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00:00:36,500 --> 00:00:42,296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나를 아르메니아인이라고 불렀지만 2 00:00:42,297 --> 00:00:45,116 난 그 나라가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 3 00:00:45,117 --> 00:00:51,169 우리 선조들은 2천년도 넘게 그 곳에서 문화유산을 지켜오며 4 00:00:51,170 --> 00:00:58,056 끊임없이 학살과 박해를 당했는데 그때마다 그게 마지막이길 기원했다 5 00:01:07,186 --> 00:01:09,972 초대 기독교도들은 6 00:01:09,973 --> 00:01:13,976 그들의 야망을 위해 국경을 새로 그었고 7 00:01:13,977 --> 00:01:17,532 나의 조국을 옛 터키에 복속시켰다 8 00:01:36,848 --> 00:01:41,492 고요해 보이는 이슬람 모스크의 한 편에서 9 00:01:41,493 --> 00:01:46,265 아르메니아인들은 무참히 짓밟혔다 10 00:01:48,636 --> 00:01:54,432 다이르앗자우르의 불타는 모래사막은 한 민족의 고통을 기억할 것이다 11 00:01:54,433 --> 00:02:00,134 그곳에서 우리 선조들은 광분한 약탈자들의 손에 육신을 빼앗겼지만 12 00:02:00,135 --> 00:02:05,516 영혼과 기억만은 여전히 남아 있다 13 00:02:05,517 --> 00:02:12,530 한 시인은 무릎을 꿇고 다이르앗자우르의 바람에 귀 기울이며 14 00:02:12,531 --> 00:02:17,335 일출의 평화 속에서 불멸의 노래를 읊조린다 15 00:04:02,593 --> 00:04:08,134 1921년 3월 15일, 오전 11시 베를린, 하르덴베르크 가 16 00:04:40,712 --> 00:04:46,380 1921년 6월 2일, 베를린 형사법원의 개정을 선언합니다 17 00:04:47,106 --> 00:04:54,153 전문가와 증인들은 재판의 중요성과 선서의 신성함을 인식하기 바랍니다 18 00:04:54,875 --> 00:05:01,345 고의든 아니든 위증을 하는 이들은 엄중히 처벌할 것입니다 19 00:05:01,701 --> 00:05:03,945 서기, 기소 내용을 읽어 주시오 20 00:05:04,123 --> 00:05:09,216 소고몬 텔리리옹, 공학도 1897년 4월 2일 출생 21 00:05:09,241 --> 00:05:12,178 샬로텐부르크, 하르덴베르크 가 37번지에 거주하며 22 00:05:12,301 --> 00:05:14,670 1921년 3월 15일 23 00:05:14,889 --> 00:05:19,700 '탈라트 파샤' 전 터키 내무장관을 살해한 혐의가 있다 24 00:05:19,701 --> 00:05:23,640 이는 독일 형법 211조에 적용되는 범죄다 25 00:05:23,641 --> 00:05:26,555 피고인, 일어나세요 26 00:05:26,556 --> 00:05:32,705 질문에 짧게 대답해 주세요 본인이 유죄라고 생각하나요? 27 00:05:32,706 --> 00:05:36,645 아니오, 저는 떳떳하기 때문에 무죄입니다 28 00:05:36,646 --> 00:05:40,201 사람을 죽였지만 살인자는 아닙니다 29 00:05:41,707 --> 00:05:43,852 앉으세요 30 00:05:43,853 --> 00:05:48,208 하르덴베르크 가에 거주하는 엘리자베스 디트먼 부인 31 00:05:48,209 --> 00:05:53,109 오직 진실만을 말하겠다고 엄숙히 맹세합니까? 32 00:05:53,110 --> 00:05:57,561 - 맹세합니다 - 배심원석을 보면서 얘기하세요 33 00:05:57,562 --> 00:06:03,583 저기 있는 젊은이는 사건 당시 저희 집에 세들어 살고 있었습니다 34 00:06:03,584 --> 00:06:10,278 예의도 바르고 조용해서 호감이 가는 청년이었죠 35 00:06:10,279 --> 00:06:13,097 집안일도 잘하고요 36 00:06:13,098 --> 00:06:18,191 사건 당일 그러니까 3월 15일 아침 37 00:06:18,192 --> 00:06:24,565 우리 집 가정부가 이러더군요 '청년이 술을 마시며 울고 있어요' 38 00:06:24,566 --> 00:06:28,153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줄 알았어요 39 00:06:28,154 --> 00:06:31,900 샬로텐부르크에서 장사를 하는 니콜라스 예슨 씨 40 00:06:31,901 --> 00:06:34,334 증언하세요 41 00:06:34,976 --> 00:06:40,869 피고인을 말리려고 달려가서 이유를 물으니 이러더군요 42 00:06:40,870 --> 00:06:46,443 '아르메니아와 터키의 일입니다 독일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43 00:06:46,700 --> 00:06:49,998 저는 롤라 베른슨이고 교사입니다 44 00:06:49,999 --> 00:06:53,138 소고몬 텔리리옹에게 독일어를 가르쳤죠 45 00:06:53,139 --> 00:06:58,743 늘 슬퍼 보여서 뭔가 사연이 있는 사람인 줄 알았어요 46 00:06:58,744 --> 00:07:03,932 증인, 피고인이 자기 얘기를 한 적이 있나요? 47 00:07:03,933 --> 00:07:05,597 딱 한 번요 48 00:07:05,598 --> 00:07:09,698 조국과 가족을 모두 잃었다고 얘기했었습니다 49 00:07:09,699 --> 00:07:14,919 - 탈라트 파샤 얘기는 없었나요? - 그렇습니다 50 00:07:14,920 --> 00:07:17,514 네, 고맙습니다 51 00:07:19,116 --> 00:07:24,027 재판장님, 탈라트 파샤 전 터키 장관은 1919년 7월 5일 52 00:07:24,149 --> 00:07:29,851 터키 군법회의에서 반인도적 범죄로 사형을 선고받았었습니다 53 00:07:30,264 --> 00:07:33,561 하지만 국고를 훔쳐 도망친 후 54 00:07:33,562 --> 00:07:37,277 가명을 쓰며 베를린에 숨어 살았죠 55 00:07:37,278 --> 00:07:41,121 재판장님, 변호인은 사건을 착각하고 있습니다 56 00:07:41,122 --> 00:07:46,150 피고인은 탈라트 파샤가 아니라 소고몬 텔리리옹입니다 57 00:07:46,151 --> 00:07:48,944 검사님, 저는 이번 사건을 분명히 파악하고 있습니다 58 00:07:48,969 --> 00:07:53,068 단지 누가 '살인자'인지 상기시키고자 하는 것입니다 59 00:07:53,742 --> 00:08:00,084 재판장님, 기소 내용과는 별도로 몇 가지 사실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60 00:08:00,085 --> 00:08:01,846 배심원 여러분 61 00:08:01,847 --> 00:08:07,067 1915년 6월 그러니까 딱 6년 전이군요 62 00:08:07,068 --> 00:08:15,299 오늘 여러분들이 재판할 청년은 동생이 도끼로 살해되는 장면과 63 00:08:15,300 --> 00:08:19,752 어머니가 총에 맞아 쓰러지는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64 00:08:19,753 --> 00:08:24,172 그때 피고인은 하얗게 질려 꼼짝도 못하고 서있었죠 65 00:08:24,173 --> 00:08:29,649 그런 뒤 두 여동생의 비명 소리를 들었습니다 66 00:08:29,650 --> 00:08:33,466 여동생들은 덤불 뒤로 끌려갔고 67 00:08:33,587 --> 00:08:40,632 그는 누구의 피인지도 모른 채 피범벅이 돼서 쓰러졌습니다 68 00:08:40,633 --> 00:08:48,480 주변에는 강간당하고 사지가 찢겨진 여성, 어린이, 노인들이 가득했습니다 69 00:08:48,481 --> 00:08:56,873 지금부터 상상하기도 어려운 천인공노할 잔인한 만행에서 70 00:08:56,874 --> 00:09:02,927 극적으로 탈출했던 한 여성의 증언을 들어보겠습니다 71 00:09:08,534 --> 00:09:15,516 크리스틴 타지바숑입니다 에르제룸에서 태어났죠 72 00:09:15,517 --> 00:09:22,210 1915년 7월, 우린 네 그룹으로 나뉘어서 강제 추방을 당했습니다 73 00:09:22,211 --> 00:09:25,670 증인의 그룹에는 몇 명이 있었죠? 74 00:09:28,009 --> 00:09:33,358 5백 가구 정도였으니까 7, 8천 명쯤 됐어요 75 00:09:35,889 --> 00:09:40,084 저희 가족은 21명이었죠 76 00:09:40,085 --> 00:09:47,324 그런데 그들 중 3명만 빼고 전부 다 살해됐어요 77 00:09:47,325 --> 00:09:52,160 당시 상황을 설명해 주시겠어요? 78 00:09:52,161 --> 00:09:58,470 모두 산속으로 끌려갔어요 79 00:09:58,471 --> 00:10:01,801 남녀가 따로 이동을 했지만 80 00:10:01,802 --> 00:10:07,600 서로에게 일어나는 일을 볼 수 있었죠 81 00:10:07,601 --> 00:10:14,070 남자들은 도끼로 살해돼 강에 버려졌어요 82 00:10:14,071 --> 00:10:17,209 여성들한테는 무슨 일이 있었죠? 83 00:10:22,722 --> 00:10:30,377 해가 지면 터키인들은 젊고 예쁜 여자들을 골랐어요 84 00:10:30,568 --> 00:10:40,304 순순히 말을 듣지 않고 저항하는 여자들은 85 00:10:40,305 --> 00:10:44,821 총검으로 사지를 찢었죠 86 00:10:49,527 --> 00:10:56,253 임산부들한테도 끔찍한 짓을 저질렀어요 87 00:10:56,254 --> 00:11:01,954 배를 갈라 자궁에서 태아를 꺼냈죠 88 00:11:10,892 --> 00:11:21,430 그런 믿을 수 없는 만행을 직접 목격했다는 말인가요? 89 00:11:22,245 --> 00:11:24,114 그렇습니다 90 00:11:25,915 --> 00:11:30,431 임산부였던 언니도 당했거든요 91 00:11:33,914 --> 00:11:36,220 증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92 00:11:46,663 --> 00:11:48,840 요하네스 렙시우스 박사 93 00:11:48,841 --> 00:11:53,709 아르메니아 학살에 대한 적나라한 책을 썼는데 94 00:11:53,710 --> 00:11:58,130 두 나라의 동맹관계 때문에 전쟁 후에 책이 출간됐죠 95 00:11:58,131 --> 00:12:01,685 몇 가지 물어보겠습니다 96 00:12:01,686 --> 00:12:10,045 1915년 아르메니아 대학살이 책에 묘사된 것처럼 그렇게 잔혹했나요? 97 00:12:10,367 --> 00:12:14,818 피고인이 당했다는 참극이 실제로 가능한 일인가요? 98 00:12:14,819 --> 00:12:17,701 재판장님 99 00:12:17,997 --> 00:12:24,299 대학살에 대한 정확한 기록들은 수백 가지가 넘습니다 100 00:12:24,719 --> 00:12:32,439 독일, 영국, 미국의 잡지에 실린 기사도 모두 명백한 사실이고요 101 00:12:32,440 --> 00:12:38,845 20세기에 그런 만행이 일어나다니 정말 믿기 어렵지만 102 00:12:38,846 --> 00:12:48,069 터키 정부는 짧은 시간 동안 백만 명도 넘는 사람들을 몰살시켰죠 103 00:12:48,070 --> 00:12:54,026 1915년 4월에는 아르메니아인들을 강제 추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104 00:12:54,513 --> 00:13:05,435 탈라트 파샤 내무장관과 엔베르 파샤 육군성 장관이 지휘했죠 105 00:13:05,592 --> 00:13:12,192 종교 문제로 그런 잔인한 대학살이 일어난 건가요? 106 00:13:12,217 --> 00:13:14,736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107 00:13:14,792 --> 00:13:21,165 1차 책임이 있는 탈라트, 엔베르 제말, 나짐은 무신론자거든요 108 00:13:21,198 --> 00:13:26,803 그들의 꿈은 광대한 터키 제국을 건설하는 것이었죠 109 00:13:26,803 --> 00:13:29,462 터키와 상관없는 것들을 모두 파괴하면서요? 110 00:13:29,463 --> 00:13:31,448 그렇습니다 111 00:13:31,449 --> 00:13:36,349 탈라트 파샤의 명령서를 보면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112 00:13:36,990 --> 00:13:41,698 '이 강제 추방의 목적은 전멸이다' 113 00:13:42,948 --> 00:13:47,047 그러니까 절대로 돌아오지 못한다는 의미죠 114 00:13:48,201 --> 00:13:50,090 배심원 여러분 115 00:13:50,091 --> 00:13:56,753 무덤도 없이 터키의 어느 길가에 잠들어 있는 150만 명의 망자들이 116 00:13:56,754 --> 00:14:02,935 오늘 자리에서 일어나 여러분들께 양심적인 결정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117 00:14:02,936 --> 00:14:08,156 저기 피고인이 탈라트 파샤를 살해한 게 과연 유죄일까요? 118 00:14:08,157 --> 00:14:12,545 지금 이 순간 그 만행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119 00:14:12,546 --> 00:14:18,727 지구 여기저기에 뿔뿔이 흩어져 이 상황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120 00:14:18,728 --> 00:14:24,301 그리고 역사가 여러분들의 평결을 심판할 것입니다 121 00:15:16,882 --> 00:15:18,387 엄마 아파요? 122 00:15:18,499 --> 00:15:22,566 아니, 병이 난 건 아니고 뱃멀미를 한 거야 123 00:15:22,567 --> 00:15:24,905 단단한 땅을 밟으면 괜찮아 124 00:15:28,589 --> 00:15:31,536 '텔리리옹'은 어떻게 됐나요? 125 00:15:31,537 --> 00:15:33,554 나도 잘 모르겠어요 126 00:15:33,555 --> 00:15:36,020 독일 신문인데 독일어를 몰라요 127 00:15:36,021 --> 00:15:37,974 저는 제목도 모르겠어요 128 00:15:37,975 --> 00:15:41,018 'Das Schopfengericht Nein I?' 129 00:15:41,019 --> 00:15:45,982 'Nein'은 아니라는 뜻인데 뭐가 아닌지는 모르겠군요 130 00:15:52,325 --> 00:15:56,905 - 독일어 하는 사람 있나요? - 아뇨, 없어요 131 00:15:56,906 --> 00:15:59,276 하곱 씨 132 00:15:59,533 --> 00:16:02,511 나랑 같은 배를 타고 온 건가? 133 00:16:02,544 --> 00:16:06,611 네, 근데 전 또 떠나요 하곱 씨는 프랑스를 선택하셨군요 134 00:16:06,612 --> 00:16:09,269 그래, 자네는? 135 00:16:09,270 --> 00:16:11,191 베네수엘라로 떠날 거예요 136 00:16:11,192 --> 00:16:13,882 거기에 가족이나 친구가 있나? 137 00:16:13,883 --> 00:16:17,053 아뇨, 아무도 없어요 138 00:16:17,054 --> 00:16:19,744 노총각이라 거기에 끌리나 봅니다 139 00:16:19,745 --> 00:16:23,972 베네수엘라! 