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 The Tuscan Sun CD1

싸인회를 열기에 앞서,

 

제가 감사드려야 될 분이
여기 와주셨군요

 

흥분상태로 그녀를 만났는데
이건 아니다 싶었죠

 

결코 하진 않았어요.
그녀를 원했지만 절대 안 했어요

 

그녀의 강의를 듣던 때의 얘깁니다

 

작가로서 최악의 난관에 부딪혔죠

 

떠오르는 아이디어라곤
허접한 공상 뿐이었어요

 

수강을 막 취소하려던 참이었는데

 

그녀의 충고를 듣고 나서
모든 게 달라졌어요

 

"허접한 공상은 무고한
희생양이나 마찬가지다"

 

"제대로 북돋워주기만 하면
그들도 멋지게 자랄 수 있다"

 

그녀는 하나를 골라
파고들라고 했어요

 

그래서 성공했죠

 

프랜시스 메이예스,
허접한 공상을 키워보라던 교수님!

 

프렌치 키스해도 되나요?

 

난 유부녀야, 윌리엄.
미안

 

자랑스럽죠?

 

웃기지마

 

프랜시스, 이거 죽이는데.
어떻게 만들었어?

 

초콜렛 타이밍을 잘 맞춰야 돼

 

- 나머진 비밀이야
- 교수님, 안녕하세요

 

와인은 어딨지?
저깄네

 

탐은 진짜 운좋은 놈이야

 

요리도 끝내주는
작가 마누라를 뒀으니 말야

 

홀딱 벗고 요리를 한다면
억울하고 배 아파서

 

난 죽어버릴래

 

홀딱은 절대 아냐.
슬리퍼는 신거든

 

얘를 잘 몰라서 그러는데,
이 브라우니엔 꺼지란 의미가 담겼어

 

- 고마워
- 천만해

 

- 소설은 잘 되어 가?
- 그냥 그래

 

늑장부리기만 늘지 뭐

 

조만간 비참한 자기혐오에 시달리다가

 

- 결국은 글쓰는 기계가 되겠지
- 벌써 그렇게 됐어

 

탐은 어때요?
책은 잘 쓰고 있나요?

 

물론이죠.
지금도 집에서 글 쓰고 있어요

 

탐을 아세요?

 

최근에 우연히 한 번 봤죠

 

우연이 하나 더 있는데..
당신이 제 책을 비평했더군요

 

제가요?
호평했던가요?

 

혹평이던데요

 

저런, 미안해요

 

아마 다른 비평가들은
호평했을 거예요

 

언짢게 받아들이진
않으셨길 바래요

 

제 작품의 주된 정서가
비현실적이라고 하셨더군요

 

혹평은 곧 잊혀지지 마련이죠

 

브라우니 좀 드려

 

이거 드셔보세요.
기분이 좋아져요

 

십대의 달콤한 꿈에 젖어
삶을 허비하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소설이라면

 

전혀 관심 없다고 하셨는데

 

그 말씀이 아이러니네요

 

아이러니라.. 왜요?

 

남편에게 물어보세요

 

무슨 소리지?

 

프랜시스?

 

프랜시스?

 

안타까운 소식입니다

 

남편의 변호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는데

 

위자료를 청구할 거랍니다

 

제 수입이 넉넉지 못한 걸 알면서

 

어떻게 위자료 얘길 꺼낼 수 있죠?

 

결혼기간 동안 부인께서
남편을 부양하셨죠

 

 

그가 연구와 집필에 몰두한 동안,

 

저는 일했지만 그는 무관심하게..

 

불행히도 이건 수학논리 같은 겁니다

 

그는 바람도 피웠어요

 

캘리포니아 법은 혼인파탄의
책임을 묻지 않습니다

 

남편측 변호사는 남편께서
별거 위자료를 차지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겁니다

 

두 분께선 비교적
검소하게 사셨기 때문에

 

액수가 그리 크진 않으리라 봅니다

 

아마 20만 달러쯤 청구하겠죠

 

저는 그만한 돈이 없어요

 

안 됐지만 내셔야 해요

 

집은요?

