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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막 : 황 석 희

Modify by Blue-Bird™

 

" 3000년의 기다림 "

 

내 이름은 알리테아

 

이 이야기는 실화다

 

하지만 동화라고 해야
믿을 법한 이야기다

 

그러니, 옛날 옛적에…

 

인간이 금속 날개로
하늘을 가로지르고

 

물갈퀴 발로 해저를 걸어 다니고

 

손에 쥔 유리 타일이

 

하늘에서 사랑 노래를
들려주던 시절

 

적당히 행복하고 홀로인
한 여인이 있었다

 

혼자인 것은 선택이었고

 

지성을 발휘하여

 

자립적으로 살았기에 행복했다

 

그녀의 전공은 이야기였다

 

그녀는 서사학자로

 

인류의 모든 이야기에서
공통된 진실을 찾고자 했다

 

그래서 1년에 한두 번
낯선 땅을 여행했다

 

중국, 남태평양

 

레반트에 있는 시간을 잊은 도시들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그와 같은 부류가 모이는 곳

 

이쪽입니다

 

- 왜 이러세요?
- 이쪽입니다

 

뭐 하는 거예요? 이거 놓으세요

 

이스탄불의 미스터리

 

알리테아!

 

알리테아!

 

어서 오세요

 

- 잘 왔어요
- 귄한!

 

어서 와요

 

정말 반가워요

 

- 이쪽은 아미나예요
- 아미나

 

영국 문화원에 있어요

 

공항에서 내 카트
낚아챘던 남자 봤어요?

 

누구요?

 

교수님이 오자마자
급히 가 버렸어요

 

몸집은 작았고 핑크 양가죽 재킷

 

희한하네요

 

손이 뜨거웠어요

 

사향 냄새가 났고

 

정령이었나 보네

 

불법 택시 기사겠죠

 

향수를 많이 뿌렸겠죠

 

교수님은 정령을 믿는다는 건가요?

 

굳이 믿으려 드는
사람도 있긴 하죠

 

날 포함해서요?

 

정령, 유령, 외계인
도움되는 건 뭐든

 

호텔에서 깜짝 선물을 준비했대요

 

애거사 크리스티 룸이에요

 

'오리엔트 특급 살인'을
집필했던 방이죠

 

그러니 기상학 데이터를
분석할 수단이 없다면

 

폭풍우의 위력을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계절은 어떻게 설명하죠?

 

가을에서 겨울, 봄에서 여름

 

지구의 공전을 모른다면
설명이 불가능하죠

 

모든 것이 미스터리였습니다

 

계절, 쓰나미, 병균

 

그저 이야기에 의지해야 했죠

 

비니 박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한때는 이야기가 우리의 존재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그렇습니다

 

우린 불가사의와
재해 뒤에 있는 미지의 힘을

 

서로 이야기하면서…

 

서로 이야기하면서 이름을 붙였죠

 

예를 보여드리죠

 

인류는 구체적이고
강력하고 친근한 신들을

 

모든 문화의 신화 속에서
언급해 왔습니다

 

그리스, 로마, 노르웨이
끝도 없죠

 

제우스, 포세이돈, 아테나
토르와 그 자손들까지

 

여전히 유명합니다

 

이들이 신들의 흔적이죠

 

의문점은 남아 있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뭘까?

 

우리가 지금 그들에게
요구하는 건 뭘까?

 

신화 체계가 있고
과학이란 게 있죠

 

미안해요

 

과거에 알던 것은 신화였습니다

 

지금 아는 것은 과학이라고 하고요

 

언제가 되건

 

인류의 창조 이야기는

 

과학적 서술로 교체될 것입니다

 

공들인 과학으로

 

모든 신과 괴물들은

 

존재 이유를 다하고

 

은유로 전락할 겁니다

 

헛소리!

 

알리테아!

 

알리테아

 

무슨 일이에요?

 

모르겠어요, 갑자기 쓰러졌어요

 

갑자기 그냥

 

세상에

 

괜찮아요?

 

병원 안 가요?

 

왜요? 멀쩡한데

 

진짜 괜찮아요?

 

살짝 쑤시다 뿐이지
별다른 거 없어요

 

수선 떨지 말아요

 

그럼 아까는 어떻게 된 거예요?

 

요새 내 상상력이 점점 좋아져서

 

날 기습하기도 해요

 

- 경고 같아요
- 무슨 경고요?

 

안주하지 말라고

 

긴장을 늦추지 말라고

 

상상이 가끔씩
무례하게 나타나지만

 

애써 떨치려고 하진 않아요

 

잠시 날 흔들다가 물러나니까

 

뭐가 물러나요?

 

그냥 하는 소리니까
신경 쓰지 마요

 

애처럼 굴고 그래요

 

애라서 그래요

 

운명이 존재한다면
벗어날 순 있을까?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이건 말할 수 있다

 

이스탄불의 그랜드 바자르엔

 

거리가 62개, 점포가 4천 개다

 

그중 한 점포엔 방이 3개다

 

제일 작은 방엔
골동품 무더기가 있었다

 

그 무더기 바닥에서

 

기념품을 하나 골랐다

 

이게 뭔지 아세요?

 

'체슈미 뷜뷜' 같긴 하네요
'나이팅게일의 눈'

 

1845년쯤 인지르쾨이에
유리 장인들이 있었죠

 

이렇게 나선형
청백 패턴으로 유명했어요

 

이거 선물로 드릴게요
청승맞은 거 내려놔요

 

이 '체슈미 뷜뷜'

 

진품 확인할 방법이 있나요?

 

진품이라면

 

유리 부는 장인이 토해낸
핏방울이 있다고 하는데

 

제가 보기엔 요즘 모조품 같네요

 

불에 좀 그을렸네, 다른 거 골라요

 

마음만 받을게요

 

이게 좋네요

 

뭐든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을 거예요

 

여보세요

 

- 안녕하십니까?
- 안녕하세요

 

- 룸서비스입니다
- 네

 

- 달걀은 어떻게 드릴까요?
- 반숙으로 주세요

 

- 토스트도 드릴까요?
- 네, 테두리 빼고요

 

- 달걀은 2개 드릴까요?
- 하나만요

 

- 네,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눈 감고 셋을 셀 테니까

 

그 안에 나가 주면 고맙겠어요

 

하나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영어는 모르겠죠?

 

독일어?

 

에스파냐어?

 

그리스어?

 

호메로스 그리스어를 아십니까?

