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우 치는 밤에 (Stormy Night, 2005)

원작, 각본
기무라 유우이치

 

폭풍우 치는 밤에

 

감독, 연출, 각본
스기이 기사브로

 

- 날씨 참 좋다!
- 맛있는 풀이다!

 

- 여기 풀이 맛있을 것 같아!
- 우리 저기까지 뛰어가자!

 

이것 봐, 메이!
그만 돌아가야지!

 

아무래도 비가 오겠는걸!

 

얘들아!
잠시만 기다려!

 

여기서 꾸물거리면
위험하겠어!

 

메이!
우리 먼저 갈게!

 

너도 빨리 와!

 

깜깜해...
하나도 안 보여...

 

이거 어떡하지...?

 

이 비바람, 아무래도
그칠 것 같지 않아!

 

으! 추워라!

 

발굽소리야...
다행이다! 염소야!

 

비바람이 굉장하죠?

 

이런! 누가 계셨군요!

 

이거 죄송해요!

 

깜깜해서 아무도
없는 줄 알았걸랑요

 

아니에요, 저도 비를 피해서
지금 막 왔거든요

 

완전히 홀딱 젖었어요!

 

나 원 참...

 

나도 비를 피해 도망치다
발까지 삐었지 뭡니까?

 

그래도 당신이 와서

 

마음이 놓여요

 

아! 그거 다행이네요!

 

하긴 이렇게
폭풍우 치는 밤에

 

깜깜한 오두막집에 혼자 있으면
불안해서 견딜 수 없걸랑요!

 

감기 걸리셨나 봐요!

 

아무래도 코감기에
걸린 모양이걸랑요!

 

저하고 똑같네요!

 

그래서, 냄새를
전혀 맡지 못하지 뭐예요?

 

지금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둘 다, 목소리뿐이걸랑요!

 

실례지만
어디 사시나요?

 

나는 꿀꺽꿀꺽 골짜기에
살걸랑요!

 

꿀꺽꿀꺽 골짜기요?

 

그 골짜기는 좀...
위험하다고 하던데요

 

네에?
거기가 위험하다고요?

 

물론 절벽이 험하기 하지만
살기엔 아주 그만이걸랑요!

 

배짱이 두둑하군요!

 

전...
산들산들 산에 살아요!

 

이거 갑자기
부러워지는데요!

 

산들산들 산엔

 

맛있는 먹이가 여기저기에
널려있다고 하던데요!

 

저는요

 

말랑말랑 계곡에 있는
먹이를 더 좋아해요

 

그래요, 그래!
거긴 나도 자주 가걸랑요!

 

그 계곡의 먹이
생각만 해도 군침 도네요!

 

그래요!
냄새도 끝내줘요!

 

첫맛은 부드럽고
뒷맛은 쫄깃하걸랑요!

 

하루 세끼 꼬박 먹어도
질리지 않아요!

 

정말이에요!

 

일단 맛을 보면
꿈에서도 아른거리걸랑요!

 

지금 그게 눈앞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누가 아니래요!
자꾸 침이 넘어가네요!

 

- 그...
- 맛있는...

 

생각해보니 어릴 땐

 

나뭇가지처럼
빼빼 말랐지 뭐예요?

 

지금은 다들 먹보라고
놀릴 정도지만...

 

어서 먹으렴, 뭐든 잘 먹지 않으면
강해질 수 없다고

 

얼마나 말해야
알아듣겠어?

 

그 시절엔 엄마한테

 

'많이 먹어!
더 많이 먹으라고!'

 

잔소리 꽤나 들었는데

 

저도 그랬답니다!

 

먹을 수 있을 때 배불리
실컷 먹어두지 않으면

 

빨리 뛰어야 할 때
제대로 뛸 수 없다고 말이에요!

 

그래요, 그래!

 

우리 엄마도 입만 뗐다 하면
그렇게 잔소리했걸랑요!

 

빨리 뛰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말이에요

 

똑같아요, 똑같아!

 

물론 그런 말을 한 건
엄마가 아니라

 

할머니였지만요!

 

할머니께서요?

 

우리 엄만 어렸을 때
돌아가셨어요

 

그러셨군요

 

우리 엄마도 돌아가신지
한참 되셨걸랑요

 

그러셨어요?

 

우린 닮은 점이 많군요
안 그러세요?

 

정말이에요!

 

오두막집 안이 깜깜해서
얼굴은 안 보이지만

 

혹시 얼굴도
닮은 거 아닐까요?

