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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드의 시민 여러분
오늘도 좋은 아침입니다

 

아침 햇살이 밝아 오는 가운데

 

기온은 30도를 넘어섰습니다

 

모두 건강에 유의하십시오

 

20년 만에
가장 무더운 날이니까요

 

조언을 드리자면

 

수분을 많이 섭취하고
옷을 가볍게 입으십시오

 

이제 다이어리에 받아 적으세요

 

무더위와 폭염을
이겨 내는 방법을...

 

미안해, 자기

 

아니야

 

빌어먹을

 

진정해

 

누구 있어?

 

날씨가 너무 덥네

 

그러게

 

있잖아

 

왜?

 

정말 미안해

 

괜찮아, 마르코스
너무 더워서 그런가 보지

 

어젯밤도 못 잤어?

 

침대에서 계속 뒤척이다가

 

온 집 안을 돌아다녔잖아

 

깨우기 싫어서 그랬어

 

너 때문에 잠이 깨서

 

한동안 누워 있다가

 

나도 모르게 다시 잠들었어

 

우리 못난이

 

목말라 죽겠는 못난이지

 

- 무슨 일 있어, 마르코스?
- 아무것도 아니야

 

- 정말?
- 그래

 

여기가 텅 빈 게
마음에 안 들 뿐이야

 

여기서 지낸 8년이

 

상자 20개와
비닐봉지 15개로 정리된 게

 

그걸 다 세어 봤어?

 

당연하지

 

뭐 하러?

 

글쎄

 

여기를 얼마큼 차지했었나
알고 싶어서?

 

그거 알아?

 

난 몇 년 후에 여기 돌아와서

 

누가 이 침대에서
떡 치는지 알고 싶어

 

셀레스테와 에세의 방을
누가 쓰는지도

 

왜?

 

어떻게 바뀌었을지 궁금해서

 

모든 건 변하고
끝나는 법이야, 마르코스

 

좋은 건 변하면 안 되잖아

 

혹시 모르잖아

 

완전 다른 무언가로
더 좋게 변할지

 

무슨 책에서 본 구절이야?

 

기억나?

 

여기서 처음 관계한 날

 

- 처음 한 날?
- 그래

 

당연히 기억하지

 

넣기도 전에 사정하고
거기를 물어뜯겼잖아

 

- 거짓말하지 마
- 아니야?

 

- 그래
- 정말?

 

마르타 가르니카, 사실대로 말해

 

세게 물지는 않았어

 

너무 긴장한 데다
입에 안 들어갔단 말이야

 

질문 하나 할게

 

시간 여행이 가능해서

 

네가 과거의 널 만났어

 

그리고?

 

19살의 마르타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어?

 

- 살 빼라고 할 거야
- 마르타, 진지하게 대답해

 

글쎄, 모르겠어

 

어차피 잘 안될 테니
멋대로 살라고 할까?

 

누가 영화의 결말을
알고 싶어 하겠어

 

그래도 이거 하나는
말해 줘야 할까 봐

 

- 뭔데?
- 그러니까...

 

어느 날 너는

 

중앙 도서관 카페에서

 

어떤 의대생을 만날 거야

 

그 사람은 우유를 마시고 싶은데
돈이 없다면서

 

잔돈을 빌려 달라고 하지

 

너는 우유를 사 주고

 

그 남자는 답례로 가까운 주말에

 

끝내주는 데이트를 선사해

 

중화요리와 노래방

 

그게 19살의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야

 

그 한심한 남자가
무대 위에 올라서

 

'1980년대'라는 노래를
우스꽝스럽게 부르는데

 

넌 사랑에 빠질 거라고

 

- 네게 전화했을 땐
- 그만해

 

꿈에도 몰랐어

 

- 색색의 점토와 속옷
- 색색의 점토와 속옷

 

- 그리고 추억들
- 그리고 추억들

 

안녕하세요

 

흑백 사진이 괜찮네요

 

어려운 일은 아니에요
간단하거든요

 

제일 귀찮은 건

 

아이 사진을 찍을 때
히스테리 부리는 부모들이죠

 

인내심과 요령만 있으면
아무 문제 없겠지만요

 

내가 말발은 좋아요

 

어디 보자

 

이것만 제출하면 끝이에요

 

마리아한테는
당신이 인계받는다고 했어요

 

문제가 생기거나 궁금한 거 있으면

 

내가 준 번호로 연락해요

 

부모들이 앨범을 거부해도

 

무조건 사진은 넘겨줘요

 

걱정 마요, 알아서 할게요

 

여름 동안만 일하는데
별일 있겠어요?

 

마리아는 당신이
굉장한 인재라던데요

 

그렇다고들 하죠

 

왜 떠나요?
다른 직장보다 괜찮은데

 

그렇죠, 근데 여름도
5년이나 보내서요

 

최장 기록이에요

 

받아요

 

가운을 받기 전까지는
내 걸 입고 있어요

 

말하는 걸 잊었는데
병원 규정이거든요

 

알았어요

 

여름은 마드리드에서 지내요?

 

아니요

 

난 히혼에 돌아가서
며칠 있다 오려고요

 

그럼 할 일이 있어서 이만 갈게요

 

젠장

 

에세, 나야

 

아니, 잘 안됐어

 

어딘지 모르겠네

 

맞아, 루세로야

 

나 좀 데리러 올래?

 

깡촌에서 한 푼도 없이
오도 가도 못 하고 있어

 

나도 알아

 

장난치지 마
나도 알아, 미안해

 

알았어?

 

그럼 집에 들렀다 빨리 와

 

아무튼 고마워

 

사랑해, 이따 봐

 

"부재중 전화 3통
미등록 번호"

 

여보세요

 

부재중 전화가 와 있길래
연락했어요

 

제가 셀레스테 리바스예요

 

네, 아직 관심 있어요

 

왜 그렇게 입었어?

 

원래는 집에 가서 자려고 했었어

 

- 아직도 고장이야?
- 뒤에 타

 

마르코스

 

마르코스

 

"유럽"

 

말썽이네

 

"에세"

 

"'방'
에세 실라스"

 

- 그게 뭐야?
- 사적인 편지

 

보여 줘

 

- 안 돼, 내 편지야
- 그런데?

 

- 사적인 게 뭔지 몰라?
- 알아

 

런던이네, 웬 런던이야?

 

언제부터 알았어?

 

조금 됐어

 

- 왜 나한테 말 안 했어?
- 지금 말하잖아

 

내가 읽은 거지

 

당연히 안 될 줄 알고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어

 

지금 보니까 아니지만

 

그러네

 

근데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르겠어

 

어떻게 해 줄까?