 

수업을 듣긴 했어요

 

대학에서

 

두려워할 것도

 

태연한 척 대할 필요도 없습니다

 

당신은 날 풀어준 은인이니까

 

감사의 표시로

 

세 가지 소원을 들어드리겠습니다

 

세 가지 규칙은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셋은 셋입니다

 

능력의 개수죠

 

무한한 소원을 빌 순 없습니다

 

 

개념은 알아요

 

영원한 생명을 빌 순 없습니다

 

당신은 필멸의 존재로
태어났습니다

 

저는 불멸의 존재로 태어났죠

 

죄를 없애 주거나

 

모든 고통을 끝내 줄 순 없습니다

 

난 일개 정령이니까

 

합당하군요

 

제약은 여기까지입니다

 

이 작은 인간은 무엇입니까?

 

그 사람은 마법사예요

 

시간을 넘나들며 우릴 인도하는 분

 

- 아인슈타인
- 아인슈타인

 

당신은 저 사람을
상자에 가둔 마녀입니까?

 

아뇨

 

이건 과학이에요

 

텔레비전

 

'텔레비전'

 

빛과 소리의 파형이죠

 

- 송신기
- '송신기'

 

작동 방식은 잘 몰라요

 

난 문학 학자예요

 

이런 건 모르죠

 

전 한낱 정령이지만
송신기가 뭔지는 알겠군요

 

우리 말을 금방 배웠네요

 

이 영어라는 건 단순하군요

 

규칙이 쉽습니다

 

이 작은 아인슈타인
갖고 싶으십니까?

 

아뇨, 아뇨

 

저분에게 몹쓸 짓이죠
도로 넣어요

 

크기를 키워서
대화할 수도 있습니다

 

- 어떻게 이런 일이…
- 아뇨, 도로 넣어요

 

- 이건 불가능해
- 그게 소원입니까?

 

아뇨, 당신이 마땅히 할 일이죠

 

그럼 어떤 소원을 비시겠습니까?

 

당신의 마음이
갈망하는 건 무엇입니까?

 

일단 성급하게 굴진 말자고요

 

천천히 생각해야겠어요

 

저는 남는 게 시간입니다

 

당신에 대해 말해 보세요

 

이름은 알리테아 비니예요

 

튀르키예엔 학회에 참석하러 왔고

 

24시간 후엔 본국으로 돌아가요

 

그리고?

 

그리고 고백할 게 있어요

 

누구한테도 말한 적 없는 거예요

 

좋습니다

 

어릴 때 알던 남자애가 있었어요

 

첫사랑인가요?

 

아뇨, 몸이 있는
존재가 아니었어요

 

정령인가요?

 

아뇨

 

당시엔 여학교에 다니고 있었어요

 

늘 시끌벅적했지만

 

나는 천성이 혼자인 걸 좋아했죠

 

이 엔조라는 남자애는

 

그 공허함에서 날 찾아왔어요

 

상상 속 친구로

 

걔는 둘만 아는 언어로
이야기를 들려줬죠

 

두통이 있을 때면 사라졌지만

 

천식으로 꼼짝 못 할 땐
늘 곁에 있었어요

 

아까 당신이 거부했던
작은 아인슈타인 같은 거군요

 

뭔가의 산물?

 

결핍의 산물이었죠

 

걔가 떠날까 두려워 글로 적었어요

 

일기장에 구체적으로
빼곡하게 적었죠

 

하지만 사실성을 넣으려 할수록

 

더 의심하게 됐고

 

다 유치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너무 유치했죠

 

그래서 얼마 후에
학교 난로에 태웠어요

 

그랬더니 걔도 사라졌죠

 

그런데 제가 나타난 거군요

 

비이성적으로요

 

저는 진짜로 존재합니다
함께 할 일이 있죠

 

나중에 오시겠어요?

 

룸서비스입니다
아침 가져왔습니다

 

잠깐만요!

 

문 꼭 닫으세요

 

안녕하세요

 

- 어디에 둘까요?
- 저 주세요

 

- 제가 할게요
- 아뇨, 괜찮아요

 

그러시죠, 박사님, 편히 쉬셨어요?

 

맛있어 보이네요, 푹 쉬었어요

 

오늘 특별한 계획 있으신가요?

 

글쎄요, 봐야죠

 

아주 근사한 미술관이 있는데

 

- 아뇨, 감사해요
- 오후에 모시겠습니다

 

나중에 가죠, 좋은 하루 보내세요

 

맛있게 드세요

 

감사해요

 

"방해하지 말아 주세요"

 

더 편한 사이즈로 변했군요

 

저를 환경에 잘 맞추는 편이죠

 

드세요

 

아침 괜히 주문했네요

 

'난에 노코드치'입니다
병아리콩, 정향, 피스타치오

 

입에서 녹을 겁니다

 

뭐 물어봐도 돼요?

 

뭐든지요

 

어쩌다 저 병에 들어간 거죠?

 

흥미로운 사연이 있죠

 

이게 세 번째로 갇힌 거랍니다

 

병에 세 번이나 갇혔어요?

 

정령이긴 하지만 아주 어리석어서

 

여인들과의 대화를
과하게 좋아하죠

 

훗날엔 더욱 조심해야겠습니다

 

애초에 어쩌다 잡혔어요?

 

갈망 때문이지 뭐가 있겠습니까?

 

어떤 여자였어요?

 

시바

 

- 시바 여왕 얘기예요?
- 제 친족이었습니다

 

- 시바도 정령이에요?
- 정령의 딸이었죠

 

그게 가능해요?

 

인간과 정령은 함께할 수 있으나

 

그 자식이 정령처럼
불멸하진 않습니다

 

당나귀와 말이 씨 없는
노새만을 낳듯이

 

그럼 어떻게 생긴 여자였어요?

 

다리에 길고 검은 털이
수북한 걸 빼고는

 

여느 인간과 같았지만
그래도 시바니까요

 

전설에 의하면
아주 아름다웠다던데

 

아름다운 게 아니라
아름다움 그 자체였죠

 

그때 전 자유로운 몸이었습니다

 

시바의 침소를 들락거리곤 했죠

 

시바

 

저는 그녀의 여자 노예들처럼

 

그녀를 전율하게 하는
손길을 알고 있었죠

 

내 그토록 원했던 존재는 없습니다

 

시바도 당신을 원했나요?

 

저는 그녀의 장난감이자
은밀한 친구였죠

 

솔로몬이 아니었다면
관계가 깊어졌겠지만

 

솔로몬 왕이요?

