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ds.Status.2017.LIMITED.1080p.BluRay.x264-GECKOS

출발 전날
잠이 안 왔다

 

크리스 생각이
지워지질 않았다

 

일을 관두면서
했던 말들이

 

브래드, 같이 일하면서
정말 많이 배웠지만

 

이 일을 할수록
좀 우울해져요

 

얼마나 열정적으로
가르쳤는지

 

어쩌다 내 직원이
크리스뿐이었는지

 

내가 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의식의 흐름이
그 만찬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아키텍추럴 다이제스트'

 

아키텍추럴 다이제스트

 

그럼 이것도 먹어봐요

 

- 가공 콩피예요
- 진짜요?

 

대학 동창 아니에요?

 

닉이 부자가 되고
성공한 건 알았지만

 

명치를 맞은
기분이었다

 

온 세상이 내 심기를
건드리는 기분

 

대학 동창 중엔
성공한 놈들이 많다

 

닉 파스칼은 할리우드의
거물 감독이 돼서

 

화려하고 방탕하게
살고 있다

 

제이슨 해츠펠드는
헤지펀드사 대표라서

 

황당할 정도로 부자다

 

집이 세 채 있고
기부도 많이 한다

 

빌리 워스틀러는
마흔에 IT사를 팔았고

 

진작 은퇴해서
마우이에서 지낸다

 

크레이그 피셔는
백악관에서 일했다

 

베스트셀러를
여러 권 냈고

 

늘 TV에 나온다

 

인생을 비교하는 건
멍청한 짓이지만

 

비교할 때면

 

실패한 기분이 든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그 기분이 심해진다

 

- 브래드!
- 젠장, 미안

 

괜찮아?

 

갑자기 뭐야?
얼굴 맞았잖아

 

- 미안
- 괜찮아

 

잠이 안 와서

 

자기 부모님 집
얼마나 할까?

 

부모님 집?
글쎄

 

200만 달러?
250만?

 

모르겠어

 

- 생각 안 해봤어?
- 그게 왜?

 

두 분 돌아가시면
자기 거잖아

 

돌아가시면?

 

손주들한테
주시려나 보던데

 

- 무슨 소리야?
- 손주들한테 나눠주신대

 

스티브는 애가 셋이고
그 집은 부자잖아

 

우린 하나인데
그게 공평해?

 

나야 모르지

 

그냥 기부하실지도 몰라

 

진심이시래?
어이가 없네

 

그건 아니지

 

비영리 회사에서 일하면서
기부가 어이없어?

 

그래, 내 신세는 그렇고
자긴 공무원이잖아

 

우린 돈이 필요해

 

난 부모님 돌아가시면
제정신 아닐 거라서

 

돈 따위엔
신경 안 쓸 거야

 

그래?

 

전혀?

 

신경 쓸걸

 

그럼 아버님 돈은?
자기가 물려받잖아

 

학자시잖아

 

20만 달러나
있으시려나

 

트로이 대학 등록금엔
도움되겠네

 

그래서
돈 걱정하는 거야?

 

괜찮아

 

어떻게 되겠지

 

판잣집에서 죽으려고
고생한 게 아니잖아

 

무섭게 왜 그래?

 

시간이 없단
생각이 들어서

 

나아질 가망이
없어 보이잖아

 

인생이 정체기야

 

갑자기 횡재해서

 

우리 사정이
바뀔 것도 아니고

 

우린 안 가난해

 

어떤 집단에선 그래

 

어떤 집단?
상위 1퍼센트?

 

우리도
잘 살고 있어

 

얼른 자

 

집에 말씀드려서
확답을 받아봐

 

- 우린 끝난 인생이야
- 사랑해, 제발 닥쳐

 

트로이?

 

일어났니?

 

그래, 안녕

 

너 이름이 뭐야?
그래, 알아

 

10분 남았다

 

옷만 입으면 돼

 

좀 비켜줄래?

 

그래, 이제 몸이
남자가 다 됐네

 

그만하면 안 돼?
스트레스 받는데

 

- 그래
- 문 좀 닫아줄래?

 

그래

 

- 문 좀 닫아줄래?
- 그래

 

오늘 멋지네
재킷 가져왔어?

 

- 응
- 멋지네

 

- 응
- 이거 진짜 괜찮다

 

그것도 괜찮겠네

 

공항으로 가면서도
크리스의 말이 떠올랐다

 

잠깐, 금융업계에
취직한다고?

 

브래드, 솔직히
내가 많이 벌어서

 

기부하는 게 낫지

 

남들한테 기부하라고
쫓아다니긴 싫어요

 

무슨 뜻인지 알죠?

 

- 호텔 연락처 있지?
- 휴대폰에 저장했어

 

아빠한테도 보내줄래?
일정 전혀 모를걸

 

그치, 브래드?
생각이 없나 보다

 

너만 믿을게

 

평생이 헛고생이었다고
깨닫는 순간들이 있다

 

내세울 게
하나도 없으니

 

이곳이 낙원

 

아예 제국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난 뭐가 있나?

 

난 새크라멘토에 산다

 

딱히 잘난 것 없는
평범한 남자들 틈에서

 

테리 그로스가
인터뷰하는 자리였죠

 

그 채식주의자는
감옥에 있었다면서요

 

민영 교도소예요

 

고기도 나오고
다 나온대요

 

안 먹겠다고 버티니까
튜브로 먹였다던데

 

계속 채소 달라고
소릴 질렀대요

 

내가 되려던 건
이게 아니다

 

내가 상상하던
인생도 아니고

 

그거 좋겠다
진짜 괜찮네

 

올드리버 로드도
가볼 생각이야

 

- 다 왔네
- 그래

 

계속 전화해야 돼
재밌게 보내고

 

- 알았어, 엄마
- 사랑해

 

응, 잘 있어

 

정말 너무 좋겠다
기념비적인 순간이잖아

 

부러워 죽겠어
난 컨퍼런스나 가고

 

호텔 연락처랑
전부 문자로 보냈어

 

- 그래, 사랑해
- 재밌게 보내

 

- 사랑해
- 사랑해

 

사진 많이 찍어와!

 

- 사랑해!
- 사랑해!

 

이코노미는 줄 서세요

 

실버 멤버인데요

 

골드랑
플래티넘만 돼요

 

다음 분?

 

즐거운 비행 되세요

 

그거 어떠냐?

 

좌석 업그레이드하자

 

무슨 소리야?

 

네 대학 찾으러
가는 거잖아

 

또 너랑 언제
같이 여행하겠어?

 

비즈니스 타자

 

- 정말?
- 그래

 

그래, 좋아

 

비즈니스 처음 타봐

 

- 기분 좀 내보자
- 그래

 

다행히 비즈니스석에
두 석이 비네요

 

- 티켓 보여주시겠어요?
- 잘됐네요, 여기요

 

- 감사합니다
- 마일리지도 써주세요

 

- 많이 쌓았거든요
- 이 비행편엔 안 되세요

 

그럼 업그레이드 비용이
좌석당 821달러니까

 

총 1,642달러예요

 

1,600달러요?
국내선인데?

