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st.Paradise.1997.sub2srt

실락원
서브변환: nezumi

 

집까지 바래다주실래요?

 

어떤 일을 하세요?

 

그냥 출판 업계 쪽...

 

미술관도
취재 때문에 오셨나요?

 

취재 반, 땡땡이 반...

 

어이

 

참나, 부수를 3만 부
더 늘리라지 뭐야

 

자네가 편집장일 때보다
1만 부나 늘린 건데

 

할 수 없지, 미즈구치

 

우리 회사 잡지는
자네한테 달렸으니까

 

편집장님

 

여기로 바로 연락
좀 부탁 드립니다

 

알았어

 

가끔은 좀
한가했으면 좋겠어

 

조만간 밥이라도 먹자

 

이거 큰일인걸
좀 서둘러

 

학회 끝나고
연구실 들려야 해

 

늦으시겠네요

 

아, 에포와스 좀 사다 놔

 

벌써 다 드셨어요?

 

치즈가 그렇게 좋으세요

 

편의점에 없으면
마트에서 사와

 

알았어요

 

전화 왔잖아

 

됐어요
어차피 엄마일 거예요

 

다녀오세요

 

 

린코!

 

방금 당신이 전화했었죠?

 

- 전화라니?
- 이런 시간부터

 

조심성 없게

 

아직 조심성 없는 짓은
생각 안 해 봤는데

 

근데...

 

린코 목소리를 들었더니
갑자기...

 

응? 저녁엔
친구랑 약속 있어

 

누구요?

 

남자야

 

이렇게 둘이
마시는 것도 간만이군

 

그래, 요즘 어때?

 

뭐가?

 

조사실로 쫓겨난 사람한테
일 얘기 할까 봐?

 

아픈 데 찌르기는

 

원해서 한가한 건 아니라고

 

나 있잖아...

 

요즘 들어
자주 생각하는 건데

 

괜히 연애가 하고 싶어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여기요

 

유자 토란이네

 

가지 구이

 

난 가다랑어포

 

난 생강즙이군

 

근데...

 

상대라도 있는 거야?

 

그런 게 있을 리 없잖아

 

뭐, 굳이 말하자면

 

'해서체의 여인' 같은
여자면 좋지

 

- 해서체의 여인?
- 마츠바라 린코

 

왜 자네가 예전에
문화센터에

 

강연하러 왔을 때

 

뭐였지?
'문장 쓰는 법'이었나?

 

그때 소개했었잖아?

 

미인 서예 선생님

 

그녀는 말이야

 

부드러운 글자는 안 써

 

좀 더 야무진
해서체 같은 글자를 쓰지

 

그래서 해서체의 여인

 

해서체의 여인이라...

 

마츠바라 린코

 

린코

 

어디가 좋아?

 

전부...
어디든 다 느껴요

 

여행 말이야
어디가 좋아?

 

어디든...

 

당신과 함께라면

 

모르는 곳에 가보고 싶어요

 

들어와

 

저기 다음 주말에

 

동창들이랑 여행 가기로...

 

요시오카 씨가 순환기외과
과장으로 승진했어

 

축하 선물이라도 보내드려

 

네, 난 화분이면 되겠죠?

 

항상 난이군

 

그럼 다른 걸...

 

됐어, 그거면

 

나도 예전엔 잘나갔는데

 

뭐 해요?

 

혼자 할 수 있겠어요?

 

급하게 교토로
출장 가게 됐어

 

쇼와 역사책을 편찬하려면
옛날 자료가 필요하다나

 

귀찮게 됐지 뭐야

 

그래요, 수고가 많네요

 

미안, 오래 기다렸어?

 

'타키기노'라고
들어만 봤지

 

직접 본 건 처음이에요

 

정말 멋졌어요

 

옛날엔 전깃불이 없었으니까

 

무사들이 봤던
'타키기노'는

 

좀 더 깊고 그윽하고

 

으스스했을지도 모르지

 

잠깐요

 

샤워하고 올게요

 

이대로가 좋아

 

오늘밤은 함께 있을 수 있어

 

비난 받을 거예요

 

또 달랐어요

 

안길 때마다 달라요

 

깊어져 가요

 

무서워요

 

또 무섭다고 하네

 

모두 이렇게 되는 걸까요?

 

그렇지 않아

 

우리처럼 사랑하지는
않을 테니까

 

이리 와

 

- 바래다줄까?
- 네?

 

헤어지기 힘들 것
같으니까 됐어요

 

- 괜찮겠어요?
- 역까지만 바래다줄게

 

- 다녀오셨어요?
- 어! 언제 왔어?

