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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영화사 오원
배급 ㈜라이크콘텐츠

 

이 이야기는 실화다

 

1929년 뉴욕

 

찰스 스크리브너 선스
출판사

 

아름답고 저주받은 사람들
낙원의 이편

 

위대한 개츠비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

 

이것도 읽어보게

 

공백이 포함된
원고겠지?

 

- 안타깝지만 아니야
- 누가 줬어?

 

앨린 번스타인이란 여자야
무대 디자이너라는군

 

자기 후배가 쓴
원고라는데

 

다른 출판사에서
모조리 거절당했대

 

내용은 괜찮아?

 

괜찮냐고?

 

아니

 

독특해

 

- 빨리 읽을게
- 고마워, 맥스

 

역시 자네뿐이야

 

뉴캐넌행 602번 열차
곧 출발합니다!

 

- 안녕하신가, 피터
- 어서 탑승하세요

 

오, 잊혀진 것들
토마스 울프 지음

 

돌 하나
잎 하나

 

미지의 문
하나

 

하나의 돌, 하나의 잎
하나의 문에 관하여

 

그리고 잊혀진
모든 얼굴들에 관하여

 

우리 중 누가
그의 형제를 아는가?

 

우리 중 누가
아버지의 진심을 아는가?

 

영원히 억압되지 않을 자
누구인가?

 

영원히 낯설지 않고
홀로되지 않을 자 누구인가?

 

기억하라
저 위대한 잊혀진 언어들을

 

천국으로 들어가는
저 잊혀진 좁은 통로를

 

돌 하나, 잎 하나
미지의 문 하나

 

어디일까?
언제일까?

 

오, 잊혀진 것들이여

 

그러면 영혼이여

 

탄식하는 바람과 더불어
다시 오라

 

운명은 영국인을
네덜란드로 이끌어

 

낯섦을 선사했지만

 

엠솜에서 펜실베니아로
이끈 운명은

 

알타몬트 도시를 둘러싼
언덕 뒤편에서

 

수탉의 경쾌한
울음소리를 지나

 

미소 짓는 천사의
조각상을 거치며

 

신비한 기적을
마주하게 한다

 

다녀오셨어요, 아빠!

 

안녕, 오리들

 

더 연습하자

 

아빠는 눈치 꽝이야

 

'겨울의 맹렬한 추위도
두려워 마라'

 

'그대의 사명을
끝마쳤으니'

 

'무사히 귀가했고
지갑도 두툼하니'

 

'금발의 청년들과
여인들은...'

 

지미, 내가 뭐랬어?

 

영화는 싫다니까

 

난 책이 좋아

 

내 말에 관심 좀 가져

 

결핍과 밤의 시간으로
들어가면

 

4천년 전의 크레타 섬이
보이기 시작하고

 

어제의 텍사스에서
그 사랑은 소멸된다

 

오셨어요, 아빠?

 

- 저 어때요?
- 예쁘네

 

다음주에
졸업파티가 있거든요

 

벌써? 다 컸구나

 

그래도 결혼은 안 돼

 

오, 인생의 종말은

 

감정을 메마르게 하고

 

오, 변화는

 

신들의 위상을
하락시킨다

 

이봐요, 퍼킨스 씨?

 

내가 연극 모임 하는 게
아빠는 싫은가 봐

 

엄마가 다시
연기하는 거 싫어요?

 

인기 끌 나이는
이미 지났잖니

 

아빠는 속물이야!

 

그래요, 화려한 소용돌이는
당신이나 실컷 즐겨요

 

작가 사인회나
출판기념 파티는

 

야생의 여인들에겐
먼 나라 얘기죠

 

- 여기가 야생이에요?
- 멋지다

 

칼 하나씩 챙기자!

 

그러자
해적 선장 할 사람?

 

세실, 여자에게
수작 걸어봤어요?

 

- 그랬어요?
- 아니

 

어쩜 좋아

 

당신 같은 괴짜는
처음 봐

 

잠깐, 무슨 일이죠?

 

- 모르겠는데
- 뭔데 그래요?

 

- 기다리지 마요
- 10시까지 와

 

- 11시
- 10시

 

잔소리꾼

 

그는 예배실에 앉아

 

2학년 학생의
설익은 설교를 경청했다

 

대학 소개서에 있는
목차를 훑어보며

 

시험 준비에
심혈을 기울였다

 

10시랬지

 

한 단락이 엄청 기네

 

4페이지 전에
시작된 거야

 

불쌍한 아빠

 

사랑을 하기엔
넌 아직 어려

 

몇 살에 가능한데?

 

마흔

 

이렇게 말하련다

 

그가 떠나 온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서서

 

속으로 되뇌었다고
'마을이 가깝군'

 

그러나 우뚝 솟은 먼 산으로
곧 눈길을 돌리고 만다

 

 

지니어스

 

무기여 잘 있거라

 

경이로운 책들이로군

 

경이로운 책들이야

 

- 어떻게 오셨죠?
- 젠장할

 

이 책들 좀 봐

 

그만둘 생각 없어요?

 

언제까지 한 줄 한 줄
다 잃고 고친단 말이오?

 

믿음의 증표겠지

 

한밤중에 소리치며
뛰쳐나와 보니

 

알프스의 차디찬 바람이
휘몰아치는데

 

누군가 읽고 듣고 이해해주리란
헛된 희망만 품고 있구려

 

토마스 울프 씨군요

 

이게 다
당신 작가들인가?

 

톨스토이만 빼고요

 

퍼킨스 씨

 

앉으세요

 

직접 올 생각은 없었소

 

거절 의사는
편지로 받는 게 낫거든

 

지극히 피상적이고
고리타분하게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드려 유감이다'

 

근데 당신은
만나보고 싶었소

 

스콧 피츠제럴드의 책을
처음 읽은 사람이 그러더군

 

"그래!
세상엔 시가 필요해"

 

"맙소사!"

 

"이 작자의 책을 내준 건
세상에 시가 필요해서야"

 

"그게 살아갈 의미지"

 

그 편집자가
내 눈앞에 있군요

 

축하합니다

 

그런 천재를 찾아내다니
헤밍웨이까지 둘이군요

 

나는 말이오

 

계속 쓸 겁니다

 

잔가지 좀 잘라낸다고
뿌리가 뽑히진 않으니까

 

더 깊이 뿌리내릴 거예요
퍼킨스 씨

 

그 누구에게도
정복당하지 않을 겁니다

 

울프 씨, 당신의 책을
출판하고 싶습니다

 

물론 동의를
구해야겠죠

 

조금 손을 봐야겠어요

 

현재 원고는 한 단락이
너무 장황해요

 

그래서 가능하다면

 

조금만 다듬고

 

- 잔가지를 잘라냅니다
- 퍼킨스 씨

 

장난하는 거 아니죠?
그럴 사람 아니잖소

 

세상에!
나한텐 대단한 일이에요

 

당신은 몰라요
모를 겁니다

 

뉴욕의 편집자 놈들은
하나같이 내 글을 싫어해요

 

울프 씨
일단 앉아요

 

- 톰이라고 불러요
- 톰

 

- 편하게 불러요
- 톰

 

자전적 이야기로
보이더군요

 

모든 작가가 마찬가지죠

 

유진 겐트가 나예요

 

어머니는 엘리자
아버지는 W. O. 겐트

 

그건 나중에
얘기 나누죠

 

길다는 거 알아요

 

이 괴물 같은 문장과
얼마나 힘 겨루기를 했는지

 

나도 줄여보려고
무던히 애를 썼어요

 

당신이 지적하는 부분은
전부 고치겠소

 

말만해요

 

 

이 책은 당신 겁니다

 

난 당신의 글이 대중들에게
잘 전달되도록 도울 뿐이죠

 

내가 할 일은

 

좋은 책을 독자들에게
건네는 겁니다

 

고맙소, 퍼킨스 씨

 

스크리브너 사에서
선인세를 지급할 겁니다

 

조건이 맞는다면 후반 작업은
작가님 편의에 맞추죠

 

5백 달러

 

내 글로 돈을 벌 거라고
아무도 생각 안 했어요

 

오, 주여

 

내일부터
시작해도 될까요?