꼭 여자 이름 같잖아요 140 00:16:24,229 --> 00:16:30,411 하곱, 누가 제부를 찾아요 쇠창살 문 뒤에서 기다린대요 141 00:16:30,411 --> 00:16:32,460 네, 가볼게요 142 00:16:32,461 --> 00:16:34,575 행운을 비네 143 00:17:08,177 --> 00:17:11,444 아쁘까 144 00:17:11,445 --> 00:17:15,255 자네한테 편지를 쓰긴 했지만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네 145 00:17:15,256 --> 00:17:19,259 1주일 동안 매일 아침 여기서 배를 기다렸어요 146 00:17:19,260 --> 00:17:22,719 그때마다 하루 이틀 더 걸릴 거라더군요 147 00:17:22,720 --> 00:17:28,645 근데 어젯밤에는 막연하게 오늘 만나게 될 것 같았죠 148 00:17:28,646 --> 00:17:33,962 텔리리옹은 어떻게 됐나? 독일어를 아는 사람이 없어서... 149 00:17:33,963 --> 00:17:36,717 무죄로 석방됐어요 150 00:17:39,985 --> 00:17:45,077 여러분, 주목해 보세요 텔리리옹이 석방됐답니다 151 00:17:50,299 --> 00:17:52,636 텔리리옹이 석방됐어요 152 00:18:05,643 --> 00:18:09,677 자네를 만나게 돼서 정말 기쁘네 153 00:18:09,678 --> 00:18:12,112 하나도 안 변했어 154 00:18:12,113 --> 00:18:16,084 걷는 모습만 빼면 그럴 거예요 155 00:18:16,085 --> 00:18:18,390 출구에서 기다릴게요 156 00:19:02,243 --> 00:19:05,285 - 하곱 자카리옹? - 네, 그렇습니다 157 00:19:05,286 --> 00:19:10,411 아락시 자카리옹 처녀 때 성은 불루티옹 158 00:19:10,412 --> 00:19:15,216 아자드 자카리옹 자카리 부부의 아들 159 00:19:15,217 --> 00:19:17,842 안나 불루티옹 가야네 불루티옹 160 00:19:17,843 --> 00:19:19,764 자매예요 161 00:19:29,182 --> 00:19:36,260 유년시절을 떠올리면 그 도장 소리가 떠나질 않는다 162 00:19:36,261 --> 00:19:42,859 도장만 쳐다보던 가족들 얼굴에서 그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었다 163 00:19:43,468 --> 00:19:48,752 무국적자 164 00:20:34,976 --> 00:20:39,139 아버지는 창살문이 많은 건물 앞에서 165 00:20:39,140 --> 00:20:44,360 멋진 금화를 너덜너덜한 지폐와 볼품없는 동전으로 바꾸셨다 166 00:20:44,361 --> 00:20:49,901 그리고는 아이스크림을 사주셨는데 장사꾼의 말과 달리 과일은 없었다 167 00:20:51,440 --> 00:20:53,649 여기는 프랑스야 168 00:20:53,650 --> 00:20:58,038 교양 있는 사람은 아이스크림을 핥아먹지 않는단다 169 00:21:05,438 --> 00:21:08,353 어서 이리 오세요 170 00:21:09,058 --> 00:21:13,798 거기 서보세요 나중을 위해 추억을 만들어야죠 171 00:22:57,551 --> 00:23:03,219 저기 좀 가서 봐봐 내가 잘못 본 거겠지? 172 00:23:10,652 --> 00:23:12,156 당신의 몸은 당신의 것입니다 173 00:23:16,737 --> 00:23:19,555 세상에, 기가 막혀서 174 00:23:19,845 --> 00:23:23,239 - 잘못 본 게 아닌가 보네 - 그래, 제대로 봤어 175 00:23:23,240 --> 00:23:24,745 정말 기가 막혀 176 00:23:24,746 --> 00:23:27,627 어서 들어오세요 집을 구했어요 177 00:23:30,415 --> 00:23:32,112 아자드, 들어가자 178 00:23:40,473 --> 00:23:41,433 당신의 몸은 당신의 것입니다 179 00:23:41,434 --> 00:23:43,579 - 아자드 - 네, 가요 180 00:23:58,283 --> 00:24:03,439 솔직하게 말해 주세요 가족이 몇 명이죠? 181 00:24:03,440 --> 00:24:06,162 남편과 아들 언니랑 동생이에요 182 00:24:06,163 --> 00:24:10,230 계약을 하러 왔던 남자는 자매들 얘기는 안 했어요 183 00:24:10,231 --> 00:24:13,562 같이 오는 줄 몰랐거든요 죄송합니다 184 00:24:13,563 --> 00:24:17,758 나는 사람 차별은 안 하지만 185 00:24:17,759 --> 00:24:21,249 셋이 아니라 다섯인 건 좀 그래요 186 00:24:21,250 --> 00:24:25,477 돈을 조금 더 드릴 테니 봐 주세요 187 00:24:25,478 --> 00:24:29,513 어떻게 된 건지 궁금해서 물은 거예요 188 00:24:29,514 --> 00:24:33,934 이제 다섯인 걸 알았으니 됐어요 189 00:24:33,935 --> 00:24:36,400 - 월말에 다시 얘기합시다 - 그래요 190 00:24:36,401 --> 00:24:38,706 어서 올라가세요 4층이에요 191 00:24:44,313 --> 00:24:46,747 여기예요 192 00:24:58,887 --> 00:25:01,257 주방도 구경하세요 193 00:25:05,294 --> 00:25:11,603 옆집이랑 같이 쓰는데 여기서는 요리만 해야 해요 194 00:25:11,604 --> 00:25:14,069 저긴 4층 화장실이에요 195 00:25:14,939 --> 00:25:22,689 여러분, 달팽이가 왔어요 크기도 아주 다양해요 196 00:25:22,690 --> 00:25:25,893 달팽이 사세요 197 00:25:25,894 --> 00:25:29,864 펠리시엔네, 금방 내려갈게요 198 00:25:32,082 --> 00:25:35,445 - 달팽이 장수예요 - 세상에, 징그러워라 199 00:25:35,446 --> 00:25:38,680 저도 처음에는 그랬어요 몸에 아주 좋대요 200 00:25:40,058 --> 00:25:42,972 이보게, 아쁘까 201 00:25:43,966 --> 00:25:47,457 - 자네 회사에서도 사람 구하나? - 네 202 00:25:47,458 --> 00:25:50,852 전 설탕 공장에서 일하고 있죠 203 00:25:50,853 --> 00:25:54,600 - 근데 왜요? - 나도 일하려고 204 00:25:54,601 --> 00:25:59,501 지금 사람을 뽑는 부서는 하곱 씨랑 안 맞아요 205 00:25:59,502 --> 00:26:05,844 최고의 선박회사 사장님이 어떻게 그런 데서 일해요? 206 00:26:07,573 --> 00:26:12,058 그럼 나한테 맞는 곳은 어딘가? 207 00:26:12,059 --> 00:26:18,560 망명 생활 최대의 적은 잃어버린 것에 대한 동경일세 208 00:26:18,561 --> 00:26:27,081 과거에 사로잡혀 헤어나지 못하면 속병만 생기지 않겠나? 209 00:26:27,471 --> 00:26:32,461 동경은 사치스러운 짓이야 우선은 살아남아야 한다고 210 00:26:32,462 --> 00:26:36,786 내일 출근할 때 나도 같이 가겠네 211 00:26:37,011 --> 00:26:42,552 - 어서 이리 오지 못해! - 엄마, 아르메니아인이 뭐예요? 212 00:26:42,553 --> 00:26:45,467 어서 오라니까 213 00:26:46,653 --> 00:26:49,887 다 저렇지는 않으니 신경 쓰지 마세요 214 00:26:49,888 --> 00:26:52,898 아쁘까, 마르세유는 어때요? 215 00:26:52,899 --> 00:26:56,998 우리가 살던 곳과 비교하면 엄청 큰 도시예요 216 00:26:56,999 --> 00:27:01,867 정말 없는 게 없어요 물론 나쁜 것도 있죠 217 00:27:04,559 --> 00:27:06,447 문 좀 열어 줘요 218 00:27:30,921 --> 00:27:35,180 옆집 사람들이 오븐 앞에서 저녁을 먹고 있어요 219 00:27:35,181 --> 00:27:38,384 방해를 못하겠더라고요 220 00:27:38,385 --> 00:27:42,355 - 그 그릇을 들고 있는 거 봤어요? - 글쎄요 221 00:27:42,356 --> 00:27:46,936 문 앞에서 잠깐 동안 서있었으니 봤을 텐데 222 00:27:46,937 --> 00:27:50,203 못 본 척하는 것 같았어요 223 00:27:50,237 --> 00:27:54,624 집주인이 주방을 교대로 사용하고 요리만 하라고 했잖아 224 00:27:54,625 --> 00:27:58,724 네, 식사는 집에서 해야 한댔죠 225 00:27:58,725 --> 00:28:00,774 이해가 안 되는군 226 00:28:15,349 --> 00:28:19,353 - 실례 좀 하겠습니다 - 앉아, 왜 일어나? 227 00:28:19,354 --> 00:28:22,588 자기들이 뭔데 남의 나라에서 이래라저래라야? 228 00:28:22,589 --> 00:28:24,894 제발 화 좀 내지 말아요 229 00:28:24,895 --> 00:28:31,332 내 마음이야, 불만 있으면 자기들 나라로 돌아가면 되잖아 230 00:28:36,199 --> 00:28:41,451 먹을 걸 구걸하는 것도 참 못할 짓이지만 231 00:28:41,452 --> 00:28:47,986 먹을 게 있어도 요리를 못해서 못 먹다니 기가 찰 노릇이군 232 00:28:47,987 --> 00:28:50,035 이러라는 건가? 233 00:28:50,036 --> 00:28:54,968 '여러분, 인정을 베풀어서 오븐 좀 사용하게 해주세요' 234 00:29:00,063 --> 00:29:05,379 오븐이라고? 그것은 빵집에 가면 있는 거 아닌가? 235 00:29:16,623 --> 00:29:18,544 실례합니다 236 00:29:18,544 --> 00:29:25,270 오븐에 이것도 같이 넣으면 어떨까요? 237 00:29:25,271 --> 00:29:30,492 왼쪽 첫 번째 집 앞에서 기다리면 내가 나가서 열어 줄게요 238 00:29:30,493 --> 00:29:31,997 감사합니다 239 00:29:32,863 --> 00:29:36,449 적대적인 프랑스인을 만난 지 얼마 안 돼 240 00:29:36,450 --> 00:29:41,031 한 빵집에서 인정 많은 프랑스 빵집 주인을 만났다 241 00:29:42,249 --> 00:29:46,636 - 아자드, 더 먹을래? - 아뇨, 됐어요 242 00:29:46,637 --> 00:29:50,864 그래도 이것만 먹으렴 입에서 살살 녹을 거야 243 00:29:50,865 --> 00:29:53,939 아뇨, 배불러요 244 00:29:53,940 --> 00:29:59,673 배가 정말로 부른 건지 맛이 없는 건지 245 00:29:59,674 --> 00:30:04,766 다들 손도 안 대는군요 246 00:30:05,471 --> 00:30:08,065 아뇨, 너무 맛있어요 247 00:30:08,066 --> 00:30:10,564 오븐에서 꺼내 보니 248 00:30:10,565 --> 00:30:14,023 겉은 노릇노릇하고 속은 불그스름하더군요 249 00:30:14,024 --> 00:30:19,982 바삭한 감자와 버터 발라 구운 토마토도 정말 일품이더라고요 250 00:30:19,983 --> 00:30:27,061 저 혼자 다 먹고 싶더라니까요 물론 불가능한 일이지만요 251 00:30:28,407 --> 00:30:31,801 이리 오게 바람 좀 쐬자고 252 00:30:42,308 --> 00:30:49,130 강제 추방당할 때 우리 형님들과 같이 있었나? 253 00:30:49,131 --> 00:30:52,942 네, 하곱 씨가 옳았어요 254 00:30:54,609 --> 00:30:59,573 그날 일요일에 교회에서 나오는데 255 00:30:59,574 --> 00:31:05,947 관원이 모든 아르메니아 남자들은 다음날 경찰서로 집합하라고 했죠 256 00:31:05,948 --> 00:31:09,983 하곱 씨는 재산을 전부 버리고 바로 떠나자고 했지만 257 00:31:09,984 --> 00:31:20,425 다른 세 형제분들은 회사를 지키려고 남았죠 258 00:31:21,740 --> 00:31:27,441 그러다가 재산뿐 아니라 목숨까지 잃었어요 259 00:31:27,442 --> 00:31:32,181 하곱 씨라도 가족을 지켜서 다행이에요 260 00:31:34,552 --> 00:31:36,346 커피 준비됐어요 261 00:31:39,742 --> 00:31:42,112 그만 들어가서 자야지 262 00:31:43,394 --> 00:31:46,276 하곱 씨를 만나서 정말로 기뻐요 263 00:31:46,277 --> 00:31:49,525 저희 가족은 대대로 하곱 씨 회사에서 일을 해왔죠 264 00:31:49,610 --> 00:31:52,396 우리한테 늘 인간적인 대우를 해주셨잖아요 265 00:31:52,397 --> 00:31:54,414 그런 소리 말게 266 00:31:54,768 --> 00:31:58,450 소식이 궁금한 분이 있는데 267 00:31:58,451 --> 00:32:03,191 '바스켄 파파지옹' 박사는 어떻게 됐는지 알아요? 268 00:32:03,192 --> 00:32:08,988 그럼요, 알고말고요 정말 좋은 분이었죠 269 00:32:08,989 --> 00:32:13,889 월요일 아침에 소집 장소에서 만났어요 270 00:32:13,890 --> 00:32:21,962 신부님 인솔 아래 4, 5천 명이 경찰서 앞에 모여 있었죠 271 00:32:21,963 --> 00:32:29,073 군 안보상의 이유로 인구를 이동시키는 것뿐이라더군요 272 00:32:29,074 --> 00:32:34,294 마을 어귀에 마차가 준비돼 있고 1인당 2백 파운드를 내랬어요 273 00:32:34,295 --> 00:32:38,811 돈 있는 사람들이 모든 비용을 감당했죠 274 00:32:38,812 --> 00:32:46,274 하지만 2시간 뒤에 마차를 요구하니까 관원들이 웃더군요 275 00:32:46,275 --> 00:32:54,538 뙤약볕에서 먹고 마시지도 못한 채 몇날 며칠을 걸었어요 276 00:33:00,625 --> 00:33:07,832 '아다파자르'와 '트레비존드' 등 전국에서 추방당한 사람들을 만났죠 277 00:33:07,833 --> 00:33:11,259 각지에서 수천 명이 몰려왔어요 278 00:33:47,264 --> 00:33:53,381 시바스에서는 목이 잘려나간 시체 더미를 지나치기도 했죠 279 00:33:53,382 --> 00:34:00,299 터키 지휘관은 1인당 몸값으로 6백 파운드를 요구했어요 280 00:34:00,685 --> 00:34:04,497 그래도 거기까지는 약과예요 281 00:34:06,899 --> 00:34:10,134 애들 비명 소리가 잊혀지지 않아요 282 00:34:10,135 --> 00:34:16,283 터키인들이 애들을 둘씩 묶어 강에 내던졌죠 283 00:34:17,983 --> 00:34:22,626 엄마들은 비명을 지르며 미친 듯이 날뛰었어요 284 00:34:22,627 --> 00:34:29,289 그러더니 고통이 도를 넘었는지 춤을 추기 시작하는 엄마도 있었죠 285 00:34:33,775 --> 00:34:37,169 신부님은 어떻게 되셨나요? 286 00:34:39,508 --> 00:34:45,016 터키 관원들은 조롱감이 되도록 신부님 옷을 벗겼어요 287 00:34:45,017 --> 00:34:51,167 신부님은 길고 하얀 턱수염을 휘날리며 알몸으로 당당하게 걸어가셨죠 288 00:35:28,421 --> 00:35:34,250 처음에는 터키 정부에서 그런 사실을 모르는 줄 알았어요 289 00:35:34,251 --> 00:35:39,439 몇몇 관원들의 만행이라고 생각했죠 290 00:35:40,177 --> 00:35:44,372 그런데 터키 사령관이 지나가기에 291 00:35:44,373 --> 00:35:46,390 제가 소리쳐 불렀어요 292 00:35:46,391 --> 00:35:49,594 사령관님! 293 00:35:50,747 --> 00:35:54,943 그냥 놔둬 원하는 게 뭔가? 294 00:35:54,944 --> 00:35:57,601 전 '아쁘까'라고 합니다 295 00:35:57,602 --> 00:35:59,971 다 죽을 것 같습니다 296 00:35:59,972 --> 00:36:04,872 처음에는 수천이 넘었는데 지금은 몇 백 명도 안 됩니다 297 00:36:04,873 --> 00:36:10,189 심신은 지쳤고 발은 피투성이입니다 298 00:36:10,447 --> 00:36:14,482 아쁘까한테 새로 나온 튼튼한 신발을 내주도록 하게 299 00:36:18,423 --> 00:36:19,992 다른 사람들은요? 