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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2smi by  Michael Archangel

 

이와이 슌지 감독 작품

 

나카야마 미호

 

토요카와 에츠시

 

러 브 레 터

 

촬영 시노다 노보루

 

음악 REMEDIOS

 

각본/연출 이와이 슌지

 

바쁘신 와중에 제 아들
이츠키의 3주년 추도식에
 
 
 
 
 
 
 
 
 
 

 

바쁘신 와중에 제 아들
이츠키의 3주년 추도식에
 
 
 
 
 
 
 
 
고베, 일본 관서 지방의 도시                  
 

 

이렇게 많은 분들이 와 주신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고베, 일본 관서 지방의 도시                  
                   

 

이렇게 많은 분들이 와 주신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생전에 보살핌을 주셨던 분들

 

친분을 두텁게
나누었던 분들이 와주셔서

 

이츠키도 아마 무척이나
기뻐하고 있을 겁니다

 

자, 한가하신 분들부터
이것 좀 드세요

 

감주인가!
잘 됐네요

 

사실대로 말하자면
달지 않은 쪽이 좋은데 말야

 

야스요!

 

당신 그 정종 가져 온 거 있지?

 

나중에 실컷 마실 거잖아요

 

괜찮아,
추도주라니까!

 

히로코 씨!

 

아키바 씨랑 선배들이
안부 전해 달래요

 

그런가요?

 

선배님들은
집에서 근신한대요

 

근신?

 

모두들 아직 죄책감에
시달리나 봐요

 

아키바 씨는 그날 이후로
한 번도 산에 가지 않았어요

 

선배들에겐 그 사고가
아직도 어제 일 같을 거야

 

다들 잠깐 모여봐!

 

명 카메라맨 등장이군!

 

실은 아키바 씨랑 선배들이 오늘 밤
몰래 참배하러 올 생각인가 봐요

 

히로코

 

미안한데 가는 길에
집사람 좀 데려다 주지 않겠어?

 

 

갑자기 머리가 아프다는군

 

아파요, 다치겠어요!

 

아파요, 그렇게 밀어 넣지
않아도 되잖아요

 

히로코 씨라고 했지요?

 

하네오 씨, 벌써 취했군요

 

아주 맛이 갔어요
혼자 한 병을 다 마셨죠

 

히로코 씨!

 

이해해 줘, 히로코

 

아가씨, 산사나이에게
마음 뺏기지 말아요

 

아저씨도 힘드시겠어요

 

힘든 척하고 있는 것 뿐이야

 

오늘도 밤새도록 퍼마시며
야단법석을 떨겠지

 

너무 떠들썩하면 남들이 흉볼까 봐
괜히 바쁜 척하는 거지

 

추도니 뭐니 하면서

 

술이나 실컷 마셔보자는
속셈이지

 

어머님, 두통은...?

 

응?

 

아!

 

그거?
꾀병이야

 

왜?

 

그냥, 다들 이래저래
꿍꿍이가 있구나 싶어서요

 

그래도
내 꾀병은 귀엽잖아

 

선배들도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것 같아요

 

요즘은 통
놀러 오지도 않고 말야

 

가끔은 얼굴 좀 보여주렴

 

죄송합니다

 

어느 정도는 만들었는데

 

오늘은 추도식 준비도 있고 해서

 

괜히 귀찮은 생각이 들어서

 

요즘 통 정리를 안해서

 

먼지가 많아, 미안해

 

히로코

 

이거 볼래?

 

졸업 앨범이네요

 

오타루에 사셨어요?

 

응, 그랬지

 

오타루,
어디 쯤이었나요?

 

어디였더라...

 

이젠 없어졌어
국도가 들어서면서 없어졌지

 

그렇군요

 

여기 있네

 

졸업 전에
전학을 가는 바람에

 

조금도 안 변했네요

 

지금 보니 왠지
불길한 사진 같구나

 

케이크 먹을래?

 

괜찮아요

 

유명한 빵집 건데?

 

그럼, 주세요

 

후지이 이츠키...

 

후지이...

 

있다!

 

오타루시 제니바코 2-24

 

오타루시 제니바코 2-24

 

무슨 일을 꾸미지?

 

아키바 씨 일행들 말이야

 

야간 습격을 한대요

 

야간 습격?

 

밤에 몰래
참배하러 갈 거래요

 

이츠키는 밤에도
못 자겠구나

 

오타루, 고베에서
멀리 떨어진 북쪽 도시

 
 
 
 
 
 
 
 
 
 

 

후지이

 

이츠키 아냐
웬일이야?

 

쉬는 날이야?

 

감기 걸렸어

 

저런,
올해 감기는 지독하다던데

 

꼭 누구랑 똑같네

 

저기, 영화표가 생겼는데
같이 안 갈래? 토요일 쯤에

 

안 가

 

그럼, 일요일은?

 

얼어죽겠네

 

한가한 날 가도
괜찮은데

 

없어!

 

이츠키

 

이츠키, 잠깐... 편지...

 

이츠키!

 

이츠키, 편지 가져가

 

이츠키!

 

뭐야?

 

이거 떨어뜨렸는데

 

러브 레터?

 

이츠키!

 

다음 주는 어때?

 

와타나베 히로코?

 

누구지?

 

“후지이 이츠키 님
잘 지내셨어요?”

 

“전 잘 지내요
와타나베 히로코가”

 

이게 뭐야?

 

무슨 편지라고?

 

안 좋은 내용이야?

 

그런 것 같진 않은데...

 

아버님!
진지 드세요

 

고베에 사는 와타나베라
엄마는 혹시 알겠어요?

 

와타나베?

 

이거 봐요

 

네가 잊은 거 아니니?

 

그건 아니예요
전혀 모르겠어요

 

와타나베 히로코,
이거 정말 이상하군

 

이상하죠, 할아버지?

 

어디 보자

 

고베엔 아는 사람이 없는 걸

 

또 모르지

 

너 병원에 안 갔니?

 

그 정도로 심하진 않아요

 

그건 초기 감기약이야

 

내일은 출근할 수 있지?

 

아니면 병원에 가라

 

이츠키,
그것 좀 보자꾸나

 

병원에 갈 바에야
출근해서 일하겠다

 

저번에 결혼한
친구 아냐?

 

결혼해서 성이
바뀌었겠지

 

그렇지?

 

그건... 엔도 씨인 걸요

 

휴지

 

휴지!

 

와타나베 히로코...

 

도대체 누구야?

 

와타나베 히로코 님

 

와타나베 히로코 님

 

저도 잘 지내요

 

감기 기운이 좀 있지만

 

“후지이 이츠키 님”

 

“감기는 좀 어떠세요?”

 

“약 드시고 빨리 나으세요”

 

“와타나베 히로코가”

 

쉽게 낫지 않을 것 같네...

 

, 나의 사랑은...