 

물론이죠

 

열심히 하겠소

 

오, 주여

 

맙소사
이런 날이 오다니

 

"울프 씨, 당신의 책을
출판하고 싶습니다"

 

설마

 

톰!

 

나의 천사, 고마워

 

진짜 고마워

 

고마워, 내 사랑

 

어쩜 좋아

 

너무 잘됐다!

 

얼마나 잘라내야겠소?

 

대략 300페이지 정도

 

분량보다
이야기 흐름이 중요하죠

 

4년간 오로지
이 글에만 매달렸소

 

내 심장이
찢겨나가는 기분이에요

 

그래도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순 없겠죠

 

바로 제가 하려던
말입니다

 

편집 작업을 했던
지난 몇 주가

 

내 보잘것없는 인생에
가장 신나던 순간이었어

 

그랬다니 기쁘군

 

자네도 인생의 대부분을
책을 보며 지내니

 

우린 공통점이 많아

 

자네 심연에서 끌어낸
등장 인물들 같지 않냐고

 

바로 우리 자신을
투영한 거지

 

난 지금껏

 

'두 도시 이야기'의
시드니 칼튼을 열망했어

 

'전쟁과 사랑'의
피에르란 인물도

 

허나 그건 소망일 뿐
진짜 내가 아니지

 

우린 소설 속 인물이
될 수가 없어

 

그냥 이대로
살아갈 뿐이지

 

난 셰익스피어의
칼리반에 가까워

 

섬에 살던
마녀의 아들

 

흉측한 모습을 한 괴물

 

칼리반 말이야

 

아주 못났지

 

아주 특이하고

 

상처 입고
시 속으로 도피한 인물이지

 

맨하탄은 소음으로
가득한 섬

 

'들려오는 소리와
아름다운 음악이'

 

'과연 상처가 아닌
기쁨만을 줄까?'

 

'때론 무수히 울리는 악기들이
내 귓가에 맴돌고'

 

'목소리들의
속삭임으로'

 

'내가 긴 잠에서
깨어나더라도'

 

'다시 나를
잠들게 합니다'

 

책에 대해
생각해봤어

 

'오, 잊혀진 것들'

 

제목부터
다시 정해야겠어

 

소설의 주제를
관통하지 못해

 

자네의 독자를 상상해봐

 

서점에 들어가
수많은 책들 가운데

 

'웨스트에그의 트리말키오'란
제목을 봤다고 쳐

 

그 옆에 '위대한 개츠비'가
놓여있다면

 

어떤 책을 고르겠어?

 

'개츠비'지

 

그래서 스콧이
제목을 바꾼 거야

 

좀 더 본질에
다가가야 했거든

 

자네 책이니까
한번 생각해봐

 

- 다 왔군
- 이런, 맥스

 

저택이네

 

드디어 뵙는군요
울프 씨

 

그이에게
얘기 많이 들었어요

 

톰이라고 불러요

 

신사 여러분
만나서 반가워요

 

숙녀 분들이라고
해야겠군

 

이렇게 고운 딸들이라서
맥스가 꽁꽁 숨겨뒀군요

 

사랑스러움이
흘러 넘쳐요

 

새 소설을
작업 중이라던데

 

제가 문어발 성향을
가졌거든요

 

문어발이래

 

한 팔에는
원고를 끼고

 

다른 팔은
깊은 바다를 어슬렁대며

 

새 소설을
구상 중이죠

 

문어발 선생이라고
불러주세요

 

새 소설은
어떤 내용이에요?

 

미국에 관한 얘기지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걸 다룰 거예요

 

도시와 마을

 

돌과 잎사귀

 

어른과 아이

 

농장과 꽃

 

강물까지

 

불꽃 같은 감정들

 

심장을 불태우는
눈부신 진실을

 

누구나 간직하고 있거든

 

그건

 

진정한 아버지를
찾는 과정이야

 

생물학적인 아버지를
말하는 게 아냐

 

정자를 제공한 사람 말고

 

우리 영혼의 아버지를
찾아야 한다는 거지

 

그런 작은 게 모여서
이 나라가 힘을 갖는 거야

 

엄청나지!

 

맥스가 그러더군

 

글의 소재는
큰 생각에서 얻어진다고

 

큰 생각에서
핵심을 뽑아내야지

 

봤죠?
난 맥스 없인 안 돼요

 

그렇죠?
저도 작가랍니다

 

그러세요?

 

그이가 말 않던가요?

 

꽤 오랫동안
희곡을 쓰고 있어요

 

나폴레옹의 여동생
폴린에 관한 얘기죠

 

실화를 소재로 한
야외극인가요?

 

더 현대적으로
해석하고 있어요

 

나도 희곡을 써봤는데

 

그다지 좋은 기억은
아니에요

 

희곡은 결핍된 산문이죠

 

활력과 재미가 모자라요

 

그래서 집어치우고
소설로 돌아왔죠

 

새 소설의 제목은
정하셨어요?

 

아빠와 함께
고민 중이야

 

'때와 흐름에 관하여'가
어떨까 생각 중이지

 

'흐름'이란 단어가

 

우리 아버지를
떠오르게 하거든

 

강물이 물에서 흘러나와
다시 흘러 들어가듯이

 

책이 엄청
두꺼울 것 같아요

 

그런 말 마, 앨린

 

내일 만나러 갈게

 

뜨겁게 맞아줄
준비하고 있어

 

잘 자

 

끊을게

 

이 정도면 편할 거야

 

내일 아침에 보세

 

맥스

 

오늘 저녁 고마웠어

 

나 때문에 아무도
기분 안 상했길 바라네

 

자네 가족들이
날 좋아하면 좋겠어

 

- 걱정 마, 괜찮아
- 난 동물원 원숭이가 아냐

 

내가 괴짜인 거 알아

 

너무 시끄럽고

 

거창하게
떠벌리기나 하고

 

그게 나란 놈이지

 

오죽하면 시끄럽다고
애슈빌에서 쫓겨났을까

 

처절한 투쟁이었지

 

하지만 지금에서야

 

진짜 사람 대접을
받는 기분이야

 

그러니까

 

칼리반의 심장을 걸고

 

지금까지
내 삶에서

 

자네 말고
친구는 없었어

 

이제 끝이 보인다고

 

앨린!

 

맥스, 소개해줄게

 

이쪽은 번스타인 부인

 

- 안녕하세요
- 퍼킨스 씨

 

톰에게 얘기
많이 들었어요

 

내 글을 제일 처음
평가하는 사람이야

 

앨린 덕분에
원고가 자네에게 갔지

 

감사합니다

 

- 어젯밤에 오기로 해놓고
- 말했잖아

 

얼마나 당황했는데

 

- 연극하는 사람들 싫다니까
- 혼자 가기 싫댔잖아

 

- 그럼 난 이만
- 난 배우들이 불편해

 

- 안 간다고 했잖아
- 나중에 얘기해

 

2시쯤 보자

 

그래, 알았어

 

가자

 

좋은 하루 되세요
퍼킨스 씨

 

- 화 많이 났구나
- 아니, 화 안 났어

 

올 것이 왔네

 

인쇄전에 교정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야

 

다시 묻지

 

생각해둔
다른 제목 있나?

