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시모어 호프먼, 크리스토퍼 월켄
마크 이바니르, 캐서린 키너

 

감독
야론 질버만

 

마지막 4중주

 

'루드비히 반 베토벤
현악 4중주 14번'

 

'피터'

 

'감정!'

 

'활 천천히'

 

현재의 시간과 과거의 시간은
아마도 모두

 

미래의 시간 속에 있고

 

미래의 시간은
과거의 시간에 들어있다

 

모든 시간이 영원히 현재라면
시간은 돌이킬 수 없는 것

 

혹은 끝이 시작을
앞선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끝과 시작은
늘 그곳에 있었고

 

시작의 이전과 끝의 이후엔
늘 현재가 있다

 

베토벤 후기 현악 4중주에 대한
T.S. 엘리엇의 평이다

 

엘리엇의 이 말에 대해
생각해볼까?

 

그가 가장 좋아했다는
베토벤 14번으로 시작해보자

 

이 작품은 총 7악장인데
당시엔 4악장이 기본이었어

 

또 각 악장이 연결돼 있어
중간에 쉬어선 안 되지

 

포즈도, 튜닝도 안 돼

 

베토벤은 각 악장 끝에
쉼 없이 연주하라고 명시했어

 

인생에 무작위로 일어나는
사건 간의 일관성이나

 

통일성을 보여주고 싶었을까?

 

아니면 청력을 잃어가며

 

쉬거나 숨 돌릴 시간도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지

 

외로이

 

인생의 끝을
직감하면서 말이야

 

연주자에겐 이렇게 오래
쉼 없이 연주한다는 건

 

각 악기들의 음률이
맞지 않게 된다는 의미야

 

한마디로 엉망진창이지!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연주를 멈출까?

 

모두가 불협화음이어도

 

필사적으로 서로에게
맞추려고 노력해야 할까?

 

정답은 나도 몰라

 

함께 알아보도록 하자

 

연락 빠른데?

 

잠깐만

 

홍콩이 2일과 4일
상하이가 13일

 

다른 단원들과
먼저 확인해볼게

 

건배 제의를 하지

 

이번 시즌 전의 휴가 땐
자네들이 더 그리웠어

 

알다시피
작년이 힘든 해였잖아

 

미리엄도 함께했으면
좋았겠지만...

 

- 늘 우리와 함께할 거예요
- 3주 후면 벌써 1주기야

 

하지만
음악과 자네들 덕에

 

이겨낼 수 있었네

 

정말 고맙네, 근데 우리...
올해가 25번째 시즌인가?

 

- '푸가'를 위해 건배
- '푸가'를 위해

 

알렉스가 교수님 수업
진짜 멋지다던데요?

 

- 그래? 언제 이야기했어?
- 오늘 오후에

 

재능이 있어, 빨리 배우고
훌륭한 딸을 뒀어

 

- 자랑스러워요
- 우리 앞에선 연주를 안 해요

 

'커티스'에서 돌아왔으니
이제 자주 해주겠지

 

하지만 제1바이올린이 되려면

 

세심한 개인 교습이
필요할 것 같아

 

그래서 말인데
다니엘이 한번

 

연주를 듣고
조언과 격려를 해주면 어떨까?

 

- 그러죠, 자기들만 괜찮으면
- 당연히 좋지

 

그럼 시작할까?

 

이번 시즌엔 베토벤 연작을
암기해서 연주하면 어때?

 

- 나도 늘 해보고 싶었어
- 좀 쇼하는 것 같잖아?

 

악보에 적힌 지시들을 안 보고
그냥 연주해 본다는 게

 

재미있는 도전이 될 것 같아

 

- 도전?
- 그래, 도전

 

음악이 무슨 도박이야?

 

이 지시들은
깊은 사고의 반영이야

 

나도 다니엘과
같은 생각이야

 

동점이면 보수파가
원하는 대로 해야지

 

비브라토가 안 맞아요

 

아직 휴가 기분인가

 

- 처음부터 다시 가지
- 그래요

 

- 비올라부터 할까?
- 좋아

 

미안, 정신을
다른 곳에 뒀나 봐

 

틀린 건 첼로야

 

미안하게 됐네
내가 왜 이러나 몰라

 

하루 이틀이면
제대로 돌아올 거야

 

- 그럴 수도 있죠
- 그럼요

 

- 연습 날을 다시 잡을까요?
- 언제가 좋을까?

 

다음 주 화요일?

 

괜찮은 거죠, 피터?

 

괜찮아
그냥 좀 이상하네

 

손을 이렇게 뻗어보세요

 

좋아요

 

오른손으로
주먹을 쥐었다가 펴세요

 

이번엔 왼손 주먹, 펴고

 

속도를 빨리 해보세요

 

폈다, 쥐고
폈다, 쥐고

 

좋아요

 

이제 일어나 보세요

 

이제 방 끝쪽 문까지
걸어갔다가

 

다시 이리 걸어와요
자연스럽게

 

좋아요

 

일단은
혈액 검사와

 

MRI 검사를
해야겠어요

 

일주일 뒤에
결과가 나오면 보죠

 

MRI? 무슨 심각한
병에 걸린 건가요?

 

검사를 해봐야
알 수 있어요

 

확실하지 않더라도
말해줘요

 

괜찮아요
우리 사이에 뭐 어때요

 

뭔데요?

 

방금 한 몇 가지 테스트와

 

당신이 얘기한
증상들로 봐서는

 

파킨슨병 초기라는 게
내 소견이에요

 

고작 동작 몇 개로
파킨슨병인지 안다고?

 

유감이지만
그런 것 같아요

 

상태를 정확히 알려면

 

혈액 검사와 MRI를
해야 해요

 

향 좋지?

 

일단 일어나봐
후회하지 않을 거야

 

섹시한 프랑스어로 할까?
마담?

 

그만... 나 진짜로...

 

로버트, 그만
진짜 그럴 기분 아니야

 

거긴 아다지오잖아?
더 천천히 다시

 

활이 현 안으로
들어갔다가 나올 때

 

현의 당김을 느껴야 돼
그 뒤에 놓아주고

 

- 그러려고 하잖아요
- 그러려고는 하지 마

 

하지 말라뇨?

 

이 푸가는 엄청난 작품이야
감정이 요동쳐야 하는데

 

네 연주에선 그게 안 들려

 

음색은 어둡게 하고,
다시!

 

비브라토, 첫 음부터

 

이건 기도야, 알렉스

 

적어도 한 마디는 듣고
얘기하심 안 돼요?

 

넌 아직 이 작품 연주할
준비가 안 돼 있어

 

학교에선 다들 내 연주를
좋아라 하는걸요

 

- 좋겠구나
- 피터 교수님도 마찬가지고

 

왜 베토벤은 느린 푸가로
작품을 시작할까?

