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nding.Vivian.Maier.2013.LIMITED.DOCU.720p.BluRay.x264-GECKOS-[Original]

sub2smi by  Michael Archangel

 

모순적이다

 

대담하다

 

 

신비롭다

 

유별나다

 

유별나다

 

비밀스럽다

 

굉장히 비밀스런
사람이었어요

 

사진을 찍었다곤
짐작도 못 했어요

 

사진을 굉장히 많이
찍었을 거예요

 

이런 걸 용납할
사람이 아니었죠

 

그때로 돌아가신다면
달리 행동하시겠어요?

 

그럼요, 그 필름들은
내가 찾았으면 좋았겠죠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10달러 나왔습니다
7과 1/2

 

2007년 겨울이었어요

 

7 나왔습니다
10 없으십니까

 

우리집 건너편
경매장에 갔다가

 

현상된 필름이 가득 찬
상자를 발견했어요

 

75 나왔습니다
80 나왔습니다

 

역사책을 쓰고 있어서
과거 사진이 필요했죠

 

현상된 필름을
빛에 비춰보면서

 

시카고 풍경을
찾고 있었어요

 

매물로 나온 상자
여러 개 중에

 

제일 큰 걸 골랐죠

 

39번 낙찰

 

제가 낙찰됐는데
380불인가 했어요

 

주최측 얘기로는
사진작가랬고

 

이름은
비비안 마이어랬어요

 

구글에 검색해보니
안 나오더라구요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래서 한동안
포기했었죠

 

몇 장 봤더니
좋긴 했는데

 

책에 쓸 게 없어서
창고에 넣어뒀었죠

 

이 필름들을
어쩌나 싶었어요

 

그때 생각이 든 게
스캔이었어요

 

저는 감이 좋아서

 

어딜 다니면서
뭔가를 보면

 

그게 가치가 있는지 금세 알아봐요

 

어려서부터 형과
벼룩시장을 다녔거든요

 

아버지도 그랬고
할아버지도 그러셨고

 

형과 창고 경매를
가끔 갔는데

 

형이 뭔가 사오면
같이 닦곤 했어요

 

현상된 필름을
수도 없이 버렸죠

 

어지간해서는
쓸모가 없거든요

 

제가 발견한 필름들을
처음 봤을 때는

 

정말로 좋은 건지는
몰랐어요

 

제 눈에나 좋았죠

 

갤러리에도 연락했는데
혼자 답이 안 나와서

 

사진 블로그를 만들어서
200장쯤 올려봤어요

 

〈존 말루프 작성 오전 9:54
존 말루프 작성 오전 10:12〉

 

〈존 말루프 작성 오후 7:01
존 말루프 작성 오후 11:30〉

 

플리커에도 링크를 올렸죠
〈이걸 어쩌면 좋을까요?〉

 

〈달란 얘기는 마시고〉

 

그 포스트가
난리가 났어요

 

〈환상적이네요!
공유 감사〉

 

〈와우! 끝내주는데요〉

 

〈대단하네요!
고마워요〉

 

〈놀라운 발견!〉

 

〈맘에 쏙 들어요〉

 

〈!!!〉

 

〈감탄밖에 안 나오네요〉

 

그래서 나머지 작품들도
모으기로 했어요

 

상자가 몇 개 팔렸길래
찾아가서 다시 샀죠

 

그렇게 모으고 나니까
양이 엄청났어요

 

작가가 누군지
정말 궁금했어요

 

이름이 비비안 마이어라는
것밖에 몰랐으니까요

 

기자였을까요?
프로 사진작가?

 

혹시 뭐가 나올까
다시 검색해 봤어요

 

그랬더니 며칠 전에

 

부고가 올라왔더라구요
〈평온히 잠들다〉

 

주소는 상자에서
찾아냈어요

 

전화번호부를 뒤져서
전화를 걸고

 

비비안 마이어의 작품을
갖고 있다고 했더니

 

그 집에 있던
유모였다는 거예요

 

유모?

 

유모가 왜
이런 사진을 찍었을까요?

 

어떤 사람이었는지
들어보니 이상했어요

 

외톨이 같은 여자였고
가족도 없었고

 

연인이나
자녀도 없었다고

 

하지만 자신들에겐
어머니 같았다고

 

그래서 호기심이
발동했어요

 

유품이 있는지
물어봤더니

 

전부 창고에
보관 중이긴 한데

 

전부 버릴 거랬어요
수집광이라 뭐가 많다고

 

그래서 버리지 말랬더니
모르는 소리 말라더군요

 

보통 수집광이
아니었다고

 

싹 치울 생각이니까
집으로 와서

 

필요한 게 있으면
가져가라고 했어요

 

어떤 사람이었는지
꼭 알고 싶었어요

 

테이프로 봉인해 둔
가죽 상자가 있었는데

 

상자를 열어 봤더니

 

현상 안 된 필름이
빼곡한 거예요

 

어떤 깡통은
달가닥 소리가 나서

 

안을 열어 보니
이빨이 있었죠

 

진짜 온갖 물건을
다 숨겨뒀더라구요

 

꼭 비밀금고 같았죠

 

쿠폰, 메모, 전단지
버스표, 기차표

 

모자, 신발
코트, 블라우스

 

현금화하지 않은
수표도 있었는데

 

수천 불은 됐어요

 

〈잘 부탁드려요〉

 

〈잘 부탁드립니다〉

 

현상된 필름이
10만 장쯤

 

미현상 컬러 필름이
약 700롤

 

미현상 흑백 필름이
약 2,000롤

 

전부 자료로 정리하고
스캔해야 하는데

 

혼자 처리하려니
감당이 안 됐어요

 

그래서 박물관에
문의해 봤죠

 

뉴욕현대미술관이나
테이트모던에 보내려고

 

편지를 보냈더니
답장이 왔어요

 

"말루프 씨에게
큐레이터들을 대표하여"

 

"뉴욕 현대 미술관에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안타깝게도 현재는 사진들을
전시할 공간이 없습니다"

 

결국 저 혼자서
해야겠더라구요

 

전시회도 하고
책도 내려니까

 

할 일이 엄청났어요

 

원래 정리벽이
좀 있거든요

 

이 멋진 작품들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시카고 문화센터에
전시를 신청했죠

 

〈시카고 문화센터〉
 
 

 

그런데 역대 최다
관람객이 몰렸어요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시카고 거리 사진작가〉

 

그렇게 입소문이
퍼져나갔죠

 

〈마더 존스
전격 조명 비비안 마이어〉

 

〈시카고 선타임즈
비밀스러운 사진작가〉

 

〈월스트리트 저널
유모의 비밀〉

 

거리 사진작가의
새역사가…

 

비비안 마이어

 

비비안 마이어

 

비비안 마이어?

 

생전에 얻지 못 한
명성을 얻고 있습니다

 

존 말루프는 아직도
작품을 정리 중입니다

 

비비안을 역사책에
울리는 게 목표예요

 

〈뉴욕〉

 

작품을 처음 보곤
아주 기뻤어요

 

〈조엘 메이어로윗츠, 사진작가〉          

 

놀라운 경험이죠
무명이던 사람이

 

우연히 발굴돼서

 

이렇게 좋은 작품들이
세상에 풀리다니

 

진실된 시선과

 

인간 본성과 사진과
거리에 대한 이해

 

이런 작품은
흔치 않아요

 

사람들이 보내는 사진을
하루에 수천 장 보는데

 

대부분의 사진이
아주 평범해요

 

그런데 비비안의
작품을 보면

 

인간에 대한 이해와
온기와 장난기가 느껴졌죠

 

타고난 사진작가구나!