 

실은 지금 막 고개를
숙이고 있었는데...

 

혹시 제 얼굴 보셨어요?
닮았던가요?

 

아! 그게 말이죠

 

깜짝 놀라는 바람에
눈을 감아버렸지 뭐예요?

 

아, 죄송해요!

 

겁쟁이는 아니지만
천둥소리는 질색이에요

 

피장파장이걸랑요!

 

간 떨어지는지 알았네

 

그런데...
싫어하는 것도 그렇고

 

우리 정말 비슷한 점이
많지 않나요?

 

그래요! 나도 생각했어요
'우린 통하네!'라고!

 

그렇지! 어때요?

 

날씨가 좋을 때 만나서
같이 식사라도 하는 게

 

좋고말고요!

 

폭풍우를 만나서
최악의 밤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좋은 친구를 만나다니!
오늘은 정말 최고의 밤이걸랑요!

 

얼라?

 

이거 폭풍우가
그친 모양인데요

 

정말이네!

 

그럼 오늘은 이만...

 

내일 점심에
시간 있으세요?

 

있고말고요!

 

원래 폭풍우가 그친 다음에는
하늘이 맑게 갠다고 하걸랑요!

 

그럼 어디서 만날까요?

 

아무래도...
이 앞이 좋겠걸랑요

 

좋아요! 그런데...

 

다음에 만나면
서로 말을 놓는 게 어때요?

 

좋걸랑요!
그리고 암호를 정하죠

 

서로 몰라보면 안되니까
'폭풍우 치는 밤에!'라고 말할게요!

 

하긴 얼굴을 모르니까
암호를 정해야겠군요!

 

그럼, 우리 둘의
비밀 암호는...

 

'폭풍우 치는 밤에'로
정하는 거예요!

 

얼라, 왜 그래요?

 

갑자기 발이 저려서요!

 

먼저... 가세요

 

그럼 내일 봐요
폭풍우 치는 밤에!

 

폭풍우 치는 밤에...

 

그런데...
싫어하는 것도 그렇고

 

우리 정말 비슷한 점이
많지 않나요?

 

폭풍우 치는 밤에!

 

폭풍우 치는 밤에!

 

아깐 간 떨어지는 줄
알았어!

 

네가 늑대인 줄
몰랐거든!

 

그건 나도 마찬가지걸랑!

 

네가 염소일 줄은
꿈에도 생각 못한 일이걸랑!

 

정말! 늑대랑 점심 먹기로
약속한 염소가 있으면

 

나와 보라고 그래!
난 지금도 믿을 수 없어!

 

내가 하고 싶은
말이걸랑!

 

너랑 점심 먹는 건, 점심이랑 같이
점심 먹는 거랑 똑같걸랑!

 

- 아, 이거 실례!
- 하하하하하!

 

그 정도쯤이야!

 

만약 네가 날 잡아먹을
생각이었다면...

 

아까 오두막집 앞에서
벌써 잡아먹었을 거야!

 

그야 당연하지!

 

이래봬도 내가

 

세상에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우정이걸랑!

 

피장파장이야!
우리 할머니께서 만날 그랬어!

 

이 세상에 친구처럼
소중한 건 없다고!

 

맞아!

 

우리 엄마도 돌아가시기 전에
만날 그렇게 말했걸랑!

 

그랬구나, 하하하!

 

천둥소리에
기절초풍하는 것도 그렇고

 

우린 정말 비슷한 점이
많은 것 같아

 

헤헤헤헤헤,
그러게 말이야!

 

무너졌어!

 

자칫 잘못하면
큰일 나겠어

 

이걸 못 넘어서야
사내대장부라고 하겠어?

 

이, 이걸 어째?

 

난 괜찮걸랑!

 

일부러 다이어트도 하는데
점심쯤이야!

 

걱정하지마!

 

어젯밤, 먹보라고
놀림 당한다는 건 누구더라?

 

뭘 그런 걸
기억하고 그러셔!

 

도시락이 없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배에서 밥 달라고
난리 부르스네!

 

되게 맛있겠걸랑!

 

왜 그러는 거야?

 

도착했어!

 

자, 여기가 꼭대기야!

 

아! 저기 봐!
말랑말랑 계곡도 보이지?

 

정말이네!

 

나 저기에
먹이를 잡아먹으!

 

먹이...?

 

아, 그게 아니라

 

난 저기에 먹이를 잡아먹으러
간 적이 한번도 없걸랑!

