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kyo-Ga.1985.DVDRip.XviD-MESS

금세기에 여전히
성스러운 게 있다면

 

신성한 영화의 보고가 있어

 

나더러 손꼽으라면

 

일본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작품이 될 것이다

 

54편을 만들었다

 

20년대의 무성영화와

 

3, 40년대의 흑백영화

 

이어 색채영화들을 찍다가
1963년 12월 12일

 

자신의 60회 생일날
운명했다

 

극히 제한된 여건과

 

아주 기본적인 예산으로

 

오즈의 영화들은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하며

 

늘 도꾜 사람들의
단순한 이야기다

 

이 연대기는
근 40년 지속되면서

 

일본인들의 생활
변천사를 묘사한다

 

오즈의 영화가 다루는 건

서서히 약화되는
일본의 가족이며

 

이에 따른 국민의식의
일체감의 약화다

 

이 점은
서구나 미국에서는

 

새삼 놀랄 일도 아니지만

 

한편으로 아련한
향수와 상실감으로

 

가슴을 저미게 한다

 

지극히 일본적인
이 영화들이

 

아울러 보편적이다

 

그 속에는
전세계 각국의 가족의

 

면면이 다 들어있다

 

자신을 비롯해
부모 형제들의 모습이

 

전에 없었고 다신 없을

 

영화적 진수의
의도에 가장 근접한

 

동시대 인물의 초상화며

 

진실되고 타당한
이미지로써

 

스스로를 인식하게
할뿐더러

 

무엇보다 자신에 대해
알게 된다

 

- 안녕하세요
- 안녕하세요

 

- 오늘 가세요?
- 네, 오후에 가요

 

그러시구나

 

모처럼 애들 좀
만나보려구요

 

자제 분들이 도꾜에서
오시기 기다리겠네요

 

예, 없는 동안
집 좀 살펴주세요

 

네, 염려 마세요

 

아드님과 따님이
다 잘 됐으니

 

정말 복받으셨어요!

 

예, 그런 셈이지요

 

날씨도 아주 좋고

 

잘 됐지요

 

무사히 다녀오세요

 

고마워요

 

고무 방석이 어딜 갔나

 

어디 있겠지
잘 봐요

 

어, 여기 있네

 

- 찾았어요?
- 어, 여기

 

아무튼 오즈의 작품은
내 찬사가 필요없이

 

상상력의 영역에서
독보적인

 

영화의 무상의 보배다

 

또 이 도쿄행이
순례의 길도 아니고

 

작품 속의 당대의 흔적이
여전히 남았는지

 

그 이미지나
사람들이 여전한지

 

궁금했을 따름이다

 

아니면 오즈 사후
20년 동안

 

도쿄가 너무 변해

 

아무것도 찾을 수 없는지

 

도꾜 - 가
빔 벤더스

 

기억날만 한 게 없다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다

 

도쿄에 있었다는 건 안다

 

83년 봄이었다는 것도 알고

 

그건 안다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장면을 찍었다

 

지금 있는 이 영상들이
내 기억이 되었다

 

하지만 생각은 안 나고

 

카메라 없이 다녔으면

 

더 잘 기억했을 것이다

 

비행기에서
기내 상영을 했다

 

평소처럼
안 보려 하다가도

 

어느 새 눈길이
거기 가 있었다

 

소리 없이

작은 전면 스크린에
비친 영상은

 

한결 공허하기만 했다

 

허한 형상과
꾸며진 감정 시늉

 

창 밖을 보니
기분이 개운했다

 

"이런 식의 영화가
가능했으면" 생각했다

 

"눈을 떠서
보는 것만으로

 

뭘 입증하지 않고도
부족함이 없는"

 

도쿄는 꿈같았다

 

오늘 내게 나타난
이미지들이

 

꾸민 것처럼 보였다

 

오래만에 눈에 띈
종이쪽처럼

 

예전 새벽 여명에
꿈처럼 갈겨썼던 낙서처럼

 

놀라움에 차 읽고는

 

다른 사람이 꾼 꿈인 양

 

해득을 하지 못한다

 

좀체 믿을 수 없게도

 

