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포 나잇 폴스

 

1942년, 쿠바 오리엔테 지방

 

나무의 비밀스런 생은

나무에 애써 올라 본
사람만이 안다

 

난 내 출생에 관해 모른다

내가 태어난 지 석 달 만에

엄만 할머니 집으로 돌아왔다

나라는 걸림돌을 지고

 

내 어린 시절은 특이했다

절대적인 가난과 방치된 자유

자연에 던져진 채

야생과 무관심한 이웃에
둘러싸여 살았다

 

레이날도

 

망할 놈, 물 한 동이
긷는 데 쩔쩔매?

난 불행한 여인들
틈에 끼여 살았다

그들의 대장은
집안의 대장인 할머니였다

 

소변 보시면서도 기도문을
외는 그런 분이셨다

 

우리 엄마는 예뻤고
항상 혼자였다

남자라곤 아빠뿐이었다

둘은 몇 달을 열렬히 사랑했고

그러다 엄마가
아빠를 포기했는데

뭔가 단단히 실망한 것처럼

그 분노는 거의 극에 달했다

꺼져!

이 짐승

 

나쁜 자식!

더러운 놈!

내 어린 시절 기억은 거의가
자연에 관한 것들이다

처마 끝의 빗물

포화처럼 난무하며
떨어지던 빗줄기

그 물은 나무를 타고 흘러

넘치고 폭포를 이뤄

큰 북 치는 소리를 낸다
드럼의 합주처럼

물은 물을 만나

뒤섞여 소리 내다
그 절제를 잃는다

그건 폭력이 되어
모든 걸 휩쓸고

그들을 자신과
함께 데려간다

나무, 돌, 동물, 가옥까지

그건 파괴의 신비이자
자연의 법칙

그 속에서 난
지금의 나를 얻었다

 

이게 바로 꽃의
생식 기관이야

주목!

그럼 수꽃의 생식 기관을
뭐라고 하지?

 

레이날도?

레이날도

잠지요. 길다란 잠지

 

'미의 근원'

'그건 물을 필요도 없는
에덴의 동산'

이제 우기가 오면
내 장미가 젖을지니

 

실례합니다

레이날도의 담임인데요

무슨 잘못이라도?

아뇨, 그런 것 없어요

애가 아주 특별한
재능을 가져서요

무슨 재능인데요?

시적 감각이 뛰어나요

 

죽은 그녀

 

크리스마스

 

그날로 할아버진 농장을 팔고
홀긴으로 이사해서

잡화점을 차리셨고
그 이후 말을 안 하셨다

 

1958년, 홀긴

인구 20만의 홀긴은
쓰레기 같은 곳이었다

 

벨라스코에서도
들고일어났대

하루면 갈 수 있어

좋아

밤에 출발하자

좋아

저 여자랑 잘 수 있어?

난 레이날도예요
당신은요?

롤린이야

춤추실래요?

좋지

 

반군에 가담하러 가요
레이날도

 

-어딜 가니?
-도시요

-도시 어디?
-벨라스코요

거기 살지는 않는 것 같은데

무슨 일로 가니?

반란이 일어났다던데
거기 가담하려고?

엄마에겐 얘기 했어?

아뇨

안 했다고?
엄만 어디 있니?

미국에 돈 벌러 갔어요
보여줘요?

 

죽이는데?

때려 엎고 싶어?

가끔은 나도 그래

우리 어머니는
거기서 가게를 하셔

할머니도 엄마께 물려받았지

난 남자 형제만 여섯이야

형 둘은 반군에
가담했는데

셋째인 난 가담 안 했지

비켜, 멍청아!

담배다

 

주워 와

 

얼른

 

집으로 가

 

반란은 끝났어
어서 내려

빨랑!

왜. 떫어?

 

난 바지를 걷어올린 채
멍청히 개울에 서 있었는데

총소리를 듣고

모든 걸 내던지고
국도로 달려갔다

사람들은 정부군이
죽어라 도망쳤다 했다

우린 4번 도로를 거쳐
첫 혁명군과 만났다

그들은 총을 든 채 행군해 오며
'쿠바. 만세'라고 외쳐 댔다

멍청하게도 우린 하나가 되었고

서로가 서로의 이름을 부르면

우린 또 서로가
격의 없이 포옹을 했다

날리는 깃발들

거리는 온통 온갖 깃발로 넘쳤다

전신주는 말할 것도 없고

가정의 창문마다 내걸려 있다

바닥에 장식되고
밧줄에 매달린 채

깃발의 행렬은 가장
구석진 시내 한 귀퉁이까지

붉은 천, 검은 천

온갖 색종이들 세례 속에
우린 '홀긴'으로 입성한다

모두가 만세를 불러 대고
기쁨에 노래까지 해 댄다

빗자루를 비롯 걸레자루까지

전부 깃발을 걸고 흔들어 댄다

차들이 경적을 울려대면

아이들은 그들을 보고

이렇게 외친다
"혁명군이다"

또 한번 "혁명군이다"

그러면 창녀까지
서슴없이 다가와

그들의 얼굴을 만지며

"젊기도 하지
아직 수염도 안 났네"

그러면 터지는 호탕한 웃음들

깃발, 깃발들

 

행진의 시작
레이날도 아레나스

 

1964년, 아바나

토지 개발, 주택 제공
실업. 교육 및 보건 문제...