 

부인께서 구입할 당시보다
집값이 꽤 올랐겠죠

 

제 어머니 돈으로 개조도 했어요

 

이젠 전부 공동재산이 됩니다

 

남편은 집의 절반과
위자료를 갖는 거군요

 

아직 여지는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 절충해보죠

 

차선책도 있습니다.
남편께선 집을 원합니다

 

- 그가 거기서 살고 싶대요?
- 네

 

부인께서 집을 내주시면,

 

수중에 갖고 계신 돈만으로
끝낼 수도 있습니다

 

남편께선 무척이나
집을 원하더군요

 

죄송하지만 너무 황당하네요

 

그나마 내 몫마저
가로채겠단 거잖아요?

 

분명한 점은, 그 여자도
집을 맘에 들어 합니다

 

학교도 가깝고요

 

학교요?

 

설마 그녀가..?

 

어떻게든 극복하셔야 됩니다

 

힘내요, 프랜시스

 

언젠가 다시 행복이 찾아오겠죠

 

알았어요

 

책상은요?

 

가져가요

 

아뇨, 그냥 두세요

 

- 소파는요?
- 네, 가져가요

 

잠깐만요, 소파도 놔두세요

 

책상은 어쩔까요?

 

놔둬요

 

그러니깐, 저 박스만 빼고
그대로 놔두세요

 

저기 책이 든 박스요

 

괜찮으시다면요

 

진짜요?

 

 

침실은요?

 

없어요

 

- 부엌은요?
- 없어요

 

그럼 다 됐는데요

 

그러네요

 

이혼하셨어요?

 

보여주실래요?

 

가구 딸린, 단기계약 아파트는
이 방만 남았습니다

 

옆집 2-B호에는 변호사가 살아요

 

3년째 이혼소송을 질질 끌고 있죠

 

좋은 남자예요

 

이웃들에게 무료법률상담을 해주거든요

 

그가 우는 게 거슬리면
벽을 쾅 치세요

 

- 그럼 멈춰요
- 미안해요

 

위층에는 의사가 살아요.
수면제를 공짜로 나눠주죠

 

- 직업이 뭐죠?
- 작가예요

 

당신은 공짜로 유서를
써주면 되겠네요

 

재밌는 분이시군요

 

별로요

 

여기 열쇠 있습니다

 

쉬세요

 

고마워요

 

집이네

 

짜잔!

 

샴페인과 케이크로
결혼을 시작했으니까

 

끝내는 것도 똑같이 해야지

 

시작도 끝도 즐거워야 되는 법이야

 

지난 세월이 너무 아까워.
새해도 한참 지났는데

 

- 미안
- 소원을 빌어봐

 

병원일이 꼬여서 말야

 

축배 들 시간에 딱 맞춰 왔어

 

브라보!
겨우 일년 걸렸구나

 

-자유를 위해
-자유를 위해

 

고마워

 

넌 안 마시네.
술을 안 마신다..?

 

다섯 번째 행운이야

 

이런, 맙소사!

 

패티!
예정일이 언제야?

 

- 5월
- 5월이래!

 

하느님 고맙습니다!

 

제가 이모가 돼요!

 

제가 이모가 된다고요

 

계획을 조금 수정해야겠어

 

당연히 그래야지

 

토스카나로 열흘 간
여행가기로 했었잖아

 

패티는 비행기를 타선 안 돼

 

하는 수 없지

 

그래서 우리 일반석 티켓을 바꿔서

 

너한테 업그레이드 티켓을
주기로 했어

 

이런 놀라울 데가 있나!

 

너무 황송한 걸

 

고맙지만 그럴 순 없어

 

토스카나에 안 가겠단 거야?

 

맞아, 그래

 

그건 우울하단 소리밖엔 안 돼

 

이태리어는 아예 못하고
불어는 고교 때 배운 게 다야

 

더구나 이젠 우울하지도 않아

 

그런데 어째서 아직도
폐인들 틈에서 살지?

 

- 그들은 내 이웃들이야
- 네가 살 곳이 못 돼

 

얘들아, 제발

 

정말 고마워

 

하지만 토스카나에 혼자 갈 순 없어

 

- 난 사람들을 만날 준비가 안 됐어
- 그렇겠지

 

- 그럴 줄 알았어
- 뭐?

 

이건 동성애자들만을 위한 여행이야

 

스트레스를 풀려면
그게 더 나을 지도 몰라

 

다들 커플만 있거든

 

그러니 아무도 너한테
집적대진 않을 거야

 

진지하게 네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볼 기회라고

 

내 마음의 소리?

 

내 마음은 뭐라냐면,

 

"젠장, 토스카나까지
동성애자 여행이라니?"