 

- 모르겠네요
- 준비도 안 됐으면서 계속

 

14번을 고집할 거면
베토벤 전기를 읽으면서

 

그 사람 마음에
들어가려 노력이라도 해

 

베토벤 아버지가 술 취한
친구들 앞에서 연주하라고

 

한밤중에 어린 베토벤을
깨우곤 했던 건 알아?

 

그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내가 좀 켜볼까?

 

필라!

 

안녕, 로버트

 

- 오랜만이네요
- 그래요

 

- 어떻게 지냈어요?
- 새 공연 준비해요

 

얘기했잖아요
목요일에 시작인데...

 

이번엔 올 수 있죠?

 

- 리스트에 이름 올려둘게요
- 그래요

 

추천해준 바르토크 4중주
정말 좋던데요

 

5악장은 특히
엄청나더군요

 

잠깐, 잠깐만
정말 좋았어요?

 

네, 거기 맞춰서
안무도 짜겠던걸요

 

그럼 쇼스타코비치로 넘어가죠

 

관심 있어요?

 

그럼요

 

여기 다 들어있으니
뛰면서 들어요

 

여기선 어느 파트 연주해요?

 

제2바이올린요
그게 언제나 내 파트예요

 

- 언제나?
- 네

 

내가 없으면 엄청 쓸쓸한
3중주가 될걸요?

 

제1과 제2바이올린은
상하 관계가 아니에요

 

- 역할이 다를 뿐이죠
- 어떻게 다른데요?

 

난 선율이나 베이스라인을
연주하면서

 

독주의 성격을 띤
제1바이올린과

 

선율 아래로 흐르는

 

비올라, 첼로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죠

 

쉽게 말해 모두를
하나로 모으는 거죠

 

중요한 거 같네

 

그래도
독주하고 싶지 않아요?

 

음... 물론 하고 싶죠

 

그런데 왜 안 해요?

 

사실 하려고 했었어요
그러다 작년에...

 

음...

 

적당한 때가 아니었어요

 

그 기분 알아!

 

우리 엄마가
적당한 때란 없대요

 

그건 언제나
적당한 때라는 뜻이죠

 

- 어머님이...
- 알아요, 대단하죠?

 

- 그렇네요
- 가요

 

나디르 박사 말이
내 증상이 아마도

 

파킨슨병 초기 같다는군

 

파킨슨병이라고요?

 

뇌에서 움직임을 관장하는
도파민이 떨어져 간대

 

통증도 있으세요?

 

아니, 전혀
게다가 치료약도 있어

 

완치는 안 돼도,
도파민을 대체해서

 

병의 속도를 늦춘대

 

다행이네요

 

하지만 더 이상
연주는 힘들 것 같아

 

약이 효과가 있으면요?

 

이 문젠 현실적으로 봐야 해,
피하지 말고

 

의사 말이 약효가 있으면
한두 시즌은 버틸 거래

 

하지만 난
이미 결정했어

 

쿼텟의 미래도 생각해야지

 

니나 리가 어떨까 해
훌륭한 첼리스트고

 

다들 그녀를 좋아하잖아

 

괜찮지?
다니엘은 어때?

 

니나는 아직도 기디언과
연주하지 않나요?

 

아니, 난 안 괜찮아요
지금 그 이야긴 하지 말죠

 

나도 같은 생각이에요

 

그리고 약이 잘 들어서
내가 연주를 하게 되면

 

이번 시즌 첫 콘서트를
고별 공연으로 하고 싶어

 

말도 안 돼

 

만약 새 첼리스트를
찾아야 한다면

 

그런 일이 생긴다면

 

그건 새로운 시작이고
새로운 소릴 갖겠지

 

그렇게 된다면

 

나도 제2바이올린만
계속하지는 않을 거야

 

대체 무슨 생각인지
물어봐도 될까?

 

자네와 내가 역할을
번갈아가며 맡는 거지

 

처음엔 굳이 균등하게
분배할 필요는 없겠지만

 

결국 작품별로
누가 뭘 할지 결정하면 되겠지

 

말도 안 돼
지금 그런 얘기가 나와?

 

대단한 생각이야
정말 끔찍한 생각이라고

 

- 전혀 그렇지 않아
- 그렇고말고

 

게다가 타이밍도
이보다 나쁠 순 없겠어

 

피터가 너 바이올린을
바꿀 때가 됐다더구나

 

교수님이요?

 

엄마랑 같이
적당한 걸 찾아보마

 

교수님
정말 멋쟁이야!

 

내일 수업 취소하셨는데
요즘 좀 어떠셔요?

 

비교적 잘 견디고 계셔

 

걱정되는 건
네 엄마야

 

누가 보면 엄마가 파킨슨병에
걸린 줄 알겠어요

 

빈정거리지 마

 

엄마는 걱정돼 그러지
네가 이해해 드려야지

 

그러시든가요

 

잘난 완벽주의자씨는
어떠세요?

 

피터를 도와 새 첼리스트를
찾는 중이야

 

세상에, 감정이라곤 없네요

 

그 반대야, 마음을 온통
바이올린에만 줘서 그렇지

 

그 사람한테 수업받는 거
그만할까 봐요

 

왜?

 

14번을 연주하려면
그의 불행을 느껴야 한다면서

 

수업은 10분 만에 끝내고는
베토벤 전기를 읽으래요

 

맞는 말일 수도 있어

 

피터가 슈베르트의 마지막
요청에 대해 얘기해주던?

 

베토벤의 현악 4중주 14번만
듣고 싶어 해서

 

죽기 전 5일간 그것만
연주해줬다는 얘기요?

 

맞아, 내 비법을 알려줄게

 

그 작품을 연주하기 전에
난 우리 쿼텟이

 

슈베르트가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듣는 곡을 연주한다고
상상한단다

 

보 브리지라니...

 

미국에 처음 온 이후로
온 적이 없는 것 같아

 

줄리어드 때 생각나네

 

맞아, 줄리어드

 

왜 여길 약속 장소로
골랐는지 기억해?

 

글쎄?

 

- 다윈 때문이야
- 다윈?

 

자기는 다윈의
자연도태설에 빠져있었어

 

그랬지

 

그렇게 보자면
별로 달라진 게 없어

 

그럴까?

 

늙은이는 병들어서
도태하잖아

 

약효는 좀 있대?

 

별 효과가 없나 봐
아직 얼마 안 됐으니

 

콘서트 때까지는
효과가 있길 바라야지

 

콘서트를 할 정도로
회복이 된다면

 

이번 시즌을 함께
마무리해야 돼, 다니엘

 

왜 그분 의사를
존중하지 않아?

 

난 그게 피터의 의사라
생각 안 해

 

그분은 지금 감당이
안 되는 거야

 

아내를 잃은 뒤
이젠 병까지...

 

적응할 시간을 드려야지

 

로버트는 어쩔 거야?