지금 열거한 여섯 가지에
전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스토리 작가 경연 대회
국립 도서관

그때 엄마는 날 때리며
날 낳은 게 후회스럽다고

날 두고 어디든
가 버리겠다고 했다

어린 난 그 말을
정말 믿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엄마는
내게 하늘 같은 존재였고

날 더 때려도 좋으니

제발 날 떠나지만 말라고
마음속으로 빌었다

엄마는 너무 아름다워서
포대로 만든 치마에

훔친 블라우스를 입어도 예뻤다

난 얼른 엄마께 용서를 빌고

엄마에게 마치 성탄 카드에
나오는 여자 같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목이 메어 그 말은 못 했다

아주 좋았어요
이름이 뭐죠?

레이날도 아레나스입니다

-누가 썼죠?
-제가요. 제 소설이에요

-제목은 뭐죠?
-'우물의 노래'요

학생이예요?

농과대 재학생입니다

 

이곳 국립도서관에서
일해 볼래요?

보수는 얼마 되지 않지만

책은 마음대로 읽을 수 있죠

기꺼이요
정말 감사합니다

 

태워 줘?

부에노스까지만

 

안녕하세요?

 

차 좋지?

미국 배우가 타던 차야

안 믿네
거기 열어 봐

 

조심해서 봐

 

나랑 극장 갈래?

뭐?

-극장 말이야
-차 세워

 

넌 엉덩이가 예뻐!

가잖아
내일 다시 꼬셔

내려

 

미친놈!

 

어젯밤에 발레단 놈들에게
그 짓 한번 해 주고

100 페소 벌었어

-그러다 호모 돼
-돈만 벌면 되지

 

저 친구 알아?

아뇨

 

-안녕?
-어제는 미안했어

잊어버려
난 레이날도야

-난 페페. 하나 먹겠어?
-좋지

바닐라가 좋아

-피스타치오 향으로 하나
-아이스크림 하나

가 봐

고향이 어디야?

오리엔테의 시골

-그게 중요해?
-아니

직업은?

국립도서관에서 일해

작가가 되려고

안됐군

시골 촌놈이
이런 도시까지 와서

 

-네 엄마는?
-가게 갔어요

-열쇠 줘
-잘 가요

가자구

 

아직 쓸 수 있댔어

키판 하나가 빠졌지만

정말 고마워

 

-왜 이래?
-누가 남자할까?

누구라니?

전문가가 더 잘 알겠지

치워

 

키스는 안 해?

좋은 사람하고만

 

10분만 걸으면 해변이 있고

-숲도 아주 가까워요
-아주 좋군요

욕실은 옆방과 공용이에요

시트는 2주마다 갈고
수건은 본인이 해결해요

좋아요. 하죠

조금 비싼데요?

어차피 저 친구
돈으로 낼 건데요

월 30페소예요

손님도 사절이고
10시 이후 음악도 안 돼요

30페소

 

고맙소

 

쿠바 문학상 작품 응모처

 

소설 응모작을
갖고 왔는데요

거기 넣어요

 

-담배 피울래요?
-아뇨

고마워요

 

무슨 책이죠?

고전 문학 개설서

누가 썼죠?

정확한 저자를 몰라요

저자가 없다고요?
그럴 리가

그게 아니라 익명이라 몰라요

그랬군요

다른 책은 없어요?

많이 있죠

많아요

여긴 조용해서 독서하기 좋아요
멋진 장소죠

-방해가 됐겠군요
가 줄게요

-아뇨
나도 가려던 참이었죠

 

집이 근처요?

멀진 않아요

같이 음악이나 들을래요?

뭐요?

프랑스 가수들 판이 있어요

에디뜨 삐아프

자크 브렐

 

미친놈!

무슨 짓이야?
이거나 처먹어!

가다가 거시기나 떨어져라
나쁜 자식!

