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00:00:50,012 --> 00:00:54,811 그날은 펠레가 자고 있었어요 2 00:00:54,911 --> 00:00:57,551 사방이 깜깜했어요 3 00:00:59,303 --> 00:01:02,970 그런데 아빠가 보이지 않았어요 4 00:01:04,903 --> 00:01:08,370 그래서 펠레는 엄마 침대로 갔지만 5 00:01:08,470 --> 00:01:12,636 침대에는 엄마도 보이지 않았죠 6 00:01:12,736 --> 00:01:16,403 엄마 아빠는 어디로 가버린 걸까요? 7 00:01:28,636 --> 00:01:31,059 엄마! 8 00:01:31,159 --> 00:01:33,736 이리 오렴 9 00:01:43,463 --> 00:01:48,129 여기 대고 말하는 거야 비에른, 이렇게 10 00:01:49,696 --> 00:01:54,712 '엄마'라고 해볼래? '엄마' 해봐 11 00:01:55,261 --> 00:01:56,144 엄마 12 00:01:56,244 --> 00:01:58,563 이런 꽃이 엉망이 되겠다 13 00:02:11,783 --> 00:02:14,984 안 돼 그거로 장난치지 마 14 00:02:26,143 --> 00:02:28,101 비에른 먼저 잘게 15 00:02:40,143 --> 00:02:43,476 오늘은 1962년 11월 16일입니다 16 00:02:43,934 --> 00:02:46,434 - 여보세요? - 안녕, 비에른 17 00:02:46,623 --> 00:02:48,957 잘 지내고 있니? 18 00:02:50,641 --> 00:02:51,597 잘 못 지냈어요 19 00:02:51,697 --> 00:02:53,200 정말? 20 00:02:54,609 --> 00:02:55,859 엄마는 집에 있니? 21 00:02:55,959 --> 00:02:57,271 아뇨 22 00:03:27,636 --> 00:03:32,670 1970년 2월의 어느 춥고 흐린 날 23 00:03:33,263 --> 00:03:37,036 영화감독 루키노 비스콘티가 스톡홀름으로 향한다 24 00:03:37,161 --> 00:03:40,164 비스콘티는 당시 영화계를 대표하는 감독이었고 25 00:03:40,403 --> 00:03:43,453 예술적 기교와 좋은 집안으로 유명했다 26 00:03:43,970 --> 00:03:47,036 이탈리아 북부 귀족 출신인 비스콘티는 27 00:03:47,170 --> 00:03:49,670 공산주의자였지만 집에서 하인을 부렸고 28 00:03:49,778 --> 00:03:51,861 공개적인 동성애자이다 29 00:03:53,411 --> 00:03:58,453 그런 비스콘티가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찾아 나섰다 30 00:03:59,176 --> 00:04:05,842 완벽하게 아름다운 소년을 찾아 새 영화의 주연을 맡기려 한다 31 00:04:08,170 --> 00:04:10,970 눈이 안 보여 무슨 색이지? 32 00:04:11,120 --> 00:04:13,083 이쪽을 보렴 33 00:04:13,183 --> 00:04:14,536 여기 봐 34 00:04:15,203 --> 00:04:16,670 녹색이군 35 00:04:16,936 --> 00:04:18,510 사랑스러워 36 00:04:19,753 --> 00:04:21,120 예쁜 얼굴이야 37 00:04:21,670 --> 00:04:23,703 사진 몇 장 찍자고 해 38 00:04:24,328 --> 00:04:27,311 비스콘티는 수년간 39 00:04:27,411 --> 00:04:30,661 헝가리, 폴란드, 핀란드 러시아를 돌아다녔다 40 00:04:36,620 --> 00:04:39,770 스톡홀름 그랜드 호텔 옆 대형 아파트에 41 00:04:39,870 --> 00:04:43,311 꿈에 부푼 소년들이 모여들었다 42 00:04:43,411 --> 00:04:44,948 아역 배우래요 43 00:04:45,048 --> 00:04:46,828 아역 배우라고? 44 00:04:50,763 --> 00:04:53,913 눈에 드는 아이가 있나요? 45 00:04:54,013 --> 00:04:55,173 아니, 아직 46 00:04:55,273 --> 00:04:59,453 다들 매력적인데 적임자는 못 찾았어 47 00:04:59,883 --> 00:05:02,373 문이 막 열릴 참이다 48 00:05:02,473 --> 00:05:06,540 문 뒤의 소년은 아직 모르고 있다 49 00:05:06,640 --> 00:05:10,745 자기 삶이 곧 완전히 달라질 것임을 50 00:05:11,923 --> 00:05:17,828 그의 얼굴은 하나의 아이콘이 되어 전 세계에 알려질 것이다 51 00:05:23,464 --> 00:05:29,203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년 52 00:05:40,281 --> 00:05:41,398 36번이죠? 53 00:05:41,498 --> 00:05:42,406 네 54 00:05:42,804 --> 00:05:43,910 몇 살이지? 55 00:05:44,388 --> 00:05:45,761 나이가 좀 있지? 56 00:05:46,245 --> 00:05:47,578 네, 15살이에요 57 00:05:47,678 --> 00:05:49,464 15살? 참 아름다워 58 00:05:50,769 --> 00:05:52,461 고개 돌려보렴 59 00:05:52,561 --> 00:05:54,686 옆모습 좀 보자 60 00:05:54,786 --> 00:05:57,449 사진 찍으면 잘 나오겠어요 61 00:05:57,549 --> 00:05:59,276 사진 좀 가져왔니? 62 00:05:59,794 --> 00:06:01,003 아뇨 63 00:06:01,737 --> 00:06:03,854 방 안을 한 바퀴 걸어볼래? 64 00:06:07,565 --> 00:06:09,158 키가 엄청 크군 65 00:06:12,068 --> 00:06:14,251 아름다워! 옷 벗어보라고 해 66 00:06:14,351 --> 00:06:15,445 윗옷 말이야 67 00:06:16,076 --> 00:06:16,586 네? 68 00:06:16,686 --> 00:06:18,087 윗옷 벗어볼래? 69 00:06:18,782 --> 00:06:20,733 상체가 드러나게 70 00:06:20,833 --> 00:06:21,629 상체요? 71 00:06:21,729 --> 00:06:23,392 카메라를 보라고 해 72 00:06:23,493 --> 00:06:25,884 카메라 보고 살짝 웃어봐 73 00:06:26,181 --> 00:06:27,394 정말 아름다워 74 00:06:27,494 --> 00:06:29,715 조금 더 걸어볼까? 75 00:06:31,660 --> 00:06:36,929 멈추라고 하고 클로즈업 꽉 차게 잡아! 76 00:06:37,029 --> 00:06:38,546 카메라를 봐 77 00:06:38,646 --> 00:06:42,578 그래, 아주 가깝게 얼굴만 말고 어깨까지 78 00:06:47,145 --> 00:06:48,355 카메라 보고 웃어봐 79 00:06:48,455 --> 00:06:49,661 카메라 보고 웃어 80 00:06:52,245 --> 00:06:54,070 사랑스러운 미소야 81 00:06:54,898 --> 00:06:56,603 고마워 이제 사진 찍자 82 00:06:56,703 --> 00:06:57,790 마리오! 83 00:06:59,358 --> 00:07:01,827 정면 클로즈업 찍고 84 00:07:01,927 --> 00:07:06,827 좌우 옆얼굴 클로즈업 탈의한 상체 풀숏으로 85 00:07:09,120 --> 00:07:11,687 정말 아름다운 얼굴이야 86 00:08:04,409 --> 00:08:09,102 임차인 조합입니다 세 가지 항목 중 87 00:08:09,202 --> 00:08:12,169 원하시는 항목의 번호를 누르세요 88 00:08:12,269 --> 00:08:16,377 네, 법률 상담을 받고 싶어서요 89 00:08:16,477 --> 00:08:19,489 어떡하면 되죠? 부동산은 잘 몰라서요 90 00:08:19,745 --> 00:08:25,102 현재 상황이랑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말해주시면 91 00:08:25,202 --> 00:08:26,853 도와드릴 방법을 찾아볼게요 92 00:08:26,953 --> 00:08:32,495 집주인이 나가라고 통보해서 고민이에요 93 00:08:33,203 --> 00:08:35,350 계약을 해지하겠대요 94 00:08:36,250 --> 00:08:37,328 그렇군요 95 00:08:40,033 --> 00:08:42,353 비에른 집주인 편지를 봤는데 96 00:08:42,453 --> 00:08:46,888 당신이 가스레인지를 켜놔서 다른 세입자까지 위험해졌대 97 00:08:46,988 --> 00:08:48,218 순 헛소리야 98 00:08:48,318 --> 00:08:49,402 응, 근데 여기 봐 99 00:08:49,502 --> 00:08:50,884 {\an8}예시카 벤베리 여자 친구 100 00:08:50,984 --> 00:08:53,020 나도 조심해 항상 확인한다고! 101 00:08:53,120 --> 00:08:56,410 자기가 조심하지 않는다는 게 아냐 102 00:08:56,510 --> 00:08:59,384 주방 환기팬도 너무 더럽대 103 00:08:59,678 --> 00:09:03,502 기름때가 끼면 불이 붙는대 104 00:09:03,602 --> 00:09:04,199 그렇군 105 00:09:04,299 --> 00:09:09,182 그래서 위험하다는 거야 깨끗이 청소해야지 106 00:09:09,704 --> 00:09:14,050 가스레인지 켜놓고 침대에 누워 잔 것도 107 00:09:14,150 --> 00:09:16,750 집주인이 다 알고 있으니 해명해야 해 108 00:09:16,850 --> 00:09:21,403 외출할 때도 가스레인지를 켜놨다면서? 109 00:09:21,503 --> 00:09:26,798 그리고 이불도 아까 들춰봤는데 110 00:09:26,995 --> 00:09:29,597 이렇게 들고 있었더니 다 바스러지더라 111 00:09:29,697 --> 00:09:34,609 기포 고무 같은 게 그대로 다 가루가 돼버렸어 112 00:09:34,709 --> 00:09:39,603 얼마나 낡고 더러운지 말도 못 하겠어 113 00:09:39,703 --> 00:09:42,686 베개는 남겨놨으니까 직접 한번 봐 114 00:09:42,786 --> 00:09:45,530 이 밑에 있어 봐! 115 00:09:46,740 --> 00:09:52,603 벌레 먹은 거 보여? 토할 거 같아, 진짜 끔찍해 116 00:09:52,703 --> 00:09:56,370 그 밑에 때가 이만큼 껴있더라고 117 00:09:57,203 --> 00:10:00,905 정체 모를 오물이 이만큼이나 있었어 118 00:10:01,194 --> 00:10:04,227 무슨 똥 같기도 하던데 119 00:10:05,036 --> 00:10:08,353 좀이나 다른 벌레가 싸놓은 똥인가 봐 120 00:10:10,422 --> 00:10:11,745 더러워 죽겠네 121 00:10:17,995 --> 00:10:20,424 내 집이 주변 환경에 해롭다니 122 00:10:20,524 --> 00:10:21,597 해롭지 123 00:10:21,841 --> 00:10:23,561 그런 거 같네 124 00:10:55,694 --> 00:10:59,302 '사이클론' 내가 이런 곡을 썼었나? 125 00:11:00,011 --> 00:11:01,720 놀랍네 126 00:11:14,578 --> 00:11:19,803 당시 전 덴마크의 끔찍한 기숙학교를 탈출해서 127 00:11:19,903 --> 00:11:23,620 스톡홀름에 있는 외조부모님 댁으로 갔어요 128 00:11:26,471 --> 00:11:29,563 부모님은 사실상 없다시피 했죠 129 00:11:29,663 --> 00:11:33,996 모든 걸 할머니가 도맡아 하셨어요 130 00:11:34,870 --> 00:11:38,436 온갖 서류에 저 대신 서명하셨어요 131 00:11:38,536 --> 00:11:41,911 전 그냥 할머니가 시키는 대로 했죠 132 00:11:44,961 --> 00:11:49,670 손주를 유명인으로 만들고 싶으셨나 봐요 133 00:11:52,828 --> 00:11:57,041 전 그때만 해도 그냥 음악을 연주하는 게 좋았어요 134 00:12:02,882 --> 00:12:08,982 그게 얼마나 큰 프로젝트인지 감조차 안 왔죠 135 00:12:10,203 --> 00:12:13,643 물론 외국에 나가서 즐겁긴 했어요 136 00:12:13,743 --> 00:12:16,101 처음 가보는 나라에 간다는 게 137 