 

너 배우잖아
기쁜 척 연기라도 해

 

그럼 언제 출발해?

 

일주일 남았어

 

- 일주일?
- 그래

 

일주일이라니!

 

출발하기 일주일 전까지
나한테 말을 안 했다고?

 

어차피 석 달간 부모님 댁에서
지낼 예정이었잖아, 똑같지 뭐

 

- 똑같긴 개뿔
- 그래, 더 잘된 거지!

 

어쨌든 달라질 건 없어
매일 영상 통화 하면 되니까

 

같이 대본 읽을 사람이
필요하면 말이야

 

이제 같이 대본 읽어 줄 필요 없어

 

그게 무슨 소리야?

 

여기 세워, 목말라

 

숙취 때문인가 보네

 

맞아, 에세
숙취 있으니까 세우라고

 

셀레스테, 왜 그래?

 

이봐요!

 

- 현금 있어?
- 그래

 

- 얘가 계산한대요
- 무슨 일 있어?

 

아무 일 없어서 문제지

 

내 인생엔 아무 일도 없어

 

아니, 없지는 않았어

 

대학교 근처에
패스트푸드점을 연대

 

미국 프라이드치킨 체인점인데

 

소송이 무서워서 이름에
'치킨'을 넣지 못한다나

 

혹시 몰라서 이력서를 넣었는데

 

오늘 아침 연락이 왔어

 

잘됐네

 

거기 취직하면 좋은 거 있어?

 

뭔가는 있겠지, 에세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 낫잖아

 

이제 모르는 사람 전화
목 빠지게 안 기다려도 돼

 

음침한 지하철역에 갇혀도
택시를 탈 돈이 있고

 

출연료도 청구할 수 있어
최대 10분밖에 안 됐지만

 

지긋지긋할 만큼
평범한 인생을 살 거야

 

- 난 평범한 거 싫어
- 알 게 뭐야

 

넌 정말 멋진 배우야
특별한 사람이라고

 

이게 문제야, 에세
우리가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거

 

그리고 누구도 우리가 틀렸다고
말해 주지 않지

 

마르타?

 

좋은 아침이에요

 

안녕하세요

 

잠깐만요, 그거 내 거예요

 

뭐가요?

 

- 티셔츠요
- 티셔츠?

 

몇 년 전 테라스에서 찾았어요
나는 1C호에 살거든요

 

이웃들한테 물어봤는데
주인을 모르더라고요

 

- 버리긴 아까워서요
- 나한텐 안 물어봤잖아요

 

- 몇 호에 사는데요?
- 9B호요

 

9B호? 거기까진 안 갔어요

 

잠깐만요

 

교환할래요?

 

둘 다 내 건데 뭘 교환해요

 

당신이 거짓말하는 거면요?

 

진짜 주인은
이사 갔을 수도 있잖아요

 

당신은
올림픽 세대 같지 않거든요

 

거짓말이죠?

 

그쪽으로 갈게요

 

내가 갈게요, 티셔츠에 냄새 배요

 

난 마르코스예요

 

독하죠?

 

반가워요, 9B호의 마르코스
나는 마기예요

 

- 반가워요, 1C호의 마기
- 네

 

그거 알아요?

 

티셔츠 주인은 내가 맞아요

 

나보다 15살 많은
우리 형 거였어요

 

내가 어릴 때
그 옷을 아주 좋아했는데

 

막상 입으면

 

발목까지 내려왔죠

 

나는 부모님께
스트리퍼가 되겠다면서

 

티셔츠를 벗어 던지고
엉덩이를 흔들어 댔어요

 

13살이 되고는 다 잊었지만요

 

여기 공부하러 올 때
형이 티셔츠를 주더라고요

 

날 위해 간직했다나요

 

카세레스에 휴가 갔을 때
잃어버렸거나

 

엄마가 버린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가까이 있었네요

 

빨래 걷는 거 도와줘요

 

좋아요

 

"'방'
에세 실라스"

 

짜증 나니까 따라오지 마!

 

네 방으로 가

 

- 잠깐만, 셀레스테
- 나 좀 내버려 둬

 

상자 더미 사이에
혼자 있고 싶으니까

 

- 제발 그만 좀...
- 내버려 두라고!

 

지금 얘기하기 싫어

 

혼자 있게 해 줘!

 

영어로 해야 알아들어? 가라고

 

내가 뭘 어쨌다고

 

네가 내 아빠야?
나 좀 내버려 두라고

 

에세, 제발 가

 

나 이거 잘 못해요

 

아무 생각 없이 하면
어렵지 않아요

 

- 내가 하는 걸 봐요
- 알았어요

 

당신이 필요할 때...

 

뭐 하는 거예요?

 

시트 개면서 노래해요

 

우리 노래인데요

 

우리 노래요?

 

티셔츠랑 담배부터 시작해서

 

노래도 당신 거라고요?

 

온 세상의 주인이라도 돼요?

 

당신 집 앞에서 내가 울면...

 

그다음은 뭐죠?

 

당신 집 앞에서 내가 울면

 

당신 집 앞에서 내가 울면

 

당신 집 앞에서 내가 울면...

 

기억 안 나요

 

그날 경찰을 부른 건

 

내 남편 파블로였어요

 

당신들 둘이 여기서
큰 소리로 노래해서

 

많이 거슬렸나 봐요

 

나는 젊은 사람들 좀 놀게

 

내버려 두라고 했는데

 

남편은 이해 못 했어요

 

여기 이사한 첫날 밤은
오늘처럼 무더웠어요

 

우리는 술을 가지고
옥상 위로 올라왔죠

 

보드카와 오렌지 주스로

 

멋진 인생을 시작한
기분을 만끽했어요

 

마드리드 전체를 내려다보니

 

도시는 너무나 작고

 

우리는 거대해진 느낌이라서

 

그 노래를 우렁차게
엉망으로 불러 댔죠

 

머저리들처럼요

 

당신이 필요할 때는

 

- 대체 어디에 있었죠?
- 어디에...

 

나중엔 습관이 돼서

 

우리가 술에 취하거나
기분이 째질 때면

 

여기 올라와서 노래했어요

 

결국은 이웃이 경찰에 신고했고

 

늘 그렇듯이 우리는
다신 안 하겠다고 했죠

 

알고 보니 그 이웃은 파블로고

 

그 부인은 티셔츠 도둑이네요

 

파블로는 좋은 사람이에요

 

무엇이 중요한지
잊어버렸을 뿐이죠

 

껌 있어요?

 

아니요, 근데 당신은...

 

술 취해서
옥상에 올라와 노래하는 게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가 봐야겠어요

 

티셔츠 돌려줄래요?