 

하늘에서 평온하시길

 

시바에게 구애하려고
사막을 건너왔었죠

 

- 시바가 가지 않았어요?
- 아닙니다

 

성경엔 그렇게 나오던데
이야기나 그림도 그렇고

 

헨델은 그 사건을 곡으로도 썼어요

 

저는 직접 봤습니다
솔로몬이 왔습니다

 

그대는 여왕이십니다

 

공정한 눈으로 세상을 보는
강대한 새처럼 자유로우시죠

 

왜 한낱 남자에게
얽매이려 하십니까?

 

나의 사촌 지니여

 

내 마음을 뺏을 수 있는
남자는 없다

 

그는 연주를 시작했죠

 

어떻게든 시바를
단념시키려 했지만

 

자바사 벌의 향 밀랍을
다리에 발라

 

다리털을 없앨 때는
정신이 아득해지더군요

 

하지만 전 어리석게도

 

당신의 몸은 풍요롭고
사랑스러우나

 

정신은 더욱 풍요롭고
사랑스러우며

 

강인하다고 말했죠

 

그녀도 동의하고는
뜨거운 눈물을 떨구며

 

불가능해 보이는 과제들을
솔로몬에게 주기로 했습니다

 

'방이 1천 개인 궁전에서
빨간 실크 한 올을 찾아라'

 

'정령인 어머니의
비밀스러운 이름을 맞혀라'

 

'여자가 가장 갈망하는 게
무엇인지 말해라'

 

그건 불가능해 보이네요

 

솔로몬에겐 아니었죠

 

그는 땅 짐승, 불 정령과
대화를 할 수 있었죠

 

개미들에게 실크 실을
찾아내도록 했고

 

시바의 어머니 이름은
불 정령에게 들었습니다

 

그리고 시바의 눈을 들여다보며

 

여자가 가장 갈망하는 게
무언지 말했죠

 

시바는 크게 놀라며

 

옳은 답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이 가장 갈망하던 것

 

혼인과 동침을 허락했습니다

 

위대한 마법사였던 그는

 

주문으로 저를
황동 병에 가뒀습니다

 

시바는 절 풀어달라고
간청하지도 않았죠

 

저는 그녀에게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병에 든 공기일 뿐

 

저는 홍해에 던져져

 

2500년 동안 버림받은 채 지냈죠

 

자는 것 빼고

 

2500년간 병 속에서
뭘 하며 지냈어요?

 

정령은 자지 않습니다

 

그럼 어떻게 버텼어요?

 

처음 100년은 제 운명에 분노했죠

 

보슈콜로께 풀어달라고 기도했고
기도가 통하지 않자

 

세상 모든 신에게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래도 답이 없어서

 

지나온 인생을 되짚으며
뜬눈으로 꿈꾸듯 지냈죠

 

그러곤 수도 없이 지쳐버릴 때면

 

또다시 기도하고 분노했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자신을 속이게 됐죠

 

보슈콜로께 평생 병 속에
머물게 해달라고 빌었습니다

 

효과가 있었어요?

 

헛된 것을 갈망하는 게?

 

병에 갇혀 있기를
원하는 척하는 게?

 

아뇨

 

정령에겐 죽음과
가장 가까운 상태였죠

 

시바가 한 질문의 답은 알아요?

 

여자가 가장 갈망하는 것?

 

 

모르십니까?

 

당신이 모른다면
저도 말할 수 없죠

 

사람은 원하는 게 다 같지 않아요

 

제겐 당신의 갈망이
명확하지 않군요

 

나는 필요한 것들을
다 가진 나이예요

 

만족스럽고 감사한
인생을 살고 있죠

 

말씀해 보시죠

 

결혼하셨나요? 사별했다거나?

 

혹은 어머니라거나?

 

자식도 형제도 부모도 없어요

 

남편은 있었어요

 

그 남편의 성격은 어땠죠?

 

성격이요?

 

처음엔 아주 밝았죠

 

그럼 끝에는요?

 

이야기할 것도 없어요

 

그렇더라도 이야기고
당신의 이야기입니다

 

날 손에 쥔 사람을
이해하는 건 중요하죠

 

좋아요

 

어릴 때부터 알던 사이였고

 

일찍 결혼했어요

 

처음엔 서로의 육체와
마음에 만족했어요

 

꽤 오랜 시간 문제없이 지내다가

 

"작은 엔조의
처음이자 마지막 이미지"

 

그 일을 겪고선

 

다 사라져 버렸어요

 

그리고 우린 점점…

 

- 소원해졌죠
- 지금 어디 있죠?

 

에멀라인 포터와 해크니에 살아요

 

"잭"

 

"예언자"

 

그 사람 말이…

 

저는 감정을 읽을 능력이
없다고 했어요

 

그 사람 감정을 못 읽는다고

 

내 뇌가 작동하는 방식이…

 

내 능력과 고독의 원천이에요

 

그래서 이야기를 좋아하나 봐요

 

이야기들을 보며 감정을 찾죠

 

남편을 되찾는 걸 소원으로 비시죠

 

아뇨, 아뇨, 아니에요

 

그때는…

 

상실감과 배신감을
느꼈을지 몰라도

 

실은 후련했어요

 

무슨 죄수 같다고나 할까?

 

지하 감옥에서 나와
햇볕을 쬔 죄수

 

비로소 내 인생을 살게 된 거예요

 

더 바랄 게 없죠

 

정말 현명하고 신중한 분이시지만

 

깊이 숨겨뒀을지언정
갈망은 누구에게나 있죠

 

그럴 수도 있죠

 

그런데 나는 서사학자이기도 해요

 

그게 문제가 되죠

 

아주 큰 문제

 

사기꾼 정령이 나오는
이야기들이 참 많은데

 

결국엔 소원 비는 인간을
이용해 먹죠

 

저는 다릅니다
신을 경외하고 영예로우며

 

소원을 들어주려는
생각밖에 없습니다

 

그게 사실이라 쳐도

 

소원 비는 사람들을
어떻게 믿어요?

 

내가 믿을만한 사람인지
어떻게 알아요?

 

그러길 빌어야죠

 

그런 분이리라 믿고 있습니다

 

한 가지…

 

재밌는 이야기가 있어요
아마 알 거예요

 

친구 셋이서 바다에서 표류 중에

 

소원을 들어준다는
마법 물고기를 잡았어요

 

첫 번째가 집에 가서
아내와 있고 싶다고 하자

 

배에서 사라졌어요

 

두 번째가 자식들과
뛰어놀고 싶다고 하자

 

이번에도 사라졌죠
세 번째는 친구들이 그립다고

 

- 여기 있으면 좋겠다 했죠
- 맞아요

 

소원에 대한 이야기는
다 경고성 이야기예요

 

해피엔딩이 없죠

 

웃긴 이야기마저 결말이 안 좋아요

 

하지만 이 이야기는
당신과 내가 저자니까

 

함정들을 다 피할 수 있어요

 

내가 소원을 하나도 안 빌면요?