 

네, 1,642달러예요
구매하시겠어요?

 

그럼... 구매하죠

 

현금카드로
잠깐, 죄송해요

 

마스터카드로

 

- 감사합니다
- 아뇨, 현금카드로

 

- 죄송해요
- 조회해볼게요

 

네, 생애 한 번
해보는 거라

 

슬로언 씨
업그레이드가 힘들겠네요

 

- 죄송합니다
- 네? 왜요?

 

항공권 할인 사이트에서
구매하셨던데

 

그런 티켓은
업그레이드가 안 돼요

 

근데 1,600달러를
내고도 안 돼요?

 

업그레이드하기엔
잔액이 부족하세요

 

죄송합니다
더 도와드릴까요?

 

아뇨, 괜찮습니다

 

실버 멤버인데도
안 되나요?

 

죄송합니다
다음 분

 

- 샴페인 드릴까요?
- 감사합니다

 

즐거운 여행 되세요

 

업그레이드
못 해줘서 미안

 

난 괜찮아

 

실버 멤버 카드
쓸모도 없네

 

- 혜택이 없어
- 그럼 버려

 

그래, 버려야겠어

 

버려야겠지?

 

거지 같은...

 

일단 갖고 있어야지

 

크레이그 피셔는 이코노미를
언제 마지막으로 탔을까?

 

수십 년 됐겠지

 

피셔 씨
따뜻한 타월 드릴까요?

 

따뜻한 타월 좋죠
네, 고마워요

 

제이슨 해츠펠드야
전용기가 있으니

 

민항기를
탈 필요도 없고

 

닉 파스칼도
전용기를 타겠지

 

고마워요

 

말 한마디만 해도
바다가 갈라지는 인생

 

못 가질 게 없고

 

이거 사도 돼?

 

- 그럼
- 고마워

 

모든 게 가능하고

 

약에 취한 기분이겠지

 

늘 귀하고 특별하고

 

우월한 기분

 

그 모든 모험과

 

이국적인 도착지들

 

그들에게 세상은
전장이 아니라

 

놀이터이자

 

꿈이다

 

땅으로 내려온 천국

 

프링글스 먹어도 돼?
7달러래

 

- 그래
- 카드 좀 줘

 

도착 45분 전입니다

 

안전벨트를
착용하시기 바랍니다

 

결국 내 의식은
대학까지 거슬러갔다

 

그때 난
세상을 사랑했고

 

세상도 날 사랑했다

 

우리의 사랑이
언제 깨진 걸까?

 

어디서 잘못된 걸까?

 

내 생각은
멜라니에게 향했다

 

어처구니가 없잖아
초등학교 애들이

 

학교에서
사격 훈련을 해

 

모두가 총을
가져야 하니까

 

멜라니의 이상주의를
사랑하지만

 

그 이상주의가 내 기회를
막았는지도 모른다

 

제이슨은 돈 많은
여자와 결혼했다

 

그녀는 부자 고객들을
소개해줬고

 

상류층 입장권과
지위를 줬다

 

다이앤 피셔는
유명 작가다

 

그녀와 크레이그는
경쟁하면서

 

서로를 성공으로
밀어준다

 

하지만 멜라니는
쉽게 만족한다

 

- 맛있네!
- 정말?

 

- 응!
- 진짜로?

 

당신 소스 맛있어

 

그 자족감이 내 야망을
약화시켰는지 모른다

 

안녕, 여보

 

보스턴이야?

 

응, 도착했어
호텔 가고 있어

 

트로이는 어때?

 

괜찮아

 

다행이네

 

보스턴에 넋이 나갔어

 

내 결정인데 멜라니나
남을 탓할 순 없다

 

내 잘못이다

 

아빠

 

뭐 먹으러 갈래?
프링글스만 먹었잖아

 

그래, 가자
나도 배고프다

 

먹으러 가자

 

목요일엔 차 빌려서
애머스트랑 윌리엄스 가자

 

둘이 라이벌 학교야

 

너무 부담 갖지 마

 

학교 간판에
집착할 거 없어

 

윌리엄스, 하버드
뭐 이런 거

 

어디든 괜찮아

 

맞는 곳 찾겠지

 

응, 걱정 안 해

 

난 네 나이 때
대학에 목맸어

 

예일 가고 싶어서
환장했었지

 

왜 예일이었는지
이유도 모르겠어

 

대기 명단엔 올랐는데
결국 못 들어갔지

 

어떻게 됐게?

 

다 잘 풀렸어
터프츠에 들어갔지

 

정말 좋은 학교였고
친구들도 좋았고

 

밥 코너 교수님도
거기서 만났어

 

날 챙겨주시고
영감을 주시고

 

내가 봉사하며 살도록
인생을 바꿔주셨지

 

아무튼 요점은
예일 별거 아냐

 

터프츠 떨어져도
아무것도 아니고

 

진로상담 선생님이
예일 들어가래

 

- 그 여자가 그래?
- 남자야

 

뭐든 간에
왜 그렇게 생각한대?

 

내 성적도 괜찮고
작곡도 잘한다고

 

오케스트라에 공석 있는
학교들이 많대

 

아무 데나 지원해도
붙을 거라더라

 

놀란 표정이네

 

- 예일 갈 수 있대?
- 응

 

진짜? 대단하네
공부야 원래 잘했고

 

네가 천재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진짜 대단하네

 

근데 우리 예일은
방문 안 하잖아

 

예일은
안 가고 싶어

 

왜?

 

하버드 가고 싶어서

 

제롬 백칼리라는
음대 교수가 있는데

 

정말 멋진 음악
하시거든

 

커리큘럼도 좋고

 

하버드 다니는 친구가
수요일에 공연하는데

 

그 교수도 온대

 

하버드 간다고?

 

돼야 가는 거지

 

- 엄마도 알아?
- 엄마도 알지

 

어떻게 나만 몰랐지?

 

무슨 소리야?
이쪽 둘러보쟀잖아

 

둘러만 보려고
생각한 건데

 

진짜로 들어간다니까

 

- 아직 몰라
- 가능성이 크잖아

 

그렇긴 해

 

우리 애가
하버드 간대요

 

그러다 부정 타

 

- 괜찮아?
- 응

 

인생은 놀라운 거야

 

이렇게 멋지다니

 

네가 자랑스럽다

 

인생을 살다 보면

 

막막해질 때도
있는 거지

 

17년간 뭘 했는지
이제야 생각났다

 

이 놀라운 생명을
심고 가꿔왔다

 

후회라니 가당찮다

 

뉴욕에 살면서 다이앤 같은
일벌레와 결혼했다면

 

헛소리하지 마요

 

트로이는 허세 가득한
아이가 됐을지 모른다

 

아빠, 시스젠더처럼
굴지 마

 

시스처럼 굴지 마

 

내가 돈과 권력을 추구했다면
애가 버릇없이 자랐겠지

 

- 내 것도 남겨!
- 좋았어!

 

초콜릿 먹어

 

고마워

 

새크라멘토에
살아서 다행이지

 

뭐?