 

눈이 아주 훌륭해요

 

     〈매리 엘런 마크, 사진작가〉

 

프레이밍 감각도 좋고

 

이건 뭐죠?
뭔지 잘…

 

진흙 묻은
인부 엉덩이에요

 

세상에!

 

유머 감각도 있네요

 

비극도 볼 줄 알고

 

아름다워요

 

아이들 사진이
정말 아름답네요

 

삶과 환경에 대한 감각까지
전부 갖춘 작가군요

 

남긴 작품이 많아요?

 

현상된 필름이
15만 장쯤 돼요

 

많이 찍었군요

 

누구한테 작품을
보여준 적 없대요?

 

알아보곤 있는데
지금까진 없어요

 

사람들이
좋아할 작품이네요

 

스퀘어포맷으로 찍은

 

로버트 프랭크 작품 같아요
〈'미국인' 로버트 프랭크〉

 

리제트 모델

 

헬렌 레빗도 비슷하고

 

다이안 아버스도
비슷하네요

 

알려지기만 했다면
유명작가가 됐겠어요

 

뭔가 잘못됐겠죠

 

이유가 있을 거예요
이렇게 근사한데

 

왜 사진을 찍었는지
정말 궁금했어요

 

어떤 사연이 있어서
이렇게 강박적으로

 

수많은 사진을
찍게 됐으며

 

왜 보여주지 않았는지

 

그래서 유품 상자를
뜯어 보기 시작했죠

 

영수증은 많으니까
단서를 찾으려고요

 

그런데 영수증이
7, 80년대 것들이라

 

지역코드가
나와있지 않았어요

 

그래서 여러 지역코드로
전화를 다 걸어봤죠

 

773, 312, 708
847, 630, 815

 

유시스킨 가족의
유모로 계시던 분?

 

- 네
- 세상에!

 

옆집 살던 분이에요

 

비비안 마이어라면 알죠
제 유모였으니까요

 

4년쯤 있었나

 

가사 도우미와
유모로 있었죠

 

비비안은
제 유모였어요

 

그때 비비안은

 

우리 어머니 간병인으로
같이 지냈었어요

 

처음 보고
그런 생각이 들었죠

 

"대체 저런 유모를
어디서 구한 거지?"

 

추억을 보관하는 데
집착하던 사람이었어요

 

모아 둔 물건으로
어떤 사람인지 짐작이 됐죠

 

직접 녹음한 테이프도
수십 개였어요

 

신문에 광고를 내고

 

이상한 전화를
몇 통 받았어요

 

이상한 인간들이
전화를 해서는

 

인터뷰하자는 거예요
그것도 누드로

 

8mm, 16mm 영상도
150편쯤 있었죠

 

필 도나휴의
사진들도 있었어요

 

집에서 개와 찍은
사진 같은 것들

 

위넷카에서 아들 넷을
혼자 키웠어요

 

〈필 도나휴 - 토크쇼 진행자〉
물론 비비안이 도와줬죠

 

식당에서 면접을 보고
도우미로 고용했었어요

 

제 사진을 찍더군요

 

당시에 저는
굉장히 바빴어요

 

매일 녹화가 한두 건씩 있었죠
〈진행 도나휴〉

 

전 빨래만 잘해줘도
감지덕지였어요

 

우리 집에선
1년쯤 있었죠

 

쓰레기통 안을 찍은
사진이 기억나요

 

사실 피카소도
비웃음을 샀다잖아요

 

저도 몰라봤고
딱히 신경 안 썼죠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비비안은 자화상을
찍기도 했어요

 

어떤 얼굴일 거라
생각했는지 몰라도

 

제가 상상하던
모습은 아니었죠

 

평범하지 않다는 인상은 받았어요
〈잘만 & 로라 유시스킨〉

 

큰 코트를 입고
펠트 모자를 쓰고

 

1925년에나 유행했을
차림이었죠 〈로저 칼슨〉

 

늘 몸을
가리고 다녔어요

 

큰 코트를 입고
부츠를 신고

 

그래서 별명이
'군화'였어요

 

키가 아주 컸어요
〈캐런 프랭크 & 제니퍼 로페〉

 

210cm쯤?
〈쟈끌린 브루니 마니에르 & 캐시 브루니 노리스〉

 

 
〈쟈끌린 브루니 마니에르 & 캐시 브루니 노리스〉

 

아니야
〈쟈끌린 브루니 마니에르 & 캐시 브루니 노리스〉

 

꽤 컸어요

 

- 175cm 됐으려나
- 180cm?

 

남자 셔츠를 자주 입었어요
〈주디 & 척 스위셔〉

 

 
〈주디 & 척 스위셔〉

 

남자 셔츠였죠
〈주디 & 척 스위셔〉

 

그게 맞는다고
했던 것 같아요

 

머리는 생머리에
단발이었어요 〈진저 탐〉

 

머리가 위로
서있는 모양이었죠

 

생각해 보면
그때 옷차림이

 

소련에 있던

 

50년대 공장 노동자들
차림이었어요 〈더피 레반트〉

 

이런 식으로 걸었죠

 

팔을 이렇게
앞뒤로 흔들면서

 

나치들 행진처럼
그렇게 걸었어요

 

모터 자전거를
타고 다녔어요

 

그런 모습을 보면
어쩔 때는

 

'사악한 서쪽 마녀'
같기도 했어요

 

늘 카메라를
목에 걸고 다녔죠

 

항상 카메라를 목에
걸고 있었어요 〈제니퍼 레반트〉

 

큰 카메라였고

 

기억하기로는
롤라이플렉스였고

 

위에서 내려다보면
보이는 카메라였어요

 

저도 갖고 싶던 건데
〈배리 월리스〉

 

그걸 갖고 있더라구요

 

카메라를 보니까
좀 낡아 보였어요

 

롤라이플렉스는
위장하기 좋은 카메라죠

 

위에서 찍지 않아서
찍히는 사람이 몰라요

 

아마 이런 식으로
조용히 찍었겠죠

 

아래서 촬영하기 때문에
올려다보는 각도가 되죠

 

이 사진을 보면
그저 평범한 행인인데

 

힘과 위엄이 느껴지고
비비안을 똑바로 바라봐요

 

시선을 보세요
비비안을 보고 있어요

 

비비안은 아래를 보며
초점을 맞추고

 

다시 올려다봤겠죠

 

서로 눈이 마주치고
셔터를 눌렀어요

 

거리 사진작가들은 사교적인 면이 있고

 

사람들과 있을 때
편안함을 느끼지만

 

고독을 좋아하기도 해요

 

어찌 보면
모순적인 존재죠

 

관찰하고 포용하면서도
뒤로 물러서서

 

눈에 띄지
않으려고 해요

 

자기 얘기를
잘 안 했어요

 

아주 개방적인
사람들도 있는데 〈캐롤 폰〉

 

비비안은 개방적이긴커녕
아주 닫힌 사람이었어요

 

우리집 3층에서 지내면서
처음 부탁한 게

 

방문에 자물쇠를
달아달라는 거였어요

 

정말 튼튼한
자물쇠였죠

 

알 수 없는 사람이었어요
〈마렌 베이렌더〉

 

절대로 자기 방문을
열지 말라더군요

 

저와는 친했어요
〈빌 사코〉

 

상자들 옮겨줄 힘이
있어 보여 그랬는지

 

차에 실었다가
스프링이 망가졌죠

 

제가 옮긴 상자가
그렇게 무거웠어요

 

짐을 다 가져와서
상자가 꽤 많았는데

 

우리도 창고가 있어서
괜찮다고 했어요

 

방 앞에 있던 공간까지
상자가 높게 쌓였었죠

 

차 두 대를 넣고도
여유로운 차고였는데

 

짐을 넣고 나니까

 

두 대가 딱 들어갔죠

 

두 대가
간신히 들어갔어요

 

그 중에 몇 상자가
사진인지도 모를 거예요

 

- 몇 상자가…
- 존이 알잖아

 

근데 상자가
워낙 많아야 말이지

 

이런 멋진 작품들을
왜 숨겼나 모르겠어요

 

왜 안 보여주고?