300 00:36:19,993 --> 00:36:23,836 다들 자네처럼 굴면 똑같은 신발을 주겠네 301 00:36:23,837 --> 00:36:25,404 정말 감사합니다 302 00:37:31,590 --> 00:37:35,913 그만! 그만! 303 00:37:40,526 --> 00:37:46,324 터키 관원들은 제 발에 말굽을 박아서 무리 속으로 끌고 왔어요 304 00:37:46,325 --> 00:37:51,544 한 발짝씩 내딛을 때마다 수천 개의 바늘이 찌르는 것 같았죠 305 00:37:51,545 --> 00:37:58,752 하지만 그 만행을 알리기 위해서 살아남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306 00:38:12,527 --> 00:38:18,644 수천 명이 강제 추방됐지만 생존자는 백 명쯤 됐었죠 307 00:38:18,645 --> 00:38:23,224 다른 나라 눈이 무서워 그 정도는 살려뒀던 거예요 308 00:38:23,225 --> 00:38:26,588 마지막 마을은 알레프였어요 309 00:38:26,621 --> 00:38:31,425 마을을 지나자 사막이 나왔고 죽도록 목이 탔죠 310 00:38:34,212 --> 00:38:37,831 저기 커다란 물웅덩이가 있어요 311 00:38:37,832 --> 00:38:43,949 망상에 사로잡힌 거야 신기루를 본 거라고 312 00:38:43,950 --> 00:38:49,683 물을 간절히 갈망해서 신기루가 보이나 본데 313 00:38:49,684 --> 00:38:52,149 곧 사라질 걸세 314 00:38:52,150 --> 00:38:56,826 목도 마르지만 배도 고픈데 음식은 안 보여요 315 00:38:56,827 --> 00:38:59,549 환각이 아니에요 316 00:39:27,641 --> 00:39:29,915 잘 들어라 317 00:39:29,915 --> 00:39:34,208 이 물웅덩이는 쿠르드족 소유인데 우리에게 조금 팔겠다고 한다 318 00:39:34,209 --> 00:39:37,827 물을 마시고 싶은 사람은 백 파운드를 내라 319 00:39:39,685 --> 00:39:44,681 당신네들이 전부 갈취해 가서 남은 게 없는 거 잘 알잖소 320 00:39:44,682 --> 00:39:49,327 그리고 저 물웅덩이는 누구의 소유도 아니오 321 00:39:49,328 --> 00:39:54,451 하늘이 내려 주신 것이니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오 322 00:39:54,452 --> 00:39:58,232 내 말 잘 들으시오 323 00:39:58,233 --> 00:40:01,211 난 바스켄 파파시옹이오 324 00:40:01,211 --> 00:40:04,477 파리에서 의학을 전공한 의사요 325 00:40:04,478 --> 00:40:09,474 의사의 본분은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돕는 거요 326 00:40:09,475 --> 00:40:13,574 그러니 사람들에게 물을 마시도록 지시하겠소 327 00:41:55,405 --> 00:42:01,875 목이 타서 죽을 것만 같았어요 바다를 삼킬 수도 있었죠 328 00:42:01,876 --> 00:42:05,494 하지만 살아남으려고 죽은 척했어요 329 00:42:11,705 --> 00:42:16,092 난 나올 게 없는 것처럼 보였는지 그냥 지나치더군요 330 00:42:16,093 --> 00:42:20,673 오랫동안 꼼짝 않고 누워 있었어요 331 00:42:20,674 --> 00:42:23,619 하곱 씨 형님의 눈을 봤는데 332 00:42:23,620 --> 00:42:30,795 그 선한 눈이 죽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얘기하더군요 333 00:42:32,846 --> 00:42:37,810 한참 동안 시체 더미 속에 누워 있다가 334 00:42:37,811 --> 00:42:41,718 지나가던 마차 행렬을 만났어요 335 00:42:41,719 --> 00:42:47,547 같은 터키인과 쿠르드족이었지만 너무나 달랐죠 336 00:42:49,983 --> 00:42:56,260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저 혼자 살아남았어요 337 00:43:00,009 --> 00:43:06,510 죽음의 길목에서 필사적으로 버텨낸 건 338 00:43:06,511 --> 00:43:12,148 그들의 만행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였죠 339 00:43:13,462 --> 00:43:21,181 그날 밤 아저씨의 침울한 얼굴을 본 뒤로 나는 동화 속 세상과 작별하게 됐다 340 00:43:21,182 --> 00:43:27,011 언젠가 형들과 누나가 유령선을 타고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는데 341 00:43:27,012 --> 00:43:30,694 그건 슬픔을 미루기 위한 망상일 뿐이었다 342 00:43:30,695 --> 00:43:35,403 가족들은 죽음을 면하려고 둘로 나눠서 탈출을 했는데 343 00:43:35,404 --> 00:43:39,920 우리만 살아남고 다른 가족들은 불타는 모래사막에서 죽은 것이다 344 00:43:39,921 --> 00:43:44,308 그날 밤 난 유년시절을 잃었다 345 00:43:47,513 --> 00:43:50,362 - 쉬세요 - 잘 가게 346 00:44:50,680 --> 00:44:52,472 뭐 하세요? 347 00:44:52,473 --> 00:44:58,142 시끄러워서 깼구나 아무것도 아니니까 걱정 말거라 348 00:45:03,589 --> 00:45:05,542 그게 뭔데요? 349 00:45:14,768 --> 00:45:16,656 빈대란다 350 00:45:16,657 --> 00:45:22,038 핏자국이 남아서 냄새날까 봐 때려잡지를 못해 351 00:45:22,039 --> 00:45:25,177 - 사람한테 해로워요? - 그건 아니란다 352 00:45:25,178 --> 00:45:28,925 하지만 밤만 되면 기어 나와서 귀찮게 해 353 00:45:28,926 --> 00:45:34,178 낮에는 벽의 갈라진 틈이나 가구의 접합 부분에 숨어있고 354 00:45:34,179 --> 00:45:36,549 아빠, 저기 있어요 355 00:45:40,523 --> 00:45:45,615 이렇게 해서 전부 다 잡으면 완전히 없어지나요? 356 00:45:45,616 --> 00:45:50,643 알을 많이 나아서 번식하기 때문에 완전히 없어지진 않아 357 00:45:50,644 --> 00:45:53,238 자꾸 생긴단다 358 00:45:53,239 --> 00:45:57,146 - 집주인한테 항의해야죠 - 안 돼 359 00:45:57,147 --> 00:46:01,951 아르메니아에서 달고 온 벌레라고 얘기할 거야 360 00:46:22,485 --> 00:46:24,502 뭘 드릴까요? 361 00:46:24,503 --> 00:46:28,570 달걀 5개, 버터 0.25kg 감자 1kg 주세요 362 00:46:28,571 --> 00:46:33,951 달걀은 오늘 들어와서 무척 신선해요 363 00:46:33,952 --> 00:46:36,834 삶아서 드세요 364 00:46:36,835 --> 00:46:39,845 외국인이라 모르는 게 많아요 365 00:46:39,846 --> 00:46:43,592 여기서 가장 큰 학교가 어디죠? 아들을 보낼 거예요 366 00:46:43,593 --> 00:46:46,988 마르세유에는 학교가 엄청 많아요 367 00:46:46,989 --> 00:46:52,818 어떤 공부를 하느냐에 달렸죠 368 00:46:52,819 --> 00:46:56,021 '라 루세'에 공립학교가 있어요 369 00:46:56,022 --> 00:47:00,025 우리 애들이 초등교육을 마친 학교죠 370 00:47:00,026 --> 00:47:03,837 참, 제일 큰 학교가 어디냐고 했죠? 371 00:47:03,838 --> 00:47:06,559 잠깐만요 372 00:47:09,027 --> 00:47:13,030 여보, 안에 있어요? 373 00:47:13,031 --> 00:47:15,560 그래, 자려는데 왜? 374 00:47:15,561 --> 00:47:18,284 뭐 좀 물어보려고요 375 00:47:18,285 --> 00:47:23,537 마르세유에서 제일 큰 학교가 어디라고 생각해요? 376 00:47:23,953 --> 00:47:27,508 '생 일레르' 학교지, 뭐 377 00:47:27,509 --> 00:47:30,551 그래요, 생 일레르 학교요 378 00:47:32,635 --> 00:47:35,709 남편 말대로 최고로 훌륭한 학교예요 379 00:47:35,710 --> 00:47:40,513 우리 애들도 거기에 보내고 싶었지만 엄두도 못 냈어요 380 00:47:40,514 --> 00:47:44,966 학비가 엄청 많이 든다고 들었거든요 381 00:47:44,967 --> 00:47:49,194 하지만 공립학교에 보내면 거의 공짜죠 382 00:47:49,195 --> 00:47:50,988 잠깐만, 테레사 383 00:47:50,989 --> 00:47:52,781 '메르시에' 씨 아들이 생 일레르 학교에 다니지? 384 00:47:52,782 --> 00:47:53,839 네 385 00:47:53,840 --> 00:47:56,177 학비가 얼마나 드는지 알아? 386 00:47:56,178 --> 00:47:59,060 잘은 몰라도 가끔 그 근처에 가서 보면 387 00:47:59,061 --> 00:48:04,954 학교 앞에 운전기사와 유모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죠 388 00:48:04,955 --> 00:48:08,093 그 정도밖에 몰라요 389 00:48:08,094 --> 00:48:12,642 참, 약사 '위그' 씨한테 물어보는 게 좋겠군요 390 00:48:12,643 --> 00:48:15,396 조카가 거기 다녀요 391 00:48:15,622 --> 00:48:17,511 생 일레르 학교 392 00:48:17,512 --> 00:48:21,451 고등학교 입학 준비 과정과 종교 교육 실시 393 00:48:22,732 --> 00:48:30,291 최고의 약사인 위그 씨가 학비에 대해 얘기해 줬지만 394 00:48:30,292 --> 00:48:32,655 내겐 아무 의미도 없었다 395 00:48:32,680 --> 00:48:39,950 우리에겐 엄마 옷에 달린 금화 단추가 8개밖에 없었으니까 396 00:48:40,350 --> 00:48:46,243 마르세유에 도착한 날 부두에서 하나를 뜯어 썼다 397 00:48:46,244 --> 00:48:51,208 그리고 어제 옆집 사람들과 분리된 주방을 만드느라 또 하나를 썼다 398 00:48:52,202 --> 00:48:57,615 공짜 학교도 있고 학비를 내는 학교도 있대요 399 00:48:57,616 --> 00:49:02,835 공짜 학교가 좋다면 뭐 하러 돈 주고 다른 학교에 보내겠어! 400 00:49:02,836 --> 00:49:10,748 하긴요, 공짜 학교는 가난한 이들이 불쌍해서 만든 학교일 뿐이에요 401 00:49:10,749 --> 00:49:14,463 그러니 아무 제약이 없죠 402 00:49:14,464 --> 00:49:19,204 나라면 망설이지 않고 제일 좋다는 학교에 보내겠어 403 00:49:19,205 --> 00:49:24,618 제일 좋다는 학교에 보내려면 얼마나 드는지 아니? 404 00:49:24,619 --> 00:49:26,667 그럼 이렇게 합시다 405 00:49:26,668 --> 00:49:31,280 우선 부수적인 문제는 따지지 말고 생각하는 거요 406 00:49:31,281 --> 00:49:36,694 우리 모두 아자드를 좋은 학교에 보내고 싶지만 407 00:49:36,695 --> 00:49:43,645 당신이 말하는 부수적인 문제란 게 엄청난 학비와 경비란 걸 명심해요 408 00:49:54,458 --> 00:49:56,955 화장실에 가고 싶어서요 409 00:49:57,885 --> 00:49:59,966 어서 갔다 오렴 410 00:50:08,625 --> 00:50:12,499 가족 모두가 생 일레르 학교에 사로잡혀 있었다 411 00:50:12,500 --> 00:50:20,059 내 야망은 전차나 리무진 기사 혹은 조종사만큼이나 높아졌다 412 00:50:20,060 --> 00:50:23,422 그때 난 7살이었고 모차르트가 아니었다 413 00:50:43,732 --> 00:50:51,546 엄마는 내 손을 잡고 이모들과 함께 상점이 즐비한 거리를 엄청 걸어다녔다 414 00:50:51,547 --> 00:50:56,640 세 분은 상점 밖에 내걸린 구인 광고만 살펴봤다 415 00:50:56,641 --> 00:51:00,420 하지만 다들 경력자를 원했다 416 00:51:00,421 --> 00:51:05,321 '수납원 구함, 경력 필수' 417 00:51:05,321 --> 00:51:08,908 '경험 있는 공장 직공 구함' 418 00:51:08,909 --> 00:51:12,977 얼마 안 되는 의상실에도 자리는 없었다 419 00:51:12,977 --> 00:51:18,357 점원에 불과한데도 화려한 경력을 요구했다 420 00:51:28,512 --> 00:51:31,650 마네킹이 있던 커다란 상점이 기억난다 421 00:51:31,651 --> 00:51:37,064 여자들은 마네킹을 보면 자기도 그렇게 보일 거라고 착각하나 보다 422 00:51:37,065 --> 00:51:43,534 그래서 우리 큰이모처럼 푸짐한 사람도 마네킹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423 00:51:44,881 --> 00:51:51,767 그런데 그 의상실에서도 영어 사용자를 원해서 엄마와 이모들을 또 실망시켰다 424 00:51:54,554 --> 00:51:59,999 그러다 루비에르 가 4번지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425 00:52:00,000 --> 00:52:02,922 광고 내용이 모호해서 다들 눈이 둥그레졌다 426 00:52:03,111 --> 00:52:05,765 자택 근무 여성들 구함 427 00:52:05,766 --> 00:52:08,423 여러 명을 구하나 봐 428 00:52:08,489 --> 00:52:13,324 자택 근무라면 우리 셋이 집에서 일할 수 있잖아 429 00:52:15,568 --> 00:52:19,058 - 어서 들어가 봐 - 알았어 430 00:52:21,974 --> 00:52:23,319 - 안녕하세요 - 어서 오세요 431 00:52:23,320 --> 00:52:27,290 - 구인 광고를 보고 들어왔어요 - 셔츠 만들 줄 알아요? 432 00:52:27,291 --> 00:52:34,081 샘플을 주시면 저희 자매들이 똑같이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433 00:52:34,082 --> 00:52:36,420 문 닫고 들어오세요 434 00:52:41,866 --> 00:52:45,068 기다리는 시간이 한없이 길게 느껴졌다 435 00:52:45,069 --> 00:52:50,257 이모들은 꽤 오랫동안 긴장된 얼굴로 서있었다 436 00:52:50,258 --> 00:52:52,243 엄마를 기다리면서 437 00:52:52,244 --> 00:52:58,297 지구가 멈춘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438 00:53:04,320 --> 00:53:11,430 마침내 