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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를 기울이면”

 

- 안녕하세요
- 덥지?

 

다녀왔습니다

 

수고했다

 

우유 한 통 사고
비닐에 넣어 왔니?

 

거기서 넣어 주잖아요

 

거절하면 되지
나도 한 잔만 줘

 

아빠도 보리차 마셔요?

 

그래, 그리로 갈게

 

고마워, 컴퓨터 다 썼어?

 

프린트 중이야

 

노트북을 살까 봐

 

아, 담배!

 

너도 시골에 갔으면 좋았을걸

 

싫어, 언니랑 가면 피곤해요

 

참, 내일도 출근해야 해

 

- 도시락 싸요?
- 아니, 사 먹을게

 

바코드로 바꾼다고
도서관에 일이 많아

 

난 도서 카드가 더 좋은데

 

사실 나도 그래

 

- 이 글 이상해
- 어디가?

 

한 줄 빠졌나 봐

 

깜빡했다

 

먼저 내가 쓸게
교수가 재촉해서 빨리해야 해

 

“아마사와 세이지
7월 5일”

 

이 이름…

 

책도 좋지만 잠도 자야지

 

네, 안녕히 주무세요

 

역시! 낯익은 이름이더라

 

여기도 있네

 

“도서 대출 카드”

 

“아마사와 세이지
7월 27일”

 

“아마사와 세이지
‪7월 28일”

 

“아마사와 세이지
‪7월 5일”

 

굉장해, 이 책들을
다 나보다 먼저 읽었네

 

아마사와 세이지
어떤 사람일까?

 

멋진 사람일까?

 

“아마사와 세이지”

 

시즈쿠, 그만 일어나

 

엄마 나간다

 

너 그러고 잤니? 쌀 씻어 놔

 

다녀오세요

 

늦었다! 유코랑 약속했는데

 

지갑!

 

- 또 내려갔다 왔어요?
- 응

 

- 이상하네
- 전화기 옆에는요?

 

- 찾았다
- 날마다 저래

 

지각하겠네, 문단속 잘해라

 

덤벙이!

 

아주 낮게 나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오늘은 일진이 좋겠어

 

무지 덥구나

 

안녕, 좋은 아침!

 

쳐라!

 

시즈쿠!

 

안녕, 열심히 해!

 

고사카 선생님 계세요?

 

쓰키시마, 웬일이니?

 

부탁이 있어요

 

이상한 거 아니지?

 

도서실 좀 열어 주세요

 

도서실?

 

개학할 때까지 기다리지

 

이제 읽을 게 없어요
시립 도서관도 문을 안 열고요

 

이번 방학 동안
20권이 목표거든요

 

20권?

 

너 수험생인 거 잊지 마

 

빨리 고르렴

 

- 여깄다
- 어서 가져와

 

도서 카드랑
네 대출 카드 빨리 꺼내

 

알았어요

 

아무도 안 빌린 책이네

 

아주 귀한 책이에요
시립 도서관에도 없거든요

 

“동화”

 

“아마사와 기증”

 

아마사와…

 

이 사람 어떤 사람이에요?

 

너 때문에 틀렸어, 기증자겠지

 

그런 옛날 일은
나이 든 선생님께 물어보렴

 

시즈쿠! 여기 있었구나

 

11시에 약속했잖아

 

15분이나 땡볕에 서 있었어

 

주근깨가 늘잖아

 

미안해

 

조용히 해라

 

유코, 주근깨에 너무
신경 쓰는 거 아니니?

 

저한테는 큰일이라고요

 

알았다, 그만 나가 봐

 

빨리!

 

써 봤는데 좀 이상해

 

그냥 영어로 부를까?

 

♪ 하얀 구름이 떠가는 언덕을 ♪

 

♪ 휘감고 올라가는 고갯길 ♪

 

♪ 낡은 방의 작은 창문 ♪

 

♪ 혼자 남아 주인을 기다리는 개 ♪

 

♪ 컨트리 로드 ♪

 

♪ 머나먼 고향으로 가는 길 ♪

 

♪ 웨스트버지니아, 어머니의 산 ♪

 

♪ 그리운 나의 고향 ♪

 

- 나쁘지 않은데?
- 아니야! 너무 평범해

 

그런가?

 

하나 더 써 봤어

 

♪ 콘크리트 로드, 어디까지나 ♪

 

♪ 나무를 베고 계곡을 메워 ♪

 

♪ 웨스트 도쿄 ♪

 

♪ 마운틴 타마 ♪

 

♪ 나의 고향은 콘크리트 로드 ♪

 

되게 웃긴다

 

근데 고민이라는 게 뭐야?

 

가사는 아직 급하지 않잖아

 

너 좋아하는 사람 있니?

 

응?

 

남자 친구가 있으면 좋겠어
서로 힘내서 같이 공부도 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구나?

 

- 러브 레터라고?
- 쉿!

 

언제? 누군데? 잘생겼어?

 

다른 반 애가 줬는데
좀 괜찮아 보이긴 했어

 

일단 사귀어 봐
거절할 땐 하더라도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 있구나?

 

숨겨도 소용없어, 빨리 말해

 

스…

 

쓰키시마! 내 가방 좀 줘

 

스기무라!

 

파란 가방 말이야

 

부탁이야

 

좀 던져 줘

 

시끄러워! 볼 보이 주제에!

 

나 주전으로
지역 대회도 나가는데!

 

유코!

 

스기무라를 좋아했구나

 

어쩌면 좋지? 들통났을 거야

 

걱정하지 마, 걘 둔하거든

 

러브 레터는 어쩔래?

 

좀 더 생각해 볼게

 

그래

 

넌 좋겠다

 

집에서 공부하라고 안 하잖아

 

너무 안 해도 가끔은 힘들어

 

그런가?

 

- 이런!
- 왜 그래?

 

책을 두고 왔어, 가 볼게

 

태워다 줄까?

 

됐어, 너 학원 늦을라

 

- 전화할게
- 응

 

그 책

 

네 거야?

 

자, 쓰키시마 시즈쿠

 

내 이름을 어떻게?

 

맞혀 봐!

 

도서 카드를 봤구나

 

콘크리트 로드는 관두지 그래

 

읽었구나!

 

밥맛 없는 자식!