 

프랜시스, 이건 이태리야!
이태리라고

 

게다가 다시 글을 쓸
전기가 될 수도 있어

 

글쎄, 너무 바뻐서.
네 책 말고도

 

비평할 책이 쌓였어

 

근데 확실해?
아님 호르몬 체크만 한 거야?

 

좋아, 설마 돌아왔을 때
누가 죽어있는 건 아니겠지

 

그냥 아기 얘기나 하자

 

넌 위기에 빠졌어

 

어떤?

 

구제불능의 위기

 

그러다 허울 뿐인 폐인들과
살을 맞댈지도 모르잖아?

 

뚱딴지 같은 소리로 들리겠지만

 

갈림길에 선 그들의 인생도

 

나름대로 좋은 시절이 있었겠지

 

갈림길이라.
오프라 쇼에도 그런...

 

때가 되면 제각기
갈 길을 가는 거야

 

프랜시스, 더 이상
소심하게 굴지 마

 

난 소심하지 않아

 

안 그렇다고

 

그럼 고려해보겠다고 약속해

 

생각해볼게

 

알았어

 

당신한테서 뭔가 느껴졌어요

 

- 집을 고르고 계시죠?
- 예, 맞아요

 

- 이혼하셨나요?
- 네?

 

단기계약 아파트가 있어요

 

염려마세요.
장기계약도 가능하죠

 

여기엔 작가도 살고
의사도 살아요

 

의사가 삶을 화끈하게
정리하도록 도와줄 겁니다

 

이봐요!

 

미안해요

 

됐어요

 

- 이쪽으로 오실래요?
- 아뇨!

 

나중에요

 

나중에 간다고요!

 

여보세요?

 

패티, 언제 떠나는 거야?

 

안녕하세요, 데이빗입니다.
이쪽은 운전사 에두아르도

 

황홀한 동성애를 만끽하라!

 

토스카나 여행의 즐거운 첫날입니다

 

비행기에서 대부분
얼굴을 익히셨겠지만

 

여러분 모두 프랜시스를
아는지 궁금하네요

 

안녕, 프랜시스

 

- 프랜시스는 동성애자가 아닙니다
- 저런 멍청이

 

끔찍한 이혼을 간신히 버텨냈죠

 

친구 패티의 말에 따르면
그녀는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답니다

 

자, 프랜시스, 일어나서
모두에게 인사하시죠?

 

안녕하세요!

 

이제 총각이구만, 맘껏 즐기슈!

 

여러분, 꽃을 따라오세요

 

맙소사, 비가 오다니

 

죄송해요

 

잔이 비었네요.
더 드릴까요?

 

와인 더 드려요?

 

- 더 마실래요?
- 저기요...

 

- ..흑인여자도 술 마셔요?
- 당근이죠

 

프랜시스, 더 드려요?

 

편하게 즐겨보세요.
파티잖아요!

 

뭐라고요?

 

정말 끝내주죠?

 

네, 당신도 그랬군요

 

너무 멋져요

 

이 모든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될까요?

 

이걸 어떻게
글로 표현하죠?

 

펜을 주시면 적어드리죠

 

글을 잘 써요?

 

전엔 그랬어요

 

좋아요

 

해봐요

 

엄마에게

 

사랑하는 엄마

 

사랑하는 엄마

 

코르토나의 장날이에요

 

광장에선 파티가 무르익고
모두가 초대받았어요

 

판에 박힌 정겨움의
향연이랄까...

 

아무리 웃음을 참으려 해도,
이태리인들이 얼마나

 

유쾌한 사람들인지
웃지 않곤 못 배길 거예요

 

방금 시장에서 산
포도를 깨물었더니

 

보라색 달콤함이
입안 가득 넘쳐나네요

 

보라빛 향기마저 느껴져요

 

더 있고 싶지만 교회 종소리가
떠날 시간을 재촉하네요

 

종소리는 '딩동'이 아니라
'딩댕동'처럼 들려요

 

- 엄마도 오셨음 좋았을 텐데
- 사랑하는...

 

..로드니로부터

 

고마워요

 

보라빛 향기가 느껴진다?

 

엄마가 내가 썼다고
믿을 리 없어요

 

가지세요.
딩댕동 잘도 울리네요

 

미안해요

 

브라마솔

 

브라마솔레

 

아담한 별장이죠.
낡긴 했지만 장기상환도 가능해요

 

사려고요?

 

아뇨

 

당일치기로 여행왔어요

 

그래서요?