 

오랜만에 자고 가려고요

 

그이가 출장 갔거든요

 

아빠도 교토 다녀왔다면서요?

 

아, 이거
별 거 아니지만

 

생각보다 빨리 오셨네요

 

'나마야츠하시'네요
아빠가 사온 선물

 

그럼 난 샤워하고 올게

 

아빠가 선물이라...

 

그 튀김집 맛이
좀 변한 것 같지?

 

그런가요?
아마 식용유 때문일 거야

 

자요
오늘의 티타임은

 

스즈키 씨가
딸기 요구르트

 

요코야마 씨가
둥글레 차

 

그리고 구키 씨가
얼 그레이

 

그렇지
무라마츠 씨 메밀 차

 

다 떨어졌으니 사 두세요

 

이거 맛없는데...

 

'차'라는 건 말이야
기호품이야

 

건강식품이 아니라고

 

하지만 의외로
효과는 있대요

 

그래 봤자지
차는 차라고

 

이 요구르트 맛은 좋은데

 

빨대가 문제라니깐

 

도무지 깔끔하게
마실 수가 없어

 

그나저나 구키 씨

 

쇼와 역사책 편찬은
얼마나 진행됐나요?

 

아베사다 부분입니다

 

아베사다라면
남자의 상징을 싹뚝 자른?

 

이해 못 하겠다니까
그런 건

 

남자로서 죽었단 거죠

 

진심으로 반하면
그렇게 될까요?

 

반해본 적 있어요?

 

그나저나 그 뭐냐

 

마감이라는 게 없어서
그런지 진척이 안 되는군

 

시간에 쫓기던 때가
그립단 건가요?

 

드세요

 

왠지 구키 씨

 

편집장이셨던 때랑
별 차이 없으시네요

 

기운이 넘치시는 것 같아요

 

그럼, 난 기운이
없단 뜻이야?

 

뭐, 시점의 전환이죠

 

한가해진 게 아니라
자유시간이 생겼다

 

사람 만날 일이 줄었지만
싫은 놈 안 만나도 되고

 

이렇게 차나 마시면서
잡담하는 것도 좋잖아요

 

뭐, 구실을 달자면
틀린 말은 아니지

 

문제는 따분함을
어떻게 푸느냐죠

 

일은 잘 되고 있어?

 

곧 연말이라
바빠질 것 같아요

 

도자기 같은 게
인기가 있을까?

 

예쁜 그림이
그려져 있는 타일이라면요

 

욕실에 포인트로도 괜찮고

 

테이블 위를 장식할 수도 있고

 

그렇군

 

그럼 슬슬 나가볼까

 

아카사카에서
파티가 끝나면

 

내일은 아침부터
골프가 있어서

 

오늘밤은 센고쿠바라
호텔에 묵을 거야

 

어이!

 

다녀오세요

 

멋진 여자지?

 

여기 있는 남자들은
다들 그렇게 생각할 거야

 

와주셔서 감사드려요

 

마츠바라 씨, 오늘따라
유난히 아름다우시네요

 

이 녀석이 넋을 놓고
쳐다보지 뭡니까

 

소개 드릴게요
이마이 미도리

 

고등학교 동창이에요

 

잘 부탁해요

 

이혼한 지 얼마 안 됐거든요

 

아, 그래

 

있다가 다 같이
한 잔 어때요?

 

- 아니, 난 좀...
- 뭐야? 약속 있어?

 

골프 약속이 있어

 

내일 아침 라운딩이라
그쪽 호텔을 예약했거든

 

그 약속 때문에...

 

바쁘신데
와주셔서 감사드려요

 

그럼...

 

할 수 없네요

 

평소 붙임성 좋은 녀석인데

 

미안해요
빠져나오기 힘들어서

 

- 그럼 갈까
- 저, 잠시만요

 

이거...
부탁드려요

 

뭐야, 너?
아직 이런 데 있었어?

 

아니
목이 좀 말라서 잠깐...

 

어머?

 

아직 안 오셨나 보네

 

누구 기다려?

 

중요한 손님이 오시기로 했는데
어떻게 된 걸까

 

내버려둬요, 마츠바라 씨를
기다리게 하는 사람 따위

 

그보다 저희랑 함께?

 

아, 자네도 한 잔
정도는 괜찮잖아?

 

난 괜찮아

 

아, 골프 약속이
있다고 하셨죠

 

실례하겠습니다

 

그럼 우리 셋이서

 

- 린코, 괜찮은 거야?
- 뭐가?

 

음, 맛있군

 

초록빛이 예쁘네요

 

술도 맛있고
양쪽으로 꽃이라니

 

괜찮으시면 우산을...