 

기분 나쁜 놈!

 

짜증 나!

 

콘크리트 로드는 관두라고?

 

재수 없어!

 

“아마사와 기증”

 

봤어?

 

다녀왔어

 

언니? 오늘 온 거야?

 

피곤하다

 

여기로 오는 차가 있어서
얻어 탔어

 

엄마는?

 

여름 보충 수업이래
아빠는 출근하셨어

 

청소 좀 해 놓지
저녁 준비는?

 

쌀 씻어 두래

 

이게 뭐야! 먹었으면 치워야지

 

치우려던 참이야

 

엄마 바쁘니까 돕기로 했잖아

 

쌀 씻고 빨래 걷어
샤워하고 내가 밥할게

 

고등학생 되면
숙모가 너도 좀 오래

 

공부는 잘돼?

 

잔소리 안 하신다고
방심했다간 후회할 거야

 

나도 알아!

 

간장까지 싸 주시는 거예요

 

네 숙모도 참…
작년에도 그랬지?

 

그땐 된장이 무거워서 혼났죠

 

2kg 정도였지?

 

시즈쿠, 그만 일어나

 

네 자리는 네가 치워

 

이불도 빨 거야

 

- 엄마는?
- 아까 나가셨어

 

식탁 치우고
아빠 도시락 좀 갖다줘

 

내가?

 

왜? 어차피 도서관 간다며

 

그럼 내가 갈까?

 

네가 화장실이랑 욕조랑
현관도 청소하고 은행도 갈래?

 

이불도 걷고 시장도 보고
저녁 준비도 해야 해

 

갔다 올게

 

시즈쿠!

 

- 우체통에 넣어 줘
- 뭐라고?

 

우, 체, 통

 

훔쳐보지 마!
클립은 빼고 넣어

 

- 남자 친구?
- 시끄러워!

 

“무카이하라역”

 

“자전거 주차 금지”

 

- 거기 가 볼래?
- 그래

 

다음 역은 스기노미야입니다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고양아, 혼자니?

 

어디까지 가니?

 

밖에 재밌는 거 있어?

 

대답 좀 해 봐

 

난 여기서 내려, 너는?

 

그럼 안녕

 

야옹이다!

 

“스기노미야역”

 

도서관 쪽이다

 

재밌는 이야기가
될 것 같았는데…

 

저기 있다!

 

“관계자 외 출입 금지”

 

“관계자 외 출입 금지”

 

너무 가파르네
어디까지 갈 거지?

 

고양아!

 

고양아!

 

이 근처에 사나?

 

어디 가니? 여기 살아?

 

언덕 위에
이런 데가 있는지 몰랐네

 

“스즈키”

 

세상에, 강아지를 갖고 노네

 

나도 갖고 노는 게 아닐까?

 

“지구옥”

 

언덕 위에 이런 가게가 있었네

 

멋진 인형이다

 

네가 아까 그 고양이니?

 

손님이 왔구먼

 

- 저기…
- 괜찮아

 

천천히 구경해

 

남작도 심심했을 테니

 

이 고양이가 남작이에요?

 

훔베르트 폰 기크킹겐 남작이야

 

굉장한 이름이지

 

미안하구나

 

고맙다, 이제 됐어

 

멋진 시계군요

 

어느 성에서
녹슨 채 잠들어 있었지

 

보렴

 

너무 예뻐요, 이게 뭐죠?

 

어디 보자

 

“포르코 로소”

 

정말 멋진 드워프군요

 

잘 아는구나

 

드워프를 아는 아가씨군

 

숫자판을 보렴
잘될지 모르겠구나

 

엘프다!

 

빛이 반사되지? 올라오렴

 

 

- 공주님?
- 그렇지

 

둘이 사랑하는 사인가요?

 

사랑하지만 사는 세계가 달라

 

남자는 드워프의 왕이거든

 

여자는 12시 종이 울릴 때만
양에서 원래대로 돌아온단다

 

그래도 왕은 매시간 나타나서

 

공주를 기다린단다

 

이 시계를 만든 장인이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했겠지

 

그래서 둘 다 슬퍼 보이는군요

 

이 시계가 빠른 거죠?

 

그래 봐야 5분 정도야

 

큰일이다!

 

도서관에 가야 해요
안녕히 계세요

 

또 와도 되나요?

 

그래, 도서관은 왼쪽이다

 

도서관이 밑에 있네!

 

“덴슈 언덕”

 

멋진 곳을 찾았어
동화 속의 집 같아

 

멋져!

 

쓰키시마!

 

쓰키시마 시즈쿠

 

이거 네 거지?

 

자주 이러는구나

 

고마워, 근데 어떻게?

 

맞혀 봐!

 

고양이! 네 고양이였니?

 

네 도시락 엄청 크다!

 

내 거 아니야!

 

♪ 콘크리트 로드, 어디까지나 ♪

 

아니라니까! 야!

 

시즈쿠가 왔구나

 

왜 그러니? 뚱한 얼굴로

 

설명하기 복잡해요

 

보물을 발견해서 아주 기뻤는데

 

이상한 놈 때문에
땅에 묻혀버린 기분이에요

 

그거 복잡하구나

 

오늘도 책 빌려 가니?

 

네, 7권은 더 읽어야 해요

 

열심이구나, 점심은?

 

- 사 먹을게요
- 그래?

 

도시락 고맙다

 

6월 16일, 굉장해

 

아마사와란 사람
이 책도 읽었구나

 

어떤 사람일까?

 

♪ 콘크리트 로드 ♪

 

아니야! 그런 놈은 아니야!

 

“함부르크의 포”

 

시즈쿠, 서둘러

 

지각이다!

 

우산 좀 줘

 

새 학기인데 비만 계속 오네

 

불평하지 마세요
엄만 좋아서 공부하는 거잖아요

 

알겠다

 

- 열심히 공부하세요
- 당연하지!

 

- 시즈쿠
- 안녕

 

서둘러, 늦었어!

 

시험 너무 싫어!

 

며칠간 계속 시험이잖아

 

답장은 했니?

 

아니

 

- 걔는 아무 말도 안 해?
- 응

 

역시 거절할까 봐

 

그게 좋을지도 모르지

 

스기무라!