 

로버트가 뭐?

 

역할을 교대하자며

 

당신이 얘기 좀 해봐

 

사태를 더 악화시킬걸?

 

역할을 바꾸면
소리도 완전히 바뀔 거야

 

새 첼리스트가 오면
어차피 소리는 바뀌게 돼 있어

 

니나라면 그렇지 않을 거야

 

작년에도 피터 대신 잘했어
우리한테 잘 맞출 거야

 

나 대신 로버트랑
얘기 좀 해주면 안 돼?

 

아무튼 피터가 그만두면
나도 그만둘지 몰라

 

알겠어

 

내가 피터와 얘기할게
당신은 로버트랑 얘기해

 

이럴 줄 몰랐는데

 

난 지금 내 나이가
너무 좋네

 

남들한테 아무것도
증명할 필요가 없어서 좋아

 

그냥 무대에 올라서
연주만 하는 거야

 

뮌헨 콘서트가 끝나고
관객들이 박수를 치는데

 

니나가 속삭이는 거야
"재밌었어요!"라고

 

상상이 가?
니나가 "재밌었어요"라니!

 

정말 잘 가르쳤어
자네한테 정말 고맙네

 

기디언, 자네한테 정말
큰 부탁을 하나 해야 해

 

자네 부탁이라면 뭐든지

 

연주를 그만두기로
결심했어

 

그래서 '푸가'에 나 대신
니나를 영입했으면 해

 

- 니나? 우리 트리오의 니나?
- 그래, 그 니나 말이야

 

그녀가 적임자야
우리 레퍼토리도 다 알고

 

멤버들도 다
그녀를 좋아해

 

우린 그녀가 필요하다네
물론 본인만 좋다면...

 

피터, 실수하는 거야

 

은퇴하지 말게

 

장담컨대 자네한테도
새 바람이 불어올 거야

 

지금보다 훨씬
좋은 인생이 될 거라고

 

그리고 니나를 보내달라니
말도 안 되네

 

그녀가 없는 우리 팀은
상상할 수 없어

 

기디언, 피아노 트리오에서
첼리스트를 찾는 건 쉬워

 

새 첼리스트 찾는 건
내가 도와줄 수도 있네

 

하지만 '푸가'는 니나가
안 오면 끝장일 거야

 

그 정도로 중요해

 

자네 말은 알겠네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파킨슨병에 관한 기본적인
증상부터 말씀드릴게요

 

그중 하나는 모든 게
작아진다는 점이에요

 

자세도 움츠러들고
보폭도 줄어들죠

 

목소리도, 심지어는
글씨도 작아집니다

 

모든 게 수축되고
줄어들어요

 

그래서 그 경계들을
자꾸 밀어내야 합니다

 

움직임을 크게 해서
주도권을 우리가 잡아야죠

 

파킨슨병이 우리를
휘두르게 하지 말고요

 

그러기 위해선 의식적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그럼 팔 스트레칭부터
시작해 볼게요

 

팔을 위로 뻗었다가
아래로 내리고

 

다시 위로 뻗고
밖으로 폅니다

 

이제 앞으로 폈다가
옆으로...

 

위로 아래로... 좋아요

 

앞으로, 옆으로 뻗으세요

 

잘했어

 

아빠한테 비법을 배웠죠

 

좋은 비법이었나 봐?

 

그럼요, 아저씨도 아빠한테
좀 배우세요

 

그래? 어떤 걸?

 

선생님은
덜 재수 없어지는 법을

 

배우셔야 할 것 같아요

 

그거 재미있네

 

넌 내 도움이 더 이상
필요 없을 것 같아

 

교수님께는 내가
잘 말하마

 

그냥 농담한 거예요
진심이 아니라고요

 

아니, 진심이었어

 

네 힘을 시험해보고
싶었을 테지, 다 좋아

 

내 힘을 시험한다고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니, 관심받고 싶은
절박한 욕구라고 할까

 

음악에만 집중하라고
충고해주고 싶구나

 

음악에 집중하라고요?

 

그게 다예요?

 

좋은 연주자는 고사하고
괜찮은 연주자가 되기도

 

얼마나 힘든지 깨달았겠지
아마 의문도 생길 거야

 

이런 고생을 할 가치가 있는지
내가 재능은 있는 건지

 

압박감은 잘 견뎌낼 수
있을지 등등 말이야

 

바이올린만 들고
좁은 스튜디오에 갇혀서

 

쥐꼬리만 한 발전을 하려고
아등바등하는 삶을 말이야

 

그래서 쿼텟을
결성하기로 마음먹지

 

그게 네 문제를 다 해결해
줄 거라고 생각하지만...

 

해결은커녕
문제는 더 쌓여만 가고

 

이제 빼도 박도 못하고
나머지 셋에 맞춰야 하지

 

연주 방식
취향, 결점까지도...

 

또 그들은 계속 네 재능을
의심하고 실수를 꼬집어서

 

네 작은 자존심은
깊은 상처를 입게 돼

 

아니야?

 

넌 특별해, 알렉스

 

그런가요?

 

재능을 낭비하지 말거라

 

다음 주에 보자

 

'푸가 현악 4중주단
25년의 역사'

 

'피터 미첼
새로운 쿼텟 결성'

 

제가 다니엘을 가르칠 때
쿼텟을 결성하라고 권유했어요

 

하지만 다니엘은
독주자가 되고 싶어 했죠

 

'피터 미첼 - 첼로'
연주자라면 누구나 그렇듯이

 

어느 학기 마지막 날
다니엘이 찾아와서는

 

자기가 쿼텟을 만들 건데
첼로를 맡아달라더군요

 

전 순간 생각했죠

 

얘가 미쳤나? 난 자기보다
서른 살은 더 많은데...

 

줄리엣 어머니와 함께한
'허드슨'이 해체된 이후부터

 

제겐 연주를 하고픈 마음이
사라졌어요

 

하지만 다니엘은 끈질겼고
제 아내도 해보라길래

 

줄리엣이 비올라를 맡으면
저도 하겠다고 했어요

 

근데 실은 비올라는 처음부터
줄리엣을 생각했어요

 

로버트를 찾아낸 이야기가
정말 흥미롭고 운명적이죠

 

직접 말해주게

 

줄리어드 마지막 날에
다니엘이 방문을 열더니

 

한 악장만 같이
연주해보자더군요

 

마지막 곡이라면서요
전 별생각 없었어요

 

전 그때 1학년이었고
현대음악 작곡을 공부하러

 

뉴 잉글랜드 콘서바토리로
학교를 옮기려던 차였거든요

 

쿼텟의 제2바이올린이라니...

 

그런 진지한 헌신을 결심하긴
너무 어렸어요

 

하지만 첫 음을 연주하고

 

'로버트 겔바트 - 제2바이올린'

 

바로 느꼈죠

 

4중주의 역할과 매력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한 그룹의 일부가 되는
느낌 말이에요

 

또 일부가 되는 게
하나가 되는 거란 것도...

