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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 깁슨 : 햄릿 역

 

글렌 클로즈 : 거트루드 왕비 역

 

앨런 베이츠 : 클로디어스 왕 역

 

폴 스코필드 : 선왕의 망령 역

 

이안 홈 : 폴로니우스 역

 

헬레나 본햄 카터 : 오필리아 역

 

프랑코 제피렐리 필림

 

햄 릿

 

자막 by Lion Park G. Father

 

음악 : 엔니오 모리코네

 

원작 : 윌리엄 셰익스피어

 

감독 : 프랑코 제피넬리
(로미오와 줄리엣 등 감독)

 

덴마크, 헬싱괴르- 크론보르 성

 

햄릿, 나를 친아버지로 생각해라

 

너는 나의 왕위를 계승할 사람이라고
세상에 공포하겠다

 

친아버지가 너에게 가졌던 사랑
못지않게 너를 사랑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

 

.

 

나의 형 햄릿 왕이 죽었지만

 

기억에 생생하며

 

우리 모두가 수심에 싸이고

 

온 국민이 국상을
슬퍼함은 당연하오

 

그러나 지금은 인정보다는
이성을 차리고

 

선왕에 대해 슬피 추모하면서도

 

국왕의 본분을 잊지 않으려 하오

 

그래서 짐은 지난 날의 형수를
왕비로 맞이했소

 

짐의 마음에 슬픔과
기쁨이 같이 있어

 

한 눈에는 행복이
또 한 눈에는 수심이 차

 

장례에는 축가를 결혼식에는
만가를 노래하는 심정으로

 

왕비를 맞이한 셈이오

 

그런데, 레어티스
무슨 청원이 있다고 하던데?

 

폐하, 제 마음은 이미
프랑스로 향해 있나이다

 

부디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부친은 허락했느냐?
폴로니우스, 뭐라고 했느냐?

 

예, 끈질긴 성화에
못 이겨 허락했사옵니다

 

결국 그의 뜻대로 말이죠

 

본의 아닌 승락이지만
폐하께서 부디 허락해 주시옵소서

 

가서 잘 지내라, 시간은 네 것이니
아무쪼록 유익하게 쓰도록 하라

 

잘 가거라

 

.

 

햄릿?

 

이제 내 조카이자
아들인 햄릿아!

 

친척이기엔 가깝고
부자지간으로는 멀군요

 

얼굴에 수심이 가득 하구나

 

아닙니다, 폐하
햇빛을 많이 받아서 탈이죠

 

부친을 애도하는 마음이
참으로 아름답고 가상하도다

 

그러나, 알지 않느냐?
네 부친도 아버지를 여의셨고

 

네 조부 또한 아버지를 여의셨다

 

그러나 그처럼 지나치게 오래
비탄에 잠기는 것 역시

 

신을 모독하는 고집이며
대장부답지 않은 행동이다

 

네가 대학에 돌아가고 싶다지만
그건 내 뜻에 어긋나는 것이다

 

제발 여기 머물러
나의 충신, 조카, 아들아

 

사랑하는 햄릿

 

이제 슬픈 마음을 거두고

 

덴마크 왕을
정다운 눈으로 보려므나

 

항상 눈을 내리깔고 땅속에 묻힌
아버지만 생각할 수 없잖니?

 

너도 알지 않니?

 

생명이 있는 것은 죽어서

 

저승으로 가게 마련인 것을

 

예, 그게 인간의 운명이죠

 

그렇다면 어째서
너만 유별나게 보이느냐?

 

그렇게 보였나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하지 않습니다

 

나의 검은 옷뿐만 아니라

 

슬픔을 나타내는 온갖 것도
제 심정을 드러내기엔 부족합니다

 

겉으론 그럴듯해도
그런 연극은 누구라도 합니다

 

그러나 이 가슴속에 있는 것은

 

꾸며낸 비애와는 다른 겁니다

 

어미의 소원을 들어다오, 햄릿

 

비텐베르크 대학에
돌아가지 말아 다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이렇게 기꺼히 내 말을
들어주니 기쁘구나

 

.

 

오, 이 너무도 단단한 몸뚱이

 

녹고 또 녹아 이슬이 되어 다오

 

신께선 어찌하여 자살을 죄악으로
규정하는 계율을 정하셨을까?

 

오, 신이여!

 

세상만사가 다 나에겐 지겹고
진부하고 멋없고 부질없도다

 

지겹구나!

 

정원에는 잡초만 무성하고

 

막돼먹고 흉물스러운 것들만
차지하고 있구나

 

이렇게 되고 말다니!

 

돌아가신지 두 달
아니, 두 달도 안 됐지

 

너무도 훌륭한 왕이셨지
이번 왕에 비하면 천양지차야

 

바람에 얼굴이 상할세라
어머니를 얼마나 아끼셨던가!

 

맙소사!
이런 것까지 기억해야 하나?

 

사랑은 받으면 더욱 커진다고
어머님도 아버님 곁을 안 떠났지

 

그것이 한 달도 못 되어...
아예 생각을 말자

 

Frailty, thy name is woman!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니라!

 

오필리아! 내 짐은 다 실었다

 

잘 있거라

 

그리고 얘야!

 

햄릿 왕자가 호의를 보여도

 

그건 젊은 혈기의 한때의
욕정이라고 생각해라

 

- 정말 그럴까요?
- 그렇단다

 

지금은 사랑하실지 모르지만
그것도 잠시일뿐

 

지위가 지위니 만큼
자기 뜻대로 할 수 없단다

 

그는 평민과 달라서
제멋대로 할 수 없단다

 

온 나라의 안녕과 번영이
그분의 선택에 달려 있어

 

그분의 달콤한 사랑의 노래에
솔깃해져서 네 정조를 내주면 안 돼

 

레어티스!

 

아직 여기 있니?
어서 배를 타야지

 

돛이 바람을 안고
너를 기다리고 있다

 

내 작별을 받아라!

 

이 아비의 몇 마디 훈계를
단단히 새겨들어야 한다

 

네 속마음을 말하지 말고

 

설익은 생각은 행하지 마라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되
천박하게 되어서는 안된다

 

진정한 우정으로 사귄 친구는

 

쇠사슬로 마음에 묶어 잡아 두어라

 

싸움에 끼어들지 말되 싸울 때는
상대가 너를 겁낼 정도로 하라

 

누구의 말이나 경청하되
네 말은 아껴라

 

옷은 될 수 있는 한
비싼 걸 사 입되

 

너무 요상하거나 사치스러운 옷은
피해라, 옷은 인품을 나타내 주니까

 

돈은 빌리지도 빌려주지도 말아라
빌려주면 돈과 친구 둘 다 잃게 되고

 

빌리면 절약하는
마음이 무디게 된다

 

무엇보다도
네 자신에게 충실해라

 

그러면 밤이 낮을 뒤 따르듯

 

너는 남에게도
충실한 사람이 될 것이다

 

시간 없다
하인들이 기다린다

 

안녕, 오필리아
내가 한 말 명심하고

 

내 기억 속에 자물쇠를 채웠으니
열쇠는 오빠가 간직하세요

 

.

 

오빠가 무슨 말을 하더냐?

 

햄릿 왕자님 얘기했어요

 

그래, 그 말 잘 나왔다

 

너를 자주 만나러
온다고 그러더구나

 

요사이 그분이 여러 번
제게 사랑을 고백하셨어요

 

사랑?

 

그걸 진심으로 믿니?

 

어찌 생각해야 좋을지
잘 모르겠어요

 

가르쳐 주마

 

비싸게 굴어야 해!

 

진실한 모습으로 구애하셨어요

 

진실한 모습?
그만 집어치워라

 

진심이라고 하늘에 맹세하셨어요

 

바보새를 잡는 덫이야

 

피가 끓으면 영혼이 혀로 하여금
맹세를 남발하도록 하지

 

이후로는 왕자님과
약속을 하거나 얘기하면 안 된다

 

이건 명령이다
들어가거라

 

명심하겠어요, 아버님

 

전하께 만세!

 

호레이쇼 아닌가
내가 정신이 없구나

 

- 모두 반갑네
- 전하

 

그런데 자네가 웬일로
비텐베르크에서 돌아왔나?

 

- 워낙 놀기를 좋아해서요
- 자네 적이 그런 말해도 안 믿네

 

자네는 그런 사람이 아냐

 

헬싱괴르엔 무슨 일이야?