 

뭐라고요?

 

소원을 안 빌면?

 

그건…

 

그건…

 

재앙입니다!

 

알았어요

 

두 번째 갇힌 이야기를 들려드리죠

 

집중해서 들을게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다 홍해 해저에서

 

콘스탄티노플의 궁전으로 간 건지

 

어느 오스만 전사의 죽음과
관련된 거라 상상할 뿐이죠

 

제국의 패망

 

그리고 사랑에 빠진 여자

 

넌 누구니?

 

"정령의 망각"

 

걸텐은 노예였고

 

하렘에 있는 후궁들의
집에서 살았습니다

 

제가 나타나자

 

기절해 버리더군요

 

깨우는 데 애를 먹었습니다

 

저는 병에 매인 몸이라
해를 끼칠 수 없다고 했죠

 

당신의 세 가지 소원을
이룰 때까지?

 

그녀의 소원이죠, 앉으시죠

 

그녀는 멋진 남자에게
빠져 버렸다면서

 

그 남자가 자신에게
반하게 해 달라고 했죠

 

널 위해 만들었다

 

그녀가 갈망한 남자는
바로 무스타파였습니다

 

무스타파 왕자

 

술레이만 대제의 장남으로
왕좌를 계승할 자였죠

 

닥쳐올 일을 알았다면
불 정령의 분노를 사더라도

 

그 소원을
빌지 못하게 했을 겁니다

 

하지만 미련하게도

 

제 병에 마법의 기름을
준비해 주었습니다

 

매혹의 기름

 

한때 시바만이 사용했던 것이죠

 

능력이 남에게 넘어갈까
병을 숨기라고 했죠

 

제가 무스타파에게 가서

 

걸텐

 

그녀의 이름을 속삭이자

 

그녀를 불러들였습니다

 

너무 쉬웠죠

 

저는 인간의 행동에
호기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나면

 

궁전을 배회하면서
흥미로운 일을 찾았죠

 

내관들과 왕비들과
후궁들 사이에서

 

휘렘을 처음 봤습니다

 

기쁨을 주는 자

 

그녀도 노예 출신이었으나

 

많은 역경을 뚫고
술탄의 총애를 받았죠

 

술레이만 대제의 눈에는
오직 그녀만 보였습니다

 

휘렘은 아들을 위해

 

무스타파의 왕위 계승을
어떻게든 막으려고 했죠

 

그래서 왕자의 곁에
감시할 사람들을 두었습니다

 

휘렘이 교활한 술수를
부리기 시작하자

 

걸텐이 그 거미줄에
걸릴까 걱정됐죠

 

그래서 조심하라고
경고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두 번째
소원마저 결정했더군요

 

임신하고 싶어

 

무스타파의 아이요?
그건 안 됩니다

 

그게 내 갈망이야

 

소원을 들어줘

 

당장

 

잠깐만요, 잠깐

 

큰 실수였습니다

 

당시는 술레이만의 힘이
기울고 있을 때였으니까요

 

군부는 술레이만이 나약해졌다고

 

강력한 통치보다
시에 몰두한다고 여겼죠

 

휘렘은 술탄에게
군부가 반역을 일으켜서

 

무스타파를 술탄으로
세울 거라고 말했죠

 

왕자는 권력 다툼의
장기 말이 되었습니다

 

술레이만 대제

 

정복자 술레이만, 제국의 수호자

 

아버지 술레이만은

 

가슴 아픈 선택만을
남겨 놓고 있었죠

 

그때 걸텐은 세상에
거칠 것이 없었습니다

 

차기 술탄의 아들을
잉태했으니까요

 

제 경고를 무시하고

 

부푼 가슴과 배를 자랑하며 다녔죠

 

그 소식은 순식간에
하렘에게 퍼졌습니다

 

잔혹한 음모는 늘 한발 빠르죠

 

무스타파는 순진하게도
아버지를 찾아가

 

충성심을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술탄이시여

 

아버지

 

그곳엔 자객들이 기다리고 있었죠

 

충성스러운 근위대를
외쳐 불렀지만

 

아버지의 활줄에
목소리가 뭉개지고

 

숨이 막혀 버렸습니다

 

이리로 몰려옵니다

 

소원을 비세요

 

하나만 더 비세요

 

왜?

 

걸텐

 

저들이 당신을 죽일 거라고요!

 

왕자께서 지켜 주실 거야

 

그분은 아무것도 못 해요

 

소원을 비세요!

 

그분은 날 사랑해

 

걸텐

 

그분은 죽었어요!

 

죽었어요!

 

그분을 아끼던 사람들도 전부

 

휘렘이 당신을 노릴 거예요

 

소원을 비세요!

 

살아야죠, 걸텐!

 

몇 마디만 했어도 자유롭게 나가서

 

안전하게 아이를 낳았을 거고

 

저도 마침내 정령의 왕국으로
돌아갔을 텐데

 

자객들을 향해 뛰어가고 말았죠

 

힘으로 막으려 했지만

 

악마 왕의 추종자가 막아섰습니다

 

당장 물러서라

 

그녀의 이야기를 바꿀 순 없다

 

그녀가 소원을 빌지 않는다면

 

너는 끝이다

 

걸텐!

 

자신을 구하기 위한
소원을 빌지 않았죠

 

우리 둘 다 구할 수 있는 소원을

 

그러니 제가 간섭했건
간섭하지 않았건

 

세 번째 소원으로
속박이 풀리기 직전에

 

다시 속박이 채워졌죠

 

그런데 지금 나한테…

 

소원 빌다가 파멸한
여자 얘기를 꺼내요?

 

소원을 완성하지 못해
저도 파멸한 이야기죠

 

소원을 완성해 줄
사람이 없었어요?

 

나타났으면 했죠

 

그래야 마침내 풀려날 테니까?

 

그게 제 유일한 희망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눈에 보이지 않았잖아요

 

마치 유령처럼 배회할 뿐이었죠

 

그리고 당신의 병은

 

걸텐만 아는 석판 아래
숨겨져 있었어요

 

곤란한 상황이었죠

 

어떻게든 주의를 끌어
도움을 청하려고 했습니다

 

어찌나 애를 썼던지

 

그들의 냄새와 발걸음을 쫓으며

 

바라고 빌고 소릴 지르고

 

주의를 끌어 보려 했죠

 

100년을 애처롭게 애썼지만

 

결국은 의지가
서서히 무너졌습니다

 

그러다 1620년, 희망이 찾아왔죠

 

검을 든 소년의 모습으로

 

"두 형제와 여자 거인"

 

무라드! 무라드!