 

- 정말이야?
- 정말이고말고!

 

지금까지, 염소고기를
먹어본 적이 한번도 없걸랑!

 

그거 믿어도 되지?

 

아! 그럼 이제
도시락이나 먹을까?

 

아! 네 건 아까 떨어뜨렸지

 

그러게 말이야

 

그럼 내 도시락,
반반씩 나눠먹을까?

 

하지만 넌, 풀이 아니라
고기를 먹어야 하지?

 

- 아니, 아아, 그게...
- 아! 혹시

 

너, 아까 떨어뜨린 도시락 안에
염소고기 들어있었던 거 아냐?

 

처, 처, 천만의 말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게
염소고기걸랑!

 

그런데 그렇게 말하면
이 늑대, 너무 섭하지!

 

- 그 말, 믿어도 되지!
- 그야 당연하지!

 

자, 난 괜찮으니까
어서 풀이나 많이 먹으셔!

 

난 그동안 낮잠이나
잘 테니까!

 

그렇담...

 

맛있겠다!

 

나한테도...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도시락이 있걸랑

 

바로 눈앞에 말이야

 

역시!

 

멋진 경치를 바라보며
먹어서 그런지 정말 꿀맛이다!

 

아! 미안해!

 

얼라?
벌써 잠들었잖아?

 

너 같으면
배고픈데 잠이 오냐?

 

오늘은 일찍 나오느라
아침도 안 먹었걸랑!

 

우아! 배가 빵빵하네!

 

기분도 좋은데
나도 낮잠이나 잘까?

 

이렇게 착한 녀석은
생전 처음이걸랑

 

물론 먹으면 맛있겠지?

 

하지만 이 녀석이랑 같이 있으면
왠지 마음이 편해져

 

어쨌든,
정말 맛있게 보인다!

 

그야 당연하지!

 

세상에 있는 먹이들 중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게

 

바로 염소고기걸랑!

 

한쪽 귀라도
뜯어먹어볼까?

 

'넌 내 소중한 친구니까
한쪽 귀 정도는 뜯어먹어도 돼!'

 

설마 이렇게
말하진 않겠지?

 

하지만...
더 이상은!

 

내 귓가에서 뭐 하는 거야?
그러니까 간지럽잖아!

 

잘 잤다!

 

난 간지럼에 약하거든!
특히 귀는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엥?
왜 그러는 거야?

 

혹시 내 귀에...
뭐가 묻기라도 했어?

 

윽! 아, 아니
그게 그러니까...

 

너처럼 예쁜 귀는
처음 보걸랑!

 

고마워, 그럼 이제
그만 가야겠지?

 

아! 그래, 그게 좋겠어!

 

그래!

 

역시! 으으으!

 

더 이상 못 참겠걸랑!

 

왜 그래?

 

아, 아니야, 중요한 걸 깜빡해서
너한테 그걸 말하려고...

 

뭘 깜빡했는데...?

 

으으, 답답해 죽겠네!
죽겠어!

 

그러니까...

 

다, 다음엔...
언제 만날까?

 

이제 염소가 살찌는
가을이니까

 

그 잔인하고 무섭고
끔찍한 늑대들이

 

물불 안 가리고
우리 염소를 습격할 게다

 

그러니까!
조심해야 한다!

 

지금 같은 가을이
일년 중에서

 

제일 위험한 때라는 걸
알아야 한다!

 

절대 방심하면 안된다!

 

난 괜찮다
고맙구나

 

멀리 있는 맛있는 풀을 먹으러
갈 때도 혼자 가지 말고

 

친구와 같이 다니도록

 

- 메이! 어디 가는 거야?
- 히익!

 

어쩐지 수상한데!

 

수, 수상하긴!
히히!

 

너희들, 여기서
뭐 하고 있어?

 

메이가 아무도 몰래
어디 가는 것 같아서!

 

너 어디 가는 거야, 메이?

 

그러니까 저기...

 

살랑살랑 고개에서
약속이 있어서 말이야

 

살랑살랑 고개라고?

 

너, 늑대 먹이가
되고 싶어서 그래?

 

거긴 요전에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때

 

염소들이 늑대한테
잡아먹힌 데라고!

 

그래서 요즘 말이야

 

우린 모두 '점심고개'라고
부르고 있어!

 

그런 데 혼자 가려고 하다니
정신이 있어?

 

하지만, 저기
그게 친구랑 말이야

 

아니, 친구라니
누군데?