 

고마워요

 

냄새가 좋네요

 

또 잃어버리면 찾으러 와요

 

우리 이사 가요

 

그러니 여기서
잃어버릴 일은 없겠죠

 

오늘이 이곳에서의
마지막 날이거든요

 

내일부터 오비에도에서
레지던트로 수련하는데

 

정말 좋은 도시래요

 

의사예요?

 

의사 지망생이죠

 

의사라기보다는

 

스트리퍼처럼 보이는데요

 

스트리퍼의 감은
13살 때 잊어버렸어요

 

티셔츠를 찾았듯이
감을 되찾을지도 모르죠

 

뭐예요? 당신까지 나한테
왈가왈부하지 마요

 

- 안녕
- 안녕

 

- 도와줄까?
- 아니, 됐어

 

심심해서 그래

 

마르코스는 나갔고
내 짐은 전부 쌌거든

 

- 가져가기만 하면 돼
- 잘됐네

 

그냥 내가 도와줄게
더 빨리 끝날 거야

 

나 오비에도에 취직했어

 

- 정말?
- 응

 

어제 전화가 와서

 

여학교에서 발레를
가르치기로 했어

 

좋은 소식이네

 

가르치는 일은 처음이라서
조금 걱정돼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있을까?

 

나야 모르지

 

내버려 둬

 

나 혼자 하는 게 나아
어디 넣을지 아니까

 

넌 여기 살지도 않잖아

 

거의 산다고 봐야지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야

 

네가 귀여워서

 

잠깐 네 방에 가도 돼?

 

보여 줄 게 있거든

 

들어와

 

내가 보여 주려는 건

 

마르코스에게 줄 선물이야

 

레지던트 되는 기념으로

 

오늘 밤 선물하려고

 

절친인 네가 보기엔 어때?

 

이게 뭔지도 모르겠는데

 

- 지도야
- 그건 나도 알아

 

우리가 같이 가기로 했지만
아직 못 간 곳들이야

 

마르코스는 여기에
우리를 기다리는 게 있어서

 

그걸 찾으러 가지 않으면

 

어중간하게 끝날 뿐이고

 

'빗속의 눈물'처럼
잃어버리고 말 거래

 

'블레이드 러너'에 나온 말이네

 

그래?

 

마르코스가 좋아하는
노래 가사인 줄 알았어

 

영화를 위해 쓴 노래야

 

여행은 다음 주부터야

 

이제 뭔지 알았지?
마르코스가 좋아할까?

 

누구 없어?

 

아무도 없나 했는데

 

어떻게 됐어?

 

- 에세가 떠난대
- 잠깐이잖아

 

걔 부모님 집은 끝내줘
풀장에 에어컨에...

 

다림질하는 가정부도 있다니까

 

- 만나러 가면 돼
- 아니, 런던으로 이사한대

 

정말?

 

언제?

 

장학금 받고 영화 공부하러 간대

 

일주일 후에

 

잘됐네, 진작 그래야 했어

 

내가 좋아하는 티셔츠네
잃어버린 줄 알았는데

 

맞아

 

1C호에 사는 사람 알아?

 

- 아니
- 옥상에서

 

빨래를 널고 있더라고
검은 머리에 섹시해

 

완전 미인이던데

 

누군지 알겠다

 

얘기는 나눈 적 없어
근데 평범하게 생겼지 않아?

 

계단에서 만났을 때
나한테 인사는 하는데

 

그쪽 남편은 날 보면
인상을 좀 쓰더라

 

아무튼 평범한데, 왜?

 

궁금해서 물어봤어

 

하던 일 마저 해야겠다

 

문 좀 닫아 줘

 

오늘 밤은 예쁘게 입어

 

이사 가기 전에
옥상에서 판을 벌여야지

 

파블로가 어김없이
경찰에 신고하겠지만

 

파블로가 누구야?

 

마시자

 

마음에 들어?

 

- 미쳤네
- 맛대가리 없어

 

아브릴이다, 아브릴!

 

귀염둥이!

 

- 마르코스, 안 돼
- 난 의사 지망생이니까

 

약의 효과 정도는 알아
어디 맛 좀 보자고

 

- 정말 재밌을 거야
- 좋을 대로 해

 

에세, 따라와

 

네가 런던에 간다니 기뻐

 

- 정말 좋은 기회잖아
- 놓칠 수 없는 기회지

 

남들이 뭐래도 굽히지 마

 

네 작품을 깎아내리고
널 따돌리더라도

 

- 누가 그런 말을 해?
- 너 말고 누가 있어?

 

- 내가 2년 전에 한 말 기억나?
- 네가 한 말이 한둘이냐?

 

노트에 쓴 아이디어를

 

전부 현실로 이루라고 했잖아

 

언젠가는 그러겠지

 

그럼 마음을 굳게 먹어
그날이 눈앞에 왔으니까

 

네가 정말 보고 싶을 거야

 

- 고마워
- 마르코스

 

- 잘 지냈어?
- 이리 와, 잘생긴 친구

 

소원 들어주는 요정님이
필요해서 왔어

 

- 에세는 알아?
- 얼굴은 알지

 

- 반가워요
- 안녕하세요

 

- 멋지네, 그나저나 언제 떠나?
- 내일이야

 

마지막 밤을 멋지게 장식하려면

 

요정의 마법이 필요해

 

너도 이제 한물갔는데

 

- 밤새워 놀 수 있겠어?
- 지난 8년을 기념해야지

 

조용한 기차에서
한숨 자면 그만이야

 

- 에세도 떠나요?
- 그렇게 됐네요

 

내 친구는 전설적인
작가 겸 감독이 될 거야

 

얼굴을 잘 기억해 둬
오늘 뿅 가게 해 주고

 

정말 귀엽네요

 

나도 배우로 성공할까요?

 

직업상 셀 수 없이
많은 극장을 전전하면서

 

재능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글쎄요, 직접 봐야 알죠

 

좋아요, 친구들

 

어떤 소원을 이뤄 줄까요?

 

- 내가 고를 수 있어?
- 물론이지

 

조금 쓰지만 죽여줘

 

맛을 볼까?

 

- 마르타
- 난 됐어

 

취하면 전부 잊을 거야

 

- 처음 잤던 날처럼?
- 어땠는데?

 

정말 황홀했는데
사정이 너무 오래 걸려서

 

내가 입으로 천국에 보내 줬지

 

에세?

 

나는 조금만 줘
많이 먹으면 어지러워서 토할 거야

 

- 4분의 1만 줄게
- 좋아

 

이제 어떡해?