 

무라드!

 

어째서인지 그 소년은
저를 느낄 수 있어서

 

그 석판까지 불러들일 수 있었죠

 

이브라힘!

 

무라드!

 

이브라힘!

 

그렇게 그들의 손에
넘어가기 직전에

 

그들의 어머니가 찾아왔습니다

 

그는 아흐메드 1세의
미망인 퀘셈이었고

 

소년들은 다음번
왕위 계승자들이었죠

 

그 소년의 다리털을 보고는

 

정령의 힘이 있는
혈통임을 알았습니다

 

그 후로도 쫓아다니며
다시 불러들이려 했으나

 

11살에 왕좌를 계승하고
무라드 4세가 되자

 

다른 것들에 흥미를 빼앗겨

 

더욱 다가서기 힘들어졌죠

 

20살엔 전쟁을 지휘했고

 

코카서스와 메소포타미아의
전장을 누볐습니다

 

죽음도 불사하는 무모한 왕이었죠

 

다신 못 볼 것 같아
절망감이 들었습니다

 

희망은 괴물이며
저는 희망의 노리개입니다

 

결국 죽었어요?

 

전쟁터에선 아니었죠

 

이스탄불에선 퀘셈이
왕좌를 지켜야 했고

 

이브라힘을 지켜야 했습니다

 

- 동생이요?
- 네

 

오스만 혈통 최후의 생존자였죠

 

그는 아들들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퀘셈은 흑담비 모피로
감싼 방에 이브라힘을 가뒀죠

 

호화로운 감옥이네요

 

나갈 마음이 안 드는 곳이었죠

 

그 색욕의 낙원에서

 

그는 살집이 커다랄수록
쾌락도 커진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퀘셈은 음탕하고
거대한 미인들을 찾아

 

방으로 들여보냈죠

 

그 취향 덕에
제 운명도 뒤바뀌었습니다

 

어떻게요?

 

보시면 압니다

 

무라드가 돌아왔습니다

 

이제 그의 옷은
피로 찌들어 있었죠

 

전쟁으로 영혼마저
타락해 버렸습니다

 

저는 그가 혼자되길 기다렸죠

 

어떻게든 그 석판으로
불러들일 작정이었습니다

 

말을 끊긴 싫지만
궁금한 게 있어요

 

그런 사람이 어떤 소원을
빌지는 걱정 안 됐어요?

 

탐욕스러운 사람인데

 

 

사악한 소원이라도?

 

저만 자유로워진다면 상관없죠

 

그런데 그는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습니다

 

자신을 무적이라 믿었고

 

평생 통치하기 위해
경쟁자들을 죽이려 했죠

 

왜 검을 낭비하느냐? 나의 사자여

 

이브라힘

 

이브라힘

 

형님

 

네 동생은 아직도 어린애야

 

어찌 군주가 되겠느냐?

 

퀘셈은 무라드를 막아야 했습니다

 

살육에서 다른 무언가로
관심을 돌려야 했죠

 

처음엔 끊임없이 술을 먹였습니다

 

그 후엔 교활하게도
즐길 거리를 준비했죠

 

제국을 구석구석 뒤져

 

최고의 이야기꾼들을 찾아왔습니다

 

재미없는 이야기꾼은

 

두려움에 도망치거나
그의 손에 죽었죠

 

오직 한 명…

 

그를 사로잡을
이야기꾼이 있었습니다

 

이야기로 마음을 달래고

 

그 흥미진진함으로
무라드를 사로잡았던

 

무라드의 유일한 친구였죠

 

그 우정은 사랑으로 발전했습니다

 

저도 할 게 없어서
그저 고마운 마음으로

 

그의 이야기에 푹 빠져들었습니다

 

그 노인이 죽자

 

궁전 사람 모두가 밖으로 도망쳤죠

 

무라드의 슬픔으로
대살육이 벌어질 거라며

 

하지만 그는 가만히 앉아
울며 술만 마셔댔습니다

 

그리고 제 인내심이 보상을 받았죠

 

이런 상태에서는 주의를 끌어

 

그 석판으로
불러들일 수 있었습니다

 

뒷얘기는 알겠네요

 

몸이 너무 약해져서
석판을 못 들었죠?

 

걸쇠를 돌릴 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술을 마시다
영원한 잠이 들었죠

 

그래서 저는

 

다시 망각 속에 남겨졌습니다

 

아무도 제 목소릴 들을 수 없고

 

아무도 절 알거나
느끼지 못하는 세상에

 

당신은 상상도 못 할 겁니다

 

상상은 돼요

 

그 외로움이 상상된다고요?

 

얼마나 감당하기 힘든지?

 

 

우린 누군가에게
진짜일 때만 존재합니다

 

동의하십니까?

 

 

이게 우리 운명입니다

 

당신이 소원을 빌지 않으면

 

두 세상의 틈에 갇혀
외롭게 있어야 하죠

 

소원을 비세요

 

마음이 갈망하는 바를

 

이제 아주 노골적이네요

 

어떻든 거기서 나올
방법을 찾아냈네요?

 

가까스로 찾았죠

 

사기꾼 정령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네요

 

그럼 차라리 나았겠죠

 

훨씬 편했을 겁니다

 

저는 오히려 멍청하고

 

지나치게 운이 없는
정령일 뿐입니다

 

그렇게 말하면 믿는 수밖에요

 

그래서요?

 

이브라힘이 술탄이 됐겠죠?

 

이브라힘을 억지로 왕좌에 앉혔죠

 

어머니!

 

어머니!

 

그는 후궁 한 명을
다마스쿠스 총독으로 삼았죠

 

그녀의 이름은 슈거 럼프

 

그의 총애를 받는 여인이었습니다

 

자유로운 몸이 아니었다면
그 목욕탕을 발견 못 했고

 

목욕할 생각이 없었다면
탕이 넘치지도 않았고

 

걸음을 조심스레 옮겼더라면

 

미끄러져서 그 석판을 뭉개고

 

제 병을 발견 못 했겠죠

 

솔직히 위엄 있게 등장해야 했으나

 

수치도 모르고
애걸하기 시작했습니다

 

주인이시여

 

제 상황이 아주 절박합니다

 

제발 도와주십시오

 

냄새가 안 좋군

 

소원

 

소원을 비십시오

 

어떤 것이든 좋습니다

 

난 정령 따위에게 바라는 거 없어!

 

갈망하시는 게 없습니까?

 

그럴 리가요!

 

소원을 비세요, 말하세요!

 

말하세요, 당장!

 

당장!