 

- 마음에 안 들걸
- 말해봐

 

천사여, 고향을 보라
토마스 울프 지음

 

이제 스크리브너의
베스트셀러 작가니까

 

이 정도는

 

즐기며 살아도 되지

 

다시 말해보게, 맥스

 

이번 달에
만 5천부 팔렸어

 

앨린, 들었지?

 

온 나라의 경제가
고꾸라진 판국에

 

내 책은 잘만 팔리네

 

톰의 책을 읽어보셨어요
번스타인 부인?

 

네, 퍼킨스 부인
저한테 헌정한 책이거든요

 

우리 어여쁜 유대인 덕에
그 소설을 완성했죠

 

내게 종이와 펜을
사줬거든요

 

- 타자수도 고용해줬고
- 그만해

 

먹고 잘 곳까지
마련해준 사람이에요

 

내가 먹성이
끝내주거든요

 

뿌듯하시겠어요

 

당신의 믿음을
보상받았으니까

 

우리의 믿음이죠

 

이제 우리의 믿음
아닌가요?

 

퍼킨스 씨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죠

 

그렇지 않아요

 

겸손한 척
안 해도 돼요

 

온 열정을
쏟아 부었다면서요

 

계속 당신 얘기만 해요

 

"맥스가 이랬어
맥스가 그랬어"

 

- 그쯤 해둬
- "맥스, 맥스, 맥스"

 

퍼킨스 씨의 노고를
인정해줘야지

 

당신의 꿈을 실현해준
천재 편집자시잖아

 

폭포처럼
쏟아놓은 문장을

 

잘 팔리는 베스트셀러로
바꿔놓은 장본인인데

 

열광적인 독자라면
안 읽고는 못 배기지

 

그 정도면
대단한 업적 아니야?

 

톰의 작품이죠

 

즐길 자격 충분해요

 

그래요?
톰이 누려도 될까요?

 

- 이제 그만해
- 자기는 빠져

 

자기 형님께 말한 거야
윗사람 말을 잘 들어야지

 

괜히 연장자겠어?

 

연장자라면
예의범절도 알아야죠

 

토마스 울프 맞죠?

 

당신 책을 읽고 있어요
명작이더군요

 

- 그런가요?
- 아주 훌륭해요

 

제 친구들이 당신을
만나보고 싶다고 난리예요

 

이분을 잠시만
빌려가도 될까요?

 

물론이죠

 

- 먼저 가세요
- 윌로우라고 해요

 

만나서 영광입니다

 

정신병원이 어떤 곳인지
상상도 못할 걸세

 

기괴한 곳이야

 

한 글자도 못 썼어

 

모든 어휘를 잊어버렸어

 

한 단어 이상을
이어가질 못해

 

참 기괴한 곳이야

 

끊임없는
비명 소리와

 

적막함이 공존해

 

화장실도 충분치 않아

 

젤다를 그런 곳에
둘 수는 없어

 

알아

 

개인 병실은
너무 비싸

 

'위대한 개츠비'가
수익을 못 낸 건 알아

 

정말 눈앞이 캄캄하군

 

더 이상의
선인세는 곤란해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에선
내 글을 받아주지 않아

 

할리우드로 돌아가서
뭐라도 써볼까 봐

 

그러지 말게

 

- 왜?
- 자넨 소설가야

 

이젠 아니야

 

24살 때
죽었어야 했어

 

'낙원의 이편'을
완성한 후에 말야

 

내가 보낸 책은
받았나?

 

- 어떤 거?
- 율리시스 그랜트의 개인회고록

 

어쩌다 그 책을
쓰게 된 줄 아나?

 

사연이 흥미롭지

 

인후암으로

 

죽어가던 중에

 

가족을 위해
뭔가 남기고 싶었던 거야

 

그래서 자서전을
집필한 거지

 

매일 밤낮을 안 가리고
글을 썼다는군

 

극심한 통증과
괴로움에 시달렸겠지

 

그래도 글 작업을
멈추지 않았어

 

그래서 결국은
위대한 역작이 탄생한 거야

 

아름답기도 하고

 

얼마 안 되지만
이걸로 버텨봐

 

좋은 글을 써줄게

 

알아

 

연극 피터팬

 

퍼킨스 부인

 

번스타인 부인

 

안녕하세요

 

이 연극의
무대 디자인을 하셨어요?

 

 

네버랜드에 사는
길 잃은 아이들과 함께요

 

그런 소년들이
우리 주변에도 있죠?

 

예전의 톰을
몰라서 그래요

 

하버드를
갓 졸업하고

 

세상을 바꾸려는 의지가
충만했었죠

 

그런 사람은
처음이었어요

 

이해하고도 남아요

 

모르실 거예요

 

내 남편은
아주 자상하지만

 

열정이 없어요

 

월스트리트의
전형적인 증권맨이죠

 

난 계산에 약하거든요

 

자녀들이 있잖아요

 

그렇죠

 

딸과 아들이요

 

다 컸어요

 

톰과 사랑에 빠진 건
어리석은 짓이지만

 

내 의지로
막을 수 없었어요

 

심장이 움직였거든요

 

내 인생에서

 

아름다운 것들이
모두 무너지고

 

아무도 날
필요로 하지 않을 때

 

톰을 만났어요

 

톰이 아름다운 세상을
다시 일꺠워줬죠

 

그런데 이제
톰을 잃게 생겼네요

 

당신 남편 때문에

 

번스타인 부인

 

제 남편은

 

세상 그 무엇보다
아들 하나를 원했어요

 

우리 부부에겐 불가능하단 걸
깨달았을 때

 

톰을 만났죠

 

절대 못 보내요

 

앨린, 가족에게 돌아가요

 

가족은 당신을
필요로 하지만

 

톰은 아니에요

 

가족과 남편

 

품위

 

톰을 위해
그딴 건 포기했어요

 

 

들어오게

 

톰?

 

가져왔어

 

가져와?

 

새로 쓴 원고

 

지금?

 

그래

 

어서 보자고

 

가지고 들어와요

 

거기 내려놔요

 

이게

 

'때와 흐름에 관하여'
원고야?

 

- 받아요
- 고맙습니다

 

수고했네

 

집에 가서 좀 쉬어

 

- 이거 말인데...
- 일단 읽고 나서!

 

예쁘게 봐줘

 

부탁해

 

때와 흐름에 관하여

 

매일 저녁에 만나

 

방해받지 않는 시간에
작업하면

 

가능할 거야

 

- 얼마나 걸릴까?
- 9개월

 

자네가 열심히 해서

 

보태려고 할수록
더 지연되겠지

 

- 보탤 수도 있어
- 톰

 

5천 페이지짜리 책은
좀 심하잖아

 

인정해

 

시작해보자
1페이지부터

 

맙소사

 

- 1페이지부터?
- 잘 봐

 

주인공이 기차 기다리는데
80페이지나 썼잖아

 

꽃잎마다 금 장식을
수놓을 필요가 있을까?