 

그때까진 몰랐어요
나만 특별하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그 일부가 되는 게
더 특별한 느낌이더군요

 

게다가 제 맞은편에는
정말 아름다운 여자가

 

인생이 걸린 것처럼
비올라를 연주하고 있었죠

 

숨이 멎는 줄 알았어요

 

운명적이랄까...
뭐 그런 느낌이었어요

 

- 로버트
- 응?

 

그 역할 교대 얘기
없던 걸로 했으면 좋겠어

 

왜?

 

그것 때문에 우리 쿼텟이
혼란에 빠질 테니까

 

왜 매번 나만...

 

다니엘은 절대 당신
반주 안 해줄 거야

 

아, 내가 반주를 해주는
역할인 줄은 몰랐네

 

아니, 그게 아니라...
당연히 아니지

 

왜 하필 지금
이 얘길 꺼내?

 

나도 제2바이올린을
하고 싶어서 한 건 아니야

 

우리 조화가 좋아서
우기지 않았던 것뿐이지

 

조화를 위해서
참았던 거라고

 

알아, 고맙게 생각해

 

그러다 피터가 떠난다기에...

 

만약 안 떠나면?

 

그래도 역할은
바꿔보고 싶어

 

우리 초반에 어땠는지 기억나?

 

매 리허설 때마다
새로운 발견이었어

 

리허설에 가고 싶어서
안달이었지

 

사소한 것까지 논쟁했어

 

활 쓰기 하나 놓고도
서로 죽일 듯 싸웠다고

 

올려야 하는 것 같은데?
아니 내려야지

 

- 아니, 올려야 할 것 같은데?
- 알아, 진짜 끔찍했지

 

그때가 그리워

 

그렇게 흥분했던 때가
얼마나 그리운지 몰라

 

다니엘은 당신이 퍼스트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

 

뭐라고?

 

당신이 좋은 퍼스트가
될 수 없다고 본다고

 

- 왜 당신은 내 편이 아니야?
- 당신 편이야, 나는...

 

왜 내가 아니라
그놈 편을 들어?

 

다니엘 편을 드는 게 아니야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

 

이런 문제에 있어서는
공정하기로 했잖아

 

좋아

 

그럼 당신은 완전히
공정하게 말해서

 

내가 다니엘보다
못하다고 생각해?

 

이러지 마, 난 당신이...

 

공정하게 말해
공정하게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라고
생각해

 

아주 훌륭하지

 

제1이냐 제2냐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나한테는 중요해

 

- 당신 혼자 얘기가 아니라...
- 아니, 이건 내 문제야

 

아니, 쿼텟 전체를
생각해야 해

 

당신은 최고의
제2바이올린이야

 

- 그 역할에 당신보다...
- 대단해

 

나은 사람은 없어

 

맙소사

 

차 좀 세워주세요

 

이러지 마
모두가 당신 공은 인정해

 

- 대단하군
- 제발, 로버트

 

당장요

 

다니엘이랑은 언제
이 얘길 한 거야?

 

쿼텟이 망가지는 걸 막자면서
연락이 왔어

 

기디언을 만났는데

 

싫다더군

 

대체할 첼리스트를
찾아준다고 해도요?

 

니나랑 일하는 게
너무 좋대

 

니나 이전의 여섯 명도
엄청 좋아했었죠

 

40년간
고작 여섯이었어

 

걱정 마세요
내일 니나랑 얘기해볼게요

 

아직은 그러지 말고
좀 더 기다려보자

 

은퇴를 다시 생각해보시면
어때요?

 

저흰 곧 다시 연주를
하실 수 있다고 믿어요

 

가능한 한 오래
함께 연주했으면 좋겠어요

 

연주의 질은 절대
타협하지 않기로 했잖나

 

새 첼리스트를 찾아서
'푸가'의 새 시대를 열어봐

 

난 좀 쉬어야겠어

 

연습해야지!

 

우리의 실력을
제대로 보여주려면

 

공연이 코앞이야

 

니나, 교수님이
파킨슨병에 걸렸어

 

기디언한테는
알리기 싫었을 거야

 

이런
좋지 않아

 

- 일어났어?
- 응

 

당신 좋아하는 아침 메뉴야

 

배고프지?

 

어제는 미안해
내가 정말 잘못했어

 

- 정말 그러려던 건...
- 나 땀 냄새나

 

괜찮아, 상관없어

 

샤워부터 해야겠어
잠깐만

 

금방 올게

 

- 당신 바이올린 어딨어?
- 뭐라고?

 

로진이 필요한데
못 찾겠어

 

소파 옆에 없어?

 

없어, 침실에도 없고

 

젠장!

 

술집에 두고 왔어

 

어느 술집?
내가 전화해볼게

 

아냐, 내가 찾아올게
금방 나가

 

염병할!

 

- 안녕
- 안녕

 

고마워요

 

- 피곤해 보여요
- 네

 

잠은 좀 잤어요?

 

한 2시간?

 

난 한숨도 못 잤어요

 

동틀 때까지
우리 생각을 하느라

 

이건 아니에요

 

우리 이러면 안 돼요

 

어젯밤 같은 건
정말 드문 경험이잖아요

 

감정을 부정하지 말고
느끼고 받아들여요

 

알아요, 하지만
난 그럴 수 없어요

 

여보

 

이쪽은 필라

 

내가 말했었지?
내 조깅 친구

 

'푸가'의 팬이야

 

막 가려던 참이에요
여기 앉으세요

 

- 좋은 사람 같네
- 어, 좋은 여자야

 

역할 교대를 실생활에서도
실천하는 거야?

 

- 어떻게... 대단해 정말
- 망할, 난...

 

미안해

 

정말 미안해, 여보

 

그냥 하룻밤 실수고
방금 다 정리했어

 

어제 나한테
뭐라고 했어?

 

미래를 위한 방안을
다니엘과 논의했다고

 

- 무섭게 화를 내놓고...
- 어젠 정말 상처받았어

 

- 난 우리 미래만 생각하는데
- 내가 실력이 안 된다며!

 

그래서 이런 식으로
나한테 화답하는 거야?

 

- 다른 여자랑 놀아나는 걸로?
- 내가 실력이 없다고?

 

그렇다고 그런 짓을 해?

 

- 퍼스트, 세컨드 그게 뭔데?
- 내 인생이고 내 음악이야

 

- 알량한 자존심 문제지!
- 내 모든 것이라고!

 

난 관심 없어!

 

당신을 사랑해

 

내게 세상 제일 중요한
사람은 당신이야

 

그건 알아줘

 

바보 같은 짓 한 거 알아
내가 다 망쳤어

 

제발 용서해줘

 

집에 늦게 갈 테니까
자정까진 나가줘

 

여보, 제발...