 

서둘러야 해!

 

알아!

 

그만! 시험지 걷어라

 

오후엔 정상 수업이다

 

이리 와, 밥 먹자!

 

고사카 선생님께 가자

 

그 전에 교무실 좀 들르자

 

알았어

 

쓰키시마, 내 말 좀 들어 봐

 

- 뭔데?
- 나 시험 잘 봤어!

 

좋기도 하겠다

 

쉬는 시간에 본 게
시험에 다 나왔거든

 

야구만 잘하는 게 아니었구나

 

찍는 건 유코가 잘하는데

 

같이 공부해 보지 그래?

 

유코가?

 

- 스기무라!
- 왜 그래?

 

- 이거 봤냐?
- 그만 가자

 

억지로 이어 주지 마!

 

눈치챘니?

 

찍어서 맞은 적
한 번도 없어!

 

미안해

 

“교무실”

 

실례합니다

 

책 기증자?
나도 모를 텐데…

 

식사 중에 죄송합니다

 

여기 도장 찍힌 이름요

 

어디 보자

 

“동화”

 

“아마사와 기증”

 

아마사와 씨구나

 

나도 이 책 읽었어
좋은 책이지?

 

아주 좋아요

 

근데 이분은 어떤 분이에요?

 

몇 년 전에
학부모회 회장이었어

 

학부모회… 이름도 아세요?

 

이름이라…

 

기무라 선생
아마사와 씨의 이름 알아?

 

아마사와 병원의…

 

아마사와 고이치일걸요

 

아마사와 고이치

 

너랑 같은 학년에
막내아들이 있을 거야

 

모르니?

 

네?

 

감사합니다

 

실례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시즈쿠, 어디 가니?

 

깜짝 놀랐네

 

놀란 건 나라고

 

무슨 일인지 설명해

 

미안해

 

또 어디 가니?

 

저 자식, 아예 무시하네

 

누군데? 어딜 가려고?

 

싫어하는 놈이야

 

피하긴 싫었어

 

귀여워

 

난 도시락 들고
막 뛰어다녔다고!

 

쓰키시마한테 남자가 생기다니

 

선생님, 시즈쿠한테도
드디어 봄이 왔네요

 

그런 게 아니라니까

 

책의 왕자님을
만난 거 아니야?

 

잘생겼니?

 

누군지 궁금했을 뿐이야

 

유코는 이름 들었지? 누구야?

 

- 유코!
- 언뜻 들어서…

 

‘마’ 뭐라고 했는데

 

아마… 마사키였나?
시즈쿠, 뭐였더라?

 

글쎄

 

말도 끝나기 전에 뛰쳐나오다니

 

시즈쿠답구나

 

궁금하지만 알기 싫은 마음

 

흔들리는 마음은
괴롭고도 기쁘네

 

로맨틱한데!

 

계속 놀려라

 

가사 번역도 다 해 왔는데

 

- 다 됐니?
- 보여 줘!

 

시즈쿠 시인님!

 

제발 보여 주세요

 

그러지!

 

실은 자신 없어

 

고향이라는 게 감이 안 와서

 

내 기분대로 적어 봤어

 

멋진 가사네

 

♪ 컨트리 로드, 이 길을 ♪

 

♪ 계속 따라가면 ♪

 

♪ 고향에 닿을 듯한 ♪

 

♪ 생각이 드는 컨트리 로드 ♪

 

훌륭해, 마음에 들어

 

부르기 힘들지 않니?

 

괜찮을 것 같은데

 

후배들한테 주기 아깝다

 

우리도 사은회 때 부르자

 

- 사은회?
- 성질도 급하지

 

이 부분 멋지다

 

‘홀로서기를 위해 빈손으로’

 

‘고향을 떠났다네’

 

‘슬픔을 억누르고
굳은 마음으로 살아왔네’

 

- 얘들아, 종 쳤다
- 네

 

날이 갰구나

 

시즈쿠

 

합창부에 들러서
가사 보여 주자

 

됐어, 도서관 가야 해

 

내일도 시험이라고

 

도서관에서 공부할 거야

 

책벌레!

 

- 안녕
- 잘 가!

 

하라다

 

잠깐 얘기 좀 해

 

오늘도 닫혔구나

 

꽃에 물은 제때 주는 걸까?

 

남작이 없네

 

팔린 걸까?

 

“지구옥, 니시 시로”

 

니시 시로

 

그 애 성도 니시일까?

 

“문 닫음”

 

시즈쿠!

 

유코 전화야

 

귀 나빠질라

 

유코니?

 

뭐? 잘 안 들려

 

알았어, 갈게, 끊는다

 

- 어디 가니?
- 이 앞에요

 

왜 그러니?

 

시즈쿠

 

무슨 일 있어?
얼굴이 왜 그래?

 

시즈쿠, 나 어쩌지?

 

스기무라가 친구 부탁이라면서

 

그 편지 답장을 달라잖아

 

뭐?

 

그걸 왜 네가 전해 줘?

 

이봐!

 

그 녀석이 워낙 둔해서 말이야

 

게다가 네 마음을
알지도 못하잖아

 

스기무라한텐 사과해야지

 

하지만 이 얼굴론 학교 못 가

 

내일은 쉴래

 

시험도 안 봐?

 

- 응
- 그래

 

“발전”

 

바보

 

내가 뭐?

 

꽤 쉬웠지?

 

시즈쿠, 또 도서관 가니?

 

유코한테 가 보려고

 

안부 전해 줘

 

- 안녕!
- 잘 가!

 

쓰키시마!

 

잠깐만!

 

하라다 말이야

 

그러더니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잖아

 

내가 뭐 잘못 말했나?

 

유코가 이렇게 말했지
‘그걸 왜 네가 전해 줘?’

 

응, 난 친구한테
부탁받은 거뿐인데

 

그게 아니야

 

너한테는
그런 말 듣기 싫단 거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니?

 

모르겠어! 확실히 말해 봐

 

정말 둔하구나

 

유코는 너를 좋아한단 말이야

 

정말?

 

그건 곤란해

 

뭐가? 가엾은 건 유코라고

 

충격으로 결석까지 했단 말이야

 

하지만 난…
널 좋아한단 말이야

 

뭐?