 

선왕 장례식에 왔습니다

 

나를 놀리지 말게
어머니 결혼식을 보러 왔겠지

 

그렇군요
그게 잇달아 있어서...

 

돈을 아끼게

 

초상집 음식을 식은 채로
혼인상에 올려 논 거야

 

천당에서 원수를 만나면 만났지
그 꼴을 다신 보고 싶진 않네

 

아버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

 

그분을 뵌 적이 있는데
훌륭한 왕이셨죠

 

정말로 대장부셨지

 

다시 그런 분은 뵐 수 없을 거야

 

전하!

 

어젯밤에 뵌 것 같습니다

 

봐? 누구를?

 

- 아버님이신 선왕 말입니다
- 선왕을?

 

이 친구들이 목격한 걸
말씀드리겠으니 놀라지 마십시오

 

제발, 어서 말해 보게

 

이 두 사람이 이틀 밤에 걸쳐

 

죽은듯이 고요한
한밤중에 보초를 서는데

 

선왕의 모습을 한
형체가 나타났습니다

 

공포에 질린 두 사람 바로 앞을
세 번이나 지나갔는데

 

너무나 무섭고 두려워서
벙어리처럼 말도 못했답니다

 

이 친구들이 은밀히 알려 주기에

 

셋째 날은 저도 같이
보초를 섰습니다

 

이 친구들 말대로
시간이며 형태까지도

 

모두 사실이었습니다
혼령이 나오더군요

 

부왕을 압니다
이 두 손도 그렇게 똑같진 않을 겁니다

 

- 그게 어딘가?
- 저 망대 위입니다

 

- 말해 봤나?
- 제가 했습니다

 

그러나 대답은 없으시고 얼굴을 들고

 

무슨 말을 할 것 같았는데

 

요란스런 새벽닭이 울자

 

그 소리에 놀라서
급히 사라졌습니다

 

기이한 일이군

 

- 맹세코 사실입니다
- 하지만 심상치 않은 일이군

 

- 오늘 밤에도 보초를 서나?
- 예

 

- 찡그린 얼굴이던가?
- 슬픈 표정이었습니다

 

- 눈은 노려 보던가?
- 네, 줄곧

 

- 내가 있어야 했어
- 놀라셨겠죠

 

또 올지 모르니
오늘 밤엔 나도 보초를 서겠네

 

분명히 나올 겁니다

 

여태껏 이 일을 숨겨왔다면
앞으로도 침묵 속에 묻어두게

 

왕자님께 충성을!

 

우정이 맞는 걸세
잘들 가게

 

아버지의 혼령

 

상서롭지 못한 징조야

 

무슨 흉계가 있는 것 같아

 

밤이 기다려진다
그때까지 꾹 참는 거야

 

악행은 감추려 해도
사람 눈에 드러나고 마는 거지

 

.

 

덴마크를 위해 축배를 들고
축포를 터뜨려 천상에 고하자

 

- 저러는 게 관습인가요?
- 그렇다네

 

하지만 저런 관습은 지키는 것보다
깨트리는 게 더 낫지

 

축포를 터트리라고 해라

 

저렇게 술을 마셔 대니
여러 나라의 조롱을 받고

 

술고래라고 욕을 먹는 거야

 

이제껏 쌓아올린 공적도
명예를 잃고 마는 거지

 

.

 

살을 에는 듯이 무척 춥구나

 

지금 몇 시냐?

 

유령이 나타날 시간이
가까워졌습니다

 

개인의 경우에도
흔히 있는 일이야

 

타고난 결점이란 게 있으면

 

티 없이 맑은 미덕이
아무리 많다 해도

 

그 결점 때문에 썩어빠진 존재로
보여서 불명예를 당하게 되네

 

보십시오, 전하
나타났습니다

 

신의 가호가 있기를!

 

거룩한 신령이든
지옥의 악령이든

 

천상의 영기이든
지옥의 독기이든

 

의도가 선하든 악하든

 

그대에게 물어보겠소

 

햄릿 왕이라 부르리라

 

왕이시여!
아버지시여!

 

덴마크의 왕이시여!

 

대답하시오!

 

- 가시면 안됩니다
- 무서울 게 뭐냐?

 

아깝지 않은 이 목숨

 

내 영혼 역시 불멸일 텐데
무슨 해를 입겠는가?

 

파도나 바다 위에 우뚝 솟은
절벽으로 유인해서

 

갑자기 괴물로 변하여

 

전하의 이성을 빼앗아
미치게 하면 어찌합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내 따라가겠다

 

- 가시면 안 됩니다
- 손을 치워라

 

내 운명이 부르고 있어

 

비켜!

 

계속 가십시오
따라가겠습니다

 

.

 

- 전하?
- 햄릿 전하!

 

전하!

 

난 네 아비의 혼령이다

 

밤이면 떠돌아 다니다가

 

낮이면 지옥에 갇혀
불을 견뎌야 하는 운명이다

 

지옥의 비밀을 말할 수 없다만

 

하찮은 비밀 한 마디만 들어도
네 영혼은 고통받을 것이다

 

들어라! 햄릿!
오, 들어라!

 

네가 아버지를 사랑했다면

 

그 비열하고 흉악한
암살의 복수를 해다오

 

암살?

 

암살이란 뭐라고 해도 비열한 짓

 

그러나 이건 가장 비열하고
끔찍하고 흉악하구나

 

들어 보아라

 

정원에서 낮잠을 자다가
독사에 물려 죽은 걸로 알고 있겠지?

 

네 아비를 죽인 바로 그 독사가
지금 아비의 왕관을 쓰고 있다

 

아, 역시 내 예감이!
숙부가?

 

불륜을 일삼는
저 짐승만도 못한 자가

 

사악한 지혜와
음흉한 간계로

 

그렇게도 정숙해
보이는 왕비를 꾀어

 

수치스러운 짓을 하게 했다

 

하지만 침착해라

 

벌써 새벽바람이 부는구나

 

간단히 얘기하마

 

평소처럼 그날 오후에
정원에 누워 낮잠을 자고 있었다

 

단잠을 즐기던 중 네 숙부가

 

헤보나의 독약이 든 병을
들고 살며시 다가와

 

살을 뭉그러뜨리는 독약을
내 귀에 부어 넣었다

 

이렇게 나는 낮잠을
자다가 아우의 손에

 

생명과 왕관과 왕비를
한꺼번에 빼앗겼다

 

더군다나 내 죄악이
한창일 때 목숨을 잃어

 

임종 고해도 못하고

 

온갖 죄를 지닌 채
심판의 자리에 끌려갔다

 

오, 끔찍하다

 

끔찍해

 

정말 끔찍해

 

너에게 효성이 있다면
그대로 참지 마라!

 

덴마크 왕의 침실을
패륜과 음욕으로 더럽히지 마라

 

그러나 아무리
복수를 한다고 할지라도

 

네 어머니에 대해서는

 

비열한 마음을 먹거나
해칠 생각은 말고

 

하늘에 맡겨라

 

마음속 양심이
가시에 찔리도록 하라

 

이제 떠나야겠다

 

반딧불이 희미해지는 걸 보니

 

날이 새는 모양이다

 

잘 있거라!

 

잘 있거라

 

잘 있거라!

 

날 잊지 마라!

 

잊지 말라고요?

 

가엾은 혼령이시여!

 

내 머리 속에
기억이란 것이 있는 동안

 

어찌 잊으리까?

 

내 기억의 수첩에서
하찮은 것일랑 모두 지워 버리고

 

당신의 명령만을
내 머리 속 수첩에

 

간직해 두고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그래, 하늘에 맹세코!

 

오, 사악한 여인이여!

 

오, 악당!

 

악당, 미소짓고 있는 망할 악당!

 

내 수첩에 이렇게 적으리

 

당신이 아무리 미소를 짓고

 

또 지어도

 

악당은 악당이야!

 

그래, 숙부!

 

당신이야!

 

이제 내 좌우명은

 

"잘 있거라, 잘 있거라!"

 

"날 잊지 마라!"

 

이제 맹세했다

 

복수하리라

 

야호, 호, 호, 전하

 

나 여기 있네, 친구들
이리 오게

 

무슨 말씀이 있었나요?