00:12:16,201 --> 00:12:19,974 학교를 벗어나 방학을 맞은 것처럼 좋았죠 138 00:12:20,786 --> 00:12:23,568 좋아 조금만 더 139 00:12:23,668 --> 00:12:25,334 조용히 해주세요! 140 00:12:33,870 --> 00:12:37,096 조각처럼 아름다운 소년 타치오는 141 00:12:37,196 --> 00:12:40,530 15살의 스웨덴 소년 비에른 안드레센이 연기합니다 142 00:12:41,923 --> 00:12:45,010 캐스팅하실 때 원한 얼굴이 있었나요? 143 00:12:45,110 --> 00:12:48,540 네, 정확하게 이런 얼굴이었죠 144 00:12:48,640 --> 00:12:49,890 똑같다고 보면 되나요? 145 00:12:49,990 --> 00:12:50,484 네 146 00:12:50,584 --> 00:12:53,938 여섯 번째로 들어온 소년이었는데 147 00:12:54,038 --> 00:12:56,138 보는 순간 알았어요 148 00:12:56,238 --> 00:12:59,759 금발에 완벽한 이목구비 회색 눈동자 149 00:12:59,859 --> 00:13:02,145 회색 눈동자 보이죠? 150 00:13:02,245 --> 00:13:06,911 토마스 만의 원작에 적힌 '물의 색' 그대로예요 151 00:13:08,370 --> 00:13:11,088 차가운 조각상 같은 연기를 주문했더니 152 00:13:11,188 --> 00:13:12,895 배역을 잘 이해하고 완벽히 연기했어요 153 00:13:12,995 --> 00:13:17,488 성적인 요소는 없어요 있다면 큰 패착이겠죠 154 00:13:19,259 --> 00:13:24,235 제가 비스콘티 옆에 서 있는데 한 금발 소년이 나타났어요 155 00:13:24,335 --> 00:13:25,578 {\an8}마르가레타 크란트 캐스팅 디렉터 156 00:13:26,322 --> 00:13:27,777 소년을 보자마자 157 00:13:27,877 --> 00:13:34,324 비스콘티가 온몸에 전율을 느낀 거 같더군요 158 00:13:37,277 --> 00:13:42,965 정말 아름다운 소년이었어요 카메라를 잘 받는 얼굴이었죠 159 00:13:44,148 --> 00:13:47,245 진짜 보물을 찾은 겁니다 160 00:13:47,543 --> 00:13:52,077 아직 어리지만 특별한 카리스마가 있었어요 161 00:13:53,495 --> 00:13:55,453 어딘가 연약해 보이기도 했죠 162 00:13:57,203 --> 00:14:02,706 그 모든 매력이 영화에 아름답게 담겼어요 163 00:14:05,222 --> 00:14:08,995 그런 아이는 아주 조심스럽게 다뤄야 해요 164 00:14:11,620 --> 00:14:17,910 '베니스에서의 죽음'은 베니스 근처의 리도섬에 있는 165 00:14:18,469 --> 00:14:19,867 그랜드 호텔 드 벵에서 촬영했다 166 00:14:20,703 --> 00:14:26,078 비스콘티는 오래전부터 토마스 만의 원작에 빠져있었는데 167 00:14:26,622 --> 00:14:31,780 거긴 세기말적 분위기를 풍기는 오래된 호텔이었다 168 00:14:32,161 --> 00:14:33,520 '베니스에서의 죽음'은 169 00:14:33,620 --> 00:14:37,745 비스콘티 개인적으로도 중요한 의미가 있는 이야기이다 170 00:14:38,245 --> 00:14:41,267 '베니스에서의 죽음'이란 단편에 관심을 갖게 된 건 171 00:14:41,367 --> 00:14:44,023 죽음이란 주제 때문인가요? 172 00:14:44,272 --> 00:14:49,982 단순한 죽음이 아닌 지적인 죽음을 다뤘기 때문입니다 173 00:14:50,082 --> 00:14:57,228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찾아 나선 어느 지식인의 이야기거든요 174 00:14:57,328 --> 00:15:02,145 그는 리도섬의 호텔 드 벵에서 완벽한 미소년을 만납니다 175 00:15:02,245 --> 00:15:07,536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찾는 순간 죽음을 눈에 담게 되죠 176 00:15:16,188 --> 00:15:18,367 {\an8}그랜드 호텔 드 벵 177 00:15:18,971 --> 00:15:22,271 할머니가 베니스에 따라왔어요 178 00:15:22,371 --> 00:15:26,830 슈퍼 8 카메라를 들고 와서 모든 걸 촬영하셨죠 179 00:15:27,533 --> 00:15:30,411 비스콘티한테 작은 배역까지 받고 기뻐하시더군요 180 00:15:33,828 --> 00:15:37,618 가정교사 미리암도 절 따라왔습니다 181 00:15:38,066 --> 00:15:41,730 제 공부를 도와주러 같이 간 거였어요 182 00:15:45,620 --> 00:15:47,827 넌 친동생 같았어 183 00:15:47,927 --> 00:15:51,971 널 보호해야 했는데 내게도 모든 게 새로웠지 184 00:15:52,071 --> 00:15:53,230 {\an8}미리암 삼볼 비에른의 가정교사 185 00:15:53,330 --> 00:15:56,630 그게 계약서에 명시된 내 역할이었는데 186 00:15:56,730 --> 00:15:58,861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어 187 00:16:07,189 --> 00:16:11,122 비스콘티가 제작진에게 명령을 내렸다고 하더군요 188 00:16:11,222 --> 00:16:14,786 제작진이 전부 동성애자였는데 189 00:16:15,556 --> 00:16:21,328 타치오에게 눈길도 주지 말라고 경고했다고 들었어요 190 00:16:22,696 --> 00:16:24,471 저도 모르는 사이에 191 00:16:24,571 --> 00:16:29,411 '그 분'께서 절 보호하고 계셨던 거죠 192 00:16:35,921 --> 00:16:38,788 영화는 순수한 사랑 이야기예요 193 00:16:38,888 --> 00:16:41,561 성적이고 야한 이야기가 아니에요 194 00:16:41,661 --> 00:16:47,217 완벽한 사랑을 추구하는 숭고한 사랑에 관한 이야기죠 195 00:16:47,317 --> 00:16:49,584 제작자 구하기가 쉽지 않았겠어요 196 00:16:49,684 --> 00:16:54,963 나이 든 작곡가와 사춘기 소년의 사랑을 다룬 이야기라 197 00:16:55,063 --> 00:16:56,750 논란이 될 수도 있잖아요 198 00:16:57,476 --> 00:16:59,810 이미 논란이 됐어요 199 00:16:59,910 --> 00:17:04,311 한 제작자는 타치오를 소녀로 바꾸자고 했어요 200 00:17:04,411 --> 00:17:08,603 단칼에 거절했어요 타치오가 '타치아'가 될 순 없죠 201 00:17:08,703 --> 00:17:11,036 작가의 의도에 반하는 거잖아요? 202 00:17:12,036 --> 00:17:17,536 비에른은 자신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소년을 203 00:17:17,842 --> 00:17:20,245 연기해야 했어요 204 00:17:20,438 --> 00:17:24,539 대부분 사람은 비스콘티를 무서워했어요 205 00:17:24,661 --> 00:17:29,072 카리스마가 대단한 분이셨거든요 206 00:17:29,172 --> 00:17:36,506 눈매도 매섭고 목소리도 근엄하죠 207 00:17:36,606 --> 00:17:38,245 상대가 누구든 봐주는 게 없었어요 208 00:17:44,453 --> 00:17:49,155 비스콘티가 촬영하면서 제게 한 주문이 많진 않아요 209 00:17:49,991 --> 00:17:53,327 요약하자면 네 가지로 정리돼요 210 00:17:54,378 --> 00:17:59,526 가, 멈춰 돌아, 웃어 211 00:18:01,456 --> 00:18:05,657 아센바흐가 본 소년은 흠 하나 없이 완벽했다 212 00:18:06,776 --> 00:18:09,638 새하얀 얼굴에 내성적이면서도 우아한 213 00:18:10,328 --> 00:18:15,055 토마스 만은 타치오를 벌꿀색 머리카락을 지닌 214 00:18:15,155 --> 00:18:18,078 그리스 신화 속 신처럼 묘사했지만 215 00:18:20,828 --> 00:18:27,286 사실 그 소년은 인간이 아닌 죽음을 불러오는 천사였다 216 00:18:34,680 --> 00:18:38,338 {\an8}'베니스에서의 죽음' 세계 최초 상영 217 00:18:42,601 --> 00:18:45,478 1971년 3월 1일 런던에서 218 00:18:45,578 --> 00:18:49,042 '베니스에서의 죽음'이 최초로 공개되는데 219 00:18:49,142 --> 00:18:52,661 엘리자베스 여왕과 앤 공주가 참석한다 220 00:18:55,336 --> 00:18:58,920 비스콘티는 그 자리에서 처음으로 221 00:18:59,020 --> 00:19:03,536 비에른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년이라고 칭한다 222 00:19:04,569 --> 00:19:08,514 비에른을 평생 따라다닐 꼬리표가 생긴 것이다 223 00:19:08,686 --> 00:19:11,148 {\an8}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년 224 00:19:11,248 --> 00:19:14,289 {\an8}비에른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년' 225 00:19:14,389 --> 00:19:19,515 그로부터 2개월 후 칸 영화제에서 영화가 상영되면서 226 00:19:19,615 --> 00:19:22,203 비에른은 본격적인 인기를 누리게 된다 227 00:19:25,831 --> 00:19:30,248 1971년 칸 영화제가 벌써 25년이 됐습니다 228 00:19:30,348 --> 00:19:33,068 검은 타이를 매고 미소 짓는 스타들을 229 00:19:33,168 --> 00:19:35,223 사진기자들이 반갑게 반깁니다 230 00:19:35,323 --> 00:19:39,498 25회 심사 위원단이 비스콘티와 자리를 함께했습니다 231 00:19:39,598 --> 00:19:43,245 팔레 데 페스티발에 수많은 인파가 몰려서 232 00:19:43,453 --> 00:19:46,786 오늘 밤에 열릴 개막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233 00:19:51,848 --> 00:20:00,758 영화는 칸 영화제를 기점으로 돌풍을 일으키기 시작했어요 234 00:20:00,858 --> 00:20:03,835 그때부터 세상이 떠들썩해졌습니다 235 00:20:07,633 --> 00:20:11,079 '베니스에서의 죽음'을 감독한 비스콘티는 236 00:20:11,179 --> 00:20:14,078 올해도 수상 후보로 점쳐지고 있습니다 237 00:20:18,600 --> 00:20:22,216 조명이 눈을 쏴서 안 보여요 이제 좀 낫네요 238 00:20:22,316 --> 00:20:25,186 그냥 뒤를 비추세요 질문 있나요? 239 00:20:25,286 --> 00:20:29,010 몇 가지 질문해도 될까요 비스콘티 씨? 240 00:20:29,110 --> 00:20:30,403 다 물어보세요 241 00:20:30,503 --> 00:20:34,895 더크 보가드의 연기력은 모두가 잘 알고 있지만 242 00:20:34,995 --> 00:20:37,728 비에른 안드레센은 어떻게 발굴하신 거죠? 243 00:20:37,828 --> 00:20:40,061 비에른을 대신해 제가 설명해 드릴게요 244 00:20:40,161 --> 00:20:43,428 비에른은 프랑스어가 서툴러서 이해해 줄 겁니다 245 00:20:43,528 --> 00:20:45,728 스톡홀름에 가서 246 00:20:45,828 --> 00:20:50,620 스웨덴 소년들 오디션을 본 첫째 날이었는데 247 00:20:50,860 --> 00:20:56,936 그날 다섯 번째 들어온 참가자가 비에른 안드레센 군이었죠 248 00:20:57,036 --> 00:21:01,270 타치오를 연기할 적임자란 걸 보자마자 직감했어요 249 00:21:01,370 --> 00:21:04,770 머리부터 발끝까지 몸을 속속들이 촬영했습니다 250 00:21:04,870 --> 00:21:06,663 기억하지? 251 00:21:07,379 --> 00:21:08,953 타치오를 찾은 겁니다 252 00:21:09,245 --> 00:21:13,495 그때는 더 예뻤는데 지금은 나이를 좀 먹었어요 253 00:21:13,870 --> 00:21:16,126 지금은 키도 크고 머리도 너무 길었죠 254 00:21:16,226 --> 00:21:18,500 그때가 더 미소년이었어요 255 00:21:18,600 --> 00:21:22,319 자기도 모르는 사이 몸이 변하기 시작한 거죠 256 00:21:22,419 --> 00:21:23,745 곧 멋진 청년이 될 거예요 257 00:21:25,698 --> 00:21:27,871 하지만 지금은 어중간한 나이예요 258 00:21:28,120 --> 00:21:30,311 지금이 15살이던가요? 