 

아무도 못 볼 거면
찍어서 뭐 해요?

 

안타깝죠
아주 안타까워

 

사진을 보여주고서
어디 의자에 앉혀두고

 

안 된다고 못 하게
입을 막아 버릴걸

 

그런 예술가적인 여자가
참 답답했을 거예요

 

파출부로 산다는 게

 

바닥을 닦고
식사를 차리고

 

애들을 챙기고

 

초기 작품들 중에
1951년 작품도 있어요

 

뒷장에 이렇게 써있죠
'워커스 가족 사우스햄튼'

 

〈사우스햄튼, 뉴욕〉

 

할아버지 댁 사진들을
보고는 정말 놀랐어요

 

우린 그 집을 '파도의 끝'이라 불렀죠
〈로라 워커〉

 

〈파도의 끝〉

 

직접 보니 신기하네요
이젠 폐가 같아요

 

〈출입금지〉

 

여긴 꽃밭이었어요

 

여기서 점심을 먹고
차를 마시곤 했죠

 

정말 좋았어요

 

비비안이 여기서 여름을
보낸 모양이에요

 

뉴욕에서 휴가 온
가족의 유모로 왔었겠죠

 

당시엔 뉴욕 사람들이
금요일에 기차로 와서

 

일요일에 돌아가는
일이 많았어요

 

요즘도 비슷해요

 

해변으로 나가 보면
유모들이 종종 보이죠

 

운 좋게 미국까지
온 여자들이에요

 

우리집 도우미는
5~6년 됐어요

 

- 이름이 뭐예요?
- 올리비아요

 

밝은 사람이죠
정말 맘에 들어요

 

저쪽은 영어가 서툴고
난 스페인어가 서툴러서

 

아주 잘 어울리죠

 

〈멍청한 백인들〉

 

〈하이랜드 파크에
잘 오셨습니다〉

 

비비안도 친구가
몇 명 있었어요

 

나도 친구였다고
생각해요

 

참 많이 좋아했죠

 

좋은 사람이었어요

 

1962년엔 하이랜드 파크에서
애들 키우며 살았죠

 

비비안이 돌보는 애들과
우리 애들이 친했어요

 

애들이 놀러 오면
비비안도 같이 왔는데

 

우린 애들 보면서
수다도 떨고 했었죠

 

난 애들을
자유롭게 키웠어요

 

하지 말란 것도
별로 없었죠

 

거리에서 죽지만
않으면 됐지

 

비비안도 애들을 아꼈고
애들도 좋아했어요

 

애들에게
아주 잘했어요

 

그걸 보니 정이 많은
사람 같았어요

 

똑똑!

 

사과

 

사과, 똑똑

 

똑똑

 

누구세요?

 

누구세요?

 

이 장난꾸러기들
내가 못 당하겠네

 

가자, 얘들아

 

아주 사랑스럽고
좋은 사람이었어요

 

굉장히 밝은
사람이었죠

 

애들이 비비안을
얼마나 좋아하던지

 

평범한 부모들과 달리
모험적인 사람이었거든요

 

비비안의 곁에 있으면
삶이 모험 같았어요

 

애들과의 시간에 대해선
고집이 셌는데

 

대부분 데리고 나가서
시간을 보내려 했어요

 

유모차에 가방과  〈린다 매튜스〉
애들 둘을 태우고         

 

산책을 나가곤 했죠
정해진 루트도 있었어요

 

시내 마샬필드 상점에
캔디 코너가 있었는데

 

늘 거기부터 들렀어요
무료 시식이 있었거든요

 

시식대에 있는 걸
잔뜩 챙기곤 했어요

 

사발을 들이붓듯이             
〈사라 매튜스 루딩턴〉             

 

초콜릿을 가방에 털고
그대로 줄행랑이었죠

 

그러다 못 갔는데

 

아마 출입금지를
당했던 것 같아요

 

발가벗은 마네킹들을 〈조 매튜스〉   
자주 찍었어요           

 

머리가 없는 마네킹
넘어진 마네킹

 

멋진 작품일진 몰라도
구경하기엔 지루했죠

 

길모퉁이에 서서

 

발가벗은 마네킹들
찍는 걸 기다리려니

 

그리곤 골목으로 가서
고물을 주워오곤 했죠

 

고철이며 낡은 가구며
전부 주워와서 보면서

 

"이건 예술품인가?
이건 또 뭐지?"

 

"이건 언제고
쓸 때가 있겠네"

 

동생이 자전거를 타다
자동차에 치었었죠

 

길에 누워 있고
구급차가 오고 있는데

 

오빠가 그러더라구요
사실인진 모르겠지만

 

자기가 누워 있는데
비비안이 사진을 찍었대요

 

"로비, 괜찮니?"
이런 게 아니라

 

"이 사진 좋겠네"
뭐 이런 거죠

 

어머니가 나와서
동생을 보더니

 

그러시는 거예요
"개가 치었나 했지"

 

비비안은 뒤로 빠져서
평소처럼 사진을 찍었죠

 

비비안은 당시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도 잘 알았죠

 

녹음기를 가지고
슈퍼마켓에 가서

 

줄을 선 손님들에게
질문을 했어요

 

안녕하세요, 칼
지금 녹음 중인데

 

혹시 현재 정세에 대해
할 말 있으세요?

 

닉슨 탄핵에 대해

 

이 나라를 위해선
잘된 일 같아요

 

미래의 정치인들에게
경고가 될까요?

 

그럼요

 

이번 탄핵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녹음 중이에요?

 

맞아요

 

모르겠어요

 

의견은 있어야죠

 

여자들도 의견이 필요해요

 

메모가 첨부된
동영상이 있어요

 

2-139. "1972년 시카고
모녀 살인 사건"

 

"마켓에서 본 보모 광고가
죽음으로 이어지다"

 

〈여성 살인 사건
조사 중〉

 

비비안이 슈퍼마켓으로
들어가는 게 보이네요

 

그 보모의 족적을
따라가고 있어요

 

그리고 그 동네를
돌아다니고 있어요

 

아마 범죄 현장에
갔던 것 같아요

 

장례식장에도 가고

 

기자와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는데

 

보통 그런 것들은
밖으로 보여주잖아요

 

"이런 사건이다" 하구요
비비안은 조사만 했어요

 

1977년에 셰리단 도로를
타고 있었는데

 

 〈존 퍼보너〉   누가 히치하이킹 하려고
           손을 흔들고 있었어요

 

그 사람이
비비안 마이어였죠

 

비비안을 만난 1972년에
전 대학원생이었어요

 

어학원에서 일했죠

 

어학원에 별난 사람들이
많던 시절이었어요

 

비비안은 프랑스인이었는데
억양은 미국인에 가까웠죠

 

처음엔 프랑스인 억양을
흉내내나 했어요

 

흉내란 소문도 있었는데
그건 아니었어요

 

전 언어학 전공이고
박사 학위도 있어요

 

근데 알고보니
흉내낸 억양이었어요

 

'묵시록의 4기수'란
영화를 봤는데요

 

발음을 제대로
했는지 모르겠지만

 

뭔가 굉장히
경쾌한 억양이었죠

 

어쨌건 듣고 있으면
다 잘될 것 같은

 

높낮이의 굴곡이
아주 심한 편이었어요

 

이런 식이었죠
"오~"

 

프랑스어 모음보다
길이가 길어요

 

프랑스어 모음을 주제로
석사 논문을 썼으니

 

남들보단 잘 알죠

 

영어를 익히는 과정에서
프랑스 억양을 잃었겠죠

 

논문 보시겠어요?