 

이상하네

 

깨워서 미안해요

 

- 언제 왔어?
- 조금 전에요

 

혼자서 여기까지?

 

네, 먼저 씻을래요?

 

같이 씻을까?

 

나도 싸움은 한다고

 

당신이요?

 

영업부서와 자주 싸웠지

 

상대는 많이 팔면
그만이라 생각하고

 

난 좋은 잡지를 만들고 싶고

 

그 덕분에 한가해진 셈이지

 

다행이에요
당신이 한가해서

 

하루 더 자고 갈까?

 

 

참 신기해요

 

아주 먼 옛날부터

 

인간들은 이렇게
태양빛을 받거나

 

바람 소리를 들으면서

 

같은 일을 반복해온 걸까요?

 

남자는 여자를
만족시키려고 열심히...

 

여자도 거기에 응하고...

 

남자와 여자 사이에는

 

진보나 발전 따윈
관계없으니까

 

같은 일을 반복하고
또 반복해서

 

그치만 여자 쪽이 욕심쟁이야

 

처음엔 그렇지 않았어요

 

린코한테 재능이 있으니까

 

재능?

 

그래, 재능

 

그 무엇보다도

 

여기가 좋아

 

남편은 아무 말 안 해?

 

이제 다른 남자랑은 못 해요

 

이렇게 좋은걸요

 

예쁘지? 내 아들

 

진짜 귀엽다

 

- 그이도 그렇지?
- 응?

 

구키 씨 말이야, 구키

 

- 남편은 몰라?
- 응

 

나도 사랑이나 해볼까

 

이 아이를 위해서라도
내가 행복해져야지

 

조만간 소개해 줄게
후보가 한 명 있거든

 

어떤 사람인데?

 

이 아이 못지 않은
멋진 남자야

 

기대되네

 

이번엔 네덜란드인

 

린코에겐 아이가 어울리지 않아

 

- 점심 먹었어?
- 아니, 아직

 

별로 서두를 필요도 없고

 

뭐야?
할 얘기라는 게

 

실은 말이야

 

내년부터 마론 사로
가게 될 것 같아

 

그럼 그쪽 사장으로?

 

아니, 우선
부사장이긴 한데

 

사장이 된다 한들
금방 정년이야

 

샐러리맨은 정말 부질 없다니깐

 

더 이상 필요 없다 생각되면

 

휴지처럼 버려지지

 

버려졌다고
단정지을 건 없잖아

 

마론 사도
너 하기에 따라서는

 

더 좋아질지도 모르지

 

지금까지 아둥바둥 일하면서

 

대체 뭘 한 건지...

 

이제야 네 심정을 알겠어

 

여름이 끝나도 가을이
오지는 않으리니...

 

뭐야, 그게?

 

츠레즈레구사의 '10월은
초봄의 날씨'에 나오는 말

 

여름이 끝나서
가을이 오는 것이 아니라

 

여름 동안 가을은 이미
준비되고 있다는 거지

 

과연...

 

자연도 회사의 인사도

 

어느날 갑자기
움직이는 듯 보이지만

 

깊은 곳에선 훨씬 전부터
움직이고 있었는데

 

우리가 눈치채지
못했던 것뿐일지도 몰라

 

보통은 자회사로 가면

 

나중을 생각해서
얌전해진다고들 하지만

 

난 그렇게는 안 될 거야

 

 

- 아, 기누가와
- 섭섭하게 만드네

 

대학 때부터 친구인
나까지 속이다니

 

응?

 

'해서체의 여인' 말이야

 

사귀는 중이라며?
정말 섭섭하다

 

미도리 씨한테 들었어

 

너, 미도리 씨랑 사귀냐?

 

잠꼬대 마!

 

밥 먹자고 했더니
애를 달고 나오더라고

 

사실 전화한 이유는

 

그 해서체의 여인 때문인데

 

그녀가 왜?

 

며칠 전에 찾아와서

 

서예 강사를
계속 시켜달라지 뭐야

 

그것도 주 2일이 아니라

 

주 4일 상임 강사를
시켜달라고

 

돈이 필요한 일이라도
생긴 거 아니야?

 

조금 피곤한 기색도 있었고

 

거기에 대해서
아는 거 없어?

 

아니

 

아무 말 못 들었어?

 

일단 너한테
알려둘까 싶어서

 

또 연락할게

 

- 네
- 신청서를 받고 싶은데요

 

네, 그럼...

 

네, 마츠바라입니다

 

어제 TV 봤어요?

 

요즘 중년이
인기폭발이래요

 

예? 정말요?

