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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을 푸세요

 

당신은 점점 더 편안해 집니다

 

스크린을 상상해보세요…

 

이제, 당신 눈 앞에
스크린이 펼쳐집니다

 

그리고 그 위에 가장 좋아하는
장소가 나옵니다

 

호흡에 집중하세요

 

전신의 긴장이 풀리고
편안해집니다

 

그냥 계속 하세요

 

그저 들이쉬고 내쉬세요

 

들이쉬고…

 

내쉬고

 

이제… 다 왔군요

 

자세히 보세요

 

색깔…

 

질감…

 

빛…

 

그리고 온도…
온도도 느껴 봐요

 

이 고요함이 당신 앞에
펼쳐지도록 놓아둡니다

 

편안한 느낌이
끝없이 밀려듭니다

 

진짜 태풍이 오려나 봐요

 

잘 닫혔는지 볼까요?

 

기분이 좀 좋아졌어요?

 

이런 풍경이 앞에 있는데
진정하긴 힘들죠

 

어떤 풍경이요?

 

당신 치마가 다 비쳐요

 

변태 같아요

 

오늘은 여기까지예요

 

시간 다 됐네요

 

훌리아, 마중 나갈 거예요

 

그럼 난 일어나서
커피를 좀 타야겠군

 

음악 들을래요?

 

거기 있는 거 아무거나

 

그럼, 바그너로
틀어놓고 갈게요

 

조금 있다 봐요

 

씨 인사이드

 

훌리아, 차에 타요
그러다 얼어 죽겠어요!

 

고집불통 같으니…

 

즈네 씨죠?
전 마크입니다

 

- 안녕하세요??
- 훌리아는 어디 있죠?

 

여기 갈라시아는
우릴 반기지 않네요

 

아직 2월이잖아요

 

- 비행은 어땠어요?
- 좋았어요, 드디어 만나네요

 

괜찮다면 내 차로 가시죠?

 

혼자만 오기로 하지 않았나요?

 

- 네
- 그런데?

 

- 마크는 기록 때문에 왔어요
- 믿을만한 사람인가요?

 

- 그럼요, 회사 변호사예요
- 그런데…

 

라몬이 얼마나 힘든
결정을 한 건지 아세요?

 

그럼요
얘기도 나눴는 걸요

 

좋아요, 그런데
오늘은 당신들, 내일은 신문사

 

그 다음엔 방송국
라몬은 일이 점점 잘못돼 갈까 봐

 

두려워하고 있어요
이해하죠?

 

내가 당신한테 말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하기 위해
왔다는 거예요

 

나도 그러길 바라요

 

나도 이 일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만 알아줘요

 

일 때문만이 아니라 말이죠

 

믿어줘요, 난 라몬을
누구보다 잘 이해해요

 

- 안녕하세요?
- 어서 오세요

 

전 훌리아예요

 

- 변호사시죠?
- 네

 

이쪽은 마누엘라
라몬의 형수님이시죠

 

- 도와드릴까요?
- 아뇨, 괜찮아요

 

다들 왔어요

 

- 안녕하세요?
- 안녕하세요?

 

몸이 이래서
악수도 못 청하겠네요

 

무슨 소리예요

 

신경이 좀
예민해졌다고 들었어요

 

어디 보자…

 

먼저, 아침을 먹고

 

- 몇 시에요?
- 9시 반에요

 

항상 일찍 일어나는 건
아니에요

 

그리고…

 

라디오를 들어요

 

어떤 걸 즐겨 들으세요?

 

이것 저것 아무거나…

 

- 대부분 토론 프로그램이죠
- 토론을 좋아하세요?

 

 

재미있거든요

 

보이죠?
이게 내 컴퓨터입니다

 

직접 디자인하셨나요?

 

네, 발명하는 걸 좋아해요

 

그럼 아버지랑 조카가
그대로 만들어 주거든요

 

심각해졌네요

 

라몬

 

왜 죽으려 하죠?

 

음… 글쎄…

 

왜 죽고 싶어 하냐면…

 

이런 상태의 내 삶은…

 

존엄성이 없으니까요

 

다른 전신마비 환자들은

 

이런 삶이
존엄성이 없다고 하면

 

화를 내겠죠

 

난 누구도 비난하지 않아요

 

내가 뭐라고

 

살고 싶어하는 사람을
비난하겠어요?

 

그러니까 나와 내 죽음을

 

도와줄 사람들도
비난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누군가 당신 죽음을
도와 줄거라 생각해요?

 

그거야…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달렸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한다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죠

 

죽음은 항상 주변에 존재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고

 

결국엔 우리 모두 죽게 되죠

 

모두가 말이에요

 

죽음은 우리 삶의 일부인데

 

내가 죽고 싶다는 것에 대해

 

사람들이 왜 그렇게
떠들어대는 거죠?

 

마치 무슨 전염병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죠

 

법정까지 가게 되면

 

다른 방법을 찾지 않은
이유를 물어볼 거예요

 

예를 들면
왜 휠체어를 거절했죠?

 

휠체어를 받아들이는 건

 

한때 누렸던 내 자유에 대한

 

일말의 미련을 붙잡고
있는 것과 같아요

 

자, 생각해봐요

 

당신은 거기 앉아 있어요

 

1미터도 안 되네요
1미터면 어느 정도죠?

 

보통 사람들에겐
아무 것도 아닌 거리예요

 

그 1미터가 나에게는…

 

당신에게 다가갈 수도…

 

당신을 만질 수도 없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거리인 거죠

 

헛된 꿈이고 희망이에요

 

그게 내가 죽고 싶은 이유입니다

 

세 시간 지났어, 라몬

 

알았어요
자세를 바꿔야 할 시간이네요

 

아래층에서 기다려 줄래요?

 

1년전에 전화가 왔어요

 

진심으로 죽음을
도와줄 사람을 찾더군요

 

난 법률적 조언과
심리 치료를 통해

 

도와줄 수 있다고 했지만

 

청산가리를 입에
넣어줄 수는 없다고 했죠

 

그랬더니 격분해서 우릴
사기꾼이라고 욕했어요

 

내가 먼저 전화를 끊어야 했죠

 

며칠 후에 전화가 왔는데
많이 진정됐더군요

 

어찌나 조목조목 자신의 모든 걸
표현하는지 놀랐어요

 

- 주저한 적은 없나요?
- 전혀요

 

그 부분이 중요해요

 

- 저렇게 된지 얼마나 됐죠?
- 26년이요

 

처음엔 그의 어머니가 보살폈고

 

돌아가신 후엔 형수가 맡게 됐죠

 

어때?

 

이쪽 팔을 약간 위로 해주세요

 

됐어요

 

- 소변 주머니 갈아 줄게
- 아뇨, 나중에요

 

금방 끝나

 

그 사람들한텐 기다리라고 했어

 

형수님은 라몬의 형인
호세의 부인이에요

 

그들에겐 농장도 있고

 

작은 과수원도 있어요

 

형님 부부는 이번 일을
어떻게 생각해요?

 

생각은 자유지만

 

내 생각에 이건
옳은 일이 아닙니다

 

어째서요?

 

난 동생에게 최선인 것을 원해요

 

이 집안 사람 모두가
원하는 것이기도 하죠

 

그런데 왜 죽고 싶다고 하던가요?

 

도무지 납득이 안 돼요

 

제정신이 아닌 거야

 

그렇게 죽겐 못해요

 

절대로…
이 집에선 절대로

 

죽도록 안 할 거요

 

용납할 수 없어

 

- 다녀왔습니다
- 어서 와라

 

- 여기다 두지 말랬지, 하비!
- 뭐 어때요

 

네 방에 갖다 놓거라

 

참, 삼촌이 기계를
좀 봐달라는 구나

 

- 가방은…
- 알았어요

 

무슨 문제예요?

 

롤러가 좀 뻑뻑하네

 

오늘 시험 보지 않았니?

 

변호사 양반은 어디 있어요?

 

변호사 “아줌마”더라

 

즈네와 할아버지와 함께
근처 어디에 있을 거다

 

해변에 데리고 나갔는데…

 

아마 헤매다
코루냐까지 갈지도 모르죠

 

할아버진 항상
정신이 오락가락 하시니까

 

할아버지한테 그렇게 말하면 안 돼

 

노망 나신 거 맞잖아요

 

연세가 있으시잖냐
이해해야지

 

참견이나 좀 안 했음 좋겠어요

 

하루 종일 집에 붙어서요

 

제발, 밖에 좀
나갔으면 좋겠어요

 

왜요?

 

나중에, 나중에 말이다
시간이 많이 흐르면

 

언젠가
네가 진심으로…

 

진심으로 그렇게 말한걸

 

후회하게 될 거다

 

- 왜요?
- 언젠가

 

알게 될 거다

 

언젠가는…

 

여기 바다는 믿을 수 없어서

 

수영을 하려면

 

특히나 더 조심해야만 한다오

 

내 아들놈이 바로
여기에서 뛰어 내렸지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모르겠어

 

정말 모르겠어

 

아무튼 여기서 뛰어 내리다

 

급류에 휘말렸고

 

그 바람에 목이 바닥에 부딪혀

 

부러지고 말았지

 

정말 비극이지

 

그러니까 내 말은…

 

이게 의미하는 게…

 

죽지 않은 게 신의 뜻이라면

 

그 애는 살아가야 한다는 거요

 

하지만 아드님이
더 이상 살고 싶어하지 않아요

 

그 애는 내게 그런 말 한적이 없어

 

내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우

 

단 한번도…

 

슬픔이 지나면 기쁨이 옵니다

 

죽음을 건 이 내기에서
이긴다면

 

그리고 운명이 우리 편이라면…

 

우린 천국에 가게 되겠죠

 

왜냐하면 우린 평생을

 

지옥에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절 보고
계시다면

 

그건 아마도…

 

판사나 변호사…

 

아니면 정책을 결정하는
어떤 높은 양반이

 

제 정신적 고통을
다 헤아릴 순 없겠지만

 

약간은 저를
이해했기 때문일 겁니다

 

이런 건 사는 게 아니라는
정도는 알겠죠

 

왜 그렇게 많이 웃는 거죠
라몬?