 

다시 병 속으로 들어가
보스포루스 해저에 처박혀라!

 

'다시 병 속으로 들어가
보스포루스 해저에 처박혀라'

 

그러다 당신의 신중한 손에
안기게 된 겁니다

 

서로 난감한 처지가 돼 버렸네요

 

제 운명이 당신 손에 달린 거죠

 

소원 빌기라는 건…

 

도박 같은 짓이에요

 

끝없이 사건이 얽히고설킨다고요

 

- 꼭 그렇진 않습니다
- 당신 얘긴 그렇잖아요

 

- 그렇긴 하지만…
- 사기꾼 정령도 아니고

 

우리가 이 이야기의
작가라고 했죠?

 

그런데 내 이야기를
마음대로 못 쓴다?

 

- 그건 그렇지만…
- 병 속으로 들어가 주면

 

잘 속는 사람에게 전해 줄게요

 

더 절박하고 탐욕스러운 사람한테

 

그 병 속으론 안 들어갑니다

 

- 왜요?
- 안 들어갈 겁니다

 

난 세 가지 소원 안 빌 거예요

 

그럼 저를 망각으로
돌려보내시는 겁니다

 

- 정말 억지도…
- 머리가 지끈대는군요

 

좋아요, 좋아요

 

그렇게 하죠, 소원 세 개 빌게요

 

- 정말로
- 죽기 전에?

 

당장 하나씩 빌게요

 

준비됐어요?

 

하나, 당신의 두통이
사라졌으면 해요

 

 

차 한 모금 마시고 싶어요

 

마지막은 이거 하나 먹는 거로

 

절 농락하시는군요

 

단순하고 안전한
세 가지 소원이에요

 

저는 제 갈망을 부르짖다
솔로몬에게 갇혔습니다

 

당신의 갈망을 빌어야
풀려날 수 있습니다

 

조건은 이해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평생소원 하나 떠올리기 힘든데

 

세 개씩이나…

 

삶이란 게 있긴 합니까?
살아있는 분 맞아요?

 

어느 나라에선 욕심이 없어야
깨달은 사람으로 여겨져요

 

경건한 척하는 바보일 뿐이죠

 

내가 만족한다는데
왜 운명을 시험해요?

 

그럼 겁쟁이죠

 

자극하지 말아요

 

인간도 천사도 정령도
소원을 마다할 존재는 없죠

 

그런데 원하는 게 전혀 없다니

 

알리테아 비니
당신은 거짓말쟁이예요!

 

우리가 만나지 않았으면 하고
빌고 싶어지네요

 

안 돼!

 

그 말만은!

 

그래요

 

그때 겪은 일

 

끔찍했나 보네요

 

끔찍했죠

 

가혹했고

 

가장 잔인한 소원이었습니다

 

어리석은 자 때문에
또 갇히고 말았으니

 

이곳에 있게 된 건
한 천재 덕입니다

 

이번엔 누구죠?

 

제피르라는 여자였죠

 

인류를 통틀어서도
드물게 훌륭하던 인간

 

하지만 그녀의 어리석음으로
여기 오게 된 거잖아요

 

이 병엔 제피르 덕에
들어가게 됐죠

 

내내 숨기려 하던 그 이야기네요

 

나 자신에게도 말하기 싫어
숨기던 이야기죠

 

"제피르로 인한 결과"

 

제피르는 버려진 아이였고

 

12살에 부유한 상인과
결혼했습니다

 

그녀보다 훨씬 늙었고

 

여자를 철장 속 새로
여기는 사람이었죠

 

나이 든 부인 둘은
제피르를 싫어했고

 

아예 말을 걸지도 않았습니다

 

심지어 시종들까지
그녀를 조롱하는 듯했죠

 

그녀는 예절도 몰랐고
배움도 없었습니다

 

이유도 없이 늘 화가 날 뿐이었죠

 

그러다 운명처럼
제 병을 만났습니다

 

남편이 정표로 가져다준 것이었죠

 

남편을 만족시킨 후
마침내 혼자가 되자

 

뚜껑을 비틀어 병을 열었습니다

 

"1단계 전자기파"

 

"2단계 증기"

 

"3단계 유기체 입자"

 

"4단계 장기 형성"

 

마치 저를 기다린 것 같았죠

 

영리한 사람답게
순식간에 간파하더군요

 

제가 자유와 대화를
간절히 원한다는 걸

 

당신에게 했듯이
제 이야기를 들려줬더니

 

자기가 만든 것들을
보여 주었습니다

 

이리 와 봐요

 

손 줘 봐요

 

맙소사!

 

이것도 보여 줄게요

 

와 봐요

 

다빈치 같은 천재처럼 역사에 남아

 

비행 이론의 선구자로
기억될 사람이었죠

 

숙련된 아티스트였지만
그 누구도 몰랐습니다

 

발휘하지 못한 능력들이
자기를 괴롭힌다고

 

자기가 마녀일지도
모르겠다고 했죠

 

자신이 남자였다면

 

진작 이런 지식을
인정받았을 거라고 했습니다

 

배우고자 하는 열망이 대단했기에

 

첫 소원은 짐작하기 쉬웠죠

 

지식을 갖고 싶어

 

모든 지식을

 

갖고 싶어

 

유용하고

 

아름답고 진실한 지식

 

저는 기쁜 마음으로
소원을 들어줬습니다

 

저는 역사와 철학과
언어와 시를 가르쳤고

 

천문학과 수학을 가르쳤습니다

 

그녀는 더없이 행복해했죠

 

저는 책과 문헌을 가져와

 

병에 숨기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오전 공부

 

'오전 공부'

 

아리스토텔레스는
붉은 유리 단지에

 

유클리드는 녹색 병에

 

피타고라스, 스피노자…

 

저 없이도 지식을
쉽게 꺼내어 봤죠

 

우린 온 세상을 방 안에 두었고

 

저는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그녀의 행복은 저의 기쁨이었죠

 

그녀의 성장을 보는 것도

 

그녀는 모든 면에서 성장했습니다

 

그러다 남편의 요구에도
반항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정령과 사랑을
나눈 적 없는 사람은

 

절대 이를 수 없는
사랑의 기술에 통달했죠

 

남편의 갈망은 집착이 되었습니다

 

너도 좋았느냐?

 

남편이 찾아오면

 

저는 방을 떠나 하늘을 여행했죠

 

산과 바다를 보고

 

인적 없는 숲의
짐승들을 보았습니다

 

제가 돌아오면
그녀가 기다리고 있었죠

 

제 하루를 이야기해 주면
별 의욕 없이 듣다가

 

실망했습니다

 

왜 자유를 달라는
소원을 안 빌었을까요?