 

- 안 돼, 말이 새 나갈 거야
- 맹세코 아닙니다

 

덴마크 악당은
다 극악무도한 놈들이야

 

겨우 그런 말하려고 혼령이
무덤에서 나오진 않지요

 

맞았어, 그러니 더 말할
필요 없이 헤어지세

 

어딘지 황당한 말씀입니다

 

기분이 상했다면 미안하네

 

- 화난 게 아닙니다
- 화난 게 있어, 매우 화나게 하는 거지

 

그건 악귀는 아닌 모양이네

 

자, 친구들
한 가지 부탁이 있네

 

오늘 본 것은 절대 비밀로 해주게

 

- 그럴 겁니다
- 검에 맹세해

 

맹세하라!

 

맹세하라!

 

본 걸 말하지 않겠다고
나의 검에 맹세하게

 

들은 걸 말하지 않겠다고!

 

그의 검에 맹세하라!

 

참으로 괴이한 일입니다

 

그러나 길손을
맞이하듯 반겨주세

 

세상에는 너의 추상적인 지식으로
상상 못할 일도 있는 거야

 

이리 오게!

 

아까와 마찬가지로
다시 한 번 맹세해 주게

 

바라건데 내가 기이한
행동을 한다해도

 

앞으로 미친 척 하는 게
맞을 것 같지만

 

나에 대해 뭔가
아는 척하지 말라는 걸세

 

맹세하게!

 

맹세합니다

 

쉬소서!

 

편히 쉬소서
가엾은 혼령이여!

 

아, 저주스런 운명이여!

 

그걸 바로 잡으려고
내가 태어나다니!

 

내일은 발렌타인 데이

 

동이 트면 아침 일찍

 

당신의 창 밑에 서서

 

당신의 발렌타인이 되겠어요

 

.

 

- 폐하!
- 무슨 일이냐?

 

햄릿 왕자가 실성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말해 보시오
듣고 싶소

 

국왕의 본분과 의무를 간하고

 

왜 낮은 낮이고 밤은 밤이며
시간은 시간인지 따지는 건

 

말할 것도 없이
시간 낭비입니다

 

그러므로 간결은 지혜의
본질이기에 간단히 아룁니다

 

왕자님께서 실성하셨습니다

 

실성이라 부르는 건 그 말 밖에
달리 표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수다는 그만 떨어요

 

수다 떠는 게 아닙니다

 

그가 미쳤다는 건 사실이며
그 사실이 유감이지만 사실입니다

 

수다 떨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만

 

왕자님의 실성을 인정한다면

 

남은 문제는 실성의
원인을 찾는 일입니다

 

아니면 광증의 원인이라 해야겠지요

 

광증의 결과에는
원인이 있기 때문이죠

 

그러니 남은 문제는
신중히 고려하십시오

 

소신에게 딸년이 있사온데

 

효심이 깊어
이걸 넘겨주었습니다

 

들으시고 헤아려주십시오

 

"천사와도 같은 내 영혼의 우상
가장 미화된 오필리아"

 

문장이 유치하죠
"미화된"은 서투른 문구입니다

 

그러나 들으셔야 합니다

 

햄릿이 보낸 건가요?

 

왕비님 잠시만요
마저 읽겠습니다

 

"밤하늘 별들의 만남을 의심하고"

 

"태양이 도는 걸 의심하고"

 

"진실을 거짓이라 의심해도"

 

"나의 사랑만은 의심하지 마오"

 

"아름다운 여인이여
당신의 영원한 종, 햄릿 드림"

 

딸은 이 편지를 제게
순순히 내놓았죠

 

그의 사랑을 받아들였소?

 

- 신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명예로운 충신으로 아오

 

신 또한 그러고자 하옵니다
딸에게 타이르기를

 

만나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오나 거절당하신
왕자님께선 비탄에 빠져

 

식음을 전폐하시고
잠도 못이뤄

 

애통하게도 실성을
하시게 된 겁니다

 

지금까지 신이 단정지어 말할 때
틀린 적이 있었는지요?

 

- 내가 아는 한 없소
- 제 말이 틀리면 목을 치십시오

 

더 알아볼 방법은?

 

- 복도를 여러 시간 왔다갔다합니다
- 그래, 맞아요

 

그때 제 딸과 만나는 걸
숨어서 지켜보면 어떻겠습니까?

 

만약 실연 당한 게
실성의 원인이 아니라면

 

소신은 관복을 벗겠습니다

 

슬픈 낯으로 책을
읽으며 오고 있어요

 

- 소신이 맡겠습니다
- 음

 

오필리아 때문일까?

 

그야 선왕의 승하와
우리의 조급했던 결혼 때문이겠죠

 

.

 

소신을 알아보시겠습니까?

 

알다마다, 생선 장수 아닌가?

 

- 아니옵니다
- 정직한 인간이 되어 주게

 

정직한 인간이라뇨?

 

하긴 요즘 세상에 정직한 사람이
만 명 가운데 하나라도 있을까?

 

햇볕이 개의 시체에
구더기를 끓게 하다면

 

썩는 고기에 입맞추는 셈이지

 

- 딸이 있소?
- 있사옵니다

 

햇볕에 나다니지 않도록 하시오

 

세상물정을 아는 건 좋지만
배라도 부르면 큰일이니까

 

친구여, 조심하시오

 

온통 내 딸 생각이군

 

뭘 읽고 계십니까?

 

 

말이라네

 

무슨 내용입니까?

 

- 누구와 누구의?
- 지금 읽고 계신 책 내용 말입니다

 

욕설이오

 

이렇게 써있소
노인들은 수염에 백발이 성성하고

 

얼굴은 쭈글쭈글하고
눈에는 송진 같은 눈곱이 끼고

 

노망이 들어 정신도 없고
다리는 후들거린다는 거요

 

말속에 뼈가 있는 대답이군!

 

모두 맞는 말이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적어 놓는 건
점잖지 못한 짓이지

 

게처럼 뒤로 갈 수만 있다면
경도 나와 같은 나이가 될 것이오

 

전하!

 

전하, 황송하오나
소신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내가 허락할 거라곤 그것뿐이오

 

이 목숨만 빼고

 

이 목숨만 빼고

 

이 목숨만 빼고

 

오필리아, 왕자의 병이

 

너의 아름다움 때문이라면
얼마나 다행이겠니

 

그러면 너의 미덕으로
다시 옛모습을 되찾아 주어

 

둘 다 행복했으면 좋겠구나

 

저도 그러길 원합니다

 

오필리아, 여기를 걷고 있거라

 

폐하께서는 이리로 자리하시지요

 

이 책을 읽고 있어라

 

오는군요
숨으시죠, 폐하

 

요정이여!
내 죄도 잊지 말고 기도해 주오

 

왕자님!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고맙소, 난 잘 있소

 

전하가 보내 주신 선물들을

 

오래전에 돌려드리려고 했습니다

 

부디 받아 주십시오

 

아니오
당신에게 아무 것도 준 적이 없소

 

전하께서 잘 아실 텐데요

 

선물과 함께 사랑의 말씀까지
있어서 더 값지게 생각했죠

 

그 향기 사라졌으니
다시 받아 주세요

 

받아 주세요

 

- 당신은 정숙하오?
- 전하?

 

- 아름답소?
- 무슨 말씀이신지?

 

정숙함을 위해
아름다움을 버려야 하오

 

정숙하고 아름다운 게 좋잖아요?

 

한때 당신을 사랑했소

 

네, 저도 그렇게 믿었죠

 

내 말을 믿지 말았어야 했소
사랑하지 않았소

 

아버지는 어디 계시지?

 

집에 계십니다

 

그럼 제집에서만 바보짓하게

 

문을 걸어 잠그고
단단히 가둬 두시오

 

그대가 굳이 결혼한다면
나의 저주를 혼수로 보내주겠소

 

당신이 얼음처럼 순결하고
눈처럼 순수해도

 

구설수를 피하지 못하리!

 

결혼하려거든 바보랑 해

 

현명한 남자는 여자들이
괴물로 만든다는 걸 잘 알아

 

여자들은 분을 처발라 신이 주신
얼굴을 딴판으로 만들어 버리고

 

간드러진 걸음을 걷고 순진한
탈을 쓰고 음탕한 짓을 하지 않나

 

가시오, 도저히 참을 수 없어
그래서 난 미칠 수밖에!

 

우리 이제
더 이상 결혼은 없다!