 

눈 감고 긴장 풀어

 

그리고 요정님에게
꿈을 이뤄 달라고 빌어

 

오줌만 마려운데

 

나도야, 같이 가자

 

- 나는 본 적이 없네
- 뭘?

 

8년을 같이 살았는데
네 거길 못 봤잖아, 보여 줘

 

그만해, 안 나오잖아

 

- 클 것 같아
- 그만하라니까

 

닳는 것도 아니잖아, 에세

 

메릴린 먼로는 성관계를

 

악수에 비유한 적 있어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지

 

나도 그렇게 살까 봐

 

- 밖에서 기다릴게
- 아니야, 금방 끝나

 

왜 그래?

 

이거 가져왔어

 

잊고 있었네

 

그래, 약속했잖아

 

누구 하나라도 이사 가는 날에
첫날처럼 사진을 찍고

 

나눠 갖기로

 

맞아

 

우리도 그 여자들처럼

 

66번 도로를 여행하기로 했지

 

중간에 차를 세우고
들어간 식당에서

 

블랙커피 한 잔을 시키면

 

정말 웨이트리스가 끝도 없이
리필해 주는지 궁금했으니까

 

결국 실현하지 못했지만

 

이래서 약속은 질색이야
후회가 남으니까

 

그러지 마

 

우리가 처음으로 같이 본 영화
'델마와 루이스' 탓이니까

 

어느 쪽이 좋아?

 

첫날에 찍은 사진

 

별거 아니야

 

친구끼리 하는 악수였어

 

- 얘기 좀 하자
- 뭔데?

 

만약 오비에도에 안 가고
여기 남는다고 해도

 

네 선택은 존중할게

 

내가 왜 안 따라가?

 

이렇게 못생기고 엉망진창인 너를

 

농담이 아니야

 

넌 여기 남아 춤을 춰야 하잖아

 

가치 있는 일을 해야지

 

그란 비아의 뮤지컬 극장이
다시 열린다고 들었어

 

오비에도에서는
선생님밖에 못 하는데

 

- 그래도 상관없어
- 허튼소리 하지 마

 

네 재능은
가르치는 데만 쓰기 아까워

 

네 말대로라면
오히려 그렇게 사는 게

 

더 단순해서 좋은걸

 

더 진실한 느낌이니까

 

알았어

 

근데 네가 여기 남더라도
이해할 거야

 

- 넌 좋은 사람 만나야 해
- 넌 나쁜 사람이야?

 

내가 좋은 사람 같아?

 

다 괜찮을 거야

 

팁 준 거 아니야?

 

그게 무슨 소리야?

 

- 걔가 마음에 들었어?
- 아니야

 

아브릴도 그렇지만

 

- 너도 싫지 않은 눈치던데
- 무슨 소리야

 

- 약간 그랬어
- 정말? 난 몰랐어

 

- 집에나 가!
- 물이잖아

 

누구야?

 

- 어디 사는 놈이냐고!
- 3A호다!

 

- 올라와 봐
- 죽을 줄 알아!

 

- 비가 오네, 비가 와
- 올라와 보라고!

 

시끄러워, 그만해

 

빨리 가

 

- 웃겨
- 한심하다

 

아직 잠들면 안 돼

 

- 올라가
- 굴러떨어지겠어

 

- 발에 감각이 없어
- 파블로!

 

- 파블로!
- 미쳤어?

 

- 그냥 가자
- 시끄럽게 안 할게요, 파블로

 

파블로

 

파블로

 

쓰레기 같은 집구석을
장식한 포스터들과

 

- 집세 통제를 위하여
- 위하여!

 

- 건배!
- 건배!

 

그리고 미래가 막막한
우리 직업을 위하여

 

- 좋네
- 건배하자

 

- 건배해 줘야지
- 그렇지

 

- 아니야, 아니야
- 뭐가 아니야?

 

내 직업은 안 그렇거든?

 

닥터 하우스가 말씀하신다

 

너희는 히피처럼
꿈이나 좇으라고

 

- 꺼져, 마르코스
- 잠깐만

 

마르코스를 위해 건배하자

 

마르코스로 말하자면

 

마르타와 그 짓 할 때

 

자기 방 문고리에
빨간 스카프를 걸어 놔

 

15살짜리 애도 아니고

 

- 어떻게 생각해?
- 왜 그러는지 알아?

 

- 왜 그러는데?
- 네 머리카락 닮았거든

 

못됐어

 

- 그리고 혹시 몰라서
- 뭐가?

 

- 정말 할지도 모르잖아
- 그런데?

 

잠깐만

 

건배할 게 더 있었네

 

끔찍한 노래 말이야

 

에세는 자기가 뭘 하는지
들키기 싫어서

 

노래를 크게 틀고 해

 

제발 그만해

 

딸 친대요!

 

맹세코 그런 적 없어

 

왜? 난 하는데

 

- 뭐?
- 진심으로?

 

- 진짜?
- 정말이야

 

그래?

 

무인도에 누군가 데려간다면?

 

내가 잘 때 해?

 

그렇다니까

 

내가 잘 때 자위해?
그냥 깨우지 그랬어

 

- 난 몰랐지
- 깨웠으면 좋잖아

 

- 얘들아
- 그럼 도와줄 텐데

 

무인도에 누군가 데려간다면?

 

- 뭐?
- 뭐?

 

오늘 같은 밤에
딱 어울리는 게임이야

 

- 난 이제 졸린데
- 에세

 

- 진짜야
- 에세, 제발

 

그래, 괜히 심술부리지 말고

 

잠깐이면 돼

 

핵폭발로 모든 게
날아가 버렸다고 치자

 

너희는 무인도에

 

두 사람만 데려갈 수 있어

 

이 중에서 둘을 고르고
이유를 말해 봐

 

솔직하게 대답해야 해

 

그럼 너부터 시작해

 

나?

 

무인도에 갈 바에야

 

핵폭발로 죽고

 

영화사의 전설로 남을 거야

 

아니, 전설은 나야

 

이상하잖아

 

모든 게 날아갔다면

 

네가 출연한 영화도
사라졌을 거 아니야

 

다른 사람이 행복한 건
죽어도 못 보겠지?

 

한 가지 잊었나 본데
네 주제를 알아야지

 

넌 의사고 난 전설이야

 

- 한 방 먹였네
- 잘한다

 

알았어

 

다음은 내 차례야

 

내가 데려갈 사람은

 

셀레스테

 

그리고 마르코스야

 

마르코스는 육체적 만족을 위해

 

그리고 셀레스테는

 

마르코스가 못되게 굴 때
내 마음의 안식처로

 

감동적이네, 다음은 나야

 

나는 마르타를 데려가서

 

육체적 만족을 얻고

 

마르타가 짜증 나게 하면
에세가 괴롭히게 할 거야

 

네가 제일 못됐어

 

어디서 들은 대사야

 

- 그렇겠지
- 다음은 에세야

 

나는 마르코스랑...