 

휴대폰만 보냐?
간지럼쟁이야!

 

이거 기억나?
옛날에 좋아했잖아

 

- 그만해!
- 간질 간질

 

잡았다

 

세상에, 그만
트로이, 그만해

 

트로이!

 

그날 밤 트로이의
하버드 합격을 상상해봤다

 

그것이 가져다 줄
만족감도

 

엄마! 아빠!

 

합격했어!

 

하버드!

 

여보, 하버드야!

 

- 등굣길로는 괜찮네
- 응

 

다 왔다, 가자

 

아드님이에요?
따님이에요?

 

아들이
면접 중이에요

 

저도요

 

음악적 재능이
출중한 애죠

 

키보드도 치고

 

피아노도 치고

 

 

곡도 쓰고

 

- 멋지네요
- 갈 데가 많아 고민이죠

 

근데 하버드라면
애도 생각해볼 거예요

 

하버드가 승산이
있다고 보세요?

 

아드님은 뭐 해요?

 

뭐 하냐고요?
고등학교 학생이죠

 

그렇군요

 

아빠

 

벌써 끝났어?

 

날짜를 잘못 알았어

 

뭐?

 

날짜를 잘못 알았어
어제였대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착각했어
어제였대

 

다음에 다시 오래?

 

면접이 꽉 잡혀서

 

새크라멘토에서
졸업생 면접만 된대

 

안 돼
그건 아니야

 

여기 애들 중에서
뽑히는 거야

 

그렇죠?

 

그냥 다른 데 가자
안 해도 돼

 

- 내가 말해봐야겠다
- 그럴 거 없어

 

그럴 거 없긴
이러고 돌아가려고

 

새크라멘토에서
온 거 아니야

 

실례합니다

 

도와드리고 싶지만

 

몇 달 일정이
꽉 잡혀서요

 

잠깐만 만나보세요
하버드가 1지망이에요

 

아빠, 괜찮아

 

피아노도 잘 치고
봉사활동도 하고

 

학교에서도
하버드 추천했어요

 

졸업생 면접을 보셔도
불이익은 전혀 없습니다

 

그래도 얼굴 보고
하는 건 다르죠

 

- 기왕 왔는데 봐주세요
- 아빠

 

10분만 안 될까요?
여기까지 왔는데

 

지금 바쁘세요?

 

스태프 미팅이 있어서요

 

아빠, 제발 제발
제발 그만해

 

그만?
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가자

 

입학사정관이랑 싸우는 게
나한테 무슨 득이 돼?

 

- 기억 못 할 거야
- 기억할 거야

 

아니, 하버드 갈
머리는 되면서

 

어떻게 면접 날도
기억을 못 해?

 

미안하니까 그만하자
남들이 보잖아

 

보면 어때?

 

아빠한테 혼나는 거
보이기 싫어

 

혼내는 게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려는 거지

 

벌써 붙은 거 같아도
여긴 하버드야

 

- 천재들도 떨어져
- 미치겠네

 

애들이 홍콩이며 어디며
전 세계에서 몰려든다고

 

넌 딱한 사연도 없고
부모 동문 가산점도 없어

 

우리가 제일 불리한데
뭐라도 해야지

 

나 폭발 직전이야
제발 조용히 해

 

잠깐 생각 좀 하자

 

넌 일단 계속 다녀
나는 좀...

 

- 어쩌려고?
- 연락 좀 해볼게

 

이상한 짓만
하지 마

 

여보

 

트로이가 실수했어

 

날짜를 잘못 알아서
하버드 면접 못 봤어

 

하버드에 지인 없어?
면접은 보게 해야지

 

- 꼭 시켜야겠어
- 하버드에 누구?

 

예를 들면...
예를 들면...

 

예를 들면 학장?

 

1지망이 하버드래
알고 있었어?

 

학교에서도 가망 있대고
그것도 알았어?

 

 

하버드에 누구 알아?

 

글쎄, 생각해볼게
토니 모리슨 작가!

 

토니 모리슨?
개인적으로 안다고?

 

아니

 

프린스턴 교수잖아

 

그 사람 얘기는
왜 하는데?

 

내가 하버드에
누굴 알겠어?

 

자긴 공무원이잖아
업무상 누구 없어?

 

트로이의 미래가
걸린 일이야

 

알았어

 

크레이그 피셔가
거기서 강의하잖아

 

뭐? 아니야
진짜로?

 

응! 기사로 봤어

 

객원 교수인지 뭔지
워싱턴에서 통근한대

 

지금 뉴욕 살아

 

그럼 뉴욕에서
오나 보지

 

이건 확실해
거기서 강의해

 

젠장

 

왜?

 

아니, 듣고 보니
맞는 거 같아서

 

젠장

 

왜 그러는데?

 

전화하기 싫어서

 

왜?

 

빌어먹을

 

전화가 뭐 대수라고

 

다시 전화할게

 

트로이 바꿔줄래?

 

크레이그에게 전화할
용기를 짜내면서

 

그 녀석을 TV에서
처음 본 날이 떠올랐다

 

크레이그 피셔 씨를
모셨습니다

 

전임 백악관 공보관이셨고
지금은 헬러 협회에 계시며

 

'정치적 짐승'이란
베스트셀러도 내셨죠

 

크레이그
이번 사태에서...

 

날 괴롭히는
유령을 본 듯했다

 

하지만 이 나라에선
좋든 싫든

 

견제와 균형이라는
시스템 하에서

 

순간의 질투가 아니었다

 

진짜 고통이었다

 

그게 왜 그리
고통스럽지?

 

내가 왜 이런 걸까?

 

마지막으로 봤던
날을 떠올렸다

 

각자 뉴욕에 갔다가
약속을 잡고 만났다

 

난 비영리 활동을
열성적으로 설명했다

 

어음 교환소와
비슷한 서비스지

 

SNS 매칭 서비스로
생각해도 돼

 

돈이 필요한 기관과
기부할 사람을 연결하고

 

크레이그가 동참해서

 

유명한 친구들도 부르고
기부도 했으면 했다

 

하지만 미끼를
물지 않았다

 

새크라멘토로 돌아와선
더 직접적으로 말했다

 

이사회에 들어오라는
이메일을 보냈다

 

크레이그에 대한
존경심을 표시하면서

 

내겐 큰 의미가
될 거라고 썼다

 

하지만 답장이 없었다

 

정치는 추한 사람들의
쇼비즈니스라고 하죠

 

이런 쇼비즈니스에
반응하는...

 

아예 그 후론
연락이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지금 거신 번호는
결번이오니

 

브래드?

 

안녕, 빌리

 

잘 지냈어?
어떻게 지내?