이 묘원에서
발이 헛놀았다

 

만개한 벗꽃나무 아래에서

 

남자 행락객들이 둘러앉아
마시고 웃으며

 

사방에서 카메라가
찰칵거렸고

 

계속해서 까마귀 소리가
깍깍 귀를 울렸다

 

지하철에서
꼬마애를 봤다

 

걷기가 싫어
떼를 쓰고 있었다

 

그제서야 왜
몽유병자처럼

 

도쿄를 대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다른 도시 같지 않게
이곳 사람들이

 

아주 친근하고
정답게 느껴졌다

 

오래 전부터
한번 오고 싶었다

 

주로 오즈의
영화 때문이었다

 

그 친근감을
재발견하고 싶었고

 

정다운 도꾜의 이미지를
찾으려고 했다

 

지하철의 이 꼬마를 보고

 

오즈 영화 속의
반항적인 한 아이를 떠올렸다

 

아니 그러고 싶었는지
몰랐다

 

어쩌면 내가 찾는 것은
이제 이곳에 없었다

 

그날 밤 늦게

 

그리고 이어지는
늦은 밤에도

 

나는 빠찡꼬점에
넋을 놓고 있었다

 

귀가 먹먹한 소음 속에서
기계 앞에

 

많은 사람이 앉아있는데

 

웬지 대개는 혼자서

 

무수한 구슬들을 바라보며

 

손 끝으로
이리저리 튕기면서

 

긴혹 이기기도 한다

 

이 놀이는 어떤
최면을 유발해

 

묘한 행복감에 젖게 한다

 

이기는 건
거의 중요하지 않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

 

잠시 몰아지경에 들어

 

기계에 동화되는데

 

어쩌면 잊고 싶은 것을
잊게 한다

 

이 놀이는 패전 뒤
처음 등장했고

 

일본인들에게는 잊고 싶은
국가적 외상이 있었다

 

재주든 운이든

 

능숙한 꾼들은

 

상당한 구슬을 긁어모아

 

나중에 담배와 음식

 

전기 기구나
입금표와 바꾸는데

 

현금 교환은 불법이지만

 

뒷골목에선
성행하고 있다

 

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도쿄의 현실이

 

점점 정감없이
매몰차게 몰아치고

 

위협적이고
비인간적으로 될수록

 

내 머리 속에
더욱 강렬하게 자리잡는 건

 

정답고 정돈된
세계의 이미지

 

오스 야스지로 영화 속의
신화의 도시 도쿄였다

 

이제 더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흐트러진 세계에서
여전히 질서를 지향하고

 

여전히 세계의 투명성을
기대하는 관점이다

 

이런 태도는

설령 오즈가
아직 살아 있더라도

 

지금으로선
불가능할 것이다

 

극도로 증폭된
이미지들이

 

이미 너무 많은 걸
망가뜨렸고

 

그 한 시절의 이미지는

 

벌써 영구히
사라졌을 것이다

 

존 웨인이 떠나고

 

등장한 건
성조기가 아니라

 

붉은 공같은 일장기였다

 

잠에 빠져들면서
허튼 생각을 했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세상의 중심이다

 

어디든 이놈의
TV가 있는 곳이

 

세상의 중심이다

 

그 중심엔 망상이 자리잡고

 

세상도 마찬가지다

 

망상의 이미지 세계에는

 

도처에 TV들이 널려있다

 

여기 이 나라가
전세계에 그걸 구축했고

 

전세계는 미국의
이미지를 구경한다"

 

그 뒤에 날을 잡아

 

배우 류 치슈를 찾아갔다

 

무성 시절부터
거의 모든 오즈의

 

작품에 출연한 배우였고

 

자주 본 나이보다
노역을 맡았다

 

많은 오즈의 영화에서
아버지역이었는데

 

실상 아들 딸 역의
배우들과

 

나이 차이가
크게 나지 않았다

 

그가 나오는 오즈의 작품을

하루에 2편
본 적 있었다

 

30년대 초의
첫 작품에서는

 

청년에서 노년까지
한 인물의 인생을 연기했다

 

50년대 말의
두번째 영화에서는

 