 

여러분, 마침내
중요한 순간이 왔습니다

올해의 문학상 대상은

'칸동가의 일상'을 쓴
에제끼엘입니다

 

그리고 등 외 수상작엔
'우물의 노래'를 쓴

레이날도 아레나스입니다

 

오늘의 수상자들에게 한번 더
축하의 박수를 보냅시다

 

축하해요
레자마 선생이 보자는데요

 

안녕하세요

 

그 저자는 동생의 영화 땜에
떠났어. 아마 알거야

동생도 떠났고
단순한 영화인데

그냥 춤추고 노래하는 영화지

비판할 건더기가 없었어

전혀

예술가들은 독재 정권에
위험 요소지

미의 창조자들

그들은 정권의 적이야

그래서 그들은 '도망치게 되고

반혁명적이 되지

결국 자네도 그중
하나인 셈인데

왠지 아나?

 

지금 한 인간이 이 나라의
'미'란 걸 없애려 설치는데

우린 400년 전통 우리 문화를

되살리려 애 쓰는
사람들이니까

입술은 왜 그런가?

음악을 싫어하는
인간이 있었죠

조심해야지

아니. 가져
작가도 좋아할 거야

여긴 없는 책이 없어
문학에 관한 한 말일세

이 책들만 읽으면 끝나

-어떤 걸 먼저...
-성경이 좋을 거네

크로켓이군
마리아 루이사

어디

저도

훌륭해

입천장에 달라붙지도 않고

 

-아주 맛있어
-재료가 뭐죠?

그런 질문은 말게
굶어죽는 사람도 있는데

다시 성경 얘기로 돌아가지

자넬 개종시킬 마음은 없어
그냥 소설처럼 읽게

이제부터 책을 다섯 권씩 주지

정정. 빌려 준다는 얘기야

그걸 갖고 오면 또 다섯 권

'백경'과 '보물섬'이 좋아

'르푸스트' 작품도 좋고

'카프카의 변신'과
'플로베르' 작품

마리아. 커피 좀

하나. 둘. 셋. 넷...

다섯

기분 나빠 말게
자네 글은 봤어

대상작보다 훨씬 나은
작품이었어

그들의 농간이지
하지만 좀 더 고쳐야겠어

괜찮다면
비르질리오가 도울 거네

지금도 좋아. 하지만
더 좋다고 나쁠 건 없지

등 외 수상작 출판
그게 진짜지

우리가 볼 때
자넨 타고난 작가야

 

표현이 약해

진정으로 원하는 단어를 써

 

'생명력'. 이거야!

 

삶의 생명력은 끈질길지니

그 원천을 찾아...

 

잠깐. 멈춰

 

레이날도!

이리 와
태워 줄게

 

-어디로 가?
-일단 앉아

 

안녕

안녕하세요

 

이제부터 정상적인
코스를 벗어나

진정한 아바나를 볼 수 있는
곳으로 가겠습니다

 

어느 날 시작된 일제 단속

그 단속의 도는 날이 가면
갈수록 심해졌다

허나 그건 자극만 더 줄 뿐

섹스는 투쟁의 수단이 됐고

정권에 대항하는 무기가 됐다

묻건대

지금 같은 완벽한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수많은 투사들이
죽어 간 마당에

이 같은 불경이 용납될까?

그건 명백한
자본주의의 부산물로

일부 소규모 집단들에 의한

전체를 좀먹는 행위다

우린 이런 해악들이

사회적 유행병이 되는 걸
좌시하지 않을 것이며

그것이 우리
쿠바 시민의 의무인바...

우리의 자유를 위협하는

반사회적 요소를
일소키 위해

그들을 가혹하게
다룰 것이다

지금 그들은
젊음이란 걸 잃고

목적의식 없이 방황하며

사회의 쓰레기로
전락해 버렸다

이에 난 약속하는바...

이러한 쓰레기의
조속한 일소와

정화된 사상으로

모든 반동적 요소들을 제거...

이 나라의 젊은이들을
개조해 나갈 것이다

분명히 약속하건대

혁명이 모든 걸
해결할 것이다

혁명을 거스를 건
아무것도 없다

 

말할 필요도 없이 혁명은
모두를 위한 게 아니었다

 

에베르토 오초아 선생

형법 243조를 알고 있소?

그럼 그 내용에 대해
말해 보시오

'셋 이상의 집회는 금지한다'

그런데

6월 10일 밤 당신 집에는
20명 이상이 모였었소

뭘 한 거요?

시를 낭송했소

누구 시를?

제 시와 다른 시인들

분명히 시만 낭송했소?
반혁명적 선동을 한 게 아니고?

분명합니다

혹시 시가 선동적이란
생각은 안 해 봤소?

그럴 수도 있겠죠

당신 시는 아니겠죠

그렇소

그럼 거긴 어떤 이들이 참석했소

제 친구와 작가들

혹시 작가 레자마 씨를 아시오?

비르질리오는?

당신 아내 피나는?

-압니다
-거기 있었소?