 

잘 지내지
미친 듯이 좋아

 

너 은퇴했잖아
진짜 대단하다

 

그러니까

 

꿈처럼 살겠네

 

그런 셈이지

 

완전히 은퇴는 아니야
해변에 바를 차렸는데

 

워낙 잘돼서

 

하와이랑 본토에
프랜차이즈 내려고

 

그래서 꽤 바빠

 

그거 잘됐네

 

그리고 하와이 미녀
둘을 데리고 살아

 

끝내주는 미인들인데
정말 기가 막혀

 

조개껍질 같은 걸로
목걸이를 만드는데

 

가게 여는 거
도와주고 있어

 

같이 서핑하고
섹스하고

 

다시 서핑하고
진짜 근사하지

 

진짜로 둘이나
데리고 산다고?

 

둘 넘을 때도 있고

 

그건 그렇고
넌 어떻게 지내?

 

나야 잘 지내지
아들이랑 보스턴 왔어

 

대학들 방문하느라

 

그래?

 

응, 하버드에
들어갈 거 같아

 

그래? 잘됐네!

 

똑똑한 녀석이거든
진짜 물건이야

 

잘됐네

 

근데 크레이그
전화번호 알아?

 

물어볼 게 있는데
번호를 바꿨나 봐

 

문자로 보내줄게
닉 결혼식에서 만났었어

 

닉이 결혼했어?
누구랑?

 

하비에르랑 했어
멋진 예식이었지

 

그렇구나
난 몰랐어

 

식을 작게 올렸어
누가 너 물어보더라

 

누군지 까먹었네

 

누가 물어보더라고

 

너 어디 사는지
어떻게 됐는지

 

아무튼 누가 그랬어
"브래드는 어딨어?"

 

"그 친구 기억나"

 

나야 일하면서
살고 있지

 

목소리 들으니까
참 좋네

 

개가 똥 쌌다
주우러 가야 돼

 

그래

 

조만간 통화해
반가웠어

 

그리고 문자로
번호 보내주고

 

바로 보내줄게
마우이 한번 놀러 와

 

또 봐

 

그래

 

순간 빌리의 삶을
상상해봤다

 

젊은 애인이 둘이라니
섹스도 환상적이겠지

 

그리고 멜라니를
생각해봤다

 

우리 성생활에
뭐가 남아있을까?

 

크레이그 피셔에게
메시지를 남겨주세요

 

크레이그
브래드 슬로언이야

 

어떻게 지내?
지금 보스턴이야

 

아들이랑...

 

괜찮으면
전화 좀 줄래?

 

좀 급한 일이라

 

고마워, 끊을게

 

닉의 결혼식도 몰랐다니
설마설마했는데 진짜였다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게 아니라

 

남들 눈에도
실패자로 보이는 거다

 

결혼식 날을
상상해봤다

 

하나같이 질세라
빛나는 모습

 

그들을 묶는 끈은
우정이 아니라 성공이다

 

날 깜빡했든
일부러 뺐든

 

별반 다르지 않다

 

난 명단에 빠졌다

 

별거 없는 인간
가치 없는 인간

 

세상은 날 미워했고
나 또한 그랬다

 

괜찮아?
멍해 보여서

 

아니야
그냥 한심해서

 

뭐가?

 

옛 친구들이

 

모였었는데
날 초대 안 했어

 

아마도 내가...

 

뭔들 어때
깜빡했나 보지

 

뭔데 그래?

 

초대받았어도
가기 싫었어

 

아무튼 좀 그래

 

안타깝네

 

우습지

 

재수없는 아저씨들 같네

 

그래

 

여보세요?

 

크레이그 피셔야

 

크레이그!
어떻게 지내?

 

혹시 누구 죽었어?

 

뭐? 아니야
누가 죽어

 

목소리도 이상하고
급한 일이라길래

 

아니야, 미안
그건 아니고

 

지금 아들이랑
케임브리지에 있는데

 

하버드도 보고 있어

 

면접이 있었거든

 

근데 입학처에서
말이 좀 많아서

 

잠깐만 기다릴래?
지금 식당이라서

 

아무튼 그래서
내가 듣기론...

 

안 그래도
내일 그쪽 가

 

- 그때까지 있어?
- 있을 거야

 

내일도 있지
목요일까진 있어

 

저녁이나 할까?

 

그거 좋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트로이는 음악 해
천재 같은 애지

 

객관적으로 그래
그 교수 누구더라...

 

트로이
그 교수 이름이 뭐지?

 

- 뭐?
- 교수... 잠깐만

 

네가 좋아하는
음대 교수

 

- 제롬 백칼리?
- 제롬 백칼리

 

제롬 백칼리?

 

그래

 

그래, 전화해줄게

 

그럼 고맙지
신세 갚을게

 

신세는 무슨
내일 저녁에 봐

 

그래
내가 식당 잡을게

 

녹화 잘하고

 

고마워

 

뭔데?

 

아빠

 

기다려봐

 

기다려봐

 

정치적 짐승

 

크레이그

 

지금 서점에서
네 책 보고 있어

 

그렇구나
좋은 소식 있어

 

입학처장한테
전화가 왔어

 

진짜?

 

운이 좋았네

 

내일 누구랑
미팅 있게?

 

- 누구?
- 제롬 백칼리

 

- 뭐?
- 그 교수 만나고

 

입학처장이랑
면접도 있어

 

- 설마
- 진짜야

 

- 정말?
- 정말이야

 

그래

 

긴장된다

 

긴장 풀어

 

내일 터프츠에
가기로 했잖아

 

- 터프츠는 개뿔
- 그래

 

오후에 가면 되지

 

- 아빠
- 응

 

아빠가 짱이야

 

당연하지

 

이거 어때?

 

나 하버드 간다!

 

트로이 덕분에
나까지 들뜬다

 

입어봐

 

승자들의 긴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되나 보다

 

행복하고 부유한
어른 트로이를 상상해봤다

 

유명해진 모습을

 

다 사야지

 

- 받으세요
- 우리 아들이에요

 

우리 아들이에요
우리 아들

 

둘 다 너무 사랑해

 

내 성공은
아빠 덕이야

 

- 고맙다
- 그리고 있잖아

 

- 뭔데?
- 나 섬 샀어

 

- 뭐?
- 그래!

 

그 성공이 나의 현재를
덮어주는 상상을 했다

 

그게 얼마나 흐뭇할지

 

내 생각은
갑자기 암울해졌다

 

그 승리를...

 

나의 승리로 삼는 건
억지 아닐까?

 

내 아들의 것이다

 

아빠는 인터넷이나 잡지에서
제 사진을 볼 때면

 

제 부고를
본 것처럼 굴어요

 

- 제가 죽은 것처럼
- 약간 미친 분이네요

 

미치긴 했는데...

 

그것보다
이 정도 더군요

 

이 정도
더 미쳤어요

 

트로이가 성공했다고
날 무시하면?

 

혹은 그런 마음을
품는다면?

 

뭔가 치료가 필요한
정신병자시군요

 

종국엔 트로이의 승리로
더 패배감이 든다면?

 

내 아들을
질투하게 된다면?

 

두려움이 엄습했다

 

게다가 음악은
돈이 안 된다

 

하버드를 나온다 해도
가난한 예술가가 되겠지

 

아니면 멜라니의
전철을 밟을지 모른다

 

아무것도 없으면서
완벽히 만족하는 삶

 

뮤지션만 될 거면

 

꼭 대학 갈
필요가 있나?