상점 문이 열리자 엄마는 한 손에 뭔가를 들고 나오셨다 439 00:53:27,309 --> 00:53:29,998 그날 일이 아직도 생생하다 440 00:53:30,138 --> 00:53:34,015 밤새도록 빈대 때문에 잠을 설쳤다 441 00:53:34,182 --> 00:53:39,211 매번 잠을 깰 때마다 세 명의 천사들을 보았다 442 00:54:00,064 --> 00:54:02,562 엄마와 두 분의 이모 443 00:54:02,563 --> 00:54:06,502 우아하고 자비로운 나의 성모님들은 444 00:54:06,503 --> 00:54:11,947 재봉틀이 없어 손으로 직접 수천 땀을 꿰매고 있었다 445 00:54:11,948 --> 00:54:17,649 왼쪽 가슴에 새겨진 이니셜만 빼면 옷 주인에 대해선 아무것도 몰랐다 446 00:54:27,786 --> 00:54:30,187 왜 매일 여기 나오세요? 447 00:54:30,366 --> 00:54:35,203 신선한 공기를 마시면 휴가 기분이 나잖니 448 00:54:40,544 --> 00:54:44,835 아쁘까 아저씨는 왜 안 오시죠? 449 00:54:44,836 --> 00:54:49,191 폐가 나빠져서 산속에 들어가셨단다 450 00:54:49,544 --> 00:54:53,166 안나 이모는 항상 커피 잔을 뜨거운 물에 씻었어요 451 00:54:53,191 --> 00:54:58,603 아저씨가 기침하는 게 못마땅하다면서요 452 00:55:01,332 --> 00:55:03,574 이거 갖고 가서 맛있는 거 사먹으렴 453 00:55:03,575 --> 00:55:06,457 아니에요, 괜찮아요 454 00:55:06,818 --> 00:55:10,776 나중에 알게 됐는데 그때 아저씨는 결핵을 앓고 계셨다 455 00:55:11,228 --> 00:55:16,448 그래서 전염될까봐 아주 작은 목소리로 얘기하시곤 했다 456 00:55:16,982 --> 00:55:21,914 그 당시의 의료 기술로는 치유 방법이 없는 불치병이었다 457 00:55:22,858 --> 00:55:27,277 30분 정도 자전거를 빌려서 타지 그러니? 458 00:55:27,503 --> 00:55:31,185 아직 가격을 못 보셨나 봐요 459 00:55:31,186 --> 00:55:34,965 - 얼마인데 그래? - 시간당 2.75프랑이에요 460 00:55:34,966 --> 00:55:39,161 괜찮아, 단춧구멍을 20개 더 만들면 돼 461 00:55:39,162 --> 00:55:42,749 그럼 자전거를 빌려 주겠대요? 462 00:55:42,750 --> 00:55:46,369 단춧구멍을 만들어 주면 상점에서 돈을 주잖니 463 00:55:46,370 --> 00:55:48,899 그럼 그 돈으로 464 00:55:48,900 --> 00:55:53,960 빵이랑 고기를 사거나 자전거를 타도 돼 465 00:55:53,961 --> 00:55:59,118 참, 널 생 일레르 학교에 보내기로 했다, 기쁘지 않니? 466 00:55:59,119 --> 00:56:00,751 네, 무척 기뻐요 467 00:56:01,022 --> 00:56:05,923 30분 동안 자전거를 타려면 수제 단춧구멍 20개가 필요했다 468 00:56:05,948 --> 00:56:12,801 그날 오후부터 난 모든 사물의 가치를 단춧구멍으로 계산했다 469 00:56:17,235 --> 00:56:20,917 학교 가기 전날 밤 잠을 설쳤다 470 00:56:21,252 --> 00:56:27,850 그날 저녁에는 아무도 몰래 장난감을 전부 다 버렸다 471 00:56:32,496 --> 00:56:36,339 다음날 아침 잡동사니들을 실어 나르는 472 00:56:36,340 --> 00:56:42,104 청소부 아저씨들의 소리를 들으니 무척 유쾌했다 473 00:57:23,235 --> 00:57:24,483 아자드 474 00:57:30,121 --> 00:57:32,523 그날의 입맞춤은 아직도 생생하다 475 00:57:32,524 --> 00:57:37,167 아빠의 수염과 땀 냄새 때문에 입맞춤을 짧게 끝냈다 476 00:57:37,168 --> 00:57:40,851 창백한 얼굴과 주름살이 477 00:57:40,852 --> 00:57:44,182 날 '생 일레르' 학교에 보내려고 478 00:57:44,183 --> 00:57:47,513 밤새워 일해서 생긴 줄은 몰랐다 479 00:57:52,095 --> 00:57:57,059 생 일레르 학교 480 00:58:00,840 --> 00:58:03,722 어서 가거라 널 믿는다 481 00:58:35,434 --> 00:58:38,189 더러운 녀석이다 더러운 녀석 482 00:58:38,349 --> 00:58:41,039 각오한 일이었다 483 00:58:41,040 --> 00:58:44,082 내 옷차림을 급우들 수준에 맞추기 위해 484 00:58:44,083 --> 00:58:50,200 가족들은 날 최상품 양모 옷과 가죽으로 만든 신발로 치장했다 485 00:58:50,201 --> 00:58:53,916 하지만 그런 멋진 차림 때문에 더 미움을 받았다 486 00:58:53,917 --> 00:58:57,567 급우들은 사회적 지위가 있어서 487 00:58:57,568 --> 00:59:03,685 평범한 옷을 입고도 아주 거만하게 행동했다 488 00:59:12,335 --> 00:59:16,594 여긴 알렉산더 자리야 곧 올 거야 489 00:59:34,566 --> 00:59:36,038 앉아 490 00:59:40,715 --> 00:59:44,302 - 방학은 잘 보냈니? - 네, 선생님 491 00:59:44,303 --> 00:59:47,633 학교생활을 열심히 할 준비도 됐고? 492 00:59:47,634 --> 00:59:49,748 그럼요 493 00:59:49,749 --> 00:59:52,759 좋아, 출석을 부르겠다 494 00:59:52,760 --> 00:59:55,610 - 알렉산데르 빠제스 - 네 495 00:59:55,611 --> 00:59:57,916 - 아르노 레지스 - 네 496 00:59:57,917 --> 00:59:59,902 - 레이몽 메르시에 - 네 497 00:59:59,903 --> 01:00:02,336 - 프레데릭 샤보 - 네 498 01:00:02,337 --> 01:00:04,162 - 뱅상 파브르 - 네 499 01:00:04,708 --> 01:00:09,735 온갖 프랑스 이름이 호명됐는데 알파벳순은 아니었다 500 01:00:10,185 --> 01:00:12,009 - 마르크 푸사 - 네 501 01:00:12,010 --> 01:00:14,540 - 자비에 델푸 - 네 502 01:00:14,541 --> 01:00:17,360 - 프랑수아 지니에 - 네 503 01:00:17,360 --> 01:00:19,922 - 삐에르 보니페 - 네 504 01:00:19,923 --> 01:00:22,388 - 토마 보니페 - 네 505 01:00:22,389 --> 01:00:25,175 - 파스칼 아고스티니 - 네 506 01:00:25,624 --> 01:00:27,321 내 차례가 왔다 507 01:00:28,123 --> 01:00:33,759 아자... 자카리옹 508 01:00:33,760 --> 01:00:36,898 아자드 자카리옹입니다 선생님 509 01:00:39,238 --> 01:00:42,793 '아자드'와 '자카리옹' 둘 중에 이름이 어떤 거니? 510 01:00:42,794 --> 01:00:43,914 아자드입니다 511 01:00:43,915 --> 01:00:46,797 - 아자드에 'Z'가 들어가니? - 네, 선생님 512 01:00:46,798 --> 01:00:49,872 - 자카리옹에도? - 그렇습니다 513 01:00:49,873 --> 01:00:51,409 앉거라 514 01:00:53,973 --> 01:00:57,528 다들 비웃었지만 '아자드'는 멋진 이름이다 515 01:00:57,529 --> 01:01:02,652 아르메니아어로 '자유'를 뜻하기 때문이다 516 01:01:04,575 --> 01:01:07,617 다들 그만 해 조용 517 01:01:08,644 --> 01:01:09,860 샤보 518 01:01:11,110 --> 01:01:11,814 지니에 519 01:01:12,968 --> 01:01:14,248 삐에르 보니페 520 01:01:15,498 --> 01:01:18,476 토마 521 01:01:19,534 --> 01:01:24,531 삐에롱 삐에롱 없어? 522 01:01:25,300 --> 01:01:26,901 보티에 523 01:01:26,902 --> 01:01:28,534 토와 524 01:01:28,695 --> 01:01:29,587 매롱 525 01:01:29,612 --> 01:01:32,494 샹티티 526 01:01:32,699 --> 01:01:33,731 메자 527 01:01:33,756 --> 01:01:34,840 케젱 528 01:01:35,887 --> 01:01:37,456 플로랑 529 01:01:37,456 --> 01:01:38,128 테셍 530 01:01:46,778 --> 01:01:53,504 급우들과 축구를 할 수 없다는 유용한 정보를 첫날부터 얻었다 531 01:01:53,505 --> 01:01:59,109 어차피 친구가 되지 못한다면 무관심하게 대하는 게 최선이다 532 01:01:59,110 --> 01:02:03,209 난 친구 없이 학교생활을 하는 방법도 터득했다 533 01:02:07,983 --> 01:02:10,608 언니, 정말 일품이야 534 01:02:10,802 --> 01:02:13,235 얘기 좀 해 보렴 535 01:02:13,236 --> 01:02:16,118 박물학에서 20점 만점에 18점을 받았어요 536 01:02:16,119 --> 01:02:17,399 정말? 537 01:02:17,400 --> 01:02:19,577 20점 만점에 18점? 538 01:02:19,578 --> 01:02:23,294 첫날이라 배운 것도 없는데 어떻게 그런 점수를 받았니? 539 01:02:23,295 --> 01:02:25,279 곤충을 배우고 있었는데 540 01:02:25,280 --> 01:02:29,635 선생님께서 따끔하게 무는 곤충을 얘기해 보랬어요 541 01:02:29,636 --> 01:02:34,248 아무도 대답이 없길래 제가 빈대라고 말했죠 542 01:02:34,249 --> 01:02:36,747 우리 집에 빈대가 있다고 얘기한 건 아니겠지? 543 01:02:36,748 --> 01:02:40,142 그럼요, 책에서 읽은 척했어요 544 01:02:44,018 --> 01:02:51,800 빈대의 학명은 '키멕스 렉툴라리우스'예요 545 01:02:51,801 --> 01:02:56,542 학교에서 빈대도 가르치는 줄은 몰랐네 546 01:02:56,543 --> 01:02:59,080 급우들은 어땠니? 547 01:02:59,393 --> 01:03:01,843 그 질문에는 거짓말을 했다 548 01:03:02,764 --> 01:03:05,742 진실을 감추려고 거짓을 선택했다 549 01:03:05,767 --> 01:03:11,020 좋은 것만 믿으려는 이들을 속이는 건 쉽다 550 01:03:11,021 --> 01:03:15,152 그날 밤 아버지는 상류층과 어울리게 된 아들을 자랑스러워하며 551 01:03:15,153 --> 01:03:20,085 기쁜 마음으로 야간근무를 하러 나가셨다 552 01:03:22,712 --> 01:03:26,843 그 후 5년 동안 수업시간 외에는 553 01:03:26,844 --> 01:03:31,841 급우들과 함께 하지 않았다 554 01:03:32,816 --> 01:03:37,846 나중에는 텅 빈 교실의 고요함을 즐기기까지 했다 555 01:03:41,644 --> 01:03:45,487 '삐뇽' 신부님은 첫눈에 거리낌이 느껴졌다 556 01:03:45,487 --> 01:03:48,657 성경에 코를 박은 채 걷고 계셨는데 557 01:03:48,658 --> 01:03:53,078 성서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현실 세계와는 동떨어져 보였다 558 01:03:53,079 --> 01:03:58,940 돌멩이가 많은 길을 갈지자로 걸어가면서 장애물을 잘도 피했다 559 01:03:58,941 --> 01:04:05,154 발만 보고 걷는지 성경을 읽는지 의심스러웠다 560 01:04:05,155 --> 01:04:10,119 사실 난 성경을 읽는 척하면서 발만 보고 걷는 거라고 생각했다 561 01:04:10,952 --> 01:04:15,725 '나는 성령과 거룩한 가톨릭 교회를 믿습니다' 562 01:04:15,726 --> 01:04:19,024 '성인의 통공과 죄의 용서를 믿습니다' 563 01:04:19,025 --> 01:04:22,739 난 삐뇽 신부님을 무척 싫어했다 564 01:04:22,740 --> 01:04:27,448 그분은 날 죄인 취급하며 급우들과 거리를 두고 앉혔다 565 01:04:28,666 --> 01:04:31,869 예수께서는 베드로 사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566 01:04:31,870 --> 01:04:38,211 '너는 내 반석이고, 나는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울 것이다' 567 01:04:38,212 --> 01:04:43,913 레지, 거룩한 로마 가톨릭 교회 밖에서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568 01:04:43,914 --> 01:04:46,667 그 누구도 가톨릭 교회 밖에서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569 01:04:46,668 --> 01:04:49,454 - 저요 - 저요 570 01:04:49,455 --> 01:04:50,351 빠제스 571 01:04:50,416 --> 01:04:52,818 아자드 자카리옹은 어느 교회에 속하죠? 572 01:04:53,428 --> 01:04:56,021 지금 같으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573 01:04:56,022 --> 01:04:57,633 내가 속한 교회는 574 01:04:57,658 --> 01:05:02,654 로마 건국 17년 전, 이교도 신전의 옛터에 성전을 세웠다 575 01:05:02,679 --> 01:05:09,277 그 최초의 성당 이름은 '할렐루야'와 비슷하며, '신의 아들'이란 뜻이다 576 01:05:45,835 --> 01:05:51,247 하지만 난 그 때 위대하신 종교 재판관님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577 01:05:52,113 --> 01:05:56,148 어떤 교회에 속해 있냐고? 