259 00:21:30,411 --> 00:21:33,916 16살이군요 엄청 늙었네요 260 00:21:41,370 --> 00:21:44,258 전 그냥 겁에 질렸던 거 같아요 261 00:21:45,868 --> 00:21:53,968 박쥐 떼에 24시간 둘러싸여 사는 것만 같았죠 262 00:21:57,218 --> 00:21:59,559 일상이 악몽으로 변했습니다 263 00:22:04,549 --> 00:22:07,916 사람들이 갑자기 절 우러러보더군요 264 00:22:11,350 --> 00:22:12,835 절 알아보기도 하고 265 00:22:13,875 --> 00:22:15,792 심지어 아부까지 했어요 266 00:22:19,524 --> 00:22:21,890 갑자기 날 좋아해 주니 당황스러웠어요 267 00:22:23,376 --> 00:22:28,610 그게 자존감 형성에 악영향을 미친 거 같아요 268 00:22:28,710 --> 00:22:33,901 상대가 날 진심으로 좋아하는 건지 못 믿겠더군요 269 00:22:34,453 --> 00:22:40,351 비스콘티가 한 말 때문에 부담이 더 커졌죠 270 00:22:40,451 --> 00:22:45,620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년이라고 선포해 버렸잖아요 271 00:22:55,120 --> 00:22:58,725 정성 들여 화장해 보려 했는데 망쳐버렸네 272 00:23:00,328 --> 00:23:04,568 아, 몰라 어차피 아무도 모를 거야 273 00:23:05,131 --> 00:23:06,464 됐다 274 00:23:07,396 --> 00:23:09,837 나도 됐어 275 00:23:10,078 --> 00:23:11,448 나 괜찮아? 276 00:23:11,548 --> 00:23:13,036 아주 좋아 277 00:23:13,536 --> 00:23:16,520 검은 양말 신어 그거 벗고 278 00:23:16,620 --> 00:23:19,265 부츠 신으면 돼 279 00:23:19,365 --> 00:23:20,710 그거 좀 다시 해봐 280 00:23:21,198 --> 00:23:22,911 응, 알았어 281 00:23:24,578 --> 00:23:25,255 비에른 282 00:23:25,355 --> 00:23:27,225 응, 내가 열게 283 00:23:29,703 --> 00:23:31,272 - 안녕하세요 - 안녕하세요 284 00:23:31,372 --> 00:23:32,353 얼굴이 좋아 보이세요 285 00:23:32,453 --> 00:23:33,145 정말요? 286 00:23:33,245 --> 00:23:34,590 안녕하세요 287 00:23:34,836 --> 00:23:36,572 전 예시카예요 288 00:23:36,672 --> 00:23:37,366 전 에바요 289 00:23:37,466 --> 00:23:38,353 반가워요 에바 290 00:23:38,453 --> 00:23:41,418 저번에 왔을 때는 가스레인지를 켜놨더라고요 291 00:23:41,518 --> 00:23:42,465 네, 맞아요 292 00:23:42,565 --> 00:23:44,645 집 상태가 정말 안 좋았죠 293 00:23:44,745 --> 00:23:47,020 네, 맞아요 294 00:23:47,120 --> 00:23:54,418 그때는 가스레인지를 계속 켜놓고 살았거든요 295 00:23:54,518 --> 00:23:56,832 특히 겨울엔 쭉 켜놨죠 296 00:23:56,932 --> 00:23:59,002 켜놓고 주방에 앉아있었지? 297 00:23:59,102 --> 00:24:00,145 응 298 00:24:00,245 --> 00:24:05,467 근데 주방을 안 쓸 때도 너무 추워서 계속 켜놨어 299 00:24:05,567 --> 00:24:08,688 그게 정상적인 행동은 아니잖아요 300 00:24:08,788 --> 00:24:11,728 건물 난방만으로 충분하실 텐데요 301 00:24:11,828 --> 00:24:13,625 우유 넣을까요 에바? 302 00:24:13,725 --> 00:24:14,862 아뇨 303 00:24:14,962 --> 00:24:15,852 설탕은요? 304 00:24:15,952 --> 00:24:16,615 그냥 주세요 305 00:24:16,715 --> 00:24:17,572 이거면 돼요? 306 00:24:17,672 --> 00:24:19,344 네, 고마워요 307 00:24:20,187 --> 00:24:21,292 어떤 관계시죠? 308 00:24:21,392 --> 00:24:23,186 여자 친구 예시카예요 309 00:24:23,286 --> 00:24:28,107 아, 기억나요 어제 저한테 전화하셨죠? 310 00:24:29,078 --> 00:24:33,703 지난 월요일에 있었던 일부터 설명해 볼게요 311 00:24:34,967 --> 00:24:39,228 어디부터 설명하면 좋을지 잘 모르겠네요 312 00:24:39,328 --> 00:24:41,936 당신도 그런 적은 처음이었잖아 313 00:24:42,036 --> 00:24:49,415 맞아요, 제가 판단 능력이 아예 없는 사람은 아니에요 314 00:24:49,515 --> 00:24:54,603 자거나 외출할 때는 가스를 꼭 잠급니다 315 00:24:54,703 --> 00:24:58,359 근데 세입자가 원하는 대로 집을 꾸미는 거랑 316 00:24:58,459 --> 00:25:03,818 세입자의 의무를 지키는 건 별개의 문제예요 317 00:25:04,268 --> 00:25:06,668 집주인께서 좋아하실 소식도 있어요 318 00:25:06,768 --> 00:25:11,268 비에른은 동물 같은 건 한 마리도 안 키운답니다 319 00:25:11,368 --> 00:25:15,271 곤충이나 벌레 한 마리도 없어요 320 00:25:15,371 --> 00:25:19,228 - 어떻게 보면 대단한 거죠 - 그건 마음에 드네요 321 00:25:19,328 --> 00:25:20,908 담배 연기로 죽였어요 322 00:25:21,008 --> 00:25:23,978 요즘엔 발코니에서 피워요 323 00:25:24,078 --> 00:25:27,323 비에른이 사실 정리는 엄청 잘해요 324 00:25:27,423 --> 00:25:30,603 그래 보여요 앞으로는 별일 없겠죠 325 00:25:30,703 --> 00:25:33,902 이웃 불편하게 한 적도 한 번도 없었고요 326 00:25:34,002 --> 00:25:38,211 그래도 당신이 그런 건 잘 지키잖아 327 00:25:38,844 --> 00:25:40,349 - 응 - 앞으론 잘하시겠죠 328 00:25:41,453 --> 00:25:43,703 문도 좀 닦아야겠다 329 00:25:51,828 --> 00:25:55,078 세상에! 정말 다행이야! 330 00:25:55,328 --> 00:26:00,161 비에른, 진짜 좋다 이제야 마음이 놓여 331 00:26:04,276 --> 00:26:05,339 그래 축배를 들자 332 00:26:05,439 --> 00:26:06,520 응, 마시자 333 00:26:06,620 --> 00:26:08,411 코가 비뚤어지게 334 00:26:10,163 --> 00:26:12,679 열흘간 청소한 보상이야 335 00:26:12,779 --> 00:26:13,895 일단 담배부터 피울래 336 00:26:13,995 --> 00:26:15,950 지금 당장 당장 337 00:26:16,468 --> 00:26:17,368 응 338 00:26:18,481 --> 00:26:19,830 침대부터 사자 339 00:26:20,335 --> 00:26:21,811 그게 제일 시급해 340 00:26:21,911 --> 00:26:27,277 지금처럼 자는 건 정말 아닌 거 같아 341 00:26:27,995 --> 00:26:29,355 울지 마 자기 342 00:26:29,455 --> 00:26:33,020 내가 인간 같지도 않은 인간처럼 느껴졌거든 343 00:26:33,120 --> 00:26:34,453 우리 자기 344 00:26:44,470 --> 00:26:47,370 이제야 사람 된 기분이야 345 00:26:47,470 --> 00:26:49,269 울지 마 346 00:26:53,286 --> 00:26:54,670 눈물은 무슨 맛일까? 347 00:26:55,599 --> 00:26:56,620 모르지 348 00:27:15,911 --> 00:27:17,630 영화 개봉일에 파티가 열렸어요 349 00:27:19,784 --> 00:27:22,453 넌 이제 쓸모를 다했다고 말하는 거 같더군요 350 00:27:24,203 --> 00:27:26,201 촬영은 끝났으니까 351 00:27:27,236 --> 00:27:30,161 날 갖고 놀라고 세상에 던져주는 거 같았죠 352 00:27:32,752 --> 00:27:35,145 할머니는 이미 자러 가고 없었어요 353 00:27:35,245 --> 00:27:39,578 사람들 손에 절 그냥 맡겨버린 거예요 354 00:27:43,453 --> 00:27:46,087 전 목적지도 모르고 따라갔어요 355 00:27:46,187 --> 00:27:52,486 난 게이 클럽은 고사하고 나이트클럽도 안 가봤어요 356 00:27:52,647 --> 00:27:54,880 더구나 루키노가 있었지요 357 00:27:55,036 --> 00:27:57,799 그날 일이 아직도 기억나요 358 00:27:59,877 --> 00:28:03,995 붉은 벨벳 벽지 번쩍이는 검은 페인트 359 00:28:04,930 --> 00:28:07,971 그런 경험은 태어나서 처음 해봤어요 360 00:28:08,071 --> 00:28:11,686 사람들이 욕망에 가득 찬 눈빛으로 361 00:28:11,786 --> 00:28:17,171 그들은 날 기분 좋게 빨아 준다 여겼겠지요 362 00:28:21,370 --> 00:28:25,000 펠라티오라도 당한 기분이었습니다 363 00:28:27,995 --> 00:28:32,986 그래서 전 술만 계속 마셨습니다 364 00:28:33,086 --> 00:28:37,127 세상과 날 차단하려고 닥치는 대로 마셨어요 365 00:28:41,507 --> 00:28:43,476 숙소에 어떻게 돌아갔는지도 모르겠어요 366 00:28:55,501 --> 00:28:59,804 비에른은 타치오를 연기하며 하루아침에 유명해졌고 367 00:29:00,128 --> 00:29:01,326 전 세계가 비에른을 원했다 368 00:29:01,426 --> 00:29:03,088 {\an8}비스콘티의 잔혹한 아이러니 369 00:29:03,188 --> 00:29:05,397 {\an8}베니스에서의 어느 특별한 죽음 370 00:29:05,506 --> 00:29:09,235 비에른은 비스콘티와의 계약에 묶여 371 00:29:09,335 --> 00:29:13,228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년으로 남아야 했다 372 00:29:13,328 --> 00:29:19,161 비에른의 얼굴은 3년간 비스콘티의 소유물이었다 373 00:29:24,015 --> 00:29:28,753 여러 신문에 실린 비에른의 기사를 오려놨어요 374 00:29:28,853 --> 00:29:32,031 그중에는 진짜 불행해 보이는 사진도 있어요 375 00:29:32,131 --> 00:29:34,324 응, 진짜 외로웠거든 376 00:29:35,425 --> 00:29:37,434 기자들이 집 앞에 떼로 몰려든 사진도 있어요 377 00:29:37,534 --> 00:29:38,516 {\an8}안 라예르스트룀 친구 378 00:29:38,616 --> 00:29:40,811 영화 첫 상영이 끝났을 땐데 379 00:29:40,911 --> 00:29:47,027 너희 집 앞에 편지가 매일 한 자루씩 쏟아졌잖아 380 00:29:47,157 --> 00:29:47,853 일본에서 381 00:29:47,953 --> 00:29:49,452 거의 일본에서 왔지 382 00:29:49,552 --> 00:29:53,386 비에른한테 푹 빠진 남자들 편지도 많았어요 383 00:29:53,853 --> 00:29:56,302 당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384 00:29:56,402 --> 00:30:02,881 할머니는 비에른이 스타가 돼서 기뻐하셨지만 385 00:30:03,120 --> 00:30:03,757 난? 386 00:30:03,857 --> 00:30:06,936 비에른은 심드렁했거든요 387 00:30:07,036 --> 00:30:09,436 할머니는 '비에른의 할머니'라고 불렸죠 388 00:30:09,536 --> 00:30:11,856 비에른의 할머니가 맞긴 하지 389 00:30:15,370 --> 00:30:17,850 할머니 댁에서 도망치기도 했잖아 390 00:30:17,950 --> 00:30:22,161 집에 있으면 다툼이 잦았거든 391 00:30:23,206 --> 00:30:26,870 그런데 영화가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서 392 00:30:27,245 --> 00:30:29,686 비에른이 어찌해 볼 새도 없이 393 00:30:29,786 --> 00:30:32,853 폭풍 속으로 빨려 들어간 거 같았어요 394 00:30:32,953 --> 00:30:34,420 맞아 395 00:30:35,078 --> 00:30:39,828 그러다 일본으로 갔는데 거기부터는 저도 잘 몰라요 396 00:30:40,693 --> 00:30:44,828 일본에 간 뒤로 한동안 비에른을 못 봤거든요 397 00:30:55,828 --> 00:31:02,286 비스콘티 감독의 '베니스에서의 죽음'을 보고 398 00:31:02,463 --> 00:31:04,606 {\an8}사와타리 하지메 사진작가 399 00:31:04,706 --> 00:31:07,116 제 주변 사람 모두가 비에른의 팬이 됐어요 400 00:31:07,216 --> 00:31:14,684 다들 '비에른, 비에른'을 입에 달고 살았죠 401 00:31:15,911 --> 00:31:20,286 그게 50년 전이니까 거의 반세기가 지났네요 402 00:31:20,619 --> 00:31:23,828 일본에 서양인이 많이 없던 때라 그랬는지 403 00:31:24,870 --> 00:31:28,620 일본인들은 비에른에게 열광했습니다 404 00:31:31,745 --> 00:31:37,495 최초의 서양 아이돌 비에른이 일본에 도착한다 405 00:31:38,272 --> 00:31:42,853 영화에 나온 의상부터 모든 게 준비돼 있었다 406 00:31:42,953 --> 00:31:45,994 소니의 수석 프로듀서는 407 00:31:46,094 --> 00:31:50,752 비에른이 부를 팝송의 반주를 미리 녹음해 놨고 408 00:31:50,852 --> 00:31:54,828 광고에 비에른의 얼굴을 실으려고 촬영팀도 대기하고 있었다 409 00:31:58,495 --> 00:32:01,211 이게 꿈인가 싶더군요 410 00:32:01,311 --> 00:32:05,566 초현실적인 막 같은 것에 둘러싸여서 411 00:32:05,666 --> 00:32:09,008 세상을 바라보는 느낌이었습니다 412 00:32:12,386 --> 00:32:18,341 '환영해요, 비에른'이 적힌 현수막과 포스터도 걸어놓고 413 00:32:18,441 --> 00:32:22,222 제 머리카락을 잘라서 가지려고 가위를 가져온 이도 있었어요 414 00:32:24,203 --> 00:32:26,717 비현실적인 꿈을 꾸는 기분이었어요 415 00:32:30,495 --> 00:32:35,650 다음에 관심을 모을 인물은 누구일지 416 00:32:35,995 --> 00:32:37,859 사람들과 논의하곤 했는데 417 00:32:38,001 --> 00:32:40,411 그때 이 청년이 눈에 들어왔죠 418 00:32:40,794 --> 00:32:46,961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년이 아닐까 419 00:32:51,953 --> 00:32:54,745 그때도 이 엘리베이터를 탔어요 420 00:32:54,870 --> 00:32:56,859 이 버튼이 기억나네요 421 00:32:57,203 --> 00:33:02,028 1971년에는 버튼이 흔하지 않았거든요 422 00:33:02,128 --> 00:33:05,870 이 엘리베이터가 확실해요 내리시죠 423 00:33:08,995 --> 00:33:10,828 716호라고 했나요? 424 00:33:27,411 --> 00:33:28,594 좋은 아침입니다 425 00:33:28,694 --> 00:33:30,786 안녕하세요 426 00:33:36,120 --> 00:33:36,970 비에른! 427 00:33:37,070 --> 00:33:38,245 맥스! 428 00:33:39,203 --> 00:33:42,503 {\an8}맥스 세키 매니저 429 00:33:42,632 --> 00:33:43,973 정말 반가워요 430 00:33:44,073 --> 00:33:48,272 진짜 반갑네요 수염을 길렀군요 431 00:33:48,661 --> 00:33:52,020 저도 예전에는 콧수염 길렀던 거 기억나요? 432 00:33:52,120 --> 00:33:53,495 네, 기억하죠 433 00:33:58,620 --> 00:34:03,328 그 당시만 하더라도 비에른은 정말 아름다웠어요 434 00:34:05,661 --> 00:34:08,320 일단 비에른은 백인이었고 435 00:34:09,041 --> 00:34:09,941 네 436 00:34:11,703 --> 00:34:15,078 머리색도 곱고 옅었어요 437 00:34:16,245 --> 00:34:20,120 아이돌의 조건을 다 갖춘 셈이죠 438 00:34:21,161 --> 00:34:25,286 비에른을 홍보하려고 유명 사진작가도 모셨어요 439 00:34:26,302 --> 00:34:30,745 사진도 잘 나오고 비스콘티의 명성도 등에 업어서 440 00:34:31,578 --> 00:34:35,763 당신 주위의 모든 것이 최고였어요 441 00:34:37,453 --> 00:34:40,620 정말 대혼란이었죠 442 00:34:41,084 --> 00:34:46,228 제가 하고 싶어서 한 일이 아니었거든요 443 00:34:46,328 --> 00:34:50,950 할머니의 잔소리에 시달리다 내린 결정이었죠 444 00:34:51,050 --> 00:34:54,103 일본에 가서 새로운 나라도 구경하고 445 00:34:54,203 --> 00:34:56,036 돈 벌라고 잔소리하셨거든요 446 00:34:56,578 --> 00:35:01,032 이해해요 그때 당신은 너무 어렸어요 447 00:35:03,705 --> 00:35:07,435 비에른에게 아무런 설명도 해주지 않고 448 00:35:08,328 --> 00:35:11,495 촬영이 시작되고는 했어요 449 00:35:13,239 --> 00:35:18,353 그저 시키는 대로 하는 수밖에 없었죠 450 00:35:18,453 --> 00:35:22,686 비에른 입장에선 많이 힘들었겠지만 451 00:35:22,786 --> 00:35:29,495 비에른의 감정까지 헤아릴 수 있는 작업 환경이 아니었어요 452 00:35:36,354 --> 00:35:39,870 비에른의 인기가 그때 정점을 찍었어요 453 00:35:40,203 --> 00:35:48,203 하룻밤에 행사만 6, 7개를 뛰었으니까 대단했죠 454 00:35:48,483 --> 00:35:54,286 불행하게도 당신은 마치 꿈속에 있는 것 같았어요 455 00:35:55,286 --> 00:35:59,804 네, 거기서 벗어나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456 00:35:59,904 --> 00:36:04,531 {\an8}'영원히 둘이서' 비에른 안드레센 노래 457 00:36:04,935 --> 00:36:10,036 빨간색 알약을 두세 개 주더군요 458 00:36:10,623 --> 00:36:13,161 먹으면 기분이 좋아진댔어요 459 00:36:20,120 --> 00:36:24,036 비에른은 누군가의 지시에 따라 포즈를 취하는 게 460 00:36:24,817 --> 00:36:26,579 썩 내키진 않았을 거예요 461 00:36:28,911 --> 00:36:31,120 '베니스에서의 죽음'에서 462 00:36:31,661 --> 00:36:36,703 비에른은 완벽한 '미소년'을 상징합니다 463 00:36:38,370 --> 00:36:44,411 거긴 동성애적인 요소도 분명 들어가 있어요 464 00:36:55,161 --> 00:36:57,178 콘서트도 열었어 465 00:36:57,278 --> 00:36:59,281 몇 곡 불렀지? 466 00:36:59,661 --> 00:37:02,203 글쎄 그때도 빨간 약을 먹었어 467 00:37:04,446 --> 00:37:05,723 충격이다 468 00:37:05,823 --> 00:37:08,328 응 1971년이었으니까 469 00:37:08,428 --> 00:37:10,703 뭐가 됐든 그건 아동 학대야 470 00:37:11,436 --> 00:37:14,199 난 뭔지도 모르고 약을 받아먹었어 471 00:37:14,299 --> 00:37:17,020 - 암페타민인가? - 전혀 몰라 472 00:37:17,120 --> 00:37:18,330 스테솔리드? 473 00:37:18,430 --> 00:37:19,995 뭔지는 모르겠어 474 00:37:20,269 --> 00:37:22,470 어쨌든 무대에 올라갔더니 475 00:37:23,220 --> 00:37:24,978 지시를 내리더라 476 00:37:25,078 --> 00:37:29,023 잠깐, 잘 이해가 안 돼서 그래 기다려 봐 477 00:37:29,123 --> 00:37:30,340 - 내 말이 빨라? - 아니 478 00:37:30,440 --> 00:37:31,963 속상해서 그래 479 00:37:32,756 --> 00:37:34,539 50년도 더 된 일이야 480 00:37:34,639 --> 00:37:36,078 슬픈 걸 어떡해 481 00:37:41,477 --> 00:37:42,807 슬퍼하지 마 482 00:37:42,907 --> 00:37:45,020 슬퍼 슬픈 얘기잖아 483 00:37:45,120 --> 00:37:48,286 그런 끔찍한 일을 당했다니 484 00:37:56,661 --> 00:37:58,745 비에른을 처음 봤을 때 485 00:37:58,921 --> 00:38:02,990 '세상에 저런 사람도 있구나' 무척 놀랐습니다 486 00:38:03,090 --> 00:38:04,365 {\an8}사카이 마사토시 음악 프로듀서 487 00:38:04,465 --> 00:38:07,311 표정부터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겼고 488 00:38:07,411 --> 00:38:10,411 후광이 비치는 거 같았어요 489 00:38:10,631 --> 00:38:15,083 근데 10대 소년치고는 뭔가 어두운 면이 있었어요 490 00:38:15,674 --> 00:38:20,661 그런 입체적인 매력에 저도 빠졌던 거 같아요 491 00:38:20,953 --> 00:38:24,995 비에른은 아이돌 문화를 탄생시킨 원조 아이돌이에요 492 00:38:26,427 --> 00:38:31,078 비에른은 보기 드문 어두운 매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493 00:38:31,245 --> 00:38:34,411 비스콘티 같은 명감독에게 인정받았다는 건 494 00:38:34,828 --> 00:38:37,983 축복이자 짐이 됐을 거예요 495 00:38:38,620 --> 00:38:43,020 일본에도 구로사와 감독의 인정을 받았지만 496 00:38:43,120 --> 00:38:47,283 배우 생활을 하는 내내 고생한 배우들이 있거든요 497 00:38:48,406 --> 00:38:55,159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그게 비에른의 운명이었던 거예요 498 00:38:56,810 --> 00:39:01,495 그래서 꼭 음반을 내고 싶다고 비에른에게 부탁했어요 499 00:39:03,265 --> 00:39:10,771 난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 500 00:39:10,871 --> 00:39:15,436 사랑하게 될 그날까지 501 00:39:15,536 --> 00:39:18,670 일본어는 쉬운 언어가 아닌데도 502 00:39:18,770 --> 00:39:24,370 비에른은 귀가 좋아서 일본어 노래를 금방 익혔어요 503 00:39:24,696 --> 00:39:26,588 {\an8}'영원히 둘이서' 비에른 안드레센 노래 504 00:39:29,690 --> 00:39:31,645 세상의 꽃들은 왜 이제야 꽃을 피울까요? 505 00:39:31,745 --> 00:39:38,263 소니는 비에른의 노래를 TV 광고에도 활용하려 했어요 506 00:39:40,370 --> 00:39:45,694 날 위해 울어준 그대에게 507 00:39:50,673 --> 00:39:52,526 심장이 요동친다 508 00:39:53,151 --> 00:39:55,817 사랑이 깨어난다 509 00:39:56,995 --> 00:40:00,453 메이지 초콜릿 엑셀! 510 00:40:07,106 --> 00:40:12,828 두근거리는 가슴에서 511 00:40:13,453 --> 00:40:19,296 사랑을 느껴버렸어요 512 00:40:19,870 --> 00:40:24,293 그것은 진실한 나의 마음 513 00:40:26,161 --> 00:40:31,651 달콤한 눈물을 흘려준 그대여 514 00:40:53,370 --> 00:40:54,853 예시카! 515 00:41:02,139 --> 00:41:04,181 - 예시카? - 응? 516 00:41:05,094 --> 00:41:06,369 몇 시야? 517 00:41:07,578 --> 00:41:09,526 이제 일어나야 해 518 00:41:10,789 --> 00:41:11,689 예시 519 00:41:12,620 --> 00:41:14,078 예시카 520 00:41:17,328 --> 00:41:18,821 예시카! 521 00:41:18,953 --> 00:41:21,863 11시랬어? 12시랬어? 522 00:41:22,653 --> 00:41:23,700 11시 523 00:41:25,897 --> 00:41:27,802 15분 지났는데 524 00:41:44,590 --> 00:41:49,755 어린 소녀들이 보는 소녀 만화에선 525 00:41:49,855 --> 00:41:52,964 주인공의 아름다운 얼굴이 제일 중요해요 526 00:41:53,064 --> 00:41:54,718 {\an8}이케다 리요코 만화가 527 00:41:54,818 --> 00:41:57,078 '베니스에서의 죽음'이 개봉했을 때 528 00:41:57,495 --> 00:42:02,228 저런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529 00:42:02,328 --> 00:42:10,380 '남자가 저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구나' 했죠 530 00:42:11,221 --> 00:42:14,851 누구든 태어나서 한 살씩 나이를 먹다 보면 531 00:42:14,951 --> 00:42:17,851 미모가 절정에 이르게 되는데 532 00:42:17,951 --> 00:42:21,228 그 영화가 그 순간을 잘 포착했더군요 533 00:42:21,328 --> 00:42:27,578 비에른이 더할 나위 없이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을 담은 거죠 534 00:42:34,585 --> 00:42:37,426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535 00:42:40,943 --> 00:42:46,370 당대 만화가들은 비에른의 얼굴에서 영감을 받았다 536 00:42:46,593 --> 00:42:51,186 젊고 급진적인 페미니스트였던 이케다 리요코는 537 00:42:51,286 --> 00:42:55,445 1971년, 일본을 대표하는 만화가로 발돋움했다 538 00:42:56,221 --> 00:43:02,800 일본의 모든 만화가는 비에른에게 깊은 영감을 받았어요 539 00:43:02,900 --> 00:43:07,531 저마다의 방식으로 비에른을 흡수했죠 540 00:43:07,995 --> 00:43:12,414 제 만화 '베르사유의 장미'의 등장인물 오스칼은 541 00:43:12,514 --> 00:43:16,657 남장을 하고 다니는 여자아이예요 542 00:43:16,757 --> 00:43:23,193 오스칼은 비에른을 모델 삼아서 만든 캐릭터니까 543 00:43:23,786 --> 00:43:30,495 전 40-45년간 비에른을 그려온 셈이죠 544 00:43:30,675 --> 00:43:33,157 앙드레 네가 다치는 건 싫어 545 00:43:35,596 --> 00:43:38,163 그럼 가볼게 오스칼 546 00:43:38,479 --> 00:43:43,796 사랑이 괴로움이라면 얼마든지 괴로워하자 547 00:43:43,896 --> 00:43:49,585 이 마음 그대 가슴에 548 00:43:49,685 --> 00:43:55,633 언젠가 닿을 때까지 549 00:43:55,733 --> 00:44:00,103 그대는 빛 나는 그림자 550 00:44:00,203 --> 00:44:05,828 비에른의 얼굴에는 슬픔이 어려있어요 551 00:44:06,595 --> 00:44:11,610 우린 비에른의 겉모습에만 열광했던 거 같아요 552 00:44:11,710 --> 00:44:17,036 자기를 그렇게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553 00:44:17,443 --> 00:44:22,036 비에른에게 상처가 됐을 수도 있지만 554 00:44:22,314 --> 00:44:26,690 비에른의 내면에도 관심이 많았다는 걸 555 00:44:26,790 --> 00:44:28,574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556 00:45:55,293 --> 00:46:02,285 {\an8}1974년 녹음 17세 비에른의 연주 557 00:47:02,203 --> 00:47:07,049 {\an8}부다페스트 '미드소마' 촬영 현장 558 00:47:37,621 --> 00:47:38,787 컷! 559 00:47:41,703 --> 00:47:44,022 컷, 이동하세요 560 00:47:44,744 --> 00:47:48,583 제가 배우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561 00:47:48,683 --> 00:47:52,798 어떻게 하다 보니 배우가 됐어요 562 00:47:53,586 --> 00:47:54,196 고마워요 563 00:47:54,296 --> 00:47:56,551 좋아요 각자 자리로 가세요 564 00:48:01,061 --> 00:48:04,353 연기 학교를 졸업하자 캐스팅 제의가 쏟아졌어요 565 00:48:04,453 --> 00:48:08,347 TV, 연극 가리지 않고 좋은 배역을 받았습니다 566 00:48:09,325 --> 00:48:13,911 배우 생활은 그렇게 술술 풀렸지만 567 00:48:14,161 --> 00:48:19,703 내면의 어둠을 다스리는 데는 별 도움이 안 됐어요 568 00:49:14,743 --> 00:49:17,195 이건 다들 처음 볼걸요 569 00:49:30,471 --> 00:49:33,423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뵌 날을 기억해요 570 00:49:37,896 --> 00:49:41,372 어머니는 10번 전차에서 내려서 571 00:49:43,185 --> 00:49:47,408 등교하는 우리에게 멀리서 손을 흔들었어요 572 00:49:47,601 --> 00:49:50,411 우리도 손을 흔들고 어머니도 흔드셨죠 573 00:49:51,087 --> 00:49:54,286 손을 흔들면서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574 00:49:54,935 --> 00:49:57,578 이걸 끝으로 엄마를 못 볼지도 몰라 575 00:50:02,453 --> 00:50:05,043 다들 어머니의 행방을 궁금해했죠 576 00:50:05,143 --> 00:50:10,828 수녀원에 들어갔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577 00:50:11,089 --> 00:50:15,120 해외로 갔다는 사람도 있고 소문만 무성했어요 578 00:50:17,838 --> 00:50:20,328 전부 사실과는 거리가 멀었죠 579 00:50:29,903 --> 00:50:32,936 이때는 엄마가 실종돼서 아직 발견 안 됐을 때야 580 00:50:33,036 --> 00:50:35,303 {\an8}안니케 안드레센 여동생 581 00:50:35,403 --> 00:50:38,903 아돌프 프레드리크 음악학교에서 우리 담임이셨던 582 00:50:39,067 --> 00:50:42,926 리스베트 악셀손 선생님이 이렇게 쓰셨어 583 00:50:44,328 --> 00:50:50,262 비에른은 집중력이 부족하고 계속 잡담을 합니다 584 00:50:50,362 --> 00:50:54,669 안니케도 상황은 마찬가지예요 지도가 필요합니다 585 00:50:55,870 --> 00:50:58,180 우리가 그랬던 이유를 잘 생각해 보면 586 00:50:59,491 --> 00:51:04,870 아무래도 그 사건의 영향이 컸던 거 같아 587 00:51:05,953 --> 00:51:11,036 엄마가 갑자기 사라졌는데 우린 이유조차 몰랐잖아 588 00:51:17,246 --> 00:51:22,571 저희는 둘 다 1955년에 태어났어요 589 00:51:22,671 --> 00:51:26,522 비에른은 1월 전 12월에 태어났죠 590 00:51:26,622 --> 00:51:30,260 어머니는 같은데 아버지가 달라요 591 00:51:30,360 --> 00:51:33,828 덴마크에선 이런 걸 '반 쌍둥이'라고 해요 592 00:51:33,928 --> 00:51:39,311 너랑 나는 어린 시절을 보내는 내내 593 00:51:39,411 --> 00:51:43,437 그 어떤 친구보다 가까운 사이였던 거 같아 594 00:51:43,537 --> 00:51:46,096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였지 595 00:51:46,196 --> 00:51:50,028 나 혼자 있었던 적이 거의 없어 맨날 붙어 있었지 596 00:52:05,950 --> 00:52:09,896 할머니, 할아버지랑 집에 있는데 초인종이 울리길래 597 00:52:09,996 --> 00:52:15,064 비에른이랑 같이 나갔더니 경찰 둘이 왔더군요 598 00:52:15,696 --> 00:52:18,411 경찰이 우리에게 말하길 599 00:52:18,996 --> 00:52:21,829 숲속에서 엄마 시신을 발견했대요 600 00:52:29,119 --> 00:52:34,558 그날 그 시간 이후로 어른들은 우리 앞에서 601 00:52:34,658 --> 00:52:40,424 엄마에 관한 이야기를 한마디도 안 했어요 602 00:52:41,057 --> 00:52:46,912 저나 비에른에게 엄마 얘기를 아예 안 꺼냈어요 603 00:52:47,012 --> 00:52:51,323 존재하긴 했던 건지 알려주지도 않고 604 00:52:51,423 --> 00:52:54,411 우리 심정이 어떤지도 안 물어봤죠 605 00:53:08,057 --> 00:53:09,624 어머니는 구도자셨어요 606 00:53:12,266 --> 00:53:16,099 예술가의 영혼을 지닌 보헤미안이셨죠 607 00:53:16,624 --> 00:53:22,978 사진도 찍고, 시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기사도 썼죠 608 00:53:23,276 --> 00:53:25,811 미술 갤러리도 운영하고 609 00:53:25,911 --> 00:53:29,976 심지어 디올의 모델로도 활동하셨어요 610 00:53:32,806 --> 00:53:39,103 1년간 저희를 데리고 유럽 전역을 여행하시기도 했는데 611 00:53:39,203 --> 00:53:41,516 저희는 아직 입학도 안 했을 때였죠 612 00:53:42,349 --> 00:53:45,995 어머니랑 친한 친구인 실바도 같이 갔어요 613 00:53:51,660 --> 00:53:57,078 어머니는 비에른의 친부가 누군지 끝까지 말 안 해줬어요 614 00:53:57,464 --> 00:53:59,995 끝까지 비밀로 남기셨죠 615 00:54:05,100 --> 00:54:13,134 제 친아버지가 누군지 어머니가 말 안 해주던가요? 616 00:54:13,234 --> 00:54:14,755 정말 궁금해서 그래요 617 00:54:14,855 --> 00:54:16,935 아직도 모른다고? 