그렇습니다

그럼 레자마와 비르질리오가
동성애자라는 건 알았소?

 

제가 저지른 잘못은

도저히 용서받지 못할
큰 잘못으로

중형을 받아 마땅합니다

그리고 여기 계신
모든 분들께 고백하건대

그날 나와 같이 했던 동료들은

정도를 벗어나

사상 자체가 흔들렸으며

나와 같은 잘못을 범했습니다

그런 죄를 저지른 이상
중형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미안해요. 늦었어요

찾는 전화가 있었어요

내셔널 호텔에 있다며
오후 4시에 떠난댔어요

다른 말은요?

레자마 선생 친구랬어요

 

-레이날도씨
-네

호르헤요

-여긴 내 아내 마가리타요

-안녕하세요

앉아요

 

우린 파리에 사는데 남편은
살롱에서 그림을 그리죠

-당신 작품의 팬이에요
-작품이라

당신 책을 사서 밤새 읽더니

자기가 본 최고의
성장 소설이랬어요

그 책 좀 치우죠

그래요

 

불어로 하죠

 

좋아요

오초아 씨 공판은
우리도 봤어요

미라 플로와 다른 작가들의
상황도 알고요

다들 그 이름만큼이나
아름다운 분들이죠

하지만 다들 잡혀갔어요

동성애자는 물론
반체제 인사도 전부

 

그리고...

바지를 너무

 

꽉 끼게 입는 사람도요

 

우리가 도울 방법은 없을까요?

내 새 작품이 문제인데

그걸 가지고 가 줘요

우린 2시간 뒤에 떠나요

두시간?

좋아요

언제든 파리에 한번 들러 줘요

현재로서는 해외여행은
꿈도 못 꿔요

언젠가 수영을 해서라도 한번 가죠

 

환각

 

레이날도

 

아내는 안에 있소

호텔로 갔는데 없어서
이리 왔소

어서 줘요

프랑스 대사관의
친구 명함이에요

필요한 게 있으면
그리 전화해요

우리와 연락이 될 테니

이건 우리 선물이요

고맙소. 들어가요

당신은 주로
어떤 그림을 그리죠?

직접 봐야 알 거요

당신이 내 작품 평을
쓸지도 모르죠

그러길 바래요

 

1974년, 10월 26일

 

죄송하지만 제 연 좀...

꺼져. 다칠 뻔했잖아

-그냥 줘
-돌려주라고

-둘려줘
-못 줘

 

-주라니깐 -치워

돌려주라고?

 

왜 이래. 페페?

 

비켜

 

개자식

 

여기 있어

 

실례합니다

옆에 있던 애들이 제 오리발과

옷을 훔쳐갔어요

얼굴 기억해?

아뇨. 됐어요

차에 타

관두죠

타랬잖아

알았어?

 

저 친구들이에요

 

이리 와

 

이 친구 물건 갖고 갔어?

보라고

 

신분증 줘 봐

 

경찰에 갖다 주려 했어요

저 호모들이
우리 거시기를 만졌어요

그래서 패 주고 도망친 거죠

귀찮게 굴었어요

-접근했어?
-그럼요

 

-당신을 체포하겠어
-왜요?

내가 체포한다 했으니까

 

루가르도 바넷

 

커피 마셔

알았어

 

페드로. 어떻게 여기 있어?

여기 살잖아

뭐든 걸칠 것 좀 줘

어서

고마워

숨을 곳이 필요해
난 여길 뜰 거야

무슨 일이야?

애들한테 당했어

내가 자기들을
꼬시려 했다는 거야

토마스 소식은?

농장으로 끌려갔는데
탈출하려다 사살됐대

경찰에서 왔었어요

 

사람을 잘못 알고 온 거겠죠

 

내가 볼 땐
두가지 방법이 있어

미군 기지가 있는
섬까지 가거나

플로리다까지 헤엄치는 거야

144km인데 날씨만
좋다면 가능해

튜브가 하나 있는데 그걸 쓰던지

 

누구야?

 

페페야. 아까는 미안했어

 

왜 왔어?

어딜 가려고?

몰라

-어디 있었어?
-여길 뜰 거야

-어떻게?
-고무 튜브로

미친 짓이야

날 도와 줄 수 있어?

그럼 있는 대로 털어

여기 있는 건 전부 가지고

있는 돈 다줘 여기 있어?

몽땅 줘

내 물건은 가져 맘대로

레이날도

왜?

해결할 친구들이 있어

-어떤 친군데?
-알잖아

-진작 했어야지
-가지 마

-레이날도
-갈 거야

연락할게. 그럼

 

레이날도. 엄마 없이
살아갈 수 있겠니?