 

어떤 타입이 인기예요?

 

좋아, 그럼

 

미야타 양한테 물어볼까?

 

여자의 날카로운
관찰력을 발휘해 봐

 

이 중에서 누가 제일
인기 있을 것 같아?

 

인기가 있느냐
없느냐 보다는

 

애인이 있을 것 같은 분은...

 

- 구키 씨요
- 그렇지 않아

 

역시 휴대폰이
무기인 걸까요?

 

수상하다 싶었어

 

그럼 구키 씨한테
제일 맛있는 곳을

 

고마워

 

러브 호텔 가본지도 오래됐네

 

몇 년이나 됐지...

 

그러게 말이야
그 뭐냐, 아줌마가

 

차하고 전병을 가져오잖아?

 

뭐예요, 그게?

 

뭘 모르는구만
러브 호텔은 한물 갔다고

 

그럼 만일
그런 찬스가 생기면

 

어딜 가야 하죠?

 

씨티 호텔이라던데?
요즘엔

 

만날 때마다 그런 데 가려면

 

돈 많이 들겠네요
구키 씨

 

그러게요

 

그래도 이 사람은 이미
자기 집도 있고

 

딸도 시집 보냈고

 

부인도 일을 하고 있으니

 

돈 걱정은 전혀 없겠지

 

대출금 때문에 피 마르는
우리랑은 다르지

 

불륜에 가장 필요한 건 돈

 

- 다음이 시간
- 체력

 

아무튼

 

풍파 없이
잘 넘기는 것이

 

어른들의 연애겠지

 

그게 말처럼 쉬울까요?

 

잠깐 실례...

 

- 여보세요?
- 여보세요

 

린코!

 

연락 못 드려서 미안해요

 

다행이야

 

지금 어디야?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아침에 연락을 받고
급하게 오느라...

 

심장 발작이시래요

 

난 그런 줄도 모르고...

 

너무 낙심하지 마

 

네...

 

그래도 목소리 들으니
안심이야

 

보고 싶어

 

보고 싶어...

 

한 시간이라도
20분이라도 좋아

 

오늘 안 된다면
내일이라도...

 

미안, 5분 후에
전화해 줄래?

 

보고 싶어

 

오늘은 도저히 힘들어요

 

이해해 주세요

 

지금 죽을지도 몰라

 

- 보고 싶어
- 힘들어요!

 

호텔 방에서 기다릴게

 

-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 고마워요

 

갑작스레 돌아가신 거야?

 

 

매우 다정한 분이셨어요

 

의붓아버지셨지만요

 

의붓?

 

친아버지는

 

제가 세 살 때
집을 나가셨어요

 

아홉 살 때
엄마가 재혼을 하셨고

 

아버지는 친자식처럼
예뻐해 주셨어요

 

그럼, 친아버지와는
그 후로...?

 

어디 계시는지조차도
몰라서...

 

그래서...
아버지에 대해 기억하는 건...

 

목마 태워 주셨을 때의
추억뿐이에요

 

목마?

 

아주 어릴 때

 

아버지 어깨에 타고

 

머리를 붙잡고 매달려서

 

그때의 아버지의 체온도
포마드의 냄새도

 

기억하고 있어요

 

안 돼요...

 

아무 짓도 안 해

 

잠깐 눕기만 하면 돼

 

얼마 전에 기누가와한테
전화가 왔어

 

혹시 돈 문제라면

 

어느 정도는
도와줄 수 있어

 

아니면 말하기
곤란한 일이야?

 

당신을 만나기 위해서잖아요!

 

일이 있으면 집을
비우는 핑계도 되고

 

당신과 함께할 시간도
늘릴 수 있다고 생각해서...

 

- 하고 싶어...
- 안 돼요

 

잠깐이면 돼
하고 싶어...

 

해드릴 테니까

 

오늘은 봐주세요

 

저도 하고 싶어요!

 

잊게 해 주세요

 

네 남편은 먼저 갔단다

 

너도 그만 가려무나

 

난 엄마랑 여기 있을래

 

네 남편이 의사라서
정말 다행이야

 

병원에도 여러 모로 손 써 줬고

 

부질없구나
사람의 목숨이란 거

 

정말 다정한 분이었어

 

함께 있으면
뭐든 안심이 됐지

 

너도 네 남편을
소중히 하려무나

 

너희는 아이도 없으니까

 

지금 오세요
야근 힘드셨죠?

 

- 식사는?
- 필요 없어

 

졸려

 

졸려 죽겠어

 

덕분에 아버지 장례식은
잘 치뤘어요

 

어, 그래

 

이때는 뭐였던 거지?