 

짐 챙겨서 나가

 

다니엘입니다
메시지를 남겨주세요

 

다니엘
좋은 소식이야

 

기디언이 전화했어
마음을 바꿨다는군

 

니나와도 통화했는데
공연 때 함께 해준대

 

이따가 다시 전화하지
끊네

 

좋은 소식이 있어

 

니나가 합류할 거야

 

아저씨...

 

무슨 일이야?
안 좋은 일이라도 있어?

 

이건 말도 안 돼요

 

아저씨 없는 쿼텟은
상상도 할 수 없어요

 

아저씨 없이
투어를 다니고

 

제 옆에서 다른 사람이
연주를 한다는 게...

 

전 못할 것 같아요
아니, 하고 싶지 않아요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라

 

네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내가 한 제일 큰 실수가

 

바로 쿼텟이 깨지게
방치한 거야

 

슬퍼도 싸워야 했다
나약하게 두려움에 떨면서

 

손 놓고 있을 게 아니라
새 연주자를 찾았어야 해

 

너희는 같은 실수를
반복해선 안 돼

 

마음 단단히 먹어라
난 두 번째 기회를 얻었지만

 

모두가 그럴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데려와 주셔서 고마워요

 

여기 정말 좋지?

 

푸가 쿼텟이 왜
훌륭한지 말해볼까요?

 

그래...

 

우선 선생님 덕분이죠

 

냉혹하리만큼 정확한 연주로
관중들을 홀리잖아요

 

마치 피리 소리에 홀려
춤을 추는 코브라들처럼

 

그다음엔 우리 아빠가...

 

연주에 색과 리듬
그리고 질감을 더하죠

 

선생님을 돋보이게 하고
강렬하게 만들지만

 

절대 선생님 앞으로
나서진 않아요

 

훌륭한 제1바이올린이 있는
쿼텟들의 경우

 

제2바이올린 실력이
연주의 수준을 좌우하지

 

너희 아버지는
정말 훌륭해

 

그리고 우리 엄마가...

 

선생님과 아빠에겐 없는
소리의 깊이를 더해줘요

 

그 소리를 들으면
왠지 눈물이 나죠

 

상처받은 영혼의
소리라고 해야 하나?

 

3명의 주인을 동시에
모시기 위해

 

엄마가 고안해낸
생존전략인 거겠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

 

자신의 파트너

 

그리고 자신이
욕망하는 사람...

 

그건 옛날 일이야

 

- 네 부모님이 사귀기 전이지
- 물론 그러시겠죠

 

어쨌든 상관없어요

 

여기에 마음이 너그러운
첼리스트까지 더해져

 

완벽해지는 거죠
감정에 기술까지 더해져

 

관중들은 연주를 들으며
감동만 받으면 끝!

 

그야말로 이상적인 쿼텟이죠

 

브라보!

 

그나저나 피터 교수님도
은퇴하시고

 

엄마 아빠도 저런데
앞으로 어쩌실 거예요?

 

너네 엄마 아빠가 왜?

 

안녕하세요, 로버트

 

- 갈리아노 가져왔어요
- 고마워요

 

한번 연주해 보세요
아직 경매 시작 전이니까

 

고마워요

 

- 여보, 왔어?
- 늦어서 미안

 

- 줄리엣이에요
- 브렌다 프랭클린입니다

 

안녕하세요

 

- 만나서 반가워요
- 저야말로요

 

- 좀 이따 올게요
- 감사합니다

 

딱 맞게 왔네

 

한번 연주해 볼래?

 

아니, 당신이 해봐

 

저음 부분의
깊이감이 좋아

 

- 비올라랑 아주...
- 톤이 따뜻하고 울림도 좋고

 

잘 어울리겠어
스크롤도 근사하고

 

알렉산드라가
갖고 싶어 할 만해

 

- 아름다워, 잠깐 줘봐
- 몸체 상태도 좋아

 

- 한번 안 켜볼래?
- 괜찮아

 

- 이건 사야겠어
- 반드시

 

잠깐 얘기 좀 할까?

 

우린 바이올린 사러
만난 거야

 

잠깐 얘기도 안 돼?

 

얘기 끝났잖아

 

아니, 시작도 안 했고
그게 바로 우리 문제야

 

우린 25년간 의미 있는
세월을 함께 했고

 

좀 더 많은 얘기 나눌
사이는 된다고 생각해

 

같이 살면서 함께
연주도 한다는 게

 

쉽지 않을 거라는 건
둘 다 알고 있었잖아

 

그렇지만 정말
멋진 시간들이었어

 

물론 나쁠 때도 있고
좋을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우리 결혼 생활이
꽤 좋았다고 생각해

 

그래서 한 번의 실수로
망치고 싶진 않아

 

당신을 처음 본 순간
사랑에 빠졌지만

 

당신은 나만큼은 아닌 것 같아
항상 겁이 났어

 

결혼도 임신 때문에
억지로 한 것 같았고...

 

당신 마음이 온전히
내 곁에 있지는 않았지

 

그래도 언젠가는 완전히
내 곁으로 오리라 믿으며

 

참고 살아왔어

 

작곡도, 다른 연주의 꿈도
다 버려야 했지만

 

행복하게 포기했어

 

우리 사이에 대한
어떤 의심도 없이

 

당신과 함께하고

 

같이 연주하고

 

아이를 갖기 위해서...

 

당신 날 정말 사랑하긴 해?

 

아님 내가 그냥 편한 거야?

 

괜찮은 아빠에 남편...
괜찮은 제2바이올린이라서?

 

- 정말 훌륭하죠?
- 네, 완벽하네요

 

경매에 참여할게요

 

- 행운을 빌어요
- 고마워요

 

- 이제 곧 시작합니다
- 네

 

이게 꽤 좋아

 

나쁘진 않네, 괜찮아

 

이건 어때요?

 

사실 이 사람은 자기 말에서
털을 직접 자르는 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수입을 해오는 거야

 

- 이건 시베리아산인가?
- 그렇네

 

최고의 샘플들로 챙겨줄 테니
한번 보고

 

마음에 안 드는 건
돌려보내게

 

고마워, 잭

 

이건 시베리아산인가?

 

대체 뭔 소리예요?

 

아무 털이나 다 활로
쓸 수 있는 게 아니야

 

조직이 조금만 달라도
음색 전체가 바뀌거든

 

왜?

 

편집증 환자

 

완전 편집증이라고요!

 

내가 봐도 그래

 

춥나?

 

왜 솔로 연주자로
나서지 않았어요?

 

관심 없어

 

솔로는 오케스트라와
서너 번 리허설하고

 

한 작품을 한두 번
연주하는 게 고작이지

 

그리고는 다른 도시의
다른 오케스트라

 

새로운 지휘자와
또 맞춰야 해

 

우린 작년까지 3천 번의
공연을 함께했어

 

이런 얘길 하니
내가 엄청 늙다리 같지만...