 

이런 때 농담하지 마

 

농담이 아니야

 

전부터 너를 좋아했어

 

그건 안 돼, 나는…

 

내가 싫어?

 

사귀는 놈이 있는 거야?

 

사귀는 사람은 없지만…

 

그래도…

 

- 미안해
- 가지 마!

 

분명하게 말해

 

오랜 친구였으니
널 좋아하긴 하지만

 

그런 의미로는…

 

미안해, 설명하기 힘들어

 

그냥 친구?

 

앞으로 계속?

 

그렇구나

 

진짜 둔한 건 나였어

 

저기요, 택배 받아 놨어요

 

매번 죄송해요

 

항상 받기만 해서 어쩌죠

 

우린 다 먹지도 못해요

 

집에 있었니?

 

시즈쿠

 

“영업 종료”

 

안녕

 

너도 못 들어갔니?

 

이 집에 사니? 배 안 고파?

 

너도 참 귀엽진 않구나

 

나랑 똑같아

 

왜 변하는 걸까?

 

나도 전엔 밝고
귀여운 애였는데

 

책을 봐도
예전처럼 설레질 않아

 

머릿속에서 누가 항상
현실은 다르다고 말해

 

우울한 일이지?

 

쓰키시마구나

 

문이 웬일로 만지게 두네

 

문! 안 들렀다 가냐?

 

고양이 이름이 문이니?

 

보름달 같잖아

 

그래서 나는 문이라고 불러

 

너희 집 고양이 아니니?

 

저놈은 아무도 못 기를걸

 

타마라고 부르는 사람도 봤어

 

다른 이름도 많을 거야

 

떠돌이 고양이구나

 

맞아! 문은 전철 타고 다녀

 

- 전철?
- 정말이야

 

혼자 전철에 타고 있길래

 

뒤쫓아왔더니 여기로 왔어

 

그랬더니
멋진 가게가 있는 거야

 

동화 속 얘기처럼 흥분했었다고

 

근데 심한 말을 했어

 

문한테 안 귀엽다고 했거든

 

나랑 똑같다고

 

문이 너 같다고?
전혀 아니야!

 

쟤는 귀신 같은 고양이라고

 

- 너…
- 저기…

 

할아버진 잘 계셔?

 

늘 가게 문이
닫혀 있어서 말이야

 

정정하셔

 

이 가게는 이상하게
원래 문을 잘 안 열어

 

그렇구나, 다행이다

 

남작이 안 보이던데
팔린 거야?

 

고양이 인형 말이야?

 

볼래? 이리 와

 

문 닫아

 

하늘에 떠 있는 기분이야

 

고소 공포증 있어?

 

높은 곳 좋아해, 멋지다

 

이때가 제일 예뻐, 이리 와

 

마침 잘됐다, 거기 앉아

 

시계가 없네

 

저기 있던 거?

 

오늘 갖다주러 가셨을 거야

 

팔린 거니?

 

원래 수리하려고 맡긴 거였어

 

그렇구나
한 번 더 보고 싶었는데

 

3년 동안 수리했는데

 

네가 도시락 놓고 간 날
다 고친 거야

 

그 도시락은…

 

네 거 아닌 거 알아

 

여기 와서 눈 속을 봐

 

빨리 와, 빛이 없어진다고

 

‘엥겔치머’
천사의 방이란 뜻이지

 

세공할 때 생긴 흠이
빛을 낸대

 

예쁘다

 

남작은 안 팔아

 

할아버지의 보물이거든

 

보물?

 

사연이 있나 본데
말씀은 안 하셔

 

실컷 봐, 난 밑에 있을게

 

스위치는 저기 있어
불 켜도 돼

 

이상하지, 예전부터
널 알았던 것 같아

 

가끔 미칠 듯이 보고 싶어져

 

오늘은 뭔가 슬퍼 보이는구나

 

- 다 봤니?
- 응, 고마워

 

혹시 바이올린을 만드는 거니?

 

맞아

 

- 봐도 되니?
- 응

 

이렇게 붙일 거야

 

전부 네가 직접 만든 거니?

 

- 당연하지
- 정말 놀라워

 

바이올린 모양은
300년 전에 정해졌지

 

음이 좋을지 나쁠지는
장인의 손에 달렸어

 

저거도 다 네가 만들었니?

 

그럴 리 없지

 

바이올린 만드는 강습이 있거든

 

그렇지만
네 거도 있을 거 아니야

 

 

- 어느 거야?
- 저거

 

이거?

 

굉장해, 이런 걸 만들다니

 

마법 같아

 

그런 말을 참 잘하는구나

 

뭐 어때? 진심인데

 

그 정도는
누구든 만들 수 있어

 

난 아직 멀었어

 

바이올린 켤 줄도 알지?

 

조금

 

부탁이야, 조금만 들려줘

 

- 너 말이야
- 제발 부탁이야!

 

좋아, 대신 넌 노래해

 

안 돼! 난 음치란 말이야

 

더 잘됐군

 

너도 아는 곡이니 불러 봐

 

♪ 홀로됨을 두려워 않고 ♪

 

♪ 힘내서 살기로 꿈을 정했네 ♪

 

♪ 외로움을 억누르고 ♪

 

♪ 굳은 마음으로 살아왔네 ♪

 

♪ 컨트리 로드, 이 길을 ♪

 

♪ 계속 따라가면 ♪

 

♪ 고향에 닿을 듯한 ♪

 

♪ 생각이 드는 컨트리 로드 ♪

 

♪ 아무리 외롭더라도 ♪

 

♪ 절대 눈물은 보이지 말자 ♪

 

♪ 마음이 급한 건지
발걸음이 빨라지네 ♪

 

♪ 추억을 지우기 위해 ♪

 

♪ 컨트리 로드, 이 길이 ♪

 

♪ 고향으로 이어진다 해도 ♪

 

♪ 나는 가지 않아 ♪

 

♪ 갈 수도 없지 ♪

 

♪ 컨트리 로드, 내일이 와도 ♪

 

♪ 변함없이 나는 나 ♪

 

♪ 가고 싶지만, 갈 수가 없네 ♪

 

♪ 안녕 ♪

 

♪ 컨트리 로드 ♪

 

아주 좋았어

 

쓰키시마 시즈쿠예요
지난번에 감사했어요

 

아가씨를 다시 만나고 싶었다네

 

이 둘은 내 음악 친구지

 

노래 잘하더군

 

시계 고친 날 왔다던
행운의 아가씨 맞지?