 

그러니까 말이야

 

요전에 우연히
알게 된 친구야

 

걔가 좀 멀리
떨어진 데 살아서

 

그래서...

 

- 요즘 눈만 뜨면 사라졌구나!
- 응?

 

어쨌거나!

 

살랑살랑 고개에 혼자 가는 건
너무 위험한 일이야!

 

좀 전에, 장로님께서 혼자
다니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잖아!

 

- 응, 응!
- 하지만...

 

안돼, 메이!
그건 절대 안돼!

 

정 가고 싶으면
타프랑 같이 가거라

 

- 아아, 할머니!
- 메이!

 

만약 너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저 세상에 있는 네 어미를
어떻게 보겠니?

 

할미가 부탁할 테니
제발 위험한 일은 하지 마렴

 

하지만!

 

할머니 말씀 들어!
정 가고 싶으면 같이 가줄게!

 

그래, 나도 같이 갈게!

 

타프, 메이를 부탁한다!

 

걱정하지 마세요!
자아, 가자, 메이!

 

잘 들어, 메이!
너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지만

 

내가 같이 가는 걸
고맙다고 해야 할걸!

 

늑대에 대해선
이 몸이 척척박사거든!

 

왜 아까부터 자꾸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어?

 

있잖아, 메이!
늑대라는 건

한 순간도 방심할 수
없는 녀석이야!

잠시 마음을 놓으면
금방 잡아 먹혀버린다니까!

 

아참, 메이!

살랑살랑 고개 위에 가면
금계나무가 있지?

그 나무 밑에 있는
덤불에 숨어서 기다리면 돼!

금계나무는
냄새가 아주 강하거든!

그 냄새가 우리 냄새를
감춰준단 말이지?

오오, 역시!
넌 척하면 착이라니까!

 

메이, 네 친구는 아무래도
아직 안 온 모양인데

 

- 이봐, 메이!
- 어?

 

왜 멍하니
쳐다보는 거야?

아니야

늑대 얘기를
계속하자면 말이야

난 늑대에 대해서
알기만 하는 게 아니야!

몇번이나 봤어!
늑대란 건 말이야

바로 코앞에서 보면!
눈은 번들번들 빛나고!

입은 천박하고!
코는 비뚤어졌고!

어떻게 그렇게 괴상하게
생길 수 있을까!

 

이런 소리에 놀라면
사내대장부가 아니지!

그리고, 만약 늑대가
딱 나타나면!

이렇게 뿔을 앞으로 들이밀고
그 다음엔 뒷발질로!

 

염소 살려!

 

아! 머리야!

 

갑자기 발굽으로 머리를 걷어차서
머리 깨지는 줄 알았걸랑!

하하하하! 미안미안!

그 애들 둘 다,
내 친구들이거든!

 

네 친구들이었구나!

무지무지 맛있게 보이는
아니...

무지무지 착하게 보이는
친구들이다!

그런데 친구들 말이야
간 떨어졌으면 어떡하지?

 

설마! 덕분에 둘이
있을 수 있게 됐잖아!

 

내가 늑대한테 잡아 먹힐까봐
꼬옥 따라오겠다고 하지 뭐야?

얼마나 마음 졸였다고!

아직 내 이름 모르지?
난 '메이'라고 해!

우아!
이름이 메이였구나

너랑 너무너무 잘 어울리는
따뜻한 이름이야!

난 말이야
'가브'라고 하걸랑!

되게 씩씩한 이름이다!

그런데 어째 이상하네!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이름도 모르고 친구 된 거잖아?

- 정말 그렇네!
- 하하하!

그나저나, 내가 늦게 와서
많이 기다렸지?

아냐! 나도 좀 전에
막 도착했걸랑!

 

어쨌든 지금
때가 때인 만큼

내가 늑대랑 친구라는 걸 알면
다들 기절할지도 몰라!

그건 나도
마찬가지걸랑!

염소랑 친구라는 건

무슨 일이 있어도
말할 수 없걸랑!

우리가 친구라는 건
둘만의 비밀이구나

그래!

비밀이란 말을 들으니까
왠지 가슴이 두근두근 거리네!

그런데, 넌 나랑
친구가 돼도 괜찮아?

괜찮고말고!
그나저나 넌 괜찮겠어?

나처럼 이런 염소랑
친구가 돼도 말이야

당연하걸랑! 그래서 우리가
비밀 친구라는 거 아니겠어?