 

제대로 된 해석을 하려면
그 정도는 공연을 해야지

 

위대한 작곡가들은
진솔한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고

 

자신들의 영혼 속으로
깊이 파고들고자 할 때

 

언제나 4중주로 작곡했어

 

만일 그들이
충분히 용감했다면...

 

지금 뭐 하는 거야?

 

샘플 받아올게

 

슬랩 컷으로 뒷판이 장식된
아름다운 갈리아노입니다

 

전화로 1만 4천 달러
부르신 분이 계십니다

 

빨리 손들어

 

얼마까지 쓸 거야?

 

1만 5천!

 

- 저쪽 끝에서 1만 5천 나왔습니다
- 손들라고

 

오른쪽에 멋진 모자 쓰신
숙녀분께서 1만 6천

 

오른쪽에 1만 6천

 

1만 6천이 끝인가요?
1820년 갈리아노입니다

 

손들라고

 

아까 내 말 때문에
맘 상했다면 미안해

 

2만!

 

통로에 계신 분
2만 부르셨습니다

 

뒤쪽 여성분이 2만 1천
그 이상 없으신가요?

 

2만 5천

 

통로 쪽 신사분
2만 5천 부르셨습니다

 

2만 5천...
2만 6천 없으신가요?

 

없으시면 마감합니다
2만 5천입니다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더 없으신가요?

 

2만 5천에
낙찰되었습니다

 

진짜 연주자에게 갈
바이올린을 뺏어 좋겠소

 

감사합니다

 

여보, 기다려!

 

- 줄리엣, 잠깐만!
-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기다려

 

왜?

 

대체 원하는 게 뭐야?

 

내가 무슨 말을
해주길 원해?

 

당신을 언제나 사랑했지만

 

당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표현하지 못했다고?

 

진실을 말해줄게
나도 몰라

 

당신을 사랑하냐고?
나도 몰라

 

사랑하지 않냐고?
나도 몰라

 

내 마음, 나도 모른다고!

 

그러니까
나 좀 내버려둬

 

누구세요?

 

- 다니엘...
- 잘 있었나

 

들어와

 

자네 제정신이야?

 

섹스 한 번에
결혼생활과 우리 쿼텟을

 

다 망쳐놓을 셈이야?

 

- 그러는 넌?
- 내가 뭘?

 

내 뒤에서 줄리엣한테
수작을 부리면서....

 

내 아내가 나를 등지게
조종하고 있잖아

 

바보 같은 소리

 

누가 누굴 조종해?
자네 피해망상이야

 

널 다시 정신 차리게
해주고 싶었을 뿐이야

 

아니, 난 아주 오랜만에
드디어 정신을 차렸어

 

그래?

 

존중받지 못하는 자리에
머무는 거?

 

이제 안 해

 

자넨 훌륭한
바이올린 주자야

 

자네랑 연주하는 게
정말 좋아, 진심이야

 

근데 제1바이올린 감은 아니야
그러기엔 훈련도 부족하고

 

- 네가 나보다 잘난 줄 알지?
- 동기부여도 부족하고

 

그냥 자네한텐
그런 자질 자체가 없어

 

그렇지만 그러면 어때?

 

- 네가 나보다 잘난 줄 알지?
- 누가 그렇대?

 

그건 착각이야

 

강박적으로 연습한다고
완벽한 연주가 되는 건 아니야

 

사실 그 반대로
생기가 사라지지

 

경직되고

 

지루하고...

 

자기도취적이며

 

안전한 연주만 가능해!

 

유치한 소리 집어치워

 

자네가 힘든 건 알아

 

하지만 지금은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때야

 

네가 이끄는 대로
우리 모두 끌려가고 있어

 

나도 알아

 

네가 연주하는 방식이
우리 쿼텟의 방식이지

 

근데 항상 똑같아
매번 똑같다고

 

난 이제 40대야

 

우린 20대 초부터
같이 연주해 왔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고!

 

하지만 니나가 들어오면...

 

네가 이 지경까지
우리를 끌고 왔다고!

 

너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됐어
난 그저 보고만 있었지

 

못할 짓을 했다고

 

넌 네 메모 없이 베토벤을
연주할 배짱도 없잖아

 

열정을 좀 표출하게, 친구

 

- 열정을 표출하라고?
- 열정을 표현해봐!

 

대체 뭐가 무서워?

 

우리 셋이 뒤에서
널 받치고 있는데!

 

열정을 표현해!

 

맙소사...

 

사람들은 노인들이
죽을 걸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노인들을 진심으로
애도하지 않습니다

 

노인들은 다릅니다

 

사람들은 그들을

 

대체 언제 죽을까 하는
눈빛으로 바라봅니다

 

감정 없는 눈빛으로...

 

하지만 노인들은

 

자신이 언제
죽을지 압니다

 

올라와요, 엄마

 

- 망했다
- 왜?

 

- 엄마예요
- 뭐라고?

 

- 썰렁한 농담 하지 마
- 진짜예요

 

- 오늘 온다고 했거든요
- 너네 엄마가?

 

빨리 옷 입어요!

 

여보세요?

 

- 엄마야
- 금방 내려갈게요

 

올라가서 네가 사는
아파트 보고 싶은데?

 

커피가 너무 땡기는데
커피가 없어요

 

잠깐 보고 바로 가자

 

알았어요, 올라오세요

 

엄마가 계단으로 오니까

 

당신은 창문으로 나가요

 

정말 미안해요
근데 방법이 없어요

 

빨리 가요! 빨리!

 

알렉산드라

 

미안해요, 문이...

 

어떻게 지내셨어요?

 

- 근사하구나, 정말 좋다
- 그렇죠?

 

- 이사 선물이야
- 고마워요

 

좀 이따 열어볼게요

 

- 혼자 사니 어때?
- 아주 좋아요

 

- 그래?
- 네, 행복해요

 

잘됐네

 

20년 전 소호에서
혼자 살던 기억이 난다

 

일요일에 아빠랑
저녁 먹었어요

 

그럼 우리 얘기 들었겠구나

 

아빠는 지금 너무...
속상해 있어요

 

왜 그렇게 아빠를 괴롭혀요?

 

아빠가 그러든?
내가 자길 괴롭힌다고?

 

아빠는 절대 엄마 흉을
볼 분이 아니죠

 

네 아빠가 저지른 짓은
절대 용납할 수 없고

 

잘못된 행동이야

 

엄마가 아빠를
문간의 신발 닦개처럼 여기니

 

아빠가 밖으로 나돌죠

 

신발 닦개라고?

 

넌 우리 부부관계가
어떤지 몰라, 알렉산드라

 

- 제 눈에도 다 보여요
- 내 눈엔 뭐가 보이게?