 

선생님, 먼저 갈게요

 

조심해서 가라

 

히로코 씨, 갈게요

 

바람을 타고 달려요

 

무사히 잘 치렀어?

 

추도식 말이야

 

뭐, 그럭저럭...

 

그럭저럭?

 

그냥 그랬지, 뭐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나 봐?

 

왜?

 

얼굴에 쓰여 있는데

 

그래?

 

- 뭐?
- 뭐라니,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야

 

그 사람 집에 갔다가
졸업 앨범을 봤어

 

- 졸업 앨범?
- 응

 

중학교 때 거,
오타루에 살던 때 말야

 

졸업 앨범 뒤에
주소록이 있었는데

 

그 사람 주소도 있었어

 

그야 당연하지

 

국도를 만드느라
집을 헐었대

 

그럼, 지금은
없는 주소겠지?

 

그렇겠네

 

그 주소로
편지를 써서 보냈어

 

그 사람 앞으로 말이야

 

그렇다면
보내도 배달이 안 될 거 아냐

 

배달되지 않을 거니까
보낸 거야

 

말하자면
천국으로 보낸 거지

 

너도 이상한 짓
잘 하는 애구나

 

그런데, 그랬더니 말야...

 

답장이 왔어

 

천국에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와타나베 히로코 님
저도 잘 지내요”

 

신기하지?

 

“그런데 감기 기운이 좀 있습니다
후지이 이츠키가?”

 

누가 장난친 거겠지

 

장난일지 몰라도
실은 좀 기뻐

 

역시 그렇구나

 

아직 후지이를
못 잊는군

 

그런 이상한 편지까지 보내고

 

아키바 선배는 벌써 잊었어?

 

무슨...
그런 뜻이 아니잖아?

 

그렇다면
우리 관계는 어떻게 되는 거야?

 

응?

 

뭐냐고?

 

히로코

 

진지하게 하는 말이야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는디요

 

꼭 자기 곤란할 때만
사투리로 넘긴다니까

 

어, 웬일이야?

 

저기, 두고 간 게 있어서요

 

뭔데?

 

아니에요
그냥 갈게요

 

들켜 버렸네

 

어쩌지?

 

할 수 없지, 뭐

 

이걸로 이제
기정 사실이 된 거네

 

지난 번 참배 갔을 때
후지이한테 부탁했어

 

너와 결혼하게 해달라고

 

이제 그만 후지이를
자유롭게 해줘도 되잖아?

 

너도 자유로워지고

 

후지이 이츠키 님

 

오늘 집에 가는 언덕길에서
꽃망울이 한껏 부푼 벚꽃을 봤습니다

 

여긴 벌써
봄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 와타나베 히로코가
- “와타나베 히로코가”

 

제 정신이 아닌가 봐

 

‘가지이 모토지로’의
시에 나오잖아

 

“벚나무 아래에는
시체가 묻혀있다”

 

‘사카구치 안고’의
글 중에도...

 

- “만개한 벚나무 숲 아래”
- 그래 그래, 역시 그거야

 

벚꽃이란 건
그런 거지?

 

그런 거야

 

알 수 없는 편지에
감기약에

 

벚꽃과 봄기운이라...

 

절대로 입원해야 해
이 애는...

 

나 어쩜 좋아?

 

그냥 두면 이런 사람은
끝까지 편지를 보내올 걸

 

끝까지?

 

영원히 말이야

 

“와타나베 히로코 님”

 

“당신은 대체 누구신가요?”

 

“제발, 부탁이니
사실대로 말해 주세요”

 

이 사람, 대체 뭐라는 거야?
제 멋대로 이츠키 행세를 하면서

 

진짜면 어떡하지?

 

진짜라니, 어떤 진짜?

 

잘 모르지만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이상해

 

어떻게 그 사람한테
편지가 배달되는 거지?

 

뭐라고?

 

그 주소에는
아무도 살지 않는다고 했잖아

 

국도가 됐다던데

 

그런데 매번 편지가
배달되고 있잖아

 

국도 위에서라도
살고 있는 건가?

 

설마

 

그럼, 뭐야?

 

어떻게 된 거지?

 

만약, 그가 국도 위에서
산다고 해도 말이야

 

뭐?

 

그래서 ‘만약’이랬잖아

 

만약, 국도 중앙 분리대의 가운데에
허름한 오두막을 짓고 산다고 해도

 

그러니까 ‘만약’에 말이야

 

좀 들어봐

 

만약, 그렇다 치더라도

 

우체부가 편지를
배달하러 온다고 해봐

 

그래도 우체부는 그 사람에게
제대로 배달하지 못 했을 거야

 

 

이유는?

 

국도에 맘대로 살면
안 되는 거니까?

 

틀렸어!
그래서 예를 든 건데

 

만약, 국도가 생기지
않았다고 하자

 

후지이의 집이
그대로 있단 말이지

 

누군가 다른 사람이 이사와서
산다고 해보자고

 

그곳에 우체부가
편지를 들고 간다면

 

제대로 편지가
배달될 것 같아?

 

그렇다면 배달 되겠지

 

땡!

 

- 그래도 안 돼
- 왜?

 

전해질 리가 없지
이름이 다른 걸

 

우체부가 그 주소로
편지를 들고 가도

 

문패가 다르다면
집어 넣지를 않았겠지

 

그렇구나

 

그건 국도라도 마찬가지지

 

국도 한 가운데에 집이 있어도
그게 야마다 씨 집이라면

 

편지는 배달이 안 돼

 

즉, 이름이 다른 이상
이 사람이 편지를 받을 일은

 

결코 없을 거란 뜻이지
이해하겠어?

 

그렇다면...

 

이 녀석, 정말로
후지이 이츠키라는 건가?

 

뭐?

 

그럴 리가 있나

 

적어도 성만이라도 같지 않으면
편지는 배달이 안 될 게 뻔한데

 

- 저기...
- 응?

 

- 역시...
- 잠깐만!

 

방금 뭔가
감이 온 것 같은데

 

아!

 

아닌가...

 

뭐라고?

 

그러니까, 역시 그 사람이
쓰고 있는 거야

 

그래야
이치에 맞지 않나?

 

그런 건 이치라고
하지 않아, 히로코

 

하지만 꿈에는 있잖아

 

그야 꿈에는
있을 지도 모르지만

 

그럼, 그렇게 믿자

 

그렇게 믿자고?
믿을 게 따로 있지, 히로코

 

이상해

 

이상해, 히로코
그렇게 믿고 싶으면 믿어

 

난 내 방식대로 진실을 밝히는데
전력을 다 하겠어

 

이건 압수야!

 

귀중한 증거품이니까

 

“만약, 당신이 진짜
후지이 이츠키라면”

 

“뭔가 증거를 보내주세요”

 

시비 거는 것도 아니고,
먼저 편지 보낸 것도 그 쪽인데 말야

 

보내 보면 어때?