 

내 방식은 싫은 거야?

 

- 무슨 생각해?
- 아니, 신기해서

 

아버님과 어머님 사이에서
당신 태어난 거 맞지?

 

자네도 참
무슨 농담이야

 

아, 죄송해요

 

이이가 말이야
빨리 아이가 갖고 싶대

 

결혼도 했으니
당연하지

 

좀더 둘만의 시간을
즐기고 싶다고

 

아이가 생겨도
즐길 수 있어

 

그쵸? 어머니

 

우리 애 아빠는
신혼 때부터 워낙 바빠서

 

즐기기는커녕
여유도 없었단다

 

괜히 바쁜 척
하는 거 아니야?

 

잠깐 상무님 좀 만나고 올게

 

마작은 안 했으면 좋겠는데

 

가끔은 마작도 좋잖아요

 

아빠

 

엄마한테 잘 좀 해드려요

 

잘 해주고 말고요

 

올해는 어떤 한 해가 되려나

 

더 만나고 싶어

 

좀 더...

 

오래 함께 있고 싶어

 

하지만 이대로라면
우린 어떻게 되는 거죠?

 

지옥에 떨어질 거예요

 

지옥?

 

정월 초하루부터...

 

당신은 모르겠지만
전 분명...

 

아버지 장례식날
그런 짓을 했으니

 

그럼 함께 가지

 

앞으로는

 

당신과 만나는 것만
생각할래요

 

요즘 들어 구키 씨
꽤 바빠 보이네요

 

그보다 쇼핑도 많이 하잖아요

 

일찍 오셨네요

 

빵, 샐러리, 과일...

 

커피 메이커...

 

그리고...

 

샤또 마르고?

 

제가 좋아하는
오리 물냉이 찌개예요

 

나도 좋아할 것 같은데

 

맛있어

 

역시 같이 먹으면 맛있어요

 

무슨 생각해요?

 

아무 생각 안 하는데?

 

늘 함께 있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당신이 뭘 하고
다니는지 다 알아

 

어디서 식사하고

 

어느 호텔에 묵었는지

 

물론 상대가 누군지도 알아

 

꽤 정확한 정보야

 

즐거웠어?

 

더 나쁜 짓도 하고 있지?

 

그래도 난 당신과
헤어질 생각 없어

 

이혼하지 않는 한
당신은 내 아내야

 

세탁하실 거 있어요?

 

미즈구치가...

 

암이라니...

 

많이 진행됐다고 하더군

 

본인은 모르는 모양이에요

 

문병도 당분간
안 왔으면 한대요

 

그렇군요...

 

동년배인 녀석이 쓰러졌으니

 

우리도 슬슬
각오해둬야겠네요

 

그 녀석 마론 사로
간다고 했었는데

 

물론 없던 얘기가 됐지

 

후임자는 벌써 정해졌다더군

 

녀석의 병...

 

인사 이동의
영향일지도 모르겠네요

 

인사 이동?

 

그래요
요직에서 배제된 순간

 

의욕을 잃고 앓아 눕는
경우가 많다니까요

 

일밖에 모르는 사람이었으니까

 

구키 씨, 오늘도
국회 도서관에 가나요?

 

 

정도껏 하라고, 정도껏

 

무슨 일이든

 

우리 정보라...

 

사설 탐정이라도 고용한 건가

 

몰라요

 

알고 싶지도 않아요

 

10월 8일

 

니시아자부에서
토기 전시회를 본 후

 

류도쵸의 레스토랑에서 식사

 

그후 프린스 호텔에 체크인

 

왠지 추억 일기 같네

 

좋아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건 자연스러운 거죠?

 

물론 싫어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건 힘들지

 

그런데도...

 

한 번 결혼하면
용서받지 못해요

 

남편 이외의
남자를 사랑하면

 

불륜이고 조신하지
못하다는 소리를 듣죠

 

사랑하지 않게 된 건
제 잘못이지만

 

그치만

 

마음이 변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억지로 함께 있는 건

 

오히려 그 사람을 상처
입히고 배신하는 셈이에요

 

이렇게 진심으로
당신을 좋아하는데

 

불륜이란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는 건가요?

 

굉장히 정숙하고

 

그러면서도 섹스를 좋아하고

 

언제나 열심이고

 

어딘가 부족해 보이는
린코가 좋아

 

그럼 당신의 좋은 점도
말해 드릴게요

 

있으려나?

 

역시 섹스를 좋아하고
밸런스가 맞지 않는 점이에요

 

나 왔어

 

오셨어요

 

어제 들어올 생각이었는데

 

도무지 일이 끝나질 않아서

 

연락하려고 했는데

 

취해서 곯아떨어졌지 뭐야

 

그렇게 무리하실 필요 없어요

 

무리?