아! 그래그래!

우린 아무도 모르는
비밀 친구야!

 

타프 너!

어떻게 메이를 버리고
도망칠 수 있지?

늑대가 나타났는데
도망치지 않는 염소가 어디 있어?

그런 염소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늑대가 나타나면 자기한테
맡기라고 큰소리쳤잖아!

그, 그야 그렇지만...

 

그렇게 진짜 늑대가
나타날 줄 몰랐어!

못 말려!

만약 메이가 잡아 먹혔으면
어떡할 거야?

어떡하지?
어떡하면 좋아!

책임지라고!

 

아!
아, 메이다!

뭐?

 

다행이다!
안 잡아 먹혔어!

- 메이! 빨리 와!
- 미이! 타프!

 

울퉁불퉁 언덕에서
만나잔 거지?

 

이봐, 가브!
뭐하고 있어?

기로 대장님께서
할 말 있다니까 빨리 와!

 

바리님! 알겠걸랑요!
금방 갈게요!

 

울퉁불퉁 언덕이라!

 

너희들, 잘 들어!

 

앞으로 실수하면
용서 않겠다!

이제 겨울이 되면
먹이를 쉽게 구할 수 없다

 

어떻게 해서라도

먹이를 저장해두어야 한다!

알았어?
정신 바짝 차려라!

넷!

 

이번 가을
첫번째 사냥으로

울퉁불퉁 언덕에서
염소 사냥이다!

- 윽! 우, 울퉁불퉁 언덕?
- 울퉁불퉁 언덕이라고?

울퉁불퉁 언덕이라!

기로 대장님, 그 언덕엔
염소들이 별로 없는뎁쇼!

 

그래서 내가 울퉁불퉁
언덕을 노리는 거다!

그 언덕엔 커다란
바위밖에 없지만

바위 사이에 풀이 있지

 

아무래도 염소들
그 풀을 좋아하는 것 같더군!

지켜본 바에 따르면
반드시 염소가 찾아오지

그것도 '늑대가 설마'

'울퉁불퉁 언덕에
나타나겠어?' 하는

아주 안심한
얼굴로 말이야

그렇군요!
역시 대장님이셔!

염소에 관해선 저희들이랑
생각하는 차원이 다르다니까요!

그러면 오늘은
어떤 작전이 좋을깝쇼?

바리! 넌 다른 때처럼
염소를 몰아라!

알겠지?

 

염소들 몰래 다가가서
포위하는 거다! 알았지?

 

자크! 비치! 너희는
반대편으로 돌아가!

양쪽에서 협공이다!

 

그 다음은 다른 때처럼

내 신호에 따라서
염소를 공격하면 된다!

알겠습니다!

 

어떡하지? 어떻게든 메이만은
도망치게 해야 하는데

 

안개 한번 지독하네!

왜 이런 위험한 데서
만나자고 했지...?

영차!

이런!

 

가브가 먼저 와 있을까?

 

가브!

 

아차차!

 

다른 늑대들이 내 소리를
들었으면 어떡하지?

어쨌든 가브도 참!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그 즉시 내 이름을 불러!

쏜살같이 달려가서
구해줄 테니까!

뭐, 이래봬도 내가
한 솜씨 하걸랑!

무서운 얼굴로 위협하면
늑대들 모두

걸음아 나 살려라
36계 줄행랑을 치걸랑!

이것 봐, 이런 얼굴로!

 

그때 가브 얼굴
참 볼만 했는데!

 

안개가 굉장해!

이래선 염소는 커녕
쥐새끼 하나 없겠는뎁쇼!

대장님!

 

좋아! 다들 뿔뿔이
흩어져서 찾아라!

 

염소를 발견하면

한번 짖어서
신호를 보내는 거다!

 

 

대체 어디 있는 거야?

 

메이...

 

무슨 소리지...?

가브인가?

 

염소 소리가 들렸는데...

 

아! 가브가 아니야!

 

어떡하지?

 

빌어먹을!
바람이 거꾸로 불어서

냄새는 확실하지 않지만

이 근처에 분명히
맛있는 염소가 있어

 

이 근처에서
염소 냄새가 나는데...

- 아, 대장님!
- 음?

- 거기에 뭐가 있나요?
- 쉿!

큰 소리를 지르면 어떡해?

근처에 염소가 있다!

네? 염, 소...?

그러면 혹시!

아! 저도 염소를 찾았걸랑요!
저기 있는 바위 근처에서요!