 

1974년 11월 15일

아바나 레닌 공원에서
국제적십자와 유네스코에

이 글을 쓴다

난 쿠바 정부로부터
오랜 박해를 받아 왔다

나도 감시받고
있어서 안 돼

친구들 역시
날 고발하라는

협박을 받고 있었다

내 편지는 도중에 탈취되고

내 방은
수십 번 수색당했다

작품은 경찰이 압수해서

난 지금 생사의
기로에 서 있다

정부에선 날 찾기 위해
혈안이 됐고

내겐 갖가지
죄목들이 덧붙여졌다

부패. 정부 허가 없는
해외 출판

 

이건 자네 사진
얼굴을 잊었을까 봐

-그리고 일리아다
-일리아드야

잘났어

-이건 부탁한 약이야
-어떤 종류인데?

잘 몰라
여하튼 뿅 간대

-죽을 수도 있나?
-많이 처먹으면

 

난 감옥이 싫었기 때문에

이렇게 목숨을 걸고
도망친 것이다

지금 내 상황은 절망적이고

이렇게 숨어서
글을 쓰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건 치열한 진실이고

언젠가는 편히
글을 써 보길 기대한다

 

저기...크로켓 두개 줘요

-두 개요?
-네. 마실 것도요

 

불 있소?

 

그래요

 

담배 하나만 줘요

 

이름이 뭐요?

아드리아노 소토롱코

 

언제 개명했지. 레이날도?
자넨 레이날도 아레니스야

 

수고했어

 

이건 원고 뭉치요

 

골치를 썩이더니 결국은 잡았군

 

내려

빨랑! 호모 새끼

된통 혼나봐

 

난 정치범이나 작가로
엘모로에 투옥된 게 아니다

내 죄목은 강간에
살인, CIA 첩자였다

악효 때문이었는지
난 조금도 겁나지 않았고

그게 오히려 날
돋보이게 했다

진짜 살인자와 강간범들

걸핏하면 죽이는
그들 사이에서...

 

천둥 번개가 치던 하늘은

전깃불 조명으로 바뀌었다

그 불빛은
정기적으로 비춰졌고

그 속에서 난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난 자신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모르는 게 없었다

특히 다른 죄수들에 대해서는

 

간수나 소장을 통해 알았는지

'토레'란 이름의 한 죄수가

내가 작가란 걸 알아냈다

이봐. 내 편지 좀 써 줘

 

뭐?

보상은 하지

담배 두 개비

계속해

그녀가 너무 보고싶다고

내가 대신 쓰는 걸로 해?

 

미안

 

작가란 내 명성은
온 감옥에 퍼졌다

마리아

 

엘모로의 17호
감방에서부터

날 보지 못하는
이들에게까지

그 부탁은
비누로 들어왔는데

길다란 끈에 묶어
내 감방으로 전달되었다

우린 그걸 '메일'이라 불렀다

그때만큼 많이
써 본 적이 없다

난 담배를
쌓아 놓고 지냈는데

그걸로 소설을 쓸
도구를 샀고

그 난장판 속에서 글을 썼다

소리에 강한 게
우리 민족이라

그깟 소음은 우습게 무시하고
글을 쓸 수 있었다

 

태양이 작열하는 오후

한 달에 한번 감옥에선
동성애자 파티가 열렸다

 

'다빈치'를 비롯

'미켈란젤로' '소크라테스'

'셰익스피어'까지 모두
미의 대가는 전부 호모였다

 

엘모로의 연인
'봉봉' 그 역시 그랬고

그는 그 육감스러운
걸음걸이로

죄수들을 영화를
보는 듯 만들었다

 

봉봉은 또 하나로 유명했는데

어떤 물건이든 감옥 밖으로
잘도 빼돌렸다

그 깊숙이 단련된
자기 항문을 통해...

몸수색은 하나마나였다

 

실례

 

물건을 빼돌릴 수
있다 들었는데

 

내 것도 가능할까?

당연히 거절당했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군

 

한번 달라는 얘기였다

 

담배 수천 개비가 들었고 봉봉은
그 일을 훌륭히 해냈다

 

난 잘못한 거 없어
뭘 어쨌다구?

제발...이러지 마!

대체 왜 이래?

제발

잠깐만

대체 내가 뭘 잘못했지?

 

이유가 뭐야?

 

젠장. 미치겠군

 

문 열어 제발 문 좀 열어

 

나와

 

잠깐만

 

그때의 그 형언 못 할 슬픔

엄마가 와서
내게 낙향하자고 했다

그 방법 외엔 없다고

난 맘을 굳게 먹었다

2년을 썩었는데
기껏 낙향을 해요?

난 냉정히 엄마를
거절해 버렸다

방법이 없어

네 친구들 죽는 것 봤지?

난 엄마가 영원히
그렇게 서 있을 것 같았다

달려가 껴안고 싶었지만

대신...