 

우리 이혼하지 않을래요?

 

그러는 게 좋겠어요

 

지금 이혼하는 게
저도 맘 편하고

 

당신도 시원하겠죠

 

새출발하려면
저도 적잖은 나이잖아요

 

하지만, 왜...?

 

갑자기 이혼하자고 하면...

 

곤란해

 

곤란하다고요?

 

지금 한 말 잊지 마세요

 

역시 엄마가
이혼 얘기했죠?

 

역시라니...
너, 알고 있었어?

 

그래서?
아빤 어떤데요?

 

어떠냐니...

 

엄마는 진심이에요

 

솔직히 말해서
생각도 못 했어

 

엄마가 의심
한 번 안 하고

 

늘 아빠를 믿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아니, 그렇게까지는
생각 안 했지만

 

이혼하자고 할 줄은...

 

엄마, 딱 한 번
제 앞에서 울었어요

 

그치만 엄마는
자존심이 강하니까

 

그런 모습을 아빠한테
보이고 싶지 않았을 거예요

 

보이면 자신이 더 비참해지니까

 

앞으로 혼자
헤쳐나갈 생각인 걸까?

 

엄마는 혼자니까

 

아빠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 드리세요

 

다 컸구나

 

그래요

 

세상은 조금씩이긴 해도
변하고 있죠

 

이만 가 볼게요

 

귀사의 전 출판부장
구키 쇼이치로는 작년 여름

 

문화회관 임시강사 의뢰를
받은 기회를 이용하여

 

당시 서예 강사였던

 

마츠바라 린코에게
의도적으로 접근

 

유부녀인 것을 알면서도

 

집으로 몇 번이나
전화를 걸어

 

교묘한 말로 유혹했다

 

작년 여름 이후

 

당사자는 끊임 없이
그녀를 불러내

 

밀회를 거듭했으며

 

마침내 같은 해 9월

 

도내의 호텔로 불러낸 후

 

억지로 관계를 강요하여
음행을 저질렀다

 

죄송합니다

 

물론 나도 이 편지 내용을
그대로 믿지는 않네

 

허나 회사로 보내온 이상

 

그냥 무시할 수도 없네

 

이 여성과 친한 사이가
된 건 확실한가?

 

 

인기 있구만

 

그런데 자네 교에사로
전근 가지 않겠나?

 

교에사 말씀이신가요?

 

갑작스럽게 생각하겠지만

 

자네가 맡고 있는 쇼와
역사책 간행이 좀 어려워졌네

 

그 업무가 없어졌으니
자네도 손이 비겠지

 

이 일 때문인가요?

 

아니, 꼭 그렇지는 않네

 

천천히 생각해본 후
대답해도 좋네

 

여러분과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방금 상무님께 불려갔었는데

 

4월부터 교에사로
전근 가라더군요

 

이혼 신고서

 

저번에 밤 늦게 전화했더니
집에 없다고 하던데

 

어디 갔었니?

 

너희들, 사이가
좋지 않은 거니?

 

그대로예요, 그이랑은

 

그럼 다행이지만

 

네 남편한테는
여러모로 신세를 졌으니

 

엄마...

 

나...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

 

처음으로 남자를 사랑하게 됐어

 

린코...

 

겉으론 얌전해 보이면서

 

아버지랑 닮은 점이 있다니깐

 

맞아

 

엄마와 날 버리고
떠난 사람이라 해도

 

아버지는 아버지니까

 

분명 닮았을 거야

 

그런 추잡한 딸로
키우지 않았는데

 

추잡?

 

너! 육체에
끌리고 있는 거야

 

그딴 거에 미쳐서는...

 

내가 추잡하다면

 

이 세상 여자는
모두 추잡해!

 

엄마는 그걸
이해하려 하지 않을 뿐!

 

겨우 수술을 마치고
기운을 차렸어요

 

하지만 의사선생님은...

 

길어야 3개월이라고...

 

본인은요?

 

아뇨, 말하지 않았어요

 

일단 급한 수술은
마쳤으니

 

괜찮다고 말해뒀거든요

 

이 참에 깨끗이
치료하는 편이 좋아

 

좋은 기회잖아

 

식욕이 좀 없어

 

나 있잖아
'시키'를 다시 읽었어

 

시키?