자기 나이에 맞춘
역활이었다

 

두 작품에서 연기한
인물들은

 

거의 엇비슷했다

 

어떤 배우에서도
못 느꼈던 존경심으로

 

류 치슈를 대했다

 

그런 뜻을 전했더니

 

찬사에 아주
당혹스러워 했다

 

겸손하게 말을 돌렸다

 

당시 나이
서른쯤 됐을 땐데

 

60대의 역할을
하라고 했어요

 

노인의 모습이 아니라
노역의 연기였어요

 

늙게 보이는 모습에는
별 관심 없었어요

 

오즈 선생님은 늘
할일을 말해준 뒤

 

군소리 없이
지시에 따르게 했어요

 

오즈 선생님 밑에서
별 탈 없이

 

배우로 알려지고
경력을 쌓았어요

 

오즈 선생님이
지시한대로 따랐어요

 

오즈가 사전연습을
많이 했는지 물었다

 

장면의 난이도에 달렸지요

 

대개는 두세번 연습하고

 

장면을 찍었어요

 

하지만 시인하기를
어떤 경우엔

 

오즈가 한두번으로
만족하지 않았다고 했다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20번도 더
사전연습을 했고

 

또 20번 넘게 촬영했어요

 

뭐가 잘못됐는지 몰랐고

 

단순히 생각했어요

 

"아무리 형편없는 사수라도

 

자꾸 쏘다보면
맞추는 법인데"

 

나중에 오즈 선생님이
아주 다정하게 물었어요

 

"류, 오늘은
컨디션이 좋지 않았군

 

아니면 내 인내력을
시험해본 건가?"

 

아무튼 배우 못잖은

 

명배우셨어요

 

대개 한두번
촬영으로 만족했지만

 

류는 오즈 앞에서
늘 어려워했고

 

자신의 재능
부족이라 여겼다

 

류와 오즈의 관계는

 

처음부터 사제지간이나

 

부자사이 같았다

 

오즈가 바로 한살 위였지만

 

지적인 면에서

 

서로 상당한 간극이 있었고

 

늘 오즈를 스승으로 받들며

 

류는 제자로서 시종일관

 

배우는 자세였다

 

오즈 선생님은

 

아주 강렬한 성격의 소유자로

 

좌중을 압도하셨어요

 

모든 것에 선생님의
손길이 갔어요

 

가령 촬영장에서

 

전반적인 세트나
장식뿐만 아니라

 

아주 세세한 것까지
신경쓰셨어요

 

방석의 위치라던가

 

모든 게 제자리에
있어야 했고

 

아무렇게나는
안 됐어요

 

촬영 전 배우의
의상까지 바로잡으시고

 

그렇게 확실하게 해야

 

잘못이 없다는 게
류의 결론이었다

 

오즈 선생님 아래서
나 자신을 잊고

 

백지가 되는 법을 배웠어요

 

선생님은 일만 생각하셨는데

 

무엇보다 고정관념이란 게
없으셨어요

 

반면에 저는

 

어떻게 선생님의
생각에 가까이 갈까

 

어떻게 지시에
발맞출까 고심했어요

 

끊임없이
이 생각을 하면서

 

사전준비를 했어요

 

다른 영화나 배우들에게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류는 말했다

 

오로지 오즈의 팔레트의
한 색깔이 되려 했으며

 

다른 누구보다도
오즈의 눈에 든 것이

 

인생의 최대의
복이라고 했다

 

그러지 않았으면
인생이 달라졌을 거라고

 

오즈가 준 역할과 가르침

 

때때로 은근한 압력은

 

결코 다른 데서
배울 수 없는 것이었다

 

무명에서 시작해
오즈 덕에

 

류라는 이름으로
통하게 됐다

 

오즈가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고

 

한마디로 달리
생각할 수 없다고 했다

 

여자들이
류 치슈를 알아봤다

 

최근의 인기 TV 연속극에
나오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자신을
오즈의 배우로

 

알아보는 사람이
없다고 나중에

 

죄스럽다는 듯 말했다

 

우리는 기차를 타고
근처의 오즈의 묘로 갔다

 