세상에 618 00:54:17,705 --> 00:54:18,681 세상에? 619 00:54:18,781 --> 00:54:20,224 그냥 잊고 살아 620 00:54:20,324 --> 00:54:20,831 네 621 00:54:20,931 --> 00:54:21,856 {\an8}실바 필메르 어머니 친구 622 00:54:21,956 --> 00:54:22,944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요? 623 00:54:23,044 --> 00:54:24,794 그래 624 00:54:25,424 --> 00:54:27,918 근데 궁금하긴 할 거야 625 00:54:28,018 --> 00:54:28,953 궁금하죠 626 00:54:29,270 --> 00:54:31,280 엄마가 정말 말 안 했어요? 627 00:54:31,380 --> 00:54:34,620 응, 누군진 말 안 했어 628 00:54:34,778 --> 00:54:36,252 안타깝지 629 00:54:36,896 --> 00:54:38,345 그렇군요 630 00:54:41,067 --> 00:54:42,101 알았어요 631 00:54:51,828 --> 00:54:52,990 비에른 632 00:54:53,090 --> 00:54:54,414 안녕 633 00:54:54,514 --> 00:54:57,137 잠깐, 전자레인지에 커피만 넣을게 634 00:54:57,745 --> 00:54:59,390 어젯밤은 어땠어? 635 00:55:00,175 --> 00:55:02,203 좋았어 혼자 집에 갔어 636 00:55:03,642 --> 00:55:07,411 피에테르랑은 어떻게 됐어? 637 00:55:07,576 --> 00:55:08,233 누구? 638 00:55:08,333 --> 00:55:09,710 피에테르랑은 어때? 639 00:55:09,811 --> 00:55:11,171 뭔 피에테르? 640 00:55:11,330 --> 00:55:14,578 저번에 피에테르 얘기 했잖아 641 00:55:16,536 --> 00:55:17,859 피에테르? 642 00:55:17,959 --> 00:55:18,686 응 643 00:55:18,786 --> 00:55:20,761 당신이랑 노는 게 좋다는 그 남자 644 00:55:22,661 --> 00:55:24,514 피에테르 딕손? 645 00:55:25,228 --> 00:55:25,728 응 646 00:55:25,828 --> 00:55:29,000 며칠 전에 카르멘 레스토랑 갔었어 647 00:55:29,100 --> 00:55:30,293 날 잘 챙겨주거든 648 00:55:30,393 --> 00:55:34,453 당신이 나랑 안 놀아주니까 친구랑 노는 거야 649 00:55:34,620 --> 00:55:35,490 그래 650 00:55:35,590 --> 00:55:36,490 이게 맞지 않아? 651 00:55:38,578 --> 00:55:42,432 글쎄다 새 남자도 생겼다면서? 652 00:55:42,532 --> 00:55:49,171 맞아, 그 남자랑 사귈까? 이제 각자 갈 길 갈까? 653 00:55:49,271 --> 00:55:52,411 그 남자는 우리 관계를 진지하게 생각하거든 654 00:55:52,577 --> 00:55:55,606 피해망상에 빠진 늙은이 곁에 남을까 655 00:55:55,706 --> 00:55:58,703 그 남자랑 사귈까 고민 중이야 656 00:55:58,831 --> 00:56:04,326 지구 반대편으로 같이 여행 가서 호텔 암호를 안 알려줘? 657 00:56:04,426 --> 00:56:09,408 같이 자고, 목욕도 하고 손톱도 다듬어 주고 658 00:56:09,508 --> 00:56:13,453 잠자리까지 해놓고 그깟 암호를 안 알려줘? 659 00:56:13,661 --> 00:56:16,047 당신이 정말 내 짝인지 고민돼 660 00:56:16,147 --> 00:56:20,453 날 진짜 좋아해 주는 남자가 있는데 661 00:56:20,614 --> 00:56:23,873 당신 곁에 남아야 할까 고민 중이야 662 00:56:23,973 --> 00:56:26,918 당신은 하는 짓도 돼지처럼 더럽잖아 663 00:56:27,018 --> 00:56:29,995 - 내가 언제 그랬어? - 정말 몰라? 664 00:56:30,095 --> 00:56:32,149 당신 돼지 같아 665 00:56:32,249 --> 00:56:34,888 일본에서도 내 전화 빌려 쓰고 666 00:56:34,988 --> 00:56:37,596 돈도 한 푼 안 썼잖아 667 00:56:37,696 --> 00:56:41,444 당신 때문에 이틀 동안 호텔에만 갇혀 지냈어 668 00:56:41,544 --> 00:56:43,894 잠깐 오해가 669 00:56:43,994 --> 00:56:46,473 그깟 암호가 뭐라고! 670 00:56:46,573 --> 00:56:52,046 내가 그렇게 퍼줬는데 당신이란 인간은 고마운 걸 몰라 671 00:56:53,285 --> 00:56:54,416 그래 672 00:57:08,786 --> 00:57:11,120 이걸 어떡하지? 673 00:57:40,661 --> 00:57:45,960 1917년 이후에 태어난 모든 혼외자에겐 674 00:57:46,060 --> 00:57:50,787 아동 복지 담당자가 배정됐는데 거의 여성이었어요 675 00:57:51,416 --> 00:57:55,432 미혼모 옆에서 지원하며 676 00:57:55,532 --> 00:57:59,631 친부가 누구인지 알아내는 것도 도왔죠 677 00:58:00,283 --> 00:58:03,395 이게 비에른 씨 파일이에요 678 00:58:03,495 --> 00:58:08,429 이거 말고 경찰이 보내준 파일도 있어요 679 00:58:08,529 --> 00:58:12,734 어머님 실종에 관한 사건 보고서요 680 00:58:13,451 --> 00:58:15,648 네, 그렇군요 681 00:58:15,748 --> 00:58:16,830 네 682 00:58:17,437 --> 00:58:21,311 근데 직접 읽긴 좀 힘드실 수도 있어요 683 00:58:21,411 --> 00:58:24,362 여기서 보기 정 힘드시면 684 00:58:24,462 --> 00:58:29,347 집에서 편히 보실 수 있게 사본을 드릴게요 685 00:58:29,506 --> 00:58:33,434 이런 경찰 수사 보고서에는 686 00:58:33,648 --> 00:58:36,835 대부분 사진도 첨부돼 있거든요 687 00:58:36,966 --> 00:58:41,120 어머님을 발견했을 당시의 사진 같은 거요 688 00:58:41,242 --> 00:58:43,557 일단 사진은 빼놨어요 689 00:58:43,657 --> 00:58:47,285 갑자기 보면 놀라실 수도 있으니까요 690 00:58:47,385 --> 00:58:50,145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691 00:58:50,245 --> 00:58:53,273 사진이 있긴 한데 빼놓은 거예요 692 00:58:53,373 --> 00:58:56,453 일단은 글로 남긴 보고서부터 읽어보세요 693 00:59:14,417 --> 00:59:16,571 검시 보고서 694 00:59:19,442 --> 00:59:22,241 {\an8}사망 진단서 695 01:00:05,202 --> 01:00:09,245 이미 머릿속으로 수없이 그려본 장면이지만 696 01:00:10,036 --> 01:00:13,078 이건 너무 적나라하네요 697 01:00:36,352 --> 01:00:38,202 나가는 길을 알려주시겠어요? 698 01:00:38,302 --> 01:00:39,485 그럼요 699 01:01:19,636 --> 01:01:26,111 1966년 5월 2일 월요일 19시 30분에 신고가 접수됐다 700 01:01:26,211 --> 01:01:32,217 스테네 농장 근처의 숲에서 여성 시신 한 구가 발견됐다 701 01:01:35,943 --> 01:01:38,884 시신은 전나무 잎으로 뒤덮여 있었고 702 01:01:38,984 --> 01:01:42,514 머리를 뿌리 쪽에 두고 오른편으로 누워 있었다 703 01:01:43,751 --> 01:01:45,307 모자는 쓰지 않았지만 704 01:01:45,407 --> 01:01:50,049 코트 깃을 위로 당겨 머리를 덮어놓은 상태였다 705 01:01:51,376 --> 01:01:55,353 핸드백에 담긴 서류를 보니 706 01:01:55,453 --> 01:01:59,456 바르브로 엘리사베트 안드레센의 시신이었다 707 01:01:59,556 --> 01:02:03,078 작년 10월에 실종된 여성이다 708 01:02:04,203 --> 01:02:06,731 1962년 10월 17일 709 01:02:06,831 --> 01:02:08,165 {\an8}비밀 710 01:02:08,265 --> 01:02:09,728 엄마다 711 01:02:09,828 --> 01:02:11,132 무슨 일이세요? 712 01:02:11,232 --> 01:02:13,890 안니케는 토요일에 우리 집에 보낼 거니? 713 01:02:19,953 --> 01:02:22,290 우리 집에 보내는 게 좋지 않겠어? 714 01:02:24,339 --> 01:02:28,219 제 안부는 궁금하지도 않으세요? 715 01:02:28,319 --> 01:02:31,070 매번 애들은 자는지 어디 나갔는지 물어보고 716 01:02:31,170 --> 01:02:33,267 애들만 바꿔 달라고 하시잖아요 717 01:02:33,367 --> 01:02:34,267 근데? 718 01:02:35,360 --> 01:02:39,431 제가 들어선 안 될 얘기라도 하시려고요? 719 01:02:40,010 --> 01:02:43,978 넌 생각이 너무 많아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 720 01:02:44,078 --> 01:02:48,015 정말 너무하시네요 721 01:02:48,115 --> 01:02:48,938 뭐가 말이니? 722 01:02:49,038 --> 01:02:53,395 이건 고칠 수 없는 거예요 이렇게 태어난 걸 어떡해요? 723 01:02:53,495 --> 01:02:57,521 난 그냥 있는 그대로 살고 싶은데 724 01:02:57,621 --> 01:03:01,311 내 방식이 이상하고 틀린 것처럼 몰아가시잖아요 725 01:03:01,411 --> 01:03:02,686 누가? 726 01:03:02,786 --> 01:03:05,853 있는 그대로 살게 내버려 두질 않으시잖아요 727 01:03:05,953 --> 01:03:08,520 저한테 바라시는 것도 많고요 728 01:03:09,216 --> 01:03:11,453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729 01:03:13,245 --> 01:03:17,090 오늘은 특히 그러네 하나도 이해가 안 돼 730 01:03:22,579 --> 01:03:24,023 그냥 끊을까? 731 01:03:24,123 --> 01:03:25,181 그러시든가요 732 01:03:25,288 --> 01:03:27,154 그래 끊는다 733 01:03:48,974 --> 01:03:52,419 '그냥 가만히 있자 모진 말은 그만 내뱉자' 734 01:03:53,320 --> 01:03:57,233 '살아갈 이유가 사라졌지만 나 때문에 울진 마' 735 01:03:57,760 --> 01:04:02,580 '더는 해결할 고민도 없다 그래도 날 그렇게 보진 마' 736 01:04:03,307 --> 01:04:06,689 '난 곧 주저앉고 무너져 내리겠지만' 737 01:04:08,021 --> 01:04:11,005 '무너지는 모습을 너희에게 보여주긴 싫다' 738 01:04:11,990 --> 01:04:17,224 '날 위해 울진 마 더는 해결할 고민도 없다' 739 01:04:18,562 --> 01:04:21,007 '가진 걸 세상에 모두 내주고 나니' 740 01:04:22,351 --> 01:04:25,203 '살아갈 이유마저 사라져 버렸다' 741 01:04:25,336 --> 01:04:28,599 '점점 투명해지는 기분이다' 742 01:04:30,013 --> 01:04:31,607 '난 죽지 않는다' 743 01:04:32,975 --> 01:04:35,568 '그저 문을 나설 뿐이다' 744 01:04:36,505 --> 01:04:41,012 '내 안의 방에서 나갈 때가 된 것 같다' 745 01:04:41,770 --> 01:04:44,738 '난 죽지 않는다 그저 사라질 뿐이다' 746 01:04:46,019 --> 01:04:47,794 '다시 깨어났을 때도' 747 01:04:47,894 --> 01:04:51,786 '여전히 확신과 의심 사이에서 배회할까 봐 걱정될 뿐이다' 748 01:04:52,078 --> 01:04:55,703 '그날이 오면 다시 널 찾아갈게' 749 01:05:07,703 --> 01:05:13,995 우리한테 보낸 작별의 편지 같은 거네 750 01:05:54,023 --> 01:05:55,911 어머니는 방에 앉아 751 01:05:56,078 --> 01:06:00,120 싸구려 와인 한 병과 체스터필드 한 갑을 앞에 놓고 752 01:06:00,988 --> 01:06:03,036 줄담배를 피우셨어요 753 01:06:03,222 --> 01:06:07,578 조용히 앉아 창밖의 어둠을 바라보셨죠 754 01:06:10,161 --> 01:06:14,122 저는 그런 어머니 뒤에 우두커니 서서 755 01:06:14,966 --> 01:06:16,758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756 01:06:18,076 --> 01:06:20,646 어른이 되면 엄마를 구해드려야지 757 