 

세이지한테
귀여운 친구가 있었네

 

뭐? 세이지?

 

그럼 혹시 아마사와 세이지?

 

내 이름 말 안 했나?

 

말 안 했어!

 

문패에는
니시라고 쓰여 있고…

 

그건 할아버지 이름이지
난 아마사와야

 

너무해, 악몽이야

 

보석을 잃은 기분이야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라고

 

뭔 소리야?

 

이름에 뭐 문제 있어?

 

문제 있어!

 

넌 내 이름을 막 불렀잖아

 

이름을 안 물어본 네 잘못이야

 

물어볼 틈이 없었잖아

 

난 아마자와 세이지가…

 

뭐?

 

조용하고
친절한 사람일 줄 알았어

 

너 책을 너무 봤구나

 

너도 많이 읽잖아!

 

정말 즐거웠어
다들 친절하시더라

 

종종 놀러 와
다들 기뻐하실 거야

 

노래만 안 시키면 갈게

 

그런데 너 바이올린 잘 켜더라

 

전공할 거니?

 

나 정도는 수없이 많아

 

그리고 나는
바이올린을 만들고 싶어

 

하긴 이미 잘 만드니까

 

이탈리아 크레모나에
바이올린 제작 학교가 있어

 

중학교 졸업하면
거기로 가고 싶어

 

고등학교는 안 가?

 

반대가 심해서 아직은 모르지만

 

할아버지만은 내 편이지

 

벌써 진로를 정하다니, 대단해

 

나는 전혀 모르겠어

 

하루하루를 그냥 보내는데

 

나도 아직 정해진 건 아니야

 

매일 부모님과 싸운다고

 

보내 주신다고 해도

 

일단 해 보지 않으면
재능이 있는지도 모르고

 

바래다주지 않아도 되니?

 

바로 저기야, 안녕

 

쓰키시마!

 

왜?

 

넌 글에 재주가 있어

 

아까 노래도 좋았지만

 

콘크리트 로드도 좋았거든

 

전에는 관두랬잖아

 

내가 그랬니?

 

- 그래!
- 그랬나?

 

오늘 고마웠어, 잘 가

 

불 좀 끄고 자
어제도 켜 놓고 자더라

 

언니는 언제 진로를 정했어?

 

- 뭐?
- 진로 말이야

 

스기노 고등학교로 갈 거라며

 

진학 말고…

 

난 갈 길을 찾으려고
대학을 다니는 거야

 

- 잘 자
- 잘 자

 

엄만 자기 휴강일엔
날 깨우지도 않아!

 

- 안녕
- 안녕

 

더 빨리 뛰어

 

먼저 가

 

“1교시 자습”

 

다행이다

 

시즈쿠!

 

얼굴이 푸석푸석해

 

넌 금방 회복했구나

 

어제 다른 반
남자애랑 있었다며

 

- 누가 그래?
- 소문이 났어

 

사귀는 사이 같았다고

 

그런 거 아니야

 

하라다, 내 친구한테
싫다고 말할게

 

미안해

 

- 내가 더 미안해
- 괜찮아

 

어제 TV에서 사스케 봤어?
엄청났지?

 

정말 최고였어!

 

이 공식은
시험에 나오니까 외워

 

- 네?
- 정말요?

 

수업 끝!

 

- 그럴 줄 알았어
- 엄청 급했다더라

 

저기 쓰키시마 있어?

 

아마사와? 무슨 일이야?

 

쓰키시마가 이 반이지?

 

쓰키시마? 응, 있어

 

쓰키시마! 면회 왔다!

 

남자야!

 

저기야

 

세이지!

 

잠깐 얘기 좀 해

 

알았어

 

쓰키시마한테
남자 친구가 생겼다!

 

남자 친구다!

 

그런 거 아니야!

 

대체 뭐야?

 

나 이탈리아에 가게 됐어

 

뭐?

 

저리 가자

 

- 어디 가냐?
- 옥상!

 

막 퍼붓네

 

애들 있는 데서 부르면 어떡해

 

미안해

 

너한테 가장 먼저
알려 주고 싶었어

 

오해받는 건 상관없지만…

 

아버지가 고집을 꺾었어

 

근데 조건이 있어

 

뭔데?

 

할아버지 친구 작업실에서

 

두 달 동안 수습생으로 있으래

 

수습생?

 

아주 엄한 분인데

 

가망이 있나 없나
봐 주시는 거지

 

내가 견딜 수 있는지
알게 될 거래

 

가망이 없으면 진학해야 해

 

도망갈 곳을 만든 것 같아서
마음엔 안 들지만…

 

기회니까 갔다 올 거야

 

- 언제 가는데?
- 여권이 나오자마자

 

학교엔 오늘 얘기할 거야

 

얼마 안 남았네

 

잘됐다, 꿈을 이루게 되겠네

 

열심히 해 볼 거야

 

저기…

 

비가 그친다

 

정말이네, 저기 좀 봐

 

무지개가 뜰지도 몰라

 

크레모나는 어떤 곳일까?

 

근사한 곳이면 좋겠다

 

응, 오래된 마을이래

 

바이올린 장인이 많이 산대

 

멋지다

 

점점 꿈에 가까워지는구나

 

난 바보 같아

 

너랑 같은 학교에
가는 게 꿈이었어

 

하지만 수준이 다르잖아

 

- 쉿
- 어서 와

 

실은 도서 카드로
예전부터 널 알았어

 

도서관에서
몇 번 봤는데 몰랐지?

 

옆자리에 앉은 적도 있었어

 

너보다 먼저
카드에 이름을 쓰려고

 

책을 얼마나 읽었는지 몰라

 

이탈리아에 가면

 

네가 쓴 노래 부르면서
힘낼 거야

 

나도!

 

밀지 마, 이 자식아!

 

야, 너네!

 

- 쓰키시마가 화났다!
- 무서워!

 

왔다!

 

- 여기요
- 고맙다

 

잘 먹었습니다

 

벌써 다 먹었니?