잘 들어 578 01:05:56,149 --> 01:05:59,223 남을 욕하지 않는 교회에 속해 있어 579 01:05:59,224 --> 01:06:02,619 입 다물어 교리는 내가 가르친다 580 01:06:02,620 --> 01:06:06,078 우린 아르메니아인이 아니다 밖으로 나가 581 01:06:08,225 --> 01:06:11,107 어디서 그런 배짱이 생겼는지... 582 01:06:11,108 --> 01:06:15,879 온종일 교장실의 호출만 기다리고 있었다 583 01:06:15,880 --> 01:06:19,663 하지만 그날도 다음날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584 01:06:19,688 --> 01:06:25,741 그 사건 이후로는 내가 신부님 수업을 빼먹어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585 01:06:26,163 --> 01:06:28,996 훨씬 뒤 '베르나노스'의 책에서 이런 글을 봤다 586 01:06:29,021 --> 01:06:32,000 '열등한 신부는 추하다' 587 01:06:33,690 --> 01:06:37,981 그 후 오랫동안 학년 말 사진 촬영을 할 때면 588 01:06:37,982 --> 01:06:40,320 다들 우정을 가장했다 589 01:06:40,930 --> 01:06:42,819 자카리옹, 이리 오너라 590 01:06:44,176 --> 01:06:48,371 솔직히 말해 내 성적은 상위권에 속했다 591 01:06:48,617 --> 01:06:53,069 따라올 수 없어서 그랬는지 그걸 시샘하는 사람은 없었다 592 01:06:55,184 --> 01:06:56,689 준비됐죠? 593 01:06:56,690 --> 01:06:59,443 하나, 둘, 셋! 594 01:07:04,784 --> 01:07:10,036 또한 그해부터는 '파라다이스' 가의 인도로만 다니겠다고 약속을 하고 595 01:07:10,037 --> 01:07:12,663 방과 후 혼자서 집까지 걸어갔다 596 01:07:16,700 --> 01:07:20,159 신께서 돌봐 주실 거예요 597 01:07:20,160 --> 01:07:23,682 '가야네' 양도 이제 행복해져야죠 598 01:07:23,683 --> 01:07:28,070 '가르비스'는 좋은 남편이 될 거예요 내가 보장해요 599 01:07:28,071 --> 01:07:33,163 내가 연결하면 다들 잘 살아요 너무 오래 끌지 말아요 600 01:07:33,164 --> 01:07:38,192 가르비스한테 연락해야 하거든요 발랑스에 사는데 여기서 꽤 멀어요 601 01:07:38,193 --> 01:07:44,342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렇게 기원해요 '같은 베개를 베며 늙어 가기를...' 602 01:07:45,593 --> 01:07:49,563 결혼에 대한 동양인들의 기원은 수없이 들었다 603 01:07:49,564 --> 01:07:54,432 신은 어째서 땀에 젖은 베개를 같이 베게 하는 것일까? 604 01:07:54,433 --> 01:07:57,828 싫다는데 왜 그러는지 이해가 안 됐다 605 01:07:59,783 --> 01:08:02,376 - 아자드 아니니? - 안녕하세요 606 01:08:02,377 --> 01:08:07,309 얼굴도 못 보고 가서 서운했는데 이렇게 만나니 심장이 떨리는걸! 607 01:08:07,310 --> 01:08:10,385 여기 좀 들어보거라 심장 뛰는 소리 들리니? 608 01:08:10,770 --> 01:08:14,229 말도 못하게 크고 푸짐한 가슴 때문에 609 01:08:14,230 --> 01:08:18,648 심장 박동 소리가 하나도 안 들렸다 610 01:08:19,290 --> 01:08:21,531 네, 잘 들려요 611 01:08:21,532 --> 01:08:23,998 제일 중요한 걸 잊었구나 612 01:08:23,999 --> 01:08:27,009 아락시, 안나 거기 있어요? 613 01:08:27,010 --> 01:08:29,123 네, 여기 있어요 614 01:08:29,124 --> 01:08:32,742 사진을 준다는 걸 깜빡했어요 615 01:08:32,743 --> 01:08:35,625 가르비스는 이런 상황을 모르니까 비밀로 합시다 616 01:08:35,626 --> 01:08:39,725 아자드, 네가 전해 주겠니? 계단을 올라가기가 싫구나 617 01:08:42,577 --> 01:08:48,567 그전까지만 해도 어려서 결혼은 좋은 거라고만 알았다 618 01:08:48,568 --> 01:08:52,282 맛있는 사탕 같은 것 말이다 619 01:08:52,283 --> 01:08:56,766 그런데 그때 처음으로 사탕과 함께 620 01:08:56,767 --> 01:09:00,578 집안을 시끄럽게 만드는 불청객도 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621 01:09:00,771 --> 01:09:02,917 정말 끔찍한 여자야 622 01:09:05,640 --> 01:09:10,317 언니들은 그 여자의 사탕발림에 홀딱 넘어간 것 같아 623 01:09:10,318 --> 01:09:14,480 나도 싫긴 한데 그 여자랑 결혼하는 건 아니잖아 624 01:09:14,481 --> 01:09:20,182 비좁은 공간에 나까지 있으니까 불편해서 결혼을 강요하는 거야? 625 01:09:20,183 --> 01:09:23,129 그럼 나갈게 626 01:09:23,130 --> 01:09:25,884 그런 이유로 결혼하고 싶지는 않아 627 01:09:27,935 --> 01:09:31,617 우리 언니를 좀 봐 찬찬히 살펴보라고 628 01:09:31,618 --> 01:09:34,244 이제 남은 건 흰머리뿐이야 629 01:09:34,245 --> 01:09:41,067 엄마가 안 계신 바람에 우리 둘을 키우느라 결혼도 못했어 630 01:09:42,157 --> 01:09:49,010 언니한테 빚졌다고 생각하지 말고 너라도 행복하게 살아 631 01:09:49,909 --> 01:09:55,834 여자로서의 삶을 포기하면 나중에 반드시 후회해 632 01:09:55,835 --> 01:09:59,837 가야네, 한번 만나 봐 633 01:09:59,838 --> 01:10:06,501 맘에 들면, 한 살이라도 젊을 때 결혼하라고 634 01:10:07,174 --> 01:10:12,938 지금 이 생활도 만족스러워 괜한 문제 만들기 싫어 635 01:10:19,762 --> 01:10:22,036 마르세유에 눈이 내렸다 636 01:10:22,037 --> 01:10:27,834 이곳 사람들은 거의 40년 만에 눈 구경을 했다고 한다 637 01:10:37,828 --> 01:10:40,326 입 좀 벌려 보렴 638 01:10:40,327 --> 01:10:41,191 혀 내밀고 639 01:10:41,192 --> 01:10:43,113 크게 소리 내 봐 640 01:10:46,958 --> 01:10:48,654 등 좀 보자 641 01:11:12,360 --> 01:11:13,960 이제 누으렴 642 01:11:23,378 --> 01:11:25,106 숨 쉬어봐 643 01:11:29,144 --> 01:11:30,584 좀 더 크게 644 01:11:36,287 --> 01:11:37,536 다시 645 01:11:41,829 --> 01:11:46,632 - '33, 33'이라고 말해 보렴 - 33, 33... 646 01:11:46,633 --> 01:11:50,316 33, 33... 33, 33... 647 01:11:50,317 --> 01:11:51,758 기침 648 01:11:58,761 --> 01:12:02,956 한 번에 한 명씩 진찰하게 해주시면 감사하겠군요 649 01:12:02,957 --> 01:12:04,365 죄송해요 650 01:12:07,057 --> 01:12:09,138 다시 기침해 보렴 651 01:12:16,538 --> 01:12:17,883 잘했다 652 01:12:26,212 --> 01:12:29,511 - 열이 높아요? - 38도쯤 된단다 653 01:12:29,872 --> 01:12:32,835 세 분의 엄마들은 내 체온에 대해 거짓말을 했다 654 01:12:33,168 --> 01:12:35,826 어떨 때는 38도 655 01:12:36,238 --> 01:12:41,042 다른 때는 39도랬는데 40도라고는 하지 않았다 656 01:12:43,541 --> 01:12:48,345 - 의사 선생님이 뭐래요? - 점점 좋아지고 있다는구나 657 01:12:48,346 --> 01:12:51,004 - 거짓말 마세요 - 거짓말이라니? 658 01:12:51,005 --> 01:12:55,969 한 사람이 아프면 가족 모두가 아프잖아요 659 01:12:55,970 --> 01:12:59,620 다들 아파 보여요 660 01:13:00,198 --> 01:13:01,831 좀 자거라 661 01:13:39,854 --> 01:13:43,536 24시간 동안 매 시간마다 뜨거운 찜질을 해야 했다 662 01:13:43,537 --> 01:13:48,885 의사 선생님은 온종일 하라고 했다 663 01:13:51,994 --> 01:13:57,823 그 당시에는 늑막염이란 병마와 싸울 길은 그것뿐이었다 664 01:13:58,464 --> 01:14:04,197 늑막염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건성 늑막염이고 665 01:14:04,198 --> 01:14:07,785 - 다른 하나는 습성 늑막염이야 - 그게 뭔데? 666 01:14:07,786 --> 01:14:13,326 아자드처럼 폐에 액체가 고이는 병인데 어떤 경우에는 2리터나 된대 667 01:14:13,327 --> 01:14:15,665 뜨거운 찜질로 액체를 말리지 못하면 668 01:14:15,666 --> 01:14:20,245 폐에 주사기를 꽂아 뽑아내야 한대 669 01:14:20,246 --> 01:14:22,648 말릴 수 있어, 그럼 돼 670 01:14:25,211 --> 01:14:28,381 환자는 세 분 같았다 671 01:14:28,382 --> 01:14:35,172 당신들 폐에 물이 차 있는 것처럼 나를 위해 애를 쓰셨다 672 01:14:36,678 --> 01:14:43,212 엄마와 두 분의 이모... 세 분 다 진한 모성애를 갖고 계셨다 673 01:14:43,213 --> 01:14:47,600 우린 태어날 때부터 서로를 사랑했다는 걸 이젠 알겠다 674 01:14:52,438 --> 01:14:55,384 의사 선생님이 참기 힘들 정도로 뜨거워야 한댔어 675 01:14:55,385 --> 01:14:57,979 그래도 싫어요 676 01:14:57,979 --> 01:15:02,419 처음에는 좀 뜨겁겠지만 금방 괜찮아질 거야 677 01:15:02,624 --> 01:15:05,154 이것 봐, 괜찮잖아 678 01:15:05,274 --> 01:15:09,917 손에 대는 거랑 가슴에 얹는 건 천지차이예요 679 01:15:09,918 --> 01:15:11,167 잘 보렴 680 01:15:21,434 --> 01:15:23,868 뺨에 얹어도 괜찮아 681 01:15:27,781 --> 01:15:32,325 찜질을 300번이나 하는 동안 682 01:15:32,495 --> 01:15:38,196 나도 모르게 어리광을 부려서 가야네 이모가 얼굴에 화상을 입었다 683 01:15:51,483 --> 01:15:57,600 어느 날 밤, 담당 의사가 '샬롯'이란 이름의 다른 의사를 데리고 왔다 684 01:15:57,632 --> 01:15:59,745 이름이 웃겼지만 685 01:15:59,746 --> 01:16:04,871 폐에 고인 물을 빼러 왔다는 생각이 들자 침울해졌다 686 01:16:10,156 --> 01:16:12,334 주사기를 꽂을 건가요? 687 01:16:12,335 --> 01:16:15,954 그런다고 누가 그래? 688 01:16:15,955 --> 01:16:19,445 아까 엄마가 장난감을 사주셨어요 689 01:16:19,446 --> 01:16:24,346 원래는 성탄절 선물인데 3개월이나 빨리 주신 거예요 690 01:16:24,347 --> 01:16:28,222 아빠는 처음으로 직장을 쉬셨고요 691 01:16:53,112 --> 01:16:58,684 장난감을 돌려드려야겠다 이유가 뭔지 아니? 692 01:16:58,685 --> 01:17:01,503 네, 주사기를 꽂지 않을 거니까요 693 01:17:01,504 --> 01:17:05,731 주사기를 꽂으러 온 것도 알더니 이젠 안 그런다는 것도 아는구나 694 01:17:05,732 --> 01:17:07,685 정확한 건 아니지만 695 01:17:07,686 --> 01:17:13,835 예전에는 아픈 쪽은 물이 차 있고 괜찮은 쪽은 텅 빈 소리가 났어요 696 01:17:13,836 --> 01:17:17,775 근데 오늘은 양쪽 소리가 같아요 다 나은 건가요? 697 01:17:17,776 --> 01:17:20,434 그래, 완전히 치유됐어 698 01:17:21,780 --> 01:17:24,566 그날 밤 가족들의 모습이 기억난다 699 01:17:24,567 --> 01:17:26,936 엄마는 눈이 퀭했고 700 01:17:26,937 --> 01:17:31,613 안나 이모는 내가 아픈 뒤로 머리 한 번 안 빗은 것 같았다 701 01:17:31,614 --> 01:17:35,425 가야네 이모 얼굴에는 화상 자국이 있었다 702 01:17:35,426 --> 01:17:38,116 그리고 아버지는 갑자기 늙어버리셨다 703 01:17:38,116 --> 01:17:45,067 가족들은 내가 완쾌됐다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한 채 멍하니 서있었다 704 01:17:47,021 --> 01:17:51,409 병을 고치고 나면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705 01:17:51,410 --> 01:17:55,221 가족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아자드가 살아난 겁니다 706 01:17:55,222 --> 01:17:58,552 며칠 뒤에 다시 오겠습니다 707 01:17:58,553 --> 01:18:01,499 이젠 원기를 회복하게 해주세요 708 01:18:01,500 --> 01:18:03,261 찜질은 그만 하시고요 709 01:18:24,517 --> 01:18:30,217 내가 병이 나는 바람에 가야네 이모의 맞선이 늦어졌다 710 01:18:30,218 --> 01:18:39,250 중매쟁이는 자선 무도회에서 만나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711 01:18:41,333 --> 01:18:47,354 가야네 이모는 나 때문에 생긴 화상 흉터가 채 가시기도 전에 712 01:18:47,355 --> 01:18:52,063 몸매가 돋보이는 드레스를 입고 맞선 장소에 나갔다 713 01:19:01,096 --> 01:19:04,331 이렇게 만나서 너무 반가워요 714 01:19:18,939 --> 01:19:21,917 우리 가르비스 씨한테 좋은 일이 있는데 715 01:19:21,918 --> 01:19:27,298 상점에서 점장으로 승진해서 월급이 엄청 올랐어요 716 01:19:27,299 --> 01:19:33,608 가르비스 씨는 자물쇠 전문가인데 새로 나온 게 이름이 뭐라고요? 717 01:19:33,609 --> 01:19:36,299 도난 방지 자물쇠예요 718 01:19:36,300 --> 01:19:38,862 도난 방지 자물쇠요? 719 01:19:38,863 --> 01:19:45,524 쇠고리가 초인종으로 발전한 것처럼 자물쇠도 엄청나게 발전했죠 720 01:19:52,476 --> 01:19:55,198 바스켄 씨, 어서 들어오세요 721 01:20:02,022 --> 01:20:06,697 아자드 선물이에요 나중에 안부 전해 주세요 722 01:20:06,698 --> 01:20:08,652 이건 당신 거예요 723 01:20:08,653 --> 01:20:15,154 이럴 필요 없는데 괜한 돈을 쓰셨군요 724 01:20:15,155 --> 01:20:21,176 책은 부담 없는 선물이잖아요 우정의 의미니까 받으세요 725 01:20:21,177 --> 01:20:25,244 여자의 일생 그럼 우정의 선물로 받겠어요 고마워요 726 01:20:27,481 --> 01:20:30,203 정말 멋진 책이네요 727 01:20:32,388 --> 01:20:36,103 프랑스 냄새가 나는데 내용이 뭐예요? 728 01:20:36,104 --> 01:20:39,402 사랑과 죽음 729 01:20:39,852 --> 01:20:44,847 - 슬픈 이야기겠군요 - 아름다우면서 슬프죠 730 01:20:45,297 --> 01:20:49,524 이 자물쇠는 아파트 현관용이에요 731 01:20:49,525 --> 01:20:56,219 열림 상태에서는 면판에 닿아 있고 732 01:20:56,220 --> 01:21:03,010 잠김 상태에서 열쇠를 끼워 주면 튀어 오르는 볼트로 만들어졌죠 733 01:21:03,011 --> 01:21:06,629 구멍에 열쇠를 끼워 734 01:21:06,630 --> 01:21:12,651 지레장치로 된 날름쇠를 개폐하면 볼트가 열려요 735 01:21:12,652 --> 01:21:17,584 그런 뒤 날름쇠는 두 번째 돌기부로 이동하는데 736 01:21:17,585 --> 01:21:22,869 이 상태가 되면 굳이 열쇠를 건드리지 않아도 737 01:21:22,870 --> 01:21:29,436 마우스라 불리는 금속을 통과해 문이 열리죠 738 01:21:56,408 --> 01:22:00,603 - 같이 춤추시겠어요? - 죄송하지만 춤을 못 춰요 739 01:22:00,604 --> 01:22:05,087 - 전혀 못 추나요? - 어쩌죠? 