통통한 게 맛있겠던데요!

그걸 대장님께
알려드리러...

통통한 염소라고?
좋아, 내가 가보지!

 

- 넌 여기를 지켜라!
- 넷!

 

아아, 안돼!

 

숨어!

 

여기 있으면 아무도
못 찾을 거걸랑!

 

간이 떨어졌다
다시 붙었걸랑!

혹시 네가 당했으면 어떡하나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고마워, 약속한 대로
늑대한테 날 구해줘서

이 정도는 당연하걸랑!

늑대한테 당연한 건
염소를 구해주는 게 아니잖아

염소를 잡아서
고기를 먹는 거지!

 

하긴 그건 그렇지!

 

하지만 난 말이야!

지금 제일 좋아하는 건
염소고기가 아니라

 

염소야
내 친구 염소...

 

가브...

 

늑대들은 모두
사라진 것 같아

하지만 안개가 너무 지독해서
나갈 수 없걸랑

 

안개가 걷힐 때까지
여기 있으면 되잖아

그야 뭐 그렇지만...
솔직히 말하면

널 울퉁불퉁 언덕으로
오라고 한 건

오늘밤에 보름달이
뜨기 때문이걸랑

 

보름달?

 

옛날에 보름달이 뜰 때면
항상 이 언덕에 올라왔걸랑

 

여기서 보는 보름달이
얼마나 환상적으로 아름다운데!

너한테 꼭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 보름달을 보고 있으면
나쁜 일들은!

몽땅! 까맣게
잊어버릴 수 있걸랑

 

오늘은 안개 때문에
보름달을 볼 수 없지만

난 가브랑 얘기하다 보면

나쁜 일은 몽땅
잊어버리거든

아! 메이
그게 정말이야?

나, 나도 그런데...

나중에 다시 꼭
보름달을 보러 오자

물론 좋고말고!

 

- 할머니, 왜 그래요?
- 무슨 일이에요?

어떻게 이런 일이!

울퉁불퉁 언덕에서
늑대들한테 습격당했지 뭐니?

세상에!
그 울퉁불퉁 언덕에서요?

그 언덕에 늑대가
나타났단 얘긴

지금까지 한번도
못 들었는데요

다른 산에 사는 염소들이랑
풀을 먹고 있었는데

늑대들이 떼로 몰려와서
정신없이 도망쳤단다!

그럼 몇 마리 당했어요?

그걸 어떻게 알겠어?

도망치느라
정신 하나도 없는데!

녀석들, 잔머리 썼군!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은 곳을
일부러 노린 거야

먹이를 저장하려고
미리 준비하는 거야

아, 그래그래!
꼭 해야 할 말이 있어

세상에, 정신없이 도망치다가
당치도 않은 걸 봤지 뭐니?

당치도 않은 걸 봤다뇨
뭐예요?

- 그게 뭔데요?
- 그게 말이야...

그 난리법석 속에서! 세상에!
염소랑 늑대가 사이좋게

- 손을 잡고 도망치지 뭐니?
- 네에?

- 염소랑 늑대가 말이에요?
- 설마!

- 어떻게 그런 일이!
- 맙소사!

- 설마! 잘못 봤겠죠!
- 설마!

나도 처음엔 도저히
믿기지 않더구나!

그래서 도망치는 것도 잊어버리고
잠시 쳐다봤을 정도였지

- 네? 정말이에요?
- 어떻게 그런 일이!

- 믿을 수 없어!
- 어떻게 늑대랑! 아아, 설마!

- 맙소사!
- 어떻게 그런 일이

그런데 말이다

그 염소, 어디서 많이 봤다 했더니
메이였지 뭐니?

- 네에? 메이요!
- 메이가 어떻게!

- 있을 수 없는 일이야!
- 어떻게 그런 일이!

그러고 보니 메이 녀석

요즘 어딜 그렇게
빨빨거리고 돌아다니지?

 

그나저나, 그 메이는
지금 어디 있어?

그러고 보니, 어제 저녁부터
얼굴도 못 봤네

아아! 생각만 해도
정말 끔찍한 일이야!

 

젠장!

어제 사냥은
괜히 허탕만 쳤어!

안개가 짙어서
어쩔 수 없었어요!

맛있는 염소가 눈앞에
있었는데, 바로 그때!

 

가브는 어디 있지?

 

실은 어젯밤부터
꽁무니도 못 봤는뎁쇼

가브는 어제...