 

마사오카 시키 말이군

 

넌 시집 좋아했었지

 

'밥 기다리는 시간'
이라는 게 있어

 

그의 투병 일기지

 

죽음을 눈 앞에 둔
상황에서 그걸

 

밥 기다리는 시간이라고
비유한 게 그답지 뭐야

 

그 작가는 말이야

 

이불 속에서
꼼짝도 못 하게 되자

 

거기서 보이는 걸

 

전부 관찰하면서
시간을 때웠대

 

그런데도 아직
밥이 안 왔다는 거야

 

그리고 마지막 한 줄이
진짜로 멋지지

 

방바닥으로
눈부신 햇살이 내려왔다

 

밥이 왔다

 

방바닥으로
눈부신 햇살이 내려왔다

 

밥이 왔다...

 

생각보다 기운 넘치네

 

얼른 돌아오라고

 

네가 없으면
마론 사도 곤란하잖아

 

거짓말 마

 

네가 제일 잘 알잖아

 

회사에서 사람 한둘 없어도

 

곤란하지 않다는 걸

 

구키

 

나도 너처럼
놀아둘 걸 그랬어

 

후회 없이 놀아둘 것을

 

어차피 인간이란
늙어 죽어가는 거니까

 

하고 싶은 일들을 해둬야지

 

우리 사이를
엄마가 알아버렸어요

 

이런저런 소릴 듣고
마지막으로

 

모녀의 연을 끊겠다고

 

제가 추잡하고
불쌍한 여자래요

 

추잡하고 불쌍하다고?

 

그래요

 

전 당신의 육체에
끌리고 있어요

 

마음으로도 끌리고 있어요

 

그래서 전 당신에게 안기면

 

몸과 마음
양쪽으로 느끼죠

 

이걸로 전 모든 걸 잃었어요

 

실은 나도 사건이 있었어

 

뭐예요?

 

여튼 읽어 봐

 

너무해...

 

누가 이런 걸...

 

누구라고 생각해?

 

설마 남편이...

 

그래서 자회사로
전근 가라더군

 

자업자득인 셈이지

 

거절할 수 없는 거예요?

 

그럼 회사 따위
그만두면 되잖아요

 

그만둬도 괜찮지...

 

린코야말로 모든 걸 잃었으니

 

안아 주세요

 

죽을 만큼 안아 주세요

 

드릴 말씀이 있어요

 

전...

 

억지로 강요당한 것도

 

교묘한 말에
유혹당한 것도 아니에요

 

건강하세요

 

당신! 미친 거 아니야?!

 

아니요

 

전...

 

저 그대로예요

 

미즈구치 고로 장례식

 

어제 상태가
급변한 모양이야

 

회사 사람은 아무도
임종을 못 봤대요

 

왜 그 녀석만

 

암 같은 지뢰를 밟은 걸까요

 

미즈구치는 일 잘하는
좋은 녀석이었지

 

상갓집에 오면

 

모두 똑같다는 생각이 들어

 

아직 건강히 살아있다 해도

 

언젠가는 죽을 테고

 

단지 빠르냐
느리냐의 차이겠지

 

미즈구치에게
어울리는 구절이 있지

 

불타오르는 사랑 없는

 

시들어버린 들판이여

 

불타오르는 사랑 없는

 

시들어버린 들판이여

 

과연 그렇군

 

사랑이라...

 

그래서 어떤데?
해서체의 여인과는?

 

아무리 한직이라 해도

 

너무 놀다간 짤린다?

 

지난번에도 전화했더니

 

여비서가 너 없는
핑계 대느라 고생하더군

 

행여 짤리면

 

또 우리 문화회관에서
강사라도 할래?

 

요즘 우리 회관
실적이 좋아서 말이야

 

얼마 전에
사장상이란 걸 받았어

 

대단하네

 

뭐, 일도 좋지만

 

나도 너처럼
연애 좀 해보고 싶다

 

이런 나이가 되면
특히 그런 생각이 들어

 

뭐, 하지만

 

한 발 잘못 내딛으면
소중한 걸 잃게 되지

 

소중한 게 뭔데?

 

일도 그렇고
가정도 그렇고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내가 자루 소바

 

난 모리 소바

 

사표

 

이거 무슨 의미인가?

 

전 편집밖에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쪽에 가 봤자
방해만 될 겁니다

 

그렇게 자책할 건 없잖나

 

아니요, 자책이 아니라
멸시당한 거죠

 

오랫동안 여러 가지 신세졌습니다

 

그러지 말고 다시
생각해 보지 않겠나?

 

이미 충분히
생각한 결과입니다

 

무슨 말씀하셔도 그만두겠습니다

 

잘 됐네

 

둘이서 외국에라도 가 버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고 싶은 걸 해 봐

 

고마워

 

미도리, 잠깐만

 

살다 보면 어떻게든 될 거야

 

저, 지금이 최고예요

 

제 인생에서 지금이
최고라고 생각해요

 

인생에서 지금이 최고...