 

그녀에겐 그보다 중요한 게 있었죠

 

매스매티카라는 것을
고안해 냈는데

 

시간과 공간과 물질을 이루는

 

모든 힘을 설명하는 언어였습니다

 

그녀는 용감한 프로메테우스였죠

 

하지만 그 퍼즐을 풀 순 없었고

 

열쇠가 필요했습니다

 

머릿속 닫힌 문을 열어 줄 열쇠

 

그래서 두 번째 소원을 빌었습니다

 

정령처럼 꿈꾸는 법
깨어있기를 가르쳤죠

 

그 방식으로 해답을 발견했고

 

보이지 않는 힘을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전자기장과 여러 힘들

 

정령을 구성하고 있는
바로 그 물질이죠

 

당신이 전자기장으로
이루어져 있다고요?

 

당신이 흙으로 만들어졌듯
저는 불로 만들어졌죠

 

그녀가 아이를 가졌을 때는

 

정말이지 행복했습니다

 

우리 관계가 견고해질
기회였으니까요

 

당신 아이를 가졌던 거예요?

 

불과 흙의 아이였죠

 

그런데 어디서 잘못된 거예요?

 

전 그녀를 사랑했습니다

 

그녀의 열정, 그녀의 분노

 

그녀를 웃게 만드는
제 능력을 사랑했죠

 

시바보다 사랑했습니다

 

- 당신의 자유보다 더?
- 네

 

그녀의 포로가 되어서라도
그녀를 갖고 싶었습니다

 

자유를 생각하기만 해도
마음이 아려왔죠

 

소원컨대 내 발견들과
훗날 발견할 것들을…

 

저도 모르게
세 번째 소원을 막았죠

 

맙소사

 

큰 실수였죠

 

그녀는 제가 남편처럼
자기를 구속한다며

 

저를 욕했습니다

 

저는 화해하려 애썼죠

 

결국 속죄하기 위해
병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봉인되려고

 

그래야 제가 그녀를
막지 못할 테니까

 

병 속에 들어가 사라져 주는 것

 

그녀를 위해선 그럴 수 있었죠

 

매번 그런 식으로 달래곤 했습니다

 

매번 효과가 있었지만
마지막은 아니었죠

 

돌풍과 천둥, 번개처럼

 

울고 소리치면서 말하기를

 

'당신을 만났던 걸
잊어버리면 좋겠어'

 

그 말과 동시에 그렇게 됐습니다

 

그녀는 바깥에 저는 안에 있었고

 

그녀는 절 잊었죠

 

알리테아, 어떻게 누군가를…

 

영원히 사랑하는 게
실수일 수 있죠?

 

소원이 있어요

 

그런데 과한 부탁일까 봐 걱정돼요

 

제 능력 안의 소원입니까?

 

그러길 빌어야죠

 

당신의 마음이 갈망하는 건가요?

 

네, 확실히요

 

당신을 사랑하게 됐어요

 

그러니까 당신도 날
사랑해 줬으면 해요

 

사랑의 행위를
나누고 싶은 건가요?

 

네, 그것도요

 

전부 다

 

여기에 자신을 온전히
던지려는 건가요?

 

 

 

우리의 고독이 하나가 됐으면 해요

 

영원한 이야기 속에서 고백한
그 사랑을 원해요

 

당신이 시바 여왕에게 느꼈던 갈망

 

당신의 천재 제피르에게
줬던 그 사랑

 

그걸 원해요

 

저를?

 

당신

 

당신을?

 

나를

 

너무 과한가요?

 

과한 부탁인가요?

 

이리 와요

 

깨어난 갈망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정령과 사랑에 빠졌던 걸
어떻게 설명할까?

 

어찌 됐건 믿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사랑은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

 

그것은 증기나 꿈에 가까우며

 

우릴 우리만의 이야기 속
마법으로 끌어들인다

 

그렇다면 그게 진짜라는 건
어떻게 알 것인가?

 

그것은 진실인가?
혹은 그저 광기인가?

 

오늘 런던으로 떠나요

 

집에 같이 가 줄래요?

 

요즘 세상에
살기 좋은 곳은 아니지만

 

당신이 있다면
한결 나을 것 같아요

 

이쪽으로 와 주세요

 

손 들어 주세요

 

"주의"

 

나와 주세요

 

주머니에 있는 게 뭐죠?

 

빈 병이랑 뚜껑이요

 

검열대에 올려 주세요

 

깨지기 쉬운 물건이라 걱정돼서요

 

망가지지 않으니까
검열대에 올려 주세요

 

- 그래도 이건…
- 여권, 탑승권 부탁드립니다

 

잘 깨지는 거예요

 

압니다

 

소금통이에요

 

안 돼요! 엑스레이는 안 돼요!

 

- 제발요!
- 가만히 계세요

 

아무것도 없는데요

 

승객분

 

편할 때 나와요

 

공기가 탁하군요

 

강렬한 소리가 가득하고
얼굴들이 스쳐 가고

 

작은 아인슈타인 같은?

 

텔레비전, 통신탑, 이런 거요?

 

 

이 놀라운 장치들이
한꺼번에 떠드는군요

 

머리 숙여 봐요

 

이걸 다 들어요?

 

보고 느끼기도 하죠

 

나는 송신체니까

 

버겁지 않아요?

 

저는 정령입니다
적응할 수 있어요

 

곧 익숙해질 겁니다

 

돌아왔네

 

돌아온 거 같아

 

누구랑 같이 있어?

 

아니, 또 혼잣말하는 거 같아

 

안녕하세요, 클레멘타인

 

패니, 잘 지냈어요?

 

무슨 문제 있었어?

 

문제요? 어떤 문제요?

 

외국 친구들이랑

 

가끔 궁금하더라고

 

왜 남의 나라 문화 공부하느라고

 

시간과 머리를 낭비하는 건지

 

영국 문화가 창피한 거야?

 

아뇨, 자신과 다른 사람만 보면

 

겁내는 사람들 볼 때 창피해지죠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이야?

 

우리가 속 좁단 소리야

 

- 그런 말 안 했어요
- 오해하지 마

 

생김새가 아니라

 

어떻게 사는지 뭘 믿는지가 중요해

 

- 뭘 먹는지도
-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어딜 가도 외국인들 판이야

 

우리가 우리 무덤을
파고 있는 거지

 

정상이 아니야

 

새는 하늘에 살고
물고기는 바다에 살아야지

 

주님께서 그렇게 만드셨으니까

 

무슨 얼토당토않은…

 

- 이건 과학적 사실이야
- 비유가 틀렸잖아요

 

동물들이야 서식지가 있겠지만

 

인간은 자기가 택한
환경에서 살 권리가 있어요

 

- 그건 사실이 아니야
- 뭐라고요?