춤에는 소질이 없어서 740 01:22:05,440 --> 01:22:08,739 그럼 됐어요 금방 올게요 741 01:22:11,623 --> 01:22:13,833 아뇨, 됐어요 742 01:22:13,834 --> 01:22:18,701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랑 인사를 좀 해야겠어요 743 01:22:18,702 --> 01:22:20,078 이따가 봐요 744 01:22:21,229 --> 01:22:24,015 가브리스 씨는 그 길로 떠났다 745 01:22:24,080 --> 01:22:29,012 중매쟁이도 돌아오지 않아 만남은 그걸로 끝나버렸다 746 01:22:29,235 --> 01:22:33,078 가브리스 씨는 맘에 드는 다른 여자를 만났을 것이다 747 01:22:33,079 --> 01:22:36,985 가야네 이모가 바란 것도 그런 게 아니었나 싶다 748 01:22:38,716 --> 01:22:41,919 앞으로는 이런 일로 사람 괴롭히지 마 749 01:22:42,032 --> 01:22:44,443 가야네 이모는 처녀로 남았다 750 01:22:44,738 --> 01:22:52,105 시간이 조금씩 흐르자 우리 멋진 이모도 흰머리가 희끗희끗해졌다 751 01:22:52,106 --> 01:22:57,230 언젠가 어떤 책 얘기를 하며 얼굴이 붉어진 적이 있다 752 01:22:57,231 --> 01:23:00,465 너무 많이 읽어서 완전히 닳아 버렸는데 753 01:23:00,466 --> 01:23:05,718 대량학살 때 사망한 바스켄 씨가 선물한 책 같다 754 01:23:07,834 --> 01:23:13,053 '안타람' 부인한테 점을 보려고 멀리서 찾아온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755 01:23:13,054 --> 01:23:16,225 운명이 이끄는 대로 오는 거죠 756 01:23:16,226 --> 01:23:22,663 이쪽 분야에서는 안타람 부인이 '여자 노스트라다무스'라더군요 757 01:23:22,664 --> 01:23:25,033 과장이 심하세요 758 01:23:25,034 --> 01:23:28,461 명성이 자자하던걸요 759 01:23:28,462 --> 01:23:32,209 사람들은 내가 맞힌 것만 기억해요 760 01:23:32,210 --> 01:23:36,533 엉뚱한 것도 예언했는데 그건 다 잊어버려요 761 01:23:40,016 --> 01:23:43,219 - 한번 봐주세요 - 고마워요 762 01:23:52,005 --> 01:23:58,058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변화를 보이는 763 01:23:58,059 --> 01:24:03,471 점괘는 내 평생 처음 봐요 764 01:24:03,472 --> 01:24:09,814 하나, 둘, 셋... 적어도 세 가지 변화가 생겨요 765 01:24:09,815 --> 01:24:12,217 좋은 변화인가요? 나쁜 변화인가요? 766 01:24:12,218 --> 01:24:16,766 좋은 변화예요 아주 좋아요 767 01:24:16,767 --> 01:24:23,524 여기 세 가지 징조가 보여요 하나, 둘, 셋... 768 01:24:24,734 --> 01:24:28,768 안타람 부인이 제대로 봤다 769 01:24:28,769 --> 01:24:33,221 그해 우리 가족은 이사를 했다 770 01:24:33,222 --> 01:24:39,307 단춧구멍 하나에 10센트를 받으면서 돈을 많이 벌었다 771 01:24:39,308 --> 01:24:44,368 그 돈으로 파라다이스 가 168번지에 가게를 냈다 772 01:24:44,590 --> 01:24:49,424 목 좋은 자리에 가게를 열고 773 01:24:49,637 --> 01:24:56,523 문에 아버지 이름을 붙인 건 우리 가족의 성공을 상징했다 774 01:24:56,990 --> 01:25:02,915 맞춤식 셔츠 775 01:25:33,082 --> 01:25:34,587 아자드 776 01:25:39,432 --> 01:25:41,065 접시 이리 주렴 777 01:25:42,892 --> 01:25:48,111 셔터가 있으니 가게를 비워도 안심이 돼서 좋아요 778 01:25:48,112 --> 01:25:52,981 윤활제를 발라도 소리가 나요 롤러가 안에서 녹슬었나 봐요 779 01:25:53,103 --> 01:25:57,106 예전부터 그랬으니 이웃들도 익숙해졌겠죠 780 01:25:58,459 --> 01:26:03,134 - 오늘밤에도 출근하세요? - 이제는 공장에 안 나가셔 781 01:26:03,135 --> 01:26:06,755 - 어디 편찮으세요? - 하나도 아프지 않단다 782 01:26:06,756 --> 01:26:10,566 셔츠 사업을 해 보려고 공장을 관뒀단다 783 01:26:10,567 --> 01:26:13,577 셔츠를 만들 줄 아세요? 784 01:26:13,578 --> 01:26:16,460 3년 전부터 진동둘레를 만들었는데 785 01:26:16,461 --> 01:26:20,976 내가 다 만들어 놓고 돌아서면 안나 이모가 새로 고쳤지 786 01:26:20,977 --> 01:26:27,607 그래도 못 본 척했는데 언젠가부터 안 고치더구나 787 01:26:27,608 --> 01:26:30,362 실습 기간이 끝난 거야 788 01:26:30,486 --> 01:26:33,352 아버지의 밤 근무도 끝났다 789 01:26:33,502 --> 01:26:39,107 가족 모두 같은 시간대에 살게 됐다 점괘가 들어맞은 것이었다 790 01:26:41,990 --> 01:26:45,097 그레타 가르보의 크리스티나 여왕 791 01:26:47,756 --> 01:26:53,809 점괘에 나온 세 번째 변화는 '리알토 극장'에서 일어났다 792 01:26:59,384 --> 01:27:01,690 - 이 영화를 몇 번 봤는지 아니? - 몇 번인데? 793 01:27:01,691 --> 01:27:06,174 일곱 번이야 네가 원하면 같이 봐 줄게 794 01:27:06,175 --> 01:27:08,000 - 관람료가 얼마야? - 신경 쓰지 마 795 01:27:08,001 --> 01:27:09,741 고맙지만 신세지기 싫어 796 01:27:10,057 --> 01:27:14,540 내가 언제 표를 사준댔어? 난 내 표도 안 사, 따라와 797 01:27:49,546 --> 01:27:51,595 - 저기 아래 문 보이니? - 응 798 01:27:51,596 --> 01:27:54,382 저 문 안이 극장이야 799 01:27:54,383 --> 01:27:59,635 영화가 시작되면 안이 깜깜한데 그때 들어가면 돼, 어서 가자 800 01:28:06,042 --> 01:28:07,419 이건 뭐야? 801 01:28:07,420 --> 01:28:10,654 스피커 뒷부분이야 이 벽 뒤가 스크린이지 802 01:28:10,655 --> 01:28:12,384 영화는 어떻게 시작돼? 803 01:28:12,385 --> 01:28:14,978 오래 전 스웨덴에서 804 01:28:14,979 --> 01:28:20,391 스페인 대사가 여관에 갔는데 폭설 때문에 빈방이 없었어 805 01:28:20,392 --> 01:28:26,414 그때 주인이 마지막으로 방을 빌린 신사와 침대를 같이 쓰라고 하지 806 01:28:28,625 --> 01:28:32,212 안녕히 주무세요 만족스러울 겁니다 807 01:28:32,213 --> 01:28:34,294 다들 이 방을 좋아했거든요 808 01:28:34,327 --> 01:28:39,291 - 깨끗하긴 한가요? - 불평하는 사람이 없었다니까요 809 01:28:41,022 --> 01:28:44,928 잠긴 걸 보니 친구들이 주인한테 걸렸었나 봐 810 01:28:44,929 --> 01:28:46,946 그만 나가자 811 01:28:48,837 --> 01:28:54,154 한 침대를 쓰게 됐는데 통성명이나 합시다 812 01:28:54,155 --> 01:28:58,125 저는 돈 안토니오 로마 제국 기사죠 813 01:28:58,126 --> 01:29:03,507 스페인 필리페 왕의 특사입니다 814 01:29:03,508 --> 01:29:04,852 저는 도나 백작이에요 815 01:29:04,853 --> 01:29:07,671 도나 백작? 웃기시네 816 01:29:08,121 --> 01:29:09,753 옷 안 벗을 거예요? 817 01:29:12,669 --> 01:29:14,494 그게... 818 01:29:14,783 --> 01:29:18,401 이제 둘 다 옷을 벗어 819 01:29:18,627 --> 01:29:21,413 첫 번째 아이젠 820 01:29:21,414 --> 01:29:24,456 두 번째 821 01:29:24,457 --> 01:29:29,069 장화 한 짝 822 01:29:29,070 --> 01:29:31,246 벨트 823 01:29:31,247 --> 01:29:35,507 모자를 벗으면 여자의 긴 머리가 드러나 824 01:29:35,508 --> 01:29:41,176 상의까지 벗고 나면 세계 최고의 미인이 등장하지 825 01:29:41,177 --> 01:29:43,739 대사가 감탄하는 소리를 들어봐 826 01:29:43,740 --> 01:29:53,125 어떻게 이런 일이... 무슨 얘기를 해야 할까요? 827 01:29:53,126 --> 01:29:57,513 세상은 놀라움으로 가득해요 828 01:29:57,514 --> 01:30:02,702 그런 뒤에 남자는 여자를 침대에 눕히고 커튼을 쳐 829 01:30:05,266 --> 01:30:07,091 아무것도 안 보여? 830 01:30:07,092 --> 01:30:10,710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잖아 831 01:30:18,271 --> 01:30:21,376 이제 다음날 아침이야 얼마나 멋진지 몰라 832 01:30:21,377 --> 01:30:24,644 뭐 하세요? 833 01:30:24,645 --> 01:30:28,712 다음에 또 이 방에 묵도록 834 01:30:29,146 --> 01:30:36,448 머릿속에 추억을 담고 있어요 835 01:30:50,543 --> 01:30:57,044 극장에서 집으로 돌아와 영화배우가 되겠다고 했다 836 01:31:03,459 --> 01:31:08,198 그 소리로 가족들의 위대한 꿈은 산산조각 났다 837 01:31:14,951 --> 01:31:18,378 영화배우가 되겠다는 건 농담이에요 838 01:31:21,358 --> 01:31:24,464 얼마나 기가 막혔는지 알기나 하니? 839 01:31:27,723 --> 01:31:30,918 그 순간을 모면하고자 뭔가를 얘기해야 했다 840 01:31:32,344 --> 01:31:35,419 아르장퇴유 해군 제독 프랑스 해군 최고 사령관 그리고 무심코 내뱉어 버렸다 841 01:31:35,900 --> 01:31:37,790 선박 건조 기술자에서 프랑스 해군 최고사령관이 되다 842 01:31:38,057 --> 01:31:44,612 실은 군함 건조 기술자가 되고 싶어요 843 01:31:44,613 --> 01:31:46,982 기술자라면 좋지 844 01:31:46,983 --> 01:31:50,506 군함이라면 배를 말하는 건데 넌 수영을 못하잖니 845 01:31:50,507 --> 01:31:54,895 기술자는 배만 만드는 거야 846 01:31:54,896 --> 01:31:57,009 - 배를 타기도 할 거 아냐 - 그건 그렇겠지 847 01:31:57,010 --> 01:31:59,923 성인이 됐을 때 탈 거야 848 01:32:01,942 --> 01:32:08,188 조용히 좀 해요 아자드, 무슨 기술자라고 했니? 849 01:32:08,189 --> 01:32:12,032 선박을 건조하는 기술자요 850 01:32:14,555 --> 01:32:18,782 아버지는 그 소리를 교향곡처럼 듣고 계셨다 851 01:32:18,983 --> 01:32:23,435 내 미래가 달려 있는 교향곡 말이다 852 01:32:26,109 --> 01:32:32,035 그해 10월, 냉담한 감정으로 생 일레르 학교를 떠났다 853 01:32:32,149 --> 01:32:38,714 기술 인재를 양성하는 학교는 집에서 기차로 5시간 거리에 있었다 854 01:32:41,598 --> 01:32:45,473 난 가방 하나에 짐을 싸달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855 01:32:45,474 --> 01:32:49,381 '딱 하나만 들고 갈 거예요' 856 01:32:57,326 --> 01:33:00,047 이 안에 다 들어있어 857 01:33:00,048 --> 01:33:06,294 서류랑 도장 건너편 약국 전화번호 858 01:33:06,571 --> 01:33:13,181 필요한 게 있으면 약국에 전화해 약사 아저씨가 전해 줄 거야 859 01:33:13,950 --> 01:33:17,473 용돈은 어디 있는지 알지? 860 01:33:19,332 --> 01:33:20,996 알아서 꺼내 가렴 861 01:33:22,613 --> 01:33:26,648 이런 허술한 금고에 돈을 넣어 두다니... 862 01:33:26,649 --> 01:33:28,570 '알아서 꺼내 가렴' 863 01:33:28,571 --> 01:33:31,933 아마 이 소리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864 01:33:31,934 --> 01:33:39,653 유년시절에 난 엄마를 맘껏 차지하지 못했다 865 01:33:39,654 --> 01:33:44,682 돈을 알아서 꺼내 가게 할 정도로 날 어른 취급했기 때문이다 866 01:33:45,124 --> 01:33:50,480 금고에 얼마가 들었는지 모르니 내가 챙긴 금액도 모를 것이다 867 01:34:04,383 --> 01:34:08,482 기차 시간에 맞추려면 지금 가야 해 어서 인사하고 나오너라 868 01:34:08,483 --> 01:34:11,621 프랑스식이요? 아르메니아식이요? 869 01:34:11,622 --> 01:34:14,984 왜? 프랑스식은 어떤데? 870 01:34:19,886 --> 01:34:22,224 아르메니아식으로 인사하자꾸나 871 01:34:27,959 --> 01:34:34,460 우리는 생일이나 성탄절 같은 특별한 날에만 입을 맞췄다 872 01:34:34,461 --> 01:34:38,944 입맞춤을 하면서 서로에 대한 사랑을 나눴다 873 01:34:41,732 --> 01:34:46,152 안녕히 계세요, 눈물 흘리기 전에 충고하실 거 하세요 874 01:34:46,153 --> 01:34:48,458 충고할 건 없단다 875 01:34:52,911 --> 01:34:59,541 그저 너무 마르지 않게 밥 잘 챙겨 먹거라 876 01:35:05,660 --> 01:35:07,741 - 안나 이모? - 응 877 01:35:07,742 --> 01:35:12,258 출발하기 전에 뭐 좀 여쭤 볼게요 878 01:35:12,259 --> 01:35:15,910 - 뭘 넣은 거예요? - 꼭 필요한 것만 넣었어 879 01:35:15,911 --> 01:35:17,607 양은 얼마나 되죠? 880 01:35:17,608 --> 01:35:22,220 가방 하나만 만들라고 해서 그렇게 했어 881 01:35:22,221 --> 01:35:24,206 가방 세 개 분량이잖아요 882 01:35:24,207 --> 01:35:26,896 기차가 실어다 줄 건데 무슨 걱정이냐? 883 01:35:26,897 --> 01:35:31,029 기차 타기 전이랑 그 후는요? 