 

당신이 도망칠 수도 없고

 

항상 누군가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을 땐

 

웃어서 우는 법을

 

배우게 되죠

 

- 안녕하세요?
- 안녕하세요?

 

라몬 삼페드로 씨가
여기 사시나요?

 

그런데, 무슨 일이시죠?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문득 그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그를 만나러
온다고 들었거든요

 

그래

 

잠깐만이에요

 

제 이름은 로사에요

 

이쪽으로 오세요

 

- 어디서 왔죠?
- 보이로요

 

자전거로 왔어요

 

이런, 세상에…
바보 같으니라고

 

왜 그러죠?

 

당신을 알지도 못하고
막상 할 말도 없어서요

 

그런 걱정 말아요

 

난 말하는 것 빼면
아무 것도 못한다고요

 

어서 앉아요

 

여긴 왜 왔죠?

 

어려워하지 말아요

 

무슨 일을 하고 있죠?

 

통조림 공장에서
일하고 있어요

 

수요일과 금요일에
라디오 보이로에서

 

방송도 하고 있죠

 

잠깐만…
당신 방송 들어본 것 같아요

 

정말이요?

 

아직 아마추어에요

 

아뇨, 잘하던걸요
괜찮았어요

 

말하자면 그렇단 거죠?

 

시작하기가 힘들지

 

일단 방송이 시작되면
아무도 절 못 말려요

 

아이는 둘 있어요

 

- 남편은요?
- 없어요

 

우리가 그를 떠났죠

 

그럼 지금 혼자 인가요?

 

남자 친구는 있어요

 

둘째의 아빠죠

 

하지만 그이와도 헤어졌어요

 

그래서 지금은 혼자지만

 

괜찮아요
걱정도 없고

 

혹시 나한테도 기회가
있나 해서 물어봤어요

 

왜 웃어요?

 

미안해요

 

괜찮아요
농담이었어요

 

하지만 아이 둘을
책임질 생각은 없네요

 

조카 하나도 힘들거든요

 

얼마 전에 TV에서 당신을 봤어요

 

이제 우리 좀 더
가까워진 거 같네요

 

- 가깝다뇨?
- 당신이 온 이유를 알겠다고요

 

당신이 한 말을 들었어요

 

그때 당신 눈이
참 아름답다는 걸

 

- 알게 됐죠
- 고마워요

 

그래서 생각했죠
“정말 생기 가득한 눈이구나”

 

“저런 눈을 가진 사람이
왜 죽고 싶어 할까?”

 

우린 모두 문제를 안고 살아요

 

그런 문제들로부터
도망칠 필요는 없어요

 

난 도망치려는 게 아니에요

 

- 그 반대죠
- 아뇨 당신은 그러고 있어요

 

그게 제가 여기 온 이유에요

 

- 왜죠?
- 뭐랄까…

 

당신이 살고 싶어하게
만들기 위해서 랄까

 

인생이란 건 뭐랄까…

 

인생이 어떤데요?

 

가치가 있다는 거죠

 

이봐요…

 

여기 날 보러 온 건가요?
아니면 설득하러 온 건가요?

 

그냥 당신과 친구가 되고
싶어서 왔어요, 라몬

 

친구가 되고 싶다면
먼저 내 의지를 존중해줘요

 

남의 말은
통 안 듣는군요?

 

그런 식으로 나를
비난하려 들지 말아요, 로사

 

그것도 내 집안에서는…

 

내가 당신을 비난하면
좋겠어요?

 

그러면 좋겠어요?

 

당신이…

 

당신이 온 진짜 이유를
말해 볼까요?

 

난 그 이유를
확실히 알겠는데…

 

이번 주말에 자신만의
색다른 삶의 의미를

 

만들려고 애쓰는
욕구불만을 가진 사람인 거죠

 

안 그래요?

 

그래, 도망쳐요
그럴 수라도 있으니까

 

고마워요
신청곡이 있으세요?

 

-아뇨, 계속 잘 들을게요
- 좋은 밤 되세요

 

지금 시간이 8시 45분이네요

 

여러분은 라디오 보이로를
듣고 계십니다

 

전화로 듣고 싶은
노래를 신청하세요

 

다음 사연 전에

 

아마도 어디선가 듣고 계실

 

어느 분께

 

바치는 곡입니다

 

이 방송을 종종
듣고 계신걸 알거든요

 

언젠가는 전화도 주시고

 

노래도 신청하실 거라고
기대해 봅니다

 

우리가 지난 번 만났을 때

 

좋은 말로 헤어지지 못해
아쉬웠거든요

 

그분께 미안하다고

 

이 자리를 빌어
사과 드리고 싶습니다

 

당신을 비난했던 거
미안해요, 라몬

 

전 어쩔 수 없는
멍청인가 봅니다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제 친구 라몬에게 띄웁니다
“검은 그림자”

 

- 네?
-여보세요

 

즈네, 어떻게 지내요?

 

잘 지내요
아직 사무실이에요

 

당신 덕분에
야근 중이라고요

 

농담이에요, 농담

 

그 인터뷰 정말 끝내줬어요

 

격려전화가 계속 오네요

 

계속 가자고요, 라몬

 

재판에 아주 유리하게
작용할 거예요

 

또 시작이에요?

 

당신이 분위기를 띄워야만 해요

 

안 그럼 아무것도 안 된다는 거
당신도 잘 알잖아요

 

당신 말이 맞아요

 

그 변호사 있죠? 훌리아

 

당신을 다시 만났으면 해요
이번엔 좀 오랫동안요

 

나한테 빠졌나 봐요

 

희망사항이에요?

 

그녀는 유부녀예요
다름이 아니라…

 

소송 준비를 위해 당신을
좀 더 알 필요가 있대요

 

다른 얘긴 없었어요

 

잠시만요

 

금방 끝나요

 

저… 혹시…

 

그녀와 같이 온 남자 기억나요?
날 좋아하나 봐요

 

변호사 때문에
날 떠나겠다는 건가요?

 

-아뇨
- 당신이 손해예요

 

보기 좋네요

 

당신 다리요

 

아직 움직이긴 하죠

 

- 다행이네요
- 저…

 

간단해요, 느끼는 대로
그냥 말하면 되요

 

생각나는 대로
말하란 말이죠?

 

네, 생각나는 대로요
녹음해도 되겠어요?

 

그럼, 젊을 때부터 시작해보죠

 

사고 전 말이에요

 

- 무슨 일을 하고 있었죠?
- 그게 필요해요?

 

너무 오래 전 일이라…

 

- 기억력이 그렇게 안 좋아요?
-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난 자살 청원에 대해
얘기하는 줄 알았죠

 

당연히 그것도 할 거예요
판사에게 당신을

 

이해시키고 어떤 사람인지

 

알리는 것도 매우 중요해요

 

그러기 위해서 내가
라몬 삼페드로가 누구고

 

어떤 사람이라는 걸
알아야 해요

 

사실은 나중에 나한테
불리하게 쓰려고 그러죠?

 

당신 정말 구제불능이군요

 

난 당신 변호사예요
당신 편이라고요

 

좋아요

 

알았어요

 

19살 때, 난 짐을 꾸려서

 

세상 구경을 나섰어요

 

그 사고가 있기 전까지
몇 년 동안 여행을 했죠

 

잠깐만요, 미안해요

 

- 스무 살에 세계여행을 했다고요?
- 상상이 안 가죠?

 

조선 기술자였어요

 

난 항상 조카에게 얘기하죠

 

“공짜로 여행하려면 선원이 되거라”

 

뭐해요?
증거 찾아요?

 

아뇨, 단지 주변에
사진이 한 장도 없어서…

 

젊을 때 말이에요

 

왜요?

 

지금은 너무 추해서?

 

됐어요
질문은 여기까지만 하죠

 

과거를 돌아보기 싫은 거죠?

 

맞아요
난 미래를 보죠

 

- 미래에는 뭐가 있죠?
- 죽음

 

당신 미래와 똑같아요

 

죽음에 대해
생각해본 적 없어요?

 

꼭 나만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 같아요

 

물론 나도 생각은 하지만

 

죽음만이 유일한 해결책이
되는 것은 피하려고 노력하죠

 

내일은 비가 올 것 같구나

 

비가 올 거라고

 

삼촌 휘파람 소리예요

 

- 아무 소리 못 들었는데?
- 맞다니까요

 

뭐 하는 거냐?

 

게임 시작했어요

 

내가 축구 싫어하는 거 알잖아

 

아래층에서 TV보지 그러냐?

 

날 설득하려면

 

합리적인 이유를
대야 하는 거 알지?

 

알겠어?
그럴 듯한 이유…

 

데포르티보의 경기예요

 

글쎄…

 

그건 합리적인 이유가 아니다

 

- 하지만 중요한 경기예요
- 왜?

 

팀에 결정적이기 때문이죠

 

이번에 지면
우승을 못하거든요

 

좋아, 틀거라

 

카르핑…

 

- 루소에게패스합니다
- 보이세요?

 

곧장 찔러주는 패스

 

코미치, 다시 살가도에게
카르핑이 넘어진 가운데…

 

파울로 실바가 공을 잡았습니다

 

아버지도 휘파람 소리 들으셨어요?