 

- 글쎄
- 말해 봐

 

셀레스테를 데려갈래

 

낯선 사람이랑
뭘 같이 쓰긴 조금 그렇잖아

 

마르코스는 절대로
화장실 청소 안 하지만

 

- 비겁하게 거짓말하지 마
- 그럴리가

 

거짓말 아니잖아

 

청소하지는 않고
자꾸 뭘 치우기만 하잖아

 

그게 그거지

 

셀레스테는

 

이른 시간부터
페미니스트 포르노 보면서

 

- 우리가 그 소리 못 듣는 줄 알아
- 하지 마!

 

- '우리는 자유 여성이다!'
- 그만하라니까

 

- 사실을 말해야지
- 그게 뭔데?

 

무인도에 날 데려가서

 

떡두꺼비 같은 애들로
인구를 늘리려는 거지?

 

난 애는 안 만들어

 

괜히 모든 걸 망치니까

 

차라리 혼자 영화 만들면서
평화롭게 사는 게 낫지

 

에세, 이럴 거야?

 

애처롭고 비극적인
작가 행세는 그만해

 

넌 너무 착해서 안 어울려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

 

- 정말이야
- 그래?

 

- 이런 관점은 어때?
- 뭔데?

 

- 이런, 까먹었어
- 뭘 까먹어?

 

어떤 문장이더라?

 

기억났다

 

'내 껍질을 벗겨 줄 사람이
곁에 없다면'

 

'내가 짊어진 철갑에 옥죄어
고통에 잠기리'

 

- 왜 웃어?
- 너무 웃기잖아

 

- 촌스러워
- 내가 듣기엔 괜찮은데

 

- 허무맹랑한 소리야
- 왜?

 

껍질에 옥죄인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 마르타

 

마르코스, 그만해

 

하나도 안 촌스러워

 

- 껍질이라니, 이상하다니까
- 그만

 

어디서 읽었어?

 

어디서 읽었냐고

 

말해!

 

왜 그래?

 

에세, 미안해

 

사과할게

 

펜을 찾다가 우연히
네 각본을 읽었어

 

그건 내 방에 있었는데?

 

펜이 필요했단 말이야

 

테이블에 각본이 있어서
나도 모르게 읽었어

 

네가 오랜만에 글을 쓴 걸 보니
나도 기뻤거든

 

그냥 뒀어야지

 

남의 사적인 글을 읽고
비웃기까지 해?

 

그냥 농담이었어

 

퍽이나 그렇겠다
방금 촌스럽다고 했잖아

 

- 네 각본인 줄 몰랐어
- 그러니 더 진심이지

 

그런 게 아니야, 에세
정말 근사한 각본인걸

 

- 그만해, 마르타
- 진짜야

 

네 반응이 예상돼서
말 안 했을 뿐이지

 

각본은 읽으라고 쓰는 거니까

 

부끄러워할 필요 없어

 

괜찮다고

 

전부 읽었어?

 

마르타, 날 봐

 

- 전부 읽었어?
- 아무렴 어때?

 

- 꼭 물어봐야 해?
- 너 진짜 별로다

 

- 진정해
- 넌 진짜 이기적이야

 

- 남의 방에 들어가서
- 에세

 

멋대로 각본을 읽다니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불평 좀 그만해!

 

네가 외톨이에 삐뚤어진 놈인 게
내 탓이야?

 

외톨이라고?

 

- 고맙다
- 진심은 아니었어

 

- 그럼 뭔데?
- 아무 의미 없었다고

 

우리 다른 게임 할까?

 

그래, 바보 같은 게임은
이제 그만하자

 

미안해, 마르타

 

마르코스가 준 약 때문인가 봐

 

- 영 익숙하지 않아서
- 괜찮아

 

아무튼 일단 시작했으니까
게임을 마저 해야지

 

조금 바꿔도 좋겠다

 

핵폭발이 무인도까지 도달했고

 

무인도 옆에 작은 섬이
하나 더 있다고 치자

 

두 명밖에 못 사는
아주 작은 섬이야

 

아까 너희가 선택한 두 사람 중

 

누구를 데려갈래?

 

- 질문이 좀 그런데
- 뭐가 그래

 

네가 시작한 게임이야

 

- 에세, 너 취했어
- 우리 다 취했어

 

너부터 시작해, 잘난 친구

 

- 규칙을 어겼잖아
- 규칙은 개나 줘

 

규칙이 괜히 있는 줄 알아?

 

어기라고 있는 거지
난 아무래도 상관없어

 

- 마르코스, 시작해
- 너 취했어

 

말도 정말 안 듣네
그래, 나 취했다

 

취하면 진실을 말한다잖아

 

- 넌 뭐가 문제야?
- 아무것도

 

- 뭐가 문제냐고
- 난 멀쩡해

 

그래?

 

마르코스, 방금 넌
마르타랑 날 골랐잖아

 

한 명만 고른다면
누구를 선택할 거야?

 

아무도 선택 안 해
우리 옥상에서 한잔하자

 

떠나기 전에 옥상에서
노래 한판 불러야지

 

- 옥상은 됐고 대답해
- 그냥 대답하고 끝내

 

- 일어나
- 대답해 줘

 

- 말 안 해도 뻔하잖아
- 아무도 안 고른다고

 

그냥 대답하고
이 망할 게임을 끝내

 

넌 입 좀 다물어
대답을 들어야겠으니까

 

에세, 왜 그래?

 

왜, 질질 짜기라도 하게?

 

- 마르코스 방에 가든지
- 너 정말 뭐가 문제야?

 

- 빨리!
- 대체 왜 그러냐고

 

- 꼴도 보기 싫어
- 제발 좀 닥쳐

 

이제 못 참겠다고

 

- 그래, 너희 집에나 가
- 너 정말 미쳤어?

 

- 재수 없잖아
- 마르타

 

- 제정신이야?
- 마르타는 문제만 일으켜

 

- 에세, 선을 넘었어
- 그래, 당장 꺼져

 

- 선을 넘었다고
- 마르코스 방에 가시지

 

- 제발 좀 닥쳐
- 더는 못 참겠어

 

- 왜 그러는데?
- 지긋지긋하다고

 

- 에세, 그만해
- 입 좀 다물어

 

집으로 돌아가 버려!

 

뭐야, 우리가 그리웠어?