 

읽기 힘들 거예요

 

이름을 물어봤더니

 

잠시 머뭇거리다가
'스미스'라더군요

 

이름을 밝히기가
싫었던 거예요

 

이상하다 생각했죠

 

우리 단골이었어요

 

근데 솔직함과는 거리가 멀었죠
         〈빈디 비터맨〉

 

비비안의 물건들을
1년쯤 보관해줬는데

 

이름을 물어봐도
이러는 거예요

 

"말 안 할래요"

 

"이름이 없으면
보관 못 해드려요"

 

"알았어요
V. 스미스예요"

 

나원 참
V. 스미스라니

 

가명일 게 뻔해서
전화번호를 달랬더니

 

"전화 없어요"

 

"그럼 필요할 땐
어떻게 연락드려요?"

 

"안 해도 돼요"

 

왜 가명을
말해준 걸까요?

 

사실 우리도
깊이 생각 안 했어요

 

이름의 철자도
다르게 쓰곤 했죠

 

'B. 마이어'로도 쓰고

 

'마이어'의 철자도
마구 섞어 썼어요

 

'Meyer', 'Maier'
'Mayer'

 

마이어라고 불렀었죠
미스 마이어

 

'비브'라고
부르라더군요

 

'비브'라고
부른 적이 없어요

 

비비안이죠

 

비브라고도 불렀나요?

 

아뇨, 비비안

 

왜 실명을
감추려는 건지

 

직업이 뭐냐고 했더니
스파이라는 거예요

 

정확히 들어서
아직도 생생해요

 

정말 이상했죠

 

자기가 스파이란 사람치고
진짜 스파이는 없죠

 

왜 그랬을까요?

 

근데 이름이 뭐예요?
실명을 넣어야 해서

 

당신 이름은요?

 

비밀에 싸인
여인이라고 해두죠

 

다른 누군가로
살고 싶었나 보죠

 

우리도 그렇잖아요

 

유모라는 직업만
아니었다면

 

그런 생활방식이야
이상할 게 없어요

 

근데 왜 그런 일을
했느냐가 궁금한 거죠

 

그런 지성과
관점들을 가졌는데

 

그걸 비밀로 했다면
중요한 이유가 있었겠죠

 

비비안은 말하자면

 

자길 푼돈에 부리는
고용주들을 경멸했죠

 

자길 빈민층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병원에도 안 가고
보험도 안 들길래

 

걱정 안 되냐고
물어봤더니

 

"가난한 사람들은
너무 가난해 죽지도 못 해요"

 

뉴욕에 처음 왔을 땐
악덕 재봉점에 있었대요

 

그러다 밖에 나가서
하는 일이 그립다고

 

볕이라도 쬐고 싶다며
유모 일을 시작했대요

 

자유가 적당히 있는
직업이었고

 

숙식도 제공되고

 

그리 고된 일도
아니었다는 거죠

 

그래서 자유시간에
사진을 찍은 거예요

 

1959년에 비비안은
고용주에게

 

세계 여행을 갔다가
8개월 후 오겠다 했죠

 

〈비행 일정 비비안 마이어〉

 

방콕, 인도, 태국, 이집트
예멘, 남미에도 갔었어요

 

혼자 다녔죠

 

카메라만 들고

 

이 여행을 하면서
수천 장을 찍었어요

 

비비안은 관심 받기를
좋아하는 편이었나요?

 

글쎄요
아닐 거예요

 

오히려 내성적이고
조용한 사람이었죠

 

이 다큐를 본다면
불쾌해할걸요

 

솔직히 좀 불편하고
죄책감도 느껴졌어요

 

작품이 공개되는 걸
원치 않던 분이잖아요

 

비밀스런 사람이었어요

 

작품을 인정받는 건
좋아할지 모르겠지만

 

세상의 이목을 받는 건
싫어했을 거예요

 

살아 있었더라면
절대 용납 안 했어요

 

허락했을 리가 없어요
자기 자식들이잖아요

 

자식들을 전시하도록
뒀을 리가 없죠

 

그래도 썩혀 두려고
찍진 않았을 거예요

 

보여주려고
찍었다고 봐요

 

그게 작품보다
더 흥미로워요

 

어떤 사람인지가
정말 궁금해요

 

작품을 통해서는
알기 힘들 거예요

 

출신 배경 같은 건
말한 적 없나요?

 

알아봤던 사람
누구 없을까요?

 

잘 모르겠어요

 

비비안의 가족이나
과거에 대해 아세요?

 

아뇨

 

신기하죠?

 

거의 10년을
친하게 지냈는데

 

그 사람에 대해서
이만큼도 모른다니

 

프랑스인이라고
생각하긴 했죠

 

오스트리아 쪽이나

 

알자스로렌
뭐 그런 쪽?

 

뉴욕 출신이에요

 

뉴욕이요?
무슨 소리예요?

 

뉴욕 태생이에요

 

그래요?

 

뉴욕 태생이에요

 

설마, 진짜요?

 

유럽인 같았는데
프랑스인이 아니고?

 

그런 억양은
어디서 배웠대요?

 

     〈국립 문서 보관서, 뉴욕시티〉

 

그럼 비비안은
어디 출신이죠?

 

〈마이클 스트라우스, 계보학자〉        
1926년 2월 1일에 뉴욕에서 태어났어요     

 

전문가의 입장에서

 

기존의 작업들과
비교해 봤을 때

 

이 건은 추적이
정말 힘들었어요

 

보통은 거주지 쪽에
가족 기록이 있거든요

 

최소한 공공기록이라도
남아 있기 마련인데

 

이 가족은 구성원들
전부가 미스터리예요

 

비비안 마이어에 대해
몇 가진 알아냈어요

 

결혼한 적이 없고
평생 독신이었어요

 

남편도, 자식도
전혀 없었죠

 

양친은 돌아가셨고

 

오빠가 하나 있는데
그 사람도 죽었겠죠

 

다들 비밀스럽고

 

다들 나머지 가족들과
관계가 없어 보이고

 

다들 가족들과
연관점이 없어 보여요

 

숙모가 있었는데
유산을 친구에게 남겼죠

 

가족이 아니라
친구에게

 

여기 유언장에
그 이유가 있어요

 

그대로 읽을게요

 

"내 친지들에 대한
조항은 없다"

 

"그 이유는"

 

"절친한 친구
몇몇에게만 말했다"

 

알마가 1956년에
사망했으니까

 

유일한 조카인 비비안이
살아있을 때예요

 

밝히지 않고 죽었으니
알 방법이 없죠

 

비비안의 아버지는
일찌감치 돌아가셔서

 

비비안은 어머니와
살았던 걸로 나와요

 

프랑스에도 잠시 살았고
어머니는 프랑스인이어서

 

가족들이 프랑스에
있을지 모른다 싶었죠

 

1949년, 1959년 사진에
같은 마을이 나오거든요

 

같은 장소로
돌아갔던 거예요

 

그래서 프랑스에서 찍은
사진들을 다시 보면서

 

작은 마을 사진들을
유심히 살펴봤어요

 

교회 첨탑 모양이나

 

첨탑과 같이 있는
마을 모습이나

 

그리고 인터넷에서
프랑스 마을들을 찾아

 

첨탑을 찾아봤어요
지문 대조인 셈이죠

 

비비안이 있던 마을을
하나는 찾겠거니 했어요

 

생 쥴리앙과 생 보네

 

프랑스 알프스 쪽
작은 양치기 마을인데

 

인구가 250명이에요

 

고향까지 알아내다니
비비안이 화내겠는데요

 

남이 알 필요가
없는 거잖아요

 

아마 그랬을 거예요
"세상에! 왜 그랬대요?"