바리 너하고 같이
염소를 쫓기로 하지 않았어?

그런데 그 전쟁통 같은
난리 속에서

안개 속에 사라졌는지
얼굴도 못 봤습니다!

 

염소 사냥에서 감히
제멋대로 행동하다니!

용서 못 해!
당장 가브를 불러와!

지금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데
무슨 수로 불러와요?

그렇다면...
지금 당장 찾아와!

 

- 세상에, 저 메이가!
- 어떻게 그럴 수가!

저렇게 순진한 얼굴로
늑대랑 어울리다니!

늑대는 우리 염소의
원수인데!

 

여러분, 무슨 일이 있어요?

왜 그런 얼굴로
쳐다보시는 거죠?

 

제가 무슨 실수라도!

 

메이, 너 말이야

소문을 듣자 하니
늑대하고 친하다고 하더구나

 

하루가 멀다 하고

염소 동료들이 잡아먹히는
이 난리통에...

늑대와 다정히
손을 잡고 돌아다니다니!

그게 정말이냐?

 

거짓말이지? 메이 그렇지?
거짓말이지?

부탁이야!
제발 거짓말이라고 말해줘!

 

사실...이에요

메이!

 

그래! 알았어!
지난번에 만난 늑대지?

살랑살랑 고개에
나타났던 그 늑대!

우린 네가 늑대한테

잡아먹히지 않았다고
박수를 치며 좋아했는데!

그때 말하던 친구가
그 녀석이었어!

 

- 정말이냐... 메이?
- 그 녀석...

그 늑대 무지무지
좋은 녀석이에요

늑대가 좋은 녀석이라고?

 

쟤가 제정신이야?

늑대는 우리를
잡아먹는 괴물이라고!

- 그래그래!
- 늑대는 우리를 잡아먹는다고!

어떻게 친구가 된단 거야?

 

잘 들어, 메이!
무슨 사정인진 모르지만

녀석들 눈으로 보면
우리들은 단순한 먹이다

녀석들은, 우리를
잡아먹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 녀석들이

 

어떻게 먹이인 염소와
친하게 지낼 수 있겠냐!

생각해봐, 메이!
우리들이...

 

이 풀이랑 친구가
될 수 있겠어?

이 풀을 잘 봐!

아무리 친해지고 싶어도

이 풀은 맛있는 먹이로밖에
안 보이잖아!

 

그 앤...
다른 늑대들이랑 달라

 

넌 지금 속고 있는 거야!
그 늑대한테!

그 말이 맞다...

잘 들어
녀석들 눈으로 보면

넌 아무 때나 먹을 수 있는
먹이일 뿐이다

아니, 그것만이 아니지

우리 염소들이 있는 데나

언제 어디로 먹이를
먹으러 가는지

 

몸이 약한 염소들이 어디에
몸을 숨기고 쉬고 있는지

모두 너를 통해 알아내려고
하는지도 모르지

그래, 메이!

한 마리씩 살살 꼬여내서
몰래 잡아먹을 수도 있다고!

그렇게 되면
우리 염소들은

- 이제 끝장이야!
- 무서워!

 

가브!
너, 지금 제정신이냐?

네에? 뭐가요?

시치미 떼지마!

안 그래도, 안개 속에서

맛있는 염소를 잡으려다 실패해서
울화통이 치미는 마당에!

누가 봤는데
그 염소가 도망치는 걸

친절하게 도와주셨다며?

 

- 정말이냐?
- 네?

아... 저기...

우물쭈물 거리지 말고
똑바로 대답해!

 

하지만 그 녀석...
아니

그 염소는 되게 좋은
녀석이걸랑요

- 염소가 좋은 녀석이라고?
- 저 녀석, 제정신이야?

이 멍청한 녀석!

염소는 우리 늑대의
먹이라고!

먹이가 좋든 말든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이야?

이봐, 가브!

염소, 소, 돼지,
닭, 토끼...

- 몽땅 우리 늑대의 먹이야!
- 그래그래!

그 먹이랑 친구가 되면
우리는 싸그리 굶어죽어!

먹이랑 친구가 됐다는 얘긴
들어본 적이 없어!

맞아 맞아!

그, 그, 그러니까 저기...

그 녀석 하나만은
괜찮잖아요

염소 하나쯤은
안 잡아먹어도

머리가 있으면
생각 좀 해보셔!

가령 한마리라도
염소랑 친구가 되면

그 녀석한테 시시콜콜
털어놓게 되잖아!