 

사진에 대해 물으셨다고
라몬이 그러더군요

 

 

물론 있어요

 

내일 찾아줄게요

 

고마워요

 

이불이 더 필요하면
벽장 안에 있어요

 

여긴 6월이라도
밤엔 추워요

 

마누엘라…

 

- 아뇨, 이러지 마세요
- 괜찮아요, 받아둬요

 

아뇨, 받을 수 없어요

 

전 여기 며칠 더
있어야 해요, 아시죠?

 

그러니 이렇게라도
돕게 해주세요

 

하지만 지금도
무료로 일하고 있잖아요

 

원해서 하는 일이에요

 

부탁이에요, 마누엘라

 

알았어요

 

대신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라도 말씀하세요

 

고마워요

 

거기서 무슨 얘기들
하고 있어요?

 

아무것도 아니예요

 

여기선 바다가 안보여서
애석하네요

 

이대로가 좋아요

 

오히려 내가 보고 싶을 때
바다를 볼 수 있죠

 

어떻게요?

 

바다가 보고 싶으면

 

정신을 집중해요

 

그리고 바다로 걸어나가

 

그곳을 날아다녀요

 

바다가 주는 의미가
남 다른 것 같아요

 

바다는 내게 삶을 주었고
그러곤 다시 빼앗아갔어요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그날에 대해 더 말해줘요

 

당신 인생을 바꾼 그날

 

- 시작해요
- 그럼, 먼저…

 

언제 사고가 일어났죠?

 

1968년 8월 23일이었어요

 

그땐 돌아와서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죠?

 

그럼요, 바다에
나가지 않을 땐 항상요

 

전 아직 어렸으니까요

 

그날 해변에는 혼자 있었나요?

 

아뇨, 친구들이랑
마을 사람도

 

몇 명 있었어요

 

당신뿐 아니라 모두
바다를 잘 알았을 텐데

 

왜 아무도
급류 생각을 못했죠?

 

정신이 딴 데 팔려있었죠

 

딴 데?

 

네, 난 그때…

 

마음이 딴 데
가 있었거든요

 

그래서요?

 

됐어요

 

거기까지만 하죠

 

별로 그 얘기를 하고
싶어하지 않는 거 알아요

 

아뇨, 그냥 기억을
더듬느라…

 

더듬느라 그런 거예요

 

그 다음에
갑자기 내 몸이 붕 떠서

 

물도 없는 얕은 데서
다이빙 했죠

 

의식을 잃었나요?

 

아뇨… 전혀

 

엎어진 채로

 

물 위를 떠다녔어요

 

그거 알아요?

 

사람이 죽기 직전에 주마등처럼

 

인생의 모든 순간이
머릿속을 스쳐간다는 거

 

내게도 그랬어요

 

뭐가 보이던가요?

 

사람들은 보통…

 

익사한다는 것이

 

산소가 부족해서
바로 죽는다고들 하죠

 

달콤한 죽음이라고…

 

난 그때 죽었어야 했어요

 

이 사람들 모두
아직도 만나나요?

 

몇몇은 그렇고

 

몇 명은 안 만나요

 

이 여자는 누구죠?

 

아무도 아니예요

 

사진이 꽤 많은데도요?

 

우리 마을에 살았어요
한 대 줄래요?

 

담배 태워요?

 

때론, 담배라도
날 죽여줬으면 싶어요

 

근데 안 죽더군요

 

여자친구였어요

 

여자친구요?

 

여잔 어떻게 됐어요?

 

아무 일 없었어요

 

그녀는 얼마 동안
병원에 드나들었었는데

 

어느 날 어이없게도 불쑥

 

결혼 얘기를 꺼내더군요

 

그래서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여기서 나가서 날 잊고”

 

“새 출발을 하는 거다”라고 해줬죠

 

그녀를 사랑했나요?

 

그건 중요한 게 아니예요

 

- 그게 무슨 말이죠?
- 그게…

 

중요한 건 이 상황에

 

내가 사랑을 원하느냐죠

 

그래서 사랑을
거부했다는 건가요?

 

내가 사랑 할 수 없으니까요
정확힌 그게 맞죠

 

판사에게는 이렇게
얘기해야겠군요?

 

전신마비 환자들은 사랑할
권리도 없다고 말이죠

 

누가 전신마비 환자들이
그렇다고 그래요?

 

이건 내 얘기라고요
라몬 삼페드로의 얘기예요

 

- 다른 방법으로도 얼마든 가능해요
- 그렇겠죠

 

27년 동안 아무와도
키스를 안 했단 말이에요?

 

왜요?
당신이 한 번 해주게요?

 

보이로에서 누가 왔어

 

보이로?

 

크리스티앙, 이리 와!

 

- 로사
- 안녕하세요?, 라몬

 

이리 오라고 했잖아

 

그냥 놔둬요
어디 좀 보자

 

넌 착한 아이니
나쁜 아이니?

 

나쁜 아이

 

그럼 나랑 잘 지내긴
좀 힘들겠는데?

 

- 훌리아예요
- 로사예요, 반가워요

 

제가 방해가 됐나요?

 

- 아뇨
- 아니예요

 

잠시 나가서 쉬다 올게요

 

- 좀 어때요?
- 좋아요

 

또 죽으면 안 된다는 얘기

 

하러 온 건 아니겠죠?

 

아뇨, 천만에요

 

그냥 당신도 보고 싶고

 

아이들도 보여주고 싶었어요

 

마음에 드는 대답이군

 

크리스티앙, 크리스티앙

 

그만, 그럼 안 돼
여긴 우리 집이 아니잖아

 

얘는 사무엘이에요

 

사미, 안녕하세요? 해봐

 

안녕, 사미, 사미

 

- 라몬이 뭐라고 해?
- 사미

 

- 수줍음을 많이 타요
- 왜 누워 있어요?

 

아저씬 못 움직이신다고
엄마가 얘기했지?

 

정말 아무것도 못 느껴요?

 

왜 그러니?

 

어디 보자, 더워?

 

요즘 날씨는 종잡을 수가 없다니까

 

월급이 한 달이나 밀려서

 

파업 했죠
아마 좀 심각할 거예요

 

그래서 휴일이나 마찬가지예요

 

아침 해 먹고
버스 타고는

 

당신을 만나러 오려고요

 

아야

 

- 무슨 일이에요?
- 아뇨, 아무것도

 

이런! 사무엘
왜 우는 거니?

 

- 마누엘라…
- 네?

 

솔직히, 이번 일 어떻게 생각해요?

 

뭘 어떻게 생각하냐는 거죠?

 

그게…

 

시동생이 죽으려고 하잖아요

 

그가 원하잖아요

 

그렇지만…

 

당신은…

 

당신은 어느 쪽을 원하죠?

 

내가 뭘 원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라몬은 죽음을 원해요

 

내가 아는 건 그게 다예요

 

보여줄 게 있어요

 

- 보여줄 거요?
- 네

 

따라오세요

 

크리스티앙, 그거 놔둬!

 

놔두라니까

 

계속 그러면 엉덩이에
불 날 때까지 때려줄 거야

 

거의가 시예요

 

하나도 안 버렸죠

 

얼마나 힘들게
썼을까를 생각하면

 

정말 가슴이 아파요

 

그리고 필체…

 

보세요

 

난 이렇게 아름다운 필체는
본 적이 없어요

 

전 아래층에 가 있을게요

 

- 마누엘라…
- 네?

 

다 읽어보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네요

 

라몬에게 얘기해 주실래요?

 

해변에 산책 갔다고

 

- 얘기해 둘게요
- 고마워요

 

- 알았다!
- 엄마

 

너희 이제 다신
여기 안 데리고 올 거야!

 

그 사람 아픈 척 하는
거라니까요! 진짜예요!

 

- 마지막이다
- 엄마, 진짠데…

 

언제 돌아온다는 말도 없었어요?

 

그냥 산책 간다고만 했어

 

그 동안 좀 쉬어

 

불평은 나중에 하고

 

- 왜요?
- 왜냐하면

 

여자들이 집에
오지 않는 날이 없잖아

 

할렘이라도 만들 생각이야?

 

마누엘라!

 

내가 누구랑
결혼했는지 아시잖아요

 

그래, 죽음과 결혼했지

 

- 더 필요한 거 없어?
- 아뇨

 

여기 있다길래…

 

날아왔어요

 

마누엘라…

 

저예요

 

산책은 어땠어요?

 

독서 중이었어요, 라몬

 

당신이 지금껏 쓴 글을
전부 읽었어요

 

그거 알아요?

 

당신이 쓴 글은…

 

너무 아름다워요

 

변호사 일뿐 아니라
작가 일도 하시는 줄 몰랐네요

 

좋아, 비웃어요

 

하지만 정말이지
책으로 내도 되겠어요

 

그렇겠죠, 가능할 거예요

 

요즘은 뭐든 다 책으로 내니까

 

당신 재판에도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이건 당신 목소리예요!

 

이것 봐요, 훌리아

 

난 모르겠어요…

 

난 처음부터 내 뜻을
명확히 했다고 생각해요

 

당신이 여기 온 이유는

 

하나예요
날 돕기 위해서죠

 

- 네, 하지만…
- 그런데 그건 안하고

 

질문만 해대고 있어요

 

그리고 나도 모르는 어떤…

 

내 감정들 꺼내

 

가지고 놀면서…

 

내가 떠나길 바라요?

 

지금은 그냥 담배나
한 대 피우고 싶군요

 

부탁해요

 

알았어요

 

가져 올게요

 

훌리아…

 

훌리아

 

훌리아, 무슨 일이에요?

 

훌리아…

 

괜찮아요?

 

훌리아

 

마…

 

마누엘라!

 

마누엘라

 

마누엘라!

 

마누엘라

 

마누엘라!