기따 가마꾸라

 

오즈의 영화에서처럼
역이 등장했다

 

오즈의 묘비에는
이름도 없이

 

단지 한자로 무(無)라
새겨져 있었다

 

비었고 없다는 뜻이다

 

돌아오는 기찻간에서
이 문자에 대해 생각했다

 

없음

 

어린 시절 종종
없다는 걸 상상하고

 

두려움에 떤 적이 있었다

 

"없는 건 존재할 수 없다"고
늘 생각했다

 

"오로지 존재하는 건 실재며

 

현실이다"

 

관념은 영화 속에서
공허한 무용지물이다

 

누가 스스로를 안다는 것은

 

현실의 인식을 뜻한다

 

사람은 두 눈으로
현실을 본다

 

먼저 타인을 보고
연인을 본다

 

주변의 사물을 보고

 

살고 있는
도시나 시골을 보며

 

또한 인간의 운명인 죽음과

 

사물의 일회성을 본다

 

사랑, 고독, 행복, 슬픔,
공포를 보고 겪는다

 

한마디로 사람이
보는 건 인생이다

 

사람들이 겪는 개인사와

 

화면에서 묘사되는
장면 사이에

 

때론 큰 격차가 있다는 걸
누구나 안다

 

그 거리감을
익히 알면서도

 

삶과 동떨어진 영화가
지극히 자연스러운 사실에

 

아연실색하고

 

그러다 갑자기 영화 속에서

어떤 진실의 실체와 만난다

 

그건 단지 배경 속의
한 아이의 몸짓이거나

 

프레임을 가로지르는
새의 비상이거나

 

순간적으로 화면에 비친
구름의 그림자다

 

오늘날의 영화에서
그런 진실의 순간은 드물다

 

사람들에게는 보여지는 대상이
현실 그 자체다

 

그래서 오즈의 작품들이
아주 독보적이며

 

특히 후기작에서 그렇다

 

그런 진실의 순간들이 있다

 

아니, 순간뿐 아니다

 

그 진실은 시종일관
길게 지속된다

 

영화는 계속 생생하게
삶 자체를 다루고

 

그 속에서 사람과 사물

 

도시와 시골이
스스로 드러난다

 

이런 현실 묘사와 기법을

 

더는 영화에서 찾을 수 없다

 

과거의 일이다

 

무, 없는 것만이

 

이제는 남았다

 

도쿄로 돌아와
빠찡꼬점에 갔더니

이미 끝나고

 

코기쉬 - '네일맨'만이
작업중이었다

 

내일은 구슬들이
모두 방향을 바꿔

 

기계 앞에서 오늘의 승자가

 

내일은 자포자기한
패자가 될 것이다

 

신주꾸

 

도쿄의 바 밀집 지대다

 

오즈의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뒷골목이고

 

방치되어
외로운 아버지들이

슬픔에 젖는 곳이다

 

평소같은 카메라
설정으로 찍었다

 

그 다음에는

 

같은 골목에
같은 카메라 위치에서

 

촛점거리만 달리해

 

50밀리 렌즈로
약간의 망원효과를 줬다

 

오즈가 애용하던 기법이다

 

다른 이미지가 등장했고

 

내게 속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튿날 아침 묘원에서는

 

여전히 까마귀들이
숨어 깍깍댔고

 

아이들이 야구놀이를 했다

 

시내 마천루의 옥상에서는

 

성인들이 골프 놀이를 했다

 

일본인들을 중독시킨
스포츠였고

 

진짜 골프 코스에
나갈 기회는

좀처럼 드물다

 

오즈의 영화에서 보면

 

이 운동열이
반어적으로 묘사된다

 

그래도 놀랄만 하게

 

아주 우아하고
그럴싸한 자세로

 

연습에 몰두하고 있었다

 

공을 구멍에 넣는
진짜 목표는

 

도외시 한듯 했다

 

단 한 사람만이 외롭게
그 일에 매달려 있었다

 

잠시 이 활기찬
대형 골프연습장을 나와

 

배를 채우러 갔다

 

으례 식당의 진열장에는

 

온갖 음식들이
선을 보였다

 