 

유코랑 약속 있어요

 

역 쪽으로 가면
우유 좀 사 오렴

 

또요?

 

네가 다 마셨잖아

 

요즘 완전히
자기 마음대로라니까

 

- 시간 빼앗아서 미안해
- 괜찮아

 

머리가 터질 것 같아

 

시즈쿠구나, 어서 와라

 

안녕하세요

 

- 이제 오니?
- 안녕하세요

 

차 가지러 내려와라

 

아빠랑 싸워서 냉전 중이야

 

그 애 정말 대단하다

 

수습생으로 있다가
졸업하고 바로 떠나서

 

10년 동안 거기 있을 거래

 

생이별이구나

 

그래도 로맨틱하다

 

멋있잖아

 

상대가 너무 뛰어나

 

똑같은 책을 읽었는데
난 이 모양이고

 

걔는 꿈을 향해 나아가잖아

 

그런가

 

키누요가 걔랑 같은 반이었잖아

 

가까이하긴 좀 어려워도

 

잘생긴 데다 공부도 잘했대

 

됐어, 말하지 마

 

더 우울해져

 

왜? 좋아하면 된 거지

 

고백도 받았다며?

 

모든 게 자신 없어

 

이해가 안 돼

 

나라면 편지 주고받으며
서로 격려하며 지낼 텐데

 

그렇게 뛰어난 애한테
뭘 격려하니?

 

그런가

 

네 말을 들으면
바라는 게 뭔지 모르겠어

 

진로가 안 정해지면
연애도 못 하니?

 

너도 재능 있잖아

 

‘컨트리 로드’도
후배들한테 인기야

 

나랑 달라서
할 말도 다 하잖아

 

나 정도는 수없이 많아

 

- 뭐?
- 그 애가 그랬어

 

걔는 자신 재능을
확인하러 가는 거야

 

그러면 나도 시험해 볼래

 

결심했어, 나 글을 쓸 거야

 

쓰고 싶은 게 있어

 

그 애가 한다면
나도 해 볼 거야

 

- 곧 중간고사야
- 상관없어

 

유카, 고마워!
왠지 힘이 났어

 

- 가려고?
- 응

 

안녕히 계세요

 

어머니께 안부 전해 줘

 

유코, 너도 힘내

 

스기무라도
네 마음을 알게 될 거야

 

- 안녕
- 잘 가

 

간단한 거였어

 

나도 하면 돼

 

문?

 

뮤타!

 

엄마, 뮤타가 또 가버렸어

 

뮤타!

 

‘뮤타’라고?

 

“귀를 기울이면”

 

“숲의 소리를 듣자”

 

“머나먼 별나라에서
날아오는 바람의 기억”

 

“구름이 들려주는 세계…”

 

바론 남작을 주인공으로?

 

허락해 주세요

 

이게 할아버지의
보물이라고 해서…

 

그래서 일부러 왔구나

 

좋다마다, 다만 조건이 있다

 

 

내가 시즈쿠 작품의
첫 번째 독자가 되고 싶구나

 

그건…

 

어때?

 

지금 약속해야 하나요?

 

잘 쓸지 어떨지 모르는데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란다

 

처음부터 완벽한 걸
기대하면 안 되지

 

좋은 걸 보여 주마

 

이거야

 

보렴

 

운모 편암인데

 

거기 틈을 들여다보렴

 

옳지

 

예쁘다

 

녹주석이라는 건데

 

에메랄드 원석이 들어 있단다

 

- 에메랄드, 보석요?
- 그래

 

너도 세이지도
이 돌 같은 상태지

 

아직 연마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원석

 

그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악기를 만들거나
글을 쓰는 건 달라

 

자기 속의 원석을
갈고 다듬어야 하지

 

노력이 많이 드는 일이야

 

제일 큰 원석이 보이지?

 

보여요

 

그건 가공하면
오히려 빛을 잃지

 

구석의 작은 돌이 순도가 높아

 

더 좋은 원석은
숨어 있을 수도 있지

 

나이를 먹으니 설교가 많아지네

 

저한테도 이런 게 있을지
잘 모르겠고 무서워요

 

그래도 쓰고 싶어요

 

제일 먼저 보여드릴게요

 

고맙다, 기대할게

 

원석…
라피스 라줄리 광맥!

 

이제 떠나자

 

라피스 라줄리
광맥을 찾아서…

 

겁낼 거 없어

 

초승달이 뜨는 날엔
공간이 뒤집힌다

 

가까운 건 작게 보이고
먼 건 크게 보일 뿐이야

 

날자! 상승 기류를 탈 거야

 

서두르자, 미행성이 모여든다

 

좋아, 바람을 탔다!

 

이대로 단숨에 탑을 넘자

 

저렇게 높은데?

 

가까이 가면 별거 아니야

 

두려워 말고 가자
저녁 바람을 타고

 

별까지 손이 닿도록!

 

“건축, 제조”

 

어?

 

“자연 과학, 민속 문화”

 

별일이네
소설 말고 다른 책을 보다니

 

“황철석, 마노”

 

“취옥, 청금석”

 

“고양이 민속 문화”

 

“동유럽의 역사”

 

“프란체스코 페리오가
투옥 중일 당시”

 

감옥에서 바이올린을 만드네

 

세이지!

 

벌써 떠난 줄 알았어

 

글을 쓴다고 들었어
여기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

 

만나서 다행이야, 나 내일 가

 

내일…

 

너 끝날 때까지
여기서 기다릴게

 

바래다주지 못해서 미안해

 

아냐, 와 줘서 기뻤어

 

공항엔 못 가지만 기다릴게

 

고작 두 달이잖아

 

늘 푸념만 하고 미안했어

 

나도 열심히 할 거야

 

다녀올게

 

잘 다녀와

 

나와 내 약혼녀 루이자는
머나먼 땅에서 태어났지

 

그 마을에는
마법이 남아 있었어

 

마법사의 후예들이
장인이 되어 있었어

 

가난한 초보 장인이
우리를 만들었지

 

그래도 루이자와 난 행복했어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장인이 불어넣어 줬거든

 

그런데…

 

시즈쿠

 

시즈쿠!

 

시즈쿠!

 

뭐 하는 거야? 쓰키시마!