 

과거는 내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예요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 지가 두려워요

 

왜냐하면 언젠가는

 

두 다리를… 그 다음엔

 

시력을 잃겠죠

 

그리고 다신 회복할 수 없겠죠

 

여태까진 운이 좋았어요

 

하지만 다음엔
심장 발작이 오겠죠

 

그리고 그 다음엔

 

그 다음엔
또 그 다음엔

 

누구도 발작이 언제

 

어떻게 일어날지 몰라요

 

뭐가 남을 건지 남는 게
있을지도 말해 주지 않아요

 

당신 남편은
꽤 낙관적이더군요

 

낙관적인 게 뭐가 좋은 거죠?

 

치료제 조차도 없는데

 

일어나서 일하고
희망을 갖고 그러는 게

 

뭐가 좋아요?
조만간

 

발작이 다시 오면?
다시 한번 쓰러지면?

 

모든 게 끝장이잖아요?

 

다 부질없단 걸
모르겠어요?

 

나도 라몬처럼 안락사를
원해서 전화한 거예요

 

2년 전에 진단을 받았을 때

 

처음으로 생각했어요

 

그러다 마음을 바꿨죠

 

그렇지만 이번에는
안 그럴 거예요

 

이젠 아니예요

 

더 이상 이러고 살고 싶지 않아요
이건 사는 게 아니예요

 

남편 분도 아시나요?

 

말하고 싶지 않아요

 

해야만 해요

 

훌리아

 

두려움은 아주 강력한 무기예요

 

당신이 스스로 결정할
자유를 빼앗을 만큼이요

 

당신이 나한테 지금 이렇게
얘기하는 것도 두려움 때문이죠

 

지금 죽음을 택해도

 

결국 마지막 순간에 두려움 때문에
마음을 또 바꿀지 몰라요

 

두려움 때문에 행동하진 말아요

 

자살을 원하는 사람들을
돕는 게 당신 일이잖아요?

 

아뇨

 

아니예요

 

제가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만나서

 

힘들면 자살하면 된다고
말하는 줄 아세요?

 

그렇지 않아요

 

우리가 지지하는 건
바로 자유예요

 

살 수 있는 자유와
죽을 수 있는 자유

 

완전히 다른 거예요

 

유전성 뇌혈관 병이…

 

정말 힘든 병이라는 거 알아요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조금만 더 생각해보라는 거예요

 

라몬이 당신에게
전해달라고 했어요

 

우리 이 얘긴 나중에

 

다시 해요

 

좀 어떤가요?

 

괜찮으세요

 

그래요?

 

내가 보기에도 그랬어요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 와주셔서 고마워요
- 뭘요

 

- 난 좀 더 있을래요
- 여기 있을 거예요?

 

금방 끝나니 기다려 줘

 

알았어요

 

친애하는 훌리아

 

어떤 변호사가 내 사건을
자청했다고 즈네에게 들었을 때

 

내 결심이 서도록 한 것은

 

그 변호사가 퇴행성 질병으로

 

고통 받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난 그런 고통을 겪은 사람만이

 

날 진정 이해하고
내 지옥 같은 삶을

 

나눌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삶이라도 가끔은

 

가치가 있다는 걸 알겠어요

 

이렇게 살아서
당신을 만나게 됐으니까요

 

담배를 함께 피우거나, 아니면…

 

지금처럼 이렇게 바보 같은 편지로

 

당신에게 내 마음을
전할 수 있으니까요

 

내 생각이 짧았어요
이제 당신이 빨리 돌아와서

 

날 도와주길 바라면서

 

내가 쓴 이 헛소리를
고치고 또 고쳐요

 

조카 하비가 컴퓨터
타이핑하는 걸로

 

저를 도와주기 시작했어요

 

여기 생활은 변한 게 없어요

 

형수님은 한 달 내내
내가 쌀쌀한 가을 날씨에

 

추울까봐 옷을
입혀주느라 애쓰고

 

하비는 할아버지와
계속 싸우고 있죠

 

난 둘이 좀 친해지라고
함께 할 일들을 맡기죠

 

많은 내 친구들이
이번 달에 날 보러 왔어요

 

몇 명은 벌써 25년째
찾아와주고 있죠

 

놀라운 친구들이죠

 

자기들 얘기를 해주는 걸
좋아하는데 나도 그게 좋네요

 

로사 기억하죠?
통조림 공장에 다니던…

 

여길 무슨 안식처 쯤으로
생각하는 거 같아요

 

하루는 형수님이랑 같이
내 옷을 갈아 입히겠다고

 

둘이 다투더군요
누군가에게 모든걸 의지한다는 건

 

사생활을 포기해야 한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죠

 

그럼, 당신의 출현으로
다시 활기를 찾을 때까지

 

내 작은 왕국을
잘 유지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때까지 안녕히

 

무슨 일이에요?

 

이거 봐라
여기 뭐라고 쓴 거야?

 

여기 말이야

 

인생은 결코 그런 게 아닙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인생은 그런 게 아닙니다
마침표 찍어야지

 

- 아니예요
- 맞아, 마침표

 

- 저기예요?
- 여기 마침표를 찍어야지

 

여기 찍어야 해
여기에…

 

안 보여?

 

죽음은 나의 친구
쉼표…

 

쉼표는 어디간 거야?

 

학교에서 대체 뭘 가르치는지

 

일을 맡기면
주의를 기울이란 말이다

 

솔직히 할아버지도 너보단 낫겠다

 

봐라, 하비
이렇게 도움을 받느니

 

차라리 안 받는 게 낫겠어

 

내 일이 두 배가 됐잖아

 

막대기 줘

 

막대기 달라고

 

조금만 더 신경 써라
알았니?

 

하비

 

- 하비, 무슨 일이니?
- 아무것도 아니예요

 

라몬에게

 

답장이 늦어서 미안해요

 

의사들이 컴퓨터를
못 쓰게 했거든요

 

다리를 사용하지 않는

 

모든 활동은 다 금지예요

 

다시 걸을 수 있다고 하면서도

 

당신 사건을 맡는 건
계속하지 말라고 하네요

 

여기 물리치료실에는

 

큰 유리창이 있어요

 

가끔 난 창 밖으로
당신이 한 것처럼

 

바르셀로나 하늘을
날아가는 상상을 해요

 

바다로 가죠
계속 가다 보면

 

끝없는 수평선이 보여요

 

그리고 바보처럼…
당신도 코루냐에서 날아와

 

예전처럼 온 세계를
다 돌아보고 나서

 

우리 둘이 중간에
만나는 상상을 해요

 

당신이 사생활과

 

자유의 박탈에 대해 한 말
지금은 전적으로 공감해요

 

난 헌신적으로 돌봐주는

 

남편을 위해서라도
견뎌내려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타성에
젖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주어진 것에 감사할 뿐

 

달리 선택할 수 없기 때문이죠

 

몇 달 후에 당신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출판을 돕겠다는
약속을 지키도록 할게요

 

그때까지
감사와 따뜻한 희망을

 

띄워 보냅니다

 

이렇게 될 줄 알았어

 

이렇게 될 줄 알았다고

 

다시 한번 제소해야겠어요

 

아뇨 ,마크, 아니예요
그가 직접 와야 해요

 

라몬은 이런 법정공방을 할
여력이 없어요

 

우리에게 달렸죠

 

갈리시아로 돌아가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요

 

이 나라에서 정의가
실현되려면 멀었어

 

라몬에게 어떻게 얘기해야 할지

 

즈네, 들어봐요

 

들어봐요
나도 이번 일에

 

정말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어요

 

알아요, 마크
하지만…

 

당신과 라몬에게 있어
시간은 다른 의미예요

 

전신마비 환자 라몬 삼페드로의

 

안락사 청원이
절차상의 결함을 이유로

 

어제 법정에서 기각되었습니다

 

기각 사유는, 재판 절차가

 

그의 거주지인 코루냐가 아니라

 

바르셀로나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며

 

재판정은 밝혔습니다

 

이번 소송에 대해 많은 의견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 중엔 라몬과 같은
전신마비 환자인

 

프란시스코 데 갈다르
신부도 있습니다

 

라몬은 살고 싶지 않다고
하지만 난 모르겠습니다

 

전 라몬이 사실은

 

사회적 관심이나, 우리의 주목을

 

원하는 게 아닐까 합니다

 

- 뭔 소리야!
-아마도 그의 주위에 있는

 

가족, 친구들이 그에게 제대로

 

사랑을 주질 못했거나
도움을 못 줬기 때문이겠죠

 

저런 썩을…

 

사실 라몬이 바라는 건

 

좀 더 사랑 받는 게 아닐까요?

 

그를 꼭 만나고 싶습니다

 

많이 얘기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살 이유가 많다는 걸
설득하고 싶습니다

 

학교 안 가고 뭐해?

 

많은 뉴스가 있었습니다

 

다음 소식은…

 

우편요금이 1월부터 인상됩니다
스페인의 우편요금은…

 

이제 속이 시원하냐?
만족스러워?

 

네 덕분에 가족 전부가
TV에서 창피를 당했다

 

그래도 계속하겠지
계속해야지

 

우리 체면은 안중에도 없을 테니까

 

아버지는 어때요?
하실 말씀 없으세요?

 

여기 아버지는 끌어들이지마

 

형이 뭐라고 하던 간에
나한테만 하고 끝내

 

니가 엄청 잘난 줄 알지?

 

이 집에서 감히 너랑
싸울 사람은 없으니까!

 

하지만 이 얘기는 해야겠다
이 얘긴 해야겠어

 

- 형, 잠깐만 들어봐
- 난 네 형이야

 

잠깐 내 말 들어 봐!

 

만약 형이 내일 당장
사고가 나서 죽으면 어떡하지?

 

아니… 내 말은…

 

그런 거 생각해본 적 있어?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길지
생각해본 적 있어?

 

내가 가족을 보살펴야 해
그렇지?