 

이미 결혼한 사람들은
한 쌍만 빼놓고 살려 두겠지만

 

나머지는 결혼하지 말아야 해

 

지켜봐야 합니다
조심해서 말입니다

 

그래, 어떻게든 빨리
결정을 내려야 해

 

조공도 독촉할 겸
즉시 영국에 보내야겠어

 

이국의 색다른
풍물을 접하다 보면

 

가슴에 맺힌 응어리가
풀릴지도 모르지

 

왕자의 실성을 그대로
방관해 둘 수는 없는 일이오

 

.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가혹한 운명의 화살과 돌팔매를
견디는 것이 고상한 일인가

 

아니면 바닷물처럼 숱한 고난과

 

싸우는 것이 고상한 일인가

 

죽는 건

 

그저 잠드는 것일 뿐...

 

잠들면 마음의 번뇌와 육체에
따르는 무수한 고통이 사라진다

 

죽음이야말로 우리가 바라는
삶의 결말이 아니던가?

 

죽는 건

 

잠자는 것

 

잠이 들면
꿈을 꾸겠지

 

그게 걸리는군

 

생의 굴레를 벗어나

 

죽음 속에 잠이 들었을 때

 

어떤 악몽이 나타날까
번뇌하면 망설일 수밖에...

 

그러니까 고해 같은 인생에
집착하는 거겠지

 

아니면 누가 이 세상의
채찍과 비웃음

 

폭군의 횡포와
권력자의 오만함

 

좌절된 사랑의 고통
지루한 재판

 

관리들의 오만불손

 

소인배에게서 받는
모욕을 참아낸단 말인가!

 

한 자루 칼이면 깨끗히
끝장낼 수 있는 것을

 

그 누가 평생 동안 신음하며
진땀을 흘린단 말인가!

 

결국 죽은 뒤에
밀어닥칠 두려움과

 

한번 떠나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미지의 세계가

 

망설이게 하는 것

 

알지도 못하는
저 세상으로 뛰어드느니

 

차라리 이 세상의 고통을
견디기 마련이지

 

이래서 분별심은 우리들을
모두 겁쟁이로 만들고 만다

 

그리하여 혈기 왕성하던 결심에도
창백한 병색이 드리워지고

 

이글이글 타오르던 큰 뜻도

 

잡념에 사로잡혀
길을 잘못 가고

 

결국 실행의 이름조차 잃어버린다

 

.

 

- 존경하는 왕자님!
- 친애하는 왕자님!

 

나의 반가운 친구들!

 

오랜만이오, 길든스턴?
로젠크란츠?

 

요즘 재미가 어떤가?

 

행운의 여신께 무슨 죄를
지었기에 감옥살이를 하러 왔나?

 

- 감옥이요?
- 덴마크는 감옥이야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네들은 아닌가 보군

 

본디 좋고 나쁜 건
다 생각하기 나름이니까

 

내겐 감옥이야

 

전하의 야망을 펴기엔
덴마크가 좁죠

 

천만에!

 

호두 껍질 속에 갇혀서도
무한한 우주의 왕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

 

나쁜 꿈만 안 꾸면 말이야

 

그 꿈이 실은 야망이죠

 

야망의 실체는
꿈의 그림자에 불과하니까요

 

그만 갈까?
난 이치를 따지는 덴 소질이 없어

 

.

 

무슨 일로 헬싱괴르에 왔나?

 

왕자님을 뵈려구요

 

난 거지꼴이라 감사에도 인색하네

 

하지만 누구 보내서 왔나?

 

자의로 왔나?

 

자유로운 방문인가?

 

자, 솔직히 대답하게
자, 자, 말해 보게

 

- 뭐라고 말씀드려야 좋죠?
- 사실을 말하게

 

자네들 얼굴에 나타나 있어

 

왕과 왕비께서
불러서 온 걸 알고 있어

 

왜 우릴?

 

그건 자네가 말해야지

 

솔직하게 불러서
왔는지 말해 보게

 

왕자님, 불러서 왔습니다

 

이유는 내가 말하지

 

그래야 자네들은
털어놓지 않아도 되고

 

왕과 왕비에게 불충을
범할 염려도 없을 테니까

 

왠지 모르게
아무 것에도 흥미를 못 느껴

 

해오던 무예 단련도 그만두었네

 

참으로 심사가 우울해져서

 

이 멋지고 웅장한 대지도

 

내겐 불모의 낭떠러지같이 느껴져

 

장대한 창공, 보게나
우리 위에 떠있는 멋진 하늘

 

황금의 별빛으로
아로새겨진 장엄한 지붕

 

그러나 내게는 다만 독기를 뿜어대는
더러운 악으로만 느껴지네

 

.

 

인간이란 얼마나
위대한 걸작인가!

 

이성은 얼마나 고매하고
능력은 무한하며

 

그 형상과 거동은 얼마나
분명하고 감탄할 만하며

 

행동은 얼마나 천사 같고
이해력은 신과 같이 뛰어난가

 

세상의 아름다움이오
만물의 귀감이지

 

그러나 나에게 죽어서 먼지가 되는
이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내게 남자는 역겨울 뿐이네

 

아니, 여자도 마찬가지야
웃는 걸 보니 자네도 그런가?

 

아닙니다

 

그럼 남자가 역겹다는데 왜 웃었나?

 

남자가 역겨우시면 배우들이
얼마나 냉대를 받을까 해서요

 

.

 

전과 똑같이 해!
자, 해봐!

 

말을 잡아!

 

비켜!

 

헬싱괴르에 잘 왔네

 

.

 

경이 배우들을 잘 대접해 주시오

 

배우들은 시대의 척도요
짧은 연대기라고 할 수 있소

 

죽어서 욕먹더라도
살아서는 욕 안 먹는 게 상책이오

 

- 신분에 걸맞게 대접하지요
- 더욱 융숭히 대접하시오

 

신분에 맞게 대접하다니
부랑자처럼 채찍질을 하겠다는 거요?

 

데려가시오

 

따라가게, 친구들!

 

연극은 내일 구경하기로 하세

 

전하!
햄릿 전하!

 

헬싱괴르에 온 걸 환영하네

 

그런데 숙부 겸 아버지와
숙모 겸 어머니는 속고 계시지

 

어떤 점에서요?

 

북북서풍이 불면 난 미치지

 

그러나 남풍이 불면
매와 왜가리는 구분할 수 있네

 

.

 

나는 겁쟁이인가?

 

빌어먹을!
비둘기 간만도 못한 놈이야

 

배알도 없는 놈이지 뭐야!

 

그렇지 않다면 벌써 그 악당을
죽여서 솔개밥이 되게 했어야지!

 

잔인하고 음탕한 악당!

 

잔악하고 음흉하며
호색무치한 악당!

 

오, 복수다!

 

얼마나 못난 놈인가?

 

참 장하기도 하지

 

친아버지는 암살당한 내게

 

하늘과 지옥이
복수하라고 다그치는데도

 

창부처럼 신세타령이나 하고

 

저주를 입으로만
뇌까리는 부엌데기

 

에잇, 체!

 

머리를 써!

 

그거 줘!

 

무거워!

 

죄진 놈들이 연극을 구경하다가

 

자기 죄와 똑같은
장면을 보고 놀라서

 

죄를 고백했다고 하지 않던가?

 

숙부 앞에서 아버지 살해 장면의
연극을 하게 해야지

 

그때 그의 안색을 살펴서
급소를 찔러보는 거야

 

그래서 움찔하기만 해도
내 어찌 미적미적하겠는가

 

내가 본 혼령이 악마인가?

 

악마는 형태를
마음대로 변한다는데

 

내가 허약하고
우울해진 틈을 타서

 

마수를 뻗치려는 건가?

 

그러니 좀 더 확실한
증거를 잡아야지

 

연극이야말로 왕의 양심을
사로잡을 유일한 수단이다

 

시간 다 됐네, 친구들

 

서두르게!

 

숙부를 잘 보게

 

감춰진 죄가 어느 대목에서도
나타나지 않으면

 

우리가 본 혼령은 악마고
내 추측은 틀린 거야

 

난 시치미 떼고 있겠네
어서 가보게

 

네, 전하

 

그들은 천하의 명배우들입니다

 

비극, 희극, 역사극, 목가극
목가적 희극, 역사적 목가극

 

비극적 역사극

 

비극적, 희극적, 역사적 목가극

 

각본이 있거나 즉흥극이거나

 

모두 다 잘합니다

 

대학 시절 연극을 하셨다면서요?