 

비비안에 대한 호기심이
이상하게 점점 커졌어요

 

예술가를 발굴하는데
이런 단서를 남겨두면

 

실수일 거라고
생각했죠

 

〈생 보네 앙 샹소르, 프랑스〉

 

〈다니엘 아흐노,          
생 쥴리앙 이장〉        

 

사람들이 비비안을
기억해요

 

워낙 독특한 사람이라
기억하거든요

 

1950년대엔 아무도
사진을 안 찍었어요

 

성찬식이나

 

결혼식 때만 찍었죠

 

비비안 마이어는

 

샹소르의 길들을
돌아다니고

 

산을 올라가고

 

일하는 사람들
사진을 찍었죠

 

그게 참 보고 있자니
이상했어요

 

비비안 마이어와
어떤 관계세요?

 

내가 마지막 남은
사촌일세

 

혹시 보여주실
사진 없을까요?

 

있긴 있지

 

우리 조부님

 

증조부님들이
형제셨지

 

- 비비안이 찍은 거예요
- 확실해요?

 

네, 똑같은 사진이
집에 있어요

 

- 똑같은 게 있대요
- 맞아요

 

비비안 사진이에요

 

제대로 찾았구만

 

이제 만족스럽대?

 

만족스럽냐고
물으시네요

 

비비안의
박스 카메라네요

 

저도 비슷한 거
갖고 있어요

 

비비안의
엄마 카메라야

 

비비안의 어머니
카메라래요

 

비비안의 어머니요?

 

- 그렇다니까
- 비비안의 엄마요?

 

그래

 

이쪽이 실뱅이고
이쪽이 비비안이네요

 

- 비비안이에요?
- 네

 

비비안의 물품 중에서
이 편지도 찾았어요

 

프랑스어로 쓰여 있고

 

프랑스에 있는
사진관 얘기였죠

 

누가 받은 편지라고?

 

이게 그 편지예요

 

우리 아들한테
읽어달래야겠네

 

이렇게 보시면 돼요

 

편지는 이렇게 시작하죠
"사이먼 씨에게"

 

우리 아버지야

 

"샹소르에서 찍은 사진을
종종 바라봐요"

 

"어르신께서 확대해서
엽서로 만들어 주셨죠"

 

"그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

 

"어르신이 생각나요"

 

"용건을 말씀드리자면"

 

"멀리 떨어져 있지만"

 

"동업을 할 수 있을지
여쭙고 싶어요"

 

"어르신의 작품 같은
작품들을 좋아해요"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전 까다로운 편이에요"

 

"제 사진을 몇 장
보낼 수 있을까요?"

 

"좋은 사진들이
굉장히 많아요"

 

"롤라이플렉스로
찍은 사진들이죠"

 

"미국에 돌아온 후로
수많은 실험작을 찍어 봤어요"

 

"제가 보기엔
그리 나쁘지 않아요"

 

"굉장히 많다 했지만
보통 많은 게 아니에요"

 

"광택 처리 말고
반광으로 부탁드려요"

 

〈광택이 아니라
무광으로 부탁드려요!〉

 

〈광택 처리하지 말 것〉

 

"엽서에 쓴 종이처럼
좋은 종이로 부탁드려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안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말씀해주세요"

 

그 전엔 비비안이
자기 작품을

 

인쇄하거나 보여주려던
생각이 없는 줄 알았죠

 

이 편지를 보면
그 짐작은 틀렸어요

 

자신이 좋은 사진작가란
사실을 알고 있었고

 

좋은 작품들이란 걸
알고 있었어요

 

이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던 거예요

 

살아있을 때
못 했던 일을

 

지금 해주려는 거죠

 

도저히 혼자 힘들어서
스캔은 중지했어요

 

뉴욕에 있는 업체에
스캔을 부탁했죠

 

월요일부터 금요일
9시에서 5시까지

 

주당 몇 천 장은
가능했어요

 

흑백 필름들도
꾸준히 현상해서

 

몇 백 롤 정도
남은 상태였죠

 

굉장히 복잡하고
힘든 과정이에요

 

현상액 배합이
정확해야 하거든요

 

게다가 잘못하면
되돌릴 수도 없구요

 

마법 같은 과정이죠

 

비비안이라면
뭘 인쇄했을지

 

뭘 선택하고
편집했을지 모르죠

 

비비안도 못 본 작품을
보고 있는 거니까요

 

〈하워드 그린버그 갤러리〉

 

제게 연락하셨을 때

 

        고인의 작품이라 확신이 없었어요
        〈하워드 그린버그, 갤러리 오너〉

 

갤러리에 어울릴 거란
생각이 안 들었죠

 

여기가 사진들을
보관하는 곳이에요

 

2만 5천 장에서
3만 장쯤 있어요

 

어지간한 박물관보다
훨씬 많죠

 

비비안 마이어의 작품엔
더욱 관심이 가요

 

지금껏 전시했던
작가들보다 훨씬

 

협회의 인정을 받는 게
큰 문제였어요

 

예술계에서 비비안의 작품을
인정할 리가 없으니까요

 

미술관은 보통 완성작을
다루는 곳이에요

 

작가가 생전에
완성한 작품들

 

작가들이 버려둔 작품을
해석하기 싫다는 거죠

 

그건 핑계예요
개리 위노그랜드도

 

현상 안 한 필름을
수도 없이 남겨서

 

전부 현상했어요

 

으젠느 앗제의 작품도
사후에 인쇄됐고

 

뉴욕현대미술관에
걸리게 됐죠

 

아주 속상한 일이에요
그건 됐으면서…

 

비비안의 작품은
찾는 곳이 없단 게

 

비비안이 인쇄한
사진도 있지만

 

비비안의 작품 중에
최고작들은 아니에요

 

사진작가로선
최고였지만

 

인쇄엔
소질이 없었죠

 

흔한 일이에요

 

카르티에 브레송도
인쇄를 질색했고

 

로버트 프랭크도
인쇄를 못 했어요

 

인쇄공들을 고용했죠

 

인쇄할 사람을
고용했던 거예요

 

좋은 작품은
좋은 작품이죠

 

게다가 평도
아주 좋아요

 

세상에 인정받아야 할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 갓 나온 거예요?
- 네

 

정말 좋네요
보여주셔서 감사해요

 

주인이시잖아요

 

작품의 가능성을 보려면
상품성을 봐야 해요

 

인쇄본을 파는 것도
그 일부죠

 

물론 비비안에게도
돈을 주고 싶지만

 

이미 죽은 사람이라
저도 방법이 없어요

 

늘 돈 문제로
힘들어했어요

 

그 돈이 있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10년만 일찍
주목을 받았어도

 

〈리틀 폴스, 미네소타〉

 

마블

 

그래, 너희들

 

끝에 있는 여자가
미스 마이어예요

 

전 비비안이라고
부르진 않아요

 

그렇게 불렀다간  〈잉거 레이먼드〉
엄청 혼날걸요          

 

미세스도 아니고
비비안도 아니고

 

미스 마이어예요

 

제 가정교사로
5살 때부터

 

11살 때까지
절 돌봐줬죠

 

정확한 날짜도
앨범에 기록했어요

 

1967년 3월부터
1974년까지

 

잉거와 저는
절친한 친구였고

 

미스 마이어와
시간을 많이 보냈죠

 

우릴 데리고
시내로 나가서

 

험한 동네를
돌아다니곤 했어요

 

워낙 빨리 걸어서
제 짧은 다리로

 

간신히 쫓아갔죠

 

팔을 이렇게
휘두르고 다녔어요

 

정말 성큼성큼 걸었죠

 

잉거가 천천히 가자고
징징대는데도

 

끌고 가다시피
데리고 걸었어요

 

불쌍했죠

 

보이는 건
뭐든 찍었어요

 

주위를 보고

 

흥미를 느낄
뭔가가 있으면

 

카메라를 열고
초점을 맞췄죠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까이 가서는

 

포즈를 취해달라고
부탁하곤 했어요

 

포즈를 부탁한 적이
없었어요

 

"그쪽에 서세요
잠깐만요"

 

있는 그대로 찍었죠

 

"가난한 사람이다!"