연습장으로 되돌아오니

 

이제 조명등이 흘러넘쳤다

 

하루의 일과는 저녁 늦게

 

클럽회관에 앉아

 

야구 보는 걸로 마감됐다

 

여기도 마찬가지로

 

음식모형이
진열되어 있었고

 

다음 날 완전히 진짜같은

 

이 모형들을

 

만드는 곳에
가보기로 마음 먹었다

 

시작은 진짜 음식에

 

젤라틴 덩어리를

 

붓고 식히는 일이었다

 

틀 작업이 끝나면

 

밀랍을 채우고

 

이 밀랍 형태를

 

다듬고 칠하는 일이
진행된다

 

밀랍을 계속
따뜻하게 해줘야 한다

 

무엇보다

밀랍 샌드위치의
준비 과정이

 

진짜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거기 종일 있었는데

 

점심시간 동안

 

촬영을 놓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종업원들은 밀랍
제작품들 사이에 앉아

 

싸온 점심을 먹었고

 

주위의 모형들과
꼭 닮은 음식이었다

 

어쩌다 실수로

 

밀랍을 먹을뻔 했다

 

도쿄탑 꼭대기에서

 

친구인 베르너 헤어조크를
만났다

 

호주로 가는 길에
일본에 며칠

 

들른 참이었고

 

이야기를 나눴다

 

지금은 한마디로
남은 이미지가 많지 않아

 

여기서 둘러보면
온통 빌딩숲이고

 

이미지라고 할 것도 없어

 

삽 들고 고고학
작업이라도 할 판이야

 

이 불쾌한 풍경 뒤에

 

뭔가 남았는가 하고

 

물론 위험이
따르는 일이지만

 

기꺼이 감수하겠어

 

지금 세상에선
그런 사람이 별로 없어

 

필요한 일을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참다운 이미지가 부족한데

꼭 필요한 이미지고

 

우리 문명과 내적 자아의
조화를 이루게 하는 거야

 

그래서...

 

필요하다면
전쟁의 한복판에도

뛰어들어야 해

 

힘든 일이라도
불만은 없어

 

8천미터의 산정에라도
오르는 거야

 

순수하고 명백하고
투명한 이미지를 구하러

 

이젠 여기 없기 때문이야

 

그래서 찾아나서는 거야

 

우주선 타고 화성이나
목성에라도 갈 거야

 

그 왜 나사의 계획중에

 

스카이랩인가
아니 스페이스셔틀 있잖아

 

생물학자들을
태우고 간다잖아

 

우주에서 신기술을
시험한다고

 

카메라 들고
거기 동승하는 거야

 

이 땅에선
찾기가 쉽지 않아

예전에 있었던
그 이미지들의

 

투명성을

 

어디든 갈 거야

 

베르너의 말엔 공감이 됐다

 

투명하고 순수한
이미지의 탐사작업

 

그러나 내가
찾으려는 이미지는

 

오로지 이 아래 있었다

 

혼돈의 도시 속에

 

낭패스러움 속에서도

 

도쿄는 인상적이었다

 

오후에 신장개업한
디즈니랜드로 갔다

 

시 외곽의 관문에 있었다

 

그러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 놀이공원은

 

캘리포니아의
정확한 재판이 아닌가

 

차를 돌렸다

 

더구나 비까지 뿌렸다

 

후회없는 결정이었다

 

그 덕에 한 시립공원에서

 

이 정도의 비는
아랑곳하지 않고

 

미국식으로 노는
패들을 만났다

 

# 로큰롤

 

# 흔들고 흔들자

 

# 이 밤이 지새도록

 

# 다른 사랑은 바라지 않아

 

# 베이비, 내 생각은
오직 너뿐이야

 

# 읽고 쓸 줄은 몰라

 

# 기타 하나는 끝내줘

 

# 고, 고

 

# 고, 자니, 고우

 

# 당신의 빛깔로
날 칠해줘요

 

# 당신 차의 빛깔로

 

# 이게 바로
페퍼민트 트위스트야

 

# 자 이렇게
페퍼민트 트위스트

 

# 여기저기 이쪽저쪽

 

# 여름

 