 

이래 봬도 명배우라는 평을 들었죠

 

- 무슨 역이오?
- 줄리어스 시저 역이었죠

 

신전에서 브루터스에게 살해당했습니다

 

경 같은 멍청이를 죽이다니
잔인한 역을 했군

 

요즘 어찌 지내느냐?

 

잘 지냅니다
카멜레온 요리를 먹고

 

약속으로 꽉찬 공기를 마시죠

 

햄릿, 이리 와서 내 곁에 앉으렴

 

아뇨, 이쪽이 더 끌리는군요

 

- 무릎에 누워도 되겠소?
- 안 됩니다

 

머리만 올려 놓아도?

 

- 알겠습니다
- 상스러울까 봐?

 

아닙니다

 

처녀 가랑이 사이에 눕는다?

 

- 무슨 뜻이죠?
- 아니오

 

기분 좋으신가 봐요

 

- 내가?
- 네, 전하

 

즐거운 일 외에는 없잖소?

 

저 행복한 얼굴 좀 보시오

 

선왕 승하하신지
두 시간도 안 됐소

 

두 달의 두 배는 지났습니다

 

벌써? 두 달이나 지났는데
아직 잊지 않다니?

 

영웅에 대한 기억은
죽은 후에도 반 년은 더 가겠군

 

.

 

수녀원으로 가시오
왜 죄인을 낳으려고 하오?

 

꽤나 성실한 나도 낳아 주신
어머니를 원망하고 있소

 

난 오만하고 복수심이
강하고 야심만만하여

 

무의식적으로 숱한 죄악을
저지르는 사람이오

 

나 같은 인간이 할 일이
도대체 무엇이겠소?

 

아무도 믿지 마시오

 

극단이 올리는 비극을

 

끝까지 봐주시길 간청드립니다

 

- 저게 서문인가, 반지에 새긴 글귀인가?
- 정말 짧구나

 

여자의 사랑처럼

 

결혼의 신 휘멘 앞에서

 

혼인 의식을 올린 후
벌써 30년이 흘렀소

 

해와 달은 우리의 사랑이

 

영원히 계속되게 해 주소서

 

하지만 해가 바뀌면
나는 죽게 돼오

 

당신은 개가하겠지

 

당신이 설사
죽는다 해도 그럴리 가요

 

그런 사랑은 배신이옵니다

 

재혼을 하느니
차라리 저주를 받겠어요

 

첫 남편을 죽인 여자나
개가할 수 있겠지요

 

쓰디쓰구나

 

그 말 진정이라 믿겠소
하지만 언약은 깨질 수 있는 것

 

이 세상이 영원하지 않듯

 

우리 사랑이 운명의 변화에 따라
변하는 건 당연하오

 

설마 저 맹세를 깰려구?

 

영원한 고뇌가 현세와
내세까지 날 쫓아와도

 

과부가 되더라도 영원히
당신의 아내로 남겠어요

 

- 연극이 어떻습니까?
- 왕비 역이 너무 수다스럽구나

 

- 하지만 약속은 지킬걸요
- 내용은 아느냐?

 

해괴한 내용은 없을 테지?

 

장난으로 독살하는 것 뿐입니다
해괴하지 않습니다

 

- 연극 제목이 뭔가?
- '쥐덫'입니다

 

음흉한 내용이지만 어떻습니까?

 

양심이 깨끗하니
우린 상관없지요

 

왕의 조카 '루치아누스'죠

 

- 해설자처럼 잘 아는구나
- 왕의 이름은 '곤자고'지요

 

곧 보게 되지만 살인자는
'곤자고' 왕비의 사랑도 얻게 되죠

 

.

 

어쩐 일이십니까?

 

.

 

등불을...

 

등불을 가져오너라!

 

등불!
연극을 중지하라!

 

뭐, 공포에 그만 놀라셨나?

 

화살 맞은 사슴아 울어라!

 

화살 맞은 사슴아 울어라

 

멀쩡한 사슴은 놀 테니

 

누구는 깨어 있고
누구는 자면서

 

세상만사 이렇게 돌아간다네

 

호레이쇼! 그 혼령의 말에
천 냥을 걸겠네, 자네 봤나?

 

- 네
- 독살에 관한 대화 장면도?

 

똑똑히 봤습니다

 

인간은 모두 악당이니
아무도 믿지 마시오

 

빨리 수녀원으로 가시오

 

안녕히!

 

- 한 마디 아뢰겠습니다
- 천 마디라도

 

- 폐하께서...
- 왜?

 

- 몹시 언짢아하십니다
- 과음하셨나?

 

무척 진노하셨습니다

 

전의를 부르는 게
더 현명하지 않겠소?

 

그러지 마시고
이치에 맞게 대답해 주십시오

 

- 그렇게 할 수 없소
- 네?

 

머리가 돌아서
이치에 맞게 대답할 수 없네

 

- 왕비 전하께서 저희를 보냈습니다
- 잘 오셨소

 

왕자님의 행동이 왕비 전하를
아주 놀라게 하셨습니다

 

훌륭한 아들이군
어머니를 놀라게 하다니!

 

왕자님, 울적하신 이유가 뭡니까?

 

슬픔은 친구와 나누셔야
스스로 자유로워집니다

 

이 피리를 불어 보게

 

못 붑니다

 

간청하네, 자
거짓말하는 것만큼 쉽지

 

불 줄 모릅니다

 

이런, 나를 보잘 것
없는 것으로 만드는군

 

나를 연주할 작정이었군
내 마음 속 비밀을 빼내려고

 

저음에서 고음까지
내 보려는 심사였어

 

그래 나를 피리보다 더 쉽게
불 수 있다고 생각하나?

 

곧 가 뵙는다고 아뢰시오

 

- 그러지요
- 말하는 거야 쉽지

 

지금은 마녀들이
활개치는 야심한 시각

 

무덤이 하품을 하고 지옥이
세상으로 역병을 내뿜는 시각이다

 

지금이라면 뜨거운 피도
마실 수 있고

 

낮에는 엄두도 못낼
잔인한 행위도 할 수 있다

 

우선 어머니께 가 보자

 

내 죄의 악취가
하늘까지 찌르는구나

 

인류 최초로 저주를 받은
(카인의) 범죄

 

형제를 죽인 죄

 

기회는 지금이다
기도드리는 동안 단칼에 해치우자

 

저 자는 천당으로 보내고
난 원수를 갚게 된다

 

이건 생각해 볼 문제다

 

아버지를 살해한 악당을
외아들인 내가 천국으로 보낼 순 없지

 

승천할 채비 중에 죽여 버린다?

 

이건 복수가 아니라
영혼을 구하는 셈

 

이 비참한 심정!

 

죽음과 같은 고통!

 

안 돼, 취해 잠들었거나
노여움에 치를 떨 때

 

음욕에 빠져 있을 때 해치우자
그럼 천당을 발뒤꿈치로 차버리고

 

시커먼 지옥으로
떨어질 게 아닌가

 

어머니가 기다리신다

 

제삼자가 엿듣는 게
좋을듯 합니다

 

- 어머님!
- 숨어요, 왔어요

 

어머님!

 

- 따끔하게 타이르십시오
- 걱정 말아요

 

어머님, 무슨 일입니까?

 

햄릿, 아버지가
너 때문에 진노하셨다

 

제 아버지는 어머니 때문에 진노하셨죠

 

아니, 말도 안 되는 소리

 

- 딱하신 말씀만 하십니다
- 어찌 된 거냐?

 

- 왜 그러시죠?
- 이 어미를 잊었느냐?

 

천만의 말씀
왕비이자 시동생의 아내이시고

 

아니면 좋겠지만 제 어머니죠

 

너를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을 부르겠다

 

오세요

 

여기 앉아서
움직이지 마세요

 

거울로 그 마음속을
비춰 드릴 때까지 가지 마세요

 

어쩔 셈이냐?
날 죽일 작정이냐?

 

- 사람 살려!
- 사람 살려요!

 

- 사람 살려요!
- 이건 뭐야? 쥐새끼구나!

 

죽었어!

 

- 저런, 이게 무슨 짓이냐?
- 모릅니다, 왕인가요?

 

이 무슨 잔인하고
난폭한 짓인가!