 

형수님, 조카, 아버지를…

 

내 쥐꼬리만한 연금으로 말이야

 

아니면 대신…

 

내가 더 오래 살아서
문제만 더 어렵게 할까?

 

나… 내…
내 말 들어, 라몬

 

난 네 형이다
네 형이라고

 

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누구도 이 집에서 죽을 수 없어

 

죽으면 안 돼
알아 들었지?

 

새겨둬, 라몬
누구도 안 돼!

 

아들, 나 간다

 

내일 뵈어요, 아버지

 

내가 가볼게요

 

안녕하세요?, 마누엘라
라몬을 보러 왔어요

 

지금 몇 신지 알고 그래요?

 

늦은 줄은 알지만
더 일찍 올 수가 없었어요

 

라몬에게 설명할게요

 

오늘은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을 거예요

 

당신도 알겠지만
오늘은 너무 힘든 날이었어요

 

내일이나 다음에
다시 오는 게 어때요?

 

중요한 일이에요

 

통조림 공장이 문을 닫아요

 

경기가 안 좋아서

 

우리에게 줄 돈이 없대요
해고당했어요

 

이런 법이 대체 어딨어!

 

이럴 권리가 어딨냐고!

 

로사

 

미안해요, 라몬

 

미안할 게 뭐 있어요?

 

울고 싶은 만큼 울어요

 

내가 일어나서
안아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돈을 조금씩 모아서

 

당신에게 망원경을 하나
선물하고 싶었어요

 

로사, 내게 아무것도
사줄 필요 없어요

 

나한테 한 푼이라도 쓴다면
화낼 거예요

 

그래도 그러고 싶어요

 

당신에게 뭔가…

 

주고 싶어요

 

왜 내게 그러고 싶은 거죠?

 

당신이 나한테 너무
많은 걸 줬으니까요

 

얼마나 많은지 당신은 몰라요

 

난…

 

당신처럼 나한테 잘해준
남자는 지금껏 없었어요

 

학대당했었나요?

 

이젠 쓸데없는 일로
시간 낭비 안 할 거예요

 

내게…

 

문제가 있다는 거 알아요

 

남자들이 날 좋아하지
않는 것도 알고요

 

무슨 말이에요, 로사?
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요?

 

처음 여기 왔을 때는 나한테
그렇게 얘기하지 않았나요?

 

욕구불만인 여자라고…

 

그래요
내가 그렇게 얘기했다면

 

이제는 강하고 용감하고

 

착하고 아름다운
여인이라 부르겠어요

 

누구든 그런 모습을 몰라본다면
멍청한 놈이라고 욕하겠어요

 

로사, 제발
제발 이러지 말아요

 

내가 신부가 된 거 같잖아요
그 놈들은 날 엿 먹였단 말이에요

 

앉아요
이리 와서 앉아요

 

그리고 내 손 좀 놔줘요
어차피 감각 없는 거 알잖아요

 

제 아들은 당신이
아픈 척 하는 거래요

 

속이고 있대요

 

그래도 얼굴엔 감각이 있죠?

 

나만 당신을 도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뭐든 할 수…

 

날 돕고 싶다고요?

 

 

떨 거 없어요, 바보같이

 

몇 년 동안 계획을 잘 세워둬서…

 

누구도 감옥에 가지 않을 거예요

 

돕겠다는 친구도
벌써 몇 명 구했는데

 

딱 한 사람이 모자라요

 

- 당신처럼 용감한 사람
- 아뇨

 

싫어요

 

간호를 돕겠다는 거지

 

죽는 걸 돕겠다는 게 아니예요

 

준비됐죠

 

갑시다

 

- 잡았어요?
- 네

 

조심, 조심…

 

나하고 같이 나가요

 

- 사이즈가 맞지 않아요
- 안되겠는데요

 

안되겠어요
지나갈 수 없어요

 

고마워요

 

라몬이 상황은 이해하지만

 

내려오지 않겠답니다

 

그래요…

 

알겠습니다
안드레 형제

 

이리 와요

 

좋아요, 위층에 올라가서

 

라몬에게 이렇게 전해주게

 

우린 영원 속에 존재하기 때문에

 

생명은 우리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것이라는 부르주아적 발상이

 

바보 같은 극단으로 치닫게 합니다

 

거 참…

 

지금 농담하는 거죠?

 

교회야말로 사유재산을

 

가장 숭배하지 않나요?

 

- 하지만, 그렇게 전할 순 없어요
- 그럴 순 없다는 건 무슨 말이야?

 

어떻게 제가…?

 

내 인생과 신앙을 선택하는 것

 

선택할 자유는…

 

내 신앙을…
아니, 그의 신앙과

 

그의 인생에 대한 선택은
자유라고 합니다

 

그럼, 이렇게 전하게

 

이건 삶에 대한 무조건적인 헌신…

 

왜 교회가 죽음이 두렵다는 분위기를

 

열정적으로 조성하는 줄 알아?

 

왜냐하면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많은 고객을 잃게 되기 때문이야

 

여론 조사에 의하면
스페인 인구의 67%가

 

그의 안락사에

 

긍정적이라고 합니다

 

좋아, 아주 좋아
그럼 이렇게 전하게

 

도덕적인 문제는
여론으로 풀이할 수 없다고

 

독일 국민 대부분이…

 

독일 국민 대부분이

 

- 히틀러를 지지했습니다
- 지금 날 히틀러에 비교해!

 

- 전부 말도 안 되는 소리야
- 전부 말도 안 되는 소립니다

 

아니, 그게 아냐…

 

계란 가격하고 히틀러가
무슨 상관이 있는지 물어봐요

 

- 계란이요?
- 아니, 잠깐만

 

프란시스코 신부님
내 말 들려요?

 

들리네, 라몬

 

왜 사과와 오렌지를
비교하려 하십니까?

 

난 당신이 여기 와서 선동적인
설교를 하지 않았으면 했어요

 

당신들 예수회 사람들은
그쪽엔 일가견이 있잖아요

 

아니, 그런 건 아닐세

 

하지만 선동얘기를 했으니
말인데, 라몬 형제

 

존엄한 죽음이란 표현이야 말로

 

선동적이지 않은가?

 

그런 식의 미사여구는

 

그만 집어치우고

 

단도직입적으로
“자살하겠다”라고 하는 게 어때?

 

제 삶에 그리도 관심을
가져주시다니 놀랍네요

 

당신이 속한
바로 그 종교가 수세기 동안

 

같은 뜻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을

 

이단으로 몰아서

 

화형 시켰잖습니까?

 

당신이야 말로 선동적인
설교를 하고 있군

 

좋아요, 당신 말대로
돌려서 말하지 않겠습니다

 

난 화형감이에요, 그렇죠?

 

그러니 화형 시켜요!

 

내 자유를 주장한 죄로
날 화형 시켜요

 

라몬, 형제여…

 

- “형제”라고 부르지 마세요
- 라몬, 형제여…

 

삶을 끝내는 자유는
자유가 아닙니다

 

자유를 배제한 삶도
삶이 아니죠

 

날 “형제”라고 부르지 마세요
그냥 내버려둬요

 

좋아, 모두 가세

 

제가 보기에…

 

당신들은 좋은 가족인 것 같군요

 

그에게 살아갈 의지를 주세요

 

그에게 삶이 단지…

 

팔을 움직이거나
뛰어 다니거나

 

공을 차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말해주세요
어쨌든…

 

삶은 사실 또 다른 무언가죠

 

삶은 그 이상이랍니다

 

그게 제가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어쩌라고요?

 

그가 말하지 못하게
재갈이라도 물릴까요?

 

아니면 딸랑이라도 줘서
어린애 취급이나 할까요?

 

이것 보세요

 

당신이 TV에 나와서는

 

내가 평생 잊지 못할
말들을 지껄여댔어요

 

마누엘라, 놔둬

 

가족들이 그에게 충분한
사랑을 주지 않았다고요

 

단단히 들어둬요

 

우리는 이 집에서
도련님은 사랑 말고

 

받은 게 전혀 없어요

 

난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그를 보살펴 오면서

 

마치 내 아들처럼
사랑하고 있단 말입니다

 

당신들 중 누가 옳은지는
난 모르겠어요

 

당신이 말한 것 중에
삶이 어떻게 신의 것이고

 

우리 것이 아닌지도
나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건 압니다

 

당신은 완전히 떠버리예요

 

로사, 그럴 필요 없다니까요

 

내가 어제
라몬 면도를 해줬어요

 

하지만 더 멋지게 만들어 주려고요

 

비누는 어디다 두나요?

 

벌써 왔네!

 

난 모르겠는데

 

- 진짜 아기가 들어있어?
- 일곱 달 됐어요

 

안 움직이는데

 

- 움직이지 않는 건 당신이죠
- 어, 지금이요, 지금

 

- 움직였다
- 알겠죠?

 

- 당신을 만나서 좋은가 봐요
- 이름을 뭐라고 지을 건가요?

 

아직 정하지 않았어요

 

좋아요, 라몬이라고 부르죠

 

언젠가, 자기 이름이
왜 라몬이냐고 물으면

 

내 이야기를 해줘요

 

- 좋아요
- 당신이 직접 해줘요

 

어때요?

 

싫어요

 

당신을 너무나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이 또 있어요

 

조심해라, 하비
조심해

 

아냐, 그렇게 하면 안 돼

 

- 이 쪽으로 돌려야지
- 할아버지, 좀 조용히 하세요

 

말도 없이 이게 웬…

 

- 놀래 켜 줄려고 그랬죠
- 이런

 

오늘이 설마
크리스마스는 아니지?

 

창문을 조금 열게요
조금 덥네요

 

둘이 얘기하게
우린 잠깐 나가죠

 

- 이리 와요
- 어때요?