마굴같은 그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누가...

누가 날...

나 좀 깨워 줘 이 악몽에서

이 악몽에서 나 좀 깨워 줘

악몽. 악몽...

 

나와. 면담이야

 

솔직히...

너희 호모 새끼들은

갱생이란 게 불가능해

 

혁명에 위배되는
그런 글들을

우린 수도 없이 입수해

모르나 본데 넌 그걸로
목숨을 내놓은 거야

우린 널 없애버릴 수도 있고

내일 당장 내보낼 수도 있어

내게 달린 거지

하지만 그런 글을 쓰는 이상

절대 오랜 갈 순 없지

 

5분을 줄테니 결정하라고

 

5분만에 결정이 불가능한 게
이 잘생긴 중위는

자신의 성기를 만지고 있었다

 

어때?

 

종이와 펜 좀

 

지금까지

내가 쓴

모든 글은

쓰레기입니다

난 즉각 자아비판 진술을 했고

반혁명론자라 자술했다

시선은 중위의 성기에 둔 채

난 내 정부와

중위의 관대함에 감사해했다

난...내 호모성을 부인하고

 

이 혁명에 교화되어
남자로 살아갈 것입니다

 

좋아. 아주 좋아

 

남자답게 잘한 거야

 

그의 성기에 가까이 가자
질식할 것만 같았다

주어진 5분 다 됐어

 

자넨 친구들이 많던데

그 친구들...

지금 어디 있지?

페페도 자네 친구지?

아마 믿었을 거야

 

그 친군 왜 여기 없겠어?

 

이 책을 알겠어?

그 책은 내가 살아있단
유일한 증거였다

모르겠어요. 처음 봐요

 

이 책은 프랑스에서 출판됐어

 

작가동맹의 허락 없이

그렇다면...

누군가를 시켜
내보냈단 거야

프랑스에 간 적도 없잖아

그런 문제는 제가 작가동맹과...

 

입 벌려

 

벌려. 빨랑

 

그렇지. 총 물어

 

눈을 감을 테니

빨랑 사라져

 

 

네 재능을 우리 혁명에
필요한 데 써

예를 들어

친구나 출판업자들에게
편지를 써

대우를 아주 잘 받았다고

그렇게 시작해 보자고

 

내가 밀고했다 생각했지?

아냐. 페페였어

 

-원망스러워?
-물론이지

아마...

평생을 두고 못 잊겠지

이것 봐

 

이건...

프랑스 최우수
외국 문학상을 받았어

 

헌데 난 잘 곳도 없으니

 

어떡하지?

 

어쩌냐구? 넌 운이 좋아

무슨 소리야?

그 여자 화가 기억 나?

지금 호텔 부지에 살고 있어
수도원 옆의 호텔 말이야

 

이봐

이 쪽에 비밀 창이 있어

 

거리랑 곧장 연결돼

 

시장에 내다 팔 물건이지

놀라워

 

또 있어

 

이 열기구를 이용해
미국까지 날아갈 거야

-농담이겠지
-천만에

여긴 아르만도야
열기구 전문가지

전기 기사 자격증까지 있어

감방 동료잖아

 

헌데 세 사람밖엔 못 타
제비뽑기를 하는 수밖에

-난 주인이니까 무조건이야
-알았어

 

내게 맡겨
어차피 제비뽑기할 거야

자네도 좀 도와 줘

그러지

 

누가 왔어

손님이야

 

나쁜 계집이야

 

우리 엄마만큼 날 미워해

 

엄마가 어떻게 했길래?

 

날 요양원에 넣고
편히 지냈지

뭐?

어린 날 부양하기 싫었던 거지

 

자기 아들인데

 

그런 엄마랑 똑같다고

 

괜찮다면 여기서 나랑 지내

그냥 친구로

배개. 담요

더는 줄 게 없군

책은?

전에도 책이 있냐 물었었지

 

저자가...너잖아

그래. 내 책이야 가져

 

고마워

 

왜 글을 쓰지?

 

복수하려고

 

글 쓰는 걸
가르쳐 줄 수 있어?

그런 건 못 해. 라사로

 

하늘이 참 예뻐

 

'난 이 세상이 끝나는 날'

'파도 위에서 죽으리'

'얼굴은 하늘로
하늘로 향한 채'

'고뇌가 한낱 꿈이 될 때'

'내 영혼'

'새가 되어 하늘을 날아가리'

누구지?

 

마누엘 나헤라란
멕시코인이야

 

글은 안 쓰지만
넌 이미 작가야

-내 말 알겠어?
-물론

안녕

 

내 말 알겠어?

그게 중요한 거야

 

내가 해결해 주지

필요한 것 있으면
말만 하라고

전부 구해 주지

 

이런 밀고자를 왜 출입시켜?