 

너랑 잘 지내보려고
얼마나 노력했는데

 

매일같이!

 

그런데 네가 거부하잖아

 

그리고 넌?

 

할 말 없지?

 

내가 곁에 있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니까

 

- 아니야, 마르타
- 아니긴 뭐가?

 

할 말이 그것뿐이야?

 

둘 다 꺼져 버려

 

- 마르타
- 건들지 마!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아무 일 없어, 그렇지?

 

그래, 아무 일 없어

 

노래나 틀어야겠다

 

분위기가 좀 살 거야
너도 찬성이지?

 

- 좋아
- 그럴 줄 알았어

 

못 들어 주겠네

 

노래 좀 꺼 버려
분위기 파악도 못 해?

 

에세, 제발 노래 꺼

 

안 돼

 

이제 어떡하지

 

에세, 제발 그만

 

에세, 노래 좀 꺼

 

제발 노래 좀 끄라고!

 

미치겠네

 

노래 끄란 말 안 들려?

 

빌어먹을 자식

 

상종도 못 하겠다

 

너희가 취한 건 알겠는데

 

- 대체 왜들 이래?
- 괜찮아

 

- 괜찮다고?
- 그래

 

웃기고 있네, 에세

 

이게 괜찮다고?

 

방금까지 잘 놀다가

 

바보 같은 게임 때문에
이게 무슨 짓이야?

 

- 뒈지기 싫으면 그만 마셔
- 어쩔 건데?

 

어쩔 거냐고

 

이렇게 하자

 

하던 거 정리하고
얌전히 침대로 가

 

진상 그만 부리고

 

- 알아들었어?
- 아냐, 아직 안 끝났어

 

- 게임은 그만해
- 이게 마지막이야

 

정말 바보 같아

 

나한테 명령하지 마

 

훈계질은 지긋지긋하다고

 

알아들어?

 

우린 친구잖아

 

역사상 가장 오래된
게임을 해 보자

 

진실 게임이야

 

에세, 우리 취했어

 

말하고 나서 후회하게 될 거야

 

친구인데 뭐 어때?

 

에세, 그만하자

 

- 부탁이야
- 싫어

 

내가 질문할 테니까

 

사실대로 대답해

 

오직 진실만

 

그럼 내가 먼저 할게

 

지금까지 감춰 왔던
진심이 있어?

 

내가 먼저 말할게

 

너랑 함께한 밤들은
최고이자 최악이었어

 

살아 있다고 느끼면서도
쓰레기가 된 기분이었지

 

이제 내 진심을 알겠어?

 

어이가 없다

 

네가 이렇게
거지 같은 자식일 줄이야

 

내가 보기엔 너희 둘 다

 

거지 같은 자식들이야

 

- 셀레스테, 가지 마
- 만지지 마

 

제발 가지 마

 

날 붙잡고 싶어?

 

왜 그러는지 알겠다
나한테 사과하려고?

 

아니야?

 

내가 마르타한테 갈까 봐
붙잡는 거지?

 

- 셀레스테, 미안해
- 미안해?

 

이건 에세와 내 문제지
너랑 관계없는 일이야

 

- 나랑 관계없다고?
- 에세랑 내 문제니까

 

내가 에세에 대한 감정을
털어놓은 사람은

 

너뿐이었어

 

그런데도 관계없다고?

 

좋아, 정말 그렇다면

 

난 짐 싸서 나가야겠어

 

둘이서 무인도나 실컷 즐겨

 

에세가 날 더 좋아해서
그러는 거지?

 

제발 그만들 해

 

- 넌 가만있어!
- 넌 가만있어!

 

미치겠다

 

됐어, 나도 남을 거야

 

그래, 여긴 내 집이니까

 

다음은 내 차례야
나도 게임에 끼워 줘

 

난 그만할래

 

내 차례니까
내가 한다면 하는 거야

 

에세, 진실을 말하랬지?

 

좋아, 솔직해지자

 

너한테 물어볼게, 마르코스

 

거짓말하는 데 지쳤지?

 

맞아

 

그래, 인정할게

 

왜 그런지 알아?

 

원하는 걸 가졌다면서
매일같이 나 자신을 타이르는 게

 

이제 지긋지긋하거든

 

난 무서워, 셀레스테

 

두려워 죽겠단 말이야

 

건드리는 것마다
망가뜨리는 개자식이 돼서

 

마르타에게 상처 줄까 봐

 

널 실망시키고 에세를 잃을까 봐

 

거짓말은 그만하고 싶어

 

브라보, 정말...

 

대단한 연기였어

 

배우를 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너였네

 

너보다 잘할 거야
어려운 일도 아니니까

 

이 나쁜 자식

 

난 나쁜 자식이지만

 

네가 배역 따려고 몸을 팔아도
뭐라고 안 했어

 

너랑 잔 남자들에게도
가족이 있단 거 몰라?

 

마르타한테 들었어
네가 얼마나 헤픈 걸레인지

 

- 마르코스
- 넌 조용히 있어!

 

친구를 감싼다고
네가 좋은 사람이 돼?

 

에세는 널 사랑 못 해
알았어, 셀레스테?

 

에세는 게이라서
널 사랑하지 못한다고

 

네게 키스도 못 하는 놈한테
비위 맞추는 기분이 어때?

 

진실 게임이랬지?
이번엔 내가 물어보자

 

네가 메릴린 먼로를
얼마나 닮았는지 알아?

 

개뿔도 안 닮았어

 

넌 엉터리 염색 머리에

 

성공을 위해서라면
아무하고나 뒹굴지

 

그리고 너
네가 성공하지 못하는 건

 

네 실력이 형편없어서야

 

넌 새로울 거 하나 없고

 

재능도 없고 열정뿐이지
장학금 받아 봤자 소용없어

 

그런데 난 널 사랑해

 

널 사랑한다고

 

마음을 바꾸고 싶어도
좀처럼 안 돼

 

마르타면 몰라도
너는 잘라 낼 수가 없어

 

이제 됐어?

 

만족해?

 

이게 다 전부 네
빌어먹을 게임 때문이야

 

잘하는 짓이다

 

셀레스테 잘못이 아니야
자꾸 몰아붙이지 마

 

그래, 내 잘못 아니야

 

곱상하게 생긴 네 탓이지

 

망할, 이제야 알겠네

 

네 방에서 큰 소리로
음악을 튼 건

 

섹스하는 소리를
감추기 위해서였지?

 

넌 에세에게 신호를 주려고
문고리에 스카프를 걸었어

 

마르타가 방에 있다고
경고하기 위해서

 

맞지?