 

- 우리요?
- 갑시다

 

잘 지냈어요, 선원 아저씨?

 

그렇게 하지 말아요
그건 좋은 생각이 아니예요

 

즈네, 그를 그냥 놔두고…

 

- 커피 어때요, 마크?
- 네, 부탁 드려요

 

- 잘 지냈어요, 로사?
- 네

 

라몬이 그러던데
다른 일 구했다면서요

 

노인 분들을 좀
돌봐드리고 있어요

 

저 여자 오래 머물 건가요?

 

한 2주 정도요

 

책 작업이 어떻게
진행되냐에 달렸죠

 

그럼 오늘은 라몬
면도해줄 수 없겠군요

 

- 좋아요, 나중에 봐요
- 가요

 

가세요, 로사

 

판사들은 법 조항 때문에
옴짝달싹할 수 없어요

 

우리가 할 일은 정부가

 

형법을 개정하도록 촉구해서

 

- 조항을 만드는 겁니다
- 정부를요?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게
정부의 의무란다, 하비

 

네 삼촌의 경우에는
더욱더 중요하지

 

먼저 번 경우에서처럼
판사들은 우리 편이 아닐 겁니다

 

이미 알고 있죠

 

하지만 지역법원 심리에서는
실패하면 안됩니다

 

하비, 소 여물
먹이는 거 좀 도와주렴

 

어서!

 

잘 들으세요

 

우린 라몬이 제정신이고
또 아주 침착하다는 걸

 

판사에게 확신시켜야 해요

 

직접 증인석이 선다면
엄청난 도움이 될 거예요

 

마누엘라…

 

우린 라몬을 집 밖으로
데리고 나가야 해요

 

도대체 뭔 짓을 하는 지나 알아?

 

저들이 무슨 짓을
하려는지 아냐고?

 

그럼 어떡할까요?
방 안에 숨어 있어요?

 

저 사람들이 원하는 게
뭔지 정말 모르겠어?

 

봐봐

 

그들이 재판에 이기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네 삼촌은 독극물 주사를
맞고 죽게 돼

 

개처럼 말이야

 

넌 다신 삼촌을
볼 수가 없을 거다

 

다신 삼촌을
볼 수 없게 된단 말이야

 

넌 죽음이 그렇게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니?

 

생각 좀 해

 

죽음은 매우 심각한 거야
내 말 알았어?

 

삼촌은 죽을 거고
넌 다신 볼 수 없게 된다고

 

절 좀 내버려 두세요

 

하비!

 

밖에 나가는 게
문제가 아니라

 

휠체어를 싫어해요

 

밖으로 나간 적이 한번 있는데
2년 전 쯤인가

 

완전 전쟁이었어요

 

바로 지금이 그 전쟁을
할 때라고요, 마누엘라

 

라몬을 위해서도
이번 일을 위해서도 정말 중요해요

 

언제 가야 하죠?

 

제가 볼 때, 심리는
봄에 열릴 것 같아요

 

설득할 시간은 충분해요

 

자식을 앞세우는 것보다
더 나쁜 게 있다면 그건…

 

자식이 죽고 싶어하는 걸
옆에서 보는 걸 거요

 

잘 가요

 

우리도 시작해 볼까요?

 

나의 매혹적인 연인…
사랑하는 바다여

 

당신은 여기서 정말로
바다 내음을 맡을 수 있나요?

 

가끔 아침에 창문이 열려 있고

 

바람이 불어오면 맡을 수 있어요

 

마치 바닷가에 있는 것처럼
냄새를 맡을 수 있죠

 

후각이 정말 예민한가 봐요

 

향기는 내게 가장

 

강렬한 느낌을 전해줘요

 

그리고 환상도…

 

예를 들어, 당신 향기는…

 

내 향기요?

 

그래요

 

당신에 대한 상상에 잠길 땐

 

먼저 향기를 떠올리죠

 

제 향기요?

 

어떤 상상을 하죠?

 

많은 것들이요

 

그런데 공통적인 게
하나 있어요

 

상상 속에서 난
움직일 수 있어요

 

그래서…

 

자리에서 일어나…

 

내 상상 속 당신이 있는
그곳으로 가요

 

만약 당신이 지금 여기
있다고 상상하면

 

음…

 

내가 당신에게 걸어가…

 

수없이 당신에게
하고 싶었던 일을 하죠

 

그럼…

 

당신의 향기는 점점 진해지고

 

난 현기증이 나요

 

당신의 심장박동이 점점
빨라지는 걸 느낄 수 있어요

 

당신 손길을 느낄 수 있고

 

그러면 난 정신을 잃어요

 

완전히 정신을 잃고 말죠

 

물 온도 괜찮아요?

 

훌리아

 

훌리아, 자요?

 

아뇨

 

잠이 안 와요

 

좀 와줄래요?

 

다리가 가려워요

 

와서 좀 긁어줄래요?

 

다리요

 

크레페 좀 만들었어요

 

- 하지만, 로사…
- 그가 좋아할 거예요

 

- 이것 봐요
- 내가 직접 만들었어요

 

잘 들어요, 라몬을 위해
씻겨주는 거나 면도…

 

요리도 안 해도 돼요
그건 내가 할 일이에요

 

내 말 이해해요?

 

좋아요

 

라몬이 그렇게 말하면 들을게요

 

아뇨
나한테 벌써 말했어요

 

게다가, 지금 많이 바빠요

 

왜요?
그 여자랑 같이 있죠?

 

나도 변호사였으면 좋겠네요

 

하지만…

 

- 로사, 울지 말아요
-라몬, 내가 보러 오는 게

 

-싫으면…
- 물론 보고 싶어요

 

- 그렇지 않아 보여요
- 그런 게 아니라니까

 

로사, 로사…

 

끊었네

 

로사한테 전화 좀 걸어줄래요?

 

그리고 잠시 자리 좀 비켜줘요

 

둘 사이에 무슨 일 있어요?

 

네?

 

훌리아…

 

내가 왜 그걸 다
설명해야 하죠?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아요

 

그럼 대체 난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죠?

 

여기서 있었던 일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건가요?

 

어제의 키스는
아무 의미도 없는 건가요

 

당신 좀 봐요

 

거기 앉아있는
당신을 한 번 봐요

 

스스로를 봐요

 

그리고 나를 봐요

 

가능해 보여요?

 

우릴 보라고요

 

끝난 게 아니예요

 

무슨 생각해요?

 

내가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보여요?

 

천만에요

 

절대 아니예요

 

매일이 악몽이죠

 

갈수록 악화만 돼서

 

식물인간이 될 거라는 걸 알아요

 

그래서 결론지었죠

 

그럴 바엔…

 

그걸 할 거예요, 라몬

 

나도 삶을 끝낼 거예요

 

하지만…

 

그전에

 

당신이 원한다면
내 사랑…

 

당신을 돕고 싶어요

 

우리 같이 떠날 수 있어요

 

대답 못하겠죠?

 

이걸 원한 게 아니었나요?

 

언제요?

 

잘은 모르겠지만

 

책 작업이 거의 다 끝나가니까

 

바르셀로나에 가서
출판사를 찾고

 

그리고…

 

책을 출판해야죠

 

그리곤 초판을 갖고
내가 돌아왔을 때

 

바로 그날이요, 라몬

 

바로 그날…

 

내 말 좀 들어봐요

 

최소한 대중은
우리 편으로 만들 수 있어요

 

우리가 지더라도
논쟁은 더 커질 거라고요

 

고집 좀 그만 부려요

 

그게…
정말 이해를 못하겠네

 

- 이봐요, 괜찮아요?
- 괜찮아요

 

- 예?
- 네

 

뉴스 봤다고요?
무슨 뉴스요?

 

마크, 마르코
제발 부탁이니까 앞 좀 봐요

 

괜찮아요, 괜찮아요
무슨 일이에요, 라몬?

 

이제 다 왔어

 

이해해요, 라몬

 

그래도 아직…

 

내 말 좀 들어요
만약 아무도 하지 않으면

 

아무도 행동하지 않고
숨으려고만 한다면

 

하다못해 정부에 그런
시도조차 하지 않으면

 

정의는… 다른 사람은…

 

미안합니다, 여기요

 

- 다시 걸어요, 계속해야 해요
- 알았어요

 

아뇨, 아뇨, 아뇨
마누엘라에게 전화해요

 

- 차부터 빼세요
- 알았어요

 

- 알았어요
- 난 괜찮아요, 괜찮다고요

 

약간 예민한 것 뿐이에요

 

우리 이제 뭘 하죠, 마누엘라?

 

코루냐로 가는 거 말이에요

 

내가 거기 나타나도
그들은 신경도 안 쓸 텐데

 

내 시간을 낭비해야 해요?

 

내 생각에 우리가 하는 일이

 

시간을 낭비하는 거라고 해도

 

하지만 언젠가는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좋아요, 그 놈의 판사들
면상이나 보러 갑시다

 

하비, 휠체어 어디 있니?

 

내가 어떻게 알아요?
아마 어딘가 처박혀 있겠죠

 

그럼 찾아서
깨끗이 좀 닦아줘

 

그리고 할아버지 모시고 와라
그때 설명해 줄게

 

같이 한 번 고쳐 보자

 

- 빨리 가!
- 모터 달게요?

 

여기랑 여길 잘라야 돼

 

- 그래서 등판이 움직이게요?
- 그렇지

 

여기 이 튜브들 보이지?

 

이것들도 잘라야 해

 

그리고 너트로 고정시키면
힌지로 움직이거든

 

- 이해되니?
- 네, 계속 하세요

 

아버지도 아시겠어요?