01:06:37,911 --> 01:06:41,514 아버지 상태가 정말 안 좋을 때는 758 01:06:43,203 --> 01:06:45,078 웬만하면 안 만나려고 해요 759 01:06:46,745 --> 01:06:48,828 그래서 제가 어릴 때는 760 01:06:49,786 --> 01:06:54,161 아버지가 한동안 제 전화를 안 받으셨어요 761 01:06:54,516 --> 01:06:59,525 이젠 저도 나이를 먹어서인지 전화를 받아주시더군요 762 01:06:59,625 --> 01:07:03,317 물론 요즘도 가끔 나중에 통화하자고 하세요 763 01:07:04,324 --> 01:07:06,303 아빠의 삶에는 764 01:07:06,403 --> 01:07:07,248 {\an8}로빈 로만 딸 765 01:07:07,348 --> 01:07:09,370 아이가 알아선 안 될 이야기가 참 많아요 766 01:07:09,786 --> 01:07:14,911 그런데 아버지는 제가 14살이 되자 767 01:07:15,091 --> 01:07:22,120 마음의 문을 열고 옛날얘기를 해주기 시작했어요 768 01:07:22,328 --> 01:07:24,745 저도 그 무렵부터 769 01:07:26,036 --> 01:07:29,325 '베니스에서의 죽음'에 관해 알게 됐던 거 같아요 770 01:07:29,857 --> 01:07:36,725 아버지의 삶은 할머니 죽음에 큰 영향을 받았어요 771 01:07:39,577 --> 01:07:42,436 할머니가 멀쩡히 살아 계셨다면 772 01:07:42,536 --> 01:07:45,602 아버지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을지 궁금해요 773 01:07:47,227 --> 01:07:53,328 부모님이 믿음직하게 아버지 곁을 지켜주셨더라면 774 01:07:54,078 --> 01:07:59,185 그 영화를 찍으며 받은 충격도 그리 크진 않았겠죠 775 01:08:00,328 --> 01:08:03,713 아버지는 좋은 아빠가 되려고 노력하셨지만 776 01:08:04,331 --> 01:08:08,370 실제로는 완벽한 아버지와 거리가 멀었어요 777 01:08:08,573 --> 01:08:10,411 전 아버지가 제 곁에서 절 사랑해 주고 778 01:08:11,839 --> 01:08:13,965 항상 같이 놀아주길 바랐거든요 779 01:08:15,270 --> 01:08:19,105 그게 모든 딸들이 바라는 아버지상이잖아요 780 01:08:22,776 --> 01:08:27,353 한때는 비에른이 실종됐다는 소문도 퍼졌고 781 01:08:27,453 --> 01:08:30,541 심지어 죽었다는 얘기도 떠돌곤 했는데 782 01:08:34,578 --> 01:08:38,478 이 자리에 비에른 안드레센 씨를 모시고 783 01:08:38,578 --> 01:08:41,615 프랑스 관객을 위한 인터뷰를 진행하게 돼 영광입니다 784 01:08:41,717 --> 01:08:45,923 루키노 비스콘티의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에서 785 01:08:46,023 --> 01:08:50,802 어린 타치오를 완벽히 연기한 게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786 01:08:50,902 --> 01:08:52,293 {\an8}2005년 핑크 TV 787 01:08:52,393 --> 01:08:54,861 마치 신화 속에 나오는 인물 같았거든요 788 01:08:55,205 --> 01:09:01,371 아름다운 10대 소년의 이미지가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 있는데요 789 01:09:01,471 --> 01:09:04,061 그 영화를 찍고 나서 790 01:09:04,161 --> 01:09:09,686 남성들을 대하는 태도도 좀 달라지셨나요? 791 01:09:09,786 --> 01:09:10,943 제가요? 792 01:09:11,043 --> 01:09:12,000 네 793 01:09:12,620 --> 01:09:17,561 동성애자들이 배우님께 관심을 표하기 시작했다든가 794 01:09:17,661 --> 01:09:19,658 예전과 다른 눈으로 본다든가 795 01:09:19,758 --> 01:09:20,481 그랬죠 796 01:09:20,581 --> 01:09:22,395 거의 신화에 가까운 797 01:09:22,495 --> 01:09:26,436 남성이 지닌 아름다움의 상징이 되셨잖아요? 798 01:09:26,536 --> 01:09:29,120 네, 어디부터 얘기할까요? 799 01:09:30,995 --> 01:09:34,630 질문이 뭐였죠? 영화 촬영 전이요? 후요? 800 01:09:34,730 --> 01:09:37,895 동성애자들의 반응이 어땠느냐고요? 801 01:09:37,995 --> 01:09:41,824 모든 건 거기에서 시작됐죠 그전까진 802 01:09:45,103 --> 01:09:50,203 1976년에 영화를 찍으러 여기 왔어 803 01:09:50,648 --> 01:09:53,225 영화는 무산됐지만 1년을 살았어 804 01:09:53,601 --> 01:09:57,649 무슈 뒤랑이라는 사람이 모든 경비를 댔지 805 01:09:59,970 --> 01:10:04,372 센가에 아파트까지 마련해 놨더군 806 01:10:04,472 --> 01:10:06,370 돈을 다 대줬어 807 01:10:07,462 --> 01:10:09,760 나도 참 순진했지 808 01:10:09,860 --> 01:10:13,331 그걸 단순한 호의로 착각했거든 809 01:10:21,164 --> 01:10:26,858 다 읽기 힘들 정도로 긴 사랑의 시도 받았지 810 01:10:27,389 --> 01:10:30,521 요약하자면 '비에른, 사랑해요' 같은 거였어 811 01:10:31,578 --> 01:10:35,203 비싼 점심, 저녁에 선물까지 사 주고 812 01:10:35,786 --> 01:10:38,336 다들 지갑이 두둑하더군 813 01:10:41,046 --> 01:10:46,345 그들이 친절하고 동정심이 많아서 잘해 준 건 절대 아니었어 814 01:10:46,445 --> 01:10:49,032 그것과는 좀 다른 느낌이었어 815 01:10:50,314 --> 01:10:54,202 날 무슨 트로피처럼 데리고 다니며 자랑했지 816 01:10:56,026 --> 01:11:00,689 파리에 그렇게 오래 머무르며 지원까지 받았다고 하는데 817 01:11:00,789 --> 01:11:06,353 돈을 받았어? 얼마나 자주 만났는데? 818 01:11:06,453 --> 01:11:07,850 매주 용돈을 받았지 819 01:11:07,950 --> 01:11:11,167 설마! 농담이지? 820 01:11:11,267 --> 01:11:12,597 500프랑씩 821 01:11:12,697 --> 01:11:14,061 세상에 822 01:11:14,161 --> 01:11:18,173 1976년에 주당 500프랑? 823 01:11:18,673 --> 01:11:21,536 - 그쯤 됐어 - 그게 얼만진 알았어? 824 01:11:23,392 --> 01:11:27,033 데리고 다니기 좋은 마스코트처럼 여겼나 보네 825 01:11:27,133 --> 01:11:29,754 막심 레스토랑이나 리도섬의 마스코트같이 826 01:11:29,854 --> 01:11:31,215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년이니까 827 01:11:31,315 --> 01:11:34,249 '베니스에서의 죽음'을 봤겠지 828 01:11:34,349 --> 01:11:37,270 날 성적인 대상이나 물건처럼 여기더군 829 01:11:37,370 --> 01:11:39,411 그들만의 게임을 하는 것 같았어 830 01:11:40,051 --> 01:11:43,061 자기들과 놀아주는 대가로 돈을 준 거군 831 01:11:43,161 --> 01:11:46,453 그렇지, 뭐 난 돈이 없었거든 832 01:11:47,030 --> 01:11:50,783 세계를 떠돌던 시절에는 빈털터리였어 833 01:11:51,370 --> 01:11:53,305 자기도취에 빠져 살았지 834 01:11:54,385 --> 01:11:59,453 지금 아는 걸 그때도 알았다면 파리엔 절대 안 갔지 835 01:12:09,036 --> 01:12:14,120 근데 그 시간들이 당신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잖아 836 01:12:15,245 --> 01:12:20,234 지금의 당신을 만들고 당신의 자아상을 형성했지 837 01:12:20,334 --> 01:12:22,895 그 과정에서 꿈이 와장창 깨지기도 하고 838 01:12:22,995 --> 01:12:26,643 이후의 인생행로를 다 바꿔놨잖아 839 01:12:28,335 --> 01:12:31,444 당신은 절대 단순한 사람이 아냐, 비에른 840 01:12:35,076 --> 01:12:37,341 아주 복잡한 사람이지 841 01:12:45,558 --> 01:12:47,104 사랑해 비에른 842 01:12:51,245 --> 01:12:52,682 내 인생 전부인 당신 843 01:12:54,212 --> 01:12:55,816 내가 사랑받을 자격 있나? 844 01:12:56,370 --> 01:12:57,589 당연히 있지 845 01:14:00,085 --> 01:14:03,286 - 안녕하세요 - 어서 오렴 846 01:14:04,928 --> 01:14:07,075 잘 지냈어요? 847 01:14:07,175 --> 01:14:08,136 늘 똑같지 848 01:14:08,236 --> 01:14:11,395 기분은 좀 좋아졌어요? 더 다운됐어요? 849 01:14:11,495 --> 01:14:14,811 항상 소변이 마렵고 기차는 무섭고, 기운은 없어 850 01:14:14,911 --> 01:14:16,328 뭐랄까 851 01:14:16,428 --> 01:14:18,163 어디서 많이 듣던 얘기네요 852 01:14:18,263 --> 01:14:21,812 11년 전의 12월 이후로 여기 처음 와봐요 853 01:14:22,830 --> 01:14:25,801 말도 안 돼 854 01:14:26,708 --> 01:14:31,811 그렇게 오래됐다고? 집이 엉망진창이라서 855 01:14:31,911 --> 01:14:35,278 손님을 집에 안 들였거든 856 01:14:35,378 --> 01:14:37,823 1년 전에 처음 들였어 857 01:14:37,923 --> 01:14:42,016 예시카랑 대청소하느라 처음으로 사람을 들였지 858 01:14:48,951 --> 01:14:51,951 다들 꼭 붙어서 찍었네요 859 01:14:55,161 --> 01:14:57,244 '세계에서 가장 못생긴 아기' 860 01:14:57,344 --> 01:15:00,694 제 생시 밑에 적은 거예요? 861 01:15:02,820 --> 01:15:04,233 - 여기 있네 - 네 862 01:15:05,703 --> 01:15:09,598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사랑하는 우리 딸' 863 01:15:10,810 --> 01:15:11,880 참 고맙네요 864 01:15:11,980 --> 01:15:14,059 {\an8}수산나 로만 비에른 안드레센의 딸 865 01:15:15,137 --> 01:15:16,637 뭔가 편안해 보여 866 01:15:20,745 --> 01:15:24,161 아빠가 된다는 게 정말 무섭더라 867 01:15:24,367 --> 01:15:26,609 아빠가 할 일이 뭔지도 몰랐어 868 01:15:27,995 --> 01:15:35,102 널 낳기 몇 달 전에 연기 학교에 입학했는데 869 01:15:38,643 --> 01:15:41,693 일단 최선을 다해보려고 노력했어 870 01:15:41,793 --> 01:15:45,027 당시 나의 가장 큰 바람은 871 01:15:45,127 --> 01:15:51,680 내가 어릴 때 겪은 일을 네가 겪지 않게 하는 거였어 872 01:15:52,961 --> 01:15:57,686 가족이 잘 돌아가려면 부부가 합심해야 하는데 873 01:15:57,786 --> 01:16:02,061 아버지가 술을 너무 좋아해서 다 틀어져 버렸죠 874 01:16:02,161 --> 01:16:07,126 근데 부모님이 같이 안 살고 떨어져 사신 덕에 875 01:16:07,226 --> 01:16:10,624 제가 더 건강한 성인으로 자란 거 같아요 876 01:16:15,328 --> 01:16:16,855 엘빈이 태어났을 때네요 877 01:16:17,265 --> 01:16:18,165 응 878 01:16:18,539 --> 01:16:21,161 드디어 가족다운 가족이 된 거지 879 01:16:21,357 --> 