 

누군들 토스카나에
별장을 갖고 싶지 않겠어요?

 

제 삶에선 그런 건
허접한 공상에 불과해요

 

허접한 공상이라

 

그걸 키워보진 않고요?

 

죄송해요, 예정에 없이
잠깐 서겠습니다

 

'팝니다'

 

'브라마솔레'

 

멈춰요!

 

차 세워요!

 

계세요?

 

계세요?

 

젠장

 

어머, 실례했어요

 

정말 죄송해요

 

씨뇨라, 도와드릴까요?

 

네, 저는 그러니까..
파는 집인 줄 알았어요

 

맞아요, 파는 겁니다

 

근데 이미 누가 사신다네요

 

정말 맘에 듭니다,
오늘 당장 사겠어요

 

고맙습니다.
잠시만요

 

죄송합니다

 

저분들이 사겠답니다.
가격에도 동의했고요

 

이렇게나 빨리?
너무 적게 부른 것 같아

 

적어도 2천만 리라는
더 받아야겠어

 

미안합니다

 

미안해요

 

유감스럽게도 가격에
변동이 생겼습니다

 

2천만 리라를 더 주셔야겠습니다

 

왜죠? 5분만에 값어치가
오를 순 없잖아요

 

금새 사시겠다니 백작부인께서

 

너무 싸게 부른 것 같답니다

 

말도 안 돼요

 

저기요?

 

가격이 얼마죠?

 

입찰이라도 붙겠단 건가요?

 

잠깐, 조건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안 돼, 이 아름다운 집을!

 

누구든 맘에 들면
두 배를 내라고 해

 

백작부인께서 말씀하시길

 

집에 너무 정이 들어서

 

두 배를 받아야 된답니다

 

10초만에 두 배요?

 

어쩔 수 없죠

 

탐욕스런 미국인!
이젠 됐다 싶겠지만

 

그래봤자 댁만 손해야

 

저도 속상하긴
마찬가지라고요

 

그만 갑시다.
프로방스 쪽을 알아보자고

 

파시스트 같으니!

 

저 여자는?
얼마나 내겠대?

 

들어보죠

 

정말로 두 배를 내야 되나요?

 

전 그럴 돈이 없는데

 

백작부인께 말씀해주세요

 

최근에 제 집을 처분해서
달러가 이만큼 있어요

 

수리비 빼고

 

망치, 양동이

 

인건비

 

초콜렛

 

벼랑에서 추락한 렌트카

 

다 제가 바보 같아서
생긴 일이죠

 

남은 건 이게 전부예요

 

씨뇨라

 

이 집을 잘 모르시는군요

 

 

음, 저는...

 

샌프란시스코로 돌아갈 수 없어요

 

안 돼

 

안 되겠어

 

미안합니다, 씨뇨라

 

백작부인의 집안은
수대째 여기에 사셨죠

 

때문에 집을 팔기가
쉽지 않습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백작부인께선...

 

느낌이군요

 

알겠어요.
저도 느낌을 믿어요

 

고마웠어요

 

자요

 

뭐라고 그러세요?

 

이태리에선 지금 이게
무척 좋은 징조랍니다

 

- 그래요?
- 네

 

집구경 좀 하시겠수?

 

우선, 계좌를 개설하고
돈을 송금하세요

 

계약조건을 보시죠.
"소 두 마리로 이틀 동안"

 

- 무슨 소린지..
- 전통이죠

 

소 두 마리가 이틀 동안
경작한 땅을 갖는 겁니다

 

아하, 그렇군요

 

이래도 되나요?

 

돈이 송금되기도 전인데..?

 

이건 집이지, 스쿠터가 아녜요

 

집을 훔쳐갈 순 없잖아요?

 

게다가 씨뇨르 마르티니가
댁을 좋게 봤어요

 

됐어요, 나머진 차차 해드리죠

 

노르마레

 

노르마레?

 

노르마레

 

노르마레
(normale : 원래 그렇다)

 

나는 외국에다 집을 사게 됐다

 

집과 소 두 마리가
이틀 경작한 땅을 말이다

 

소나 쟁기는 없지만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새로 집주인이 되면
후회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억울해서 울고 싶을진 몰라도

 

실수했다고 여길 필요는 없다

 

오래 된 집엔 고풍스런
장식이 있기 마련이다

 

3백년이나 된 집은 더욱 그렇다

 

내가 물려받은 것은
만 개나 되는 빈 와인병과

 

포도 한 알

 

1958년에 발행된
'라 나찌오네' 신문

 

그리고 온갖 터줏대감들이다

 

후회를 극복하는 방법은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방 하나를 골라
네 것으로 삼아라

 

구석구석 집안을 살펴보라

 

공손하게 스스로를
집에게 소개하면

 

집도 당신을 기쁘게
맞이할 것이다

 

뭐라고?