우리 늑대들이 어디 있는지!
언제 어디로 사냥하러 가고

어떤 작전으로 사냥할 건지
그 녀석이 모두 알게 되면

우리는 굶어죽을 수밖에
없는 거라고!

그런 얘기는 한번도
한 적이 없걸랑요!

정신 좀 차려!

네가 멍청해서
뭘 모르는데

넌 염소 녀석한테
이용당하고 있어!

이미 우릴 배신하고
염소 녀석을 구해줬잖아!

그건...

 

잘 들어, 가브!

넌 친구라고
생각하나 본데

그 염소 녀석이 자기 동료를
잡아먹는 늑대를

진정한 자기 친구라고
생각할 것 같으셔?

 

좋아!

가브한테 어떤 벌을 내릴지
결정할 때까지

골짜기 밑에 있는
동굴에 가둬라!

 

하긴 그렇지
염소들 말이 맞아

늑대랑 염소가 어떻게...

 

그러고 보니

가브는 말랑말랑 계곡에
있는 먹이를

제일 좋아한다고 했는데

 

하긴 가브는
원래 늑대니까

지금까지 우리를 몇마리나
잡아먹었어도 이상할 것 없어

 

하지만 가브는
제일 싫어하는 게

염소고기라고 했어

 

메이, 아직 안 잤니...?

할머니!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구나

 

아무래도 이 얘긴 꼭
해야 될 것 같아서 왔단다

뭔데요?

돌아가신
네 엄마 얘기다

- 네? 엄마요?
- 그래

네 엄마는 어딜 가나
항상 널 데리고 다녔지

이 세상에서
널 제일 사랑했단다

기억나요

 

어렴풋하긴 하지만

네 엄마는 아직 어린
널 지키기 위해

늑대한테 물려 죽었단다

- 정말이세요?
- 그래

하지만 늑대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용감하게 늑대의
한쪽 귀를 물어뜯었단다

물론 가엾게도
잡아먹히고 말았지만

그래, 엄마가 나를 위해

 

빨리 뛰라니까!

 

저런 겁쟁이!

 

이 정도도 못 해?

 

저런 겁쟁이 녀석!

 

저런 바보!

 

에이, 겁쟁이!

 

무슨 늑대가 이것도
못 뛰어서 쩔쩔매냐?

넌 늑대도 아닌 거야!

자! 빨리 뛰어봐!

- 정말 늑대 맞냐?
- 빨리 뛰라니까!

 

늑대 망신 다 시키네!

 

어떠냐? 간밤에
곰곰이 생각해봤니?

 

나도 밤을 꼬박
새우며 생각해봤다

너랑 친하다고 하는
그 늑대에 대해서 말이야

 

- 메이, 한번 더 만나보겠니?
- 네에?

- 가브를요?
- 그래, 그 녀석을...

만약 그 늑대 녀석이
널 이용하려고 한다면

우리가 오히려 그 녀석을
이용하는 거다!

 

넌 말이다

그냥 평소처럼 웃으면서
그 늑대를 만나서

늑대들이 어디 있는지
얼마나 있는지

잘 가지 않는 덴
어디인지

어떤 방법으로 사냥할 건지
알아오지 않겠니?

 

그렇게 하면 우린 예전처럼
널 동료로 받아들일 게다!

어떡하겠니?

 

알겠습니다!
한번 해볼게요

 

정신이 좀 들었냐?

 

너한테 내릴
벌이 정해졌어

 

우리 늑대의
규칙에 따라서 넌...

즉시 사형이다!

 

다만!

 

네 아버지는 나랑
가장 친한 친구였지!

그래서...

너한테 특별히 한번
기회를 주기로 했다

 

너와 친해졌다고 하는
그 염소 녀석을

한번 더 만나고 와라

네?
메...메이를요?

그렇다! 넌 녀석을 만나
다정한 얼굴로

염소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고 와라

 

축하한다! 그렇게 하면
넌 살 수 있으니까!

염소 녀석들이 어디 있고
어디로 움직일지

알아오기만 하면
우린 아무 고생하지 않고

매일 맛있는 먹이를
배불리 먹을 수 있단 말씀!

어때? 알았냐, 가브?
기회는 한번이다!

만약 이번에도 또
어리석은 짓을 할 땐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

배신자는 이 세상
끝까지 쫓아가서

처리한다!

그게 우리 늑대의 규칙이다!
알겠나!

아, 알겠걸랑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