 

뒤로 젖혀지기도 해야 해

 

재판 중에 잠이 들 수도 있으니까

 

재미없는 얘기하면
그냥 자려고요, 아버지

 

삶을 위한 죽음

 

지옥으로부터의 편지

 

위에는 목을 쉴 수 있게
베개를 놔 줘

 

뒤로 자빠져서
목이 부러지고 싶지 않거든

 

하비, 내 목을 부러뜨릴래?
목이 부러진다고

 

할아버지

 

보세요, 도와주시는 게
안 도와주시는 것보다 낫잖아요

 

너무 꽉 조이나?

 

나한테 묻는 거예요?

 

라몬!

 

잠깐만, 라몬

 

맙소사, 형수님, 여기서 더
우스꽝스러워 보이란 거예요?

 

감기 걸리는 것보다는 나아

 

아무도 못 벗기게 해

 

라몬 삼페드로 씨죠?

 

당신을 태우게 되어 영광입니다

 

안락사를 즉각 합법화하라

 

와, 저것 좀 봐요

 

꼭 우리가 누구 하나
죽인 것 같군

 

라몬 씨, 혼자서 안락사를
주장하고 계신데요

 

좀 외롭다고 느껴지진 않나요?

 

뭐, 그렇죠
공식적으로 처음이니까

 

하지만 사적으로는 이미
많이 행해진 걸로 압니다

 

판사들은 뭐라고 할 것 같습니까?
그들에게 하실 말씀이 있으세요?

 

제가 말해주고 싶은 건 단지…

 

전 건전한 정신과
판단력이 있다는 겁니다

 

정숙

 

정숙 하세요

 

이 나라는 종교의 자유와

 

사유재산을 인정하며

 

개인이 품위를 유지하고
고통 받지 않을 권리를

 

헌법으로 보장하고 있습니다

 

라몬 삼페드로 씨처럼
부당한 상황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겠다는 것은

 

정당한 것입니다

 

사실…

 

자살을 했거나 시도했다고
처벌받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존엄성을 지키며 죽기 위해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경우

 

정부가 개입해선 목숨을

 

개인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하고 있습니다

 

친애하는 재판장님
이건 철학적인 신념입니다

 

다른 말로는 종교적 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종교적으로 중립이라
주장하는 정부가

 

결국은 매우 종교적인 이유로
반대하는 겁니다

 

판사님들께서 법률적인 판단과 함께

 

이성적이고도 인간적인
판단을 내리시길 바랍니다

 

이제 법정이 허락한다면

 

청중석에 앉아계신
라몬 삼페드로 씨가

 

직접 짧은 소견을
말씀 드리고 싶다고 합니다

 

기각합니다

 

판사님, 제 의뢰인은

 

자기의 생각을
직접 말씀 드리길 원합니다

 

변호인은 법적 절차를
잘 알고 있을 텐데요

 

물론입니다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죄송하게도 이번 청원과
무관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28년이나 기다려온
사람의 말을 단 3분만

 

들어달라는 것이
그리 무리한 요청입니까?

 

절차가 맘에 안 들면
법을 바꾸세요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심리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잘들 돌아가십시오

 

당신이 웃어넘길 줄 알았어요

 

모든 남자들이
나한테 그랬듯이 말이죠

 

- 당신은 조금이라도 다를 줄 알았어요
- 로사, 미안해요

 

당신도 알다시피 최근에
많은 일들이 있었어요

 

좀 당황스럽기도 했고요

 

왜요? 누군가 전신마비인 사람을
사랑하면 안 된단 거예요?

 

그게 그렇게 이상해요?

 

글쎄

 

몇 가지 분명히 해둬야겠군요

 

특히나 사랑같이 복잡한
얘기를 한다면 말이죠

 

- 복잡한?
- 그래요, 복잡하죠

 

당신이 지금 나를
사랑한다고 할지 몰라도

 

당신의 사랑이 얼마나 진실된 건지

 

또는 당신이 찾고
싶었지만 찾을 수 없었던

 

남자를 이상화한 것인지
난 전혀 확신할 수가 없어요

 

무슨 소리를 그렇게 해요?

 

사람 헷갈리게 하지 마요

 

당신이 사랑하느냐 하지 않느냐예요
사랑은 설명할 수 없어요

 

좋아요, 좋아요
그렇다고 합시다

 

내가 어떻게 하길 바라요?
같이 살까요?

 

그냥 가끔 당신을 만나러
갈 수 있기만 하면 돼요

 

당연히 할 수 있죠
할 수 있고 말고

 

그런데 얼마나 더 당신을
볼 수 있을까요?

 

로사, 안 돼요

 

당신을 위해 계속
살아가라는 건 아니죠?

 

만일 당신이 내게…

 

살아갈 힘을 준다고 한다면요?

 

좋아요, 세워봐요
세워요, 잠깐만 세워봐요

 

거기 앉아요

 

생각해 봅시다

 

아이들을 사랑하죠?

 

당연하죠

 

그게 바로 당신의
살아갈 힘이에요

 

제발… 제발 그 책임을
내게 지우지 마요, 로사

 

그런 게 당신이 말하는
사랑이에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날 붙잡아 두는 거?

 

봐요

 

진정 날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내 죽음을 도와줄 거예요

 

그런 게 날
사랑하는 거예요, 로사

 

그런 게 날 사랑하는 거예요

 

나의 훌리아

 

법원 판결 결과를
어제 전해 들었어요

 

판사들은 내가 죽고자 하는 걸
이해는 했지만

 

날 도와주는 건
범죄로 간주한다고 하더군요

 

다른 때 같았으면
아마 난 너무 절망해서

 

시체처럼 지냈을 거예요

 

밤낮 없이 말이죠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게
빠르게 진행되고

 

책도 조만간 출판 되겠죠

 

그럼 내 사랑하는 줄리엣
훌리아, 당신이 올 거고요

 

그리고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달콤한 죽음이…

 

우리 둘의 순수한 사랑이
이루어지겠죠

 

다시 조화를 이루는 거예요

 

마침내 완벽한 조화를 이룰 거예요

 

키스를 보내며
내 사랑

 

됐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뜯어 드려요?

 

책이에요

 

보세요, 삼촌 책이에요
삼촌이 표지에 있어요

 

냄새가 근사한데요

 

삼촌한테 쓴 건데요

 

이거 엄마 보여드릴게요

 

어째서!

 

- 도대체 왜!
- 진정해요, 진정해요

 

마누엘라, 왜 난
남들처럼 못 사는 거죠?

 

- 왜 난 감사하면서 살지 못하죠?
- 진정제 가져 올게

 

왜? 왜 난 이렇게
죽고 싶어할까요?

 

죽고 싶어하냐고요!

 

왜? 왜?

 

죽고만 싶어하냐고요!
왜!

 

자, 마셔

 

두 알 더 줘요, 마누엘라

 

진통제 두 알
더 먹는다고 안 죽어요

 

두 알 더 줘요

 

- 왜?
- 금방 괜찮아 질 거야

 

- 좀 어때?
- 괜찮아요

 

지금 몇 시죠?

 

11시야
오늘은 깨우기 싫어서…

 

보이로 아가씨가
벌써 세 번이나 전화했어

 

뭐래요?

 

중요한 일로 할 얘기가 있대

 

그녀는 뭐든 매번
중요하다고 하잖아

 

로사에게 전화 걸어주세요

 

전화하게?
곧 올 텐데 기다리잖고?

 

어서요, 로사 형편엔
전화비 내기도 빠듯해요

 

부탁할게요

 

하긴 하겠는데, 라몬
당신은 너무 상냥해

 

- 라몬?
-무슨 일이에요, 로사?

 

만나야겠어요
할 얘기가 있어요

 

오기 전엔 꼭 전화하래서
하는 거예요

 

그래요
무슨 문제 있어요?

 

지금 가도 돼요?

 

라몬

 

일전에 계획 비슷한 게
있다고 했잖아요

 

재판에서 지면

 

당신이 하고 싶은걸
할 방법을 찾을 거라면서

 

맞아요, 하지만 그 일은
벌써 사과했잖아요?

 

그만 잊어버려요

 

알아요, 하지만 도저히
잊을 수가 없다고요

 

지난 달에

 

재판에서 졌잖아요

 

그러니깐 이제…
그 방법을 쓸 거잖아요

 

그래서 걱정하는 거예요?
내가 자살할까봐?

 

- 할 건가요?
- 쉬운 일이 아니예요, 로사

 

하지만 걱정 말아요

 

당신한텐 맨 마지막에
알릴 테니까

 

나… 당신이 한 얘기

 

이해할 것 같아요

 

코루냐에서 당신이
내게 했던 말 이해해요

 

당신을 정말 사랑한다면
도와줘야 한다고 했죠

 

내 감정에 확신을
가지고 있어요, 라몬

 

당신을 사랑해요

 

내가 당신을 도와주길 바라요?

 

- 로사
- 난 진지해요, 라몬

 

내가 당신을 도와주길 바라요?

 

젠장,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저리 비켜

 

무슨 말을 하려고요?
호세, 기다려요

 

내 말을 귓등으로 듣냐?
허락 못한다고 했잖아

 

형이 어쩔 건데?
뭘 어떻게 할 거냐고!

 

난 이미 꼼짝도 못하는데?
침대에라도 묶어둘 거야?

 

아니면 병원에서 하는 것처럼
진정제라도 먹이게?

 

아무도 내가 이 집을
떠나는 걸 막을 수 없어

 

- 그래? 그럴까?
- 형이라고 해도

 

우리가 막을 거야

 

내 말이 말 같지 않아?

 

난 네 형이고
이 집안의 가장이야

 

그래서? 그게 나한테
무슨 의미가 있는데?

 

이 나이에 말야!
나에게 가장 중요한 건

 

사람들 머리에 뭐가 들었나야

 

형은 아무 생각도 없잖아

 

더 이상 무지한 형의
노예로 살진 않겠어

 

- 종교적 양심 때문에 날 이용하지마
- 나는 어떻고?