 

프랜시스가 토스카나에 집을 샀대!

 

거기서 혼자 살게?

 

혼자는 아니고
벌레랑 같이 살아

 

- 아기는 어때?
- 잘 크고 있어

 

도무지 믿기지가 않네.
계약은 끝낸 거야?

 

그럼

 

왜? 내가 잘못한 거 같니?

 

내가 실수한 거 같아서?

 

- 잘 모르겠어, 넌?
- 나도 잘 몰라

 

갈림길이며 허울 뿐인 사람
얘긴 네가 꺼냈잖아

 

맞아, 내가 그랬지

 

그렇구나!

 

토스카나에 별장을 샀구나!

 

- 근사하니?
- 수리가 좀 필요해

 

- 수리는 누가 하는데?
- 내가

 

네가?

 

너한테 그런 재주가 있었던가?

 

물론이지. 내가 하수구
고친 적도 있잖아?

 

네 부엌 하수구?
그건 내가 고쳤어

 

고무 도구를 내가 너한테 건넸어

 

고무 흡입기?
그건 탐이 준 거야

 

뭐야, 왜 그 이름을 들먹이지?

 

미안, 잊었어.
미안해

 

일을 마저 끝내야 돼

 

전부 다 내가
하겠단 건 아니고

 

힘든 일을 거들
로마의 후예를 구해야지

 

그렇지, 넌 감독만 하라니까

 

근데 그 사람은 만났니?

 

- 누구?
- 만나고 싶다던 남자 말야

 

패티, 제발

 

그나저나...

 

비가 오려고 해

 

- 가봐야겠어
- 기다려봐

 

내 대신 아기한테 키스해줘

 

- 프랜시스
- 안녕

 

별표 69가 이태리니?

 

아니

 

걸어볼까

 

여보세요?

 

살았다

 

1000분의 1

 

2

 

하느님!

 

그만

 

그만!

 

이럴 수가

 

맙소사

 

이젠 괜찮아.
여긴 안전해

 

퍼덕거리지만 마, 알았지?
겁난단 말야

 

씨뇨라?

 

씨뇨라 메이예스?

 

안녕하세요

 

폭풍 속에서도 살아남았군요

 

전 살았어요.
근데 세탁기가 죽었어요

 

그러게요.
감전사했더군요

 

당신은 안 그래서 기뻐요

 

살아있나 보러 오셨나요?

 

오늘 건축업자를 만나기로 했잖아요.
그래서 도와드리려고요

 

벌써 하나가 와 있네요

 

여기에요?

 

아래층요

 

정말이네요

 

이 벽을 텄으면 해요

 

두 개의 작은방이
큰방 하나가 되게요

 

원더풀!

 

건축사 하셔도 되겠어요

 

뛰어난 감각을 지니셨네요

 

그렇담 가능할까요?

 

배관 일주일

 

욕실 3일

 

씨뇨라, 열쇠를 주시면

 

한달 내로 돌려드리죠

 

그저...

 

열쇠만 주시면 돼요

 

쿵! 쿵! 쿵!

 

오래 전부터 이 집을
수리했다고 하네요

 

정말요?

 

집안 다른 곳도 봐주실래요?

 

오케이, 예스

 

담을 다시 쌓아야 된대요

 

정원의 구조에 중요하다는군요

 

전문가를 데려왔대요

 

봉쥬르노

 

안녕하세요, 부인

 

저흰 이태리인이 아녜요.
폴란드인이죠

 

아, 그러시군요.
다들 영어 하세요?

 

저만 쬐금요

 

파블이에요

 

파블, 만나서 반가워요

 

안녕하세요

 

예르지예요

 

예르지

 

안녕하세요

 

즈비그뉴

 

즈비그뉴..

 

프랜시스예요

 

니노는 어때요?

 

그의 어머니를 아는데,
나쁜 짓을 하면...

 

그렇다면야

 

좋아요, 그러죠

 

오케이, 예스

 

예스, 예스

 

오케이, 예스

 

보셨죠?
문제없어요

 

니노!