 

곧장 찍고

 

아니면 "누가 운다"
찰칵!

 

사람들은 깜짝 놀라서
황당해했어요

 

카메라를 뺏어서
때리고 싶었어요

 

어찌나 우리를
창피하게 만드는지

 

정말 요란하고
무례했어요

 

사람들이 모욕감을
느꼈을 거예요

 

총 안 맞은 게
놀라울 따름이죠

 

엄마가 화를 내며

 

빈민가에 데려가지
말라고 했어요

 

비비안은
신문 보길 좋아했죠

 

뉴욕타임스를 좋아해서
매일 읽었어요

 

괴상하고 기괴한 기사에
관심이 많았어요

 

기분 좋은 기사엔
관심이 없었죠

 

인간의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헤드라인들을 좋아했어요

 

그런 기사만 나오면
"내가 뭐랬어?"였죠

 

"내가 뭐랬어?"

 

아내를 살해한 남자가
체포당한 소식에도

 

"내가 뭐랬어?"

 

인간의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일들이잖아요

 

〈살인을 도운 것을
후회한다〉

 

〈학대하던 아버지를
죽이고…〉

 

〈강간〉

 

〈아동 성학대〉

 

〈학대받은 여성〉

 

〈강간〉

 

〈희생자〉

 

〈폭력〉

 

〈학대〉

 

작품에서도 인생의
기괴함이 보여요

 

인생의 모순과
인간에 대한 반감

 

항상 뭔가가 있었어요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제게 시비를 거는
기분이었어요

 

항상

 

용돈을 받으면
문구점에 가서

 

작은 유리 장난감들을
잔뜩 사곤 했어요

 

비브는 그걸 보면
질색을 했죠

 

비눗물과 암모니아를
양동이에 채워오는데

 

그 암모니아는
냄새도 엄청났어요

 

진짜 더러운 걸
닦을 때나 쓰던 거죠

 

제 유리 장난감들을
양동이에 쓸어 넣고

 

박살날 정도로 비벼서
암모니아 범벅을 만들었죠

 

저야 무슨 일이건
참고 넘기는 타입인데

 

제 남동생은 대들었어요

 

근데 비브의 대처도
그리 좋진 않았어요

 

우릴 버렸거든요

 

같이 걷다 골목길에
버리고 사라진 거예요

 

결국 경찰이
우릴 찾았어요

 

겁을 주려던 거겠죠

 

경찰이 그러더라구요
"유모 곁에 있어야지!"

 

제가 그랬죠
"아뇨, 유모가 버린 거예요"

 

사고들도 있었어요

 

사고가 아닌 건
다들 알지만

 

애들이 지하실에 갇혀서
비명을 지르고 하는

 

그런 사고였죠

 

심술궂은 사람이었어요

 

다른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요

 

어두운 면이
있던 사람이었죠

 

한 번은
그러는 거예요

 

"저 남자들이 너를
무릎에 앉힐 거고"

 

"넌 뭔가에 찔리는
기분이 들 거야"

 

어쩌다 나온 말인지
기억 안 나지만

 

남자들을 향한
분노가 있었어요

 

지금이야 말뜻을 알지만
그 어릴 때는

 

좋지 않은 말이라고
짐작할 뿐이었어요

 

가끔 남자에게 놀라서
흠칫할 때가 있었어요

 

몇 번인가 말했는데

 

남자는 널 망친다느니
조심해야 한다느니

 

남자들이 원하는 건
섹스뿐이라느니

 

누가 만지는 걸
두려워했어요

 

한번은 그루터기에 서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넘어지는 줄 알고
어떤 남자가 다가왔어요

 

손을 뻗으려고 하자
남자를 때리더라구요

 

자길 공격한다고
생각한 거죠

 

그래서 그 남자는
뇌진탕이 왔고

 

결국 입원했어요

 

아마 폭행을 당했거나
학대를 당했다거나

 

성추행을 당했다거나
그랬던 걸로 보여요

 

아니면 그런 식으로
반응할 리 없거든요

 

아주 강한 기억이
남아 있어서

 

다른 기억들은
가물가물해요

 

남들은 잊겠지만
전 못 잊어요

 

그때 겪은 일은
정말 심했어요

 

미스 마이어가
억지로 먹였는데

 

식사를 남겼다고
억지로 먹인 거였어요

 

부모님이 알게 돼서
아빠가 화를 내셨죠

 

자세히 아셨더라면
난리가 났을걸요

 

절 바닥에 눕히고

 

음식을 입에 쑤셔넣고
삼킬 때까지 목을 졸랐죠

 

몇 번이고 계속해서

 

어두운 면이
많던 사람이에요

 

이해하기가 어려웠죠

 

가끔 이성을
잃기도 했어요

 

처음 절 때린 게
5살 때였는데

 

신발끈 묶는 걸
배울 때였어요

 

제대로 못 한다고
화를 내더니

 

머리를 후려치면서
책장으로 밀었어요

 

얼굴을 맞지 않아서
멍은 없었지만

 

손목을 잡아채고
이리저리 휘둘렀어요

 

화가 많이 나면
그랬었죠

 

8살이 돼서야
팔을 뺄 수 있었어요

 

그 뒤론 안 그랬어요
나도 힘이 생겼으니까

 

똑똑하고 정도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이런 걸
겪었는지 모르겠네요

 

어쩌면 그 후로
고쳤을 수도 있겠죠

 

이런 얘기가
편하진 않아요

 

오래 데리고 있지 못 한
죄책감이 있거든요

 

남편과 입양을 상의할 때
비브가 그러더군요

 

"누굴 돌보고 싶다면
절 돌봐주지 그러세요?"

 

그러곤 웃었지만
진심 같았어요

 

정말 우리 가족이
되고 싶었던 거예요

 

하지만 그럴 생각은
없었거든요

 

저기예요

 

우리집이었어요

 

미스 마이어는
위층에 살았구요

 

아버지가 사무실 위에
방을 마련해 주셨죠

 

나도 딱 한 번
구경했어요

 

뒤에서 슬쩍 엿봤죠
자물쇠가 있었거든요

 

전혀 다르네요

 

여긴 출입금지였어요

 

미스 마이어의 방은
아무도 못 봤죠

 

문을 살짝 열어줘서
방 안을 봤는데

 

신문이 천장까지
쌓여 있었어요

 

바닥 경사 보이죠?