 

죄송합니다
잠깐 다른 생각 했어요

 

정신 차려! 중요한 때라고

 

죄송합니다

 

유코가 읽어

 

 

또 4시에 잤어?

 

괜찮아, 하나도 안 졸려

 

그래도 너 요즘 이상해
아까도 그렇고

 

생각이 많아서 그래

 

쓰고 싶은 게 너무 많아

 

식욕이 없어

 

“10월 18일 화요일”

 

시즈쿠, 있었구나

 

불도 안 켜고 뭐 하니?

 

세탁 좀 해 놓지

 

시즈쿠, 이리 좀 와

 

시즈쿠는 어디 갔나?

 

입맛이 없대요

 

- 어서 오세요
- 안녕하세요

 

이쪽으로 오시죠

 

진학 지도실 비었죠?

 

 

오시죠

 

엄마 왔다

 

오셨어요

 

오늘은 일찍 왔구나

 

피곤해

 

- 커피 마실래요?
- 그래

 

엄마, 상담할 게 있어요

 

뭔데?

 

자취하고 싶어요

 

벌써 방도 알아봤어요

 

돈이 들 텐데

 

저축한 것도 있고

 

과외도 구해서 괜찮아요

 

그래

 

너한텐 늘 일만 시켰구나

 

알았어, 아빠한테 말해 둘게

 

정말요? 고마워요

 

봄에 졸업하면
엄마도 직장을 나갈 테니

 

그땐 도와줄 수 있을 거야

 

기대할게요

 

석사 논문 쓰시느라
힘드실 텐데 죄송해요

 

고맙다

 

자료 정리 도와줘서
도움이 많이 됐어

 

독방 쓰면 시즈쿠도
공부에 집중하겠죠

 

요즘 좀 이상해요

 

너도 그렇게 생각하니?

 

오늘 학교에 불려 갔다 왔어

 

이거 좀 봐

 

뭔데요?

 

세상에! 100등이나 떨어졌네

 

책상에 붙어 앉아
뭐 하는 건지…

 

- 안녕하세요
-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이 성적으로 어딜 가겠니?

 

상관없어
나 고등학교 안 갈 거야

 

안 간다고?
세상을 뭐로 아는 거야?

 

중졸이 어디서 뭘 하겠니?

 

내 앞길은 내가 정할 거야

 

웃기지 마! 그건 현실 도피야

 

2학기 성적으로
내신이 정해진다고

 

공부하는 게 그렇게 대단해?

 

언니도 대학 가서
알바만 했잖아

 

난 할 일은 하고 해

 

할 일을 안 하고
도망치는 건 너라고

 

도망이 아니야
더 중요한 게 있어

 

중요한 게 뭔데?
확실히 말해 봐

 

시호, 시즈쿠, 그만들 해라

 

하지만 성적이
심하게 떨어졌다고요

 

둘 다 이리 와서 설명해 봐라

 

시즈쿠는 옷부터 갈아입으렴

 

빨리 나와

 

“중간고사 결과
276명 중 153등”

 

그래, 언니 말이 사실이니?

 

시험이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에요

 

아까는 고등학교도
안 가겠다며?

 

언니가 아무 데도
못 갈 거라고 했잖아

 

시호, 시즈쿠랑
둘이 있게 해 주겠니?

 

 

- 엄마는?
- 옆집 가셨어요

 

- 엄마 왔다
- 오셨어요

 

- 아빠 오셨니?
- 응

 

당신도 이리 와서
시즈쿠랑 얘기해 보자

 

알았어

 

그래, 시즈쿠

 

요즘 하는 일이
공부보다 중요하니?

 

뭘 하는지 얘기해 봐

 

때가 되면 말할게요

 

시즈쿠, 지금 당장
해야만 하는 거니?

 

시간이 없어요
3주 안에 해야 해요

 

그동안 나를 시험하기로 했어요

 

시험한다니, 무엇을?

 

말을 해야 알지

 

엄마, 아빠한테도 비밀이니?

 

- 여보!
- 미안해, 곧 끌게

 

네가 도서관에서
뭔가 열중하는 건 봤다

 

대단하더구나

 

원하는 걸 하게 하자

 

다들 똑같이 살진 않잖아

 

그건 나도 알지만…

 

좋아, 시즈쿠
네가 믿는 대로 살아 보렴

 

하지만 남달리 사는 건
쉽지 않을 거야

 

누구 탓도 할 수 없거든

 

그리고 밥 먹을 땐 나와라

 

그래, 가족이 만나는 자리잖니

 

 

언니 불러와라

 

- 차 끓일게
- 응

 

시즈쿠

 

아빠가 말은 저래도
공부하길 바라신다고

 

알고 있어, 눈에 다 보여

 

나 다음 일요일에 집 나간다

 

이 방은 네 거야

 

독립하는 거야?

 

그래, 나 없어도 잘해야 해

 

빨리!

 

빨리 달려!

 

진짜는 하나뿐이야

 

어느 게 진짜지?

 

빨리!

 

서둘러!

 

어서!

 

루이자, 왔구나
하지만 난 이제 늙었어

 

시즈쿠

 

어서 와라, 깜박 졸았구나

 

죄송해요
글을 써서 갖고 왔어요

 

다 썼니?

 

약속대로
첫 독자가 되어 주세요

 

장편이구나

 

“귀를 기울이면”

 

지금 읽어 주세요, 기다릴게요

 

열심히 썼으니
찬찬히 보고 싶은걸

 

재미없으면 덮으셔도 돼요
이런 부탁 드리긴 싫지만…

 

가슴이 너무 두근거려서…

 

알겠다, 지금 읽을게

 

날이 추우니 난롯가에 있으렴

 

“문 닫음”

 

아무도 안 올 거다

 

밑에서 기다려도 될까요?

 

걱정하지 마세요
하나도 안 추워요

 

그렇다면야…

 

이런 데서 자다니…

 

시즈쿠, 다 읽었다

 

고맙다, 아주 좋았어

 

거짓말!