 

- 뭘 보내?
- 증거 말이야

 

어떤 증거?

 

주민증 사본이라든가

 

내가 왜 그런 걸
제출씩이나 해야 되지?

 

의료 보험증은 어때?

 

나 말야,
이제 신경 끄기로 했어

 

편지가 계속 와도
상대해 주지 않을 거야

 

이츠키

 

가짜 취급을 받고도
잠자코 있겠다는 거야?

 

뭐랄까

 

지명 수배자 사진같아

 

이거 걸작인데!

 

그런데, 후지이 이츠키가
진짜 있구나

 

어쨌든 내 작전도
대성공인 걸

 

실은 나도 히로코 몰래
편지를 보냈거든

 

당신이 후지이 이츠키가 맞다면
증거를 보내라고 말야

 

이런 걸 보내다니
적도 여간내기가 아니로군

 

그래서 말인데 히로코

 

오타루에 안 가볼래?

 

오타루에서 나처럼
유리 공방을 하는 녀석이 있는데

 

그 친구가 전람회를 연다고
초대를 했어

 

귀찮아서 안 가려고 했는데
차라리 잘 됐잖아

 

이참에 오타루에 가서
적의 정체도 밝혀보자고

 

적이 아냐

 

응?

 

그렇게 할 필요까진
없었는데

 

좀 지나쳤어

 

그치만 이제 이걸로 끝이야

 

다 끝났다고

 

이것이 증거입니다
편지 그만 보내세요

 
 
 
 
 
 
 
안녕히...          
후지이 이츠키          
 

 

감기는 나았을까?

 

내가 보낸 약은
먹었을까?

 

히로코

 

그 사람이 보낸 편지라고

 

그렇게 믿고 싶었어

 

하지만 이제 됐어

 

왜 편지 따위를 보내?

 

후지이가 보낼 리 없잖아!
그 애가 어떻게 편지를 보낼 수 있지?

 

나도 괴롭다고, 히로코

 

넌 언제나
거기 앉는구나

 

나랑 이츠키가 처음 널 만났을 때도
역시 그 자리에 앉았었지

 

그 녀석, 처음 만난 너한테
갑자기 사귀자고 한 거 기억나?

 

널 소개시켜달라고 한 건
내가 먼저였는데

 

그때까지 여자랑은
말도 섞지 않던 녀석이었는데

 

역시 그때 내가 먼저
사귀자고 할 걸 그랬어

 

만약, 그랬다면

 

우린 지금 쯤
어떻게 됐을까?

 

오타루에 안 갈래?

 

찾아보자

 

또 한 명의
후지이 이츠키를

 

찾았어!
이쪽이야, 이쪽

 

조금만 가면 돼

 

금방 올 거예요

 

아키바!

 

오랜만이야

 

넌 그대로구나

 

아, 후지이의...

 

그랬군요

 

그 사람을 아시나요?

 

그야 뭐, 그 친구라면
모르는 게 없을 정도랄까요

 

워낙 작은 대학이었으니까

 

그래도 녀석이 오타루
출신이란 건 처음 듣는데?

 

나도 몰랐다니까

 

요시다, 그 후지이라는 사람...
혹시, 후지이 이츠키 말이야?

 

너 아는 사람이야?

 

역시 그 애구나
어렸을 때 아주 친했지

 

정말 좁은 마을이구만, 여기

 

감기가 다시 도졌지?

 

오늘은 쉴래요

 

그러니 병원에 가라니까!

 

안녕하세요!

 

네!

 

고모부 왔어요?

 

새 맨션을 구했대

 

나도 가보고 싶어요

 

집구경 쯤은 할 수 있어요

 

너무 일찍 왔나요?

 

괜찮아요

 

참, 그렇지...

 

이츠키, 금방 준비되니?

 

영감님은 아직도
이사를 반대하세요?

 

아침부터
저런 흙이나 파고

 

무슨 씨앗도 뿌리시던데요

 

역시 떠나기 서운하신 건가?

 

옛 추억만 붙들고
살 순 없죠

 

5~6년 있으면 천장이
무너질 거라면서요?

 

아, 그건 틀림없어요

 

지금도 용케나 잘 살고
계신다고 할 정도랄까요

 

그 말씀은 좀 너무하네요

 

말하자면
그렇다는 거예요

 

저...
좀 더운데요

 

그냥 덮고 있어!

 

이츠키, 감기 우습게 보면 큰일나요
마리모 전기 회사 알죠?

 

마루쇼 건물 맞은 편요?

 

그 주인이 우리 단골인데
지난 번 감기가 심했거든요

 

평소엔 아주 건강하신 분인데

 

어쩌다 걸린 감기를
가볍게 생각하다가

 

결국, 악화돼 폐렴이 됐죠

 

- 죽었어요?
- 설마 폐렴으로 죽기야 하겠어요?

 

우리 아빠는 죽었는데요?

 

뭐?
형님이 폐렴이셨어?

 

감기가 폐렴이 됐죠

 

- 벌써 잊었어요?
- 아, 맞아, 그랬었죠

 

언제였죠?
형님 돌아가신 게

 

그것도 잊었어요?
당신 아내의 오빠라고요

 

죽은 사람은
금새 잊혀진다니까

 

아닙니다

 

아빠를 폐렴으로 잃고도

 

전혀 조심하지 않는
딸도 있으니

 

여기가 어디죠?

 

병원!

 

나, 참...

 

역시 그런가, 5호선이라...

 

언제 국도가 개통됐지?

 

중학교 때는 학교가 달라서
이사간 줄도 몰랐었어요

 

현관이 저기 쯤이었나?

 

똑똑... 실례합니다

 

오토모 씨,
이상하게 들릴지 몰라도

 

그 친구와 같은 이름의
사람은 모르시나요?

 

- 네?
- 그러니까, 후지이와 동명인 말이에요

 

모르겠는데요

 

모르세요?

 

히로코!

 

뭐 하는 거야?

 

여기로 보냈던 거네

 

첫 번째 편지...

 

호소이 타키 씨!

 

네!

 

후지이 씨

 

후지이 이츠키 씨

 

아빠...!

 

이츠키!

 

뭐하고 있어?

 

후지이 씨

 

후지이 이츠키 씨

 

후지이 이츠키 씨

 

후지이 이츠키 씨,
안 계세요?

 

- 네
- 네

 

 

이 근처인데?

 

제니바코 2-24

 

잠깐 저쪽에 물어볼게

 

후지이?

 

후지이

 

실례합니다

 

괜찮아

 

여행지에서 창피한 건
그때 뿐이란 말도 있잖아

 

계세요?

 

실례합니다

 

여기가 후지이 씨 댁인가요?

 

맞소만

 

후지이 이츠키 씨 댁이 맞죠?

 

어라?