 

젠장

 

건드리지 마

 

이게 다 마르코스를
감싸기 위해서였구나?

 

그래서 그런 거네

 

쟤한텐 잘된 일이지만

 

난 망할 광대가 된 기분이야

 

넌 언제든 나를
비웃을 수 있었잖아

 

대답해, 에세

 

내 얼굴을 보고 말해

 

둘이 그 짓 하면서 날 비웃었어?

 

내 눈 피하지 마!

 

넌 겁쟁이야

 

종일 세상 탓만 하면서

 

진실을 말할 용기는 없지

 

내가 뭐라고 할까?

 

난 삐뚤어진 놈이라고?

 

너랑 앞날을 계획하고도

 

손을 놓고 있다고?

 

- 우리가 재능이 없는 거면?
- 나는 아니야

 

아니, 우리 둘 다 그래
넌 그래서 화난 거야

 

- 못 받아들일 뿐이지
- 그거랑 상관없어

 

- 그게 아니면 뭔데?
- 넌 겁쟁이야!

 

네가 말하는 진실이라곤
넌 삐뚤어졌단 것뿐이라고

 

다른 진실이 있네
네가 호모 자식이라는 거

 

- 더러운...
- 닥쳐!

 

미안해, 미안해

 

얘들아

 

미안, 내가 아까 좀...

 

셀레스테

 

내가 걸레라고?

 

셀레스테

 

마르코스

 

마르코스

 

무슨 말이라도 해 봐

 

언젠가 하루는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받았어

 

뭘 자랑으로 여기냐고

 

넌 대답할 수 있어?

 

모르겠어

 

내 생각엔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는 거야

 

이유는 모르겠어

 

마르타, 난 너무 무서웠어

 

마르타

 

마르타, 들어 봐

 

마르타, 제발

 

이러지 마

 

내가 이러는 건

 

예전 일 때문인지도 몰라

 

한번은 발레 교실에서

 

넘어진 적이 있어

 

그래서 교실에 있던 바에

 

세게 부딪혔지

 

연습용 바에 말이야

 

난 미친 듯이 울기 시작했어

 

깊게 베인 조그만 상처에서

 

피가 흘렀거든

 

그렇게 아픈 건 처음이라서
너무 무서웠어

 

상처를 꿰맬 거라고 생각하니

 

도저히 못 견딜 것 같았어

 

그리고 엄마가 오셔서

 

날 병원에 데려가셨지

 

엄마의 눈빛이 이상한 게

 

내 상처 때문인 것 같아서

 

엄마한테 물었는데
아니라고 하시는 거야

 

그래도 난 물고 늘어져서

 

계속 칭얼거렸어

 

너무 아프다면서

 

엄마는 부딪힌 상처가

 

처음에는 좀 아프더라도
지나면 잊힌다고 하셨지

 

그런데 엄마의 눈빛은

 

여전히 공허해 보였어

 

병원을 나와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더욱 텅 비어 보였지

 

사라지고 없더라고

 

아빠가 신던 실내 슬리퍼와

 

담뱃갑, 현관 옷장

 

아빠 옷과 면도기가

 

그제야 엄마의 눈빛이
왜 이상한지 깨달았지

 

나보다 더 아프셨던 거야

 

발레 교실에서 부딪힌 상처와

 

비교도 안 되는 아픔이지

 

마르타

 

마르타!

 

마르타

 

왜, 마르코스?

 

에세

 

에세!

 

에세!

 

에세!

 

그래, 내가 졌어

 

네가 원한 게 이거지?

 

이제 마음대로 해

 

거기서 뭐 해?

 

떨어지겠어, 내려와

 

이제 더위가 가신 거 알아?

 

날씨 따위 관심도 없어

 

부탁이니까 내려와

 

에세!

 

- 나한테 잔을 던져?
- 엿 먹어

 

날 떠나려고?

 

내가 누굴 떠나?

 

대체 누구를?

 

우리가 무슨 관계라고

 

- 자살하려던 거 아니야
- 손대지 마

 

어차피 아래층에도
발코니가 있잖아

 

바람 좀 쐰 거야

 

그러셔?

 

우리가 이러려고
지금까지 만난 거야?

 

날 차고 나쁜 놈으로 만들려고?

 

대체 뭐가 문제야?

 

내 여자 친구?

 

아니면 게이라고
인정 못 하는 겁쟁이?

 

- 너는 이해 못 해
- 에세, 날 사랑해?

 

- 그 문제가 아니야
- 사랑하냐고

 

- 그건 안 중요해
- 뭐가 중요한지 말해

 

넌 내가 지금까지
어떤 기분이었는지 몰라

 

나랑 섹스하고
떠나면 그만이었으니까

 

그런데 내 기분은
매일 밤 시궁창 같았어

 

넌 몰랐겠지

 

전혀 몰랐을 거야

 

난 네가 방문을 열고
나가지 않았으면 했어

 

그리고 돌아서서 말하길 바랐지

 

다 괜찮아질 거라고

 

제일 끔찍한 건

 

나도 결국 마르타처럼
버림받으리라는 거야

 

넌 아무도 사랑 못 하니까

 

마르타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하겠지만

 

난 너한테 침대에서
몸을 섞는 상대일 뿐이잖아

 

우리 관계는 그게 다야

 

- 그게 다라고?
- 그래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해?

 

내가 원한 게 네 몸뿐이라고?

 

너와 함께한 밤은

 

오랜만에 느껴 보는
진실한 시간이었어

 

그런데 난 몰랐어

 

몰랐다고

 

마르타가 읽은 각본은
우리 이야기였지?

 

맞아

 

- 결말이 어떻게 돼?
- 안 좋게 끝나

 

그럴 수밖에 없거든

 

주인공은 결국 상처받아

 

- 상처 주지 않을게
- 웃기지 마

 

일부러는 안 그래

 

상처 입은 건 나야

 

밤마다 어디 가는지
내가 몰랐을까?

 

넌 검색 기록 지우는 걸
자꾸 잊어버려

 

- 진심이야?
- 그렇고말고

 

상황이 나아지길 바라면서
얼마나 많은 놈을 만났어?

 

셀레스테 말대로 넌 위선자야

 

대체 몇 명이랑 했어? 10명?

 

30명? 40명? 몇이나 되는데?

 

얼마나 몸을 굴렸어?

 

그만뒀어
내가 원한 건 너뿐이었으니까

 

바로 너!

 

거지 같은 밤이라도
너랑 있고 싶었어

 

- 그런데 이제는...
- 이제는?