 

맙소사!

 

뛰어요!

 

오케이, 예스

 

쿠르바 마치!
(Kurwa mac)

 

'쿠르바 마치'는 폴란드어로
'제기랄'이란 뜻이다

 

나도 그날 배웠다

 

이태리에서 폴란드어를
배운다는 건

 

해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전기기술자가 맞아요?

 

아뇨, 그는 문학교수예요

 

체슬로우 미워시

 

이 사람을 좋아해요

 

체슬로우 미워시

 

사람을 사귀는 데
시간이 걸리는 건 당연하다

 

날마다 꽃을 든 노인을 본다

 

나는 궁금하다.
여기서 그가 태어났을까?

 

여기 살던 누군가를 사랑했을까?

 

여기 누군가를 잃은 걸까?

 

그는 내게 무관심하지만
개의치 않는다

 

요즘 들어 왠지 고독하다

 

나만의 파티에도 이골이 났다

 

대개는 바에 앉아
빈둥거리기 일쑨데

 

편하게도 바는 뒤뜰에 있다

 

혼자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게 천만다행이다

 

이웃인 플라치도 씨가
올리브에 관해 가르쳐주신다

 

오늘은 됐어요

 

축축한 건 따지 말아요?

 

알았어요

 

잘 익었네

 

이런..

 

- 아빠!
- 씨? (si : yes)

 

- 다했어요
- 잘했다, 그물 위에 모으거라

 

 

- 키아라!
- 네?

 

지아니 일을 거들 게 있나 가봐라

 

알았어요

 

어서, 냉큼

 

안녕

 

저런!

 

괜찮아요?

 

 

그라찌에
(grazie : thanks)

 

프란체스카?
오늘밤 바쁜가요?

 

아뇨

 

식사하러 와요.
혼자 먹는 건 몸에 해롭죠

 

그만해요, 엄마.
이러심 곤란하다고요

 

- 괜찮으세요?
- 그럼요, 염려마세요

 

엄마, 이젠 됐어요

 

할머니께서 너무 예민하셔서

 

하루종일 저러세요

 

특별히 축하할만한
일이라도 있나요?

 

가뭄과 광견병과
성적타락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신
성인들께 감사하라

 

반가워요, 여러분.
늦어서 죄송해요

 

카트린느!
모자 이리내

 

맘에 들어?

 

그러길래 허접한 공상이
아니라고 했잖아요

 

혼자 사나요?
남편이나 애인도 없이?

 

네.
당신은 있나요?

 

있냐고요?

 

이럴 줄 알았어요.
기억나세요?

 

나를 탓하지 마라

 

컴퓨터를 못 만지게 하라고
아빠한테 말했다니까

 

어머니껜 에콰도르에 사는
이메일 친구가 있었죠

 

그러다 나이를 얘기했더니...

 

답장이 없어!

 

곧 올 거예요

 

집어치워!
난 마음에 상처를 받았어

 

비록 늙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아파

 

안타깝네요

 

- 사랑이군요
- 네

 

체리베(celibe)?

 

체리베

 

셀러빗?
(celibate : 독신, 금욕주의자)

 

- 금욕주의자!?
- 네

 

아뇨, 그러니까...

 

음, 잠시 이렇게
지내는 것 뿐이에요

 

'체리베'는 이태리어로
'싱글'이란 뜻이죠

 

성관계를 안 하고
사느냐는 물음이 아니라

 

결혼했는지 여부를 묻는 거예요

 

고마워요

 

아뇨, 안 했어요

 

- 자기, 불편한 건 없어?
- 어, 좋아. 막 먹던 중이야

 

그는 했군요

 

난 몰라

 

- 바보가 된 기분이에요
- 아뇨

 

가볍게 사귀는 건 이태리 풍습이에요
그냥 즐기라는 거죠

 

먹어봐요, 맛이 좋아요

 

- 이건 대체 뭐죠?
- 뭐요?

 

이거요

 

모자는 나를 행복하게 해줘요

 

아이스크림도요

 

아이스크림이 내 인생을 바꿨죠

 

아이스크림 덕분에

 

사랑하는 페페와 내가 만났거든요

 

페페?

 

거장이죠

 

누구요?

 

내 사랑 페데리코

 

펠리니요?