 

길가에 주차된
다니엘의 차가 보여

 

대체 뭘 하러 왔던 걸까?

 

제 선생님이잖아요

 

바이올린 선생님을
말하는 거길 바란다

 

네 침대가 꽤나
엉망인데...

 

- 솔직히 말할게요
- 좋아

 

다니엘과 저는
서로 사랑해요

 

말도 안 돼
그건 사랑이 아니야

 

질투하시는군요

 

대체 왜 나한테
화가 나 있는 거니?

 

내가 뭘 잘못했길래
그런 식으로 말을 해?

 

너무 오냐오냐하면서
키워서 그런 거니?

 

제가 진짜
행복했을 거 같아요?

 

1년에 7개월은 공연 다니는
쿼텟 연주자 부모를 둔 게

 

자식으로서 신 나는
경험이었을 것 같냐고요

 

바이올린과 비올라보다
뒷전인 자식...

 

엄마 눈엔 그게
좋아 보였어요?

 

우리한텐 네가
항상 1순위였어

 

거짓말!

 

거짓말하지 말아요

 

그랬으면 투어를 좀
덜 하면서

 

- 그럴 수 없었어
- 딸에게...

 

더 신경을 썼겠죠

 

염병할 하이든 현악 4중주
핑거링에 신경 쓰는 대신!

 

난 좋은 엄마가 되려고
최선을 다했어

 

완벽하고 싶었지만

 

그게 음악가의 삶이야

 

우린 리허설을 하고
연습을 하고...

 

공연을 해야 해

 

그리고 미안하지만
너도 그렇게 살게 될 거야

 

아니, 난 그렇게 안 살아

 

자식을 그렇겐 안 키워

 

미안하다, 얘야

 

나라면 그냥...

 

애를 지웠을 거예요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니?

 

난 널 갖기 위해
모든 걸 다 걸었어

 

네가 알기나 해?

 

- 그게 어떤 기분이었는지?
- 알아요

 

- 넌 몰라
- 아니, 알아

 

적어도 염병할
엄마 없이 자라는 게

 

어떤 건지는
나도 안다고!

 

맙소사

 

스티브, 16분음표잖아
질질 끌지 말라고!

 

이견을 내는 건 좋은데
부드럽게 말하렴

 

실수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너희 나이 때 파블로 카잘스를
만난 적이 있었어

 

너무 긴장해서
아무 말도 못 했지

 

그도 눈치챘는지
이야기 대신

 

나보고 연주를 해보라더군

 

바흐 조곡 제4번 중
전주곡으로 말이야

 

심호흡을 하고 집중했지만
음표는 눈 앞에서 흩어지고

 

연주는 산만했어
한마디로 개똥이었지

 

너무 끔찍해서...

 

중간쯤에서 연주를
멈출 수밖에 없었어

 

근데 그가
잘했다고 하면서

 

무곡을 청하더군

 

두 번째 기회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했어
근데 역시 엉망이었지

 

그는 근사하다며
또 칭찬을 해줬어

 

그날 밤 난 연주 때문에
기분이 최악이었지

 

근데 사실 날 화나게 한 건
내 연주가 아니라 카잘스였어

 

그의 가식에
화가 났던 거야

 

세월이 흘러

 

내가 프로 연주자로
활동할 때

 

파리에서 같이
연주할 기회가 있었어

 

그렇게 친해진 뒤에

 

하루는 와인을 마시다가

 

수년 전에 그가 한
개소리 때문에

 

화가 났었다고
고백했더니

 

그가 되려 화를 내더군

 

갑자기 돌변해
첼로를 잡고

 

"잘 들어!"라고
말하고는

 

이 소절을 연주했어

 

자네 이거 연주하지
않았었나?

 

자네 그 핑거링은
정말 훌륭했어

 

이 부분은 활끝을 올리며
공격적으로 연주했잖아

 

카잘스는 자신이 즐기고

 

좋다고 생각한 부분만
강조했던 거야

 

용기를 북돋아 준 거지

 

나머지는 실수나 세는
머저리들에게 맡기라고

 

했던 것 같아
스페인어여서 정확힌 몰라

 

단 한 소절만이라도
아름답고 훌륭하다면

 

우리는 그 연주자에게
고마워해야 한다고 하더군

 

어때?

 

우와...

 

그래, 대단하지
챔피언 파블로 카잘스

 

자, 느낌을 살려서
한번 더 하자

 

감정을 실어서!

 

로버트와 줄리엣의
집입니다

 

지금 전화를
받을 수 없으니

 

삐 소리가 난 뒤
메시지를 남겨주세요

 

줄리엣, 로버트!

 

약이 효과가 있어
이제 연주할 수 있네

 

화요일에 우리 집에서
리허설을 하지

 

다니엘에겐 내가 전화할게
안녕

 

괜찮았던 거 같지?

 

감이 거의 다 왔어

 

박력이 느껴져

 

스트링 크로싱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

 

지금처럼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줄리엣이 원하는 대로
하게 놔둬

 

- 다시 해보죠
- 그러지

 

다시 해봐요, 다시 해보고
또 계속하고...

 

로버트, 그만하지?

 

대체 무슨 일이야?

 

나도 좀 껴주지?

 

콘서트가
당장 목요일이야

 

개인사는 그 이후로
미루는 게 어떨까?

 

그냥 좀 닥치는 게
어떨까 싶은데?

 

로버트, 정신 차려

 

- 시작할까?
- 너나 정신 차려, 다니엘

 

어떻게 친구의 딸이랑
잘 수가 있어?

 

뭐라고?

 

그게 무슨 말이야?

 

알렉스와 나는
사귀고 있어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내 딸이랑 잤어?

 

우린 서로 사랑해

 

의도한 건 아니지만
그렇게 됐어

 

이미 벌어진 일이야

 

앉아!

 

내 집에서 이러지 마!
당장 멈춰! 부탁이네

 

그만해! 다들 나가!

 

모두 그만해

 

- 이러니까 기분이 풀려?
- 당장 나가줘

 

그 앤 네 소유물이 아니야

 

내가 네 소유물이지

 

나랑 우리 모두가

 

네 염병할 소유물이야!

 

인생이란 원래 엉망이야!

 

난 정말 오랜만에
누군가를 사랑하게 됐어

 

그래서 이번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야

 

다니엘, 제발 그만해

 

모두 진저리가 나네, 나가!

 

죄송해요

 

자네들은 음악도 상대방도
존중하지 않아

 

- 나한텐 얘기했어야지
- 로버트, 미안해

 

잠깐만 기다려

 

내가 내려오기 전까지

 

다들 떠나주게

 

따라오지 마!
어떻게 나한테 그걸 숨겨?

 

콘서트는 무슨!
다 없던 일로 해!