# 여행을 떠나요

 

# 서핑 학교로 가요

 

# 서핑, USA

 

# 해거티와 스와미

 

# 퍼시픽 팔리사데스

 

그날 밤
프랑스의 영화감독이며

 

고양이 애호가인
크리스 마커를

 

신주꾸의 바에서 만났다

 

자기 영화의 제목인
"방파제(La Jetée)"바에서 였다

 

얼마 뒤에
그의 아름다운 신작

 

"태양 없이"를 보게 되는데

 

거기에 담긴 도쿄의 이미지는

 

카메라에 서툰 나로선
따라갈 수 없었다

 

으례 사진작가들이 그렇듯

 

크리스 마커는
찍히는 걸 싫어했지만

 

오늘 밤엔 과감하게

 

한쪽 눈을 보여줬다

 

기차

 

기차들

 

오즈의 영화 속의 기차들

 

한 작품 속에서

 

적어도 한번 이상
기차가 등장한다

 

아쓰다 유하루는
오즈의 초기 무성시절

 

제2 촬영조수였다가

 

뒤에 오랜 제1 조수였고

 

결국 20년 가까이

 

카메라맨으로 일했다

 

오즈의 실내 작업방식을
보여줬는데

 

구형 미첼 카메라를
구할 수 있었고

 

오즈가 말년에
실제 사용하던 것과

 

같은 형이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오즈 야스지로는

 

영상 표현기법을
점점 더 단순화시켰다

 

초기작에서 보이던

 

간헐적인 트랙킹샷과 팬을

 

점차 줄여가다가

 

마침내는 고정 카메라만으로

 

늘 앉은 자세에서의

 

눈높이로 찍었고

 

늘 50밀리 렌즈만을

 

사용했다

 

"이게 롱숏이나
미디엄 롱숏을

 

찍을 때의
표준위치였어요"

 

아쓰다의 설명이었다

 

"클로즈업이나
미디엄 클로즈업 때는

 

카메라를 늘 올렸어요

 

이렇게 해서 오즈는

 

카메라가 낮은 위치에서

 

위 아래로
클로즈업을 잡을 때

 

상이 왜곡되는 걸
막으려 했어요

 

그래서 잠깐일지라도
클로즈업 때는

 

늘 카메라를 올렸어요"

 

"이 카메라 지지대는
오즈의 고안품이지요"

 

아쓰다는 말했다

 

"야외촬영에서 카메라 위치를

 

더 낮출 때라도

 

이 삼발이를 사용했어요

 

최단의 삼각대 위치에요

 

그런데 오즈가
카메라를 더 낮추라면

 

그때는 카메라맨이

 

바닥에 엎드려
뷰파인더를 봐야 해요

 

이렇게 해서

 

수평이동이 없도록 해요"

 

"오즈는 촬영에 들어가면서

 

조감독에게 카메라의 위치를

 

지시해요

 

다음에 카메라를 들여다보고

 

조심스레 틀을 결정해요

 

'됐어' 하면

 

조감독이 카메라를
그 자리에 고정해요

 

이젠 아무도 카메라를
건드리지 못 하고

 

이건 철칙이었어요"

 

"다음에 예행연습을
몇번 하고

 

오즈가 다시
뷰파인더를 보고

 

배우들의 자리를 지시해요

 

마지막 정리가 끝나고

 

카메라의 위치가
최종 결정되면

 

이제부터 모두
아주 조심해야지

 

괜히 부딪히기라도 하면

 

자리가 틀어져요

 

정말 굉장히 신경썼어요"

 

아쓰다는 말을 이었다

 

"오즈는 야외촬영을
싫어했어요

 

특히 사람들이
모여들거나 하면

 

그래서 구경꾼들이
모이기 전에

 

아주 재빨리 찍었어요"

 

"오즈가 기념으로

 

자기 초시계를 줬는데

 

좀 있다 보여드리지요

 

제게 있는 유일한
유품이에요

 

진행 여직원이
늘 시간을 재면서

 

오즈를 따라다녔어요

 

후반에 녹음 작업을 할 때

 

찰칵찰칵 소리가 들리고

 

음향 기술자는
매번 물었어요

 

이게 무슨 소리냐고

 

오즈는 정확한 시간을

 

아주 중요하게 여겼어요

 

장면마다 시간을 재고

 

러시 필름을 보면서

 

다시 시간을 쟀어요"

 

"이 구닥다리를 애용했는데

 

보기 좀 그렇지요?