 

부모님과 노비나 광장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던 나를

 

그가 발견했죠

 

마침 나는 배가 고파서,

 

턱에 줄줄 흘려가며
게걸스럽게 먹고 있었어요

 

그는 내게 물었죠.
"아이스크림을 좋아해요?"

 

난 16살이었고
그가 누군지 몰랐어요

 

그는 말했죠.
"당신은 내 삶에 영감을 줬어요"

 

그는 훌륭한 감독일 뿐 아니라
뛰어난 조언자이기도 했어요

 

듣고 있어요

 

페페라면 당신에게 다방면에 걸쳐
폭넓게 살라고 할 거예요

 

어린애 같은 열정을
잃지 않는다면,

 

모든 일이 뜻대로 될 거라고요

 

그리하여 이제부턴 무덤에서 나온
거장의 충고를 따르기로 했다

 

어린애 같은 열정을 갖고

 

이리저리 담쟁이덩굴을 치며
충고를 따르고자 애쓴다

 

맙소사

 

없는데요

 

없어요.
여긴 없습니다

 

침대 아래도 보셨나요?

 

베개 밑은요?

 

아녜요.
장난이었어요

 

벌써 도망쳤나봐요

 

뱀은 변덕스럽기로 유명하거든요

 

나 혼자 이러고 살아야 되나요?

 

너무 을씨년스럽죠?

 

이런 큰집에서 혼자라니

 

죄송해요

 

미안해요

 

씨뇨라 메이예스, 감기들겠어요

 

 

고마워요

 

이혼하면 얼마나 참담한지 아세요?

 

진짜 죽는 건 아니지만

 

총알이 가슴팍을 꿰뚫거나
차로 정면충돌하는 기분이죠

 

꼭 그래요

 

죽을 때까지 생의 반려자가 되기로
맹세한 누군가가 어느날

 

"너를 사랑하지 않아" 라고 하면
심장이 멎는 것 같아요

 

그 뒤로 며칠이고
일어날 수 없었어요

 

어째서 아무 것도 몰랐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했죠

 

도저히 눈을 뜰 수가 없었어요

 

진작 깨달았아야 되는데

 

하지만 진실을 안다는 게
너무나 두려웠어요

 

두려움은 사람을 어리석게 만들죠

 

그건 어리석은 게 아녜요

 

사랑은 눈을 멀게 하죠

 

네, 사랑은 눈을 멀게 해요.
다들 그러죠

 

그게 진실이기 때문에
다들 그러는 겁니다

 

이젠 더 이상
장님이 되기 싫어요

 

이 집엔 침실이 세 개 있어요

 

아무도 그 방을 안 쓰면 어떡하죠?

 

아무도 부엌에서
요리를 안 하면 어떡하죠?

 

밤에 자다가 깨면
이런 생각이 들어요

 

"이런 머저리, 넌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여자야"

 

"그깟 소유하지도 못할
삶을 위해 집을 샀니?"

 

그럼 왜 집을 사셨죠?

 

줄곧 걱정에 파묻혀 지냈으니까요

 

바라는 게 있었거든요

 

이 집에서 결혼도 하고

 

가정을 꾸미고 싶었어요

 

씨뇨라, 오스트리아와
이태리 사이에

 

쎄메링이라는
알프스 구간이 있습니다

 

대단히 가파른, 험준한 곳이죠

 

이 구간을 가로질러 비엔나와
베네치아를 연결하는 철도가 있는데

 

지금의 열차가 다니기도 전에
미리 건설한 겁니다

 

언젠간 기차가 다닐 거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죠

 

뱀이 저녁 먹으러 갔나봐요

 

네, 그런가봐요

 

씨뇨라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자꾸 이러시면,

 

제가 억지로라도
당신을 사랑할 겁니다

 

저는 아내를 실망시킨 적이 없어요

 

잘자요, 씨뇨라

 

네, 잘자요,
씨뇨르 마르티니

 

정말 고마워요

 

천만예요

 

기차가 다니기도 전에 만들어진
알프스를 관통하는 철도

 

씨뇨르 마르티니는 내가
믿음을 갖기를 원했다

 

뭔가에 서투르더라도
아예 문외한이라도 말이다

 

믿음을 마다하는 건 아니다.
나도 그러고자 무척 애쓴다

 

타락한 감리교도로서,

 

내면의 반발을
감안하더라도

 

카톨릭의 영향에서
벗어나긴 힘들 것 같다

 

놀랍게도, 난 마리아와 친해졌다

 