 

아버지에게 저래서 바닥이
처지는 거라고 했더니

 

사무실에 철봉으로
기둥을 세우셨어요

 

이유를 모르셨거든요

 

천정이 푹 처졌었죠

 

이 위층이
비브의 방이었어요

 

비브가 집에 없을 때
들어갈 일이 있을까봐

 

방 열쇠를
억지로 받아놨었죠

 

그래서 들어가 봤어요

 

어디로 다니는지
길이 다 보였어요

 

지나다닐 길이
이렇게 좁았으니까요

 

침대가 여기 있었고

 

신문이 천장까지
쌓여 있었어요

 

과장인 줄 알겠지만
과장이 아니에요

 

신문 더미, 더미, 더미
사방이 신문 더미였죠

 

정말 높게 쌓인
신문 더미였어요

 

신문을 어떻게 집으려고
아니, 어떻게 보려고?

 

그러더니 다른 곳에도
신문을 쌓는 거예요

 

지하실, 뒷마당

 

뒷문 통로가 있었는데
거기에도 쌓았어요

 

늘 간직하고 싶은
기사들이 있어서

 

매일 기사를 오려서
보관한다는 거예요

 

신경은 쓰였지만
그냥 포기했어요

 

그러든 말든

 

집까지 태워줬다가

 

방 책상을 봤는데
문서 더미가 있었죠

 

집주인이 들어왔던 게
분명하다면서

 

물건들을 살펴봤어요

 

책들과 책상을
워낙 꼼꼼히 봐서

 

아주 살짝만
움직여져 있어도

 

바로 알아차렸어요
비비안은 그랬죠

 

그리고 사람들이
망원경으로

 

창문을 통해
방을 엿본다고 했죠

 

갈수록 방에 틀어박혀
뭘 쌓아두는 게 심해졌죠

 

다들 그랬어요

 

"이런 세상에!
너희 유모 좀 내보내"

 

정신질환이 있다는 걸
부모님은 몰랐나 봐요

 

정신병이었거든요
정신병이었어요

 

비비안은…

 

별나다고 하기엔
좀 심각했어요

 

이웃집에서 페인트칠한다고
신문 좀 쓰겠다더군요

 

그래서 쓰라고 했어요
마당에 쌓여 있었으니까

 

한 뭉치를 주고서
맘껏 쓰라고 했죠

 

비브가 집에 와서는
신문이 줄어든 걸 보고

 

불같이 화를 내고
길길이 뛰었어요

 

"누가 내 신문
가져간 거야!"

 

거의 광분이었어요
미쳐 날뛴 수준이었죠

 

그 사람을 찾아가서
소리를 막 질렀어요

 

내놓으라고 했는데
일부는 이미 썼더라구요

 

"페인트가 다 묻었네!"

 

"저렇게 묻었으니
이제 못 쓰잖아요"

 

"어떻게 내 신문을
멋대로 줘요?"

 

그래서 말했죠

 

"당신 신문이 아니라
내 신문이에요"

 

"집에 신문이
저렇게 많잖아요"

 

부모님이 그러시더군요

 

"비브와는 못 지내겠다
심히 미친 것 같아"

 

처음부터
미쳐있던 게 아니라

 

참기 힘든 수준까지
올라왔단 얘기였죠

 

비브에게 했던 말이
똑똑히 기억나요

 

"아무래도 다른 일을
알아보는 게 좋겠어요"

 

그 말을 하기가
어찌나 힘들던지

 

그런데 비브는
놀라지도 않았어요

 

절 쳐다보면서
"그래요?" 하더군요

 

그러더니

 

"해고 2달 전에 통보해야 하니까
2달치 월급을 주세요"

 

비슷한 말을 하더군요

 

뭔가 준비된 말을
꺼내는 것처럼

 

평소에 이런 일로
자주 해고를 당해서

 

담담했던 건지

 

아니면 애초에
예상하고 있던 건지

 

우리 가족은
비브가 떠나고

 

무작정 미시건으로 떠났죠
그런 적도 처음이었어요

 

비브를 보내고 나니까
마음이 힘들어서요

 

지금도 눈물이 나요
비브를 많이 아꼈었고

 

비브도 우리를
아껴줬어요

 

우리와 맞는 사람이
아니었을 뿐이죠

 

늘 날이 서 있어서…

 

이건 자화자찬이지만

 

우리처럼 이해심 많고
편한 가족도 없어요

 

장담은 못 하지만
그렇다고 생각해요

 

그런 우리도
감당이 안 됐어요

 

1996년에 어머니 집을
팔려고 준비 중이었죠

 

그때 비비안에게
말했어요

 

"몇 달 더
지내도 돼요"

 

"그때까진
안 내놓을게요"

 

"준비도 해야 하고"

 

"쫓아내진 않으니까
여기서 지내요"

 

부동산에서 찾아오면
집 보여주라고 했는데

 

집 보러 온 사람들에게
방해만 됐어요

 

못 들어가게 한다고
전화가 오는 거예요

 

"집에 못 들어가게
하시는데요"

 

어떻게 좀 해달라고
전화가 와서

 

비비안에게 그러지 말라고
전화를 했었죠

 

우여곡절 끝에
집을 팔 수 있었어요

 

그해 마지막 날에
팔았나 그럴걸요

 

변호사가 그러는 거예요
"비비안이 안 나가려나봐요"

 

저는 나갈 테니까
걱정 말랬죠

 

마지막으로 본 기억이
아직까지 아프게 남아요

 

2000년이었나

 

딸과 마호메트에서
해변에 가고 있었죠

 

손주와 아이들이
4명 더 있었어요

 

정말 푹푹 찌던
여름날이었는데

 

저쪽에서 걸어오는
여자가 보였어요

 

한눈에 알아봤죠
"비비안이에요!"

 

30년만에
보는 거였어요

 

그런데도 서로
한눈에 알아봤죠

 

둘 다 반가워서
"잘 지내요, 비비안?"

 

"반가워요, 캐롤
정말 오랜만이에요"

 

정말 반갑지만

 

그만 가야겠다고
말했더니

 

가지 말라면서

 

그러는 거예요
엄마를 붙잡고서

 

"캐롤, 가지 말아요"

 

애들은 칭얼대지

 

빨리 가자 하지
날은 덥지

 

정말 곤란했어요

 

그런데 그러는 거예요
"우리 얘기 좀 해요"

 

이제 가야 해서
안 된다고 해도

 

그러는 거예요
"우린 친구잖아요"

 

내 실수였죠

 

그러는 게 아닌데
정말 후회스러워요

 

비비안의 목소리에
실망이 느껴졌어요

 

친구를 만났는데
자길 밀어내니까

 

그리곤 아이들과
해변으로 갔죠

 

같이 가자 했지만
싫다고 했어요

 

그게 마지막이었죠

 

한번은 말도 없이
어딜 데려가는 거예요

 

"말 안 할 거야
깜짝 선물이니까"

 

도살장으로
데려갔던 거였죠

 

그땐 잘 몰랐어요

 

거기가 동물들을
죽이는 곳인지

 

양이 가득 차 있는
트레일러가 있었죠

 

사람들이 막대기로
양들을 찔러서

 

밖으로 나오게
하고 있었어요

 

양들을 다 내보내곤
죽은 양들을 꺼냈죠

 

밟혀 죽은 양들

 

죽음을 목격한 게
그게 처음이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별로 불쾌하진 않았어요

 

이해가 되지 않으니까
이상하다 느낄 뿐이었죠

 

전 동물들을 좋아해서
양들도 키워요

 

말년이 어찌 될지
걱정이 됐어요

 

나이 들어선 어쩌려나

 

해피엔딩은
아닐 것 같았어요

 

천만다행으로 어릴 때
돌보던 아이들이

 

도와줘서 망정이었죠

 

집을 구해주고
월세도 내줬대요

 

〈로저스 비치에 잘 오셨습니다〉

 

- 이 동네 사세요?
- 네

 

혹시 아주머니
한 분 기억하세요?