 

뭐?

 

생각하면 그렇잖아

 

뮤지션만?

 

응, 밴드 할 거면
하버드가 왜 필요해?

 

하고 싶은 게
그거 아니야?

 

뭐 할지 아직 몰라

 

잘 생각해봐야 돼

 

학비가 보통이 아니야

 

나도 대출 없이
도와주기 힘들고

 

너도 힘들 거고

 

장학금도 쉽지 않고
생활도 빠듯할 텐데

 

갑자기 뭐야?

 

- 생각해보는 거야
- 다 기댈 생각 없어

 

학비 내줄 형편은
안 되는 거야?

 

그때 가봐야지
아직 걱정하기 싫어

 

- 그런 거 같네
- 쉽게 풀릴지도 몰라

 

할아버지 중에
한 분 돌아가시면

 

- 안녕
- 안녕

 

- 잘 지냈어?
- 응, 너는?

 

- 우리 아빠야
- 안녕하세요, 아난야예요

 

안녕, 고등학교 때
알던 사이야?

 

- 오케스트라 같이 했어요
- 아난야도 실력이 대단해

 

- 이제 하버드 다니고?
- 네, 3학년이에요

 

- 여기 맘에 들어?
- 그럼요

 

춥긴 하지만
수업도 좋고

 

사람들도 좋고
불만 없어요

 

식당 예약해놨는데
가실까요?

 

- 그래, 가자
- 가요

 

고향 사람들
만나니까 좋다

 

백칼리 교수를 만나다니
진짜 좋겠다

 

- 약속 어떻게 잡았어?
- 아빠 친구가 교수님이야

 

- 그래? 누군데요?
- 크레이그 피셔 알아?

 

- 왜?
- 뭐가요?

 

- 표정이 이상한데
- 제가요?

 

그래, 좀 이상했어
편하게 말해봐

 

친한 친구도 아니고
오래전 친구라

 

작년에 그 교수님
강의 들었는데

 

최악이었어요

 

- 이런 말 그렇죠?
- 아니, 말해도 돼

 

잘난 척이
너무 심하고

 

성차별도 좀 해요

 

모든 걸 아는 것 같은
분위기가 있어요

 

TV에도 나오고
백악관 연줄도 있으니까

 

근데 네가 보기엔?

 

그분 강의 끝날 때쯤
전공 포기하고 싶었어요

 

음악 전공 아니야?

 

- 정치행정학과예요
- 아빠도 행정학 전공이야

 

- 정말요?
- 응, 커뮤니케이션 행정

 

- 터프츠에서 배웠지
- 지금은 무슨 일 하세요?

 

몇 년 전에
비영리 회사 시작했어

 

- 정말요?
- 그래

 

비영리 회사들의
SNS 홍보를 돕고 있지

 

- 기부자들도 찾고
- 크라우드소싱 같은 거요?

 

비슷하긴 한데
우린 컨설턴트야

 

- 따분해 보이지?
- 전혀 안 그래요

 

- 멋져 보이는데요
- 고마워

 

실은 NGO에 대한
논문을 생각 중인데

 

나중에 시간 좀
내주시겠어요?

 

그럼, 말만 해

 

감사해요

 

논문 얘기 좀 해봐

 

- 정말 궁금하세요?
- 그래

 

아직 구상은
덜 됐는데

 

백인 여성 선교사의
역사를 써보려고요

 

인도나 스리랑카로 가서
선교 활동을 했던

 

선교사의 아내도
같이 다루고요

 

사회 개혁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기억난다

 

이 기분

 

이런 여자와
그녀의 이상주의

 

그녀의 목적의식

 

그녀의 바람

 

여성 인권과도 관련 있고
식민주의의 슬픈 유산이...

 

이런 밤들을 기억한다

 

이런 대화들

 

세상을 변화시킬 계획들

 

연결되고자 하는 갈망

 

엠네스티 들어가는 게
꿈이라고 말씀드렸더니

 

엄청 충격받으셨어

 

이런 멋진 아빠가
있다는 건 행운이야

 

제 친구 마야예요

 

근처라길래
잠깐 오랬어요

 

- 너도 하버드 다니니?
- 네

 

같이 오케스트라 하는데
바이올린 켜요

 

- 너는 어떤 악기야?
- 저는 플룻요

 

- 플룻?
- 네

 

왜 중국 학생 대표를
맡으라는지 모르겠어

 

물론 걔들 적응하게
돕고 싶지

 

근데 다른 것보다
난 한국인이잖아

 

게다가 중국어도 못 해

 

마야도 못지않게
매력적이다

 

못지않게 흥미롭고

 

갑자기 슬퍼졌다

 

내가 사랑해볼 수
없는 여자들과

 

내가 살아볼 수
없는 삶에

 

이 둘과 멀리 도망쳐
새출발하는 상상을 했다

 

과연 어떤 모습일지

 

장난 아니지?

 

진짜 웃겨

 

- 너도 있었잖아
- 내 말이!

 

정말 잘 먹었어요

 

- 감사해요
- 우리가 고맙지

 

- 트로이도 고마워할 거야
- 트로이도 정말 고맙대

 

조촐하게 술자리 있는데
괜찮으면 가실래요?

 

- 그래? 어딘데?
- 바로 길 건너예요

 

근데 트로이가
내일도 미팅이 많아서

 

우린 가서 자야겠어

 

- 한 잔도 안 돼요?
- 어차피 난 출입도 안 돼

 

- 아, 그렇지
- 재밌게 놀아

 

- 내일 공연 오시죠?
- 가나?

 

아빠는 친구랑
저녁 먹잖아

 

- 난 갈 거야
- 그렇지

 

크레이그 피셔

 

- 좋으시겠어요
- 그러게

 

그럼 안녕

 

- 내일 봐
- 그래

 

- 반가웠어요
- 반가웠어

 

- 저녁 감사했어요
- 별말씀을

 

- 감사해요
- 학교 잘 다니고

 

- 감사해요
- 그래

 

가고 싶은 표정이네

 

아니야
예의상 그런 거지

 

트로이?

 

트로이, 깼어?

 

저기요
계산해주세요

 

- 위스키만 드셨죠?
- 네

 

8달러예요

 

- 오셨네요?
- 응

 

잠이 안 와서
위스키 한잔하러

 

우리 저쪽에 있는데
오세요

 

아니야, 재밌게 놀아
잠 안 와서 왔어

 

오세요

 

노는 게 아니라
시위 준비 중이에요

 

그래? 멋지네
대단해 보여

 

- 그래요?
- 응, 대단해 보여

 

젊은데도
세상 보는 눈이 있고

 

희망이 가득하고
능력도 잘 활용하고

 

- 감사해요
- 옛날의 내가 생각나

 

- 학창 시절의 나
- 그럼 조언해주신다면요?

 

- 조언?
- 네

 

그 시절로 돌아가서
자신에게 조언한다면?