 

이츠키는 나가고 없소만

 

그런가요?

 

좀 있으면 돌아올 거요

 

그럼, 밖에서 기다려도 되겠습니까?

 

들어와서 기다리쇼

 

밖에서 기다릴게요

 

좀 미친 것 같다, 우리

 

후지이 이츠키 님께

 

당신을 만나려고
오타루에 왔어요

 

지금 당신 집 앞에서
이 편지를 쓰고 있어요

 

제가 아는 후지이 이츠키는
당신이 아니었어요

 

여기에 와서야 비로소
모든 것을 확실히 알게 됐어요

 

제가 아는 후지이 이츠키는
남자이고

 

그는 저의 옛 연인이었습니다

 

그는 2년 전에...

 

갈까?

 

안 기다리고?

 

 

그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다만 가끔 생각이 나곤 합니다

 

어딘가에서 건강하게
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
그냥 가버리네

 

작은 마을이니까
금방 번화가가 나오겠지

 

그런 생각으로 쓴
편지였습니다

 

그래서 굳이 누군가가 받지
않아도 괜찮았을 겁니다

 

있잖아

 

응?

 

아까 쓴 편지 말이야
왜 거짓말했어?

 

거짓말이라니?

 

이츠키가 죽었다는 말
쓰지 않았잖아

 

왜 그랬을까?

 

그냥 왠지...

 

좋은 얘기도 아니잖아?

 

좋지 않은 얘기라...

 

그럴지도 모르지

 

운이 좋은 걸

 

“후지이 이츠키 님께”

 

“지금 당신 집 앞에서
이 편지를 쓰고 있어요”

 

좀 전에 거기 오르막길에서
손 들었었지요?

 

지금 위에서 승객분 내려드리고
곧장 U턴 해서 온 거에요

 

감사합니다

 

어? 손님, 제가 방금 내려드린 분과
많이 닮으셨네요

 

네?

 

저요?

 

아뇨, 옆의 아가씨요

 

정말 닮았는데

 

당신께는 대단히
실례가 많았습니다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그와 이름이 같은 당신을
만나보고 싶어서 이곳까지 왔지만

 

만날 용기가 나지 않았어요

 

편지만 주고 받은 사이였으니까

 

이렇게 편지로
인사를 대신하겠습니다

 

똑같은 이름...?

 

와타나베 히로코 님

 

자세한 사정도 모르고
심한 편지를 보낸 것

 

용서해 주세요

 

그 대신에 한 가지 흥미로운
정보를 알려드리죠

 

언제라도 또 놀러 와

 

너도 가끔 고베에 좀 오라고
사투리가 입에 붙어버렸잖아

 

그런가?
나카무라는 연락없어?

 

나카무라?
연락 안 해?

 

그 녀석 전화 한통
전혀 없다니까

 

돌아가면 전할게
가끔 전화라도 하라고 말야

 

담배 있냐?

 

담배가...

 

후지이 씨!

 

그 대신에 한 가지 흥미로운
정보를 알려드리죠

 

사실은 제가 중학교 때
같은 반에

 

성과 이름이 똑같은
남자애가 있었어요

 

당신이 찾는
후지이 이츠키가

 

혹시, 그 애가 아닐까요?

 

아! 여기다

 

여기에요, 여기
이 건물 3층이에요

 

전망도 아주 좋죠

 

좁잖아요

 

지금 살고 있는 집과는 비교 못 해
그 집이 너무 넓은 거야

 

그래, 안 쓰는 방이
두 개나 되잖아

 

그것 봐요

 

하숙생이라도 들일까?

 

그런 생각하면
또 이사 못 간다니까요

 

또 막판에 취소하면
고모부가 난처해지잖아요

 

어쨌든 결정은
빨리 내려주세요

 

이래뵈도 인기가 많은
아파트라고요

 

결론은 났어요

 

영감님을 설득하는
일만 남았죠

 

아버님, 어차피 몇 년 뒤엔
집을 헐어야 된다는 거 아시죠?

 

결정하신 거죠?

 

난 반대다

 

좀 앉아 보세요
앉아서 얘기 좀 해요

 

다 알아 들었어

 

전혀 모르시잖아요

 

내가 반대한다고

 

달라질 건 없는 거지?

 

그건 그래요...

 

그럼, 이사 할 수 밖에 없겠구만

 

영감님 똥고집은!

 

잠깐!

 

지금 이사 간다고 했지?

 

뭘 찾는 거니?
그렇게 심각한 얼굴로

 

좀 찾을 것이...

 

동급생 중에 이름이
같은 애가 있었나요?

 

글쎄?

 

있었나?

 

이 애

 

응?

 

누구?

 

생각 안 나는데

 

닮았나요?
이 사진

 

저랑 닮았냐고요

 

히로코를?

 

닮은 건가?

 

닮았다면
어떻게 되는데?

 

닮았으면
뭐가 달라지니?

 

아뇨, 딱히...

 

거짓말!

 

정말이에요

 

히로코 양

 

얼굴에 거짓말이라고
쓰여 있어

 

닮으면
어찌 되는 거니?

 

닮아서라면

 

용서할 수 없어요

 

그게 절 선택한 이유라면

 

전 뭐가 되는 거죠?

 

그 사람, 첫눈에 제게
반했다고 했거든요

 

전 그걸 믿었고요

 

첫눈에 반한 것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군요

 

전 속은 거예요

 

히로코 양

 

중학생 아이에게
질투하는 거니?

 

그래요

 

이상한가요?

 

이상하지!

 

이상한 거군요

 

이츠키는 행복하겠네

 

히로코가
그런 질투를 해주고

 

히로코도 아직
그 애를 좋아하나 봐

 

그렇게 말씀하시니
또 눈물이 나네요

 

잘 지내고 있나요?

 

당신이 말한
후지이 이츠키하고

 

내가 아는 후지이 이츠키는
역시 같은 사람인 것 같아요

 

사실, 이 편지의 주소는

 

졸업 앨범에서
찾은 거였어요

 

모든 게 제 어처구니 없는
착각에서 비롯됐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그런데...

 

“그런데, 이렇게 폐를 끼쳐놓고
또 부탁을 한다는 건”

 

“너무 염치없는 줄 알지만”

 

“혹시, 그에 대해서
뭔가 기억나는 게 있으면”

 

“얘기해 주시겠어요?”

 

그 애에 대한 기억은...

 

와타나베 히로코 님

 

그 애에 대해선
잘 기억해요

 

그런데 그 애와 관련된 기억은
거의 이름에 얽힌 거예요

 

대략 상상이 되시겠지만

 

아마도 그렇게 좋은 기억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것들 뿐이에요

 

입학식 날부터
꼬이기 시작했죠

 

쇼지 가츠토시

 

다나카 쿄스케

 

하토리 카즈토모

 

후지이 이츠키

 

- 네!
- 네!