 

이 돛자리를 팔에 낀 채
뛰어다녔어요

 

아주 힘들었어요"

 

"이게 그 초시계고

 

오즈가 특별히 주문한 거에요

 

오랫동안 쓰시던 거에요

 

이걸로 시간을 쟀어요

 

매 장면, 삽입장면까지

 

붉은 선은
35밀리 표준규격의

 

미사용 필름 길이를 나타내고

 

중간선은 그 간격

 

세번째가 60밀리 규격의

 

필름용이에요

 

오즈는 이 초시계를 활용해

 

프레임 사이의

 

정확한 시간을 쟀어요

 

한번 보세요"

 

아쓰다에게서
오즈의 대본 원본을

 

며칠 간 빌렸다

 

경건하게 펼쳤지만
속수무책이었다

 

단 한 글자 제목조차

 

해득할 수 없었다

 

얼마나 조수로 계셨습니까?

 

"시종일관이요

 

조수로는 15년이요"

 

그리고 오즈의
카메라맨이 됐습니까?

 

"네"

 

어떻게 됐습니까?

 

"아주 간단해요

 

'이제 이 일을 해라'
하셨어요

 

과묵한 분이셨어요

 

저는 '감사합니다' 했고

 

지금도 오즈에게
감사드리고 있어요

 

카메라를 맡게 됐고

 

입발린 소리가 아니라

 

가슴 뿌듯한 일이었어요

 

이미 조수 생활을 통해

 

존경심이 두터워졌어요

 

당시에 다른 조수들은

 

오래 전에 카메라맨이 됐는데

 

저만 오즈 밑에서
계속 조수였어요

 

하루는 이러셨어요

 

'이제 곧 카메라맨이 될텐데

 

왜 참을성이 없느냐

 

대가집의 개가 되려고?'

 

그분 작품을 알아봤어요

 

많은 동료들은
돈을 더 벌었어요

 

우선 뉴스 카메라맨을 하면

 

봉급이 셌어요

 

하지만 그대로 있었어요

 

오즈의 곁에 남고 싶었고

 

제 본심이었어요"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오즈와 많이 상의했나요?

 

"아니, 별로 상의는 없었어요

 

그냥 간단하게
몇마디 주고받았고

 

길지는 않았어요

 

김독의 일에 관해

 

제가 할 말이 있나요

 

그나마 이건 물어봤어요

 

촬영 기간이 얼마나 되는냐

 

몇주냐, 몇달이냐
일년이냐

 

조명 때문이었어요

 

계절 문제가 있으니까

 

오가와가 자기 작품을
보여준 뒤론

 

50밀리 렌즈 외에는
안 쓰셨어요

 

이러신 게 기억나요

 

'오가와, 왜 자꾸

 

40밀리를 쓰라고 해?

 

내가 50밀리를
선호하는지 알면서'

 

나중에 제가 언젠가

 

딴 렌즈로 장면을
한번 보시라고 여쭸어요

 

단 한번

 

뷰파인더를 통해 보시더니

 

'생각대로 50짜리만 못 해'

 

아차하고는 다시 50밀리로

 

갈아 끼웠어요

 

그날 이후

 

다신 딴소리 한 적이 없어요

 

광각렌즈를 쓰면

 

양쪽 상면이 확장되요

 

높이도 그렇고

 

하지만 오즈의
취향은 아니었어요

 

무성영화 시대에서

 

유성으로 변화를 겪으면서

 

프레임의 폭이
좀 좁아졌어요

 

녹음부문을 덧붙이느라

 

전에는 음화 전체를 썼는데

 

더는 아니었어요

 

이게 구도 감각에
영향을 미쳤나봐요"

 

"조명은 제게 일임하셨어요

 

아버지가 나오는 영화에서

 

결말부에 이르러

 

임종하게 되잖아요?