 

- 진짜 궁금해?
- 네, 궁금해요

 

솔직히 말하자면
이렇게 말하겠지

 

"비영리 활동은 접고
돈이나 많이 벌어"

 

- 장난치지 마시고요
- 아니, 진심이야

 

"세상에 영향을 끼치고"

 

"존경을 받으려거든
빌 게이츠가 돼라"

 

"돈부터 많이 벌고
그 돈으로 뭘 해라"

 

- 그렇게 조언할 거예요?
- 응

 

만찬 파티에 가서
내 직업을 설명하면

 

다들 3분쯤 흥미를 갖고
존경어린 눈으로 보지만

 

그 3분이 지나면
난 투명인간이야

 

내게 관심이 사라져

 

내가 기부하랄까 봐
오히려 피해

 

근데 실제로
그러기도 하고

 

왜?
얘기가 따분해?

 

나도 너와 친구들처럼
이상주의로 시작했어

 

무가치한 일이란
소린 아니지만

 

정떨어질
소리를 했다

 

존경심을 잃을 소리

 

주워담고 싶었다

 

내 인생의 궤적을
요약해서 들려주면

 

날 이해해주리라
생각했다

 

선한 싸움에서
패배한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싸웠던 사람이라고

 

저널리즘스쿨 다닐 땐
그게 이상이었어

 

다들 우드워드나
번스타인이 꿈이었지

 

- 누군지 알지?
- 그럼요

 

내 실수들을 말해줬다

 

신문 업계가 죽어갈 때
저널리즘에 뛰어들었다거나

 

샌프란시스코에서
디지털 매거진을 만들었지만

 

그렇게 긴 글은
아무도 안 봤다거나

 

권위 있는 상도 탔지만
매거진은 망했다거나

 

피바디 상도 탔지만
별 소용없었어

 

대학 동창들
얘길 해줬다

 

어떻게 성공했고
부자가 됐는지

 

내가 우리 모임의
중심이었는데

 

중요한 행사에
안 부른다는 것도

 

그들에겐 실패자로 보여도
난 소신을 지켰으니

 

편히 잘 수있다고 했다

 

예를 들어 크레이그는
윤리적 기준이 없어

 

자길 흥미로운
사람으로 포장하려고

 

그럴듯한 말만 하지

 

TV가 잘 맞는
사람이랄까

 

내 비영리 회사
얘기도 했다

 

요즘 회사가 힘들지만
분명 보람을 느낀다고

 

도와준 사람들하고
연락하고 지내면

 

단절됐다는 느낌은
덜 들 텐데...

 

- 무슨 표정이야?
- 뭐가요?

 

무슨 생각 해?

 

- 제 생각요?
- 응, 말해봐

 

솔직히...

 

정말 운이 좋으세요

 

50살이 되도록 자신이
세상의 주인공이라 믿고

 

47살이야

 

가난한 사람들을
알긴 하세요?

 

알지

 

델리에 있는
외가에 가면

 

하루 2달러로 사는
사람들이 많아요

 

만찬에서 무시당했다고
불평하기는커녕

 

저녁을 먹으면
다행이죠

 

내가 경쟁하는 건
그 사람들이 아니야

 

인생의 지표인
사람들과 경쟁해야지

 

애초에 경쟁을
왜 해요?

 

세상이 그래

 

대학 친구들과
경쟁하는 것

 

그런 경쟁이
식민주의를 부추겼어요

 

여성 억압이나
환경 오염도 그렇고

 

거기까지 가진 말고

 

문제의 발단은
내가 아니야

 

난 비영리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이야

 

제가 보기엔

 

백인 특권, 남성 특권

 

상류층 특권
문제예요

 

그래

 

뻔하게 들리겠지만

 

내 인생이 그래

 

불쌍하게 봐주길
바라지 말란 소리예요

 

잘하고 계세요

 

제가 확신하는데

 

충분히 갖고 계세요

 

- 네, 또 봬요
- 잘 가

 

아빠

 

아빠, 가야 돼
면접 가야지

 

숙취가 와서

 

와인 한 잔에?

 

아난야의 말이 떠올라서
잠을 설쳤다

 

날 경멸하던 모습

 

끝내 이상을 지키리라
생각하진 않는다

 

플랜테인과 다이커리

 

사치를 한번 맛보면
다수의 고통은 바로 잊겠지

 

이게 합리화라는 건
나도 안다

 

아난야는
따뜻한 사람이다

 

그 애는 멜라니를
떠올리게 한다

 

젠장, 멜라니

 

멜라니예요
메시지를 남겨주세요

 

안녕, 여보
우린 잘 있어

 

트로이는 음대 교수
만나고 있고

 

이따가 입학처장이랑
면접 볼 거야

 

잘 풀리는 거 같아

 

트로이 지금 나온다
다시 전화할게

 

오늘 크레이그랑
저녁 약속 있어

 

짐작은 하겠지만
아주 기대돼 죽겠어

 

사랑해, 끊을게

 

어서 와, 어땠어?

 

내 음악을 들어보더니
마음에 든대

 

진짜 잘됐네
봤지? 되잖아

 

연줄과 재능
내가 패스하고 네가 슛

 

잘됐어

 

- 왜 그래?
- 아니야

 

표정이 좀...

 

행복해하고
좋아해야지

 

그게 좀 그래

 

예상이랑 달랐지만
괜찮은 사람이더라

 

어떻게 다른데?

 

모르겠어
좀 이상한 게...

 

내 우상인 사람이
자꾸 어필을 하잖아

 

자기 자랑만 하고
분위기가...

 

생각한 것보다
사업가 같은 느낌이야

 

내 음악을
상품화해야 한다느니

 

이상한 말만
잔뜩 했어

 

아무튼 생각보단
안 멋지더라

 

너무 편견 갖지 마

 

넌 우물 속에서
살아왔잖아

 

세상에 나오기 전까진
섣불리 판단하지 마

 

알아, 아빠가 물어봐서
예상 밖이라고 한 거야

 

안 멋지다며

 

생계 걱정 없는
17살 힙스터에게 멋진 것과

 

세상이 생각하는
멋진 건 다르지

 

그러든지

 

누가 멋지고 아닌지는
30년 뒤에 말하라고

 

아빠 미쳤어?

 

면접 가는 길인데
지금 꼭 이래야 돼?

 

트로이

 

그래, 미안해
사랑한다

 

넌 정말 최고야
내 마음 알지?

 

- 아빠
- 분명 잘할 거야

 

혼자 머리 좀 식힐게
이따가 만나

 

- 그래, 트로이
- 응

 

네가 자랑스럽다

 

- 따님이에요?
- 네

 

- 면접 봐요?
- 네

 

잘되길 빌죠

 

우리 애는 처장이랑
면접 중이라...

 

긴장했더라고요

 

- 행운을 빌어요
- 고마워요

 

여보세요?

 

제이슨 해츠펠드야

 

안녕, 제이슨
잠깐만

 

진짜 오랜만이네
무슨 일이야?

 

사무실로
전화 왔다길래

 

맞아, 그게...

 

크레이그 번호 때문인데
빌리한테 받았어

 

그래, 그럼...