아빠 혼자 들면 안 되잖아요 884 01:35:31,030 --> 01:35:33,623 그럼 교대로 들면 되잖니 어서 가자 885 01:35:34,425 --> 01:35:39,997 가게 문을 나서는 순간 예전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886 01:35:39,998 --> 01:35:44,674 그때부터 유년시절과 나의 집 세 분의 엄마와도 안녕이었다 887 01:35:44,867 --> 01:35:47,044 아자드, 서둘러 888 01:35:48,583 --> 01:35:49,767 어서 타 889 01:36:03,379 --> 01:36:06,805 대학 예비 고등학교 890 01:36:25,263 --> 01:36:33,271 새 학교 첫날인데 날씨가 화창했으면 얼마나 좋았겠니 891 01:36:33,777 --> 01:36:39,350 기차 시간에 맞추려면 지금 가셔야 해요 892 01:36:39,351 --> 01:36:42,617 그래, 가마 893 01:36:42,618 --> 01:36:45,885 참, 제일 중요한 걸 잊었다 894 01:36:47,295 --> 01:36:49,312 여기 있구나 895 01:36:49,730 --> 01:36:54,341 '충분히 넣어뒀으니 속옷은 매일 갈아입거라' 896 01:36:54,341 --> 01:36:58,569 '다음주에 만나면 빨랫감을 내놓으렴' 897 01:36:58,570 --> 01:37:03,182 '깨끗하게 빨아서 다린 뒤 그 다음 주에 갖다 주마' 898 01:37:03,919 --> 01:37:06,417 안나 이모가 쓴 거군요 899 01:37:06,418 --> 01:37:10,741 참, 이모가 이걸 전해 주라더라 900 01:37:10,742 --> 01:37:13,496 아침까지만 해도 따뜻했는데 지금은 다 식었구나 901 01:37:13,497 --> 01:37:17,404 안나 이모한테 저한테 신경 그만 쓰라고 하세요 902 01:37:17,437 --> 01:37:19,486 그럴 수가 없어 903 01:37:19,487 --> 01:37:24,419 지구가 돌고 해가 뜨고 비가 내리는 걸 막지 못하듯이 904 01:37:24,420 --> 01:37:26,725 이모도 그래 905 01:37:26,726 --> 01:37:32,843 잘 지내거라 몸조심하고 906 01:37:44,753 --> 01:37:46,834 아버지는 하나도 잊지 않으셨다 907 01:37:46,953 --> 01:37:53,423 다만 우산 펴는 걸 깜빡해서 비를 맞고 가셨다 908 01:38:13,284 --> 01:38:15,717 공동 침실 909 01:39:10,142 --> 01:39:12,670 - 네가 자카리옹이니? - 응, 그래 910 01:39:12,671 --> 01:39:14,542 난 '바르타니옹'이야 4학년이지 911 01:39:15,210 --> 01:39:19,469 바르타니옹과 자카리옹... 동족을 만났다 912 01:39:19,622 --> 01:39:21,447 저걸 쓰면 될 거야 913 01:39:24,298 --> 01:39:27,532 짐이 다 안 들어가겠다 914 01:39:30,122 --> 01:39:32,875 - 복도 많은 녀석 - 갖고 싶으면 가져 915 01:39:32,876 --> 01:39:35,310 아냐, 나중에 한번 초대해 916 01:39:35,311 --> 01:39:38,801 하나 가져 우리 이모가 또 보내 줄 거야 917 01:39:43,030 --> 01:39:46,553 - 장미꽃잎 잼이다 - 가져 918 01:39:48,220 --> 01:39:49,789 식사시간이야 919 01:40:10,200 --> 01:40:16,408 7월 9일, 한 학년을 마쳤다 난 간신히 2학년에 올라갔다 920 01:40:16,504 --> 01:40:21,084 이곳에서 공부한다고 다 기술자가 되는 건 아냐 921 01:40:21,085 --> 01:40:22,878 개인차가 있어 922 01:40:22,879 --> 01:40:25,696 자카리옹, 면회 923 01:40:26,626 --> 01:40:31,462 입학시험에 합격할 테니까 내년에는 못 보겠지? 924 01:40:31,463 --> 01:40:34,024 그래야지 925 01:40:34,986 --> 01:40:37,645 안나 이모의 장미꽃잎 잼이 그리울 거야 926 01:40:37,645 --> 01:40:42,705 이모한테 얘기하면 질리도록 보내 줄 텐데, 그럼 후회할걸 927 01:40:42,706 --> 01:40:44,115 안녕 928 01:40:45,173 --> 01:40:49,624 1년 내내 날씨와 상관없이 아버지는 꼬박꼬박 면회를 오셨다 929 01:40:49,625 --> 01:40:56,351 매주 집에서 만든 특별 음식과 깨끗하게 다린 옷을 갖다 주셨다 930 01:40:56,352 --> 01:41:04,967 잠깐 얼굴을 보려고 왕복 10시간 기차를 타고 여기까지 오신 것이다 931 01:41:18,165 --> 01:41:20,727 아저씨, 웬일이세요? 아버지 편찮으세요? 932 01:41:20,728 --> 01:41:25,276 아니다, 너무 바빠서 아플 시간도 없다는 양반이잖니 933 01:41:25,277 --> 01:41:27,582 볼일이 있어서 왔다가 934 01:41:27,583 --> 01:41:33,668 이왕 온 김에 내가 널 데리고 가겠다고 했지 935 01:41:37,032 --> 01:41:38,953 이제 다 나았어 936 01:41:38,954 --> 01:41:42,029 요양소에서 나오신 거예요? 937 01:41:42,030 --> 01:41:46,032 그래, 폐를 하나 떼어 냈기 때문에 아직은 치료 중이야 938 01:41:46,033 --> 01:41:51,766 인공 폐로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데 그래도 전염은 안 돼 939 01:41:51,767 --> 01:41:53,913 어서 가자 940 01:41:54,522 --> 01:42:00,223 아저씨가 들게, 네가 다치면 네 아버지가 날 살려두겠니? 941 01:42:13,549 --> 01:42:17,264 여기서 숨 좀 돌리고 가자 942 01:42:20,852 --> 01:42:24,791 - 폐가 시원찮은 게 이렇게 티가 나 - 가방 제가 들게요 943 01:42:24,792 --> 01:42:28,987 죽을 때는 아직 멀었으니 걱정 말거라 944 01:42:33,825 --> 01:42:39,013 얘기는 안 하지만 네가 무척 그리우신가 봐 945 01:42:39,014 --> 01:42:41,000 저도 가족들이 그리워요 946 01:42:41,001 --> 01:42:44,427 네가 있을 때가 좋았어 947 01:42:44,428 --> 01:42:49,776 너희 집으로 배달되는 소포를 찾으러 아침마다 들르는데 948 01:42:49,777 --> 01:42:53,268 웃지도 않고 노래도 안 불러 949 01:42:53,269 --> 01:42:56,887 그저 고개를 숙이고 일만 하지 950 01:42:56,888 --> 01:42:59,386 이제 그만 가자 951 01:43:20,074 --> 01:43:21,899 특별 손님이 왔어요 952 01:43:31,510 --> 01:43:34,936 - 전 그만 갈게요 - 점심 먹고 가게 953 01:43:34,937 --> 01:43:39,901 다음에 같이 먹어요 오늘은 가족끼리 보내야죠 954 01:43:39,902 --> 01:43:42,913 그럼 안녕히 계세요 다음에 뵐게요 955 01:43:57,592 --> 01:43:59,642 안나 이모 956 01:44:10,525 --> 01:44:14,240 이모 이모 957 01:44:19,430 --> 01:44:22,088 안나 이모가 안 계세요? 958 01:44:25,612 --> 01:44:33,138 슬픈 일이 있었단다 안나 이모가 떠나셨어 959 01:44:33,972 --> 01:44:37,015 이모가 떠나셨다고요? 어디로요? 960 01:44:40,479 --> 01:44:44,963 외출하는 법이 없던 분이었는데 멍청한 질문이었다 961 01:44:44,964 --> 01:44:49,479 실은 마음의 준비를 하기 위해 시간을 벌려고 한 소리였다 962 01:44:49,928 --> 01:44:51,594 그냥 놔둬 963 01:44:52,075 --> 01:44:56,686 난 혼자 있고 싶었다 964 01:44:56,687 --> 01:45:01,331 날 위로하려고 입이라도 맞출까봐 두려웠다 965 01:45:01,332 --> 01:45:07,449 하지만 내가 싫어하는 걸 아는지 아무도 오지 않았다 966 01:45:18,168 --> 01:45:19,910 왜 연락하지 않으셨죠? 967 01:45:20,168 --> 01:45:25,735 그런다고 달라지지도 않는데 괜히 시험만 못 보게 되잖니 968 01:45:26,221 --> 01:45:29,359 이모도 싫어하실 거고 969 01:45:29,360 --> 01:45:31,825 그래서 아저씨를 보냈군요 970 01:45:31,826 --> 01:45:37,078 그래, 학교 면회실에서 얘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971 01:45:46,977 --> 01:45:49,507 어디가 편찮으셨어요? 972 01:45:50,981 --> 01:45:53,240 그런 건 아니었어 973 01:45:53,960 --> 01:46:01,807 하루는 이모가 몸이 안 좋다며 누워 있어야겠다고 하시더구나 974 01:46:04,147 --> 01:46:08,214 너도 잘 알다시피 이모가 가만 누워 계시는 분이니? 975 01:46:08,215 --> 01:46:12,986 그러더니 잠을 안 주무시더라 976 01:46:12,987 --> 01:46:19,489 아침에 의사를 부르려고 했는데 일어나 보니... 977 01:46:21,188 --> 01:46:24,870 떠나셨더구나 978 01:46:26,441 --> 01:46:29,643 그런 게 죽음이었다 979 01:46:29,644 --> 01:46:34,096 그날 아침까지도 죽음은 남의 일이었다 980 01:46:34,097 --> 01:46:37,427 나랑은 상관없는 사람들 말이다 981 01:46:37,428 --> 01:46:42,872 처음으로 죽음과 이별이 하나로 느껴졌다 982 01:46:42,873 --> 01:46:46,203 내 근간이 송두리째 뽑혀 나갔다 983 01:47:11,670 --> 01:47:15,738 - 뭘 넣은 거예요? - 꼭 필요한 것만 넣었어 984 01:47:15,739 --> 01:47:19,773 - 양은 얼마나 되죠? - 나도 애를 썼는데... 985 01:47:20,639 --> 01:47:22,920 그런 분이셨다 986 01:47:22,945 --> 01:47:27,301 이모는 평생 남을 위해 애쓰며 희생하셨다 987 01:47:27,746 --> 01:47:32,426 그리고 어느 날 밤 조용히 숨을 거두셨다 988 01:47:32,427 --> 01:47:35,725 살아 계실 때처럼 조용히... 989 01:47:37,779 --> 01:47:41,975 가슴을 찌르는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990 01:47:41,975 --> 01:47:46,106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했다 991 01:47:47,645 --> 01:47:53,954 바르타니옹한테 올해는 잼을 줄 수가 없다고 편지도 썼다 992 01:47:55,204 --> 01:47:58,407 음식 맛도 예전 같지 않았다 993 01:47:58,408 --> 01:48:02,828 이모가 사용하는 허브 이름도 못 듣게 됐다 994 01:48:02,829 --> 01:48:07,818 수많은 허브들이 궁금해졌다 데블스 허브는 어디서 땄지? 995 01:48:08,163 --> 01:48:14,583 트리니티 허브, 스왈로우즈 허브 새크리드 허브, 러브 허브... 996 01:48:14,584 --> 01:48:18,459 하나같이 신비로운 허브였다 997 01:48:18,460 --> 01:48:24,384 주방의 그릇들을 보니 안나 이모가 날 위해 하던 거짓말이 떠올랐다 998 01:48:24,385 --> 01:48:27,748 '난 먹었으니 다 먹으렴' 999 01:48:27,749 --> 01:48:29,958 짜증나게 만들던 잔소리 1000 01:48:29,959 --> 01:48:34,443 '아자드 한 입만 더 천천히 먹어야지' 1001 01:48:34,444 --> 01:48:37,967 '아자드, 스웨터 잊지 마' 1002 01:48:45,495 --> 01:48:49,658 아자드, 너무 차가운 물 마시면 안 돼 1003 01:48:59,437 --> 01:49:01,895 지난 8개월 동안 전쟁 중이었는데 1004 01:49:01,895 --> 01:49:05,834 눈에 띄는 격정과 파괴가 없는 전쟁 1005 01:49:05,835 --> 01:49:10,895 평상시랑 너무 똑같아서 우린 '이상한 전쟁'이라고 불렀다 1006 01:49:13,651 --> 01:49:18,807 하루에 한 번씩 잘하고 있다는 표시로 사이렌이 울렸다 1007 01:49:18,808 --> 01:49:25,662 군은 정기적으로 보고를 하며 걱정할 것 없다고 했다 1008 01:49:27,521 --> 01:49:31,332 북쪽 나르비크 근처에서는 분쟁이 일기도 했지만 1009 01:49:31,333 --> 01:49:36,873 1년 중 4분의 3이 눈으로 덮인 남쪽은 고요하기만 했다 1010 01:49:47,374 --> 01:49:52,114 입학시험과 대학생활을 위한 그 오랜 준비기간 동안 1011 01:49:52,115 --> 01:49:58,680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기차역 계단을 수없이 뛰어내려갔다 1012 01:49:59,004 --> 01:50:02,367 1940년, 6월 드디어 학교를 마쳤다 1013 01:50:31,291 --> 01:50:34,440 - 안녕하세요 - 어서 오게 1014 01:50:35,281 --> 01:50:37,343 여기요, 다 고쳐왔어요 1015 01:50:37,344 --> 01:50:41,667 - 이리 와서 같이 먹게 - 아뇨, 이미 먹었어요 1016 01:50:41,668 --> 01:50:46,761 그만 가야 합니다 들를 데가 있거든요 1017 01:50:50,093 --> 01:50:53,903 어디가 고장 나서 3주씩이나 걸렸나? 1018 01:50:53,904 --> 01:50:59,733 전구 두 개가 나갔고 부품도 두세 개 갈았대요 1019 01:50:59,734 --> 01:51:04,955 기술적인 건 기억이 안 나요 어쨌든 꼼꼼하게 살펴봤대요 1020 01:51:05,948 --> 01:51:09,983 아자드 시험이 24일이랬죠? 1021 01:51:10,426 --> 01:51:13,155 조용히 해 보세요 라디오 좀 들어요 1022 01:51:13,476 --> 01:51:18,280 벨기에가 항복하고 영국군이 됭케르크에서 철수하자 1023 01:51:18,960 --> 01:51:26,000 독일군은 138사단을 프랑스 중심부로 진격시켰습니다 1024 01:51:26,001 --> 01:51:29,395 정부는 보르도에 피난처를 만들었습니다 1025 01:51:29,396 --> 01:51:33,652 지금 이 순간 독일군은 파리로 진격해 1026 01:51:33,972 --> 01:51:37,371 황폐해진 샹젤리제 거리를 활보하고 있습니다 1027 01:51:37,800 --> 01:51:43,745 독일군과 휴전협상을 거부한 레노 총리는 사퇴했고 1028 01:51:43,746 --> 01:51:51,049 패배가 명백한 상황에서 페탱 원수가 새 내각을 구성했습니다 1029 01:51:51,338 --> 01:51:55,405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1030 01:51:55,406 --> 01:52:00,113 라디오가 고장 나기 전에는 아무 일도 없을 거랬는데 1031 01:52:00,114 --> 01:52:05,623 그동안 다른 나라들을 침공하고 이젠 프랑스에 들어와 있대요 1032 01:52:06,638 --> 01:52:09,520 페탱 프랑스 국가원수가 1033 01:52:09,921 --> 01:52:14,020 오늘 저녁 9시에 국민들께 성명을 발표할 것입니다 1034 01:52:15,191 --> 01:52:20,411 프랑스 국민 여러분 대통령의 명을 받아 1035 01:52:20,412 --> 01:52:26,240 오늘부로 정권을 위임받고 국정을 책임지게 됐습니다 1036 01:52:26,241 --> 01:52:30,725 열렬히 성원해 주신 국민 모두에게 감사드리며 1037 01:52:30,726 --> 01:52:34,697 평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1038 01:52:34,698 --> 01:52:39,918 이 자리를 통해 전쟁 중지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1039 01:52:39,919 --> 01:52:44,275 어젯밤에 적들과 휴전을 결정했고 1040 01:52:44,276 --> 01:52:50,072 군인의 이름을 걸고 적대관계를 청산할 방법을 모색하기로 했습니다 1041 01:52:50,073 --> 01:52:53,339 프랑스 국민 여러분 1042 01:52:53,686 --> 01:52:59,778 이런 어지러운 상황을 극복하는 방법은 정부를 믿는 것뿐입니다 1043 01:52:59,779 --> 01:53:05,479 모든 두려움을 잠재우고 정부를 믿고 따라주십시오 1044 01:53:10,637 --> 01:53:16,627 그날 밤 파라다이스 가 168번지 사람들은 패배를 가슴 아파했다 1045 01:53:16,628 --> 01:53:23,706 그러면서 아들이 참전하지 않은 걸 기뻐하며 눈물을 흘렸다 1046 01:53:46,634 --> 01:53:48,683 아직인가요? 