 

기차 오래 기다리는 건
나 하나로 충분해

 

- 이 부분은...
- 원고 여기 있습니다

 

주인공이 여자를 만났어

 

이렇게 썼더군

 

'유진은 담배 연기에
눈을 가늘게 떴고'

 

'담배 연기는
공기 중에 흩날렸다'

 

'그는 모직 옷을 입은
여인을 바라보았다'

 

'덩굴손처럼
뻗어 올라온 장갑이'

 

'그녀의 새하얀 팔을
덮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붉게 물들었다'

 

'소라껍질 속 연분홍 속살이
삐져나온 것처럼'

 

'그 광경을 처음 본
동물학자처럼'

 

'그는 시선을 멈춘다'

 

'매혹적인
장미 빛깔을 띤'

 

'그녀의 팔을
바라봤을 뿐인데도'

 

'그녀의 눈을 보자
숨이 멎고 심장이 요동쳤다'

 

'그 푸른 눈동자는'

 

'희뿌연 담배 연기 속에서도
단연 돋보이며 반짝였고'

 

'그는 푸른색 너머의
푸르름을 보았다'

 

'드넓은 바다처럼 펼쳐진'

 

'푸른색 너머의 푸르름'

 

'그 푸른 바다에서
영원히 헤엄치고 싶었다'

 

'새빨간 불꽃과 대지의 금빛은
머리에서 지워질 것이다'

 

'연회장 맞은편에 있던'

 

'그 푸른 눈동자는'

 

'영혼을 사로잡는
처음이자 마지막 눈빛으로'

 

'그의 뇌리에'

 

'기억되리라'

 

'인류에게 시가 존재한 까닭을
유진은 비로소 깨달았다'

 

'외롭게 떠도는 고독한 영혼들은
모두 그의 형제가 되었다'

 

'그의 사랑은
이루어진 적이 없었다'

 

'굉음 같은 사랑의 시작을
그 방의 누구도 듣지 못했다'

 

'사랑은 바람처럼
휙 날아와'

 

'그의 심장을
꿰뚫어버렸다'

 

'고요한 풍랑이었으나'

 

'그의 삶은
산산이 부서졌다'

 

챕터 끝

 

마음에 안 들어?

 

난 자네 글이 좋아

 

그걸 지적하는 게 아냐

 

주인공이 여자를 보고
첫눈에 반한 거잖아

 

깊은 바닷속으로
뛰어든 심정인 거지?

 

- 그 순간엔 그렇지
- 그게 와 닿지가 않아

 

자네는 여자가 아니라
모습에 빠져든 거야

 

'동물학자'와
담배 상표는 뺄게

 

- '연분홍'도 빼면 어때?
- 안 돼, 안 돼!

 

그 수식어는 진짜야
주인공의 속마음이라고

 

단순한 연분홍이 아냐

 

수천 개의 의미가
담겨있어

 

주인공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고

 

복잡한 심리를 묘사하는
다중적인 뜻이야

 

모든 형체와 소리는
쓰여진 이유가 있어

 

- 그렇지 않아
- 필요한 거라고!

 

본질을 놓치잖아

 

그는 사랑에 빠진 거야

 

처음 사랑에 빠질 때
어땠나, 톰?

 

새빨간 불꽃과 대지의 금빛이
떠올랐어?

 

번갯불에
감전되는 것 같았지

 

그럼그렇게 써야지
번갯불 말이야

 

천둥과 우박은
넣어두라고

 

알았어

 

이해했어

 

지우고

 

지우고

 

'모직 옷'도 빼자

 

'그는 여인을 바라보았다'
지우고, 지우고

 

'그녀의 눈을 보자
숨이 멎고 심장이 요동쳤다'

 

낭만파는 버려

 

'숨이 멎었다'

 

- '푸른 눈동자는...'
- 바다로 뛰어들지 마

 

- '푸른색 너머의 푸르름'
- 너무 뻔해

 

- '푸른색 너머의 푸른...'
- 푸른색만 살려

 

'푸른 바다에서
영원히 헤엄치고 싶었다'

 

'새빨간...'
이건 지우고

 

그럼 살릴 문장은?

 

그토록 푸른 적이 있던가?
그런 눈을 본 적이 있던가?

 

- 의문문일 필요는 없지
- 왜?

 

번갯불에 감전됐는데
따질 겨를이 있나?

 

'푸른색 너머의...'
아니고!

 

'그녀의 눈동자는
푸른색이었다'

 

훨씬 낫네

 

지우고

 

그녀가 없는 주인공은
아무것도 아냐

 

맞은편에 있는
여자일 뿐이야

 

이것도 지워

 

'외롭게 떠도는 영혼들...'

 

지우고

 

'굉음 같은
사랑의 시작을'

 

'그 방의 누구도
듣지 못했다'

 

'사랑은 바람처럼 휙 날아와
그의 심장을...'

 

'바람처럼, 산산이'
그게 중요한 건가?

 

사랑에 빠질 때
무슨 소리가 들리는데?

 

자네는?
부서지는 소리?

 

이 문장의 핵심은

 

주인공 내면의
심리 변화야

 

주인공은 삶이 흔들렸는데
누구도 몰랐다는 게 포인트야

 

- 그럼 그 포인트를 살려
- 어느 단어도 포기 못해!

 

더 중요한 질믄은
이걸지도 몰라

 

긴 문장이
산처럼 쌓여진 책에서

 

이 장면은 어떻게
차별화시킬 것인가?

 

단순하면 돼

 

간결해야지

 

번갯불처럼

 

먹구름을 뚫고
밝은 빛을 비추듯이

 

그렇지!

 

12번 열차 탑승하세요

 

남부 순환 열차
지금 출발합니다

 

'유진은 한 여인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동자는
푸른색이었다'

 

'굉음 같은
사랑의 시작을'

 

'그 방의 누구도
듣지 못했다'

 

마침표

 

제 4장 끝

 

이제 98페이지 남았어!

 

사랑해, 맥스 퍼킨스!

 

프랜시스와 유진이
파리에 함께 있는 거야

 

그렇지! 대서양을
훌쩍 건너온 느낌으로

 

유진의 혼란을
담아내는 거지

 

'그는 절대로 그녀의 사랑을
가질 수 없단 걸 몰랐다'

 

주인공이 이걸
어떻게 알아?

 

- 잠깐, 당연히 알지
- 어떻게?

 

'보랏빛 노을이
피어난다'

 

톰, 이어지는 장면은
전에 상의했잖아

 

한 문장씩
끊어서 가기로

 

의사 이야기만
50페이지를 더 썼잖아

 

그의 인생사와
부친의 인생사까지

 

- 의사 얘기가 좋단 말야
- 나도 그래

 

의사 얘기 흥미롭지
근데 50페이지나 읽어야 돼?

 

두꺼운 책이
좀 있으면 어때서!

 

톨스토이가 자네를 안 만나서
얼마나 다행인지

 

그 덕에 '전쟁과 평화'라는
장대한 소설이 나온 거지

 

소설가가 되려면
선택을 해야 돼

 

틀과 짜임새를
갖춰야지

 

왜!

 

2년간 작업했는데
겨우 100페이지 줄였어

 

글 좀 쓰게
5초만 내버려둬!

 

빙산의 일각에 불과해
하나도 안 중요하다고

 

이렇게 될 줄
알았잖아

 

왜 갑자기
순진무구한 소녀가 됐어?

 

당신이 이 정도로
이기적일 줄은 몰랐거든

 

무책임하게 작업을
미뤄둘 순 없잖아

 

앨린

 

그게 내 일이야

 

내 일은 이거야

 

첫 공연 날이 중요하단 걸
언제쯤 알아줄래?

 

다 됐어요?

 

그럼요, 스카프를
왼쪽 어깨로 매줄래요?

 

오늘은 나한테 중요한 날이야
당신이 곁에 있어야 돼

 

가서 작업해야 돼

 

작업은 지난 2년간
매일 했잖아

 

매일 밤 빈집에
들어가는 기분을 알아?

 

당신 일을
무시하는 게 아냐

 

지금 그러고 있잖아!

 

딱 하룻밤이야

 

딱 하룻밤만 시간 내서
내 곁에 있어달라는 거야

 

당신은 이해를 못해

 

내 책이 근본적인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관둬! 위기가
아니었던 적은 있고?

 

배우가 따로 없다니까

 

- 맥스 말로는...
- 또 나왔네

 

"맥스가 이랬어!
맥스가 그랬어!"