 

동명이인인가?

 

처음 봤어

 

무라오카 시노부

 

이런 유쾌하지 않은 일로 시작된
저의 중학교 생활은

 

그 후로도 그 애 때문에
부당한 차별로 점철된

 

암흑같은 삼년이
되어버렸어요

 

예를 들어
주번을 맡은 날인 경우에는

 

주번후지이 이츠키 커플          

 

후지이

 

내일 주번은 누구지?

 

무라오카랑 후나바시

 

오늘 수학 진도는 어디지?

 

방정식

 

무슨 방정식?

 

후지이 이츠키!

 

사랑이 불타는군!

 

뜨겁다, 뜨거운 사이야!
실례했다고~

 

연립 방정식이야

 

고마워

 

이런 생활도 1년만 참으면
될 거라 생각했는데

 

웬걸, 3년이나 계속
같은 반이 되었어요

 

옆에서 듣는 사람들이야
재미있을지 몰라도

 

당사자들에겐
괴로운 날들이었죠

 

우린 서로 왠지 피하게 돼서

 

딱히 대화를 나눈 기억도
별로 없어요

 

- 그 후로 어떻게 됐니?
- 응?

 

편지 말이야

 

그럭저럭

 

그럭저럭?

 

후지이 이츠키 님

 

그는 어땠어요?

 

자기와 이름이 같은
여자애에게

 

뭔가 운명적인 것을
느끼진 않았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아요

 

당신은 뭔가 로맨틱한
상상에 빠져있을지 몰라도

 

현실은 냉혹한 것이었어요

 

우리 사이를 비유하자면

 

아우슈비츠 감옥의
아담과 이브랄까

 

반복되는 놀림이라는
고문 속에서

 

살아있다는 느낌조차
없었으니까요

 

반장 선거 때의 그 사건은
생각만해도 속상하네요

 

엔도 한 표

 

투표 용지 중에 유치하게
장난친 게 있었죠

 

후지이 ♥ 후지이

 

개표 위원이었던 이나바가
일부러 큰 소리로 이렇게 읽었더랬죠

 

후지이 이츠키 하트
후지이 이츠키

 

사건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어요

 

반장 선거 다음엔 방송부장같은
각 부의 부장을 뽑는 선거였는데

 

처음이 도서부장 선거였어요

 

왠지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죠

 

‘하트’...

 

도서부장은 후지이 이츠키 콤비로
결정됐습니다

 

어, 이것 봐
얘 울고 있잖아

 

울고 있어

 

울고 있대

 

정말?

 

뭐야, 저 녀석

 

사랑의 승리였습니다

 

박수, 박수!

 

아, 들었구나?
미안, 미안!

 

농담이야, 농담

 

왜그래?

 

알았어, 알았다고

 

그만해

 

후지이, 그만둬

 

그만해

 

후지이, 말로 하라고!

 

그만두라니까!

 

얘들아, 좀 말려!

 

후지이, 그만해!

 

그의 반항도 소용없이

 

결국, 우리 둘은 도서실로
보내졌습니다

 

그 애는 빈둥거리기만 하고
일은 거의 안 했습니다

 

후지이!

 

이거 좀 도와줘!

 

그 애는 책을 많이 빌렸어요

 

그것도아오키 곤요의 전기나
말라르메의 시집 같은 걸요

 

한 마디로 아무도 읽지 않는
책들만 빌려 갔죠

 

이런 걸 읽니?

 

읽을 리 없잖아

 

후지이 이츠키

 

후지이 이츠키
스트레이트 플러시!

 

그 애는 아무도 빌리지 않은
책의 대여 카드 빈 칸에

 

자기 이름을 적어 놓는 것을
즐기고 있었던 거죠

 

저는 기가 차서
이렇게 말했어요

 

너, 바보 아냐?

 

하지만 그 장난이
매우 재미있는지

 

질리지도 않고
종종 그런 장난을 했더랬죠

 

하여간 이상한 애였어요

 

후지이 이츠키 님

 

편지 정말로 감사드려요

 

물론, 당신의 추억 속에 남겨진
그 사람의 모습은

 

물론, 제가 잘 모르는 것들이지만

 

역시 그 사람의
또 다른 모습이겠지요

 

아마 그가 있었던 장소나
시간은 더 많을 테니까

 

제가 알고 있는 부분은
아주 조금 뿐이겠죠

 

당신의 편지를 읽고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조금만 더
그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당신의 추억을
제게도 나눠주세요

 

차라리 내 머리를 통째로 소포로
보내는 게 가장 빠르겠군

 

그건 아마도
2학년 기말 시험 때였어요

 

답안지를 손에 쥔 저는
쓰러질 정도의 충격을 받았죠

 

27점!

 

27이라는 숫자는
지금도 잊을 수 없어요

 

그런데 자세히 보니
제 시험지가 아니었어요

 

그렇다는 건

 

그 녀석이 뒷면에
끄적끄적 낙서하고 있는 것이

 

제 시험지임에 틀림없었어요

 

그게 긴 하루의 시작이었어요

 

“내 시험지 돌려줘!”

 

그 한 마디를 못 해서

 

결국, 방과 후까지 기다렸죠

 

마에다 선배!

 

카즈미가 선배와
사귀고 싶대요

 

그냥 친구라도 괜찮아요

 

마에다!

 

이 나쁜 놈!

 

저딴 놈은 잊어 버려

 

그 당시 방과 후의
자전거 보관소는

 

연인들의 메카였어요

 

후지이잖아

 

의외인 걸

 

이런 데 있다니

 

그 애는 옆 반의
오이카와 사나에였어요

 

너도 누군가를
기다리는구나

 

연애는 괴로운 일이지

 

남자는 제멋대로야

 

그렇지 않니?

 

이거...

 

고마워

 

하지만

 

하지만...

 

여자 쪽이
훨씬 치사하긴 해!

 

잘 해봐

 

그럼, 이만

 

잠시 동안의 파트너를
잃은 저는

 

다시 혼자서
그 애가 오기를 기다렸죠

 

저기, 잠깐만

 

오늘 영어 시험 답안지
바뀌지 않았니?

 

뭐?

 

이게 네 거 아냐?

 

어두워서 잘 안 보여

 

빨리 좀 봐
팔 아프단 말이야

 

그렇군

 

break의 과거형이
broke였구나

 

뭐야, 너 지금
답 맞춰 볼 때니?

 

잘 안 보인다고

 

여깄다!

 

뭐야, 이게

 

저질!

 

그런 추억이 담긴 답안지를
찾았기에 보내드립니다

 

뒷면의 낙서는
그 애의 작품이에요

 

후지이 이츠키 님

 

그의 그림과 시험지
잘 받았어요

 

소중히 간직할게요

 

그런데 그는 어떤
여자를 좋아했나요?