 

멋지네

 

하지만 무서워요
너무 행복해서

 

이 행복이 언젠가는
끝날 거라 생각하면...

 

재미있는 얘기
해 줄까?

 

예전에 내가 담당했던
소설가 선생님이 있었는데

 

그 선생님이
정사 소설을 쓰려고 했어

 

그것도 흔해빠진
정사가 아니라

 

둘이 하나가 된 채

 

동시에 죽는 정사 소설이야

 

서로 목을 졸라 봤자

 

한 쪽밖에 못 죽으니까

 

선생님은 의학부
친구한테 물어봤어

 

가능한 방법이 있는지

 

찾아냈나요?

 

약이야

 

그 약을 먹으면

 

확실하게
동시에 죽을 수 있어

 

게다가

 

사후경직으로

 

둘의 몸은 떨어지지 않아

 

저...

 

당신과 함께라면 무섭지 않아요

 

또 하고 싶으세요?

 

당연하지

 

하려면 영원히 해요

 

영원히?

 

언제까지고 영원히

 

별 일 없었어?

 

그 일...

 

변호사에게
부탁하기로 했어요

 

그렇게 하는 편이...

 

아빠, 조금 야위었네요

 

건강해 보이는구나

 

왠지 서로 모르는 사이 같아

 

봄 옷 좀 샀어요

 

고마워

 

잠깐 위에 좀...

 

이거, 고마워

 

그럼...

 

잘 지내

 

가지 마세요!

 

오리 물냉이 찌개

 

우리 추억의 요리

 

슬슬 가볼까?

 

 

후회하지 않으세요?

 

후회는 없어

 

점점 당신의 살결과

 

제 살결이 구별되지 않게 됐어요

 

꼭 붙어있는 게 당연하게 됐어

 

아무도 우릴 갈라놓을 수 없어요

 

지금이라면

 

무섭지 않아

 

저도요

 

당신과 함께라면

 

무섭지 않아요

 

7살 때 연꽃 밭에서

 

미아가 됐었죠

 

해가 져서 무서웠어요

 

9살 때 아버지가
야구 글러브를 사 주셨지

 

진짜로 기뻐서 낀 채로 잤어

 

14살 때 처음으로
스타킹을 신었어요

 

로퍼 속에서
발이 미끄러졌어요

 

17살 때

 

케네디 대통령 암살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지

 

25살에 중매결혼

 

결혼식 날
태풍이 왔었어요

 

27살에 딸이 태어났지

 

일이 너무 바빠서

 

병원에도 못 갔어

 

38살 여름

 

당신을 만나서
사랑에 빠졌어요

 

50살

 

여자에게
처음으로 빠져버렸어

 

38살 겨울

 

당신과 쭉 함께 있어요

 

영원히...

 

영원히

 

사체 검안 조서

 

구키 쇼이치로(51)
마츠바라 린코(38)에 대한

 

사망 상황 및 검안 소견

 

발견 당시 두 사람은

 

알몸으로 국부까지
결합한 상태였다

 

사후경직이
가장 강한 시간대라서

 

시체를 쉽게
떼어낼 수 없었다

 

사망 원인은
와인에 들어있던

 

독극물에 의한 급성 호흡정지

 

sub2smi by Michael Archangel | 철자법 간략 수정: highc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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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함께라면

 

무섭지 않아요

 

7살 때 연꽃 밭에서

 

미아가 됐었죠

 

해가 져서 무서웠어요

 

9살 때 아버지가
야구 글러브를 사 주셨지

 

진짜로 기뻐서 낀 채로 잤어

 

14살 때 처음으로
스타킹을 신었어요

 

로퍼 속에서
발이 미끄러졌어요

 

17살 때

 

케네디 대통령 암살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지

 

25살에 중매결혼

 

결혼식 날
태풍이 왔었어요

 

27살에 딸이 태어났지

 

일이 너무 바빠서

 

병원에도 못 갔어

 

38살 여름

 

당신을 만나서
사랑에 빠졌어요

 

50살

 

여자에게
처음으로 빠져버렸어

 

38살 겨울

 

당신과 쭉 함께 있어요

 

영원히...

 

영원히

 

사체 검안 조서

 

구키 쇼이치로(51)
마츠바라 린코(38)에 대한

 

사망 상황 및 검안 소견

 

발견 당시 두 사람은

 

알몸으로 국부까지
결합한 상태였다

 

사후경직이
가장 강한 시간대라서

 

시체를 쉽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