 

너희들 LA에서
한번 모였다며?

 

재밌었어?

 

얘기할 시간 없어

 

지금은 좀 그래

 

그래

 

오해하진 마

 

거래처들이 닦달해서
미네소타에 있거든

 

지금은 병원에서
결과 기다리는데

 

내일 비행기로
돌아가야 돼

 

놓치면 몇 달 준비한
설명회를 못 해서...

 

그래, 알았어
나도 이해해

 

그래도 비행기
놓칠 일은 없잖아

 

무슨 소리야?

 

너 전용기 있잖아

 

전용기?
나 놀리는 거야?

 

뭐? 아니야

 

나 전용기 없어
무슨 소리야?

 

전엔 분명 전용기가
있다고 했잖아

 

뭐? 아니야

 

샌프란시스코에서

 

그때 만났을 때...

 

직원들 데려가느라
한 번 빌렸었지

 

내가 착각했네

 

내 딸이 척추 사슬증
진단을 받았어

 

겨우 세 살인데

 

뭐? 이런...

 

제이슨

 

그게 무슨 병인데?

 

나도 모르겠어

 

내일 대수술을
받아야 한대

 

그렇게...
그렇게 작은 앤데

 

세상에

 

미치겠어

 

의사한테 가봐야 돼
끊어야겠어

 

그래, 경과 알려줘

 

가족들에게
안부 전해주고

 

정말 유감이야

 

어떻게 됐냐고
안 물어봐?

 

- 뭐?
- 면접

 

물어봐야지
어떻게 됐어?

 

정말 잘됐어

 

백칼리 교수가
이미 전화해서

 

재능있는 학생이라고
유심히 보라고 했대

 

정말?
정말 잘됐네

 

행복해?
진짜 잘됐네

 

이거 타자

 

터프츠 대학 가주세요

 

- 혼자 가도 되겠어?
- 괜찮아

 

은사님한테
인사나 드리려고

 

- 전에 말했던 분
- 그래, 알았어

 

저쪽이야

 

안녕하세요
코너 교수님 제자인데요

 

인사나 드리려고요
안에 계세요?

 

- 때를 못 맞추셨네요
- 외출 중이세요?

 

아뇨

 

죄송하지만 돌아가셨어요

 

몇 주 전에

 

돌아가셨어요?

 

아직 교수 명단에
계시던데요

 

바꿔야 되는데
저도 요새 들어와서

 

어쩌다 돌아가셨어요?

 

뇌졸중이 왔는데
못 일어나셨어요

 

안타깝네요

 

 

훌륭한 스승이셨어요

 

좋은 분이셨죠

 

그럼...

 

좋은 하루 되세요

 

고마워요
좋은 하루 되세요

 

- 여보세요?
- 전화 와 있길래

 

잘되고 있어?

 

응, 괜찮아
잘되고 있어

 

저기, 멜...

 

우리가 키웠다는 게
신기하지 않아?

 

이렇게...

 

똑똑하고
훌륭하게 크다니

 

당신도
같이 있으면 좋겠어

 

나도 그래

 

여보, 컨퍼런스 준비하러
들어가야겠어

 

사랑해
저녁에 전화할게

 

응, 그래
나도 사랑해

 

터프츠도 정말 좋더라
진짜 마음에 들었어

 

- 아빠도 다녀봐서 알지?
- 알지

 

투어 같이 와줘서
정말 고마워

 

내가 뭘 했다고

 

아빠가 처장도
만나게 해주고

 

그 덕에 싫어하는
친구랑 저녁 먹잖아

 

안 싫어해
그 친구 좋아해

 

재수없는 친구라며

 

좋은 친구야
오래된 친구고

 

만날 생각하니까
기대되네

 

오랜 친구들은
소중한 거야

 

난 공연 못 가지만
너라도 재밌게 봐

 

- 알았어
- 이따가 봐

 

안녕하세요

 

7시에 두 명
예약했는데요

 

- 이름은 슬로언이에요
- 네

 

따라오세요

 

일행은
아직 안 오셨어요

 

다른 테이블은
없을까요?

 

- 좀 시끄러운데
- 예약이 풀이라서요

 

- 저 테이블은요?
- 죄송하지만 예약됐어요

 

- 빈 것 같은데요
- 아뇨

 

예약됐어요

 

- 이 친구야
- 어서 와

 

신수가 훤하네

 

- 늙었지
- 나보단 나은데

 

우린 실패한 인생이야

 

젊음을 지키는 데
실패했다고

 

맥주 들고 와
테이블 옮기자

 

그래

 

- 빈 테이블이었네요
- 네

 

즐거운 저녁 되세요

 

들러주셔서 감사해요

 

잘 오셨어요

 

- 잭콕 한 잔 될까요?
- 그럼요

 

- 제가 갖다 드릴게요
- 감사합니다

 

단골인가 보네

 

처음 와봐
좋단 얘긴 들었지

 

아까 종업원이
엄청 친하게 굴던데?

 

알아보고 그런 건가?
진짜 기분 좋겠네

 

그건 그렇고
이게 얼마 만이야?

 

- 10년 넘었지
- 그래

 

정말 반가워
진짜 반갑다

 

나도 반가워
보스턴에 잘 왔어!

 

- 고마워
- 어디 묵고 있어?

 

오크 트리 호텔

 

거긴 처음 듣네
괜찮아?

 

응, 쓸만해

 

그리고 정말 고마워
덕분에 교수도 만나고

 

입학처장도 만났어
정말 신세 졌어

 

- 면접도 좋았대
- 다행이네

 

벌써 대학 준비라니
믿기지가 않아

 

- 나도 그래
- 우리 딸들도 그래

 

겨우 12살인데
대학에 환장해

 

자기들이 지원서도 쓰고
우리 때보다 훨씬 심해

 

하긴 트로이도
집착이 좀 있어

 

- 걔 혹시 치료받아?
- 아니

 

- 고마워요
- 별말씀을

 

멜라니는 좀 어때?

 

잘 지내

 

자기 일도 좋아하고
늘 만족하는 사람이잖아

 

다이앤은 HBO에
소설 팔았어

 

시리즈로 만든대

 

잘됐네!

 

오늘 터프츠에
다녀왔는데

 

- 코너 교수님이 돌아가셨어
- 알아

 

- 알아?
- 내가 추도사도 했는걸?

 

- 그래?
- 연락하고 지냈거든

 

강연을 부탁하셔서
학교도 몇 번 갔고

 

정말 좋았겠네

 

피하느라 힘들었지

 

그래도 사람은
정말 좋았어

 

그래, 내 스승 중엔
제일 가까웠지

 

그렇지
네가 애제자였잖아

 

추도식 갔으면
좋았을걸

 

그걸 몰랐네

 

닉 결혼식에 왔으면
그때 말해줬지

 

- 직후였거든
- 결혼식도 몰랐어

 

뭐 그냥 뻔했어
닉은...