 

예를 들어, 첫사랑의 상대라든가
짐작 가는 사람은 없나요?

 

와타나베 히로코 님

 

그 정도까지 그 애의 사생활에 대한
데이터는 제게 없어요

 

그렇지만
제법 인기가 있긴 했어

 

오이카와 사나에라고
기억하시죠?

 

그 애와 얽힌
한바탕 소동은 있었어요

 

이츠키!

 

후지이 말이야
사귀는 사람 있어?

 

그런 걸
내가 어떻게 알아?

 

그래?

 

왜 이래?

 

사실, 너희 둘
꽤 친한 것 같아서 말야

 

농담하지 마
전혀 그런 거 아니라니까

 

그 애한테
사랑의 감정이 있지 않니?

 

내가 사랑의 큐피드 역할을
해 줄 수도 있어

 

사양하겠습니다

 

두 사람씩 짝지어요

 

서로 등을 맞대고 유연체조 시작!

 

너희 정말 사귀지 않더구나

 

그때 아니라고 했잖아!

 

그 애한테
직접 물어 봤어

 

뭐?

 

큰 맘 먹고 널 위해 사랑의 큐피드가
되어주려고 했었는데...

 

정말 안타깝네!

 

그럼, 이번엔

 

네가 나의 큐피드가
되어줄 차례 아니니?

 

무슨 소리야?

 

나랑 후지이를
이어 달라는 거지

 

무슨 말이야?

 

나란 애 말야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는
여자란 거 알지?

 

오이카와 사나에가 말야
너랑 친구 하고 싶다는데

 

그래?

 

어때?

 

글쎄

 

글쎄라니
어느 쪽이야?

 

어느 쪽이라니?

 

싫다는 거니?

 

누구 따로
좋아하는 여자라도 있니?

 

있어?

 

없어

 

그럼, 잘 됐네

 

자, 잠깐만!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어

 

잠깐 기다리라니까!

 

잠깐!

 

넌 이제 빠져도 돼

 

엑소시스트

 

남녀 관계는
고통의 연속이구나

 

그러니까 사나에와
사귀지 않은 것은 확실해요

 

그런 무뚝뚝한 남자애한테
제대로 된 여자 친구가 생길리가요

 

, 이건 어디까지나 중학 시절의
그 애한테만 해당하는 얘기예요

 

와타나베 히로코 님
질문이 하나 있어요

 

당신은 그 녀석의
어디가 좋았어요?

 

기다리게 해서 죄송해요
선생님은 곧 오실 거예요

 

히로코 씨

 

저 아키바 선생님
좋아했었어요

 

히로코 씨라서
포기한 거예요

 

전 히로코 씨도
좋아하니까요

 

부디 선생님을
행복하게 해주세요

 

참, 선생님이 히로코 씨를
행복하게 해드려야겠네요

 

선생님께 그렇게
말씀 드릴게요

 

선생님, 히로코 씨가
기다리고 계세요

 

, 푸른 바람...

 

가르고 달려요
저 섬으로

 

있잖아

 

한 번 그 산에
가 보지 않을래?

 

그 친구한테
인사라도 하고 오자

 

어때?

 

 

이츠키

 

좀 도와줘

 

오늘 컨디션이 안 좋아
너한테 맡길게

 

도대체 언제까지
감기를 달고 다닐 거야?

 

생각해 보니
자꾸 기억이 떠오르네요

 

이런 일도 있었죠

 

그 애가 등교 길에 트럭에 치어
구급차에 실려 갔죠

 

그 날도 걸작이었어요

 

오늘 후지이 이츠키가
사고를 당했다

 

아직 정확한 상태는 모르지만
우다기 선생님도 병원에 가신 관계로

 

오늘 자습은 내가...

 

후지이!

 

너 왜 여기 있는 거냐?

 

자습!

 

왜 저런대?

 

그 애는 왼쪽 발에
골절상을 입었어요

 

게다가 그 때가
육상 대회 한 달 전이어요

 

그 애는 육상 100미터 선수였죠

 

그 카메라 잘 보여?
나 좀 보여줘

 

- 무슨 짓이야?
- 이리 줘 봐

 

이 카메라 좀 봐

 

잘 보이니?

 

각자 제 위치로

 

준비!

 

자네 뭐하는 거야?
어디 학교야?

 

어느 중학교야?

 

저 자식 뭐야?
다시 뛰게 해주세요

 

네가 경기를 망쳤잖아

 

쟤 왜 저런대?

 

이거 초점은 어떻게 맞춰?

 

너 안 보고 있었어?

 

뭘?

 

그게 그 애의 중학 시절
마지막 경기가 되어버렸죠

 

오늘 쉬는 날이야?

 

맘대로 들어오지 말라니까!

 

오늘은 예외라고

 

예외가 어딨어?

 

여기!

 

도장 찍어야 돼

 

후지이 이츠키 님

 

그가 뛰었던 운동장
사진을 보내주세요

 

어떻게 오셨죠?

 

외부인이신가요?

 

하마구치 선생님

 

옛날 3학년 2반의...

 

후지이?

 

맞아요, 기억하세요?

 

3학년 2반
후지이 이츠키

 

출석 번호가...

 

아이자와, 오카자키
가토, 코야마, 사토...

 

24번

 

굉장해요!
그걸 어떻게?

 

시립 도서관에서 일하는구나

 

무슨 인연인지
그렇게 됐어요

 

그럼, 도서부장 일이
헛되지 않았던 거네?

 

제법 좋아했어요
도서부장 일

 

오늘, 책장 정리하는 날이야

 

그리워라

 

다들 모여 봐!

 

도서부였던
후지이 선배야

 

안녕하세요

 

후지이래

 

후지이 이츠키 씨!

 

어떻게 알지?

 

거짓말!

 

도서부에선 후지이 이츠키
이름 찾는 놀이가 유행하고 있어요

 

누가 처음 발견했지?

 

쿠보타!

 

그 후 몇 권이나
발견했잖아

 

누가 가장 많이 찾는지
경쟁이 붙었죠

 

점수표도 만들었는 걸요

 

어디 뒀더라?

 

최근엔 좀 시큰둥해지긴 했지만...
몇 장이나 찾았지?

 

그러니까...

 

현재 87장이야

 

그렇게 많아?

 

본인을 만날 줄은
꿈에도 몰랐잖아

 

이건 내가 쓴 게 아냐

 

친구가 장난친 거야

 

친구라면 남자인가요?

 

남자야

 

선배님을 무지 좋아했나 봐요

 

이렇게 선배 이름을
많이 적어 놓다니!

 

아, 그렇구나!

 

그 사람이랑 선배님이랑
사귀셨나요?

 

멋지다!

 

아니야, 그건 오해야

 

이건 내 이름이 아니라...
그게 아니라니까...

 

- 멋진데!
- 좋겠다...