 

병실의 조명을

 

햇빛이 빛나듯이

 

아주 밝게 했어요

 

병원이란 장소가

 

슬픔으로 가득해도
밖은 안 그래요

 

그래서 병실을
강렬한 빛으로 채웠어요

 

오즈가 돌아보더니

 

'자네가 했나?

 

어째서?

 

과히 나쁘지 않군'

 

솔직히 대답했어요

 

노인을 어둠 속에서
죽게하고 싶지 않아

 

임종의 순간에

 

빛으로 둘러쌌다고

 

그대로 찍었고

 

그게 오즈의 칭찬이었어요

 

보통은 통 말이 없으셨어요

 

촬영이 어떻다든지

 

맘에 든다든지

 

이런 말 하신 적이 없어요

 

'잘 찍었군'

 

며칠 뒤에
한번 더 그러시더군요

 

'저번 거 나쁘지 않았어'

 

원래 그분이 그러셨어요"

 

"한번은 물으셨어요

 

애인이 있느냐고

 

대답했어요
'네, 그런데 발이 셋이에요

 

늘 등에 메고 다녀요'

 

제 삼각대 이야기였고

 

그게 서로 간의
농담이 됐어요

 

'애인이 삼발이라고'

 

놀리셨어요

 

'그만하면 미인이고
아주 귀엽지"

 

"그분을 아주 좋아했어요

 

임종하실 때
절절한 마음이었고

 

그분도 아셨어요

 

어떻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한 감독 곁을 지킨
카메라맨은

 

아마 저뿐일 거에요

 

조수로부터 시작해서

 

그렇게 기나긴 세월 동안

 

생색 내자는 소리가
아니에요

 

오즈와 함께 한 건

제 자랑이자
기쁨이었어요"

 

"실내장면은 늘 세트였지

 

야외로 안 나갔어요

 

예외가 있다면
기차 장면이었어요

 

기차 안 장면을 찍을 땐

 

오즈에게 그랬어요
'세트 아닌 아무거나요'

 

그러면 수긍하셨어요

 

딴 건 몰라도

 

기차 장면은
세트에서 잘 안 돼요

 

그 흔들림이
나오질 않아요

 

그래서 진짜 기차 안에서
찍자고 한 거에요

 

분명히 말하지만

 

전후 오즈 영화의

 

모든 기차 장면은 진짜에요

 

장소를 물색하는데
시간이 많이 들었어요

 

차를 쓴 적이 없었고

 

늘 걸어다녔어요

 

그러면서
이런 농담을 했어요

 

'장소 찾다가 골병들겠네'"

 

이게 마지막 질문입니다

 

"네"

 

오즈의 사후에
다른 감독과도

 

일했습니까?

 

"네, 했어요

 

하지만 아주
처치곤란이었어요

 

한참 동안 멍해 있었어요

 

'내가 왜 이러지?' 하면서

 

잠시 일을 계속 했지만

 

일에 흥이 안났어요

 

함께 일한 감독도 그렇고

 

뭔가 허전했어요

 

오즈는 제 진가를 알아줬고

 

저도 최선을 다 했어요

 

다른 사람과는

 

그 진수가 사라졌어요

 

오즈에게 신세를 졌어요

 

외로운 기분이 들어요

 

그만 하지요

 

감사해요

 

네, 외로워져요

 

그 기백이란 걸

 

딴 사람들은 잘 몰라요

 

그래서 사람들이

 

같이 일하고 좋아한 거에요

 

감독 이상이셨어요

 

왕 같으셨어요

 

이 말을 들으면

 

기뻐하실 거에요

 

내가 오늘 왜 이러지

 

그만 하지요

 

좀 혼자 있게

 

죄송합니다

 

오즈 야스지로는
좋은 분이셨어요"

 

서운하시겠어요
이렇게 혼자 남겨놓고

 

너무나 갑작스레

 

고집이 셌는데

 

이렇게 갈 줄 알았으면

 

생전에 좀 더
잘 해주는 건데

 

혼자 있으니
하루가 기네요

 

적적하시겠죠
얼마나 서운하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