟁이

거짓말 아냐

 

그럼 소개시켜 줘

 

못생겼어

 

스시 이찌방

 

털털한 털거미
프라모델 샵

 

오빠도 스시가 당겼나봐

 

아니, 난 별로야

 

얼마나 맛있는데

 

연어알 혼자 다 먹지마

 

할머니?

 

스시 안 좋아하시나 봐

일본 사람인데 그럴 리가

 

스시 안 드세요?

 

할머니?

 

거금 130달러나 썼는데

 

아마도...

 

여기건 진짜 스시로
안 치시나 봐

 

엄마는 좋아했는데

 

진짜 우리 할머니 맞을까?

 

무슨 소리야?

 

진짜 할머니가
아닐 수도 있잖아

 

우리 할머니 맞아
엄마가 불러서 오셨잖아

 

그렇긴 한데 엄마하고
어릴 때 헤어졌다며

 

아니야
진짜 할머니 맞아

 

엄마가 찾느라
얼마나 애썼는데

 

그랬지

 

엄마 돌아가실 때도
옆에 꼭 붙어계셨어

 

엄마 떠난 후로
이상해지셨지

 

오빤 그때 없어서 몰라

 

엄마가 확인해봤을까?

 

뭘 말이야?

 

유전자 검사 같은 거

 

이건 심각한 문제야

 

피 한 방울 안 섞였다면

 

생판 모르는 남이랑
사는 거잖아

 

모르는 노인네
업고 살 판이라고

 

못됐어!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인간

 

주방에서 양치하지마

욕실은 할머니가 차지해서

 

만날 옷이 똑같네

 

그래서 거슬려?

 

아니, 상관없어

 

오해할까 봐 말해둘게

 

만날 같은 옷이 아니고
같은 옷이 7벌이야

그러니까 냄새 안 나

 

-봤어?
-뭘?

 

화장실에서 나올 때마다
한숨을 푹푹 쉬잖아

 

그래서 뭐?

 

이제 누구 차례지?

 

둥근 구멍, 검은 공허
하나의 점

 

팽창, 수축, 끌어당김

 

동공, 블랙홀, 무(無)

 

아름다운 공허, 폭우

 

범람, 부패, 계량

 

수단, 상실

 

눈, 블랙홀, 텅 빈

 

허비 속의 공허
삶의 진실

 

쓰레기, 똥, 은유

창살을 지나
소멸된 공간으로

 

물질의 전환
보이지 않는 광경

 

안으로 빨려 들어간 사물

 

눈을 떠라
세상은 미완성이다

 

나쁘진 않네

 

근데 뭔가 빠졌어

 

분노와 절망은 들리는데

 

운율은 있지만
깊은 의미가 없어

 

젊음의 열정은
대체 어딨지?

 

좋아

 

다음 누구지?

 

유전자 감정료
3천 달러

 

로봇 프라모델
3천 달러

 

할머니

 

여기서 좀 기다리실래요?

 

잠시만

 

금방 올게요

 

엄마가 쓰던 재봉틀인데

 

어떻게 쓰는 건지
몰라서요

 

바퀴가 안 돌고...

 

그리고...

 

발판이...

 

어떻게 고치는지 모르겠어요

 

혹시...

 

고칠 수 있으세요?

 

됐어요

 

할머니

 

할머니

 

잠이 안 오세요?

 

할머니

 

문 좀 열어보세요

 

할머니

 

할머니, 급해요

아침마다
오래 걸린다고 했잖아

 

시간을 잘 맞춰야지

일도 없는 네가 뭘 알아?

 

미안
그런 뜻은 아니었는데

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일 없는 백수야

 

아냐
내가 언제 그랬어?

난 실패자야
세상 살 가치가 없어

 

레이

 

뭐가 나?

 

그래, 그거

 

방금 봤지?
또 한숨을 쉬셨어

모리

 

-모리
-난 쓸모 없는 인간이야

모리!

 

뭐가 나?

 

내 생각도 그래

 

할머니

 

부탁 하나 해도 돼요?

 

할머니

 

전 혼자 외출을 못 해요
4년 전부터 그랬어요

 

근데 엄마 재봉틀을 보니
뭔가 만들고 싶어서

 

나가서 천을 좀
사올까 하는데

 

4년 동안 한 번도
나가본 적이 없어서

무척 겁이 나요

 

하지만 이제
달라지고 싶어요

 

그래야 하구요

 

그래서...

혹시 괜찮으면...

 

돈 좀
빌려주실 수 있으세요?

 

할머니...

 

많이 늦었네

일이 좀 있어서

 

혼자만 좋은 거 하지마

 

무슨 소리야?

 

소개시켜줘

 

뭘?