 

정말 당황했어요

 

정신 없지?
난 매일 저런 애들과 지내

 

정말 그렇겠네요

 

그런데 누구야?

 

널 좋아했던 남학생 말이야

 

카드에 이름을 쓴 사람

 

선생님까지!

 

뭐 어때!

 

그건 제 이름이 아니에요

 

뭐?

 

왜, 후지이 이츠키가
또 있었잖아요

 

그 남학생?

 

그 애가 한 짓이에요

 

출석 번호 기억나세요?

 

9번

 

와!

 

한 번에 맞혔어요

 

그 애는 특별하니까

 

2년 전에 죽었잖아

 

등산 가서 조난당했대

 

뜨거워

 

이제 한 정거장 남았네

 

왜 그래?

 

잠자리...

 

아빠가 돌아가셨구나

 

조금 더 가면
아는 사람이 살아

 

이름이 불을 뜻하는 ‘카지’라서
‘불아범’이라 불리지

 

지진, 천둥 다음
불아범이잖아

 

그래서 불아범이야

 

오늘은 불아범 집에서 묵고

 

내일 아침 일찍 산에 가자

 

저 산이야

 

산봉우리 보이지?

 

왜 그래?

 

안 되겠어

 

역시 못 가겠어

 

히로코...

 

우리 지금 뭐 하지?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냐?

 

잘못하는 거라고

 

히로코

 

이츠키가 화낼 거야

 

그렇지 않아

 

돌아가자

 

뭐 때문에 여기 온 거야?
다 떨쳐버리러 온 거잖아

 

그만해줘

 

떨쳐버리지 않으면 안 돼,
히로코!

 

부탁이야

 

돌아가게 해줘

 

와타나베 히로코 님

 

제 아버지는 감기가
악화돼서 돌아가셨죠

 

왜 그러니?

 

체온을 쟀니?
몇 도야?

 

고장 났나 봐요

 

어디...

 

이츠키!

 

이츠키!

 

41.8도!

 

아버님!

 

아버님!

 

아버님!

 

구급차 좀 불러요!

 

그리고 담요!
담요 들고 내려와요!

 

아버님, 담요!

 

이츠키!

 

담요는요?
119에 전화했어요?

 

담요?

 

구급차 먼저요!

 

이츠키는?

 

옮겨 눕힐게요

 

그보다...

 

119에 전화하세요!

 

추워...

 

1시간?

 

뭐라는 거야?

 

왜 그리 오래 걸려?

 

뭐? 눈?

 

구급차는요?

 

못 기다리겠다

 

뭐라고요?

 

담요 가져와!

 

어쩌시려고요?

 

택시 타면 15분 만에
병원에 도착해

 

택시는 안 돼요!
잡힐 리가 없잖아요

 

안 잡히면 걸어간다

 

무슨 바보같은 소릴 하세요?
그러지 마시고 구급차나 불러요

 

1시간이나 걸린다잖아

 

네?

 

왜요?

 

밖을 봐

 

담요 어딨어?

 

여보세요?
아까 전화한 후지이라고 하는데요

 

예!

 

열은 얼음으로
식히고 있어요

 

네!

 

어디에 전화하냐?

 

이츠키를 소파에 눕히세요
몸을 따뜻하게 하는게 중요하대요

 

죄송합니다, 그리고요?

 

이봐!

 

이츠키를 눕히시라니까요!
따뜻하게 해야 해요!

 

응급 처치는 아까 들었다

 

그럼, 들은 대로 하셔야죠

 

그렇게 해도
구급차는 안 와

 

온다잖아요
1시간 후에

 

봐, 눈이 점점 많이 오고 있어
이제 더 심해질 거다

 

1시간이면 오죠?

 

올 수 있죠?

 

잠시만요

 

아버님!
이츠키를 내려놔요

 

괜찮으니까
담요나 가져와!

 

택시는 안 돼요!

 

어서 가져와!

 

이 애까지
죽일 작정이세요?

 

정신 똑바로 차리세요, 아버님

 

그이 일,
기억 안 나세요?

 

119 말 안 듣고 제멋대로
택시 잡으러 나갔다가

 

결국, 못 잡았죠?

 

그래서, 아버님이 그 사람 업고
병원에 걸어갔잖아요

 

기억 안 나세요?

 

그러다 응급 처치가
늦어져서

 

그 사람 죽은 거잖아요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해서
어쩌시려고요?

 

위급할 때는 전문가의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안 돼요

 

아시겠죠?

 

그 때 병원까지
몇 분 걸렸지?

 

네?

 

몇 분이었냐?

 

1시간...
1시간은 걸렸어요

 

안 걸렸어

 

걸렸어요

 

40분이었다

 

네?

 

그 때 40분 걸렸다

 

더 걸렸어요

 

아니라니까

 

정확하게는

 

집에서 병원 현관까지 가는데
38분이었다

 

그래도 손쓰는 게 늦었다

 

어떻게 했든
이미 늦은 거였어

 

지금 출발하면

 

구급차가 오기 전에
병원에 도착할 수 있어

 

어쩌겠냐?

 

이츠키는 네 딸이니

 

네가 정해라

 

그래도

 

눈이 이렇게 많이 오는데
걷는 건 무리에요

 

걷지 않아

 

뛸 거야!

 

오늘 하루만 여기서
묵게 해달라고 하자

 

괜찮지?

 

자네 왔군

 

얼굴이 완전 숯검댕이네!

 

거 봐,
왜 불아범인지 알겠지?

 

정말 안타까워

 

왜 좋은 녀석일 수록
빨리 죽는 걸까

 

불아범도 일행이었지
조난 사고 때 말이야

 

하지만 그땐 지금보다
머리숱이 더 많았어요

 

맞아, 더 많았지

 

불아범은 대단해!

 

그 사고 이후로 여기서
등산객을 돕고 있거든

 

아니, 조난당했던 덕분에 말야

 

저 산에 대해선 누구보다도
잘 알게 되서 말이지

 

그렇지만, 등산객들에게
저 산은 위험하다느니

 

날씨에 신경쓰는 게 좋다느니
잔소리를 심하게 하니까

 

다들 싫어해요

 

그래도 대단해

 

나는 그 후로
산에서 도망쳐 버렸으니깐

 

다시 오르고 싶은
생각 안 들어?

 

응?

 

하지만 무리야

 

왜?

 

이젠...

 

무서워

 

받아

 

나의 사랑은...

 

남쪽 바람을 타고 달려요

 

그 노래는 뭐죠?
모두의 주제가같은 건가요?

 

그 녀석이
마지막 순간에 불렀죠

 

골짜기 아래로 떨어졌는데

 

사람은 안 보이고

 

이 노래만 들리지 뭐에요

 

왜 하필 마지막 순간에

 

‘마츠다 세이코’
노래를 했을까?

 

그 녀석 마츠다 세이코라면
치를 떨었는데...