 

다른 날 실컷 어울리고
오늘 밤만 나랑 있자고

 

그만 내 무대에서
내려가

 

집에 가서 파란색 정장 입어
7시까지 데리러 갈게

 

집에 안 가

 

둘 중에 선택해

 

지금 당장

 

이럴 필요까진 없잖아
자기야

 

지금 당장

 

당신이 나한테 한 짓을
똑바로 봐

 

톰이 요즘
스트레스가 심해

 

지금 마무리 짓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 몰라

 

- 큰 바구니 줄까?
- 보온병도

 

톰의 기분이 어떨지
생각해봐

 

첫 책이 출간되자
모두들 천재라고 불렀어

 

두 번째 책에 거는
기대가 엄청나지

 

그게 두려워서
끊임없이 글을 쓴다고

 

딸들에게 그걸
설명해주면 어때?

 

- 아이들은 아빠를 원해
- 그게 내 일이야

 

- 매일 밤낮으로?
- 몇 년이 걸리더라도

 

현재는
다시 돌아오지 않아

 

휴가 한 번
같이 못 갈 뿐이야!

 

톰 같은 작가는
일생에 한 번밖에 못 만나

 

당신 딸들도
이번 생이 지나면 없어

 

미안해

 

딸들한테
손 흔들어줘

 

자, 출발하자!

 

이제 신나는 모험을
떠나볼까?

 

문 닫으렴

 

루이스 걱정은
그쯤 해둬

 

금방 돌아올 텐데, 뭐

 

지금 어디 가는데?

 

곧 알게 돼

 

일하러 가야지

 

이것도 일이야

 

내가 볼 때

 

자네는 내 글의
감성적인 면을 꺼려하는데

 

음색과 박자를
이해하려면

 

생소한 리듬을
직접 느껴봐야 돼

 

거기서 영감을 얻거든

 

버번 줘요!
큰 잔에 가득

 

마티니 주세요
아주 드라이하게

 

이 친구도
버번으로 줘요

 

들리지?

 

난 음악엔
별 취미 없어

 

자네의 엄숙한 영혼에
일탈을 선사하는 거지

 

좀 즐겨봐!

 

좋아하는 곡이
하나쯤은 있겠지

 

'고요히 흘러라, 애프턴 강'

 

내가 좋아하는 곡은
'고요히 흘러라, 애프턴 강'

 

알겠습니다

 

버번 두 잔
나왔습니다

 

자고로 재즈의 핵심은

 

예술가들이
연주를 한다는 거지

 

노래를 창조하거든

 

음악이 흘러나오는 대로
계속 반복하지

 

내가 글을 쓰는
방식처럼

 

틀에 박힌 건
집어치워

 

플로베르, 헨리 제임스
방식은 버리라고

 

창조자가 돼야지!

 

황무지를 개척하라!

 

별종 고릴라만이
할 수 있는 일이지

 

별종 고릴라!
그렇고 말고

 

나오네

 

자네를 위한 곡이야

 

익숙하고 편안하지?

 

이게 뭘까?

 

별종 고릴라가
슬슬 걸어 나오는데?

 

이게 바로
토마스 울프지!

 

즐겨봐

 

발을 까딱거리네!

 

무릎도 들썩거려!

 

좋아, 맥스!
즐기라고!

 

저기 끝내주는 여자 둘
보이지?

 

촌스럽게
쳐다보지 말고

 

- 바에 있는 여자?
- 그래

 

가서 인사라도 하자

 

- 이왕 온 거 즐기자
- 안 돼, 싫어

 

매춘부들이야
이건 외도가 아니라고

 

아니
외도하는 거야

 

- 그럼 나라도
- 좋을 대로

 

난 자제력이
부족해서 탈이야

 

버번 세 잔!

 

하나, 둘

 

 

자기도

 

나 쳐다봤잖아

 

걱정 마
자기도 껴줄 테니까

 

둘 다 데리고 갈게
알았지?

 

술이나 먹자

 

한 마디만 할게, 친구

 

헤밍웨이한텐
이런 짓 안 했겠지

 

피츠제럴드한테
이런 짓 안 했겠지

 

그 둘은
성스러운 존재니까!

 

그들이 쓴 글은
완벽하고 천재적이니까!

 

관둬

 

난 심연의 고통을
끄집어내서 써와도

 

줄이라고만 하면서

 

그쯤하고 돌아가

 

- 뭐?
- 가라고

 

- 잠이나 자
- 싫어

 

싫다고

 

미안해
부탁인데

 

집에 가라고 하지마
자네랑 같이 있을래

 

9시 기차
탈 수 있잖아

 

피곤해
자넨 취했고

 

- 내일 계속하자고
- 싫어

 

그렇게 해, 톰

 

집에 가자

 

택시비 줄게

 

당신이 웬일이야?

 

저녁 먹자

 

그것도 내가 살게

 

당장 나가

 

일하는 중이야

 

퍼킨스 씨가
오늘은 그만하자잖아

 

어서, 나랑 가자

 

- 번스타인 부인
- 손대지 말아요!

 

- 깜짝이야
- 꼼짝 말아요

 

맙소사, 앨린

 

- 가자
- 앨린

 

나랑 끝내고 싶어?

 

그래!

 

알았어!

 

이제 다신 볼 일
없을 거야

 

뭐 하는 거야?

 

무슨 짓이야?

 

앨린!

 

- 이거 놔!
- 거기 서!

 

- 뱉어!
- 싫어!

 

뱉어!
뱉으라고!

 

빨리 뱉어

 

뱉으라니까!

 

제발 뱉어

 

진정해, 앨린

 

내 사랑

 

나의 사랑, 나의 천사
진정해

 

괜찮아, 괜찮아

 

강해져야지, 자기야

 

나를 봐
나 좀 봐봐

 

강해져야지

 

일어나자

 

그래

 

진정해

 

그렇지

 

이제 됐어
괜찮아

 

퍼킨스 씨

 

여기서 이러면
안 되는데

 

실례했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럼 전 이만

 

기다려
금방 돌아올게

 

- 아니, 됐어
- 잠깐이면 돼

 

집에서 보자

 

알았지?

 

그래

 

편집 의견은
자네가 옳았어

 

괴팍하게 굴어서 미안해

 

번스타인 부인과
같이 가야 되지 않겠어?

 

멜로 드라마 하나
찍은 거야

 

자, 편집은 그렇다 치고

 

유진이 런던에서 사는
부분으로 넘어가자

 

'런던은 연기가 자욱한
거대한 거미집이라 생각했다'

 

'그곳에서 들이킬 감미로운
에일 맥주 또한 떠올렸다'

 

아빠!

 

- 아빠!
- 아빠!

 

- 안녕, 아빠
- 안녕, 오리들

 

무지개송어 잡았어
23cm나 돼!

 

가서 언니들 도와줘

 

당신은 아마 못 믿을걸
어찌나...

 

아빠, 자제 좀 해요

 

 

톰!

 

끝났어

 

- 끝나?
- 그만 써

 

원고 다 모아서
내일 사무실로 가져와

 

할 수 있지?

 

- 할 수 있다고!
- 그래

 

이번 달에
편집 끝내고

 

4월에 인쇄해서

 

10월에 출판하자

 

내 눈 보고
알았다고 해

 

알았어

 

이런...

 

무작정 떠날까 봐

 

유럽으로

 

빨리 이곳을 떠나야지

 

서평이
쏟아지기 전에

 

왜?

 

한 단락만
추가해야겠어

 

- 맙소사
- 딱 하나만

 

추가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어

 

하나가 둘 되고
그럼 1년이 더 걸려

 

들어나 볼래?