 

난 노예가 아닌 것 같아?

 

바다로 나가는 걸 포기하고
이 엿 같은 과수원에서

 

살려고 왔을 때 내 기분은
어땠을 것 같아? 어?

 

너하고 같이 있으려고…
단지 그거 때문이었어

 

나, 내 마누라, 내 아들…

 

우린 모두 네 노예라고!

 

다녀왔어요

 

그래…

 

- 삼촌은 보이로로 갈 거다
- 보이로요?

 

왜요?

 

그 곳에서 지내고 싶다는 구나

 

로사하고 지내게 될 거다

 

세상에!
결혼 한대요?

 

결혼?

 

- 떠난다는 게 무슨 뜻이에요?
- 그래

 

얼마나 오래요?

 

내 책을 주고 싶구나
니 뒤에 있다

 

- 왜요? 이제 안 찍는대요?
- 아니, 물론 더 찍지

 

- 하지만 그건 초판이니까
- 아

 

책갈피 꽂힌 데를 읽어봐

 

- “내 아들에게”?
- 그래, 읽어봐라

 

내 아들아
낳아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하지만 그건
내 잘못은 아니었단다

 

두려움에 빠진 건
장미꽃들이었지

 

너랑 놀아주지 못한 것도
미안하다

 

혹 내가 죽은 후
네가 태어난다면

 

내가 항상 널
사랑한다는 걸 기억해주렴

 

나 대신 엄마에게
키스해 주고

 

이 아빠를
미워하지 말길 바란다

 

- 미움은 나쁜 거란다
- 아주 좋았어

 

- 이해하겠니?
- 네

 

어디 말해 봐

 

이건 태어나지 못한
삼촌 아들에 대한 시예요

 

그 아이에게 얘기하고
있는 것 같네요

 

낳아주지 못한 것에 대해
사과도 하고요

 

잘했다, 근데 내가 밑에
뭐라고 적어 놨지?

 

하비에게

 

- 그래서?
- 그래서 뭐요?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모르겠니?

 

하지만 전
삼촌 아들이 아니잖아요

 

당연히 아니지

 

그렇지만 내가 네게
그 시를 바쳤다는 건

 

뭔가 의미하는 게 있지 않겠니?

 

하지만 전 삼촌 아들이 아닌걸요

 

요즘 학교에선
뭘 가르치는 지 모르겠다

 

됐다, 나가봐라

 

전부 다 오늘 좀 이상하네…

 

라몬, 잘 지내요?
잠깐만요, 잘 안 들려요

 

- 말 하세요, 멋쟁이 아저씨
-별거 아니예요

 

나 내일 떠나요

 

로사가 오늘 오후에 그러더군요

 

- 좀 초조하죠?
-약간요

 

라몬, 그거 말인데요…

 

저기, 제가 좀 알아봤는데요…

 

-알아봐요? 뭘?
- 저기… 아시잖아요…

 

-가루?
- 예, 가루

 

정확하게 200밀리그램을
재야 한대요

 

-즈네…
- 하지만 그건

 

좀 괴로울 거예요
알고 있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즈네, 즈네
괜찮아요

 

당신이 이 일에서
손 뗐으면 좋겠어요

 

나중에 당신이 연루될까 봐
그게 걱정돼요

 

사실 이 말 하려고 전화한 거예요

 

작별인사를
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더 이상 연락하지 말아요

 

그게 당신 안전을 위해

 

남편한테도 아무 얘기 말아요

 

네, 그럼요
이해해요

 

그럼 이게…
이게…

 

- 우리 작별 인사네요
-그래요

 

이 편이 좋아요

 

맞아요, 그럼요
그럼요…

 

하지만… 하지만
이거 한 가지만 말할게요

 

라몬, 그 결정하기 전에 정말
충분히 생각해 봐요

 

내 말은 의무감 느끼지
말란 얘기예요

 

사람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나

 

우릴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억지로 그럴 필요는
없다는 뜻이에요

 

당신이 그러지 않겠다고 해서
뭐라고 그럴 사람은 없어요

 

- 내 말 이해하죠, 라몬?
-즈네, 당신도 내 맘 알죠?

 

미안해요, 라몬

 

잘 있어요, 즈네

 

잘가요, 친구

 

형수님, 안녕히 계세요

 

너도, 하비
어른들 말씀 잘 듣고

 

삼촌 시
이제 이해했어요

 

잠깐 이리 와봐

 

날 좀 안아주렴

 

부탁이 있다
할아버지 잘 돌봐드려

 

할아버지를 부탁한다

 

라몬, 이제 가요

 

문 좀 닫아줄래?

 

갑시다
문 닫아라

 

보이로엔 뭐 하러 가세요?

 

해변에 가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싶어요

 

신선한 공기?
그거 좋네요

 

이게 당신이 준 돈으로
구한 제일 좋은 방이에요

 

전망 좋은 방 달랬는데
마음에 들어요?

 

어디에 서명하면 돼요?

 

- 뭘요?
- 혼인 증명이요

 

잠들었네

 

얘 좀 봐요
내가 움직이지 않으니까…

 

라몬

 

사후세계가 있다는 게
사실이라면…

 

당신 또 내가
바보 같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혹시 있다면요
나한테 증표를 보내줘요

 

- 증표요?
- 뭐든지요

 

난 한 번도 영혼을
두려워한 적이 없어요

 

아주 주의 깊게 당신의
증표를 기다릴게요

 

- 그럴 수 있죠?
- 그럴게요

 

하지만 당신도 알다시피…

 

하지만, 우리가 죽고 나면

 

아무 것도 안 남을 거예요

 

우리가 태어나기 전엔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어떻게 그렇게 자신하죠?

 

- 그건 아무도 모르는 거잖아요
- 나도 잘 몰라요

 

아무것도 없겠지 싶어요
그냥 육감일 뿐이죠

 

아버지가 하늘을 한번 보고는
“내일 비 오겠다”하는 것처럼…

 

그럼 비가 오거든요

 

그냥 느낌이에요

 

하지만 이건 약속할게요

 

당신 꿈속으로 찾아갈게요

 

밤에 당신 침실로 가서

 

사랑을 나눌 거예요

 

혹시 내가 꿈에서 깜빡 하고
말 안 할까봐 지금 할게요

 

고마워요, 로사

 

정말 진심으로…

 

고마워요

 

고명하신 판사, 정치가
그리고 종교지도자 여러분…

 

여러분에게 존엄함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양심이
무엇이라 대답하건 간에

 

저는 이런 삶엔 존엄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전 적어도 존엄성을
지키며 죽길 바랬습니다

 

하지만 이 나라의 제도가
보여준 적대감에 지쳐

 

범죄자처럼 숨어서
죽음을 맞이하게 됐습니다

 

절 죽음에 이르게 한 모든 과정이

 

일련의 아주 정교한
행위들로 쪼개져 있어서

 

한 사람의 행위만으론

 

범죄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래도 정 그들을
처벌하시고자 한다면

 

그들의 손을 자를 수밖에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그들은 손만
빌려줬을 뿐이니까요

 

모든 계획은 다 저의
머리에서 나온 것입니다

 

보시다시피, 제 옆에는

 

청산가리가 든
물 한 잔이 있습니다

 

이것을 마시면
전 삶을 마감하게 됩니다

 

요컨대 가장 소중한 재산인
육체를 포기하는 거지요

 

전 삶이 의무가 아니라
권리라고 믿습니다

 

저의 경우에

 

삶이 권리가 아닌
의무였기 때문에 이 끔찍한 상황을

 

28년 이상 견뎌야 했죠

 

이제 그 동안 살아온 길을
되돌아 봤을 때

 

행복한 기억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제 의지와 무관하게 흘러간

 

그 시간만이

 

이제는 저의 편이 될 것입니다

 

시간이 더 흐르고
인간 양심이 진화하면

 

언젠가 제 요구가

 

정당했는지 아닌지 밝혀지겠죠

 

그럼…

 

뜨겁네요

 

마크는 안 와요?

 

애기와 해변에 있어요
바다를 좋아하거든요

 

- 수영하는 건 아니겠죠?
- 아뇨, 아직 물이 찬 걸요

 

- 잘 지내요? 예뻐졌네요
- 잘 지내요

 

- 그녀가 제 말을 이해할까요?
- 그럴 거예요

 

제 말은 대화가
가능한가 싶어서…

 

그럼요, 가끔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긴 하지만

 

- 그럼 만나볼게요
- 그러세요

 

- 이따 봐요
- 그래요

 

안녕하세요?, 훌리아

 

안녕하세요?, 잘 지내요?

 

- 잘 지내요, 당신은요?
- 나도요

 

집이 아주 예뻐요

 

라몬 알죠?
제게 편지를 많이 남겼어요

 

죽은 다음에
편지가 발견 되는 게

 

무척 재미있다고 생각했나 봐요

 

요전 날, 당신에게
남겨진 편지를 찾았어요

 

라몬이 누구예요?

 

라몬

 

라몬 삼페드로

 

당신 친구, 라몬이요

 

내가 소개해 드렸잖아요

 

기억 안 나요?

 

그랬어요?

 

그랬죠

 

여기 참 멋진 곳이에요

 

바다로
저 바다로…

 

그리고 저 무중력의 심연으로…
꿈이 이루어지고

 

두 의지가 모여
하나의 소원을 이루는 그곳으로…

 

말없는 메아리 같은
우리 둘의 시선이 만나…

 

더 멀리…
더 멀리…

 

육신을 가진
그 모든 것을 넘어…

 

하지만 항상 난 깨어나
언제나 죽음을 소망하네…

 

당신의 머릿결이 끝없이
내 입술을 어루만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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