 

왕을 죽이고 그 동생과
결혼한 것만큼이나요

 

- 왕을 죽였다고?
- 네, 그렇게 말했습니다

 

가련하고 경망스럽고
아무 데나 끼어드는 바보

 

네 상전인 줄 알았지
이것도 팔자거니 해라

 

너무 촐랑대면
위험하다는 걸 깨달았을 거요

 

손만 쥐어짜지 마세요

 

조용히 앉으시죠
제가 그 가슴을 쥐어짜 드리죠

 

그 가슴이 목석은 아니겠죠?

 

내가 뭘 어쨌다고
무엄하게 대드는 거냐?

 

여인의 정숙함을 짓밟고
정절을 위선으로 몰았고

 

결혼의 서약을
헛되게 만드셨어요

 

대체 뭣이 어쨌다고?

 

여기를 보세요
이 그림과 또 이 그림을

 

두 형제를 그린 초상화입니다

 

이 이마에 서린
고귀한 기품을 보십시오

 

모든 신이 진짜 남자라고
세상에 내세우기위해

 

인간의 본보기로
만들었던 분이

 

어머니의 전 남편이셨습니다

 

이제 이 초상화을 보세요

 

건강하던 형을 말려 죽인 인간이
현재의 남편입니다

 

눈이 있나요?

 

이 아름다운 산의 먹을 걸 버리시고
황무지에서 안식하다니

 

눈이 있는 겁니까?
사랑이라 부르진 마세요

 

어머니 연세면 욕정도 식어
분별력이 생기게 되거늘

 

어찌 여기서 이리로
옮길 수 있습니까?

 

촉각이 없으면 시각
시각이 없으면 촉각이 있거늘

 

수치심은 어디로 갔습니까?

 

제발 그만해라

 

네 말을 듣고
내 영혼을 들여다 보니

 

지워지지 않는 시커멓게
더럽혀진 오점이 보이는구나

 

더럽고 역겨운 땀내가

 

진동하는 이불 속에 들어가

 

더러운 놈과 사랑을
나누는 게 고작이겠죠

 

제발 그만둬라!

 

네 말이 비수처럼
내 귀를 찌르는구나

 

- 살인마! 악당!
- 제발, 그만!

 

나라의 왕권을 훔쳐간 놈

 

넝마를 두른 거지 왕초!

 

하늘의 나래로 이 몸을
지켜 주소서, 천사들이여!

 

- 어찌하여 나타나셨습니까?
- 저 애가 미쳤구나

 

저를 꾸짖으러 오셨군요

 

그렇습니까?

 

잊지 마라!

 

이렇게 찾아온 건 무뎌진 너의
결심을 바로 잡아 주기 위해서다

 

봐라, 네 어미가
겁을 먹고 떨고 있다

 

저 영혼의 번뇌를
속히 덜어 드려라

 

어머니께 말을 해라

 

어떠십니까, 어머니?

 

너야말로 괜찮으냐?
눈에 불을 켜고

 

허공에 대고 얘기하다니

 

- 어디를 쏘아 보고 있니?
- 그분을요

 

누구에게 말하는 거냐?

 

- 안 보이세요?
- 전혀 안 보인다

 

- 소리는요?
- 우리 말소리밖에...

 

슬그머니 사라지고 있어요

 

- 아버님 생전 모습 그대로!
- 네 머릿속에서 지어낸 망상이야

 

저는 미친 게 아닙니다

 

어머니, 부탁하오니

 

영혼에 고약을
바르지 마세요

 

자신의 죄를 아들의
미친 탓으로 돌리지 마세요

 

하느님에게 고해하세요

 

과거를 뉘우치고
미래의 죄악을 피하세요

 

죄악의 잡초에 거름을
주어 퍼뜨리지 마세요

 

오, 햄릿
내 심장을 둘로 찢어 놓는구나

 

그렇다면 나쁜 쪽은 도려내고
나머지 깨끗한 쪽만 간직하세요

 

안녕히 주무세요

 

신의 축복을 받길 원하시면
저도 기도하겠습니다

 

저 영감은 안됐습니다

 

신은 이것으로 저를 벌주시고
영감을 처벌하셨습니다

 

시신는 제가 처리하죠
사람을 죽인 책임은 제가 지겠습니다

 

다시 한번 안녕히 주무십시오

 

가혹한 것 같지만
효심 때문입니다

 

시작이 나쁘면
끝은 더 나쁘게 될 겁니다

 

난 어찌할까?

 

왕이 유혹하면
침실로 따라가서

 

볼을 꼬집히며
생쥐라고 부르게 하세요

 

더러운 입맞춤을 하거나

 

손으로 목덜미를 애무 받으면서

 

모두 일러 바치세요

 

내가 미친 것이 아니고

 

미친 척한다고

 

염려 말아라

 

말이 숨결에서
숨결이 목숨에서 생긴 거라면

 

네 말을 입 밖에 낼
목숨이 내겐 없단다

 

정말 안녕히 주무십시오

 

이 영감도 이제야 조용하고
은밀하고 엄숙하군요

 

생전에는 어리석은 수다쟁이였는데

 

당신과의 일도
이제 끝장이 났다

 

안녕히, 어머니

 

거트루드!

 

거트루드!

 

- 아들은 어디 있소?
- 폐하, 끔찍한 일입니다

 

무슨 일이오
햄릿은 어찌됐소?

 

미쳤어요

 

바다와 바람이 맞붙어
겨룰 때처럼 발광하다가

 

숨어 있던 선량한 노인을
찔러 죽였어요

 

오, 이럴 수가 있나!

 

나도 그 자리에
있었으면 당할 뻔했군

 

경비!

 

가서 도움을 청하도록 하라

 

햄릿이 미쳐서
폴로니우스를 죽였다

 

- 햄릿 왕자님!
- 거기를 찾아봐!

 

- 햄릿 왕자님!
- 햄릿 전하!

 

- 거기를 봐!
- 저기야!

 

시신을 찾아오도록 보냈소

 

그렇다고 엄벌을
내릴 수도 없소

 

백성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니까

 

- 어찌 되었는가?
- 시체 둔 곳을 말해 주지 않습니다

 

왕자는 어디 있나?

 

자, 햄릿

 

폴로니우스는 어디 있나?

 

식사 중입니다

 

식사?

 

- 어디서?
- 본인이 먹는 게 아니라 먹히고 있는 중이죠

 

지금 정치 구더기들이
한창 먹어대고 있지요

 

맙소사!

 

왕을 먹은 구더기로
물고기를 낚고

 

그 물고기를 사람이 먹는 겁니다

 

그게 무슨 뜻이냐?

 

왕도 거지 뱃속에
들어갈 수 있다는 거죠

 

폴로니우스는 어디 있느냐?

 

천당에요, 사신을 보내시죠

 

거기서 못 찾으면 폐하께서
몸소 지옥으로 가보시던지

 

그러나 이달 안에
찾지 못하시면

 

복도로 통하는 계단에서
냄새가 날 겁니다

 

- 가서 찾아보아라
- 당신들을 기다릴 거야

 

햄릿, 네 신변의
안전을 위해 이곳을 떠나거라

 

그러니 영국 갈 채비를 하라

 

- 영국으로?
- 그렇다

 

- 좋습니다
- 내 뜻을 안다면 그래야지

 

그 뜻을 아는 천사가
눈에 선합니다

 

가자, 영국으로
안녕히 계십시오, 어머님

 

- 아버지라고 해야지
- 어머님입니다

 

아버님과 어머님은 남편과 아내
부부는 일심동체

 

그러니... 어머님이죠

 

영국으로 가자!

 

오늘 밤 안에
보내야겠으니 준비하라

 

임명장은 곧 보낼 테니
왕자와 영국에 같이 가게

 

어서 준비해서
여행을 서두르게

 

영국 왕이여
짐의 호의를 존중한다면

 

내 명을 소홀히 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친서에 명시해 놓았듯이

 

햄릿을 즉시 처형하라!

 

왕자님!

 

저는 영국으로 갑니다
알고 계시죠?

 

친서는 봉함돼 있고
왕명을 받은 두 동창생은

 

독사처럼 간교한 놈들이죠

 

이들이 길잡이가 되어
날 함정으로 몰고 가겠지만

 

해보라죠

 

제가 지뢰를 몇 자
더 깊게 파고 묻어

 

놈들을 달나라까지
날려 보낼 겁니다

 

.