 

그 친구 좋아하지만

 

성공할수록
더 게이스러워져

 

지금은 얼마나
밝힌다고

 

그 대머리 친구들이랑
집에서 껴안고 뒹굴고

 

집은 잡지에서 봤어

 

SF 게이 포르노
촬영 세트 같더라

 

오늘 제이슨이랑
통화했어

 

그래? 어때?

 

목소리가 안 좋아
애가 아프대

 

척추가 어딘가
잘못됐다던데

 

세상에, 근데 몇째?
애가 넷인가 그래

 

전용기가 있던 걸로
기억하고 있어서

 

그 얘길 꺼냈는데
말을 잘못한 건지

 

전용기 얘기에
발끈하더라고

 

- 미안했어
- 전용기 있잖아

 

- 없어
- 있어

 

회사에서
임대한 거라던데

 

자기 회사니까
자기 비행기지

 

- 확실해?
- 타임스 기사 못 봤어?

 

나 참...
소송이 걸렸어

 

유력가들 돈을
많이도 날렸어

 

도망 중일걸

 

세상에...

 

그래서 조금
예민했나 보네

 

그런가 보다

 

착각했나 했거든

 

제이슨이
정말 훌륭한 친구지

 

가정적인 남자고
착한 친구야

 

사기꾼이라 그렇지

 

- 뭐?
- 도둑놈이야

 

결과는 봐야 알지만
아마 감옥 갈걸

 

- 맙소사
- 그래

 

착한 짓만으론
부자 못 돼

 

그 친구도 빌리처럼
해외로 떠야지

 

맞다, 빌리

 

꿈속에 살더만

 

- 애인도 둘이고
- 5시 넘어서만 전화하지 마

 

- 왜?
- 알코올 중독이잖아

 

그래?

 

그리고...

 

- 주사도...
- 말도 안 돼

 

순진하게 굴지 마

 

나랑 통화할 땐
괜찮아 보이던데

 

아침부터 개랑
산책 중이었어

 

밤새 처마시고
놀았겠지

 

굳이 편을 들자면

 

남는 게 시간이니
그럴 수 있지

 

- 워낙 심심하니까
- 나만 아무것도 모르네

 

그러게 누가 자퇴하고
새크라멘토로 가래?

 

새크라멘토는 맞는데
자퇴는 안 했어

 

왜 새크라멘토로
이사 갔어?

 

멜라니가
그쪽에 취직했거든

 

난 어디서
일해도 괜찮고

 

그렇지
너 직업이...

 

진짜 멋진 일
하는 거야

 

- 고마워
- 정말 좋은 일이지

 

그때 답신
못 줘서 미안해

 

괜찮아

 

진짜 정신없이
바쁠 때였어

 

여기저기 요청이
쏟아질 때 있잖아

 

강연이니
서평 요청이니

 

비영리 회사 이사회에
들어오란 요청까지

 

24시간이
모자란다니까

 

그래서 어쩔 땐

 

내가 잘라야 돼
아주 매몰차게

 

거절하는 법을
알아야 해

 

어제는 아스펜 아이디어
페스티벌 초청받았어

 

거긴 가긴 가야지
규모가 있으니까

 

- 크레이그
- 응

 

이건 알았으면 해

 

네가 정말 자랑스러워
진심이야

 

중압감도 심할 거고
일도 정말 바쁘겠지

 

잘은 몰라도
밖에서 보면...

 

그렇게 힘들진 않아
재밌지

 

네가 잘돼서
참 기뻐

 

솔직히 TV에서
널 처음 봤을 때

 

마음이 조금 불편했어

 

너랑은 예전부터
경쟁하는 사이였잖아

 

그래도 내 삶에 만족하고
너도 잘하고 있고

 

이래저래
잘된 것 같아

 

너랑 경쟁한 적 없어

 

안 그래도 돼

 

학교에서나
잠깐 그랬을까

 

그런 생각은
전혀 안 했는데

 

날 그런 식으로
생각 안 했다고?

 

무슨 뜻이야?

 

내가 너랑
왜 경쟁해?

 

- 그러지 말고
- 뭐?

 

난 솔직하게
털어놓는 거야

 

그러니까...

 

너...

 

내가 하는 일이
뭔지는 알아?

 

난 사람들을
돕고 있어

 

진짜 이해가...

 

너는 왜...

 

날 이렇게 취급해?

 

뭘 어떻게 취급해?

 

내가 너한테 뭐야?

 

실례합니다, 피셔 씨
마크라고 하는데요

 

안녕하세요
선생님 팬이에요

 

책도 정말 좋아하고
잘 보고 있어요

 

사진 한 장만...

 

우리 어머니 돌아가셨을 때
한마디도 없었잖아

 

페이스북에서
나랑 친추했으면서

 

모르겠다

 

모르겠어

 

- 제가 방해했나요?
- 아뇨

 

감사해요

 

감사합니다

 

너 내 친구야?

 

친구 맞아?
우린 뭐야?

 

우리 관계가
대체 뭐야?

 

내내 뒷담화만 하고

 

지금 기분이...

 

지금 내 기분이...

 

영문을 모르겠네
왜 그러는데?

 

아들 도와줘서 고마워

 

근데 미안하지만
못 하겠어

 

이게 뭔지 몰라도
못 하겠어

 

선생님?

 

- 표 받으세요
- 고마워요

 

실례합니다

 

- 아빠
- 안녕

 

저녁은 어쩌고?

 

너랑 있는 게
낫겠더라

 

- 어제 걔들이잖아
- 알아

 

잘하네

 

갑작스레 감정이
벅차올랐다

 

난 나를 추켜세우거나
비하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써버렸다

 

난 그곳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내 안에 있는 인생을
진정으로 느꼈다

 

음악은 아름다웠고

 

그 아이들도
아름다웠다

 

그들을 사랑할 순 있어도
소유할 순 없다

 

세상을 사랑해도
소유할 수 없었듯이

 

난 아직도
세상을 사랑한다

 

- 아빠?
- 괜찮아, 괜찮아

 

먹을래? 싫어?

 

아난야가 어젯밤에
아빠 만났다더라

 

응, 잠이 안 와서

 

한 잔만 했어

 

아빠, 공황장애나
그런 거 겪는 거야?

 

아니

 

그냥...

 

가끔씩...

 

걱정이 돼

 

사람들이 날 보면서

 

패배자로 볼까 봐

 

그러다 또 괜찮고

 

오늘 같이 다닐 때

 

아빠가 창피 줘서
그런 생각을 했어

 

이 학교 들어오면
다들 기억할 텐데

 

창피해서
어떻게 다니나 하고

 

근데...

 

걔들은
기억 못 할 거야

 

다들 자기 자신만
생각하니까

 

아빠 생각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까

 

아빠는 내 의견에만
신경 쓰면 돼

 

그래?

 

네 의견은 어떤데?

 

사랑해

 

고맙다

 

내 아들

 

녀석이 여기 있다

 

우린 함께할 날이
아직 많다

 

난 미래를
상상해보려 했다

 

머릿속으로
계속 되뇌었다

 

"우린 아직 살아있다"

 

"나는 아직 살아있다"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

 

번역 황석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