 

정말 어이가 없군

 

자네가 25년 전에

 

나한테 쿼텟을 결성하게
도와달라 부탁했을 때

 

자네보다 훨씬 나이 많은
나 같은 사람은

 

먼저 물러나야 할 거란 건
알고 있었지

 

이렇게 힘든 일일 줄은
몰랐지만...

 

게다가 쿼텟이 눈앞에서
무너지는 모습을

 

지켜봐야 한다니
정말 끔찍하군

 

저한테도 악몽이에요

 

당장 그 관계를 끝내

 

자네가 그걸 뭐라고
생각하건 간에...

 

당장 끝내!

 

안 돼요

 

그럴 순 없어요

 

자넨 함께 일하면서
배운 게 하나도 없군

 

부끄러운 줄 알게

 

그림들은 어떤 각도로 보면
우릴 향해 문을 열어주고

 

우린 안으로 들어가
화가들을 만날 수 있어

 

그들은 이곳에서
우리 이야기를 듣고

 

우리를 지켜봐 왔어

 

미리엄은 그들과
소통할 수 있다고 믿었지

 

특히 이 그림을 좋아했어

 

오늘은 렘브란트가
무슨 얘기를 해주나요?

 

난 화가 중에 최고다
난 정말 위대하다

 

그리고 물론 내가
늙어가고는 있지만

 

여전히 난 전성기다

 

어둠 속에서의 눈빛이
정말 강렬하지

 

황금색 옷 등으로 자기가
좀 웃겨 보이는 건 알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의 몸과 마음은 아직
그를 배반하지 않았어

 

근사하네요

 

물론 내 몸과 마음은
사정이 달라

 

약효도 얼마 못 갈 거야

 

그다음엔 헛것이 보이고
노심초사하겠지

 

그 후엔 다른 사람이
먹여주고 씻겨줘야 할 테고

 

요즘엔 그걸 어떻게
피할 것인가만 생각해

 

- 남들에게 짐이 되기 싫어
- 짐이라뇨! 제가 있잖아요

 

너에겐 쿼텟이 있지

 

로버트와 알렉스도
보살피고 이끌어야 하고

 

그러니까 쿼텟을 지켜줘

 

그게 날 행복하게
해주는 거야

 

전 1963년 뉴욕에서
태어났어요

 

'줄리엣 겔바트 - 비올라'

 

제 어머니 프랑수아즈와 피터는
'허드슨' 쿼텟에서

 

함께 활동한
절친이었었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허드슨'은 해체되었죠

 

어머닌 절 낳다가
돌아가셨어요

 

16살이 될 때까지
질 브레톤 밑에서 수학하다

 

피터 덕분에 줄리어드에서
장학금을 받게 되어

 

뉴욕으로 왔는데
고맙게도 미리엄과 피터가

 

제 가족이 되어주셨죠
우린 아주 행복했어요

 

그분들의 무한한
사랑 덕분에

 

제 인생 최고의 일들이
일어나게 되었어요

 

우린 '푸가'를 결성했고

 

그때 로버트를 만났죠

 

그리고 귀여운 딸

 

알렉산드라가 태어났고요

 

우리 가문에서 그 애가
최고의 실력자라 자부해요

 

직접 연주를 들으면
바로 아실 거예요

 

그때는 거의 매일
순회공연을 다니느라

 

정말 힘이 들었는데...

 

- 괜찮아?
- 응

 

자...

 

한번 열어봐

 

네 거야

 

아빠 말로는 2만 5천에
팔렸다던데?

 

- 받을 수 없어요
- 아냐

 

나한테 신세 진 친구 거야

 

쓰고 싶은 만큼 쓰다
다시 돌려주면 돼

 

이건 내가 특별히 만든 거야

 

한번 켜봐

 

그것보다
우리 얘기 좀 해요

 

그래

 

뭔데?

 

당신은 근사한 남자예요

 

아주 훌륭하고
존경스럽고...

 

모든 여자들의 로망이죠

 

하지만 그 행운이
제 차지는 아닌가 봐요

 

너희 엄마 아빠 때문이지?

 

- 아니에요
- 맞아, 너네 아빠야

 

아니라니까요

 

내가 내린 결정이에요

 

그들이 우리 사이를
방해하게 두지 않겠어

 

- '푸가'를 위해서예요
- 뭐라고?

 

쿼텟요

 

'푸가' 때문이라고?

 

쿼텟 때문에 우리 사이를
끝내겠다고? 미쳤어?

 

알렉스, 이건 미친 짓이야

 

다른 사람 때문에
널 희생할 필요는 없어

 

그렇지만 결국엔
그렇게 될걸요

 

나나 당신이나 절대
날 용서 못 할 거예요

 

알렉스, 진정해

 

응?
진정부터 해

 

다 잘될 거야

 

- 내가 해결할게
- 아니, 내 얘기 들어요

 

내가 너희 부모님이랑
진지하게 얘기할게

 

그 사람들이 우릴
인정하지 못한다면

 

그까짓 연주,
같이 안 하면 그만이야!

 

새로운 쿼텟을
결성하면 돼

 

너랑 나랑, 그리고...

 

- 음... 니나도 있고
- 우린 끝이라고요

 

지금 끝났다고
말하는 거예요

 

난 이미 끝냈다고요

 

가버려

 

그냥...

 

가버려

 

다니엘?

 

다니엘...

 

'미리엄 미첼
메조 소프라노'

 

신사숙녀 여러분
전 이만 멈춰야겠습니다

 

동료들의 속도를
따라갈 수가 없군요

 

이건 현악 4중주 14번을
중간에 쉼 없이

 

연주해야 한다고 주장한
베토벤 탓입니다

 

전 이제 쉬어야겠어요
이제 저를 대신해서

 

푸가 쿼텟의 친구이자

 

뛰어난 첼리스트인
니나 리가

 

오늘 공연과 앞으로의
여정을 함께 할 겁니다

 

니나, 부탁해요

 

오랜 기간, 로버트
다니엘, 줄리엣과 함께

 

여러분께
연주를 들려드릴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습니다
모두 고맙습니다

 

어딘가에서 지켜보고 있을
제 아내, 미리엄...

 

정말 고맙고 그립습니다
당신이 많이 생각나요

 

또 만날 날이 있겠죠

 

다음은 7악장인데

 

이 작품은 악장들이
모두 연결돼 있어서

 

6악장에서
준비를 하지 않으면

 

7악장의 강렬한 감흥을
제대로 느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양해를 바라면서

 

몇 마디 앞부터
다시 연주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마디 앞부터?

 

필립 시모어 호프먼, 마크 이바니르
캐서린 키너, 크리스토퍼 월켄

 

이모젠 푸츠

 

특별출연
안네 소피 폰 오터

 

베토벤 현악 4중주 14번
연주: 브렌타노 현악 4중주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