 

이 짓도 더는 못 하겠어

 

에세, 부탁이야

 

에세, 괜찮아

 

가지 마, 나랑 있자

 

 

가라고

 

그래, 날 두고 가

 

두고 가 버려

 

전부 날 떠나 버렸어

 

"5년 후"

 

- 안녕하세요
- 안녕하세요

 

시끄러우니까 알람은 꼭 끄세요

 

기름이 튀지 않게
망을 완전히 들어 올리고

 

흔들어 줘요, 알았죠?

 

잘 흔들고 여기 담아요

 

그런 다음에는

 

이게 12호 상자고

 

새로 나온 6호 상자예요

 

손으로 덜지 말고
항상 집게를 써요

 

손은 더러우니까요

 

위생이 중요해요

 

장갑이 찢어지면
바로 새걸로 갈고요

 

에세!

 

안녕

 

- 오랜만이다
- 그러네

 

런던에 있는 줄 알았어

 

아니, 돌아왔어

 

이리저리 옮겨 다녔거든

 

몰랐어

 

런던을 떠나 고향에 갔다가

 

북쪽에서 직장을 잡았어

 

마드리드에 돌아온 지는
1년 정도 됐고

 

- 잘 지냈어?
- 응

 

- 너는?
- 나야 잘 지냈지

 

사람들이 기다려서
이만 가 볼게

 

- 얼굴 봐서 좋았어
- 나도야

 

에세!

 

우리 집에 갈래?

 

집세도 싸고 좋아

 

지하철역도 가까이 있고

 

제2의 말라사냐가
될 거라고 하던데

 

그래, 저 밑에 강도 흐르거든

 

- 황당한 거 알려 줄까?
- 뭔데?

 

정말 어이없겠지만

 

네 이름을 몇 번이나
구글에 검색해 봤어

 

런던에서 찍은 네 사진이

 

나올까 싶었거든

 

뭔가 상을 받았거나
작품을 출판했거나

 

글 쓰는 블로그를
만들었을까 싶어서

 

나도 참 바보 같지?

 

그런데 못 찾았지?

 

여기야

 

들어가자

 

이게 뭐야?

 

에세

 

셀레스테, 마드리드 의회에서

 

전위 연극 허가 건으로
연락이 왔어

 

시간 있을 때 응답해

 

안녕

 

- 인사를 잊었네, 안녕
- 안녕

 

이쪽은 에세인데

 

내 친구야

 

- 저쪽은 기술 책임자 프란체스코
- 안녕하세요

 

프로그래밍 책임자 셀리아

 

- 홍보 책임자 이레네야
-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옆방에서 출연진과 한잔하려는데

 

너도 올 거야?

 

아니, 안쪽에 갈 거야
무대를 보여 주려고

 

그럼 조명을 켤게

 

고마워

 

"가라헤 루미에르"

 

촌, 자리 좀 비켜 줘

 

고마워

 

가라헤 루미에르에 잘 왔어

 

프라이드치킨 팔면서
자금을 좀 모았는데

 

어느 날 밤 꿈을 꿨어

 

조그마한 극장에서
말이 담배를 피우는 거야

 

거기서는 누구든
꿈꾸던 모습이 될 수 있었어

 

그걸 실현하기로 했지

 

너도 연기해?

 

아니, 모르겠어

 

그럴 수도 있고

 

준비할 프로젝트가 많아서

 

다른 사람들의 기회를
빼앗고 싶지 않아

 

이게 내 역할일지 모르고

 

각본을 써 봐

 

영순위로 올려 줄게

 

이젠 글 안 써?

 

요즘은 다시 병원에서
아기들 사진을 찍어

 

사진마다 이야기를 지어서

 

글 쓰는 연습을 해
언젠간 성과가 있을지도 모르지

 

잘됐다

 

마음이 편해졌어

 

아주 잘 지내

 

마르코스를 봤어

 

런던에 있을 때

 

내가 사는 곳 근처에서

 

영화 학교에서 돌아오던 길에

 

횡단보도를 건너다
마르코스를 봤어

 

바로 내 앞에서

 

헤매고 있더라고

 

런던은 차선이 정반대인데
오른쪽을 살펴보지 않나

 

결국 날 못 봤어

 

파란불이 들어왔을 때
전화를 받더니

 

그 자리에 서서 통화를 했어

 

내가 어땠는지 알아?

 

마르코스의 말투와 목소리가
가물가물하더라고

 

너무 만나고 싶어서
도망치고 말았어

 

날 못 봤으면 했지

 

그리고 나중에
학교에서 물어보고 다녔어

 

혹시 스페인 남자가 와서

 

나한테 편지나 소포를 남겼냐고

 

대답은 한결같았지
그런 사람은 없었다고

 

널 찾으러 갔었나 봐

 

그랬을지도 몰라

 

1년쯤 전에 마르타를 봤어

 

마르타는 어땠어?

 

일 끝내고 온통 땀범벅이 돼서
퇴근하는 길에

 

카예 마요르의 극장을 지나쳤어

 

'한결같이 흘러가는 시간'
연극 포스터에서

 

마르타 가르니카라는
이름이 보이더라고

 

바로 티켓을 사서 들어갔어

 

마르타는 배우가 됐어
춤추는 장면도 있더라

 

얼마나 잘하던지

 

제법이었어

 

난 무대 가까이 앉아서
커튼콜을 지켜보다가

 

내 쪽을 보는 마르타에게
미소를 지었어

 

날 봤는지는 몰라도
어쨌든 웃어 주더라

 

나는 배우들이 나오는
복도에서 기다렸어

 

조금 춥기도 해서
숨어 있다시피 했지

 

그래서 날 못 봤나 봐

 

마르타의 엄마가

 

한 살도 안 된 갓난애를 데리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무대를 나온 마르타가
웃는 얼굴로 아이를 안아 들었어

 

애 아빠나 남자 친구는
어디에도 안 보였고

 

아기와 둘뿐인데도

 

너무 행복해 보여서

 

차마 인사를 못 했어

 

날 못 봤으면 했거든

 

근사한 무대야

 

맞아

 

정말 그래

 

2년 전에 66번 도로를 여행했어

 

혼자서 말이야

 

아니, 실은 혼자가 아니었지
우리 사진이 함께였거든

 

너랑 사막 어딘가에서
마주쳤으면 했어

 

너한테 전화하려다

 

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지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사막에서 마주칠 거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했거든

 

언뜻 널 본 것도 같았고

 

- 내가 아니었지?
- 아니었어

 

난 석 달 전에 갔거든

 

결국 서로 약속은 지켰네

 

혼자서라도 지켜야지

 

늦기 전에 일하러 가야겠다

 

다음에 또 보자

 

그래

 

셀레스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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