여자

 

여자 말이야!

 

너랑 말하기 싫어

 

그러던지
그래 봤자 너도 괴짜야

 

뭐 찾아?

 

아니, 그냥...

시 수업에서 봤지?

 

음, 그게 그러니까...

 

시가 참 좋았다고

알아

 

교수가 내 재능을
시기하는 거지

 

상관없어

 

그래, 나도
전적으로 동의해

교수 하는 말이
참 어이가 없더라

 

그 교수 좀 가짜 같아

진짜 시가 진짜 열정이
뭔지도 모르는

 

그러는 너는?

 

뭐가?

 

자신은 가짜가
아니라고 확신해?

 

저기요
좀 앉아도 돼요?

 

-앉으세요
-고마워요

 

모리?

 

모리 코트니?
맞지?

 

나 기억 안 나?
에밀리야

같은 고등학교 다녔잖아

 

진짜 오랜만이다

 

요즘도 연주하니?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 심사위원들 모두
기립박수 쳤잖아

 

참, 헨리 기억나?
둘이 라이벌이었잖아

걔 요새 누구
사귀는지 알아?

 

짐이야!

 

커밍아웃했어
믿어져?

 

넌 요즘 누구 만나니?

 

좀 세워주실래요?

넌 정말 그대로다

커피 한잔할래?

차 세워요!

 

-네
-레이?

 

도와줘

 

나 지금 공황 상태야

 

듣고 있어? 교회 앞인데
데리러 와줄 수 있어?

혼자서 할 순 없어?

못 해
어떡할지 모르겠어

 

알았어, 갈게

 

애그니

 

진짜 끝내주는 여자
소개해줄게

 

-정말?
-완전 확실해

 

그래서 말인데
차 좀 빌려줄래?

 

모리!

 

이럴 거면

 

왜 나왔어?

 

할 수 있을 줄 알았어

 

오늘은 좀 괜찮았거든

 

정말 미안해

 

레이!

 

할머니가 없어
혼자 나가셨나 봐

이런 적 없었는데

 

같이 버스 기다려도 좋아요

 

할머니?

 

레이?

 

다 다녀봤는데 못 찾았어

어디 갔다 온 거야?

 

전화 몇 번이나 했는데

뭐?

 

고양이 밥 사러 갔다
길 잃으셨나 봐

종일 버스 기다리는
이상한 아줌마랑 계셨어

 

그리고 차이나타운에
쇼핑 다녀왔지

 

만두 빚고 있어
맛있겠지?

 

다 꺼져버려!

 

엄마 죽고 나서부터

나한테 전부 다 골칫덩어리야!

 

내 인생에서 좀 사라져줘

 

레이?

 

만두 다 됐어

 

오늘 미안했어

 

남겨둘 테니 나중에 먹어

 

닥쳐!

 

담배 피우세요?

 

미개인들이나 피우는 건데

 

이 만두...

 

정말 맛있어요

 

진짜 맛이 좋네요

 

엄마가

 

이렇게 만들어줬는데

 

만두가... 완전...

 

짱!

 

알아들으세요?

 

만두가...

 

짱이에요!

 

수리비가 3천 달러래

 

알았어

 

-여자 잊지 마
-뭐?

 

소개해 준다며

 

-아, 그래, 맞다
-약속 지켜

 

여자하고 3천 달러면 고맙겠어

 

-애그니!
-안 돼

 

수리비는 협상 못 해

그게 아니고 우리 할머니...

 

-우리 할머니가...
-할매는 싫어

 

난 영계를 원해 예쁜 여자!

내 말 좀 들어봐

 

우리 할머니가 일본인이거든

 

-그래?
-그래

 

근데 화장실에서 나올 때
꼭 한숨을 푹푹 쉬셔

 

그래서?

 

그게 너무 신경 쓰여

 

어디 불편하신가?

 

그런 건 아닌 것 같아

 

-알겠다
-뭘?

 

일본에는 두 종류의
변기가 있는 거 알아?

그래?

 

이래서 미국사람들은 안 돼

미국이 어떻게
세상의 중심이야?

뭔 소리야?

다른 문화도 모르면서

 

우리 인도인들은
볼일 보고 나서

 

왼손으로 뒤처리를 하지
오른손은 절대 안 써

 

왜냐하면 오른손은
신성하기 때문이지

 

오른손으로 밥을 먹으니까

 

그 정돈 알고 있겠지

그래, 어디서 본 거 알아

같은 거야

 

화장실엔 그 나라의
문화가 반영되는 거라고

 

일본에 두 종류의 변기가 있어

 

이렇게 생긴 옛날 일본식 변기

 

그리고 이렇게 생긴

서양식 변기

 

그래서 할머니는
일본식을 원한다고?