1047 01:53:49,005 --> 01:53:56,114 2시에 결과가 발표된다니까 15분이나 30분쯤 걸릴 거야 1048 01:53:57,461 --> 01:54:00,879 이제 2시 10분이니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1049 01:54:01,063 --> 01:54:06,603 아자드가 결과 나오면 바로 전화한다고 했잖아요 1050 01:54:06,782 --> 01:54:10,593 그럼 '안자니' 씨가 약국에서 나와 이렇게 소리치겠죠? 1051 01:54:10,594 --> 01:54:13,605 '자카리옹 씨, 전화요!' 1052 01:54:13,605 --> 01:54:16,231 전화가 고장 난 거 아닐까? 1053 01:54:16,232 --> 01:54:18,185 뭐 때문에 고장 나요? 1054 01:54:18,186 --> 01:54:20,811 그럴 수도 있잖나 1055 01:54:20,812 --> 01:54:24,880 전화가 이유까지 말해 주면서 고장이 나겠어! 1056 01:54:26,738 --> 01:54:28,115 어디 가나? 1057 01:54:28,116 --> 01:54:31,959 수화기를 들어보면 고장인지 아닌지 알 수 있잖아요 1058 01:54:44,901 --> 01:54:46,437 나온다 1059 01:55:15,395 --> 01:55:18,373 - 아자드, 어떻게 됐어? - 조금 이따가 알려줄게 1060 01:55:45,281 --> 01:55:46,881 1분 1061 01:55:47,972 --> 01:55:49,380 50초 1062 01:55:51,526 --> 01:55:53,224 40초 1063 01:55:54,090 --> 01:55:55,946 30초 1064 01:55:55,947 --> 01:56:02,577 이제 곧 아버지께 합격 사실을 알려 드릴 것이다 1065 01:56:03,664 --> 01:56:07,348 문득 이름을 제대로 봤나 의심스러웠다 1066 01:56:09,487 --> 01:56:15,091 너무 간절하게 원해서 잘못 볼 수도 있으니까 1067 01:56:28,845 --> 01:56:30,893 아자드 자카리옹 1068 01:56:34,898 --> 01:56:37,908 전화하게 동전이랑 맥주 주세요 1069 01:56:39,478 --> 01:56:40,534 감사합니다 1070 01:56:48,448 --> 01:56:50,689 안자니, GAR 2954 1071 01:57:21,152 --> 01:57:25,155 - 이런, 죄송해요 - 괜찮으니 그냥 앉아요 1072 01:57:27,334 --> 01:57:30,345 - 시험에 합격했나 봐요 - 어떻게 아셨죠? 1073 01:57:30,346 --> 01:57:32,587 척 보니 알겠는걸요 1074 01:57:32,588 --> 01:57:37,039 사람의 감정은 얼굴에 다 드러나기 마련이죠 1075 01:57:37,652 --> 01:57:39,893 '마들렌'이란 여자였다 1076 01:57:39,894 --> 01:57:43,224 촌스러웠지만 묘한 매력이 있었다 1077 01:57:43,225 --> 01:57:47,933 전화를 기다리는 동안 여자의 얘기를 들었다 1078 01:57:47,934 --> 01:57:51,501 여자는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과 영화 얘기를 했다 1079 01:57:51,601 --> 01:57:55,557 전화박스 안의 사람은 계속 바뀌고 있었지만 1080 01:57:55,779 --> 01:58:01,707 외로운 여자를 뿌리치고 일어설 수가 없었다 1081 01:58:01,708 --> 01:58:03,757 그러던 중 느닷없이... 1082 01:58:03,758 --> 01:58:07,665 쉬운 일이 없네요 저는 혼자 살아요 1083 01:58:07,666 --> 01:58:12,182 그녀는 강한 자신감을 보이면서 바로 이렇게 얘기했다 1084 01:58:12,183 --> 01:58:13,944 당신을 믿어요 1085 01:58:13,944 --> 01:58:16,826 그녀는 날 초대했다 1086 01:58:16,827 --> 01:58:19,485 잠깐 실례 좀 할게요 1087 01:58:19,486 --> 01:58:21,246 전화하고 올게요 1088 01:58:28,615 --> 01:58:31,049 - 그 돈 돌려주세요 - 애처럼 왜 그래요? 1089 01:58:31,050 --> 01:58:35,020 합격을 축하하는 우정의 선물이에요 1090 01:58:35,566 --> 01:58:37,455 마르세유 전화번호부 있나요? 1091 01:58:37,456 --> 01:58:41,042 전화번호부를 배치하는 게 법이라면 있을 걸세 1092 01:58:49,283 --> 01:58:56,938 어린 시절 내내 성관계에 관해서는 동양적 사고방식을 철저히 따랐다 1093 01:58:56,939 --> 01:58:59,277 얘기조차 하지 않았다 1094 01:58:59,278 --> 01:59:04,242 금지된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냥 따랐다 1095 01:59:04,438 --> 01:59:10,619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여기서도 난 여자랑 있으면 얼굴이 상기됐다 1096 01:59:10,619 --> 01:59:14,591 그래서 그런지 내게 다가오는 여자도 별로 없었다 1097 01:59:16,898 --> 01:59:18,598 - 내가 너무 빨리 걷나요? - 아니에요 1098 01:59:18,665 --> 01:59:22,925 걸음이 너무 빠르다고 사람들한테 늘 핀잔 들어요 1099 01:59:26,961 --> 01:59:31,509 그녀가 코르들리에 골목에 살았던 게 기억난다 1100 01:59:31,510 --> 01:59:35,417 사실 밀폐된 공간도 필요 없었다 1101 01:59:35,418 --> 01:59:40,670 그저 본능적 욕구를 충족시키고 싶을 뿐이었다 1102 01:59:40,671 --> 01:59:46,340 해질녘 어두운 골목길이든 깜깜한 통로든 상관없었다 1103 01:59:46,341 --> 01:59:51,529 지나가는 사람의 방해쯤은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 1104 02:00:08,283 --> 02:00:11,325 그러고 서 있지 말고 앉아요 1105 02:00:11,326 --> 02:00:15,585 처음으로 침대가 있는 침실을 경험할 예정이었다 1106 02:00:15,586 --> 02:00:20,678 시간을 두고 천천히 옷을 벗고 싶어 하는 여자도... 1107 02:00:21,961 --> 02:00:23,657 마실 것 좀 줄까요? 1108 02:00:23,658 --> 02:00:25,291 - 와인 어때요? - 아뇨, 됐어요 1109 02:00:25,292 --> 02:00:28,141 - 한 잔만 해요 - 정말 괜찮아요 1110 02:00:34,475 --> 02:00:40,240 남자를 집에 데리고 온 건 처음이니 오해하지 말아요 1111 02:00:42,300 --> 02:00:46,720 - 날 믿죠? - 그럼요, 그래 보여요 1112 02:00:48,355 --> 02:00:52,198 그 순간 집에서 음식 냄새가 느껴졌다 1113 02:00:52,776 --> 02:00:58,733 냄새를 없애려고 뿌린 향수가 여전히 가시지 않고 남아 있었다 1114 02:01:05,332 --> 02:01:07,830 이름도 모르는데 1115 02:01:08,383 --> 02:01:09,920 '장 폴'이에요 1116 02:01:13,121 --> 02:01:17,540 진짜 이름을 말했다면 질문 공세가 펼쳐졌을 것이다 1117 02:01:17,664 --> 02:01:20,610 '아자드? 이름이 참 예쁘네요' 1118 02:01:20,611 --> 02:01:24,358 '어디 출신인가요? 아르메니아가 어디죠?' 1119 02:01:24,359 --> 02:01:29,963 2,500년 역사나 읊어대려고 따라간 건 아니었다 1120 02:01:32,623 --> 02:01:34,848 이런, 벌써 8시군요 1121 02:01:34,981 --> 02:01:39,541 저 때문에 문도 못 닫고 정말 죄송해요 1122 02:01:39,542 --> 02:01:43,801 신경 쓸 거 없어요 좀 늦게 닫으면 돼요 1123 02:01:43,802 --> 02:01:47,421 그러지 마세요 전화 안 올 거예요 1124 02:01:47,422 --> 02:01:52,001 전화할 시간이 없었나 봐요 아님 오고 있을지도 몰라요 1125 02:01:52,002 --> 02:01:55,653 기차는 오래 전에 도착했어요 1126 02:01:55,654 --> 02:01:58,568 아무래도 떨어졌나 봐요 1127 02:01:58,568 --> 02:02:04,590 불합격 소식을 전할 수가 없어서 전화를 못하는 거예요 1128 02:02:04,591 --> 02:02:08,280 집에 오긴 하겠지만 언제쯤 올지 모르겠군요 1129 02:02:08,464 --> 02:02:13,395 가족들이 무척 걱정하고 있어요 저도 그렇고요 1130 02:02:14,713 --> 02:02:18,460 - 신경 써 줘서 고마워요 - 별 말씀을요 1131 02:02:44,438 --> 02:02:46,552 - 벌써 가려고요? - 네 1132 02:02:46,577 --> 02:02:48,754 기차 놓치겠어요 1133 02:02:50,874 --> 02:02:54,574 마들렌은 참 따뜻한 여성이었다 1134 02:02:55,929 --> 02:02:59,696 하지만 잃어버린 젊음을 한탄하는 눈빛과 1135 02:02:59,941 --> 02:03:05,840 들뜬 화장 때문에 나이가 그대로 느껴졌다 1136 02:03:11,572 --> 02:03:12,788 또 봐요 1137 02:03:14,262 --> 02:03:19,643 내가 작별을 고하고 있음을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1138 02:04:11,376 --> 02:04:13,232 아버지! 1139 02:04:16,053 --> 02:04:19,927 괜찮다, 내년에 붙으면 돼 1140 02:04:25,054 --> 02:04:26,718 합격했어요 1141 02:04:26,719 --> 02:04:31,267 사정이 있어서 전화 못했어요 이따가 다 설명해 드릴게요 1142 02:04:35,898 --> 02:04:41,343 시험에 떨어졌을까봐 걱정한 게 아니라... 1143 02:04:41,344 --> 02:04:44,418 네 엄마랑 이모를 잘 알잖니 1144 02:04:44,418 --> 02:04:50,984 5분만 늦었다면 사고가 났다고 또 난리를 쳤을 거야 1145 02:04:52,714 --> 02:04:57,583 하여간 걱정도 팔자라니까 어서 가서 안심시키자 1146 02:05:00,691 --> 02:05:07,577 합격을 확신하긴 했지만 그래도 확인하고 싶었다 1147 02:05:10,172 --> 02:05:16,194 네가 얼마나 근사한 선물을 했는지 모를 거야 1148 02:05:41,428 --> 02:05:42,932 합격했어요 1149 02:05:42,933 --> 02:05:46,008 아자드가 왔어요 시험에 붙었대요 1150 02:05:46,009 --> 02:05:49,819 여보, 아자드가 합격했대 1151 02:06:07,822 --> 02:06:12,338 이제 걱정 안 하실 테니 그만 가보겠어요 1152 02:06:12,339 --> 02:06:17,111 걱정은 무슨 걱정? 다 잘될 줄 알았어 1153 02:06:17,711 --> 02:06:23,388 저렇게 말씀하셔도 얼마나 초조해하셨는지 몰라 1154 02:06:23,389 --> 02:06:28,706 하여간 자네는 아무 때나 너무 솔직하게 말해서 탈이야 1155 02:06:28,707 --> 02:06:32,134 - 그러게요 - 같이 저녁 먹게 1156 02:06:32,135 --> 02:06:35,080 - 어디 가나? - 일하러 갑니다 1157 02:06:35,081 --> 02:06:39,245 큰돈 벌어서 호강시켜 줄 기술자 아들이 없거든요 1158 02:06:45,236 --> 02:06:47,189 다들 안 넘어가나 보군 1159 02:06:47,221 --> 02:06:51,033 많이 먹었어요 음식이 너무 많아서 그래요 1160 02:06:51,034 --> 02:06:53,019 하긴 그래 1161 02:06:53,020 --> 02:06:54,748 조용 1162 02:07:00,643 --> 02:07:07,305 얼마나 오래된 건지 아니? 하긴 안나 이모나 알겠구나 1163 02:07:07,306 --> 02:07:10,091 특별한 날을 위해 아껴두신 건데 1164 02:07:10,092 --> 02:07:15,569 이모가 살아계셨다면 분명 오늘 꺼냈을 거야 1165 02:07:15,570 --> 02:07:21,079 잘못하면 코르크 마개가 튀어서 전등을 깨버리니까 조심해요 1166 02:07:38,368 --> 02:07:43,941 샴페인이 뭐가 맛있다는 거야? 입에 대지도 못하겠어 1167 02:08:03,733 --> 02:08:06,743 뭐예요? 뭔데 숨기세요? 1168 02:08:06,744 --> 02:08:11,100 같이 준비한 선물이야 기쁘게 받아 주렴 1169 02:08:32,273 --> 02:08:34,451 이거 진짜예요? 1170 02:08:34,452 --> 02:08:37,558 그럼, 순금이야 1171 02:08:38,072 --> 02:08:42,042 꿈만 같다는 소리예요 1172 02:08:42,862 --> 02:08:44,357 너무 멋져요 1173 02:08:44,382 --> 02:08:49,346 얼마나 감동적인 순간이었는지 모른다 1174 02:08:49,347 --> 02:08:52,998 엄마의 커다란 구식 결혼반지가 사라지고 없었다 1175 02:08:52,999 --> 02:08:56,457 아버지의 손가락에서도 반지를 찾을 수가 없었다 1176 02:08:56,458 --> 02:09:01,902 그날 밤 난 그 인장 반지가 얼마나 값진 물건인지 깨달았다 1177 02:09:02,917 --> 02:09:05,159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다 1178 02:09:05,617 --> 02:09:11,094 목이 메어 말이 안 나왔다 민망한 행동을 할까봐 두려웠다 1179 02:09:11,329 --> 02:09:18,461 그래서 엄마한테 왈츠를 청했고 현기증이 날 때까지 돌고 돌았다 1180 02:09:47,643 --> 02:09:55,105 그날 밤의 왈츠는 아직도 생생하다 왈츠를 추는 동안 전쟁은 잊었다 1181 02:09:55,732 --> 02:10:02,088 안전에 무관심한 달님은 불빛이 금지된 도시를 비추고 있었다 1182 02:10:04,171 --> 02:10:12,627 내 이니셜이 새겨진 반지에서 위대한 사랑의 힘이 느껴졌다 1183 02:10:12,628 --> 02:10:15,670 엄마, 안나 이모 가야네 이모 1184 02:10:15,671 --> 02:10:21,436 힘겨운 시절 든든한 버팀목이 됐던 아버지 1185 02:10:22,526 --> 02:10:27,811 파라다이스 가에서 보낸 행복했던 순간은 영원을 약속하는 듯했지만 1186 02:10:27,811 --> 02:10:36,811 흰머리 한 가닥 한 가닥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