 

솔직히 말해 주세요
원하는 만큼 못 썼어요

 

뒷부분은 엉망이고요

 

저도 알아요

 

그래, 거칠고 덜 다듬어진 게

 

세이지의 바이올린 같더구나

 

시즈쿠의 원석을
보게 돼서 기뻤다

 

수고했다, 넌 멋진 애야

 

서두를 필요 없다
천천히 다듬어 가렴

 

추우니까 들어가자

 

저요

 

써 보고 알았어요

 

의욕만으론 안 돼요

 

더 많이 공부해야 해요

 

하지만 세이지가 앞질러 가니까

 

무리해서 쓰려고 했죠

 

너무 두려웠어요

 

세이지를 좋아하는구나

 

맛이 어떠니?

 

맛있어요

 

세이지 때는 라면을 먹었지

 

처음 바이올린을
만들었을 때 말이야

 

그것도 곱빼기였단다

 

고맙다

 

어디까지 말했더라

 

독일의 카페에서
바론을 발견한 부분요

 

그렇지

 

난 그때 학생이었는데
우수에 찬 표정에 반했단다

 

가게 주인한테 달라고 했지

 

근데 거절당했어

 

남작에겐 여인이 있고
둘을 떼어 놓을 순 없댔지

 

수리하러 보낸 귀부인 고양이를

 

바론이 기다리고 있댔어

 

제 소설이랑 비슷하네요

 

신기한 일이지

 

귀국 날이 가까워져서
나는 포기하려고 했어

 

그때 같이 있던 여인이 말했어

 

바론의 연인이 돌아오면
그녀가 받아서

 

두 인형을 만나게 해 주겠다고

 

가게 주인도 승낙을 했지

 

난 바론을 데리고
독일을 떠났지

 

꼭 갈 테니 인형을 맡아달라고

 

그녀와 약속했단다

 

두 인형이 재회하는 날은

 

우리가
재회하는 날이 될 거라고

 

하지만 전쟁이 나서
약속을 지킬 수 없었어

 

뒤늦게 가서 찾아봤지만…

 

그녀도 귀부인 인형도
끝내 찾지 못했지

 

할아버지께 소중한 사람이었군요

 

추억 속에
빛이 바래 가던 바론을

 

네 소설이 살려낸 거란다

 

참, 그렇지

 

손을 줘 보렴

 

이건…

 

너한테 어울리더구나, 가져가라

 

네 인생 이야기를
멋지게 써 보렴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다녀왔습니다

 

이제 왔니?

 

- 아빠는?
- 목욕하셔

 

지금 몇 시인지 알고 있니?

 

걱정시켜서 죄송합니다

 

오늘부터 다시 수험생이 될게요

 

해 본다는 게 끝났나 보지?

 

일단은요

 

- 카레 해 놨는데 먹어
- 됐어요

 

일단이라…

 

시즈쿠 목욕해라

 

전사의 휴식이구먼

 

이걸…

 

설마…

 

기다려

 

기적이야, 정말 만나다니

 

꿈은 아니지?

 

하루 일찍 왔어

 

타!

 

잠깐!

 

추울 거야

 

됐어

 

코트 가지고 올게

 

시간이 없어, 그냥 타

 

꽉 잡아

 

널 빨리 보고 싶었어

 

속으로 네 이름을 불렀거든
‘시즈쿠!’라고

 

그랬더니
정말 네가 나타난 거야

 

굉장하지?

 

나도 보고 싶었어, 꿈만 같아

 

수습 생활은 어땠어?

 

생각보다 어렵지만
열심히 해 볼 거야

 

날이 밝는구나

 

- 내릴까?
- 괜찮아

 

널 태우고 언덕을
오르기로 결심했어

 

그게 쉽니?

 

짐만 되긴 싫어

 

나도 도움이 되고 싶단 말이야

 

알았어, 도와줘

 

거의 다 왔어

 

시즈쿠, 빨리 타!

 

딱 맞게 왔네

 

- 잡아 줄까?
- 괜찮아

 

여기야

 

굉장해! 안개가
마치 바다 같아

 

내 비밀 장소야
곧 해가 뜰 거야

 

이걸 보여 주고 싶었어

 

할아버지한테 네 얘기 들었어

 

내 생각만 하고
응원도 못 해 줘서 미안해

 

네가 있어서 열심히 한 거야

 

나를 더 잘 알게 됐어

 

나 좀 더 공부할 거야

 

고등학교에도 갈 거야

 

저기, 시즈쿠

 

나중에 말이야

 

나랑 결혼해 줘

 

훌륭한 장인이 될 테니
그때…

 

좋아

 

정말?

 

사실 나도 그러고 싶었어

 

정말이지? 야호!

 

잠깐, 바람이 차

 

시즈쿠, 좋아해!

 

♪ 홀로됨을 두려워 않고 ♪

 

♪ 힘내서 살기로 꿈을 정했네 ♪

 

♪ 외로움을 억누르고 ♪

 

♪ 굳은 마음으로 살아왔네 ♪

 

♪ 컨트리 로드, 이 길을 ♪

 

♪ 계속 따라가면 ♪

 

♪ 고향에 닿을 듯한 ♪

 

♪ 생각이 드는 컨트리 로드 ♪

 

♪ 걷다 지쳐 우두커니 서 있으면 ♪

 

♪ 우리 고향 마을이 다시 떠올라 ♪

 

♪ 하지만 언덕을 휘감은 오르막길 ♪

 

♪ 그 길이 나를 꾸짖네 ♪

 

♪ 컨드리 로드, 이 길을 ♪

 

♪ 계속 따라가면 ♪

 

♪ 고향에 닿을 듯한 ♪

 

♪ 생각이 드는 ♪

 

♪ 컨트리 로드 ♪

 

♪ 아무리 외롭더라도 ♪

 

♪ 절대 눈물은 보이지 말자 ♪

 

♪ 마음이 급한 건지
발걸음이 빨라지네 ♪

 

♪ 추억을 지우기 위해 ♪

 

♪ 컨트리 로드, 이 길이 ♪

 

♪ 고향으로 이어진다 해도 ♪

 

♪ 나는 가지 않아 ♪

 

♪ 갈 수도 없지, 컨트리 로드 ♪

 

♪ 컨트리 로드, 내일이 와도 ♪

 

♪ 변함없이 나는 나 ♪

 

♪ 가고 싶지만, 갈 수가 없네 ♪

 

♪ 안녕 ♪

 

♪ 컨트리 로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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