 

이상한 녀석이었어

 

그러게 말야

 

저 말이에요

 

프러포즈,
그 사람한테 못 받았어요

 

뭐?

 

마야 산의
전망광장으로 불러내선

 

손에 반지 케이스까지
들고 나와서는

 

그 사람
아무 말도 않는 거예요

 

둘이서

 

두 시간 정도를

 

말없이 야경만 바라봤죠

 

그러다 보니
안 돼 보이는 거예요

 

어쩔 수 없이

 

제가 먼저 말했죠

 

“결혼해 주세요”

 

그랬더니 그 사람
“그래” 하고 한 마디 하더군요

 

원래 그런 놈이였어

 

여자 앞에서는
말 한 마디 못 했는 걸

 

하지만
다 좋은 추억이야

 

그렇지

 

좋은 추억이 가득해

 

그럼

 

그런데도
또 뭔가 받고 싶어서

 

죽은 다음에도
열심히 쫓아 다니면서

 

이것저것 투정부리는
여자인가 봐요

 

제멋대로인 여자에요

 

그런데 아버님

 

생각해 보니까
그 후로 10년이나 지났어요

 

그게 어쨌다고?

 

올해 75세시죠?

 

76이다!

 

이젠 무리예요

 

나이는 관계없어!

 

있어요!

 

아버님!

 

역시 무리예요

 

잠깐

 

기다려요!

 

걱정 마라!

 

내 목숨과 바꾼대도

 

40분 안에 갈 거니까

 

그 쪽은 산소 호흡기!

 

- 저기
- 언니!

 

이사 안 갈까 봐

 

이렇게 된 바에야...

 

아버님이
먼저 돌아가실지

 

그 집이 먼저 무너질지
끝까지 지켜보겠어요

 

부동산 입장에서 말하는데
집이 먼저 쓰러져요

 

괜찮아요
둘 다 무사할 거에요

 

히로코!

 

히로코

 

왜 그래?

 

좀 나와 봐
아름다운 해돋이야

 

왜 그래?

 

잘 봐

 

뭘?

 

저게 그 산이야

 

잘 봐둬,
후지이는 저기 있어

 

후지이!

 

너 아직 마츠다 세이코 노래
부르고 있냐?

 

거긴 안 춥냐?

 

히로코는
내가 책임질게

 

좋아

 

좋아, 좋아...

 

거 봐!

 

좋다잖아

 

자기 맘대로야

 

히로코도 뭔가 말해봐

 

불평할 것 많잖아

 

잘 지내고 있나요?

 

전... 잘 지내요

 

후지이 이츠키 님

 

잘 지내고 있나요?

 

잘 지내고 있나요?

 

전... 잘 지내요

 

저는 잘 지내요

 

잘 지내세요?

 

잘 지내고 있나요?

 

저는...

 

잘 지내요

 

잘 지내요?

 

잘 지내고 있나요?

 

전 잘 지내고 있어요

 

잘 지내고 있나요?

 

무슨 소란이야?

 

아침 일찍부터

 

방해하지 마

 

지금 중요한 순간이니까

 

와타나베 히로코 님

 

제 아버지는 감기가
악화되어 돌아가셨어요

 

중3 올라가던 해
설날이었죠

 

정초부터 장례식이니 뭐니
집안이 난리였죠

 

조심, 조심

 

떨어뜨리면 안 돼!

 

그 후, 어머니가
몸져 누우셔서

 

전 신학기가 시작됐는데도
얼마간 학교에 갈 엄두를 못 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나가요

 

어...

 

웬일이야?

 

너야 말로
왜 집에 있어?

 

- 학교는?
- 학교는?

 

무슨 일이야?

 

이거 말이야

 

겨울 방학 전에 빌린 건데
반납하는 걸 잊었어

 

도서실에 반납해줘

 

그런 건 직접 반납하면 되잖아

 

그게 그럴 수 없게 됐으니까
부탁하는 거잖아

 

왜?

 

어쨌든 부탁할게

 

상 중

 

누가 돌아가셨니?

 

아버지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왜 웃어?

 

아무 것도 아냐

 

그게 그 애와의 마지막이었어요

 

그리고, 혼자서만
일주일 늦은 새학기 첫 날
...

 

쟤들이 장난친 거야

 

얘가 그랬어

 

난 아냐

 

너 알아?
후지이가 전학 갔어

 

뭐?

 

급히 가게 돼서
인사할 새도 없었대

 

왜 그러니?

 

이츠키!

 

후지이 이츠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마르셀 푸르스트

 

그것이 그 애와의
마지막 추억이었어요

 

그리고, 당신에게 전하는 이야기도
이것이 마지막일 겁니다

 

이츠키!

 

잠깐만, 다 끝나가

 

후지이 이츠키 님

 

이 편지에 담긴 추억은
당신 거예요

 

그러니 당신이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진심으로
고마웠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추신...

 

“추신, 그 도서 카드에 쓴 이름이
정말 그의 이름일까요?”

 

그럼, 뭐란 말이야?

 

“그가 쓴 이름들이 당신 이름인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드네요”

 

이게 무슨 말이야?

 

왜 그래?

 

중학교 때 이름이 같은
애가 있었어요, 그것도 남자애

 

그래서?

 

그것 뿐이에요

 

네 첫사랑이냐?

 

그런 건 아니에요
그냥 그랬었다고요

 

저 나무를 심었을 때

 

이름을 붙여줬단다

 

어떤 이름인지 아니?

 

모르죠

 

이츠키였어
너랑 똑같은 이름

 

정말요?

 

네가 태어날 때
저 나무를 심었거든

 

그래서 같은 이름을
붙인 거란다

 

어느 나무요?

 

몰랐지?

 

어느 거, 이거요?

 

이거요?

 

저거요?

 

둘이서 뭐 해요?

 

정말이에요?
지금 지어낸 말 아니에요?

 

이거구나!

 

나의 불가사의한 펜팔 친구
와타나베 히로코 님

 

잘 지내고 있나요?

 

전 변함없이 잘 지내요

 

어떻게 지내냐면...

 

이건 중요한 게 아니고

 

그 보다 오늘
굉장한 일이 있었어요

 

당신에게 알려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급히 펜을 들었어요

 

라고 해도 내 경우엔
워드 프로세서지만

 

그건 생각지도 못 한
방문객들에 의해 생긴 일입니다

 

빨리 와!

 

너희들이구나

 

안녕하세요

 

웬일들이지?

 

멋진 걸 발견해서요

 

이거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뒷면을 봐요
뒷면 말이에요

 

카드를 봐요
도서 카드요

 

후지이 이츠키

 

뒷면이요, 뒷면

 

와타나베 히로코 님

 

역시 쑥스러워서
이 편지는 보내지 못 하겠습니다

 

Re-Vision by  Michael Archangel