 

첫 페이지에 넣어

 

'이 책을'

 

'맥스웰 에바츠 퍼킨스에게
바칩니다'

 

'용감하고'

 

'정직하며'

 

'이 책이 출간되기까지
작가를 믿고'

 

'긴 절망의 시간을
견뎌냈습니다'

 

'작가로서의 바람은'

 

'이 책이 그의 가치를
증명하길 바랍니다'

 

그건 안 돼

 

왜?

 

편집자는
익명으로 남아야 해

 

그보다 큰 이유는

 

항상 두렵거든

 

내가 자네 글을
변형시키는 것 같아서

 

자네의 초고는 지금과
달랐단 걸 알리기 싫어

 

'전쟁과 평화'도

 

- 내가 했으면 '전쟁'이었겠지
- 맥스

 

그래서 우리 편집자들은
밤잠을 못 이뤄

 

우리가 정말
글을 좋게 바꾸고 있나?

 

그저 변형시키고 있나?

 

뉴욕 타임즈

 

안녕하세요
편집장님

 

와이코프

 

지금 울프 씨가
어디 있을까?

 

파리에 계십니다

 

극찬 일색이야

 

각종 신문사마다

 

축하하네
또 한번 해냈어

 

맥스가

 

애매한 표현보다
직설적인 화법이 더 나으니까

 

당장 사실대로 말해
빌어먹을!

 

톰이

 

언론에서 다들
중요한 책으로 다루고 있어

 

위대한 작가들과
비교하면서

 

문학사의 혁명가
제임스 조이스까지 운운해

 

뭐, 조이스에겐
영광이겠군

 

서둘러서
5판 인쇄까지 마쳤어

 

3만부 팔렸어

 

이렇게 뜨거운 관심은
처음이야

 

'천재'라는 호칭이
또 등장했어

 

빨리 돌아와

 

맥스가

 

번스타인 부인

 

퍼킨스 씨

 

뭐 도울 일이라도?

 

제가 도와드려야
할 것 같은데요

 

톰이 새 소설을
당신한테 헌정했더군요

 

아시다시피 첫 소설은
제게 헌정했었죠

 

감동적인 선물이었지만
본심은 고맙다는 거였죠

 

작별의 인사기도 하고

 

내 역할은 끝난 거죠

 

그리고 이제

 

당신도 마찬가지로
감사와 작별의 인사를 했으니

 

미안하지만 톰과 저의 관계를
전혀 모르시는군요

 

그래서...

 

당신의 억압된 감정들을
톰이 해방시켜줬겠죠

 

톰에게 의존하기
시작한 순간

 

당신을 떠날 거예요

 

그럼 살아있단 감정을
다신 느낄 수 없죠

 

미안합니다
번스타인 부인

 

힘드신 줄 압니다

 

그가 준 상처들이
고의가 아니었길 바랍니다

 

유럽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실래요?

 

- 톰이 원하지 않아요
- 돌아오는 시기는요?

 

그것도 마찬가지예요

 

그럼...

 

난 그에게
아무것도 아니군요

 

그의 인생에서
편집당한 거예요

 

누굴 쏠 것인지는
아직 안 정했어요

 

톰이 될지
내가 될지

 

당신이 될지

 

어떻게 생각하세요?

 

자살은 극단적으로
보일 테고

 

톰을 쏘는 건
도움이 안 될 테니

 

저만 남게 되는군요

 

그렇게 되겠네요

 

익숙한 장면이군요

 

두고 보면 알겠죠
퍼킨스 씨

 

당신이 겪을 일에 대해
유감을 표하고 싶네요

 

진심이에요

 

톰과 함께하는 시간을
마음껏 즐겨요

 

그가 떠나간 후엔

 

공허함만
남을 테니까

 

맥스!

 

톰!

 

다시 보니 반갑군

 

할 얘기가 많아
택시로 가지

 

안 돼
택시엔 가방만 실어

 

택시든 기차든 버스든
움직이는 건 안 돼

 

걸어갈 거야

 

조국을 느끼고 싶어

 

출발해요

 

자네가 많이 그리웠어

 

나도 마찬가지야
중요한 얘기가 있어

 

앨린이 총을 들고
사무실로 찾아왔었어

 

진짜 총 말이야

 

됐다 그래

 

오랜만에 만났으니
한잔 해야지

 

위대한 조국의
향수를 느끼며!

 

핫도그 들고
시내도 걷고

 

독한 술도
좀 들이켜주고

 

그게 정말 가능할까?

 

자신의 일생을
소설로 쓴다는 게

 

프루스트처럼
모든 장식을 걷어내고

 

물론이지

 

'때와 흐름에 관하여'는
앨린을 만나고 중단했었어

 

다음 얘기를
써야 했는데

 

- 앨린이 싫어했군
- 좋아했지!

 

그녀를 불멸의 존재로
만들어 줄 테니까

 

맥스, 이 사람들 좀 봐

 

우리 조국에
무슨 일이 벌어지려나?

 

- 너무 시시해
- 뭐가?

 

글을 쓰는 일

 

이 사람들은
읽지도 않을 텐데

 

내 인생사는
이들한테 무의미해

 

이들은 굶주리고 있다고

 

이리 와봐

 

가자고

 

장난하는 거지?

 

분명 얻는 게
있을 거야

 

내가 거짓말한 적 있어?

 

이러는 건
무단침입죄야

 

모험을 즐겨보자고

 

젠장!

 

말도 안 돼

 

이럴 수가

 

대체 여긴
뭐 하러 온 거야?

 

뉴욕에 와서
처음 살았던 곳이야

 

'천사여, 고향을 보라'를
쓴 곳이지

 

땅거미가 질 때면

 

늘 이곳에 왔었어

 

시내를 내려다 보며

 

미래의 내 인생을
꿈꾸곤 했지

 

별이 뜨기 전까지

 

별이 떠오르면

 

건물에 불이 켜지고

 

불빛이
어두운 밤을 수놓지

 

삶의 활력을
느낄 수가 있어

 

자넨 시시하지 않아

 

선사 시대를
떠올려 봐

 

우리 선조들은

 

밤에 모닥불을 피우고
모여 앉았을 거야

 

불빛 너머 어둠 속에서
늑대들이 울부짖었겠지

 

누군가
입을 열었을 테고

 

이야기를 들려줬을 거야

 

그렇게 두려움을
몰아내지 않았을까?

 

돌아가서 교정쇄를
확인해야겠어

 

괜찮지?

 

언제 올 건데?

 

총 맞아 죽지 않으면
두 달쯤 뒤에

 

그거 아나?

 

스페인은
정열의 나라야

 

투우사 얘긴
벌써 썼잖아

 

이번엔 다른 얘기야

 

세상은 이미
저편으로 흘러버렸어

 

전쟁이 터질 거야

 

거기 있을 필요 없잖아

 

어딘가엔 있어야겠지

 

치열한 생존경쟁에
뛰어들 필요가 있어

 

삶을 위한 투쟁이지

 

그보다 중요한 건 없잖아

 

배를 묶어둬
사진 좀 찍게

 

그래서

 

애슈빌에서 온
천재 작가는 어떠신가?

 

새 소설을 쓰고 있어
또 죽어나겠지

 

'때와 흐름에 관하여'는
읽어봤나?

 

쓰레기야

 

그 녀석은
과대망상에 빠져있어

 

게다가 언론에 대고
제멋대로 떠들어대더군

 

의견은 줄이고

 

글이나 쓰라 그래

 

의욕이 넘쳐서 그래

 

웃기네, 언론의 칭송에
도취된 거지

 

피츠제럴드와
마찬가지로

 

지성인이라고 추켜세우니까
진짜인 줄 알아

 

실력을 인정받았으니
글도 곧 접겠군

 

톰은 계속 쓸 거야
타고난 작가거든

 

나도 5년 전까진
피츠제럴드가 그런 줄 알았어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우아한 작가였지

 

글이 곧 생업인데 이제
한 문장도 제대로 못 쓰잖아

 

톰은 곧
자네를 떠날 거야

 

내 생각은 달라

 

이미 하퍼스나
맥밀란 출판사에서

 

톰에게 악마의 제안을
하지 않았겠어?