-열기구 가스를 구해 준대서
-들어. 얼른!

 

안 돼. 안 돼

날 꺼내주면 네게 주지

 

줄을 끌러. 둘만 타고
미국으로 도망치자구

 

일어나! 놈이 도망쳐!

 

'타임스퀘어'에서 보자. 등신들!

 

라사로

이걸 팔아서 레몬 좀 사다 줘

그리고 차도

-신문도
-그러지

 

그뿐이야?

남는 건 알아서 써

 

-라사로는?
-없어

벌써 2주째 안 들어왔어

-페루 대사관 난입 사건 알지?
-그래. 들었어

정부에서 떠나고 싶은 자는
다 보내 준다는데

숫자가 엄청나대

반체제, 범죄자들
동성애자는 전부

진작 그러지

관할 경찰서로 가서

호모나 전과자란 사실만
입증하면 된댔어

정신병자도

-무슨 음모가 있는지도 몰라
-모르지

 

다음

 

-이름은?
-레이날도 아레나스

떠나려는 이유가 뭐지?

난 동성애자요

상대는 어디서 꼬시지?

 

주로 호텔이 있는
큰길 쪽에서요

주로 어떤 체위를 하지?

 

엎드린 채 뒤를 대 주죠

걸어 봐

 

걸으라고

 

구청에 신고해

 

혁명에 대한 열정이나
혁명 자체를 믿지 않는 자

또는 혁명 정신에 부적합한 자

이런 자들은 우린 필요없으며

진정한 혁명을 위해
기꺼이 보내 줄 것입니다

 

1980년 5월 쿠바, 마리엘 항구

 

뭘 하는 거죠?

내보내선 안 될
사람을 추리지

 

-어떤 사람?
-모르지

 

-펜 있소?
-아니

 

-펜 있소?
-여기

 

아리나스

 

난 아무데서나 잘 테니

대신 친구들만 데려오지 마

요리도 내가 하지

얼마야?

월 350달러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차이점은

공산주의에선 엉덩이를 차여도

좋다 해야 되고

여기선 비명을
질러도 된다는 것이다

 

난 추방당한 쿠바 작가로

 

지금 뉴욕에 살고 있죠

난 살기 위해 글을 쓰는데

현재 무국적자로 등록돼 있어요

엄연히 공기를 마시며 사는데

내가 존재하지 않는단 거죠

난 동성애자에 반 카스트로...

그곳에서 온갖 악조건과
갖은 난관을 겪으면서도

내 창작물을 출판도 못 했죠

 

솔직히 그리
오래 살진 않았지만

이런 모자를 보면
어린 시절이 생각나는데

원래 전 농부였고
시골 출신이죠

한번은 엄마와 강둑을 걷는데

어떤 멋진 남자가
내게 다가 왔었어요

그때 엄만 고함을 질러대며

당장 꺼지라며
그 사람에게 돌을 던져댔죠

그래도 그 남잔 다가와
내게 2페소를 줬는데

그 당시 나 같은 촌놈에겐
그야말로 엄청 큰돈이었죠

나중에 알았는데
제 아빠였더군요

제가 먹는 거요?

아보카도, 시금치, 마 뿌리

파파야는 주로 수프로 먹죠

아이 같다는 게
전 사실 좋아요

나 같은 독신에겐 아주 편한 게...

글을 쓰면서도 먹을 수 있고요

남들이 뭐라고 하든

3분 내로 식사를
할 수 있어서 좋아요

 

어디...

 

재수 좋으라는 의식이죠

쿠바에서 책을 몇 권이나 냈죠?

아홉 권을 썼는데

한 권만 출판됐죠
8권은 전부 해외에서 출판됐고요

 

-어서 오십시오
-안녕한가?

고맙습니다

-즐거운 휴일
-들어 드리죠

 

문지기

 

나가자. 쉬는 시간이야

소설을 쓰고 있었군

 

왜 그래?

-실수로 깼어
-피 나잖아

놔둬. 치워!
내버려두라고!

도와 줄게

 

대체 왜 그래?

 

넌...

항상 내게 도움이 되는데
결정적일 땐 소용없어

 

문은 저쪽이야. 문지기

나가

 

난 너랑 있는 게 지겨워
지겹다구

 

열쇠는 탁자에 둬

 

달빛은 죽음을 목욕시켜

하얀 별처럼 빛나게 하고

뒤뜰 가운데서 반짝이게 한다

 

엣날 내 자전거 바퀴네

 

레이날도. 문 열어

 

이봐. 레이날도

 

레이날도. 이봐요

좀 어때요? 나가야죠

어디로요?

-집으로
-쿠바?

아니. 당신 아파트로요

일어나요

어서

 

당신 물건이요?