꼭 그렇진 않을걸

이제 일본도
대부분 서양식이거든

 

근데 그 기능을 알면
깜짝 놀랄 거야

 

어떤데?

 

마돈나가 일본 콘서트에
다녀와서 뭐랬게?

 

"일본의 온열 변기가 그립네요"

 

전기로 시트를 덥혀서
앉으면 엉덩이가 따뜻해

 

볼일 다 보면 노즐에서
따뜻한 물이 분사돼

찬물 말고 따뜻한 물

다 씻긴 다음에
온풍이 나오지

 

또 있어

변기 앞에 서면
시트가 자동으로 올라가

 

일 보고 나면
물이 자동으로 내려가고

 

그냥 변기가 아니지

 

일본의 위대한 테크놀로지야

 

그러니까 일본 변기는...

 

뒤를 씻겨 준다고?

 

한번 써보면
끊을 수 없을걸

 

'워시렛' 없는 호텔엔
안 묵겠단 이들도 있어

 

'워시렛'?

 

워시+토일렛
합쳐서 워시렛

 

어디서 이런 정보를 얻었어?

 

이건 정보가 아니라

 

지식이야

 

할머니

 

같이 보실래요?

 

안 돼, 그만

 

로봇 오타쿠 또 왔네

만날 와서 구경만 하고
사지는 않아

 

소설 등장인물로 딱이지

 

여친도 없고

 

방엔 장난감 가득하고
쳐다만 봐도 그저 흐뭇할걸

 

로봇에 돈 갖다 붓느라
만날 같은 옷만 입어

 

어느 날 눈을 떴는데
공허감이 마구 밀려와

 

격분해서 장난감을
다 때려 부수고는

 

고독 속에 홀로 죽는 거야

 

한심한 인생이지

 

참 딱해

 

소설 주인공으로 어때?

 

재미없어

 

여동생이 있어서

 

홀로 죽는 일은 없을 거야

 

-리사
-오빠, 가자

 

집에 가자고

 

참고로, 만날 같은 옷
입는 게 아니라

 

같은 옷이 일곱 벌이야

 

내 첫 번째 로봇은
엄마가 사줬어

 

나 같은 부류들이
싫어하는게 뭔지 알아?

 

뭔데?

 

동정

 

난 동정한 적 없어

 

-둘이 잤어?
-무슨 소리!

 

제7회 맨손 기타 경연대회

 

누구야...

 

모리

 

피아노 쳐도 괜찮아?

 

그런 거 같네

 

발작은 안 오고?

 

응 괜찮아
다시 치니까 좋은데

 

모리

 

그 치마는?

 

내가 만들었어
엄마 재봉틀로

아니, 내 말은...

 

왜 치마를 입었냐고

 

왜냐고...?

 

이유는 없어

피아노는 치고 싶어서 쳤고

 

치마도 입고 싶어서
입은 거야

 

하고 싶어서 하는 거에
이유 같은 건 없어

 

만두 먹고 싶다

 

잘 빚었네요

 

이건 내 거네

내가 만든 거야

할머니 솜씨 같은데

-아닌데
-할머니 거 맞아

 

그런가?

 

-맛있어요
-정말요

 

아니잖아

 

할머니

 

어떤 변기를 원하세요?

 

이거요?

 

아님 이거

 

'워시렛'

 

그랬군요

 

미안, 지각하겠어

 

리사!

 

네 거였어?

 

-뭐가?
-그 빗

 

그래, 왜?

 

그럼 이건?

할머니 거

 

왜 그러는데?

 

변기 천국
워시렛 3천 달러

 

로봇 프라모델
3천 달러

 

이 저녁
석양은 붉은 원

 

하나의 초대

 

밖으로 걸음 내디뎌
철길로 향하네

 

그곳은 비밀의 세계

붉은 여우가 숨어 있고
백양나무가 자라지

 

철길은 못다 한 얘기를
실어 나르네

 

상상의 지도가
나래를 펼치고

 

내게서 뻗어나간 철로는
수많은 집에 가 닿네

 

손금을 닮은 선들이
우릴 이어주고

 

여우가 모서리를
휙 지나치고

 

난 숨을 멈추고

 

불의 지나침을 지켜본다

 

발아래 철로가 진동하고

 

기차가 들어온다

 

나무에 기댄
내 몸은 떨려온다

 

소리는 점점 커지고
쇳덩이는 포개어져

 

굽어지고
비명을 지르네

 

난 입을 벌려
기차처럼 울부짖는다

 

안녕

 

난 가짜 아냐

 

리사, 왜?

 

돈이 좀 필요해

 

왜?