 

사랑하는 내 님을
어떻게 알아낼까요?

 

모자와 지팡이
신발을 보면 알아요

 

.

 

젊은 남자들은 다 그래
그걸로 책임 없는 짓을 하지

 

내 옷고름 풀기 전엔
결혼한다고 약속했잖아요

 

저 해님에 맹세코 그러려고 했었지
네가 내 침대로 오지만 않았다면

 

저리 가요

 

죄악의 본성이 그렇지만
병든 내 마음에는

 

하찮은 하나하나가
재앙의 징조로 보이는구나

 

죄진 자는 겁이 많아
감출수록 더 들어나는구나

 

덴마크의 아름다운
왕비는 어디 있지?

 

덴마크의 아름다운
왕비는 어디 있지?

 

어디...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오필리아?

 

그는 떠나갔어요, 먼 나라로

 

그는 가셨어요, 하늘 나라로

 

머리에는 잔디 덮여 있고

 

발치에는 돌맹이 서 있고

 

언제부터 저랬소?

 

잘 있었느냐, 오필리아?

 

잘 있었죠

 

원래 올빼미는 빵집 딸이래요

 

오늘 일은 알아도
내일 일은 모르죠

 

모든 게 잘되겠죠

 

참아야겠지만

 

차디찬 땅속에 누우신 아버지를
생각하면 울 수밖에 없는걸요

 

.

 

오빠도 알게 되겠지

 

충고에 감사드립니다

 

마차야, 가자!

 

불쌍한 오필리아

 

실성하여 판단력을
잃고 말았어

 

안녕히 주무세요

 

아름다운 부인들 안녕, 안녕!

 

뒤따라가게

 

잘 보살펴 주게나

 

그녀 왈 ; 내 옷고름 풀기 전엔
결혼한다고 약속했잖아요

 

그가 대답하길

 

저 해님에 맹세코
그러려고 했었지

네가 내 침대로
오지만 않았다면

 

오, 거트루드

 

슬픔이 밀어 닥칠 땐
혼자 오지 않고 한꺼번에 오는 법

 

안 돼!

 

아가씨

 

.

 

"친서에 명시해 놓았듯이"

 

"햄릿을 즉시 처형하라!"

 

안 돼!

 

.

 

왕은 어디 있느냐?

 

내 앞에 나오라고 해!

 

왕은 어디 있어?

 

- 서시오, 레어티스!
- 그를 잡아!

 

이 비열한 왕!
아버지를 내놔!

 

진정하게, 레어티스!

 

놔줘라!

 

- 걱정할 것 없네
- 아버지는 어디 있느냐?

 

죽었네

 

무슨 일이 막쳐도
아버지를 위해 복수하고 말겠소

 

레어티스!

 

아버지 죽음의 진상을
알고 싶다면

 

친구, 원수 분간 없이
이래서야 복수를 할 것 같으냐?

 

상대는 원수 뿐이오

 

참으로 옳은 말이로다

 

기특하고 장부답다

 

나는 네 선친의
죽음에 대해 무관하도다

 

오히려 누구보다
애통해 하고 있다

 

이 사실은 네가 조금만
분별이 있다면 곧 알게 될 것이다

 

.

 

이건 로즈마리
기억하라는 뜻이고

 

제발 날 기억해 줘요

 

이건 팬지
사랑에 대한 상념이란 뜻이고

 

당신에겐 회향꽃과
매발톱꽃을 드리죠

 

눈물꽃을 드리죠
나도 좀 갖고요

 

눈물꽃은 달리 꽂아야 해요

 

데이지예요

 

제비꽃을 드리려고 했는데
아빠 죽을 때 모두 시들었어요

 

편히 잠드셨대요

 

오, 하늘이여!

 

젊은 처녀의 정신이 노인의
생명처럼 저리 허망할 수 있습니까?

 

.

 

버드나무가 비스듬히
서 있는 시냇가

 

거울 같은 물 위에
하얀 잎사귀가 비치는 곳

 

소녀는 미나리아재비, 쐐기풀

 

데이지와 야생란을 엮어
화환을 만들었지

 

늘어진 버들가지에 올라가
그 화환을 걸려고 할 때

 

샘 많은 은빛 가지가 부러져

 

그녀는 화환과 함께 흐느끼는
시냇물 속에 빠지고 말았어

 

그러자 옷자락이 활짝 퍼져

 

인어처럼 잠시
물 위에 떠 있었는데

 

그녀는 늘 부르던
노래를 부르더래

 

마치 자신의 불행을
모르는 사람처럼

 

아니 물에서 나서
물에서 자란 사람처럼

 

하지만 그것도 잠깐

 

마침내 옷에 물이 배어
무거워지는 바람에

 

아름다운 노래도 끊어지고
진흙 바닥에 휘말려 들어가

 

죽었다는구나

 

물에 빠져 죽었어요?

 

물에 빠져 죽었어

 

참으로 달콤하다 생각했지

 

시간을 내 뜻대로 보냈어

 

그게 최고라고 생각했다네

 

하지만 백발이
도둑발로 다가와

 

억센 손으로
이 몸을 움켜쥐고...

 

- 누구의 무덤인가?
- 제 무덤입니다요

 

그 안에 있는 걸 보니
자네 무덤이 맞군

 

- 어떤 사내를 묻을 건가?
- 사내가 아닙죠

 

- 여자의 무덤이란 말이냐?
- 그것도 아닙죠

 

그럼 누굴 묻을 것이냐?

 

전에는 여자였지만
지금은 죽은 혼백일 뿐입죠

 

정말 까다로운 놈이군!

 

언제부터 무덤 파는
일을 해 왔나?

 

햄릿 왕자가 태어난
바로 그날입죠

 

실성하셔서 영국으로 보냈습죠

 

왜 영국으로 보냈다던가?

 

실성하셨으니까요
거기 가면 정신이 돌아오겠죠

 

안 돌아와도 거기선
상관없을 겁니다

 

왜?

 

그곳 사람들은 다 미쳐서
눈에 띄지 않을 겁니다

 

시체는 얼마 지나면 썩는가?

 

죽기 전부터 썩지 않으면
대개는 8, 9년 족히 견뎌냅죠

 

여기 이 해골은 땅속에
묻힌지 23년 된 것입죠

 

- 누구의 것이냐?
- 어떤 미친놈의 것입죠

 

내 머리에 포도주를 부은 적이 있죠
짐작이 가십니까?

 

난 모르겠구나

 

이 해골은 왕의 어릿광대였던
요릭이랍니다

 

- 이게?
- 틀림없습니다

 

어디 보자

 

아, 불쌍한 요릭!

 

그를 알아, 호레이쇼

 

기막히게 재담을
잘하던 친구였어

 

나를 천 번쯤은
등에 업고 다녔을 거야

 

지금 이 꼴이 되고 보니
온몸에 소름이 끼치고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난다네

 

이쯤 달려 있던 입술에
얼마나 자주 키스했는지 몰라

 

그 익살은 어디로 갔는가?
그 광대 춤, 노래는?

 

배꼽 빠지도록 좌중을
웃게 만들었잖나?

 

이젠 이빨 드러낸 네 몰골을
네 자신이 비웃어 보라고

 

그래, 그 꼴로 여자들
방에 가서 전하게

 

"아무리 분을 두껍게 발라도"

 

"이 꼴을 면치 못해"라고

 

그러면서 여자를 웃겨 보라고

 

.

 

저기 왕이 온다
신하들과 함께

 

누구의 장례식이지?

 

편히 쉬거라

 

아름답고 순결한 몸에서
제비꽃이 피어 다오

 

예쁜 꽃을 받아라

 

잘 가거라

 

널 햄릿의 아내로
삼고 싶었다

 

신방을 꾸미려던 이 꽃을

 

네 무덤에 뿌리게 될 줄이야

 

아직 흙을 덮지 말아라
한 번만 더 안아 보자꾸나

 

오월의 장미!

 

귀여운 처녀!

 

다정한 내 동생!

 

- 이 지옥에 떨어질 놈!
- 냉큼 내 목에서 손을 떼거라

 

위험이 닥치면
물불 안 가리니 손을 놔라

 

어서 떼어 놔라!

 

진정하십시오

 

난 오필리아를 사랑했어

 

4만의 오빠가 그들의 사랑을
다 합쳐도 내 사랑만 못하리라

 

그녀에게 뭘 할 거냐?