 

톰은 넘어가지 않아

 

'때와 흐름에 관하여'를
내게 헌정했잖아

 

그래, 봤네

 

묘비에 새기는
문구 같더군

 

가서 낚시 기념
사진이나 찍자고

 

액자에 넣어 보내줄게

 

우리 딸이 대학 생활을
아주 잘하고 있어요

 

연기에 뜻이 있는 것
같더군요

 

여배우가 될지도 모르죠

 

그 일로 루이스와
상의하고 싶다네요

 

저야 좋죠

 

- 톰일 거예요
- 내가 나가지

 

톰이 당신을
보러 왔나 보군

 

나야, 맥스
어서 문 열어

 

- 톰, 조용히 해
- 스콧은?

 

벌써 취한 거야?

 

스콧을 만나야 돼

 

 

- 스콧
- 톰! 잠깐만

 

젤다가 퇴원한 직후라
안정을 취해야 돼

 

분란 일으키지 마

 

난 나사 빠진
고철 기계가 아냐

 

스콧!
이 늙은 헐랭이

 

톰!

 

맥스한테
말하려고 했는데

 

말해봐, 스콧

 

자네 글도 무진장
걷어내라고 시키던가?

 

나한텐 전혀
강요하지 않아

 

그럼 무진장 걷어내라고
충고를 하던가?

 

우린 스타일이 다르잖아

 

어떻게 다른데?

 

난 그렇게
길게 쓰지 않지

 

못 쓰는 건 아니고?

 

- 톰!
- 대답해봐

 

죽자고 쓰는데
단편만 나오는 게

 

부끄러운 일은
아니잖아

 

그러니까 내 말은

 

요즘 새로 작업하는
소설 있어?

 

드디어 헤밍웨이와
낚시를 했다고 들었네

 

그래, 플로리다의
외딴 시골 마을에서

 

- 내 말 무시해?
- 그만해

 

여기 없는 사람
취급하지 말라고!

 

뻔히 다 아는
사실이잖아

 

자네가 글 한 줄
제대로 못 쓴 거

 

날 탓하진 말라고

 

- 일어나!
- 왜?

 

- 그만 나가
- 어디 가는데?

 

왜 그러는데?

 

괜찮아, 여보
아무 일도 아냐

 

아내는 병원에 맡기고

 

글에 전념하라고 해

 

아미 작가로서의 생명이
다했는지도 몰라

 

책 한 권을
제대로 못 쓰잖아

 

글 쓰는 재주가
바닥나기 직전이라고

 

차라리 한물갔다고
인정하는 게 어때?

 

본인도...

 

입 좀 다물어!

 

이토록 잔인한 사람이란 게
놀라울 따름이군

 

솔직하게
말했을 뿐이야

 

단 한 번이라도

 

스콧의 심정을
헤아려 본 적 있어?

 

왜 그래야 되지?

 

오늘 몇 줄이나 썼어?

 

- 뭐?
- 오늘 몇 줄이나 썼냐고

 

- 5천 단어쯤
- 스콧은 백 단어쯤 써

 

아무 일 없이
마음이 편안했다면

 

스콧도 자네만큼 노력해
글과 씨름한다고

 

더 노력하라고 해

 

아내가 미쳐버렸어!

 

스콧의 글과 이름조차
사람들한테 잊혀졌다고

 

그 심정이 어떻겠어?

 

그의 나약함을
내 탓으로 돌리지 마!

 

자네의 잔인함을
보는 게 괴로워

 

내가 자네를
또 실망시켰군

 

그래, 아주 많이

 

고상하지 못해서
참 미안하네

 

품격 있는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라서

 

날 잡아 끌고
나오기 전에

 

훈계하는 자신을
한번 돌아보지 그래?

 

나도 자네처럼
행동해야 하나?

 

아니, 그래도
철 좀 들어

 

잘난 척은

 

자네 같은
사람들이야말로

 

겁쟁이에 불과해!

 

비좁은 사무실에 갇혀서

 

재능을 썩히고 있잖아

 

살아 숨쉬는 생각들이
뭔지도 모르면서!

 

각성이 뭔지도 모르고

 

일상을 기록하고
투쟁하는 방식도 모르지!

 

두려움에 사로잡혀
살아가니까

 

삶의 방식이
다를 뿐이야!

 

사랑하는 자식들이
크는 모습을 보면서

 

가족을 부양하고

 

타인과 나누기 위해
일을 하는 사람들이야

 

- 관두자
- 그동안 참아온 건

 

자네와 자네 글이
가치 있다고 믿어서야

 

근데 누가 자네를
견딜 수 있을까?

 

자네의 수많은 말과
그 아름다운 글 속에

 

살아 숨쉬는 생각은
찾아볼 수도 없어

 

그건 타인의 눈을 보고
공감해야 얻어지거든

 

언젠간
깨닫길 바라네

 

그럼 스콧의 글보다
다섯 배는 훌륭해질 테니까

 

맥스는 나를
그의 창작품이라고 여겨

 

피그말리온처럼

 

캐롤라이나의
축축한 흙을 발견하고

 

빚어내서
날 만든 거라고 착각하지

 

다들 나 혼자선
불가능할 거래

 

맥스의 천재적인 편집 덕에
가능했단 거지

 

온통 그 말뿐이야

 

맥스 없인
아무것도 아니라고

 

위대한 맥스 퍼킨스 없이
뭘 할 수 있겠냐고

 

드디어 당신에게서
등을 돌렸군

 

맥스가 현명한 거지

 

하퍼스 사에서 제안한 액수가
얼마인 줄 알아?

 

올 것이 왔네

 

단칼에 거절했어

 

여지를 줬겠지

 

당신은 모두에게 그래

 

이제 그 제안을
수락할 테고

 

여행을 다녀올까 해

 

중고차를 사서
무작정 떠나려고

 

고향에 갈 수도 있고

 

햇빛이 찬란한 곳이지

 

같이 가지 않을래?

 

진심이야

 

여행하면서
다시 신나게 살아보자

 

둘이 함께

 

예전처럼

 

마치 이 세상에

 

우리 둘뿐인 것처럼

 

우리만의 성당으로
들어가는 거지

 

기억에 남을 만한
여행이 되겠지?

 

당신은
혼자 있어봐야 돼

 

난 작가야

 

혼자 있는 게
일상이라고

 

책 속의 주인공들과
함께 있는 거지

 

가족 다음엔 나
그 다음엔 맥스와 함께였잖아

 

온전히 혼자일
필요가 있어

 

앞으로 살아갈 방향을
정할 시간이야

 

당신은 나한테
상처를 줬어

 

맥스에게도 그럴 테지
상처주는 건 그만해

 

소설 속 인물과
우리는 달라

 

내가 어떤 고통을 이겨내고
이 자리에 있는지 모를 거야

 

이제 당신을
바라봐도

 

아무런 느낌이

 

없어

 

그만 가줘

 

찰스 스크리브너 선스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건

 

기차 창 밖을
통해서였어

 

대학 때문에
북부로 가야 했거든

 

아버지 모습이
점점 작아졌지

 

기차는 멀어져 갔고

 

다신 아버지를
볼 수 없었어

 

그 기차는

 

날 삶 속으로
데려다 줬어

 

언덕을 지나고
강을 건너서

 

인생의 길은
늘 흐르지

 

때론 아버지에게서
흘러나오기도 하고

 

다시 흘러
들어가기도 하니까

 

나 혼자서도 가능하단 걸
증명해야 돼

 

그렇게 해

 

스콧

 

시간이 좀
지나긴 했지만

 

미안했네

 

내가 건방졌어
꼴 보기 싫으면 문 닫아도 돼

 

자네와 젤다에게 상처준 게
너무 마음에 걸려

 

용서해주게

 

나도 술 먹고
실수한 적 있어

 

고마워

 

난 시나리오 작가로선
실패야

 

상업성이
턱 없이 부족해

 

그건 탁월한 감각이
필요한 거니까

 

얼굴 봐서 다행이야

 

몇 달간
여행을 다녀올까 해

 

내 작품에 대해
상의할 사람이 없는 곳으로

 

- 작품 때문이군
- 자네가 더 잘 알잖아

 

나도 자네처럼
불멸의 작품을 남겨야지

 

그 생각이
뇌리를 떠나지 않아

 

명작 말이야

 

사람들이 100년 후에
토마스 울프를 기억해줄까?