폭풍치던 밤, 카톨릭 신자가
아닌 걸 뻔히 알면서도

 

그녀가 나를 지켜준 데서
인연은 비롯됐다

 

어쩐지 그녀는 성모 마리아보단

 

나랑 친한 매리 아줌마와 더 닮았다

 

매리 아줌마는 여기 어디든 계신다.
그녀의 차분한 모습에,

 

우리는 모든 일이 전처럼
잘될 거라 안도한다

 

부온 나탈레
(Buon Natale : 메리 크리스마스)

 

부온 나탈레

 

아내 플로라예요

 

딸 스텔라고요

 

스텔라, 부온 나텔레

 

참 예쁘네요

 

정말 화목한 가족이에요

 

당신을 만날까 싶어
선물을 준비했어요

 

성 로렌초예요

 

요리사의 수호성자죠

 

벌겋게 달군 석쇠 위에서 순교했는데
죽어가면서도 뭐랬냐면,

 

"뒤짚어, 이쪽은 다 익었어"

 

설마요!

 

진짜예요. 그래서 요리사가
좋아하는 성자가 됐죠

 

성 로렌초께 기도하면,

 

당신에게 요리해줄
사람을 구해주실 거예요

 

고마워요, 씨뇨르 마르티니

 

메리 크리스마스, 씨뇨라

 

부온 나탈레

 

성 로렌초께 기도했더니
금새 응답이 왔다

 

내겐 이미 요리를
해줘야 될 사람도 있었다.

 

그것도 한 둘이 아닌

 

브라보!

 

- 좋아
- 보셨죠, 프랜시스? 이태리어도 쉽네요

 

그녀와 얘기는 나눠봤어?

 

 

말은 걸어봤어요

 

옆자리에 가서 않지 않고? 응?

 

알았어요

 

카트린느!

 

프란체스카!
올라와요!

 

초상화를 그리던 중이었어요

 

카트린느?

 

들어와요, 이쪽이에요

 

- 나중에 들러야겠네요
- 왜요? 난 괜찮아요

 

프랜시스, 이쪽은 제우스예요

 

마케도니아 출신 미대생이죠

 

토스카나 양식을 공부하면서
나와 함께 살고 있어요

 

자기, 와인 더 갖다줄래

 

나쁘진 않죠

 

그냥 그래요

 

일단은 가봐야겠네요.
나중에 다시 들를게요

 

고리타분하긴!

 

뭐라고요?

 

고리타분하다고요

 

당신을 좀 봐요!

 

얼마나 칙칙한가

 

게다가!

 

당신은 마치 거대한 블랙홀 같아요

 

미안하지만, 난...

 

페페는 늘 말했죠.
"후회는 시간 낭비다"

 

"현재의 후회는
과거의 망가진 당신이다"

 

난 그저 왔다가려고...

 

수렁에서 뒹군다고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들어봐요.
내가 어렸을 때,

 

무당벌레를 찾아
헤맨 적이 있어요

 

그러다 결국 포기하고
잔디에 쓰러져 잠들었는데

 

깨어나보니, 무당벌레가
내 몸을 기어다니고 있더라고요

 

그래서요?

 

가서 집안일이나 하고
죄다 잊어버려요

 

가라고요!

 

가고 있잖아요!

 

집안일이나 하며 모두 잊어라

 

이런,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인부들의 삶에 더 이상
아무런 쓴소리도

 

필요없는 때가 온다

 

낯 뜨거운 생각을 하며
그윽하게 당신을 바라봐줄,

 

폴란드어로 속삭여서
뭔소린지 몰라도 마냥 좋은,

 

가슴 떨리는 애인이
필요없는 때도 온다

 

마음놓고 나가도 되는
그런 때가 되기 전엔

 

시시콜콜 챙겨주는 수 밖에

 

즐거웠어요

 

안녕!

 

미국인이에요?

 

영국인? 아일랜드인?

 

여깄었군요.
얼마나 찾았다고요

 

만나기로 해놓고선

 

20분이나 헤맸잖아요

 

- 누구세요?
- 죄송해요

 

실례했어요.
고마워요

 

이봐요, 키스만 하고
도망가기예요?

 

그래요

 

미안해요

 

됐어요

 

너무 늦었어요

 

사과해도요?

 

벌써 딴 사람을 찍었다고요

 

제가 졌어요

 

도와주셨음 좋겠는데..
골동품 가게를 찾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