 

어떻게 할 테냐?

 

레어티스
난 항상 널 좋아했다

 

이젠 다 상관없어

 

헤라클레스가
제아무리 용을 써봤자

 

고양이는 야옹거릴 거고
개는 멍멍거릴 거니까

 

.

 

부탁하네, 호레이쇼
따라가 보게

 

내 지시를 따르겠느냐?

 

예, 화해하란 말씀만 아니면요

 

너의 한을 풀어주자는 거다

 

하오나 왜 즉각
처벌하지 않으셨습니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왕비는 그 녀석 때문에 살지

 

그리고 나 자신도 장점인지
화근인지 알 수 없지만

 

왕비와 도저히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어

 

별이 궤도에서
벗어날 수 없듯이

 

나도 왕비 없이는
살 수가 없다

 

또 다른 이유는 백성들이
그를 좋아하고 있기 때문이다

 

레어티스
진정으로 선친을 사랑했느냐?

 

아니면 마음에도 없으면서
슬픈 척하는 것이냐?

 

왜 그런 말씀을?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게 아니다

 

그러나 레어티스

 

아버지의 아들로서 말이 아닌
행동으로 넌 무얼 하겠느냐?

 

교회 안이라 해도
그의 목을 베겠습니다

 

복수에 성역은 없다

 

하고자 하는 일은
당장 실행해야 한다

 

놈을 설득해서 내가
생각해 둔 계략을 쓰면

 

왕자는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의 죽음에 대해
아무도 시비를 걸 수 없어

 

왕비도 사고로만 여기고
의심하지 않지

 

햄릿 전하!
햄릿 전하!

 

덴마크로의 귀국을
충심으로 환영합니다

 

고마운 말이군

 

바쁘시지 않으면
폐하의 분부를 아뢰겠습니다

 

여부가 있겠나
어서 얘기하게

 

그 모자는 머리에 쓰는
물건이 아닌가?

 

하도 더워서요

 

천만에, 대단히 추운걸

 

폐하께서는 왕자님께
굉장한 내기를 거셨답니다

 

레어티스는 흠잡을 데
없는 신사이지요

 

그의 실력을 잘 아실 겁니다

 

남을 알려면
나 자신부터 알아야 되지

 

폐하께선 6필의
바바리산 말을 거시고

 

12회전을 하실 것이며
그가 3승을 앞서야 이깁니다

 

시합을 승낙하시면
내일 거행될 겁니다

 

폐하를 위해 이기리라

 

지더라도 망신이나
당하면 그만 아닌가?

 

가서 그렇게 아뢰오리까?

 

폐하께서 좋으시다면
나는 언제라도 좋소

 

신체 상태만
지금과 같다면 말이오

 

이번 내기에서 지실 겁니다

 

내 생각은 달라, 난 줄곧
연습을 해 왔으니 이길 걸세

 

하지만 왠지 불길한
마음이 드는군

 

하지만 상관없어

 

내키지 않으시면 그만두십시오

 

그만 두게
육감은 믿지 않네

 

묘안이 있어!

 

싸우는 동안
덥고 갈증이 날 때

 

한 모금만 마셔도
죽는 독주를 준비할 거야

 

저는 칼끝에
독약을 묻히겠습니다

 

어떤 돌팔이 의사한테서 샀는데

 

치명적이라 살짝스치기만 해도
틀림없이 죽을 겁니다

 

"너는 죽는다"라고 말할 걸
생각하니 속이 다 후련해 집니다

 

한 마리 참새가
떨어지는 것도 하늘의 섭리

 

죽음이 지금 오면
나중에 안 오고

 

나중에 안 오면
지금 올 것이다

 

만약 지금 안 와도
언젠가는 오게 될 것이다

 

요는 각오만 있으면 돼

 

.

 

경례!

 

햄릿, 이리 와서
내가 주는 이 손을 잡아라

 

용서해 주시게
내가 잘못했네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하게

 

여러분들 앞에서 토로하니
지붕 너머로 쏜 화살이

 

형제를 맞힌 격이라
여기고 관대하게 봐주게

 

마음이 풀립니다

 

그러나 명예에 관한 한 물러서지
않을 것이며 화해도 없을 겁니다

 

그러나 전하의 우정을 받아들이고
거역하지는 않겠습니다

 

그 말 고맙게 받아들이겠네

 

자, 그럼 형제지간처럼
시합을 하세

 

검을 다오!

 

내게도 주시오

 

햄릿, 내기 얘기는 들었지?

 

네, 약한 쪽에
유리한 조건을 주셨다죠

 

두 사람의 실력을 아니
그렇지 않아

 

포도주 잔을 저 탁자 위에
갖다 놓아라

 

만약 햄릿이 1회전나
2회전에서 이기면

 

짐은 햄릿의 건투를
위해 건배할 것이며

 

북을 쳐서 나팔수에게 알리고
나팔수는 포수에게 알려라

 

포성을 하늘에 울려
대지에 전달케 하라

 

"왕이 햄릿 왕자에게 축배를!"이라고

 

.

 

- 1점!
- 아니오!

 

- 1점, 확실한 한 방입니다
- 그럼, 다시

 

잠깐!

 

술을 따라라

 

햄릿! 이 진주는 네 것이다

 

건투를 빈다!

 

먼저 승부를 내겠습니다
잠시 거기 놔두십시오

 

.

 

잠깐!

 

.

 

- 또 1점, 어떤가?
- 닿았소, 인정합니다

 

- 아들이 이길 것 같군
- 숨이 가쁜 모양이다

 

햄릿의 행운을 위해
축배를 들겠다

 

왕비! 마시면 안 돼오

 

마시겠어요, 폐하
용서하세요

 

잠시 후 마시겠습니다

 

자, 어미가 네 얼굴을 닦아 주마

 

.

 

이건 너무 무겁군

 

3회전이다, 레어티스
나를 놀리는군

 

그렇다면, 갑니다!

 

.

 

떨어져!

 

양쪽 무득점, 떨어져요!

 

.

 

불공정해!

 

다시 덤벼!

 

싸워, 레어티스!

 

저기 왕비를 봐라!

 

양쪽이 피를 흘리고 있다

 

- 괜찮으십니까?
- 왕비 전하는 어때?

 

피를 보고 기절하셨다!

 

아냐, 아냐!

 

저 술이...

 

저 술이...

 

오, 햄릿!

 

음모다!

 

문을 잠가라!
반역이다, 범인을 찾아라!

 

이 안에 있습니다
왕자님도 목숨을 잃습니다

 

어떤 약도 소용이 없습니다

 

왕자님 손에 쥔 그 칼은

 

칼끝도 날카롭고
독이 묻어 있습니다

 

이 비열한 음모가
제게로 돌아왔습니다

 

제가 꾸민 흉계에
죽게 되는군요

 

우리 서로 용서합시다

 

저나 아버님의 죽음이
왕자님 탓이 되지 않기를!

 

- 나의 죽음은 자네 탓이 아닐세
- 더 이상 기력이 없어

 

저 왕이...
왕이 저지른 겁니다

 

이 칼끝에도 독을 칠했어?

 

그렇다면 독약 맛 좀 봐라!

 

날 보호하라

 

이 불륜을 저지르고 살인을 한
저주받을 덴마크 왕아

 

이 독을 마셔라

 

여기도 독이 있느냐?
어머니 뒤를 따라가!

 

.

 

호레이쇼, 나는 죽는다

 

가엾은 왕비시여

 

편히 가세요

 

모두 이 불행에 창백한
얼굴로 떨고 있구나

 

시간만 있다면...

 

죽음의 사자가 사정없이
날 끌고 가는구나

 

할 말은 많지만

 

그만둬야지

 

호레이쇼, 난 가네

 

자네는 살아남아
사실대로 사람들에게 밝혀 주게

 

전말이 알려지지 않는다면

 

내게 어떤 오명이
남을지 모를 것 아닌가?

 

자네가 날 소중히 여긴다면

 

잠시 천상의 행복을
멀리하더라도

 

이 욕된 세상에 남아

 

괴로움을 참고 살면서
내 얘기를 전해 주게

 

나는 죽네, 호레이쇼

 

맹독이 내 정신을 마비시키는군

 

이제 남은 건 침묵뿐이다

 

편히 가십시오, 왕자 전하

 

천사들의 노랫소리 들으시며
고이 잠드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