 

10년 후엔?

 

어렸을 땐 그 질문을
매일 되풀이했지

 

지금은 괜찮은 한 문장이
더 절실해

 

그런 말이 어딨어?

 

기억되고 싶지 않아?

 

'낙원의 이편'이 출간된 지
18년 만에 절판됐어

 

- 다음은 '위대한 개츠비'겠지
- 절대 아니야

 

작년에 '개츠비' 인세로
얼마 받은 줄 알아?

 

2달러 13센트

 

하지만 괜찮아
새 작품이 나올 테니까

 

이웃에
목소리 연기자가 살아

 

주기적으로

 

소리지르고
웃는 연습을 하지

 

불안하겠군

 

웃음소리는
더 가관이야

 

- 최근에 맥스 만났어?
- 그 얘긴 꺼내지 마

 

왜 그러는데?

 

둘이 친구인 거 아는데
자넨 짐작도 못할 거야

 

날 불구자로 만들었어

 

내 작품을
변형시켰다고

 

본인도 인정한 거야

 

그래 놓고 내 성공의 공로를
본인이 다 가로챘지

 

맥스는 그런 적 없어
자네가 준 상처는 어떻고?

 

서로 상처를 줬어

 

꾸며내지 마

 

그가 한 짓을
몰라서 그래

 

맥스가 한 짓?

 

뭘 어쨌는데?
자네 꿈을 실현시켜줬잖아

 

등단 시켜주고
삶을 바꿔줬는데

 

봐, 스크리브너에서
퍼뜨린 말을 그대로 하잖아

 

모두가 자네를 외면할 때
믿어준 유일한 사람이야

 

꿈과 희망을
자네에게 걸었다고

 

자기가 쓴 글도 아닌데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았어

 

근데 이제 와서
못난 자격지심으로 되갚아?

 

창피한 줄 알아!

 

맥스는 진실한 우정으로
대하는데

 

그걸 뿌리치는 건
바로 자네야

 

언젠간 지금의 자리에서
내려오겠지

 

기나긴 고통의 시간일 거야
내가 알아

 

그 시간을 함께 해줄 친구한테
왜 상처를 주나?

 

아빠

 

그래, 깜찍아

 

톰 아저씨는
왜 안 놀러 와?

 

낸시

 

아저씨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

 

돌아올 거래?

 

모르겠네

 

아저씨는 삶의 방식을
스스로 결정하는 사람이야

 

- 우리한테 화났어?
- 아니

 

사람은
떠나야 할 때가 있어

 

어른이 되면
집을 떠나듯이

 

너도 그렇게 될 거야

 

불쌍한 아빠
아저씨 보고 싶다

 

톰 아저씨 책 좀
가져다 줄래?

 

'운명은 영국인을
네덜란드로 이끌어'

 

'낯섦을 선사했지만'

 

'엠솜에서 펜실베니아로
이끈 운명은'

 

'알타몬트 도시를 둘러싼
언덕 뒤편에서'

 

'수탉의 경쾌한
울음소리를 지나'

 

'미소 짓는 천사의
조각상을 거치며'

 

신비한 기적을
마주하게 한다

 

먼지투성이 세상 속
새로운 마술이 펼쳐진다

 

매 순간이
4만년 역사의 결실이다

 

승리한 날들은
축음의 고향으로 날아가고

 

모든 순간이
창가에 맺힌다

 

적막한 밤 안에서
소멸되어가는 이처럼

 

비옥했던 청춘을
떠올려 본다

 

곡식과

 

자두나무

 

잘 여문 낟알들

 

왜 이곳인가?

 

오, 잊혀진 것들이여!

 

편집장님
전화입니다

 

토마스 작가님의
모친이세요

 

울프 부인?

 

누군들 알았겠어요?

 

뇌에 결핵균이
퍼졌다는군요

 

믿기지가 않아요

 

급성이라
걷지도 못한다네요

 

의사들이 최선을
다할 겁니다

 

누가 보장하죠?

 

- 누가 알았겠냐고요
- 뭘 말씀이세요?

 

다른 곳 다 놔두고
여기 있게 될 줄이야

 

서부 쪽에서
쓰러진 모양인데

 

수술 때문에
이곳으로 오게 됐어요

 

이곳 의료진이 최고라네요
여기 볼티모어가요

 

톰의 아버지도
이 병원에서 눈감았어요

 

저쪽 병실에서요

 

톰이 아버지 인생을 따라
흐르는 것 같아요

 

강물처럼
그 애 아버지에게로

 

의사 말로는
뇌에 종양이 가득하대

 

종양이 수놓은 듯하대

 

꼭 그렇게 말했어

 

수놓은 듯하다고

 

톰이 좋아할 만한
표현이군

 

손쓸 도리가 없대

 

몇 주 안 남았다는군

 

의식이 돌아올지도
불분명하고

 

아냐, 당신은
낸시와 함께 있어

 

마음의 준비를
하게 해야지

 

톰을 제일 잘 따랐잖아

 

'수놓다'에는
무수히 많다는 뜻이 있지

 

울프 씨

 

연필...

 

- 안정을 취해야 해요
- 연필...

 

연필...

 

맥스에게

 

위대한 개츠비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

 

천사여, 고향을 보라
무기여 잘 있거라

 

타바코 로드
오후의 죽음

 

밤은 부드러워
때와 흐름에 관하여

 

안녕하세요
퍼킨스 씨

 

그래요, 제임스

 

스크리브너 선스
맥스 퍼킨스 앞

 

볼티모어
존스 홉킨스 병원

 

맥스에게

 

난 때가 되었어

 

그래서 이 글을
자네에게 남기네

 

긴 여행 끝에
낯선 곳에 이르렀고

 

죽음의 망령과
마주하게 됐군

 

그리 두렵진 않아

 

하지만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자네를
다시 만나고 싶어

 

뼈에 사무치도록
괴롭고 후회가 돼

 

자네에게
전하지 못한 말들과

 

완성하지 못한
이야기들

 

거대한 창으로
내 인생이 비치는 듯해

 

이 병을
이겨낸다면

 

반드시
더 나은 사람이 될 거야

 

자네처럼 살겠어

 

무엇보다

 

자네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었어

 

난 자네 모습을

 

11월 그날의 느낌으로
간직할 거야

 

자네가 항구로
날 마중 나왔었지

 

우린 무작정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고

 

도시의 전경과 소음 속에
인생의 찬란함을

 

내려다보았어

 

그대의 영원한

 

톰이

 

감독/ 마이클 그랜디지

 

각본/ 존 로건

 

원작/ A. 스콧 버그
'천재의 편집자 맥스 퍼킨스'

 

콜린 퍼스

 

주드 로

 

니콜 키드먼

 

로라 리니

 

지니어스

 

가이 피어스

 

도미닉 웨스트

 

번역/ 국경주(Chlo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