 

괜찮겠소?

 

퇴원할 몸이 아닌데

 

진료는 확실히 한 거요?

-그래요
-아닌 것 같은데

-내 화분 좀
-그러죠

 

거리를 따라 걷다 보면

하수구에 빠져 넘어질 것 같고

빌딩 숲 아래를 걷다 보면

빌딩이 무너져 내릴 것 같다

 

불안한 옛 생각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과거의 문 닫힌
가게들, 시장들

문 닫힌 극장, 공원, 카페까지

거기 가끔 먼지에
쌓인 채 보이는

변명의 팻말

'개혁을 위한 닫음
수리를 위한 폐쇄'

대체 어떤 개혁이길래?

그 개혁은
언제나 끝난단 말인가?

아니. 시작이라도 했었던가?

 

닫음. 닫음...모든 게 닫혔다

난 수 없이 많은
자물쇠들을 열고

임시 계단을 밟고 올라간다

저기 그녀가 날 기다리고 있다

커버를 벗기고 조용히...

싸늘한 그녀의 몸을 응시한다

그리곤 이윽고 애무하고

 

난 그녀를 정교히 닦아 낸다

몸 구석구석을

절망감과 행복이 교차한다

허나 키보드 위로 손을 날리면...

갑자기 모든 게 새로 시작된다

탁탁대는 소리는
어느새 음악으로 바뀌고

손가락은 리듬을 타고 달린다

나무, 거리, 사원, 사람들, 해변

지붕, 작고 큰 지붕들

별빛 밝은 밤, 소나무, 구름

수백 수천 마리 앵무새들

그리고 줄기 뻗는 덩굴식물들

그 모든 것들이 내게 응답한다

벽들은 사라지고
내 기분은 서서히 상승한다

최고조로. 하늘 끝까지

그러면 난 구원받아 불멸이 된다

그치지 않는 그 리듬덕에

탁탁대는 그 음악
타자기 소리덕에

 

좀 어때?

다 사 왔어?

그래

물 컵에 좀

 

빨대랑

 

-빨대는?
-뭐?

-빨대
-알았어

 

먹여 줘

 

라사로

 

보여 줄 게 있어

 

비켜 봐

 

'문지기'야

 

널 위해 내가 쓴 거야

 

막 나왔어
인세는 네 앞으로 했어

인세?

 

이건 내 작품이야

그걸 손봤다면 내겐 모욕이지

 

좋아. 아무튼 고마워

 

거기 컵에

 

이 식사 한 끼도 중요해

먹어

나보단 네게 더 필요해 먹어

 

꼭 부탁할 게 하나 있어

 

듣겠어?

 

난 병원에서 죽기 싫어

 

약속해 줘

 

약속해

 

정말?

그래

 

정말이지?

 

미안

 

컵 좀 줘

 

이 편지들 좀 부쳐 줘

 

이건...

 

엄마에게 썼어

 

이건 뉴욕 타임즈

 

마가리타와 카마초에게

 

마이애미 해럴드

 

이건 내게 쓴 건데
지금 보지 마

 

직접 부쳐서 오면 그때 봐

 

여태 살아오며

 

너처럼

 

진실한 친구는 없었어

 

아무도

 

책 좀 읽어 줘

 

'내 연인 바다'

 

그것 말고

 

내 컵은?

 

다른 걸로

 

'난...'

 

'바로 그 소년'

 

'못생기고 더러운
얼굴의 소년'

 

'길거리 모퉁이에 서서'

 

'적선합쇼'

 

'난...'

 

'바로 그 소년'

 

'더러운 얼굴의...'

 

'누구도 반기지 않는 소년'

 

'저 멀리서 버스를
응시하는 소년'

 

'또래의 애들이'

 

'즐겁게 오르락내리락하는
버스를 응시하는 소년'

 

레이...레이

 

난 그 누구도 원치 않는

불유쾌한 소년

거대한 도시의 가로등 밑이나

완고하고 드높은
귀부인들 앞에서

또는 예쁜 소녀들 앞에서

경멸을 보이려는 더러운 소년

 

난 언제나 외로운 그 소년으로

경멸의 비웃음을
던지며 경고하되

 

혹시라도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

난 그 틈을 이용해
지갑을 훔친다

 

난 눈앞의 공포에
시달리는 소년

 

눈앞의 타락 눈앞의 부패

반칙과 범죄에 시달리는 소년

난 역겨운 소년

낡은 판자 하나로
침대를 만들고는

날 데려가기를
기다리는 소년

 

레이날도는 1990년
47세에 죽었다

'밤이 오기 전'이란 작품은
그가 죽은 지 3년 뒤에 출판됐다

 

원작 레이날도 아레나스의
'밤이 오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