 

꼭 나가고 싶은
대회가 있거든

 

피아노 대회?

 

진심이야?

 

글쎄

 

맨손 기타 경연대회

 

그런 대회도 있어?

 

예선 통과하면
결선은 핀란드에서 해

 

근데 참가비
낼 돈도 없어

 

뭔진 모르겠지만
할머니께 부탁해봐

 

뭐?

몰랐겠지만
할머니 엄청 부자야

 

-정말?
-응

 

근데 부탁할 때
진심으로해야 해

 

눈을 쳐다보면서

 

꼭 하고 싶은게 있는데
돈이 필요하다고 말이야

 

못 알아듣잖아

 

-알아들어
-영어를 못 하는데?

다 이해하셔

진심으로 말하면

 

한번 해보지 뭐

 

리사

 

왜?

 

나도 대회 나갈까 해

 

재봉 대회?

 

할머니

 

부탁이 있어요

 

맨손 기타 경연대회에
나가고 싶어요

 

내 영혼이 가짜가
아님을 증명하려구요

 

몇 주 동안 연습했어요

 

근데 참가비 낼
돈이 없어요

 

차비도 없고요

 

할머니

 

핀란드 세계 결선까지 나가서

 

꼭 우승하고 싶어요

 

제 영혼의 울부짖음을 들어주세요

 

할머니...

 

편지 왔어

고마워

 

형 게이야?

 

아니

 

알았어

 

화재보상금 3천 달러

뭔데?

 

그냥 약간의...

 

보너스

 

장난감 사는데
다 갖다 바치겠네

 

그래, 아마도

 

조심해서 만져

 

그건 뭐야?

 

유전자 감정결과


유전자 감정결과
이럴 수가...

유전자 감정결과


 

할머니가 아니라
리사 빗에서 나온 건데

 

어떻게 된 거야?

 

리사가 우리랑
진짜 가족이 아니라고?

 

그럴 리가 없어

 

그게... 사실이야

 

뭐?

 

사실이라고

 

언제부터 알고 있었어?

 

좀 됐어
그런데 그게...

 

진짜 가족이 아닌 건
리사가 아니라...

 

레이, 너야

 

하지만 우린 한 번도
널 남이라 여긴 적 없어

 

우리?

 

리사도 아는 거야?

 

할머니도?

 

어쩌면

 

농담하는 거지?

 

네 엄마 죽었을 때
네가 종일 울더래

 

그래서 엄마가 로봇
장난감을 사줬는데

 

뚝 그치더래

 

언제 울었냐는 듯이

 

엄마한테 들었어

 

레이

 

그건 중요하지 않아

 

레이?

 

-여보세요?
-여자랑 3천 달러

 

여자하고 3천 달러

 

1975년 미국제

 

빈티지

 

'조'라고 이름 지었어

 

1977년 일본제

 

빈티지

 

이름은 '히로시'

 

1969년 독일제

 

빈티지

 

이름은 '한스'

그만 해

 

좋아할 줄 알았는데

 

내가...

 

알고 보니
진짜 가족이 아니었어

 

그래서?

 

그래서라니?

 

한 가족이 아니란 말이야

 

아무 상관 없는 남이었다고

 

모르고도 잘 살았잖아
가족이나 다름없이

 

그거면 된 거 아닐까?

 

애그니

 

혹시 네가

 

그렇게

 

나쁜 녀석이 아니라면

 

아니

 

네 말대로

 

네 여동생이
친동생이 아니라면

 

나한테 소개해 줘도
아무 문제 없잖아

 

어째서?

 

내가 네 여동생하고
결혼하게 돼도

우린 사돈지간이 아니거든

 

그건 또 무슨 논리야?

 

여보세요?

 

레이

 

할머니가...

 

할머니

 

센세이 데려왔어요

 

센세이 이리 와

 

워시렛도 샀어요

 

집에 가면 써보세요

 

프라모델은
다음에 사면 되니까

 

모리가 잘할까?

 

그러길 바라야지

 

4년 전이 떠올라

 

어떻게 잊겠어

 

-구토 봉지 챙겨왔어?
-응

 

혹시 몰라서

 

다음이야

 

모리!

 

짱!

 

오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화장해서

 

한 줌의 재가 되었다

 

할머니 바람대로
엄마 묘에 뿌려드렸다

 

다 뿌리면 많을 것 같아서

 

조금은 내가 가졌다

 

할머니와 함께하고 싶어서

 

설치 끝났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잘 쓰세요

 

이런 세상에!

 

이런!

 

세상에!

 

이런 세상에!

 

이게 바로 일본의
위대한 테크놀로지구나

 

할머니...

 

할머니...

 

감독
오기가미 나오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