01:16:22,394 '가족다운 가족'요? 880 01:16:22,494 --> 01:16:23,394 응 881 01:16:25,953 --> 01:16:30,516 제가 어릴 때부터 사춘기 소녀가 될 때까지 882 01:16:30,616 --> 01:16:32,661 아버지가 자주 하신 말씀이 있어요 883 01:16:32,788 --> 01:16:37,125 궁금한 게 있으면 뭐든지 다 물어봐 884 01:16:37,992 --> 01:16:41,478 술에 취하면 알 수 없는 말도 자주 하셨죠 885 01:16:41,578 --> 01:16:45,449 아빠가 하는 질문이 이해가 안 됐어요 886 01:16:45,549 --> 01:16:48,995 아빠가 겪은 일을 제게 말해주고 싶어서 그랬어요? 887 01:16:50,956 --> 01:16:53,657 네가 그저 외롭지 않길 바랐어 888 01:16:54,911 --> 01:16:58,557 네가 궁금해하는 건 다 알려주고 싶었지 889 01:17:01,371 --> 01:17:02,868 진실을 알려줄 수 없다면 890 01:17:02,968 --> 01:17:08,752 적어도 내 이야기라도 들려주고 싶었어 891 01:17:11,120 --> 01:17:13,201 정말 예쁘게 자랐구나 892 01:17:19,217 --> 01:17:21,478 미안 어른이 울면 안 되는데 893 01:17:21,578 --> 01:17:26,561 저 볼 때마다 우시잖아요 뭐가 그리 슬프신 건지 894 01:17:26,661 --> 01:17:29,431 내가 감성이 충만하잖아 895 01:17:29,531 --> 01:17:30,963 그럼 더 우세요 896 01:17:34,632 --> 01:17:35,595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897 01:17:35,695 --> 01:17:36,870 그걸 저한테 물어요? 898 01:17:38,781 --> 01:17:41,573 그거 알아요 엄마? 899 01:17:42,161 --> 01:17:47,786 엘빈은 죽어서 꽃밭에 있고, 하늘에 있어요 900 01:17:47,886 --> 01:17:49,343 {\an8}1987년 녹음 로빈과 엄마 901 01:17:49,443 --> 01:17:51,561 사진 속에도 있고 902 01:17:51,661 --> 01:17:54,488 레고 안에도 있어요 903 01:17:56,363 --> 01:17:58,995 모든 게 순식간에 일어났단다 904 01:18:01,370 --> 01:18:02,640 많이 힘드니? 905 01:18:02,740 --> 01:18:03,745 네 906 01:18:05,239 --> 01:18:07,562 내가 엄마 칼 치웠어요 907 01:18:07,662 --> 01:18:08,911 응, 그랬었지 908 01:18:11,451 --> 01:18:14,044 '모든 게 순식간에 일어났단다' 909 01:18:17,047 --> 01:18:19,619 1987년 8월 11일 910 01:18:19,719 --> 01:18:22,766 로빈 세 번째 생일 다음 날에 녹음한 거래요 911 01:18:24,497 --> 01:18:26,896 엘빈 죽고 석 달쯤 됐을 무렵이네요 912 01:18:37,688 --> 01:18:39,165 그날은 제가 외출했었어요 913 01:18:41,032 --> 01:18:43,571 5월 17일이었을 겁니다 914 01:18:44,981 --> 01:18:50,317 밤늦게까지 놀다 집에 와서 곯아떨어졌죠 915 01:18:53,897 --> 01:18:58,863 아내는 로빈을 유치원에 데려다준다면서 916 01:18:59,678 --> 01:19:03,219 침대에 누운 제 옆에 엘빈을 눕혔어요 917 01:19:05,258 --> 01:19:10,217 전 며칠 동안 잠을 못 잔 상태였고 918 01:19:10,428 --> 01:19:12,428 술까지 잔뜩 취해 있어서 919 01:19:22,370 --> 01:19:26,478 엘빈을 옆에 눕히든 말든 곯아떨어졌어요 920 01:19:29,236 --> 01:19:30,260 기절하듯 잤죠 921 01:19:32,939 --> 01:19:38,411 그러다 아내 비명에 퍼뜩 깨어났어요 922 01:19:47,620 --> 01:19:51,078 엘빈 입술이 새파랗게 질려있더군요 923 01:19:54,234 --> 01:19:59,398 일단 엘빈을 살려보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지만 924 01:20:03,868 --> 01:20:05,493 이미 소용없었어요 925 01:20:13,893 --> 01:20:18,972 유아 돌연사 증후군이라는 진단이 나왔어요 926 01:20:20,386 --> 01:20:23,223 근데 제가 볼 때는 애정 결핍으로 죽은 거예요 927 01:20:28,688 --> 01:20:31,987 가족을 돌볼 생각이 없는 아비가 928 01:20:32,087 --> 01:20:37,937 아이의 작은 어깨에 가족의 행복이란 짐을 지운 거죠 929 01:20:42,160 --> 01:20:44,423 엘빈이 죽고 모든 게 무너져 내렸어요 930 01:21:00,578 --> 01:21:06,935 로빈은 남동생뿐 아니라 아빠까지 잃었습니다 931 01:21:08,497 --> 01:21:13,568 전 우울증에 빠져 술에 절어 살았어요 932 01:21:14,584 --> 01:21:16,420 나를 파괴하려고 933 01:21:18,052 --> 01:21:20,708 별별 짓을 다 했어요 934 01:21:20,966 --> 01:21:25,922 세상에 불쌍한 게 나뿐인 줄 알고 맨날 '나, 나, 나'였어요 935 01:21:28,876 --> 01:21:30,533 어린애가 된 기분이었어요 936 01:21:37,025 --> 01:21:39,001 애가 애를 돌볼 순 없잖아요 937 01:21:45,059 --> 01:21:47,834 엘빈과 8개월을 함께했습니다 938 01:22:01,923 --> 01:22:04,667 엘빈이 살아 있었다면 939 01:22:04,767 --> 01:22:07,101 지금쯤 32살이었겠네요 940 01:22:11,529 --> 01:22:13,363 엘빈 목소리가 궁금해요 941 01:22:16,693 --> 01:22:19,435 32살의 엘빈은 어떤 목소리였을까요? 942 01:22:24,161 --> 01:22:27,096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요? 943 01:22:31,120 --> 01:22:36,083 제가 아비 노릇을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달라졌겠죠 944 01:22:40,061 --> 01:22:41,632 엘빈은 제 아들이니까요 945 01:22:49,065 --> 01:22:51,632 그런데 아들 곁을 못 지켜줬습니다 946 01:22:51,732 --> 01:22:54,183 제가 그날 밖에 나가 놀지 않고 947 01:22:54,453 --> 01:22:57,612 어른답게 행동했다면 엘빈은 살았을 겁니다 948 01:22:57,712 --> 01:23:02,833 진지하게 아비 노릇을 했다면 엘빈은 살아있을 거예요 949 01:23:06,703 --> 01:23:09,043 근데 모든 게 처음부터 잘못됐어요 950 01:23:11,328 --> 01:23:14,463 제 인생도 어머니 인생도요 951 01:23:16,786 --> 01:23:19,043 웃긴 건 살다 보면 적응된다는 겁니다 952 01:23:20,723 --> 01:23:22,136 그렇게 살다 보면 953 01:23:24,536 --> 01:23:27,640 별로 큰 기대를 품지 않게 돼요 954 01:23:28,036 --> 01:23:32,248 뭐라고 하면 좋을까요? 너무 많은 걸 잃고 나면 955 01:23:32,348 --> 01:23:39,381 어떤 면에선 살아가는 게 좀 더 쉬워집니다 956 01:23:42,870 --> 01:23:46,363 누군가 떠나가고, 사라지는 게 일상처럼 느껴지거든요 957 01:23:48,323 --> 01:23:50,138 엘빈 말고도 많은 걸 잃었으니까요 958 01:24:13,195 --> 01:24:17,061 {\an8}엘빈 3개월 로빈 2년 4개월 959 01:24:17,161 --> 01:24:22,898 {\an8}수산나 24년 9개월 비에른 31년 11개월 960 01:24:33,428 --> 01:24:36,647 {\an8}예수의 생애와 가르침 961 01:24:45,161 --> 01:24:46,843 잔디밭에 누웠을 때 962 01:24:46,991 --> 01:24:50,639 하늘에 보이는 게 우주가 아니라 963 01:24:51,911 --> 01:24:56,084 지하 세계라는 생각 안 해보셨어요? 964 01:25:01,287 --> 01:25:03,083 그렇게 생각하면 경외심마저 듭니다 965 01:25:04,456 --> 01:25:09,363 별을 올려다본다는 건 정확히 어디를 본다는 걸까요? 966 01:25:10,116 --> 01:25:15,963 바깥쪽? 안쪽? 위쪽? 아래쪽? 967 01:25:27,203 --> 01:25:30,370 전 아직 멀쩡히 살아서 여기 앉아있지만 968 01:25:30,745 --> 01:25:33,185 신앙의 힘이 없었다면 969 01:25:33,285 --> 01:25:38,041 지금 이 자리에 없었을지도 몰라요 970 01:25:52,536 --> 01:25:57,545 '베니스에서의 죽음' 오디션 장면을 촬영한 971 01:25:57,645 --> 01:26:01,033 당시의 아버지 영상을 보면 972 01:26:01,833 --> 01:26:02,900 마음이 너무 아파요 973 01:26:04,739 --> 01:26:06,063 오디션을 통해 변해버린 974 01:26:07,642 --> 01:26:09,846 아빠의 모습은 받아들일 수 있지만 975 01:26:10,467 --> 01:26:11,963 저 영상은 보기 불편해요 976 01:26:12,889 --> 01:26:17,995 인생의 전환점에 놓인 아버지의 모습이기도 하고 977 01:26:18,490 --> 01:26:23,372 아버지가 불편해하시는 게 제 눈엔 보이거든요 978 01:26:23,966 --> 01:26:27,520 이 영상만 봐서는 모르시겠지만 979 01:26:27,620 --> 01:26:29,635 전 아빠라는 사람을 알아요 980 01:26:29,823 --> 01:26:34,110 아버지는 정말 예민하고 수줍음 많은 소년이었어요 981 01:26:34,214 --> 01:26:36,661 거기도 억지로 끌려간 거였는데 982 01:26:36,882 --> 01:26:42,013 갑자기 셔츠를 벗고 포즈까지 취해야 했던 거예요 983 01:26:42,180 --> 01:26:44,576 아버지에게 신체 노출은 984 01:26:46,703 --> 01:26:49,786 사람 앞에서 옷 벗는 걸 싫어하는 분이라 985 01:26:50,120 --> 01:26:51,558 보는 저도 괴로웠어요 986 01:26:52,828 --> 01:26:57,638 그때로 돌아가서 증조할머니를 뜯어말리고 싶어요 987 01:26:57,924 --> 01:27:00,843 그만하세요 아버지 좀 내버려 두세요 988 01:27:02,855 --> 01:27:04,803 어린아이에게 그러면 안 되죠 989 01:27:33,330 --> 01:27:35,723 타치오? 타치오! 990 01:28:09,856 --> 01:28:13,643 '그냥 가만히 있자 모진 말은 그만 내뱉자' 991 01:28:14,953 --> 01:28:16,843 '살아갈 이유가 사라졌지만' 992 01:28:21,161 --> 01:28:22,756 '나 때문에 울진 마' 993 01:28:24,470 --> 01:28:27,377 '더는 해결할 고민도 없다' 994 01:28:29,661 --> 01:28:34,758 '내가 누군지 누가 아닌지도 모르겠다' 995 01:28:38,745 --> 01:28:42,963 '주변을 둘러본다 저게 난가?' 996 01:28:44,391 --> 01:28:45,791 '저게 나인가?' 997 01:28:45,918 --> 01:28:47,040 타치오! 998 01:28:54,180 --> 01:28:56,203 '점점 투명해지는 기분이다' 999 01:28:58,098 --> 01:29:00,163 '가진 걸 세상에 모두 내줬지만' 1000 01:29:03,669 --> 01:29:05,083 '난 죽지 않는다' 1001 01:29:08,587 --> 01:29:10,925 '그저 문을 나설 뿐이다' 1002 01:29:12,728 --> 01:29:15,661 '난 죽지 않는다 그저 사라질 뿐이다' 1003 01:29:18,135 --> 01:29:20,979 '언젠가 다시 깨어난다면' 1004 01:29:22,471 --> 01:29:25,736 '그런 날이 온다면 널 찾아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