 

- 그저 의견이지
- 틀린 의견

 

더 못 들어 주겠네요

 

놔둬, 클렘, 미친 생각 하든 말든

 

말이 통하겠어?

 

지금껏 이런 말 안 했는데요

 

두 분 다 한심해요

 

주둥이 다물어!

 

멍청하고 한심하고

 

저 염병할 것이!

 

담쟁이나 우리 담장에
못 넘어오게 해!

 

뭐 한다고 듣고 있었지?

 

딱한 인간들

 

근데 여긴 내 집이잖아
내 안식처라고

 

부디 저 인간들을…

 

이건 소원 아니에요

 

알아요

 

나의 정령

 

오늘 어떠셨습니까?

 

내 모든 말을 당신이 듣는 듯했고

 

모든 목소리, 향기, 손길까지

 

온통 당신이었어요

 

조금 있다가 나와요

 

이 시간에 누구지?

 

그 여자겠지

 

클렘, 패니

 

병아리콩, 정향, 피스타치오예요

 

입에서 녹아요

 

이쪽은 내 친구예요
당분간 있을 거예요

 

안녕하십니까?

 

- 안녕하세요
- 안녕하세요

 

나의 정령이 말하길

 

정령의 왕국에서 정령들이 모이면

 

서로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한다

 

그들에겐 이야기가 호흡과 같다고

 

이야기가 의미를 만든다고 했다

 

나는 인간들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야기는 무한하게 변화하는
모자이크의 한 조각이다

 

이 조각도 여느 이야기처럼
반드시 끝나야 한다

 

소원에 관한 이야기라면
교훈적인 이야기일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잘못될 수 있을까?

 

이미 그렇게 됐는지도 모른다

 

진실이 벌거벗은 채
그들 앞에 섰으나

 

그들은 등을 돌렸죠

 

그래서 진실은 옆으로 비켜
그림자 속에서 기다렸습니다

 

그 후로

 

정령은 서사학자의 직장에
따라가곤 했다

 

그녀와 따로 있을 땐

 

이 세상을 열정적으로 탐험했다

 

오늘은 정말로
놀라운 날이었습니다

 

많은 것을 보았죠

 

인간이 다른 인간의
뇌를 들여다보면서

 

치명적인 출혈을
멈추는 걸 봤습니다

 

입자 가속기도 보고 왔습니다

 

물질의 본질을 탐구하는
거대한 장치였죠

 

그리고 보게 된 커다란 접시는

 

오래전 죽은 별들의
속삭임을 듣고 있었습니다

 

인류는

 

놀라운 존재입니다

 

그렇게 생각해 주니 기쁜데요

 

제피르의 병에 갇히고

 

200년도 안 됐는데
이런 발전이라니

 

그렇긴 하지만…

 

그건 그저 공학과 기술이에요

 

그 대단한 성취에도 불구하고

 

우린 여전히 무지해요

 

혼란한 감정을 억누르지 못할 땐

 

불안과 공포로 가득 차

 

- 서로에게 등을 돌리죠
- 그야 인간이니까요

 

그건 본성입니다

 

그러니까 이야기는
영영 달라지지 않아요

 

증오가 승리하죠

 

증오는 널리 퍼지고
사랑보다 오래가요

 

나는 사랑 얘기만 하고 싶은데

 

인간은 정말이지 모순덩어리군요

 

고마워요

 

인류는 수수께끼입니다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면서도

 

최선을 다해 지능을 발휘하죠

 

대단한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흘러갈지 궁금하군요

 

결말도 그렇고요

 

그것도요

 

인간은 모르더라도
정령은 알지 모르죠

 

정령에게 남는 건 시간뿐이니까

 

참 운도 좋네요

 

그럴 수도 있고요

 

하지만 흙의 피조물들은

 

정령과 천사의 힘과 목적조차
무색하게 하는 존재죠

 

당신들은 우리가 필요 없습니다

 

우리는 소멸하거나…

 

- 사라질 거다?
- 네

 

그 주제로 강의도 하고
논문도 많이 썼어요

 

압니다

 

그런데 당신이 여기 있잖아요

 

내겐 불가능한 존재

 

 

집에 있어요?

 

나 왔어요

 

여기 있어요?

 

지니?

 

내 사랑?

 

지니?

 

왜 이래요?

 

내 말 들려요?

 

지니, 말해 봐요

 

말을 해 봐요

 

소원이니까 말해요

 

자고 있었습니다

 

잠을…

 

정령은 자지 않아요

 

산책 나가죠

 

기분이 좋아질 겁니다
준비한 게 있어요

 

아주 근사한 밤을 계획해 뒀습니다

 

정말 멋질 거예요

 

- 인생 최고의 시간이…
- 멈춰요!

 

이 전자기장들은 머릿속에서
밀어낼 수 있습니다

 

밀어낼 수 있어요

 

소풍을 가시죠

 

우쿨렐레도 치고

 

알리테아, 좋은 곳을 알아요

 

이 힘들은 이 세상에선
없앨 수가 없어요

 

극복할 수 있어요
당신을 위해 할게요

 

- 알리테아, 사랑해요
- 고마워요

 

애써 줘서 고마워요

 

제가 사랑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사랑은 선물이에요

 

대가 없이 주는 선물

 

누가 요구한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내가 우릴 속였어요

 

그 소원을 말한 순간

 

소원을 들어줄 능력을
빼앗은 거예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난 알았어야 했는데

 

또 실수할 순 없어요

 

나의 정령, 이 세계가 버겁다면

 

소원컨대 당신이 있을
자리로 돌아가세요

 

어디가 되든 간에

 

"유리, 취급 주의"

 

"3년 후"

 

"정령의 왕국에선
서로 이야기를 해 준다"

 

"그들에게 이야기는
호흡과 같아서…"

 

"전자기장 정령
1단계 전자기파…"

 

엄마!

 

이리 온, 이 장난꾸러기
엄마 아니야

 

"3000년의 기다림"

 

방금 봤어?

 

그는 가끔씩 찾아왔고

 

둘은 그 순간순간을 만끽했다

 

시끌벅적한 하늘의 고통에도

 

그는 최대한 오랜 시간을 버티다가

 

그녀가 가라고
애걸하고 나서야 갔다

 

그는 그녀가 죽기 전에
돌아오겠다고 약속했다

 

그녀에겐 그것으로 충분했다

 

자 막 : 황 석 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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