 

넓은 챙 모자 쓰고
저 벤치에 앉으시던

 

프랑스인이셨죠?
네, 기억해요

 

그때 살던 주민들은
아직 기억하죠

 

여기 자주 나오셔서
벤치에 앉아 계셨어요

 

근데 말을 거는
사람은 없었어요

 

여기도 별난 분들이
꽤 많아서

 

그런 분이거니 했어요

 

괜히 접근하기
힘든 분위기고

 

가끔 쓰레기통 앞에
계실 때도 있어서

 

혹시 음식 같은 게
필요하신지 물어보면

 

프랑스어로
소리를 지르셨죠

 

어떻게 아세요?

 

동네에서 봤으니까요

 

같이 벤치에
앉아 보셨어요?

 

늘 앉던 곳이라
같이 앉긴 했죠

 

말 섞기까지
몇 주 걸렸지만

 

골목에서 자주 봤는데
늘 쓰레기를 뒤졌어요

 

낡은 옷이 많아서

 

가져다 줬더니
아주 좋다면서

 

잘 때 입겠다고
하더라구요

 

낯을 많이 가렸죠

 

그래도 재미있고
좋은 분이었어요

 

자전거를 타다가
앞을 지나쳐가면

 

소리를 지르셨어요
"벨 좀 달아!"

 

그리고 겨울에
골목에서 뵐 때면

 

모자 안 썼다고
"모자 좀 써!"

 

자전거 벨 때문에
시끄러웠지

 

누가 알았겠어요?

 

쓰레기 뒤지던 사람이
훌륭한 예술가였다니

 

- 안타깝네요
- 공원 벤치에 앉았다가

 

길건너 가게에서
통조림 하나 사고

 

하루는 콘비프였나
그런 걸 사서는

 

데우지도 않고
뚜껑을 따서

 

떠먹는 거예요
맛있다면서

 

제 생각보다
많이 망가졌더라구요

 

딱한 마음이 들었죠

 

외로운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정말 외롭겠구나

 

내가 오해했구나

 

오늘이라도
다시 볼 수 있다면

 

그렇게 심하게 대하진
않을 거 같아요

 

누가 전화를 해서는
그 아주머니가

 

공원에서 쓰러져서

 

구급차가 왔다길래
급히 나가봤죠

 

구급차에 들것으로
실려가고 있더라구요

 

그때 구급대원들에게
그러는 거예요

 

병원 가기 싫다고
집에 가겠다고

 

좀 말려달라는데

 

내가 거기서
뭘 어쩌겠어요

 

구급대원에게 말은 했는데
데려가야 한다더군요

 

결국 구급차에 태워서
데리고 갔어요

 

그 후에 이웃들끼리
자리에 모여서

 

어찌된 일이냐고 하는데
아무도 영문을 몰랐죠

 

인물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자신이 가진 단서들을
뽑아내야 해요

 

비비안의 사진은
다정함과

 

인간의 비극에 대한
즉각적인 경계심

 

너그러움과 상냥함의
순간들을 보여주죠

 

주의 깊고 관찰력이
대단한 사람이에요

 

그런 자질들이 있어서
유모였던 게 아닌가 해요

 

1962년에 비비안은
사진을 많이 찍었죠

 

애들이 잘 놀던
계곡이 있어요

 

정말 아름다운 곳이죠

 

깔끔한 교외보다
그런 곳이 좋잖아요

 

애들이 자연을 느낄
기회도 되고

 

거긴 야생이니까

 

그쪽엔 산딸기도
아주 많았어요

 

그래서 거기 묻었을 거예요
비비안이 거길 좋아했거든요

 

비비안이 행복해했던
장소라는 거죠

 

어떻게 하면
영원히 살 수 있지?

 

말해 봐

 

말년에 그런 생각을
했을지도 몰라요

 

"왜 이 작품들을
공개하지 않았을까?"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성격에 가로막혀

 

작품 공개를 못 하는
경우들도 있죠

 

비비안은 예술가를
자칭하지도 않았고

 

그저 작품 활동만
했어요

 

좋은 작품은
자주 나오지만

 

보통 작가는 부차적인
인물로 느껴져요

 

하지만 비비안은
그렇지가 않아요

 

사진들을 보면

 

뭔가 근본적인 게
느껴지거든요

 

정말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이전에 거절했던
사람들도

 

마음을 바꾸고 있는
상황이에요

 

어디까지 갈지는
아무도 모르죠

 

아직도 주류 예술계에선
비비안을 인정하지 않아요

 

하지만 사람들은
신경 안 써요

 

협회들의 인정을
기다리지 않거든요

 

스스로 비비안의 작품을
요구하고 있어요

 

지금은 뉴욕에 있는
갤러리들에도 걸리고

 

〈뉴욕〉

 

LA에서도
볼 수 있고

 

〈비비안 마이어
베일에 싸여있던 삶〉

 

〈로스앤젤레스〉   

 

이 사진이 좋아서 구입했어요       
〈팀 로스, 배우〉       

 

비참한 빈곤을
프레임에 담았지만

 

여기엔 행복도
담겨 있어요

 

〈런던〉

 

지금은 전세계에서
전시 중이에요

 

런던, 독일, 덴마크

 

사람들은 비비안 마이어와
작품들을 포용하고 있죠

 

〈생 쥴리앙 앙 샹소르, 프랑스〉

 

면도도 안 했구만

 

면도를 안 했어

 

좋네요

 

알아보시겠어요?

 

엄마 남편이잖아요

 

우리 엄마…

 

불쌍한 우리 엄마

 

근사하죠?
정말 감동적이에요

 

이게 비비안에겐
잘된 일일지 몰라요

 

죽은 후에
이렇게 됐다는 게

 

이게 비비안에게도
제일 좋지 않았을까요?

 

생전에 관심이 쏠렸으면
감당 못 했을 거예요

 

비브는 유모였으니까
하위 계층이잖아요

 

상류층으로 여겨지는
위치는 아니니까요

 

결혼도 안 했고
사교 생활도 없었고

 

사람들이 우러러볼
지위도 없었어요

 

하지만 한순간도
굽힌 적이 없었죠

 

원하는 걸 한 거예요
우리에게도 그렇게 가르쳤죠

 

자기가 원하던 인생을
살다 간 거예요

 

이제 비비안에 대해
훨씬 이해하게 됐어요

 

하지만 왜 그렇게
비밀스러웠고

 

다작을 하면서도
공개하지 않았는지는

 

알 방법이 없죠

 

하지만 잊힐 리가 없고
잊혀지지도 않았어요

 

비비안은 촬영하면서
인물을 바라보고

 

그렇게 가까이 접근해서
사진을 찍었어요

 

이건 시사하는 바가
아주 커요

 

낯선 이의 공간으로
성큼 들어가도

 

받아들여질 정도의
융화력이 있었다

 

그리고 묘한 순간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두 존재가 맞닿아
진동하는 그런 순간

 

그리곤 거기에서
사라지는 거죠

 

영원한 건
없다고 생각해요

 

차에 탔을 때처럼
남의 자릴 만들어줘야 해요

 

좌석 끝으로 가줘야
다른 사람이 와서 앉죠

 

이제 여기까지 하고

 

빨리 다음 작품을
하러 가야겠어요

 

비비안 마이어를 추억하며
1926년 2월 1일 ~ 2009년 4월 21일

 

Origin by  Michael Archang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